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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진부한 표현을 말살하는 작업이다...
2016년 07월 20일 23시 32분  조회:4364  추천:0  작성자: 죽림

[14강] 대상에 대한 표현.4 

강사/김영천 


4) 표현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으로 

언젠가 제가 여러분들께 강의하면서 "낯설게 하기"란 
문학적 용어를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이는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 등이 주장한 문학비평용어인 
데요. 쉽게 말하면 문학의 표현은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을 피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자주 접해서 익숙해져버린 표현은 아무의 관 
심도 끌지 못해서 좋은 글이 안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그래서, 새롭고 참신한 
맛을 느끼게 하는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을 찾아 
내야 합니다. 

쉬클로프스키 이론을 보면 낯설게 하기를 세가지로 
나누는데 그 첫째 이론을 보면 "낯설게 하기는 어떤 
다른 양식에서 부터라도 문학, 즉 순전히 문학적인 
체계로 가려내는 방식으로 쓰인다고 했는데 이 말은 

문학이 아닌, 철학이나, 신문의 사설이나, 광고물이나 
과학의 설명이나 이런 것들과 문학이 다른 점은 
그 사용하는 글이 문학적이어야 한다. 즉 누가 읽어도 
참신하고 독창적이며 상투적이거나 관습적이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해도 다른 사람이 쓴 표현을 그 
대로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이 볼 때 초생달이 꼭 눈섭같이 생겼 
어도, 그 표현은 옛부터 많이 써서 참신하지 못한 것 
입니다. 
앵두 같은 입술, 백옥 같은 손, 마늘쪽 같은 코, 
뭐 이런 표현은 이미 많이 써서 진부한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을 쓰면 좋은 시가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말, 아직 발견하지 못한 
표현을 자기만의 눈으로 찾아내야하는 것입니다. 

옛날 강의하고 조금 중복되는 감이 있습니다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다시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은 이미 알고 있는 부분만을 기계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고 여기므로 
사물은 더 이상 새롭거나 경이롭지 않지요. 
나는 이미 별 것으로 보지 않는 물건도 집에 찾아온 
다른 사람들은 깜짝 놀랠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 있 
습니다. 사실 내가 구할 때도 그렇게 좋아서 구했지만 
늘 보면서 그 사물에 대해 자동화되고 관습화된 시선 
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주말을 맞아 바람쏘이러 가는 곳도, 새로운 곳 
에 가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시로 쓰이는 단어들이 
새로운 것이어야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겠지요. 
그런 간단한 이치입니다. 

여기서 천양희님의 <그믐달>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山 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 진 어머니,. 

조태일님의 해설을 여기 덧붙이니 한번 들어보십시오 

"예로부터 하늘에 걸려 있는 둥근 보름달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상이 되곤 했다. 세상 만물을 두루 감싸 
안듯 둥글고 넉넉한 모습과, 삼라만상을 어린 새끼로 
여기며 가슴에 품어 젖을 물린 것처럼 부드럽게 흐르 
는 달빛은 영락없는 어머니의 이미지이다. 

그래서 위의 시 역시 달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 것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그믐 달에서 가슴이 닳은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은 시인의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 
즉 "가슴닳아/만월의 채 반도 못 산/달무리 진 어머니" 
라는 구절은 새로운 그믐달에 대한 표현으로 아주 개성 
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또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와 대비해서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하는 표현을 씀으로서 마치 팽나무에 
달이 창백하게 걸린 것처럼, 내가 어머니의 가슴에 
대롱대롱 내 걸린 달처럼 항상 어머니의 가슴에 걸려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놀라운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은 이 시인 외에는 아직도 전무 후무합니다. 

이번에는 박라연님의 <풍란>을 읽어보겠습니다. 

살면서 
가장 목이 마를 때 
긴 물관부를 흔들어 꽃눈을 튼다. 
터서는 1백일 지지 못해 
향기로운 혀 내밀고 서 있다. 
밤이면 
하얀 뿌리털 잘게 흔드는 한숨 소리 
떠날 날을 미리 알고 
한 점 벼랑에서도 대를 잇는 뿌리들아 
이 땅의 잡초보다 처절하구나 
숨진 네 그리움의 뿌리를 
풀이끼로 포근히 감싸준 그날 
삐죽이 고개 내민 새끼 촉 하나 
아하, 서로의 눈빛만으로 
새끼를 치는구나 사랑하므로 
헤어져 사는 너희들은 

여러분 중에 풍란을 길러보신 분들은 아주 실감이 
생생할 것입니다만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드리지요. 
풍란은 남쪽 섬의 해안가에 많은데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소엽풍란이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대엽풍란 
이라하는 것은 학명으론 나도풍란이라 합니다. 
그들은 기근(氣根) 즉 공기중에 뿌리를 내서 거기 
에서 질소를 흡수하는 특이한 식물로 바위나 나무 
등에 착근하여 산답니다. 


풍란(소엽풍란) 

나도 풍란(대엽풍란) 

위시에서 우리에게 탁 뛰는 표현이 몇 군데 보입니다. 

"살면서 
가장 목이 마를 때 
긴 물관부를 흔들며 꽃눈을 튼다." 

이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 꽃대가 하얗게 올라오는데 
그 것을 긴 물관부로 보고, 아주 간절히 목이 마를 때 
물관부를 흔들며 꽃눈을 튼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런 좋은 표현은 
생각지도 못해보았지요. 
또 "아하, 서로의 눈빛만으로/새끼를 치는구나 사랑 
하므로/헤어져 사는 너희들은"이라는 구절을 보면 
참 기가 막힌 표현이지요. 

좋은 시 또 한 편 감상하고 오늘 강의는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강의한 부분은 지금 기성 시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입니다. 
늘 목표로는 삼되 당장에 그런 표현을 찾지 못함을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것은 수 년 내지 수 
십년을 노력하고 공부해야 겨우 이룩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성선님의 <낙산사 노래>를 한 번 읽어보시지요. 

암자 안에 바다를 다 잠글 수 있다면 
내 주머니 속에 바다를 
감추고 떠돌 수 있다면 
저 無音의 山노래가 더 잘 들리리. 
오늘 아침에 가까이 설악이 또 
구름의 옷고름 풀어 
내게 속가슴 보이는구나. 
여기 오래 앉아 있으려 하였으나 
다시 떠나야겠다. 
사람 없는 곳에 사람을 찾아 
소리 없는 곳에 소리 하나 찾아 
산아, 너의 무반주 노래 
너의 무반주 육체 속에 
하룻밤 파계로 일박. 
그래도 못찾으면 
더 멀리 떠돌다가 
어느 산노을에 감추어진 
작은 꽃잎 속에 일박.

 

==================================================

 


 

 

 

보름 
―장승리(1974∼)

 

 

설익은 감이 옥상 계단 위로 떨어진다
쿵, 쿵쿵 누가 누굴 때리는 소리 같다
자고 있던 강아지들이 벌떡 일어나
동시에 짖어댄다
썩은 과즙이 누렇게 변색된 감 주위를
달무리처럼 에워싸고 있다
어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일까 저 달은
썩는 순간부터 눈부셔지는 달빛을 뭐라고
부르나요 당신은
자고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
컹컹 짖게 만드는
그 옛날 끝없는 계단으로 떨어진
오늘 밤 저 달은
누가 누굴 계속 때리는 소리 같은데


옥상 계단에 감이 떨어진다니 단층집인가 보다. 아마 단독주택일 테다. 주위가 아주 조용할 때였을 것이다. 벽 너머에서 설익은 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옥상 계단을 설익은 감이 굴러 떨어지는 ‘쿵, 쿵쿵’ 소리에 ‘자고 있던 강아지들이 벌떡 일어나/동시에 짖어댄다’. 뭣 모르고 짖어대던 강아지들은 이내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잠들었을 테다. 화자 혼자 바깥에 나가 본다. 강아지 한 마리쯤은 따라 나왔으려나. 화자의 짐작대로, 옥상으로 이어지는 계단 여기저기 감이 떨어져 있다. 어떤 감은 여러 날 전에 떨어져 ‘썩은 과즙이 누렇게 변색된 감 주위를/달무리처럼 에워싸고 있다’. 하늘엔 두둥실, 미끈히 무르익은 보름달. ‘어느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일까 저 달은.’ 여기부터 감은 달로 마술적 변화를 일으킨다. 어쩌면 화자를 밖으로 끌어낸 것은 감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라 달빛일지도 모른다. 설익은 채 떨어져 흠집이 난 감이 ‘그 옛날 끝없는 계단으로 떨어진/오늘 밤 저 달’로 교차하는 상념들. 보름날의 만월은 화자의 마음을 때린다. ‘자고 있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 컹컹 짖게’ 만든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추락해 굴러 떨어지던 기억이 화자를 달무리처럼 에워싸고 있다. 달빛 아래서 으깨진 감을 내려다보던 화자는 옥상에 올라가 옛 기억을 더듬으며 한참을 서성거렸을 테다. 달이 너무 환해서! 

감 하나 떨어진 거 갖고 이토록 섬세한 사유를 펼치누나. 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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