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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함께 평생을 살기로...
2016년 01월 21일 23시 02분  조회:5807  추천:0  작성자: 죽림



네 번째 시집 {마음의 수수밭}을 내기 전까지는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며 다녔습니다. 관광여행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들면 살아서 돌아오려고 한 여행도 있었고, 여행을 가서 정말로 살아서 못 돌아오면 안 돌아와도 좋다는 두 가지 생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때의 여행이 나한테는 고행이었고 내 삶의 수행으로 삼았습니다.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닐 때의 경험이 {마음의 수수밭} 속에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수수밭}에 가장 애착이 갑니다.


어떤 일이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죽고 나면 이 시는 남아 있을 것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다섯 번째 시집까지 나왔는데 생각해 보면 시의 길에는 에누리도 덤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라는 것이 예수의 고난을 상기시키잖아요. 왜냐하면 부활의 환희도 십자가의 수난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 정도로 글쓰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이 글쓰기의 궁극은 불교에서 말하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고 그 결과는 등신불(等身佛)이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시에 대해서 어떤 오체투지(五體投肢)를 해야 합니다. 자기 몸을 완전히 바닥에 엎드려서 낮춰야 됩니다. 치열하더라도 겸허하게 치열해야 합니다.

자기 시가 조금 잘 써진다고 해서 턱을 쳐들고 못 쓰는 사람을 무시하면 발전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겸허한 마음으로 치열하게 시를 써 나가야 됩니다. 말하자면 이렇게 힘든 시하고도 나는 한몸이 되어서 정말 평생을 살고 싶습니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말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시와 같이 있으면 내가 진실 곁에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진실하고 배가 맞는다는 확실한 느낌이 옵니다. 그래서 나는 평생을 시와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어느 시인은 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맨몸으로 철조망을 통과한 사람들의 등판과 같다.' 이성복 시인의 이 말을 들으니까 내게 전율이 오더군요. 이제 시를 쓰는 자체도 우리들 삶의 문제잖아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력의 하나라면 희망이 너무 넘쳐도 시가 안 되고 절망에 너무 질식해도 시가 되지 않습니다. 부정과 긍정이 이중적으로 교차하는 그 자리에 꽃이 핍니다.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자기 폐쇄성에 빠지고 맙니다.


어느날 내가 한강을 지나가는데 아이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연을 보는 순간 '아, 시를 저기에 비교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도 가오리연과 방패연이었습니다. 가오리연은 가볍기 때문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시간은 굉장히 빠릅니다.
하지만 굉장히 까붑니다. 요리조리 공중을 까불다가 결국은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꽂히고 맙니다. 반면 방패연은 아주 의젓합니다. 그래서 올라갈 때는 굉장히 힘이 듭니다. 상승 속도가 무척 느리지만 한번 공중으로 올라갔다고 하면 자기 스스로 균형을 잡습니다. 그래서 꽂히는 일 없이 아주 의젓하게 하늘을 가릅니다. 가오리연과 방패연은 외형부터 다르고 몸집은 비교도 안 됩니다.


나는 가오리연을 조금 나쁜 시에, 방패연을 좋은 시에 비교해 봤습니다. 그리고 연도 날리기 전에 절대로 빨리 날려서는 안 됩니다. 잘 만들어서 띄울 때는 아주 높이 올라가고 오래 하늘을 납니다. 마음이 급해서 빨리 날리려고 하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연을 날릴 때는 얼레를 잡은 손의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얼레를 잡고 당길 때 줄을 너무 많이 당기면 끊어지고, 느슨하게 당기면 풀어집니다. 그래서 손으로 당길 때는 당기고 놓아줄 때는 놓아줘야지, 균형을 잘 잡아서 높이 올라가고 하늘을 오래 날 수가 있는 겁니다. 연이 빨리 올라간다고 해서 반드시 높이 올라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래 견디는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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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기 형 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기형도의「질투는 나의 힘」시작 메모
 
저것들이 다 내가 승부해온 것들인가
눈동자, 아름답다, 미(美) - 질투
이것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저것은 무엇인가.
너에게 가기위하여 그대
나는 얼마나 무관심하고자 애썼던가
어리석게도 헛소리들, 돌연한 변화가 있었던가, 대결.
아무도 없는 찻집에 들어서다
 
 
 
 
기형도 연보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에서 3남 4녀중 막내로 출생.
 
1965년 부친의 서해안 간척사업에 실패로 유랑하다가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
 
1985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인 "안개"는 이 마을이 배경이 됨.
 
1967년 시흥국민학교에 입학.
 
1969년 부친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석에 눕다. 가계가 힘들어짐.
 
1975년 당시 고등하교 2학년이던 셋째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
 
1979년 신림중학교을 거쳐 중앙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연세대학교 정법계열 입학.
       교내 문학동아리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수업 시작.
 
1980년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가작('영하의 바람').
 

1981년 방위병으로 입대, 복무중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
 
1982년 6월 전역 후 <식목제>가 윤동주문학상(시부문)에 당선.
 

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안개').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신문사 수습을 거쳐 정치부에 배속.
 

1986년 정치부에서 문화부로 옮김.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 주목을 받음.
 
1988년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김.
 
1989년 3월 7일 새벽(만29세), 종로의 한 극장 안에서 숨진 채 발견.(사인 뇌졸중)
       시작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이국에서 온 몇 통의 편지, 꼼꼼히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든 가방을 가지고 있었음.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수원교구 묘지에 묻힘.
       5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 발간.
 
1990년 3월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 발간.
 
1994년 2월 추모문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발간.
 
1999년 3월 전집 <기형도 전집>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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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빈 집 / 기형도
 
           
 
 
 
 
 

 
 
 
빈 집
 
                               기 형 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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