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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50년대 전쟁으로 삶이 뿌리째 뽑혀버린 사람들은 함께 울어주는 노래에, 혹은 발랄한 리듬에 위로를 받곤 했는데요.
김나한 기자가 들려드립니다.
[기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전우야 잘 자라' (1950년) :
1990년대까지도 소녀들이 고무줄을 넘으며 무심하게 불렀던 이 노래, 70년 전 포화 속에서 병사들을 달랜 군가입니다.
남편을, 아들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이들은 애끊는 마음을 담은 노래들을 기도처럼 흥얼거렸습니다.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 '님 계신 전선' (1953년)
전쟁의 폐허 속에도 삶은 계속돼, 사람들은 화려한 영화를 통해 남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었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은 분홍치마에…"
- 영화 '자유부인' (1956년)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던 피란민 소년의 고단함은 경쾌한 리듬으로 살아났습니다.
"아무리 피란통에 허덕거려도 구두 하나 못 닦아 신는 도련님은요"
- '슈샤인 보이' (1954년) :
피란 도시의 판잣집에도 사랑은 있어서,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청년의 마음도 그렸습니다.
"경상도 사투리의 아가씨가 슬피 우네"
-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4년)
식민 지배부터 전쟁과 분단의 아픔까지, 곡절 많은 삶을 달랜 우리 가요 2만 6000여 곡을 조사해 보니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사랑'이었습니다.
(영상그래픽 : 박경민)
/김나한 기자 /[영상취재: 김재식 / 영상편집: 유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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