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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버다거북 죽음, 남의 일이 아니다...
2018년 04월 29일 01시 43분  조회:5605  추천:0  작성자: 죽림

[살아남아고마워]
대북 삐라는
멸종위기 붉은바다거북의 사인일까?

김기범 기자  2018.04.28. 
 
 

[경향신문] 김기범 기자의 살아남아줘서 고마워(26) - 대북 삐라는 멸종위기 붉은바다거북을 죽음으로 몰고갔을까.

지난 17일 오전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부검실에서 폐사한 바다거북의 소화기관을 확인하던 연구진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다거북에 소장에서 나온 이물질 때문이었습니다. 뻣뻣한 비닐 재질의 물체로 추정됐던 이물질을 물에 씻자 작은 글씨가 깨알같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이물질에 적힌 글자들을 살펴보니 비닐의 정체는 한국의 극우단체들이 북한으로 날려보내던 ‘대북 삐라’였습니다.

내장에서 발견된 ‘비닐 전단지’ 지난 17일 오전 바다거북 폐사체에서 나온 비닐 재질의 전단에 글자가 깨알같이 적혀 있다. 바다거북의 주요 사인도 이 같은 플라스틱 종류의 쓰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범 기자

바다거북의 체내를 확인하던 수의사들은 “장이 심하게 꼬여있는 것이 직접적인 사인”인데 “이물질들도 영향을 미친 것만은 분명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북 삐라가 바다거북을 죽게한 직접적인 사인이 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바다거북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바다거북의 체내에서는 대북 삐라 외에도 낚싯줄, 그물, 비닐조각 등 다양한 이물질이 확인됐습니다. 소화기 밖으로 배출되지도 않는 커다란 이물질들을 섭취한 바다거북은 무척 괴로웠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푸른바다거북.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이날 국립생태원에는 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생태원, 충북대, 전남대, 세계자연기금(WWF), 여수 한화아쿠아플라넷 등의 해양생물 연구자, 수의사, 사육사 등 10여명이 모여 바다거북 폐사체 4구의 부검을 실시했습니다. 2016년과 2017년 국내 연안에서 발견된 거북의 폐사체 중 4구를 부검하고, 조직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다거북은 국내에 서식하는 대형 해양생물 가운데 보호대상 생물로 지정된 종이지만 아직까지 바다거북의 생태는 베일에 가려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많은 기관들이 모여 협업하면서 바다거북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첫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니는 이유입니다. 구체적으로 해양생물자원관은 앞으로 실시될 바다거북 부검의 총괄 관리와 먹이원 분석, 미생물 확인, 부검 이후 남는 거북 폐사체와 골격 등의 활용을 맡기로 했고, 생태원은 부검실 제공과 사인 규명을, 전남대는 중금속 중독 여부 확인, 충북대는 기생충 감염 여부 조사 등을 맡아 연구하는 방향이 결정됐습니다. WWF에서는 바다거북 보호의 필요성과 해양 오염 방지를 위한 캠페인도 벌이기로 했습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진이 폐사한 바다거북을 부검하기 전 신체 치수를 측정하고 있다. 김기범기자

국내에서는 주로 제주도와 동해안과 남해의 여수 등 지역에서 바다거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대북 삐라가 확인된 바다거북 역시 강원 속초 조양동에서 발견된 수컷였습니다. 이날 부검 대상이 된 바다거북 폐사체들은 2016~2017년 강원 속초, 부산 기장, 포항 송도, 강원 고성 등에서 발견된 개체들이었습다. 해양생물자원관이 중심이 된 공동연구진은 지난해부터 바다거북 폐사체가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지역에서 주민 홍보를 시작했는데 현재까지 20여건이 접수된 상태입니다.

바다거북 폐사체를 뭍으로 끌어올리는 모습.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연구진에 따르면 바닷가 주민들이 바다거북 폐사체를 발견할 경우 기존에는 바닷가에 묻어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용왕의 신하라는 이미지를 가진 탓에 잘못 대했다가는 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주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다른 대형생물들, 특히 돌고래나 상괭이(토종돌고래) 등이 그물에 혼획되었을 때에 비해서는 풀어주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진이 폐사한 바다거북을 부검하기 위해 배딱지를 절개하고 있다. 김기범기자

연구진이 발견한 폐사체들에서는 앞서의 붉은바다거북에서처럼 비닐 등 인간이 버린 폐기물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상황입니다. 현재까지 실시한 9건의 부검에서도 대부분 폐사체에서 플라스틱, 비닐, 철망, 코르크 등의 이물질이 확인됐다.

바다거북 폐사체에서 확인된 이물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바다거북 폐사체에서 확인된 이물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전 세계 바다에 서식하는 바다거북은 모두 7종인데 6종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종으로 등록돼 있습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는 장수거북, 푸른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등 4종이 확인된 바 있는데 기후변화로 인해 바닷물이 점점 따뜻해짐에 따라 더 많은 종이 한반도 쪽으로 북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구조한 바다거북들을 방류하는 모습.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해양생물자원관은 부검 연구 외에도 바다거북 구조 및 방류하고, 방류한 개체에 위성추적장치를 부착해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연구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가 축적되면 바다거북이 한반도의 바다에서 어떤 먹이를 먹고, 어떻게 이동해 번식하며, 어떤 이유로 죽어가는지 등 거북의 전 생애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료를 축적하기 위해 공동연구진은 앞으로 1~2개월에 한 번씩 모여 바다거북 부검을 실시하고, 부검 결과를 국가데이터베이스에 남겨 체계적인 연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이들의 노력이 바다거북의 폐사체에서 비닐이 확인되지 않는 날을 앞당길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김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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