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4배 ‘호랑이숲’에서 여생
노환으로 지난 20일 숨 거둬
‘수목원의 자랑’ 추모 영상 제작지난 10월 15일 낮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숲’이 있는 경북 봉화군의 문수산 자락. 국내 최고령 호랑이인 20살 두만이 바닥에 힘겹게 몸을 뉘었다. 두만은 동생 호랑이 한청(15, 암컷)과 우리(9)를 향해 나지막한 울음소리를 냈다. 두만은 마치 자신을 걱정하는 동생들에게 “괜찮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전하는 듯했다.
이 장면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하 수목원)의 폐쇄회로TV(CCTV)에 담겼다. 수목원 측이 공개한 두만의 마지막 모습이다.
두만은 지난 20일 정오 무렵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숲에서 보낼 5번째 봄이 오기도 전이었다. 2001년 5월 16일 중국에서 태어난 두만은 2005년 11월 중국 호림원에서 국내로 들여와 경기 포천 국립수목원 우리에서 살았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17년 1월 좁은 우리에 갇혀 살던 두만을 데려왔다. 산림청은 백두대간의 체계적 보호와 산림 생물자원의 보전·관리를 위해 2009년~2015년 2200억원을 들여 수목원을 조성했는데, 여기에 축구장 크기의 4배인 3만8000㎡의 초원인 호랑이숲도 만들었다. 호랑이들이 자연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조성한 숲 형태의 우리다.
2017년 9월 중앙일보는 수목원의 호랑이 3마리(두만·한청·우리)를 단독 취재했다. 한청과 우리는 같은 해 6월 서울대공원에서 왔다. 당시 중앙일보는 철장을 사이에 두고 두만과 50㎝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호랑이를 관찰했다.
당시 두만은 늠름한 자태를 뽐냈다. 사육사가 닭고기와 소고기를 던져주자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두만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자 순간 온몸의 털이 쭈뼛하게 설 정도였다. 당시 호랑이를 돌보던 전재경 수의사는 “호랑이가 숲에서 뛰놀 수 있도록 건강관리를 해 주는 일은 뜻깊고 경이로운 경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두만은 고령으로 올해 초부터 부쩍 기력이 떨어졌고 관절염과 내형성 발톱이 심해져 걷는 걸 힘들어하거나 먹이도 잘 먹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월 11일에는 두만이 느릿느릿 숲속 산책로를 걷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제대로 걷지 못했지만 이날 두만은 햇살 아래서 자연을 만끽했다.
수목원의 자랑이던 두만이 떠나자 사육사를 비롯한 온 직원이 슬픔에 잠겼다. 수목원에는 호랑이만 관리하는 직원이 5명 정도다. 호랑이 관리 장부에는 매시간 체크한 호랑이의 상태가 빼곡히 적혀 있을 정도로 수목원은 멸종위기 1급인 백두산 호랑이의 보존을 위해 세심한 관리를 해왔다. 수목원은 ‘두만아 사랑해. 영원히 기억할게. 안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만들어 두만을 추모했다.
민경록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주임은 “호랑이숲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백두대간을 즐기는 두만의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며 “두만이가 편안하게 영면하길 바라며 앞으로도 호랑이들이 호랑이숲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신규 개체를 추가 도입해 백두산 호랑이 종 보존에 집중할 계획이다. 국내에는 20여 마리의 호랑이가 동물원 등에 있다. 호랑이숲에는 10마리의 호랑이가 살 수 있다.
/백경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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