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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처음부터 저주받았음이...
2016년 03월 14일 22시 52분  조회:4010  추천:0  작성자: 죽림
1821.4.9 프랑스 파리에서 시인 보들레르 태어나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저주받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운명은 평생 계속되었지요." 시인은 이렇게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파리의 우울, 악의 꽃, 금치산, 댄디즘. 시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다. 19세에 이미 현대성을 획득한 이 천재 시인은 자신의 태생을 '저주'라는 무서운 단어와 결부시켰다.

보들레르는 1821년 4월9일 아버지 프랑수아 보들레르와 어머니 카롤린느 드파이,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났다. 환갑의 나이에 젊은 여인과 결혼한 그의 아버지는 환속한 사제 출신으로 당대 자유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대단히 지적이고 특이한 인물이었다. 미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췄고,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보들레르가 훗날 미술에 관한 비평과 스케치를 한 연유를 그의 핏줄에서 찾아볼 만하다


19세에 이미 현대성을 획득한 천재

시인의 아버지는 보들레르가 6살 때 별세했으니, 어린 보들레르에게는 인자한 할아버지와 같은 인상만 남아 있었다. 사제 출신의 남편과 34살이나 차이 나는 젊은 엄마는 건장하고 전도가 유망한 오픽 장군과 재혼을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친부가 어린이 보들레르에게 물려준 재산을 관리하는 가족회의가 구성되었고, 군인 출신의 계부 아래서 예술가의 피를 이어받은 아이는 고독했다.

보들레르의 이미지인 고통과 우울, 비참한 삶, 모멸감과 같은 정서는 유년기의 외로움에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탄생을 저주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환속한 사제의 아들이니 신의 노여움을 산 것일까?


보들레르, "[악의 꽃]에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아 놓았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유일한 시집인 [악의 꽃]을 남김으로써 시인 보들레르가 되었다. 시인이 시집을 낸다는 건, 자신의 생명과 시간을 조탁한 언어의 집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보들레르는 이 시집을 '세상의 모든 고통을 담아 놓은 사전'이라고 자평했다. 그의 생명과 시간의 집인 시집에 거주하는 고통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 '상징'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시인은 <상징>이란 '영혼이 초자연적인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아무리 평범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 속에 생명의 깊이가 그대로 드러날 수가 있다. 이것이 곧 상징이 된다'라고 쓴다.


시인과 보통 사람들은 같은 세상에 살면서 같은 풍경이나 사물을 본다. 세상은 시인에게만 특별한 풍경이나 사물을 선물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들과 교감하고 소통하여 '영혼의 초자연적인 어떤 상태'로 자신을 끌어올린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펴는 모습이고, 항구를 출발한 범선이 돛을 올리는 이미지이다. 보들레르는 19세기를 살면서 이미 근대의 폭풍우를 지나 '현대'라는 항구에 닻을 내린 시인이다. 그가 교감하고자 하는 세상은 현실적으로 매우 지난한 세상이었다. "그 시절 어머니는 저와 함께 오랫동안 산책을 하며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셨지요. 저는 아직도 그 강둑을 기억하는데, 저녁 풍경이 어찌나 슬퍼 보였던지. 아!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어머니에게는 틀림없이 고통스러웠을 순간을 제가 행복한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는 어린 저에게 우상이며 동시에 친구였으니까요." 보들레르가 40살 되던 해에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행복한 순간은 보들레르가 6살 되던 해, 즉 보들레르의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재혼하기 전까지 2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이다.


만 스물한 살 되자 떼를 써서 아버지 유산을 받은 뒤부터 방탕한 생활
 

계부인 오픽 소령은 결혼 후에, 장군으로 승진하고,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주재 전권공사를 거쳐 외교관 생활을 하다가 상원의원으로 진출하는 잘 나가는 인생의 전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부와는 달리 보들레르는 파리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노르망디파'라고 불린 문학 동아리에 참여했고,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거리의 창녀를 알게 되고 매독에 걸려 평생의 지병이 된다.


보들레르는 1842년 4월 9일 만 21세로 법적인 성인이 되자 선친의 유산을 달라고 떼를 써 가족들로부터 금화 십만 프랑을 받았다.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진 빚을 다 갚고 펑펑 돈을 써대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그의 평생 연인이자 고통의 동굴인 잔느 뒤발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 역시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녀는 단역배우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모계 3대가 창녀 집안인 '아름다운' 창녀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후 14년간이나 지속되다가 끊어지게 된다. 하지만 보들레르가 '검은 비너스'라고 노래한 그녀와의 인연은 그의 문학과 인생에 생명 줄과 같은 것이었다. 관계를 끝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중풍에 걸리자, 경제적으로 다시 돌보아주는 연민의 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육감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은 늙고 병들어 거기에다 중풍에 걸려 목발을 짚고 어두운 파리 거리를 걸어 다니다가 사라져 버렸다.)

유산을 받고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나자 어머니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보들레르에게는 천형과 같은 '금치산 선고'를 의뢰하고 법원은 그를 법적으로 미성년자로 취급하여 금치산자 선고를 내렸다. 그는 4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경제적으로는 미성년자였다. 그의 인생은 항상 빚을 지고, 어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조르고, 빚쟁이에게 쫓겼다. 지병인 매독이 불청객이 되어 간헐적으로 온몸에 찾아들고 보들레르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 시인으로 단련되었고, 숙성되었다. 진흙 속에서 연꽃이 피었다.


"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이는 드 메스트로와 에드거 앨런 포"

시인 보들레르의 첫 번째 저작은 <1845년 미전평>이다. 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을 연구 평가한 글이다. 보들레르는 연이어 <1846년 미전평>도 출판한다. 미술비평가로서도 보들레르는 꾸준히 활동했다. 그는 화가 들라크루아를 높게 평가했고, 독일의 바그너 공연을 보고 열광하여 음악 평론도 쓴다. 그는 시와 음악 미술을 모두 받아들인 지성이었다. 그리고 1847년에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만나게 된다. 보들레르와 에드거 앨런 포는 국적만 달랐지 여러 가지로 공감대가 형성되는 시인들이었다. 작품을 통하여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았고,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배우고 익히고, 교감했다. 그는 포를 만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이는 드 메스트르와 에드거 앨런 포이다'라고 고백했다.

역시 저주받은 천재 포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경제적인 환경과 광기 어린 생활을 하던 보들레르의 영혼은 당시 부르주아들의 안락한 생활을 속물적인 것으로 보았다. 보들레르는 세속적인 부르주아를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부정하면서 귀족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그는 실용주의적인 세상에 맞서 '댄디즘'으로 무장했다. 지금도 문학청년들은 한 때 댄디즘의 세례를 받는다. 댄디즘은 가난한 시인이 입기 좋은 외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투 안에서는 배고픈 위장이 있다. 19세기에 이미 현대적인 시를 쓴 시인이 물질주의와 민중, 민주주의에 대해 갖는 거부감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중 도덕 훼손죄'로 기소된 시집 [악의 꽃]

1857년 소설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 외설죄로 재판을 받고 무죄가 선고 되었다. 이즈음에 보들레르는 [악의 꽃]의 원고를 풀레-말리사스 출판사에 넘겼다. 그리고 그 해 4월 계부인 오픽 장군이 사망하고 홀로 된 어머니는 옹플뢰르의 별장으로 이사했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6월 25일 출간된다. 초판 [악의 꽃]에는 모두 100편의 시가 실렸다.

[악의 꽃]이 '풍기문란하다'라는 서평에 자극을 받은 프랑스 내무부 공안국이 이 책을 고발했고, 보들레르와 출판사는 '공중도덕 훼손죄'로 기소되었다. 플로베르에 이은 필화사건이었다. 저자와 출판사는 벌금형을 받았고 시 6편은 삭제 명령을 받았다. ([악의 꽃]에 대해 법적인 구속이 없어진 것은 한 세기가 지난 1949년이었다. 프랑스 대법원은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대한 유죄선고를 파기하고, 그와 작품에 법적인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날은 8월 31일 그의 제삿날이었다. 이 시집으로 그는 현대시의 시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시인은 파리를 떠나 어머니 곁에 머물 생각도 하고, 단상집인 [벌거벗은 내 마음]의 원고를 쓴다. 이 작업은 보들레르 말년의 내면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산문들이다. 절망적인 상태의 금치산자, 연인 잔느 뒤발과의 결별, 고독, 우울, 매독, 집필 구상 중인 원고에 대한 절망감 등 보들레르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가시나무와 같은 단상들이다. 이 단상과 더불어 산문시집인 [파리의 우울]은 그가 인생의 마지막 나날들에 기록한 산문 시편들이다. 그리고 보들레르의 단편소설인 [라 팡파를로]는 그의 유일한 소설이고, 문학청년 시절 소설에 대한 보들레르의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12,000부를 발행한다.


'시인은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들을 비웃는 구름의 왕자와 비슷하다'

보들레르는 우울한 파리를 떠나 벨기에로 인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 생활 역시 저주받은 시인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지경이 되어 보들레르는 [불쌍한 벨기에여]라는 산문집을 집필하면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시인은 브뤼셀에서 현기증과 구토를 극심하게 일으키고 결국 반신마비의 상태가 되어 늙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파리로 돌아왔다. 그가 사랑하고 미워하였던 우울한 파리에서 이 세상의 여행을 끝냈다. 1867년 8월 31일 오전 11시, 시인의 나이 46세였다.


'알바트로스'라는 새가 있다. 거대한 바닷새이다. 우주의 심연과 같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장자의 대붕과 같은 이 새는 간혹 항해를 하는 선원들의 손에 잡혀 무기력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모습을 알바트로스에 투영한다.

자주 선원들은 심심풀이로 붙잡는다.
거대한 바다 새인 알바트로스를
아득한 심연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배를
태평스레 뒤따르는 길동무를.

선원들이 갑판 위에 내려놓자마자
창공의 왕자는 서툴고 창피해하며
그 크고 하얀 날개를 배의 노처럼
가련하게 질질 끌고 다닌다.

날개 달린 이 여행객은 얼마나 어색하고 무기력한가!
조금 전까지도 멋있던 그는 얼마나 우습고 추해 보이는지
선원 하나가 담뱃대로 그의 부리를 성가시게 하고
절뚝거리며 다른 이는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불구자를 흉내 내는구나

시인은 폭풍우를 넘나들고 사수들을 비웃는
이 구름의 왕자와 비슷하다.
야유 속에 지상에 유배당하니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힘겹게 하는구나.

이 시는 1859년인 그의 인생 하반기에 발표된 시이지만,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8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시인의 가족들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청년 보들레르를 인도행의 배에 실어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환락의 도시에서 먼 이국으로 유배를 보낸 셈이다. 시인은 항해 도중 폭풍우를 만나 잠시 머물렀던 열대 이국의 섬들을 보고 그 정서를 마음에 담았다. 시인은 인도 행을 거부하고 10개월 만에 다시 파리로 되돌아 왔다. 중년의 나이가 된 시인은 그때 보았을 거대한 바다 새를 떠올리면서 '지상에 유배' 당한 자신의 삶을 시로 노래했다.


나다르와 카르자가 촬영한 보들레르의 사진에 담긴 우울한 눈빛

카르자가 찍은 보들레르의 사진을 들여다본다. 마치 회화 작품과도 같은 절묘한 사진 한 장이다. 미술 평론가인 보들레르는 사진을 경멸하곤 했지만(그는 '현대의 대중과 사진'이라는 에세이에서 사진을 '이것은 재능이 없다거나 게을러서 실패한 모든 화가들의 피난처가 되었다'라고 했다.) 당대 사진예술가였던 나다르와 카르자는 보들레르를 보들레르 답게 찍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보들레리앙에게는 일종의 축복이다.

보들레르는 말년에 젊은 말라르메와 베를렌이 자신에게 열광하는 모습을 보고 '이 젊은이들은 나를 몹시 무섭게 한다'고 했다. 병들고 피곤한 육체는 이제 후배 시인들의 열광마저도 부담스러웠다. 시인이란 누구인가? 간혹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보들레르의 사진 한 장이 떠오른다. 어둡고, 외롭고, 무서운 어둠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보들레르의 우울한 눈빛을 떠올린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보들레르의 [악의 꽃(문학과 지성사)]을 우선 권한다.

보들레리앙 윤영애 선생의 번역으로 나온 이 시집은 보들레르가 남긴 단 한 권의 시집이다.

낭만주의 정신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낭만주의의 결점을 뛰어넘어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등 현대시에 길을 터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1861년 출간된 제2판을 번역 텍스트로 삼았다.

더불어 역시 윤영애 선생의 번역인 [파리의 우울(민음사)]은 [악의 꽃]과 함께 보들레르의 독창적인 시 세계를 보여주는 산문시집이다. 그가 개척한 이 산문시라는 형식은 베를렌, 랭보, 로트레아몽, 말라르메 등 근대 상징파 시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시인은 노파, 거리의 소녀, 노름꾼, 넝마주의 등 파리의 거리를 헤매는 모든 서글픈 암시들을 산문 시편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김붕구 선생의 명저인 [보들레에르(문학과지성사)]를 읽어야만 한다. '알면 보인다'라는 말처럼 이 평전을 통하여 한 시인의 총체적인 모습과 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이다.

김붕구 선생도 지난한 삶을 살아오신 분이다. 문학청년 시절 이 두툼한 책 한 권을 끼고 혜화동 거리를 배회하던 생각이 난다. 그땐 보들레르의 외투를 입고 싶었다. 가난해서 댄디한 척 하고 다녔었다.

마지막으로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민음사)]도 곁에 둔다면 다 읽지는 않더라도 행복할 것이다.

/원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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