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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파문이 느리게 오래 지속되는 시를 써야...
2017년 05월 05일 21시 18분  조회:2487  추천:0  작성자: 죽림

동백숲에 길을 묻다  
  

느리게 쓴다는 것의 의미 

1. 

프랑스 철학자 삐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시리즈가 얼마 전부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으면서 수많은 여염집 서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 에세이로서는 보기 드물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예에 속하는데, 이것은 그만큼 속도에 대한 맹신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려는 욕망이 우리 사회에 미만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쌍소는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우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삶을 철저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찾는다. 그는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생활 차원에서 다음의 몇 가지를 제안한다. 즉 한가로이 거닐 것, 말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을 것, 권태 속에서 느긋함을 느낄 것, 즐거운 몽상에 빠져볼 것,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자세로 결과를 기다릴 것, 고향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거나, 추억이 새겨진 나만의 장소를 만들 것, 글을 쓸 것, 남을 비판하거나 질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 것, 가벼운 술 한 잔의 여유를 즐길 것 등이 그것이다.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적 일상을 살아가면서 실천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일들이다. 

그러면, 시의 차원에서 느리게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 우리 시단에는 현대 사회에서 속도 지상주의에 찌든 삶에 대응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현대의 속도 신화에 몸을 싣고 그 속에 파고 들어가는 전위적 시인들이 있는가 하면, 속도의 메커니즘에서 살짝 비껴 서서 속도에 찌든 세태를 바라보고자 하는 관찰자적 시인들이 있다. 다른 한 쪽에는 그런 광경을 아예 외면해 버리고 속도 세계와는 절연된 곳을 찾아다니는 시인들도 있다. 김선태 시인은 이들 중 마지막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는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시의 차원에서 실천한다는 점에서 우리 시단의 삐에르 쌍소다. 사실 오늘날과 같은 스피디한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부단히 반추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2. 

그런데, 삐에르 쌍소도 지적했듯이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르게 사는 것과는 전연 다르다. 게으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방치하는 무책임한 것이지만, 느리다는 것은 삶의 세부적 국면들을 음미하며 철저히 사는 방식이다. 시인에게 느리게 산다는 것은 곧 느리게 쓴다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번 시집 가운데 느리게 쓴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명료하게 제시한 시는 이렇다. 

나는 미욱하여 늦게, 

아주 늦게, 네게 

닿고 싶다 

가장 먼 길 

휘어져서, 꾸불꾸불 

세상을 한 바퀴 

두루 산보하고서야, 너를 

지구처럼 둥근 너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  부분 

삶에 대한 시인의 기본적 태도가 드러난 부분이다. 시인이 스스로를 어리석고 미련하다(“미욱하다”)고 전제하고는, 대상을 향해 “아주 늦게” 도달하고 싶다거나 “세상을 한 바퀴/두루 산보하고서야” 대상을 소유할 것 같다는 말은, 오늘날처럼 빠른 것만을 맹신하는 세태에 비추어 볼 때 상식에 어긋난다. 이 시에서 지시하는 ‘너’가 사랑하는 사람이든 우정어린 친구이든 삶의 목표이든, 상식대로라면 어떤 방법을 택하든 빨리 그(것)를 만나고 싶어할 테지만, 시인은 세상을 고샅고샅 두루두루 돌아다닌 이후에 천천히 그(것)와 만나고 싶다고 한다. 이 이상한 바람의 밑자리에는 ‘너’와의 만남을 완전하고 진정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시인의 심리가 내재한다. 만남의 대상을 빨리빨리, 대충대충, 순간적으로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천천히, 철저하게, 영원히 만나려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스스로를 ‘미욱하다’고 했던 전제에서 파악되는 것은 시인의 우둔함과 미련스러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겸손한 태도이다.진정한 만남을 추구하기 위해 빠른 세상에 역행하며 살아가는 시인은 오히려 아주 현명하고 용기 있는 존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둥글게’ 살려는 태도는 곡선적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느리게’ 살려는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직선적인 것이 인공적이고 빠른 속도감을 연상시키는 반면, 곡선적인 것은 자연스럽고 완만한 속도감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  등은 ‘둥글게’가 내포하는 느림의 시학을 적극적으로 형상화한 예에 속한다. 

김선태 시인이 추구하는 느림의 시학은 세계관에 있어서는 낭만적 태도와 연관된다. 주지하듯 낭만적 태도란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무기적(無機的) 세계와 유기적(有機的) 세계, 그리고 윤리적(倫理的) 세계가 일원론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다음의 시에는 연속적 세계관이라고 부를 만한 낭만적 태도가 잘 드러난다. 

늦가을, 정수사 깊숙이 꼬부라져 들어간 길목에 서 있었습니다. 삶이 어떤 행색을 하고 있는 것이더냐고 혼자 중얼거릴 때 저 길목에 늘어선 늙은 바위들은 무어라 말을 건네주지 않습니다. 삶이 무어라고 말하면 이미 삶은 거기 없다는 듯, 풍경 하나를 제대로 만나려면 그 풍경과 몸을 바꾸어야 한다는 듯, 비밀을 먼저 탐하려는 자의 우매를 억만 겹 세월의 무게로 지그시 눌러버렸습니다. 

―  부분 

시인은 ‘정수사’라는 절의 “길목에 늘어선 늙은 바위들”을 일련의 ‘풍경’으로 제시하면서 “풍경 하나를 제대로 만나려면 그 풍경과 몸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거처라 할 자연과 객관적 거리를 버리고 온전한 일체가 되어야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늙은 바위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낸 존재, 혹은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자의 모습이다. 세월이 가져다 준 온갖 풍상을 다 겪어내며 일관되게 저의 자리를 지키는 “늙은 바위들”은, 변화무쌍한 세상사를 가로질러 득도의 경지에 오른 고매한 노승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반면에 “비밀을 먼저 탐하려는 자”는 속도 신화에 찌든 세속적인 현대인을 표상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자연이나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발견은 ‘바위들’과 같은 여유로운 기다림 없이 그저 남보다 빨리(‘먼저’) 염원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시인은 그런 염원이 ‘우매’한 것이라고 보고, 자연이나 인생의 발견을 위해 중요한 것은 “풍경과 몸” 사이의 연속적 일체감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한다. 

이처럼 시인과 자연이 일체(一體)가 되려는 태도, 혹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은 이번 시집의 골간을 구성한다. 이런 낭만적 태도가 드러나는 방식은 두 가지인데, 그 중 하나는 시인이나 화자가 직접 개입하지 않은 채로 자연물들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발견하여 존재의 원리를 깨닫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뼈 시린 바닷물에 깊게 몸 담근 자만이 비로소 아름다운 진실 하나를 건져낼 수 있다”(), “둥근 황동 거울을 하나씩을 품에 안은 채/허리띠도 풀어버리고 그냥 산다”(), “오늘도 지상은 저마다 돌아가도 있는 것들의 풍경으로 가득하다”(), “네 몸에서 네 길 위에서/피는 꽃만이 네 꽃이다/마침내 시다”(), “세상의 기쁨이며 슬픔까지를 죄다 거두어 삭혀선/참, 구성지게는 남해와 몸 섞는 것을”(), “모두들 그 계집아이를 자연산이라 불렀다 황홀한 보름달의 자식이었다”(), “낮에는 풀꽃이며 산짐승들이 밤이면 달빛과 별빛이 동행의 길을 밝힙니다”()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해 낭만적 태도가 드러나는 또 하나의 방식은 시인이 스스로 풍경 속으로 들어가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현상은 우선 “저물 무렵 하산하는 마음속으로 오솔길 하나 따라옵니다”(), “이 진창의 갯고랑에 묻힌 참나무처럼/나 산 채로 깊이 묻히겠노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풍경을 다시 바라보는 일은 ‘파란만장’()으로 얼룩지거나 “심하게 깨진/내 얼굴”()로 표상된 자신의 삶의 이력을 정직하게 성찰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특히 이 시집의 3부에 실려있는  연작 4편은 상처로 얼룩진 삶을 스스로 치유하는 생명의 메커니즘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들은 동백나무처럼 살아온 시인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으로도 읽힌다. 이 시편들에 대한 분석은 필자가 이미 ([현대시], 2002년 4월호)에서 시도한 바 있으므로 굳이 반복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 시편들에서 특히 ‘본다’는 행위는 절묘한 메타포를 이루는데, ‘본다’는 행위를 통해 시인은 생명의 원리에 대한 발견과 인생 역정에 대한 치열한 성찰적 인식에 이른다. 

이번 시집에서 느림의 시학을 실천하는 수사적, 표현적 측면에서의 방법은 감탄사, 의성어, 쉼표 등을 적실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의 활용은 시적 정서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거나 느리게 하여 시상의 흐름을 찬찬하고 여유롭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1) 오호라, 지천으로 지천으로 물이 올라, 어디를 가도 한참은 정신이 몽롱한 남도의 봄 연애사태여, 그리하여 나도 대지 위에 벌렁 누워 뒹굴고 싶은 아흐, 더는 참을 수 없는 봄의 오르가슴이여. 

―  부분 

2) 딱따구리 소리가 또 한 번 딱다그르르 

숲 전체를 두루 울릴 수 있는 것은 

숲의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숲을 지나는 계곡의 물소리까지가 서로 

딱,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  부분 

우선 1)은 봄을 맞이하는 대지의 생동감을 성적 이미지와 절묘하게 결합시킨 시다. 이 짧은 시구에서 감탄사를 두 번이나 활용하고 있다. 사실 감탄사는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거나 그 영향권 내에 있는 시인들에게는 경계의 대상이다. 감탄사는 명징한 이미지를 형상화하거나 지적인 인식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발되는 수준만 아니라면 감탄사는 낭만적 감정이나 서정적 영감을 드러내는 데 여간 유용한 게 아니다. 이 시에서 사용된 감탄사 ‘오호라’와 ‘아흐’는 시상을 고양하여 그 여운을 길게 늘어뜨리는 데 긴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탄사가 따뜻한 봄날에 여성적 대지와 남성적 대지의 어울러짐을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데 활용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생명력이 약동하는 봄의 기운을 찬찬히, 느리게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외에 , , , , , , , , , ,  등에서도 감탄사가 시상의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2)에서 ‘딱,’은 의성어이자 의태어이다. 딱따구리라는 새가 내는 소리의 한 부분으로 들을 때는 의성어지만 아귀가 잘 들어맞는다는 뜻으로는 의태어의 구실을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음성 상징어로서 ‘숲 전체’을 구성하는 것들인 “나무와 이파리와 공기와 햇살”, ‘물소리’ 등이 ‘하나’로 조화된 국면을 형상화하는 데 적잖은 효과를 발휘한다. 숲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유기적 관계 속에서 하나의 전체로 작용하며 존재한다는 인식은 낭만적이고 생태주의적인 세계관과 깊이 연관된다. 이 시가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면, 그것은 ‘딱,’이라는 시어에 절묘한 사용에 크게 빚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 , , ,   , ,  등도 의성어가 시상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 시집의 적잖은 작품들은 쉼표의 사용에서 독특한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도 느림의 시학과 연관된다. 단적인 예로 “마음은, 지금, 어느, 남쪽, 섬, 기슭,/한, 마리, 갯고둥, 처럼, 엎으러져, 있어라.”( 전문)와 같은 시는, 불과 12단어(혹은 어절)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쉼표가 11개나 사용되었다. 모든 단어들 사이에 쉼표가 사용된 셈인데, 이 쉼표들은 시의 중심 메타포인 ‘갯고둥’의 생리를 적실히 드러내는 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쉼표를 활용함으로써 시인의 ‘마음’은 이름 모를 해변의 ‘갯고둥’처럼 여유로움, 혹은 느림을 지향한다는 메시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외에도 ,  등의 시에서도 쉼표가 일반적인 용법에서 벗어나 시상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발견된다. 쉼표가 시상의 흐름에 휴지를 줌으로써 느림의 시학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3. 

이처럼, 김선태 시에서 느리게 쓴다는 것의 의미는 주제의 차원에서 보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라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수사적 차원에서 보면 시상의 흐름을 완만하게 함으로써 주제의 여운을 길게 하여 그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이렇게 형상화된 김선태 시는 속도 지상주의에 혼과 몸을 빼앗기고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려가는 우리 시대를 제어하는 브레이크로서 의미가 있다. 이 브레이크의 성능이 온전히 발휘되게 하는 핵심 기제는 “느리지만 철저하게 사는” 삶의 태도이다. 이런 태도로 느리게 쓴다는 것의 의미를 부단히 반추해 온 김선태 시인은, 그의 시구에 빗대어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느려터진 포유류”에 속할지 모르나 “결코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없”는 ‘나무늘보’( 부분)처럼 자신의 시와 삶에 철저하다. 이번 시집은 그 철저한 삶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느림의 시학을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속도 신화에 찌든 세상만이 아니다. 김선태 시인은 순수한 시정신을 위협하는 것으로 자기 안의 욕망을 문제 삼는다. 가령 “꿈속까지 따라붙는 질긴 욕망과도 멱살을 잡고 싸웠다. 그리고 순수 하나 지키기를 바라며 울었다”.()고 하는 대목을 보라. 그는 속도와 싸우는 일 외에 “날마다 검은 수염처럼 기어 나온다”는() 욕망과도 싸우며 더 철저한 자세로 시를 쓰고자 한 것이다. 이때 속도와의 싸움이 세상과의 싸움이라면, ‘욕망’과의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뜻한다. 그런데 속도와 ‘욕망’은 사실 닮은꼴이다. 인간의 욕망은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인간의 내면과 세상을 안팎으로 넘나들며 질주하듯 과속으로 움직이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속도와 욕망은 엇나간 근대적 세계의 순수하지 못한 것들의 표상한다는 점에서도 닮음꼴이다. 이와 반대의 속성을 지닌 느림과 순수도 또한 서로 닮음꼴이다. 근대적 욕망과 속도에 찌든 세태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고 스스로를 느림의 삶으로 이끄는 태도는 순수하다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김선태 시인은 느림과 순수를 지키기 위해 속도와 욕망에 뻗대며 시를 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선태 시인이 느림의 시학을 실천하는 일은 세상사에 무감한 상태에서 멋모르고 하는 순진한 행동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 둔다. 그는 순수하되 순진하지는 않다. 순진하다는 것은 세상사에 대해 뭘 모른다는 것이지만, 순수하다는 것은 속악한 세상사를 다 알면서 올곧은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향하는 태도이다. 그는 언제든 세상에서 “부르면 길들여진 메아리처럼 빠르게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삶과 시를 더욱 철저히 살아내기 위해 느림의 시학을 추구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집은 이 순수함을 바짝 밀고 나아간 자리에서, 빠름만을 추구하는 황량한 세태의 한 구석에서 더욱 “눈부시게 살아서 파닥거”()린다. 아마도 “파닥거”림은 시의 파문이 되어 느리게,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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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김기림(1908∼?)

나의 소년 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 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호져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 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강어귀의 그 마을, 아마도 화자의 고향이리라. 화자가 소년 시절에 ‘호져(혼자) 때 없이’ 헤매다 강가로 내려가곤 했던 ‘그 긴 언덕길’, 슬픔이 자욱이 깔린 상실의 길. 그 길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상여가 꼬부라져 돌아가던, 영원히 잊지 못할 광경을 봤다. 그리고 그 길에서 데이트를 하며 풋사랑을 일구었던 대상을 바로 거기서 잃었다. 아름답고 슬프고 그리운 그 길은 실제 한 마을의 길인 동시에 ‘소년의 길’이다. ‘꼬부라져 돌아가다’란 말은 슬프다. 꼬부라져 돌아간 뒤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감수성 예민한 선병질 소년의 외롭고 여린 마음이 독자 가슴속 원초적 설움을 건드린다. 그 이미지가 선연히 떠오르는 시 속 풍경도 화자 개인의 기억이 아니라 인간 기억의 원형 같다. 전혀 흔하거나 진부하게 그려진 공간이 아님에도 친근하고 익숙하게 와 닿는다.
 

 

나무도 하필 늙은 버드나무일까. 이 시의 원형적 공간에 딱 어울리는 나무다. 청년이나 장년일 나이가 된 화자는 고향마을 어귀의 늙은 버드나무 밑에 서서, 깊은 그리움에 휩싸인다. 마을을 떠났던 자기처럼, 어머니도 계집애도 자기의 소년 시절도 돌아올 것만 같아. 아스라하고 아련했던 기억이 사무치게 되살아나 눈물짓는 화자를, 어둠 속에서, 어둠만큼이나 어두운 늙은 버드나무는 묵묵히 내려다봤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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