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전 세계가 감염병의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같은 시기 과학자들은 또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바로 온난화로 인한 문제들 입니다.
네덜란드 사진작가 프랜스 랜팅이 찍은 남극의 펭귄입니다. 온난화로 얼음이 녹아버려 눈 대신 진흙뻘을 뒤집어쓴 채 모여 있는 모습이 충격을 안겼죠. /사진=내셔널지오그래픽 SNS
지난달 16일 내셔널지오그래픽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네덜란드 사진작가 프랜스 랜팅이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습니다. 랜팅은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들을 찍었는데 사진 속 펭귄들은 하나같이 하얀 눈이 아닌 진흙을 뒤집어쓰고 있었죠. 남극의 기온이 영상 20도까지 올라가면서 눈과 얼음이 녹아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올해 2월 4일과 같은 달 13일 남극 대륙 일부를 촬영한 위성사진입니다. 온난화로 인해 눈과 얼음(흰색 부분)이 녹아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사진=NASA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남극은 현재 온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최근 50년 동안 평균 기온이 약 3도 올랐고, 최근엔 남극 기온이 사상 최고인 영상 20도를 기록했습니다. WMO의 추정에 의하면 남극의 빙하가 전부 녹아 없어질 경우 전 세계 해수면은 약 60m 상승한다고 합니다.
감염병으로 시작해 갑자기 온난화 이야기를 꺼낸다니 다소 뜬금없을 수 있지만, 감염병과 온난화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죠. 과학자들, 특히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온난화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온난화로 인해 오랜 시간 빙하·동토 속에서 잠들었던 고대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이 부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빙하 속 잠든 신종 바이러스가 깨어났다
지난 1월 학술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미·중 공동 연구팀의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소개됐습니다.
굴리야 빙하에서 얻은 샘플을 조사 중인 미·중 공동연구팀. 연구팀은 이 얼음 덩어리 안에서 신종 바이러스 20여 종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오하이오주립대
2015년 연구팀은 1만5000년 전 형성된 티베트 고원(칭장고원)의 굴리야 빙하에 깊이 50m짜리 구멍을 뚫어 얼음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두 샘플 중 하나는 520년 된 얼음 덩어리였고, 다른 하나는 약 1만5000년 전 형성된 퇴적물을 담고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샘플 속에는 여러 종의 바이러스가 들어 있었죠. 이 중 4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 나머지 28종은 처음 발견된 '신종' 바이러스였습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빙하 속 동결 보존된 바이러스를 손상 없이 온전히 꺼낼 수 있는 방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수백 년 혹은 수만 년 전 냉동보관된 바이러스가 다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죠. 연구팀은 고대 바이러스를 통해 오래 전 지구 생태계가 어땠는지를 파악할 수 있고, 미래에 유행할 감염병에 대해서도 연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얼어붙은 땅인 동토, 혹은 빙하에서 미생물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러시아·프랑스 공동연구팀은 2014년 3만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거대 바이러스를 발견해 이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3만년 전, 상상하기도 힘들 만큼 오래전 이야기죠. 비슷한 시기 지구상엔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했습니다. 이 거대 바이러스는 인류의 조상과 함께 살았을 지도 모르겠네요.
러시아·프랑스 공동연구팀이 2014년 3만년 된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에서 발견해 부활시킨 피토바이러스. /사진=악스-마르세유대
연구팀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신이 판도라에게 건넨 항아리를 뜻하는 '피토스(Pithos)'라는 단어에 착안해 이 신종 바이러스를 '피토바이러스(Pithovirus)'로 명명했습니다. 피토바이러스는 1.5㎛(마이크로미터)로 평균 20㎚(나노미터) 크기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 몸집이 훨씬 큽니다. 다행히도(?) 이 신종 바이러스는 아메바만을 감염시켰습니다. 다른 동식물엔 해가 되지 않았죠.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던 이런 고대 바이러스들이 부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좀비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적이 드문 극지방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가 위험하다고?
미·중 공동연구팀이 신종 바이러스를 무더기로 발견한 굴리야 빙하는 평균 해발고도 4500m의 칭장고원(티베트 고원)에 있습니다. /사진=NASA
미·중 연구팀이 바이러스를 발견한 굴리야 빙하는 칭장고원에 있습니다. 시짱 자치구, 칭하이성, 신장 자치구, 인도 카슈미르 일부에 걸친 이 고원의 평균 해발고도는 4500m입니다. 눈 속을 헤치고 산을 오른 뒤 얼음을 뚫어야 비로소 바이러스를 만날 수 있죠. 러·프 공동연구팀도 시베리아 영구 동토층을 굴착해 바이러스를 확보했습니다. 게다가 이 바이러스는 아메바만 감염시켰죠.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깁니다. 사람의 왕래도 거의 없는 이런 곳에, 심지어 해롭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발견되는데 이게 걱정할 일일까요.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한 탄저균. 2016년 러시아에선 75년 전 동토층에 매장한 사람과 동물의 유해에서 나온 탄저균이 지역 감염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러시아 북부, 서시베리아지역에 위치한 살레하르트시에서 12세 소년이 목숨을 잃고, 10여 명이 감염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역민들은 이를 '시베리아 역병'으로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역학조사 결과 75년 전 동토층에 매장한 사람과 동물의 사체에서 나온 탄저균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사망한 소년이 유목민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따뜻한 날씨에 동토층이 녹으며 사체가 드러났고, 이 사체와 밀접 접촉한 순록들이 탄저균을 사람에게 옮겼을 것이라고 추정했죠.
자외선, 산소, 고온인 환경은 바이러스의 생존에 치명적입니다. 반대로 춥고 어둡다면 바이러스 생존에 도움이 되며, 춥고, 어두운 데다 산소까지 없다면 최적입니다. 동토층· 빙하·심해 퇴적층 등이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이 오랜 기간 생존하기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피토바이러스처럼 미생물은 이런 환경에서 수만 년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
북극곰이 유빙 위에서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북극도 온난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중이죠.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온난화의 영향은 앞서 소개한 남극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WMO와 유엔환경계획이 공동으로 설립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동아프리카 등의 빙하 약 80%가 21세기 말 소멸될 것이라고 하죠. 북반구의 4분의 1을 덮고 있는 동토층도 같은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이내로 제한한다 해도 결국 동토층의 40%가 녹아 없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뱃길이 열리면 물류 운송시간이 크게 단축된다는 것입니다. 온난화로 인해 빙하와 동토층이 사라지면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레 발길이 미치지 않던 곳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게 됩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의 이동도 자유로워지죠. '시베리아 역병'의 사례처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감염병, 혹은 신종 감염병이 동물을 매개로, 혹은 직접 접촉을 통해 전 세계로 확산할 수 있습니다.
또 빙하나 동토가 녹은 물이 토양을 오염시키거나, 강과 호수 등 식수원에 유입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토바이러스를 발견한 연구팀의 일원인 장 미셸 클라베리 프랑스 악스-마르세유대 교수는 논문을 통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영구동토나 빙하가 녹으면 이 속에 들어 있던 원시 미생물들이 다시 부활할 수 있다"며 "우리가 모르는 신종 바이러스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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