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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성이 이(李)씨인 중국 남성과 결혼한 한국 여성 A씨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가 학교에서 "탈북자"라는 놀림을 받고 올 때마다 속이 상한다. 혼인신고 시 법령에 의해 남편의 성이 현지발음인 '리'씨로 등록돼 자녀 이름도 '리○○'이 됐기 때문이다.
성이 등(鄧)씨인 대만인 남편과 대만에서 사는 한국 여성 B씨는 자녀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할까 봐 고민이다. 자녀가 명백한 한국 국적자이지만 한국에서는 성이 현지발음인 '덩'씨로 표기돼 차별을 당할 것이 뻔해서다.
갈수록 많은 한국 여성이 중화권 남성과 결혼하지만, 이들의 자녀는 성(姓)을 반드시 현지발음으로 써야 하는 규제 때문에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자녀들을 품어 안기 위해서는 관련 법률과 제도를 전향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과 통계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법원은 '가족관계등록예규'에 따라 원지 음(현지발음)으로 표기한 외국 인명만을 가족관계등록부에 쓸 수 있도록 한다. 이는 국어기본법의 어문규정(외래어표기법)을 따른 것이다.그런데 이 때문에 중국, 대만 등 중화권 남성과 가정을 꾸린 다문화가족은 속을 끓고 있다. 한국처럼 한자에 기반을 둔 성을 부친에게 물려받은 자녀들이 똑같은 한자 성을 쓰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자신의 특이한 성에 정체성 혼란을 겪거나 불필요한 사회적 시선을 경험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예컨대 흔한 한국 성씨인 '정'(丁)은 중국어 음가로 '딩'에 해당한다. 중국인 정씨와 결혼해 낳은 자녀는 현행 가족관계등록예규에 따라 '정길동'이 아닌 '딩길동'이 이름이 된다. 마찬가지로 진(陳)씨는 '쳰'씨로, 팽(彭)씨는 '퐁'씨, 황(黃)씨는 '웡'씨로 불릴 수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결혼을 한 한국 여성 5천769명 중 25%가 넘는 1천463명의 배우자가 중국 국적이었다. 이들이 한 해 출산한 다문화 자녀는 2015년 기준 약 1천300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갈수록 늘어나는 다문화가정 수를 고려하면 이런 문제는 앞으로 더 빈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이들의 성을 한국 발음으로 표기하는 것은 본국에서는 전혀 인정되지 않는 음가를 한국에서만 인정하게 되는 것"이라며 "성명을 개인의 선택에 따라 공문서에 다르게 표기하게 되면 당사자 동일성 소명이 어려워 신분관계 공시·공증 기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 예규는 이미 조선족임을 소명한 중국 국적자에게는 성을 한국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도록 예외도 허용하고 있다. 반면 중화권 남성과 한국 여성의 자녀는 한국 국적임에도 이런 권리가 인정되지 않아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금태섭 의원은 "다문화가정의 행복권과 자녀의 인격권을 위한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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