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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824년에 완성된 베토벤 최후의 교향곡으로, 교향곡에 합창을 등장시킨 혁신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이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곡은 실러의 시에 곡을 붙인 ‘환희의 송가’ 부분에 담긴 인류애적인 메시지 때문에 송년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된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그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교향곡으로 1824년에 완성되었다. 여덟 번째 교향곡을 작곡한 지 12년 만의 일로, 베토벤은 “교향곡은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기악곡”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과감히 벗어나 역사상 최초로 솔리스트와 합창단을 등장시켰다. 4악장에 합창이 나오기 때문에 이 곡은 ‘합창’이라는 부제로 더 잘 알려지게 되었는데, 너무나 친숙한 이 노래는 독일의 시인 실러가 1786년에 발표한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인 것이다. 베토벤과 실러의 인연은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토벤은 20대의 청년 시절부터 괴테와 실러의 시에 심취해 있었고, 《환희의 송가》를 읽고 난 뒤에는 언젠가 이 시에 곡을 붙일 결심을 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물세 살이었고, 그 결심이 실현되기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베토벤은 1824년 2월 경 이 곡을 완성했고 그 해 5월 7일,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2년 전, 런던 필하모닉 협회로부터 새로운 교향곡을 부탁받았을 때, 베토벤은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교향곡을 마무리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몇 년 전부터 작업해 오던 교향곡에, 실러의 시를 바탕으로 한 합창을 넣어서 새로운 형태의 교향곡을 써나갔다. 사실, 실러의 시를 사용한 노래의 선율은 그보다 훨씬 전인 1798년에 스케치 악보가 완성된 상태였는데, 그 때의 스케치가 25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합창 교향곡〉의 4악장에 사용되면서 빛을 보게 되었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형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기존 교향곡의 통념을 깨는 파격적인 음악이었다. 완전한 기악곡으로 생각되어 오던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에 합창을 등장시킨 것은 교향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보통 4악장 구조의 교향곡에서는 느린 템포의 2악장과 빠른 템포의 3악장이 이어지는데, 베토벤은 이 두 악장의 순서를 바꾸어 놓아서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난 반전의 묘미를 더했다.
또한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운 포코 마에스토소’에서도 기존에는 볼 수 없는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등장하는데, 시작부터 아주 여리고 모호한 음형이 길게 등장하면서 활기찬 주제 선율을 기대했던 청중의 예상을 무너뜨린다. 신비스러운 도입부가 지난 후에야 웅장한 주제가 나오면서 음악을 극적으로 몰고 간다.
〈합창 교향곡〉을 쓸 당시 이미 베토벤의 귀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내면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작곡을 이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작곡이 아니라 지휘였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베토벤을 대신해서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카펠마이스터인 미하일 움라우프가 지휘봉을 잡았고 악장인 이그나츠 슈판치히가 단원들과 눈빛을 교환하면서 호흡을 맞춰갔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악보를 넘겨가면서 연주자와 교감하고 초연 무대를 함께 만들어갔는데, 그가 악보를 넘기는 순간은 실제 연주의 진행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이처럼 완전히 귀가 멀었던 베토벤은 모든 연주가 끝나고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을 때도 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알토 독창자가 알려줘 간신히 청중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서는 바로 이 순간을 영화적인 상상력으로 재해석해서 보여주었는데, 영화 속에서는 베토벤이 직접 지휘를 맡고 베토벤이 악보를 필사하는 카피스트로 고용한 여주인공 안나가 그를 도와서 연주를 이어간다. 안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 베토벤이 마주 보이는 곳에 앉아서 지휘를 하고, 베토벤은 그녀의 손짓을 보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간다. 마음을 교감하면서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인류애를 그린 〈합창 교향곡〉의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은 전체 4악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그중에서도 합창이 등장하는 마지막 악장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다. 마지막 악장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교향곡에서는 이례적으로 ‘스케르초’의 빠른 악장을 3악장 대신 2악장에 등장시켰고, 3악장에서는 영롱하고 맑은 분위기의 악장을 배치했다. 강렬하면서도 힘차고 밝은 기운이 느껴지는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를 지나 빠르고 경쾌한 2악장 ‘몰토 비바체’를 거쳐 3악장 ‘아다지오 몰토 에 칸타빌레’로 향하면, 숭고하면서도 서정성이 느껴지는 주제가 등장하면서 차분히 4악장을 준비한다.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하는 4악장이 시작되면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모든 악기들이 웅장하고 화려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 마침내 베이스 독창자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서 중창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진다. 이 곡조는 여러 악기로 편곡되어 연주되었고, 찬송가에도 등장해서 잘 알려져 있는데 실러가 붙인 1절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한한 인류애와 환희의 메시지를 담은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지금까지 수많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특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해인 1989년 베를린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콘서트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은 “Freude(환희)”라는 독일어 가사를 “Freiheit(자유)”로 바꾼 ‘자유의 송가’를 선보여 독일인과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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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9번 d 단조》 Op. 125 ("합창"으로도 불린다)는 루트비히 반 베토벤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1] 에서 작곡한 교향곡으로, 1824년에 완성되었다. 명성 있는 작곡가의 교향곡으로는 성악을 기악인 교향곡에 최초로 도입한 작품이다[2] (최초의 성악 교향곡). “합창교향곡”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바로 제4 악장에 나오는 합창과 독창 때문이고 그 가사는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의 작품들은 물론 서양 음악 전체에서 뛰어난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3]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4] 또한, 제4 악장에 나오는 음악은 유럽연합의 공식 상징가(유럽가)로 사용되고(도이칠란트어 가사는 공식 가사로 지정되지 않았다), 자필 원본 악보는 2003년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3,300,000 달러에 낙찰되었다.[5]
1817년, "런던 필하모닉 협회"(현재의 왕립 필하모닉 협회)에서 교향곡을 의뢰받은[6][7] 베토벤은, 자신의 교향곡 작곡을 1822년에 시작해 1824년 연초에 마쳤다. 그 남자의 교향곡 8번(1812년) 이후 약 12년 만의 일이었다. 베토벤은 일찍부터 "환희의 송가"에 관심했었다고. 1793년에 이미 곡을 붙였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제 2 악장 스케르초의 주제는 1815년에 작곡한 푸가에서 비롯되었다.
교향곡에 성악다운 요소 도입은 베토벤뿐 아니라 그 모두 사람에게 처음이라서 교향곡에 성악과 합창을 도입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베토벤의 전기를 집필한 베토벤의 제자인 안톤 쉰틀러는 후일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 착상은 실현되지 않았고 베토벤이 오늘날과 같은 제4 악장을 완성한 것은 결국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1824년 5월 7일 빈에서 베토벤과 미햐엘 움라우프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베토벤은 로시니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들이 주류를 이루던 빈보다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기를 원했지만[8] 그 남자의 친지들과 후원자들이 빈의 초연을 설득했다.
청각을 완벽히 상실한 베토벤은 최종 악장의 연주 동안에는 청중을 등지고 서서 가수들의 입술 모양으로 실황을 가늠했다. 제2 악장 스케르초가 끝나자 청중의 박수가 (모든 악장이 끝나기 이전인데도 이례로) 울렸을 때, 마지막 악장인 합창 악장의 직후 열광했을 때, 알토 독창자 카롤리네 웅어가 청각을 상실한 베토벤의 등을 돌려 청중의 환호에 답례하게끔 도왔다.[9] 이 초연때 청중은 5번의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는데 당시 황제부부 입장 때의 기립박수 3회라는 통례로 보면, 귀족도 아닌 (게다가 궁정에서는 낮은 신분으로 취급되던) 작곡가에 불과한 베토벤에게 5회였다는 사실은 별난 일이었다. 초연 16일 후인 1824년 5월 23일의 두 번째 공연에서의 반응은 초연 때보다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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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성은 베토벤의 교향곡 중 최대 편성이다. 초연 당시에 베토벤은 관악 파트마다 연주자 두 명을 지정해 편성을 확대했었다. 요즘은 이 곡을 3관과 4관 편성으로 연주한다. 말러 편곡판에는 팀파니를 두 대로 증량, 호른을 4대 첨가해서 8대로 하였고 이런 악기를 사용해 양쪽이 주고받는 식으로 편곡한 곳이 많고 목관과 주선율을 배가하는 기법이 쓰였으며, 기존에 없던 튜바도 추가했다.
모두 4악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음과 같다.
연주 소요시간은 통상 7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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