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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페허 잔해속에서 원자로 화석을 발굴하라...
2016년 10월 28일 22시 26분  조회:4292  추천:0  작성자: 죽림

독일의 ‘생태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와 아이러니

                    - 한국 생태시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송용구 

 

1. 페스트 환자처럼 변해가는 자연         

 

   은모래알의 율동이 환히 비쳐나오던 강물 속에서 등굽은 물고기들이 페놀의 거품으로 목욕하며 수초(水草)들과 함께 쇠붙이들의 궁전 속에서 죽음의 유희를 즐기는 엽기적 현상들이 1950년대 이후 독일의 현대시에서 지속적으로 묘사되어 독자에게 ‘낯설음’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독일의 시인 한스 카스퍼(Hans Kasper)는 산업이 급진적으로 발전하던 1950년대 중반 대도시 ‘보쿰’에서 생명의 근원인 공기의 푸른 빛이 망자(亡者)의 검은 빛으로 변해버린 환경파괴의 참상을 엽기적으로 묘사하였다. 

    

보쿰. 우리가 쌓아올린

부(富)의 연기가

공기를

오염시킨다.

해마다 사람의 폐 속엔

세 통씩

매연이 쌓인다.

그러나 생산의 수치밖에 모르는

전자형(電子形) 두뇌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증명해 내리라.

죽은 자들은

숨쉬는 법을 몰랐으며,

더욱 잘못된 것은

지나치게

숨을 몰아 쉬었기 때문이라고.1)

         

          - 한스 카스퍼2)의 「보쿰」3) 전문

 

   ‘생산의 수치밖에 모르는’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은 인간을 부(富)를 쌓기 위한 기계로 전락시키고 황금의 소돔성을 향해 전력질주를 강요한다. ‘전자형 두뇌’만을 요구하는 조직사회 속에서 휴식과 여유를 갖는 것은 경쟁에서의 도태를 의미한다. 주변 세계와의 조화, 즉 인간 상호간의 신뢰는 물론 자연과 인간의 상생조차도 물질적 목표를 위해 우선순위를 양보해야 한다. 인간도, 자연도 필요에 따라 기꺼히 도구로써 기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병리 현상이 생명의 파괴를 유발하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집단논리가 비애감을 자아낸다.4) 그런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시인 한스 카스퍼가 잿빛으로 변해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해마다 사람의 폐 속엔/ 세 통씩/ 매연이 쌓인다.”는 충격적 사실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오염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명이 위협당하는 현실을 충분히 감지하고도 남는 표현이지만 보쿰 시민을 ‘매연’ 처리장에 비유한 것은 다소 엽기적 묘사임에 분명하다.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려는 시인의 교술적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들에게 숨결을 불어넣는 생명의 근원이 ‘공기’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로서 숭상되어 왔다. 이 진리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삼아 전통적 자연시 혹은 낭만주의적 자연시 속에서 ‘공기’는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혜택을 베풀어주는 시혜자의 모습을 나타내왔다. 그러나 한스 카스퍼는 “공기는 생명의 근원”이라는 진리가 이제는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선언하고 있다. 독일의 여류 시인 엘케 외르트겐5)이 자신의 시 「물」에서 묘사한 것처럼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이 “하얀 하복부를 / 하늘로 향한 채/ 하류로 둥둥 떠내려가며”6) 배영(背泳)을 연출하는 엽기적 현상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더 이상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신(母神) 가이아(Gaia)의 숨결처럼 예찬을 받아왔던 ‘공기’는 자신이 받았던 독배(毒杯)를 고스란히 도시인들에게 되돌려주는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로 탈바꿈하였다.7)

   시인 한스 카스퍼, 엘케 외르트겐 등은 자연에 대한 독자들의 안일한 인식과 전통적 관념을 해체시키기 위해엽기적 묘사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러한 묘사방식은 독자의 낭만적 자연관을 현실적 자연관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자연시’를 전통문학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연시’의 테마를 혁신하려는 문학적 의도를 보여준다. 오스카 뢰르케, 빌헬름 레만, 요하네스 보브롭스키 등 전통적 자연시인들이 아름답게 묘사해왔던 자연친화의 세계는 낭만주의 문학의 유물(遺物)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숲 속에서 나무의 초록빛 숨결을 예찬하는 시보다는 나무의 회색빛 죽음을 슬퍼하는 시가 현실의 대변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연시의 낭만주의적 전통을 철저히 부정하는 새로운 자연시, 즉 ‘생태시’가 문학적 파수꾼으로 출현하게 된 것이다.8)

   1980년 뮌헨 대학의 교수 페터 코르넬리우스 마이어 타쉬(P. C. Mayer-Tasch)가 저술한 논문 「생태시는 정치적 문화의 기록물」9)에 따르면, ‘생태시’는 환경파괴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고발하여 자연의 질적 변화를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시이다. 또한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을 병들게 하는 사회적 원인들에 대하여 독자의 비판의식을 유발하는 시이다.10)  ‘생태시’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타락은 자본주의 메커니즘이 낳은 급격한 사회변화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징을 주목해 볼 때, ‘생태시’의 성격은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 ‘생태시’는 자연과 인간의 생명이 파괴되어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시이다. 둘째, ‘생태시’는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로부터 생명파괴의 원인을 찾아내고 규명하는 시이다. 셋째, ‘생태시’는 환경오염의 원인들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들에 대한 개혁과 극복을 호소하는 시이다. 넷째, ‘생태시’는 현실극복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의 상생이 이루어지는 대안사회를 모색하는 시이다.11)

 

   자연에서 시의 소재를 가져온다는 점, 그리고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테마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생태시’도 ‘자연시’의 한 갈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태시’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 있어서 ‘자연시’와 다르다. 사회적 현실의 범주 안에서 자연의 실상을 인식하여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전통적 ‘자연시’의 낙관론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생태시’는 “리얼리즘적 자연시”이자 “비판적 자연시”라 할 수 있다.12)  

   뢰르케, 레만, 보브롭스키 등 전통적 자연시인들이 고수했던 낙관적 자연관(自然觀)은 195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부정되기 시작하였다. 한스 카스퍼(Hans Kasper), 다그마르 닉(Dagmar Nick) 등,  ‘생태시’의 서막을 열었던 시인들은 자연을 아름다움의 정수(精髓)로 보지 않았다. 자연은 그들에게 더 이상 정서적 만족과 평안을 안겨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자연은 낙관적 예찬의 대상이 아니라 산업발전과 개발사업에 의해 죽음을 선고받은 기형의 불구자였다. 독일의 생태시인들은 자연의 질적 변화와 공동체의 생존에 관련된 테마들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자연시’의 낭만주의적 전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생태시’의 테마가 전통적 ‘자연시’의 테마와 뚜렷이 구분되는 것은 독자에게 “망가진 자연의 실상”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동시에 인식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언술방식의 혁신이었다.13)

 

2. 생존의 위기를 각성시키는 엽기적 언술방식

 

   전통적 ‘자연시’에서는 메타포 ․ 상징 ․ 리듬 ․ 운율 등의 미학적 장치를 동원하고, 형용사와 부사를 위주로 수사적 표현을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실제의 모습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공하고 변형시켰다. 이 경우에 전통적 ‘자연시’가 안고 있는 위험성은 자연의 실상을 은폐함으로써 독자에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불감증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생태시인들은 자연의 실상을 목격자처럼 정확히 증언해줄 수 있는 시어(詩語)를 사용하였다.14) 독일의 시인들은 환경오염이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오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며, 독일 내에 국한된 지역적 현상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相生)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생명이 위협받는 현실을 대중에게 객관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시인들의 연대의식이 형성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독일의 ‘생태시’는 생태계 파괴의 양상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고발하였다.15) 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생생히 재생하는 작업에서 시인들은 엽기적 묘사방식을 동원하게 되었다. 생존의 위기를 독자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언술방식으로서 엽기적 묘사방식은 독자들에게 정서적 충격과 함께 의식의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녀는 

아직 씻지 않은

배 

한 개를 먹었다

그녀의 

아랫배가 

부풀었다

그녀의 

두 팔이

퉁퉁 부어 올랐다

그녀의 

두 다리가 부풀었다

그리고

    세포들이

          떨어져 나갔다

                      뿔뿔이 흩어지는

                                   솜털 조각

                                          같았다 16)

       

                  - 하인츠 쉬네바이스의 「그녀는」17) 전문

 

   독일의 시인 하인츠 쉬네바이스(Heinz Schneweiß)는 생태계 파괴로 인해 감수해야만 하는 인체의 파멸 과정을 엽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세포들’이 ‘솜털 조각’처럼 부스러져서 ‘뿔뿔이 흩어진다’는 표현은 괴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름끼치는 현실을 재생하고 있다. 농약에 오염된 흙을 통하여 과일 속에 스며드는 화학물질이 고스란히 인체 속으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문학적으로 변용(變容)시킨 작품이다.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서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시인은 엽기적 상상력과 언술방식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환경오염의 생생한 실상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려는 의도로써 엽기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창조해내는 묘사방식은 한국의 시단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18)

 

         - 최승호의 「공장지대」 일부  

 

   산모의 가슴에서 모유 대신 ‘허연 폐수’가 흘러나오는 것은 사실적 상황이 아니다. ‘공장지대’의 폐수 때문에 오염된 강물을 마시고 산모의 몸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산모’의 ‘젖을 짜면’ 모유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모유는 아이를 키워낼 수 있는 생명력을 상실해버린 모유이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강물처럼 철저히 변질된 모유이다. 시인은 이 객관적 사실을 독자에게 고발하고 있다. 그는 독자에게 정서적 충격을 안겨줌으로써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는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유’를 ‘허연 폐수’로 변용(變容)시키는 엽기적 상상력을 폭발시킨 것이다. 산모의 몸과 아기의 생명을 이어주는 끈의 역할을 하는 탯줄이 생명의 연결고리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이 배꼽에 매달린’ 탯줄을 ‘비닐끈’으로 변용시켰음을 알 수 있다. 엽기적 상상력에 의해 생태주의적 메시지를 창출해내는 픽션의 개가(凱歌)라고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이후 독일어권 지역의 ‘생태시’에서는 생명파괴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실증해줄 수 있는 낱말들이 시어(詩語)로 채택되었다. 피해자인 ‘자연’은 생명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폭로해주는 증인이 되었고 시어(詩語)는 이 증인의 고백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메신저가 되었다. 시인에게 요구되는 언어행위는 자연에게 심미적 광채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에게 당면한 공멸의 위기를 충격적으로 증언하는 일이었다. 현대의 시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병든 환부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관념의 옷을 벗겨내고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생존’의 위기상황을 각성시키는 일이었다.19) 새로운 시대의 문학적 소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독일의 시인들은 르포, 다큐멘타리, 묵시록 같은 다양한 언술방식을 사용하였다. 르포와 다큐멘타리는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될 수 없는 비문학적(非文學的) 언술방식인 까닭에 예술성과 미학을 포기하는 문학적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시인들은 ‘묵시록’이라는 언술방식을 사용하여 미학적 실험을 꾸준히 감행하였다.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지구의 종말과 인류의 파멸을 경고하려는 뜻에서 지구를 “거대한 공동묘지”, “유령들의 위성”, “거대한 화석” 등에 비유하는 엽기적 상황을 연출해낸 것이다.          

 

3. 묵시록에 나타난 엽기적 언술방식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금속으로 만든  

공 안에서

죽은 개 한 마리

날마다 우리의 지구 주변을 돌고 있다.

우리가 소유한 가장 좋은 위성

지구가

어느 날 저렇게

죽은 인류를 싣고

해마다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보내면서.20)

       

            - 귄터 쿠네르트21)의 「라이카」22) 전문

 

   귄터 쿠네르트의 시 「라이카」는 1957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 한 마리를 인공위성 ‘슈프트닉 2호’에 태워 역사상 최초로 우주 공간에 생명체를 띄워 보냈던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에 의해 이 역사적 사건은 지구의 종말에 대한 은유로 변화한다. ‘죽은 개’를 싣고 ‘지구 주변을 도는’ 인공위성은, 멸망한 인류를 싣고 ‘태양 주변을 돌게 될 지도 모르는’ 지구의 은유이다. 시인은 ‘죽은 개’를 통해 ‘죽은 인류’의 미래를 예언함으로써 ‘개’와 인류 공동의 터전인 ‘지구’의 죽음을 경고하고 있다.23) ‘가장 좋은 위성’이었던 ‘지구’ 안에서 모든 생물들이 시체로 변해버리는 엽기적 상황을 묵시록의 표현방식을 통해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거대한 공동묘지 혹은 ‘해골’들의 ‘관(棺)’에 비유하는 엽기적 묘사방식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시인들의 ‘생태시’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그들이 일어날 때의 시간인데도/ 산의 그늘만이 길게 뻗쳐 있다/ 햇빛이 해골의 눈 속을 통과하여/ 바람이 불고 오늘은 눈이 내린다/ 지구는 혼자 외로이 겨울을/ 빠져나가면서 공중에 떠 있을 뿐/ 인류는 모두 어디에 갔는가/ 빈 지구만이 태양을 돌면서 또/ 태양은 지구를 데리고 멀고도 먼/ 움직이는 우주를 따라가는 은하/ 그 은하계를 따라 사라져 간다/ 지구는 모든 조상의 묘를 싣고/ 밤과 낮을 끊임없이 통과하리라

                                           - 고형렬의 「지구墓」24) 전문

 

인간도 언젠가는 멸종하리라는 것/ 그 숱한 생명체들을 멸종시킨 죄로// 지구는 도는데 나는 사라지고 없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무덤속에 누워 있으리/ 지구는 도는데 나는 흙먼지가 되어 날리고 있으리/ 언젠가는 반드시

                                            - 이승하의 「생명체에 관하여」25) 일부  

 

   독일어권 지역 시인들의 생태사화집 『직선들의 폭풍우 속에서』라는 제목이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것처럼 기술문명의 메커니즘은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지향하는 “곡선” 형태의 점진적 발전이 아니라 황금빛 “소돔성”을 향해 ‘직선적’으로 질주하는 급진적 발전만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자연은 기술문명의 ‘직선적’ 발전을 가속화시켜줄 도구로 전락하였다. 자연의 ‘생명체들’은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켜주는 희생물일 뿐이었다. 인류의 물질적 쾌락을 위해 저당 잡힌 마지막 담보물은 인류 자신의 ‘멸종’과 지구의 파멸이었다. 귄터 쿠네르트의 「라이카」에서 묘사되었던 ‘죽은 인류’의 공동묘지인 ‘지구’를 고형렬과 이승하의 시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지구’는 인류의 ‘해골’과 ‘멸종’된 ‘생명체들’을 싣고 ‘태양’ 주변을 도는 거대한 ‘묘(墓)’로 전락하리라는 예언이 한국 시인들의 목소리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의 종말을 예언하는 시인들의 비관적인 목소리는 그들의 엽기적 언술방식과 결합하여 인류의 미래에 어두운 비가(悲歌)를 헌정한다. 그 비가는 지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사(弔詞)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이처럼 비관적인 “예언”의 언술방식을 통해 지구의 종말과 인류의 ‘멸종’을 엽기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대인들을 향해 ‘경고’의 옐로우 카드를 뽑아들어 ‘종말’을 막아내자고 호소하는 반어적(反語的)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26)

 

어느 날

폐허의 잔해 속에서

원자로를

공룡의 화석처럼 발굴하리라

삶을

지탱할 수 없었던 자들의

유산으로27) 

 

   - 베른트 M. 말루나트의 「유산」28)

 

독일의 시인 베른트 M. 말루나트(Bernd M. Malunat)는 모든 생물들이 차디찬 땅에 묻혀 ‘화석’으로 변해버린 적막한 풍경을 마지막 ‘유산’처럼 쓸쓸히 노래하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인류가 ‘원자로’를 관(棺)으로 삼아 ‘공룡의 화석’ 옆에 나란히 누워 있게 되리라는 엽기적 예언은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지배해왔던 인류의 탐욕에 경종을 울리고 현대인들의 “물질중심적” 패러다임을 “생명중심적”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놓으려는 “아이러니”로서 작용하고 있다. ‘폐허의 잔해’를 ‘유산’으로 물려받을 수 없다는 반어적(反語的) 메시지가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에게 물려줄 가장 중요한 ‘유산’이 되고 있는 것이다.29)

 

4. 독일의 현대시에 묘사된 ‘엽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미셀 푸코, 자크 데리다 등의 해체주의 이론이 철학계를 지배하면서부터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모든 문화적 현상을 상대적 관점에서 수평적으로 바라보는 “문화다원주의”30)가 시작품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왔다. 서구의 전통시에서 기존의 시적 주체 혹은 시적 자아가 세계, 인간, 자연의 의미를 주관적으로 규정해왔다고 한다면, 서구의 현대시는 시적 주체 속에 갇혀있던 세계, 인간, 자연 등을 해방시키고 이들을 독립적인 존재인 타자(他者)로서 인정하며 이들과의 동등한 수평관계 속에서 시적 자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21세기에도 이러한 문학적 현상은 계속될 전망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현대시 속에서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엽기적 현상 또한 기존의 시적 자아에 의해 규정되던 절대적 의미를 부정하고 자아를 해체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문학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엽기”는 전통적 관념을 통해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낯설은 현상으로 독자에게 다가와서 독자의 고정관념을 파괴한다. 사전에서는 “엽기”를 “기괴한 현상이나 이상한 일에 강한 흥미를 가지고 찾아다니는” 행각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묘사된 엽기적 현상은 단지 기괴하고 이상한 현상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체제에 의해 강요된 도덕과 인습 속에 갇혀서 비판능력을 잃어버린 독자들에게 세계의 은폐된 면모들을 인식시키고 고정관념으로부터 독자의 자아를 해방시키는 문학적 반어(反語)로서 작용하는 것이 “엽기”이다. 당연하고, 올바르고, 진실해보이는 사회현실의 이면에 낯설고, 기이하고, 일그러진 부조리의 현상들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기능을 의미한다.

   독일의 현대시에 나타난 엽기적 묘사는 언어의 외관상으로 볼 때 끔찍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로테스크한 현상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언어의 겉과 속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 형식과 내용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엽기적으로 묘사된 현상의 바깥에 흐르고 있는 외적(外的) 언어는 “엽기”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엽기적 묘사의 내부 속에 살아있는 내적(內的) 언어는 ‘진리’라고 믿어왔던 가치체계에 대해 비판적 거리감을 조성해주고, ‘낯설게 하기’의 미학적 효과를 창출한다. 절대적 가치체계로부터 자연, 인간, 여성, 민중, 생명, 사물 등을 해방시켜서 ‘타자(他者)’의 독립적 존재와 상대성을 고양시킨다. 이성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자연을, 물질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인간을, 남성우월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여성을, 제국주의적 혹은 권력중심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민중을, 기술만능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생명을 해방시켜서 모든 개별적 존재들에게 고유한 가치를 회복시켜주는 문학적 “아이러니”의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독일어권 지역의 작가들이 20세기 중반 이후 자연 및 생태계의 파괴현상을 “엽기적”으로 묘사한 현대시의 다양한 양상과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고 그 문학적 의의를 조명해보았다. 파괴되어가는 자연 및 생명에 대한 독일 시인들의 엽기적 묘사가 독자의 내면세계로부터 ‘생태주의’적 패러다임을 이끌어내는 창조적 “아이러니”의 기능을 발휘하였음이 한국 현대시인들의 창작기법에 미학적 자극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송용구: 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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