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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驗-詩精神
한국 시에 있어서 1950년대는 실험의 연대(年代)였다. 6·25 이후 지난날을 정리하고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시기로서 기성의 것에 대한 재검토·반성·회의가 대두되었다. 대략 1950년대 시인들이 모색한 시의 방향은 대략 다음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첫째는 종래의 인생파, 자연파, 생명파가 추구한 전통적인 세계를 참신한 현대감각으로 노래한 이원섭(李元燮), 이동주(李東柱), 김관식(金冠植), 이형기(李炯基) 등과 후기에 등장한 박재삼(朴在森), 구자운(具滋雲), 이성교(李姓敎) 등을 들 수 있다. 김관식과 박재삼을 제외한 다른 시인은 모두 1940년대 말에 등장한 사람들이다. 이원섭은 초기의 노장적(老將的)인 세계에서 1950년대 초에는 기독교적인 작품세계로 변화했고, 이동주는 품위 있는 풍속의 세계를, 이형기는 다한(多恨)과 음영의 현대적 영탄을, 김관식은 동양적인 달관(達觀)의 인생관을, 박재삼은 전통적인 가락과 정(情)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둘째 경향은 현대 서구시의 방법을 채택하여 새로운 서정의 세계를 보여준 김춘수(金春洙), 김윤성(金潤成)과 초기의 김수영(金洙暎), 김광림(金光林), 김종삼(金宗三), 박성룡(朴成龍), 박희진(朴喜璡)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전통파에 비하여 관념적인 요소와 지적인 특색을 나타낸 시인들이다. 김춘수는 초기의 감각적이며 사유적인 것에서 관념의 베일을 벗기는 지혜의 형상(形象)을 보여주었는데, 이 시인의 시 정신은 1950년대에 활동한 시인들 중 젊은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다. 김윤성은 평범하고 미세한 것을 소재로 하여 평면적이면서도 짜임새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한 것이 특징이며, 김수영은 모더니즘에서 출발하여 문명 비판 또는 생활의 시로서 엄숙성과 진실을 보여준 시인으로서,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끈질긴 실험정신으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시인이다. 1950년대 후기에 등장한 김광림과 김종삼·박성룡도 그 세련된 정서와 관념의 깊이를 각각 보여준 시인이었다. 셋째 경향은 현대적 감각으로 문명과 도시와 사회적 모럴을 보여준 일군의 모더니스트들인 박인환, 조병화, 김규동(金奎東) 등을 들 수 있다. 박인환은 김수영과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에서 출발한 시인으로 요절하기 전에 발간한 시집 <박인환 선시집>에서 비평성과 서정성의 조화를 나타냈고, 조병화는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이후 순정적(純情的)인 감성으로 현대의 풍속을 노래했다. 김규동도 1950년대 모더니스트의 집단인 '후반기(後半期)' 동인으로 출발한 시인인데, 시집 <나비와 광장>에서 일상 회화의 언어를 시에 사용함으로써 현대의 감상을 노래했다. 이와 함께 협의의 모더니즘 정통파(正統派)의 일단을 지지하는 시인으로는 조향(趙鄕)·김종문(金宗文)·김차영(金次榮)·이활(李活) 등이 1950년대의 이 경향을 대표한다. 조향은 서구의 1930년대의 쉬르레알리슴에 영향을 받은 시인이고, 김종문, 김차영, 이활도 1차대전 전후 아방가르드의 흐름에 영향받은 시인들이나 뚜렷하게 성공한 흔적은 없다. 부산 피난 중에 모였다가 환도 후에 해산한 모더니스트의 집단 '후반기'의 동인은 조향, 김경린, 박인환, 이봉래, 김차영, 김규동이었다. 넷째 경향은 지성적인 서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현실에 대해 역설과 야유를 퍼붓고 문명 비평적인 일군의 시인들로, 전봉건(全鳳健), 송욱, 김구용(金丘庸) 또한 후기에 등장한 민재식(閔在植)·신동문(辛東門) 등이 이에 속한다. 전봉건은 장미꽃의 가시로 비유되는 지적인 서정시인으로, 6·25 이후 모더니즘의 한국적 전개에 대한 자각이 엿보였다. 송욱은 <하여지향(何如之鄕)> 등에서 문명 비평의 알맹이에 전통적 가락, 한자음(漢字音)의 마술성을 통한 야유 등 전통적인 한국 시의 새로운 실험을 의도한 시인이다. 김구용은 초기 시에서 깊이 있는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다가 1950년대 후기부터 시의 완전 해체, 장시(長詩)에의 기도, 이야기의 전개를 실험했는데, 지적이고 고답적(高踏的)인 그의 혁신은 충분히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다. 앞의 경향에서도 언급된 1950년대 후기에 등장한 구자운·김관식·박재삼은 전통파로, 박희진·박성룡·민재식은 신서정파로, 김광림·김종삼·신동문 등은 모더니즘의 변환적 계승으로, 박봉우(朴鳳宇) 등은 민족의식을 내세워 1950년대에 활동한 대표적 시인들이었다. 한편 이들의 경향과는 달리 '사회파'라 불릴 수 있는 김용호, 구상, 설창수(薛昌洙), 이영순(李永純), 이인석(李仁石) 등과 모더니즘의 일단에서 영향받은 고원(高遠), 장호(章湖), 김요섭(金耀燮), 생활의 깊이와 사랑의 꿈을 노래한 유정(柳呈), 정한모(鄭漢模), 김남조(金南祚), 서구적인 관념과 지성으로 시세계를 이룬 신동집(申瞳集), 박양균(朴陽均), 한성기(韓性棋) 등도 1950년대에 활약한 시인들이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침묵하다가 1950년대부터 다시 활동한 신석초(申石艸), 김현승, 장서언(張瑞彦), 박재륜(朴載崙) 등, 특히 신석초의 <바라춤>은 기억할 만한 재기(再起)의 작품이었다. 특히 조지훈은 초기의 고유 정서에서 역사감각으로 변모되었고, 서정주의 원숙하고 신비적인 시 세계, 박목월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서술적 경향은 1950년대에 괄목할 만한 특색을 보여주었고, 유치환, 박두진, 김상옥(金相沃)도 뚜렷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6·25 이후에 월남한 박남수는 새로운 서정과 지적 태도로 젊은 시인들과 발맞추어 꾸준한 작품활동을 했다.
-年代-詩 광복 직후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활약한 해방전파(解放前派)의 시인들로는 서정주, 유치환,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을 들 수 있다. <화사집>에서 생명의 갈등과 방향의 몸짓을 보여주었던 서정주는 50년대 초에 이르러 <국화 옆에서> <밀어(密語)> 등 고전적 격조의 가락을 보여주더니 <근업초(近業抄)> <마른 여울목> 등의 불교적 인생관을 거쳐 <꽃밭의 독백> <신라의 상품(商品)> <노인 헌화가(老人獻花歌)> <파소(波蘇) 두 번째의 편지> 등에 이르러서는 신라정신이라는 고답적 에스프리로 변모되었다. 처음부터 관념과 사유를 시 정신으로 수용해 온 의지의 시인 유치환은 시집 <예루살렘의 닭> <행복은 이렇게 오더니라> 등 다작(多作)의 활동을 통해 시 정신의 깊이를 더해갔다. 박목월은 시집 <난(蘭)·기타> 등에서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시로 변모하였고, 풍류정신을 밑바탕으로 한 조지훈은 <역사 앞에서>와 같이 역사의식을 전제로 한 우국(憂國)의 목청을 높였고, 묵시록적인 세계를 반복의 율조로 담은 박두진은 강렬한 현실인식과 정의감을 노래했다. 6·25 이후의 시인을 보면 박목월의 생활인적 애환에 대하여 청춘의 애환과 서정성으로 대응되어 있는 이형기는 <들길> <송가(頌歌)> <한일초(閑日抄)> <비> <무엇인가 말하는 것은>, 이동주는 시집 <혼야> <강강술래> 등을 발표했고, 세련된 토착어로 정한이 깃든 전통적 시세계를 보여준 박재삼은 <감나무 그늘에서> <울음이 타는 가을강> <흥부의 가난> <눈떠 새벽 한참은> 등의 시를 발표했다. 활달한 언어 구사가 특징이던 김관식은 <산중재상(山中宰相)> <아양곡(峨洋曲)> <나의 임종은> 등의 시편을 발표했고, 새로운 유미파(唯美派)의 구자운은 <우리들은 샘물에> <성(城)> <발가숭이 바다> 등의 시편을 남겼다. 전후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한 박인환은 <검은 강> <목마(木馬)와 숙녀(淑女)> <투명한 바라이에테> 등과 <선시집>을 통해 참신한 언어감각으로 전쟁과 문명의 그늘과 도시의 풍속을 노래했다. 김수영은 당돌한 이미지의 결합과 에피그램적인 직절성(直截性)이 교묘하게 배합된 파격적인 시인이었다. 그의 <반달> <만용에게> <눈> <적(敵)>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등은 속된 현실에 대한 시인의 분노를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그의 시는 퓨리터니즘에서 출발한다고 하겠다. 송욱은 재래의 한국시에 대하여 대담한 분쇄(粉碎)를 시도한 시인으로 위트·패러독스가 빚어내는 자기류의 시학에서 출발했는데, 그의 시 <하여 지향> <해인 연가(海印戀歌)> 등은 문명 비판적인 시인 의식을 반영한 작품들이다. 전봉건은 처음 전쟁의 현장에서 철조망과 바흐의 협주곡을 병존시킴으로써 그의 옵티미즘의 시세계를 보여주었으며, 뒤에 쉬르레알리슴의 발상으로 <치맛자락> <장미의 미> <속의 바다> <의식(儀式)> 등의 시편을 발표했다. 처음 <제3포복> 등 전쟁의 상흔(傷痕)을 비정의 스타일로 엮은 신동문은 뒤에 사회현실에 대한 저항과 참여의식을 보여 주었는데 <비닐 우산> <내 노동으로> <아아 내조국> 등의 시편을 발표했고, 조병화는 도시인의 페이소스를 나타낸 시인으로서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조국으로 가는 길> <밤의 이야기> 등을 발표했고, 솜씨 있는 풍자시인의 면모를 보여준 민재식(閔在植)은 <속죄양(贖罪羊)> <미국서 만난 서구 여인상(女人像)> 등 지적인 시편들을 발표했다. 박희진은 신고전파(新古典派)의 시인으로 <새봄의 기도> <미아리 묘지> <기술사(奇術師)> <바닷가에서> 등 생의 외경(畏敬)을 노래한 50년대의 대표적 시인의 한 사람이며, 박성룡은 <풀잎> <어느 시골길에서> <어휘집(語彙集)> <바다에서> 등의 시편에서 새로운 서정을 노래한 시인이다. 김구용은 파격적인 실험을 기도하는 시인으로 <소인(消印)> <삼곡(三曲)> 등의 시편을 남겼고 성찬경(成贊慶)은 상극하는 이미지의 충동에서 독특한 심미감의 촉발을 노리고 있는 시인으로 <KIEE풍(風)> <의치(義齒)> <나의 제단(祭壇)> 등의 시를 발표했다. 한편 6·25 전에 등장한 김춘수는 <꽃> <부재(不在)> 등에서 세련된 언어 감각으로 새로운 서정의 경지를 개척한 중견시인으로 발전했으며, 김윤성은 <원경(遠景)> <눈물의 강> <나의 노래> <밤> 등에서 평범한 일상적 현실에서 경이를 표현했다. 또한 광복 전에 등장한 구상(具常)이 <초토의 시> <나는 혼자서 알아 낸다> <비의(秘儀)> 등 사회적 시세계를 보여주었으며, 박봉우는 <휴전선> <조선의 창호지> <조선독립선언문> <지성을 앓고 있는 공동묘지> 등 민족적 현실을 노래한 것도 기억할 만한 일이고, 김종문의 <오리 공화국> <원초(原初)에의 문> <밤의 래프서디> <노주점(露酒店)>, 김종삼의 <앙포르멜> <스와니강이랑 요단강이랑> <원정(園丁)> 등도 기억할 만한 시편들이다.
李鎬雨 (1912-1970) 시조시인. 호 이호우(爾豪愚). 경북 청도 출생. 경성제일고보 졸업. 1940년 <문장>에 <달밤>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대구에 기거, 주로 신문사에 근무하면서 지방문화 창달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1955년 <이호우시조집>을 발간하여 제1회 경북문화상을 수상했고, 그 후 누이동생 영도(永道)와 함께 발간한 오누이 시조집 <비가 오고 바람이 붑니다> 중의 1권인 <휴화산(休火山)>을 발간하여 화제를 모았다. 그는 종래의 시조에서 탈피, 제한된 시조형식을 고수하면서 거기에 현대적인 감각과 정서를 담는 데 성공한 시조시인으로, 의지를 주사상으로 하여 관념적 낭만주의를 개척, 시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초기의 시조는 주로 연작형이었으나 후기로 오면서 대개 단수(單首)로 집약되었다. 주요 작품에 <개화(開化)> <별> <휴화산> <바위 앞에서> <시름> 등이 있다.
金春洙 (1922- ) 시인. 경남 충무 출생. 일본 니혼대학 예술과 수학. 1948년 대구에서 발행되던 동인지 <죽순(竹筍)>에 <온실(溫室)> 외 1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이어 첫번째 시집 <구름과 장미>를 발간하고 <산악(山嶽)> <사(蛇)> <기(旗)> <모나리자에게> <꽃> 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사물(事物)의 사물성(事物性)을 집요하게 탐구하였다. 시에서의 언어의 특성을 다른 어떤 시인보다 날카롭게 응시하며 존재론적 세계를 이미지로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구름과 장미> <늪> <기(旗)>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타령조 기타> <처용(處容)> <남천> <비에 젖은 달> 등이 있으며 시론집도 다수 있다. 1958년 한국시인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을 수상했다.
李東柱 (1920-1979) 시인.전남 해남 출생. 혜화전문 졸업. 1950년 <황혼> <혼야> <새댁> 등이 <문예>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으며, 시집에 <혼야>(1951) <강강술래>(1957) 등이 있음. 1960년 제6회 한국문협상을 받았고, 1962년 5월문예상 장려상을 받았다.
李炯基 (1933- ) 경남 진주 출생. 동국대 졸업. 1949년 <문예>에 <비 오는 날>이 추천되고, 다음해 <코스모스>, <강가에서>가 추천 완료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집으로 <적막 강산>, <돌베개의 시>, <꿈꾸는 한발>, <풍선심장>, <보물섬의 지도>, <그 해 겨울의 눈> 등이 있다. 한국문학가협회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다.
黃錦燦 (1918- ) 강원도 속초 출생. <문예>에 시 <경주를 지나며>(1953), <현대문학>에 <접동새> <여운>(1955)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월탄 문학상, 대한민국 문학상, 한국기독교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현장>, <5월의 나무>, <나비와 분수>, <구름과 바위>, <한강> 등 출간.
趙炳華 (1921-2003) 경기도 안성 출생. 1945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 이과 졸업.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을 발간하여 문단에 데뷔. 아시아자유문학상, 세계시인대회상, 한국시인협회상 등 수상. 시집으로 <하루만의 위안> <사랑이 가기 전에> <안개로 가는 길> <딸의 파이프> 등 출간. 보기 드문 다작의 시인인 그는 요란한 기교와 가식이 배제된 구체적인 시어로써 일상 세계에 향을 불어넣고 있다.
金宗三 (1921-1984) 시인. 황해도 은율 출생. 일본 도요시마 상업학교 졸업. 1951년 시 <돌각담>을 발표한 후 시작에 전념. 1957년 김광림 등과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했다. 이후 초기의 <현대시>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종 달린 자전거>, <시사회>, <다리 밑>, <원색(原色)> 등을 발표했으며, 1968년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의 3인 연대시집 <본적지(本籍地)>, 이듬해 첫 개인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간행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동안(童眼)으로 보는 순수세계와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절박한 세계로 나눠볼 수 있으며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순수시들이다. 1971년 현대시학상,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이 있다.
李壽福 (1924-1986) 전남 함평 출생. 조선대 국문과 졸업. 1954년 <문예>에 <동백꽃> 발표로 문단에 데뷔. 1955년 <실솔>, <봄비>로 <현대문학> 추천 완료. 현대문학신인상, 전남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봄비> 출간.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그의 서정시는 전통시의 한 전형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1930-1993) 시인·평론가. 경남 창원 출생. 서울대학 상과대 수학. 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으로 추천을 받았고, 대학 재학시 송영택 등과 함께 동인지 <신작품(新作品)>을 발간하였다. 1952년 <문예>에 시 <강물>, <현대문학>에 평론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정식 데뷔했다. 이후 시 <덕수궁의 오후>, <새>, <귀천(歸天)> 등과 평론 <사실의 한계> <비평의 창법> 등을 발표하였다. 가난·무직·방랑·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는 우주의 근원과 죽음의 피안(彼岸),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하여 큰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시집으로 <새> <천상병은 천상 시인(詩人)이다> 등과 시선집 <주막에서>가 있다.
金冠植 (1924-1970) 시인.충남 논산 출생. 정인보, 최남선 등에게서 한학을 배웠으며, 1955년 <연(蓮)> <계곡에서> <자하문 근처> 등이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고, 서울상고 교사, <세계일보>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동양적인 인생관을 지닌 시인으로, 시집에 <낙화집(落花集)>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공저) <김관식 시선> 등이 있다.
金丘庸 (1922- ) 시인.경북 상주(尙州) 출생. 성균관대학 국문과 졸업. 1949년 <산중야(山中夜)> <조혼(弔魂)> <해>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55년 현대문학사 제1회 신인상을 받았다.
金洙暎 (1921-1968) 시인.서울 출생. 연희대학 영문과 졸업. 중학교 교원·통역·신문기자 등을 지냈으며, 1948년 시단에 등장하여 처음에는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을 통해 모더니즘 시운동에 가담했으나 점차 속된 현실에 대한 풍자와 청교도적인 예리한 역사감각의 시를 발표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으로 1957년 한국시인협회 작품상을 받았다. 시집에 <달나라의 장난>이 있고, 주요 시작품에 <적> <눈> <거대한 뿌리> <원효대사> <말> <전향기> 등이 있으며 시론과 번역 작품도 있다.
具滋雲 (1926-1972) 시인. 부산 출생. 동양외국어전문대 노어과 졸업. 1957년 <현대문학>에 <균열(龜裂)> <청자수병(靑磁水甁) <매(梅)> 등으로 추천을 받고 문단에 데뷔. 이어 <묘비명(墓碑銘)> <이향이수(異香二首)> 등을 발표하여 한국적인 전아한 시세계를 인류적 공감으로까지 확대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4·19혁명 이후부터는 치열한 시대정신 및 가난과 실의에 찬 현실에의 저항으로 작품경향이 바뀌었다. 이 무렵 박희진(朴喜璡) 등과 <60년대 사화집>을 창간하였고, 이후 <벌거숭이 바다> <일하는 자의 손에 대하여> <실직(失職)> 등을 발표했다. 시집에 <청자수병>이 있다. 1958년 현대문학신인상을 수상했다.
金宗文 (1919-1981) 시인.황해도 출생으로 1942년 도쿄 아테네 프랑스 졸업. 1952년 시집 <벽(壁)>으로 시단에 등장, 이어서 <불안한 토요일>(1953), <시사시대(詩史時代)>(1955) 등의 시집을 출판했고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58년 시집 <인간조형(人間造型)>으로 제1회 자유문협상을 받았고, 1965년 시집 <신시집(新詩集)>으로 제2회 한국문학상을 수상했다.
全鳳健 (1928-1988) 시인.평남 안주(安州) 출생. 1950년 <문예>지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장하여, 1959년 제3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사랑을 위한 되풀이>(1955), 시론집 <시를 찾아서>(1961) 등이 있다.
朴鳳宇 (1934-1990) 시인.전남 광주 출생.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휴전선>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 민족적 현실에 대한 인식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시세계 속에서 추구했다. 1962년 제8회 현대 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에 <휴전선>(1957)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1959) <4월의 화요일>(1962) 등이 있다.
宋稶 (1926-1980) 시인·영문학자.서울 출생. 일본 교토(京都) 제대를 거쳐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6·25전쟁 직전 <문예>지의 추천으로 시단에 등장하여 지성적인 태도로 현대문명에 대한 풍자를 시정신으로 수용했다. 시집에 <유혹>(1954) <하여지향>(1961) 등이 있고, 저서에 <시학 평전(詩學評傳)>(1963) <문학평전> 등이 있다.
朴喜璡 (1931- ) 시인.경기도 연천(漣川)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대학원 수업. 1955년 <무제(無題)> <허(虛)> 등이 <문학 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였다. <관음보살> <미아리 묘지> 등을 발표하면서 신고전파적인 서정의 세계를 개척했으며, <60년대 시화집> 동인으로서 시집에 <실내악(室內樂)>(1960) <청동시대(靑銅時代)> 등이 있다.
朴在森 (1933-1997) 시인.일본 도쿄에서 출생. 고려대 국문과 수업. 1955년 <섭리(攝 理)> <정적(靜寂)> 등이 <현대문학>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전통적인 세련된 가락으로 정한(情恨)의 세계를 노래했다. 1956년 제2회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에 <춘향이 마음>(1962)이 있다.
辛東門 (1928-1993) 시인.충북 청주 출생. 서울대 문리대 중퇴.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선기(風船期)>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는데, 그의 시에는 사회현실에 대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시집에 <풍선과 제3포복>(1956)이 있다.
朴成龍 (1932- ) 시인.전남 해남 출생. 중앙대 졸업. 1956년 <교외(郊外)> <화병정경(花甁情景)>이 <문학예술>지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여, 1964년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趙演鉉 (1920-1981) 평론가. 시인. 호 서제(石濟). 경남 함안 출생. 배재고보를 거쳐 혜화전문 수학(1941). 1945년 순문예지 <예술부락(藝術部落)>을 창간하고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발표, 이 때부터 본격적인 비평활동을 전개했다. 1946년 박종화(朴鐘和)·김동리(金東里) 등과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좌익계 문학가동맹측의 문인들과 민족문학론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전개, <논리(論理)>와 <생리(生理)>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순수문학 옹호에 앞장섰다. 1948년 언론계를 떠나 <문예사> 편집장을 맡고, 한국문학가협회를 창립했다. 같은해 첫번째 평론집 <문학과 사상>을 발간, 아울러 <백민>에 <고갈과 비평정신> <문학과 사상> <애욕의 문학> 등과 <구국문학론의 정체> <희롱의 진실-김문집론> 등을 발표했고,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다. 1949년 <문예>를 창간하고 편집했으며, 이듬해 <1949년도 문단총평> <도스토예프스키론> <문학계 1년의 회고>를 발표, 격동기 순수문학과 자유수호의 기수로서의 평론을 썼다. 1955년 <현대문학>의 창간회원으로 주간을 맡았으며 이 시기에 대표작인 <한국현대문학사>를 발표하여 방법론적 관점에서 문학활동 및 작가를 중심으로 갑오경장 이후의 신문학사를 정리했다. 1966년 <한국신문학고(韓國新文學考)>를 간행하여 문학의 학구적인 연구와 역사적 재평가를 시도했으며, 1968년 <내가 살아온 한국문단>은 광복 후부터 1960년까지의 우리 문단사로서 귀중한 문헌으로 꼽히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현대문학사>를 포함, 20여권의 평론집과 수필집이 있으며, <조연헌문학전집>을 간행했다.
70년대의 시-年代-詩 시단에서는 1971년에 신경림(申庚林)이 <농무(農舞)>를 비롯한 시작품들을 발표한것을 계기로 큰 변모가 일어났다. 이제까지 도시 소재(素材)의 삭막하고 건조했던 시상(詩想)들에 비해 흙냄새와 생활의 땀냄새, 토착적(土着的) 삶의 한(恨) 등이 생동감과 함께 민중의식을 느끼게 한 때문이다. 신경림의 이 재출발은 바로 앞서 세상을 떠난 신동엽(申東曄)에 정신적 맥락이 이어지는 듯한 점에서 더욱 주목되었다. 시에서도 역시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한, 분단상황에서의 저항이 일어나 신기선(申基宣)의 <어릴 때 조국(祖國)> <서부이촌동(西部二村洞)>과 황명걸(黃命杰)의 <그날> <버드나무> 등 뛰어난 시들이 발표되었다. 196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에 심화된, 체제권력과 민주주의를 둘러싼 갈등은 지식계층과 시인들에게 괴로운 예언자적 사명을 지워 주었다. 김지하·양성우의 투옥과 조태일(趙泰一)의 시집 <국토(國土)>가 그것이다. 또한 종래의 불교적 예지로 분방(奔放)한 순수시를 쓰던 고은(高銀)도 1975년 무렵부터 현실의식의 시에 투신, 문단활동 면에서도 현실참여적 경향의 선두에 나섰다.
姜恩僑 (1945- ) 시인.서울 출생. 연세대 영문과 졸업. 1968년 <순례자(巡禮者)의 잠>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시부문에 당선, 문단에 나왔다. 허무·죽음·바람 등에 집착하여 독특한 시풍을 구사함으로써 70년대 시단에 이채로운 존재가 되었다. 저서로 시집 <허무집(虛無集)> 외에 에세이집이 여러 권 있다.
高銀 (1933- ) 시인.전북 옥구(沃溝) 출생. 1951년 해인사(海印寺)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 1958년 <현대문학>에서 시 추천을 완료받아 시작(詩作)에 나섰다. 1960년대 초에 본산(本山) 주지, <불교신문사> 주필 등을 지냈고, 환속(還俗)하여 문필생활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의 시는 1975년 무렵 현실참여적인 데로 지향, 그 뒤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행동 면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저서로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해변(海邊)의 운문집(韻文集)>이 있고, 에세이로 <한용운 평전(韓龍雲評傳)> <한국(韓國)의 지식인(知識人)>을 비롯해 여러 권이 있다.
文益煥 (1918-1994) 시인·목사. 호 늦봄. 만주 간도(間島) 출생. 미국 프리스턴신학교 대학원 수료(1955). 1972년 <월간문학>에 <추억의 커피잔> <미켈란젤로의 고독>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 <히브리서 11장 1절> <십계명> 등이 있다. 그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정신에 바탕을 두고, 한국적인 정신과 감성을 융화하여 얻어지는 가락과 언어를 발굴, 투염하고 섬세한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시집으로 <새삼스런 하루>가 있다.
權逸松 (1933-1995) 전북 순창 출생. 전남대 공대 졸업.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역임.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불면의 흉장>과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강변 이야기>가 당선되어 데뷔. 시집으로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도시의 화전민>, <바다의 여자>, <바다 위의 탱고> 등이 있다. 1983년 소청문학상과 1985년 현대시인상을 수상했다.
金后蘭 (1934- ) 서울 출생. 본명은 형덕(炯德), 서울대 수학. <한국일보> 기자 및 <부산일보> 논설위원과 한국여성개발원장 역임. 1959년 <현대문학>을 통해 신석초 추천으로 <오늘을 위한 노래>, <문>, <달팽이> 등으로 데뷔. 시집으로 <장도와 장미>, <음계>,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사람 사는 세상에>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과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閔暎 (1934- ) 강원도 철원 출생. 1959년 <현대문학>지의 추천을 통해 등단. 그의 시의 구조를 이루는 것은 간결하고 웅축된 단시이다. 시집으로 <단장>, <용인 지나는 길에>,<냉이를 캐며> 등이 있다. 1991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鄭玄宗 (1939- ) 서울 출생. 연세대 철학과 졸업. 현재 연세대 교수. 1965년 <현대문학>에 <독무(獨舞)>, <화음>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사물의 꿈>, <고통의 축제>, <나는 별 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거지와 광인>,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했다.
申庚林 (1935- ) 시인.충북 충주(忠州) 출생. 동국대 영문과 중퇴. 1956년 <문학예술> 잡지에 <갈대>를 비롯한 시들이 추천되어 문단에 나왔다. 한때고향에 내려가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와 잡지사·출판사 등에 취직해 지내며 시작을 중단했고, 1971년 가을호 <창작(創作)과 비평(批評)>에 <농무(農舞)> <전야(前夜)> <서울로 가는 길> 등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면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재출발 이후의 그의 시들은 '시골의 흙냄새에 묻어서 풍기는 생활의 땀냄새와 한(恨)과 의지 등'이 짙게 풍겨 이른바 민중시인의 지칭을 얻게 했다. 한편 신경림은 농민문학·민중문학 등을 주제로 평론들도 발표하였다. 저서로 시집 <농무(農舞)> <새재> <남한강>, 평론집 <민중(民衆)과 문학(文學)> 등이 있다.
申基宣 (1932- ) 시인.함북 청진(淸津) 출생. 광복 후 월남,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57년 <문학예술> 잡지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초기 시는 직관과 관념에 의한 것들이었으나, 1971년에 <어릴 때 조국(祖國)>을 쓰면서부터 현실인식의 시를 지향, 계속하여 <콜라> <서부이촌동(西部二村洞)> 등 같은 경향의 역작들을 발표했다. 특히 조국의 분단 현실에 대한 그의 동화적(童話的) 투시력은 거의 독보적인 것으로 인정된다. 저서로 시집 <맥박(脈搏)>이 있다.
趙泰一 (1941-1999) 시인.전남 곡성(谷城) 출생. 경희대(慶熙大) 국문과 졸업. 1964년 <경향신문(京鄕新聞)> 신춘문예에 당선, 시단에 나왔다. 69년과 70년에 걸쳐 1년간 시 전문지 <시인(詩人)>을 주재(主宰)했다. 그의 시어들은 기교 없이 투박한 듯하면서도 거칠 것 없이 분출하는 생동감으로 저항적 민중시를 낳는다. 저서로 시집 <식칼론>과 75년에 발행한 <국토>가 있다.
朴正萬 (1946-1987) 시인.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겨울 속의 봄 이야기>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했다. 한국적 전통의 미학(美學) 속에 우리말의 리듬을 살리고 있는 것이 그의 시의 특징이다. 1980년 소설가 한수산의 필화사건에 휘말려 고문을 받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정읍사>, <처용가> 등이 있고, 작품집으로 <잠자는 돌> 등이 있다.
愼達子 (1943- ) 경남 거창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현대문학>에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봉헌문자> <겨울축제> <모순의 방> <아가>, 산문집으로 <백치애인> 등을 출간했다.
文貞姬 (1947- ) 전남 보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문정희 시집>, <새떼> <찔레>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 수필집 <지상에 머무는 동안> 등을 출간했다.
趙鼎權 (1949- ) 서울 출생. 1970년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등을 출간했다.
金鍾海 (1941- ) 부산 출생. 1963년 <자유문학> 신인상에 당선되고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한국시협회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세계사 대표. 시집 <인간의 악기(樂惡)>(1966),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 <바람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시선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간행했다.
吳圭原 (1941- ) 경남 밀양 출생.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순례>, <사랑의 기교>, <이 땅에 씌어지는 서정시>, <사랑의 감옥>> 등이 있다. 현재 서울예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吳世榮 (1942- ) 전남 영광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새벽>이, 1966년 <꽃 외>가 추천되고, 1968년 <잠깨는 추상>이 천료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녹원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李昇薰 (1942- ) 강원도 춘천 출생. 1962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사물들> <당신들의 초상> <당신의 밤>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이상시 연구>, <반인간>, <시론> 등이 있다. 초기 시들은 언어 자체를 대상화하는 작업에 집중하여 개념화를 거부하는 시세계를 주로 보여주었다. 현재 한양대 교수.
鄭喜成 (1945- ) 경남 창원 출생. 용산고와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에 <답청>, <저문 강에 삽을 씻고> 등이 있다.
范大錞 (1930- ) 광주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수학, 데니슨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등에서 영문학을 연구하였다. <흑인 고수 루이의 북>, <조지훈 선생의 서문>으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시집으로 <연가 Ⅰ, Ⅱ, 기타>, <이방에서 노자를 읽다>, <기승전결>, <유아원에서>, <아름다운 가난>, <세기말 길들이기>가 있으며, 범대순 전집 전16권을 출간하였다. 제29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年代-批評家 1970년대의 문예비평은 리얼리즘론, 민족문학론, 농민문학론, 제3세계 문학에의 전망(展望) 등을 주제로 활발한 작업이 있었다. 이러한 주제들은 70년대 비평의 주요 성과이지만, 이 성과에 이르는 과정에서 상호 반대되는 이론들이 나타났으니, 리얼리즘을 중핵(中核)으로 이를 주장하고 또는 반대한 비평가와 그들의 저작 및 비평들을 망라해 보면 다음과 같다. 70년대 후반기에 들어와서 평론집으로 염무웅(廉武雄)의 <한국문학의 반성>, 김병익(金炳翼)의 <한국문학의 의식(意識)>, 김현·김주연(金柱演) 편 <문학이란 무엇인가>, 임헌영(任軒永) 편 <문학논쟁집> 등이 출간되었고, 두 편저(編著) 속에는 유종호(柳宗鎬)·천이두(千二斗)·김우창(金禹昌)·구중서(具仲書)·백낙청(白樂晴)·이철범(李哲範) 등의 비평들이 실려 있다. 70년대 비평은 문학사의 새로운 기술(記述)에도 참여하여 김윤식·김현의 <한국문학사(韓國文學史)>가 나왔고, 구중서의 <한국문학사 방법론>이 발표되었다. 이 밖에 창작계의 실정에 대응한 주목할 비평으로서는 임헌영의 <부랑자(浮浪者)와 안주자(安住者)>가 발표되어, 70년대 소설들이 주로 룸펜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사실에 대해 부정적인 비판을 가한 것이 있다. 즉 부랑자들은 민중의 실체(實體) 및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되어 문단에 자극제가 되었다.
白樂晴 (1938∼ ) 문예비평가·영문학자.대구 출생. 서울에서 경기고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가 브라운 대학에서 영문학·독문학을 전공. 1960년 하버드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 귀국하여 서울대 문리대에서 강의를 맡고, 65년부터 신문·잡지 등에 문학평론을 발표하기 시작, 66년 1월에 한국 최초의 문예 계간지 <창작(創作)과 비평(批評)>을 창간하여 문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의 <시민문학론>, 그리고 리얼리즘을 토대로 한 수편의 <민족문학론> 등은 70년대 한국 비평문학에서 두드러진 공헌이다. 저서로 <민족문학(民族文學)과 세계문학>, 역서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社會史)> 등이 있다.
廉武雄 (1941∼ ) 문예비평가.강원도 속초(束草) 출생. 서울대 문리대 독문과(獨文科)·동대학원 졸업.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최인훈론(崔仁勳論)>이 당선되어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 서울대 강사·덕성여대 국문과 전임강사를 지냈다. 1967년부터 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에 참여, 1972년부터 주간(主幹)이 되고 78년에는 발행인이 되어 잡지 경영 책임을 맡았다. 리얼리즘 문학·농민문학·민족문학 등의 주제에 따른 뛰어난 평론들이 많으며, 70년대의 일선 문예비평가로서 선두에 서고 있다. 저서로 평론집 <한국문학의 반성(反省)>, 번역서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백낙청과 공역)·카프카의 <성(城)> 등이 있다. <具 仲 書>
蔡光錫 (1948-1987) 시인·평론가.충남 서산에서 출생. 대전고교를 거쳐 서울사대에서 수학, 문학평론 <부끄러움과 힘의 부재>, 시 <빈대가 전한 기쁜 소식>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민중적 민족문학론을 제기하면서 백낙청·김사인 등과 더불어 1980년대 문학논쟁에 참가했다. 그는 창작 주체의 계급론적 차별성 문제, 수기의 문학 장르 가능성의 문제, 집단 창작의 문제, 문학 조직의 문제 등을 문단에 던지는 등 70-80년대 문단 평론계의 한 맥을 형성했다. 평론집 <민족문학의 흐름>, 시집으로 <밧줄을 타며>, 서간집으로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 듯이>, 사회문화론집 <물길처럼 불길처럼> 등의 작품집이 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실행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1987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 유고집으로 <민족문학의 흐름>이 있다.
金允植 (1936- ) 평론가.경남 김해 출생.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수료했다. 1962년 <현대문학>에 평론이 추천되어 등단하고 1973년 현대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한국근대문예 비평사 연구> <근대 한국문학연구>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임화연구> <최재서론> <한국문예비평의 특성> 등이 있다. 특히 1930년대 카프에 대한 그의 비평 능력은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金炫 (1942-1990)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90년에 간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서울대 불문과 교수를 지냈다. 1970년대의 대표적인 문학지였던 <문학과 지성>에 동인으로 참여해, 문학평론의 전문화를 이룬 대표적인 평론가이다. 김현은 대학 재학 중인 1962년에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트 시론>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불문학자로서 바슐라르, 사르트르, 프로이트, 푸코 등 프랑스 문학이론의 거장들을 국내에 소개했으며, <프랑스 비평사>, <제네바학파 연구> 등을 통해 프랑스 문학이론을 정리하기도 했다. 국문학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해 김윤식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공동 집필하고, <한국문학의 위상>이라는 입문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金治洙 (1940- ) 평론가. 전북 무장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4년 <산문시대> 동인으로 활동하며 <작가의 문학적 변모>를 발표, 196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자연주의양고(自然主義兩考)>가 입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68문학> <문학과 지성>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풍속의 변천> <식민지시대의 문학> <한국소설의 과제> <관조자의 세계 <지식인의 망명> 등을 발표했다. 그의 비평방법의 특색은 작가를 그가 속한 역사적 문맥 속으로 되돌려 그 작가의 문학사적 위치를 밝히고 동시대 다른 작가와의 이동점(異同點)을 탐색함으로써 작가의 정신사적 위치를 드러내는 데 있다. 평론집으로 <현대한국문학의 이론>(공저)과 <박경리(朴景利)와 이청준(李淸俊)>이 있다.
金柱演 (1941- ) 평론가·독문학자. 서울 출생. 서울대 독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6년 <문학>에 <카프카의 시론(詩論)>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이 후 <시에서의 의미문 제> <왜곡된 소외(疏外)의 사회학> <한국 현대시의 일반적 상황> <새시대 문학의 성립> 등을 발표, 시에서의 언어의 미묘한 작용과 시인의 감수성에 대한 깊은 추구를 통해서 현실상황과 개인의식의 대결을 고찰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서에 평론집 <상황(狀況)과 인간> <문학을 넘어서> <세계 명작의 이해> 등 외에 많은 역서가 있다. 현재 숙명여대 독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朴東奎 (1939- ) 평론가. 경북 월성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석사·박사과정 수료. 1962년 <현대문학>에 <카오스의 질서화작용(秩序化作用)> <언어·성격·행동>으로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주로 분석비평적(分析批評的) 방법을 취하며 대표작으로 <현대소설기술(現代小說技術)> 및 <구조론(構造論)>이 있다.
-年代-詩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은 우방이라 생각되던 미국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함과 동시에, 한국 사회에 대한 정체를 규명하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회과학에서 시작된 이러한 분위기는 노동(자)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단의 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작품으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3)을 들 수 있겠다. 박노해의 등장은 70년대와 80년대를 가름하는 작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시인의 등장으로 현장시의 대중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시의 대중성은 특히 상업성과 결합하여 서정윤의 <홀로서기>(1986),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1986)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시집이 베스트 셀러로 등장하고 문제시되는 것은 80년대 초반이 소설과 같은 직설적인 이야기보다 고도의 상징성을 내포해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반면 70년대 저항시를 주로 쓰던 김지하의 변신이 80년대에 이루어진다. 80년대 초반 김지하는 <애린>을 발표하면서 노장사상과 생명사상을 부르짖게 된다. 특히 순수시 계열에서는 해체시가 문단의 주요한 이슈로 등장한다. 황지우·박덕규 등의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한 시들이 이에 속하는데, 이들은 대개 젊은층으로 각자의 동인지를 통하여 활동의 폭을 넓혀 갔다. 이들은 기존의 전통적 시의 형식들을 파괴하면서 이데올로기의 간섭을 강력히 배제한다. 이 외에도 70년대부터 끊임없이 시를 발표하면서 80년대라는 새로운 시대상황에 부응하는 여러 시인들의 활동이 뚜렷해진다. 그 중의 한 사람이 고은 시인이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연작시를 발표하면서 토착적 민중의 정서에 천착해 들어간다. 또한 80년대 시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모습은 시의 장시화(長詩化)이다. 고은의 <백두산>은 일제하의 독립운동을 서사시로 엮은 것이고, <농무> 등을 발표하면서 농촌의 정서를 시로 표출한 신경림은 서사시 <남한강>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시의 이야기성 획득 내지 장시화 현상은 김도연의 논문 <장르 확산을 위하여>에 영향받은 바 크다. 민중문학론의 제언의 한 논문인 <장르 확산을 위하여>에서 김도연은, 문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시에서의 음악성·이야기성 등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처럼 80년대 초반의 문단을 이끌어온 시는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그 때까지 담당했던 대부분의 역할을 소설에 넘겨 주면서 80년대를 마감했다. 그 외의 시인으로 이성복·정호승·김명인·곽재구 등이 80년대 주목받는 시인이었다.
金芝河 (1941- ) 시인.전남 목포에서 출생.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 원주중학교, 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학과에 다니던 중 4·19 혁명에 가담하였다. 1969년 <시인>지에 <서울 길>로 등단하고, <사상계>에 특권층의 권력형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통렬하게 비판한 담시 <오적(五賊)>(1970)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투옥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필명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인혁당사건과 민청학련사건 혐의를 받고 1974년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해 7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김지하 시집>(1974)이 일본에서 간행되었다. 그의 초기 시들은 저항의식과 더불어 민중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70년대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희곡 <나폴레옹 꼬냑>(1970) 등과 평론 <풍자냐 자살이냐>(1970)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70), 시집으로 <황토>(1970) <타는 목마름으로>(1982) <애린>(1986)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등과 산문집 <남녘땅 뱃노래>(1985), 수상록 <살림>(1987) 등이 있다. 1975년 로터스상 특별상을 수상하고 노벨문학상·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으며, 1981년에는 세계시인대회가 주는 '위대한 시인상'과 '크라이스키 인권상'을 수상했다.
文炳蘭 (1935- ) 시인.전남 화순에서 출생. 조선대 문리대를 졸업했다. 1959년에서 1962년 사이 <현대문학>지에 <가로수> <밤의 호흡> <꽃밭> 등으로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했다. 70년대에 많은 시집을 내고, 80년대에는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계기로 더욱 현실참여적인 시집을 냈다. 시집으로 <문병란 시집> <정당성(正當性)> <죽순 밭에서> <호롱불의 역사> <땅의 연가> <새벽의 서 (書)> <동소산의 머슴 새>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저 미치게 푸른 하늘> 등이 있다.
宋秀權 (1940- ) 전남 고흥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에 <산문에 기대어>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산문에 기대어>, <꿈꾸는 섬>, <우리들의 땅> 등이 있다. 문공부 예술상, 전라남도 문화상, 소월시 문학상, 서라벌 문학상 등을 수상.
李盛夫 (1942- ) 광주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1962년 <현대문학> 추천 완료로 등단하였다. 196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우리들의 양식>이 당선되었다. 현대문학상, 한국문학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이성부 시집>, <우리들의 양식>, <백제행>, <전야>, <빈 산 뒤에 두고> 등이 있다.
李建淸 (1942- ) 경기도 이천 출생. 한양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으로 <이건청 시집>, <목마른 자는 잠들고>, <망초꽃 하나> 등 출간. 그의 시는 내면에 깊이 침잠하여 현대 정신의 위기와 심연을 의식의 심층에서 형상화하고 있다.
梁成祐 (1943- )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 국문과 졸업. 1970년 <시인>에 <발상법> <증언>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 시집 <겨울 공화국>, <북치는 앉은뱅이>,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그대의 하늘 길> 등을 출간했다.
高靜熙 (1948-1991) 전남 해남 출생. 한국 신학대학 졸업. <현대시학>에 <연가>가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1991년 지리산 등반 도중 작고했다.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 <초혼제>, <지리산의 봄>, <눈물꽃> 등을 출간했다.
金光圭 (1941- ) 서울 출생. 1975년 <문학과 지성>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 <반달곰에게>, <아니다 그렇지 않다>, <크낙산의 마음>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한양대 교수이다.
鄭鎭圭 (1939- ) 경기도 안성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현대시화 작품상 등 수상. 현재 <현대시학> 주간.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平和)>, <들판의 비인 집이로다>, <매달려 있음의 세상>, <비어 있음의 충만을 위하여>, <뼈에 대하여>,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몸시(詩)> 등 출간.
吳鐸蕃(1943- ) 충북 제천 출생. 고려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현재 고대 사범대 교수.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동서문학상 수상. 시집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 <생각나지 않는 꿈>, <겨울강>, 소설집 <저녁연기>, <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 <순은의 아침> 간행.
李秀翼 (1942- ) 경남 함안 출생. 서울대 사대 영어과 졸업. 196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현재 KBS 편성운영국 재직. 시집에 <고별>, <우울한 샹송>, <슬픔의 핵>, <그리고 너를 위하여>, <아득한 봄> 등이 있다.
金初蕙 (1943- ) 충북 청주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64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떠돌이 별>, <사랑굿 1>, <사랑굿 2>, <사랑굿 3>, <세상살이>가 있다.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햇다.
郭在九 (1954- ) 광주 출생. 전남대 국문학과 졸업.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사평역에서>,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등이 있고, 기행 산문집으로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이 있다.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 동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李時英 (1949- ) 전남 구례 출생.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수학. 1969년 <중앙일 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제3회 신인작품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만월> <바람 속으로> <길은 멀다 친구여>, <무늬>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가 있다. 정지용문학상을 수상했다.
(1948- ) 전북 임실 출생. 순창농고 졸업.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인 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1> 외 8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꽃산 가는 길>, <그리운 꽃편지>, <강 같은 세월>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가 있고, 장편동화로 <옥이야 진메야>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다.
鄭浩承 (1950- ) 경남 하동 출생.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되어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있다. 제3회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李晟馥 (1952- )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7년 <문학과 지성>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고, 김수영문학상, 소월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산문집 <꽃 핀 나무들의 괴로움> 등을 출간하였다.
李潤澤 (1952- ) 부산 출생. 한국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 졸업. 1979년 <현대시학>에 <도깨비불>, <천체수업> 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연극 <시민 K> <산씻김> 등을 연출하였다. 시집으로 <춤꾼 이야기>, <막연한 기대와 몽상에 대한 반역>, 시선집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평론집 <해체, 실천, 그 이후> 등을 출간.
金勝熙 (1952- ) 광주 출생. 서강대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데뷔했다. 1991년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산문집 <고독을 가리키는 시계바늘> <성냥 한 개피의 사랑> 등을 출간하였다. 그는 '신의 연습장 위에 씌어졌다 지워지는 병든 물음표' 같은 자의식을 통해 세계를 폐허로 인식하며, 이렇듯 강렬한 종말 의식은 우리들 일상의 삶을 뒤집어 보게 한다.
(1952- ) 전남 해남 출생. 서울대와 서강대에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산문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 등을 출간하였다.
崔勝子 (1952- ) 충남 연기 출생. 고려대 독문과 졸업. <문학과 지성>을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철저한 긍정에 도달하기 위해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을 수행하는 시세계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삼십세>, <즐거운 일기>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가 있다.
崔勝鎬 (1954- ) 춘천 출생. 춘천교대 졸업. 1977년 <현대시학>에 <비발디>, <겨울새>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그는 사실적 관찰, 단순하지 않은 사려(思慮), 허덥지 않은 언어의 세계로 시풍(詩風)을 다져나갔다. 주요 작품으로 <나는 숨을 쉰다>, <공터>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대설주의보>, <고슴도치의 마을>, <진흙소를 타고> 등이 있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金正煥 (1954- )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과 졸업. 1980년 <창작과 비평>에 시 <마포강변 동네에서>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해방 서시>, <유채꽃밭>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황색예수>, <지울 수 없는 노래>, <좋은 꽃> 등이 있다. 그는 시대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결의와 열린 감성으로 우리시대의 언어에 일대 변혁을 몰고 왔다.
金惠順 (1955- ) 경북 울진 출생. 건국대학 국문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문학 평론 입선(1978), <문학과 지성>을 통해 데뷔했다. 시집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우리들의 음서(陰書)>를 출간했다.
(1954- )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수상.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을 출간했다.
朴勞海 (1959- ) 시인.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기능공으로 일하며 <시와 경제> 2집에 <시다의 꿈>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詩作活動)을 시작했다. 그의 시는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장기간 노동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고자 노력하는 고통의 산물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주요 작품에 <노동의 새벽> <손무덤>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노동의 새벽>이 있다.
徐正潤 (1957- ) 시인. 대구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1984년 <현대문학>에 시 <서녘바다> <성(城)>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 그는 만남·기다림·사랑·아픔 등의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절실한 삶의 문제들을 그려내고 있다. 시집에 <홀로서기> <점등인의 별에서> 외에 수필집 <내가 만난 어린왕자> 등이 있다.
(1960-1989) 경기도 연평 출생. 연세대 정외과 졸업.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시집 <입 속의 검은 잎> 출간.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명명된 바 있는 그의 글들은 미래 전망이 없이 닫힌 개별자의 공간 체험을 섬뜩한 아름다움으로 피워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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