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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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잡담152] 왜서 모택동시대가 아니면 등소평시대뿐인가? 댓글:  조회:3971  추천:2  2012-02-12
       중국인들도 정치담론을 무척 즐긴다.인테리들도 부자들도 그리고 지식도 없고 돈도 없는 서민들도. 서민들의 정치담론은 흔히 정치인물들에 대한 평 또는 그러한 잡담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일전에 술 먹다가 사람들이 모택동시대가 좋은가? 등소평시대가 좋은가에 대하여 담론하는 장면을 만났다.      갑: 그래도 모택동이 좋았다.누구나 다 잘 살릴려고 노력했다.       을: 모택동 시대에는 배가 고팠다.등소평 시대에는 술도 마음껏 먹는다.      병: 등소평 시대에는 몇만원 모태주를 먹는 사람이 있고 몇원짜리 똥배갈을 먹는 사람도 있다      정: 모택동 시대에도 중앙간부들은 모태주를 먹었다.3년재해시기에 수천만명 굶어죽었다.      갑: 모택동은 자기 직계 후손들에게 아무것도 안남겼다.현재 돈있고 세도가 태자당들이 무더기천지라고 한다!      을: 등소평은 결혼 두번 하였지만은 모택동은 결혼 몇번 하였는가? 친구들도 많이 죽였다.     ......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에 대한 평으로부터 정치인물들의 인품에 대한 평으로 넘어갔다.사실은 시대에 대한 평과 정치인물들에 대한 평을 마구 뒤섞어보였다.     모택동시대를 어떻게 볼건가? 등소평시대를 어떻게 볼건가? 두 시대를 어떻게 비교할건가는 나같은 소인들이 할 일이 아닌것 같다.그러나 밥먹고 할짓이 없어서인지 하도 많은 세상만사중에서 모택동시대와 등소편시대만을 비교하려는 수많은 중국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해보고싶다. 물론 모택동과 등소평의 개인적 인품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력사 또는 시대의 참조물은 자기 집구석에서만 찾으면 우리는 결국은 영원히 먹고 자고 하는 수준에만 머물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어째서 만날 모택동시대가 아니면 등소평시대뿐인가?     온가보총리가 말한 을 따지려면 중국인들의 시안도 넓어지고 커져야 함을 느낀다.     중국에만 력사가 있는것이 아니고 시대가 있는것이 아니다.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조금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요구해보는것이 길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모택동시대이든 등소평시대이든 인간사의 최고품위는 아니다.
130    [잡담151] 2011년은 知情权이 그리운 한해였다 댓글:  조회:3684  추천:0  2012-01-10
         새해가 시작되자 화북평원에 안개가 살판쳐서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들다는 아우성이 뉴스로 범람한다.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왜서 음력설려객운수가 힘들게 되였다는것만은 아직도 화북평원 농무처럼 기만술을 부린다.여러 전문가들의 해석은 가려운 곳만 살살 건드리고 아픈 곳은 슬쩍슬쩍 피해버리고.그것이 중점발전책과 일부분 지역과 사람이 우선 부유해지자는 국책의 부작용품이기에도 불구하고,산업이전중에 뒤받침으로 되여야 할 호적개혁,교통시설건설에서의 부정부패 등으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는것을 가지고 우리의 언론은 장난질한다.       우리의 관방매스컴들은 음력설려객운수에 대한 뉴스로서 중국인들의 주의력을 진정으로 관심하는 일로부터 다른곳으로 슬그머니 이전시키려고만 한다. 음력설은 필경은 중국인 생활의 전부가 아니다.그보다도 막심한것은 생활이고 생활의 존엄이다. 어째서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것은 날마다 푸짐해지지만 길거리에 서서 하늘을 삿대질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많아지는것일가? 대학교육에서의 거의 3분의 1은 공산주의를 선양하는 이델레오기교육이 위주이지만, 수많은 대학생들은 에 질의를 품고 있는것인가?       배불리 먹여주는것으로 따듯하게 입혀주는것으로만 중국인들더러 만족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롱락일수밖에 없다. 어느 주의가 유일한 최상의 진리로 되려는것은 사실은 거짓말이다.그 배후에는 리익만이 질벅하게 존재한다. 개혁개방이래 기득권이 굳건하게 만들어지고 공공권력은 민주화가 아닌 상대적인 집중과 피라미트구조만을 엄청나게 쌓아놓았다.때문에 진실을 덮어감추는려는것은 상추수단이고 진실을 승인하지 못하는것이 오늘날 진실이다.        사회진상을 덮어감추지못할 경우에는 라는 한마디로 두리뭉실하게 눈감아버린다.자꾸만 사람의 시선과 사유의 초점을 이전시키려고만 한다.행정도덕과 권력도덕이 대낮에도 길거리에서 벌거벗고 다니는데도 우리 만백성들더러 고 하는식은 자질구레한 도덕요구만을 꺼내놓는다.        2011년,우리의 기억에 남은것은 무엇일가? 고속철도사고일가? 도시개발, 부동산개발 ,도로건설같은 일에서 불공정성을 당한 누가 자작폭탄들을 련꽃처럼 터뜨린 사건일가? 홍십자회처럼 대기만술을 쓰는 권력부문과 행정부문이 제 배만 채우는 일일가? 국내에 발생한 대사건들에 대하여 모호한 대답도 아닌 대답밖에 없다. 대내로 이렇다면 대외로도 마찬가지다.까자피에 대한 선호라든가 천안호사건에 대한 선호라든가 모두가 불투명한 장난질로서 만백성에게 진상을 감추기만 하는 2011년이다.        중국인에게 있어서는 작년 한해는 知情权이 그리운 한해였다.
129    [잡담150] 안중근동상 그리고 댓글:  조회:7254  추천:5  2011-11-29
     안중근동상이 할빈에서 사라진지 몇해가 된다.안중근이 민족독립의사이든 테러분자이든 그의 동상이 사라진것은 어떠한 리유로 실행되였든간에 조선민족의 문화기억을 억누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어느 민족을 물론하고 문화기억은 민족이 살어갈수 있고 지탱할수 있고 자신심을 얻을수가 있고 정신가원을 챙길수 있는 씨앗임은 부인하지 못한다.소위 휘황찬란한 문화성과를 이루지못하고 대외령토확장의 피비린 력사를 만들어내지도 못한 약소민족들도 마찬가지이다.그러한 민족문화기억은 신화전설로부터 시작되고 실물과 정신재부로 구성이 된다.농경문화지역의 문화기억 실물들은 조상들의 무덤을 파헤치는 고고학이 지주를 이룬다.그래서 조상들이 사치함을 누렸고 호화로운 喪葬문화를 추구하였던 중국은 도처에 그러한 문화기억 실물들이 전시된다.그뿐이가? 산더미처럼 남겨진 문자기록들에도 그러한 문화기록들이 활활 타오른다.잔혹한 賭城책을 실시하였던 몽고족나라 원은 중국의 력사에 정식편입되지 못하였다.그러다가 만청시기에 중국사에 정식편입되였다. 그래서 세상에 당할자가 없는 물리적인 힘으로 과시될 때에는 중국사로, 세상에 제일 야만적인 략탈문화로 표시될적에는 외족문화로 취급받은것이 원의 력사이다.       력사는 가짜기록이 많지만은 어디까지 진실하여야 한다.력사사건과 력사인물들을 기념함에 있어서 자기의 리익과 시각만을 고집하지 말고 인간사라는 력사관이 있어야 한다.현대정치도덕리론에서만 출발하여 안중근의사를 테러분자로 점찍는 일은 우습다.진짜로 무엇이 테러인지도 모르는 작자들의 람용이다.기껏해야 안중근동상을 은페시키려거나 없애버리려거나 하려는 의도를 적라라하게만 알려준다.       남들의 문화기억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기전에 중국근대사 이야기 하나가 필요한듯 하다.갑오중일전쟁에서 실패한 중국은 민족의 자존과 자존심을 거의 상실하였다. 바로 그 시기인 20세기 초엽에 하남성 안양에서 갑골문들이 출토되였고 중국민족문 화기억은 천여년을 더 거슬러 올랐다.중국사람들의 자존과 자존심을 불러일켰고 그 뒤에는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모두 분발하게 만들어주었다.때문에 갑골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자살한 사람은 자살하고 위만주국에 가서 벼슬을 누린 자는 광채롭지못한 한페이지를 엮었지만 중국인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이 문화민족기억을 크게 자극해주고 살려준 일은 감사하게만 생각할뿐이다. 중국도 근대사에서 이처럼 참통한 교휸과 뼈저린 문화기억작극운동이 있었다.그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그런데 남들의 문화기억을 존중해야 함은 모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안중근의사가 조선민족에게 있어서만이 아니라 일제 침략과 수모를 받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대단한 문화기억이다. 그런데 그것이 정상적으로 모셔지지 못한다는것은 큰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연변에 가면 두만강 간도섬에 세웠던 무엇이 사라졌다는 말을 얻어들었다.역시 남들의 문화기억을 존중하지 않으려는 심리이고 행위이다.       쓰달린이 연해주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력사가 있다.그것은 쓰 딸린의 발명창조가 아니다.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고구려 포로와 유민들을 먼 실크로드지역까지 이주시켰다. 그것들은 모두가 문화기억을 매장해버리려는 책이였다. 중국은 盛唐이야기를 꺼내기를 즐긴다. 인류최고의 문명을 누렸다고 떠들기를 즐 긴다.인간사에서 성세가 없었고 중국사에도 성세는 없다.그저 그러한 수치스러운 일들이 감추어지고 괜찮은 일들만 멋지게 포장될뿐이다. 새삼스럽게 고구려유민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것은 성당에서 고봉기를 이루었다는 중국의 포용문화와 중용문화에 대한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중국문화가 박대하고 포용적이고 중용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실용문화, 말하자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않는, 루루를 구분하지않는 문화임을 말하고싶기 때문이다.그것은 성당으로 시작된것일가?       중국인들이 세계인으로 되려면 아직은 만리장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때면 안중근동상 이야기도 시끄러움을 당하지 않을것이다.      전에는 잘 몰랐는데 갑자기 정판룡교수의 최홍일선생의 최국철선생의 등도 모두가 우리의 문화기억을 자극해주는 좋은 문학작품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128    [잡담149] 썩다! 댓글:  조회:5120  추천:2  2011-08-21
는 유기물이 부패균에 의하여 분해됨으로써 원래의 성질을 잃어 나쁜 냄새가 나고 형체가 뭉개지는 상태가 되다고 간단한 해석이 된다. 소위 사회학학자들을 흉내 중국사회를 유기물체로 보려고 한다. 그 리유는 인간들이 유기물체이고 인간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중국사회가 썩은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썩어있는가?는 %로 형용하지 못하겠다. 나로서는 그럴 재간이 없고 또 고 또는 고 떠드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갑자기 유기물이 썩어드는 속도가 소위 제1우주속도보다도 빠르지 않을가는 우스운 생각을 해본다. 그러면서 가 헌법을 비롯한 번번듯듯한 사상에까지 기록된것에 비하면 중국사회는 너무 썩어있지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중국사회가 너무 썩어들었다는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가? 인간의 리상주의심리에서 생겨나는것일가? 반발심에서 나오는것일가? 다른 참조물들과의 비교에서 생겨나는것일가? 하여튼 너무 썩었다는 생각은 떨쳐버릴수가 없다. 중국사회를 오장륙부가 있고 여러가지 복잡한 생리를 지닌 유기물로 본다면 나는 백년을 가도 썩지않는다는 모발마저도 썩어들었다는 생각이 있다. 인간사회의 칼날같은 모발로 표현되야야 하는것이 문학이고 인간량심이고 사회량심일것이다. 그런데 8기 모순문학상에 张炜的 450만자 대하소설 《你在高原》이 당선되였다는 뉴스가 나왔다. 《你在高原》은 읽어보지 못하였고 450만자 소설이 모순문학상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말은 못하겠다. 근데 《你在高原》을 통독하지도 못하였다는 평심들이《你在高原》에 오케이를 마구 선사하였다는것은 썩어빠지게 재미있는 일이다. 읽어보지도 못한것에 박수갈채를 해준다는것이 현재 모순문학상이다. 주고싶은대로 하고싶은대로 하는것이 모순문학상이다.모순선생에 대한 모욕이고 문학에 대한 모욕이고 사회량심에 대한 모욕이다. 흐흐 이러다가는... 살아가려면 리익사슬에 매달리게 된다. 문학인들도 모순문학상 평심들도 리익사슬에 완전 묻혔구나. 그 리익사슬속에서 모발도 이제는 썩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을 품으면 어느 석굴사에서 보았던 부처님의 인자한 얼굴이 떠오른다. 중국이 약삭빠르게 썩어가는것은 리익사슬체재가 생생하게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는 빗좋고 허황한 슬로건 아래에는 기득권이나 소수 부류만이 잘 살어갈수가 있는 사슬이 굳굳게 억물린 사실이 중국의 을 가로막는다.이제는 력사라는것을 읽어보면 어제 오늘 래일 하는 시간개념을 만든 작자들까지도 가증스럽다. 때로는 변화란 화려한 욕마에 속하지 않느다.변함은 표상뿐이다. 인간을 탓하지말자.인간의 속성을 탓하지말자.인간의 단점을 극복할수 있게 하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모두가 유심론이라 하여도 위대한것이다.(물론 하나님 조직이나 부처님 조직은 다른 문제이다.) 인간들이 인간의 단점들을 극복하게 개변하게 하는 인간사회제도가 그립다. 인간사회체재가 그립다.
127    [잡담141] 우리의 삶에 대뇌가 있을가? 댓글:  조회:5328  추천:64  2011-05-14
  어제밤, 술을 먹었다. 자리에 난주 본토배기 조선족이 하나 끼여있었다. 아마 연변에서 태여났지만 동년부터 <<안쪽>>을 줄기차게 살어온 친구, 조선말은 한두마디 알아들을수는 잊지만 내뱉을수가 없는 사람이다. 할빈 어느 이공과 대학을 나왔고 공자 로자도 조금 읽고 중국문화를 대충은 알고 있다고  자부심도 내보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생활층으로 보면 아주 부자는 아니지만 좋은 국영기업소에 다니여서 밥벌이 는 쉬운 친구이다. 술 한잔이 목구멍에 넘어가자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무조건 모택동이 항미원조를 통하여 중국인 생존환경을 확보하였고 미국을 두들겨패주  었고…. 잘 했다였다! 사실 나는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한 생각이 그 친구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조선족의 립장으로서 아니라 한반도의 립장으로서가 아니라 중국인 립장으로서부터 볼 때에도 모택동과 항미원조에 대한 생각과 판단이 다르다. 중국이 항미원조를 통하여 도대체 무엇을 얻었을가? 엉청난 재력과 인력을 쏟아넣고 중국이 무엇을 얻어내 였을가? 누가 제1리익획득자일가? 국민일가? 아니면 … 이런저런 물음들은 확답은 없지만 스스로의 생각을 굴려볼 때도 있다. 교육이란 무서운 물건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만들어줄 때도 있지만 마귀로 무지한 인간으로 만들어줄 때가 있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중국의 교육은 사람을 무지에로 내몰기를 좋아한다. 독립적인 사고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려는것이 아니라, 괴뢰로 대뇌가 없는 괴물로 만들어주려는것이 우리 교육의 내용이고 방식이다.     력사인물 또는 정치인물에 대한 도덕륜리적인 평가를 진행하려는 생각은 없다. 또 력사사건에 대한 가설을 해볼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나는 베일속에 가려진 항미원 조와 모택동에 대한 나 스스로의  생각을 굴려볼 자유는 있다. 고향사람에게 얻어들은 말이다. 연변 어느 시골에서 지원군참군을 동원하는 회의가 있었다. 지원군입대를 자원하는 회의였는데 자정이 지나도록 담배질만 하고 자원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부스깨>>에 토막나무를 죽어라고 집어넣는다. 온돌이 사람이 앉아있을수가 없을 정도로 달아오른다…. 드디여 누군가(혹시는 가마목에 앉아있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에구 뜨거워라, 그럼 내가 지원군에 나가보리라… 호미를 잡던 농사군이 <<항미원조 보가위국>>이라는 지원군에 나간다. 죽은 사람도 많고 부상당한 사람도 많고 또 남을 죽이고. 부상입히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였는지는 모르지만 50년 넘게 지나간 일을 두고 우리의 세대들은 항미원조와 모택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굴리지않으면 안된다. 자기의 대뇌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대뇌를 주입할 필요가 있다. 책속의것을 무조건 믿어주는 삶이 무식쟁이와 다를바가 없다.  우리는 지지눌린 수동족인 삶을 산다. 몸뚱이도 대뇌도 수동적이다.
126    [잡담140] 음주운전죄로부터 보여지는 法制와 法治 댓글:  조회:4355  추천:57  2011-05-12
올해 5월 1일부터 음주운전죄가 형사범죄로 되여있다. 음주운전만 하면 범죄 주관욕망조건이 있든 말든, 음주운전이 객관사실결과를 초래하든 말든, 남에게 사회에 피해를 끼쳤든 말든 죄다 형사범범죄로 치부한다는 <<아다모끼>>법이다. 이 <<아다모끼>>법은 法理에 어긋나는 법이다. 범죄란 주관의식과 행위와 결과라는 3인자가 확정되였을 때만이 범죄로 된다. 그런데  <<아다모끼>>법들은 상술한 3인자를 분해시키고 그중에서의 하나만 성립되면 범죄로 치부한다. 음주운전범죄를 다루는 법과 비슷한 법들이 중국법률에 얼마나 존재하고 있을가? 법학자들이나 머리를 싸매고 통계할 일이다.전에 진시황도 법치를 하였으니 중국도 옛날부터 법제국가였다는 어느 학자의 글을 읽은적이 있다. 이 학자는 법제와 법치를 혼동한 사람이다.    법치와 법제는 그 목적과 수단과 결과가 다른 사회현상이고 부동한 개념으로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리상적인 법제는 제도로서 사회 각 계층과 각 지역의 인간들로 하여금 모순과 충돌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원칙과 절차이며 그러한 인위적인 공간이다. 때문에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통치하는 수단>>이라고 말하기보다도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모순과 충돌을 공정하게 해결하는 원칙과 절차이라고 말할수가 있다. 때문에 법제국가에 접근한 나라들의 법률에는 소송법을 비롯한 절차(程序)법이 발달되여 있다.그러나 法治法이 우세를 차지하는 나라는 법제원칙이 아니라 법치원칙이 위주이며 절차법이 상대적으로 락오되고 법조목들의 반포와 진행이 隨意성을 적잖게 지니고 있다. 법제와 법치는 근본적으로 보면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는 문화원에서 발기된다. 법제는 상대적인 통치권이 피통치권도 지녀야 할 인간성과 인간존엄에 대한 승인이고 통치권이든 피통치권이든 모순을 공정하게 해결하려는 문화사상이 안받침되였다. 때문에 통치권의 리익과 편리가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되고 또는 은밀하게 숨어있다.그러나 법치는 우선은 통치권의 리익과 편리가 공개적으로 로출되고 있다. 그런것들은 때로는 <<만민을 위하여 1인의 리익과 공정성을 희생시키는>>것으로 <<집단리익을 위하여 개인리익을 희생시킨다.>>는 언어표현으로 사상표현으로도 나타난다. 영미법계는 상대적으로 법제에 속한다. 때문에 그들의 법제목적은 법치가 아니다. 그들의 법제목적은 인간성과 인간존엄을 보호하고 인간사회의 공정성을 뚜렷하게 내세우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추구하는 인간성 인간존엄에 대한 보호와 공정성이 100%로 실현되였다는 사실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법제의 목적을 법치에 두지않는것은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일이 아닐가? 법치국가는 법제가 수단에만 속한다. 법제의 목적이 바로 법제라는 까다로운 말이 존재하지 못한다. 통치자들과 관리자들의 리익 또는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법제사상을 떠난 법치가 나타난다. 때문에 어떤 법률조목들이 모든 계층과 지역의 존중을 받기가 힘들다. 다만 강압적으로 발포되고 실시될뿐이다. 법치는 다만 통치와 관리를 위한 위장된 법제이다. 법제국가는 행정권이 법제의 엄격한 공제를 받는다. 법치국가는 행정권이 법제권을 간섭하고 멸시한다. 통속하게 말해서 법제국가는 대통령도 송사를 받을 때가 있고 경찰기관 검참기관 그리고 법원은 날마다 <<아웅다웅>>한다. 그러나 법치국가는 국가수령이 법제를 초월할 때가 있는가 하면 공안국 검찰원 법원이 <<단짝>>이 될때가 많다. 분명 인치가 법치로 표현되고 있는데 법제라는 말을 더럽히지는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125    [잡담138] 학술의 벽과 조선족대개조론 댓글:  조회:6129  추천:52  2010-10-09
  NAME : 허동식   |   HOME : http:// VOTE : 14   |   HIT : 281           1   조글로에 박문희 선생님의 <학술의 벽…>>이라는 글이 올랐는데 읽어보고 싶지만 비밀글이라 읽지 못했다.(오늘 아침 읽어보았다) 맹랑한 김에 나도 학술의 <벽>을 생각해본다. 학술의 진미는 진실추구이다. 인류의 인식능력은 주객관원인의 제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객관진실과 동등한 경지에 오르지 못한다. 지금까지 인류가 탐색한 어떠한 진실이든지 객관진실에로의 무한대 접근이며 객관진실의 완전무결한 재현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의 진실추구는 끝이 없다. 학술의 진실추구는 본질적으로 어떤 정치세력이든가 이델레오기와도 관계없이 또 어떤 민족도덕감정이라든가 공리성목적과도 관계없이 자아독존의 무한대라는 존재특점의 합리성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학술에는 학술 자아가 만들어놓은 <벽>이 있을수가 없다. 하지만 인류력사를 되돌려보면 학술에는 <벽>이 존재하여왔다. 그 <벽>을 뛰여넘기 위하여 진실추구를 최종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였다. 교회의 지구중심설을 부정하고 哥白尼의 일심론을 선양하여 종교재판소의 화형을 당한  布鲁诺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찌하여 학술의 본의와는 다르게 <벽>이 생기는것인가? 인간과 인간사회는 다면체이고 복합체이다. 인류는 진실추구에 대한 황홀한 정신세계를 이루어온 동시에  언제 어디서나 물질성(물질세계에 대한 의뢰성과 무한대의 항락성) 을 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어느 학술이 누구의 물질리익과 사회상층건축과 이델레오기의 장애물로 되면 자연히 <벽>을 만나고 고난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학술의 <벽>이란 학술자아의 소생이 아니라 공리사회의 제한성이 가져오는 현상임을 새삼스레 느껴본다.           2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의 <벽>을 넘어섰다고 하는데 어떤 벽을 넘어섰을가?    나는 <<조선족대개조론>>만 읽어보았고 김문학선생의 다른 책들이라든가 문장을 읽지를 못했음으로  <조선족대개조론>만을 화제로 하고싶다. 첫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집필목적과 <벽> <조선족대개조론>의 첫머리와 맺음말에 씌여진 문자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조선족대개조론>이라는 글 제목으로부터 보면 김문학선생이 적극적인 사회목적을 두고 쓴 글이라 느껴진다. 소위 상아탑식 순수한 학술연구가 아니라 조선족사회를 진맥하려는 사회공리적인 본의가 적극적인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에 이러한 김문학선생 자신이 만든 <벽>이라 할수 있는 목적과 기준이 있다면, 김문학선생이 뛰여넘은 <벽>은  김문학선생이 자신에게 만들어준 <벽>이 아니며 당연히 누구 또는 사회가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하려는 <벽>임에 틀림이 없다. 두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연구방법과 언술방식 그리고 <벽> 김문학선생이 조선족사회를 연구한 방법이 실증주의 방법은 아님은 명백하다. 확실한 사회연구조사와 통계자료수집을 통하여  론거를 받침으로 하는 론증과정이 없이 조선족사회현상들을(김문학선생은 전형적인 사회현상이라 생각했을수도 있겠다.) 라렬하면서 또 언술수법이 엄연한것이 아니라 演義식으로 되여있어 일반 독자들의 취미성을 만족시킬수 있는 반면에 과격적이고 정서적이고여서 전통적인 <학술문>과 거리를 둔 글이다. 이런 의미에서는 <조선족대개조론>이 정확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을 넘어섰음은 확실하게 보여진다. 때문에 김문학선생의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적이고 합리한 면을 지닌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이 <자유화>된 사회이다. 그 <자유화>에 비해서는 상술한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은 난쟁이에 불구하다.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자유화>가 엄청난 원동력인 이상, 누구든지 김문학선생의 <조선족대개조론>의 학술방법과 언술방식을 비판하고 부정할수는 있지만 학술방법과 학술언술의 <벽>으로는 <조선족대개조론>을 감금할 능력은 없다. 새번째, 김문학의 개인사항과 <벽> 김문학선생이 어떤 출신이든, 현재 중국국적이든 국제인이든 중국조선족사회에 대해 연구한다는것은 공리적인 목적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하며 그 학술성과가 어떤 집단이라든가 개인에게 리용당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일본이든지 한국이든지 중국이든지 어디에서든지 공개하는것도 김문학선생의 개인적인 학술자유에 속한다.  김문학선생이 중국조선족출신이므로 조선족사회의 부족점을 거론하지 말라 또는 <좋게> 거론하라는것은 <벽>이며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이다.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상술한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뒤여넘었는가? 나의 옹졸한 생각에는 상술한 <벽>을 완전히 뛰여넘지 못했다 판단한다.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이 아무리 졸렬하다 할지라도 어떠한 민족도 민족사회도 부족점이 없을수가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나 개인은 <조선족대개조론>의 언술을 객관적으로 읽어볼수있는 심리준비가 되여있다는 자아위안을 하고나면, <조선족대개조론>의 밑바닥에 애족감정이라는 정서가 흘렀음을 감지한 이상, 나는  <조선족대개조론>이 민족도덕과 민족감정 그리고 민족자존심이라는 <벽>을 완전히 뒤여넘지를 못했다 생각된다. 좀 빗나가는 이야기이지만 아침마다 애국가를 부르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가 아닌 경우가 있고 날마다 제 조국을 욕하는 사람이  진정한 애국자인 경우도 있음을 알아야한다. 반면에 <조선족대개조론>에서 김문학선생이 자신의 개인사항으로 말미암아 민족도덕적인 감정적인 자존적인 <벽>을 뒤여넘지 못했음임야말로 <조선족대개조론>이 학술성이 부족한 직접적인 주관원인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네번째,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 그리고 <벽> 畵蛇添足이기는 하지만 <조선족대개조론>과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락인을 받았다는 <사실>(김문학선생의 근년의 저술과 구체적인 언행에 대한 전면적인 료해가 없이는, 구체적인 語境을 떠난 斷章取義에 가까운  분석만을 읽고, 어느 교수의 문장 하나를 두고 김문학선생에게 매국배족이라는 력사정치개념을 착용함은 나는 시기상조라 보여진다)의 련관성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조선족대개조론>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으로 전락할 직접적인 필연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조선족사회를 비판했다고 하여서 필연적으로 매국배족으로 전변한다는 론리도 성립불가능이다. 시간의 순위로 보면 <조선족대개조론> 뒤에 김문학선생이 <매국배족의 언행>을 떠들고  있는데  그러한 後現象인 김문학선생의 <매국배족의 언행>으로 前현상인 <조선족대개조론>을 비판하고 전부 부정한다는것은 론리가 타당하지 않다. 김문학선생의 근년의 <매국배족언행>으로 오래전의 <조선족대개조론>을 해석하려는 현상이 있다면, 나는 그런 현상속에서 우리들이 직면한 주관주의라는 감성주의라는 <벽>을 느낀다.   다섯번째,  <조선족대개조론>의 홍보와 <벽> 조선족사회의 언론체계는 언론인들의 구성과 언론지들의 구성이 자아의 특점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에서 경제 사회 문화의 언론을 주도하는 분들이 많이는 문학과 련관을 두고 있으며 언론거재물도 문예지와 많이 련관되여 있다.  <조선족대개조론>이 크게 고명한 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언젠가 흑룡강 김**?라는 분이 <청년생활>에 조선족사회 조사보고와 비슷한 좋은 글을 련재하였고 그 사회반응이 <조선족대개조론>보다 적었던 기억이 난다.-작자분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음만을 알고있음) 언론계(사실은 문학계)의 론의를 일으키고 <조선족대개조론>과 련관되는 홍보자 홍보지들마저 거의 사회민족정치의 변두리에 내몰고 있음은 어론계를 대변하려는 우리 문학계에 엄연한 <벽>이 크게 존재하고 있음을 설명할뿐이다.    <칼도마>장사나 <밀고제>나 문학계에 존재하는 <벽>의 표현이다. 김문학선생이 지금 바다건너 일본에서 <조선족대개조론>을 두고 내가 이러쿵 저러쿵하는것을 알면 아직도 <벽>속에서 게임을 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우리들을 코웃음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124    [잡담137] 김문학선생의 實體驗說로부터 댓글:  조회:5185  추천:55  2010-10-09
1 <<신조선족>>월경론 39인 체험으로서의 “한중일비교문화론”등을 읽어보면 김문학선생은  3국어를 구사할수 있는 언어우세를 지닌 <<신조선족월경>> 대표자? 로서 공간한계(국경)를 넘나들며 3국문화를 실체험하는 행위우세를 경력하고 축적하는 과정에 “한중일비교문화”영역을 개척한 학자로,  3국어로 한중일3국  비교문화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학자로 성장되였음을 자처하고 있고 또 자신의 한중일3국의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초월하려는 비교문화 립장과 그러한 문화비교 립장은 3국을 넘나드는 순수한 문화척도만을 내세우려는 리유에서  발기된것임을 설명하고 있고 다음으로는 自己文化와 异文化를 비교할때 근대화의 선발성과 후발성을 거론하여(근대화가 선발적이면 선진적이고, 후발적이면 후진적이라는 의미도 약간 내포한듯) 이문화를 알려면 시간적원가가 아주 필요하다는( 그 나라의 문학, 사상, 철학 등 숙성된 문화콘텐츠를 시간을 들여 읽는것, 그 사회안에서  컬쳐쇼크를 감내하면서 문화를 실체험 하는것, 이런 축적, 知的축적이  이루어질 때 비로서 이문화의 심층을 해독할수 있게 된다.) 一說을 설명하고 있는듯 하다. 2   실체험이 문화비교의 중요한 래원의 하나이고 수단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과학정신의 제일체현자인 리성실험주의를 잣대로 한다면, 비교문화를 과학적으로 진행하는데는 실체험이 으뜸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언어적 우세만를 받침하는 한순간적인 실체험 하나로서는,  문화비교의 성공성을 보증한다는 장담은 어딘가 어불성설이다. 언어학자가 꼭 비교문화대가로 될수가 없듯이 3국어를 구사할수가 있는 중국조선족들이 3국문화비교에서 우등?을 따낸다는것은 조금은 김빠진 론리이다. 문화비교에 있어서 실체험외에도 과학적인 사유방법, 과학적인 론술방법 등 인소들도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함은 사실이다. 언어적인 우세와 실체험적인 우세는 김문학선생을 대표로 하는 중국조선족들의 3국문화비교에 특색과 이색과 그리고 개인적인 쓰질을 부여할수는 있지만 그것은 필경은 3국문화 비교의 비슷한 필요조건의 하나만을 만족시킬 뿐, 그러한 3국문화비교가 꼭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얻어낸다고는 말할수가 없다. 끓는 솥뚜껑에 냉수를 퍼붓는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때로는 객관적이고 整體적으로 평한다면 중국조선족(월경조선족도 포함)들의 학문경력과 학문능력은 아직은 겸손을 간직하여야 하는 급수라고 생각해본다 . 인문학문이란 1세대 2세대로서는 어디까지나 소아과 급수이다. 력사적인 지성학적인 원인으로 그리고 스스로의 원인으로 하여 우리가 배울바는 많고도 많지가 않은가?.    만일 누구인가 한중일3국 문화비교에 견마지로라도 해내려는 웅심을 간직하고 있다면 고마운 일이겠고, 그가 특별사항적인 우세를 지닐수도 있겠지만은, 문화비교라는 깊이를 알수가 없는 물은 소심스럽게 겸손하게 건느는것이 방법이겠다. 3         문화풀이란 복잡하고 방대한 학문공정으로서 그것은 문화풀이를 진행하는 학자의 학술목적, 특히는 무엇이나 객관적으로 풀이하고 현실공리주의와 력사공리주의를 뛰여넘어 문화의 본질적인 일면을 제시하려는 기질과 능력이 겸비되여야 한다.         김문학선생은 3국인의 립장을 초월하여 3국문화를 비교한다고 언설하는듯.(물론 대단히 좋은 일이다),그러나 <<신조선족>>월경론을 읽는 사람들더러 김문학선생의 어떤 관점들과 서술법들이 3국을 초월하지 못하고 력사적인 시공을 초월하지 못하고 있으며 어느 부류인들의 주장들과 합치성을 다소 보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만일 다소의 합치성이 우연적으로 발생한것이라면 괜찮지만, 그것은 다만 독자들의 수요를 만족하는 시장점령원리를 리용한다거나  또는 어느 부류인들의 구미를 돋구려는 욕정이 안받침된 주장과 표현이라면 아주 유감이 아닐수가 없다. 김문학 선생의 근대사를 一筆한 흔적들에는 일본우익의 주장과 합치된듯한 그림자가 언뜰거리는것이 조금은 수상스럽게 여겨진다.(이등방문이 본의는 한반도도 중국도 일본식 근대화를 실현하게 하였다고 한 대목들이나 <손문의 지팡이로 된 일본인들>이라든가는 <<동아시아적 連帶의 사상가-김옥균 재발견>>들의 내용과 언어표현이 문화비교가 아니라 근대사를 해석하는 雷人식  언설이라는 느낌이 온다.) 재삼 강조하고싶은것은 일본우익의 주장들은 학문적 주장이 아니라 협애한 민족리익식 주장임을 알아야한다.    4  한중일 근대사를 상대하여 력사도덕륜리적인 평가를 내리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일본군국주의가 어떠한 화려한 차림새와 리유를 내세워도, 일본군국주의가 한반도와 중국에 끼친 해는 一抹로 되지는 않을것이며 어디까지나 죄악으로 평받는다.     일본이 근대화수단을 일부 전수하였다고 하여도, 한반도인들의 심성에 어떤 부족점이 존재한다 하여도, 중국인들의 력사서술과 편찬에 부족점이 적잖다고 하여도 그것은 일본군국주의가 여러 나라와 자국에 끼친 죄악과는 다른 내용이고 력사사건으로서 혼잡한 서술이 아닌라 명확한 설명을 앞세워야만 근대화 재조명이 된다. 물론 일부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무조건적인 협일정서라든가 현재일본인들더러 그들의 조상들이 범한 죄악의 덤테기를 감당하라는것은 리유가 불충분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리유가 불충분한것을 비판하려면일본군국주의 실천력사에 있어서의 포장된 동기와 은페된 과정을 론거로 내세움은 학문이 아니고 십분 위험한 일이 아닐가?          끝으로 일본군국주의란 력사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일본문화의 산물인가를 이야기하는 글이나 부탁하고싶다.   
123    [잡담136] 아시아 근대화 과정에서의 일본 댓글:  조회:5431  추천:43  2010-09-28
      소위 근대화란 일본어식 표현이다. 과거에 서방세계의 선진적인 일면을 모방한다거나 또는 따라배운다는 말로서  근대화 내용과 근대화 형식이 그 실질이다. 일본은 동아시아 나라중에서 또는 아시아 나라중에서 근대화진척이 제일 이른 나라였음은 틀림이 없다. 1868년에 시작된 명지유신을 통하여 일본식근대화를 이루었다.  명지유신이 성공한것은 일본의 구체적인 사회배경과 그 시대에 서방렬강들이 갑자기 가난하고 물산이 적은 일본에 대한 식민욕구를 낮추어버리고 또 미국남북전쟁 뒤에 그들의 내부분쟁백열화 그리고 식민책 시선이 아메리카로부터 풍요한 중국대륙에 쏠린 국제외부환경과도 련관이 된다. 아무튼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내외환경을 교묘하게 리용하여 명지유신에 비교적 성공하였고 그 뒤에는 서방렬강들의 근대화일본을 리용하여 짜리러시아의 동방침투 욕구와 사실을 견제하려는 책략을 리용하여 갑오전쟁에서 승리국으로 되였다. 어떤 일본인들의 심리에는 아직도 저들이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 스승이였다는 일면이 존재한다고 한다. 물론 일본의 성공적인 근대화를 통하여 아시아나 동아시아가 배운것이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시아나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일본과 배워온것은 기껏해야 근대화라는 낱말같은 신흥 한자조어거나 신흥 학과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석유나 성냥이나 등 일용품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한 근대화란 무엇인지를 배워주지도 않았고 배워내지도 못하였다.이등방문처럼 중국을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하였다는것은 천방야담이다.그 수작뒤에는 일본리익이라는것이 공개적으로 숨어잇었고 작간하였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력사사실이다. 진정한 근대화란 무엇인가? 서양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된 물질재부의 존재형식을 모방 또는 따라배우는것이 근대화가 아니다. 근대화란 우선은 물질재부 창조방식이며 경제방식이며 그 다음에는 그 경제방식뒤에 따라지는 사회체재이며 문화모식이며 사회운영모식이다. 일본의 근대화는 민간경제활성화라는 경제방식과 경제자유와 사상자유라는것은 뒤전에 둔 근대화로서 그 근대화가 아시아와 동아시아에 가져다준 利가 없는것은 아니지만  害도 엄청나다. 그 害가 바로 아직도 아시아와 동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집체력사의식으로 남아있는 크나큰 상처로 연장된다.  근대화를 이어서 군국주의로 부상한 일본이 아시아에 가져온 해는 언어로는 표현이 아니된다. 일본의 대외침략으로 이루어진 아시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경제손실, 생명손실 그리고 정신손실은 해보는 말로 여러 아시아 나라들의 근대화를 몇번이나 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군국주의를 실행한 일본인들의 후세들더러 군국주의선인들의 과거식 죄악의 책임을 담당하라는 말에 리치가 비여있듯이 근대화 스승인 일본을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도 어처구니 없는것이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나라들의 력사적인 교훈의 하나라면 그것은 그 누구나 근대화 과정에서 누구를 스승으로 보아두거나 모실수는 있다. 그리고 국제정세를 교묘하게 리용할수는 있다. 그러나 스승으로 되여서 다른 나라를 진심으로 부추켜주려는 나라는 드물다. 또 하나의 교훈이라면 자아생존만을 위한 근대화의 종극은 생존수단을 가리지않는 악마식 나라가 등장할수도 있다. 그러한 남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는 근대화는 차라리  원시사회에 머물러서 오구작작 살아가기보다도 못하다.     
122    [잡담135] 생존권과 평등생존권 댓글:  조회:5012  추천:40  2010-09-27
      현대사회 리상리념에서 제일 중요한것은 인권중에 생존권이 제일 중요하며 리상사회한 생존평등권의 영주권식 정착이라고 말해진다.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든, 민족이 민족을 상대하든, 국가가 국가를 상대하든 상대방의 생존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명사회가 아니고 야만사회이다. 평등생존권이 없는 사회는 문명사회라 하여도 부실한 문명사회이다. 인류력사의 문명사가 수천년을 넘긴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력사학에서 말하는 문명사이고 문자적인 문명사일뿐이다. 인륜리상의 립장에서 시각에서 보면 2차대전시기도 랭전시대의 대부분 현상도 문명사라고 점찍기는 힘들다. 계급투쟁설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온갖 구실을 빌어서 무력으로 력학의 원리로 상대의 생존권을 략탈하려고 하였기 때문이였다.   조어도어선사건 때문에 중일관계가 세인의 주목을 받는다. 조어도사건의 배후에는 중일해양령토충돌이 뒤받침되고 그 다음에는 일본정세의 변화(수상선출) 같은것이 뒤받침되지만 그러한것들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적잖은 네티즌들은 < 개새끼 도투새끼>를 쏟아내고 <일본인이 무섭지가 않다>는 격동을 <일본과 전쟁을 하여도 무섭지가 않고 괜찮겠다>는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과 전쟁을 하여도 무섭지가 않다?> 말이 쉽지만 그것은 전쟁이란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는 사람들의 입담이다. 전쟁이란 바로 당신들이 흔장만장 먹고 놀아대는 일상의 사라짐이요 바로 당신들의 형재자매들의 피와 생명이라는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가엽다. 물론 중국이 일본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리유는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새로운 리상리념인 평등생존권을 키우려면 보급하려면 우선은 상대의 생존권을 존중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 너 일본놈들은 다 뒈져랴> 하는식의 언론은 옛날 일본군국주의 <대동아 공영권> 감언리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시장이 없다. 오늘날의 일본은 무력과 력학의 원리로 밥먹는 나라가 아님은  존중을 받을 일이다.그리고 무력과 력학의 원리로 생존권을 확대하려는 일부 일본인들을 중국인들을 조심해야 한다.
121    [잡담134] 령혼이란 기약없는 약속일지도 모른다 댓글:  조회:4718  추천:33  2010-09-02
1 꽤나 오래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대목이다. 개혁개방뒤에 미국 나들이를 하였던 중국인 하나가 거리에서 미국인 몇명을 불러세우고 < 당신들, 미국인들은 어찌하여 중국인을 싫어하느냐? 그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가?>고 질문을 해보았다. 랭전시대의 제한성으로 하여  미국인은 무조건 중국인을 혐오한다는 인상을 엄청나게 간직한 작자였던 모양이였다. 그리고 감히 당돌한 물음도 진행할수가 있었던 작자였던 모양이였다. 홍두깨 질문을 받은 미국인 몇명은 거리에서 먼 하늘을 물끄러니 바라보다가 그 작자에게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고 대답해주었다고 한다.    중국인이 빨갱이기 때문에 싫은것이 아니고 반도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자기네들과 전쟁하였길래 싫은것이 아니고 자기네들과 정반대로 그저 령혼의 존재를 믿지 않기 때문에 혐오감을 느낀다는것! 그 대답은 그적의 대부분 중국인들이 전혀 리해를 진행할수가 없었던것은 사실이다. 령혼설을 신앙하지 않기에 사람처럼 보지를 않는다고?! 물론 길가던 미국인 몇명의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가 미국인들 생각을 완벽하게 대표한다고는 말할수가 없었겠지만 지금에 와보면 그것은 부동한 문화권 사이의 혐오감으로도 해석이 조금 될듯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현재도 령혼의 존재를 믿는 인간들은 령혼불존재를 믿는 인간들을 잘 믿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心魂은 믿어왔지만 령혼의 존재를 불신앙하는 중국인에게 < 당신네 중국인들은 사람에게 령혼이 있다는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를 리해시키려면 지금도 아주 힘든 일이다. 하지만 문화권 사이의 차지로만 해석이 간단하게 가능할가?   2 서방세계에서 말하는 사람의 령혼이란 先驗적인 존재로서 사람의 몸뚱이와 상대적인 독립을 이룬 존재이며 사람 몸뚱이는 죽어도 령혼만은 영구하다고 말한다.    종교문화사적으로 보면 동방문화권은 고대부터 여러가지 종교를 믿어왔지만 사실 령혼불멸설만은 믿지를 않았다. 믿는다 해도 기껏해야 조상의 혼이 먼 하늘나라에서 자손들을 내리보고 계신다는 생각에만 그치였을뿐, 령혼과 매 생명개체의 삶의 련관성에 대하여, 령혼의 형이상학적인 의미에 대하여서는 생각이 적었고 <먹고 살고 놀아대는> 실용문화가 주류를 차지하여왔다. 그러다가 근대로부터 영국의 실험주의철학과 독일의 민족정체주의철학이 러시아를 통해 중국에 들어오면서부터 령혼설은 중국에서 아주 <거리를 지나가는 쥐>모양새로 변해버렸고 우리들 대부분은 지독한 령혼설을 때려부시기에 여념이 없었던것이다. 령혼설에 대한 반신반의로부터 절대적인 否定으로 진입한것이다. 3   령혼설에 대한 절대적익 부정시대에 령혼에 대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더듬어보고싶다. 령혼설이 정설이라고 권해보고싶은 생각은 없고 증명할 재간은 없지만 실용주의문화에 푹 젖어있으므로 역시 실용의 시각에서 령혼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싶다 령혼이란 우리에게 그야말로 아무런 소용도 없는것일가?.    령혼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령혼부존재 와 령혼불멸, 유물론과 유심론 등등의 끝없는 답이 없는 싸움을 떠나서도 그 존재의 가치가 있는듯 하다. 령혼설을 신앙하며 령혼의 가치를 매 개인의 삶에 의식시키는 서방문화는 동방문화와 구별되는 미학적인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있음은 공인된 점이다.       한다면 령혼설은 인간에게 도대체 어떤 삶을 가져다주는것일가? 4 인간은 지금까지도 자아팽창의 길을 즐겨 걸어왔다. 인간이 자연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인간이 인간과 사회를 상대함에 있어서도 자아중심에서 출발되는 자아팽창을 무한대로 연장하려고만 한다. 그 과정에 온갖 방법과 수단을 헤아리지 않기를 즐긴다.          하지만  령혼설을 신앙하는 인간은 인륜도덕뿐만 아니라 령혼설에서 오는 무형의 제한을 받기가 쉬우며 사유와 행위에 제한성이 뚜렷하다. 그러나 령혼불존재를 믿는 인간은 인륜도덕의 제한을 받기는 하지만 때로는 인륜도덕보다도 한층 높은 층차인 령혼의 제한을 받지못함으로 하여 <굴레벗은 말>식의 싸담으로 변할때가 있다.(서방세계에도 령혼까지를 배반하고 싸담으로 변한 인물이 수두룩하다)  인간을 모순체이라면 량면성이 존재한다. 그것이 天性적이든 후천적이든 누구나 성인으로 될수가 있고 마귀로도 될수가 잇다. 인간이 마귀로 되는것을 제약하는 인간사회의 수단으로 사회제도도 벌규, 인륜도덕 그리고 령혼불멸설이다. 누구이든 사회제도와 법규, 인륜도덕을 뛰여넘어가고 령혼이라는 장애마저를 뛰여넘으면 마귀로 전변되는것이다. 령혼이란 사실 인간이 만들어냈든 사실적 존재이든 인간의 사유와 행위를 규범화하려는 하나의 보호층이며 령혼불멸설을 믿는 인간에게는 륜리도덕을 초월하는 기약없는 약속이 아닐가? 그 기약없는 약속에 령호불멸설의 묘용이 있다. 언젠가 어느 대통령이 < 종교를 신앙하는것이 신앙하지 않는것보다는 좋다.>고 말하였던 일과 영국소설 <呼啸山庄>의 녀주인공이 <몸뚱이가 없어도 나는 죽고 령혼이 없어도 나는 죽는다.> 던 말들이 다시 새삼스러워진다.     
120    [잡담129] 公과 私 (허동식) 댓글:  조회:4546  추천:40  2010-07-30
    중국은 물론 어느 나라이든지 公과 私는 문화의 저변을 이루는 주축적인 개념이 아닐수가 없다. 현재는 물론 과거나 장래나 公과 私가 없는 인간사회는 상상이 아니된다. 인간은 군체생태를 떠나서는 존속과 발전을 운운할수가 없고 또 그 군체생태를 살면서도 동물본성의 私를 완전히 떨쳐버릴수가 없다. 그래서  公과 私는 개념인 동시에 인간사회상의 본질적인 표현이 된다.   우리는 한동안을 公에 대한 지나친 열정과 公주의리용술을 크게 떠받들었던 결과로, 私를 너무나도 멸시하였고 私를 팍팍 잡아먹으려고만 덤벼들었다.  그 결과로 사회도 개체도 손해를 많이 출산하였고 오늘날에 있어서 우리들더러 인간본성중의 私적인 요인에 대하여도 많이 생각하게 한다. 공산권나라들이 자아와 자본주의권나라들의 私에 대하여 대규모적인 토벌작전을 하고있을 때, 인간본성중의 私를  헌법의 신성불가침이라는 조목으로 번듯하게 모시였던 소위 서양세계는 잠자코만 있은것은 아니다. 그들도 私는 신령처럼 모시고 公은 허약한 자리에만 놓아둔 자신들의 제도와 문화에 대하여 심층적인 검토를 진행하였고 그 허약증을 치료하는 수많은 방법을 강구하여왔으며 물질재부의 지나친 세습과 유전에만 기울어진 사회제도 사회문화를 개혁하기에 전력하여왔다.   私를 멸종하면 사실 인간사회는 인간사회로 될수가 없으며 인간은 인간상을 지닐수가 없다. 또 私만이  울창하고 公은 담장우의 풀대처럼 작은 바람에도 크게 허우적거리는 인간사회는 리상적인 군체사회로 될수가 없다.   公과 私, 私와 公은 표현적으로 개념적인 언어적인 극단분화와 모순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종극적으로 유기적인 조합체를 이룬다. 私를 존중하지않고 私의 합법성과 합리성을  승인하지않는 모든 公은 허튼소리이며 존속할 기반과 여지가 없으며 반인류적이다. 반면에 公을 모르는 私는 인간성만 알고 인간사회성을 모르는 무지이며 손가락질을 받고 지어는 <혁명>도 당하는것이며 반인류사회적인 속성을 나타내게 되는것이다.   인간이 신령이 아니고 인간인 이상, 인간사회가 신령이 아닌 인간들이 모여서 운영되는 한, 公과 私는 모두가 인간 생존수단의 보물로 되여야 할것이다. 이제부터라도 公과 私는 어떤 주의나 어떤 인물이나 어떤 집단들의 특수무기로 둔갑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개념적인 표현적인 모순체는 사실 一體성적인 존재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公과 私를 두개의 巨輪으로 리용하여 멋들어지게 굴러가는 꽃마차 하나가 나의 시야를 얼른거리기도한다.           
119    [잡담128] 우리의 마음정리는 어디로부터 시작할일가? 댓글:  조회:3676  추천:37  2010-07-15
 술 한잔 하다가 고향이 산동성인 친구 하나가 <요즈음 한국인들이 중국과 령토요구가 있더라!>고 한마디 하였다. 내가 조선족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친구인데 나는 그를 평소에 시시껄렁한 말만 지껄이는 인품소유자인줄을 알고 있고, 또 속으로는 < 그 수준에 대학에서 강의를 어떻게 하고 있나?>는 식으로 시원치않게 판단하고 있었으므로 < 나는 그런것에 대하여 잘 모른다>라는 한마디로 얼버무려버렸다.     중국어에 <里外都不是人>이라는 말이 하나 있다. 나는 갑자기 중국을 사는 조선족들이 또는 중국국적을 지닌 조선족들이 요즈음은 <里外都不是人>보다도 험악한 <里里外外都不是人>식  신세를 경유하고 그러한 심리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괴상망칙한 생각을 지니게 된다. 물론 나는 중국의 소수민족정책을 비하하는것이 아니며 모든 중국인들이 우에서 거론한 친구처럼 힘든 질문을 내던지는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간 어디가 비틀려졌는지 어딘가 우리는 우리의 심리상을 조금이라도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된다.     고부싸움에 끼이어 생모와 마누라 성화를 받아야 하는, 그러면서도 어쩔줄을 모르는 남자의 생활상이 중국 조선족의 생활상이고 심리상이다. 중국에서는 조선이 어떻고 한국이 어떻다는 시비의 눈총을 남먼저 당할줄을 알아야 하고, 반도로 나가면 어느 중국인보다도 대륙인 대접을 한사발 더 받아내야 하고, 안쪽을 살면 연변내기 대접을 받고 연변을 가면 안쪽사람 대접을 받아야 하고.     복잡한 세상을 간단하게 살아가는것도 행복을 찾아내는 좋은 열쇠이라고 말할수가 있겠다. 근데 말이다. 간단하게 살어갈수가 없으므로 힘들다. 바같세상이 당신을 복잡하게 만들고 복잡하게 지켜본다 하더라도 심리상만을 1마저도 초과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고수하고 싶지만은, 때로는 조금은 복잡한 산수인 분수와 소수점이 흔들거리고  산수를 훨씬 뒤여넘는 수학이라는 미적분이요 선성대수요 하는것들이 우리의 주위를 얼른거린다.     중국조선족은 간단한 산수계산시대를 벗어나서 복잡다단한 세상을 마주하면서부터 외력의 침입으로 하여 무수한 익점을 따내기는 하였지만 반면에 심리적인 고초를 거듭하고 있고 때로는 역행적인 심리상을 지니게 되였다. 우리들은 우리들로서의 스스로의 마음정리가 필요하다. 마음정리가 잘 되지 못하면 복잡한 시대의 조만간의 장기쪽신세를 면하기가 어렵고 정리가 리상적이면 복잡한 세상을 돠도록이는 간단하게 살어갈수가 있으리라.     민족심이 없으면 민족심이 없다고 욕먹고 애국심이 없으면 애국심이 없다고 욕먹고 인심이 없으면 인심이 없다고 욕먹고 문화가 없으면 문화가 없다고 욕먹고 기술이 없으면 기술이 없다고 욕먹고 그러다가 우리들끼리도 서로 맞대고 욕사발을 탕 둘러메치면서 살아가는 현실을 직면하려면 지혜로운 마음정리도 필요하다.    요즈음, 중국 조선족내에 민족의 정체성을 두고 약간의 혼란성이 빚어지고 있는 사실은 민간인들과 학계인들의 복잡한 립장과 심리상을 다소는 설명해주는것일수도 있다. 사실적인 설명이 보다 필요한데도 개념적인 쟁론으로 서로 등을 맞대는듯한 이들도 가끔 나타나는것은 고부싸움에 시달리는 남자들 낭패상을 많이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정리는 어디로부터 시작할것인가? 어떻게 하면 좋을것인가?  
118    [잡담126]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고싶어유? 댓글:  조회:4474  추천:42  2010-07-06
  인간의 몸에 달랑 매달린 선택권은 유한되여 있다. 그래서 어느 인간도 부모를 자아선택할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와 사회지위의 세습문화를 박산낸다고 수십년 떠들던 중국의 오늘날, 인간선택권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할가, 望子成龍보다도 望父成龍이 용한 성구로 되여있는것은 자식이 좋은 부모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회심리의 우습깡스러운 표현으로 보여진다.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고싶어유? 곁에 이상한 친구가 하나 있어서 이상한 물음을 받았다. 글쎄… 그렇게 복잡한 문제를 내가 어떻게 대답하누? 말은 그렇게 얼버무렸으나  속궁리가 뒤숭해진다. 대부분 인간들은 자신의 국적을 자아선택할수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국적선택의 환상자유는 있다. 그럼 나의 환상을 이야기해볼가? 그런데 쥐꼬리만한 환상력으로 이야기거리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는것은 어떻게 하노? 내가 살고 있는 감숙성은 호금도주석과 온가보총리가  젊은 시절의 땀을 흘린 동네이다. 그리고 또 부주석의 부친께서 혁명을 시작하던 동네이다. 그래서 정치인지 무엇인지 관심이 있는듯한 사람들은 많이 수근거리기를, 감숙성이 잘 되려면 여차여차하게…, 또 수근거리기를 다음번 국가주석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감숙성이 여차여차하게… 감숙성의 약삭빠른 지방에서는 이미 박물관도 만들어놓고 과거와 과거에서 오늘까지 뻗쳐오는 인맥을 주물러서 한몫을 보려고 들락날락하고 있다. 중앙재정집권의 나라에서 중앙재정의 도움을 받으려는것은 다소는 납득이 되지만 누가 나라 지도자인가만을 되세게 리용하려는것은 나는 많이도 납득이 아니된다. 중국사회가 진짜 그렇게 나아간다면 나라주석두 각 성의 출신들을 윤번으로 내세워야 하는것이 아닌가? 만일 림표가 죽지않구 나라주석이 되였다면 중국은 어떻게 되였을가? 4인방이 타도되지 않고 나라주석이 되였다면 현재 중국은 어떤 상태일가? 범부속자들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인물들도 많은 자리에서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 이야기들속에는 만백성들의 일상마저도 나라지도자 구체상황과 엉켜든 과거의 서러움이 있다. 중국력사책은 나라의 지도자 인품적인 성격적인 특성이 만백성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한것처럼 서술된 경우가 아주 많다. 그것을 력사경험이라고 하는가? 력사의식이 발달된 중국인들은 오늘날에도 높은 하늘을 우러르며 좋은 령도자가 용솟음하기만을 기다리는것이 아마도 중국특색인듯 하다. 촌에서는 좋은 촌장, 향에서는 좋은 향장, 현에서는 좋은 현장, 성에서는 좋은 성장 , 나라에서는 좋은 나라주석을 학수고대한는것이 풍경이다. 그 풍경의 시말은 복잡한것이지만 나는 그 풍경을 싫어한다. 다음날, 그대는 어떤 나라를 살구싶어유? 하던 친구의 물음에 한마디 대답을 하게 되였다. 글쎄 누가 나라주석이 되든 만백성의 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나라를 살구 싶구 나라주석이 누구인지두 모르는 백성들두 잘 살수가 있는 나라를 살구싶어유.  
117    [잡담124] 세계어 그리고 언어의 한계 (허동식) 댓글:  조회:3705  추천:45  2010-06-25
      어릴적에 세계어가 있다는 말을 얻어들었다. 그것을 배운다고 덤벼들었다가 며칠 안되여서 허참, 세계어 선생님도 없고 교과서도 없다! 하고 투덜대는 사람들을 1-2명(일본어를 배운다고 하다가 그만둔 사람) 보았던 기억이다. 세상에 세계어가 있다니? 그것만 배우면 조선말두 중국말두 일본말두 영어두 죄다 필요가 없다우, 앞으로는 이 세상에 세계어가 통행할터인데 하루 빨리 그것을 배웁시다!      언어기회주의가 그처럼 고집을 부리던 시대는 아직도 기억속에 인상이 깊다.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파금선생도 세계어에 애착을 두었고 신중국 건국뒤에도 세계어는 개별적인 학자들의 행위로 존속하여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실망을 남겨준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세계어는 세계적으로 중국적으로도 흐지부지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현재 세계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 1000명, 세계어를 괜찮게 사용할수 있는 사람이 10만명내지 200만명?이라고 어리벙벙하게 기록이 나온다. 나에게는 세계어란 全球化 세계화처럼 아름다운 말인듯 하다. 복잡다단한 언어의 장애물들을 폴각폴깍 뛰여넘어 하나의 언어로 조화롭게 살아가자는 그 황홀한 경지야말로 그림이고 시이다. 다원세계를 단원세계로 인공하여 인간세상의 불공평과 모순을 이겨내려는 그 심사는 여겨볼만하다. 그러므로 세계어란 언어령역에서의 종교가 아닐가? . 인간세상을 잘 가꾸려는 생각은 예수님도 하셨고 공자님도 하셨고 부처님 그리고 후계자들도 하셨다. 그리고 혁명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인간들이 실천하여왔다. 그중에는 세계어 실천도 한몫이 있다. 괴로운것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명상과 실천들이 한계성을 내보여왔다. 세상은 아직도 먼지투성이요 피투성이다. 세계어라는 착상도 먼지투성이 앞에서는 피투성이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세계어를 비롯한 모든 언어들은 비록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인간들이 사용하지만 인간들의 욕심대로 세상을 쥐여흔들수가 없다.       모든 언어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기에 표준어사전을 엄청 편찬하고 언어쟁론도 많지만은 필경은 언어에 불과하다. 언어를 미신하지 말자 .  
116    [잡담123]1차대전뒤 이델레오기령역에서의 2개의 마귀 댓글:  조회:3776  추천:39  2010-06-19
       1차대전이 끝나고 민족국가주의가 흥기하면서 이 세상에는 이델레오기 령역에서의 2개의 마귀가 살판을 쳤다 하나는 나치스주의고 하나는 쓰달린주의다. 나치스주의와 쓰달린주의가 인류사회에 어느 정도의 재난을 가져왔을가? 직적접인 재난은 수천만 인명을 빼앗아가고 태반의 인류물질재부를 회손시켰다. 과거에 우리는 나치스주의에 대하여 대성호질을 하였지만은 쓰달린주의의 제자가 되는척하면서 쓰달린주의에 대하여서는 찬송가를 불러왔다. 그것은 정치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정치력사로서 력사의 진실성을 덮어감추는 행위였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우리는 아직도 쓰달린주의에 대한 청산이 부족하고 쓰달린주의가 맑스주의의 계속이고 발양인줄로 오산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나치스주의는 대민족주의고 극권주의다. 그런데 역시 대극권주의고 대민족주의인 쓰달린주의는 대민족주의를 <<계급주의>>와 <<세계해방주의>>라는 가면구로 감추어버리고 극권주의는 공연하게 실행하여왔다. 그 과정에서 맑스주의가 쓰달린주의에 리용당하고 강간당하면서 객관적으로 좋은 역활을 하지는 못하였다. 우리가 쓰달린주의 때문에 무엇이 자본주의인지를 잘 몰랐던것처럼 서양자본주의에서도 본원적인 원인과 쓰달린주의와 구쏘련 때문에 무엇이 사회주의인지를 공산주의인지를 잘 모르고 지내왔다. 그것들은 국가정치에서 발원되는 랭전을 민간사회 깊이에까지 보편화시켰고 우리 사회주의 인간들은 자본주의를 <도탄속>이라고 자본주의 인간들은 사회주의를 네편네도 <공산>한다고 생각하였고 손가락질하였다. 가끔은 어리벙벙한 생각을 하여본다. 중국에는 <<책속의것을 다 믿을것이면 차라리 책도 읽지를 말라!>는 말이 있다. 서적이 인류문명의 최고기둥으로서 인간사회를 큰 빌딩으로 만들어주지만, 그 기둥에는 목제와 세멘트와 철근과 플라스틱…. 수없는 성분이 들어있다. 수없는 력사학자들이 력사를 기록한다고 한지만 <편찬>된 력사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다 진실한 력사와 인간사회를 책속에서 읽어낼것인가는 문제는 아직도 큰 과제로 남아있다. 듣자니 요즘 대학입시에는 세계사 과목도 들어있지를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이 과연 정말인가? 애들의 공부짐을 줄여내려고 그러는건가? 아니면 아직도 인간사의 진실한 흐름을 기만하려고 그러는건가?     
115    [잡담122]"곽원갑"으로부터 "엽문"에 이르기까지의 套路 댓글:  조회:4396  추천:37  2010-05-06
      인터넷에 영화 <엽문2>가 잘도 판매된다는 뉴스가 올랐다. <엽문1>은 구경한적이 있는데 때마침 텔레비에 그것이 방송되므로 다시 한번 대충 구경하는것처럼 하였다. 엽문은 력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이다. 광동성 佛山인으로서 영춘권술 교관으로 되여달라는 일본점령군을 피하여 홍콩으로 건너갔고 뒤에는 무술관을 꾸렸으며 영화배우 이소룡의 스승이다. 그러나 력사적으로 존재한 엽문은 영화 <엽문1>에서 나오는 뛰여난 무술가이고 애국주의자이고 중국인의 분풀이를 잘도 해주는 엽문과 어느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을가? 나의 판단에는 엽문이라는 이름만을 내놓고는 아마도 만팔천리는 된다는 생각이다.   영화는 물론 예술작이고 상업목적을 지닐수도 있다. 때문에 력사에 실존하는 엽문의 이름만을 빌릴수는 있다. 그런데 나는 <엽문1>를 시청하면서 갑자기 20여년전에 즐겨 구경하던 텔레비 드라마 <곽원갑>의 생각되고 <엽문1>이 많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원갑도 력사에서 실존하는 천진의 무술가이다. 러씨아 권투수를 때려팬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텔레비드라마 <곽원갑>에서의 곽원갑도 력사에 실존한 곽원갑하고는 만팔천리 거리를 둔 인물이다. 중국의 표현무술은 套路가 있다고 하는데 나는 홍콩인들에 의하여 제작되는 무술영화나 무술드라마도 아마  套路가 잠재하는듯 하다고 생각한다. <곽원갑>이든 <엽문>이든 모두가 그 套路에 찍혀서 만들어지는(비슷한 력사인물을 찾아내여 렵기적인 애국주의자로 부상시킴)것들이다. 그러한 套路는 이제는 실증나는것들이고. 재미없는것들이다 그런데 왜서 <엽문1> <엽문2>는 잘도 판매되는것일가? 조금은 이상하다. <곽원갑>이든 <엽문>이든 흔상성이 있고 오락성도 있다. 그리고 대폭적인 선동성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심심풀이로 적으로 구경하는 관중들더러 순간적인 충동적인 애국열을 훨훨 불타게 할수가 있다. 그런데 가석한것은 그렇게 훨훨 불타오를수가 있는 애국열들은 거지반은 套路적인 애국열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시간은 류수인데 애국열이 套路에만 갇혀있는것이 좋은 일이 아니다. <곽원갑>과 <엽문>에 나오는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침략자들은 엄청 가증스럽고 중국사람들은 선량하고 어지고… 나중에는 외국무술사를 크게 때려패고 그래서 다시 당하고 그러면서 민중의 애국의식을 자각시키고… 그러면서 그러한 내용을 쳐다보는 관중들더러 애국열에 불타게 하고 주먹을 불끈 감아쥐게 하고? 이러한 套路는 어느만큼의 관성과 생명력과 사회의의를 지니고 있을가? 나는 조금은 부정적인 판단을 해보고싶다. 그리고 나는 <곽원갑>이든지 <엽문>이든지를 물론하고 그것을 구경하는 관중들이 套路라는 옹노에 그만 걸려들기를 바란다. 듣는 말에 의하면 花拳绣腿는 격투술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애국주의에서도 花拳绣腿는 어리석은 짓거리다.    감숙성 란주에서
114    [잡담180]중국의 三立說 그리고 물질재부창조에 대하여 댓글:  조회:3668  추천:32  2010-04-27
중국은 三立說 문화가 줄기차게 성행하여 온 나라이다. 적어도 공부를 하는척 하는 문화인들속에서 三立說은 2천년 이상으로 튼튼한 또치카로 중국문화전통을 지키여왔다. 소위 三立說은 중국의 첫번째 편년사저작인 <<左傳>>에서 기록된 이야기에서 발원하였다고 한다.  기원전549년,鲁国의 大夫인 穆叔이 晋国으로 公家출장을 갔는데 晋国의 卿인 范宣子의 도전적인 질문을 하나 받었다. <<고인들이 死而不朽를 거론한적이 있는데 그대는 무엇이 死而不朽인가고 생각하누?>>  침묵을 행하는 穆叔이 대답이 궁한듯하자 范宣子는 스스로 <<나의 조상들은 虞舜전에는 陶唐氏이고 夏뒤에는 御龙氏고 商뒤에는 象韦氏로서 周朝때에는 唐社氏이다. 周王室이 衰败된 뒤에  우리 晋国이 中原의 盟会를 다루고 집정자는 바로 范氏이다. 소위 死而不朽란 바로 이런 일이 아니겠수?>>하고 해석하자 穆叔이 끝내는 대답하기를 << 그런거야 世禄이지 뭐! 어찌 死而不朽라고 말하겠누? 鲁国에 이미 작고한 藏文种이라는 大夫가 있는데 그가 죽어서도 그의 말씀들은 世世代代로 사람들의 버림을 받지를 않고 있는데 그런거야말로 不朽가 아니겠누? 고인들은 제일 큰 大上을 立德이라 하였고 그 다음에는 立功이라 하였고 세번째는 立言이라 하였거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3不朽일건데!>> 중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령혼의 탈출이 아니라 자손의 번창으로서 생명개체의 영생을 구도하는 민속문화를 고집하여왔다. 근데 목공이 감히 자손번창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3립설로 3불수로 인간생명의 진미를 제시하려고 덤벼든것은 일개 거사가 아니였을가? 그 뒤에 세상이 흐르면서 <<좌전>>이 유학의 경전으로 되고 3립설은 3불수는 중국의 전통사상으로 전변되여 중국의 인테리들을 꽤나 많이 지배하여왔고 많으나 적으나 세속사회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추구라는 큼직한 도장을 찍어두었다. 그래서 3립설과 3불수는 중국사회를 진맥하고 중국사회를 이끌어나간다는 중국문화인들의 중축적인 인생가치관으로 보여진다. 그것은 중국문화인들과 중국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境界로서 자손번육이 아닌 립덕 립공 립언으로서 인생을 빛내려는 수단과 꿈이다. 3립설이 적극적인 의의가 없는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족점도 있다. 우선은 공리주의를 떠난 형이상학적인 생각이 결여되여 인간본원에 대한 명상이 부족하다. 리타적인 개념이 착용되여 <<남들더러 배불리 먹게 하고 따뜻하게 입게 하는>>  욕망은 번뜩이지만 남들의 정신세계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명상이 결여되뎠으며 부처님의 반야와 같은 대지혜 대명상과는 조금은 경지적인 거리를 둔다. 그래서 중국전통문화는 현실적인 문화이고 래세에 대한 관심이 없는 문화라는 평판을 받는다. 물론 세계각지의 래세와 정신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들이 중국에 많이 종착하기는 하였지만 사실은 중국선종을 대표로 하는 중국식종교로, 현실을 위하여서 서비스하는 사상으로 조직으로 전변되였으며 끈끈한 3립설과 3불수를 이겨내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공자의 <<살아가는 일도 잘 모르고 어려운데 죽은 뒤의 이야기는 뭐라고 하는건고?>>가 지금까지 련속되고 있다. 다음에는 3립설과 3불수의 깊이에는 물질재부창조와 물질재부창조행위에 대한 지나친 기시책이 숨어져있다고 생각된다. 3립중에서 립덕은 리상적인 륜리의 실천을 강조하여 왔고 립언은 리상적인 륜리의 사상확립과 홍보를 강조하여 왔으며 립공은 리상적인 륜리의 집중적인 분출을 강조하여 왔다. 륜리1위가 확립되는 력사과정에 중국문화와 중국문화인들은 륜리興起에만에 초점을 두어왔고  물질재부창조에 대해서는 거의 기시책을 실행하여왔다. <<금전은 관속에 넣어가지고 이 세상을 떠나가지는 못한다>>는 생각은 중국사회더러 사회물질재부창조와 사회물질재부창조행위를 지나치게 깔보게 만들었고 문화인들더러 물질재부앞에서 조금은 코웃을 치게 만들어주었다. 사회문화가 사회물질재부의 여건들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외면하면 물질문명을 아주 떨쳐버릴수가 없는 인간문명진척은 손상을 받는다. 중국문화와 중국력사는 자고로 부자들에게 <<傳>>의 위치를 내주지를 않았다는것은 사실이다. 때문에 중국력사에 있어서 권력에 아부하지못한 부자들은 10명에 9명은 물질재부를 겁탈을 당하는 수난을 겪어왔다. 부자란 착취자로 대두할수도 있고 또 사회물질재부창조자들의 집중표현이라고 말할수가 있다. 물질재부傳承의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대내적으로 부자들에 대한 겁탈을 악순환시키는 중에서 력사를 빚어왔다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물질재부전승의 략탈문화가 발달되면 당연히 인간문명진척은 랑비와 후진과 퇴보를 만드는것이다. 서양도 중세기에 일기까지 중국과 거의 비슷하게 물질재부창조에 대한 기시책을 떠받드는 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근세기의 종교개혁으로서 물질재부창조와 물질재부창조행위의 합당성과 불가침범성을 신성한 위치에 올려주었으며 그래서 근대자본주의라는 물질문화의 번성을 이루었다.기독교의 획기적인 문화혁명과 비교하면 중국은 어디까지나 물질재부창조와 창조행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문화적인 반성이 많이 필요하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중국사회는 <부자들을 미워하는> 사회심리가 살판을 치고 권력과 동떨어지는 부자들이 가끔은 <마른 벼락>을 맞는것은 사실이다.   나는 중국문화란 물질재부창조에 대한 정확한 심기와 태도와 정책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13    [잡담121]헌법이 있다고 憲政의 나라일가 댓글:  조회:3548  추천:29  2010-04-15
  중학교 때 <<법률상식>>이라는 과목을 배우는척 하였다. 학교마을 이웃동네에 사시면서 학생들과 함께 도보로 통근하시던 <<법률상식>> 선생님은 언제이면 다른 선생님처럼 자전거를 사실건가는 학생들의 물음에 자전거가 인민페 1원정도로 될때면 좋은 자전거를 사시겠다고 롱담을 잘하시는 분이시였는데 우리들더러 <<법률상식>>은 자꾸만 베껴쓰고 암송하라고만 하셨다. 그 덕분에 <<헌법은 나라의 근본법이다.>>는 한마디를 오늘까지 기억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면서 법학과와 관련된것들을 특히는 소위 <<경제법>>들을 배우는척 하였다. 그러나 근본법이라는 헌법의 조목조목에 대해서는 배워주지도 않았고 스스로 읽어보지도 못하였고 또 그 조목조목마다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자상하게 알고싶은 욕심이 없었다. 중국인은 법률의식이 박약하다고 평하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有法可依,有法必依,执法必严,违法必究라는 선전구호를 배우는척도 하여왔지만 갑자기 헌법에 대한 이상야릇한 생각이 들었던지, 그래서 변호사를 한다는 친구에게 헌법을 문의하였더니 글쎄! 나는 헌법을 둘러싼 송사는 해본적이 없고 할 능력도 없으니 그처럼 복잡한것은 그만두자!고 말하면서 法理에 의하면 雙規라는것도 비법적인것일수가 있다는 생소하지만 리치가 잊는 말을 얻어듣게 되였다. 헌법이 있고 헌법정신이 진정으로 집행되는 나라는 어느 개인도 조직도 법치를 초과하여 권익을 행사할수도 없고 의무를 집행할수가 없는 일이다. 그 친구의 말에는 오늘날에 있어서 착오를 범한 령도자들에게 雙規를 진행하는것은 어딘가는 법치정신을 떠난 규정치 또는 人治현상으로서 법적인 근거는 많이 부족하다고 한다. 雙規가 사법기관의 행위가 아니고 어느 행정기관을 비롯한 어느 부문 어느 개인들에 의하여 집행이 된다면 그것은 사실 진정한 법치국가를 만든다는 정신과 현대적인 헌법정신에 어긋나는것 일일수가 있겠다. 어찌 雙規뿐이랴? 우리는 중국은 아직도 사법독립이 이루어지지못한 나라임은 승인하지 않을수가 없다. 사법권이 행정권을 비롯한 권력시스템과 긴밀하고 복잡한 그물로 엉키여져 있음은 중국의 현실이다. 그리고 사법집행과정에 있어서도 애매하고 루추한 일들은 수없이 발생하여왔다. 과거에는 수십원 인민페를 강탈한 법죄자들도 嚴打에 걸려들기만 하면 다짜고짜로 법관이 하고싶은대로? 아니면 명령에 따라 무기도형에까지 처하던 일이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고장난 은행현금기에서 수만원을 빼내였다고 중형에 처하는(그런데 수년후에는 동일한 사건에 대한 징벌이 많이 달라지고), 큰 도적과 작은 도적도 구분못하는 탄성이 강한 사법혼란사건이 발생한다. 사실 시골쪽으로 내려가면 지방쪽으로 내려가면 어느 서기라든가 시장의 전화 하나가 법원 원장의 <<마음씨>>를 아주 정해버리는 일들은 너무나도 평이로운 일이다. 사법혼란이 빈번하고 가소로운것은 종극적으로 보면 그 원인은 사법정신이 헌법정신의 집행과 거리가 멀고 헌법이 있다고 하여도 사실은 헌정의 나라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에 있다. 세상에는 헌법이 있어도 헌정의 나라가 아닌 나라는 적잖다. 그러한 나라에는 애국주의자들이 용솟음을 하겠지만 헌법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영웅이 적다. 헌법을 위하는 목숨까지 바치는 영웅이 적은것은 우리들 재간으로서 참고 견디여 낼수가 있겠지만 중국처럼 幇閑그릅들이 고서로부터 진시황시대의 한비자의 法治까지 끄집어내다가 중국은 오래전부터 법치사회라고 떠들고 있는 사실은 차마 참고 견디여 내질을 못하여 밸이 꼬인다..문화가 깊다는 幇閑그릅의 인원들도 현대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법과 규정이란 완연하게 다르다는것을 잘 알고 있겠는데 하며 말이다. 인간세상에서 리익이라는것이 참으로 제일 무서운 괴물이다. 그 리익때문에 헌법해부가 힘들고 헌법집행이 힘들고 또 아무것도 아닌 초개같은 우리 만백성들도 우리의 헌법을 다시 배우고 다시 배우고 다시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12    [잡담120]예술의 一脈인 형식미와 인간령성 댓글:  조회:4188  추천:23  2010-04-15
      어릴 때 <<홍색낭자군>> 영화는 몇번이나 구경하였을가? 나의 기억이 틀리지가 않는다면 남패천이라는 놈은 가증스러웠고 또 바레무가무극 <<홍색낭자군>>을 올려쳐다보면서 우리 시골애들은 다리를 건뜻건뜻 높게 들어보이는 홍상천인지 하는 사람을 두고 <<에구, 가다리 찢어지겠다.>>를 부르짖었다. 애들은 물론 시골어른들을 상대하여서도 홍상천이 다리를 놀이감처럼 놀리는 장면들은 이야기거리가 너무나도 단조롭고 오락성이 적어서 재미가 없었다. 그 뒤에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홍색낭자군>>도 모주석 할아버지의 부인 강청의 본보기극에 속한다고 비판을 받았고 우리들의 추억에 씁쓸한 흔적으로 허구픈 웃음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런데 <<홍색낭자군>>은 바레무오페라라는 시각에서만 보면 명작이 아닐수가 없고 대작이 아닐수가 없다. <<가다리 찢어지는것들>>이 바로 바레무의 극치이고 서방세계의 바레무와 중국고전희곡중의 정화들이 유기적으로 조화된것들이다. 남패천을 대표로 하는 지주계급의 악착함을 죄다 무시하고 홍상천과 녀자주인공 吴琼花의 영웅적인 기상을 죄다 무시하고 시대적인 배경과 사회정치적인 배경을 죄다 무시하여도 <<홍색낭자군>>은 사실 바레무극의 경전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일맥인 형식미의 하나인 舞의 극치에 오른것이다. 내용을 떠난 형식미는 존재의 가능성을 잃게 될수도 있다. 적어도 발생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그런데 왜서 수많은 예술품들은 와중에 내용과는 아주 상관이 없이 오똑하게 존재하여 인간령성의 눈부심을 앓고 또 인간들의 매혹을 독차지하게 되는것일가?  그 영문을 조금이라도 알고싶다.  工具理性이 주류의식으로 된 사회에서는 계급성이요 민족성이요 하는것들만이 울부짖어지고 나붓기여지여 價値理性은 가끔 수욕을 당한다. 그러면서 계급과 민족을 초월하여 공존하는 인간령성이라는것은 실리때문에 가짜예술이라는 평판을 받는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세부를 무시하면 어느 개인도 조직도 민족도 나라도 필경은 인간령성미에 대한 추구를 멈추지는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고려청자도 고려백자도 조선반도에서의 탄생과도 관련이 크지 않게 다만 인간령성의 걸작으로서 세인들의 찬탄을 받는다. 운동주시인의 시작들도 그가 중국조선족시인이든지 한국시인이든지와는 관련이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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