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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이용악
2016년 02월 06일 01시 59분  조회:4042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용악 시인, 김지하 시인

 

그리움

 

이용악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워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에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

 취흥(醉興)이 가슴을 타고 손끝으로 흘렀다. 통음(痛飮)하는 와중에 시인은 까만 매직을 뽑아들었다. 그러고는 선배가 취기 오르면 늘 읊어달라 하던 시(詩), 그래서 읊어주면 눈물 줄줄 흘리던 시, 그 시를 휘갈겼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 월북 시인 이용악의 '그리움'이었다.

20여년 전 시인 김지하는 이렇게 서울 인사동의 주점 '평화만들기' 벽에 낙서를 남겼다. 빈속에 깡소주 몇 병 들이켜고 한달음에 외워 토해낸 시다. 1990년대 평화만들기는 당대 문사(文士)와 좌우를 넘어선 언론인들이 주로 찾던 문화 살롱 같은 곳이었다. 김지하의 낙서는 "이름은 평화만들기였지만 좀처럼 평화는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모 단골 문인의 증언대로 밤마다 날 선 논쟁이 오가던 그곳을 늘 지켰다.

이 낙서시가 돌고 돌아 경매에 나왔다. 고미술 전문 경매 회사 옥션단이 26일 서울 인사동 전시장에서 여는 제17회 메이저 경매에서다. 평화만들기는 인사동 내에서 두 번 더 자리를 옮겼다가 얼마 전 문을 닫았고, 그 사이 주인도 바뀌었지만 낙서는 살아남았다. 첫 번째 주인이 가게를 옮기며 김지하의 낙서가 쓰인 벽을 아예 떼 가지고 갔다. 주인이 바뀐 다음 또 한 차례 이사를 갔지만 새 주인도 낙서를 걸어놨다가 이번에 경매에 내놨다. 마침 경매를 맡게 된 옥션단 김영복 대표는 시인과 오랜 친분을 쌓아온 사이였다. 김 대표는 강원도 원주에 사는 시인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고 발문(跋文)을 받았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 시인이 휘갈긴 낙서는 세월을 견뎠다. 김지하가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에서 술 취해 벽지에 휘갈겨 쓴 이용악의 시 ‘그리움’(가로 119cm, 세로 103cm). 이용악 시의 원문과는 약간 다르다. 김지하는 “내 글씨가 아니라 이용악의 글을 봐달라”고 했다
시인은 기억하지 못한다 하나 시인이 휘갈긴 낙서는 세월을 견뎠다. 김지하가 20여년 전 서울 인사동 주점 평화만들기에서 술 취해 벽지에 휘갈겨 쓴 이용악의 시 ‘그리움’(가로 119cm, 세로 103cm). 이용악 시의 원문과는 약간 다르다. 김지하는 “내 글씨가 아니라 이용악의 글을 봐달라”고 했다. /김미리 기자

'언제였던가/ 술 취했던가/ 용악의 詩行(시행)을 벽에 갈겨쓰고 지금 기억도 못 한다/ …/ 이 詩(시)가 어떻게 이렇게 나타나는가?/ 중요한 사건이다/ …/ 허허허/ 한 번 더 웃자/ 허허허허허/ 왜?/ 난 요즘 술을 못하니 웃음밖에 허!'

놀라움과 반가움과 그리움이 해학 속에 뭉그러진 시 한 편이었다. 알코올 빠진 시인의 필체는 20년 전 매직으로 거침없이 써내려갔던 낙서와는 달리 차분하다.

지난주 시인의 원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쓴 시도 아니고, 술 취해 쓴 건데 경매 부친다니 웃기는구먼. 아니, 뭐 종로에 김지하가 오줌 누는 거 누가 찍으면 그것도 팔겠네그려. 허허. 분명히 해둡시다. 이 시는 이용악 거요." 이 사건의 주인공은 이용악이란 점을 수화기 건너편 시인은 몇 차례 말했다.

껄껄 웃던 김지하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낙서를) 파는 건 파는 거고, 이 일을 계기로 두 가지가 확실히 알려졌으면 좋겠소. 하나는 이용악이라는 훌륭한 시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민족 통일을 생각해야 할 때라는 것이오." '그리움'은 광복이 되자 함경도 무산 처가에 가족을 남겨두고 홀로 상경한 이용악이 1945년 겨울 어느 눈 내리는 밤 가족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이용악은 진짜 위대한 시인이오. 예세닌, 미당과 맞먹소.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 그런데 반세기가 흘렀는데 우리 민족은 여전히 갈라져 있소. 이제 이런 슬픔 털어낼 때 아니겠소?"

☞이용악(1914~1971)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조치(上智)대 신문학과를 졸업했고, ‘인문평론’ 기자로 근무했다. 일제 치하 민중의 고뇌를 서정적으로 그린 시를 썼다. 광복 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회원으로 활약하다가 군정 당국에 의해 수감됐고, 6·25 때 월북했다. 대표작 ‘북국의 가을’ ‘오랑캐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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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이용악)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제재 : 작은 마을의 가족
▶주제 : 그리움
@@ 구성
1.가족이 있는 북쪽을 그림
2.그리운 작은 마을의 가족들
3.밤잠을 못 자고 가족을 그리는 마음
4.가족이 있는 북쪽을 그림
@@ 감상과 이해
1945년 겨울에 창작되고 네 번째 시집 {이용악집}에 수록된 이 시는 이용악의 시에서는 보기 드문 연가풍의 작품이다. 1939년 이용악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최재서가 주관하던 {인문평론}의 편집 기자로 근무하다가 1942년 고향 경성(鏡城)에 돌아가 있던 중, 1945년 해방되자마자 귀경(歸京)하여 그 이듬해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게 된다. 이 시는, 해방 직후 혼자 상경하여 서울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그가 무산(茂山)의 처가에 두고 온 그의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자유시이지만, 의미상으로는 기·승·전·결의 전형적 형식에 수미 상관의 구조를 곁들인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연[기]에서 시인은 '북쪽 작은 마을'에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있으며, 2∼3연[승]에서는 어느덧 시인이 상상의 날개를 펴고 북쪽의 가족을 찾아가는 모습이 제시되어 있다. 그 곳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 백무선 철길'을 이용해 '느릿느릿 밤새어 달려'야 다다르는 깊은 산골이다. 지금쯤이면 그 곳으로 향하는 화물열차의 검은 지붕에도 눈이 내릴 것이며, 가족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4연[전]에서 화자는 그들이 못견디게 그리워진다. 그러므로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이라는 시행의 '차마'라는 시어 속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 어쩌자고 잠을 깨어'라는 구절은 바로 시인이 머물고 있는 서울도 잉크병마저 얼게 할 정도로 추운데, 그 곳 무산의 가족들은 얼마나 추울까, 하는 화자의 가족들에 대한 염려가 잘 드러나 있다. 5연[결]에는 '북쪽 마을'에 함박눈이 쏟아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묻는 단순한 질문이라면, 5연은 동일한 시행이면서도 시인의 그리움 내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마침내 눈으로 화하여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잉크도 얼어붙게 할 정도의 추위를 몰아오는 '함박눈'임에도 불구하고 화자는 그것을 '복된 눈'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태도이다. 해방이 되자마자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가족들을 처가에 남겨 두고 상경하였던 그로서는 '눈'을 새 시대를 위한 하늘의 축복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 시는 '북쪽'에 두고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함박눈'과 추위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으며, 잉크마저 얼어붙게 하는 모진 추위는 역설적으로 시인의 따뜻한 가족애를 보여 주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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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일제 식민치하의 비극적인 민중의 삶과 이로 인해 일어난 대규모 유이민 문제를 비극적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통찰하고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이를 빼어나게 형상화한 ‘북방의 시인’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전집이 발간되었다. 대표적인 중견 이용악 연구자들인 곽효환,이경수,이현승 3인이 2014년 이용악 탄생 100주년을 맞아 2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한『이용악 전집』(곽효환 이경수 이현승 편,소명출판,2015)은 북에서 발표한 이용악의 시 전편과 북에서 발간한 유일한 산문집『보람찬 청춘』을 비롯한 몇 편의 발굴 산문과 좌담 자료까지 총망라하고 있다.『이용악 전집』은 백석과 함께 1930년대 중후반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이용악의 작품세계 전모를 사실상 처음으로 정본화로 집대성한 것이다.

 ‘북방의 시인’ 이용악

 1930년대 후반의 대표 시인으로 우리는 백석과 이용악을 주목할 수 있다. 백석이 자기 고향인 평북지방에 토착한 삶과 언어들로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었다면, 이용악은 일제에 의해 절멸한 현실주의와 서정성을 한데 아우른 시적 성취로서 돌올하다. 특별히 1930년대가 우리 근대시의 몸이 완성된 시기라는 문학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성취는 더욱 값지다. 요컨대 그 몸은 정신적인 자유의 추구와 모국어의 미학적 충동이 지양된 몸으로서 우뚝하다. 따지고 보면 이용악과 같은 시인이 있어 시가 사회 역사적인 현실과 개인적인 내면을 마주세울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용악의 시는 1930년대 후반에서 해방기에 이르는 시기의 시적 성취가 문학사적 지형 위에서 중요하고, 분단 시대에는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위에서 자신의 시를 우뚝 세워 놓은 것으로서 더욱 주목을 요한다.

이용악(李庸岳, 1914~1971) 시인

 이처럼 이용악이 1930년대 중후반 한국시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시인이면서도 월북 후 북한 시단에서도 주류로 활동한 보기 드문 시인인 점을 고려해 볼 때, 한국전쟁 이후 북을 택한 이용악의 작품과 행적까지 망라한 이 전집은 이용악의 전모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백석에 비해 후속 연구가 활발하지 못했던 이용악 연구에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이용악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전에 발간한 시집『분수령』(1937),『낡은 집』(1938),『오랑캐꽃』(1947),『이용악집』(1949) 등과 해방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 정도만 책으로 묶여졌으며, 그마저도 절판된 상태이다. 이용악의 문학적 위상에 비해 공백으로 있던 이용악 전집의 부재와 정본의 부재를 해결한『이용악 전집』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이용악의 시 전체의 원문을 시집 발간 순서대로 싣고, 시집 미수록시를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로 나누어 발표 순서대로 실었다.

 2부는 동일한 시를 동일한 순서대로 현대어 정본의 형태로 실었다. 3부는 확보 가능한 이용악의 산문과 좌담회 자료 등을 원문대로 발표순으로 싣되, 산문과 기타 자료(좌담 및 설문 등)를 구분하였다. 아울러 부록 편에 정밀한 이용악 생애 연보, 작품 연보, 이용악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관련 화보, 참고문헌 및 이용악 전집 관련 부기사항을 담았다.

 비로소 ‘온전한’ 이용악을 만나다

 2014년은 이용악 시인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이용악 문학의 의의와 재조명의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터이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현저히 그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이용악 시 연구의 가장 큰 원인은 새로운 연구 지평에 어울리는 이용악 전집의 부재, 무엇보다 정본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1988년 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와 함께 출간된 윤영천 편『이용악시전집』은 이용악 시를 독자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지만, 월북 이후의 이용악의 발자취를 보여줄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고, 그마저도 현재 절판된 상태로 있다. 2015년 벽두에 소명출판에서 새롭게 출간된『이용악 전집』은 앞선 전집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를 보완하고, 연구자들 사이에서 요구되어 온 온전한 이용악 전집의 발간에 대한 요구와 정본에 대한 갈망을 충실히 반영하고자 한 결과물이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이용악 전집』의 특징은 시를 포함해 산문과 좌담회 원고 및 설문과 같은 기타 자료를 모두 망라하였다는 데 있다. 이용악이 출간한 다섯 권의 시집,『분수령』(1937),『낡은 집』(1938),『오랑캐꽃』(1947),『이용악집』(1949),『리용악시선집』(1957) 등은 물론 시집 미수록 시, 이번에 새로 발굴한 산문집『보람찬 청춘』(1955)을 비롯한 몇 편의 발굴 산문과 좌담 자료까지 망라된 새 전집은 이용악의 전모를 보고 싶어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횡재라도 만난 듯한 기쁨을 줄 것이다. 새로운 전집은 이용악 시 연구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용악의 시를 사랑하는 일반 독자에게도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이용악 전집』의 엮은이들은 ‘현대어 정본을 수록한 것은 이용악의 시가 다른 시인들의 경우처럼 문학사적 연구 대상을 넘어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을 담아, 이 전집의 체제는 전체적으로 시와 산문으로 나누고, 시는 원문과 현대어 정본으로 나누어 각각을 다시 시집의 체제에 따라 싣고, 시집 미수록 시의 경우에는 월북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싣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용악의 경우는 월북 이전에 이미 시선집을 간행하는 등 선집 작업이 시인 스스로에 의해서 두 번이나 이루어졌는데, 이를 시집 단위로 전집에 포함시킴으로써 중복 작품을 판본별로 비교 가능하도록 하였다. 특별히 시는 원문과 현대어 정본으로 나누어서 제시했는데, 원문은 연구자들이 편자의 가감 없이 수록 지면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차별화하였다. 또한 정본화 작업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어휘에는 주석 작업도 진행하였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연구자들의 만만찮은 노력과 품이 들었다. 공동 편자 곽효환, 이경수, 이현승 외에도 중앙대학교와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의 여러 연구자들이 자료 수집과 입력과 교정 작업에 함께 참여하였다. 이번에 새로 발간된『이용악 전집』은 전집의 발간이 일종의 집단 지성의 결과물임을 실질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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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악이 남쪽에서 펴낸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 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북쪽’)

이용악 시인
이용악(1914∼1971)의 이 시를 신경림 시인이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다. 그는 “읽으면서 가슴 속으로 찡하는 울림 같은 것을 받았다”면서 “그때는 이용악 시인이 월북을 했는지조차 몰랐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그분의 시집을 구해 시집 맨 앞에 실려 있던 이 시를 읽고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대취한 김지하 시인이 20여년 전 인사동 주점 ‘평화 만들기’ 벽에 매직펜으로 휘갈겼던 이용악의 ‘그리움’은 지난해 경매 물품으로 나오기까지 했다.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 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내리는가”(‘그리움’)

김지하는 “이용악은 예세닌이나 미당과 맞먹는 진짜 위대한 시인”이라면서 “우리 민족의 서러움을 이토록 우아하게 담다니”라고 찬탄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시인들이 주저없이 인정하는 이용악은 1930년대 중후반 백석 오장환 등과 더불어 한국 시를 대표한 인물이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넘나드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시를 써서 빼어난 명편들을 생산해냈다. 그렇지만 동시대의 월북 시인 백석에 비해 이용악은 연구자들도 적고 대중에게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편이다.
이용악 전집 표지

이용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대산문화재단 상무) 시인과 이경수(중앙대 국문과 교수), 이현승(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등 3인이 주축이 되어 2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이용악 전집’(소명출판)을 펴낸 이유다. 곽효환 시인은 “문학적 중요성에 비해 이용악은 제대로 된 전집이 없어 소홀하게 다루어졌다”면서 “근대시에서 너무나 중요한 시인에게 이제야 비로소 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용악이 6·25전쟁 때 월북하기 전까지 남쪽에서 남긴 시집 ‘분수령’ ‘낡은 집’ ‘오랑캐꽃’에는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에 발을 딛고 높은 기품을 내보이는 북방정서가 잘 스며들었다. 고려대에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곽효환 시인은 “백석이 지적인 시인이라면 이용악은 가슴으로 쓴 시인”이라면서 “남쪽에서 마지막으로 펴낸 ‘오랑캐꽃’이야말로 그중 가장 빛나는 절정의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신경림 김지하가 좋아한 ‘북쪽’이나 ‘그리움’과 더불어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전라도 가시내’ 같은 작품은 이용악 시를 상징하는 명편이다. 남쪽 곡창지대에서 북간도까지 팔려온 ‘전라도 가시내’를 주막에서 만난 함경도 사내의 연민이 눈보라 속에서 서럽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 ‘문학신문’에 실린 시편.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싹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이경수, 이현승 교수와 함께 이용악 전집을 엮어낸 곽효환 시인. 그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이용악에게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준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집에는 연구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을 배려해 출간 당시의 표기법을 그대로 살린 원문과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친 ‘현대어 정본’을 함께 수록했다. 월북 이후 북에서 펴낸 시집과 산문, 좌담 자료까지 모두 망라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동안 남쪽에서 나온 시집들만 알려져 있어 연구자들이 월북 이후 21년을 더 살다 간 이용악의 반쪽 모습만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북에서 이용악은 체제에 순응하며 김일성 찬양시와 노동 영웅을 부추기는 ‘보람찬 청춘’ 같은 산문까지 쓰면서 삶을 이었다. 남쪽에서 생산했던 빼어난 시들에 비하면 문학적으로 평가할 가치는 적지만 일제 강점기와 해방과 분단을 거치면서 한 시인이 어떤 질곡의 삶을 살다 갔는지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료라 할 만하다. 전집을 엮은 이들은 서문에서 “월북 이전 이용악의 시적 성취 때문에 이용악의 시적 전모도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면서 “통일시대의 문학사적 굴절을 이용악의 시보다 더 잘 담고 있는 텍스트는 없을 것”이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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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악(李庸岳)의 ‘오랑캐꽃’ 주제(主題)

 

오랑캐 꽃 주제 :

①유랑민(流浪民)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②정든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유랑민들의 비극적인 삶과 비애

③국경을 넘어 유랑을 떠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수난과 비애

 

해설 :

오랑캐꽃은 사실 알고 보면 오랑캐의 혈통이나 풍습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야생화(野生花)이지만, 그 뒷모습이 머리채를 드리운 오랑캐의 뒷머리와 유사해 우리 민족이 그 꽃 이름을 오랑캐꽃이라 붙였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민족 중 상당수가 왜놈의 탄압을 피해 유랑민이 되어 국경선에 흐르는 강을 건너 옛날 오랑캐 땅으로 쫓겨 가 살게 되었는데, 함경북도 경성 출신인 이용악(李庸岳) 시인(詩人)은 마치 고려 때 우리 나라 북쪽에 정착해 살던 여진족(女眞族)들이 윤관(尹瓘) 장군을 비롯한 고려 장군들에 의해 쫓겨 가는 모습을 길가에 핀오랑캐꽃을 보고 떠올리게 되며[연상(聯想)],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옛날 여진족 오랑캐들이 오래 정들어 살고 있던 함경도 땅에서 쫓겨 간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쫓겨나 유랑민(流浪民)의 신세가 된 것을 목놓아 울고 싶을 만큼 몹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1연에 나오는 시어(詩語) 오랑캐는 우리 민족에게 쫓겨난 북방(北方) 오랑캐 뜻하는 것이지만, 제3연에 보이는 오랑캐꽃’은 사람이 아닌 꽃(식물) 자체를 나타내는 시어(詩語)로서, 삶의 터전을 빼앗긴 힘없는 우리 민족의 상황을 비유하는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되어, 이 시인을 울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에서의 오랑캐꽃은 고려 시대(高麗時代)와 일제 치하(日帝治下)의 시공(時空)을 넘나들며, 약(弱)한 자(者) 내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유랑민을 연상(聯想)하게 하는 매개체(媒介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오랑캐꽃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왜놈들의 등쌀을 피해 이 땅을 떠나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극적 운명(현실 상황)과 비애(悲哀)를 그 꽃에 가까이 다가가 독백(獨白)하는 형식으로 노래한 이 시는 오늘날 파인(巴人) 김동환(金東煥)의 장시(長詩) 국경의 밤과 더불어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의 우리 민족의 수난을 잘 표현한 대표적인 절창시(絶唱詩)로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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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꽃 : 이용악


오랑캐꽃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구름이 모여 골짝졸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시의 서두 해설 :

시인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는데,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윤관(尹瓘)의 여진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후에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
* 감상 : 망국민의 한 사람으로 괄시를 받으면서도 오랑캐족에 인간애를 느끼는 것은 3자 입장에서 그들의 한을 노래하면서도, 곧 우리의 한을 노래하는 것이며 시인의 깊은 인간미를 짐작할 수 있다.
* 구성
· 프롤로그 : 오랑캐꽃의 어원을 역사적으로 설명(민족 승리의 감정)
· 제1행~제4행 :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쫓겨가는 오랑캐의 뒷모습)
· 제5행~끝 : 현재의 상황(유랑민의 이미지와 결부)
* 주제 : 망국민과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
* 출전 : 시집 [오랑캐꽃](1947)

 

* 도래샘 : 빙 돌아서 흐르는 샘물. ‘도래’는 도랑의 함경도 방언.


< 감상의 길잡이 >

일제의 수탈로 말미암아 소위 오랑캐땅으로 쫓겨난 유이민들의 비극적 삶을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서정주로부터 “망국민의 절망과 비애를 잘도 표했다.”는 절찬을 받은 바 있다.
이 시는 ‘오랑캐꽃’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민족이 처한 비통한 현실에 대한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작품이다. 복잡한 비유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그 의미를 쉽사리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연약하고 가냘픈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연민을 통해 이민족의 지배 하에서 노예적인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삶과 운명을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시는 오랑캐꽃의 이미지와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등치(等値)시킴으로써 개인적인 서정을 그 시대의 보편적인 서정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형태가 오랑캐의 머리 모양을 닮았다는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에 오랑캐꽃이라 불리는 것이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그 옛날의 오랑캐나 다를 바 없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 버린 민족의 처지가 동일하다는 현실 인식이 이 시의 주요 모티프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오랑캐꽃이라는 구체적인 사물에 대한 연민의 정을 민족이 처한 객관적 현실에로 확대시키고 있는 것이 이 시의 기본적 구조가 된다.


이 시는 첫머리에서 ‘오랑캐꽃’의 명명(命名)에 대한 유래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오랑캐와의 싸움에 시달렸던 우리 조상들이 ‘오랑캐’의 뒷 모습과 ‘오랑캐꽃’의 뒷 모습이 서로 닮아 그 꽃을 ‘오랑캐꽃’이라 했다는 설명이다. 즉, 그 명명은 과거의 전쟁 체험 및 모습의 유사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오랑캐꽃’의 명명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앞머리에 제시해 놓고 전개되는 작품 내용은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1연은 오랑캐와 고려와의 싸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이어 2연에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이 상당 기간 지났음을 묘사적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3연은 화자의 주관적 인식과 그로부터 촉발되는 화자의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화자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고, 또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에 대해 극도의 비애감을 느끼고 있다. 즉, 오랑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면서도 ‘오랑캐꽃’이라 불리게 된 데 대해 화자는 극도의 슬픔을 느끼고 있다. 그러한 감정은 마침내 ‘울어 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이라는 마지막 구절에 이르러 화자의 감정은 폭발되고 만다. ‘오랑캐꽃’이라는 잘못된 명명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면, 화자의 슬픔은 이러한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일제에 의해 오랑캐라고 천대받던 유이민들이자, 더 나아가 전 조선 민중의 억울함과 비통함을 암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맥락 읽기>
1. 1연에서 쫒은 자와 쫒겨난 자를 지적해 봅시다
☞ 쫒은 자 : 구려 장군님
☞ 쫒겨난 자 : 오랑캐

2. 쫒겨난 자의 상황을 짐작해 봅시다.
☞ 경황없이, 정신없이... 구려 장군님의 표현대로라면 혼비백산해서...

3. 왜 그렇게 생각했습니까?
☞ 돌봐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낙(약한 자)과 지켜야 할 자존심 (우두머리)도 버리고 가야 할 절박한 상황.
☞ 맑게 흐르는 도래샘도 정든 초가집도 미련없이 버려야 하는 위태로 상황 가랑잎처럼

4. 오랑캐가 쫒겨간 뒤 구려민들의 삶은?
☞ 구름이 태평스럽게 골짜기를 흐르듯, 평온한 삶이 수백년 동안 계속 되었다.

5. 3연을 통해서 볼 때 말하는 이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나?
☞ 너, 오랑캐꽃

6. 허고 많은 이름 놔두고 왜 하필 오랑캐 꽃인가?
☞ 너의 뒷 모양이 머리테를 드리인 오랑캐와의 뒷머리와도 같기 때문

7. 오랑캐와 오랑캐 꽃의 차이점이 있다면?
☞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았고,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른다.

8. 오랑캐의 피한방울 받지 않은 채 오랑캐라 불린다면 어떤 심정이겠는 가?
☞ 기가 막혀 울고 싶어도 울 수가 없다.

9. 그렇다면 이 작품이 나온 시대적 상황(1939년)을 고려할 때 그 시대의 오랑캐 꽃은 누구이겠는가?
☞ 우리민족

10. 말하는 이가 오랑캐 꽃에게 해 주고 있는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 두 팔로 햋 빛을 막아 줄께, 울어 보렴 목 놓아 울어 보렴

11. 오랑캐꽃(우리 민족)이 울 수없었던 이유와 오랑캐꽃(우리 민족)에 대 한 작중 화자의 태도는?
☞ 고구려 장군님이 오랑캐로 부터 오랜 투쟁 끝에 지켜내고 대대로 삶을 이어오던 이 땅을 어이 없이 빼앗긴 기막힌 심정으로 인해 울 수 도 없음. 작중 화자는 오랑캐 꽃의 처지를 같이 슬퍼하고 오랑캐꽃의 슬 픔을 토로하도록 유도해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려 한다.

12. 결국이 시는 누가 무엇을 노래한 시인가?
☞ 작중 화자는 외세로부터 삶의 터전을 빼앗긴 민중의 아픔을 오랑캐꽃을 통여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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