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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봄날 아침 따끈한 시 한잔] - 숲
2016년 03월 24일 07시 59분  조회:4079  추천:0  작성자: 죽림

- 김재진(1955~ )


기사 이미지
손 위에 올려놓은 씨앗 한 움큼

지금 나는 손바닥 가득 숲을 올려놓은 것이다.

바람이 산수유 열매를 기억하고

구르는 시냇물이

머리카락 단장하듯 나무뿌리 매만질 때

숲이 했던 약속을 맨살로 느끼는 것이다.

별이 나오는 언덕

새소리 풀어놓는 저녁을 위해

농부의 식탁이 푸르게 물드는 때.



20세기 모더니즘 이후 현세(現世)는 작가들에게 대체로 악몽이었다. 페시미즘이 브랜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희망을 말하기란 얼마나 힘든가. 오죽하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말했을까. 희망을 ‘불온한’ 단어로 만들어버린 시대에 이 시는 청량한 산소 같다. 씨앗에서 “숲이 했던 약속”을 기억하다니. 숲의 약속을 잊은 사람들에게 씨앗은 발아되지 않는다. (다가올 숲에 대한) ‘믿음’이 씨앗을 터뜨린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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