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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자기자신의 령혼을 련금할줄 알아야...
2016년 11월 30일 23시 38분  조회:3245  추천:0  작성자: 죽림
(세계시의 현장)
 
안달루시아 대지의 영혼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안영옥)
 
 
 
  랭보는 시인이 되기를 원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찾아 면밀히 살펴 인식하고 음미하여 현실의 모습 너머에 숨겨진 다른 모습을 투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영혼을 형성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은 환경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사회와 풍경과 그 지역민들에 민감하다. 특히 그러한 환경이 다른 지역과 상이하고 독창적일 때 그들의 작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는 또 다른 의미의 정복자가 된다. 시인은 관조한 것을 자신의 예리한 직관과 무의식이라는 영혼의 용광로에 쏟아부어 녹이고 정제하는 작업을 하는 가장 생생한 삶의 증인으로, 그들이 만든 결과물들이 이해될 때면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은밀한 정신적 교감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험할 수 있는 자는 법열의 순간을 가질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스페인을 모르는 사람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누구인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천재적인 위대한 시인이며 극작가로, 세르반테스나 피카소만큼이나 스페인적이자 동시에 전 세계적인 존재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과연 어느 정도 이해되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이 드는 이유는 로르카는 스페인 남부, 아랍문화와 고대 그리스 로마, 집시 문화가 공존하고 다시스라는 유럽 최초의 문명이 존재했던 안달루시아에 있는 푸엔테 바케로스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1898. 6-1936. 8). 안달루시아에 대해 스페인의 대표적인 사상가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이렇게 얘기한다. “갈리시아인은 갈리시아를 떠나도 갈리시아인이지만 안달루시아인은 그곳을 떠나면 안달루시아인일 수 없다. 그들만의 독창성이 수증기 마냥 사라지고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 그 이유는 안달루시아인이라는 것은 안달루시아 대지와 함께 사는 것이며 그들의 우주적 은혜에 답하는 것이며, 그 대지가 주는 영감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제의 오페라로 인해 기타와 탬버린, 집시와 플라멩코의 고장으로 알려진 지역이지만, 사실 진정한 안달루시아는 이방인들의 눈에 보이는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다. 즉, 유구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 진 신비로움과 그런 땅의 기운을 먹고 마시고 자라는 식물처럼 이성보다 감각을 통해 몸 전체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지가 바로 안달루시아이다. 로르카는 안달루시아에서의 자신의 유년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난 완전히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다. 난 그곳에서 나의 개성까지 얻었다. 나 는 그것들과 대  화를 나누었고 그들을 사랑했다. 우리 집 뜰에는 검정 버드나 무가 있었다. 어느 오후 나는 그 나무들이 노래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 람이 그 나뭇가지 사이를 지날 때 음높이를 달리하는 소리가 났으며 그게 나 에겐 음악 같아 보였다. 난 그 검정 버드나무가 부르는 장단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몇 시간이고 보내곤 했다. 언젠가 나는 정말 놀라 한 곳에 몸이 굳어 버린 채 멈춰 선 적이 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 ‘페-데-리-코’를 한 자 한 자 부르고 있었다. 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시골에서 이루어졌다. 목동들과 들판과 하 늘과 고독. 한 마디로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이었다. 난 사람들이 내 작품 속에 배어 있는 시골의 정취들이 시인 개인의 가상 모험담이나 단지 그 의 이야기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참을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 그건 내가 피부 로 느꼈기에 내게 남겨진 진실 된 이야기이다.(...) 이렇게 나의 예술세계를 이룬 최초의 경이로움은 나의 대지에서 나온 것이다.
 
 
  로르카는 자기 안에, 그리고 자기 앞에 있는 안달루시아의 산과 하늘과 인간과 환영을 노래하고 꿈꾸고 재창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안달루시아의 테마가 자기 감각을 통해 신과 교감하듯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달루시아가 그의 무의식의 세계를 신화마냥 지배하고 있다. 그의 대지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그 땅을 사랑한다. 난 내 모든 감각이 그 대지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나의 어릴 적 가장 아득한 추억들도 그 땅에 대한 매력들로 젖어 있다. 그곳, 그 땅은 내 인생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그 땅의 벌레나 짐승, 농부들에게는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는 암시들로 가득하다. 난 지금 유년시절의 영혼으로 그것들을 느낀다.” 그것을 힘 있는 은유로 표현한 것이 아래 ‘1910년’ 으로, 시의 전문이다.
 

 
1910년, 그때의 내 눈은
죽은 자를 묻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새벽에 우는 자의 재의 축제를 보지 않았으며
해마처럼 구석에서 떨고 있는 심장도 보지 않았다.
1910년, 그때의 내 눈은
계집아이가 오줌을 눈 하얀 담을 보았고
투우의 콧잔등, 독버섯
그리고 구석구석을 밝히던 이해할 수 없는 달과
단단하고도 검은 병아래 마른 레몬 조각들을 보았다.
그때의 내 눈은 암말의 목과
잠든 성녀 로사의 괴로워하는 가슴과
신음 소리와 상큼한 손길의 사랑이 있는 지붕과
고양이들이 개구리를 먹어치우는 한 정원에 있었다.
오래된 먼지가 석상과 이끼들을 모으는 다락방과
게걸스럽게 먹혀 버린 가재의 침묵을 지키는 상자들과
꿈이 현실과 충돌하는 그곳에
나의 작은 눈이 있었다.
내게 아무 것도 묻지 마. 난 사물들이
자신의 흔적을 찾을 때 만나는 건 빈자리인 걸 알아.
대기로는 사람 없는 공허한 고통이 있고
내 눈에는 옷 걸친 생물들이 없는 공허함의 고통이 있으니, 헐벗음은 없어야 해!
                                    -『뉴욕에서의 시인』 부분 (1929-1930년 시작, 1940년 출간 )
 
 
 
  1910년 12살의 시인은 죽음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물론 소외되어 “새벽에 우는 자”의 고통이나 번민이나 후회도 알지 못했다. 등이 굽은 해마는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심장의 모양을 닮았고 움직임 역시 심장 박동과 같다. 그가 본 것이라고는 유년의 성을 상징하는 “계집아이들이 오줌을 눈 하얀 담”과 “암말의 목”과 종교축제 때 본 성녀상의 가슴이다. 그를 두렵게 했던 것은 “투우의 콧잔등”과 “독버섯”, 그리고 “병에 든 레몬 조각”과 “이해할 수 없는 달”이었다. 연이어 성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줄을 선다. 개념적으로 이해되지 못하지만, 정확하게 설명되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와 닿은 것들이다. 이성으로서 설명되지 않는 비이성의, 비합리적인 이미지는 그의 무의식의 반영물이다. 이들을 만일 설명하려고 한다면 시의 의미가 달아나 버릴 것이라고 로르카는 말한다. 이어 유년 시절의 매력인 다락방에 있을 법한 물건들이 우리의 상상력을 깨운다. 꿈의 세계와 차별화하기 힘든 이미지들이 다시 등장한다. 로르카에게 왜 이런 이미지들로 시를 이어갔는지를 묻는다면 다음의 글이 한 가지 답이 될 지도 모른다.
 
 

“나의 정신세계의 밑바닥에는 안달루시아 농경문화의 복합적인 요소가 숨쉬고 있다. (...) 그곳에는 신비하고도 샤머니즘적이며 논리를 앞선 문화의 발자취 가 남아 있다.(...) 신비만이 우리를 살게 한다. 단지 신비만이”
 
 
  이렇게 보면 그의 시어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한다는 16세기 스페인 신비주의자들을 닮았다. 이러한 시어는 가슴으로 느끼고 절규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더군다나 안달루시아의 문화는 정열의 태양이 아니라 신비의 달이다. 다시스 신화를 품고 있는 안달루시아에서 달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이 달이 218번에 걸쳐 로르카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로르카가 현대의 위대한 작가들 중에서 가장 많은 제사를 달에게 드렸을 것이다. 달은 태어나서 기울며 생성과 죽음을 거듭하는, 즉 삶의 리듬을 대변하는 유일한 천체이다. 생식과 피와 죽음과 긴밀한 의미 관계를 맺고 있어 모두가 하나같이 치명적이다. 원시 종교에서 달은 죽은 자를 자기 세계로 데려가는 존재로 나온다. 로르카의 ‘달의 로망스’에서 달은 숲의 신인 바람에 전율하는 죽음이란 춤꾼으로 나와 어린애를 데리고 간다.
 
 
달이 노爐로
자기의 수선화 스커트를 갖고 왔다네.
아이가 달을 바라보네, 바라보네.
아이가 달을 바라보고 있다네.
전율하는 바람 속에서
미끈하고 티없는 달이
자기의 팔을 움직여 단단한 주석으로 된
자신의 가슴을 보여주고 있어.
-달아나 달아, 달아, 달아.
집시들이 오면
너의 심장으로
하얀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버릴거야.
-아이야, 나 춤추게 내버려 둬.
집시들이 올 때면 모두 위에서 눈을 감은
너를 만나게 될거야.
-달아나, 달아, 달아, 달아.
그들의 말발굽소리가 벌써 들리거든.
-아이야, 내 빳빳한
하얀 스커트 밟지 마.
기수가 북을 치며
평야에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노안에는 아이가
눈을 감고 있다.
꿈꾸는 듯한 갈색의 집시들은
올리브 밭으로 오고 있었다.
치켜세운 머리와
절반 감은 눈으로.
부엉이가 어쩌면 저리도 운다지,
아, 나무에서 어쩜 저리도 운다지!
달이 아이의 손을 잡고
하늘로 간다.
노안에서는 집시들이
울부짖는다.
바람이 달의 망을 본다, 망을 본다.
바람이 달의 망을 서고 있다.
                                         -『집시 가곡집』부분 (1923-1927년 시작, 1928년 출간)
 
 
  달을 아름답고 하얀 수선화와 견주었다. 수선화의 가장자리를 하얀 달무리인 스커트로 보았다. 안달루시아의 주 광물이 주석인데, 그러한 가슴을 가진 달이 바람을 채우고 대장간의 노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니 대장장이인 집시들이 오면 그것으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고 말 것이다. 로르카는 진정한 안달루시아의 해설자를 집시라고 하며 그들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 펼쳐 놓은 제단이 안달루시아라고 했다. 더 나아가 모든 인류의 감춰진 뿌리라는 신화적 차원으로까지 집시를 치켜세웠다.
  로르카는 19세에 자신의 저서『인상과 풍경』에 안달루시아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종교적이며 또 비종교적임에 틀림없다. 이교 그리스의 신비와 엄숙한 고딕 성당의 신비주의를 합친 것이다.” 이에 대해 자신의 예술론「귀신의 이론과 놀이」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안달루시아 예술의 정서는 능력,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 살아있는 스타일이다. 즉, 피의 문제. 다시 말해 아주 오래된 문화의 문체이다. 행동으로 창조하는 문화의 문제이다. 그 모두가 느끼지만 어느 철학자도 설명하지 못하는 그 신비스러운 힘, 그것이 바로 그 땅의 정신이다.” 그 땅의 정신을 “피의 마지막 방에서 깨워야 할” 대지의 영혼이라고 하며, 두엔데라고 하고 있다. “모든 예술에 그리고 나라마다 천사니 뮤즈와 같은 성질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 독일은 예외도 있지만 뮤즈신이 있고 이탈리아는 언제나 천사를 가지고 있다. 스페인은 언제나 두엔데가 있다. 두엔데가 새벽 나절 레몬 즙을 짜내는 수천 년의 춤과 음악의 나라. 그리고 죽음의 나라가 스페인이다. 죽음에 열려 있는 나라가 스페인이다”. 플라멩코 춤과 플라멩코 음악인 칸테 혼도와 투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죽음에 열려 있는 나라, 즉 검은 고통의 소리를 갖고 있는 나라만이 두엔데를 갖고 있다. 이 검은 소리는 신비이며 알면서도 모르게 흙에 박히는 뿌리로 이것이 예술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작용할 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한다고 로르카는 말한다. 괴테는 파가니니를 이야기할 때 로르카의 두엔데에 대한 정의인 “모두가 느끼나 어느 철학가도 설명하지 못한 신비로운 힘” 임을 반복했다.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분노와 쓰라림과 통곡, 그리고 죽음을 아는 민족에게만 두엔데가 있다고 한다.
 
 
아!
외침은 바람에
삼나무 그림자를 남긴다.
(이 평야에서 울게 나 내버려둬)
세상의 모든 것은 부서졌다.
오직 침묵만이 남아있다.
(이 평야에서 울게 나 내버려둬.)
빛이 없는 지평선은
모닥불에 물어뜯기고 있다.
(이미 너희들한테 말했잖아
이 평야에서 울게
내버려달라고)
                                                 -『칸테 혼도』 부분 (1921년 시작, 1931년 출간)
 
 
  황혼이 지평선 너머로 붉디붉은 최후의 광휘를 발하며 끝없는 광활한 평야를 물들이고 있을 즈음, 모든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고된 하루의 휴식을 누릴 때 안달루시아의 평원 한 언덕기슭에는 예닐곱 명의 집시들이 모여 앉아 있다. 그들이 피운 모닥불은 대낮의 태양 빛을 대신하고 있다. 그들은 저녁을 나누며 와인 잔을 돌리면서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다가 심각한 테마로 들어간다. 메마르고 가혹한 땅에서 삶을 영위하기가 어렵다, 애인이 자기를 배반했다,라는 이야기가 앞으로 맞이하게 될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한 등으로 이어져 나간다. 그러나 말로써 감정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때 그들 중 하나가 고독과 버림에 대한 통곡을 노래로 읊조리기 시작한다. 자유롭게 자신들의 한스러운 삶을 절규하는 방법을 만들어 간다. 바로 플라멩코라는 이름의 음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래들을 모두 한 그룹에 넣어 ‘심오한 노래’라는 의미로 ‘칸테 혼도’라고 한다.
  로르카의 안달루시아 영혼이 뉴욕의 브루클린 브리지의 밤과 만났을 때 그의 시세계는 다시 요동친다.
 
 

하늘에서는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아, 어느 누구도, 아무도,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아.
달의 자식들은 냄새를 맡고 자신들의 거주지로 방황하고 있다.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을 물려고 살아 있는 이구아나가 올 것이고,
부서진 심장을 안고 도망가는 자는 모퉁이마다에서
행성들의 부드러운 저항아래 말없이 있는 믿을 수 없는 악어를 만나게 될 것이 다.
세상에는 아무도 잠을 자지 않아, 아무도, 아무도.
어느 누구도 잠을 자지 않아.
가장 먼 무덤에서는 무릎에
마른 풍경을 가지고 있다고
삼년을 불평하는 한 죽은 자가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묻은 아기가 너무나 울어
달래기 위해 개를 불러야 했다.
삶은 잠이 아니야, 깨어 있어!, 깨어 있어!, 깨어나 있어!
우리는 습한 흙을 먹으러 계단으로 떨어지거나
죽은 달리아의 합창으로 눈雪의 날카로운 날에 올라선다.
하지만 망각은 없어, 꿈도 없어, 살아 있는 육신.
입맞춤은 갓 태어난 혈관의
얽힘으로 입술들을 묶고
고통이 아픈 자는 쉬지 않고 아플 것이며
죽음이 두려운 자는 죽음을 자신의 어깨 위에 지고 갈 것이다.
어느 한날
말들은 선술집에 살 것이고
화가 난 개미들은
소 눈으로 피신한 노란 하늘을 공격할 것이다.
또 어느날,
박제한 나비들이 부활하여
회색스펀지와 말없는 배의 풍경으로 노니는 것을 볼 것이며
우리의 반지가 빛나고 우리의 혀에서 장미가 솟아나는 것을 볼 것이다.
깨어 있어! 깨어 있어! 깨어 있으라구!
아직도 출항과 소나기의 흔적을 기다리는 자를,
다리를 발명할 줄 몰라 우는 그 소년을,
아니면 이제 머리와 신발만을 가지고 있는 저 죽은 사람을
이구아나와 흉측한 뱀이 기다리는 담으로 데려가야 한다.
그곳에는 미라가 된 어린아이의 손이 기다리며
낙타의 가죽이 격렬한 푸른 오한으로 곤두선다.
하늘에는 아무도 자지 않아. 아무도, 아무도.
아무도 자지 않아.
하지만 누군가가 눈을 감으려 하면
나의 자식들이 그를 매질해, 그를 매질하라고!
뜬 눈들과 쓰라린 시뻘건 상처의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내가 이미 이 말을 했지.
아무도 잠자지 않아.
하지만 밤에 누군가가 관자놀이에 너무 많은 이끼를 가지고 있다면
너희들은 달 아래 극장의 해골과 독과
거친 잔을 보도록 무대의 문들을 열어라.
                                                                                 -『뉴욕에서의 시인』 부분
 
 
  난해하다 못해 신비하다. 이를 두고 초현실주의라니 월트 휘트먼이니 T.S 엘리엇의 영향이라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로르카가 자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고 있다. “한 스페인인이, 더군다나 안달루시아 사람이 차갑고 잔인한 으스스한 광경을 앞에 두고 느낀 혼란과 고통의 감정이 어떠했을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안달루시아의 세상과 미국의 문명화와 대조되는 소외된 지역의 풍경과 그러한 곳에 사는 소외된 인간의 삶을 보고 받은 충격을 시인은 자유시 형태를 빌려 분노와 혐오를 상징하는 은유들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 꼭대기에서 진저리를 치며 외쳐대는 이 절규는 안달루시아의 통곡이다. 현실에 있는 요소들로 완전히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연관이 없는 이미지들을 서로 연결해 놓음으로써 모든 게 뒤틀리고 일그러지고 만다. 달과 꿈의 세계, 어긋나는 상황들이 시로 들어앉으면서 시인의 고뇌와 고통이 질식할 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렇게 문명화되었으나 비인간화된 세계를 보고 느낀 시인의 감정이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편히 쉴 수 없다는 절규이다. 로르카는 말한다. 안달루시아의 영혼은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느껴야 한다고. 그러니 우리는 이 시에서 이야기를 찾을 게 아니라 암시를 통한 느낌을 가져야 한다.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무모하고 터무니없는 은유들의 행진으로 시인을 괴롭히는 고뇌의 감정을 우리는 온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이처럼 가늠할 수 없는 신비의 우물을 품고 있는 이미지가 던지는 암시는 그의 ‘몽중방황의 로망스’에 들어가면 더 은밀해진다. 그 시의 일부이다.
 
 
적어도 높은 난간까지
올라가게 날 내버려 둬.
올라가게 내버려 두라니까! 녹색의 난간 까지
올라가게 내버려둬 줘.
달의 난간으로
물이 울려 퍼진다.
벌써 그 두 명의 대부가
높은 난간으로 오르고 있다.
피의 자국을 남기면서.
눈물 자국을 남기면서.
지붕에서는 양철로 된
작은 초롱들이 떨고 있었다.
유리로 만든 천 개의 탬버린이
새벽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집시 가곡집』부분 (몽중방황의 로망스)
 
 
  로르카 자신도 이 시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달의 난간이 무엇인지, 왜 물이 울려 퍼지는지, 왜 유리로 된 천 개의 탬버린이 새벽에 상처를 낸다고 썼는지 자기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그저 천사들의 손과 나무들의 손에서 그것을 보았단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의미를 어떻게 설명해야할 지는 모르겠노라고 고백했다. 그냥 그래서 그렇단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철학자나 수학자가 말없이 등을 돌리는 곳으로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단다. 그러니 이러한 그의 시를 이해했다면서 그 의미를 설명한다면 아마도 그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게 될 것이다. 은밀하고 신비스럽고 아름다울수록 더욱 더 의미가 있다는 게 로르카 시의 세상이다. 로르카 시가 품고 있는 신비는 그 시를 전하는 시인에게도 신비이다. 그래서 자신도 그 의미를 모를 때가 많단다. 그 신비는 풀 수가 없는 것으로 그저 느낄 뿐이다. 로르카가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가 뭐냐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절대로 합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두 단어의 결합이다. 그렇게 해서 뭔지 모를 신비를 만드는 것이다. 그 단어를 뱉어내면 낼수록 더한 암시만이 있을 뿐이다. 예를 들자면, 그러니까 시란... ‘상처 입은 사슴’이다.” 로르카에게 시적 창조란 인간이 안고 있는 비밀처럼 해독할 수 없는 신비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사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비밀을 갖고 있다. 시는 이 모든 사물들이 갖고 있는 신비를 공유하는 행위이다. 시인은 그러한 신비의식의 해설자일 뿐이다. 이러한 그의 시에 대한 개념은 논리 이전의, 즉 이성이 지배하지 않던 원시 시대의 마술적, 신화적, 상징적 세계 위에 존재하는 것이라서 그럴 것이다. 바로 안달루시아 대지의 세계이다.
 
 
 
 
**안영옥: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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