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들이 만든 잡지 '눈치우기'의 멤버들. 왼쪽부터 하재연, 김소연, 신해욱, 유희경, 송승언 시인. 눈치우기 제공
겨우내 쌓인 눈을 치우는 일은 노동이자 놀이다. 출근길 어른들이 젖은 바짓단에 투덜대는 동안 한쪽에선 아이들이 신명 나게 눈을 굴리며 길을 만든다.
시인 유희경, 송승언, 김소연, 하재연, 신해욱씨와 디자이너 김재연씨가 모인 것은 지난해 4월이다. 김소연 시인이 “협동조합 형태의 출판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고 이에 동의하는 시인들이 하나 둘 모였다. 이름이 ‘눈치우기’다. 1년 간의 회의 끝에 최근 총서 1권 ‘조립형 text’와 2권 ‘겨울시집’을 동시에 낸 이들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시를 게재할 잡지는 많다. ‘눈치우기’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나.
“시인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한 켠의 불쾌함이 다른 모색을 꾀하게 했던 것 같다. 등단 이후에 쓴 글의 거개는 청탁에 의한 것이었다. 수동적인 창작 행위였다. 우리들 스스로의 욕구에 의해 쓴 글이 만드는 지면을 상상했다.”
-‘조립형 text’에는 모두가 글을 쓰고 모든 글이 연관돼 있다. 어떤 걸 보여주고 싶었나.
“조립형 text’의 글들은 꼬리물기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각자 쓰고 싶은 걸 써와서 다 함께 읽은 뒤 그 글들과 연관된 새로운 글을 창작하고 뭉치고 뒤섞는 과정을 거쳤다.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나서 내게 퍼지는 동심원의 한 지점에 나를 위치시키고 다른 새로운 글을 창작하거나 나의 느낌을 확장하고 싶은 욕망. 독자들에게도 이 느낌의 동심원들이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독서 인구 감소, 문학의 역할 변화, 문학권력 논쟁 등 한국 문학판을 둘러싼 환경이 이전 같지 않다. 눈치우기는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나.
“문학은 이제 사회적 영향력이 별로 없고 문학인들이 합심해서 뭘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성복 시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도대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도 겨울은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그 눈을 치운다. 길을 내느라 눈을 치울 수도 있지만, 우리는 놀듯이 함께 눈을 치우고 싶다.”
-눈치우기는 소셜 펀딩을 통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책 안 읽는다고 하지만 문학잡지 만드는 일에 이렇게 관심이 쏠리는 게 특이하지 않나.
“후원자가 172명이었다. 그 중 알고 지내던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최근 몇 년간 문학행사가 활발하게 열렸는데 찾아가는 분들이 또 찾아간다. 한 줌의 독자들, 더없이 소중하다. 그런 독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애써볼 도리밖에 없다.”
-집필부터 제작, 배송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에피소드가 있나.
“책에 대해 여섯 명이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 조금씩 달라 그것을 어떻게 묶을 지가 난관이었다. 각자의 조금씩 다름을 모두 챙기고 싶었다. 책이 나온 지금은, 서류처리라든가 책방들과의 거래라든가, 지금껏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을 허둥거리며 하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살아생전 얻을 수 없을 직함을 얻었다. 유희경은 대표, 송승언은 편집장, 하재연은 총무, 신해욱은 감사, 김소연은 마케터다.”(웃음)
-앞으론 누구의 어떤 글이 실리나. 다음 호는 언제 나오나.
“원고료를 주지 않아도 미안함이 없기 위해 창간호에는 우리들만 참여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호에 함께 하고 싶다는 친구가 벌써 생겼다. 다음 주제를 위해 우리는 또 1년 동안 회의해야 한다.”
황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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