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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면 우산을 씁니다. 정확히는 머리 위에 받쳐 비를 가리지요. 그래서 우산이라는 한자도 비 우(雨)에 우산 산(傘)을 쓰는데요. 우산을 영어로는 ‘umbrella(엄브렐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우산보다 양산에 가깝습니다. 라틴어로 그늘을 뜻하는 ‘옴브라(Ombra)’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서양의 우산, 엄브렐라는 비가 아니라 햇볕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양산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등장한 곳이 B.C. 9~7세기 중동을 다스렸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였습니다. 뜨거운 중동의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머리 위에 옴브라, 그늘을 드리웠던 거지요.
그러나 아시리아를 비롯해 이집트, 로마, 그리스 시대를 거쳐 르네상스 초기까지 옴브라는 귀족 이상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단순히 햇볕을 가리는 그늘을 넘어 신이 보호해주는 그늘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도 미사 시간에 옴브라를 사용했는데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이 보호해주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중동의 옴브라가 유럽에 퍼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산이 우산이 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서 18세기 중엽이 돼서야 비를 피하는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 계기는 이렇습니다.
비 오는 어느 날, 영국의 멋쟁이 신사 조나스 한웨이가 양산을 쓰고 거리에 나타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성들이 열광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남성도 양산을 쓸 수 있구나, 둘째, 양산으로 햇볕뿐 아니라 비도 피할 수 있구나, 였습니다. 이렇게나 간단한 발상의 전환을 하는 데 무려 2천4백 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리고 1830년, 양산이 아닌 최초의 우산 전문점이 영국 런던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파는 우산은 우리가 옛날에 볼 수 있었던 종이우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무로 우산살을 만들고, 기름을 입힌 캔버스를 덮어 씌웠지요. 1852년에 철제 우산살이 등장한 데 이어 1920년대에 접이식 우산이 개발되면서 누구나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게 됐는데요. 단순한 우산의 역사인 것 같지만 여기서도 일정한 방향을 갖고 있는 문명의 발전이 읽힙니다. 부와 권력을 소유한 소수만 누릴 수 있었던 것에서 다중이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더 튼튼해지고 더 작아지고 더 편리하게, 라는 방향 말이지요.
이렇듯 오랜 세월에 걸쳐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등장한 서양의 우산과 달리 동양에서 우산은 처음부터 우산이었습니다.
누가 우산을 발명했는지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춘추시대 노나라의 발명가인 노반(魯班)입니다. 원래 이름은 ‘공수 반’이지만 ‘노나라의 반’이라는 뜻으로 노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중국에서는 각지에 그를 모신 사당이 있을 만큼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톱을 비롯한 다수의 건축 도구와 성(城)을 공격하는 장비 등을 개발해서 중국 토목산업의 시조로 불리는데요. 노반이 우산을 발명한 것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노반이 부인과 나들이를 하던 중 비가 내렸습니다. 다행히 근처에 정자가 있어서 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부인이 무심히 “정자를 많이 세우면 행인들이 비를 피할 수 있어서 좋겠다”고 했고, 이 말이 노반의 영감을 자극했습니다. 노반은 “정자를 들고 나가면 된다”는 말을 남긴 채 집으로 돌아가 작업에 몰두했는데, 며칠 만에 들고 나타난 것이 바로 우산이었습니다.
2천 년 하고도 몇백 년이 넘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보니 다른 버전도 전해집니다. 노반의 부인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밖에서 궂은 작업을 하는 남편을 위해 이동형 정자처럼 생긴 우산을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버전이든 노반 부부는 금실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신이 보호해주는 천장이었고,
동양에서는 들고 다니는 정자였던 우산.
어떤 우산이 마음에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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