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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态詩 공부하기
2016년 02월 02일 02시 07분  조회:368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창작 교실의 현장 학습과 實技論


강의 주제:
생태詩 무엇을 쓰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ecotopia와 tecnopia의 이론과 실제 



                                                                                /송수권(시인, 순천대 교수) 



  일찍이 제임스 러블럭은 유기체와 무기체의 생명현상에서 무기체에도 생명현상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돌멩이 하나도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생성되기까지의 기억의 흔적을 담고 있으며. 그때의 바람소리, 물소리, 생명의 리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무기체의 생명론인 셈이다. 쉽게 말하면 「논어」에 보이는 유물유칙(有物有則)인 "제 자리에 있을 것이 없으면 시끄러워진다"는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므로 생명현상은 우주질서의 순환법칙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色卽空"의 윤회법칙이다. 도가에서 말하는 청정(허정)의 세계에 윤회법칙(연기법칙)이 있을 뿐이다. 
  테크노에 앞서 다행히 우리에겐 에코노를 지향할 수 있는 "曲卽全"의 정신적 자양분이 충분하다고 본다. 장자의 제물론, 노자의 도덕경, 선불교, 토속신앙에 이르기까지 이런 애니미즘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천년왕국을 지향해 온 테크노의 자본론이나 인간욕망 중심주의에 통제를 가할 수 있는 여유있는 공간이 보인다. 보살행이나 무소유는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가진 것을 비워간다"는 뜻이며 "좋은 삶은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순환현상을 오랜 전통 속에 그 피를 갈무리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에코토피아 시론에서 최근에 주목되고 있는 시집 「우포늪의 왁새 2002, 시와 시학사」를 텍스트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에코토피아 시론에 의하여 총 56편의 연작이 "우포늪"이라는 단일공간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모두에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곧 시적 진실을 말한다"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집은 아름다운 "진실" 즉 "깨달음의 미학"이 투철한 인식소에 의해 그 정체성이 가장 확실한 시집으로 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는 우포늪지기로서의 삶을 살면서 체험과 깊이 또는 직관력의 통찰(total view)로 이루어낸 시집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1억 년 전의 사서史書를 읽고 있다 
빗방울은 대지에 스며들 뿐만 아니라 
돌 속에 북두칠성을 박아놓고 우주의 거리를 잰다 
신호처럼 일제히 귀뚜리의 푸른 송신이 그치고 
들국 몇 송이 나즉한 바람에 휘어질 때 
세상의 젖이 되었던 비는 마지막 몇 방울의 힘으로 
돌 속에 들어가 긴 잠을 청했으리라 
구름 이전, 미세한 수증기로 태어나기 전의 블랙홀처럼 
시간은 그리움과 기다림을 새면 화석이 되었으리라 
나는 지금 시詩의 문을 열고 뚜벅뚜벅 걸어오는 
1억 년 전의 생명선線 빗방울을 만난다. 
사서史書에 새겨진 원시적 우주의 별자리를 읽는다. 



  이 시는 "빗방울 화석"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1억년 전의 사서(史書)란  "살아있는 고문서(古文書)"라는 "우포늪"에 대한 암유적인 표현이면서 동시에 박물관에 들어 있는 실제의 화석 표본을 말한다. 대표적인 화소는 물론 빗방울이지만 이 빗방울이 화석에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적 생명체로 우주의 별자리까지 읽어내는 데뻬이지망이 잘 걸린 작품이라 할 것이다. 하나의 돌멩이에 불과한 무기체에 시인의 호흡을 불어넣어 아니마에서 아니무스가 탄생되는 이미지의 연속성이 율동감, 즉 살아있는 생명의 "춤"으로 상승적 구조의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다. 러블럭의 가이아(Gaia) 가설에 적중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시인이 이 빗방울을 만나기까지는 1억년이 상기한 셈이다. 
  따라서 시란 랑그의 세계, 다시 말하면 국어사전적인 유통언어로 써진 것이 아니라 침묵의 언어란 것, 그 침묵 속에 잠들어 있는 1억 년 전의 침묵의 세계를 언어로 끌어내는 창작 행위란 것도 알 수 있다. 릴케식으로 말한다면 "시인이 오기 전까지 이 세계에 완성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이 곧 고백적이고 시적이며 주술적인 언어가 담당하는 감수성의 세계인 빠롤인 셈이다. 따라서 우포늪은 살아 있는 화석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고문서"라는 단초가 된다. 이 단초는 "史書" 라는 전체적인 인식소에 의해 생명 현상이 낱낱의 생체 리듬으로 환유의 시법에 의해 춤판인 "우주공동체의 정신(identity)"을 드러낸다. 이것이 시인의 정체성이며 특히 생태시학에서는 믿음과 구원에 이르게 된다. 다음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고 있는 "우포늪의 왁새(왜가리)"다. 



득음은 못하고, 그저 시골장이나 떠돌던 
소리꾼이 있었다. 신명 한 가락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그만이던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 
꿈 속에서도 폭포 물줄기로 내리치는 
한 대목 절창을 찾아 떠돌더니 
오늘은 왁새 울음되어 우항상 솔밭을 다 적시고 
우포늪 둔치, 그 눈부신 
봄빛 위에 자운영 꽃불 질러 놓는다. 
살아서는 근본마저 알 길 없었던 혈혈단신 
텁텁한 얼굴에 달빛 같은 슬픔이 엉겨 수염을 흔들고는 했다. 
늙은 고수라도 만나면 
어깨 들썩 산 하나를 흔들었다. 
필생 동안 그가 찾아 해맸던 소리가 
적막한 늪 뒷산 솔바람 맑은 가락속에 있었던가. 
소목 장재 토평마을 양파들이 시퍼런 물살 몰아칠 때 
일제히 깃을 치며 동편제 넘어가는 
저 왁새들 
완창 한 판 끝냈다고 하늘 선회하는 
그 소리꾼 영혼의 심연이 
우포늪 꽃잔치를 자지러지도록 무르익힌다. 



  왜가리는 백로과의 "나그네 새"로서 여름 철새다. 우항산(牛項山) 솔숲을 깔고 먹이사냥에 바쁜 왜가리떼가 "떠돌이 소리꾼(귀명창, 떡목)"에 겹쳐진 이미지로 읽히는 시다. 여름 철새라는 이미지와 함께 시끄럽게 울어대는 청각현상이 동편제 소리꾼으로 변용되어 우포늪의 생명의 춤으로 재현되고 있다. 지구의 온실 가스로 요즘은 이 왜가리도 텃새화 되어가지만 "텁텁한 얼굴에 달빛같은 슬픔이 엉겨 수염을 흔들고"는 "흰 두루마기의 그 사내(소리꾼)"와 어울려 사뭇 안쓰러운 정조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백로는 흰 몸빛깔이고 왜가리는 등이 잿빛이고 배가 흰빛깔로 설명되지만 흰두루마기건 때절은 잿빛 두루마기이건 간에 2차 정서를 흔드는 데는 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싶다. "빗방울 화석"에서 견고한 원시적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면 "우포늪 왁새"에서는 전통서정의 표본적인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이 시인의 경우는 이미지의 선명성과 전통정서의 수용으로 시쓰기에서 인지적 충격과 정서적 충격을 동시에 노출시키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지로 경도되는 시는 그만큼 드라이 해져서 정서 유발의 물끼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르 판단되는데, 전통 정서를 사용하므로서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쓰기에 있어서 방법적인 면을 검증할 수 있는 작품으로 "암벽 틈 제비꽃"을 예시해도 좋을 듯하다. 



세진리 공룡화석 새겨진 암벽 틈에 
나란히 꽃 핀 제비꽃 두 포기 
너희는 어떻게 여기다 뿌리를 박았느냐! 
오한과 허기 어떻게 견디며 
새 잎 피워내고, 보랏빛 환한 얼굴로 
섬세한 사랑의 촉수를 변함없이 흔들 수 있느냐! 

        (중략) 

오늘부터 내게도 어떤 그리움 생겨 잠들지 못한다면 
그 아픈 영혼의 반쯤은 그대들 책임이라 



  이른 봄 공룡화석에다 백리를 박고 된 제비꽃 두 송이야말로 시인의 "견고한 이미지 잡기"와 "전통정서"가 어떻게 만나 시인의 시 정신(정체성)이 극기와 사랑의 생명력을 붙잡아 내는가를 알 수 있어 그 통로를 다시 말하면 그 비의(秘義)를 들여다보게 한다. "섬세한 사랑의 촉소"가 화석에 닿아 보랏빛 생명력의 "제비꽃"을 피우낸다. 이것이 극기와 사랑의 풍경인 것이며 <<우포늪 왁새>> 56편은 이 치밀한 "극기의 풍경"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인 것이다. 예시한 "암벽 틈 제비꽃"의 "오늘부터 내게도 어떤 그리움 생겨 잠들지 못한다면/ 그 아픈 영혼의 반쯤은 그대들 책임이라"는 능청스런 건너뛰기로 고통을 드러내는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우포늪 왁새>>는 시 쓰기의 책략(策略)으로 면밀 극도하게 "이미지와 정서의 구조화"에 공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게 한다. 즉 우포늪이라는 "살아 있는 古文書"를 빈틈없이 섬세한 촉수의 언어들로 文書化 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위에서 나는 "섬세한 촉수의 언어들"이란 말로 이 시집을 정리하였는데 보다 더 구체적인 감각을 흔들어 놓은 다음 시 한 편을 텍스트로 내보이고자 한다. 


바람 불고 잎들이 
뒤척거린다 
그 아래 잎들의 신음이 쌓여 
그림자가 얼룩지고 있다 
산책 나온 아침, 눈이 동그래진다 

나뭇잎에 허공 길이 뚫리고 
거기 헛발 디딘 햇빛 
금싸라기를 쏟아 세상이 다 환해진다 
아 나뭇잎 허공 
벌레 먹은 이 자리가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이라니, 

허공에 빠진 내 생각 뜯어먹으며 
또 살찐 벌레 한 마리 지나간다. 



  "푸른 힘이 은유의 길을 만든다"의 전문(全文)이다. 흔히 하는 말로 시인은 "병아리가 이빨 닦는 소리"와 "지리산 반달곰이 뭣터는 소리까지도 들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말테의 수기"에 쓰여 있는 릴케식으로 말한다면 "모든 사물은 가슴을 열어 놓고 울면서 호소하는데 그것을 받아적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 하라"고 충고한다. 이는 곧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영혼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feeling)작용을 이름이다. 이는 곧〈色, 受, 想, 行, 識〉의 오온(五蘊)의 현상인 바 실체가 없는 허상만 있는 형상세계의 해석을 이름이라. 보들레르 시학으로 가면 이것이 삼라만상의 조응(상응)관계다. 
  위의 시에서 제시된 것은 "벌레 먹은 한 잎의 허공"을 들여다 보고 깜짝 놀라 깨달음을 얻는 시인 나름대로의 큰 인식소가 숨어 있다. 그것은 "아 나뭇잎 허공"이란 감탄 어법에 이어진 "벌레 먹은 이 자리가/ 우화(羽化)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 이란 사실에서 기인한다. 
  1연을 읽어보면  바람 →  일들의 뒤척임 →  (포개진) 그 아래 일들의 신음 →  그림자의 얼룩 →  눈이 동그래짐, 인데 선명한 이미지로서 그려진 음영(그늘)관계다. 여기에서 시인은 아침 햇빛을 받지 못한 그늘진 잎들의 "신음"을 듣게 된다. 
  제 2연은 1연에 의한 시상 전개로서  나뭇잎에 뚫린 구멍 →  헛발을 딛는 햇빛 →  밝아지는 세상 → (아 나뭇잎 허공)→  벌레 먹은 자리 →  우화를 기다리는 은유의 길로 깨달음의 통로를 열면서 결구연에 가서 그 나뭇잎 허공에서 비로소 "살찐 벌레"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탈각을 하고 어느 날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할 수 있는 "생명의 춤"이란 에코체인(eco-chain)을 발견한다. 더 축소한다면 윌리엄 루켓이 말한 푸드체인(food-chain)으로서 구멍(허공)을 들여다보고 허공의 진리, 즉 공(空)에서 색(色)을 끌어내는 시적 진리야말로 눈부시지 아니한가. 그리고 이 정신이 바로 티벳인들의 "음식은 음식으로 돌린다"는 그 몸시학인 조장정신과 맞닿아 있다. 벌레 한 마리가 나뭇잎에 구멍을 파며 야금야금 아침 식사를 하고, 그 허공의 길을 가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인가? 새로운 발견의 미학없이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이제 우리를 질리게 한다" 는 그 창조적 발단에 불을 지핀 보들레르 시학을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그러므로 "섬세한 언어의 촉수"없이 시를 쓴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행위인가? 또 이 촉수(觸手)없이 삶을 해석하는 일이야말로 혀 뽑힐 일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우리 생태詩는 1970년대에 발화하여 지금은 그 체험론의 깊이가 이만큼 완숙해졌다는 사실을 배한봉 시인의 <<우포늪 왁새>>에서 들여다보는 즐거움에 해당된다. 동시에 이 시편들은 현재의 이 시점에서 보면 가장 잘 써진 텍스트로 원용되어도 무방하리라. 우포늪은 물론 곰마을 은빛 고개(能村面 銀峴里) 솔발산에 있는 식충식물의 보고인 무제치늪이나 화엄늪의 기행이나 생태詩도 나와야 할 것을 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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