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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환의 제6시집『바람소리에 귀를 묻고』-심종숙(시인, 문학평론가)
이시환의 시집 『바람소리에 귀를 묻고』(1999, 신세림)는 끝없는 사랑의 희구들로 찬란하다. 눈이 부시다. 이 사랑은 이시환에게는 시의 뮤즈들이다. 그는 이 뮤즈들을 뒤쫓아 품고자 한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거나 뒤쫓는 그의 모습은 마치 아름다운 목신을 연상케 한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시인인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1842~1898)의 『목신의 오후(Le Faune)』에 나오는 목신이 되어 시라는 님프 요정들을 품에 안으려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집에는 온화한 시정과 시의 뮤즈에 대한 그리움과 그를 갖고자 하는 욕구로 빛난다. 이것이 그의 끊임없는 짝사랑일지라도 그에겐 상관없다. 그러나 그는 짝사랑의 비극을 가지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끝없이 바라보듯이 ‘당신’이라 부르는 타자(연인, 뮤즈, 요정)와 끝없이 소통한다. 그의 시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자에게 떠오르는 두 가지 오브제 중에 하나는 한스 안델센의 『인어공주』와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이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동화 『인어공주』의 원전을 보면 어린이의 동화로 재화된 인어공주와 내용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다. 신의 섭리로 왕자는 자신을 구해준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게 되고 비극의 인어공주는 다시 인어로 돌아오기 위해서 왕자를 찌르라는 언니들의 충고를 이행하지 못한 채 실연의 아픔과 사랑하는 왕자를 차마 죽일 수가 없어서 바다에 뛰어들어 물방울로 변한다. 이 물방울이 공기 요정으로 떠올라 공기 요정이 된 인어공주가 300년 동안 선행을 하여 영혼을 얻길 바라는 마음을 작가는 작품의 말미에서 드러내어 교훈적 문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작가는 아이들이 사랑하는 슬픈 인어공주가 300년에서 한 해씩 줄어들어 빨리 영혼을 얻게 되길 원한다면 매일 자신의 부모를 기쁘게 해야하고 사랑 받는 아이로 자라 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어공주의 시련기에서 버릇없고 심술궂은 아이들을 인어공주가 보게 되는 만큼 그녀의 시련의 기간이 길어진다.
다른 오브제는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대표시인 말라르메의 시집 『목신의 오후』이다. 말라르메의 시는 ‘물의 요정 님프님들, 그녀들에게서 나는 영원의 생명을 찾고 싶네’라는 시구로 시작한다. 어느 온후한 여름 날 오후 목신은 시칠리아 초원에서 잠을 깬다. 잠에서 깨어나 머릿속에 기억의 부유물을 떠올려본다. 꿈을 꾼 것이 남아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잠들기 전의 현실이었는지 목신에게는 몽롱하기만 하다. 다만 목신은 그 둘 중의 어느 한쪽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찰나에 목동은 짧은 갈대로 만든 피리로 잔잔한 프렐류드를 불기 시작하는데 그 소리에 물의 요정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가거나 물속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그러나 목신은 눈앞에 서로 얽혀있는 한 쌍의 요정을 보고 두 요정을 품에 안아 장미 넝쿨로 뛰어들어 헝클어진 그녀들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었을 때 문득 양팔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바로 그 때 두 요정은 그의 품에서 날아가 버린다. 목신은 그 아쉬움을 잊기 위해 몽상을 하거나 한낮의 태양을 향해 입을 벌리고 넋을 잃기도 하며 갈증을 느끼고 모래 위에 쓰러진다. 목신은 다시 꿈을 꾸면서 나른한 잠 속에 빠진다.
신화 속의 목신이 꿈꾸는 것은 요정들이듯이 인어공주가 꿈꾸는 것은 왕자이다. 꿈꾸는 것을 품기 위해 목신은 끊임없이 몽상을 할 것이다. 인어공주가 영혼을 얻기 위해 300년을 선행을 해야 하듯이 시인은 시의 뮤즈를 품에 안기 위해서 끝없이 희구해야 한다.
이시환은 그의 시적 몽상을 꿈꾸고 그의 뮤즈를 만나기 위해 어떻게 하는가? 다음의 「기차여행」시 전문을 보자.
기차를 탔다. 이 얼마만인가? 그동안 나를 이리저리 묶어두는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버리고, 나는 오로지 내 몸을 의자 깊숙이 묻고 나를 풀어 놓았다. 그러자 미끄러지듯 어디론가 나를 낚아 채가는 기차. 그에 이끌려 나는 오늘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대로 공중으로 떠 가다보면 나는 분명 없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어젯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던 캡슐 속의 작은 미립자들처럼 물에 녹아 풀어져 버릴 것이다. 그리하여 작은 먼지의 부유조차 허락할 수 없는 적막 속에서 나는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시환은 자기를 만나기 위해 바깥세상과의 관계를 모두 끊고 기차에 자신의 몸을 맡긴다. 그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어떨 때는 목적지를 설정하거나 때로는 목적지를 고집하지 않은 채 자신을 부려놓는다. 기차는 시의 뮤즈를 찾아 떠나는 시인을 이끌고 가는 인도자다. 그의 동행자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그도 알 수 없다. 가다가, 가다가 보면 지상이 어느 새 공중으로 바뀌어 ‘나’는 공중에 떠다니다 사라져 가기도 한다. 또는 작은 미립자들처럼 녹아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고요 속에서 저 심부 깊은 곳에 있는 참 ‘나’를 만나다. 이 시에서 이시환의 뮤즈는 참 ‘나’가 곧 그것이다. 그는 부유하는 것들을 다 끊기 위하여 일상을 떠나고 기차에 몸을 부려 자신의 뮤즈를 만나기 위해 떠난다. 떠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부유하는 것들을 비워내어야 한다. 이 비워내기 작업은 「대숲이 전하는 말」에서 떠남과 죽음, 사라지는 것들로 형상화되고 있다.
허연 허벅지 살점을 드러내 보이며 웃음을 흘리던 너도 어느 날 훌쩍 떠나 버리고, 가지 끝 그 빈자리론 가을 햇살만이 숨어 수줍음을 타는구나.
코 흘리던 내가 불혹을 넘기는 사이 동네 서씨 아저씨도 갔고, 김씨 아저씨도 갔고, 이젠 박가놈도 그런저런 이유로 가고 없다.
이러쿵저러쿵 사는 것처럼 한 세상을 살다가 훌쩍 자리를 비운다는 게 얼마나 깊은 아득함이더냐. 얼마나 아득한 그리움이더냐.
저마다 제 빛깔대로 제 모양새대로 머물다가 그림자 같은 공허 하나씩 남기며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간다는 것, 그 얼마나 그윽한 향기더냐. 이름다움이더냐. -「대숲이 전하는 말」전문
이웃들의 죽음을 통해 시인은 그 떠난 것을 비움으로 보고 깊고 아득하며 그리움이라고 하였다. 그윽한 향기이며 아름다움이라 했다. 죽음에 대하여 두려움이나 공포, 추함, 피하고 싶음, 절망, 고통과 같은 부정적 정서보다 그에게 인간의 죽음은 허무하고 무상한 것이지만 그것이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저마다 제 빛깔대로 제 모양새대로 머물다가 그림자 같은 공허 하나씩 남기며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숲의 바람이 전해주는 풍문처럼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인간의 삶이 바람처럼 와서 제각각의 빛깔과 모양새로 살다가 사라져 감은 그윽하고 향기로우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비움의 거대한 의식이 사람에게 누구나 다 예비되어 있기 때문에 시인의 시의 뮤즈를 향한 갈구는 더욱 더 가열해진다. 시인의 갈구는 고요와 적막함과 비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정은 호수에 이르면 한층 깊어진다.
잔잔하다. 아주 고요하다.
그래,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얼마나 깊은지, 표정을 짓지 않아
그 속을 가늠할 수 없다.
돌멩이 하나 던져도 풍덩,
하고 가라앉으면 그 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잔잔할 뿐이다.
그저 덤덤할 뿐이다.
그런 호수 하나 앞가슴에 지니고 산다면…
그런 적막 하나 앞가슴에 지니고 산다면…
-「호수」전문
눈앞의 호수를 보고 시인이 열망하는 것은 호수가 지닌 잔잔함과 고요함, 그 덤덤함이다. 시인은 자신이 호수처럼 되고자 한다. 삶에서 돌멩이가 날아와도 의연하고 덤덤해질 수 있길 바란다. 그 의미는 그가 어쩌면 부유하는 나로 인하여 마음의 적요를 잃거나 흔들릴 때 이런 호수가 되고자 하는 것처럼 호수를 통하여 시인은 잔잔함과 고요, 덤덤함을 지닌 참 ‘나’를 만나고자 한다. 여기에서 호수는 시인이 품고자 하는 뮤즈인 것이다. 호수는 시인에게 흠모하여 닿고자 하는 ‘당신’이기도 하며, 어느 새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버린 ‘당신’이기도 하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내 안에 들어와
나를 무력화시키고 점령해 버린
무례한 당신은 내게 무엇인가요.
보고 싶어도 다가가 만날 수 없고
당신의 음성, 당신만의 숨소리 듣고 싶어도
자유로이 전화조차 걸 수 없는
당신은 내게 무엇이고,
나는 당신에게 또 무엇인가요.
어쩌다 곁에 앉아 있어도
당신 속으로만 줄달음치다가 쓰러져 눕고 싶고,
어쩌다 손을 꼬옥 잡고 함께 있어도
외로워 외로워서 어쩔 줄 모르는,
당신과 나는 무엇인가요.
이 어둡고 추운 긴긴 밤을 불태우다
사위어가는 불꽃인가요, 한낱 바람인가요.
아니면, 아니면.
풀숲길을 맨발로 걸어 나오는 아침인가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여명의 바다, 그 몸짓인가요.
-「당신을 꿈꾸며·1」전문
당신을 향한 나의 연가는 나로 하여 당신을 꿈꾸게 한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말하는 당신은 불꽃, 바람, 아침, 여명의 바다, 바다의 몸짓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시인에게 당신은 가서 닿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시인의 영혼을 사로잡고 그 안에서 둥지를 튼 존재이다.
얼마나 더 숨 가쁘게 달려가야
당신의 나라에 가 닿을 수 있나요.
그리워 그리다가 지쳐 잠이 들지만
당신을 부르며 놀라 깨어나는 나는,
얼마나 더 숨 가쁘게 달려가야
당신의 손길을 맞잡을 수 있나요.
당신의 눈길을 마주 볼 수 있나요.
-「당신을 꿈꾸며·2」부분
당신은 나에게서 멀리 있는 존재이기에 나는 ‘당신의 가슴 속으로/끊임없이 질주해 가느라 잠 못 이루었습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시인은 당신에게 이르기 위하여 정열을 불사른다. 당신을 향한 나의 적극적인 태도는 나의 당신에 대한 절대성에 기인한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나라에 당도하기 위해 당신에게 한 목숨 던지길 원한다.
실비 내리는 이른 봄날 저녁 어스름께
젖어드는 저 나목이 되어
그대 옆모습 살짝 훔쳐보노라면
그대가 더욱 그리워지네.
눈물이 고여 있는 그대 호숫가에 내려와
홀로 반짝이는 저 별이 되어
그대 눈동자 빤히 들여다보노라면
그대가 더욱 간절해지네.
그대 향한 이 그리움과 이 간절함 속에
얼굴을 묻고 오늘을 사노니
거두어 가소서, 나를 거두어 가소서,
당신의 나라, 당신의 하늘과 땅으로.
-「당신을 꿈꾸며 ·4」전문
당신을 향한 나의 줄기찬 정념으로 당신의 나라에 이르기 위해 나의 목숨마저도 거두어 가길 바라는 시적 화자의 절규에서 보듯 여기에서 당신은 연인, 절대자, 시의 뮤즈, 정령, 하느님, 내가 품고 싶은 생명성, 절대적 가치 등을 상징하고 있다 하겠다. 시인이 「당신을 꿈꾸며」연작시 6편을 시집의 중간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은 이 6편이 시집의 고갱이임을 말한다. 가장 중요하고 귀한 것을 가슴 속 깊이 품어두듯이 이 6편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고백이기에 시집의 한 중간에 위치시킨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한 여인이 자신의 정인에게 순열한 자신의 사랑의 비밀을 가슴 깊이 간직해두듯이 말이다. 「당신을 꿈꾸며·5」에 오면 이 희구의 결실을 이루는 절정의 시혼이 내가 죽어 당신의 심장이 되고 숨이 되고 당신의 정령이 되고, 내가 곧 당신이 되어 당신을 희구하는 나는 대타자와 일치하게 되고 여기에서 대타자는 전술한 연인, 절대자, 시의 뮤즈나 정령, 하느님을 가리킨다.
당신의 영접을 받으며
당신의 城門을 열고 들어가
마당 가운데 핀 당신만의 꽃을 보았습니다.
그 꽃술에 흐르는 달콤한 꿀과 향기에 취해
그만 혀끝을 갖다 대면서
비몽인지 사몽인지 진몽인지 간에
당신의 나라를 탐해 버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의 그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던져져
죽고 죽어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당신의 나라, 당신의 영토 위에서
비로소 당신의 심장이 되었고,
당신의 숨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새삼스러이 깨달았습니다.
내 그토록 간절히 그리워하던 당신이 나의 정령이고,
내가 곧 당신의 정령이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내가 타버리고 남은 당신의 가슴 위에
당신이 무너져 내린 내 가슴 위에
웅장한 또 하나의 새 城이 솟고 있음을.
눈이 부시게, 부시게 솟고 있음을.
-「당신을 꿈꾸며·5」전문
이 시에서 나와 당신의 관계는 나의 님을 향한 일방적인 사랑의 정념을 불태우는 것에서 변화되어 당신이 나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어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을 ‘당신의 영접을 받으며’라 표현하고 있다. 즉 당신이 마음을 열어 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성문을 열고 들어가 당신이 자신의 정원에 가꾸어둔 당신만의 꽃에 취하여 혀끝을 갖다 대어 당신을 탐한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의 깊고 깊은 우물 속으로 던져져 죽어서 당신 나라에 이르게 되어 당신의, 심장으로 숨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 순간 나는 당신이 나의 정령이며 나 또한 당신의 정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가 타버리고 남은 당신의 가슴 위에/당신이 무너져 내린 내 가슴 위에’ 웅장한 새 성이 눈부시게 솟아오른다고 말한다. 시적 화자는 나와 당신의 사랑이야기를 이렇게 이야기 해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내가 그리워하던 당신은 곧 나의 정령이었다는 의미는 대타자가 곧 내 안에 있는 절대자, 하느님, 연인과 같은 품성을 지닌 참 ‘나’[眞我]였다는 의미이다. 참 ‘나’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나의 줄기찬 그리움과 희구의 결과로 거짓 ‘나’[假我]는 소멸하고 ‘새 성’으로 비유되는 당신과 참 ‘나’가 합체된 진여의 ‘나’와 당신이 태어나는 것을 성이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이 시에는 법화경 제3권의 화성유품(化城喩品)의 반대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는 진리를 설하기 위해 미혹하고 우매한 중생에게 이 진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기에 화성을 사용한다. 불경적 내용을 소개하면, 어떤 이가 진리에 이르기 위해 중생을 데리고 가는데 이들이 그 길이 멀어 지치고 힘들어 할 때 잠시 화성을 만들어 거기에서 쉬게 한다. 그런 다음에 화성을 거두고 다시 진리인 불법을 향하여 인도하여 간다. 곧 여기에서 화성은 방편이다. 방편이란 비유를 들어 가르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방편의 진리란 쉬운 말로 비유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비유를 통하여 진리를 설하는 이법은 성경이나 불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경에서 하느님의 자비는 기쁨과 희망의 복음이라 일컬어지는 루카복음에서 ‘되찾은 아들’에 비유되고, 불경에서는 법화경 제2권 신해품(信解品)에 동일한 화소를 지닌 장자와 방탕한 아들의 구전된 이야기를 변형하여 비유로써 가르치고 있다. 방편과 비유는 진리를 설하기 위해 이해를 돕고자 하는 한 방법인 것이다. 법화경의 이 이야기에는 산문체의 이야기와 이를 게송으로 읊어놓은 것이 있는데 게송이란 바로 리듬을 지닌 노래 즉 시이다. 구전된 화소를 변형하여 산문에 담은 것과 게송을 통하여 노래로 엮은 것은 산문과 시문이 지니는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려서 부처의 자비를 중생들에게 잘 감득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을 것이다. 이시환의 「당신을 꿈꾸며」6편도 내재율과 외재율을 품은 산문시풍에 가깝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다시 하진 않을래요.
당신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지닐 수가 없어요.
당신 또한 날 사랑한다 말하지 말아요.
내 당신을 품에 안을 수 없는 땅에 서 있듯이
당신 또한 날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에 있잖아요.
우린 그렇게 아득히 멀리 서서 서로를 바라만 보아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다시 하진 않을래요.
당신 또한 날 사랑한다 말하지 말아요.
다만, 다만, 다만, 엎치락뒤치락 선잠이 들 때마다
당신과 함께 잠들고
아침마다 잠에서 놀라 깨어날 때에도
늘 당신과 함께 눈을 뜬다는 것뿐
우린 서로 사랑한다 말하지 말아요.
그냥 그렇게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살아요.
그냥 그렇게 가슴 속에 묻어 두고 살아요.
우리 슬픈 사랑 받아줄
어느 구석도 이 세상엔 있질 않아요.
우리 간절한 사랑 받아줄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엔 있질 않아요.
-「당신을 꿈꾸며· 6」전문
이 시는 나와 당신의 사랑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사랑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이 무의미한 세계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사랑한다는 말 다시 하진 않을래요’라고 하여 비밀에 봉인 시키는 것이다. 이 사랑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가슴 속에 묻어두고 말하지 말자고 당신에게 말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사랑이 가진 깊이와 이 사랑이 지닌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나를 죽여서야 열매 맺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나를 죽인다는 의미는 나를 완전히 비운다는 의미로서 나를 희생제물로 바친다는 의미이다. 그럴 때 비로소 획득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바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사랑이다.
푸르고 푸를지어다.
그 속에 함성이 있고
그 속에 기쁨이 있나니.
푸르고 푸를지어다.
그 속에 네가 있고
그 속에 내가 있나니.
푸르고 푸를지어다.
그 속에 속삭임 있고
그 속에 말씀이 있나니.
푸르고 푸를지어다.
-「生命」전문
‘푸르고 푸를지어다’로 반복어법을 써서 의미를 강조하거나, ‘--할지어다’라고 하여 반복기원을 담은 이 시는 생명이 이렇듯 푸르고 푸르러 질 것을 바라는 시적 화자의 외침소리이다. 그 속에 함성이 있고 기쁨이 있고 나와 네가 있고 속삭임과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당신을 꿈꾸며」여섯 시편 뒤에 놓여 있어서 나와 당신이 이룬 그 사랑이 바로 기쁨, 함성, 속삭임, 말씀이 되어 생명력을 이룬다. 그것이 영원히 푸를지어다라고 기원하는 절창의 노래이다. 영원한 생명은 바로 사랑이며 그것의 절창이다. 말씀은 곧 진리의 말씀이며 나와 네가 먹고 자라야할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다. 이것은 때로는 내면 깊은 곳에 임재한 하느님의 속삭임이며 동시에 진여의 ‘나’가 나에게 속삭이는 말이다. 그러므로 푸르고 푸르게 그 생명의 말씀이 영원하라는 의미로서 큰 울림을 가진다. 그 뒤에 위치한 「사랑」을 읽어보자.
푸르면 푸를수록 깊고
깊으면 깊을수록 아득한
아득하면 아득할수록 두렵고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눈부신
그대를 꿈꾸는 동안은
짙은 안개숲에 갇혀버린 한 그루 나무 되어
그대를 꿈꾸는 동안은
손발이 묶인 한 조각 잠언 되어
반짝이며
떨고 있네.
-「사랑」전문
그대를 꿈꾸는 동안은 안개숲에 갇힌 한 그루 나무이며, 손발이 묶인 한 조각 잠언이 된다. 사랑의 포로가 된 나의 모습은 묶이거나 갇힌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사랑에 묶이고 갇히는 것은 깊고 아득하며 푸른 생명력을 가진다. 당신의 사랑에 기꺼이 묶이고자 하는 욕망은 당신에게 침몰하여 당신의 정령으로 살고자 한다.
당신의 우수어린
고즈넉한 눈동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곳 푸르게 푸르게 흐르는 강물.
그 속으로 속으로 다시 유영해 들어가,
그 곳 가장 깊은 곳에서
그 곳 가장 깊은 곳에서
정지된 그대로 침몰하고 싶어, 나는.
그리하여 그 깊고 푸른
당신의 精靈으로나 살고파.
-「눈동자」전문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한다. 당신의 눈빛을 바라보는 나는 까아만 눈동자에 빨려들어가듯 그 눈동자를 바라본다. 눈동자는 흐르는 강물의 유동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나는 그곳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그 가장 깊고 푸른 곳에서 정지된 채 침몰하고자 한다. 거기서 당신의 정령으로 살고파한다. ‘눈동자’나 「섬」의 섬은 내가 침몰하고픈 깊고 푸른 곳, 블랙홀, 어둠의 자궁, 빛으로 상징되어 여성성의 이미지를 이룬다. 이시환이 이르고자하는 것은 구원의 여성이다. 신은 여성이미지로 현현되어 있다. 우주 만물에 깃듯 정령이 되고자 하는 욕망은 법신인 우주만물과 내가 일치하려는 욕망이고, 그 속에 나를 던지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러니 우주만물이 나이고 내가 우주만물이 되며 우주만물은 곧 참 ‘나’이며 신의 현현이다.
이 대지의
잠든 정령을 흔들어 깨워
저들로 하여
일제히 일어나 기지갤 켜도록
엉덩짝을 내차고 달아나는 이 누군가.
저들이 저들대로 무성하여
한 세상을 푸르고 푸르게 머무나니
저들이 저들대로 쇠락하여
한 세상을 푸르고 푸르게 기우나니
저들로 하여
일제히 일어나 어깨동물 하도록
이 땅에 정령 가득 불어넣고 달아나는 이 누군가.
-「봄바람」전문
만물에 존재하는 정령은 바람의 작용에 의해 생멸을 거듭한다. 바람은 이들의 생멸을 주관하는 존재이다. 바람이 우주만물에 생명력을 더하도록 소임을 받았다. 봄에 부는 바람은 꽃들을 피워 올리고 꽃들이 열매를 맺는데 기여한다. 바람은 곧 우주를 주재하는 신의 입김이며 숨이나 호흡이다. 인간에게도 이 숨은 생명이며 숨을 거두는 것은 곧 죽음이다. 그러므로 바람에 기대지 않는 만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시환의 시가 바람에 특히 주목하고 바람을 형상화하는 시가 많은 수를 이루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람에 관한 다른 시편들을 읽어보자.
먼 옛날
할아버지가 대나무에 구멍을 뚫어
천 가지 만 가지 마음의 소리를 내듯
하늘과 땅 사이
커다란 구멍을 열고 닫으며
만물에 숨을 불어 넣고
만물의 혼을 다 빼가며
천 가지 만 가지 빛깔의 소리를 내는
당신의 피리 연주.
바람소리에 귀를 묻고
귀를 기울이는 동안
이미 한 생이 저물어가듯
또 한 생명의 싹이 돋는구나.
하늘과 땅 사이
커다란 구멍을 열고 닫으며
크고 작은 바람으로
만물에 숨을 불어 넣고
만물에 혼을 다 빼가며
이 땅 가득 부려 놓는
당신의 말씀이여, 사랑이여.
-「바람소리에 귀를 묻고」전문
이 시에서 당신은 우주만물을 만들고 주재하는 존재이다. 당신의 연주에 따라 만물은 생멸한다. 거기에는 말씀과 사랑의 이법으로 연주된다. 말씀은 곧 생명의 말씀이다.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들고 하늘과 땅 사이의 커다란 구멍을 열고 닫으며 크고 작은 바람으로 숨을 불어넣기도 혼을 앗아가기도 하면서 우주만물은 어떤 질서를 가지고 움직인다. 이 질서가 우리 인간의 과학적인 능력으로 다 알아낼 수 없다. 그것은 과학적 인식을 넘어 생명의 말씀인 진리로만 이해될 수 있고 얼마간 감지 될 수 있을 뿐이다. 신은 그 우주적 진리를 다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기독교의 계시 진리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다. 신이 숨긴 진리는 언뜻언뜻 인간에게 감지될 뿐이다. 신의 질서는 말씀과 사랑의 이법임을 이 시에서 시인은 말하고 있다.
눈을 한 번 감아 보아요.
이 땅에 바람의 고삐를 풀어 놓아
온갖 생명의 뿌리를 어루만지고 가는,
바쁜 손이 보여요.
눈을 한 번 더 감아 보아요.
이 땅에 바람의 고삐를 풀어놓아
온갖 생명의 꽃들을 거두어 가는,
분주한 손의 손이 보여요.
그렇게 귀를 한 번 닫아 보아요.
이 땅 위로 넘쳐나는,
서 있는 것들의 크고 작은 숨소리도 들려요.
그렇게 귀를 한 번 더 닫아 보아요.
이 땅에서, 이 하늘에서 넘쳐 흐르는,
바람의 강물 소리를 들려요.
바람의 고삐를 풀어놓는 손과 손이 보여요.
-「눈을 감아요」전문
이시환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무엇인가? 이 시에서 간취되는 것은 그가 우리 눈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그의 시적 뮤즈는 바로 이런 세계이다. 이 시에는 그가 자신의 시가 무엇에 이르고자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신이 감추어둔 비밀을 하나씩 불러내어 우리 앞에 보여주고자 한다. 시적 언어가 가 닿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는 언어가 지닌 의미 밖의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바람이 생명의 뿌리를 만지고 가는 손이 우리에게 보이는가? 그것은 오히려 눈을 떠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눈을 감아 보라고 한다. 우리의 시각적 눈으로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개척은 그가 시를 쓰는 목적이며 시인으로서의 그의 존재 이유이다. 바람이 온갖 생명의 꽃들을 거두어 가는 것 또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듯 이 신비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눈앞에 누군가가 숨을 거두는 모습을 볼 수는 있으나 그 숨을 거두어 가는 존재는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바람은 우주만물의 숨을 관장하는 생명력이면서도 숨을 거두어 가는 존재이다. 우리의 귀를 닫아야 오히려 존재하는 것들의 크고 작은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박인 눈과 귀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간취하는 데는 무의미함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눈과 귀를 닫음으로써 보이고 들리는 세계의 비밀을 그는 꿈꾼다. 만물에 깃든 정령과 그의 뮤즈는 결코 가시적인 세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시에서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분다.
얼어붙은 밤하늘에 별들을 쏟아 놓으며
바람이 분다.
더러 언 땅에 뿌리내린
크고 작은 생명의 꽃들을 쓸어 가면서도
바람이 분다.
그리 바람이 부는 동안은
저 단단한 돌도 부드러운 흙이 되고,
그리 바람이 부는 동안은
돌에서도 온갖 꽃들이 피었다 진다.
바람이 분다.
내 가슴 속 깊은 하늘에도
별들이 총총 박혀 있고,
내 가슴 속 황량한 벌판에도
줄지은 풀꽃들이 눈물을 달고 있다.
바람이 분다.
-「벌판에 서서」전문
시인은 바람 부는 벌판에 홀로 서서 바람이 밤하늘에 별을 쏟아 놓거나 크고 작은 생명을 쓸어가거나 단단한 돌이 부드러운 흙이 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이 모든 것이 바람이 부는 동안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시인은 그 생명들의 생멸을 홀로 바라보거나 들으면서 자신의 가슴 속 황량한 벌판과 풀꽃들의 눈물과 마주한다. 시인의 가슴은 황량한 벌판이다. 시인은 고독한 자이다. 고독하기에 바람이 하는 일을 읽는다. 시인에게 고독함이 없거나 황량함이 없다면 그는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다. 그의 가슴이 눈물로 가득 차 강물 되어 흐를지라도 시인은 시 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람이 끊임없이 불듯이 시인은 끝없이 시의 뮤즈를 찾아 고독함과 황량함을 견디면서 그냥 갈 것이다. 이시환은 그것을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우주의 만물은 곧 비워진 참 ‘나’이고 곧 신이기 때문이다. 그의 고독함과 황량함은 바람이나 우주만물과 밀어를 나누는 이유이고, 인어공주가 왕자를 사랑한 나머지 찌르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었듯이 시의 뮤즈에 대한 시인의 갈구는 스스로 사랑한 나머지 투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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