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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랑만주의 시인 - 윌리엄 블레이크
2017년 02월 02일 16시 50분  조회:6866  추천:0  작성자: 죽림

윌리엄 블레이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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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by Thomas Phillips.jpg
출생 1757년 11월 28일
영국런던
사망 1827년 8월 12일 (69세)
직업 시인화가판화 제작자편집장
장르 환상적, Poetry
사조 낭만주의
대표작 《순수와 경험의 노래》(Songs of Innocence and of Experience),《천국과 지옥의 결혼》 (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 《네 조아들》(Vala, or The Four Zoas),《예루살렘》 (Jerusalem: The Emanation of the Giant Albion), 《밀턴》 (Milton a Poem), 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 Poetical Sketches, The French Reuolution , The Book of Los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년 11월 28일 - 1827년 8월 12일)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이다.

신비와 공상으로 얽힌 화가로서 시작(詩作)과 회화를 발표했다. 블레이크는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자연의 외관만을 복사하는 회화를 경멸했다. 또 일반으로 보는 무감동한 작품을 부정하여, 대개 이론을 벗어나서 묵상 중에 상상하는 신비로운 세계를 그린다. 런던의 양말 공장 직공의 아들로 교육도 거의 독학으로 이루었다. 14세 때에 판화가의 제자가 되어 고찰(古刹)의 조각이나 중세의 사본을 만들어, 그것이 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에 결혼했고 회화에서는 유화를 꺼리고 수채화야말로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하여 시화집을 만들어 간행했으며, 페이지마다 그림을 넣어 판각만의 자력만으로 창조한 색채 인쇄까지 했다. 런던에서 생애를 보냈고 그 시화집에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 《경험의 노래》(1794) 등이 있으며, 기독교 성경 내용에 신비한 사색을 곁들인 《욥기》(1825)가 유명하다. 블레이크는 만년에 다시 단테의 《신곡》에 100매의 삽화를 기도했으나 미완성으로 그쳤다. 이 밖에 프레스코라고 자칭한, 실은 템페라의 회화가 있으나 삽화를 다른 회화와 나란히 견줄 만큼 인식시킨 것은 블레이크이다. 그의 순정을 담은 시작은 청순을 나타내지만, 그밖의 시화에서는 괴이한 신비가 나타나고 상식에 기초한 기법이 아니므로 그 선묘(線描)나 음영에서 생생히 호소하는 설득력을 나타내어,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 감각에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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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757. 11. 28 런던~ 1827. 8. 12 런던. 영국의 시인·화가·판화가·신비주의자.

 

서유럽 문화전통에서 매우 독창적·독자적인 작품〈순수의 노래 Songs of Innocence〉(1789)·〈경험의 노래 Songs of Experience〉(1794)를 필두로 삽화를 그려넣은 일련의 서정시와 서사시를 남겼다. 오늘날에는 최초이자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회화에서는 블레이크는 색보다 선을 강조해서 '딱딱한 느낌의 곧은 선'을 즐겨 썼다. 뛰어난 직관력으로 궁극적으로는 상상하여 창조한 미술작품이 자연을 관찰하여 얻은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했다. 판화·수채화·템페라에 나오는 인물들은 물결 모양의 윤곽에서 느껴지는 율동적인 생동감, 위풍당당한 단순함을 지닌 특이한 형상, 극적인 효과와 독창성을 지닌 몸짓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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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 초상화.
뛰어난 예술성을 가지고 당시 상식으로 통용되던 과학만능주의에 반기를 들어 신비주의와 낭만주의를 위해 매진했지만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동시대인으로부터 외면당한 불운한 아티스트였다.

 

 

반전의 예술사 - 윌리엄 블레이크

 

유한과 무한의 문틈 사이에서 질식사한 시대착오적 천재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비록 그 모습이 외부에서 찾아온 듯 보이지만
실은 내면에서, 당신의 상상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유한한 세상은 단지 그것을 비추는 그림자일 뿐.


-윌리엄 블레이크

 

얼마 전 작고한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열혈 추종자였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아이디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집이나 화집을 펼치곤 했다.

하지만 정작 윌리엄 블레이크가 생존해 있을 때에는, 이렇게 대놓고 “윌리엄 블레이크의 팬” 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았다. 잡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던 이 천재를 그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미치광이’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욥과 그의 가족

 

 

신전 앞의 사탄.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읽어주는 성경을 주된 세계관으로 가지고 있던 블레이크는 끊임없이 성경의 세계를 묘사했다. 그러나 원근법이라든가 과학적인 세부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칭 모드와 같은 신비주의적인 상징들을 구도에 적용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완성했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 태어난 가장 순수한 소망


윌리엄 블레이크는 1757년 태어나 1827년 사망했다. 인류의 운명에 극적인 영향을 끼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그가 살아있던 시기에 한꺼번에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고, 낭만주의가 전 유럽을 뒤덮었으며,

윌리엄 블레이크가 살던 런던에서는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소수의 자본가들과 대토지 소유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 산업화는 기계화를 이룬 공장이 가내수공업을 대신하며 겉으로 보기에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든 듯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를 통해 이 시기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했다.

그러나 실상은 겉보기와 달랐다. 다수의 민중의 삶은 오히려 산업화 이전보다 훨씬 더 곤궁해졌던 것이다. 농촌의 농부들은 소유주로부터 내쫓겨 도시로 찾아와 빈민층 노동자로 전락했다. 세상에서 가장 부강한 영국의 수도 런던의 뒷골목은 거지와 병자, 창녀들로 북적거렸다.

 

블레이크는 이러한 런던의 한가운데서 태어나 평생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그의 아버지는 양말 장수였고, 일곱 명의 아이들 중 셋째로 태어났지만 그중 두 명은 병으로 어릴 때 사망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 비범한 영적 능력을 소유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창가에서 천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동네 언덕에 올라가 하늘을 손으로 직접 만진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가 처한 우울한 현실세계에 대한 지독한 거부 반응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세상을 초월한 지고한 존재를 만나는 이러한 환상 체험은 훗날 그의 예술세계의 모태가 되지만, 반대로 왜 그가 동시대 사람들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빈민층 자식들이 흔히 그러하듯, 윌리엄 또한 온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쓰기와 읽기를 배운 것이 전부였으며, 그나마도 학교가 아닌 어머니에게서 이루어졌다. 독실한 신교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성경을 열성적으로 읽어줬는데, 윌리엄은 어머니가 읽어주는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묘사하곤 했다.

미술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어린 시절 윌리엄의 그림은 이미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결국 신동 화가
의 소문은 빈민가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런던 시내를 뒤덮었고, 열네살이 되던 해 그는 당대 판화가 제임스 바자이어의 제자로 입문하게 된다.

바자이어의 밑에서 지내는 7년 동안 윌리엄은 건축, 조각을 위한 스케치와 판화 기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윌리엄의 도제 기간은 그의 스승에게는 실로 인내의 시간이었다. 윌리엄은 그다지 고분고분하거나 차분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분출하는 성마른 젊은이였다.

게다가 바자이어의 판화는 솔직히 말해 유행에 뒤진 고루한 스타일이었고, 제자는 자신이 느낀 감상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어 스승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바자이어가 윌리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천재성 때문이었다. 도제 말년에 바자이어는 런던에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들을 습작하도록 했다. 여러 교회 중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윌리엄에게 결정적인 감흥과 영감의 원천을 제공했다.

 

스승의 추천으로 1778년 윌리엄 블레이크는 로열 아카데미 미술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정통 엘리트 교육을 지향하는 왕립 미술원의 교육은 그러나 어린 시절 빈민촌의 경험이나 교회로부터 받은 영감에 훨씬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6년의 교육을 마치고 졸업한 뒤 윌리엄 블레이크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던 바로 그해, 1789년 ‘순수의 노래(Song of Innocence)’ 를 발간하며 예술계에 데뷔했다.

워낙 글과 그림 양쪽 모두에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의 첫 작품은 자신이 직접 지은 시집에 직접 삽화를 그려 넣은 것이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찰나의 순간을 통해 영원을 보라.


-‘순수의 전조’

 

 

세상의 모든 순수와 사랑을 있는 대로 다 담을 듯이 순결하고 아름답게 시작되는 이 시는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천상에서 내려와 블레이크가 경험한 삶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고발하다가 마침내는 “거리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창부의 흐느낌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짜리라” 라는 비장한 예언으로 끝난다.

 

이후에 발표된 모든 시집은 이러한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비판적이고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그저 부강한 환상만을 품고, 그보다 더 큰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영국 사교계는 블레이크의 시집에 크게 동요했다. 이런 동요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블레이크 자신의 그림이었다.


자연과학의 발달로 인해 과학적인 원근법과 사실 묘사가 중시되던 당시 회화계의 풍토에 정면으로 반발하며, 블레이크는 그림 속에서 원근법을 아예 무시하고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환상세계를 거칠게 표현했다.

로열 아카데미에서 그를 가르쳤던 스승들은 거품을 물었다. 블레이크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징들을 그리며 사실 묘사를 넘어선 인간의 원초적 체험을 구현하고 싶어 했다. 이런 영적 환상세계를 뒷받침하
기 위해, 그는 밀턴의 ‘실낙원’ 이라든가 ‘욥기’ 등과 같은 종교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태고에. God as an Architect, 혼자서 왼손에 컴퍼스를 들고 우주를 창조 중인 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별과 별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무심한 신의 모습은 이성에 경도되어 감정과 상상력을 상실한 삭막한 세계를 암시한다.

Blake's Ancient of Days. The "Ancient of Days" is described in Chapter 7 of the Book of Daniel. This image depicts Copy D of the illustration currently held at the British Museum.[91

 

 

블레이크의 강렬한 동판화와 현실 고발의 시들은 상류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고, 결국 경제적 후원은 끊어져버렸다. 그의 재능을 아끼던 일부 친구들은 블레이크에게 표현의 강도를 조금만 낮추라고 조언했다.
이에 블레이크는 이렇게 화답했다.

 

“ 나의 편이 아닌 사람은 나의 적이다. 중간이나 중용은 있을 수 없다.”

 

실제로 그는 극단적인 성격으로 “넘치는 편이 모자란 것 보다 낫다” 라고 여기는, 중용의 덕에서 한참 어긋난 인간이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것이 신사의 예절이라고 여겼던 런던 사교계에 블레이크는 처음부터 그리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블레이크를 “천사를 실제로 보았다” 라는 둥 헛소리를 하는 광인으로 몰아붙였다. 극소수의 지인들이 소개해주는 일감과 후원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수중의 마지막 동전으로 연필을 사가지고 단테의‘신곡’ 동판화 시리즈를 완성하다가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

 

 

 

아담과 이브.

 

 

Blake's Newton (1795) demonstrates his opposition to the "single-vision" of scientific materialism: Newton fixes his eye on a compass (recalling Proverbs 8:27, an important passage for Milton)[98] to write upon a scroll that seems to project from his own head.

뉴턴.
‘신이시여, 우리로 하여금 한겹의 눈과 뉴턴의 몽매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윌리엄 블레이크가 친구 토마스 버츠에게 보낸 편지에 쓴 시. 여기서 한 겹의 눈은 세계를 오직 하나의 논리로만 보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편협함을 의미한다. 블레이크는 동시대인이었던 뉴턴주의에 대한 격렬한
비판자로, 이 그림에서도 신의 모습으로 천체 관측에 매진하는 뉴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의 비판적 의도와는 달리 오늘날 이 그림은 뉴턴으로 대표되는 과학주의의 훌륭한 상징으로 통용되어 영국 대영도서관 앞에는 이 그림을 본뜬 거대한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중용은 없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와 그림들은 보수적인 영국 문화 속에 거의 1세기에 가깝도록 사장되어 있다가, 20세기 중반에 다시 발굴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 발굴한 주체는 영국인이 아니라 신대륙 미국의 히피 세대였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사이 베트남 전쟁, 인종 차별, 페미니즘을 한꺼번에 겪으면서 이데올로기 변화와 사회혁명을 극한으로 경험한 젊은이들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에 환멸을 느꼈다. 기득권의 문화와 전통이란 명분 아래 유지되던 각종 편견과 차별을 정면으로 반박하며 자유로운 이상을 꿈꾸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예술은 이들에게 작게는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적극적으로는 그들이 표방하는 이념적 상징이 되어주었다.

 

 

 

 

 

Joan_Baez_Bob_Dylan.

(상)도어스(The Doors), (하)밥 딜런(Bob Dylan).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20세기 히피세대로 대표되는 반전 아티스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밥 딜런은 그의 시를 응용하여 가사로 차용했고, 록 그룹 ‘도어스’ 의 이름 또한 블레이크의 시에서 따온 것이었다.

 

 

물론 블레이크의 세례를 받은 유명인사는 이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스티브 잡스뿐이 아니었다. 1960년대‘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던 미국의 록 그룹 도어스도 마찬가지였다.

이 밴드의 이름인‘도어스(The Doors)’자체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는 문이 있다. 인식의 문이 청결하다면, 모든 것이 무한하게 보일 것이다” 라는 블레이크의 시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반전 가수 밥 딜런은 ‘소중한 천사’ 라는 노래에 블레이크의 글을 인용해 “당신은 신자가 아니라면 무신론자이다. 그리고 중립 지대는 없다” 라는 가사를 쓰며 애매모호하게 중용의 미덕을 발휘하는 회색분자들을 꼬집었다.

“나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들이 광기에 의해 파멸되는 것을 보았다” 라고 외친 미국 비트 세대의 대표 시인 앨런 긴스버그 또한 블레이크 추종자였다.

 

20세기 블레이크 추종자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블레이크의 급진적인 사상은 물론 성마르고 극단적인 성격까지도 공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남과 다른 자신만의 세계관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그들에게는 그러나 기존 관념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뿌리가 깊고 튼튼하게 박혀 있었다. 근거 없는 루머에 이리저리 갈대처럼 휘둘리는, 오늘날 치혀와 팔랑귀의 소유자와는 분명 달랐던 그들의 박력이 한층 더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글 :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

 

순수의 전조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1757∼1827)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 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 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모든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은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부터 건져 올린다.
여기저기를 헤매는 들사슴은
근심으로부터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준다.
학대받은 양은 전쟁을 낳지만,
그러나 그는 백정의 칼을 용서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인간은 기쁨과 비탄을 위해 태어났으며
우리가 이것을 올바르게 알 때,
우리는 세상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다.
기쁨과 비탄은 훌륭하게 직조되어
신성한 영혼에겐 안성맞춤의 옷,
모든 슬픔과 기쁨 밑으로는 
비단으로 엮어진 기쁨이 흐른다.

아기는 강보 이상의 것,
이 모든 인간의 땅을 두루 통해서
도구는 만들어지고, 우리의 손은 태어나는 것임을
모든 농부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보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대가 무엇을 하건, 그것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해와 달이 의심을 한다면
그들은 곧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열정 속에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열정이 그대 속에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국가의 면허를 받은 매음부와 도박꾼은
바로 그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 거리 저 거리에서 들려오는 창부의 흐느낌은
늙은 영국의 수의를 짤 것이다.

  

 

- Auguries of Innocence(순수의 전조) 번역본

 

브레이크는 당시 그가 살았던 영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잘못되어가는 조짐들을 통해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기득권층만을 위한 법과 제도로부터 소외당한 하급계층이 겪어야할 가난과 비통함을 신랄하게 묘사한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기도 하다. 사물과 현상의 본질을 꿰뚫는 눈과 시대를 앞서가는 신비주의적 감각은 훗날 높이 평가를 받지만 난해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산업혁명이 인간을 통째로 갈아서 바닥 모를 퇴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는 공포의 상징으로 표현된 ‘사탄의 맷돌’은 구닥다리 비주류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쓴 <거대한 전환>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속성을 비판하는 기재로 다시 인용된다. '돈 놓고 돈 먹는' 카지노자본주의로 치달아 지금 곳곳에서 터지고 있는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마침내 경제를 거덜 내고 말 것임을 예감했다.

 

캐피털리즘이 시장근본주의(신자유주의)와 만나면 사탄의 맷돌이 되어 인간(노동)도 자연(토지)도 구매력(화폐)도 온통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거라고 이 책은 전망했다. 1944년에 나온 이 책이 지금 조명을 받는 이유는 좌우 이념에서 벗어나 치밀한 비판적 접근을 거쳐 독특한 해법을 펼쳐 보였기 때문인데 브레이크의 신비한 감각과 상통한다.

 

오늘의 현실은 평생을 인간의 고통과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시장 만능주의에 맞서 ‘사회’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도록 한다. 더불어 블레이크의 ‘순수의 전조’에서 보여주는 불길한 조짐들이 과연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것인지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이 시는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하는 詩라고합니다.

그는 時에서 세상을 뒤흔들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합니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신비와 공상으로 얽힌 화가로서 시작(詩作)과 회화를 발표했다. 블레이크는 초상화나 풍경화처럼 단지 자연에 대한 외관을 복사하는 회화를 경멸했다. 또 일반적으로 보는 무감동한 작품을 부정하여, 대개 이론을 벗어나서 묵상 중에 상상하는 신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런던의 양말공장 직공의 아들로 교육도 거의 독학으로 이루었다.

 

14세 때에 판화가의 제자가 되어 고찰(古刹)의 조각이나 중세의 사본을 만들어, 그것이 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25세 때에 결혼했고, 회화에서는 유화를 꺼리고 수채화야말로 최고의 표현이라 생각하여 시화집을 만들어 간행했으며, 각 페이지마다 그림을 넣어 판각만의 독창적인 색채 인쇄까지 했다. 런던에서 생애를 보냈으며, 그 시화집에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1790), 《경험의 노래》(1794) 등이 있으며, 성서 속에 신비한 사색을 곁들인 《욥기》(1825)가 유명하다.

 

블레이크는 만년에 다시 단테의 《신곡》에 100매의 삽화를 기도했으나 미완성으로 그쳤다. 이 밖에 프레스코라고 자칭한, 실은 템페라의 회화가 있는데, 그러나 삽화를 다른 회화와 나란히 견줄 만큼 인식시킨 것은 블레이크이다. 그의 순정적인 시작은 청순함을 나타내지만, 그밖의 시화에서는 괴이한 신비가 나타나고, 상식적인 기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 선묘(線描)나 음영으로부터 생생하게 호소하는 설득력을 나타내어, 그는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감각에 연결되고 있다.

 

 
 


 

서시

 

                         윌리엄 블레이크

 

시인의 목소리를 들어라!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보는 그

그의 귀는 들었다

오래된 숲 속을 걷던

신성한 말씀을

 

타락한 영혼을 부르며

저녁 이슬 속에서 눈물지은 말씀을

별이 빛나는 북극도

지배할 수 있었던 영혼

타락했지만 빛이 되살아난다!

 

오 대지여 오 대지여 돌아오라!

이슬 머금은 풀잎으로부터 깨어나라

밤이 이울고,

이제 아침이

잠에 취한 무리로부터 솟아난다

 

더 이상 도망가지 마라

왜 도망하려 하는가

별이 빛나는 하늘도

물 넘실대는 해안도

그대에게 주어졌노라 새날이 밝을 때까지

 

꼬마 흑인 소년
               
                   위리엄 블레이크

어머니는 나를 남쪽나라 거친 땅에서 낳으셨죠.
그래서 나는 검습니다, 그러나 오! 내 영혼은 흽니다.
영국아이는 천사처럼 흽니다.
그러나 나는 검습니다, 마치 빛을 빼앗긴 듯.


어머니는 나무 아래에서 나에게 가르치셨죠.
그리고 날이 뜨거워지기 전까지 앉아,
무릎 위에 나를 앉히고는 입맞춤을 해주면서,
동녘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봐라, 떠오르는 태양을 - 저기에 하나님이 사시면서,
빛을 주시고 열을 내 보내신단다;
그러면 꽃들과 나무, 짐승과 사람들이
아침엔 위로를, 한낮엔 즐거움을 받는단다.


그리고 우리는 잠깐 동안 이 세상에 머무르면서,
사랑의 빛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검은 몸과 햇볕에 탄 얼굴은
구름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늘진 숲과 같은.


우리 영혼이 열을 견디는 법을 배우게 되면,
구름은 사라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리라.
'숲에서 나오너라, 내 사랑 내 자녀들아,
그리하여 내 황금빛 집 주위에서 양들처럼 즐기거라'라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어머니는 나에게 키스를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꼬마 영국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검은 구름에서, 그가 흰 구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집 주위에서 양들처럼 즐거워할 때면,


내가 그를 열로부터 보호해주겠다고, 그가 기뻐하며
우리 아버지의 무릎에 기댈 수 있을 때까지;
그때 내가 일어나 그의 은빛 머리칼을 쓰다듬어줄 것입니다.
그러면 그와 같게 될 것이고, 그도 나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호랑이(The Tyger) - 윌리엄 블레이크 )

Tyger! Tyger! burning bright(호랑아! 호랑아! 한밤 숲에서)
in the forests of the night,(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아.)
What immortal hand or eye(어떤 불멸의 손 혹은 눈이)
Could frame thy fearful symmetry?(네 무서운 균형을 빚어냈지?)


In what distant deeps or skies(어떤 머나먼 심해나 하늘에서)
Burnt the fire of thine eyes?(네 두 눈의 불길이 타올랐지?)
On what wings dare he aspire?(어떤 날개를 타고 그가 날고자 했지?)
What the hand dare seize the fire?(어떤 손길이 감히 그 불을 잡으려 했지?)


And what shoulder, and what art,(그리고 어떤 어깨, 어떤 기술이)
Could twist the sinews of thy heart?(네 심장의 힘줄을 비틀 수 있었지?)
And when thy heart began to beat,(또 네 심장이 뛰기 시작했을 때)
What dread hand? and what dread feet?(어떤 무서운 손이? 어떤 무서운 발이?)


What the hammer? what the chain?(어떤 망치가? 어떤 사슬이?)
In what furnace was thy brain?(어떤 용광로에 네 두뇌가 담겨 있었지?)
What the anvil? what dead grasp(그 분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미소지었니?)
Dare its deadly terrors clasp?(감히 그 무서운 공포를 움켜쥐었지?)


When the stars threw down their spears,(별들이 저들의 창을 내던지며)
And water'd heaved with their tears,(하늘을 그네의 눈물로 적셨을 때)
Did he smile his work to see?(그 분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미소지었니?)
Did he who made the Lamb make thee?(양을 만드신 그 분이 너를 만들었니?)


Tyger! Tyger! burning bright(호랑아! 호랑아! 한밤 숲에서)
In the forests of the night,(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아.)
What immortal hand or eye(어떤 불멸의 손 혹은 눈이)
Dare frame thy fearful symmetry?(네 무서운 균형을 빚어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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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낭만주의 문학 시대를 연 시인.

런던에서 출생하여 왕립미술학교에 잠시 다니다

14세부터 판화를 배웠고 문학서적을 탐독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26세에 내놓은 첫 시집 <시적 스케치 Poetical Sketches>는

당대의 신고전주의적 경향에 강한 불만을 담고 있었다.

 뒤에 나온 <순수의 노래 Songs of Innocence>(1789),

<경험의 노래 Songs of Experience>(1794)는 어린이의 관점에서 쓴

문명 비판적 시들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오늘날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블레이크는 창문 밖으로 천사를 보았다는 환상가였고 신비가였다.

종교적 명상이 담긴 <셀의 서 The Book of Thel>(1789),

<천국과 지옥의 결혼 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1790),

 <밀튼Milton>(1804-8), <예루살렘 Jerusalem>(1804-20) 등의 예언서들을 냈다.

그는 거기에서 당대의 이성의 억압적 세력에 대항하는 사랑과 상상력의 싸움을 노래하였다.

그는 화가로서도 탁월하였다. 자신의 작품집에 대부분

자신이 삽화를 그려 넣었는데 그 기법이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에 기반하는 환상적인 소재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평가를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야 인정받기 시작했고

오늘에 와서는 가장 중요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저 무섭고 아름다운 호랑이는 누가 만들었을까?

The Lamb과 짝을 이루는 시로 창조주의 작업에 경외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장장이의 이미지에 중요성을 부여 한듯합니다... 다녀가신 회원님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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