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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낡아가는 돌문을 천만년 들부쉬는 작업이다...
2016년 10월 17일 21시 33분  조회:4185  추천:0  작성자: 죽림



 

석문(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희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 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 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虛空) 중천(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 년(千年)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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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로서 전설을 소재로 하여 이루어진 작품이다. 임에게 버림 받은 여인의 하소연을 통해 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기다림이 임에 대한 원한으로 확대되며 그 기다림의 한이 극대화되어 가는 모습이 돌문의 모습으로 선명히 형상화되고 있다.

< 핵심 정리>

형식 : 자유시, 서정시, 산문시

운율 : 내재율

주제 : 버림 받은 여인의 기다림과 하소연

성격 : 고백적, 상징적, 낭만적

어조 : 하소연의 어조

제재 : 버림받은 신부(新婦)의 하소연(경북 영양 지방의 전설)

출전 : 시집 '풀잎 단장', 1952

구성 : 제1연 : 돌문의 존재와 현재의 기다림
            제2연 : 슬픈 영혼의 모습
            제3연 : 자신의 처지 하소연- 눈물과 한숨 속의 기다림
            제4연 : 해후의 모습 - 한 줌 티끌로 사라짐
            제5연 : 현재의 모습 - 원한에 사무친 기다림

<시어, 시구 연구>
⊙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 임이 아닌 다른 사람은 열 수 없는 돌문 
⊙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 오랫동안 당신이 찾지 않았음 
⊙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 ⇒ 임을 향한 사랑의 마음
⊙ 천 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 사무친 원한의 표현
⊙ 한숨에 입술이 푸르러감 ⇒ 지극한 슬픔의 표현
⊙ 당신의 따슨 손길이 ~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 절개를 지키겠다는 매운 의지
⊙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 세월의 풍파를 겪고 있는

<정선 강의>
  이 시는 산문시라는 형식상의 특징과 함께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시라는 점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내용적으로는 설화의 세계에서 뛰쳐 나와 시적 화자로 변용된 여인의 하소연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적 화자인 여인은 1연에서 자신의 모습을 열리지 않는 돌문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이 돌문은 검푸른 이끼가 않았다고 했으므로 오랜 세월을 임과 이별한 상태임을 알 수 있고, 2연에서 사랑의 마음으로 표상되는 촛불 한 자루를 간직하였다고 했으므로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속에 낡아 가는 돌문이다. 또 3연에서는 눈물과 한숨에 입술이 푸르러 간다고 했으므로 오지 않는 임에 대한 슬픔과 원망에 사무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4연에서는 당신의 따슨 손길이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다고 했으므로 매운 정절 속에서 기다림의 한을 삼키고 있는 돌문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그러한 원한과 정성과 슬픔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다. 요약하면 여인은 떠난 임을 사랑과 그리움 속에서 정절을 지키며 기다리고 있으나 이제는 가슴 속에 사무치는 원한이 되어 슬픈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자는 설화의 세계로부터 한 여인의 모습을 시로 끌어들여 섬칫할 정도의 사랑과 그리움의 세계를 급기야는 원한으로까지 치닫는 지극한 한의 세계를 비바람에 낡아 가는 돌문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형상화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시인 연구> - 아래의 성명을 누르세요.

  조지훈

<참고 사항>

전설의 내용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처녀는 그녀를 좋아하던 마을의 두 총각 중에서 한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그런데 신혼 첫날 밤 자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신방 문에 칼 그림자가 비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신랑은 자신의 연적(戀敵)이 자기를 죽이려고 숨어 있는 것으로 알고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나 그 칼 그림자는 다름아닌 마당의 대나무 그림자가 문에 비친 것인데 어리석은 신랑이 오해를 한 것이다. 신부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원삼과 족두리도 벗지 못한 채 신랑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깊은 원한을 안고 죽었는데 그녀의 시신은 썩지 않고 첫날밤 그대로 있었다. 오랜 후에 이 사실을 안 신랑은 잘못을 뉘우치고 신부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신부의 시신을 일월산 부인당에 모신 후 사당을 지어 그녀의 혼령을 위로하였다.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이 시는 5연으로 이루어진 산문시로서 의미상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앞 단락은 1∼3연으로 풍상에 시달려온 돌문의 모습을 통해 천년의 한을 간직한 신부의 서러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뒷 단락은 4∼5연으로 미래에 있을지 모를 '당신'과의 해후(邂逅)를 그리고 있다. 
  1연에서는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돌문'이 제시되고 있다. 검푸른 이끼가 내려앉도록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로지 '당신'의 따스한 손끝만을 기다리고 있는 돌문에게서 신부인 화자의 지극한 사랑과 간절한 기다림을 엿볼 수 있다. 2연에서는 '꺼지지 않을 촛불'을 통해 '천년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신부의 슬픈 영혼을 보여 주고 있다. 3연에서는 '눈물과 한숨'으로 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돌문의 애틋한 모습을 '어찌합니까?'라는 체념 섞인 어조로 나타내고 있다. 4연에서는 지금까지의 격앙된 분위기를 일신하고 강한 어조로 절개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당신'의 손길이 자신의 몸을 어루만지는 순간에야 한 줌 티끌로 사라질 것이라는 서러운 비원을 말하는 한편, 그렇게 사라질 자신의 존재를 눈물 없이는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신'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5연에서는 또다시 천 년을 비바람에 낡아가며 그 자리에 서 있을 돌문을 통해 원한이 사무친 신부의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1연에서의 돌문이 '기다림의 문'이라면, 5연에서의 돌문은 '원한의 문'으로 신부의 간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열리지 않는 돌문으로 비유한 것이다.

설화를 바탕으로 한 시들

   조지훈, '석문', 김소월, '접동새', 서정주, '신부', 김영랑, '두견'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시에 나타난 '석문'의 이미지에 대해 설명하시오.
답 : 첫 행에서 사용된 돌문은 '기다림'의 문이고, 마지막 행에서 사용된 돌문은 '원한'의 문이다. 

(2) '석문'에서 간곡한 하소연의 부분을 찾아보자.
답 : 이 작품은 일종의 담화 행위가 베풀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하면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더 빨리 듣고 느낄 수 있다. 즉, '당신'으로 시작되는 시어의 전개를 시적 자아가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보자는 것이다. 그랬을 때 1연은 장차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돌문'의 존재와 현재의 모습을 담담하게 제시해 보이고 있다. 2연은 그에 머무는 영혼의 사연을 서술하고 있다. 3연에서는 직접 독자에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으며, 4연에서는 원하던 상대가 와서 자신의 원한이 풀렸을 때가 어떠할까를 그려 보인다. 이 중에서 우리는 가장 간절한 목소리가 배어 있는 부분으로 3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 2연까지의 시상 전개는 3연에 이르러 원망을 담은 현재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푸념어린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시상을 '현재화'하여 더욱 생생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동시에 질문 자체가 이면에 가슴의 울림을 체험하도록 이끌고 있다. 따라서, 이 시 전체를 푸념으로 보았을 때, 가장 간곡한 하소연의 부분은 3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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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을 사랑한다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 부시지 않아 좋다
(중략)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김현승 (1913 - 1975)「창」부분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주지주의 시인이라고 불려진다. 「가을의 기도」나「눈물」 과 같이 기도문의 형식으로 된 시들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의 대부분의 시들이 담고있는 밝고 미래지향적인 느낌 때문이리라. 
'부처'나 '자비'같은 단어가 한 마디 없어도 불심이 느껴지는 많은 선시에서처럼 위 시는 '주님'이나 '기도'와 같은 말을 쓰지 않았지만 돈독한 기독교적 신앙심을 행간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해를 사랑한다는 눈부신 표현 대신에 창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창을 열심히 닦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참고로 아래에 전문을 붙입니다.

[시]

          창

                    김현승



창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창을 잃으면

창공으로 나아가는 해협을 잃고,



명랑은 우리게

오늘의 뉴우스다.



창을 닦는 시간은 

또 노래도 부를 수 있는 시간

별들은 12월의 머나먼 타국이라고---.



창을 맑고 깨끗이 지킴으로

눈들을 착하게 뜨는 버릇을 기르고,



맑은 눈은 우리들 

내일을 기다리는

빛나는 마음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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