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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영화사 메트로 골드윈 메이어(MGM, Metro-Goldwyn-Mayer's) 사의 사장인 루이스 메이어는 자택에서 파티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 파티에서 영화 협회의 필요성과 영화인 상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파했다. 파티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그해 여름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첫 회합에서 36명의 회원들은 아카데미 협회의 설립 취지를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29년 5월 16일, 할리우드의 루즈벨트 호텔에서 270여 명의 영화 관계자들이 모였다. 제1회 아카데미 상 수상식이 시작된 것이다. 첫 번째 시상식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아카데미 상은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별들의 잔치가 됐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할리우드의 코닥 극장은 매년 봄, 전 세계에서 날아온 언론인들과 영화 관계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2001년부터 코닥 극장은 아카데미 상 전용 시상식장이 됐다).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한 심사 위원회는 2011년을 기준으로 3천여 명으로 늘어났고, 수상 부문도 25개로 늘어나게 됐다(아카데미 회원들의 전원 투표로 수상작이 결정된다). 아카데미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최고의 영화제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카데미 상은 미국 영화인들의 집안 잔치일 뿐이다. 미국 영화사에서 만든 상이기도 하지만 아카데미 상 수상 조건을 보면 이는 더 확실해진다.
전년도 1월 1일부터 12월 31일 사이에 LA 지역의 극장에서 1주일 이상 연속 상영된 70밀리 및 35밀리의 미국 및 외국의 장편ㆍ단편 영화를 대상으로 한다.
즉, 아카데미 상에 도전하고 싶다면 LA에 극장을 잡고 1주일 이상 상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칸이나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름을 날리더라도 LA에서 상영이 안됐다면 후보군에도 이름을 올리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뭘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할리우드의 힘 때문이다. 전 세계 영화시장을 쥐락펴락 하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은 곧 ‘외국 영화는 미국 영화’라는 공식을 만들 정도다. 이런 미국 영화의 힘이 곧 아카데미의 영향력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향력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오스카 상이다. 오스카 트로피는 1928년에 처음 고안되었는데 디자인은 당시 MGM 사의 미술 감독 세드릭 기본즈가 담당했다(기본즈는 자신이 디자인한 상을 후에 11개나 타게 된다). 그는 몇몇 미술가들에게 디자인을 제출하게 했고 그 중 가장 나은 작품을 선정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LA에 사는 조각가 조지 스탠리의 트로피였다.
손에 칼을 쥐고 필름 릴 위에 올라앉은 기사의 형상(이 필름 릴 다섯 개는 초창기 시상 분야였던 배우, 감독, 제작, 기술, 각본의 다섯 개 분야를 상징한다)인 아카데미 상은 기본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곧바로 조지 스탠리의 오스카 트로피가 채택됐고 원형에서 거의 변하지 않고 이제껏 계속 사용되게 된다(중간에 필름 통을 높이는 정도의 변화만 있었다).
그러나 재료의 변화는 있었다. 초창기에는 청동으로 제작했다가(청동의 단단함을 고려했던 것이다) 석고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금칠을 한 합금을 사용한다. 주석과 구리 등이 들어간 합금에 24K로 도금한 높이 34.5cm, 무게 3.4kg인 오스카 상의 가격은 얼마일까? 아카데미 측은 지금도 원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고귀한 상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스카 상의 경제적 효과는 분석할 수 있다. 일단 이 상의 후보로만 지명돼도 2,000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얻을 수 있고 작품상 트로피의 가격은 2,700만 달러, 주연상 트로피는 500만 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왜 아카데미 상을 오스카(Oscar) 상이라고도 부를까? 오스카라는 사람이 이 상을 만들어서? 오스카라는 배우가 이 상을 최초로 수상해서? 그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스카 상이란 이름이 어떻게 붙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어렵다. 그 누구도 오스카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유력한 설은 있다.
두 차례나 아카데미 상을 탄 명배우 베티 데이비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을 뻔했다. 다양한 로맨스 영화에 출현했던 그녀로부터 오스카 상이라는 이름이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The Petrified Forest trailer]
오스카의 명명(命名)을 둘러싼 이야기 중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번째 설은 베티 데이비스의 남편설이다. 두 차례나 아카데미 상을 탄 명배우 베티 데이비스(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 역을 맡을 뻔했다)가 트로피를 뒤에서 바라보니 첫번째 남편이었던 해먼 오스카 넬슨과 꼭 닮아서 오스카라고 말한 게 시초가 되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할리우드의 칼럼니스트인 시드니 스콜스키와 관련된 설이다. 1934년, 제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침의 영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캐서린 헵번에 관한 기사를 쓰던 중 아카데미 상을 계속 ‘그 상’이라고 쓰는 것에 염증을 느낀 스콜스키가 ‘오스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앞의 두 가지 설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오스카 삼촌설’이다. 아카데미 협회의 도서관 직원이던 마거리트 헤릭 여사가 도서관 책상 위에 놓인 황금 상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다.
마침 이 외침을 지나가던 신문기자가 듣고 다음 날 칼럼에 언급하면서 오스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제를 표현할 때 “영화인의 축제”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전 세계를 통틀어 이 영화인의 축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제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카데미를 말할 수밖에 없다. 혹자들은 아카데미의 지나친 상업성과 할리우드 자본력의 영화산업 잠식 등을 말하며 불편한 속내를 내비치고는 하지만, 진정한 영화인의 축제라는 대목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카데미 회원의 선출 방식이 모든 이유를 대변한다. 아카데미 상은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뽑힌다. 그러니 아카데미 회원의 면면을 보면 그 상의 성격이 나오는 것이다. 아카데미 회원은 ‘영화 제작에 직접 관여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할리우드에는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각 직업별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런 단체들을 살펴보면 감독협회, 배우조합, 촬영감독협회 등 영화 제작의 주체들이 모인, 영화에 있어서 필수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단체에서 나름의 실력을 발휘한 사람들이 아카데미 회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영화인의 축제란 말이 딱 들어맞는 것이다. 같은 동종 업계 사람들의 냉정하고 공정한 평가가 뒷받침되는 것이 바로 아카데미 상이다.
작게 보면 미국이란 나라만의 잔치일 수도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이지만 그 역사와 영향력을 본다면 전 세계 어떤 영화제와 견주어도 전혀 밀릴게 없는 것이(오히려 압도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또한 아카데미 영화제이다. 가장 상업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지만 영화인의 축제란 수사에 가장 적합한 영화제.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 상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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