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쉬여가는 페이지 - 흥미로운 축구이야기 ㄱ
2015년 12월 04일 21시 37분  조회:4894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5년 12월 09일 08시 37분 ]

 

 

심수 산사태 구조현장
[ 2015년 12월 24일 08시 18분 ]

 

 

2015년 12월 23일 심수에서 산사태가 일어난지 나흘째되는 날. 구조현장에는 백여대의 굴착기와 여러 구조기계장치가 동원.


축구 하면 많은 사람들은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종가에서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축구가 시작된 유래는 학계 전반적으로 갈리기는 하지만 영국이 아니라 고대 로마, 그리스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부터 축구와 유사한 스포츠가 있었다고 하니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리스, 로마, 중국에서 유래된 축구

영국 작가 윌리엄 앤드루스(William Andrews)는 1891년, "로마인들이 영국으로 가지고 온 축구가 우리의 가장 오랜 스포츠다"고 주장했습니다. 1-2세기경 로마군을 통해 브리타니아(현 영국)에 전파된 뒤, 오랜 시간을 거쳐 19세기경 현대 방식의 축구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BC 7-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공을 차고 던지는 경기인 에피스키로스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스파르타의 공 전투, 로마의 파이닌다(Phaininda)와 하르파스톤(Harpaston)이라는 격투 형식의 공놀이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현재의 축구 형태와 가장 비슷한 경기가 중국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로마, 그리스의 경기가 던지는 방식이 경기 중에 포함돼 있다면 중국에서는 기원전 3-2세기경 츄슈(蹴鞠 축국)라는 경기가 오직 발로만 차서 경기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각종 학설들이 나뉘어 있지만 고대 시대에 축구와 유사한 경기가 2-3세기경에 나온 문헌과 고대 작가들에 의해 확인돼 '공놀이'가 예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체계화된 축구, 발전을 꾀하다

이후 각 대륙별, 나라별로 퍼진 '공놀이'는 1800년대 들어 '축구'로 어느 정도 틀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이 영국에서 이뤄졌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국이 축구 종가다'라고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역별로 저마다 제각각이었던 규칙은 1848년 '케임브리지 규칙'이 만들어져 표준화된 뒤, 1863년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창설과 규칙이 완전히 제정되면서 오늘날 현대 축구의 틀이 완성됐습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9일, 최초의 현대 규칙에 의한 시범 경기인 반즈 클럽과 리치몬드 간의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한 축구는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경기를 가져 최초의 국가대표 A매치를 가졌고, 1888년에는 애스턴빌라 회장 윌리엄 맥그리고에 의해 '풋볼 리그(Football League)'를 창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8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축구가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통일화된 규칙'을 갖춘 축구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세계 축구 대항전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1904년 5월 21일, 유럽 7개국의 주도로 국제축구연맹이 창설됐고, 로베르 게링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이어 20여년의 진통 끝에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리면서 세계 축구의 큰 변혁기가 찾아왔습니다. 전세계를 흥분하게 만든 월드컵의 역사도 이제 80년이 지난 셈입니다. 7개국에서 시작한 국제축구연맹 가입국은 2010년 현재 207개국으로 늘어나 세계 최대 규모의 체육기구로 거듭났습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 

 

민족의 울분을 달랜 한국 축구

그렇다면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축구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오랜 옛날, 우리나라에도 축구와 비슷한 형태의 경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의 방광이나 가축의 태에 바람을 넣거나 털을 넣어 찼던 축국(蹴鞠)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후이스호의 승무원과 군인들이 인천에 상륙하여 공을 차고 놀면서 보급되기 시작해 이 땅에도 축구가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4년 뒤인 1896년, 최초로 대한체육구락부라는 팀이 창설됐습니다. 이는 근대 축구팀의 시초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어 1905년에 구락부 팀과 황성기독교청년회 팀 간의 경기를 가지면서 이 땅에서 열린 최초의 근대 축구 경기로 남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규칙도 없었고, 골문 역시 현재의 골대가 아닌 돌이나 막대기로 정해서 자유롭게 경기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현대 축구 규칙에 의해 가진 첫 경기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이후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돼 체계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이를 전후해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려 경성, 평양, 함흥축구단 등 지역팀들이 다수 창단되는 등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당시 경성과 평양 간의 맞대결은 '경평 축구'라는 이름의 '라이벌 대결'로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비록 식민지 하에서 온갖 핍박과 아픔을 겪었지만 축구를 통해 민족의 긍지를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빠르게 성장, 오늘날 주요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9년 만인 1954년, 일본을 제치고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약 15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마침내 전 세계를 하나로 뭉치게 한 스포츠, 축구. 경기 방식은 통일됐지만 각 나라, 각 팀들의 스타일, 색깔은 저마다 다양해지면서 '개성화된 축구'가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축구가 10년 뒤, 그리고 수십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인지 기대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299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환경보호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11-19 0 2398
2996 [별의별] - 2.1kg = 20억 2020-11-18 0 3023
2995 [고향문단소식] - 요즘, 우리 조선족문단에서는... 2020-11-14 0 2776
299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인공조명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11-13 0 3140
2993 [세상만사] - 240 = 300 = 8 2020-11-13 0 2811
2992 [세상만사] - 180 = 120 = 270 2020-11-11 0 2728
2991 [세상은 지금]- 그들은 쉽지 않았다...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2020-11-11 0 2847
2990 [세상만사]: 30 = 14 2020-11-07 0 2780
298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기후변화 주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11-05 0 2986
2988 [이런 저런]- "낭" 2020-10-31 0 2793
2987 방언을 살려야... 2020-10-28 0 2707
2986 그가 그런 사람이라고?!... "살아서 죽었고, 죽어서 살았다" 2020-10-15 0 2973
2985 [그것이 알고싶다] - "노벨상 상금" 2020-10-09 0 3431
2984 "진달래문예상" 주인들은 들러리... 2020-10-09 0 3024
298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식량평화백신", 남의 일이 아니다. 2020-10-09 0 3006
2982 [그것이 알고싶다] - "삼정검" 2020-09-24 0 3012
2981 30여년 = 조선족민속유물 만여점 2020-09-10 0 3160
2980 인민음악가 - 정률성 친필 원고 할빈으로... 2020-09-10 0 3132
297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기후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9-10 0 3368
2978 백년 박바가지와 백년고목 2020-09-08 0 3091
2977 [고향문단소식] - "두루미" 시인을 기리다... 2020-09-08 0 3149
2976 [세상만사] - "미술을 모르는 거 같더라"... 2020-09-08 0 3224
2975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쥐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8-24 0 3633
2974 [세상만사] - 가위 바위 보 2020-08-16 0 4126
2973 [세상만사] - 개와 모성애... 2020-08-14 0 3919
2972 [별의별] - "..." 2020-07-19 0 4078
2971 [고향소식] - 화룡에서 대형 가무극 선보인다 2020-07-18 0 3589
2970 [문단시단] - 詩碑와 是非는 계속 되고.../최룡관시비 2020-07-17 0 3384
2969 [고향소식] - 고향 화룡에 비행장 선다... 2020-07-02 0 3707
296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문화재보호",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7-02 0 4233
2967 [그것이 알고싶다] - 송진속 곤충 = 호박 2020-07-01 0 4740
2966 [우리의 것] - 하찮은 벼짚이 문화재 벼짚공예 되다... 2020-06-27 0 3653
2965 [그때 그시절] - 전쟁은 싫다 싫어... 2020-06-27 0 4000
2964 [타산지석] - 우리 연변 미술계에도 이런 "현상" 없는지?... 2020-06-25 0 4116
2963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654
2962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523
296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418
296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340
295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448
295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축구선수평화",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6-15 0 2387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