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지나 우리는 목격했다. 아직 완성되지 못했을 뿐 무너지지 않은 나라를.”
20일(현지 시각)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의 깜짝 스타는 통합과 치유를 노래한 22세 청년 계관시인(National Youth Poet Laureate) 어맨다 고먼(Gorman)이었다. 이날 약 6분 동안 낭송한 그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The Hill We Climb)’은 이날 새 지도자를 맞이하기까지 극한의 갈등을 거쳐온 미국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하던 시점에 완성했다고 한다. “어디서 빛을 찾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으로 시작한 시는 “우리에게 빛을 바라볼 용기가 있다면 빛은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라고 끝을 맺는다.
고먼은 춤추듯 리드미컬한 손짓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뉴욕타임스는 “분열을 넘어설 통합의 희망을 담은 시”라며 “취임식 주제인 ‘하나 된 미국’을 반영해 결속과 구원, 화해를 노래했다”고 평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고먼의 시구를 인용한 찬사를 남겼다. “역사에 남을 이 날에 더없이 어울리는 시였다. 고먼과 같은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빛을 바라보고,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빛은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의 증거다.”
고먼은 “노예의 자손으로 싱글 맘 손에 자란 말라깽이 흑인 소녀가 대통령을 꿈꿀 수 있는 나라와 시대”라는 구절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함께 자신의 성장 배경을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출신인 고먼은 중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겪었던 언어 장애를 글쓰기와 음악으로 극복했다. 16세에 로스앤젤레스 청년 계관시인이 됐고 하버드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2017년엔 미국 최초로 도입된 청년 계관시인에 선정돼 이름을 알렸다.
그해에 고먼은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열린 낭독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가 취임식 무대에 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의 영상을 본 질 바이든 여사가 지난달 고먼에게 연락해 취임식을 위한 시를 쓰고 낭송해달라고 요청했다. 바이든 여사는 고먼에게 “노란 옷 입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도 했다. 고먼이 취임식 의상으로 프라다의 노란 코트를 선택한 것은 여기에 대한 화답이다.
이날 고먼이 착용한 귀걸이와 반지는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선물했다. 윈프리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를 낭송한) 마야 앤젤루에게도 코트와 장갑을 선물했다”며 고먼에게도 선물을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특히 새장 속 새 모양의 반지는 자전적 소설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I Know Why the Caged Bird Sings)’를 남긴 앤젤루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취임식에서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를 낭송한 이후 일부 민주당 대통령들이 이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낭송 무대를 부활시킨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앤젤루와 밀러 윌리엄스(1997년 재선)가 초청받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취임한 2009년엔 엘리자베스 알렉산더, 재선에 성공한 2013년엔 리처드 블랑코가 시를 낭송했다. 채민기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