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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화의 중국문화풍경13
예의에서 강압으로: 선예후병(先禮后兵)(13)
중국인 마음속 깊이에 유고가 수천 년 도사리고 있는 반면 도교도 유교 못지않은 다른 반쪽깊이에 도사리고 있음을 한국인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중국인의 사유는 혹심한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유교가 질서와 규칙을 강조한다면 도교는 초탈과 개인적 취향의 자유로운 정서를 요구한다. 즉 유교가 종(宗)적인 질서, 나아가 형식과 예의를 의미한다면 도교는 개인의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해석이나 이것은 현실의 중국인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중국인은 전쟁에 서먹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들은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 합(合)과 이(離)를 거듭하여 왔고 현대에 와서도 가끔 전쟁의 냄새가 가끔씩 배이었다. 전쟁은 모든 모순을 해결하는 최종수단이라는 것을 이들은 명기하고 있으며 또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라는 점도 알고 있다.
상대를 대함에 있어 중국인은 우선 예의를 갖춘다. 유교의 그림자가 비껴있다. 하지만 예의는 예의에서 끝나는 것이지 협상 테이블까지 이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협상에서는 상대의 자진적인, 추호의 양보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주기 싫어하면 남도 주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양면의 얼굴인 것이다. 도교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남겨둔다. 최저한도의 예의는 그래도 지킨다. 상하 오천 년의 예의 대국이니깐. 하지만 협상이 불가능하고 상대가 나의 근본이익을 위협했거나 침범하였다고 판단이 서면 모든 협상도 접어지고 강압으로, 무력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중국인의 진짜 두려운 점이다. 이들이 일단 무력이란 강압카드를 꺼냈을 땐 끝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피투성이 되더라도.
북한 신의주 특구 장관이었던 양삔(楊斌)이 중국의 한방에 무너진 사실이 가장 좋은 실례이다. 중국은 대국으로서, 또 북한의 인근 국가로서 여러 가지 이해관계에서 출발하여 북한에 허다한 예의를 갖추면서 지냈으며 무상의 지원도 서슴치 않는 인자한 모습을 거듭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근본적인 이익에 손상이 같다고 판단하면 예의에서 강압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추호도 주저함도 없는 것이다.
한국인은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라는 식으로 중국인과 교제를 넓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유는 중국인한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인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감성적인 것보다 이성적이고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상당히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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