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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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잡담119]방양과 권양 그리고 목자문화 댓글:  조회:3378  추천:20  2010-04-15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초원을 사는 양떼는 목자의 指導와 가르침 아래 초원의 산하를 거닐면서 풀뜯고 련애하고 자식낳고 그렇게 살다가 잡혀먹히는것으로 팔려가는것으로 된다. 그런데 그것은 조금은 과거의 풍경이다. 초원의 면적이 적고 양마리수가 많은 동네로 가면 가끔은 울타리속에 갇히여 키워지는 양떼를 보게 된다. 초원의 풀이 아니고 사료를 먹고 하천을 흐르는 물이 아니라 주인이 쏟아주는 물을 받아먹고 련애도 자식낳기도 주인의 의사를 다소는 따라야 한다. 물론 나중에는 잡혀먹고 팔려가고. 목축업이 放養으로부터 圈養으로 전변된것은 일종 생산력의 진보라고도 말한다. 또 그것은 외국으로부터 배워온 선진적인 기술이라고 떠들어대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선진적이든 락오적이든 중국의 초원지대 목축업이 목축지가 받어당할수가 없는 정도의 마리수로 가축을 보존한는 상황을 잘 설명한다고 한다. 1평방킬러에 70-80마리면 족한데 200마리를 보존하려고 허둥대면서 권양을 하지만 때로는 요행을 바라고  초부하로 운영되는 초원에 양떼를 방양하여 그래서 초원이 사막화되고 황사가 불어치고 있다나? 그런데 초원의 목축업이 방양에서 권양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목자문화는 어떻게 변화되고 있을가? 과거에 초원에 가면 가끔은 말을 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가축들을 방목하는 목자들의 손에 채찍을 쳐들었거나 또는 돌멩이를 내뿌리는 특제가죽조박을 들고있던 모습들이 아주 위풍스럽고 씩씩한듯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씪씩하던 목자들이 오늘날에는 양떼를 비롯한 가축들을 울안에 가두어넣고 상냥스러운 웃음까지 내지으면서 사료를 시주해주고 물을 내주고 똥오줌도 쳐주면서 진짜로 가축들의 지도자로부터 친구로 되였있는건 어딘가는 근사한 목자문화로 표현되는듯도 하다. 그러나 사실은 씪씩한 목자이든 상냥스러운 주인이든 다정한 친구이든 그들이 진정으로 노리는것은 가축의 번성에 따르는 육류와 모와 피혁이 가져오는 실리임은 틀림이 없다. 인간사회에서도 방양과 권양의 길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목축업의 방양으로부터 권양에로의 양상과는 달리 인간사회에서의 방양으로부터 권양으로의 전환은 어떻게 보면 인성위반인 가혹한 행위임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에 있어서 목자문화의 권양상은 도시와 시골을 갈라놓고 또 그것을 인공유전까지 시키려는 호적제도를 비롯한 수많은 엉터리짓들이 포함된다. 수많은 엉터리짓중에서 나는 목자문화의 가축들의 령혼세계까지 손에 쥐흔드는 사회현상을 제일 증오한다. 호적제도이든지 문화독재이든지 그런것들은 아주 먼 옛날부터 만백성들로부터 세금을 받아들이고 사람과 토지를 꽁꽁 묶어놓고 령혼세계까지 강박하는 목자문화이다. 오늘날의 목자문화는 관리자 말하자면 목자 또는 주인의 리익으로부터만 편의로부터만 출발한것이 너무나도 많다. 경제권의 목자주의로부터 문화권의 목자주의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지는 생태는 권양되는 가축들은 수많은 권익들을 수탈당한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먹을줄만 아는 소위 <<독립사유능력>>과 <<정신가원>>을 잃어버리는 그림자로 전락이 된다. 국민들이 권양되는 현실하에서도 국수주의자들은 누군가 그러한 상황을 곁들어서 누군가 당신네 국민소질은 조금은 그런데! 하는 말을 내놓기만 하면 당금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된다. 그래서 입에 거품을 물고 大唐성세를 거론하여 대당시기에는 중국이 전 세계에서 국력이 제일 번성한 나라라고 고집하는데 소위 대당성세까지 소유하였던 동네의 국민소질이 어떻게 발바닥 수준인가는 반문 비슷한것을 내놓는데 소위 당시를 어릴때부터 배웠다는 그들은 왜서 두보시인의 朱门酒肉臭, 路有冻死骨를 아주 잊어버리는것일가? 그러면서 그들은 또 현세의 성세까지를 울부짖기도 하는데 나라의 주석들도 감히 거론하기를 싫어하는 성세설을 팔고 사는 어용문인들의 파렴치상은 가관이다. 황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떼들은 가련한 존재일수도 있다. 그런데 목자들의 채찍아래에서 또는 빚어내는 상냥한 웃음아래에서 양떼들은 필경은 가련한 존재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목자일위를 울부짖는 동네는 가축들은 우선은 먹고 살어야 가축이 되는게 아닌가는 생존일위를 리론근거로 방양과 권양을 고집한다.나는 그러나 나는 사실은 만백성을 가축에 비유하여 사실은 기득권의 행색만을 유전하려는 목자문화가 싫다. 사람은 필경은 가축이 아니므로 누구나 경제의 자유권과 인성의 자유 그리고 정신세계의 초탈을 갈망하게 되여있다. .    
110    [잡담115] "지식청년"에 대한 의문, 당대사회에 대한 의문 댓글:  조회:4188  추천:32  2009-11-13
<<지식청년>>에 대한 의문, 당대사회에 대한 의문   허동식요즈음 <<지식청년>>에 대한 의문이 새삼스럽다. 나의 어느 글에 들어갈 인물이 <<지식청년>이므로, 나는 <<지식청년>>을 지내본 경력이 없으므로 곁에 있는 나이 있는 분들과 문의를 하여보았다. 놀라운것은 그분들의 경력이 내가 읽어보던 소설보다도 생동하고 아주 실감이 있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마음속의 상처로도 남아있는 경력이기는 하지만 청중인 나는 재미있게만 느껴지였다. 내가 어릴적에 마을에 있는 상해지식청년들도 몇이 기억나는데 뜨개질을 하는 남자상해지식청년이 생각나고 셋째누나와 친하던 조선족 지식청년들도 생각난다. 그런데 너무 아리숭하다. 그들의 희노애락은 나는 거의 모른다. 책에 씌여진것과 곁에 있는 분들의 말씀에 의하면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내려간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식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농촌으로 내려갔으며 전사회적인 희비극을 제조한것일가? 책에는 확답이 없다. 곁에 분들과 물어보니 그분들도 <도시에 일자리를 찾지못하는 청년들이 득실거리니 모주석이 우리를 농촌으로 녀려보냈다.>고 한다. 인터넷을 뒤져보아도 기록만 있고 지식청년현상에 대한 원인을 거론한 글이 아주 적다. 새삼스럽게 의문되는것이 나의 고질병이다. 지식청년현상만이 아니다. 중국 당대에 발생한 수많은 전사회적 사건들이 아직은 확답이 없다. 반우파도 그렇고 문화대혁명도 그렇고 멀리로는 항미원조도 월남자유반격전도 그렇고 림표도 4인방도 모두가 만백성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그 근본원인과 정치적인 사회적인 배경을 두리뭉실한 정도에만 그치게 알고 있다. 중국 당대 사회에서 나는 이것이 만백성의 불행이 아닐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만백성은 나라의 주인이라고는 하지만 정치에서의 장기쪽으로만 사용되여왔다. 장기쪽으로 사용된 일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주었는가? 누가 나라주석이 되든 누가 싸우든 만백성은 먹고 살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만백성이 무도와 마작을 즐기다가 이제는 <<질탕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또 리혼도 류행으로 여긴다거나 <<애인이 없으면 바보이고 애인 하나면 괜찮고 둘이 있으면 인물이고 셋이 있으면 위인이고 몇명 이상이면 짐승이고…>> 메신저가 핸드폰에 수없이 들어온다. 언제는 핸드폰 메신저가 거의 위법으로 될번하였는데 중국을 아는데는 메신저가 으뜸이 아닐수가 없다. 물론 현상을 거론한것이고 원인분석은 없지만 핸드폰 메신저가 중국의 밑바닥을 잘 드러내는 통신으로도 사용된다. 그렇다면 왜서 핸드폰 메신저가 뉴스보다도 더욱 믿음성이 있는 줄거리들을 생활에 대한 만백성의 태도를 알려주는것일가? 또 하나의 새삼스러운 의문이다.당대사회에 의문을 지닌다고 하여서 반당 반사회주의로 몰아주는 자식도 의문스럽다.
109    [잡담114] 종족편견에 약간 댓글:  조회:4766  추천:34  2009-09-24
종족편견에 약간허동식   력사적원인으로 하여 은원형식의 표현을 이루는 종족편견이 많다. 그러한 은원뒤에는 흔히 종족사이에 력사적으로 발생하였던 리익쟁탈이 안받침되였다. 먼 옛날 유럽의 백인들과 아프리카 흑인들 사이에는 뚜렷한 종족편견이 없었다. 최초에 흑인들과 거래를 한 라틴종족도 뒤에 흑인들과 거래를 하던 게르만종족도 흑인들에 대하여 대집성적인 보편적인 종족편견을 지니지않았다. 헌데 신항로가 개척되고 식민주의책이 창궐해지면서 유럽 렬강들에게는 아프리카를 략탈하고 점령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아메리카를 개발하기 위하여 흑인노예제가 필요하였으며 따라서 모든 수단을 가리지않는 종족편견, 말하자면 흑인은 락후하다는 우매하다는 등등의 종족편견을 보편화시켰다. 유럽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종족편견이 제조되는 과정에 박애를 부르짖는 기독교세력도 자유와 인권을 부르짖는 인문사상도 큰 억제작용을 이루지 못하였던 사실이다. 그것은 그들의 공동리익이라는 종족리익의 존재와 어느 문화든 얼마나 우아하다 하여도 가끔은 인성완성의 방향과 배도되는 약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가는 생각을 하여본다. 리익쟁탈을 뒤받침하는 력사적인 은원적인 종족편견은 아주 세계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이웃끼리 아주 오래동안 사이가 좋았던 나라가 적은것이, 서로 아니곱게도 보고있는것이 바로 어느 종족이든 리익앞에서는 신사가 없다는, 그래서 어느 종족이든 종족내에 다른 종족에 대한 종족편견이라는 아편을 일부러 류행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여본다.  다음에는 리익쟁탈이 원인으로 되는 종족편견과 문화적인 종족편견이 합류하여 이루어지는 과도성적인 복합성적인 종족편견이 있다. 리익쟁탈중에 종족편견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문화를 아름답게 위장하고 남의 문화에 醜化라는 정형수술을 진행함이 인류의 아주 상투수단으로 사용되여왔다. 헌데 외곡과 몰리해와 기시로 충만된 문화판단이 문화적인 종족편견을 이루고 리익쟁탈의 문화편견과 합류하면 리익쟁탈이 이룬 종복편견보다도 더욱 견고하고 지구한 생명력과 회손력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과거 유럽인들이 유태인데 대한 종족편견이 바로 그러한 종족편견의 실례라고 할수가 있겠다. 유태인들의 재부를 점유하기 위해서는 략탈자로서는 그러한 과도적인 종족편견을 보현화시킴은 필수였을수도 있다.  또 다음에는 단순한 문화적인 종족편견이 있다. 물질리익을 위한 직접적인 종족편견도 아니고 또 물질리익을 위한 종족편견과 문화편견으이 이루어지는  과도적인 복합적인 편견도 아닌 종족편견이다. 력사적으로 아시아인과 흑인들은 직접적인 리익쟁탈이라고 없었다고 볼수가 있고 물질리익을 위한 문화편견을 만든 일이 없다고 볼수가 잇다. 하지만 아시아인들은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편견적인 문화판단을 수박 겉핱아먹기로  배워서 흑인이라 하면 조금은 아니아니 하여왔다. 또 미국이라든가 유럽의 흑인들도 백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적인 문화판단을 겉 핱아먹기로 배워서 황인종 하면 아니아니 하여왔다.   종족편견이 없었던 인류력사는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지구 우에는 아직도 종족편견으로 넘친다. 사회가 발전될수록 부동한 종족사이에 종족편견이 무너지고 조화가 있으리라는 판단과 욕심과는 많이 다르게 마치도 인류의 어떤 回光처럼 존재한다. 리익쟁탈을 안받침한 <<근원적인 종족편견>>이든지, 리익쟁탈과 문화원인이 합류되여 만들어지는 <<과도적인 복합적인 종족편견>>이든지, 순수한 문화차별과 관념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종족편견>>이든지 모두가 불화를 만드는 도화선이다. 특별히 어느 종족편견이든지 어떤 정치인들에게 리용되는 경우에는 <<초인간>.>적인 회손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악마중의 하나가 종족편견이 애국주의라는 옷을 입고 거리로 싸다니는 일이다.   일전에 남경대학살을 내용으로 한 << 남경! 남경!>>이라는 중국영화가 일본에서 상영되였다. 종래로 남경대학살을 엮은 영화가 상영된적이 없는 일본의 미성문관례가 무너지여 좋다고 하는 중국사람이 있고 <<남경! 남경!>>은 허구해낸 어느 일본군인의 시각으로 만든 영화이기때문에 력사사실과는 판연하게 다르다면서 중국영화감독으로서 陸川은 볼장을 다 본듯도 하다.  남경대학살이라는 력사사실을 현실의 국제관계와 리익정치라는 층면에서 벗어나 단순한 문화적인 시각에서 력사적인 시각에서 말할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그렇게 거론하는 사람은 아주 적음은 사실이다. 간혹 있다 하여도 남경대학살을 두고 대부분의 중국인과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손바닥과 손등마냥 부동한 문화립장에 서고 부동한 문화해석을 진행한다. 어떤 중국인들이 일본을 바라보는 눈길에는 옛날 견당사의 돛대만 얼른거리고 명청시대의 왜구라는 해적들의 총칼만 얼른거리고 갑오전쟁의 포성을 비롯한  중일전쟁의 피냄새만 짙어있고 과거의 아시아 농경대국으로서의 자부심에만 받침된 일본인에 대한 여러가지 종족편견이 반죽이 되여있다. 그래서 국민정부의 버마원정군이 일본포로들을 천여명 생매장하던 일은 영화로 제작하라는 말은 못하고 있다.   중국인을 바라보는 많은 일본인의 눈길에도 반성과 뉘우침이 적고 근대로부터의 중국의 락오상과 실패만이 보이며 다른 종족은 전혀 무시하려는 고질적인 종족편견이 무성하다.     종족편견을 메우는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겠지만 종족편견의 근원을 찾아보는것도 그 중의 하나가 아닐가는 생각을 하여본다.
108    [잡담113] 공자와 중국력사 댓글:  조회:4673  추천:31  2009-08-29
[잡담113]    공자와 중국력사 허동식   공자는 亂世인 춘추시대를 살면서 폭력이 아닌 인정(평화수단)으로서 나라의 통합과 질서를 유지함을 주장하였고 그래서 周禮질서 회귀를 원하였으며 그 수단으로는 윤리도덕의 昌盛과 인성의 善에 부합되는 인치를 울부짖었다. 헌데 리상주의자 공자는 죽은 뒤에 자신의 인문주장이 력사의 갑문으로 될줄을 생각이나 하였을가?  중국력사를 5천년 長河라 한다면 공자는 그 시간흐름속에 안치돤 하나의 閘門이다. 란세가 도래하면 공자는 보수인물로 등장하여 신흥세력의 비판을 받으면서 튼튼한 갑문의 위세를 전혀 잃고 혼탁하고 거세찬 물결에 침전되고 파멸되기도 하였다. 헌데 성세가 도래하면 공자는 다시 성현으로 받들리면서 기득권의 질서유지 수단으로 되여 또 하나의 갑문으로 분식되고 리용되여왔다.   하지만 공자라는 인물은 현세를 살고있는 우리에게도 진실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력사라는 長河속에서 무수한 정치인들과 인문인들에게 수없는 변형수술을 당한 공자는 어느덧 성현이 아니면 괴물로 둔갑하는 <천당과 지옥 게임>의 주역으로 되여있고 공자의 인문주장은 학설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늘 상징적인 부호로 표기법으로 사용된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공자와 공자의 儒학을 주장하거나 비판하거나를 물론하고 순수한 학술적인 립장과 연구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중국력사에서 있어서 어떤 관점에 대한 쟁론은 늘 리익갈등과 권력갈등을 동반하여왔다. 그래서 공자는 력사의 갑문이면서도 또 력사의 晴雨表가 아닐수가 없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중국사회의 상황을 판단할라면 공자가 받는 대우가 어떠한가는 晴雨表가 제일 실용적이라는, 아둔하지만은 괜찮게 감각되는 생각을 더듬어본다. 
107    [잡담112] 옛말 한컬레 그리고 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 댓글:  조회:5277  추천:32  2009-08-24
[잡담112]옛말 한컬레 그리고 민족의 신화  전설 민담 허동식 동년시절, 친구들끼리 옛말하기를 할라면 동네의 어느 아이든지 전술할수 있었던 옛말이 한컬레 있다.  멀고먼 옛날, 어느 나라에 부모 잃은 삼형제가 살었는데, 큰놈은 오줌을 억수로 퍼부을수 있는 오줌싸개이고 둘째놈은 휘파람을 불면 차디찬 광풍을 불러올수가 있는 휘파람쟁이고 셋째놈은 발길을 억세게 빨리 놀릴수 있는 힘장사 발길쟁이였다나 .헌데 삼형제는 째지게 가난해서 밥도 배불리 먹지못하는 신세였는데 어느해 북방으로부터 수십만의 외국대군이 침입해 오자 삼형제는 어느 문무대신들도 좋은 대안을 내놓지못해 크게 불안스러웠던 궁전에 가서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삼형제가 일졸일병 필요없이 적군을 물리치겠나이다. 그 다음날 삼형제는 수십만 적군이 장사진을 친 산마루에 올라서 큰놈이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그 오줌발이 폭포처럼 줄기차게 흐르면서 하루사이에 산아래 진을 친 수십만 적군들더러 오줌홍수속에 아주 잠겨버리게 만들었고 그러자 둘째놈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는데 삽시간에 광풍이 휘몰아치고 기온이 저락되여 일기가 아주 엄동으로 변하면서 수십만 적군이 잠긴 오줌홍수는 얼음강판으로 변했버렸다나. 그 다음에는 셋째놈이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산아래로 내려가 오줌강판우에 드러난 수십만 적군의 목을 힘찬 발길질로 잠간 하는 사이에 죄다 따버렸다나. 그래서 수십만 적군을 무찌른 공훈으로 삼형제는 당연히 왕의 삼공주에게 장가 들고 아들딸 낳고 크게 잘 살고.  중국 조선족들 태반은 민족사 반도사에  관한 체계적인 교육을 얼마 받지를 못했다. 하지만 신화와 전설 민담의 형식을 통한 간접적인 수단으로 반도사와 민족사의 몽롱한 모습을 전승하기도 했다. 그러는 과중에 자연히 민족적인 정서와 민족적인 가치관을 전승하기도 했다.  민속이 력사의 <살아있는 화석>이라면 민족사의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들이 승리자들과 문화우세자들이 자아립장에서만 기록한 문자력사에 대한 불신임을 자아내게 하며 또 소위 <과학적인 력사관>이 지니는 비진실성과 과대성의 부족점을 미봉하는 작용을 할수는 없을가? 그 작용이 아주 미흡하기도 하고 거의 불가능하기도 하겠지만 문자기록력사와 문헌자료력사에만 매달리는, 현세서비스만을 좋아하는 력사연구풍보다는 어딘가 활달된 인소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 신화전설 민담은 사실주의적 민족사연구에는 큰 참고치가 없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민족성격과 민족가치관을 비롯한 민족문화탐구에 있어서 관방문헌의 기록보다는 문화우세자들의 문자기록보다는 더욱 진실에 접근하는 단서를 제공하여줌도 사실이다.  그러한 신화 전설과 민담을 분류해보면서 우리에게는 어느 부류의 옛말이 많고 어느 부류의 옛말이 적은가를 그리고 그 결구적인 특성을 가늠해보고싶다.1.민족발상에 관한 신화 전설과 민담  단군신화를 비롯한 민족발상설은 어느 민족과도 못지지않게 무성하다. 2. 정치인물들에 대한 신화 전설 민담들이 있기는 하지만 민간적인 시각에서는 정면인물로 제작한것이 조금 적다. 3.민족영웅에 대한 신화 전설과 민담용맹과 기백으로 넘치는 민족영웅설은 기본적으로 력사에 존재한 진실된 인물들로 바탕을 두었다.(을지문덕 리순신 등), 반면에 아주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영웅인물이 많이 부각되지 못하였다. 4.민족의 인문지혜에 대한 신화 전설과 민담민족의 인문지혜에 대한 것들은 거의 공백이다.(제갈공명과 같은 지혜신이 제작되지 못하였다)5. 민족의 工商醫藝면과 관련된 신화 전설 민담이 거의 공백인듯도 하다 6.민족의 리상적인 부녀자에 대한 전설은 <심청전>과 <춘향전>이 대표적이다 7.민간사회의 정의자로서 杀富济贫 괴수들은 홍길동이라든가 림꺽정 등 인물들이 많이 존재한다.전문이 아닌 내가 어벌차게도 상기 특성을 나름대로 적고나니 또 그 결구적인 특성에는 어떤 문화내막이 잠재할가고 고심해보고싶다.  
106    [잡담111] 정권이전과 사회원가 댓글:  조회:4985  추천:33  2009-08-21
잡담     정권이전과 사회원가허동식《激情燃烧的岁月》와 《亮剑》은 근년에 중국에서 꽤나 인기를 지닌 텔레비죤 드라마이다. 그래서 간혹 눈요기를 해보면서 나의 구미와는 생각과는 조금 별로라는 판단을 하여왔다.왜냐하면 정면인물로 구가되는 군인 주인공인물들이 개성이 뛰어나고 군사재능도 있고 인생경력이 렵기적이기도 하여 매력적인 일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아주 武夫들인 그들의 호쟁으로 표현되는 천성적인 인성결함을 과대 극찬하는 일면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과대 극찬의 인문주장에 동조하기 싫기 때문이다.중국력사문화 內室에는 아직도 《打江山 坐江山》이라는 생각과 행위가 아주 정상적이고 합리하게 모셔져있다. 력사의 주역뿐들만 아니라 천하의 만백성들마저도 <打江山>하는 이들의 <坐江山>을 달갑게 받아들임도 아주 력사진리로 현실진리로 되여있으며 , 그러한 인문관력관이 모택동의 <枪杆子里出政权>라는 현대판본으로도 연역되여왔다. 그러면서 중국은 당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軍政사회와 準군정사회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는 중 우리는 군정사회에서 準군정사회에로 , 準군정사회에서 訓정사회에로의 진입하기도 하면서 가끔은 복귀라는 위험지대를 경과하기도 하였다.사회발전중의 전환점로 되는 권력이전에 있어서 과대한 사회원가지불은 나라와 만백성의 초부하적인 짐이고 근심이 아닐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회원가지불을 전혀 무시하는 <파괴가 없으면 건설이 없다>는 론조가 성행하던 시기도 있었고 그러한 행위를 저지른 력사시기도 있었다. 그 교훈은 엄청나다.수양제는 중국력사책에 폭군으로 등장하는 황제이다. 물론 수양제가 폭군의 일면을 지니였을수도 있었겠지만 수양제가 폭군으로 기록된것은 수나라를 뒤엎은 당이 력사편찬중에 수양제에게 <구정물을 크게 들씌운> 일과 전혀 련관성이 없는것은 아니다. 폭군 수양제는 해마다 장안에서 서역 각국을 포함한 주변 나라들의 악대와 歌舞대를 불려들려 큰 국제잔치를 벌리였었다. 그 잔치에 국고가 거덜이 나고 만백성이 도탄에 빠진걸로 배워왔는데, 현재 누구는 수양제의 흔장만장 하는 국제잔치가 전쟁을 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인명적으로 크게 수익이 좋았다고 주장을 펴고 있다. 그 병행적인 근거로 오늘날에 있어서 중국이 올림픽을 하여 경제적수익이 아니좋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인명적으로 좋은 일이 아닌가?고 주장을 편다.그런 주장을 읽으면 나는 만백성에게는 정상적인 사회운영이야말로 정권이전이야말로 행복지수의 최고원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중국의 중세기는 건설-파괴-재건설에 병행되는 군정-훈정-군정이라는 악순환력사이다.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선진적인 대자산계급을 대표한다는 국민당 장개석정부도 종극은 군정을 하였으며 선진적인 로동계급을 대표한다는 공산당의 일원인 림표일당도 군사정변에 고심하였고 4인방도 특수수단과 특수경로를 통한 정권탈취를 꿈꾸다가 군사행위에 분쇄되고 말았다. 장개석도 림표도 4인방도 어떻게 보면 모두가 중국식 력사문화가 낳은 희생품이고 재래의 정권이전문화의 필연적인 산물이 아닐수가 없다.어느 책에서 미국독립전쟁 공훈자인 워싱톤이 전쟁승리뒤에 곧바로 국회회의에 나가서 공손하게 경례를 올리고 군권을 상징하는 쥐휘검을 풀어 바치고는 아주 평민으로 되였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참으로 미국의 헌정에 대하여 감복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 뒤에 워싱톤이 미국대통령으로 출마함은 그의 군공과 전혀 관련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필경은 군인신분을 버리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는 점은 미국헌정정신의 구현이 아닐수가 없다). 가끔은 근 2백년동안,중국력사가 배태한 풍운인물들과 미국력사가 배태한 풍운인물들을 배렬해보고싶은 욕망을 가지게 된다. 중국의 풍운인물은 군인출신과 군인이 많지만 미국의 풍운인물들에는 변호사 사회활동가 그리고 종교인사마저 많이도 섞여있다. 그 내막을 미국의 흑인혈통 대통령 오바마가 <미국의 위대함은 강력한 국력과 국방력이 아니라 독립선언과 헌법에 적혀있는 평등과 자유의 정신이며 극대한의 집행이라고>고 말하고 있는데 또 미국흑인들 비폭력저항운동의 령도자 였던 马丁 路德를 소개한 글들을 읽으면서 미국헌정정신이 만들어주는 미국사회의 저변과 깊이의 튼튼함과 특색들을 생각해보지않을수가 없다.미국은 남북통일전쟁뒤에는 국내폭력이 크게 성행하지 않았다는 일은  미국인의 행운이며 우리가 배워야 할 일인듯 하다.  
105    [잡담110] 관료본위와 금융위기 댓글:  조회:3344  추천:27  2009-07-06
고향에 가면 아직 長자를 따지못해 술 먹고는 울먹해하는 어느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대학을 나왔겠다 실무능력도 높겠다 이제는 나이도 꽤나 잡수었겠다 그까지 과장이야 못하랴 하는 속셈을 알아주고는 싶었다. 너도 나도 장자 하나 따려는것은 관료본위 사회의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무슨 인민을 위해서 더 복무하려는것보다도 장자 하나 붙으면 수입의 직선상승이 가능하고 사회지위도 둥둥 떠오르고 마누라의 얼굴도 밝아질것이고 개인적인 삶의 보람도 느낄것이고, 하여튼 좋은 일들이 수두룩하게 꼬리에 꼬리를  물것이라고 우리는 사회는 보편적으로 그렇게 인정한다. 중국은 아직도 가치취향의 다원화가 성행하지못하고 있다. 유명한 운동원도 스포츠감독도 나중에는 관리로 전변하는 일들은 아무리 무식쟁이라 하여도 롱구 하나만 잘 해도 갑부로 인기인물로  되는 외국의 가치취향의 다원화구조와 어느 정도 대립을 이룬다.  재래로 중국은 정부가 국민들의 가치취향을 인도하는 길을 걸어왔다. 요즘에도 대학생창업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대학생들의 취업난을 풀려고 애쓰고는 있지만 대학생 村官들이 많아지는것을 보면 사실은 관료본위가 얼마나 튼튼한가를 짐작하게 된다 관료본위는 현실적인 력사문화적인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나는 중국산식물이다. 이 식물의 독성은 강하여 그 곁에는 다른 식물들이 살기가 많이 힘들다. 헌데 우리는 그 독성이 강한것을 키우고 뜯어먹고 중독되고 후손들에게 유전해주고. 금융위기뒤에 중국은 중앙정부 재정지출을 늘이는 방법으로 내수를 확대화하는 길을 걷고 있다. 재정지출로는 고정재산투자가 엄청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 오단들 대부분은 국유기업소가 全擔하고 있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융자만 힘든것이 아니고 시시각각 국유대기업소에 잘 보이느라고 또 먹히울가봐 전전긍긍한다. 중소기업소란 민간기업이 많고 지역적으로는 경제신흥지역에 집중되여 있다. 계속 이런 형편이 지속된다면  국유대기업소에만 경사도가 큰 경례를 하는 경제책이 장구지책으로 된다면 이번 긍융위기를 통하여 중국은 또 국유화 확대화와 절대화가 되지 않을가는 , 중소기업과 민간경제는 큰 회손을 보지않을가는 근심을 해본다. 중소기업과 민간기업의 지나친 저락은 필연코 재부점유에서 국가의 절대적인 독점을 이루게 된다. 물질재부가 국가에 대집중이 되면 민간경제는 자연히 활력소를 잃게 되고 나중에 민간인들의 가치취향의 주류는 자연히 관료본위에만 머물게된다.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가 중국의 경제면만 아니라 중국인들의 가치취향을 포함한 이델레오기에도 큰 여파를 만들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우리 중구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버득거려야 할가? 당신 과장 하고싶다는 사람이 당표나 땄나? 고향친구가 너무나도 억울해하길래 한마디 물어보았더니 그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으던 장면에는, 현실을 직면하는 너도 나도의 무가내가 잠재하고 있었음을 새삼스레 느낀다. 상식적으로 당표도 없는 놈이 공무기관의 과장을 한다는것은 아주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처럼 <아는 떼질을 하>는 친구가 조금은 미워보였었다.          
104    [잡담109] 모주석기념당 그리고 정치동물 댓글:  조회:3745  추천:31  2009-07-06
 천안문광장에 많이 가보았지만 모주석기념당에 한번 입장한적이 없다. 무료입장인줄은 알고 있었지만 먼 발치에서도 줄을 서서 모주석기념당에 입장하는 사람들 행렬을 훤히 바라볼수가 있었지만 다행이 동참을 해보고싶은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었다.    나같은 인간은 모주석에 대한 생각과 정서가 복잡하지 않을수가 없다. 모택동할아버지의 神光을 쪼이면서 성장하였고 또 그 陰影하에 숨쉬기가 힘듬을 느꼈던 이상, 모주석에 대한 생각과 정서가 복잡하지 않을수가 없다. 또 력사정치인물들에게  입혀지는 두툼한 포장이 존재하는 한, 또 부동한 사회정치리익이 존재하는 한  력사정치인물들에 대한 평판은 언제나 <안개속에서 꽃구경>이라는 신조를 믿는 나로서는 모주석기념당을 비롯한 력사의미지보다 정치이미지가 짙은 기념물들을 좋아할 이유가 없는듯도 하다.    오늘에 있어서 나로서는 모주석을 좋아할 또는 싫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진정 모주석을 좋아한다면 차라리 먼지낀 모택동선집이라든가를 읽어보는 편이 더 재미있고 이상적인 일이라고 생각된다.모주석은 허세우상장을 내놓고는 모든 고위급들이 화장을 하자고 약속을 한 사람이다.헌데 모주석의 신광을 빌어 자기를 빛내려는 , 또는 자신들의 야욕을 달성하려는 부류들이 모주석기념당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몇천년간 발양되였다는 충과 의도 공연히 버리고 모택동과의 약속마저 아주 아랑곳하지않는, 오로지 살아있는 자들의 리익과 간계가 적라라하게 표출이 된 건축물이다. 그 때문에 모주석기념당이 싫었다. 그리고 좋은 광장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 이상한 생각> 때문에 모주석기념당이 싫었다.  월남자유반격전에서 총을 쏘고 대포를 쏘고 공훈을 세운 군인들은 한 때 사회지위가 엄청 좋아었다 헌데 중국과 월남 사이가 조금 정상화되면서 그들을 영웅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훨씬 줄어들었다. 관방언론도 민간도 마찬가지다.그 영웅들도 역시 정치희생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수많은 조선족들도 항미원조에서 죽었다. 그들을 아주 영웅으로 취급하든 시대는 아주 지나가고 이제는 그들에게도 부득불 정치희생품 비슷한 모자가 차려지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막강한 정치인물과 평범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정치에만 리용되는 사회정치문화가 나는 싫다. 평민으로서 인간으로서 더 진실하게 인간의 삶을 영위할수가 있는 사회를 지향해보고싶다. 작년에 대학교 시절 학부 단지부서기직을 맡았던 y선생의 전화를 받으면서 89년도 기억을 잠간 더듬어보았다.  학생들의 데모가 금방 시작되였을 적에는 정부가 아직은 학생데모에 대한 확정한 태도를 규명하지 않았음으로 하여 감히 학생들과 합류하지는 못하고 다만 학생 대렬을 바깥에서 감시인지 배동인지만 하던  y선생, 만일 학생데모가 인정되면 참석자로 지휘자로 둔갑하고 만일 인정받지못하면 감시자로 둔갑하려던 그 투기심은 우리 학생들더러 어느 정도는  혐오감을 만들게 하던 y선생 , 헌데 그 사태가 지나가고 정치생명이 결속되여 지금은 평범한 교사로 보내고 있는 y선생, 괘나 보고싶었다.사람은 정치동물이라는 명언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앞으로 중국도 사람을 너무나도 정치동물에 내몰지말기를 빈다. 
103    [잡담108] "泛反華세력"은 댓글:  조회:3544  추천:32  2009-06-20
목하 국외의 <反華세력> 하면 반화세력은 모두가 중국을 반대하고 모든 중국인을 반대하는 부류로 취급하는 현상이 있다.그것은 우리의 개별언론이 주도한 결과이다.우리들의 독립사유가 부족한 무분별한 의식의 판단결과이다. 중국의 현존 체재를 반대한다고 중국의 어느 조직을 싫어한다고 반화라는 이름을 선물함은 어떤 정치사기군들과 문화사기군들의 언어게임 확대화에 불과하다.    사기군들의 론리대로 말한다면 중국 현존의 무엇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국외의 모든 조직과 인간들은 무조건 반화이고 무조건 반중국인인데 사실 한심한 사기가 아닐수가 없다. 그런 사기군들의 어불성설을 계속 풀이하여 반화세력은 모택동도 반대하고 더 나아가서는 진시황마저 반대한다는, 현존 사회상태를 반대하고 심지어는 중국의 13억 인구의 전부를 반대한다는 결론을 보급하고 있는데 천하에 소웃다가 꾸레미 터질 일이 아닐수가 없다.   물론 저들의 전략적인 리익을 위하여 국외에 반화하는 세력과 조직이 적은것은 아니지만 또 인간사회의 普世가치를 위하여 중국에서 발생하는 일들의 그 내막을 , 중국인중의 어느 부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세력과 조직 그리고 외국인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또 누군가 현존 조선의 체재를 비판한다고 그를 조선의 력사문화를 부정하고 만백성까지 비판하고 반대하는 작자로 조직으로 세력으로 생각함도 판단함도 똑 같은 행위인줄을 알아야한다.
102    [잡담107] 주체사상의 배후 댓글:  조회:3805  추천:26  2009-06-18
  대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중문으로 번역된 <김일성저작>을 읽은적이 있다. 실말이지만 <모택동선집>보다도 권수가 많은, 첫 페지부터 마지막 페지까지 주체사상이 최대반복법으로 기록되여있어 지루한 느낌을 받았었다. 공산권 극권주의 나라는 히틀러에 못지않게 사상언론기구을 독점하고 리용하여왔다. 그래서 받아듣는 사람이 리해를 하든 못하든 , 신앙하든 신앙을 거절하든 주입수단만을 고집하면서 그 과정에 색다른 사상과 언론과의 무조건적인 격리를 실행하였다. 그러면서 하루 내내, 일년 내내 수십년 내내 빨간 색상만 구경시켜주니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는 빨간 색상만 존재하는줄로만 아둔하게 알고있었다. 주체사상이 어떠한가? 쉽게 평판할수는 없는 일이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주체사상은 반도력사경험주의 사상이 아닐수가 없다. 종족주의 사상으로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사상이고 철학적으로는 조금은 주관경험주의이며 또 력사문화사상으로 보면 민족자각의식의 독특한 표현으로 보여진다. 반도는 대국사이에 끼워있는 력사운명을 소유하여왔다. 때문에 국제정서가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때마다, 대국에 의존하고 리용당하는 수난을 겪지않을수가 없었다. 이러한 침통한 력사를 되돌아보면 과거와 현재의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일거일동의 深根을 정서적으로 경험적으로 리해를 진행할수가 있다. 조선전쟁---6.25동란뒤에 소위 우리가 말하는 <연안파>를 비롯한 파벌들에 대한 숙청과 중국인민지원군의 철거 그리고 핵개발 등 주체의 력사사실 배후에는 <대국만을 믿을수가 없다.  우리의 힘으로 살자>는 의식이 크게 잠재함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주체사상이란 어느 개인의 사상이라기보다도 력사경험주의에서 출발된 반도에 실존하는 하나의 사조라고 판단해본다. 어떠한 사조이든지 구체적인 력사문화를 떠나서는 운운할수가 없다. 또 어느 나라이든지 어느 한 사조가 국가권력기관의 해정권을 빌어 장시기동안 절대적인 지배를 이루면  비운을 초래할수 있는 가능성을 배태한다. 가끔은 개방적이고 중용적이고 다원적인 의식구조가 극단주의를 배제하고 사상생태와 인간생태를  이루는 밀방이 아닐가는 생각을 해본다. 복잡다단한 국제정서 중에서 , 주체성만 강조하고 각 나라사이의 상호 의존성을 전혀 무시하는 작법은  정서적인 주관주의다. 또 상호의존성만 강조하고 주체의식을 잃어버리는 작법은 력사경험을 존중하지않는 아둔한 행위이다.   
101    [잡담106] 啓蒙과 救亡 댓글:  조회:3617  추천:29  2009-06-04
언제부터 계몽과 구망이란 력사교과서에만 적혀있다가 가끔 놀러나오는  문화술어만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산업화와 로무수출의 진전중에 전통적인 촌락공동체가 무너지고 집거지가 취약해지고 민족인구가 감소되면서 또 민족언어와 문자를 비롯한 민족의식이 흐리멍텅하게 변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중국땅에서 우리문화를 보존할수가 있을가는 의구심과 우리공동체의 구망이라는 희망사항이 출현되고 있다.아주 오래동안 침몰되여있던 단일문화분위기로부터 그 봉페상을 떨쳐버리고 보다 개방적이고 보다 깊고 넓은 생존문화 계몽을 조금 념두에 두고 있는척 두리번거리던  찰나에 우리는 구망이라는 희망사항을 직면하게 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계몽에 관한 의식과 행동들이 많이 빈약해지고 있으며 모든 우선권을 생존구망에만 내주있으며 계몽은 거의 코웃음으로 대하는 살풍경을 내보인다.  <먼저 먹고 살 판이지, 언제 그런것들을 살피겠는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하지만 나는 구망시기의 계몽은 필요한가? 어떻게 필요한가를 조금 거론해봄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본다.       일전에 5.4운동을 기념한다고 아우성이다. 중국에서는 5.4운동에 대한 평가가 아직도 정치적인 평판보다 문화적인 평판이 훨씬 적어보인다. 5.4운동은 계몽운동으로 시작되여 나중에는 구망운동으로 전변하면서, 계몽은 많이도 흐지부지해진것이 5.4운동의 局限성이다. 5.4운동이 구망이라는 비상시기에는 계몽도 무가내로 소실되는 력사의 래력을 말해준다면 5.4운동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의 천신만고는 우리가 지나친 실용종족으로서는 구망에 직면하여 계몽이라는 弦은 툭 끊어버리는 그  위험성을 경종하여준다. 계몽이라는 튼튼한 받침이 없이는 어느 위대한 구망도 나중에는 허전함을 내비치지 않을수가 없다. 5.4운동의 철저한 세례를 받지못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중국인은 아직도 정신세계의 허황함을 떨쳐버리지못하고 있으며 그 본질적인 정신세계는(협애한 민족주의와 현실실용주의) 국력성장과 세계화물결과 비해서는 유아기에 머물러있을뿐이다.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도 근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민족구망과 현실생존이라는 기발아래서 계몽결핍의 고배를 수없이 맛보아왔다. 과거에 있었던 일본의 군국주의는 주기적인 자본주의경제위기가 그 경제원인이라 한다면 일본의 <정신세계의 부실공사>는 일본군국주의의 문화적인 심리적인 심층적인 원인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나는 구망비상시기에도 계몽은 크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계몽이 없는 구망은 구망성공 뒤에도 새로운 구망을 직면할 가능성을 내재한다고 생각한다.계몽중에 어떤 공동체는 < 물에 빠진 자가 지푸라기를 찾듯이 > 자신의 전통문화에만 크게케 매달리는 복벽주의가 우세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 속에는 민족자존심이라는 심리동기가 크게 작용하면서 많은 역효과도 보이여왔다. 구망중에 선인들의 지혜에서 무엇을 얻을가 하는 욕심은 좋기는 하지만 누구든지 자신의 전통문화를 더 높고 넓은 차원에 모시지 못하는 자는 계몽실패를 하지않을수가 없다.20세기 초엽에 일제의 통치하에 한반도에 대종교가 흥성했던 일과 중국의 개혁개방중에 서양문화 앞에서 열세를 직감하면서도 신유학이 흥하는 일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결코 좋은 력사를 만들지는 못하였다는 스스로의 판단을 해본다.   또 나를 내놓고는 인간이 아니다, 내 나라를 내놓고는 다 인간나라가 아니다는 사고방식이 계몽대적의 하나임을 말하고싶다.. 자아비평을 조금 진행하는 작자에게 崇洋媚外라는 모자를 선물함도 계몽의 대적임을 말하고싶다.
100    [잡담105]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댓글:  조회:3997  추천:28  2009-05-22
     约瑟夫·熊彼特는 20세기 유명한 경제학자로서 그와 凯恩斯(국가자본주의학설의 창시자)는 瑜亮이라는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 말하자면 삼국지에서 주유가 적벽지전 뒤에 울분끝에 죽으면서 <유를 만들었으면 어찌 또 량을 만들었는가? 既生瑜,何生亮> 개탄하던 일을 빌어  당대사회에서 凯恩斯의 학설이 크게 주목받고 리용되였지만 约瑟夫·熊彼特의 뛰여난 재능과 학설이 상대적으로 위축받은 사실을 두고 중국은 瑜亮情結이라는 중국식 언어표현을 하여왔다. 约瑟夫·熊彼特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저작을 남기였다. 경제학저작으로서 물론 정치학견해도 다소 보인 經典이라고 한다.중국에서는 반동경제학자로 몰리워 죽음까지 당한 고준이 이 저작을 중국어로 번역하였고 내가 소위 경제학공부를 하는 시절에도 约瑟夫·熊彼特는 서방경제학사 교과서에마저 적은 편폭으로 소개되여 거의 인상이 없던 인물이다. 현재도 중국에서는 경제학분야가 아니면 잘 알려지지않은 상태이다.   그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라는 책 이름에 민족주의라는 명사까지 붙여놓으면 근 백년간의 인간사 축도가 아닐가고 생각해본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라 하면 우리들더러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포함한 사회제도 그리고 상관된 이델레오기를 연상케 한다. 민족주의는 흔히는 제도와는 조금 거리를 두어 이델레오기를 다루는 명사로 인상이 깊다. 2차대전 뒤, 국가와 국가사이의 리익경쟁은 소위 체제경쟁으로 연역이 되여왔다. 체제경쟁은 제도경쟁과 이델레오기경쟁이다. 뿐만아니라 동일한 국가내에서도 체제경쟁이 파급되면서 반공주의라든가 계급투쟁주의가 성행되여왔다. 특히는 극단적인 정당 또는 부류가 집권하는 나라는 주의가 절대적 일위를 차지하고 그속에 가끔 협애한 민족주의라는 유령마저 떠돌면서 사단을 일으키고 불화를 저지르면서 무수한 민고를 도탄에 내몰아왔다. 인간은 교육의 산물이면서 교육의 희생품이기도 하다. 체제경쟁이 가열화되던 시절에는 국어교과서마저 정치교과서로 되여있어 우리는 극단적이고 일면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일원화에만 물들어왔다. 현재 체제경쟁이 어느 정도 무너지고 다원화복구사업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내가 사는 중국이든 주위의 나라이든 결국은 일원화체제의 잔여가 많이 남아있음은 사실이다. 기득권의 악착함과 문화의 관성으로 말미암아 인터넷이 발달된 시절이라 하지만은 같은 언어를 구사하고 같은 음식을 나누는 인군사이에 산생되는 분쟁이 주의의 전쟁으로 포장되고 표현되는 경우도 많은데 크게는 우에서 말한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주의로 총괄이 된다.        이 세상에는 사회주의자라 자처하면서도 무엇이 자본주의고 무엇이 민주주의고 무엇이 민족주의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무엇이 진정한 사회주의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다른 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 원인은 인간의 편애된 인식수준과 제한된 인식능력 그리고 강대한 선전기구들이 수십년간 악전고투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개방된 사회라면 여러가지 주의가 적어도 그런 학설들이 동등하게 소개되여야 하고 연구되여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그런 리상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어떤 주의이든지 신성한 옷을 차려입는 날에는 그 주의가 아무리 과학적이고 인도적이고 리상적인 주의라 할지라도 배타적이고 보수적이고 공구적으로 변질하면서 은페된 력사를 꾸미는 경향성을 보인다. 그래서 가끔 어느 주의의 교활한 기만성에 넘어가지 않으려는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  
99    [잡담104] 문場인가 학場인가 아니면 리익場과 名欲場인가 댓글:  조회:3574  추천:32  2009-05-12
중국조선족 문단이 과중한 짐을 등지고 고행을 하여왔다. 문학의 사회공능을 행사하면서 또 중문만을 사용하는 군체와는 조금 다르게, 우리 군체의 사색의 기록자와 촉구자로서의 문학과 문학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부하를 짊어지고 운행이 되여왔다. 그 사색과 사회여파가 유치하든 심각하든 조선족 문단은 민간<사상계>로서의 역활을 해왔음도 사실이다. 헌데 중국조선족 문단이 결구적으로 보면 문제점이 전혀 없은것은 아니다. 주류의식의 령도와 관방의 재정지출하에 그 심처에는 리익이라는게 부품과 나사못으로 내재하여왔다. 소위  문학에 몸담은 어떤 문학인들이 원고료가 아닌 전직작가요 어느 협회주석이요 등등의 직과 봉급으로 대우로 일상을 누려야 했기 때문에  부득불 리익갈등이 많이 존재하여 왔다. 그러는 중에서 또 이델레오기 분쟁도 끼여들어 밀고제가 빈번했고 패거리싸움이 출현도 했고 리익쟁탈이 인신공격이라는 탈을 쓰고서 많은 기습을 하여왔다. 그래서 아무리 사치한 수작을 한다 하더라도 문단쟁명이라든가 인신공격이라든가 요언날조라든가 의심병유행이라든가는 가끔 세속의 리익쟁탈과 명욕쟁탈의 혐의를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참여되는 매 개인의 수양과 전혀 연관없는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도와 생존결구가 만들어준 산물이다. 그래서 진정한 시민사회의 도래를 손꼽아 기다리는 판이다. 납세자들의 돈이 재정이라는 경로를 거쳐 문학인들의 일상으로 전변하는것이 아닌, 문학인들의 신성한 로동이 직접 사회와 등가교환을 진행하는 시민사회말이다. 우리에게는 인구가 적고 지역이 작은 약세가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과거의 문화관료주의와 지나친 리익분쟁을 면하는 좋은 방책이 아닐가고 생각된다.       유감스러운것은 아직도 문장과 학장이 리익장으로 명욕장으로 표현을 이루고 있으니. 과거에 민간<사상계>의 배역까지 조금 해오던 기세와 영광은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부끄러운줄을 아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98    [잡담103] 중국의 관료주의 댓글:  조회:4319  추천:26  2009-05-06
       모택동할아버지를 비롯한 로일대 혁명가들은  수억의 중국인을 봉건주의와 제국주의 그리고 관료주의로 구성된 3大山의 압박으로부터 해방함을 인생목표로 하였다. 그 英魂들 모두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오늘날,  중국인을 억누르는 3대산은 어느 정도 허물어버렸을가? 봉건주의는 공산주의문화의 충격과 공상업시대 새로운 생산관계의 확립하에 엄청 붕괴되였고 제국주의는 이미 물러갔음으로 하여 념두에 두지않아도 괜찮다 하더라도, 수단을 가리지않는 혁명하에서도  관료주의는 자취를 감추지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중국인을 억누르는 엄청난 巨山으로 존재함은 의심할바가 없다.  무정부사회가 아니고 공동체운행이 있는한, 관료주의를 철저하게 매장한다는것은 리론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관료주의가 산이든 언덕이든 우리의 일상과 문화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현실과, 또 관료주의를 대처하는 여러 방법이 미숙함은 불행한 현실이다.  90년대 초엽에 개혁개방의 교두보로 불리우던 광동으로 내려가면 대학생들이 정부기관에 취직함이 사회의 비웃음을 받았음은 보편적인 현상이였다. 그처럼 <하해>해서 돈벌고 인생을 빛내일 궁리가 없는 사람은 포부가 없는 부류로 취급을 받았었다. 헌데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 광동에서도 공무원 시험이 만원상태가 되여있고 대학생들은 그래도 되도록이는 공무원취직을 하려한다. 이런 현상을 <공부 잘하는 자는 관리学而优则仕>라는 유교문화전통으로만 습관적해석을 진행함은 현실의 진면목을 외면한 행위이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어떤 문화전통이라 할지라도 현실리익이라는 비옥한 토양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학생들이 공무원취직을 수선으로 함은 공무원들의 경제수입(공개적인것과 자적적인것)과 사회직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현실과 갈라놓을수가 없다. 2008년, 중국도시인수입이 공무원-사업기관직원-기업소직원이라는 순서로 배렬된다 한다. 수입 차지는 별로 크지는 않지만 중국은 권력이 재부로 변하고 재부가 권력으로 변하는 두가지 방정식중에서 첫번째 방정식이 절대적우세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므로 그전에 하해를 해서 돈 벌던 사람들마저도 10여년이 지나간 오늘에는 <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먼> 하는 후회를 쌓고 있으며 또 전 사회적으로 升官發財가 거의 普認가치취향으로 되여있다. 중국재정수입에서 지출되는 공무원들 봉급과 공무소비는 어느 정도일가? 중국의 2-3級도시를 둘러다니면 정부청사가 제일 으리으리하고 현상과 또 날마다 잡아내는 탐오분자(공무원과 국영기업지도자)들의 지갑내용을 뒤져보면 중국은 아직도 관료주의 나라임을 승인하지않을수가 없다.  복지국가는 < 大國家 小政府>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촌장도 공무원 부류에 속할가 말가 하는 < 대국가 대정부>이다.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중국은 재정지출에서 공무지출이 차지하는 비률이 엄청 높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13억인구의 경제결실이 공무체계를 운영한다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전혀 념두에도 두지않고 있으며 오히려 정부가 만백성을 먹여살리는것처럼 오도된 현상도 존재한다. 방대한 관료체재와 인원부하 그리고 부정과 불작위로 하여 우리의 교육투자는 교육으로 나라를 부흥시킨다는 말에 전혀 걸맞지않을 정도이며 국경선이 엄청 길고 주변상태가 별로 아니좋은 나라의 국방비는 국민소득액의 조금밖에 안된고 있음은 현실이다 그래서 주용기총리가 실수?로 중국정부를 밥통정부라고 이야기하신적이 있다. 중국정부의 무능을 이야하는건가? 아니면 중국정부가 소비형임을 이야기하신건가 정론은 없지만 그 한마디가 아직도 우렁찬 소리가 아닐수가 없다. 1945년 7월 황염배(1878-1965 저명한 교육가) 선생이 개인신분으로 연안을 방문하였을 때 모택동과 중국력사의 흥망성쇠 주기규칙을 토론한적이 있다. 모택동이 황염배선생과 연안방문의 감상을 묻자 황염배선생은 연안의 생기발랄한 풍기로부터 출발하여 단도직입적으로 < 흥도 망도 조석이다. 사람도 가족도 단체도 지어는 나라도 마찬가지로서 누구나 이 주기적인 규칙의 지배를 벗어난적이 없다. 처음에는 정진을 하지만 나중에는 나태한 풍기가 형성되고 국면을 수습하지 못한다.其兴也勃焉’,‘其亡也忽焉’。一人,一家,一团体,一地方,乃至一国家,不少单位都没能跳出这周期律的支配力。初时聚精会神,无人不用心不卖力,历时长久,惰性发作,到风气养成,虽大力无法扭转,且无 法补救。) 또 공산당 여러분의 과거와 오늘을 나도 조금은 알고있다. 다만 새로운 길을 만들어 흥망성쇠의 주기적인 규칙을 탈선하기를 바란다 ……中共诸君从过去到现在,我略略了解了的,就是希望找出一条新路,跳出这周期律的支配)   황염배선생의 언론에 모택동은 흥망성쇠의 주기적규칙의 지배를 벗어나는 방법은 민주라고 하였다.세월이 흘러 모택동도 황염배선생도 모두가 고인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관료사회의 흥망성쇠 주기적규칙에 대한 생각과 민주방법론은 우리더러 생각을 곱씹게 한다
97    [잡담102] 마작담 댓글:  조회:3259  추천:24  2009-05-06
      대학교 시절, 동창친구들이 나를 구슬려 마작판에 처음으로 등장시키던 기억이 있다. 三缺一(4명이 하는 마작에 1명 부족함)이라는 튼튼한 리유로 식당권으로 계산되는 숙소내 십전내기였다. 물론 처음 해보는 마작이라 萬條餠風을 익히지도 못하고 참패를 했다. 그뒤에도 줄곧 마작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졸업뒤 회사를 다닌지 몇년이 되던 어느 년말총결 때, 호텔 회의실에 마작상을 7-8장 배렬하여 남녀들이 떠들썩 하는중에 또 三缺一이라는 튼튼한 리유로 할줄 모른다 발버둥치는 나는 마작판을 동참시켰다. 솔직하게 말해서 마작은 흥미가 없었지만 도박에는 흥미가 있었다. 헌데 배우면서 하는 마작에 청출어람이랄가 아니면 不會手氣好(할줄 모르는 사람의 운이 더 좋다)는 속어가 효력을 보였었는지 5원내기에 5백원 땄고 그 다음날 술 사고. 년간장례금을 3백원 받은 시절에 5백원 땄다는 일은 어떻게 보면 巨事가 아니였을가?  독서중에서도 마작을 접하게 된다. 賈平凹의 수필을 읽으면서 어떤 작자가 마작중에 2병을 單조해서 和했는데 너무 흥분김에 마작상에 딱하고 내리 조진것이 2병마작패가 두개로 조깨지면서 두개의 일병으로 되였다는 대목이 인상 좋았었다. 또 책 이름과 작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근대 중국에 온 어떤 서양인들도 마작에 흥미가 대단했고 귀국시에는 마작을 구입해서 서재에 중국문물처럼 모셨다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마작을 하면 기문도 듣는다. 내가 사는 동네 최고급 호텔친구와 마작 하다가 너 우리 省에서 어떤 사람들이 마작을 제일 크게 하는지 아나? 민정국 扶貧辦 사람들과 부핀 돈을 신청하는 地懸사람들이여, 그 놈들은 돈을 한 트렁크씩 들고 와서 하더라 하여 입을 딱 벌리던 일. 또 누구는 돈 많은 장사군들이 마작을 크게 하던데 수작을 할가봐 (연변말로 깡토리 쓸가봐) 가운데 바구니를 달아놓고 내놓는 마작은 죄다 바구니에 집어넣더라를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천진 어느 증권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증권시장에 상장하려는 기업소를 대신해서 증권관리부문 어른들과 마작을 하기도 하는데 임무는 마작에 지고 돈을 날려보낸는것, 하루밤에 백만원 날려보낸적이 있어 하는 말을 듣고 부럽기도 하고 가슴이 철렁철렁하던 일. 중국의 어느 구석에 가보아도 마작을 싫어하는 동네는 아직 보지못했다. 유명한 마작지인 사천성은 물론 공상업이 발달된 현대화 도시 홍콩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퇴근해서는 식사하던 식당에서 밥상을 마작상으로 바꾸어 마작놀이에 열중함을 구경하였었다. 또 도박을 엄금하는 이슬람교 주민들이 모여사는 신강 이닝시에 10여년전에 이미 큰길에 골목길에 마작방이 너무나도 즐비하여 내가 의문부호를 풀수없었고 내가 어릴적에는 마작이란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연변도 시골마저 <보톨>들의 마작놀이가 너무 무성하여 개탄되던 일들로부터 판단해보면 중국은 마작의 나라라고 부름이 과연 비슷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언제는 마작놀이를 <만리장성 쌓기>라고 형용했는데 현재는 <중국징수문화발양>이라고 고취하는 작자도 있다. 마작을 하면서 마작은 새 친구를 사귈수 있지만 옛친구를 잃는다는 말을 믿게도 된다. 마작판은 인품의 直露장으로서 아무리 간교한 작자도 인품을 깊이 감추기가 힘들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마작을 하고나서는 서로 지껄이는 소리가 허, 술은 먹을수록 친근해지는데 마작은 할수록 사이가 멀어지는구나. 또 마작판에서 얻은 녀자들에 대한 국한된 인상담도 있다. 대부분 마누라들은 남편이 마작을 하는것을 죽게 싫어하지만 진작 자신이 마작판에 나들기 시작하면 남자들 이상으로 광기적이라는것 . 사천성 성도의 한 애기엄마는 애가 물 고인 웅뎅이에 빠져 죽는것도 모르고 마작을 해서 남편과 시어머니한테 크게 매맞았다는 어느 뉴스를 나의 경험론판단의 유력한 근거로 하고싶다. 마작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임은 틀림이 없다. 그래서 마작에 대한 찬가도 조금 적어보기로 한다. 마작은 트럼프라든가 화투와는 달리 전제조건만이 결과를 지배하는것이 아니라 하는 과정에서 여건이 서서히 수시로 변하면서, 기교과 운에 따라 상황이 변한다는 점이다. 마작패를 한장 따오고 한장 내버리는 과정에서 4명의 博弈가 진행되며 변수가 시종일관 존재하는 변증적인 게임이다. 산수적으로 보면 莊家는 3명보다 패를 한장 더 가지고 시작하는 우세밖에 없으므로 하여 승패가 다른 게임보다는 조금 공평해보인다. 그래서인지 나같은 인간들은 아주 공평성만을 추구하는것처럼 령도자들과 마작을 하여도 일부러 패하는 기교를 모르는 엉청이로 산다. 年關이 되면 재정상황이 험악하거나 벌금지표를 완성하기 위하여 파출소는 마작판 수색에 열중한다. 파출소 경관들중에 돈내기 마작을 즐기는 분들도 꽤나 존재함은 사실이지만 공무중인 그들과 <제 코물도 닦아내지 못하는 주제에> 라는 말은 절때 삼가해야한다.  왜냐하면 류치장에 갈수도 있고 벌금액도 엄청 높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강에서 내려온 깡패들이 마작방을 겁탈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일본인들이 발명한 자동마작기가 스리슬슬  돌아가던 마작방 장사가 조금 힘들다고 한다. 도박심리는 인성본성의 하나이지만 나라마다 세금안내는 도박은 법적으로 거의 금지물로 法定되여있다. 그러면서도 국경지대에는 외국인을 상대하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나라도 있다. 마작에 대한 이런 저런 잡생각들을 굴려보니 인간사회란 인성을 억제하는 흉내를 보이기는 하지만 또 인성을 리용하여 횡재도 하는 사회라는 슬픈 생각이 온다.   
96    [잡담101] 운시땜과 독서 댓글:  조회:3494  추천:33  2009-05-05
    연변방언에 운시땜이란 말이 있다. 운수놀음이란 뜻으로서 일상에 많이 사용되던 기억이다.    필연성중에 우연성이요 우연선중에 필연성이요 하면서 소위 개똥철학을 외우던 시절에는 독서중에도 운시땜이 있는줄은 잘 모르고살아왔다.           인간의 지혜와 경험과 명상이 구두가 아닌 문자로 傳承되여서부터  문명은 집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인터넷이 나타나기전까지는 서적이 인류문명창조와 보존에서 절대적인 집대성과 전승의 역활을 하였다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헌데 수많은 나라에서는 기득권이 서적과 독서를 독점하고 만백성에게는 우민책을 베풀면서 그들의 독서를 제한하였던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유한된 인생에 유한된 인식수준에 많은 사람들에게는 독서의 운시땜도 많이 당해왔다.독서중에서 경제적원인과 시간적원인으로 하여 독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한는것이 원통한데 인위적인 원인의 작간으로 독서의 자유를 빼앗기는것은 너무나도 분통한 일이다. 나는 문화독점과 문화專帝는 인류의 대적이라 생각하고 증오한다.    독서와 문화의 개방성을 충분하게 누린 민족과 나라는 태반이 재미있게 살고있다. 현대판 분서갱유를 거듭하는 민족과 나라는 태반이 적어도 령혼의 방황을 거듭하고 있다. 禪종이  不立文字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독서와 문화의 자유를 억누르지는 않았다. 이슬람교가 조금 배타적인 일신교이기는 하지만 독서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하였고 오히려고대그리스의 수많은 문헌을 저장하는 역활도 하였다.살펴보면 유럽의 중세기와 동방의 중세기 그리고 근현대가 문화독점의 최고봉을 이루었다고 느껴진다.문화독점기를 사는 사람은 독서의 운시땜을 많이 당한다.운수 좋으면 좋은것을 많이 읽을수가 있고 운수 나쁘면 너절한것만을 받아당해야한다. 또 어떤 서적과 문화는 원체 너절한것이 아닌데 과대포장과 과대평가 때문에 너절한 대접을 받게 되는것이다.   요즘을 살면서 구입선택이 불가능한 상가로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신발 하나를 사려는데 검은 구두만 파는 상가는 나는 실증을 느낀다. 운동화두 있고 괴상망칙하게 노오란 구두도 있는 상가가 좋아보인다.어떤 신발을 사든 내가 선택하고 판매원이 너무 과대소개를 진행함을 싫어한다.   등록이 아니된 다단계판매는 불법임을 알고 있다.그 다단계판매의 비결중에는, < 목사는 당신이 하느님을 믿든 아니 믿든 하느님을 줄기차게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믿어, 그렇게 판매를 하는거여>가 다단계판매 학교의 종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독서중에서 운수땜을 적게 당하려면 바로 그런 다단계식 상업비결과 정치비결의 옹노에 걸려들지 말어야 하겠다.
95    [잡담100] 화려한 기포와 인생 그리고 력사 댓글:  조회:3683  추천:29  2009-04-20
소설가 장애령이 인생은 화려한 旗袍이지만 그 속에는 이가 득실거린다고 이야기한적이 있다 한다. 인생의 고달픔과 그속에 감추어지는 이들은 속인들도 위인들도 성인들도 누구나 소유하게 되여있다. 령혼의 혼탁면과 행위의 너절함은 대부분 사람들은  깨끗하게 떨쳐버리지 못한다. 누가 감히 태여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장담할수가 있으랴? 그렇게 장담하는 장담하려는 작자야말로, 화려한 기포를 두벌 입은 작자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헌데 누구나 득실거리는 이를 감추기를 즐긴다. 감추기를 즐김은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자신의 기포는 자꾸만 여미면서도 남의 기포는 들추어내려는 심기를 지니고 있다. 일상에서의 내나 당신이나 마찬가지다. 백과인물란에 등록된 정치偉人이나 사상거인들도  마찬가지다. 령혼의 진실과 행위의 순간순간을 해빛아래 쪼이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많음으로 하여 우리는 정치거인이고 문화거인이면서도 도덕난쟁이인 인물들도 배태하여왔다. 헌데 인생의 기포속에 이가 득실거리고 우리가 감추기와 들추기에 열중하지만,  인간은 사랑스러운 면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감추기와 들추기의 거듭남에는 적어도 인간이 화려한 인생에 대한 지구적인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엿볼수가 있다. 비록 인생은 고달프고 상처투성이고 이가 득실거리지만 우리 령혼의 깊은 곳에는  실존인생과 령혼갈망 사이의 전쟁을 기포입기와 기포벗기로 표현하여 왔다. 그 표현이 격렬한 사람이 있고 온화한 사람이 있다. 또 그 표현이 속적인 사람이 있고 예술적인 사람이 있다. 그래서 참회록도 있고 스님의 념불도 있고 고행도 있다. <레미제라불>이라든가 <부활>에는 그것들이 劇적으로 배렬되여있다. 인간과 인생이 이렇다면 인간의 삶을 집대성한 력사도 화려한 기포아래 득실거리는 이이고, 또 기포입기와 기포벗기이다. 진실하게 기록된 력사책에는 어느 민족과 어느 나라를 물론하고 그 과정을 직설적으로 또는 은밀하게 이야기하고있다. 화려한 기포와 그 내력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을가 아니면 인간이 자생한 결과일가? 자문만 있고 자답은 없지만 오늘도 우리는 화려한 기포속에서 남모르게 이를 잡아내는 운동을, 화려한 기포를 벗고 벌거벗은채 이를 잡아내는 운동을  멈추지않고 있다.
94    [잡담99]上訪과 城管과 단속반 그리고 이스라엘로 가는 복건인 댓글:  조회:3537  추천:32  2009-04-14
      북경대학 교수 孫東東이 중국의 上訪者들은 적어도 99%가 정신병환자라는 언론을 펴고나서 크게 욕보고 있다. 정신병리학의 시각으로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에 一理가 있다면, 말하자면 손동동교수를 포함한 중국인 13억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도 성립이 된다. 헌데 손교수가 13억중에서 렬세족이 집중된 상방자만 채집하여  정신병리학언론을 사회학언론식으로 산포한 일은 렬세군체만 아니라 인성의 광명성에 대한 욕구를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는  모든 사람들더러 가슴을 철렁철렁 하게 만들었다.     上訪者가 많은 것은 중국의 < 우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에는 대책이 있다>는 낱말에서 직접적인 근원을 찾을수가 있다. 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책적으로 행정적으로 원칙적으로 공평한것들을 크게 모시고 있지만 그 실행과정에 변형이 생성되여 불공평 또는 비리가 많이 존재하면, 사실적으로 심리적으로 당한 렬세족은 상방을 하기 마련이다. 나라를 어찌 미학적으로 가꿀수만 있을가? 상방자의 호호탕탕한 대렬이 북경으로 입주하여 때, 당직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만 <盛世>에 손상을 준다고만 생각함은 어리석고 유치한 사회정치 체면술이다. 어느 모로 보면 상방자들의 존재야말로 공평사회를 추진하는 원동력의 하나인데, 중국은 아직  그러한 원동력을 잘 리용하는 재간이 부족한듯도 하다.       또 중국에는 城管이라는 특수현상이 말썽거리다.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닌, 행정법집행자들로서 도시의 질서와 용모를 깨끗하게 하는 등등의 정부행위에 참가한다. 헌데 곳곳에서 城管들이 폭력으로 법을 집행하여  그것을 당한 렬세족들이 극단적인 수단으로 보복행위를 감행하기도 한다. 북경 해정구에서 골목장사를 하던 하북성 농민이 城管 부대장을  찔러죽인 일도 있었듯이 시장에서 거리에서 도시재건설중의 현장에서 성관들은 상대로 하는 폭력사건은 수없이 발생하고 있다. 形象공정과 그속에 풍기는 생선냄새가 성관과 그 추종자들더러 불공평성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비합리성을 지니게 함으로서 현재 중국사회에 硬傷을 많이 남겨놓고 있다. 크게 보며는 성관만이 아니라 공안국도 좋고 법원도 좋고  사법기관들도 공평성을 잃고 실직상을 많이 보이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래서 어느 북경인이 상해 어느 공안국 청사에서 칼부림을 하여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든가 감숙성 민근현의 어느 로인이 작탄을 만들어 법원 회의실에서  법원원장과 함께 同歸한 일들이 발생하는것이다.      한국 대전에서도 불법체류자 단속반이 공무 집행중에 인권침해를 가행하여 한국사회와 교포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있다. 불법체류자는 한국사회에서 특수부류의 렬세군체임은 틀림이 없다. 민주를 표방하고 인권을 추구하는 나라에서 문명적인 질서추구를 강구하는 동네에서 거의 폭력적인 執法대오의 행실은 나를 울분하게 만든다.      울분한 나중에 이스라엘로 로무를 가기 좋아하는 중국 복건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전하고 싶다. 중국관방은 줄곧 팔레스티나편에 서고 있고 중국인들도 약자를 동정하는 심리가 작간하는 탓인지는 몰라도 보편적으로는 이스라엘을 많이 질책하고 있다. 하지만  복건성 사람들은 줄곧 전쟁판인 이스라엘로 로무를 가기를 좋아한다. 그 원인은 예전에 어느  테러폭팔사건중에서  복건성의 불법체류자 2명이 이스라엘에서 객사했던 일과 연관이 된다. 이스라엘 정부는 밀항자였던 복건성 농민도 물론 불법체류자이기는 하지만 역시 테러사건의 피해자이므로 상응한 경제善待를 주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는 사망자 부모님생활비와 자녀의 생활비 그리고 안해의 생활비를 합계하여 70만딸러씩 무휼금을 복건성 2명 농민의 가정에 배달하였다.  이 사건뒤에 복건성에는 이스라엘로 가는 광란이 일어났었다.      끝으로 정보불균등에 대해서도 조금 말하고싶다. 정보사회에서 정보가 폭팔을 이루기는 하지만 매 개인을 상대해서는 정보가 불균등하다. 원인은 정보원-정보전달자-정보접수자 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 여러가지 원인으로 하여 정보가 불완정하게 전달이 된다. 우에서 이야기한 상방도 좋고 성관도 좋고 단속반도 좋고 복건성 농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원본사건에 100%로 부합된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나를 포함한 누구도 어떤 정보를 접수하든 반응은 보일수가 있지만 결론을 급히 내림은 삼가해야한다. 잡글들을 갈겨대면서 마음이 스스로 무거워진다.  
93    [잡담98] 미국의 覇와 德 댓글:  조회:3082  추천:26  2009-04-10
       오늘에 있어서 미국이 재채기를 한번 내뱉으면 지구의 어느 구석마다 감기를 하여 콜록거리거나 코물을 짜는 감기상을 내보이게 되여있다. 미국이 세계일위의 생산국이면서도 일위의 소비국이라는 경제容量을 소유하고 있고 또 무역성과 경제일체화를  기본특징으로 하는 세계경제상황으로 하여 누구든 좋으나 싫으나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수가 없다. 또 경제와 과학기술을 뒤받침하는 미국의 국사능력은 세인이 다 아는 터라 그 누구든 좋으나 싫으나 미국의 指令들을 전혀 무시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 하는 미국선거가 미국인의 선거만이 아니라 거의 세계인들의 선거로도 표출되기도 한다.      미국은 나젊은 국가이다. 1차대전시에 지성학적인 우세를 타고 전생장사를 하여 자본축적을 완성하였고 2차대전을 통하여 지역강국으로부터 세계강국으로 부상하였다. 또 영국에서 발원된 實驗리성주의가  미국의 사회제도와 문화사상에 이르기까지 무성한 꽃을 피우게 하여 세인들은 흔히는 미국이 미우면서도 고운, 우러러보이면서도 괘씸하고 원한스러운 애매상을 내보인다. 미국이 좋다 또는 나쁘다고 일면설이 성행하는 나라 또는 시기가 있었다면 그것은 흔히는 정치가들의 음모였음도 알아야한다. 미국을 객관적으로 알고 미국의 패와 덕으로 이루어진 량면성과 복잡성을 간파함은 우리에게는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미국은 패를 신봉하는 나라이다. 패란 무력으로 자신의 리익과 의지를 전달하고 집행함을 이른다. 누구든가 미국의 리익과 기분을 조금이라도 거슬으면 미국은 방망이를 휘둘러왔다. 미국방망이에 맞어 넘어간 사람은 아프고 기분이 엉망으로 된다. 그래서 미국을 원쑤로 대처하는 나라와 사람들이 여지저기 존재한다. 그 중에 미국의 패성을 과대하여 자신의 국내정치에 리용하는 정치가들도 있어  미국은 어떤 장면에서는 몰골이 흉악한 짐승으로만 등장한다. 미국의 패성문화의 근원에 대하여 과거에 우리는 레닌의 제국주의설로만 귀결하였지만 오늘날에 곰곰히 생각하면 제국주의설에 많은 虛点이 존재함을 부인하지 못한다. 인류가 어떤 경제방식(생산관계)을 취하든 필경은 서로간의 물질리익관계를 맺어야한다 . 또 어떤 국가형태를 취하든 필경은 인간의 나라임으로 하여 인간능력의 제한성과 인성의 암흑상을 철저하게 떨쳐버릴수가 없다. 하지만 세인들이 미국의 패성문화에 대한 생각은 흔히는 도덕주의와 감성주에 머물러있고 정치주의에만 머물러 있어 명석한 리해와 연구가 조금 부족한듯하다. 말 타고 돛배를 타고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아대던 과거로부터 전투기를 타고 미싸일을 쏘아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실 패를 신봉하는 패자가 많이 존재하여왔다. 패자들의 흥망성쇠는 력사교과서마다 큼직하게 써놓았고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어느 나라이든 패자로 되려는 속궁리가 전혀 없는것은 아니다. 나라사이의 세력균등이 절대적인 평형을 이룰수가 없다는 전제하에서는, 인간의 본성에는 저의 패기는 좋지만 남의 패기는 싫어하는 욕정이 존재하는한 미국은 미국의 패성은 존재의 필연성을 보인다. 그러므로 가령 현재의 미국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새로운 미국이 나질것은 당연한 일일것이다. 미국은 또 당근이라는 策을 신봉한다. 말 잘 듣는 누구에겐 물질리익과 문화리익을 조금 나누어주기도 하고 남들의 생계에 대해서도 인성적인 베품을 하기도 한다. 그 당근이 도대체 무게가 얼마이고 가격이 얼마닌가는 시와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당근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 대하여 의구심을 품게는 하지만 오늘날에 있어서 쏘련의 꽁무니를 따랐던 나라는 거의가 가난하고 전제적이기지만 미국의 꽁무니를 따랐던 나라는 거의가 먹고사는 흉내도 보이고 민주의 냄새를 풍김도 사실이다. 그래서 미국의 德이라는 것이 미국의 원초목적이 무엇이든가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발생하여왔음은 부인하지 못한다. 2차대전시에 미국이 지불한 재력과 물력과 인력은 엄청남은 사실이다. 그리고 미국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독일과 일본 그리고 이딸리아의 참패가 적어도 몇년간은 더 지탱되였을거라는 가설과 론리는 성립이 된다. 그리고 냉전시대에 미국이 구쏘련을 강력하게 견제하고 억제하였음도 객관적으로 보면 인류의 益이 아닐수가 없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미국이 주장하고 실행하는 세력균등과 문화다원주의는 (물론 미국의 지배주의를 전제로 하는) 빈약하고 힘이 적은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삶을 소유하는데는 德적인 표현을 이루고 있다. 패와 덕은 도덕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 미국의 국가의지와 국가행위를 평함에 있어서는 도덕적인 범주와 정치적인 범주를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내보일 필요가 있다. 또 미국의 국가의지와 국가행위를 미국인들의 개인의지와 개인행위와 분간할줄도 알아야한다. 공자는 <제가 받기를 싫어하는 것을 남들에게 주지말라 己所不欲,勿施于人)고 하였다. 미국의 패만 생각하고 덕을 무시하는 사람이든 , 미국의 덕만 생각하고 패를 무시하는 사람이든 ,미국이든 미국인이든 , 미국이든 어느 나라이든, 미국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공자의 말을 따라배울 필요가 있다. 또 패와 덕이란 언어적인 표현을 하기 위한 분리법이다. 사실적으로 미국의 패와 덕은 큰 솥에서 이미 감자국으로 전변한 조미료와 감자이므로 감자국을 다시 조미료와 감자로 분리한다는것도 사실 힘든 일이다.  
92    [잡담97] 호쟁자들의 롱구시합 댓글:  조회:4153  추천:37  2009-03-31
한생에 처음으로 롱구시합을 구경하신 할머니 한분이 내밷는 말씀이 < 기차기두, 그 공이 하나에 얼마인지, 죽기내기로 공 빼앗기를 하는 저 총각들에게 공 하나씩 나누어주면 안되나?>고 . 인성에는 好爭이 은둔한다. 好爭이 스포츠경기에서도 곧잘 발로되고 전쟁마당에서는 井噴된다. 그래서 나도 어느 일망무제한 사막에서 뇌까린 말이 있다.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여기에 불러 땡크전 하면 안되겠나? 전쟁손실도 피면하고 전쟁욕도 만족시키고 사막소유인은 땅세를 받을수 있으니> 하고 얼토당치않은. 인간의 본초가 선인지 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선과 악의 범주를 초월하여서도 인성의 호쟁을 엿볼수 있다는 자신심이 있다. 인간의 호쟁성이 인류사회발전변화의 원인중의 하나라는 말이 이제는 경쟁이 현대자본주의발전의 전제조건이라는 말로 전변하여 있는듯도 하지만 나는 어쩐지 감정적으로는 지나친 호쟁을 싫어한다. 특히는 인류의 숭고함을 표현하는 관용과 충돌을 이루는 호쟁말이다. 헌데 지나친 호쟁이란 놈은 시시각각 도사리고 있어 사는게 좀 불편스럽다. 요즘에 조선에서 위성발사준비중이라 미국과 일본이 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주공간은 인류의 공용지라고는 하지만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딲지가 붙은 조선이 위성발사를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가고 여러가지 우려심을 내보인다. 그 우려심들이 일본과 미국의 립장으로 볼 때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반면에 조선이 저의 힘으로 저의 돈으로 저의 재간으로 위성발사이든 태공급 유도탄이든 실험을 하는데 론리상으로는 마구잡이로 간섭해야 할 일이 아니다. <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는 자유와 민주의 리념과는 리론적인 모순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좋은 리해를 진행하기 어려운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의 이률배반률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근세로부터 반도는 호쟁자들의 교력장으로 등장하여왔다.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짜리러시아가 반도에서 서로 용을 쓰다가 그 다음에는 머나먼 미국까지 끼여들어서 언젠가는 공짜 땡크전장을 제공한적도 있으니 말이다. 호쟁자들이 벌리는 롱구시합은 할머니께서 구경하신 롱구시합과는 조금 구별이 된다. 스포츠경기에 사용되는 롱구공은 돈만 조금 내면 호쟁 총각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기가 별로 어렵지않겠지만 호쟁자들의 롱구시합은 진정한 목적은 하나밖에 없는 공이기 때문이다. 내가 엉터리친 땡크전에 이용될만한 사막도 좋고 호쟁자들의 롱구시합에 이용되는 롱구장도 좋고 그런 장소를 내주기싫으면 자강이란 엄청 중요하다. 한국의 력사교과서는 초등학교판 중학교판 고등학교판 대학교판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건대 어느 판본이든 번져보면 자강이 제일 큰 글자중의 하나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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