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가수 겸 작가 조영남(75) 씨의 화투 작품 대작 논란에 대해 대법원이 최종 무죄 판결을 냈다. 2016년부터 약 4년여에 걸쳐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의 소송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조 씨는 2011~2015년 무명 화가 A씨를 시켜 화투 작품들을 만들었고, 사람들에겐 대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20여 점을 팔아 1억5000만원을 벌었다. 사기죄에 몰린 조 씨는 소송에서 ‘작가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조수가 작품을 만드는 건 현대 예술의 관행’이라 항변했다.
법원은 조 씨가 작품을 팔 때 조수의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다고 봤다. 나아가 작가 스스로 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현대 예술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예술 작품의 탄생에서 ‘주체의 물리적 행위 여부’는,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중요하지 않다고 법적으로 선언된 것이다.
예술의 정의를 뒤흔든 조영남 씨 대작 사건
대작 논란으로 대법원까지 간 조영남 씨의 화투 작품.
조 씨 판결에 대해 세간의 의견이 분분하나, 적어도 대중 일반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요컨대 그림에서 미세한 붓 터치 하나만으로도 결과가 바뀌는데, 물리적 행위를 거의 하지 않은 채 아이디어만 제공한 사람을 작품의 주인으로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조 씨가 감상자들을 ‘기만’했는지와 별개로, 미술계의 입장은 ‘예술이 맞다’는 쪽으로 보는 듯하다. 현대 ‘개념미술’의 탄생 이후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건 그걸 만들게 된 아이디어이며, 이에 조영남 씨를 창작자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샘’
개념미술의 아버지 격인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아트 작품 ‘샘’을 예로 들어보자. 물리적 작품을 만든 주체(즉 소변기 공장 제조업자 ‘
R.MUTT’)를 작가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걸 작품으로 격상시킨 아이디어(뒤샹의 의식)다.
실제로 적지 않은 현대 예술가들은 스스로 작품을 만들지 않고 있다. 조 씨가 재판에서 예로 든 앤디 워홀은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대량생산’했다. 물론 워홀의 경우 작품 생산방식 그 자체가 창작 철학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조 씨 사례와 다르게 봐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데미안 허스트
무라카미 다카시의 애니메이션 작품 창작 과정에선 조수 35명이 투입된다. 심지어 데미안 허스트는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오프닝에서 “여기 전시된 그림 중 내가 그린 건 단 한 점도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창작에서의 필요성 여부와 별개로, 이제 현대미술에서 조수를 기용하는 건 일반적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미술평론가 진중권 씨는 그의 페이스북에 “(조영남 씨에 대한 비판은) 거의 집단 린치수준이었다”라며 “대중이야 몰라서 그런다 쳐도, 그걸 알아야 할 전문가 집단마저 현대미술이 탄생한 지 100년이 넘었건만 예술에 대한 이해 수준이 19세기 인상주의 시절에 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논란의 요지는 결국 현대 예술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함으로 귀결된다. 19세기 낭만주의 사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예술과 미학 개념의 잣대가 현대 예술을 해석하는 데 맞지 않음에도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영남 씨 대작 논란은 이 같은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은 예술일까
현대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인공지능(
AI)이 만든 작품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나타난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네덜란드 연구진이 함께 만들었다. 딥러닝을 통해 렘브란트의 작품 346점을 분석했는데, 3D 기술을 통해 심지어 질감과 붓 터치까지 따라 했다. 심지어 미술 전문가들조차 진위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다.
‘넥스트 렘브란트’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질감과 붓터치까지 비슷한 렘브란트 풍 작품을 만들었다.
럿거스 대학에서 만든 ‘
AICAN’은 예술 작품의 ‘새로움’이란 측면을 충족하면서도 기존 예술의 평가 범주에도 머무르도록 학습됐다.
AICAN은 인공지능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고, 오히려 사람의 창작물보다 더 좋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조영남 씨가 물리적 행위 없이 작품을 만들었듯, 인공지능 작가들도 별도의 물리적 행위 없이 창작한다. 인공지능에 대해 대중은 보통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로봇’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사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다. 물리적 작품을 만드는 건 그걸 이어받는 프린터 등의 출력장치다. 이 같은 점에서 현대 개념미술과 인공지능 창작은 비슷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대 예술의 관점에서도 대체적으로 인공지능이 만든 작품을 오늘날의 창작 범주로 보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간의 창작 활동은 ‘의식’의 결과지만,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지각이나 의식이 없이 작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물리학과 철학을 함께 수학한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인공지능의 핵심적 특징으로 ‘지각 없는 수행’을 꼽는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인공지능은 창작과정에서 의식적 경험을 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인공지능의 창작에는 인간이나 다른 인과적 대상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를 쓴 김재인 경희대 교수는 ‘에이전트(주체)’를 강조한다. 인간의 경우 창작 활동에서 그 스스로 주체가 돼 판단하는 반면 인공지능은 수행 기준이 주체 바깥에 있어 고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김 교수는 인공지능 작가를 창작의 ‘유용한 도구’로 본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취급은 가능하나 창작은 아니라는 게 제 입장이며, 이는 인공지능이 무작위적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이라며 “미적 가치 평가가 없이 평가 기준이 밖에 있기 때문으로, 평가작업을 못 한다는 점에서 창작 주체가 아닌 도구이자 획기적 매체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창작의 탄생, 예술 개념을 바꾼다
로봇 경감 ‘게지히트’는 특정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고도화된, 감정을 가진 로봇의 존재를 알게 된다. ‘로봇은 인간을 상해하거나 죽일 수 없다’는 로봇법 13조를 어기고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로봇들. 이 시도를 막는 게지히트는 수사 과정에서 소중한 존재를 잃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지각한다.
데쓰카 오사무의 원작 만화 <철환 아톰>을 리메이크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플루토> 속 이야기다. <플루토>에선 로봇이 보편화 된 세계에서 지각과 감정을 가지는 로봇들이 등장한다. 전투 로봇 ‘노스 2호’는 피아노를 치며 스스로 음악 창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우라사와 나오키 작 <플루토> 속 로봇 경감 ‘게지히트’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세상이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현생 인류의 두뇌 속 의식이 어떤 물질적 인과 작용을 거치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에 이를 심는 건 그 방법조차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공신경망이 갖는 결함도 문제다. 요컨대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인공지능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걷기나 장애물 피하기를 잘 해내지 못한다. 이미지 판독 인공지능은 때때로 토끼를 고양이라 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바둑 기사 이세돌과 구글 알파고 간 대국에서 역사적 ‘78수’ 이후 알파고가 저지른 터무니 없는 실수도 그러하다.
이에 대해 이상욱 한양대 교수는 ‘이해하기 어려운 실패’를 인공지능의 특징 중 하나로 정의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고도의 인공지각망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강조했다.
인공지능 작가 ‘이메진
AI’와 협업한 ‘
Commune with...’을 만든 두민 작가는 “인공지능이 사람과 같은 자율적 사고와 물리적 움직임이 있어 창작한다면 창작자로 봐야겠지만, 인간과 정말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인공지능도 지금은 하나의 새로운 기술이고 결국 예술가는 이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미술사조나 미술 장르를 만들어 낼 거라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두민(오른쪽 상단) 작가는 펄스나인 사의 인공지능작가 ‘이메진AI’와 협업해 ‘Commune with…’을 만들었다.
만약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수준에 범접해 작품을 만든다면 창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이나 소유권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 작품에 대해 저작권을 알고리즘 개발자나 이용자, 혹은 인공지능 그 자체 중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등이 그것이다.
학계에서도 인공지능 작품을 두고 다양한 논의가 나온다. 지난 2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자 8명은 인공지능의 창작에 대해 법적, 문화적, 예술적 관점에서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한경구 서울대 교수는 “우리가 21세기에 살고 있는데 예술의 기준을 19세기에 둘 필요는 없을 것”이라며 “20세기 들어 기술 발전과 함께 성찰과 반성 고민을 거쳐 업데이트된 개념을 갖고 예술에 대해 이야기해야 앞으로 진보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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