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혁의 문화시론 7]
로신의 어깨
올해는 로신의 80주기가 되는 해이다.
1918년 절강성 소흥의 주씨가문에서 태여나 첫 작품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달았던 필명 로신은 지금껏 여뢰관이(如雷贯耳)한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의 작품은 시대를 뛰여넘었고 그는 이미 인류의 고전이 되였다. 그 없이 중국의 현대혁명사와 문학사, 학술사를 론할수 없다고 일컬어진다.
그만큼 로신은 격동의 중국 현대사를 온몸 바쳐 살았던 인물이다.
사대부 집안에서 태여나 전통교육을 받고 일본 류학길에 올랐던 로신은 “우매하고 연약한” 중국인의 렬근을 진맥하기 위해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문학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문학의 힘으로 절망에 빠진 중국의 혼과 희망을 일깨우고자 했던 로신은 문학을 통한 민족계몽운동에 자신을 바쳤고 드디여 “근대문학의 아버지”라는 존칭을 한몸에 받으며 20세기 중국 문단의 정상에 우뚝 섰다.
신과 구의 갈등, 동과 서의 문명충돌의 격랑속에서 사상문화운동의 홰불을 선두에서 추켜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근대이행기의 려명전의 암흑을 헤쳐나갔다. 그의 소설과 잡문은 낡은것을 뒤엎고자한 신민주주의 청년들에게 전률과 영향을 주었고 그 전파가 사후에도 지속되였다.
조선족문단의 거목 김학철 선생이 극찬했던 그의 “촌철살인”의 강인한 명문들은 사회에 대한 엄격한 비판, 인간에 대한 예리한 성찰로 읽는 이의 정신을 확 흔들어 깨운다.
로신은 “현실과 동떨어진 문학”, “예술만을 위한 예술”을 경멸했다. 문학이 무엇을 할수있는가를 항상 고민했고 그 흥건한 사상에 붓자루를 담갔다. 그리하여 로신의 문학과 사상에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모난 사고가 뚜렷이 음각되여 있다. 아큐, 공을기, 상림아주머니 등 중국문학 나아가 세계문학사에서도 개성 도렷한 인물들이 그의 필끝에서 줄인형처럼 발랄한 춤을 추었다.
최근 변혁기의 소용돌이에 당착한 우리 공동체와 그 민족작가들이 겪고있는 고민에 대입해도 유의미하게 읽힐수 있는 로신의 글들은 그래서 조화석습(朝花夕拾), 즉 “아침꽃을 저녁에 줏는” 여유로움으로 오늘 날에도 살아있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신록이 짙어가는 지난 6월 11일, 로신문학원 문학창작 강습반이 자치주 수부 연길에서 처음으로 개강했다.
1950년에 대문호의 이름을 떠이고 출범된 로신문학원은 젊은 문인들을 양성하는 중국작가협회 산하의 전문양성기구이다. 로신문학원은 10여년전부터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무려 29차례의 강습반을 열고 1000여명의 중청년작가, 평론가, 편집들에게 충전의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다 이번에는 변강의 오지인 연변에까지 찾아든것이다.
“청년들아, 나를 딛고 일어서라!”
이 말은 바로 로신이 청년들을 향해 던졌던 대표적인 문장의 인용구이다.
문학원의 문학도들이 “청출어람”의 기상으로 대문호의 선험(先验)을 자양분으로 부여받고 깨금발하여 침체기의 우리 문학에 한줄기 짙푸른 생력소를 주입하기를 기대해 본다.
“연변일보” 2016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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