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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에서 "창조적 변용"아냐, "몰상식적 표절"이냐가 문제면 문제
2016년 10월 20일 20시 00분  조회:4930  추천:0  작성자: 죽림
폴 엘뤼아르, 김지하, 김남주
                               ㅡ: 위대한 반동들

 

 

 

                                                                                                                                                박 남 철

 

                           

 

 "폴 엘뤼아르, 김지하, 김남주: 위대한 반동들"

 박남철 2007-03-08 18:23:49

 


 나의 학습 노트 위에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총칼 위에

 제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새 둥우리 위에 금작화 나무 위에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밤의 경이 위에

 일상의 흰빵 위에

 약혼 시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나의 하늘빛 옷자락 위에

 태양이 녹슬은 연못 위에

 달빛이 싱싱한 호수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들판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새벽의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배 위에

 미친 듯한 산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구름의 거품 위에

 폭풍의 땀방울 위에

 굵고 멋없는 빗방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살포시 깨어난 오솔길 위에

 곧게 뻗어나간 큰길 위에

 넘치는 광장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불켜진 램프 위에

 불꺼진 램프 위에

 모여 앉은 나의 가족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둘로 쪼갠 과일 위에

 거울과 나의 방 위에

 빈 조개껍질 내 침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게걸스럽고 귀여운 나의 강아지 위에

 그의 곤두선 양쪽 귀 위에

 그의 뒤뚱거리는 발걸음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된 불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균형 잡힌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건네는 모든 손길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놀라운 소식이 담긴 창가에

 긴장된 입술 위에

 침묵을 초월한 곳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무너진 내 등댓불 위에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벌거벗은 고독 위에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사라진 위험 위에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일생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자유여.

 


 ---폴 엘뤼아르Paul Eluard, 「자유LIBERTE
     (원제: 단 하나의 생각)」[오생근 옮김] 전문.

 

 


폴 엘뤼아르
 

폴 엘뤼아르 (Paul Eluard, 1895년 12월 14일 ~ 1952년 11월 18일) 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본명은 외젠 에밀 폴 그랭델 (Eugene Emile Paul Grindel)이다. 
다다이즘 운동에 참여하고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생각했다. '
자유'라는 시로 유명한 시집 《시와 진실》, 《독일군의 주둔지에서》 등은 
프랑스 저항시의 백미로 알려져 있다.
 
파리 북쪽 생드니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폐결핵으로 공부를 중단하고 스위스 다보스에서 요양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1911년 ~ 1913년 요양소에 있을 때 보들레르아폴리네르 등 프랑스 시인들과 
휘트먼 등 미국 시인들에 자극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가 독가스로 를 다쳐 평생의 고질(痼疾)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인 안내 갈라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는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를 사랑하게 돼 1924년에 그를 떠났다. 
1934년 마리아 벤즈와 결혼했지만, 그녀 역시 파블로 피카소와 염문을 뿌렸다.
전후 앙드레 브르통루이 아라공 등과 쉬르레알리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스페인 내전 때 인민 전선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로서 활약하였다. 
1952년 11월 18일 과로와 협심증으로 숨을 거뒀고, 파리 페르라셰즈 묘지에 안장됐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신음 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 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전문.

 

 

 




          《덧글들》

 

 박남철 (2007-03-08 23:15:10) 

 


 내가 남주 형을 처음으로 본 것은 남주 형이 감옥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작가회의'의 무슨 모임의 뒤풀이 자리에서인가였다. 더 정확하게 얘기해보자면, 인사동 '학고재화랑' 위쪽의 어느 호프집에선가였을 거다. 
 

 

 더욱 정확하게 얘기해보자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진을 치고 있는---나는 어느 선배에게든, 후배에게든, 처음 보는 선후배들에게는 일부러 먼저 찾아가서 인사를 하지 않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는 매우 시건방진 처사였다고 아니 반성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남주 형에게 먼저 인사를 하지 않고 그저 먼발치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화장실에 먼저 와서 소변을 보고 있던 남주 형의 뒷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남주 형의 왼편의 소변대로 다가가서 내 힘없이 질질질 흘러내리는 소변을 잠시 보다가, 문득, 내 오른편 소변대에서 세찬 오줌발 소리로 소변을 보고 있던---저 오줌발 소리가 캄캄 감옥에서 10년씩이나 썩은 사람의 오줌발 소리일 것이란 말인가!---남주 형 쪽으로 고개를 들어 가만히 한마디 던져보았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지요?" 
 

 

 남주 형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고개만 바로 들어 나를 바라보며, 소년처럼 수줍게 웃기만 하던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을 눈이 부신 듯이 바라보는 듯한, 그 거만하지 않던 눈길! 남주 형의 눈길은 이미 나를 잘 인지하고 있는, 바로 그러한 눈길이셨던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0:26:23) 

 


 위 본문에다 인용해본, 세계적인 세 시인들의 대표시들 중에서, 지하 선생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폴 엘뤼아르의 「자유」를 창조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변용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할 것이다. 
 

 

 'FREEDOM'도 아닐, 'LIBERTY'로서의 '자유', 프랑스 적인, '불란서 영화 같은', "불란서 흰빵 같은 자유"를, 바로 저 우리의 6, 70년대의 처절한 현실이었던 "타는 목마름의 민주주의의 자유"로 변용시켜놓은 경우(?)일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4:03:47) 

 


 그리하여, 지하 선생의 바로 저러한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되었기에, 남주 형의 저 타는 듯한 아지프로로써의 「조국은 하나다」라는 통일 시의 데마고기도 성립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주 형도 명백히 그 자신의 시의 서두에서부터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라고, 바로 '공산당선언'적인 어투로, 지하 선생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면서도, 수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주 형도 이미 이러한 사실들을 잘 의식하면서, 미친 듯이, 작품을 써내려갔을 것이지만, 만약 지하 선생의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하지 않았다면, 남주 형 역시 「조국은 하나다」를 쓰지 않았을 것이지만, 지하 선생의 '징검다리'로서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선행하지 않았다면, 남주 형의 저 "위대한 반동적 통일 시" 「조국은 하나다」는 한낱, 불란서어의 콧소리 가득 섞인, '슬로건' 아닌, 음색들을 너무나도 불란서적으로 잘 표현해놓고 있을, 폴 엘뤼아르의 세계적인 대표작 「자유」에 대한, 지루하고도 지루한, 열거법과 반복법만이 뒤섞인, 한낱 표절작에 지나지 않게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박남철 (2007-03-09 14:29:17) 

 


 그리하여, 이제와, 우리의 문학 작품, 특히 시문학 작품에 있어서의 "그 창조적 변용", 또는 "그 창조적 비판 및 그 변용의 확산" 및 "'포절'이냐, 표절이냐" 하는 문제들은 언제나 그 문학사적인 문제들과 더불어, 매우 중차대한 문제들이 되어주고 있다고 아니 말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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