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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묶음
2016년 03월 31일 07시 48분  조회:4731  추천:0  작성자: 죽림
 

봄에 관한 시 모음

 

 

봄 / 윤동주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 아른 높기도 한데......

봄은 전쟁처럼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오세영·시인, 1942-)

 

 

봄 / 성낙희



돌아왔구나
노오란 배냇머리
넘어지며 넘어지며
울며 왔구나.

들은
가장자리부터 물이 흐르고
하늘은
물오른 가지 끝을
당겨 올리고

그래,
잊을 수 없다.
나뉘어 살 수는 더욱 없었다.
황토 벌판 한가운데
우리는 어울려 살자.

 

 

 

 

 

 

봄 / 김광섭

나무에 새싹이 돋는 것을
어떻게 알고
새들은 먼 하늘에서 날아올까

물에 꽃봉우리 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비는 저승에서 펄펄 날아올까

아가씨 창인 줄은
또 어떻게 알고
고양이는 울타리에서 저렇게 올까
 


이른봄의 서정

눈 속에서도
봄의 씨앗은 움트고
얼음장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흐르나니
마른 나무껍질 속에서도
수액은 흐르고
하나님의 역사는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건져 올리느니
시린 겨울밤에도
사랑의 운동은 계속되거늘
인생은
겨울을 참아내어
봄 강물에 배를 다시 띄우는 일
갈 길은 멀고
해는 서산 마루에 걸렸어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게 되어 있나니
서러워 마라
봄은
겨울을 인내한 자의 것이거늘


(김소엽·시인, 1944-)

 

 

 

 

 

 

 

그 해의 봄

새벽에 나와
밤에 기어들고
때때로 외지에 나가
내 전심전력 쏟으며
영토를 넓히고 있을 때
울안의 나무란 나무
풀씨란 풀씨 모두가
음모를 꾸미고 있었느니
바람 불면 손을 흔들거나
눈 쌓이면 어깨를 늘어뜨려
평온을 위장한 채
거사를 획책하고 있었으니
그때 일신상의 화급한 문제로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날 정오
울안에서 일제히 함성이 터졌느니

철쭉꽃 애기사과꽃 새싹이란 새싹
모두가 일제히 발을 굴러
그 해의 봄은
둑 터진 강물이었느니


(주근옥·시인, 충남 논산 출생)

 

해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쉼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둑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조병화·시인, 1921-2003)

봄 주의보

보드라운 손길이 쓰다듬고
응축된 눈물이 대지를 적셔야만
새순이 솟아나온다

화사한 능선에 얼핏 현혹되어
섣부르게 치마 올리고
옷고름 풀지는 말았으면

가슴을 열고
오롯한 씨앗을 품어주는 것은
투명한 햇살과 초록숨결뿐이다


(임영준·시인, 부산 출생)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 편지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인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둣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이해인·수녀 시인, 1945-)

 

봄들판 - 곽종분

발가벗은
흙을 파고아이들이봄을 심는다.

흙 속에서
아지랭이
눈빛이 보인다.

비비쫑
종달새 소리가 햇살처럼 쏟아지면

산에서
들판에서
새싹들이

반짝반짝
눈을 뜬다.

 

 

 

꽃 먼저 와서

횡단보도 신호들이 파란불로 바뀔 동안
도둑고양이 한 마리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질러갈 동안
나 잠시 한눈팔 동안,

꽃 먼저 피고 말았다

쥐똥나무 울타리에는 개나리꽃이
탱자나무에는 살구꽃이
민들레 톱니진 잎겨드랑이에는 오랑캐꽃이
하얗게 붉게 샛노랗게, 뒤죽박죽 앞뒤 없이 꽃피고 말았다

이 환한 봄날

세상천지 난만하게
꽃들이 먼저 와서, 피고 말았다


(류인서·시인, 경북 영천 출생)

 

 

 

새봄

겨우내
외로웠지요
새봄이 와
풀과 말하고
새순과 얘기하며
외로움이란 없다고
그래 흙도 물도 공기도 바람도
모두 다 형제라고
형제보다 더 높은
어른이라고
그리 생각하게 되었지요
마음 편해졌어요

축복처럼
새가 머리 위에서 노래합니다
.


(김지하·시인, 1941-)

 

저 못된 것들

저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
나를 꼬드기네
어깨에 둘러맨 가방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네
저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 나를 충동질하네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을 차려보라네
저 못된 것들 좀 보소
흐르는 냇물 시켜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네
기어이 문제아가 되라 하네


(이재무·시인, 1958-)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시 속에 숨어 잇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시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시 속에 숨어 잇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을 버려라

어느 봄날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영산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나희덕·시인, 1966-)

 

 

 

 

봄이 오는 소리

가지마다 봄기운이 앉았습니다.
아직은 그 가지에서
어느 꽃이 머물다 갈까 짐작만 할 뿐

햇살 돋으면
어떻게 웃고 있을지
빗방울 머금으면
어떻게 울고 있을지
얼마나 머물지
어느 꽃잎에 사랑 고백을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둠 내리는 시간에도
새로움 여는 봄의 발자국 소리에
마음은 아지랑이처럼 들떠만 있습니다

돌...돌...돌...
얼음 밑으로 흐르는 냇가
보송보송 솜털 난 버들강아지
이 봄에 제일 먼저 찾아 왔습니다


(최원정·시인, 1958-)
 

 

약속의 봄

키를 조금 낮추고
아니, 쪼그리고 앉아서 보면
봄이 왔네 봄.
논둑 길 돌아 밭으로 가는 길가로
벌써 봄이 와 있네.

우리 아베 쉰 머리카락 마냥
듬성듬성하게 헝클어진 빛 바랜
풀들 속에서
쑥이랑 냉이 씀바귀 잡풀들이
겨우내 땅속에서 쓴 물 빨아먹고
비죽비죽 돋아나네, 이 어린 것.
살아있었노라고 눈 틔우네

봄은 참으로 고마운 약속
씨앗을 품고 온몸으로 겨울을 견뎌낸 대지와
거짓말처럼 씨앗이 밀어 올려낸 약속
보면 볼수록 눈물겨운 약속

대지가 어지러운 열로 몸이 붓기 시작하는 이유를
내 이제 알 것도 같네.


(성낙일·시인, 1973-)

 

참 좋은 봄날

실비는 오지요.
꽃밭은 젖지요.
이제 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꽃밭에 심은 옥수수 줄기를 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갑니다. 기어가서 마침내
오를 수 있을 만큼 올라간 것일까요
이제 그만 하는 걸까요. 그쯤에서
알맞게 휘어진 잎사귀 하나
초록빛 꽃 붙들고 앉아
하루 종일 있을 모양입니다.

제 한 몸
잠적하기에는
참 좋은 봄날입니다.


(구종현·시인, 1943-)

 

씨앗 하나가

꼼틀 꼼틀 태기가 있었나보다
햇볕의 담금질로 해산할 모양이다
어둠을 꼬박 지새운 길에서
산통 때문에 이리저리 몸을 가누고 있다
은하수 같은 꿈을 왈칵왈칵 쏟아 놓고
꽃밭인 듯 가슴 졸인 머리를 빠끔히 내민다
해산의 꿈들이 어둠을 헤엄쳐와
줄줄이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탄생
꽃잎 하나 살며시 열고 햇살이 내려와 앉는다
가슴으로 빨려들 듯 봄이 반짝인다


(문근영·시인, 대구 출생)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젖혔구나

봄바람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서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반칠환·시인, 1964)

 

 

 

 

 

봄날

얼음장 밑으로
시냇물이 실뱀처럼 스르르
몸을 푼다

버들강아지
금빛 은빛 햇살 모아
보송보송 하얀 솜털 고른다

새싹이
목 길게 빼고 두리번두리번
늘어나는 가족 얼굴 익힌다

대문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개나리 으스스 추운지
햇볕 치맛자락을 끌어다 덮는다


(조미선·시인, 경남 진주 출생)

 

 

 

아름다운 곳

봄이라고 해서 사실은
새로 난 것 한 가지도 없다
어디인가 깊고 먼 곳을 다녀온
모두가 낯익은 작년 것들이다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창백한 고목나무에도
일제히 눈펄 같은 벚꽃들이 피었다
누구의 손이 쓰다듬었을까
어디를 다녀와야 다시 봄이 될까
나도 그곳에 한 번 다녀오고 싶다


(문정희·시인, 1947-)

 

 

 

 


 

우리나라 꽃들엔

우리나라 꽃들에겐
설운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코딱지꽃 앉은뱅이 좁쌀밥꽃
건드리면 끊어질 듯
바람 불면 쓰러질 듯
아, 그러나 그것들 일제히 피어나면
우리는 그날을
새봄이라 믿는다

우리나라 나무들엔
아픈 이름 너무 많다
이를테면 쥐똥나무 똘배나무 지렁쿠나무
모진 산비탈
바위틈에 뿌리 내려
아, 그러나 그것들 새싹 돋아 잎 피우면
얼어붙은 강물 풀려
서러운 봄이 온다


(김명수·시인, 1945-)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삼단 햇살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러앉은 아낙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들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바람까지 견딜 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엄원태·시인, 1955-)

 

 

그대 생의 솔숲에서

나도 봄산에서는
나를 버릴 수 있으리
솔이파리들이 가만히 이 세상에 내리고
상수리나무 묵은 잎은 저만큼 지네

봄이 오는 이 숲에서는
지난날들을 가만히 내려놓아도 좋으리
그러면 지나온 날들처럼
남은 생도 벅차리

봄이 오는 이 솔숲에서
무엇을 내 손에 쥐고
무엇을 내 마음 가장자리에 잡아두리

솔숲 끝으로 해맑은 햇살이 찾아오고
박새들은 솔가지에서 솔가지로 가벼이 내리네

삶의 근심과 고단함에서 돌아와 거니는 숲이여
거기 이는 바람이여,

찬 서리 내린 실가지 끝에서
눈뜨리
눈을 뜨리

그대는 저 수많은 새 잎사귀들처럼
푸르른 눈을 뜨리
그대 생의 이 고요한 솔숲에서


(김용택·시인, 1948-)

 

 

봄은

굳었던 관절이 부드러워지듯
봄은 가까이 더 깊숙이 들어왔다
걸음이 빨라지고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는,
꿈꿀 준비가 되어 있는 자와
나눌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는
욕심 없이 건강해질 수 있는 계절이다 봄은
오,
그 누가 첫사랑 같은 설렘 가득한 봄날에
희망으로 가는 통로를
행복으로 가는 첫 계단을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집중할 수 없는 순수와 열정은 가라
거짓사랑도 가라


(이희숙·시인, 1964-)
 

 

 

봄 / 이성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비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날과 시

봄날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시가 씌어지기나 하나
목련이 마당가에서 우윳빛 육체를 다 펼쳐보이고
개나리가 담 위에서 제 마음을 다 늘어뜨리고
진달래가 언덕마다 썼으나 못 부친 편지처럼 피어있는데
시가 라일락 곁에서 햇빛에 섞이어 눈부신데
종이 위에 시를 써서 무엇해
봄날에 씌어진 게 시이기는 하나 뭐


(나해철·의사 시인, 1956-)

 

<진달래에 관한 시 모음> 홍수희의 '아, 진달래' 외 

== 아, 진달래==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네
마음속에 자꾸 커 가는
이 짓붉은 사랑 
무더기로 피어나 나를 흔드네
내 살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 
이리도 가슴 뛰는 일이네
내 살아 너를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이
이리도 숨막히는 슬픔이었네
파도치는 내 마음
감춘다는 건 다 말장난
아, 진달래

(홍수희·시인)

== 진달래꽃==

아리어라.
바람 끝에 바람으로
먼 하늘빛 그리움에
목이 타다
산자락 휘어잡고 文身을 새기듯
무더기 무더기 붉은 가슴
털어놓고 있는
춘삼월 진달래꽃.

긴 세월 앓고 앓던
뉘의 가슴
타는 눈물이런가.

大地는 온통
생명의 촉수 높은 부활로 출렁이고
회춘하는 봄은
사랑처럼 아름다운
환희로 다가온다.


(박송죽·시인, 1939-)

== 진달래==

해마다 부활하는 
사랑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네 가느단 꽃술이 바람에 떠는 날 
상처 입은 나비의 눈매를 본 적이 있니 
견딜 길 없는 그리움의 끝을 너는 보았니 

봄마다 앓아 눕는 
우리들의 持病은 사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한 점 흰 구름 스쳐가는 나의 창가에 
왜 사랑의 빛은 이토록 선연한가 
모질게 먹은 마음도 
해 아래 부서지는 꽃가루인데 

물이 피 되어 흐르는가 
오늘도 다시 피는 
눈물의 진한 빛깔 진달래여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진달래==                                
          
신작로 
잘려나간 
산자락에 

그네에 
매달린 
아기처럼 
피어 있는    
진달래 

초연(超然)한 
연분홍 
색깔 너머로 
무거운    
하늘을 이고 

마음 저리도록 
그리운 
내 님 
모습 같이 
피어 있다


(김근이·어부 시인)

== 진달래==

꽃샘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삼각산을 오르다가
나목(裸木)들의 더미 속
가녀린 여인의 몸 같은

진달래 한 그루가
몇 송이 꽃을 피웠다
수줍은 새악시 볼 같은
연분홍 고운 빛 그 꽃들은

속삭이듯 말했지
봄이다!
너의 그 가냘픈 몸뚱이 하나로
온 산에 봄을 알리는

작은 너의 생명에서 뿜어 나오는
빛나는 생명이여
말없이 
여림의 강함이여!


(정연복·시인, 1957-)

== 4월의 진달래 ==

봄을 피우는 진달래가 
꽃만 피운 채 
타고 또 타더니, 

꽃이 모자라 
봄이 멀까요? 

제 몸 살라 불꽃 
산불까지 내며 
타고 또 탑니다


(목필균·시인)

== 진달래와 어머니 ==

진달래 숲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는
배고프던 옛날에 진달래를 얼마나 먹었는지 모른다고
하신다. 진달래 한 송이를 맛보시면서
앞산 진달래를 꺾어 와 부엌 벽 틈마다 꽂아두면,
컴컴하던 부엌이 환했다고 하신다.
진달래 맛이 옛맛 그대로라고 하신다.
얼핏 어머니의 눈빛을 살펴보니
어머니는 지금 타임머신을 타고 계셨다.
처녀 적 땋아 내린 긴 머리 여기저기에
진달래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빨간 풍선처럼 이 산 저 산을 마구 떠다니시는 듯했다.
(어머니, 너무 멀리 가지 마셔요.)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산에 피는 꽃이나 사람꽃이나 사람 홀리긴
매한가지라시며,
춘천을 오갈 때는 기차를 타라고 하신다.
일주일에 내가 이틀씩 다니는 경춘가도의
꽃길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어머니 말씀이 제겐 詩로 들리네요
하니깐, 진달래 숲길에서 어머닌
진달래꽃 같은 웃음을 지으신다.


(설태수·시인, 1954-)

== 진달래 능선에서==

진달래 한 송이 지게에 달고 
꽃 같은 마음이라야 하느니라 하시던 
아버지 그 말씀...... 

아버지 생전에 
지게발통 작대기 장단에 
한을 노래 삼아 콧노래 부르시더니 

저승 가시는 길에 
가난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배움의 한을 씻기라도 하시듯 
허리 굽은 능선에 빨갛게 
꽃으로 서 계시는 당신 

오늘도 
진달래 불타는 산 허리춤에 
꽃가슴 활짝 열고 계시군요 
생시처럼 

아버지! 
당신 계시는 음택(陰宅) 
진달래 타는 불꽃에 
가슴이 아려 
꽃잎에 이슬이 내립니다


(이계윤·시인)

== 진달래와 아이들== 
  
지금은 없어진 이 땅의 보릿고개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높았다는. 
밑구멍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은 
풀뿌리 나무껍질 따위로 연명했죠. 

허기진 아이들은 산에 들에 만발한 
진달래 따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은 다르데요. 
어제 숲 속의 샘터로 가는데, 

두 아이가 진달래 꽃가지를 
흙을 파고 정성껏 심는 것을 보았어요. 
물론 그들이 꺾은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꺾어서 버린 걸 말예요. 
나는 집에 돌아와서야 깨닫게 되었지요 
그 진달래는 내 가슴속에도 심어졌다는 것을.


(박희진·시인, 1931-)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벚꽃 시 모음> 오희정의 '벚꽃 축제' 외

== 벚꽃 축제 ==

여한 없이 핀 가지마다
눈이 즐겁고
반쯤 벙글어
손을 꼽게 하는 나무도 있구나

한두 송이 피우다 
이내, 지우는 나무 아래 섰다
내 생은
어느 나무로 피고 있는가?

(오희정·시인)

== 벚꽃 == 

어떤 감미로운 속삭임으로 
자릿자릿 구워삶았기에 
춘정이 떼로 발동했을까 

튀밥 튀듯 폭발한 하얀 오르가슴 쫓아 
겨우내 오금이 쑤시던 꿀벌들 
실속 차리느라 살판난 강가 

꽃샘이 끼어들도록 방관하더니 
본분 잃지 않고 서두르는 걸 보면 
봄바람아, 너 정말 오지랖 넓다 

화끈한 누드쇼 이끌고 방방곡곡 
사람사태 나도록 쏘삭거리는 일 
참말로 잘하는 짓이다

(권오범·시인)

== 산벚꽃나무 ==
    
뒤로 물러서려다가 
기우뚱 
벼랑 위에 까치발 
재겨 딛고 

어렵사리 산벚꽃나무 
몸을 열었다 
알몸에 연분홍빛 
홑치마 저고리 차림 

바람에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나태주·시인, 1945-)

== 벚꽃이 필 때 ==

꽃봉오리가 
봄 문을 
살짝 열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더니 

봄비에 젖고 
따사로운 햇살을 견디다 못해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봄소식을 전하고자 
향기를 내뿜더니 
깔깔깔 웃어 제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가득하다 

나는 봄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없거늘 
너는 어찌 
봄마다 
더욱더 화려하게 
사랑에 몸을 던져 
빠져버릴 수가 있는가 

신바람 나게 피어나는 
벚꽃들 속에 
스며 나오는 사랑의 고백 
나도 사랑하면 안 될까

(용혜원·목사 시인, 1952-)

== 벚꽃 ==
    
봄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꽃잎을 들어 보이며 
내가 하는 말 
단 한마디 말 

올해도 알아듣고 
마주 웃어주는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한 채 

펼쳤던 자리를 
거두고 돌아가니 
빈 꽃자리마다 눈물 어린다 

세물나루 
십릿길 
깊어가는 봄

(이몽희·시인)

== 벚꽃잎이== 
    
벚꽃잎이 머얼리서 하늘하늘 떨리었다 
떨다가 하필 내 앞에서 멈추었다 
그 눈길이 내 앞을 운명처럼 막았다 
가슴이 막히어서 숨을 쉴 수 없었다 
나는 흐느끼었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 이상은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없었다 
벚꽃잎은 계속 지고 있었다

(이향아·시인, 1938-)

== 벚나무는 건달같이 ==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안도현·시인, 1941-)

== 벚꽃 ==

벚꽃나무의 영혼이 
꽃으로 부활하여 
가지 위를 맴돌다 
홀연히 사라진다. 

꽃다움의 극치는 
원죄가 없어서일까 
흠도 티도 없는 
꽃의 원조로구나 

탐욕과 이기를 버리면 
얼굴에 꽃이 피고 
미움만 버려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리. 

해맑음과 눈부심이 
강하게 刺戟할 때 
꽃과 마주한 나는 
큰 부끄러움을 느낀다. 

(박인걸·목사 시인)

== 벚꽃이 질 때 ==

벚꽃잎 사이로 
환한 햇살이 쏟아질 때마다 
그대는 속삭인다. 
당신의 눈길은 참 아름답다고 

벚꽃 나룻길 너머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그대는 속삭인다. 
당신의 손짓이 그리울 거라고 

강물 위에 벚꽃잎 질 때마다 
흔들리는 몸짓으로 
그대는 나즉이 속삭인다. 
다시 올 때까지 
내 향기 가슴에 담아두라고

(이남일·시인, 전북 남원 출생)

== 벚꽃 유감 == 

어제 봤던 벚꽃 
밤 내내 내린 비에 
후드득 떨어져 버렸다 
나 보기 싫다 
눈물도 보이기 싫다 
아침에 눈물 싹싹 훔치고 
봄바람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기다려 달라는 소리도 
눈길 주지도 못했다 
봄빛은 등을 두드리며 
길 떠나라 따갑게 때린다

(이국헌·시인)

== 벚꽃, 그녀에게== 

누군가를 저렇게 간절히 원하다가 
상사병으로 밤새 앓아 누워 
죽음의 문턱까지 가 본 적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원망하다가 
눈물 하루종일 가득 흘려 
깊은 강물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목 빼고 기다리다가 
검은머리 한 세월 
파뿌리 흰머리가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못 잊어 그리워하다가 
붉은 목숨 내놓고 
앞만 보고 행진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를 저렇게 찾아다니며 
사막의 빙하의 길 
오래 걸어 신 다 닳아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단 며칠이라도 얼굴 보여주려고 
이 세상 태어나기를 원한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몸 눕혀 불길로 공양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목숨 바쳐 
순교자의 흰 피를 뿌려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말없는 눈빛으로 다가가 
속 깊은 우물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천년 만년 바람 불고 눈비가 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절대적인 꿈과 희망이 되어 본 적 있느냐 
누군가에게 저렇게 전율이 감도는 
노래와 춤이 되어 본 적이 있느냐 
어제 벚꽃, 그녀에게 
숨김없이 옷을 다 벗고 
사랑한다고 고백해 본 적이 있느냐

(김종제·교사 시인, 강원도 출생) 

== 벚꽃처럼 져내려도== 

남녀가 같이 있는 것만큼 기쁜 일 어디 있겠습니까.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기만 한다면 달도 해도 맘대로 방 안에서 띄우고 저물게 할 것입니다. 
서로 그리워만 한다면 함께 누운 곳마다 수풀 생기고

산과 계곡이 낳아지고 냇물과 강이 분만된 새 세상이 매일 아침처럼 돋고

저녁처럼 지는 것을 함께 볼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사랑으로만 살기 원했듯 사랑만으로 죽는 것도 좋습니다. 
벚꽃처럼 화려한 절정에서 한꺼번에 이 세상 모든 게 져내려도 좋습니다. 
함께 있어서 좋은 관계만큼 아름다운 꽃나무도 없고 향기롭게 설레는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김하인·시인,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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