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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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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    사투리 만만세 7 댓글:  조회:4526  추천:0  2016-02-07
해피 버스데이                            (오탁번)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강릉방언에서의 성조와 음장이 음소적 자질로 기능하는 이원적 체계를 보면, 그 대립양상을 고저와 장단에 따라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성조 : 제1음절이 단음일때 - 고저에 따라 뜻이 분화되는 예가 비교적 많다. 제1음절이 장음일 때 - 그리 많지 않으나 강릉방언에서 발견된다. 2) 음장 : 제1음절이 저조일때 - 고저에 따른 최소대립쌍 못지않게 꽤 발견된다. 제1음절이 고조일때 - 다른 예들에 비해 매우 드물지만 몇 개가 발견된다. 3) 고저, 장단의 복합적 시차 기능 - 이 두 음소가 동시에 작용할 때 어느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실험에 의하면 작용량이 대등한 것같다. 국어의 고저, 장단은 변동 현상을 보이는데 그에 의한 이형태가 강릉방언에서 나타난다. 그 구체적 예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1) 체언의 경우 a. 곡용 - 일반적으로는 초분절음소의 변동은 일어나지 않지만 몇몇 특이한 예외가 발견된다. b. 복합어 - 제1음절의 고조가 저조로 바뀌기도 하고 고조를 유지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조를 지니는 것은 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고조로 바뀌는 일이 거의없다. 장단의 경우에도 장음은 단음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단음이 장음화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즉 장단의 변동은 성조의 변동에 비해 그만큼 활발하지 못하다. 또한 고저, 장단이 동시에 변동을 보이는 예도 발견된다. 2) 용언의 경우 - 어떤 어미가 연결되어도 변동을 보이지 않는 용언과 특정한 어미가 연결될 때 변동하는 용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율곡 선생이 10만 양병설을 주장했을 때, “전하 10만의 대군을 양성하여 외적의 침입에 미리 대비하셔야 하올 줄 압니다.” 라고 했어야 하는데, 사투리로 말했다고 한다.   "전하! 쟈들이(저 자들이) 움메나(얼마나) 빡신지(억센지), 영깽이(여우) 같애가지고(같아서) 하마(벌써) 서구문물을 받아들여가지고요,   쇠꼽 덩거리(쇠 덩어리)를 막 쟈들(그 자들이) 발쿠고(두드리고 펴고) 이래가지고 뭔(무슨) 조총이란걸 맹글었는데(만들었는데),   한쪽 구녕(구멍) 큰 데다가는(큰 곳에다가는) 화약 덩거리(덩어리)하고 재재한(조그마한) 쇠꼽 덩거리를 우겨넣고는(쑤셔 넣고는),   이쪽 반대편에는 쪼그마한 구녕(구멍)을 뚤버서(뚫어서) 거기다 눈까리(눈알)를 들이대고,   저 앞에 있는 사람을 존주어서(겨누어서) 들이 쏘며는(들이대고 쏘면은), 거기에 한번 걷어들리면(걸리면) 대뜨번에(대번에) 쎄싸리가(혓바닥이) 빠지쟌소(죽지 않소).   그 총알이란게 날아가지고 (날아와 가지고) 대가빠리(머리)에 맞으면 뇌진탕으로 즉사고요(즉사하고요),   눈까리(눈알) 들어 걸리면(맞으면) 눈까리가 다 박살나고, 배떼기(배)에 맞으면 창지(창자)가 마카(모두) 게나와가지고(쏟아져 나와서) 대뜨번에(대번에) 쎄싸리가 빠져요(죽어요).   그리고 쟈들이(그자들이) 떼가리(무리)로 대뜨번에(대번에) 뎀비기(덤비기) 때문에, 만명, 이만, 오만 같으믄(갖으면) 택도 안돼요(어림도 없어요). 10만이(10정도는) 되야지요(되어야 하지요).   이게(이제) 분명히 얘기하는데 내 말을 똑떼기(똑바로) 들어야 될 끼래요(될 것이에요).   그리고 쟈들이요, 움메나(얼마나) 영악스러운지요, 아주 순순히 이래가지고는(이렇게 해가지고는) 되지 않아요.   아주 우리도 더 빡시게(강하게) 나가고, 이래서 뭐, 대포도 잘 맹글고(만들고), 훈련을 잘 시켜서 이래야지 되지 안 그러면 우리가 잡아 멕혀요(먹혀요)."   이래 얘기를 했으니 선조 대왕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말귀를 못 알아듣겠소.” 이러면서“하여튼 알았소.” 이랬다는 얘기가 있는데, 결국에는 사실 뭐냐 임진왜란이 터지고 나서는 후회를 하면서 그 때 강릉 사투리를 알아듣고 또, 그 때 빨리 강릉 사람한테 물어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빨리 알아서 이렇게 대처를 했으면 아, 임진왜란 같은 그런 난이 없었다 하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는데 이건 뭐, 그냥 지어낸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투리를 그렇게 심하게 썼는지는 모르고 지어낸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 위 강원도사투리는 정확히는 영동지방 사투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서 지방의 경우 어투가 약간 느린 편이기는 하지만, 대체로 표준말을 쓰고 있다.  
316    사투리 만만세 6 댓글:  조회:5252  추천:0  2016-02-07
    7개 지역 사투리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 연극 '별어곡'. 극단 한울림 제공               사투리는 글로 적고 읽는 것에 앞서 말로 발음하고 듣는 것이다. 지난주 '[사투리 만세]서울말만 국어라꼬예?⑤-문학과 사투리'에서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그 지역의 정서와 환경과 생활상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는 문학 작품들에 대해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역시 같은 맥락으로 사투리를 도구로 쓰는 공연에 대해 알아봤다. ◆새로운 공연 언어로 주목받고 있는 사투리 지난해 2월 대구 연극계에서 흥미로운 시도가 펼쳐졌다. 대구를 비롯해 구미, 광주, 부산, 대전, 전주, 춘천 등 전국 7개 지역 극단 소속 배우들이 한 무대에 서는 연극 '별어곡'이 대구 남구 대명동 한울림 소극장에서 공연된 것이다. 대구의 극단 한울림을 포함해 전국 7개 지역 극단이 그저 교류 차원에서 합작한 것은 아니었다. 7개 지역 배우들이 저마다 살고 있는 지역 고유의 사투리를 대사로 구사했다. 배우로 출연한 것은 물론 연출도 맡은 오성완 푸른연극마을 대표는 "사투리와 사투리의 결합을 통한 새로운 연극 언어의 창출을 시도했다"며 "연극이 펼쳐지는 공간은 간이역 대합실이다. 만남과 떠남의 공간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내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배우들이 사는 지역 고유의 사투리를 대사로 구현했다. 전국의 사투리가 뒤섞인 독특하고 오묘한 무대가 만들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대구 남구 대명동 우전 소극장 무대에 오른 '삼도봉 미스터리'도 별어곡의 기차역 대합실과 닮은 공간을 극중 배경으로 썼다. 우리나라 지도를 살펴보면, '삼도봉'은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실제 지명이다. 극 중 주요 인물들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했다. 여기에 강원도에서 누군가 삼도봉을 찾는다는 설정으로 강원도 사투리를, 또 요즘 농촌에 다문화가정이 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의 말까지 가미했다. 이 작품은 점점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농민들의 현실을 다뤘다. 삼도봉에서 그들은 경상도나 전라도나 충청도나 강원도나 그 어디나 현실은 서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사투리는 서로 다르지만 또한 동일한 삶의 언어라는 메시지도 전했다. ◆음악 사투리 '토리'를 아시나요? 우리 국악에는 '음악 사투리'가 있다. 그 개념이 꽤 체계적으로 잡혀 있다. 바로 '토리'다. 토리는 민요에서 '지역마다 가지고 있는 음악적 특징, 독특하게 구별되는 노래 투'를 말한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는 음악적 특징, 예를 들면 민요를 구성하는 음, 그 음들의 기능, 음이 움직이는 방식, 발성법, 장식음 사용법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너무 전문적이니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분위기나 느낌이라고 뭉뚱그려 인식해도 되겠다. 사투리가 단어나 어휘의 뜻 외에도 어조와 억양 등을 통해 특유의 분위기나 느낌을 전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토리는 노랫말 말고도 노래의 분위기나 느낌을 전하는 음악적 요소들을 통칭하는 셈이다. 경기`충청 지역 민요에서는 경토리가 발견된다. 민요 '창부타령' '늴리리야' '경복궁타령'이 대표적인데, 보통 빠르기의 장단을 사용해 맑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서쪽 지역의 서도 민요는 수심가토리가 기반이다. 말 그대로 수심에 찬 애수를 느낄 수 있다. 그 표현 방법은 콧소리를 섞어 가만히 또는 얇게 떠는 것이다. 대표 민요로 '자진염불' '자진난봉가' '몽금포타령' 등이 있다. 반대쪽 동부민요의 특징은 메나리토리다. 이게 경상도 지역에서는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강한 억양으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 강원도와 함경도에서는 탄식하거나 애원하는 듯한 슬픈 어조로 표현된다. 경상도 민요 '밀양아리랑'과 '옹헤야',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 등이 유명하다. 경상도 민요의 상대 개념으로 쓰이며 '서편제'로 유명한 전라도 중심 남도민요는 육자배기토리를 쓴다. 격렬하게 떠는 음과 애절하게 꺾는 음이 특징이다.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가 그렇다. 이런 토리의 특징을 참고하면 앞으로 민요를 레퍼토리로 구성한 국악 공연을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말, 표준화 벗어나 다원화로 가자 생활 언어나 언어학에서 서울 중심 표준어와 서울 이외 지역의 사투리가 나뉘는 것과 달리, 민요에는 저마다의 토리가 있을 뿐이다. 음악가들의 인식만 봐도 그렇다. 음악동인 '고물'은 2007년 '풍류-서울 사투리'라는 제목으로 경토리를 주제로 한 8차례의 국악 공연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경기민요라는 명칭은 있지만 서울(한양)민요라고는 따로 없다. 이 같은 인식은 다시 방언학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성우 인하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방언, 이 땅의 모든 말'에서 "서울말은 표준어의 모태가 되었지만 서울말이 곧 표준어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표준어는 '쌀로 밥을 하고'이지만 서울 토박이들은 '쌀루 밥을 허구'라고, 경기도의 동쪽 사람들은 '쌀로 밥을 해고'라고 표현한다. 결국 서울말은 표준말과 아주 가깝지만 사투리의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다"며 "한국인 모두가 방언을 쓴다. 그 모든 방언을 아우를 때 비로소 그것이 한국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도 책 '방언의 미학'에서 "언어학자들이 모호하게 혹은 그릇 규정했던 방언을 식민지배자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모호한 말'로 그 가치를 폄하하고 훼손시켜 왔다. 표준어는 잘 분화되고 규범화된 형태인 반면 방언은 가치가 떨어지는 하위 변이형을 지닌 것으로 잘못 이해해 왔다"고 지적하며 "표준화에서 다원화의 관점으로, 자본 중심에서 변두리로 우리의 눈길을 되돌려야 한다. 소수의 언어인 변두리 방언의 미학이 우리의 일상 속에 소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 대표 사투리 브랜드 '단디' 대구은행 'DANDI' 카드·대구FC 이벤트 '단디타임' 사투리가 촌스럽다는 인식은 사투리 브랜드를 통해 바뀌고 있다. 뜻은 그대로 살리면서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어가 주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발음을 재조명하고 있다. 우리 지역의 경우 대표적인 사례가 '확실히, 제대로, 똑바로' 등의 뜻을 지닌 사투리 '단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구은행이 2008년 발매한 금융카드 브랜드, 단디(DANDI)가 있다. 멋스러운 스타일을 가리키는 댄디(dandy)의 의미도 함께 넣은 브랜드다. 우리 지역 프로축구팀 대구FC는 2014년부터 조광래 단장이 경기장 입구에서 입장 관중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사인도 해주는 이벤트를 열고 있는데, 명칭을 '단디타임'이라고 붙였다. 젊은이들도 두루 쓰고 있다. 계명문화대 식품영양조리학부 학생들은 2011년부터 제과제빵 동아리 '파티스리 단디'를 만들어 교육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티스리는 프랑스어로 제과사를 뜻한다. 한자어보다는 고유어인 사투리가 외국어와 잘 어울린다. 또 대구경북대학생 영상연합동아리 '단디'도 있다. 2013년 '귀요미송'을 작곡해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히트시킨 계명대 실용음악과 출신 힙합 프로듀서 겸 래퍼도 단디(DanDi`본명 안준민)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단디 해라"는 말이 함께 살 때는 잔소리로 들렸지만, 객지 생활을 하면서 가슴에 와 닿아 짓게 된 예명이란다.   황희진 기자 ////////////////////////////////////// 맞지예? 맞지예!를 맞지藝? 맞지藝!로... 각기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 대화를 하는 가운데 서울에 살고 있는 이가 “대구 사람들이 쓰는 ‘~ 예’라는 말이 정말 정겹게 들린다”고 말했다. 내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맞지예? 그렇지예!”라는 경상도 사투리를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그분이 눈치 챈 것일까? 막내로 자란 나는 어릴 적 나이 차 많은 언니와 오빠와 대화를 할 때 ‘맞제? 맞제!’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맞제? 맞제!’는 막내로서 결정권이 없던 내가 언니와 오빠에게 동의를 구함으로써 나의 행동에 확신과 용기를 가지기 위한 사전 의사결정 과정이었으며, 차후 꾸지람을 듣지 않기 위한 사전 포섭의 수단이었다. 어느 날 대학생이었던 언니는 “제발 ‘맞제? 맞제!’ 좀 쓰지 마라”라며 짜증을 냈다. 너무 촌스러운 동생의 사투리가 거슬리고 주변 사람들을 의식해 부끄러웠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답하기가 귀찮아서였을 것이다. 언니에게 지적을 당한 이후로 나는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을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서 쓰게 된 ‘맞지예, 그렇지예’는 경상도의 많은 사투리 중에 가장 긍정적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콜센터의 표준말을 친절하게 사용하는 상담사와 전화를 할 때면 뭔가 2%의 부족함이 있다. 때로는 고객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도와주려는 상담사의 노고와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영혼 없는’ 친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하고 문화예술 잡지를 만들면서 문화예술의 향유에 대한 욕구를 가진 많은 시민들을 만나게 되고 문의 전화도 많이 받게 된다. 그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받게 되면 “맞지예? 그렇지예!”를 섞어가며 맞장구칠 때가 많다. 대구 사람의 거센 억양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구 시민에게 문화예술이 가까이 있고 어렵지 않은 친근한 분야임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작은 노력이기도 하다. 또 상담기법의 1단계인 ‘공감’도 숨어 있다.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보다 친근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의 경계심을 풀고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된다. 대구에는 많은 예술인들이 자신과 자기분야 예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며 대구의 문화예술을 지키고 있다. 2016년에도 그들의 활발한 활동이 대구 문화예술의 꽃을 활짝 피웠으면 하는 바람과 더불어 다른 분야, 다른 예술인들의 예술 활동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맞장구를 치며 활동을 격려할 수 있는 “맞지藝? 그렇지藝!” 행보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문화예술의 도시, 공연중심 문화도시 대구의 원동력은 많은 예술인들의 노력이 일구어낸 예술의 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맞지藝? 그렇지藝!”로 모든 예술인과 대구 시민들께 통했으면 한다.   남지민 대구예술 편집장
315    사투리 만만세 5 댓글:  조회:4490  추천:0  2016-02-06
글맛 '감칠맛'                 국어사전은 '시근'이란 낱말을 '시근'(始根: 근본이 되는 원인)과 '시근'(試根: 함지나 사발 따위로 색 볼 때, 육안으로 식별되는 금분(金分)으로 설명한다. 경상도 사람들이 흔히 '그 녀석 시근 있다' 고 할 때 '시근'은 국어사전이 설명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철 들었다'고 할 때 '철'(사리를 가릴 줄 아는 힘)에 가깝다. 그러나 경상도 사람들이 쓰는 '시근'은 표준어 '철'과는 또 다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문학작품들은 그 지역의 정서와 환경, 생활상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할 수 있다. 동일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각기 다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세월'을 드러내는 것이다. ◆편한 말을 쓸 때, 창작 더 잘 돼 대구 출신 소설가 김원일의 작품 '불의 제전'에는 '오히려 큰짐 덜었다고 생각해라'는 표현이 있다. 여기서 '큰짐'은 '책임'의 의미로 사용된다. 이문열의 작품 '변경'에서는 '그건 글코- 야야, 차라리 내일 아침 첫차로 나가제. 이십 리 길도 마딘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표준말로 표현할 경우 '그건 그렇고, 너, 차라리 내일 아침 첫차로 가는 게 어떻겠니. 이십 리 길도 먼데'로 옮길 수 있겠지만 정서는 많이 다르다. '야야'처럼 다감한 의미를 단순히 '너'로 옮길 수 없고, '절약이 잘 되어 좀처럼 소모되지 않는다. 즉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의 '마디다'를 단순히 '멀다'라고 옮길 경우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멀다'와 '너처럼 잘 못 걷는 사람한테는 멀어서 좀처럼 길이 줄어들지 않을 것인데'라고 염려하는 심정을 포함하는 '마디다'는 뉘앙스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가 현진건의 작품에도 대구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뒤통시, 거진, 삽작, 찰지다' 등이 좋은 예다. 경상남도 통영 출신인 시인 청마 유치환의 '보리누름'이란 작품에서 '보리누름'은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철'을 뜻한다. 이들 작가들이 지역색이 강한 말을 썼던 것은 가장 편안한 말을 사용할 때 창작 영감이 가장 잘 떠올랐기 때문이다. ◆토속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 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경북대 교수)은 "편안한 말을 쓰다 보니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사용한 작가들도 많지만, 의도적으로 사투리를 자주 쓴 작가들도 많다"며 대표적인 작가로 시인 서정주와 박목월의 1930년대 이후 작품을 꼽는다. 영남과 호남의 서정을 계보로 이어온 두 시인은 각각 영남 사투리와 호남 사투리를 통해 남도가락의 흥을 멋지게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경상도와 전라도라는 두 공간을 단순히 '소재'가 아니라 '돌아가야 할 고향, 토속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시 정신'을 표출하는 매개로 삼았다.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철없이 뛰어놀던 시절,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고 넉넉하게만 보였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는 것이다. 이는 고향을 떠나 먼 서울에서 생활하며 겪는 팍팍함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박목월, 사투리- 이상규 교수는 "만일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에서 경상도 방언형인 '칵'이 아니라 '콱'으로 표현했다면 우직함을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경상도 방언의 맛깔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경상도 사람들의 정감과 심성, 시인 자신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고향의 색채와 냄새까지 하나의 풍경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상규 교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청각과 시각, 미각과 취각까지 일치하는 방언으로 나타낼 때 가장 적확할 수 있다" 며 "만약 이런 시적 표현을 표준어로 바꾼다면 시인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번역으로 보는 고유 언어의 힘 사투리가 한 국가 안의 한 지역에서 많이 쓰는 말이라면, 국어는 세계 속 하나의 '사투리'라고 할 수 있다. 한 국가 안에서 사투리가 푸대접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언어 역시 '칙사'와 '급사' 대접 사이에 자리한다. 1901년부터 2015년까지 노벨 문학상 수상자 중 시인은 프랑스의 쉴리 프뤼돔(1901년), 프레데리크 미스트랄(1904년), 이탈리아의 '조수에 카르두치', 인도의 타고르(1913년), 버틀러 예이츠(1923년) 등을 비롯해 29명이다. 나머지 수상자들은 소설가나 극작가, 철학자들이다. 이들 29명의 시인 중 인도의 타고르, 칠레의 가브리엘라 미스트랄과 파블로 네루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 세인트루시아의 데릭 윌콧 등 5명을 제외한 모든 수상자가 유럽인이거나 미국인이다. 세계의 그 많은 훌륭한 시인 중 유독 유럽과 미국의 시인들이 노벨상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은 시어 번역문제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의 글과 달리 시어는 번역을 통해 원래의 맛을 표현해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5명의 비유럽, 비미국 수상자들 중에서 인도의 타고르는 영국에서 유학했으며,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 '기탄잘리' 역시 벵골어로 썼으나 자신이 직접 영어로 번역했다. 또 다른 비유럽 시인인 세인트루시아의 데릭 윌콧은 아버지가 영국계로 영어를 사용하는 시인이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유럽권인 셈이다. 비유럽, 비미국 작가들이 노벨 문학상을 못 받았기에 아쉽다는 말이 아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문학작품 속 사투리를 표준어로 혹은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번역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시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할 만큼 시 번역이 어렵다고 말한다. 모국어와 사투리 속에는 그들만의 정서가 오롯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촌스러운 사투리? 서울말도 사투리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 씨는 이달 8일 매일신춘문예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당선자가 전국적으로 골고루 나왔는데, 사투리가 거의 들리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대구에 왔지만 사투리가 많이 들리지 않는다. 전라도에 가도 전라도 사투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며 "사투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지방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남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점점 사투리가 멀어져 아쉽다"고 말했다. 실제로 각 도시에서 사투리를 듣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근래에는 문학작품에서도 자연스럽게 쓰는 사투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사투리를 쓰면 '촌스럽다'는 의미를 넘어 극우, 빨갱이, 의뭉함을 연상하는 경우도 많다. 일부 네티즌들은 대구 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곧바로 '일베'로 규정하고 비판을 퍼붓기도 한다. 여기서 '일베'는 '극우, 꼴통보수'라는 비판적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그런가 하면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면 곧바로 '슨상님'과 '민주화'를 연상하기도 한다. 여기서 '슨상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맹목적 지지'를 비꼬는 말이고, '민주화'는 '무엇이든 억지를 부리고, 폭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문학계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동일한 언어란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는 언중(言衆)의 연령`성별`직업`계층 등에 따라 다양하게 변이(變異)하고 그 범위를 규정하는 객관적 기준이 없어 상대적인 가치를 가지는 개념'이라고 언어를 정의한다. 흔히 우리는 '사투리'를 '서울말이 아닌 말'로 생각하지만, '사투리는 표준어와 달리 그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말'을 뜻한다. 서울이나 경기도 사람들도 모두 표준어와 일치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므로 서울말과 경기도말 역시 사투리에 포함된다.   조두진 기자
314    사투리 만만세 4 댓글:  조회:4790  추천:0  2016-02-06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가택연금 상태에서 외출하려고 하다가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가로막자 이렇게 말했다. “이기(이것이) 무신 법이야. 나를 간금(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그러나 민주주의 길을 뺏지는 못해.” 1993년 2월 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애(내외) 귀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대한(위대한) 국민의 승리입니다. 국민에 이한(의한), 국민의 정부를 이 땅에 세웠습니다”고 연설했다. 그런가 하면 대통령으로 당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도동계 최측근인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 사건이 터지자 “우째 이런 일이”라고 탄식했다. 이후 이 말은 5천만 한국인이 황망한 사건을 대할 때 읊조리는 말이 되었다. ‘우째’는 경상도 사투리였으나 황망함을 표현하는 데는 다른 지역의 어떤 감탄사보다 적절했던 것이다. ◇통역이 못 알아듣고 쩔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보비서관과 정무비서관을 지냈던 박진 전 새누리당 의원은 대통령의 정상회담 통역을 담당했다. 1993년 7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두 정상은 녹지원에서 새벽 조깅을 했다. 그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매일 새벽 5시에 조깅을 해 조깅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젊고 키도 커서 잘 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조깅 수행을 하며 통역하던 박진 전 의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빨리 뛸 낀데, 나도 안 질 끼다.” 1993년 4월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회담을 나눌 때, 닉슨 전 대통령이 중국과 소련이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한국의 변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에 김영삼 대통령은 “우리도 배나와 개핵(변화와 개혁)을 위해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서울 토박이인 박진 의원은 ‘배나’가 무슨 말인지 몰라 여러 번 물었다. 김 대통령은 힘주어 ‘배나!’ ‘배나와 개핵!’이라고 강조했다. 닉슨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에 김 전 대통령은 박진 전 의원에게 “박 교수, 영어는 잘하는데, 경상도 말 좀 배아라”라고 말했다. ◇사투리로 국민을 즐겁게 김영삼 대통령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제다. ‘학실히’(확실히), ‘씰데(쓸데)없는 소리’, ‘이대한’(위대한) 등 진한 사투리 덕분에 무겁고 진지한 존재로만 각인되어온 우리나라 대통령의 이미지가 친근함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또 김 전 대통령의 사투리를 주제로 우스개가 유행하기도 했다. “각하, 경상도에서 ‘갑자기’를 무엇이라고 합니까?” 비서관이 그렇게 묻자 “글쎄?”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김 전 대통령은 “ ‘각중에’(갑자기) 물으면 우짜노”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고향인 거제도의 가라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개통되자 김 전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해 이렇게 연설했다는 유머도 있다. “이대한 거제도민 여러분 오늘 가라산을 간통(관통)하는 도로가 완공되어 이제 거제도를 국제적인 간강도시(관광도시)로 만들겠십미다. 여러분.” 그러자 옆에 있던 외무부장관이 말했다. “각하! 간통이 아니라 관통이고 간강도시가 아니고 관광도시입니다.” 살짝 기분이 상한 김영삼 대통령은 이렇게 쏘아붙였다. “애무부(외무부) 장간이나 잘 하시오.” 실제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관광도시를 흔히 ‘간강도시’라고 표현해 국민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다. ◇사투리 많이 쓰는 대통령 다시 나올까 김영삼 대통령처럼 사투리를 오롯이 쓰는 대통령이 다시 나올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서울 집중 현상이 강화되면서 지방 출신들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동안 서울 말씨로 바뀌고 만다. 단순히 말씨만 서울 말씨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인식도 다분히 서울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사회학 이론에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이라는 용어가 있다. 개인이 자신의 신념`태도`가치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데 기준으로 삼고, 스스로를 동일화하는 집단을 말한다. ‘무늬만 TK’라는 말은 서울 말씨를 쓰는 대구경북 출신 정치인들이 자신의 ‘준거집단’을 대구와 경북이 아니라 서울에 두고 있음을 꼬집는 말이다. 김영삼 대통령처럼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대통령이 다시 나올까 의문이 드는 것은 그가 쓰는 ‘사투리’ 속에 그의 정체성이 녹아 있는 동시에 한국 사회가 위치한 좌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고의 통일을 위해 언어 통일을 시도한 예가 머지않은 과거에 있었다. 일제는 1936년부터 한글로 발행되던 신문을 무기한 정간시켰고, 1941년 ‘초등학교 규정’을 공포해 조선어 과목을 완전히 폐지했다. 또 1941년에는 ‘문장’ ‘인문평론’ 등 조선어로 발행되던 각종 잡지도 폐간함으로써 조선어로 된 신문이나 잡지는 모두 사라졌다. 또 ‘조선어학회’를 탄압, 해체한 데 이어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기관지였던 ‘한글’도 폐간시켰다. 언어를 말살함으로써 한민족 정신을 말살하고, 일본 천황 중심으로 모든 것을 통합해, 일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사투리 스토리 엮인∼ 구불구불 골목…표준말 지역색 제로∼ 일직선 큰 도로 전통적으로 한국의 골목은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여기저기 집들이 등장하고, 그 사이를 사람들이 오고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이 형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이동하는 동안 장애물이 앞을 막거나 위험한 지형을 만나면 피해 갔다. 그래서 골목은 대체로 구불구불하고, 그 구불구불함은 곧 그 지역의 지형적 특색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대의 도로는 대체로 일직선이다. 근대화 이후 생겨난 도시는 대부분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를 먼저 건설한 다음, 도로를 따라 건축물을 짓기 때문이다. 이때 도로는 지형적 특색이 반영되지 않는다. 사투리는 전통적인 골목과 비슷하다. 구불구불하고, 그 지방의 특성에 따라 제각각 독특한 단어와 억양을 지닌다. 지역인의 삶과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더라도 큰 도로는 엇비슷하다. 큰 도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표준말을 쓰는 집단은 인식도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 쏟아내는 표준말이 험준한 산과 깊은 강을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말과 문화, 인식이 큰 쪽으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형국인 것이다. 유행하는 말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비춰준다. 그런 점에서 21세기 한국인들이 거리낌 없이 쓰는 언어는 한국인의 의식 세계와 현재적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 출신의 정치인들이 서울 말씨를 쓰며, ‘준거집단’을 서울로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들도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영어를 우리말보다 더 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19세기 개항 이후 서구 주도의 문명 발달에 속수무책으로 끌려오다시피 하느라 우리 속에 우리도 모르게 서구 지향적 사고방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다음과 같은 말을 영어 대신 우리말로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리플(reply) ▷무빙워크(moving walk) ▷네티즌(netizen) ▷포스트잇(Post-it) ▷스크린도어(screen door) ▷파이팅(fighting) ▷내비게이션(navigation) ▷올인(all-in) ▷투잡(two job). 우리가 일상에서 별 부담 없이 쓰는 이 말들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댓글 ▷자동길 ▷누리꾼 ▷붙임쪽지 ▷안전문 ▷아자아자 ▷길안내 도우미 ▷다걸기 ▷겹벌이 흔히 사투리는 ‘촌스럽다’거나 ‘우스개’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사투리야말로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표일 수 있다.   조두진 기자 /////////////////////// 흔히 서울 사람들이 쓰는 말을 전부 표준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서울말도 엄연한 사투리입니다. 다만 분단 이후 수도가 서울로 정해지고, 새로운 정책적으로 '표준어'를 지정, 공포해야할 필요성을 느끼면서 굳이 서울말이 지정된 것뿐이지요. 그렇지만 서울말이라고 해서 모두 표준어는 아니구요. 표준어 사정 총칙의 제 1항에 의하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 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1. 교양 있는 사람들 2. 두루 쓰는 3. 현대 4. 서울말 그야말로 애매한 기준입니다. '현대'라는 말의 개념만으로도 충분히 논란 거리죠. 그런데다... 교양이 있는 기준은 어떤 것이고, 두루 쓰는 것은 몇 퍼센트이고, 서울말이라면 서울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란 뜻인지 아니면 서울 사람이 -다른 지역에 있더라도- 쓰는 말이란 뜻인지... 따지면 끝도 없습니다. 아무튼, 서울말이 전부 '표준어'는 아니다...라는 걸 우선 알아 주셨으면 좋겠구요. 그리고 '도시마다 사투리가 있는 이유'라고 표현하셨는데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는 이유'라고 표현하셔야 맞습니다. 도시가 만들어진 건, 사투리가 있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이야기니까요. 사투리는 각 지역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온 '자연 발생적' 언어입니다. 즉, 각 지역의 기후나 식생, 관습, 기질, 삶의 방식 등에 따라 만들어졌죠. 표준어와 다른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표준어는 나라가 효율적으로 국정과 민생을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할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언어'인 반면 사투리는 언어의 발생과 동시에, 각 지역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언어'입니다. 따라서 표준어(이 때 '서울말'이라고 표현한다면 잘못된 것이겠죠)와 사투리를 비교해 사투리를 더 열등하다고 생각한다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더 나아가 잠정적으로 '사투리를 없애자'라고 주장하는 태도는 (썩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마치 숲을 베어버리고 아파트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것이죠. 사투리와 우리말 형성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보통 '한 계통의 언어에서 사투리가 분화 되었다'는 주장과 '각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활발한 교류를 통해 한 계통의 공통성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상황입니다만, 정론은 확실치 않습니다. 만일 이것을 넘어서는 추측을 하려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언어는 문자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것이니만큼, 기록을 찾기란 '완전히' 무리니까요. 이야기를 이것저것 좀 많이 해버렸는데...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313    사투리 만만세 3 댓글:  조회:5015  추천:0  2016-02-06
'아저씨, 어디 가십니까? 지역별 인사말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TV드라마 '응답하라 1988'.       경상도 사투리가 인기다. TV에서, 인터넷에서 경상도 사투리 배우기가 유행이다. 다소 거친 듯하면서도 정감 있는 경상도 사투리 일색의 TV 드라마, 사투리를 내세운 개그맨, 사투리로 된 노랫말, 사투리만 쓰는 방송 출연자까지 억세고 거칠고 무뚝뚝하던 경상도 사투리가 재미있고 새롭고 귀여운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한 방송국 PD는 "충청도 개그는 은근하게 에둘러 말하는 화법이 유머 코드였으나 지금은 직설화법으로 바뀌었다"며 "요즘 시청자는 기본적으로 샤우팅(소리 지르기)이면서 직설적인 경상도 사투리에 반응한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 지역별 구분 지리적`언어적 특성을 반영해 사투리를 구획한 인하대 한성우 교수는 경상도 말을 우리나라 동남부 지역에서 쓰는 말이라고 구분했다. '경북 방언의 지리언어학' 저자 김덕호 경북대 교수는 경상북도 사투리를 대구와 경산`청도`영천 등을 묶은 동남지역, 경주와 포항`영덕`울진 등을 묶은 동해안 지역, 김천과 구미`칠곡`성주 등을 묶은 서남 지역, 안동과 봉화`영주`예천 등을 묶은 서북 지역 등 네 곳의 구역으로 나눴다. 대구경북 출신이 아닌 사람들은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토박이들은 인사말 한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이 안동 사람인지, 경주 사람인지, 김천 사람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 가십니까?'를 사투리로 바꿔보면 대구 사람은 '어데 가능교?'라고 하고, 안동 사람이라면 '어데 가니껴?'라고 묻는다. 김천 사람은 '어데 가여?'라고 한다. 경북대 백두현 교수는 "경북 사투리의 지역별 특징은 의문문에서 많이 나타난다"며 "말끝만 들어도 지역 구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경상도 사투리 특징 가장 큰 특징은 모음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경상도의 나이 든 분과 일부 젊은 세대의 말에서는 'ㅔ' 'ㅐ'가 구별되지 않을 뿐 아니라 'ㅡ' 'ㅓ'도 구별되지 않는다. ㅔ, ㅐ가 구별되지 않는 것은 표준어나 중부 지역에서도 흔하기 때문에 별로 표가 나지 않지만 ㅡ, ㅓ가 구별되지 않는 것은 경상도 말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또 자음도 하나 부족하다. 나이 든 세대(특히 포항과 영덕 출신) 중에는 'ㅅ'과 'ㅆ'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ㅆ을 ㅅ으로 발음하기 때문에 자음이 19개가 아닌 18개로 나타난다. 그 결과 '살'(肉)과 '쌀'(米)의 구분이 불분명하다. ‘맛이 쓰다’고 해야 할 것을 ‘맛이 스다’라고 발음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에 대해 국어학자들은 "모음과 자음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결여 현상이 말의 우열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경상도 말의 고유한 특징일 뿐 언어적으로 열등하거나 이상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경상도 말에는 길고 짧게 발음하는 음장이 없다. 표준어에서는 ‘말’(馬)과 ‘말’(語)을 길고 짧은 것으로 구별한다. ‘馬’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보통의 길이를 가지는 ‘말’인 데 비해 ‘語’의 뜻으로 쓰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긴 ‘말:’로 발음돼 소리는 같은데 길이만으로 그 뜻이 구별된다. ‘눈’도 마찬가지다. 보통의 길이는 ‘眼’의 뜻인 ‘눈’이고 길게 발음하는 '눈:'은 ‘雪’이다. 그러나 경상도 사람은 거의 같이 발음한다. 경상도 말에는 또 높고 낮게 발음하는 것으로 단어의 뜻을 구별하는 성조가 있다. ‘말이 많다’를 예로 들면 소리는 ‘말이 많다’로 같지만 ‘馬’의 ‘말이’는 고조-저조로 나타나고, ‘語’의 ‘말이’는 저조-고조로 나타난다. ◆가가가가(그 아이가 그 아이니?)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가가가가(그 아이가 그 아이니?), 가가가가가(그 아이 성이 가씨니?)란 말은 성조의 차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경상도 사투리의 단면을 이야기해 주는 대표적인 예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가'는 의문조사나 주격조사로서의 문법적 쓰임만이 아니라, 동사 '가지다' '가다'의 어미가 생략된 말로도 사용된다. 경상북도 사투리는 지역에 따라 의문형 종결 어미가 다르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에서는 ‘하니껴체’를 쓴다. "아제요, 어디 가니껴?"(아저씨, 어디 가십니까?)라고 한다. 경주를 중심으로 한 동남부 지역에서는 '하능교체'를 쓴다. 이 지역에서는 "아제, 어디 가능교?"라고 한다. 상주, 김천을 중심으로 한 서북부 지역에서는 ‘해여체’를 쓴다. "아제, 어디 가여?"라고 한다. 경상도 말은 'ㅚ' 'ㅟ' 발음이 없다. 따라서 ㅚ는 ㅐ로, ㅟ는 ㅣ로 발음한다. '안 대나?'(안 되나), '디에 있데이~'(뒤에 있다), '외갓집'을 '애갓집' '이갓집'으로 발음한다. 물론 '까마구'처럼 ㅜ로 발음할 때도 있다. 이 밖에도 'ㅕ'를 'ㅐ'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경상도'를 '갱상도'로, '경제'를 '갱제'로 발음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곤 했다. 경상도 사투리는 특유의 강한 억양이 있다. 이는 경상도 사투리를 더 거칠게 하는 요인이 된다. 경상도 사투리의 또 다른 특징은 발음의 생략과 압축이 많다는 것이다. '이기 뭐꼬?'(이게 뭡니까?), '뭐라카노?'(뭐라고 하느냐?), '니 그카이 내 그카지'(네가 그렇게 하니 내가 그렇게 하지), '샘'(선생님) 등 이런 식으로 축약형이 많다. 또한 다양한 수사도 경상도 말의 특징이다. 억수로(매우), 천지삐까리(무척 많다) 등이 한 예다. 경상도 사투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문어체와 구어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니 어디 가노?/ 학교 간다' '쟈, 니 친구가?/ 아이다. 모른다'에서 '학교 간다' '모른다'는 분명 문장에서 사용되는 문어체다. 이를 회화에서 구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개 '학교에 가' '아니, 누군지 몰라' 따위로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경상도 사투리에서 문어체와 회화체의 구분은 사실상 모호하다. 그리고 '~노' '~나' ' ~소'로 끝나는 말이 많다. 예를 들면 '어서 오이소~' '니, 뭐하노?' '안 대나?' '오데 갔노?' 등이다. 최재수 기자   ◆ '2², 2의 e승, e², e의 e승' 경상도인만 정확히 발음 경상도 말의 성조 효과를 극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사례는 수학에서 ‘이의 이승’으로 발음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2², 2의 e승, e², e의 e승'이 바로 그것이다. 숫자 2와 알파벳 e는 모두 발음이 ‘이’인데 이것을 활용해 제곱을 표현하는 ‘2²,2의 e승, e², e의 e승’에서 2와 e의 높낮이가 다르면 네 개의 서로 다른 조합이 나오므로 모두 구별해서 말할 수 있다. 2², 2의 e승, e², e의 e승을 정확히 구별해 발음할 수 있는 사람은 경상도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은 숫자 2는 저조, 알파벳 e는 고조로 구분해 어렵지 않게 발음한다. 서울 등 중부지역 사람들은 밋밋하게 2나 e를 똑같이 발음해 구별할 수 없다. 한 국어학자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겐 재미있게 들리는 위의 사례처럼 높낮이로 단어의 뜻을 구별하는 것은 경상도 말뿐만 아니라 함경도 말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나라의 서쪽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한국어의 방언을 구분 짓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말했다.   최재수 기자
312    사투리 만만세 2 댓글:  조회:5181  추천:0  2016-02-06
          상희구 시인.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장.       ◆토박이말 발굴·조명에 힘쓰는 대구경북 사람들 토박이말 발굴 및 조명에 힘쓰고 있는 대구경북 사람들이 있다. 경상도 사투리를 발굴해 시를 쓰며 대구의 인문지리도 집대성하고 있는 상희구 시인과, 약 40년간 현장 중심 방언 연구에 매진하며 경상도 방언에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는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장을 만나봤다. 대구풍물-상희구 용두방천에는 돌삐이가 많고 무태에는 몰개가 많고 쌍디이못에는 물이 많고 깡통골목에는 깡통이 많고 달성공원 앞에는 가짜 약장사가 많고 진골목에는 묵은디 부잣집이 많고 지집아들 짱배기마 씨가리랑 깔방이가 억시기 많고 칠성시장에는 장화가 많고 자갈마당에 자갈은 하나도 안 보인다 *돌삐이: 돌멩이 *몰개: 모래 *쌍디이못: 쌍둥이 못, 신천교에서 동대구역 방향으로 가다가 왼쪽 편에 있었다. *깡통골목: 6`25 전란 후 인교동에는 깡통으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소공장이 많았다. *진골목: 묵은 부자가 많이 살았던 역사가 있는 골목으로 골목이 길다고 진골목으로 부른다. *짱배기마중: 머리통마다 *씨가리: 이의 알 *깔방이: 아주 작은 새끼 이 *억시기: 매우 *칠성시장에는 장화가 많고: 옛날 칠성시장에는 비만 오면 여간 진창길이 아니어서 장화가 없이는 도저히 다닐 수가 없었다. *자갈마당: 대구의 이름난 유곽촌 ◇"경상도방언 시 500편 언어+서사+생태+정서 대구 인문지리 집대성" …'大邱詩誌' 출간 상희구 시인   "경상도 방언으로 시를 쓰다 보면 뭔가 긴가민가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돌아가신 어머니를 머릿속에 불러 여쭤봅니다. 언어 감각이 뛰어나셨던 어머니는 고향인 청도의 방언을 생활 속에 구성지게 풀어내셨습니다." 10집 완간을 목표로 모어로 읽는 연작 장시 '대구' 시리즈를 쓰고 있는 대구 출신 상희구 시인. 그에게 모어(母語)란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 고리다. 단순히 어머니가 구사했던 어휘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살았던 시대의 풍속을 담고 있고, 당신이 교감했던 민초들의 희로애락도 묻어난다. 결국 상희구 시인의 방언 시 쓰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경상도 방언의 복원이면서, 대구의 언어`서사`생태`정서 등 무형유산을 집대성하는 작업인 셈이다. ◆방언학계가 주목하는 경상도 방언 시 상희구 시인은 2012년 시리즈 1집을 펴냈고 2015년 5집까지 발간했다. 모두 500여 편의 방언 시를 수록했다. 이들을 묶은 합본집인 대구시지(大邱詩誌) 상권도 2015년에 출간됐다. 상희구 시인의 작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하나는 사라진 경상도 방언 복원 측면이다. 국내 방언 연구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경상도 방언 연구 권위자인 이상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전 국립국어원장)가 상희구 시인에게 가칭 '상희구 경상도 방언 시어 사전' 집필을 제안하고 있을 정도다. 시리즈 10집까지 나오면 그동안 상희구 시인이 새롭게 발굴한 경상도 방언 어휘는 1만여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방대한 분야를 다루는 대구 인문지리 집대성 측면이다. 상희구 시인은 각 작품마다 풍부한 해설 및 각주를 곁들인다.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자료 조사 및 현지답사를 한다. 그러다 보니 시 작품만큼 귀중한 부연 설명이 곁들여지는 것. 여기서 부연은 더는 부연이 아니게 된다. 시에 쓰인 방언의 뜻, 소재로 다룬 당시 인물에 대한 평, 시에는 등장하지만 이제는 사라진 장소의 구체적인 위치 등에 대한 설명은 자료 제공의 의미와 시집을 읽는 재미를 함께 선사한다. ◆대구의 뿌리 다룰 6~10집 상희구 시인은 앞으로 출간할 시리즈 6~10집에서도 두 가지 측면을 완성도 높게 구현할 계획이다. 이들을 묶어 대구시지 하권도 발간할 계획인데, 제목을 '대구달성시지'로 바꾸기로 했다. 시의 소재가 대구 달성군 지역에 많이 산재해 있어서다. 상희구 시인이 밝힌 시리즈 6~10집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3, 4월 중 발간할 6집은 대구의 사찰, 재실, 서원을 다룬다. 역시 달성군에 소재가 참 많다. 그래서 제목을 '비슬산 유가사'로 정했다. 사찰, 재실, 서원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펼친 사회에 대한 기여,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의미도 강조할 계획이다. 7집은 대구의 전설, 설화, 옛 지명에 대해 얘기한다. 8집에는 '신대구 10경'을 선정해 시로 써서 수록한다. 조선시대 문인 서거정(1420~1488)이 대구의 명소 10곳을 정해 대구 10경을 읊은 지 500여 년 만이다. 상희구 시인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 및 역사성을 모두 갖춘 대구의 새 풍경을 고르고, 대구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함께 시를 집필할 계획이다. 9`10집은 대구의 산과 강을 담아낸다. 1집에서 장시 '금호강'을 선보였다면, 10집에는 대작 '팔공산'을 수록해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계획이다. "2017년 12월 10집 출간을 목표로 시 쓰기, 자료 조사, 현지답사를 부지런히 병행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오만가지 감회를 '시'라는 흔적으로 남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의성군 18개 읍·면 싹∼ 방언 샅샅이 뒤졌니더" 40년 연구 '사투리 박사'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장 신승원 한국방언연구소장이 방언 연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든 시기는 1970년대 말 영남대 국어국문학과 재학 시절이다. 국내 방언 연구의 선구자인 최명옥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당시 영남대에 와 있었다. "최 교수님과 2박 3일 동안 경산 용성면에 가서 함께 먹고 자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방언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최 교수님의 열정을 보고 저도 방언 연구의 길로 들어섰어요." 이어 대학 졸업 후 국어 교사로 일하면서도 꾸준히 방언 연구를 위해 뛰어다닌 기간이 약 40년이다. 2015년 8월에는 대구 혜화여고에서 퇴직하고 연구소를 차렸다. "먹고살 만하면 함께 방언 연구하자"던 은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평생 열정 바친 고향 방언 연구 그동안 전국 곳곳의 방언을 찾아 누빈 신승원 소장이 특히 파고든 방언이 있다. 고향인 경북 의성의 방언이다. 고향에 가서 방언을 수집하라며 최명옥 교수가 시킨 여름방학 숙제를 시작으로, 학`석`박사 학위 모두 의성 방언을 연구해 받았다. '의성지역어의 지리방언학적 고찰' 등 저서도 여러 권이다. 방언 연구는 흔히 시`군 단위로 진행되는데, 가령 한 개 군의 몇 개 읍`면만 골라 조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신승원 소장은 오랫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의성군 18개 읍`면을 여러 차례에 걸쳐 전수 조사했다. "의성 방언은 경상도 방언의 축소판입니다. 지리적으로 경북의 중심에 있고요. 사방으로 인접한 지역과 방언을 공유하며 곳곳의 방언이 서로 다른 색깔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로 갑니까?/ ~에 갑니다."라는 말만 봐도, 의성 북쪽 지역은 인접한 안동의 '가니껴?/ 가니더.', 남쪽 지역은 붙어 있는 군위의 '가능게?/ 가누마', 서쪽 지역은 이웃한 상주의 '감니까?/ 가여.'로 나뉜다.   ◆방언 쓰는 노인은 거대한 도서관 방언 연구는 참 힘들다. 현장을 누비며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조사 과정 자체도 힘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점점 방언을 구사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신승원 소장만의 방언 조사 노하우는 이렇다. "시골은 날씨가 좋으면 다들 들에 나가 일을 하시죠. 그러니 날씨가 좋지 않을 때 가면 좋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맺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서 농사일도 거들어주면서 친해져야 합니다. 또한 기다려야 합니다. 꼬치꼬치 캐묻기만 하면 상대방은 지치기 마련이니 긴 시간 동안 인내심을 갖고 조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피조사자는 타지가 아닌 같은 고향에서 자라 결혼하고 함께 살아온 노인 부부다. 방언을 꽤 온전히 구사할 뿐 아니라, 부부끼리 서로 거들어 주며 조사에 참여한다고. 이런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고 있다. TV 방송과 스마트폰 SNS 등의 영향으로 시골도 표준어가 방언을 점차 잠식하고 있다. 그 지역 방언을 제대로 구사하는 피조사자는 이제 1개 읍`면에서 1명도 만나기 어려울 정도란다. "방언을 구사하는 동네 어르신 한 분은 거대한 도서관입니다." 신승원 소장은 방언은 향토 정신문화의 보고라고 주장한다. 방언은 그 지역 고유의 풍습, 농기구 명칭, 건축 용어 등을 빠짐없이 가리키는데, 이게 표준어로는 대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어는 한국 방언의 총화입니다. 서울말도 중부지역 방언일 뿐입니다. 풍부한 언어생활과 각 지역의 정신문화 보존을 위해 표준어와 방언은 공존해야 합니다. 함께 국어사전에 수록돼야 합니다."   황희진 기자
311    사투리 만만세 1 댓글:  조회:4729  추천:0  2016-02-06
사투리는 촌시럽다? 뭐라카노∼ 난리구만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질펀하게 터져 나오는 영화 '황산벌'과 영화 '친구2'의 장면들       사투리를 살리기 위한 노력이 지방자치단체에서 일고 있다. 사진은 안동사투리경연대회 모습.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고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 박목월 시인의 시 '사투리' 도입부다. 박 시인은 고향 말인 '오라베'란 말을 들으면 앞이 칵 막힐 정도로 좋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한국인의 문화유전자에는 특별한 사투리 감성이 녹아 있다. 요즘은 사투리 전성시대다. 스크린, 브라운관 심지어 가요 속 가사에서도 사투리가 등장하는 등 너나 할 것 없이 봇물 터지듯 사투리가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귀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 아니라 촌스럽다고 감추던 사투리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매체 속 살아나는 사투리 표준어에 밀려온 사투리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영화 '친구'에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우리 친구 아이가’ 라는 경상도 사투리 대사는 단번에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신라와 백제의 최후 일전을 그린 ‘황산벌’은 사투리 향연장이었다. “우리의 전략적인 거시기는 머시기할 때까지 갑옷을 거시기한다는 것이다”는 계백의 말과 이를 풀어보려는 신라의 ‘암호해독관’까지 나서 웃음을 자아냈다. 사투리는 이제 영화와 드라마는 물론이고 표준어를 필수처럼 여겼던 예능이나 토크쇼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걸그룹 에이핑크 정은지나 애프터스쿨 리지, 타이니지 도희 등 사투리로 일약 스타가 된 연예인도 등장했으며, 심지어 사투리를 사용하는 뮤지컬까지 나올 정도다. 또한 코미디는 물론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서 방송위원회의 지적과 시청자 단체의 줄기찬 비판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개그맨 김제동과 강호동은 인기 MC로 각광받고 있다. 표준어를 서울 토박이처럼 구사하는 경상도 출신 연예인들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랑스럽게 사투리를 쏟아내고 있다. 에둘러 말하는 다른 지역 사투리보다 직설적으로 소리치면서도 함의가 깊은 경상도 사투리에 시청자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투리는 이제 대중문화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충청도 사투리 바람이 불고 있다. 충청도 사투리는 조연의 정감있는 모습을 표현하거나 웃음코드로 활용됐지만 요즘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충청도 사투리 바람은 요리사 백종원이 몰고 왔다. 그는 공중파, 케이블 TV 등에서 "어때유? 어렵지 않쥬?"라는 등 구수하고 정감 있는 말투로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백종원 말투는 SNS 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유행어'가 되고 있다. 그동안 사투리를 쓰는 인구가 더 많음에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인물들은 거의 다 서울말을 썼다. 특히나 성공한 인물, 식자층은 모두 서울말을 쓰는 것처럼 묘사돼 마치 서울말이 성공이나 지적 수준을 나타내는 표상으로 인식돼 왔다. 경상도 사투리의 경우 지금까지 영화나 TV에서 보인 모습들은 대부분 조폭의 언어, 코미디의 소재 정도였다. 더구나 뉴스와 시사 방송의 아나운서들은 반드시 표준어로 말해야 했다. 특히 억양이 거센 경상도 사람들은 방송인이 되기 위해 언어 치료부터 받아야 했다. 아나운서들뿐만이 아니었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강의를 했다가 중도 하차했다는 학자들도 있었다. 한 방송 제작자는 "대중문화가 과거에 비해 사투리에 대해 관대해졌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높다"며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을 특정한 직업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고정관념과 아직도 벗지 못한 사투리의 부정적인 인식은 앞으로 극복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표준어 제도 도입부터 잘못된 역사 '사투리, 방언, 지역어, 시골말, 향토어, 와어(訛語), 탯말….' 사투리를 이르는 말은 다양하다. 단어마다 사투리에 대한 시각이 녹아 있다. 사투리, 방언이 서울말의 반대되는 말이라면, 와어는 사투리를 폄하하는 말이다. 탯말은 단어 자체로 사투리가 우리말의 뿌리이며 정신이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말도 표준어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사투리였다. 서울말이 사투리였다는 사실이 납득가지는 않지만 대표적인 서울 사투리가 있다. 예를 들어 '삼촌'을 '삼춘'으로, '계란'을 '겨란'으로 말하거나 '이것도 하구, 그것도 하구요’ 식의 ‘ㅜ’ 발음을 강조하는 특징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대 국문과 이익섭 명예교수는 “서울 사람들 말이 표준말이 아니었다. 표준어는 여러 지역의 중산층 사람들의 말을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고, 사전과 교과서에 실리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표준어로 정리된 것이다. 그러기에 표준어 사용 여부가 교양의 유무로 평가되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고 표준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은 현행 규정에 반기를 든 움직임도 있었다. 2006년 지역어 연구모임인 '탯말두레' 회원들은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한정한 표준어 규정과, 표준어로 교과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 기본법이 평등권과 교육권을 침해한다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2009년 재판부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 다양한 요인에 비춰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며 헌법 소원을 기각했다. 표준어 탄생은 1930년대에 조선어학회가 만든 맞춤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해방을 거치면서 학교와 관청에서 사투리를 배척하면서 사투리의 이미지는 배우지 못한 이들이 하는 말, 촌스러운 말, 우스운 말 등으로 폄하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어학계에서는 사투리를 ‘지역어’ 또는 '지역 방언'이라고 부르며 보존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표준어 중심의 어문정책으로 지방 방언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보존방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빈번한 외래어 사용도 한몫하고 있다. 이상규 경북대 교수는 거시적으로 사투리 문제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방언은 단순히 지역 언어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대변하는 상징체계다. 방언이 사라지면 지역 문화도 사라진다"면서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방언의 지리언어학' '언어 지도의 미래' 등 다수 책을 펴낸 경북대 김덕호 교수도 누구나 당당하게 사투리로 말할 수 있고 이를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사투리에는 정서와 문화, 역사 같은 소중한 유산이 녹아 있다. 연구나 사업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 사투리 보존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최재수 기자 ◇"사투리 살리야됩니더" 지역단체 보존 움직임 사라져 가는 사투리를 전승`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지역단체에서 일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도 안동을 비롯해 포항, 문경에서 사투리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안동시는 6회째 사투리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달 5일 열린 사투리경연대회에서 인기상을 수상한 최선희(47`안동시 안막동) 씨는 "직장생활 등 일상에서는 사투리를 거의 안 쓰지만 고향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며 "특히 안동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고향 사람 같아 더 친밀감이 들고 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행사를 주관한 안동문화원 이재춘 원장은 "사투리가 촌스럽고 격이 낮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경연대회를 마련했다"며 "안동 사투리에 담긴 정감과 구수함을 보존하고 전하기 위해 대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문경 문희아트홀에서 열린 제1회 문경사투리경연대회장을 찾은 이대영(48`문경시 모전동) 씨는 "서울 사는 고향 친구가 내려와서는 '서울말은 끝을 올려야 한다'고 한 말이 웃음거리가 된 적이 있다"며 "문경 말이 부끄러워 그동안 서울이나 수도권에 동화하려고 서울말 연습을 했던 게 부끄럽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최재수 기자
310    땡- 설 차례상 차리는 방법 댓글:  조회:6094  추천:0  2016-02-06
설 차례상 차리는 방법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때 차리는 차례상 차리는 법이지만 매번 익숙치않아 의견이 분분할 때가 있다. 아래의 설 차례상 차리기를 참고하세요. (참고: 지역마다 좀씩 다를 수 있음)     명절의 차례는 속절제 또는 절사라고도 부른다.   설·추석 등 민속명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약식 제사로서 봉사대상은 모든 직계 조상이며 차례는 명절날 아침에 각 가정에서 조상의 ‘신주, 지방, 사진’ 을 모시고 지낸다. 설날에는 집에서, 한식·추석에는 묘소에서 차례를 지내며 차례의 제사도 간소화 됐다. 제수와 절차는 기제에 따르지만 무축단작이라 해서 술은 한 번만 올리고 축문은 사용하지 않는다. 제사에는 보통 술, 과일(대추. 밤. 감. 배 기타), 밥, 국, 국수, 떡(편), 과자, 적(육적. 어적. 계적), 탕(육탕, 어탕), 전(육전, 어전), 포(육포, 어포), 나물, 김치 등을 제수로 올리고 있다. 또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햇과일이나 떡국, 송편 같은 것을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제수를 통틀어 청작서수라고 부른다. 이것이 주자의 ‘가례’에 수용돼 오늘날 표준 예법처럼 됐다.               차례상 차리는법 추석날 아침, 음식을 마련하고 막상 차례상을 차리려고 보니 머릿 속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조율시이(棗栗枾梨)’란 말만 떠오를 뿐 정확한 차림법을 도통 알 수가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매년 똑같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정통 차림법을 익혀둬 집안 어른께 점수를 따 보자. 차례상 차리기나 차례를 지내는 법도가 집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몇 가지 기본원칙만 소개한다. 제상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쪽은 동(東), 왼쪽은 서(西)로 구분한다.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 ▲조율시이(棗栗枾梨):서쪽에서부터 대추(조) 밤(율) 감(시) 배(이)의 순. 조율이시로 두기도 한다. ▲생동숙서(生東熟西):김치 등 날 것은 동쪽, 나물처럼 익힌 것은 서쪽. ▲어동육서(魚東肉西):생선탕은 동쪽(오른쪽), 육류탕은 서쪽(왼쪽), 중앙에 채소로 끓인 소탕을 둔다. 마찬가지로 찐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에 둔다. ▲두동미서(頭東尾西):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좌포우혜(左脯右醯):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상 왼쪽에 포(문어 명태 오징어 등)를, 오른편에 침채(김치 동치미), 숙채(불에 삶거나 쪄서 익힌 나물)를 두고 간장은 그 가운데 놓는다. ▲건좌습우(乾左濕右):마른 것은 왼쪽, 젖은 것은 오른쪽. ▲접동잔서(摺東盞西):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   만화로 차례상 차리는 법 익히기          
309    근현대 詩版圖 댓글:  조회:7556  추천:0  2016-02-06
1 시집 최남선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신문관 1908. 3 2 시집 장지연 대동시선(大東詩選) - 1917 3 시집 김억 오뇌의 무도(懊惱의 舞蹈) 광익서관 1921. 3.20 4 시집 김억 기탄자리 이문관 [평양] 1923. 4. 3 5 시집 김억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 1923. 6.30 6 시집 김억 번뇌의 무도(煩惱의 舞蹈) [改版] 조선도서㈜ 1923. 8.10 7 시집 이세기 폐허의 염군(廢墟의 焰群) 조선학생회 1923.11.28 8 시집 김억 신월(新月) 문우당 1924. 4.20 9 시집 이학인 무궁화(無窮花) 희망사 1924. 6.10 10 시집 조명희 봄 잔디밧 우에 춘추각 1924. 6.15 11 시집 박종화 흑방비곡(黑房秘曲) 조선도서㈜ 1924. 6.25 12 시집 변영로 조선의 마음 평문관(平文館) 1924. 8 13 시집 엄필진 조선동요집 창문사 1924. 8 14 시집 김억 잃어진 진주(眞珠) 평문관 1924. 8.10 15 시집 8번과 중복 16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청조사 1924.10. 8 17 시집 김기진 애련모사(愛戀慕思) 박문서관 1924.11.30 18 시집 김억 정원(丁園: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 7 19 시집 주요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12.15 20 시집 이학인 무궁화(無窮花) [再版] 희망사 1925. 1.10 21 시집 김동환 국경(國境)의 밤 한성도서㈜ 1925. 3.20 22 시집 김명순 생명(生命)의 과실(果實) 한성도서㈜ 1925. 4. 5 23 시집 최상희 빠이론 시집 문우당 1925. 7.10 24 시집 김억 봄의 노래 매문사 1925. 9.28 25 시집 김동환 승천하는 청춘(昇天하는 靑春) 신문학사 1925.12.25 26 시집 김소월 진달래꽃 매문사 1925.12.26 27 시집 김소운 출범(出帆) 우문관 1926 28 시집 유도순 혈흔(血痕)의 묵화(默華) 청조사 1926. 3. 2 29 시집 강성주 하이네 시선집 평화서점 1926. 4. 8 30 시집 김시홍 하이네 시집 영창서점 1926. 4.30 31 시집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회동서관 1926. 5.20 32 시집 조태연 조선시인선집-28文士傑作 조선통신중학관 1926.10.13 33 시조집 최남선 백팔번뇌(百八煩惱) 동광사 1926.12 34 시집 최남선 백팔번뇌(百八煩惱) 동광사 1926.12. 1 35 시집 문병찬 세계일주동요집 영창서관 1927 36 시집 김억 고통의 속박 [기탄자리 改題] 동양대학당 1927. 3. 8 37 시집 권구현 흑방(黑房)의 선물 영창서관 1927. 3.30 38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再版] 청조사 1927. 4.10 39 시집 정창원 동요집 삼지사 [경남] 1928 40 시집 최남선 시조유취 한성도서(주) 1928 41 시집 노자영 내 혼이 불탈 때 [再版] 청조사 1928. 2.16 42 시집 김시홍 빠이론 명시집 영창서관 1928. 2.22 43 시조집 최남선 시조유취(時調類聚) 한성도서 1928. 4 44 시집 조선동요연구회 조선동요선집 제1집 집박문서 1929. 1.31 45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창문당서점 1929. 3.25 46 시집 김억 안서시집(岸曙詩集) 한성도서㈜ 1929. 4. 1 47 시집 황석우 청년시인백인집 조선시단사 1929. 4. 3 4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泰文館 [동경] 1929. 7.30 49 시집 김동환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0 시집 이광수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1 시집 주요한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2 시집 황석우 자연송(自然頌) 조선시단사(朝鮮詩壇社) 1929.11 53 시집 황석우 자연송(自然頌) 조선시단사 1929.11.19 54 시집 김영희 고향의 떠나서 [再版] 성문관서점 1930. 5.27 55 시집 김동명 나의 거문고 신생사 1930. 6.10 56 시집 주요한 봉사꽃(鳳仙花) 세계서워 1930.10.20 57 시집 유도순 혈흔(血痕)의 묵화(默華) 영창서관 1931. 2. 5 58 시집 유엽 님께서 나를 부르시니 자가본 1931. 2. 5 59 시집 권환 카프시인집 집단사 1931.11.27 60 시집 카프문학부 카프시인집 집단사 1931.11.27 61 시집 양주동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2.26 62 시집 김기주 조선신동요선집-제1집 도광서점 [평양] 1932. 3.10 63 시집 이진언 행정의 우수(行程의 憂愁) 한성도서㈜ 1932. 4.12 64 시집 이은상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 1932. 4.18 65 시집 윤석중 윤석중동요선(尹石重童謠選) 신구서림 1932. 7.20 66 시집 정영수 광야의 애상 자가본 1932. 9.10 67 시집 김성실 찬송의 약동(躍動) 한성도서㈜ 1932.11.20 6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선 岩波書店 [동경] 1933. 1.15 69 시집 김소운 언문조선구전민요집 [일어] 第一書房 [동경] 1933. 1.20 70 시집 허수만 북풍기행시집 신진문예사 1933. 2.28 71 시집 윤석중 잃어버린 댕기 계수나무會 1933. 4.23 72 시집 박기하 색진주(色眞珠) 활문사 1933. 4.25 73 시집 김태오 설강동요집(雪崗童謠集) 한성도서㈜ 1933. 5.18 74 시집 김명수 홍색의 구적(紅色の口笛) 문화㈜ [원산] 1933. 6.25 75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일어] 岩波書店 [동경] 1933. 8. 5 76 시집 모윤숙 빛나는 지역 조선창문사 1933.10.15 77 시집 장정심 주의 승리 [시조집] 한성도서㈜ 1933.10.23 78 시집 이하윤 실향의 화원(失香의 花園) 시문학사 1933.12. 5 79 시집 이영춘 청춘의 하소연 동양당서점 [신의주] 1934 80 시집 박귀송 애송시집(哀誦詩集) 자가본 1934. 2.13 81 시집 장정심 금선(琴線) [시조집] 한성도서㈜ 1934. 7.24 82 시집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再版] 한성도서㈜ 1934. 7.30 83 시집 전한촌 무궤열차(無軌列車) 동경토민사 1934. 8. 1 84 시집 김억 망우초(忘憂草) 한성도서㈜ 1934. 9.10 85 시집 황순원 방가(放歌) 동경학생예술좌문예부 1934.11.25 86 시집 장수철 전망도(展望圖) [평양] 발행 1935 87 시집 주요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학사 1935 88 시집 김희규 님의 심금(心琴) 한성도서㈜ 1935. 2. 1 89 시집 백용수 초립(草笠) 자가본 1935. 5.10 90 시집 박일권 나그네 조선문학사 1935. 7. 5 91 시집 정지용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시문학사 1935.10.27 92 시집 김영랑 영랑시집(永郞詩集) 시문학사 1935.11. 5 93 시집 오신애 망양정(望洋亭) [시조집] 김광용사 [城津] 1935.12. 8 94 시집 백석 사슴 [경성] 자가본 1936. 1.21 95 시집 오일도 을해명시선집(乙亥名詩選集) 시원사 1936. 3.15 96 시집 김동환 조선명작선집-시가편 삼천리사 1936. 3.27 97 시집 百瀨千尋 언문조선동요선집 [일어] ホトナム社 [동경] 1936. 4.10 98 시집 황순원 골동품(骨董品) 자가본 1936. 5.29 99 시집 변영태 Song's Form Korea 자가본 1936. 6.10 100 시집 이극로 한얼 노래 대종교총본사 [만주] 1936. 6.10 101 시집 장재성 말하는 침묵(沈默) 자가본 [동경] 1936. 7. 7 102 시집 김기림 기상도(氣象圖) 자가본 1936. 7. 8 103 시집 김인걸 세월(歲月) 故鄕社 [동경] 1936. 7. 9 104 시집 신명균 조선문학전집-시조전집 중앙인서관 1936. 8. 5 105 시집 百瀨千尋 동요조선 조선동요보급회 1936.11.20 106 시집 이서해 이국녀(異國女) 한성도서㈜ 1937. 2.14 107 시집 윤곤강 대지(大地) 풍림사 1937. 4.20 108 시집 박영희 회월시초(懷月詩抄) 조선문화사 1937. 5.15 109 시집 이용악 분수령(分水嶺) 三文社 [동경] 1937. 5.30 110 시집 임시월 새로운 감정(感情) 시집간행회 [동경] 1937. 7. 8 111 시집 오장환 성벽(城壁) 풍림사 1937. 8.10 112 시집 임학수 석류(石榴) 자가본 [개성] 1937. 8.10 113 시집 이상필 잔몽(殘夢) 삼문사 1937. 9. 5 114 시집 정희준 흐린날의 고민(苦憫) 교육정보사 1937.11.25 115 시집 이찬 대망(待望) 풍림사 1937.11.30 116 시집 허이복 무명초(無名草) 치성서원 [鏡城] 1937.12.25 117 시집 장만영 양(羊) 자가본 1937.12.30 118 시집 조벽암 향수(鄕愁) 이문당서점 1938 119 시집 노천명 산호림(珊瑚林) 한성도서 1938. 1. 1 120 시집 이해문 바다의 묘망(渺茫) 시인춘추사 1938. 1.10 121 시집 조동진 세림시집(世林詩集) 시원사 1938. 1.25 122 시집 김동명 파초(芭蕉) 玄仁圭 발행 [함흥] 1938. 1.30 123 시집 임화 현해탄(玄海灘) 동광당서점 1938. 2.29 124 시집 조중흡 향수(鄕愁) 이문당서점 1938. 3. 1 125 시집 조선일보출판부 현대조선문학전집-시가집 조선일보출판부 1938. 4. 1 126 시집 노자영 백공작(白孔雀) 미모사서점 1938. 5. 2 127 시집 박세영 산제비 중앙인서관 1938. 5.20 128 시집 최경섭 풍경(風景) 자가본 1938. 5.23 129 시집 윤곤강 만가(輓歌) 동광당서점 1938. 6.10 130 시집 최재서 해외서정시집 인문사 1938. 6.15 131 시집 김광섭 동경(憧憬) 대동인쇄소 1938. 7.15 132 시집 이찬 분향(焚香) 한성도서㈜ 1938. 7.20 133 시집 임학수 팔도풍물시집 인문당 1938. 9.30 134 시집 김대봉 무심(無心) 맥사 1938.10.17 135 시집 이용악 낡은 집 三文社 [동경] 1938.11.10 136 시집 방응모 조선아동문학독본 조선일보사 1938.12. 1 137 시집 최병량 능금 자가본 [동경] 1938.12.16 138 시집 장정심 금선(琴線) [시조집] 경천애인사 1939 139 시집 윤석중 윤석중동요선(尹石重童謠選) 박문서관 1939. 1.25 140 시집 임학수 후조(候鳥) 한성도서㈜ 1939. 1.25 141 시집 임화 현대조선시인선집 학예사 1939. 1.25 142 시집 이하윤 물레방아 청색지사 1939. 1.30 143 시집 이응수 김립시집(金笠詩集) 학예사 1939. 2.20 144 시집 이하윤 현대서정시선 박문서관 1939. 2.28 145 시집 김태오 초원(草原) 청색지사 1939. 3.30 146 시집 임화 조선민요선 학예사 1939. 3.31 147 시집 한죽송 방아 찧는 처녀 한성도서㈜ 1939. 4.20 148 시집 김동환 해당화(海棠花) 삼천리사 1939. 5 149 시집 김상용 망향(望鄕) 문장사 1939. 5. 1 150 시집 박용철 박용철 전집 Ⅰ 시문학사 1939. 5. 5 151 시집 임학수 현대영시선(現代英詩選) 학예사 1939. 5.20 152 시집 허이복 박꽃 중앙인서원 1939. 5.25 153 시집 함윤수 앵무새 자가본 [동경] 1939. 6. 9 154 시집 오장환 헌사(獻詞) 남만서방 1939. 7.20 155 시집 윤곤강 동물시집(動物詩集) 한성도서㈜ 1939. 7.20 156 시집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남만서방 1939. 8. 1 157 시집 이병기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 문장사 1939. 8.15 158 시집 김기림 태양의 풍속(風俗) 학예사 1939. 9. 6 159 시집 임학수 전선시집(戰線詩集) 인문사 1939. 9.15 160 시집 정호승 모밀꽃 조선문학사 1939. 9.30 161 시집 신귀현 역대조선여류시가선 학예사 1939.10. 8 162 시집 김소운 구전민요선 박문서관 1939.10.15 163 시집 이광수 춘원걸작선집 제2권-隨筆과 詩歌 영창서관 1939.10.15 164 시집 신석정 촛불 인문사 1939.11.28 165 시집 장만영 축제(祝祭) 인문사 1939.11.30 166 시집 김억 소월시초(素月詩抄) [편집] 박문서관 1939.12.30 167 시집 유치환 청마시초(靑馬詩抄) 청색지사 1939.12.30 168 시집 김진세 신찬시인집(新撰詩人集) [공저] 시학사 1940 169 시집 박귀송 세기(世紀)의 예언(豫言) 자가본 1940. 2. 1 170 시집 심이랑 분이(紛伊) 한성도서㈜ 1940. 2. 1 171 시집 박남수 초롱불 자가본 [동경] 1940. 2. 5 172 시집 이광수 춘원시가집(春園詩歌集) 박문서관 1940. 2. 5 173 시집 시학사 신찬시인집(新撰詩人集)-32人集 시학사 1940. 2.18 174 시집 박팔양 여수시초(麗水詩抄) 박문서관 1940. 3.30 175 시집 김기수 동녀상(童女像) [일어] 詩洋社 [동경] 1940. 4. 5 176 시집 안확 시조시학(時調詩學) 조광사 1940. 4.25 177 시집 김소운 우유빛 구름(乳色の雲) 하출서방 1940. 5.25 178 시집 김소운 구전동요선 박문서관 1940. 5.30 179 시집 이찬 망양(茫洋) 박문서관 1940. 6.15 180 시집 김동일 흐름 奬學社 [동경] 1940. 7.10 181 시집 윤석중 어깨동무 자가본 1940. 7.20 182 시집 윤곤강 빙화(氷華) 한성도서㈜ 1940. 8. 1 183 시집 김남인 청색마(靑色馬) [김남인·김해강 공저] 명성출판사 1940. 8.30 184 시집 김해강 청색마(靑色馬) [김남인·김해강 공저] 명성출판사 1940. 8.30 185 시집 이기열 낙서(落書) 崔泳柱 발행 1940. 8.30 186 시집 김달진 청시(靑枾) 청색지사 1940. 9. 2 187 시집 함윤수 은화식물지(隱花植物誌) 장학사 1940.12.26 188 시집 박노춘 여정(旅程) 창문사 1940.12.28 189 시집 강소천 호박꽃 초롱 박문서관 1941 190 시집 김소월 소월시초(素月詩抄) 박문서관 1941 191 시집 허용봉 산백합(山百合) - 1941 192 시집 강홍운 노방초(路傍草) 초원사 1941. 2 193 시집 서정주 화사집(花蛇集) 남만서고 1941. 2 194 시집 임춘길 화병(花甁) 이상오 발행 1941. 5 195 시집 김용호 향연(饗宴) 동경 발행 1941. 6 196 시집 이가종 노석(老析) 남창서관 1941. 6 197 시집 김억 안서시집(安曙詩集) 박문서관 1941. 7 19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新潮文庫刊行會 [동경] 1941. 7. 5 199 시집 이응수 김립시집(金笠詩集) [再版] 한성도서㈜ 1941. 7. 8 200 시집 정지용 백록담(白鹿潭) 문장사 1941. 9 201 시집 김용제 아세아시집 [일어] 대동출판사 1942 202 시집 윤덕조 월음산(月陰山) 河兆書房 [동경] 1942 203 시집 한식 고려촌(高麗村) [일어] 汎東洋社 [동경] 1942 204 시집 김동환 해당화(海棠花) [再版] 대동아사 1942. 5 205 시집 김조규 재만조선시인집 예문사 [간도] 1942.10 206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前期 興風館 [동경] 1943 207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中期 興風館 [동경] 1943 208 시집 김억 동심초(同心草) 조선출판사 1943 209 시집 김용제 어동정(御東征) [일어] 문성당 1943 210 시집 김종한 설백집(雪白集) [일어] 박문서관 1943 211 시집 김종한 수유한지가(垂乳恨之歌) 인문사 1943 212 시집 김종한 たらちねのうた(부모의 노래) [일어] 인문사 1943 213 시집 도구량 조선시가집 국민시가발행소 1943 214 시집 松村紘一 手に手を(손에 손을) [일어] 박문서관 1943 215 시집 김경수 꽃과 바다 형설문화사 1943. 3 216 시집 김용제 산무정 대신문화사 1943. 3 217 시집 김춘수 제일시집 문예사 1943. 3 218 시집 박경종 꽃밭 중앙문화사 1943. 3 219 시집 송욱 유혹 사상계사 1943. 3 220 시집 이강수 남창집(南窓集) 자가본 1943. 3 221 시집 이효상 인생(人生) 대건출판사 1943. 3 222 시집 조영암 우남찬가 수문각 1943. 3 223 시집 권환 자화상(自畵像) 조선출판사 1943. 8 224 시집 김억 꽃다발-조선여류漢詩선집 박문서관 1944 225 시집 김억 백락천시선(白樂天詩選) 한성도서㈜ 1944 226 시집 김억 야광주(夜光珠) 조선출판사 1944 227 시집 김억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2권 [양주동·김억] 한성도서㈜ 1944 228 시집 김용제 보도시첩(報道詩帖) [일어] 동도서적㈜ 1944 229 시집 茂山戶姸 호연가집(戶姸歌集) 進明고등여학교 1944 230 시집 박일연 박일연시초(朴一淵詩抄) 화판 등사본 1944 231 시집 박종화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1권 [이병기·박종화] 한성도서㈜ 1944 232 시집 양주동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2권 [양주동·김억] 한성도서㈜ 1944 233 시집 이병기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1권 [이병기·박종화] 한성도서㈜ 1944 234 시집 조선문인보국회 결전시집(決戰詩集) 동도서적㈜ 1944 235 시집 佐藤信重 적심부(赤心賦) 조선문인보국회 1944 236 시집 최상수 현대동요·민요집 대동인서관 1944 237 시집 차원흥 전원(田園) 한성도서㈜ 1944. 3 238 시집 권환 윤리(倫理) 성문당서점 1944.12 239 시집 강소천 꿈을 찍는 사진관 남향문화사 1945 240 시집 김기한 제사(祭祀) 安東기독청년회 1945 241 시집 김성애 불별 - 1945 242 시집 김성애 사랑의 진주(眞珠) - 1945 243 시집 김성애 소년동요집 이문당 1945 244 시집 김성애 아동낙원(兒童樂園) 이문당 1945 245 시집 김성애 장미속에 숨은 별 이문당 1945 246 시집 김성애 초엽(草葉) - 1945 247 시집 김성애 한 송이 백합(百合) 창문사 1945 248 시집 김억 금모래 - 1945 249 시집 김영일 다람쥐 고려서적회사 1945 250 시집 박팔양 만주시인집 - 1945 251 시집 유운경 봄과 사랑 영창서관 1945 252 시집 이태환 조선미(朝鮮美) [서울] 발행 1945 253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중앙문화협회 1945 254 시집 진금도 독립기념 애국시 경성서광사 1945 255 시집 최용학 홍산시집(弘山詩集) 신조선사 [부산] 1945 256 시집 則武三雄 풍영집(風詠集) [일어] 인문사 1945 257 시집 노천명 창변(窓邊) 매일신보사 1945. 2 258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중앙문화협회 1945.12 259 시집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再版] 정음사 1946 260 시집 김동석 길 정음사 1946 261 시집 김목랑 흰나비 김목랑시집간행회 1946 262 시집 심인섭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3 시집 오덕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4 시집 오장환 에세-닌 시집 동향사 1946 265 시집 윤석중 초생달 박문출판사 1946 266 시집 이동주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7 시집 정철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8 시집 정태진 아름다운 강산 신흥국어연구회 1946 269 시집 정태진 조선동요전집-현대편 신성문화사 1946 270 시집 조선청년문학가협 날개-해방1주년기념詞華集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경남본부 [부산] 1946 271 시집 최동순 고압선(高壓線) 강원문화협회 1946 272 시집 한인현 문들레 제일출판사 1946 273 시집 이금필 백합화(百合花) 연문사 [부산] 1946. 1 274 시집 박세영 산제비 [再版] 별나라사 1946. 2 275 시집 박아지 심화(心火) 우리문학사 1946. 3 276 시집 조선문학가동맹시 삼일기념시집 건설출판사 1946. 3 277 시집 김기림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4 278 시집 박세영 횃불-해방기념시집 우리문학사 1946. 4 279 시집 박종화 청자부(靑磁賦) 고려문화사 1946. 5 280 시집 정지용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再版] 건설출판사 1946. 5 281 시집 박두진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2 시집 박목월 동시집 조선아동회 [대구] 1946. 6 283 시집 박목월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4 시집 신석초 석초시집(石艸詩集) 을유문화사 1946. 6 285 시집 정지용 지용시선(芝溶詩選) 을유문화사 1946. 6 286 시집 조지훈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7 시집 오장환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7 288 시집 권환 동결(凍結) 건설출판사 1946. 8 289 시집 김경탁 얼 빙염암 1946.10 290 시집 김용득 요람(搖藍) 자가본 1946.10 291 시집 박목월 초록별 조선아동문화협회 1946.10 292 시집 이설주 들국화 대구민고사 1946.10 293 시집 이육사 육사시집(陸史詩集) 서울출판사 1946.10 294 시집 정지용 백록담(白鹿潭) [再版] 백양당 1946.10 295 시집 김광현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6 시집 김상훈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7 시집 박산운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8 시집 유진오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9 시집 이병철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300 시집 김수성 불사른 일기 [烏山] 발행 1947 301 시집 김억 이조규수한시선집(李朝閨秀漢詩選集) 동인문화사 1947 302 시집 문화전선사 전초시인(前哨詩人)-22人集 문화전선사 1947 303 시집 박태보 석금(石琴) 1 석금동인사 1947 304 시집 박팔양 박팔양시집(朴八陽詩集) 문화전선사 1947 305 시집 안양문학동인회 청포도(靑葡萄) 安養문학동인회 1947 306 시집 윤계현 청과집(靑顆集) 동화사 1947 307 시집 윤영춘 현대중국시선 청년사 1947 308 시집 임인수 어디 만큼 왔나 동지사 아동원 1947 309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再版] 중앙문화협회 1947 310 시집 청파아 조국(祖國) 화성당서점 [수원] 1947 311 시집 표일호 검정다리 - 1947 312 시집 한덕희 북소리 시회 동백(冬栢) 1947 313 시집 황윤섭 규포시집(葵圃詩集) 조선아동회 [대구] 1947 314 시집 방기환 녹야(綠野) 자가본 1947. 1 315 시집 양상경 출범(出帆) 자가본 1947. 1 316 시집 오장환 성벽(城壁) [再版] 아문각 1947. 1 317 시집 피천득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1 318 시집 김수돈 소연가(召燕歌) 문예신문사 1947. 2 319 시집 김억 먼동이 틀 제 백민문화사 1947. 2 320 시집 모윤숙 옥비녀 동백사 1947. 2 321 시집 임화 찬가(讚歌) 백양당 1947. 2 322 시집 서창근 소년시집(少年詩集) 서울대예과문예부 1947. 3 323 시집 조선문학가동맹시 연간조선시집-1946년판 조선문학가동맹 1947. 3 324 시집 김상옥 초적(草笛) [시조집] 수향서간 1947. 4 325 시집 설정식 종(鐘) 백양당 1947. 4 326 시집 이용악 오랑캐꽃 아문각 1947. 4 327 시집 임화 회상시집(回想詩集) 건설출판사 1947. 4 328 시집 김광균 기항지(寄港地) 정음사 1947. 5 329 시집 김상훈 대열(隊列) 백우서림 1947. 5 330 시집 서창근 어머님의 모습 삼천리서관 1947. 5 331 시집 이원수 종달새 새동무사 1947. 5 332 시집 조운 조운시조집(曺運時調集) 조선사 1947. 5 333 시집 김수환 성황당 고개 문학연구소 1947. 6 334 시집 김윤국 그 집 앞 진흥정판사 1947. 6 335 시집 오장환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6 336 시집 유치환 생명의 서(書) 행문사 1947. 6 337 시집 신석정 슬픈 목가(牧歌) 낭주문화사 1947. 7 338 시집 김동명 삼팔선(三八線) 문륭사 1947. 9 339 시집 김원룡 내 고향 새동무사 1947. 9 340 시집 여상현 칠면조(七面鳥) 정음사 1947. 9 341 시집 이병기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 [再版] 백양당 1947. 9 342 시집 박승걸 박승걸시집(朴勝杰詩集) 상호출판사 1947.11 343 시집 김용호 사랑의 서정시 박영사 1947.12 344 시집 이희승 박꽃 백양당 1947.12 345 시집 김용경 구전婦謠 베틀 노래집 경기공립상업학교 1948 346 시집 박문서 소백산(小白山) 백우사 1948 347 시집 윤주영 상형문자(象形文字) 철야당서점 [대구] 1948 348 시집 윤태웅 하이네 연애(戀愛) 시정음사 1948 349 시집 이하윤 불란서 시선 수선사 1948 350 시집 임학수 초생달 [타고르 作] 문호사 1948 351 시집 정음사 조선민요집 정음사 1948 352 시집 고영진 사랑 물레 평문사 1948. 1 353 시집 김동명 하늘 문륭사 1948. 1 354 시집 김소월 소월민요집(素月民謠集) 산호장 1948. 1 355 시집 설정식 포도(葡萄) 정음사 1948. 1 356 시집 유진오 창(窓) 정음사 1948. 1 357 시집 유진오 창(窓) 정음사 1948. 1 358 시집 윤곤강 피리 정음사 1948. 1 359 시집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1 360 시집 이원희 옛터에 다시 오니 평화도서㈜ 1948. 1 361 시집 정인보 담원시집(園詩集) 을유문화사 1948. 2 362 시집 김기림 새 노래 아문각 1948. 4 363 시집 서정주 귀촉도(歸蜀途) 선문사 1948. 4 364 시집 임학수 팔도풍물시집 [再版] 백민문화사 1948. 4 365 시집 김용호 해마다 피는 꽃 시문학사 1948. 6 366 시집 장영창 어느 지역 태양당 1948. 6 367 시집 윤곤강 살어리 시문학사 1948. 7 368 시집 윤영춘 무화과(無花果) 숭문사 1948. 7 369 시집 임학수 필부(匹夫)의 노래 고려문화사 1948. 7 370 시집 조벽암 지열(地熱) 아문각 1948. 7 371 시집 신동집 대낮 교문사 1948. 8 372 시집 정진업 풍장(風葬) 시문학사 1948. 8 373 시집 최석두 새벽길 조선사 1948. 8 374 시집 김기림 기상도(氣象圖) [再版] 산호장 1948. 9 375 시집 김상민 옥문이 열리던 날 신학사 1948. 9 376 시집 김춘수 구름과 장미 행문사 1948. 9 377 시집 유치환 울릉도(鬱陵島) 행문사 1948. 9 378 시집 이설주 방랑기(放浪記) 계몽사서점 1948. 9 379 시집 김도성 고란초 문영사 1948.10 380 시집 김상훈 가족(家族) 백우사 1948.10 381 시집 박종옥 상원시조집(桑園時調集) 고려문화사 1948.10 382 시집 장만영 유년송(幼年頌) 산호장 1948.10 383 시집 설정식 제신(祭神)의 분노(憤怒) 신학사 1948.11 384 시집 윤석중 굴렁쇠 수선사 1948.11 385 시집 이준 이준시집(李俊詩集) 지문각 1948.11 386 시집 권태응 감자꽃 글벗집 1948.12 387 시집 김억 민요시집(民謠詩集) 한성도서㈜ 1948.12 388 시집 이정기 발자욱 대한족청금천군단 1948.12 389 시집 이효상 산(山) 조선출판사 1948.12 390 시집 김영일 소년기마대 - 1949 391 시집 김종욱 강한 사람들 민교사 1949 392 시집 모윤숙 렌의 애가 청구문화사 1949 393 시집 박민 산역의 밤(山驛의 밤) 문예신문사 [부산] 1949 394 시집 박연주 매원(梅苑) [박연주·이돈근 공저] 順天梅中문예부 1949 395 시집 박영종 현대동요선 한길사 1949 396 시집 성경록 조선의 민요 [성경록·장사훈] 국제음악문화사 1949 397 시집 안확 시조시학(時調詩學) [再版] 교문사 1949 398 시집 윤복구 게시판(揭示板) 중앙문화협회 1949 399 시집 이돈근 매원(梅苑) [박연주·이돈근 공저] 順天梅中문예부 1949 400 시집 장사훈 조선의 민요 [성경록·장사훈] 국제음악문화사 1949 401 시집 정운삼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1집 동대학생문화실 1949 402 시집 조문재 백양(白羊) 문화신문사 [김천] 1949 403 시집 천일편집부 제일시집 [天一 5호 부록] 한국상업은행 1949 404 시집 최기우 동방의 빛 동진문화사 1949 405 시집 최동환 여명(黎明) [김천] 발행 1949 406 시집 최자현 형상(形象)-7인시집 시문학사 1949 407 시집 김상옥 고원의 곡(故園의 曲) 성문사 1949. 1 408 시집 김철수 추풍령(秋風嶺) 산호장 1949. 1 409 시집 이용악 현대시인전집 1 동지사 1949. 1 410 시집 김병호 황야(荒野)의 규환(叫喚) 평화당 1949. 3 411 시집 김상원 백로(白鷺) 구고산방 1949. 3 412 시집 노천명 현대시인전집 2 동지사 1949. 3 413 시집 이상 이상선집(李箱選集) 백양당 1949. 3 414 시집 정훈 머들령 계림사 1949. 3 415 시집 고영진 제삼시집(第三詩集) 평문사 1949. 4 416 시집 김경린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17 시집 김수영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18 시집 김평옥 몽로(夢路) 국립서울대학신문사 1949. 4 419 시집 박인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0 시집 양병식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1 시집 임학수 조선문학전집 10-시집 한성도서㈜ 1949. 4 422 시집 임호권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3 시집 박두진 해 청만사 1949. 5 424 시집 유치환 청령일기(日記) "백자사, 행문사" 1949. 5 425 시집 김상옥 이단의 시(異端의 詩) 성문사 1949. 6 426 시집 이범혁 표정(表情) 국학연구소 1949. 6 427 시집 심훈 그날이 오면 한성도서㈜ 1949. 7 428 시집 조병화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 산호장 1949. 7 429 시집 윤복진 꽃초롱 별초롱 아동예술원 1949. 8 430 시집 김남종 남종시조집(南鍾時調集) 자가본 1949.10 431 시집 김영랑 영랑시선(永郞詩選) 중앙문화협회 1949.10 432 시집 이설주 잠자리 육생사 1949.10 433 시집 박거영 바다의 합창(合唱) 시문학사 1949.11 434 시집 김광섭 마음 중앙문화협회 1949.12 435 시집 고영진 유어(柳魚) - 1950 436 시집 김송월 은방울 - 1950 437 시집 김호 수액(樹液) 육성사 1950 438 시집 박승훈 외별 시집 - 1950 439 시집 서태관 황우(黃牛) - 1950 440 시집 김소월 진달래꽃 숭문사 1950. 2. 5 441 시집 서정률 빛 잃은 태양(太陽) 행문사 1950. 2.10 442 시집 서정주 현대조선명시선 온문사 1950. 2.15 443 시집 김영일 다람쥐 고려서적㈜ 1950. 2.20 444 시집 김상용 망향(望鄕) 이대출판부 1950. 3. 1 445 시집 김광균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6 시집 신석정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7 시집 유치환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8 시집 장만영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9 시집 서정주 작고시인선 정음사 1950. 3.13 450 시집 김기림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1 시집 김영랑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2 시집 노천명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3 시집 정지용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4 시집 김춘수 늪 문예사 1950. 3.20 455 시집 박두진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6 시집 박목월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7 시집 서정주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8 시집 조지훈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9 시집 김태홍 땀과 장미와 시 흥민사 1950. 4.10 460 시집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慰安) 산호장 1950. 4.13 461 시집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改版] 영창서관 1950. 4.20 462 시집 전상렬 피리소리 철야당서점 1950. 4.30 463 시집 윤석중 아침까지 산아방 1950. 5. 5 464 시집 박목월 현대명작동요선 산아방 1950. 6.10 465 시집 김규동 애국시 33人集 문성사 1951 466 시집 서덕출 봄 편지 대한문화사 1951 467 시집 박병규 조국의 노래 [박병규·박종선 공저] 청구출판사 [대구] 1951. 1. 1 468 시집 박종선 조국의 노래 [박병규·박종선 공저] 청구출판사 [대구] 1951. 1. 1 469 시집 이윤수 전선시첩(戰線詩帖) 2 문총경북지대 1951. 1.20 470 시집 이동주 혼야(婚夜) 호남공론사 1951. 3.15 471 시집 조영암 시산을 넘고 혈해를 건너(屍山을 넘고 血海를 건너) 정음사 1951. 3.30 472 시집 모윤숙 풍랑(風浪) 문성당 1951. 4.30 473 시집 구상 구상시집(具常詩集) 청구출판사 1951. 5.10 474 시집 이영순 연희고지(延禧高地) 정음문화사 1951. 6. 1 475 시집 이효상 바다 대건출판사 1951. 6. 1 476 시집 김상기 창파(滄波)-久遠의 香氣 경남경찰국 1951. 6. 7 477 시집 오종규 닭울음 학생시우회 1951. 7. 1 478 시집 김춘수 기(旗) 문예사 1951. 7.25 479 시집 박거영 악의 노래(惡의 노래) 국제신보사출판국 1951. 8.25 480 시집 김세익 자류(榴) 대한문화사 1951. 9 481 시집 이상화 상화(尙火)와 고월(古月) 청구출판사 1951. 9. 5 482 시집 이장희 상화(尙火)와 고월(古月) 청구출판사 1951. 9. 5 483 시집 유치환 보병과 더불어 문예사 1951. 9.11 484 시집 박양 별과 나무 밑에서 남광문화사 1951.10. 5 485 시집 이용상 아름다운 생명 시문학사 1951.10.15 486 시집 서창수 호롱 청구문화사 [대구] 1951.10.27 487 시집 구경서 폭음(爆音) 삼익출판사 1951.12 488 시집 고원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489 시집 공군문고 창궁(蒼穹) 공군본부정훈감실 1952 490 시집 김동흠 금조(金鳥)Ⅰ[김동흠·신정한 공저] 삼일신문사 1952 491 시집 김상길 다도해(多島海) - 1952 492 시집 김상옥 석류꽃 현대사 1952 493 시집 김해성 해몽 중앙출판사 1952 494 시집 김호 수액(樹液) 박문출판사 1952 495 시집 문총구국대 전선시첩(戰線詩帖) 국방부정훈국 1952 496 시집 박종화 월탄문학선(月灘文學選) 수도문화사 1952 497 시집 설창수 개폐교 영남문학회 1952 498 시집 설창수 삼인집 [설창수·이영순 외] 영남문학회 1952 499 시집 신정한 금조(金鳥)Ⅰ[김동흠·신정한 공저] 삼일신문사 1952 500 시집 이경순 생명부 영남문학회 1952 501 시집 이노인 구원 한국산경연구소 1952 502 시집 이덕성 조락의 모닥불 [정문원·이덕성 공저] 문총사 [부산] 1952 503 시집 이민영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504 시집 이영순 삼인집 [설창수·이영순 외] 영남문학회 1952 505 시집 이한직 한국시집-上 대양출판사 1952 506 시집 장호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507 시집 정남수 연비(燕飛)동인시집 燕飛동인 1952 508 시집 정문원 조락의 모닥불 [정문원·이덕성 공저] 문총사 [부산] 1952 509 시집 조영암 운남찬가(雲南讚歌) 동서문화사 1952 510 시집 하재린 흰버선 자가본 1952 511 시집 해군해병군목 포도원(葡萄園) 해군해병군목 1952 512 시집 효안동인 종(鐘) 曉岸동인회 1952 513 시집 김송월 님의 노래 괴산문화사 1952. 3 514 시집 김용호 푸른 별 남광문화사 1952. 3 515 시집 김종문 벽(壁) 문헌사 1952. 3 516 시집 박일송 주마간산(走馬看山) 노농신보사 1952. 4 517 시집 이설주 미륵(彌勒) 춘추사 1952. 5 518 시집 김도성 갈대 문원사 1952. 7 519 시집 이종두 영(嶺) 세문사 1952. 7 520 시집 김관식 낙화집(落花集) 창조사 1952. 8 521 시집 조병화 패각의 침실(貝殼의 寢室) 정음사 1952. 8 522 시집 김상화 계산기가 놓여 있는 진찰실 국제신보사 1952. 9 523 시집 장호강 총검부(銃劍賦) 삼성출판사 1952. 9 524 시집 문도채 쌈지 태문당서점 1952.10 525 시집 이영순 지령(地靈) 문총사 1952.10 526 시집 김용팔 폐허(廢墟) 광지사 1952.11 527 시집 박양균 두고 온 지표(指標) 춘추사 1952.11 528 시집 조지훈 풀잎 단장(斷章) 창조사 1952.11 529 시집 김용호 남해찬가(南海讚歌) 남광문화사 1952.12 530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 창원사 1953 531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2집 동대학생문화실 1953 532 시집 박용묵 신애보(信愛譜) 은총문화협회 1953 533 시집 이규남 숙명의 성좌(星座) 金龍도서㈜ 1953 534 시집 이성환 황혼가(黃昏歌) - 1953 535 시집 이중한 푸른 하늘과 더불어 청춘사 1953 536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1-불란서 정양사 1953 537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2-독일 정양사 1953 538 시집 장태현 담수어(淡水魚) 민계사 1953 539 시집 해군본부정훈감실 한국해양시집 해군본부정훈감실 1953 540 시집 호남동인 시와 산문 항도출판사 [목포] 1953 541 시집 김남조 목숨 수문관 1953. 1 542 시집 김상옥 의상(衣裳) 현대사 1953. 2 543 시집 김수돈 우수의 황제(憂愁의 皇帝) 대한문화사 1953. 2 544 시집 박기원 한화집(寒火集) [박기원·최재형 공저] 현대사 1953. 2 545 시집 최재형 한화집(寒火集) [박기원·최재형 공저] 현대사 1953. 2 546 시집 한무학 새로운 초의 속도(秒의 速度) 세계평론사 1953. 2 547 시집 김형기 용사의 무덤 동서문화사 1953. 3 548 시집 노영란 화려한 좌표 자유장 1953. 3 549 시집 노천명 별을 쳐다보며 희망출판사 1953. 3 550 시집 박일송 목련화(木蓮花) 한국문화사 1953. 3 551 시집 함석헌 수평선 너머 삼협문화사 1953. 3 552 시집 김영삼 푸른 섬 동문사서점 1953. 4 553 시집 김춘수 인인(隣人) 문예사 1953. 4 554 시집 유근주 투혼에 산다 건국신보사 1953. 4 555 시집 이설주 유수곡(流水曲) 춘추사 1953. 4 556 시집 김오남 김오남시조집(金午男時調集) 성동공업고등학고 1953. 5 557 시집 황양수 문(門) 남광문화사 1953. 5 558 시집 김형기 이등병 동서문화사 1953. 6 559 시집 서정주 흑산호(黑珊瑚) 우생출판사 1953. 6 560 시집 이원섭 향미사(響尾蛇) 문예사 1953. 6 561 시집 정진업 김해평야(金海平野) 남지문화사 1953. 6 562 시집 한하운 한하운시초(韓何雲詩抄) [再版] 정음사 1953. 6 563 시집 김종문 불안한 토요일 보문각 1953. 7 564 시집 박두진 오도(午禱) 영웅출판사 1953. 7 565 시집 이상로 귀로(歸路) 백조사 1953. 7 566 시집 이한직 청룡(靑龍) 해병사정훈감실 1953. 8 567 시집 서정봉 소정시초(素汀詩抄) 현대사 1953. 9 568 시집 노일영 호롱불 동해당 1953.12 569 시집 가람동인회 새벽 사화집 가람동인회 1954 570 시집 경기여중고 매훈(梅薰) 경기여중고 1954 571 시집 고석규 달과 암초 [김재섭·고석규 공저] 가람동인회 1954 572 시집 김선양 정조(靜潮) 문아사 1954 573 시집 김재섭 달과 암초 [김재섭·고석규 공저] 가람동인회 1954 574 시집 김해성 풍토(風土) 풍토동인회 1954 575 시집 김홍섭 무명(無明) 통문관 1954 576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3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4 577 시집 박경종 꽃밭 중앙문화사 1954 578 시집 박화목 초롱불 인간사 1954 579 시집 서울사범학교 옹달샘 서울사범학교 1954 580 시집 송욱 유자(誘恣) 사상계사 1954 581 시집 신작품동인회 신작품(新作品) 자유문학사 1954 582 시집 양정고 계원(桂苑) 양정고 1954 583 시집 양주동 시경초(詩經抄) [再版] 을유문화사 1954 584 시집 유익조 사랑의 추억(追憶) 서울문예사 1954 585 시집 이보정 개선을 지르고(凱旋을 지르고) 자가본 1954 586 시집 이은상 노산문선(鷺山文選) - 1954 587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6-중국 정양사 1954 588 시집 조영암 운남찬가(雲南讚歌) [再版] 동서문화사 1954 589 시집 최승렬 무지개 문아사 1954 590 시집 최영선 여신(女神) 순천중 학도호국단 1954 591 시집 학원 한국소년시집-제1집 [學園 부록] 대양출판사 1954 592 시집 김송월 풀벼개 계몽사 1954. 1 593 시집 김태홍 창(窓) 자유문화사 1954. 1 594 시집 문성당 연간시집-1953년 문성당 1954. 1 595 시집 이영도 청저집(靑苧集) 문예사 1954. 1 596 시집 장원석 인간에의 초대 명성출판사 1954. 1 597 시집 문성당 현대시인선집-上 문성당 1954. 2 598 시집 문성당 현대시인선집-下 문성당 1954. 3 599 시집 조병화 인간고도(人間孤島) 산호장 1954. 3 600 시집 이광수 춘원시가집(春園詩歌集) 경진사 1954. 5 601 시집 최귀동 젤뜨루다의 사랑 갑진문화사 1954. 5 602 시집 고석규 초극(超劇) [고석규·김재섭 공저] 삼협문화사 1954. 6 603 시집 김재섭 초극(超劇) [고석규·김재섭 공저] 삼협문화사 1954. 6 604 시집 이은상 조국강산 [시조집] 민족문화사 1954. 7 605 시집 김동명 진주만(眞珠灣) 이대출판부 1954. 8 606 시집 정훈 파적(破笛) 학우당 1954. 8 607 시집 박철석 목련(木蓮) 영남문학회 1954. 9 608 시집 이종학 꽃밭 희문사 1954. 9 609 시집 김광섭 체중(體重) 문성당 1954.10 610 시집 김형기 무너진 지층(地層) 한국출판사 1954.10 611 시집 신동집 서정의 유형(抒情의 流刑) 영웅출판사 1954.10 612 시집 유치환 청마시집(靑馬詩集) 문성당 1954.10 613 시집 이설주 순이의 가족 문성당 1954.10 614 시집 이성환 별과 나 동서문화사 1954.10 615 시집 김대현 청사(靑史) 창문사 1954.11 616 시집 석재춘 기억의 단면 세문사 1954.11 617 시집 유근주 항전(抗戰) 국민보사 1954.11 618 시집 이상덕 강변촌(江邊村) 자가본 1954.11 619 시집 강욱 태양을 위한 환상(幻想) 공동문화사 1954.12 620 시집 고원 이율의 항변(二律의 抗辯) 시작사 1954.12 621 시집 노문천 미이라 박문출판사 1954.12 622 시집 윤영춘 하늘은 안다 문연사 1954.12 623 시집 이덕성 호흡(呼吸) 시작사 1954.12 624 시집 이봉순 반딧불 이대출판부 1954.12 625 시집 이창환 애상(愛想) 입성사 1954.12 626 시집 최학규 길 항도출판사 1954.12 627 시집 김경수 꽃과 바다 [再版] 형설문화사 1955 628 시집 김관식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29 시집 김숭문 전시한국문학선-시편 국방부정훈국 1955 630 시집 김영배 호수(湖水) [김영배·전대주 공저] 자가본 1955 631 시집 김용제 이태백시선(李太白詩選) 문호사 1955 632 시집 김원우 해설(解說) [김원우·김재성 공저] 경남고등학교 1955 633 시집 김원태 현대의 온도(溫度) 도시문화사 1955 634 시집 김원태 호반의 노래 프린트 1955 635 시집 김일로 꽃씨 민중서관 1955 636 시집 김재성 해설(解說) [김원우·김재성 공저] 경남고등학교 1955 637 시집 김종원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38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4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5 639 시집 박인환 촌락(村落) 1 문학동인회 1955 640 시집 박종화 한국문학전집 민중서관 1955 641 시집 박청허 동토(童土) 조선일보사 1955 642 시집 범조사 현대서정시선 범조사 1955 643 시집 송명호 사인부락(四人部落) 예술시보사 1955 644 시집 양주동 T.S. 엘리어트 시선집 보문각 1955 645 시집 유강환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46 시집 유치환 생명의 서(書) [再版] 영웅출판사 1955 647 시집 이광수 사랑 문선사 1955 648 시집 이만선 파문수(破門囚) 기독교문화사 1955 649 시집 이명온 애연(哀燕) 서울신문사 1955 650 시집 이상로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51 시집 이성환 황혼선(黃昏線) 민중서관 1955 652 시집 이응창 물오리 문호사 1955 653 시집 이주일 혈화의 전선(血火의 戰線) 희망사 1955 654 시집 이형기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55 시집 임성규 백악시초(白岳詩抄) 서울고등학교 1955 656 시집 전대주 호수(湖水) [김영배·전대주 공저] 자가본 1955 657 시집 전영택 의의 태양(義의 太陽) 대한기독교서회 1955 658 시집 정규남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59 시집 주세중 농민의 노래 민중서관 1955 660 시집 최귀동 인생(人生) 숭문사 1955 661 시집 학우사 한국시인전집-제1권 학우사 1955 662 시집 이인석 사랑 청춘사 1955. 1 663 시집 석용원 종려(棕櫚) 시작사 1955. 2 664 시집 이주일 진중음(陳中音) 희망사 1955. 2 665 시집 홍성문 문(門) 계몽사 1955. 2 666 시집 한하운 보리피리 [再版] 인간사 1955. 3 667 시집 김남조 나아드의 향유(香油) 남광문화사 1955. 4 668 시집 정훈 벽오동(碧梧桐) 학우사 1955. 5 669 시집 이호우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 영웅출판사 1955. 6 670 시집 최광렬 개인잡지(個人雜誌) 현대출판사 1955. 8 671 시집 박종국 사어첩(私語帖) 동해당 1955. 9 672 시집 이하윤 현대문학전집 4 한성도서㈜ 1955. 9 673 시집 김규동 나비와 광장(廣場) 산호장 1955.10 674 시집 박인환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 산호장 1955.10 675 시집 박치원 하나의 행렬(行列) 시작사 1955.10 676 시집 장호강 항전의 조국 한영옥 1955.10 677 시집 김종문 시사시대(詩史時代) 보문각 1955.11 678 시집 백상현 석불 앞에서 문춘사 1955.11 679 시집 이효상 사랑 양양출판사 1955.11 680 시집 임인수 땅에 쓴 글씨 새사람사 1955.11 681 시집 조병화 사랑이 가기 전에 정음사 1955.11 682 시집 김경수 창조의 노래 새사람사 1955.12 683 시집 김영삼 저항의 유성(抵抗의 流星) 인간사 1955.12 684 시집 노문천 고몽(孤夢) 범조사 1955.12 685 시집 박거영 인간이 그립다 인간사 1955.12 686 시집 박목월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12 687 시집 송명문 화성인(火星人) 장왕사 1955.12 688 시집 이동주 강강술래 호남출판사 1955.12 689 시집 최민순 님 경향잡지사 1955.12 690 시집 최성연 은어(銀魚) 서울신문사 1955.12 691 시집 고대문학회 이상전집(李箱全集) 2 태성사 1956 692 시집 구곡천 흑인부락(黑人部落) 충북문화사 1956 693 시집 김명균 한잔 술 인생의 노래 한국유토피아협회 1956 694 시집 김시창 손 희문사 1956 695 시집 김신철 장미꽃 향문사 1956 696 시집 김용호 국민애송시선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 697 시집 김창호 산천의 향기(山川의 香氣) 과학출판사 1956 698 시집 김해성 신풍토(新風土) - 1956 699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5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6 700 시집 박목월 사람을 사랑함은 서러운 것을 인간사 1956 701 시집 박석창 시든 영산홍(映山紅) [임학송·박석창 공저] 향문사 1956 702 시집 박양균 빙하(氷河) 영웅출판사 1956 703 시집 석용원 한국시집 현문사 1956 704 시집 수천구락부 보내는 가슴 수천구락부 1956 705 시집 안청중학교 안청학원 30주년 기념시집 안청중학교 1956 706 시집 오종규 관주(貫珠) 觀海동인회 1956 707 시집 유대건 초점(焦點) 신성다방 1956 708 시집 임학송 시든 영산홍(映山紅) [임학송·박석창 공저] 향문사 1956 709 시집 장만영 남구시집(南歐詩集) 정양사 1956 710 시집 최희섭 애연(哀燕) 중앙일보사 1956 711 시집 충무중등교육회 심해선(深海線) 충무중등교육회 1956 712 시집 하인 어두운 지역 항도출판사 1956 713 시집 홍원 홍원시집(洪原詩集) 자유문화사 1956 714 시집 황영덕 신해(信海) 파수군사 1956 715 시집 이규남 개벽전야(開闢前夜) 한국입체이학사 1956. 1 716 시집 정소파 마을 여자문화사 1956. 1 717 시집 김오남 심영(心影) 동인문화사 1956. 3 718 시집 허연 불망비(不忘碑) 향문사 1956. 3 719 시집 김선조 정조(靜潮) 이론사 1956. 4 720 시집 김용호 날개 대우사 1956. 4 721 시집 박병순 낙수첩(落穗帖) 향도출판사 1956. 4 722 시집 이숭자 호심의 곡(湖心의 曲) 현대출판사 1956. 4 723 시집 이육사 육사시집(陸史詩集) [再版] 범조사 1956. 4 724 시집 이종택 새싹의 노래 연합출판사 1956. 4 725 시집 고원 태양의 연가(戀歌) 이문당 1956. 5 726 시집 김상옥 목석의 노래(木石의 노래) 청우출판사 1956. 5 727 시집 김영랑 영랑시선(永郞詩選) 정음사 1956. 5 728 시집 박철석 까마귀 갑진문화사 1956. 6 729 시집 서정주 서정주시선(徐廷柱詩選) 정음사 1956. 6 730 시집 장만영 밤의 서정(抒情) 정양사 1956. 6 731 시집 한하운 한하운시전집(韓何雲詩全集) 인간사 1956. 6 732 시집 김두원 인생유감(人生遺憾) 대한일보사 1956. 7 733 시집 석용원 잔(盞) 신교출판사 1956. 7 734 시집 이설주 수난의 장(受難의 章) 문성당 1956. 7 735 시집 이설주 애무의 장(愛撫의 章) 문성당 1956. 7 736 시집 김경수 최후의 만찬(晩餐) 새로이출판사 1956. 8 737 시집 유대건 통통배 새로이출판사 1956. 8 738 시집 황양수 오후의 기도 인간사 1956. 8 739 시집 김소영 새로운 언어 삼우출판사 1956. 9 740 시집 김소월 정본소월시집(定本素月詩集) 정음사 1956.10 741 시집 박두진 박두진시선(朴斗鎭詩選) 성문사 1956.10 742 시집 윤석중 노래동산 학문사 1956.10 743 시집 김지향 병실(病室) 녹양사 1956.11 744 시집 신석정 빙하(氷河) 정음사 1956.11 745 시집 구상 초토의 시(焦土의 詩) 청구출판사 1956.12 746 시집 김관식 김관식시선(金冠植詩選) 자유세계사 1956.12 747 시집 김악 영토(領土) 동해당 1956.12 748 시집 김용호 헝가리 비가(悲歌) [김용호·이영순 공저]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12 749 시집 문덕수 황홀(恍惚) 세계문화사 1956.12 750 시집 신동문 풍선과 제삼포복(風船과 第三匍匐) 충북문화사 1956.12 751 시집 이생진 녹벽(綠壁) 해미중학시작반 1956.12 752 시집 이영순 헝가리 비가(悲歌) [김용호·이영순 공저]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12 753 시집 전상렬 백의제(白衣祭) 자유문화사 1956.12 754 시집 전영경 선사시대(先史時代) 수문사 1956.12 755 시집 조병화 여숙(旅宿) 정음사 1956.12 756 시집 조지훈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 정음사 1956.12 757 시집 한무학 지진에 떠는 기상대 평문사 1956.12 758 시집 김신철 은하수 향문사 1957 759 시집 최절로 이랑 금성사 1957 760 시집 김두회 율림의 정화(栗林의 情火) 김성호 1957. 1 761 시집 김윤철 불사조의 나래 신교출판사 1957. 2 762 시집 공중인 무지개 삼천리사 1957. 3 763 시집 구석봉 피의 역사 경향문화사 1957. 3 764 시집 김광수 사파詩集 문화사·동강사 1957. 4 765 시집 김봉룡 다시 살아 있는 생명 산호장 1957. 4 766 시집 김창식 촛불과 나와 자가본 1957. 4 767 시집 이관희 석천시집(石川詩集) 자가본 1957. 4 768 시집 김광림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69 시집 김종삼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70 시집 전봉건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71 시집 구경서 회귀선(回歸線) 중앙문화사 1957. 6 772 시집 김평옥 별은 밤마다 정음사 1957. 6 773 시집 박정온 최후의 서정(抒情) 정음사 1957. 6 774 시집 손재준 여정(旅程) 국민문화사 1957. 6 775 시집 장우경 장미의 꿈 자가본 1957. 6 776 시집 김광균 황혼가(黃昏歌) 편호장 1957. 7 777 시집 이설주 거화(炬火) 문성당 1957. 7 778 시집 이설주 방랑인(放浪人) 문성당 1957. 7 779 시집 박봉우 휴전선(休戰線) 정음사 1957. 9 780 시집 김영랑 오늘 장문사 1957.10 781 시집 김윤식 오늘 장문사 1957.10 782 시집 김종대 조류(潮流) 김동민 1957.10 783 시집 이설주 낙수인생(落穗人生) 인간사 1957.10 784 시집 인수환 고향(故鄕) 채문사 1957.10 785 시집 김동명 목격자 인간사 1957.11 786 시집 김시철 임금(林檎) 삼천리사 1957.11 787 시집 박치원 위치(位置) 자유문학자협회 1957.11 788 시집 유정 사랑과 미움의 시 홍자출판사 1957.11 789 시집 장만영 저녁 종소리 정양사 1957.11 790 시집 조병화 서울 성문각 1957.11 791 시집 고재승 솟적새 우는 밤 광주문화사 1957.12 792 시집 김광섭 해바라기 자유문학자협회 1957.12 793 시집 김규동 평화에의 증언 삼중당 1957.12 794 시집 김소월 소월시선 여원사 1957.12 795 시집 김현승 김현승 시초 문학사상사 1957.12 796 시집 서광렬 종소리 한국출판사 1957.12 797 시집 안장현 어안도 인간사 1957.12 798 시집 유치환 제9시집 한국출판사 1957.12 799 시집 이경훈 추억 인간사 1957.12 800 시집 이기반 두 날개 보광출판사 1957.12 801 시집 이상로 불온서정 신교출판사 1957.12 802 시집 이생진 동창화 서산여중고 1957.12 803 시집 장호 파충류의 합창 시작사 1957.12 804 시집 정소파 산창일기 천일출판사 1957.12 805 시집 추은희 시심의 계절 동아출판사 1957.12 806 시집 김규동 현대의 신화 덕련문화사 1958 807 시집 이병기 현대시조선총 새글사 1958 808 시집 전봉건 소월시화첩 성대학사 1958 809 시집 김경옥 회색의 거리를 걸어간다 시작사 1958. 1 810 시집 김수환 물새와 해녀 중앙문화사 1958. 1 811 시집 김영협 시와 나무에 얽힌 사랑의 기적 삼중당 1958. 1 812 시집 윤혜승 애가 동서문화사 1958. 1 813 시집 이규남 숙명의 세좌 금룡도서㈜ 1958. 1 814 시집 이용운 황무지 자가본 1958. 1 815 시집 홍성문 꽃과 철조망 동서문화사 1958. 2 816 시집 김경수 감람원과 축제와 통곡 한길문화사 1958. 3 817 시집 신태식 미래를 위한 기도 성미당출판사 1958. 3 818 시집 조병화 석아화 [기행시집] 정음사 1958. 3 819 시집 김대현 옥피리 정음사 1958. 4 820 시집 신동집 제이의 서시 한국출판사 1958. 5 821 시집 이은상 노산시조선집(鷺山時調選集) 남향문화사 1958. 5 822 시집 조애영 슬픈 동경 서울신문사 1958. 5 823 시집 노천명 사랑의 노래 한림사 1958. 6 824 시집 박희선 새앙쥐와 우표 세종문화사 1958. 6 825 시집 김우옥 태양과 지옥의 시 향도출판사 1958. 7 826 시집 김동수 노방초(路傍草) 인간사 1958. 8 827 시집 정영태 검은 태양의 계보 자유장 1958. 8 828 시집 김남조 나무와 바람 정양사 1958. 9 829 시집 이상국 오후의 밀도 상각인쇄사 1958. 9 830 시집 정영협 불모지대 향도출판사 1958. 9 831 시집 박현서 인간 홍문도서출판사 1958.10 832 시집 석강원 밤이 주는 가슴 형설문화사 1958.10 833 시집 여영택 담향 동서문화사 1958.10 834 시집 유근주 타나 남은 꿈 이론사 1958.10 835 시집 정한모 카오스의 사족 범호사 1958.10 836 시집 정훈 피맺힌 연륜 박영사 1958.10 837 시집 조유로 부동항 청우출판사 1958.10 838 시집 공중인 조국-시와 사진 예술세계문학사 1958.11 839 시집 김소월 초혼 박영사 1958.11 840 시집 박거영 고독한 반항자 인간사 1958.11 841 시집 박송죽 보라빛 의상 자가본 1958.11 842 시집 함윤수 사향묘 중앙문화사 1958.11 843 시집 김규동 갈잎피리 청우출판사 1958.12 844 시집 김상옥 꽃 속에 묻힌 집 [동시집] 청우출판사 1958.12 845 시집 김종문 인간조형 보문각 1958.12 846 시집 김지향 막간풍경 녹양사 1958.12 847 시집 김태홍 조류의 합창 인간사 1958.12 848 시집 박남수 갈매기 소묘 춘조사 1958.12 849 시집 박화목 시인과 산양 장학출판사 1958.12 850 시집 박훈산 날이 갈수록 철야당 1958.12 851 시집 유치환 유치환 시선 정음사 1958.12 852 시집 유치환 유치환 시초 신구문화사 1958.12 853 시집 이영순 제삼의 혼돈 인문사 1958.12 854 시집 이종현 어머니 가톨릭청년사 1958.12 855 시집 하한주 골고타 가톨릭청년사 1958.12 856 시집 전봉건 신풍토 백자사 1959 857 시집 김붕한 탑 부여중학교 1959. 1 858 시집 김소월 못잊어 성문사 1959. 1 859 시집 박재륜 궤짝 속의 왕자 해동문화사 1959. 1 860 시집 최승렬 원정 범조사 1959. 1 861 시집 김소월 님의 노래 경문사 1959. 2 862 시집 모윤숙 정경 일문서관 1959. 3 863 시집 유치환 동방의 느티 신구문화사 1959. 3 864 시집 이민영 잃어버린 체온 문호사 1959. 4 865 시집 최병구 원죄근처 범문각 1959. 4 866 시집 박영숙 이브의 사념 백영사 1959. 5 867 시집 박지수 삶의 노래 상구문화사 1959. 5 868 시집 이승만 우남시집 공보실 1959. 5 869 시집 김악 키르쿡크의 석유 동원사 1959. 6 870 시집 김춘수 꽃의 소묘 백자사 1959. 6 871 시집 황양수 시월의 목장 계몽사 1959. 6 872 시집 신석초 바라춤 통문관 1959. 7 873 시집 정규남 허공에 미리칼 하나 향도출판사 1959. 7 874 시집 피천득 금아시문집 경문사 1959. 7 875 시집 김남조 수정과 장미 정양사 1959. 9 876 시집 노영란 흑보석 금문사 1959. 9 877 시집 정연길 시인과 시민의 대화 시간 만년장 1959. 9 878 시집 김광림 상심하는 접목 백자사 1959.10 879 시집 김상렬 하오 한 시 보문사 1959.10 880 시집 김영랑 영랑시집(永郞詩集) 박영사 1959.10 881 시집 박시인 휴지 성문각 1959.10 882 시집 변영로 수주시문집(樹州詩文集) 경문사 1959.10 883 시집 이만선 무변지대 새길문화사 1959.10 884 시집 정무호 해바라기 씨를 심으며 해동문화사 1959.10 885 시집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춘조사 1959.11 886 시집 김윤성 바다가 보이는 산길 춘조사 1959.11 887 시집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춘조사 1959.11 888 시집 박봉우 겨울에도 꽃피는 나무 백자사 1959.11 889 시집 석용원 야간열차 정신사 1959.11 890 시집 심하벽 여유 삼영사 1959.11 891 시집 안도섭 지도 속의 눈 향문사 1959.11 892 시집 이형섭 하초 홍지사 1959.11 893 시집 장주진 지맥의 서정 인간사 1959.11 894 시집 전봉건 사랑을 위한 되풀이 춘조사 1959.11 895 시집 조병화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성문각 1959.11 896 시집 김소월 기억 문양사 1959.12 897 시집 김윤환 로타리 부근 중앙출판사 1959.12 898 시집 박목월 "난, 기타" 신구문화사 1959.12 899 시집 박향식 유역(流域) 삼덕문화사 1959.12 900 시집 배효식 편주의 항해 문림사 1959.12 901 시집 백시걸 구름에게 구슬에게 정신사 1959.12 902 시집 양명문 푸른 전설 동신문화사 1959.12 903 시집 이성환 구름은 울지도 못한다 태서문화사 1959.12 904 시집 장서언 장서언 시집 신구문화사 1959.12 905 시집 전영경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 현문사 1959.12 906 시집 정한모 여백을 위한 서정 신구문화사 1959.12 907 시집 조영직 꽃피는 양지 향문사 1959.12 908 시집 조지훈 역사 앞에서 신구문화사 1959.12 909 시집 박화목 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 서서 보문출판사 1960 910 시집 이희승 박꽃 [再版] 일조각 1960 911 시집 이규남 혈맥 한국입체이학회 1960. 1 912 시집 이윤수 인간온실 동아출판사 1960. 1 913 시집 문명관 동심 양서문화사 1960. 2 914 시집 이은상 노산시문선(鷺山詩文選) 경문사 1960. 2 915 시집 유대건 두루미선생 새로이출판사 1960. 3 916 시집 이근배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문일사 1960. 3 917 시집 이명길 생명 영남문학회 1960. 3 918 시집 양주동 무애시문선 경문사 1960. 4 919 시집 김남조 정념의 기(旗) 정양사 1960. 5 920 시집 박병화 병엽소곡집 삼양출판사 1960. 5 921 시집 고원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정신사 1960. 6 922 시집 고은 피안감성 청우출판사 1960. 6 923 시집 김경수 구름과 무기 창림사 1960. 6 924 시집 김용호 항쟁의 광장 신흥출판사 1960. 6 925 시집 박경선 목장 문장사 1960. 6 926 시집 이향인 석정 성문사 1960. 6 927 시집 전인구 풀밭에서 세창출판사 1960. 6 928 시집 정훈 꽃시집 민중서관 1960. 6 929 시집 하한주 마돈나 갑진문화사 1960. 6 930 시집 김재동 밤에 피는 꽃 성학사 1960. 7 931 시집 유병배 마음의 판도 문호사 1960. 7 932 시집 장도혁 창조자의 증언 영문사 1960. 7 933 시집 정찬조 조춘 청우출판사 1960. 7 934 시집 배병창 소나기와 종 성학사 1960. 8 935 시집 김윤식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형설출판사 1960. 9 936 시집 마종기 조용한 개선 부민문화사 1960. 9 937 시집 최문종 백두산 문우당 1960. 9 938 시집 이설주 볼모의 영토 박영사 1960.10 939 시집 이종택 바다의 어머니 인간사 1960.10 940 시집 임수생 형죄 정토문화사 1960.10 941 시집 민재식 속죄양 사상계사 1960.11 942 시집 박홍근 날아간 빨간 풍선 신교출판사 1960.11 943 시집 박희진 실내악 사상계사 1960.11 944 시집 이효상 안경 구미서관 1960.11 945 시집 김근숙 밤과 사랑의 의미 정신사 1960.12 946 시집 김오남 여정 문원사 1960.12 947 시집 박거영 절정 인간사 1960.12 948 시집 박치원 사월이후 신조문화사 1960.12 949 시집 서창남 네잎 크로바 문원사 1960.12 950 시집 안장현 내 가슴이 흐르는 샘은 정신사 1960.12 951 시집 유치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동서문화사 1960.12 952 시집 윤석중 엄마손 학급문고간행회 1960.12 953 시집 윤석중 윤석중 시집 학급문고간행회 1960.12 954 시집 김창석 하루 정음사 1961 955 시집 박화목 주의 곁에서 대한기독교회보 1961 956 시집 박희선 화염 속에 숨진 미소 교학사 1961 957 시집 신현득 아기눈 형설출판사 1961 958 시집 김영춘 하도 그리워 인간사 1961. 1 959 시집 이재철 석상의 노래 문리당 1961. 1 960 시집 이준범 황우 신흥출판사 1961. 1 961 시집 최옥자 포도밭에서 수도여사대출판사 1961. 1 962 시집 김창직 인상 인간사 1961. 2 963 시집 송욱 하여지향 일조각 1961. 2 964 시집 이명길 내일의 길가에서 영남문학회 1961. 2 965 시집 김준식 둥근 달이 떴을 때는 갑신문화사 1961. 3 966 시집 박봉우 사월의 화요일 성문각 1961. 4 967 시집 유광렬 생화 성화사 1961. 4 968 시집 주세중 불행한 일기 인간사 1961. 4 969 시집 주세중 흙냄새 인간사 1961. 4 970 시집 이상로 세월 속에서 일조각 1961. 5 971 시집 이희승 심장의 파편 일조각 1961. 5 972 시집 한상억 평행선의 대결 범조사 1961. 5 973 시집 황동규 어떤 개인 날 중앙문화사 1961. 5 974 시집 최연홍 해변의 표상 부민문화사 1961. 6 975 시집 박종우 습지 청구출판사 1961. 7 976 시집 최광호 분노의 영토 강산문화사 1961. 7 977 시집 이인석 종이집과 하늘 태성사 1961. 8 978 시집 홍성문 얼굴 신조사 1961. 8 979 시집 심하벽 회향의 연주곡 자가본 1961. 9 980 시집 조봉제 가을과 바다의 묘비명 친학사 1961. 9 981 시집 하한주 영혼의 노래 경햡잡지사 1961. 9 982 시집 한승헌 인간귀향 자가본 1961. 9 983 시집 서벌 하늘색 일요일 새글사 1961.10 984 시집 전규태 석류 태서문화사 1961.10 985 시집 조병화 밤의 이야기 정음사 1961.10 986 시집 노천명 산호림 [再版] 천명사 1961.11 987 시집 송숙자 인어의 꿈 보문각 1961.11 988 시집 어효선 봄 오는 소리 교학사 1961.11 989 시집 정열 원뢰 정치문화사 1961.11 990 시집 조유로 하이얀 칠판 청우출판사 1961.11 991 시집 김지향 사육제 신영사 1961.12 992 시집 김창석 간주곡 신흥출판사 1961.12 993 시집 박종화 월탄시선(月灘詩選) 현대문학사 1961.12 994 시집 서정주 신라초 정음사 1961.12 995 시집 서정희 배암 형설문화사 1961.12 996 시집 서창남 비정의 거리 신흥출판사 1961.12 997 시집 이동섭 강물에 띄우는 시 삼도사 1961.12 998 시집 이명길 푸른 역사의 황지 새글사 1961.12 999 시집 장국진 여심 무하출판사 1961.12 1000 시집 조순 전후에 비는 내리는데 신흥출판사 1961.12 1001 시집 최원규 금채적 충남대학신보 1961.12 1002 시집 김동환 파인시집-돌아온 날개 종로서관 1962. 3 1003 시집 김동환 청룡은 간다 해병대사령부 1962.12 1004 시집 김동명 내마음 신아사 1964.11 1005 시집 김종삼 본적지 성문각 1968.11 1006 시집 김종삼 십이음계 삼애사 1969 1007 시집 이육사 광야(曠野) 형설출판사 1971 1008 시집 김종삼 북치는 소년 민음사 1974 1009 시집 김종삼 시인학교 신현실사 1977 1010 시집 오일도 지하실의 달 문화공론사 1977 1011 시집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음사 1982 1012 시집 김종삼 큰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 청하 1984 1013 시집 김종삼 평화롭게 고려원 1984  ............................... ................................ ................................
308    땡~ 제8교시: 너도나도 일기를 써봅시다 댓글:  조회:4905  추천:0  2016-02-05
일기를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몇 가지 방법 /이호철 일기를 즐겁게, 좀더 잘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본다. 잘 쓰게 지도한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일기 쓰기를 하기 싫어하게 만드는 경우도 더러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쓰고 싶은 마음 나게 해 주기 :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열심히 잘 하고 그 결과도 아주 좋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쓰고 싶은 마음만 나게 해 준다면 90% 이상은 된 것이다. 먼저 쓰기 싫어하는 까닭을 찾아 없애 주어야 한다. 그리고 10일 쓰면 나뭇잎을 준다든지, 또 얼마 동안 쓰고 잘 쓰면 책 선물을 준다든지, 학급 문집(신문)에 실어 준다든지 하여튼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을 찾아서 해 보자. 그 다음에는 차츰 스스로 일기 쓰는 그 자체를 좋아하게 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거짓없이 진실하게 쓰도록 하기 : 자신이 보고 듣고 겪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기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쓰는 글은 아니지만 이렇게 쓴 글은 다른 어느 글보다 큰 감동을 주게 된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그런 일기글을 쓰게 하자면 그냥 ‘일기는 자기의 속마음을 거짓 없이 솔직하게 써야 한다’고 말만 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숨김 없이 드러내는 것인지도 아이들은 잘 모른다. 그러니 그것을 알도록 하자면 그런 보기글을 찾아 좀 읽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그리고 몇 번 말했지만 아이가 교사를 완전히 믿을 때 가능한 것이다. •교사와 아이 사이의 믿음 관계 만들기 : 믿음 관계는 일기 쓰기 지도뿐 아니라 모든 교육의 튼튼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또 믿음 관계는 교사가 아이들의 어떤 태도도 모두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이루어진다. 일기에 어떤 내용을 썼더라도 아이를 나무라서는 안 된다. 말할 것이 있으면 다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잘 쓴 일기는 어떻게 쓴 일기인가? : 잘 쓴 일기의 가장 첫째 조건은 거짓 없이 솔직하게 쓴 것이다. 그 다음 사실, 느낌, 생각 따위를 또렷이 알 수 있고, 감동이 그대로 전해지도록 쓴 것이다. 자세하게 쓰되 군더더기 말이 없도록 하고, 말하고자 하는 하나의 뜻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는 글이다. 좀더 살아 있는 일기글이 되도록 하자면 입말로 쓰고, 주고받는 말을 생생하게 살려 쓰는 것이 좋다. 글씨나 맞춤법 같은 형식을 강조하면 내용이 모자라게 되고 일기 쓰기를 싫어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가치 있는 내용의 일기 쓰기 지도 : 가치 있는 글이란 가치관이 바로 서 있고 올바른 삶의 모습이 드러나 있는 글을 말한다. 거짓없이 진실하게 잘 썼다고 해도 가치 있는 내용이 아니면 별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가치 없는 일기글과 가치 있는 일기글을 알 수 있도록 견주어 볼 글을 가끔 읽어 주고 이야기하면 어떤 글이 가치 있는 글인지 잘 안다. 그러나 가치 있는 글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꾸며 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쓸 거리 만들어 주기 : 일기 쓰기가 어려운 까닭은 쓸 거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주 아이들이 신나게 쓸 수 있는 일기 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겠지. 먼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그때 그때의 본 일이나 느낀 생각을 적어 두었다가 일기 쓸 때 참고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 반에서는 ‘생각 주머니’라고 해서 수첩을 아예 끈에다 매달아 목걸이처럼 걸고 다니고 있다. 그 다음은 무엇이나 무슨 일을 보고 듣게 하거나 실제로 겪어 보게 하는 방법이다(≪재미있는 숙제 신나는 아이들≫ 참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 가운데 문제가 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어 보게 하든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잘못 된 점을 따져 보고 해결책이 무엇이지 알아 보게 하는 것, 학과 공부에 관계되는 문제 따위 그 밖에도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일기 내용 지도하기 : 며칠마다 일기 한 편을 복사해 나누어 주고 교사가 이끌어 가며 내용 지도를 하는 것이다. 먼저 일기글에 나타난 아이의 삶을 비판한다. 다음에 보태거나 고치고 빼어야 하는 글의 표현에 관계되는 지도를 한다. 끝에는 형식도 지도하는 것이 좋겠다. 다른 아이들의 의견을 들어 보기도 하며 지도해야 하는데, 그에 앞서 일기를 쓴 아이의 의견을 먼저 말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잘못된 것만 지도하는 것이 아니고 잘된 것도 무엇이 잘 되었는지 지도해야 한다. 지도할 일기감은 번호 차례대로 뽑아 써야 불평이 없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아이들로부터 지나친 비판을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런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자기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또 다른 동무들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 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잘 이야기 해 주어야 한다. 비판할 때 일기를 쓴 아이를 목표로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냥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면 되겠지. •잘 쓴 일기 읽어 주기 : 아이들의 일기를 볼 때 잘 쓴 일기를 골라 두었다가 하루에 한 편 이상 틈 나는 대로 읽어 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일기 쓰기 지도는 어지간히 되는 것이다. 이 때 칭찬과 아울러 어떤 점이 잘 되었는지 꼼꼼히 이야기해 준다. 또 꼭 잘 쓴 것이 아니라도 전보다 조금 발전된 모습을 보일 때 잊지 말고 읽어 주며 어떤 점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 이야기해 주고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새롬이와 함께 일기 쓰기≫ ≪현복이의 일기≫ ≪윤복이의 일기≫ 따위의 좋은 책에 나와 있는 일기글도 읽어 주고 어떤 점이 잘 되었는지 일러 준다. •일기를 쓴 뒤 스스로 고쳐 보기 : 글쓰기 할 때는 글다듬기를 하는데 일기를 쓴 다음에는 그냥 덮어두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 그냥 덮어 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고치는 버릇을 들이도록 하자.  •일기 개별 지도 : 시간이 나면 한 아이씩 지도하는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곳이나 모자라는 부분을 아이에게 물어 가면서 스스로 고쳐 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지도는 너무 깊게 해서 아이가 질리지 않도록 가볍게 해야 한다. 지도하는 정도는 아이에 따라 달리 해야겠지.  •‘나는 오늘’이란 말을 쓰는 어린이 : 한 아이가 ‘나는 오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는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서는 공부를 했다.’ 하는 일기를 썼을 때 ‘나는 오늘’이란 말을 꼭 넣어야 할 경우도 있고 필요가 없는 경우도 있다. 이 아이가 언제나 아침을 굶고 학교에 가는 아이일 경우에는 ‘나는 오늘’이란 말이 없어서는 안 될 말이다. 언제나 굶고 학교에 갔는데 ‘오늘은 정말’ 아침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 밖에 되풀이되는 말이라도 그 아이의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으니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글자 모르는 아이의 지도 : 글자를 아주 모르는 아이는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좋겠다. 글자를 암호문 같이 쓰는 아이는 일기를 쓰게 한 다음 무슨 글자인지 물어서 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지도하면 되겠다. 그렇게 하면 글자 지도와 함께 일기 쓰기도 지도가 되는 것이다. 내 경험인데 글자 잘 모르는 3학년 아이를 그렇게 지도해서 학급 신문에 실어 주었더니 거기에 힘을 얻어 뒤에는 읽고 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글쓰기도 곧잘 했다. 글자를 가끔 하나씩 잘 모르는 아이는 잘 적어 두었다가 며칠 만에 한 번씩 지도하면 되겠다. 여러 어린이가 자주 틀리는 글자가 있다면 그것도 모두어 두었다가 가끔 한 번씩 지도해 주는 것이 좋겠다.  •일기글의 갈래 : 일기글은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된다. 생활문, 감상문, 시, 주장글, 편지글 따위의 어떤 갈래로 써도 좋다.  •개별 기록표 만들기 : 아이 하나하나마다 기록표를 만들어 지도할 것을 적어 두었다가 시간이 날 때 지도하면 효과가 크다. 
307    호르룩! 축구경기 시작, 2분간 주저앉아 묵념... 댓글:  조회:6061  추천:0  2016-01-31
축구경기 시작 2분간 안 뛰어… "매일 목숨 잃는 난민어린이 위해" (서울=연합뉴스)= 프로축구 경기가 시작됐는데 모든 선수가 2분간 주저앉아 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된 사연일까. 지난 2016년 1월 29일(현지시간) 그리스 중부 라리사의 AE 라리사 FC 아레나에서 열린 그리스 프로축구 2부 AE 라리사와 아카르나이코스의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AE 라리사는 경기에 앞서 성명서를 내 "유럽연합(EU)와 터키의 잔혹한 무관심 속에서 매일 목숨을 잃는 어린이 수백 명을 추모하려는 것"이라고 미리 설명했다. (AFP=연합뉴스) 지난 29일(현지시간) 그리스 중부 라리사의 AE 라리사 FC 아레나에서 열린 그리스 프로축구 2부 AE 라리사와 아카르나이코스의 경기에서 양팀 선수들은 경기 시작 후 2분간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다를 건너다가 사망한 난민들을 추모했다. 국제이주기구(IOM) 집계에 따르면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향하다가 사망한 난민은 지난해 9월 이후에만 973명에 달한다. 터키 해안경비대가 익사해 해안으로 밀려 온 이민자의 시신을 옮기고 있다. 이날 선공을 잡은 AE 라리사 공격수들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호각 소리와 함께 공을 아카르나이코스 진영에 넘겨버렸다. 그와 동시에 경기장에 들어와 있던 양팀 선수 22명은 모두 자리에 주저앉았다. 공은 중앙선 너머 아카르나이코스쪽에 멈춰 있었고 코칭스태프, 심판, 관중 누구도 동요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 2분이 지나자 선수들은 일어나 진짜 경기를 시작했다. 경기 시작 시간에 선수들이 주저앉았을 때와 2분이 지나고서 실제 경기를 시작할 때 관중석에서는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은 주로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 그리스로 향한다. 이 과정에서 익사한 난민 숫자는 국제이주기구(IOM) 집계 기준으로 지난해 9월 이후에만 957명에 달한다. 프로축구선수들의 시위가 있은 다음 날인 30일에도 레스보스섬 앞바다에서 난민선이 침몰해 최소 39명이 숨졌다...
306    땡!- 1966년도부터 "눈지압법" 실시한 중국 / 수필에 관하여 댓글:  조회:6009  추천:0  2016-01-22
실내외 온도차가 큰 겨울철, 급작스럽게 찬 공기를 쐬면 눈이 따가워져 눈물을 흘리거나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일상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안구건조증이 심해지면서 겪는 증상이다. 이러한 안구건조증은 심하면 시력 저하 뿐 아니라 평생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공눈물 사용 외에도 병원을 찾아 적극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눈 지압법' 이 주목받고 있다. 현대인들은 '눈 건강'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어릴 적부터 TV나 책, 휴대폰 등을 통해 시력이 일찍부터 나빠지거나 콘텍트 렌즈, 화장 등으로 부작용을 겪기 때문이다. 청결하지 않은 손으로 눈을 비비거나, 과도한 화장으로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경우 쉽게 걸리는 '각막염'은 병원 치료로 쉽게 극복 가능하다.  특히나 시력 저하나 안구 건조증은 영구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에, 미리 예방하거나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눈 건강 유지를 위해 '눈 지압법'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많은 현대인들은 쉽게 눈이 피로하기 때문에 간단한 지압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장위안은 중국의 '눈 지압법'을 공개했다. 특히 '눈 지압법'은 중국에서 눈 건강을 위해 의무적으로 눈 지압 시간을 만들어 권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화제가 됐다.  최근 JTBC '비정상회담'에서는 장위안의 '눈 지압법'(눈보호체조)이 소개됐다. 중국에서는 1966년부터 전국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눈 건강을 위해 매일 5분간 눈 건강 체조를 실시했다. 장위안이 소개한 '눈 지압법'의 첫 번째는 눈썹의 끝 부분을 문지르는 것이다. 눈썹 끝 부분을 마져보면 홈이 페인 듯 한 공간이 있는데, 그 곳을 문지르면 좋다. 두 번째 '눈 지압법'은 눈 안쪽과 코 사이 깊이 들어간 자리를 문지르는 것이다. 이 곳은 한의학에서는 '정명'이라고 불리는 혈자리다.  세 번째는, 눈 아래쪽을 문지르는 것이다. 눈 아래쪽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살살 문지르면서 꾹꾹 눌러준다. 특히 이 지압법은 다크서클 완화에도 좋다. 중국에서는 눈의 건강을 위해 '눈 지압법'을 권장하고 있다. 마지막에서는 눈꼬리와 눈썹 사이를 문지르는 것이다. 이 부분은 관자놀이 부분인데 눈 건강은 물론 두통에도 도움이 된다.  이 뿐 아니라 평소 눈이 건조하다면 안약이나 인공눈물을 사용하고,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다.  한편 눈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는 블루베리와 사과가 있다. 블루베리에 있는 안토시아닌은 로돕신 재생을 촉진해 시력을 회복하는 데 좋다.  또한 블루베리에 있는 로돕신은 눈에 피로가 쌓이거나 노화가 진행되는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먹어주는 것이 좋다.  사과에 풍부한 비타민 C는 눈에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고, 백내장 예방에도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최승범 수필은 어떻게 써야 하나. 딴은 그동안 몇몇 잡지사의 수필 청탁에도 응해왔고, 내 나름의 몇 권 수필집을 내놓기도 하였다. 또한 대학에서는 의 강의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막상 붓을 움직이자니 자신이 없다. 나의 두번째 수필집 『여운의 낙서』(1973)를 엮고 나서, 나는 다음과 같은 후기를 덧붙인 바 있었다. 수필의 정체·본령을 파고 들면 들수록 확연한 모가 잡히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수필에 대한 매력만은 잊을 수가 없다. 수필을 쓰고 싶은 일이나 수필을 알고 싶은 일이 매한가지다. 내 삶을 갈아(耕)가는 한, 수필(隨筆)하는 일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수필에 대한 생각은 그제나 이제나 나아진 것이 없다. 오직, 그 동안 수필의 매력에 이끌려 오면서 생각한 바 몇 가지를 들어 이 글을 이어보고자 한다. 먼저 수필이란 무엇인가를 잠시 살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 ‘수필이 문학이다’엔 누구나 이의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신문학’의 출발 이후, 특히 30년대 초반만 해도 문학인 간에 있어서조차 수필의 문학성을 놓고 회의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다음 임화(林和)의 글(『文學과 論理』, 1940)로도 짐작할 수 있다. 몇 해 전 어느 문예잡지의 좌담회에서 수필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한 일이 있었다. 자세히 기억치는 못하나 이야기의 초점은 아마 수필도 과연 다른 문학, 이를테면 소설과 같이 하나의 독립한 장르로써 취급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었던 듯싶다. 그때 이런 제목이 골라진 것은 수필이 차차 성황해가므로 문학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쓰는 데다가 다분의 정력을 경주해서 족한지 아니한지 하는 문제가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런데 당시로부터 벌써 5~6년의 세월이 지났고, 이즈음에 와서는 잡지에는 물론 신문에까지 수필이 여간 많이 실리는 것이 아니다. 임화가 이 이야기를 『문학과 논리』라는 그의 평론집에 수록하기 전 글로 쓴 것이 1938년이니까, 이로부터 5~6년 전이라면 30년대 초반이 된다. 오늘날과 같이 수필이 하나의 독립한 문학 양식으로써 자리를 차지하기까지에는 이무렵 김기림(金起林, 『수필을 위하여』, 1933)·김광섭(金珖燮, 『수필문학 소고』, 1934)·김진섭(金晋燮 『수필의 문학적 영역』, 1934) 등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는 생각이다. 이들은 이론과 실제 작품으로 우리의 수필문학 정립에 기여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수필의 문학적인 특성에 관하여 많은 논자들의 이야기가 있어 왔다. 나도 졸저 『한국수필문학연구』(1980)에서 다음 6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형식의 자유성 ②개성의 노출성 ③유우머와 위트성 ④문체와 품위성 ⑤제재의 다양성 ⑥주제의 암시성 등이 곧 그것이다. 여기서는 딱딱한 이야기를 피하고, 한 편의 수필로 수필의 이모저모를 말한 피천득(皮千得)의 「수필」에서 몇 가지를 들어 보고자 한다. ⑴ 수필은 청자 연적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의 서두다. 이 서두의 멋지고도 은유적인 표현은 수필의 문학적인 한 특성을 말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특성을 말해줌에 있어서도 수필적인 표현으로 하였다. 청자 연적의 저 은은하고도 귀품스러운 빛깔, 난초의 잎이 지닌 선(線)과 꽃이 지닌 방향(芳香), 학이 앉았을 때의 모양이나 비상할 때의 모습, 여인의 호리호리 청초하고 날렵한 몸맵시, 이 모두가 얼마나한 멋인가. 시적(詩的)인가. 수필은 이러한 시적인 멋을 풍겨주는 산문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⑵ 수필의 색깔은 황홀 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하여 추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하다. 수필과 시, 수필과 평론, 수필과 연구논문 등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황홀 찬란하게 번쩍거리는 비단에 시를 비길 수 있다면, 수필은 ‘비둘기빛이거나 진주빛’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비단’이라는 것이다. 흑백을 가리는 게 평론이라면, 수필은 그렇듯 싹독싹독 잘라 말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이 분간하고 ‘미소’를 띠게 한다는 것이다. 또 연구논문이란 새로운 주장이 나오면 퇴락하여 추해지기 쉬우나, 수필은 사람들의 마음에 한 번 젖으면 언제나 그 빛으로 남아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연구논문을 소설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⑶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 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 때의 무우드(氣分)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의 제재는 우리의 눈에 와 닿는 무엇이거나 다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그 개성적인 독특한 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토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수필은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용기(容器)라고도 볼 수 있을지니, 무엇을 그 속에 담던 그것은 오로지 필자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길 수밖에 없다.(김진섭) 수필의 대상은 사유(思惟)의 전영야(全領野)인 것이다.(김동리) 위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어느 면, 문학평론의 대상은 문학이어야 하듯, 시를 쓰려면 시적인 것을, 소설을 쓰려면 소설적인 것을, 희곡을 쓰려면 희곡적인 것을 제재로 선택해야 하는 괴로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수필을 쓰기 위하여 수필적인 제재를 따로 찾을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무엇을 제재로 하여 말하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의 심경이 전인생 위에 확충되어 있기만 하면, 그 말한 것은 반드시 문학적인 가치를 가져오기 마련인 것이다. 다시 『문학과 논리』에서의 인용이지만, 임화는 수필의 문학적인 가치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참말 좋은 수필이란 일상의 지지한 사소사(些少事)를 사상의 높이에까지 고양하고 마치 거목의 하나하나의 잎사귀가 강하고 신선한 생명의 표적이듯이 일상사가 모두 작가가 가진 높은 사상, 순량(純良)한 모랄리티의 충만한 표현으로써의 가치를 품어야 한다. 여기서도 강조된 것은 수필에 있어서의 제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재에 대한 작가의 안목이나 사상이라는 것이다. ⑷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가지 성격을 가져보아야 된다. 쉑스피어는 햄레트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그러나 수필가 램은 촬스 램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수필의 가장 근본적인 특색의 하나를 말하였다. 수필은 한 마디로 말하여 ‘자기표백(自己表白)의 문학’ ‘personal-note’ ‘필자의 심적(心的) 나상(裸像)’이라고 한 것도 이 점을 단적으로 들어 말한 것이다. 서구에 있어서 수필의 원조라 일컬음을 받는 몽테뉴도 그의 『수필집』의 서문에서, 내가 그리는 것은 내 자신이다. 나의 결점까지도 나의 수필에서 읽혀질 것이다. 내 자신이 이 수필집의 내용이다. 고까지 말하였다. 일본의 한 영문학자도 수필의 이 특색을 강조하여, 수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건은 필자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적인 색채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데에 있다. 그 본질에서 말할 때, 기술(記述)도 아니며 설명도 아니요 논의(論議)도 아니다. 보도를 주안으로 하는 신문 기사가 비인격적(In-personol)으로 기자 그 사람의 개인적 주관적인 노오트를 피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수필은 극단적으로 작자의 자아(自我)를 확대하고 과장하여 씌어진 것으로, 그 흥미는 전혀 personol-note인 점에 있다. 고 하였다. 모두 같은 맥락의 이야기들이다. ⑸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이는 수필의 형식이 지닌 특성을 암시한 것이라고 본다. 흔히 수필의 형식을 말하여, 무형식이 그 형식적 특징이다.(金珖燮) ‘붓이 가는 대로’의 형식으로써 산문화한 것이 수필의 일반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고정된 형식에 맞추어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장 자유롭게, 시나 소설과 같은 특별한 형식의 제한이 없이, 붓이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이다.(韓黑鷗) 고 하였다. 물론 수필의 형식은 이러한 것이다라고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본보기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의 연적에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이란 어떠한 형식만을 그대로 좇는 일이 된다. 이것은 어쩌면 기계적으로 되풀이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로 한 편의 수필을 이룰 수 있다면, 똑같이 생긴 꽃잎들을 정연히 놓아가는 일 을 수필의 형식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필은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정연히 꽃잎틀을 놓아가다가, 그 중의 꽃잎 하나를 약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일 정연한 균형 속에 있는 꼬부라진 꽃잎이면서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 에 수필의 멋은 있다는 이야기다. 굳이 수필의 형식을 들라면, 이 멋을 부릴 수 있는 ‘파격’일 수밖에 없다. 이 ‘파격’은 파격을 짓는 사람, 또 파격을 짓는 상황에 따라서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필의 형식이라면 일정한 것이 없는 ‘불구격투(不拘格套)’의 자유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상 피천득의 「수필」에서 수필이 지녀야 할, 문학적인 특성의 몇 가지를 들어 보았다. 자못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의 「수필」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수필이란, 문학의 다른 양식과 달리 어떠해야 하고 어떻게 있어야 하리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수필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는 이 생각으로부터 각자가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다.   =========================================================================   234. 제22번 悲歌 / 김춘수                                      제22번 悲歌                                               김 춘 수   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하고 싶은데 너는 내 곁에 없다. 사랑은 동아줄을 타고 너를 찾아 하늘로 간다. 하늘 위에는 가도 가도 하늘이 있고 억만 개의 별이 있고 너는 없다. 네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다. 이제야 알겠구나 그것이 사랑인 것을,     김춘수 시집  중에서                    사실 문학이란 이론만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문학 뿐이랴. 미술도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론에 밝다고 꼭 좋은 작품은 내놓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흔히 무슨무슨 작법(作法)같은 것을 흔히 말하고, 그러한 것에 관한 책들도 내놓고 있다. 나도 졸저 『수필 ABC』(1965)에서 ‘수필 쓰는 법’의 한 장(章)을 마련하여 다음 몇 가지를 들어 말한 바 있다. ①자기의 렌즈를 갖자 ②일단의 구상은 필요하다. ③서두에서부터 관심을 이끌도록 하자 ④’누에가 실을 뽑듯’ 그렇게 써 나가자 ⑤품위있는 글이 되도록 하자 ⑥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 는 것들이었다. 이제 보면, 여기저기서 줏어다가 열거한 것도 같고, 또 꼭 수필만이랴 다른 문학에도 마찬가지의 이야기지 않겠느냐는 항변도 있지만, 그때 내 나름으로는, 수필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수필을 써 나가기 전에 먼저 가져야 할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여섯 가지를 들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도 수필을 쓰고자 한 사람이면 이만한 유의점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예문을 들면서 다시 생각해 본다. ⑴ 나는 이 바위 앞에서 바위의 내력을 상상해 본다. 태초에 꿈틀거리던 지심의 불길에서 맹렬한 폭음과 함께 퉁겨져 나온 이 바위는 비록 겉은 식고 굳었지만 그 속은 아직도 사나운 의욕이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라고 . 그보다도 처음 놓여진 그 자리 그대로 앉아 풍우상설(風雨霜雪)에 낡아가는 그 자세가 그지없이 높이 보였다. 바위도 놓여진 자리에 따라 사상이 한결같지 않다. 이 각박한 불모(不毛)의 미가 또한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이는 조지훈(趙芝薰)의 「돌의 미학」 중 한 대문이다. 누구나 ‘바위’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훈의 ‘렌즈’에 비친 바위다. 지훈의 ‘렌즈’는 지훈의 눈이요 안목(眼目)이다. 스위스 조각가 쟈코메티는, 눈에 보이는 대로를 그린다. 고 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나 조각은 사진기의 렌즈에 비친 어떠한 풍경도 어떠한 사람도 아니었다. 쟈코메티의 눈이 아니고는 볼 수 없는 풍경이요 사람이 그의 작품에는 담겨지고 조소되었다. 「돌의 미학」은 지훈의 안목이 아니고는 쓰여질 수 없는 수필이다. 지훈은 또 다른 한 편의 글에서, 아안(雅眼)으로 속(俗)을 관(觀)하면 속도 아가 되고, 속안(俗眼)으로 아를 관하면 아도 곧 속이다. 이 말을 한 바 있다. 수필을 쓰기 위해서는 이 ‘아안’이 필요하다. 아안은 누구에게나 일조일석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부단한 ‘눈의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가질 수 있는 ‘렌즈’인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구,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 설흔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다. 는 말도 그만한 세상살이·사람살이에서 ‘눈의 훈련’을 거쳐온 사람만이 수필다운 수필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서 좋을 것이다. 알렉산더 스미스의 말, 수필을 쓰는 사람은 천하가 다 아는 바람둥이, 무슨 일이고 못할 게 없다. 민감한 귀와 눈, 흔히 있는 사물에서 무한한 암시를 식별하는 능력, 생각에 잠기는 명상적인 기질, 이 모든 것만 있으면, 수필가로서 수필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에서 수필가의 요건으로 든 ‘귀와 눈’ ’능력’ ’기질’이란 것도 따져보면 ‘눈의 훈련’을 통해 가질 수 있는 높은 ‘안목’을 이야기한 것이 된다. 수필을 쓰고자 하면, 평소 사물에 대한 높고도 우아한 자기 안목부터 부단히 닦아 지녀야 할 것이다. ⑵ 붓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쓴 글이 수필이라고들 하지만, 막상 수필을 많이 써 본 분이면 이런 안이한 수필작법에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듯이 그대로 써 내려가면 된다는 말도 수긍이 안 간다. 글자로 표현된다는 것은 작품을 뜻하는 것이다. 작품이란 소재와 주제가 겸비되어야 하고 또 매끈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형식과 내용이 조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도 하나의 작품일진대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생각나는 대로 말하듯이 붓가는 대로 써버릴 수는 없다. 물론 쓸 수는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예술적인 작품으로 승화될 수는 없다. 낙서가 아니면 붓장난의 소산일 뿐이다. 이는 장덕순(張德順)의 수필론 「힘들게 써서 쉽게 읽혀져야」의 서두 부분이다. 흔히, 수필의 글자 풀이, ‘따를 隋, 붓 筆에서 붓가는 대로 쓰여진 글’이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기가 쉽다. 수필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는, ‘붓가는 대로 마음 내킨 대로 쓴 글인데’의 겸사로 수필을 말할 수 있을지라도(사실 수필이란 말을 처음 쓴 사람의 의도는 그러한 것이었다), 문학인 수필을 놓고의 이러한 생각은 금물이다. 수필의 형식이 자유롭다고 해서 막연히 붓을 들고 원고지 앞에 잠깐 써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수필을 위해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작가에 따라서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원고지를 메꾸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는 대충의 구상만으로 붓을 잡았고, 써나가는 동안에 그 구상을 다져 갔다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도스토엡스키는 『죄와 벌』의 구상에 3년이 걸리고 몇 권의 노오트가 필요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길이에 있어서는 소설에 비할 바 없는 짧은 길이의 수필이래도 무엇을 내용으로 어떻게 엮어나갈 것인가, 주제·제재·줄거리의 구상은 필요하다.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의 ‘균형’과 ‘파격’을 생각하는 것도 구상에 포함되는 일이다. 수필의 초보자인 경우, 이러한 구상은 더욱 필요하리라는 생각이다. ⑶ 문장의 첫 귀절이라면, 글을 쓰는 이는 누구든지 경험한 일이겠지만 글에 있어서 최초의 1귀 같이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1귀, 이것을 얻기 위해서 말하자면 모든 문장가의 노심초사는 자고로 퍽 큰 듯 보이고 그만큼 이 1귀는 문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결정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문장을 있게 만드는데 흰 원고지의 유혹도 확실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어데서 졸연히 때늦이 솟아 나왔는지 모르는 이최초의 1장 같이 문장인에게 창조의 정력을 일시에 제공하므로 해서 팔면치구(八面馳驅)를 하게 하는 요소도 없을 것이니, 백 사람의 문장가를 붙들고 물어본다면 그 중에 여든은 가로되 이 최초의 1장이 얼마나 고난에 찬 최대최시(最大最始)의 문장적 위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모든 준비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도자임을 말하리라. 이는 김진섭의 「문장의 도」의 한 대문이다. 여기 ‘문장’을 수필로 바꾸어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수필이 짧은 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서두의 몇 줄은 독자의 흥미와 긴장을 이끌기 위해서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계용묵(桂鎔默)은 그의 수필 「침묵의 변」에서, 이 서두 1행 때문에 살이 깎인다. 8·15 이후 내가 들었던 붓을 놓고 침묵을 지키기 거의 이태이거니와 구상까지 다 되어 있는 것도 이 서두를 내지 못해 머리 속에서 그대로 썩어 나는 게 4,5개나 된다. 고 했다. 이는 물론 소설의 경우이지만 서두가 중요하다고 하여 지나치게 거의 집착하다 보면, 이처럼 아예 글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여, 이태준(李泰俊)은 서두를 쓰는 요령으로, ‘①너무 덤비지 말 것이다 ②너무 긴장하지 말 것이다 ③기(奇)히 하려 하지 말고 평범하려 하면 된다’의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다. 한 편 수필의 구상이 이루어졌으면, 주제나 제재, 또는 줄거리를 암시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그 서두를 시작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줄거리에서 서두를 이끌어 내고자 할 때에는 인물·시간·배경에 관한 말로 첫줄을 시작하는 것도 쉽게 풀어나가는 방법의 하나가 되겠다. ⑷ ‘최선의 책이란 그것을 읽는 사람이 나도 쓸 것 같다고 생각하는 책이다.’ 이것은 빠스깔의 말이다. 사실 그렇다.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다면 나도 쓸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책, 그것이 정말 잘 쓴 책이다. 얘기도 그렇다. 정말 훌륭한 이야기란 쉬운 말로 쉽게 하면서 그 속에 교훈과 생명이 배어 있는 말이다. 들어서 알 수 없는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 자신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대학에서 강의를 해보면 그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완전히 내 것이 된 지식일수록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아직 소화하지 못한 지식일수록 어려운 말로 어렵게 얘기하게 된다. 쉬운 말로 할 수 없으니까 어려운 말로 캄프라쥬하는 것이다. 문장의 호흡도 얘기의 호흡과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병욱(安秉煜)의 『문장도』에서 옮긴 것이다. 쓰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써야 하고, 읽는 사람은 쉽게 느끼고 젖을 수 있어야 한다.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라고 한 피천득의 인용은 알렉산더 스미스의 『On the writing of essays』에 있는 말이다. 누에가 토사구(吐絲口)로부터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드는 광경을 보면 지극히 수월스럽다. 이만한 ‘자연적인 유로(流路)’를 위해서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공정이 필요하다. 누에가 섶에 오르자면 넉 잠을 자고 다섯 돌을 맞는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 한 편의 수필을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처럼 쓰자면 먼저 아는 것이 많아야 할 것이다. 수필가에게 폭넓은 견문과 박학다식, 그리고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⑸ 꽃가게 앞에서 고전(古典)과 양장(洋裝)이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소담한 꽃묶음을 한 아름씩 안으며 맑고 아름답기가 첫애기를 기르는 산모와 같다. 이는 이동주(李東柱)의 「꽃」의 서두다. 정갈한 표현의 멋을 느끼게 한다. 비유가 시적이다. ‘고전’과 ‘양장’은 한복을 입은 여인과 양장 차림의 여인을 일컬음이다. 「꽃」의 중간에는, 사람도 그늘에 살면 생선처럼 상하기 마련인데 제마다 어둔 방, 이 한묶음 꽃을 고작 은촛대에 불을 켜듯 환히 밝히면 때로 후기(嗅氣)와 음습(陰濕)을 가시는 분향(焚香)일 수도 있는 일. 의 일절도 있다. 앞의 두 여인의 신분과 이들이 꽃묶음을 사든 까닭도 암시되어 있다. 「꽃」의 하반부(轉)에 가면, 취안(醉眼)으로 꽃을 대한 사나이란 죽순밭을 어질르는 악동(惡童)과 같이 심사가 사나와 화즙(花汁)으로 마구 문질러야 몸이 풀린다고. 의 구절이 있다. 이어서 이른바 홍등가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가 나오고, 비린 외어(外語)가 어색지 않다. 하룻밤 청춘이 박리로 팔리는데, 흥정에 따라 에누리가 있고 악착같은 거간이 붙는다. 정희와 희순이는 간간 나들이를 한다. 때로 꽃가게 앞에서 가지런히 발을 멈춘다. 로, 「꽃」의 결말이 맺어진다. 사람살이에 있어서도 그늘진 곳의 추한 이야긴데, 「꽃」을 읽으면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다. 조촐하고 정갈한 글발은 오히려 멋까지를 느끼게 한다. 수필은 읽어서 멋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멋은 글발에 배어 있는 유모어나 위트로 드러난다. 수필 쓰는 이는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읽는이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고 삼박한 재치를 안겨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일이다. 다음은 수필의 길이에 관한 문제다. 나는 『수필 ABC』에서 ‘길이는 되도록 3천자 내외로 하자’고 한 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수필을 써보고자 하는 초보자를 위해서 한 말이었다. 수필의 길이는 참치부제하다. 마해송(馬海松)의 「편편상(片片想)」과 같은 원고지 한두장의 짧은 길이의 것일 수도 있고, 이은상(李殷相)의 「무상(無常)」이나 김태길(金泰吉)의 「흐르지 않는 세월」처럼 한 권의 책이 되는 길이의 것일 수도있다. 수필을 쓰고자 할 때 이상 몇 가지를 유의하였으면 싶다는 것으로 들어 보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글이란 이론만으로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직접 써보면서 스스로 글 쓰는 법을 터득하는 길이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점에서, 수필 쓰는 법이 뭐네눠네 하는 너절한 이야기보다도 『후산시화(後山詩話)』에 나오는 구양수(歐陽脩)의 말, -간다(看多-多讀) -고다(做多-多作) -상량다(商量多-多思) 로 이 글의 결말을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양수는 문장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이 3가지를 들었지만, 수필도 먼저 문장이 되어야 하느니만큼, 이 3가지는 바로 수필에 익숙해지는 요령으로 보아 다를 것이 없겠다.◑ ◇최승범 문학박사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5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예총 전북지부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蘭緣記』, 『韓國隨筆文學硏究』, 『바람처럼 구름처럼』 , 『무얼 생각하시는가』, 『풍미산책』, 『거울』, 『蘭 앞에서』, 『3분읽고 2분생각하고』, 『朝鮮陶工을 생각한다』 등이 있다. 정운시조상, 현대시인상, 학농시가상, 가람시조문학상, 황산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69년 「전묵문학」을 창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전북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235. 맨발 / 문태준                                                   맨발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문태준 시집 중에서         문태준 약력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태화초등학교 졸업.        김천고등학교 졸업.(중고시절 백일장에서 수차례 입상.)   1989년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입학, 1995년 졸업.   1994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에서「處暑」외 9편 당선으로 등단.   1996년 불교방송 포교제작팀 PD.   2000년 시집 간행.   2002년 고대문인회 신인작가상 수상   2004년 시집 간행. 제17회 동서문학상 및 제4회 노작문학상 수상.   2005년 제3회 유심작품상 및 2005년 제5회 미당문학상 수상. 시동인 동인.   2006년 시집 간행. 제21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그맘때에는' 외 15편).   2008년 시집 간행.   2009년 첫 산문집 간행.   2012년 시집 간행.  ------------------------------------------------------------------- 236. 극빈 / 문태준                                                  극빈                                                 문태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문태준 시집 중에서     처음 수필을 쓰는 사람들을 위해  鄭 木 日  수필은 멀리 있지 않다. 나의 생활 곁에, 삶의 곁에 있다. 슬픔의 곁에, 눈물의 곁에, 기쁨의 곁에, 그리움의 곁에, 정갈한 고독의 한가운데에 있다.  삶과 가장 근접해 있는 문학이 수필이다. 원대하거나 화려하거나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수필은 자신의 삶과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맑고 투명한 거울이다. 한숨이 나오거나, 그리움이 사무칠 때나, 외로움이 깊어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 백지 위에 무언가 끄적거려 보고 싶어진다. 그냥 낙서일 수도 있고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이 '끄적거림'은 별 의식 없이 나온 것이지만 마음의 독백, 마음의 토로로서 이 속에 자신의 인생과 느낌이 담겨진다는 뜻에서 중요하다. 이 끄적거림이 발전하면 삶의 기록, 인생의 기록이 되며, 문학으로 승화될 수 있다. 기록한다는 것은 자아(自我)의 발견이며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일이다.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역사의식과 영원성을 수용하게 된다.  기록은 삶을 성찰하여 새로운 삶을 꿈꾸며, 의미와 가치를 창출하는 작업이다. 기록하는 일을 통해 삶은 더욱 진지해지고 충실해지며 가치로워진다. 기록은 사실 그대로를 쓴 것이다. 체험(사실)에다 상상과 느낌을 보태어 재구성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수필이다. 기록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수필은 사실에 상상과 느낌을 불어넣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 낸다. 우리 삶의 얘기가 그냥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수필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상상과 의미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필은 누구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일기, 고백, 기행, 감상, 편지- 어느 형식이든지 자유롭게 마음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필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수필을 쓰기 위해선 동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과의 대화에 과장과 허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긴장을 풀고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장신구도 떼어내고 화장도 지워버리고 홀가분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침실에 눕거나, 턱을 괴고 앉아 친구에게 마음을 토로하듯 쓰는 글이다. 애써 잘 쓰려는 의식이나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도 없이―. 권위의식, 체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일체의 수식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무구의 마음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에서 치장하고 수식하고 싶어 안달을 부리게 된다. 겨울 언덕에 선 벌거숭이 나무처럼 녹음· 꽃· 단풍도 다 떨쳐버린 맨 몸으로 보여주는 진실의 아름다움을 가져야 한다. 수필이 '마음의 산책' '독백의 문학'이라 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과의 만남,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창출해 내는 문학임을 말한다.  수필의 입문(入門)은 어느 문학 장르보다 쉽지만 수필의 완성은 실로 어렵다. 성공한 인생은 많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쉬웠지만 점점 들어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글이 수필이다. 시, 소설, 희곡 등 픽션은 작가와 작품이 일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논픽션인 수필의 경우엔 작가와 작품이 일체가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경지에 따라 수필의 경지가 달라진다. 수필은 인생의 거울이므로 사상, 인품, 경륜, 인생관 등이 그대로 담겨진다. 심오한 사상, 고결한 인품, 맑고 따뜻한 마음, 해박한 지식, 다양한 체험이 수필을 꽃피우는 요소이고, 이런 인생 경지에 도달한다는 자체가 구도, 자각, 실천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수필은 완성의 문학이 아니라, 그 길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문학이다. 수필은 자신의 삶을 통한 의미와 가치를 최상으로 높이는 도구다. 수필을 쓰려면 무엇보다 겸허하고 진실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꽃피우는 문학이므로 스스로 교만과 허위의 옷을 벗어야 한다. 마음속에 항상 자신의 영혼을 비춰 볼 수 있는 거울을 깨끗이 닦아 두어야 한다. 마음속에 양심의 종을 매달아 두어서 불의나 탐욕의 손길이 뻗힐 때 스스로 자각의 종소리를 내게 해야 한다. 마음속에 맑고 깊은 옹달샘을 파 두어서 거짓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얻은 사람이라면, 진실과 겸허의 눈으로 말하고 좋은 수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마음속의 울림 그대로를 끄적거려 보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낙서라고 해도 좋다. 단 몇 줄의 문장을 만들고 점차 자신의 마음을 토로해 나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수필과의 만남을 얻게 될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습성을 가지는 일이 수필을 쓰는 첩경이 된다. 삶의 기록이 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① 체험의 서술  ② 체험 + 느낌  ③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④ 체험 + 느낌 + 인생의 발견, 의미부여 + 감동  ①은 자신이 겪은 대로 쓴 것이어서 기록문에 불과하다.  ② 수필이 되려면 체험과 느낌이 조화를 이뤄야 함을 말한다. 체험이 많고 느낌이 적을 땐 정서감이 부족하여 딱딱하게 느껴지고, 체험이 적고 느낌이 많은 경우엔 추상적이고 현실감의 결여를 느끼게 한다.  ③의 수준이면 수필에 진입한다. 수필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창출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④의 경우엔 '감동'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이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한 글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나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고 읽는 보람을 안겨 주기 위해선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문학성의 핵심 요소이다.  수필은 삶의 문학이다. 수필 쓰기는 자신의 삶을 가치롭게 꽃피우는 자각과 의미 부여의 행위이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의미의 꽃으로 피워낼 수 있을까, ― 이것이 수필을 쓰는 핵심이며 궁극적 목표가 아닐 수 없다.   =========================================================================   239. 논산 백반집 / 문태준                           논산 백반집                                               문태준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 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 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 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문태준 시집 중에서 -----------------------------------------------   240. 불만 때다 왔다 / 문태준                   불만 때다 왔다                                                  문태준   앓는 병 나으라고 그 집 가서 마당에 솥을 걸고 불만 때다 왔다 오고 온 병에 대해 물어 무엇하리, 지금 감나무 밑에 감꽃 떨어지는 이유를 마른 씨앗처럼 누운 사람에게 버들 같은 새살은 돋으라고 한 계절을 꾸어다 불만 때다 왔다     문태준 시집 중에서       
305    조선말 큰사전이 나오기까지... 우리 말 우리 글 아끼자... 댓글:  조회:7049  추천:0  2016-01-15
우리말 큰 사전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   [한글학회, 독립기념관 소장 / 수량 17건, 생산년도 1929년~1942년 /  지정일 2008년 11월 3일]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는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사전 편찬을 위해 1929년부터 1942년까지 13년 동안 작성한 원고의 최종 수정본이다. 이 원고는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의 증거물로 일본 경찰에 압수되었다가 1945년 9월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어 되찾게 된 것이다.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는 순수 민간단체가 편찬을 시도한 사전이라는 사실과 최초의 우리말 대사전인 의 13년간의 편찬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국어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현 한글학회 / 한글학회(옛집)1958년부터 1976년까지 한글학회 사무실                                                                    / 한글학회 창립터(1908년 국어연구회 창립터인 현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한글학회 회원 기념사진 (1959. 7. 19)     한글학자들의 겨레사랑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는 대한제국기 주시경, 이능화 중심의 국문연구소를 연원으로 하여,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에서 현재 한글학회까지 100여 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21년 ‘조선어연구회’ 가 재조직되고, 1931년 ‘조선어학회’ 란 이름으로 다시 창립되었다.    ‘조선어학회’는 한글날 제정(1926) ,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 표준말 사정(1936), 초·중등 교과서 편찬(1945)등 우리말과 글을 보급하고 국어학의 발전과 민족교육 재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49년 ‘한글학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글학자들의 겨레사랑   일제는 1942년 10월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높임으로써 궁극적으로 민중봉기를 통해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 라 칭하며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학회 관계자들을 검거·투옥하였다.   조선말 사전 편찬 관계자 33인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몰아 투옥시키고 온갖 고문을 자행하였다. 애써 이룬 우리말 사전 원고를 압수하였고, 이윤재, 한 징 두 분 선생은 옥중에서 돌아가셨다.                   가람 이병기     건재 정승인    고루 이극로        권승욱              김종철         남저 이우식    노산 이은상     눈솔 정인섭                   동운 이중화     또나 이석린     무돌 김선기     민세 안재홍     백수 정열모    법상 김법린     상산 김도연    석인 정태진                       신윤국            안호상           애류 권덕규      애산 이인       야자 이만규     약영 김양수     연아 서승효    열운 장지영                     외솔 최현배     월파 서민호    일농 장현식    일석 이희승     창남 윤병호     추정 이강래    한결 김윤정     환산 이윤재                      효장 한징       가람 이병기    건재 정승인   고루 이극로         권승욱           김종철        남저 이우식       노산 이은상                    눈솔 정인섭     동운 이중화   동운 이중화     무돌 김선기     민세 안재홍     백수 정열모   법상 김법린    상산 김도연                  석인 정태진        신윤국             안호상         애류 권덕규     애산 이인      야자 이만규   약영 김양수     연아 서승효                       열운 장지영   외솔 최현배   월파 서민호     일농 장현식     일석 이희승   창남 윤병호   추정 이강래    한결 김윤정         환산 이윤재    효장 한징        사민필지 1,2 (1891~1895)(1891),  소장처 : 한글학회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미국 선교사 헐버트 박사가 한글로 지은 세계지리책으로 헐버트박사는 주시경 선생의 스승이기도 하다.     마침보람(1907),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07년 상동 청년학원의 여름 국어 강습소 수료증으로 주시경 선생이 준 「마침보람」이라는 글귀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한글모죽보기 (1907~1917)(1907),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07년부터 1917년까지 10년에 걸친 조선언문회의 활동을 기록한 책으로 연혁, 회록 등 8부로 구성되어 있다. 1910년 전후의 국어 운동 및 근대 국어학사의 유일한 자료로서 매우 귀중한 책이다.     깁더조선말본(1922),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김두봉이 지은 국어문법책으로 1916년에 지은 조선말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순한글로 되어 있으며 부록으로 가로풀어쓰기를 제시한 '좋을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어 큰 사전 편찬원고 (1929~1942)(192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 원고는 원고지 2만 6천 5백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총 17권으로 구성되어 있음. 12권은 한글학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나머지 5권은 한글학회에 의해 독립기념관에 기증되어 보관되고 있음.     조선어 큰 사전 편찬 원고(1_붇다_?다)(1929~1942)(192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원고 중 'ㅂ' 부분이다     조선어 큰 사전 편찬 원고(2_시-싶) (1929~1942)(192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 원고 중 'ㅅ' 부분이다.     조선어 큰 사전 편찬 원고(3_외-우측통행) (1929~1942)(192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 원고 중 '외 - 우축통행' 부분이다.     조선어 큰 사전 편찬 원고(4_우층-윙윙) (1929~1942)(192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 큰사전 편찬 원고 중 '우층 - 윙윙' 부분이다.     한글 첫걸음(1945),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45년 11월 6일 조선어학회가 짓고 군정청 학무국에서 발행한 것으로 한글을 가르치기 위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수준의 교과서이다. 광복 후 우리나라의 국어교육은 이 책의 발행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어학회 지은 조선말 큰사전(1947),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말 큰사전은 1929년에서 1957년까지 모두 6권(64,125말수)이 발간되었고, 사진의 책은 까지의 제1권이며 광복 이후에 발간한 첫 번째 책이다.     조선어 음성학(1947),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실험음성학의 기초가 되는 음성 실험의 방법과 음성의 생리, 악센트, 홀소리(모음) 발생의 이치와 닿소리(자음)발생의 이치를 분석하고 있다     정태진 고어독본(1947),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시대 역관의 외국어 교재에 사용된 고어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한글전용에 관한 건(1957),  소장처: 국가기록원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57년 12월 문교부에서 국무회의에 상정한 문서로 정부 각 기관에서 한글을 전용하자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글전용 적극 추진에 관한 건(1957),  소장처: 국가기록원 /  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57년 한글 전용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로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 쓸 것, 고유명사와 학술용어로서 혼동하기 쉬운 부득이한 용어만은 당분간 한자를 괄호안에 표기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의문, 해설 한글강화(1960),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37년 9월부터 1963년 9월에 걸쳐 조선어학회 정기 간행물인 「한글」지의 질의 응답난에 실린 한글 맞춤법, 표준말, 소리문제, 한자어와 외래어 문제 등에 관련된 내용을 모아서 펴낸 한글 해설서이다     조선표준어 사정위원회 회원들의 기념촬영(1935),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표준어 사정위원회 회원들의 기념 촬영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기념촬영(1945),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45년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기념 사진     500돌 한글날 기념식(1946),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한글학회 회원들이 덕수궁에서 500돌 한글날 기념식을 마치고 찍은 사진     제1회 세종중등양성소 졸업기념(1950),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조선어학회가 1948년 중등 국어교사의 양성을 위해 설립한 세종중등양성소의 제1회 졸업 기념사진(졸업식 1950년 6월 24일)     한글학회 창립터(1959),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08년 설립된 국어연구회 창립터에서 찍은 한글학회 회원 기념사진 (현 서울시 서대문구 봉원사)       한글회관,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서울시 종로구 화동 시절 조선어학회 회관의 모습       한글학회,  소장처 : 한글학회 /   조선말 큰사전 편찬 원고   1977년 10월 9일 현재 한글회관 모습   [출처] 우리말 큰 사전 [국가지정기록물 제4호]|작성자 ohyh45  
304    쉼터 - 酒黨(주당) 10杰 댓글:  조회:5315  추천:0  2016-01-14
한국의 주당 10걸 주당 10걸의 선정기준은  1) 주량, 2) 마시는 스타일, 3) 스케일, 4) 지구력- 평생을 즐기는 끈기, 5) 사람을 감화시켜 세계의 주당 인구를 늘린 기여도 등을 그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1) 황진이 (생몰년 미상, 조선 중종때의 명기. 본명은 眞, 妓名 明月)  고금을 통틀어 각계 인사들이 추천한 주선은 모두 140명. 두주 불사의 주량과 풍류가 특출한 당대의 호걸들을 망라한 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 나라 최고의 주선으로 황진이가 선정되었다. 樂酒終生의 기라성 같은 대장부들을 젖히고 가장 많은 17명의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서화담, 박연폭포와 더불어 松都三絶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여성으로서 일종의 당연직'처럼 추천을 받은 셈이다(張德順). '동짓달 기나긴 밤', '산은 옛 사이로되',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란 시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뛰어난 시서음률과 술로 당대의 문인, 碩儒들을 매혹시켰다는 점을 높이 샀다(김정옥, 김종길, 이어령, 朱宗恒, 사기주 제씨). 말하자면 주선 중의 주선이자 '한국적 낭만파의 거장'(최정호)으로 떠올려진 셈.  2) 수주 변영로 (1898-1961, 시인, 성대교수) 술과 시로 자기 이상에 취해 살다간 樹州 변영로이다(김용성, 송지영, 신우식, 이규동, 전봉건 등). 두주 불사의 기행을 담은 을 보면 그는 이미 대여섯 살 때 술독에 기어올라가 술을 훔쳐 마신 천부적인 모주꾼이다. 또 이 수필집에서 그는 성균관대 뒷산에서 공초 오성순, 성제 이관구, 횡보 염상섭 등과 함께 술에 취해 벌거벗고 소를 탄 기상천외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3) 조지훈 (1920-1968, 시인 고대교수)  시인 조지훈을 두고 "신출 귀몰의 주선" 또는 "행동형의 주걸"이라고 한다(김용권, 김진찬 씨). 통금은 안중에도 없고 "야밤에 酒朋의 집을 습격, 대작하다가 새벽에 귀가하기가 예사였다(정한모 씨)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한다(백인호, 이광훈 씨). 그는 밤새 눈 한번 붙이지 않고 통음을 해도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4) 김삿갓 (1807-1863, 본명 炳淵, 호 蘭皐. 방랑시인)  삼천리 방방곡곡을 떠덜며 풍자와 해학으로 세상살이의 고달품을 노래한 시인 김삿갓은 풍류가 넘치는 주선이다. 장원급제는 했으나 자신이 홍경래난 때 항복한 宣川 방어사 김익손의 손자임을 뒤늦게 알고 일생을 방랑하며 술과 시로 보냈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사를 주고 술을 얻어 마셨다는 등 많은 시를 남겼다.  5) 김시습 (1435-1493, 호 梅月堂, 생육신의 한 사람)  생육신의 한 사람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의 작가인 매월당 김시습도 한 시대를 풍미한 주선이다. 그는 당대의 비리를 닥치는 대로 조롱하며 중이 되어 산천을 주유할 때도 툭하면 시내로 들어와 대취한 채 거리를 누볐다. 당시의 領議政 鄭昌孫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쁜 놈, 영상이고 뭐고 집어치워라" 하고 일갈했을 만큼 세상과 담을 쌓으며, 한평생을 술과 방랑으로 보냈다. 6) 임제 (林悌, 1549-1587, 호 白湖, 예조정랑. 조선의 문장가)  백호는 우리나라의 '주선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이다(송지영 씨). 황진이의 묘 앞을 지나가다 지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의 시조는 그의 호방한 기질을 잘 나타내 준다. 일생을 술로 벗삼으며 봉건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가운데 詩文으로서 인간미가 돋보이는 저서 을 후세에 남겼다.  7) 김동리 (金東里 1913- 본명 始鍾, 소설가, 중앙대 교수) 4살 때부터 술을 입에 댄 타고난 애주가로 아려졌다. 술이라면 청탁불문의 주량 제일주의자. 그러면서도 끝까지 주석을 이끄는 대주가로 명성을 얻었다(이해랑, 조경희 씨). 음치이면서 주석이 익으면 노래를 즐겨 부르고, 매일 저녁상 앞에서 취할 때까지 반주를 든 다음 식사를 하는 애주가이기도 하다.  8) 임꺽정 (林巨正 ?-1562, 조선 명종때의 의적)  신출귀몰의 의적으로 관가를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재물을 털면서도 유유히 한양에 나타나 술을 마셔댄 임꺽정을 두고, '심장에 털난 주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백정 출신으로 서민이던 그는 조선조 명종 10년(1555년)에 도둑의 우두머리가 되어, 12년간 황해도 일원에서 탐관오리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의적으로 종횡무진 누볐다. 그런 외중에서도 한양에 4명의 애첩을 두어 거느리고 술을 마셔댄 배짱 두둑한 사내.  9) 대원군 (大院君 1820-1898)  대원군은 왕권을 손아귀에 쥐기 전 막강한 세도가들을 의식, 철저히 파락호로 위장해 술로 야망을 불태운 술의 영웅이다(최일남 씨). 세도가들의 잔치집이나 詩會에 나타나 술을 얻어먹고 대감의 품계를 가지고 여염집 상가를 버젓히 드나들었다. 때론 시정의 잡배들과 어울려 대작을 하는가 하면, 투전판에까지 끼어 들기도 했다. 술값이 떨어지면 난초 그림을 팔아 충당하면서 그는 술독에 파묻혀 민심의 동향을 살피고 세도가들의 정보를 입수하였다. 훗일 야망을 달성한 뒤에는 파락호 시절의 주붕인 심복들을 중용해 술과는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주선이다.  10) 원효대사, 연산군, 마해송, 심연섭, 박종화  이들은 각기 5명씩의 추천을 받아 나란히 10위에 오른 주선이다.  원효는 고대 인물가운데 유일하게 주선의 반열에 올랐다. 화엄종의 고승으로서 신라 무열왕 때 요석 공주와 사랑을 나눠 대유학자 薛聰을 낳은 승려. 화엄경을 노래로 지은 를 부르며 시정의 술집까지 출입, 기녀들에게 불법을 전파하였다. 범사에 구애받지 않고 비파를 타며'깊은 삶의 멋과 슬픔'을 노래한 행동형의 주선이다(이홍구 씨등 추천).  주지육림 속에 묻혀 산 주선으로는 단연 연산군이 으뜸이다. 채청사, 채홍사를 두고 8도의 미녀들을 뽑아 춤과 술과 노래를 즐기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인 주선이라고 불린다.  마해송은 '따뜻한 청주 한 잔을 컵에 따라 1시간 동안 핥아 마시는 술의 신사요 선비'라고 일컬어 지기도 한다(남재희 씨). 방안에는 늘상 술과 안주를 준비해 두고 주야불문 조금씩 마시는 선비풍의 기질을 지니며 술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칼럼리스트 심연섭은 일반적으로 소문난 언론인 중 첫손에 꼽히는 애주가였다(백승길, 임승준, 임영 씨 등). 서울 명동 무교동 일대의 단골 술집이 칼럼의 산실이었고, 스스로 '한국에서 술 맛을 가장 잘 아는 언론인'이라고 자랑스레 말하며 술과 함께 살다가 갔다.  月灘 박종화는 한창 마실 때 동대문과 종로를 오가며 50사발의 막걸리를 마신 일화를 남기고 있다. 玄鎭健, 金基鎭, 李象範 등 당대의 모주꾼들이 모두 주봉들. 일생을 술과 원고지에 묻혀 지낸 주선으로 "댁에서 내놓은 술도 좋았지만 알찌개 등 술안주가 별미였다"고 회고하는 인사도 있다(송지영, 정한모 씨 등).  비록 10걸에 들지는 못하였지만 술을 마시면 '기생의 치마폭에 시를 써주던 대주선' 고려 때 문장가 이규보(이어령 씨 등)와 집을 팔아 술을 마시며 "내가 네안에 들어가 살았으니 이젠 내 안에 들어와 보라"라며 웃은 국어학자 權德奎(이흥우 씨)도 특출한 주선으로 손꼽힌다. 여성으로는 모윤숙, 최정희 씨 등이 추천되기도 했고, '꿈의 정치, 환상과 현실을 술로 달랜' 여운형이 주선의 후보에 오른 것도 이채롭다. ================================//////////////////////==============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시내로 나갔다. 박태순 이문구 그리고 정규옹과 소주를 마셨다. 정규옹이 돈이 생겼다 했다. 내가 외상술 내려고 그들을 사슴으로 데려갔다. 실컷 마셨다. 외상은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결국 맥주라는 양잿물을 실컷 마시고도 죽지 않았다. 정규옹의 집으로 가서 술을 이어갔다. 박태순의 아버지 집으로 가서 이어 갔다. 대취. 거기서 뻗었다.” 시인 고은의 일기 ‘바람의 기록’ 중 1976년 2월24일 일기다. 시절이 시절이니 만큼 문인들은 몇몇 출판사를 사랑방삼아 오가며 반가움에, 또 분노와 쓸쓸함에 술에 취했다. 평생 술로 벗삼아 온 고은 시인은 술이 들어가야 말이 나올 정도로 술은 목을 축이는 물이고, 깊은 샘을 끌어올리는 마중물이다.  시인과 소설가에게 술은 밥보다 더 가깝다. 술신을 꼽자면 우선 천상병 시인이 앞 자리를 차지할 법하다. 막걸리 두 되면 그는 행복했다. 시인의 술값은 주로 친구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그는 당당했고 친구들도 으레 그려려니 했다. 이 술추렴이 화를 불러 그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어려움을 겪는다. 어느 시인의 집에서 값나갈 만한 책을 훔쳐 헌 책방에 판 일도 유명하다. ”술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한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하다//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술’) 시란 낯설게 보기를 통해 세상의 진실에, 실체에 다가가는 것이라 할 때 세상과의 공감능력이 탁월하고 감각이 예민하게 열려있는 시인에게 세상과 사물을 흐리멍텅하게 해줄 술은 생활필수품인지도 모를 일이다. 술신의 계보를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간의 음주 명분을 제공해온 소설 ’술권하는 사회’의 30년대 소설가 현진건이 있다. 그는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면 몇날 며칠씩 술 마시고 밤새워 글을 썼다. 술 취하면 옆으로 걷는다 해서 ‘횡보’란 호가 붙은 소설가 염상섭은 한번 마시면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 술을 마셨다. 염상섭의 주량은 장안의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우리 문단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술담의 압권은 오상순, 염상섭, 변영노, 이관구의 ’우중 승우‘(雨中乘牛)사건이다.. 어느 대낮, 넷은 당시 모 중학 통신관이라는 학교 뒤 정원으로 가서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 안주를 사오게 하고 대낮에 거나한 술판을 벌였다. 그 와중에 한 여름 소나기가 주룩주룩 내렸고 피하기는 커녕 술판은 이어졌다. 그 때 오상순이 벌떡 일어나 자신의 옷을 찢으며 벌거숭이가 됐다. 그의 호기에 나머지들도 동조, 모두 나체가 됐다. 객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중 한 사람이 근처에 매어놓은 소를 끌고 와 올라타자 모두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를 타고 시내 한복판으로 나섰으니 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개운하다.  
303    쉼터 - 재밋는 별의별 축구 댓글:  조회:5583  추천:1  2016-01-06
좀 길어ㅠ... 그냥 즐기기~~~ 100m짜리 골 97년 7월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토너먼트에서 GK 다렌 캐슬이 골킥한 공이 상대편 골 안으 로 들어갔다(축구장의 길이 110m). 이 골은 보름전인 97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FIFA축구규정 개정에 따라 인정받았다. 최다골 패국제경기 -카자흐스탄 20:1 괌. 97.5/13(울산. 동아시안 게임)클럽경기-영국의 트레이츠그렌즈콜이 엘던스포츠 리저브를 49:0으로 이김. 88.11/13잉글랜드 알렌 FC 134:1 무라초스트. 최고령선수월드컵 외의 국제대회 최고령선수는 1920년 3월 15일자로 45세 229일의 윌리엄 헨리 빌리 메레데스. 그는 1985년-1920년까지 26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최다골기록한 시즌 개인 최다골 *1928년 잉글랜드의 Dixie Dean이 60골 득점한경기 개인 최다골 *1936년 Joe Payne(Luton클럽)이 Bristol Rovers와의 경기에서 10골을 넣었다. 최단시간 골 FIFA사상 최단시간골-2.5초. 1998년 12월 26일 우루과이의 도시대항 축구경기에서 소리아노팀의 리카르도 올리베(22세)가 프레이 벤토스전에서 경기개시 2.5초만에 골을 터뜨려 FIFA의 공식인정을 받았다고 dp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최다반칙경기 세계축구 사상 한 경기 최다반칙 기록이 브라질에서 세워졌다. 2000년부터 브라질 챔피언쉽(the Brazilian championship)을 주앙 아벨랑제 컵(the Joao Havelange Cup) 으로 바꿔 열린 첫 대회 Gremio와 Ponte Preta의 경기(2000년 11월 22일)에서 무려 77개의 반칙이 나와 한 경기 세계 최다반칙을 기록했다. 한 신문기자는 "이 경기 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브라질 국내의 경기들은 평균 55개의 반칙을 기록할 정도로 거칠다."고 말했다. 신문 컬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는 Tostao(1970년 월드컵에 펠레와 함께 출전했던 선수)는 "더 이상의 반칙이 나오지 않은 것은 경기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난폭한 경기는 처음 본다. 감독들 중에는 승리 만을 염두에 두고 노골적으로 선수들의 반칙을 부추긴 사람도 있었다. 서글픈 일이다."고 개탄했다.Cruzeiro의 감독 Luiz Felipe Scolari는 "선수들에게 반칙을 하도록 허용했다. 다른 감독들도 마찬가지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는 그런 말을 할 용기와 솔직함에 칭찬을 받았다. 도둑질한 선수 남미의 어느 나라 프로축구 경기에서 한 선수가 금목거리를 분실했다. 경기 후에 TV중계 녹화테이프를 살펴본 결과 상대팀 선수가 금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GK의 득점해트트릭-칠라베르트" 골키퍼가 세계 첫 해트트릭 GK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프로축구 사상 초유의 일어났다. `골넣는 GK' 칠라베르트(34.파라과이.벨레스 사스필드)는 29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아르헨티나 프로리그 페로 카릴 오에스테와의 경기에서 혼자 3골을 뽑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칠라베르트가 이날 뽑은 3골은 필드골이 아닌 PK골이지만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프로축구가 탄생한 이래 세계최초의 기록. 특히 지난 7월 코파아메리카대회에서 국가대표 골잡이 팔레르모(보카 주니어스)가 1게임에서 3개의 PK를 실축, 콜롬비아에게 0대3으로 대패하는 것을 지켜봤던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에게는 경이로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속 프로팀과 파라과이대표팀에서 PK와 프리킥 전담 GK로 세계 축구팬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칠라베르트 이번 해트트릭으로 개인통산 46번째 골을 기록했다. 칠라베르트는 지난 7월 "내 조국 파라과이는 코파아메리카 같은 큰 대회를 개최할 만큼 부유하지 않다"며 자국 정치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국가대표 소집을 거부한 바 있는 괴짜 GK로도 유명하다. 이날 경기전까지 5위를 달리고 있던 벨레스 사스필드는 칠라베르트의 활약으로 6대1 대승을 올리며 상위권도약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최초의 득점-제임스 맥컬리(스코틀랜드)는 대표팀 GK로 1882년 3월. 웨일즈와의 경기에 FW로 나서 1골을 뽑는 등 5-0승을 이끌었다. A매치 1호골-아일리히 스타초(제코슬로바키아)는 59년 5월.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PK를 성공시 켜 공식 국가대항전에서 득점한 1호의 GK다. 그는 56-62년까지 7년간 체코 1부리그에서10개의 PK를 성공시키기도했다.GK최다득점 1위(1999년 11월 30일 현재)-칠라베르트(파라과이. 소속-아르헨티나 벨레스 사르스필드)는 46골(프로리그에서 37골, 리베르타도레스 1골, 레코파 1골, 슈퍼코파 3골, 대표팀에서 4-98코파컵 아르헨 후28분 PK골).리베 플레이트전 55mFK골을 성공시키기도.하프 타임에 해임된 감독1999년 12월 16일 독일 프로축구 2부리그 포르투나 쾰른의 하랄트 ??마허(45세)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하프 타임에 해고됐다. 슈마허 감독은 홈에서 벌어진 발트호프 만하임과의 경기에서 전반을 2-0으로 진 채 끝난 뒤 구단측으로부터 전격 해임됐다. 구단은 감독과 함께 랄프 밍게 코치까지 해임했다. 슈마허 감독은 82년 스페인월드컵 본선에 독일팀 GK로 출전했었다. 슈마허는 1998년 7월 쾰른팀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감독과 코치 없이 벌인 후반전에 쾰른은 3골을 더 잃어 5-1로 패했다. 연습중 벼락맞아 잇단 참변 축구선수 2명이 연습중에 벼락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0년 5월 30일(한국시간) 세르비아 공화국 남부지역 니스에서 동료들과 연습중이던 이반 크르스티치와 래드니치키가 갑자기 내린 벼락에 맞아 사망했다. 또 주위에 있던 동료선수들도 벼락에 맞아 심한 쇼크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습중 벼락을 맞은 일은 전세계에서 자주 있었는데, 지난 2월 7일 인도에서는 운동장에서 연습중인 고등학생 4명이 벼락에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최고령(50세) 프로선수 현역 프로축구선수로 가장 고령인 50세의 선수가 유럽의 몰타에서 뛰고 있다(2001년 7월 24일 현재). FIFA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0년 12월 26일로 만 50세가 되는 Charles Mifsud라는 선수는 몰타의 톱 리그 St Lawrence Hotspurs클럽(Gozo섬 연고) 소속으로 정규 선발출장 멤버이며, 대개 90분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고 한다. FIFA의 홈페이지 Magazette는 이 선수가 지금까지 발견된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로 소개하고 있다.  심판에 관한 일화들 심판의 등장1845년 영국의 이튼에서 축구경기에 심판이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심판(Referee)'가 아니라 '엄파이어(Umpire)로서 경기장 밖에서 조정역할 만을 했다. 축구는 신사들의 경기로 문제를 자율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이나 학교마다 다른 규칙이었으나 스스로 적용했다. 그래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문제만 엄파이어(Umpire)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판정을 했다.1848년 이튼에 있는 공립학교들을 대표하는 14명이 캠브리지 규칙(Cambridge Rules)으로 알려진 축구규칙을 처음으로 통합 정리했다. 이 때도 심판에 관해서는 별도의 규정이 없었다. 1874년에 와서야 영국축구협회(FA)가 심판에 관해 거론했다. 1891년에 드디어 프로리그에서 엄파이어를 없애고 경기장 안에 1명의 레퍼리와 밖에 2명의 선심(Linesman)을 채용했다. 지금은 라인즈맨(선심)을 부심(Assistant Referee)으로 개칭했다.주심의 휘슬은 1878년 잉글랜드 노팅엄 포리스트 경기장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축구심판의 유니폼도 전통적으로 검은색이었으나 1994년 미국월드컵 때 다양한 색의 심판복이 선을 보였고, '98프랑스 월드컵부터 다양한 심판복이 공식화됐다. 일찍 분 종료휘슬 -브라질의 알메이다 레고(Almeida Rego)는 30년 우루과이대회 아르헨티나(1:0)프랑스 경기에서 후반 6분을 남겨놓고 종료휘슬을 불어 아르헨티나가 승리하는 간접적인 도움을 줬다. 휘슬을 부는 순간 프랑스의 랑귀에르(Languieller)가 득점가능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 혼란 뒤에 경기가 재개됐으나 프랑스에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다. 도둑맞은 프리킥 -70년 멕시코대회 1조 멕시코와 엘살바도르 경기. 엘살바도르의 FK을 멕시코선수가 몰래 차 득점까지 했다. 주심 영국의 테일러(Taylor)는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멕시코4-0승일방적인 경기 시작-70년 멕시코대회 4조 서독과 모로코 경기. 주심 네덜란드의 반 라벤스(Van Ravens)는 모로코선수 일부가 경기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후반시작 휘슬을 불어 GK 카소우(Kassou)가 허둥지둥 달려가기도. 주심의 집에 도둑 -74년 서독대회대회 개막전 서독과 칠레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주심 터키의 바바칸(Babacan)의 아내와 딸이 이웃집에서 TV중계를 보고 있는 사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 선수 폭행한 주심 영구제명 -2000년 5월 28일 마카오에서 있은 마카오와 홍콩(홍콩 1-0승)의 친선경기 중 주심이 선수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이 1-0으로 이기고 있던 후반 36분 경 마카오의 아마츄어 심판인 주심 최 ?o쿤(Choi Kuok-Kun)이 반칙과 욕설을 한 홍콩의 측면 공격수 리 킨워(Lee Kin-Wo. 31세)에게 퇴장명령을 내렸다. 퇴장명령을 받은 리가 돌아서면서 주심의 가슴에 공을 차자 주심이 리의 머리를 주먹으로 몇 차례 때렸다. 곧 이어 양 팀 선수들이 말려 사태는 진정됐다. 이 장면은 TV를 통해 홍콩과 마카오의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방송됐다.이 사건을 심의한 마카오축구협회(MFA : Macu Football Association)는 이틀 후인 5월 30일 주심 최 ?o쿤을 영구제명했다. 마카오축구협회는 아시아축구연맹(AFC)과 세계축구연맹(FIFA)에 최 ?o쿤의 아마츄어 심판 자격증을 박탈하도록 건의하는 한편 홍콩축구협회에도 선수 리 킨워에 대해 주심의 처벌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내려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했다.홍콩축구협회는 리 킨-워에 대해 2000년 5월 28일부터 1년간 모든 축구활동을 정지시키고 벌금 10,000홍콩달러(미화 1300$)를 병과했다.-2000년 11월 11일(토) 버뮤다(Bermuda)의 리그경기에서 퇴장명령을 받은 선수가 주심에게 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버뮤다 축구심판들이 최소한 12월 1일까지 파업에 들어갔다. 버뮤더축구협회(BFA)는 11월 후반의 모든 축구경기를 연기하는 한편 폭행한 선수에게 12년 간의 출전정지 제재를 내렸다. 사건의 발단은 11일 벌어진 North Village Rams와 Muff Dogs의 경기 12분에 엘로우 카드를 받은 Kacy Simons(36)라는 선수가 주심 Perry Scott에게 외설스러운 몸짓을 해 다시 레드카드를 받았다. 걸어나가던 Simons가 갑자기 주심에게 돌진해 얼굴을 가격했다. 쓰러진 주심은 즉시 병원으로 이송돼 코의 수술을 받았다. '94월드컵 결승전 주심 Puhl 은퇴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브라질 : 이탈리아)의 주심을 맡았던 헝가리의 Sandor Puhl이 2000년 7월 24일 은퇴했다. 45세로 은퇴한 풀은 1984년부터 헝가리 1부리그 주심으로 225경기를 뛰였다. 국제심판으로는 같은해 체코슬로바키아 : 노르웨이 친선경기(부라티슬라바)에 데뷔했다. 중요한 국제경기를 맡은 것은 199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스웨덴)였다. 1년 뒤 UEFA Cup 결승전(Juventus : Borussia Dortmund)을 비롯해 1997년에는 European Cup 결승전(Juventus : Borussia Dortmund)을 관장하기도 한 그는 "프로축구 심판으로서 나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다."고 말했다. 심판, 경기전 성관계 '레드카드'경기 전 성관계를 하는 축구심판에게 레드카드를 준다. 잉글랜드 프레미어리그는 판정수준 향상을 위한 조치의 하나로 내년 시즌부터 심판이 원정경기 전 묵는 호텔에서 여자와 함께 있지 못하도록 의무화했다고 2001년 7월 1일자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필립 돈 신임 프레미어리그 심판위원장은 “침실 금지령은 경기 전 심판의 집중력이 흐려지는 것을 막는 프로적인 접근방식”이라고 강조하고 “전날 밤 섹스가 심판을 지치게 한다는 염려에서가 아니라 심판들간의 우의를 도모하는 차원에서 규정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중국법원, 부패 축구심판 10년형 선고중국 법원이 뇌물을 받은 축구 심판에게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하는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했다고 중국관영 CCTV가 2003년 1월 29일 보도했다. 문제의 심판은 공 지안핑으로 지난 2001년에 중국 축구계를 뒤흔들었던 심판 뇌물 스캔들에 연루됐던 수십 명 가운데 한 명이다. 법원은 공 심판이 모두 4만5천달러 가량의 뇌물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이심판이 뇌물의 대가로 어떤 편의를 봐주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경기 최다골/ 해트트릭기록1경기 최다골클럽경기-축구사상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는 폴란드 태생의 스테판 스타니스로 레이싱 소속의 그는 1946년 12월13일 프랑스 1부리그 레이싱-오브리 아스투리오의 경기에서 16골을 기록했다. 국제대회-A매치 최다골은 호주의 아치 톰슨이다. 그는 2002월드컵 오세아니아예선 1조 아메리칸 사모아와의 경기(31-0승)에서 13골을 터트려, 1908년 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스포후스 닐손이 프랑스전에서, 그리고 1912년 스웨덴올림픽때 독일-러시아 경기에서 독일의 고트프리드 푸시가 기록한 종전의 1경기 개인 최다득점 기록 10골을 가볍게 넘어섰다.남자 기록스코어(전반) 팀 날짜 대회명 장소 득점선수 31-0(전반16-0) 호주-아메리칸 사모아 2001.4.11 2002월드컵 오세아니아예선(1조) 콥스 하버(호주) 13골-아치 톰슨, 8골-즈드릴리치 데이비드, 3골-보우치아니스 콘 22-0(전반10-0) 호주-통가 2001.4.9 2002월드컵 오세아니아예선(1조) 콥스 하버(호주) 6골-조 알로이시, 4골-대미언 모리 20-0(10-0) 쿠웨이트-부탄 2000년 2월 14일 2000아시안컵 예선5조 쿠웨이트 바카르 압달라8골,자심후이디5골,아메드 마타리3골 19-0(6-0) 중국-괌 2000년 1월 26일 2000아시안컵 1차예선9조 베트남 호치민시 취성칭5골,하오하이둥4골,수마오전3골야오샤2골, 마밍위 리티에 치홍 선스 리웨이펑 1골씩 17-0 이란-몰디브 '98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예선 1997년 2월 이란 카림 바게리7골 여자 기록스코어(전반) 팀 날짜 대회명 장소 21-0 캐나다-푸에르토리코 1998년 8월 '99미국여자월드컵 북중미/카리브에선 캐나다 월드컵-최다골은 50년 브라질월드컵 때 브라질의 아데미르가 스웨덴과의 결승리그(7-1)에서 기록한 6골. 아데미르는 9골로 이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해트트릭월드컵-최초의 해트트릭은 30년 우루과이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18세 소년 스타빌레가 기록했다. 스타빌레는 아르헨티나의 주공격수 페레이라가 월드컵 기간중 학기말 시험을 치르기 위해 귀국하는 바람에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데뷔전인 7월19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전반 8·17분,후반 35분에 혼자 3골을 넣었다. 스타빌레는 이후 결승전까지 4게임 연속골을 기록하며 모두 8골을 뽑아 득점왕에 올랐다.월드컵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처음 기록한 선수는 잉글랜드 조프 허스트다. 허스트는 66년 7월30일 런던 웸블리구장에서 열린 서독과의 경기에서 전반18분,연장 전반10분·후반15분에 잇따라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는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끝에 4-2로 서독을 누르고 우승했다. 결승전 해트트릭은 허스트레가 갖고 있는데, 그는 92차례나 해트트릭을 기록했으며 58년 6월 24일 스웨덴올림픽 프랑스와의 준결승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의 기록이 유일하다.개인 최다 해트트릭 기록은 축구황제 펠.K리그-83년 출범한 국내 프로축구에서 해트트릭은 17년동안 모두 51차례가 나왔으며 첫 해트트릭은 83년 8월2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포철-유공전에서 포철의 김희철이 기록했다. 올시즌은 7차례의 해트트릭이 나왔다.A매치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선수(국적) 득점시간 대회명 날짜 결과 장소 비고 나카야마 마사시(일본) 3분15초-전반1분(미우라도움),2분,3분15초 아시안컵 1차예선 10조 2000년 2월 16일 일본9-0부르나이 마카오 다카하라도 해트트릭-후반30분,40분,42분 조지 홀(잉글랜드) 3분30초-전반시작 직후 3골...    ▶ 별난 축구기록 ◈ A매치 최다연승국가대표팀 간 경기인 A매치에서 최다연승 기록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14연승. 그 주인공은 브라질과 호주다. 브라질은 97년 6월10일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한 이후 97년 12월14일 호주와의 경기서 0대0으로 비기기 전까지 무려 14차례의 A매치를 연속해서 이기는 기염을 토했다. 호주 역시 96년 10월27일부터 97년 12월12일까지 14연승을 기록해 이 부문에서 브라질과 타이를 이루고 있다. 2위 기록인 13연승은 스코틀랜드와 브라질이 세운바 있으며 12연승은 프랑스, 멕시코, 서독이 각각 한차례씩 기록한 바 있다.한편 브라질은 93년 12월16일 멕시코 전서 1대0으로 승리한 이후 96년 1월21일 북중미 챔피언스리그 멕시코전서 0대2로 패하지 전까지 무려 36차례의 A매치에서 29승7무를 기록하며 A매치 연속무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 최다 이적 선수프로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이 팀을 옮겼던 선수는 헝가리 출신의 샤프 알프레도다. 샤프 알프레도는 1910년부터 1925년까지 16년동안 무려 21차례에 유니폼을 바꿔 입었다. 이를 환산하면 매년 평균 1.35차례씩 이적한 셈. 그 다음으로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스 오스카와 북아일랜드의 베스트 조지로서 이들은 21년동안 17차례나 팀을 옮긴바 있다.-------------------------------------------------------------------------------- ◈ 프로리그 홈경기 연속 무패수원 삼성은 98년9월26일 대전과의 경기에서 3대0으로 승리한 이후 이듬해 10월2일 부산을 1대0으로 누르기까지 20 홈 경기 연속 무패라는 진 기록을 세운바 있다. 그렇다면 해외 프로축구에서 이 부문 최고 기록은 얼마나 될까. 그 주인공은 스페인의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로서 57년 2월17일부터 65년 3월7일까지 무려 8년 20일간 122차례의 홈경기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이는 이 부문 2위에 기록된 이탈리아 토리노 팀과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 팀이 세운 93 홈경기 연속 무패보다 현격히 앞서는 기록. 3위는 프랑스의 낭트 팀으로 92 홈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한 바 있다.--------------------------------------------------------------------------------◈ 가장 길었던 승부차기얼마전 국내 프로축구에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 6월14일 부산 대우가 성남 일화를 홈으로 불러들여 벌였던 승부차기 승부로 승부차기 결과는 10대11으로 성남의 승리. 이날 양팀에서 승부차기 키커로 나선 선수는 모두 26명으로 한국 프로축구 사상 최다로 기록됐다. 해외에서 가장 많은 승부차기 키커가 나섰던 게임은 96년 11월 터키 FA컵 8강전서 맞붙은 젠크레르빌리지 팀과 갈라타사라이 팀의 경기. 연장전까지 벌였지만 1-1로 무승부를 기록한 양팀은 승부차기서 각각 16명씩의 키커를 내보냈지만 16-16으로 승부를 가르지 못했다. 명암은 17번째 키커에서 갈렸다. 마지막 키커가 골을 성공시킨 갈라타사라이가 17-16으로 간신히 승리를 챙길수 있었다. -------------------------------------------------------------------------------- ◈ 프로리그 한시즌 최다패국내 프로리그에선 올시즌 울산 현대가 9연패까지 간 적이 있다. 그렇다면 해외 프로리그에서 한시즌 최다 연패 기록은 얼마나 될까. 불명예의 주인공은 벨기에 4부리그 SSA 안트웨르펜. SSA 안트웨르펜 팀은 95-96시즌에 가진 30전 30패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게임 내용을 살펴보면 30경기 동안 득점은 21점인 반면 실점은 10배가 훨씬 넘는 271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평균 실점이 9점에 달할 정도. SSA 안트웨르펜은 한 게임서 20점까지 허용한 적도 있다. -------------------------------------------------------------------------------- ◈ 프로리그 최다연승프로리그에서 최다 연승 기록을 수립한 팀은 아이보리코스트의 아셀 아비드잔 팀이다. 아셀 아비드잔 팀은 88년 8월17일부터 94년 6월19일까지 무려 5년10개월간 108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도대체 다른 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의문이 간다. 이 부문 역대 2위는 루마니아 스테아우아 부쿠레시티로서 86년 8월17일부터 89년 9월10일까지 3년1개월간 이어간 104경기 연속승. 그렇다면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프로리그 최다 연승 기록은 8연승으로 부산 대우가 98년 5월20일부터 7월26일까지 기록했으며 수원 삼성도 99년 7월26일부터 8월29일까지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 최다 퇴장한 경기에서 몇 차례나 레드카드가 나올수 있을까. 이 부문의 최다 기록은 지난 93년 6월1일 수립됐다. 파라과이 프로리그 스포르티보 아멜리 팀과 헤내랄 카발레로 팀과의 경기가 그 무대로 무려 20명의 선수가 퇴장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주심을 본 위암 와일러는 스포르티보의 선수 2명에게 연달아 레드카드를 빼 들었고 이에 흥분한 스포르티보 선수들의 주먹질로 경기는 패싸움으로 발전했다. 이에 와일러 주심은 양팀의 18명을 더 퇴장시켜 결국 20명의 선수가 퇴장을 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남은 경기는 도대체 몇 명이 뛰었을까. 축구 경기를 계속할수 있는 최소 인원은 양팀이 각각 9명. 결국 이날 게임을 무효처리되는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 A매치 한 선수 최다골한 게임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던 선수는 누구였을까. 역대 한경기 최다골의 주인공은 약 100년 전 덴마크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소푸스 닐센이다. 그는 1908년 벌어진 프랑스와의 올림픽 본선에서 A매치 최다골인 10골을 터뜨렸다. 경기 결과는 닐센의 소나기골에 힘입은 덴마크의 17대1 승. 이와 타이기록은 4년 후 수립됐는데 독일 국가대표팀의 고트프리드가 스웨덴에서 벌어진 러시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10골을 기록한 바 있다.-------------------------------------------------------------------------------- ◈ 최다 스코어국제대회나 프로리그 등을 합친 공식경기에서 터진 최다 스코어 기록은 얼마일까. 기네스 월드레코드에 따르면 1885년9월5일 스코틀랜드 스코티시컵 대회에서 홈팀 아브로우스 팀이 본 아코드 팀을 상대로 뽑아낸 36점이 최다 기록이다. 당시 경기는 36대0이라는 엽기적인 점수차로 아브로우스가 승리했다. 이는 평균으로 환산하면 1분에 평균 0.8골씩 터졌으며 5분마다 4골씩 뽑아낸 셈이다. 이날 골을 기록한 선수에 대한 기록은 정확치 않지만 선수당 평균 3골을 터뜨린 것이어서 분명히 10골 이상 성공시킨 선수가 있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 최단시간 골역대 최단시간 골은 경기 시작 몇 초만에 터진 것일까. 정답은 6초. 지난 50년 10월 잉글랜드 디비전 3(4부리그) 알더샷 팀의 알버트 먼디가 하버풀 유나이티드와의 게임에서 뽑아낸 선취골의 공식 시간은 6초다. 하프라인으로부터 골대까지의 거리는 50여m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휘슬이 울리자마자 전력으로 질주해 들어가 골을 성공시킨 셈이다. 이후 `6초골`은 두차례 더 나왔다. 62년 3월 잉글랜드 디비전2(3부리그) 노츠카운티 팀의 베리 존스가 토키 유나이티드와의 게임에서 최단시간 골 타이기록을 세웠으며 디비전 1(2부리그) 크리스탈 펠리스의 키스 스미스 또한 64년 12월에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6초골을 터뜨린 바 있다. 이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터지는 골들은 대부분 공이 하프라인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공격수가 순식간에 상대 진영 깊숙히 침투한 뒤 공을 건네 받아 단번에 골 네트를 흔든 경우가 대부분이다.[A매치 최단 골은 2002wc 3,4위전 11초 골.]       1. 축구하다 번개 마자서 축구선수 전원이 그라운드에 쓰러진일...5~6년전 브라질에서 해외토픽으로 나왔고욤... 2. 우리나라는 아닌데 축구하다 어떤 외국 선수가 강한 캐논슛을 날렸어요 근데 그 공이 날아가던 비둘기에 마자서 비둘기 즉사한일..ㅡㅡ; 3. 우리나라 몇일 전이죠 피스컵 박지성 선수가 C.?.CHO 이런 유니폼에 22번인가 입고 나왔는데그거 얽힌 일이 좀 있죠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첨엔 박지성 선수 아닌줄만 알았습니다..나중에 1890뮌헨이 따졌다죠.. 4. 우리나라 유상철 선수가 일본전인가 평가전, 거기서 뛰다가 유니폼이 찢어졌는데그거 그대로 입고 뛰었다죠.. 특이한거 아닌거 같기도 알송딸쏭 하네요.. 가슴이 다 보이면서 뛰었으니 특이한것 같기도 하고... 5. 특이한건 아닌데 골키퍼 하면 골을 지키는 사람인데 파라과이의 칠라베르트나 우리나라 에프시서울에 소속되 있지만 전에 울산 시절 김병지 선수등이 골 넣는 골키퍼로 유명하죠. 칠라베르트는 패널티킥 뿐만 아니라 프리킥 찬스에도 나와 골을 넣는등 전문 미드필더 같아요. .6. 그리고 이건 유럽에서 일어나는 대다수의 일인데 경기중에 일어난 사건이죠..경기에 흥분해 잇던 사람들이 팬스에 매달려 열광을 하다 그만 팬스가 사람들 무게를 못 이겨 팬스가 무너져서 사람들 무척 마니 다친 일. 7. 이건 아주 웃긴 경운데 그라운드의 축구선수들이 슛팅을 날리는데 그 날아간 공이 관중석쪽으로 날아갔는데 그 공을 무슨 홈런공 잡은양 날아온 축구공 잡고 자기 집으로 도망간 사람 있었어요..몇년전 해외토픽에도 나왔는데 진짜 웃겼어요..한번 보셨어야..KBS스포츠인가 12시쯤에 2TV에서 나왔었음.. 더 이상 제가 아는게 없네요..나머진 딴 스포츠 중에 일어난 특이한 일이라...       ★149-0 아프리카프로축구 엽기스코어 농구 경기에서도 나올 수 없는 엽기적인 스코어가 프로축구에서 나왔다.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프로축구에서 149_0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스코어가 나왔다고 3일(한국시간) 현지 라디오 방송인 가 전했다. 수도인 안타나나비로에서 2일 열린 1부리그 경기에서 원정팀 SOE가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표시로 자책골을 줄기차게 넣어 이미 지난 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한 홈팀 AS 아데마가 제대로 뛰지도 않고 149-0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해프닝은 SOE의 라차라자카 감독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시작됐다. 감독이 이성을 잃자 선수들도 덩달아 흥분해 급기야 자기 골문에 대고 볼을 계속 밀어넣었고 홈팀 아데마 선수들은 즐거운 표정을 한 채 상대팀의 엽기적인 행동을 지켜 만 봤다고 관중들은 전했다. 라디오는 “149-0은 세계 프로축구 경기에서 세워진 신기록”이라고 주장했다. 올해 우승컵을 아데마에 내준 SOE는 지난해 정규리그 챔피언으로 올 시즌 아프리카클럽 왕중왕을 가리는 챔피언스리그 2회전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는 등 실력이 만만치 않은 팀이다. ★이란 축구선수, 경기중 구타로 사망이란의 아마추어 축구선수가 경기 도중 상대 선수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6월 28일 이란의 남서부 아와즈에서 열린 아마추어 축구경기중 격분한 수비수가 골을 넣은 상대 공격수의 머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고 이란의 일간 `야세노'가 1일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2003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카메룬의 비비앵 푀가 돌연사해 국제축구계가 애도 분위기에 젖어 있는 가운데 발생해 눈길을 끌었다. 그라운드에 쓰러진 선수는 급히 병원에 후송됐지만 바로 숨졌고 경기장 스피커를 통해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팀 동료들이 구타한 선수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심판이 맘대로 경기종료1930년 월드컵 (우르과이 대회) 때 생긴 일. 브라질 심판 알메이다 레고씨가 아르 헨티나 대 프라스 경기 (당시 스코어 1:0) 에서 후반 6분을 남겨 놓고 종료휘슬을 불 어 아르헨티나가 승리하는 간접적인 도움을 주다. 휘슬을 부는 순간 프랑스 랑귀에르 선수가 득점 가능한 공격을 하고 있었다고. 경기는 혼란 뒤에 재개됐지만 물론 프랑 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최 단시간 골!월드컵 기록은 지난 2002 월드컵에서의 한국VS터키전전반 11초 만에 터키선수인 하칸 슈퀴르의 골! FIFA가 인정한 공식 기록은 1998년 12월 26일 우루과이의 도시대항 축구경기.소리아노팀의 리카르도 올리베선수가 프레이 벤토스전에서 경기 개시 2.5초만에 골을 터뜨려 최단시간 골로 인정! ★최 장거리 골!작년(2002) K-리그 경기고종수(24·수원 삼성)는 전북 현대 전에서 역대 최장거리골(57m)을 터뜨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서로 자기공 쓰겠다고 우겨1930년 대회 당시는 공식사용구 제도가 없던 시절.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경기의 벨기에 출신 주심 란제누스는 양 팀이 서로 자국산 공을 쓸 것을 주장하자, 동전던지기로 결정. 결국 전반에는 아르헨티나 공을 후반에는 우루과이 공을 사용하다. 우루과이가 4대2로 우승. ★최단시간 자살골때는 1971년 선수 이름은 팻 크루스. 브리지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단 6초 만에 당 당히 자기편 골포스트에 자살골을 넣다. ★관객폭죽소리 총소리로 오인, 관객 6명 사망1976년 12월 6일 아이티의 포트 아우 프린스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에서 아이티는 쿠바를 맞아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잠시 후 쿠바의 득점에 이어 터진 폭죽에 놀란 관 중들이 총소리로 오인, 경비병의 총을 빼앗는 과정에서 오발 사고 발생. 이 사고로 소 년과 소녀 각 한 명이 숨지다. 한편 놀란 관중 한 명도 담을 넘다 목숨을 잃었으며 총 을 빼앗긴 병사는 사살되는 등 총 6명의 인명피해를 내다. ★깁스한채 다섯경기 출전1978년 아르헨티나대회 첫 경기때 있었던 일. 네덜란드의 케르코프 선수가 팔을 다 쳐 플라스틱 깁스를 한 채 다섯 개의 경기를 치르다. ★관객 81명 압사, 147명 중상1996년 10월 16일 과테말라에서 있었던 '98월드컵 예선전 당시의 사건. 과테말라는 코스타리카를 맞아 마테오 플로레스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갖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경기 2시간 전, 정원 4만5천명의 경기장에 6만 여명의 관객이 입장하면서 입장객 일 부가 위에서 아래로 밀리는 사태가 발생. 이 날 사고로 81명이 압사하고 147명이 중상 을 당하다. ★경기중 도둑질남미의 어느 나라 프로축구 경기 도중 한 선수의 금목걸이를 분실사건 발생. 경기 후 TV중계 녹화 테잎분석 결과 상대팀 선수가 금목걸이를 훔치는 장면이 포착되다. ★가장 육중한 선수키 190㎝에 몸무게 141㎏인 영국 출신 컬리 패터플그 선수는 세계 축구 사상 가장 육중한 골키퍼. 그의 마지막 경기 때의 몸무게 무려 165㎏이었는데 한번은 그가 크로 스바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  
302    쉬여가는 페이지 - 월트컵 참가국들의 國歌 댓글:  조회:5949  추천:0  2016-01-01
월드컵 중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각 나라 국가 가사. 각 민족마다 꿈과 고난이 스민 국가...     [월드컵] 참가국 國歌 음미하며 즐겨보는 '세계사 월드컵'~♬   국가(國歌)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국가(國家)'의 역사와 탄생 배경을 유추할 수 있다. 왕정 국가는 왕실을 찬양하는 노래를 국가로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맞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켜 근대 국가의 기틀을 세운 나라는 혁명 당시 부르던 노래를 국가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대자연을 끼고 사는 나라의 일부는 역시 자국의 풍요로움을 강조하는 노래를 애창한다. 2010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이들 나라의 역사를 유추해보는 건 제법 흥미로운 일이다. 월드컵 시청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가 제공하는 국가별 가사 자막을 보면서 놀라움을 가지기도 했으리라. 한국의 와 다른 나라의 국가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국가에서 발견되는 성격을 따라 남아공 월드컵 참가국들의 국가를 나눠봤다.   ▲프랑스 국가를 들으면 섬찟함마저 느껴진다. 혁명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노래다. 이런 노래를 들으면 선수들도 절로 힘을 낼 것 같은데, 이번 대회 프랑스는 무기력했다. 안드레-피레 지냑(툴루즈)이 남아공에 패해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후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뉴시스   ■ 혁명의 나라들 시민 혁명을 거친 나라들은 국가에도 혁명 정신과 자유, 독재에 대한 싸움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시민 혁명의 상징적 국가인 프랑스. 프랑스의 국가 는 프랑스 혁명 당시인 1792년에 만들어졌다. 전쟁 때 불렸으니만큼 가사가 사나울 수밖에 없다. 예술로까지 빗대지는 축구의 이미지와는 상반된다. 국가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올 정도다. 제목은 '마르세유 군단의 노래'라는 뜻을 가졌으며, 정식 국가로 채택된 때는 1879년이다.   일어나라 조국의 자녀들아/ 승리의 날이 왔다/ 우리와 맞서는 폭군의 피 묻은 깃발이 일어섰다/ 귀 기울여 들어라/ 들판에서 성난 병사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들이 지척까지 왔도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학살하러 온다/ 무기를 들어라 시민들아/ 군대를 형성하라/ 진격하라! 진격하라!/ 그들의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에 흐르게 하자.   식민 모국이었던 영국에 대항한 전쟁으로 나라를 만든 미국 또한 '전쟁'과 '자유'를 국가의 중요한 상징으로 삼았다. 미국의 국가 는 1931년 정식 국가로 채택됐다. 총 네 구절로 구성됐으나 주로 1절이 불린다.   오! 그대여 이른 새벽녘의 저 빛이 보이는가/ 위험한 전쟁 속에서도 광대한 선으로 빛나는 별들과/ 황혼의 마지막 광휘에 환호하는 우리들의 긍지가/ 저 성벽 너머로 찬란히 빛나는 것을/ 창공에서 작렬하는 포탄과 탄환의 붉은 저 섬광들은/ 밤새 우리의 깃발이 휘날린 증거이리라/ 오! 성조기는 지금도 휘날리는가/ 자유와 용맹의 땅에서.   이런 혁명곡들의 정수는 주로 남미 국가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륙 전체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왕조들에 약탈당했던지라 하나 같이 압제자에 맞서 끝까지 싸우자는 내용을 담았다. 우리와 조별리그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혁명의 역사를 국가 에 새겨놓았다. 아르헨티나는 1810년 5월 25일에 스페인 왕정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그 후 6년이 지나 아르헨티나는 하나의 독립국가로 정식 탄생한다. 올해는 아르헨티나 혁명 200주년이다. 은 1900년 정식 국가로 제정됐다. 매우 긴 노래였으나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지금의 국가로 완성됐다.   시민들이여, 신성한 외침을 들어라/ 자유! 자유! 자유!/ 쇠사슬이 끊어지는 소리를 들어라/ 고귀한 평등의 즉위를 보아라/ 하나 된 남쪽의 주들에 의해서/ 이제 그대들의 명예로운 주권을 이루어냈다/ 세계의 자유민들은 화답할지라/ 오!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오! 위대한 아르헨티나인이여/ 영광의 월계관이여 영원하라/ 우리는 승리를 알고 있노라/ 영광의 주권이 함께하지 않는 삶이라면/ 영광스러운 죽음을 맹세하자.   한국이 16강전에서 맞붙을 우루과이 또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을 강조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 참여한 파라과이, 칠레, 멕시코의 국가 역시 비슷한 내용이다. 다음은 우루과이의 국가다.   우루과이인에게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자유가 아니면 영광스러운 죽음을 택할지니/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바친 중요한 맹세/ 그리고 우리는 깨닫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도다/ 자유, 자유, 우루과이인이여!/ 열정과 정의에 찬 격렬한 전투 속에서/ 이 함성은 용사와 조국을 구해냈도다/ 우리는 이 성스러운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으니/ 폭군들을 저지하라!/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이다/ 죽어가면서도 자유를 외칠 것이다.   ■ 단합을 강조하는 국가들   열강의 압제에 신음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은 독립 후에도 부족 혹은 민족 간 대립으로 홍역을 겪는 나라가 많다. 이 원인의 상당 부분은 아프리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제 멋대로 국가를 나눠버린 서구 열강에 있다.(아프리카 나라 상당 국가가 마치 자로 잰 듯 반듯한 국경선을 유지하고 있는 게 증거다) 이 때문인지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 참여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가 가사는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다. 한국과 16강전 진출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다퉜던 나이지리아가 대표적이다. 나이지리아의 국가 는 1978년 채택됐다.   오, 동포들이여 일어나라/ 나이지리아의 부름을 따르라/ 사랑과 용기, 그리고 믿음을 갖고 조국을 섬겨라/ 옛 영웅들의 노고를 결코 헛되게 하지 마라/ 마음과 힘을 다해 자유와 평화, 통일을 위해 결속하라/ 오! 만물의 신이여! 우리의 고귀함을 지켜주소서/ 우리의 지도자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소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사랑과 정직함이 자랄 수 있도록/ 정당하고 옳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고귀한 성취를 이루게 하소서/ 평화와 정의가 다스리는 나라를 이룰 수 있게 하소서.   월드컵을 유치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 문제로 오랜 세월 신음했다. 이 때문인지 국가 는 아예 소절별로 다른 인종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첫 소절은 지역 원주민의 언어인 줄루어고, 두 번째 소절은 세소토어다. 셋째 소절은 처음 남아공 약탈을 시작한 네덜란드인의 후예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이며 마지막 구절은 영어다. 는 두 노래가 하나로 합쳐진 곡이다. 앞의 두 소절은 로, 가난에 신음하는 흑인 사회를 구해달라는 뜻을 담고 있다. 뒤의 두 구절은 남아공의 옛 국가다. 백인 정권이 인종차별 정책을 한창 사용할 때 불리던 노래다. 가사를 보면 당시 국가가 현실과 얼마나 괴리돼 있었는가를 알 수 있다. 상이한 두 노래를 하나로 합친데서 아직 국가의 단합이 매우 힘든 상황임을 역으로 짐작 가능케 하는 부분이다. 이 노래는 남아공의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집권한 이후 제정됐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줄루어)신이시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 영광을 높이 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주여, 그대의 아들인 우리를 구원하소서/ (세소토어) 신이시여,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 모든 분쟁을 끝내주소서/ 지켜주소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소서/ 조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아프리칸스어) 우리의 깊은 바다에서 출렁이는 파도 소리는/ 우리의 푸른 하늘에 울려 퍼지리라/ 높은 산 위에서/ 바위산 끝까지 우리의 메아리가 울리리라/ (영어) 화합의 외침이 울린다/ 그리고 우리는 단결해 일어서리라/ 자유로운 삶을 위해 노력하리라/ 우리의 조국 남아공에서.   ■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나라들   광활한 자연의 축복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국가도 많다. 땅이 주는 은혜를 찬양하거나 역사의 아픔을 딛고 서로 격려하자는 내용이 특징이다. 이들 국가들도 대부분 과거에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던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의 나라들이 이런 내용의 국가를 많이 채택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가 대표적이다. 호주는 과거 대영제국이 죄수들의 유배지로 삼고 개발한 곳이다. 이 과정에서 토착민들이 숱하게 학살된 슬픈 역사도 갖고 있다. 호주 역시 인종차별주의를 오랜 기간 지속했다. 그러나 가사에서는 이런 역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호주는 독립 후에도 영국 왕실의 찬가인 영국 국가 를 불러왔으나, 1977년의 국민 투표로 현재의 국가 를 채택했다.   호주인들이여, 함께 기뻐하자/ 우리의 젊음과 자유를/ 땀 흘려 일할 황금 토양과 풍부한 자원/ 바다로 에워싸인 우리 조국/ 풍성하고 희귀한 아름다운 천혜의 자원으로 가득찬 우리 조국/ 역사의 책갈피 속에서/ 호주인들이여 굳세게 전진하라/ 황금빛 태양의 적도 남쪽에서/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땀 흘리라/ 온 세계에 빛나는 이 나라, 우리 조국을 위해/ 바다 건너 이 땅을 찾은 우리들/ 함께 하는 끝없는 초원/ 용맹스럽게 모두 모여/ 호주인들이여 굳세게 전진하라/ 기쁨의 노래를 함께 부르자/ 호주인들이여 굳세게 전진하라.   복병 일본에 패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카메룬의 국가 도 조상들이 일군 터전에서 단결하자고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일본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일왕을 찬양하는 와 카메룬의 국가는 내용이 크게 대비됐다.   오, 카메룬이여/ 우리 선조의 탄생지/ 그들이 휴식을 취하는 성스러운 성지여/ 그들의 눈물과 피와 땀이 적셔진 땅이여/ 언덕과 계곡마다 그들이 논밭을 일구던 곳이여/ 사랑하는 조국이여/ 어디에도 당신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언어는 없으니/ 우리의 고역과 사랑, 평화로 얻어낸 안녕이여/ 그 이름 영원히 진실이 될지어다/ 약속의 땅이여, 영광의 땅이여/ 당신은 우리의 삶과 기쁨의 유일한 창고/ 당신을 향한 존경, 헌신 그리고 깊은 애정은 영원하리.   ▲한국과 8강행을 놓고 격돌할 우루과이는 자유의 소중함을 국가 가사에 담았다. 한국과 16강전에 우루과이 팬들이 "우루과이인에게 8강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뉴시스   ■ 왕에 충성을 맹세하는 국가들   왕정을 유지하는 나라나 과거 왕정 국가였던 나라들은 여전히 '국가=왕족'의 신념을 담은 노래를 국가로 채택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마저 이런 내용의 국가를 부른다. 영국의 국가 는 세계 최초의 국가다. 현재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제위 중이라 국가에 '여왕'을 사용하지만 왕이 즉위할 경우 '왕(King)'으로 국가가 바뀐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 상당수가 이 노래를 같이 불렀다. 다만 이 노래는 엄밀히 말해 잉글랜드 왕국의 노래였기 때문에 다른 축구협회를 구성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A매치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이 노래는 영국 경제 몰락 이후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 등 반항적인 펑크 밴드들이 영국의 현실을 비꼬는 내용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펑크 밴드 노 브레인이 데뷔 앨범에 를 비꼬아 청년들의 슬픈 현실을 강조한 노래를 수록했다.   신이시여, 우리들의 자비로우신 여왕 폐하를 지켜주시고/ 고귀하신 우리들의 여왕이 만수무강토록 하소서/ 신이시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그분께 승리와 행복과 영광을 주소서/ 오! 신이시여 깨어나시어 그분의 적들을 물리쳐 쓰러지게 하소서/ 그들의 나라를 멸하시고 그들의 간교한 계략을 좌절케 하소서/ 당신만을 믿사오니 저희 모두를 지켜주소서.   왕정을 고수하는 일본도 왕을 찬양하는 를 고수하고 있다. 헤이안 시대의 단가에 가사를 붙인 이 노래는 일본이 최근 급격히 우편향되면서 일선 학교 등지에서도 부르도록 강조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제국주의 시절을 반성하지 못한다는 일본 내 시민단체의 지적이 잇따랐다. 월드컵을 독점 중계하는 는 한국인들의 불편한 감정을 의식한 탓인지, 중계 당시 일본의 국가는 가사를 소개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가가 활기찬 선율을 가진데 반해 는 얼핏 들으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대의 시대는/ 천대에서 팔천대까지/ 조약돌이 큰 바위만큼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왕에 대한 충성의 시대를 회고하는 노래말도 가사로 쓰인다. 왕정 독재에 항거해 독립한 네덜란드의 국가 가 그렇다. 이 노래는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이끈 오라녜공 빌렘1세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 있다. 네덜란드 축구를 두고 흔히 '오렌지 군단'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의 이름을 본딴 것이다. 네덜란드의 북부 17개주는 과도한 세금을 매겼던 에스파냐 왕정에 항거에 네덜란드 공화국을 수립했고, 80년에 걸친 독립전쟁 끝에 1648년 독립을 성취했다. 당시 에스파냐 왕정에 충성을 맹세했던 남부 네덜란드는 지금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로 쪼개졌다.   나사우의 백작 빌렘, 나는 게르만의 혈통!/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라녜가의 왕자인 나는 자유롭고 두려움이 없다/ 나는 에스파냐 왕에게 충성을 다해 왔다.   그렇다면 과거 네덜란드를 지배했던 스페인의 국가는 어떨까? 스페인 국가 은 공식적으로 가사가 없다. 비공식적으로 붙여진 두 개의 가사가 불리긴 한다. 이 노래는 왕실 행진곡으로 쓰였던 화려한 역사와 달리 작곡자도 불명이다. 원래 군악곡으로 쓰이던 노래를 1770년 카를로스 3세가 왕실 행진곡으로 지정해 연주되기 시작했다. 프랑코 독재 정권 때 다른 곡으로 대체됐으나, 왕정복고 후 다시 국가로 제정됐다.   정대세를 울게 한 북한 국가는?   한국에서 2010 남아공 월드컵을 독점 중계하는 는 참가국들의 국가 연주 때마다 충실하게 가사를 번역해 자막으로 송출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의 가사를 볼 수 없는 나라가 딱 네 나라 있다. 한국은 온 국민이 가사를 아니 당연히 나올 필요가 없고, 스페인은 가사가 없어서 표시하지 못한다. 다른 두 나라는? 북한과 일본이다. 일본은 식민 치하의 아픈 기억이 아직 우리 국민들에게 깊숙이 자리한데다, 제국주의 시절을 상징하는 노래를 국가로 사용하기 때문에 국민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정대세도 를 듣고 울었다. 우리가 아는 그것과는 다르지만. ⓒ연합뉴스 북한도 마찬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특성상 민감한 부분을 애써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수뇌부가 판단한 듯하다. 그렇다면 북한 국가의 내용은 어떨까? 북한은 우리와 제목까지 똑같은 를 국가로 사용한다. '아침이 빛나게 하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진 는 남북이 갈라진 후 북한에서 불리었다. 남쪽에서 북한의 가 연주된 적도 있다. 지난 2002 부산 아시안게임 때 북한이 공식 국가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국기 게양식 때마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국가를 들을 수 있었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2008년 2월 평양 공연에서 북한 국가를 연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대세가 눈물을 흘린 북한의 애국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기대만큼(?)의 호전적인 내용은 아니다.   (1절)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은금에 자원도 가득한/ 삼천리 아름다운 내 조국/ 반만년 오랜 력사에/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슬기론 인민의 이 영광/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 (2절) 백두산 기상을 다 안고/ 근로의 정신은 깃들어/ 진리로 뭉쳐진 억센 뜻/ 온 세계 앞서 나가리/ 솟는 힘 노도도 내밀어/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한없이 부강하는 이 조선/ 길이 빛내세.     애국가 1절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 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출처] 각 나라 國歌 가사|작성자 헌책    
《단군문학상》민족문학 부흥의 청신호인가   편집/기자: [ 안상근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5-23 15:15:46 ]  《단군문학상》설립 가동식에서 남긴 문인, 지성인들의 소감 2015년 5월 23일 오전, 연길에서 소집된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가동식에 따르면 《단군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문학사업을 번영발전시키고 중국 각 민족과의 문학교류를 강화하고 조선족문학의 발전과 창작을 추동하기 위해 설립된 중국조선족문단의 최고 문학상이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허다한 문인들과 지성인들은《단군문학상》의 설립에 대해 《중국조선족 문학사상 일대 경사이고 조선족 민족문학발전과 부흥에 대한 청신호》라면서《단군문학상》이 민족문학발전에 적극적인 추진작용과 리정비적인 역할을 놀게 될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소설가 림원춘 소설가 림원춘선생은 《조선족작가들한테 영광과 자랑으로 되는 을 마련해준 신봉철회장과 단군문학상관계자들한테 보통작가의 이름으로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연변작가협회는 건국후 가장 일찍 작가협회를 세우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수백명의 작가들을 키워냈다》고 지적, 《전국 40여개 작가협회들에 자기의 기관지가 다 있지만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라고 하는 은 문화개혁과정에서 인사권, 경제권, 편집권이 없는 유명무실한 기관지로 되였다》면서《지도일군들과 보도매체 그리고 량심있는 작가, 지성인들이 함께 힘을 모아 작가협회 기관지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변대학 교수 평론가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이며 평론가인 김호웅선생은《은 조선민족의 최고 조상인 단군할아버지를 담았고 아울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뜻의 리념도 담고있어 문학상 이름자체가 참 멋지다》고 말했다. 김호웅은《단군문학상》이 최고 15만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상금액수를 내걸고있어 《상금이 톡톡하다》면서 문인들도 《이슬먹고 사는 매미》나 《쪼들린 라면생활을 하는 구차한 이미지》가 돼서는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정시 한수 써도 랭면한그릇 먹을 돈이 안되고 소설 한편 써도 몇사람이 술 한잔 변변히 나누기도 어려운 우리 문학의 현실에 소수민족 문학발전을 위한 국가적인 지원도 주장하고 호소한바있다》고 말했다. 김호웅은《은 우리 민족의 유지인사들이 많은 기업들을 동원해 만들어낸 상으로서 우리는 비로서 우리 민족의 힘으로 큰 상을 마련했다》면서 《경제적으로 발달한 한국의 국가적인 여러가지 상도상금과 비슷한 액수임을 비교할때 우리가 내건의 15만원 상금은 우리에게 바람직한 문학상이지 않겠는가》고 격찬했다. 그는 《단군문학상》의 시상폭이 넓은데 대한 긍정도 했다.《단군문학상》이 소설, 시, 수필, 보고문학, 아동문학, 신인상은 물론 항상《개밥에 도토리신세》격인 번역과 평론부문상까지 외면하지 않고 설치해 문학령역에 종사하는 그 누구나 모두 공평하고 공정한 수상기회가 주어질것 같다고 말했다. 김호웅은 《 을 계기로 우리 문학이 전방위적으로 활짝 날개를 펴고 애국주의주제의 좋은 작품들은 물론 우리 민족의 찬란한 력사와 멋진 현실을 구가한 세상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멋진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나올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기대했다. 소설가 최홍일 소설가 최홍일은 《정부적차원에서 내놓은 상들은 많은걸로 알고있지만 민간차원에서 이처럼 큰 상을 내온것은 처음》이라면서 《특히 은 중국조선족문단은 물론 해외 교포사회에서도 영향력이 클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단군문학상》설립에 로고를 아끼지 않은 길림성조서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신봉철회장과의 개인적인 교분을 언급하면서 신봉철회장이 젊은 시절에도 독서를 즐기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는데 그의 이러한 문학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필연적으로《단군문학상》이라는 우리 민족 문단의 최고상을 설립하게 되였을것이라고 말했다. 최홍일은 《단군문학상》은 문인들에게는 하나의 채찍질로 될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중국조선족문학의 현주소는 문인수와 문학작품은 많지만 문학수준이 높지 못하고 국내 주류문학에도 진출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한국 등 국외 문단의 승인도 받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라고 랭정히 돌아보았다. 그는《단군문학상》을 계기로 정품창작을 위한 문학의 불씨를 다시 지피겠다고 다졌다. 료녕신문사 사장 최호 료녕신문사 사장 최호는 《단군문학상》은 문학상 이름자체부터 우리 민족의 시조, 토템, 력사, 문화, 중국조선족의 정체성 등 많은 부분들을 련상시키고있다면서 《단군문학상》은 문학상 설립의 의미가 크고 깊기때문에 문학상이 1회에 그치지 않고 《단군》이라는 이름처럼 영원히 길히 빛나길 기원했다. 그는 또 많은 작가들은 단지 수상보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쓰는데 《단군문학상》을 계기로 더욱 많은 작가들이 신들메를 조이고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했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연변작가협회 주석 최국철 연변작가협회 주석 최국철은 《중국조선족문학이 어느때부터인가 불가항력적인 객관조건의 영향으로 쇠퇴일로에 들어서면서 존립위기를 맞았고 잇따라 문학위상이 사양되고 민족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 《이런 적기에 고고성을 울린은 그 출범부터 세인의 주목을 끌고있으며 이는 우리의 민족문학과 제반 분야가 새로운 부흥을 맞고있다는 청신호》라고 갈파했다. 최국철은 《새로운 부흥을 맞고있는 현시점에서 우리 민족문학이 단순한 민족문학의 한계를 벗어나 우리 민족 우수한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민족의 정치, 경제, 문화 및 지역특성을 홍보하는 특수한 사명을 지녀야 한다》고 부언했다. /사진 김태국기자 조선족문단 최고상 “단군문학상” 탄생 “단군문학상” 제막식 및 문학사업좌담회 개최 2015-5-25    2015년 5월 23일, 중국조선족문단의 최고상으로 되는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의 제막식 및 문학사업좌담회가 연길 백산호텔에서 있었다.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작가학회와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가 손잡고 주최하고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잡지사와 “단군문학상”비공모기금회 및 연변작가협회에서 주관하는 “단군문학상”의 제막식에 주당위 선전부 부장 윤성룡,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작가학회 상무부회장 엽매, 중국작가협회 소수민족작가협회 부회장이며 중국작가협회 《민족문학》잡지사 부주필인 조안표가 행사에 참가해 길림공상학원당위 서기이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회장이며 “단군문학상”비공모기금회 리사장인 신봉철 등과 함께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가동 터치볼을 작동했다. 의식에서 엽매, 신봉철이 각기 중국작가협회와 “단군문학상”리사회를 대표하여 합작협의서에 조인했다. 신봉철회장은 이날 제막식에서 “조선족은 유구한 문화전통을 지닌 민족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조선족문단에 전국적으로 통일되고 권위있는 최고문학상이 설치되여있지 못한 현실에 무척 안타까왔다”면서 “단군문학상을 통해 우리의 작가들이 자신의 힘을 마음껏 과시해 우리의 힘으로 우수한 문학작품을 널리 알릴뿐만아니라 또 민족문학이라는 단순한 한계를 벗어나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기를 바란다”라고 “단군문학상”설치 취지를 밝혔다. 엽매는 “문학예술인들의 문예창작에서 애국주의가 주선률로 되여야 한다”면서 개혁개방 30년간 중국조선족문학은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는바 이는 중국조선족문인을 포함한 조선족사회 각 계층의 막강한 단결력을 보여준다. 오늘 ‘단군문학상’의 설치로 중국조선족문학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의식에서 공개한데 의하면 제1회 “단군문학상”은 조선족작가들이 지난 2000년 1월 1일부터 2014년 12월 30일까지 발표한(출판일자를 기준) 조선어와 한어로 창작한 각 쟝르별 작품집(장편소설, 소설집, 시집, 수필집, 장편보고문학, 아동문학, 평론)을 대상한다. 조선문과 한문으로 출판하는 각 출판사, 문학지, 신문사 문예부간, 연변작가협회 각 창작위원회에서는 모두 작품을 추천할수 있으며 작가 개인도 자기의 작품을 추천(응모시간: 2015년 5월 24일부터 7월 30일까지, 보낼 곳: 연길시 공원로 653호 연변작가협회 창작연구실, 우편번호:133001 련계전화:0433-2733347 핸드폰:18643325289 이메일:sunwh3367@hanmail.net 업무주관:손문혁)할수 있다. 제1회 “단군문학상” 시상식은 올 9월,10월 사이에 연길에서 펼칠 예정이다. 또한 2015년을 기점으로 2년에 한번씩 시상식을 가지게 되는데 대상, 소설상, 시가상, 수필상, 보고문학상, 아동문학상, 평론상, 번역상, 해외작품상 및 신인상이 설치된다. 대상은 1명인데 상금은 15만원이며 기타 쟝르는 각기 5만원, 신인상은 3만원이다. 글·사진 신연희 기자 ============================================================= [공시]제1회 《단군문학상》추천작품 편집/기자: [ 김태국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8-14 11:12:55 ]      장편소설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북두성》 김춘자 료녕민족출판사(2013.1) 2.《관동의 밤》 김송죽 북경민족출판사(2008.12) 3.《재해》 박선석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2007.10) 4.《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 허련순 연변인민출판사(2005.12) 5.《히든카드》 정용호 료녕민족출판사(2012.9) 6.《족보》 림원춘 료녕민족출판사(2004.12) 7.《산너머 강》 강효근 연변인민출판사(2011.4) 8.《흔적》 우광훈 연변인민출판사(2005.12) 중단편소설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장손》 박옥남 연변인민출판사(2011.7) 2. 구촌조카》홍천룡 연변인민출판사(2010.12) 아동문학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열매를 단 경아라는 나무》 한석윤 연변인민출판사(2003.6) 2.《아기가 쓴 편지》 전춘식 연변인민출판사(2013.12) 3.《눈아이》 강길 연변인민출판사(2011.5)4. 4.《개구리 셈셰기 한다》 신금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2009.5) 5.《새빨간 거짓말》 김만석 연변인민출판사(2010.4) 6.《가시돋는 뽈》 주덕진 연변인민출판사(2009.5) 7.《작은 하늘》 김철호 연변인민출판사(2013.8) 8.《용이와 그의 벗들》 리영철 연변인민출판사(2009.5) 9.《고드름》 김득만 연변인민출판사(2004.2) 10.《천사는 웃는다》 최동일 연변교육출판사(2007.12) 11.《살구꽃 복사꽃》 림금산 연변교육출판사(2013.7) 산문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흰눈이 내리면 그리움도 내린다》 서정순 료녕민족출판사(2010.12) 2.《역마가 끌어낸 별들의 이야기》 리호원 흑룡강민족출판사(2012.7) 3.《세모의 설레임》 장정일 연변인민출판사(2011.10) 4.《하느님은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가》 리홍규 흑룡강민족출판사(2000.11) 5.《녀불법체류자의 일기》 림덕실 연변인민출판사(2000.11) 실화문학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홍만호실화문학작품선》 홍만호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2009.11) 2.《빛나는 탐구의 길 》 김영금 료녕민족출판사(2003.7) 3.《정률성평전》 리혜선 북경민족출판사(2013.10) 4.《겨레항일지사들》 리광인 북경민족출판사(2007.10) 5.《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 김수영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2007.7) 문학평론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식민담론과 문학의 서사구조》 방룡남 북경민족출판사(2013.10) 2.《조선족시문학연구》 김경훈 연변인민출판사(2012) 3.《이미지시 창작론》 최룡관 연변인민출판사(2009.10) 4. 《조선족이민작가연구》 장춘식 북경민족출판사(2010.7) 5. 《중국 제재 근대 조선이민소설의 서사 주제론》 남춘애 북경민족출판사(2014.7) 6.《중국조선족문학》(12) 김관웅 연변인민출판사(2014.12) 7.《해방전후중국조선민족문학연구학연구》 박충록 북경민족출판사(2003.10) 시집 (작품명칭/작자/출판단위/출간일시) 1.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김영건 연변인민출판사(2010.3) 2. 《고향엔 고향이 없다》 김학송 연변인민출판사(2013.7) 3. 《당신의 이름으로》 송미자 연변인민출판사(2010.4) 4. 《나, 진짜 바보이고싶다》 김철 북경민족출판사(2000.6) 5.《흙묻은 이름》 심정호 연변인민출판사(2012.11) 6. 《먼 후날 저 하늘너머》 강효삼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2000.1) 7. 《십자거리에 물처럼 고인 차량들》 심예란 연변인민출판사(2011.7) 8. 《사람아,사람아》 조룡남 연변인민출판사(2010.7) 9. 《눈을 뜨면 다른 세상이 보인다》 리성비 연변인민출판사(2011.3) 10. 《짧은 시, 긴탄식》 박장길 연변인민출판사(2010.6) 11. 《잔설서곡》 리태학 연변인민출판사(2008.3) 12. 《바다가 륙지로 되지 않는 까닭은》 리임원 북경민족출판사(2014.12) 13. 《서탑》 김창영 료녕민족출판사(2011.8) 14. 《태양의 종소리》 김파 연변인민출판사(2005.12) 신인상 (작품명/편(부)/작자/발표,출판단위/발표일자) 1.《전지》 1편 최춘화 료동문학(2011) 2. 《파리한 파리》 1부 박동철 연변인민출판사(2009.1) 3. 《섬의 녀인》 1편 김옥결 《시간》(2014.7) 4. 《령혼이 숨쉬는 정원》1편 주매화 《연변문학》(2014.10) 5. 《또르르 뱅뱅》 1부 강려 연변인민출판사(2011.8) 6. 《장률과 그의 영화》 1편 김미란 《연변문학》(2011.11) 7. 《모기》 1편 한설매 《아동세계》(2009.1) 8. 《사랑의 류통기간》 1부 구호준 료녕민족출판사(2011.8) 9. 《노란 해바라기꽃》 1편 김금희 《연변문학》(2014.2) 10. 《절골이 어딘지 아시나요?》1편 박초란 《연변문학》(2014.3) 11. 《귀향》(외3수) 1편 전춘매 《연변문학》(2010.3) 12. 《내가 내곁에》 1편 주향숙 《연변문학》(2009.10) 13. 《우주와 우주와 인간의 경계에서 태동하는 》 1편 리광원 《연변문학》(2014.12) 14. 《나에게로 돌아오는 너》 1부 허옥진 연변인민출판사 15. 《거꾸로 흐르라, 두만강아!》(외1수) 1편 김호 《연변문학》(2006.8) 16. 《바람의 딸》 1편 박은희 《도라지》(2013.6) 17. 《바다와 중년의 녀인 그리고 친구》 1편 전향미 《연변문학》(2013.12) =========================================================== 제1회 “단군문학상”평의회에 참석한 평심위원들 2015년 12월 10일 첫기 “단군문학상” 평의회가 연길에서 있었다. “단군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리사회가 공동 주최한 문학상이다. 소수민족 문학 내실을 풍부히 하고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조선족 문화를 계승발양하려는데 취지를 둔 “단군문학상”은 2015년에 가동되여 2년에 한차례씩 심사평의 한다. 심사위원들은 평의 취지를 토대로 전문적 학술정신과 개인적 재능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세밀하며 구체적인 심사와 토론을 거친 뒤 실명투표를 통해 9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그중 단군문학상 대상은 결원 처리되고 소설과 산문, 시가, 보고문학, 론평, 아동문학 부문 각기 1편, 한문창작상 2편, 문학신인상 1편이 수상작 명단에 올랐다. 중국조선족 첫기 “단군문학상” 시상식은 2015년 12월 26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서 열린다. 수상작: 奖项수상종목 作者 작가 作品 작품 大 奖 대상 空缺 결원 小说奖 소설상 허련순 许莲顺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谁见过蝴蝶的巢 散文奖 산문상 장정일 张正一 세모의 설레임 岁暮随想 诗歌奖 시가상 김영건 金荣健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晨山问候 报告文学奖 보고문학상 리혜선 李惠善 정률성평전 郑律成评传 评论奖 론평상 장춘식 张春植 일제시기조선족이민작가연구 日据时期朝鲜族移民作家研究 儿童文学奖 아동문학상 김철호 金哲镐 작은 하늘 小小天空 汉文创作奖 한문창작상 南永前 남영전 我们从哪里来?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전용선 全勇先 소화18년 昭和18年 新人奖 신인상 구호준 具豪俊 사랑의 류통기간 爱的流通期         第一届中国朝鲜族“檀君文学奖”评委会   组 长: 崔国哲 延边作家协会主席(主持) 副组长:禹尚烈 延边大学教授、文学评论家 评 委: 崔红一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崔三龙  原延边文学与艺术研究所所长 权赫律  吉林大学外国语学院副院长、文学评论家 李太福  黑龙江大学教授、文学评论家 金京勋  延边大学教授、文学评论家 金 革  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徐振清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韩锡润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作家 吴相顺  中央民族大学教授、文学评论家   首届檀君文学奖评委会 2015年12月10日 ========================================= ---------- [길림신문] 2015-12-17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수준을 대표하는 우수문학작품들을 엄선해 평의하는 “단군문학상(檀君文学奖)”수상자 결과가 12월 10일 평심회를 거쳐 밝혀졌다. “단군문학상”은 통일적이고 권위있고 력사에 남을 최고의 조선족문학상을 만들어 우리 작가들이 명작을 창작하도록 격려하며 조선족문학의 번영발전을 추동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전국과 세계에 널리 알리는것을 취지로 했다. 조선민족의 시조인“단군”(檀君)으로 명명한 이 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단군문학상리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중국작가협회“민족문학”잡지사, “단군문학상”기금회, 연변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있다. 단군문학상리사회는 “단군문학상” 제1회 평심범위를 새 세기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14년말까지 15년간 조선어와 한어로 창작한 우리 민족 작가들의 각 장르별 작품집을 대상했다. “단군문학상”평심조직위원회 오장권부회장에따르면 “단군문학상”은 문학상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특별히“단군문학상”리사회를 설립하고 “단군문학상조례”를 통과했으며 단군문학상 평심위원회 및 평심전문가데이터베스를 만들었다. 12월 10일 연길시에서 있은 “단군문학상”평심모임에서는 “단군문학상평심조례”의 기초우에서 “단군문학상” 평심방법을 작성하고 평심전문가데이터베스에서 선정된 11명의 평심권위들로 참다운 평심을 진행, 무기명투표가 아닌 실명제투표의 방식으로사상 가장 엄밀하고 규범적이며 공정한 문학상평선결과를 산생시켰다. 료해에 따르면 제1회 “단군문학상”은 대다수 평심위원들이 대상으로 선정할만한 평심작품범위내 작품이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면서 공백으로 남겨졌다. 대망의 제1회 “단군문학상”시상식은 오는2015년 12월 26일 룡정시 해란강극장에서 펼쳐진다. 부록: 제1회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평심위원 명단 조장-  최국철: 연변작가협회 주석, 소설가  부조장-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 평론가 위원- 최홍일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최삼룡: 원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권혁률: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부원장 리태복: 흑룡강대학 교수 김경훈: 연변대학 교수, 박사생도사, 교수, 평론가 김혁: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소설가 한석윤: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아동문학가 오상순: 중앙민족대학 박사생도사, 교수, 평론가 서진청(한족):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 [연변일보] 2015-12-17 제1회 “단군문학상”시상식 26일 개최 예정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시상식이 오는 26일, 룡정시 해란강대극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에 앞서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에서 주최한 평심회의가 지난 10일, 연길시 백산호텔에서 진행됐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주석이 조장을 맡고 연변대학 박사지도교수 우상렬이 부조장을 맡았으며 연변작가협회 최홍일 부주석을 비롯한 9명이 평심위원을 맡아 공평, 공정의 원칙하에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을 선정했다. 평의 결과 소설상에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산문상에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 보고문학상에 리혜선의 《정률성평전》, 평론상에 장춘식의 《일제시기조선족이민작가연구》, 아동문학상에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汉文奖)에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我们从哪里来?)》와 전용선의 《소화18년(昭和18年)》, 신인상에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이 선정됐다. 이상 쟝르별상은 5만원의 상금이, 신인상은 3만원의 상금이 차례질 예정이다. 대상은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이번 단군문학상은 평심회의기간 철저한 보안과 더불어 평심위원 실명추천을 실시하는 등 공평, 공정한 평의를 진행했다. 단군문학상은 앞으로 2년에 1회 개최될 예정이다.  리련화 기자 ----------------------------------------------------------------   중국조선족 문학 별들의 대잔치- '제1회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시상식' 룡정서    2015-12-28 10:02:05               중국조선족문단의 최고상으로 부상   민족문학의 새 지평선을 여는 계기   (흑룡강신문=하얼빈)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리광평 특약기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중국 조선족 단군문학상리사회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중국조선족 문학 별들의 대잔치인 '제1회 중국 조선족 단군문학상시상식'이 길림성 조선족경제과학기술총회,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룡정시정부,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중공연변주위선전부,연변작가협회,연변신문출판국 관계자들 그리고 작가,시인, 룡정시 시민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26일 룡정시해란강극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윤한윤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부회장은 축하연설에서 "중국조선족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는 민족으로서 세월의 세파속에서 세계적으로도 알려지고 있는 문학예술을 자랑하고있다"며 "조선족문학은 중국문학판도에서 아주 튼튼한 립지를 굳히고 있는데 특히 조선족 로일대 작가인 김학철 선생은 불굴의 문학정신과 민첩하고 예리한 필치로 대량의 작품들을 펴내 조선족사회의 사랑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기타 민족사회에서도 아주 존중하는 작가로 부상했다"고 하고나서 "력사가 증명하다싶이 백성들이 존중하는 작가,시인은 항상 력사시대의 앞에서 어두운 풍운을 맞받아 헤쳐가고 시종 민족의 리익을 위해 작품을 써 내려가고 있기에 진실하면서도 선량하고 아름다움으로 가짜와 추악 그리고 더러운 사회에 호된 질타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대상이 공석으로 되여 아쉬움이 있지만 조선글로 된 소설,시,산문,보고문학,평론,아동문학,신인상 7부와 한문상 2부는 '단군문학상'의 력사적인 서막을 열어놓아 앞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이 고고성을 울리리라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우상렬 연변대학교 교수는 이번 단군문학상의 심사위원회 책임자로서 "심봉철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총회 회장의 창의하에 출범된 단군문학상은 중국조선족문단의 최고 영예상으로서 아주 엄격하게 심사했다"했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족 제1회 '단군문학상' 수상작품으로는 소설상에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산문상에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보고문학상에 리혜선의 '정률성평전',평론상에 장춘식의 '일제시기 조선족이민작가연구',아동문학상에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에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와 전용선의 '소화18년',신인상에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이다   이번에 당선된 신인상은 상금 3만원이고 기타 각 상은 상금 5만원이다. 허련순   허련순 소설가는 수상소감에서 "나비가 집이 없듯이 우리민족의 삶과 애환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펴 나가겠다"고 했다. 김영건   김영건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에 선정되여 너무나도 흥분된다"며 "앞으로 단군의 정신을 본받아 따뜻한 마음으로 이 세상 모든것을 포옹하는 시,우주속의 묻혀가는 삶의 공간을 확대하여 더 좋은 시를 창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장정일   장정일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오랜 세월 생각,사색,음미라는 단어를 사랑해 왔다."며 "수필과 평론 집필을 통해 동년의 감성을 불러왔고 사색의 가파른 연기를 오르게 해서 좋았고 이따끔 정신의 시냇물을 만나게 해서 좋았다"고 했다. 리혜선   리혜선 소설가는 수상소감에서 "단군문학상의 취지가 민족문학의 꿈이 있다"며 "앞으로 민족부흥의 뜻을 깊이 아로 새기고 백성들에게 성큼 다가갈수 있는 문학을 창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장춘식   장춘식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문학의 길은 어렵지만 민족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고 좋은 작품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있다"며 "새로 설립한 단군문학상은 바로 노력의 결실일것이다"라고 했다. 김철호   김철호 작가는 "작품은 간고한 탐구속에서 탄생하므로 앞으로 이런 탐구속에서 더 좋은 아동문학을 창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남영전  남영전 시인은 "단군문학상은 저의 창작을 격려하는 상인 동시에 저의 창작 방향을 제시한 상이다"며 "단군은 천인합일 사상의 상징이고 심신수련의 상징이며 건전한 사회를 이끄는 선지선각자이므로 단군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창작하는것은 저의 사명과 책임이므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용선    그리고 장춘식 작가,전용선 작가,구호준 작가들은 "단군문학상은 문학정상을 향해가는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구호준   심봉철 회장은 "민족문학창작의 새 기원을 열어가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했다.   그는 연설에서 "오늘 (12월 26일)은 모택동동지 탄신 122주년 기념일로서 이런 특수한 날을 선택하여 '단군문학상'시상식을 거행하는것은 심각한 기념의의가 있다.모택동동지의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부터 습근평총서기의 지난해 '문예사업좌담회의 연설'까지 한갈래 주선이 시종 관통되여있는바 이는 곧 문학창작의 인민성이다. '단군문학상'을 설립한 중요한 의의는 두 위인의 중요한 연설의 정신을 깊이 리해하고 우리민족의 작가,시인들로 하여금 시대에 부끄럽지 않고 민족에 부끄럽지 않는 불후의 명작들을 창작하도록 고무격려하려는데 있다"며 "우리모두 '단군문학상'을 가꾸고 '단군문학상을 아끼며 '단군문학상'을 발전시키자"고 하고나서 '단군문학상'은 갓 땅을 뚫고나온 새싹으로서 하늘을 꿰지르는 큰 나무로 자라날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사랑과 보살핌이 수요되며 '단군문학상'은 마치 갓 발굴한 문학화원의 광석으로서 정밀한 조각을 통하여 보석마냥 빛나는 아름다운 예술품,불후의 작품이 되여야 하며 민족문학창작의 새 장은 반드시 문화의 '고원'으로부터 문학의 '고봉을 톱아올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수한 력사경험이 증명하는것처럼 그 어떤 신생사물의 성장은 순풍에 돛단듯이 순조롭지 않으므로 당의 민족정책,문예정책의 인도하에 오직 이 세상에 정의가 존재한다면 '단군문학상'은 반드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온 누리에 빛을 뿌릴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단군문학상' 시상식은 우리민족의 전통예술인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우리민족의 애환을 담은 '아리랑'의 음률속에서 치러짐과 아울러 축하공연이 있어 장내는 시종 뜨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제1회 “단군문학상” 시상식 룡정서 중국조선족문단 최고의 상  2015-12-28    중국조선족문단의 최고의 상으로 불리우며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단군문학상”이 26일 룡정시 해란강대극장에서 제1회 시상식을 가졌다. 중국조선족문학사상 최초로 선보이는 단군문학상은 대상 15만원, 각 쟝르별상 5만원, 신인상 3만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가 공동 설치했다. 새 세기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14년말까지 15년 동안 조선족문단을 수놓은 작품중 76편의 작품이 “단군문학상” 심사행렬에 오른 가운데 최종 9편이 각 쟝르별 단군문학상의 월계관을 받았다. 이 상은 중국조선족문학사상 최대의 규모와 최고의 상금을 걸고 설치한 문학상인만큼 그 심사에 서도 실명제 투표방식으로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졌다. 소설상에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산문상에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 보고문학상에 리혜선의 《정률성 평전》, 평론상에 장춘식의 《일제시기 조선족이민작가연구》, 아동문학상에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에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我们从哪里来?)》와 전용선의 《소화 18년(昭和18年)》, 신인상에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이 선정됐으며 대상은 공석으로 남겼다.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윤한윤부주석은 조선족은 유구한 력사문화전통을 자랑하는 민족이며 찬란한 문화예술사를 가지고있는 민족으로서 개혁개방이후 조선족문학은 활발한 성장세를 보이며 시대성과 민족특색을 고루 갖춘 수작들로 중국문단에서의 소수민족문학 립지를 튼튼히 굳혀갔다고 말했다. 그는 “단군문학상”이 향후 더욱 훌륭한 조선족문학작품이 창작될수 있는 활무대를 만들어주며 조선족문학발전을 추진하고 이끌어가는 새 장을 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윤한윤부주석과 함께 길림공상학원당위 서기이며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회장, 단군문학상비공모기금회 리사장 신봉철, 부주장 조룡호가 시상식에 참가하여 수상자들한테 상을 발급했다. 향후 2년에 한번씩 진행될 예정인 “단군문학상”은 메말라있던 중국조선족문단에 꽃비로 뿌려져 더욱 아름다운 문학의 꽃들을 피워 중국조선족문단에 아름다운 풍경선을 만들어갈 전망이다.  박진화 기자   중국조선족문단의 “별”들 영광의 무대 밝혔다 편집/기자: [ 안상근 김성걸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27 12:31:45 ]  “중국조선족제1회단군문학상”시상야회 룡정해란강극장에서 성황리에 개최 “중국조선족문학의 전당, 별들의 축제”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중국조선족제1회단군문학상”시상야회가 2015년 12월26일 오후 4시,룡정시해란강극장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2000년부터 2014년말까지 15년간 우리 민족 작가들이 조선어와 한어로 창작한 각 장르별 최고의 작품을 엄선해 포상하는 우리민족 문학사상 최고의 문학상인 “단군문학상”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가장 빛나는“문학의 별”들을 영광의 전당에 오르게 했다. 조선민족의 시조인 “단군”(檀君)의 이름으로 명명한 이 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길림성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연변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날 시상식야회에 앞서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부회장 윤한윤과 연변주당위선전부 부부장 리호남이 열정에 넘치는 축사를 했다. 윤한윤은 축사에서 “조선민족은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갖고있는 민족”이라고 지적, “기나긴 민족발전력사과정에서 휘황찬란하고 영향력있는 문학예술작품들을 창작하였다”고 말했다. 특히 개혁개방이래 조선족문학은 륭성발전하는 력사시기에 들어섰으며 시대적맥박과 분위기가 짙고 민속특색이 있으며 민족생활을 반영한 많은 조선족작가들과 작품들이 용솟음쳐나왔다고 긍정했다. 윤한윤은 “이러한 성과들은 중국문학가운데 중국조선족문학의 견실한 지위를 확고히 자리매김하고있다”고 말했다. 축사를 하고있는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부회장 윤한윤 윤한윤은 특히 “단군상의 설립은 조선족문학의 발전을 추진하고 전시하는 좋은 창구로 될것”이라면서 “이 창구를 리용하여 더욱 많은 우수한 조선족작가들과 작품들이 용솟음쳐나올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리호남은 축사에서 “단군문학상은 중국조선족문학사에 기재될만한 뜻깊은 대사”라고 강조, “제1회 단군문학상은 새로운 시기에 진입한 이래 10여년동안의 중국조선족문단력사를 돌이켜보고 풍성한 수확을 견증하는 영광의 자리, 축제의 자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축사를 하고있는 연변주당위선전부 부부장 리호남 특히 리호남은 “지난 5월23일 모택동동지의 연안문예좌담회연설발표 73돐에 즈음해 발족된 ‘단군문학상’은 당면 중국조선족문학의 격변기에 문학대오와 독자군체가 위축되면서 새로운 형세와 도전에 직면해있는 배경하에서 문학실천의 새로운 발전을 추진하고 문학창작의 비약을 추진하는 새로운 생명활력소로 될것”이라고 전망, “단군문학상은 그 규모와 차원으로 볼때 민족문학의 튼튼한 버팀목으로 될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리호남은 “습근평총서기의 문예좌담회 중요연설은 당면과 금후 한시기 우리나라 문예사업의 전진방향을 제시해주고있다”면서 “작가여러분들이 반드시 습근평총서기 중요연설을 참답게 학습관철시달하면서 인민대중을 위해 봉사하고 사회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문예사업의 방향과 백화제방, 백화만발의 문예사업방침을 확고히 견지하고 사회주선률을 놀해하며 위대한 시대와 위대한 인민에 부끄럽지 않은 우수한 작품들을 창작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꿈실현을 위해 새로운 기여를 할것”을 바랐다. 알아본데 의하면 “단군문학상”은 문학상의 권위와 공평, 공정, 공개적인 평심을 보장하기 위해 특별히“단군문학상”리사회를 설립하고 “단군문학상조례”를 통과했으며 단군문학상 평심위원회 및 평심전문가데이터베스를 만들었다. 시상식에서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위원회 부위원장인 연변대학교 우상렬교수가 심사위원들을 대표하여 심사평을 발표, “단군문학상”이 중국조선족문학에 있어서 력사적의 의의가 있는 뜻깊은 최고 문학상이고 많은 사람들이 오매에도 단군문학상 심사결과를 기대하는 심정을 헤아려 공정하고 공평하며 공개적인 원칙과 투철한 사명감, 책임감을 가지고 력사에 책임지는 자세로 열심히 심사에 임했음을 밝혔다. 우상렬교수는 대상은 거듭되는 공정한 투표와 충분한 론의를 거쳐 유감스럽게도 공석으로 처리했음을 밝혔다. 소설상 수상자 허련순 제1회 “단군문학상”의 소설상에는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는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산문상에는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 보고문학상에는 리혜선의 “정률성평전”, 평론상에는 장춘식의 “일제시기 조선족이민작가연구”, 아동문학상에는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汉文奖)에는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전용선의 “소화18년”,신인상에는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 등이 입선돼 대망의 영예전당에 올랐으며 각각 5만원의 상금(신인상은 3만원)을 받아 안았다. 이날 시상식야회에서 “제1회단군문학상” 발족을 제안하고 적극적으로 추진시킨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 신봉철리사장이 “민족문학창작의 새기원을 열어가자”는 제목으로 된 열정에 넘치는 연설을 했다.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 신봉철리사장 신봉철리사장은 “모택동동지의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부터 습근평총서기의 지난해 문예사업좌담회의 연설까지 한갈래 주선이 시종 관통되여있는바 이는 곧 문학창작의 인민성”이라고 강조, “우리가 단군문학상을 설립한 중요한 의의는 두 위인의 중요한 연설의 정신을 깊이 리해하고 우리 민족의 작가, 시인들로 하여금 시대에 부끄럽지 않고 력사에 부끄럽지 않으며 민족에 부끄럽지 않는 불후의 명작들을 창작하도록 고무격려하려는데 있다”고 밝혔다. 연설에서 신봉철리사장은 “특히 우리 모두가 함께 단군문학상을 가꾸어나가고 모두가 단군문학상을 아끼며 모두가 단군문학상을 발전시켜나갈것을 마음속으로부터 호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신봉철회장은 “민족문학창작의 새장은 반드시 ‘문학의 고원’으로부터 ‘문학의 고봉’으로 톺아올라가야 하는것”이라면서 “이것이 바로 단군문학상 리사회의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말했다. 신봉철회장은 “위대한 민족은 반드시 위대한 문학작품이 있어야 한다”면서 “단군문학상의 설립이 우수한 우리 민족의 문학창작발전을 도울수있다면 우리는 죽어도 한이 없을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봉철리사장은 “단군문학상을 가꾸고 아끼고 발전시키는 길에서 험난한 앞길을 예감하고있지만 당의 옳바른 민족정책과 문예정책의 인도하에 오직 이 세상에 정의가 존재한다면 단군문학상은 반드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마냥 온 누리에 빛뿌릴것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중화대가정의 문학백화원에 어엿이 자리매김할것”이라고 말했다. 영광의 무대에 오른 “단군문학상”수상자들과 관계자들 이날 단군문학상시상식야회는 수상자들에 대한 품격있는 수상절차와 함께 사이사이 다양한 문예종목들로 알차게 꾸며져 중국조선족문학사상 잊지못할 아름다운 문화향연의 밤을 수놓았다. ======================================================================                통합검색열린강좌 오늘의 사진 자유갤러리 사진이야기 황사모 전시관 두사동                    국내] “중국조선족제1회단군문학상”시상야회                                       “중국조선족문학의 전당, 별들의 축제”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우는 “중국조선족제1회단군문학상”시상야회가 12월26일 오후 4시,룡정시해란강극장에서 성황리에 펼쳐졌다. 2000년부터 2014년말까지 15년간 우리 민족 작가들이 조선어와 한어로 창작한 각 장르별 최고의 작품을 엄선해 포상하는 우리민족 문학사상 최고의 문학상인 “단군문학상”은 중국조선족문단에서 가장 빛나는“문학의 별”들을 영광의 전당에 오르게 했다.    제1회 “단군문학상”의 소설상에는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는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산문상에는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 보고문학상에는 리혜선의 “정률성평전”, 평론상에는 장춘식의 “일제시기 조선족이민작가연구”, 아동문학상에는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汉文奖)에는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전용선의 “소화 1 8 년”,신인상에는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 등이 입선돼 대망의 영예전당에 올랐으며 각각 5만원의 상금(신인상은 3만원)을 받아 안았다. / 길림신문               [단군문학상]그대들이 있어 우리 문학이 빛난다 편집/기자: [ 안상근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27 13:23:52 ]  -제1차 "단군문학상" 수상작 심사평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위원회 부위원장 우상렬 심사평을 하고있는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위원회 부위원장 우상렬교수 “단군문학상”은 우리 조선족문학에 있어서 역사적 의의가 있는 뜻깊은 최고 문학상인 줄로 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매에도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결과를 기대한 줄로 안다. 이런 막중한 문학상인만큼 심사위원들은 공정하고도 공평하며 공개적인 원칙 및 투철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역사에 책임지는 자세로 열심히 심사에 림했다. 이에 본인은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심사위원들을 대표하여 아래와 같이 정중히 심사평을 발표한다. 대상은 거듭되는 공정한 투표와 충분한 론의를 거쳐 공석으로 처리했다. 중국소수민족문학상 가운데서도 최고 레벨을 자랑하는 “단군문학상”의 위상과 무게를 놓고 볼 때 우리 조선족문학이 아직은 좀 미흡하다는 관점이 심사위원들 절대 다수의 관점이였다. 심사위원들의 실사구시적인 평가자세를 볼수있어서 좋았다. 그럼 아래에 부문 별 수상작에 대해 시, 산문, 보고문학, 소설, 평론, 아동문학, 한어작품, 신인 순으로 심사평을 발표하도록 한다. 1.시:김영건의 “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심사평, 김경훈) 김영건의 시는 대체로 무에서 유의 가치를 발견하고 유를 부정함으로써 무의 경지를 창출(“서시”)한다. 바람에 쉽게 설레이는 숲의 주절거림과 흔들림을 생략하고, 나뭇가지에 위태롭게 매달린 이슬방울 속에서 아침해와 걸어가야 할 길과 마을과 새와 벌레와 구름과 너나가 있다고 함으로써 가장 청결하고 령롱한 이슬에 미래의 모든 것을 담아냄으로써 크기와 색갈과 모양과 성질에 관계없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관조를 시도하고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우주적인 관조에의 노력은 자연합일이나 천지인의 사상(“합일” “천지인”)과 일부 불교적인 발상같은 오래된 사고방식에 기초했으면서도, 그만의 개성적인 방식에 의해 재구성됨으로써 더욱 독창적인 빛갈을 내뿜는다 하겠다. 이는 구체적으로 시적인 공간과 색채미학, 남성적인 톤 등에 의해 드러나는 것으로, 우선 시적인 공간에서 “숲”과 같은 작품에서는 숲-길-새-하늘-구름-바람의 순으로 초점화가 이루어지면서 하늘과 땅에 거쳐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처럼 시적 상상의 극치를 추구하는 자세는 어딘가 공격적이기도 한 남성적인 자세라고도 할수있다. 바로 이번에 수상한 시집에는 전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다 분명한 남성적인 톤과 의미의 급속한 확산(“바다사나이” “호랑이 하산”)이 보여졌는데 이것들은 야성적인 목소리나, 호랑이, 근육질 등 구체적인 표현을 통해 리얼하면서도 강렬하게 어필되여왔다. 또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대조시키면서도 색채에 대한 나름대로의 시적인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주제를 보다 풍성하고 오묘하게 조각(“계의 영토” “나무 그리기”)해 내여 시적인 분위기를 보다 다채롭고도 신비하게 조명시켰다는데 그 특색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2.산문: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심사평, 최삼룡) 장정일은 수필가이며 평론가로서 우리 문단에서 수필문학의 쟝르적 고착에서 한마지로(汗馬之勞)를 세운 공로자이다. 2011년 10월 료녕민족출판사에서 간행한 수필집 “세모의 설레임”은 선생이 신세기에 진입한 이래 창작발표한 100여편의 수필작품을 묶은 책으로서 책에 수록된 100여편의 작품은 일매지게 언어가 세련되고 내용이 풍부하고 심각하며 형식이 다양하고 깔끔한바 가히 작은 그릇에 자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담았다고 비유할수있다. 특히 이 책에 수록된 적지 않은 수작들은 주관문학이라고 불리우는 수필문학의 생명이라고 하는 작자-창조주체의 삶과 마음과 넋의 진솔한 표현에 공을 들이였으며 아울러 사회와 문화 그리고 민족의 생활현장에 대한 재현과 고발과 비판에 성공적이였으며 읽는이들에게 많은 깨달음과 느낌을 주고있다. 그리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독서취미를 충분히 배려하여 작품을 되도록 짧게 쓰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문풍을 높이 사고 싶다. 총적으로 장정일의 수필집 “세모의 설레임”은 없던 데로부터 있게 되고 미미한 존재로부터 당당한 존재로 성장, 성숙, 흥성하는 와중에 창출된 수많은 수필집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돋보이는 성과의 하나로 평가할수있다. 3.보고문학: 리혜선의 “정률성 평전”(심사평, 김혁) “정률성평전”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작곡자이고 섭이, 선성해와 나란히 중국 3대음악가로 추앙받는 중국 군가의 대부, 인민음악가-정률성의 인생력정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저자는 전국 각지와 한국을 답사하고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 정률성의 삶을 밀도있게 취재했다. 방대한 자료를 근거로 인생의 고비마다 인간 정률성의 성격이 발전, 승화할 수 있었던 계기를 집요하게 추적했다. 정률성의 추구와 고뇌와 슬픔과 부끄러움과 기쁨을 파헤침으로써 사회가 이미 규정한 정률성의 “영웅성”에 도식화되지 않고 보통 인간으로의 정률성의 풍부한 내면을 잘 그려냈다. 또한 이를 통해 식민지시대와 그 후 사회주의 시기 전 생애에 걸친 한 생명존재의 치렬한 몸부림과 가치관, 사상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민족해방투쟁과 반파쑈투쟁에 투신해 인민을 고무하는 불후의 음악을 창작할수있었던 인민음악가 정률성의 성격을 합리하고 조리있게 부각했다. 풍부한 언어, 현장감이 넘치는 서술에 상상을 자극하는 론평을 곁들여 반전이 심한 정률성의 격동적인 인생드라마를 박진감이 넘치게 완성했다. 4.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심사평, 리태복) 소설 부문 심사에서 끝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은 수상작과 박선석의 “재회”였다. 개연성과 유머적 감각을 높이 산 심사위원들은 “재회”를, 완성도와 총체적 플롯, 그리고 언어의 세련됨에 방점을 찍은 심사위원들은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를 선택했다. 결국 근소한 차이로 허련순 작가가 제1회 소설부문 본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였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는 우선 밀입국 배(선창)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과 나흘이라는 짧은 시간에, 극한적 상황에서의 인간의 선택과 수십년에 걸친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삶을 생생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지은이의 력량이 돋보였다. 그리고 남주인공의 끝 간 데를 알 수 없는 고난의 심적·육체적 려정과 녀주인공의 한없이 슬픈 령혼을 랭정하고 담담한 어조로, 서두르지 않고 유유히 엮어나갈 수 있었던 것 역시 소설과 그 창작방법에 대한 깊은 리해, 그리고 그것을 지면에 옮기는 완숙한 기량에서 기인된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밀입국 배의 선창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설정,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교차적 시점의 원용 등으로 독자들이 기시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 역시 높이 평가 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물론 허점이나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자리에서 그 부분에 관한 론의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제1회 “단군문학상” 소설 부문의 심사는 한편의 수상작과 그 수상작에 버금가는 여러 추천작의 중후한 하모니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수상작 외의 모든 추천작에게도 박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5.평론(1): 장춘식의 “일제강점기 조선족 이민작가 연구”(심사평, 우상렬) 장춘식은 중국조선족 문학연구에서 많은 성과를 거둔 중진연구가로 꼽힌다. 본 저서는 그 연구성과의 하나로 볼수있겠다. 본 저서에 수록된 글들은 대부분 1998년부터 현재까지 필자가 여러 학술회의에서 발표했거나 학회지에 게재한 론문들이다. 그리고 본 저서를 정리하면서 처음 작성한 론문들도 있다. 장춘식의 끊임없는 학술탐구정신을 높이 살만하다. 본 저서는 김창걸, 김조규, 안수길 등 거의 대부분의 중요한 조선족 이민작가를 연구한 대표성과 포괄성을 띠고 있다. 그의 자료검토가 꼼꼼하고 분석이 투철하며 결론이 타당하다. 일부 새로운 자료도 발굴하고 새로운 견해도 피력하고 있다. 따라서 예전에 발표할 때의 관점에 일부 수정을 가했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큰 변화를 일으킨 관점에 대해서는 많은 새로운 론술을 가했다. 현경준의 “유맹”에 관한 연구는 전형적인 보기가 되겠다. 본 저서는 기존의 조선족 이민작가 연구에서 미비했던 부분을 어는 정도 보완했고 후학들에게 이 분야 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한 점이 높게 평가된다. 6.아동문학:김철호의 “작은 하늘”(심사평, 한석윤) 좋은 동시작품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좋은 동시작품에는 동심과 시심이 고루 담겨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동심이 찰랑거려도 시심이 담겨있지 못하면 시가 되지 못하고 아무리 시적 향기가 차넘쳐도 동심을 떠나면 동시로 될수 없다 김철호의 “작은 하늘”은 이 면에서 성공을 거둔 동시집으로, 당전 조선족 동시단의 수준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있다. 그의 동시들은 우선 시적 소재나 시각이 동심적이다. 동시적 시각에서 사물을 관찰하기에 그의 시적 소재는 항상 엉뚱하고 앙증맞고 천진하고 순수한것들이여서 부담없이 따스하게 독자들한데 다가선다. 다음으로 그의 동시들은 시적 발상이 단순하고 시적 구성이 간결하고 시적 정서가 명쾌하다. 단순성, 간결성, 명쾌성은 성인시와는 다른 동시의 독특한 특징이다. 그의 동시들은 이런 특점을 구비하고있기에 어린 독자들한테 빨리 다가갈 수있다. 그 다음으로 그의 동시들은 시적인 상징과 비유가 신선하고 앙증맞다. 시인은 어린이들의 리해능력과 류추능력을 떠나지 않는 전제하에 현대시의 유용한 수법들을 대담하게 도입하므로써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까지 공감할 수있는 새로운 시적 이미지를 창조해는데 성공하고있다. 7.한어작품:(1)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我们从哪里来)”[심사평, 서진청(徐振清)] 남영전은 토템시의 명명자이고 창작자이며 탐색자이다. 남영전은 현대의식으로 원시토템을 관조하여 스스로의 토템시에 새로운 독특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남영전은 민족문화의 원류를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서방사상자원을 응용하여 원시토템으로 하여금 새로운 현대적 의의를 띠게 하였다. 남영전의 토템시는 민족친화라는 대주제와 인류는 하나의 운명공통체라는 리념을 표달하였다. 생명에 관하여, 존재에 관하여, 시공간에 관하여 남영전은 자신만의 심오하고 지구적인 철학적 사고를 견지하여 왔다. 시인으로서의 남영전은 깊이가 있는 분이다. 한 민족 군체의 문화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있다. 저 멀리 머나먼 곳의 수많은 이들은 바로 이 민족 군체의 문화와 관계를 갖고있다. 남영전의 토템시는 우리에게 문화수호와 문화개척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의 심미관은 중국 고대의 천인합일, 자연순응 사상의 영향을 깊이 받았던 것으로 균형과 중용을 주장하고 세계대동을 추구한다. 문화는 한 민족의 생활방식과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남영전은 토템문화의 정신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것은 중국조선족 시인의 천하를 한품에 안는 넓은 흉금과 조화로움을 추구하며 세계를 구하려는 아름다운 념원에 다름 아니다. 남영전의 토템시는 오늘날 중국 시가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한어작품(2):전영선의 “소화십팔년”[심사평, 서진청(徐振清)] 우리는 전용선을 “발견”하였다. “발견”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가 정말 오래 동안 이러한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용선의 소설은 문학의 가치와 개인서사의 의의를 새롭게 드러내였다. 전용선의 소설은 창의적 창작의 존엄을 회복하였다. 문학의 표준은 어렴풋하고 애매모호한 듯 하지만 사실 시종일관하고 드팀없는 표준이 있다. ‘한스러운 일’, ‘녀동생’ 등 소설에서 전용선은 우리에게 극히 잔혹하면서도 진실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이야기는 우리가 보기에 실로 안스럽지만 또한 절대 거절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전용선의 소설구상은 특이하고 그 언어표현에는 힘이 충만되여 있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고달프고 비장하고 굴욕적이고 파란만장함이 확 안겨온다. 그의 붓끝에서 숨 쉬는 인물들은 굴욕적이든 단호함을 나타내든 모두 조선민족의 넋 속에 숨겨진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전용선은 마치 그 시대로부터 요행 도망쳐 나온 사람 같다. 그는 자기만의 언어로 세계를 향해 자기 민족의 가장 비참하고 가장 감동적이며 가장 귀중한 감정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극히 랭정한 창작자세와 태연자약한 서술스찔은 그가 하는 이야기와 아주 큰 락차를 이루며 독자들에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용선의 력사서술은 예전의 력사학자나 문학가가 쓰는 력사와는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다. 그는 모든 경박하고 오락적이고 마구잡이로 놀아나는, 이른바 항일문학을 수치로 여긴다. 그는 항상 도고하고 독립적인 품격을 견지하였는바 용속하고 저렬하며 사리사욕에 눈먼 현 단계 문단을 하찮게 여기였다. 전용선의 소설은 독창성이 뛰어나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다. 그는 창작의 거대한 어려움 앞에서 력사에 대해 새로운 해명을 하였다. 그의 창작은 예전의 력사서술의 틀을 깼으며 력사의 변두리를 묘사하는 틀을 타파하여 력사적 기억에 대한 한 차례 민간적 환원과 개인서사를 진행했다. 전용선은 조선족문화과 한족문화라는 이중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다. 농후한 민족적 감정, 민족적 지조, 민족적 정감은 그의 소설에서 극에 달하고 있다. 오직 고난이 막심한 민족만이 이러한 소설을 산생할 수 있고 오직 재앙이 깊은 민족만이 이러한 작가를 산생할 수 있는 것이다. 8.신인: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의 선정 리유(심사평, 최홍일) 중편소설 “사랑의 류통기간”은 사랑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 ‘너’는 평범한 신문기자로서 여러 녀성과 사랑의 갈등을 겪게 되고 나중엔 사랑의 류통기간을 찾으려고 깊은 산골의 오두막으로 들어간다. 그 오두막에서 사랑의 류통기간이 얼마냐는 물음을 갖고 해답을 찾으려고 사색에 사색을 거듭한다. 그러나 해답은 끝내 찾지 못한다. 작품에는 주인공 외에 다섯 녀성이 등장하는데 다가 그와 사랑으로 련계된다. 그러나 사랑의 완성은 하나도 없다. 마지막에 얼굴이 박색인 삼장의 녀인과 성적 관계를 갖지만 그것도 단순한 몸섞음였지 사랑은 아니었다. 작품은 사랑의 류통기간이란 물음을 내걸고 사랑의 본질에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어 독자들의 사색을 자아낸다. 작품은 구상이 신선하고 현대소설 기법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이상 각 부문 별 심사를 마감한다. 어느덧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이다. 되돌아보면서 총화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제1차 “단군문학상” 심사를 계기로 우리 조선족문학을 되돌아보며 총화하여 보았다. 주옥같은 작품들이 반짝였다. 그래서 우리 조선족문학은 희망적이다. 이제 제2차, 제3차... 무궁무진하게 이어질 우리 조선족문학의 노벨상-“단군문학상”이 있기에 우리 문학은 거듭 새롭게 태여나며 문학의 최고봉으로 거침없이 매진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 ======================================================================= [단군문학상]민족문학창작의 새 기원을 열어가자 편집/기자: [ 안상근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27 13:39:03 ]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시상식에서 한 연설 신봉철(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 리사장) 수상자 여러분, 래빈 여러분, 동지들, 벗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여 성대하고도 소박하게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우선 저는 “단군문학상” 리사회를 대표하여 제1기 “단군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드립니다. 아울러 래빈 여러분, 동지들, 벗들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모택동동지 탄신 122주년 기념일입니다. 우리가 이런 특수한 날을 선택하여 “단군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한것은 심각한 기념의의가 있습니다, 모택동동지의 “연안문예좌담회에서 한 연설”부터 습근평총서기의 지난해 “문예사업좌담회의 연설”까지 한갈래 주선이 시종 관통되여있는바 이는 곧 문학창작의 인민성입니다. 우리가 “단군문학상”을 설립한 중요한 의의는 두 위인의 중요한 연설의 정신을 깊이 리해하고 우리 민족의 작가, 시인들로 하여금 시대에 부끄럽지 않고 력사에 부끄럽지 않으며 민족에 부끄럽지 않는 불후의 명작들을 창작하도록 고무격려하려는데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호소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 모두가 “단군문학상”을 가꿉시다. “단군문학상”은 갓 땅을 뚫고 나온 새싹같은것으로서 하늘을 꿰지르는 큰 나무로 자라날수 있는가 없는가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사랑과 보살핌이 수요됩니다. 자신의 눈동자를 아끼듯이 “단군문학상”을 아끼여 건강하게 성장할수있도록 조건을 마련합시다. 둘째 우리 모두가 “단군문학상”을 아낍시다. “단군문학상”은 마치 갓 발굴한 문학화원의 광석같은것으로서 정밀한 조각을 통하여 보석마냥 빛나는 아름다운 예술품, 불후의 작품이 되여야 합니다. 우리 작가, 시인들의 노력을 통하여 주선률을 선양하고 인민성을 강화하여 더욱 많은 보석과 같이 빛나는 명편거작들을 창작합시다. 셋째, 우리 모두가 “단군문학상”을 발전시킵시다. “단군문학상”은 동풍을 향해 나붓시는 기발로서 휘황찬란한 민족문학창작의 미래를 가리키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중화대가정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나가고있습니다. 당의 민족정책, 문예정책은 우리 문예사업자들은 물론, 많은 지성인들을 동원하여 민족문학창작의 새장을 펼쳤습니다. 민족문학창작의 새장은 반드시 문학의 “고원”으로부터 문학의 “고봉”으로 톺아올라야 합니다. 이는 바로 우리 “단군문학상”리사회의 의무이며 책임입니다. 위대한 민족은 반드시 위대한 문학작품이 있어야 합니다. “단군문학상”의 설립이 우리 이 우수한 민족의 문학창작발전을 도울수있다면 우리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동지들, 벗들: 무수한 력사경험이 증명하는것처럼 그 어떤 신생사물의 성장은 순풍에 돛단듯이 순조롭지 않을것입니다. “단군문학상”을 가꾸고 아끼고 발전시키는 길에서 우리는 이미 험난한 앞날을 예감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의 민족정책, 문예정책의 인도하에 오직 이세상에 정의(正义)가 존재한다면 “단군문학상”은 반드시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마냥 온 누리에 빛발뿌릴것이며 불후의 명작으로 중화대가정의 문학백화원에 어엿이 자리매김할것입니다. 우리 모두 두팔 벌려 이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합시다. ============================================================== [단군문학상]제1회 단군문학상 수상소감 편집/기자: [ 김태국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28 09:56:49 ]  소설부문 허련순: 민족의 집을 찾는 일을 계속 할것이다   2015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조선족문학사상 가장 큰 상인 단군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여 너무 감사합니다.   단군문학상설립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신 운영위원회 신봉철 회장님과 오장권 부회장님, 최국철 주석님 그리고 심사위원 전체 선생님들에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장편소설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는 우리 민족의 집 찾기입니다. 물론 민족의 “집”을 찾는 일은 모험이 되겠지만 저는 시대의 상황에 영합하지 않고 현실에 고뇌하며 실존하는 인간을 정직하고 치렬하게 써갈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중죽조선족 문학공간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설자리도 갈수록 위축되고있습니다. 단군만학상이 조선족문학의 공간 확장에 활력소가 되고 중국 소수민족문학사에서 가장 권위적인 문학상으로 부상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께서 새해에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프로필: 1955년 1월 16일 연길에서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한국광운대학 국어문석사, 중국작가협회 회원, 1급작가, 전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11기 연변주정협위원. 장편소설 《바람꽃》, 《뻐꾸기는 울어도》, 《잃어버린 밤》, 《중국색시》, 《사랑주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등과 소설집《사내 많은 녀인》, 《유혹》, 《우주의 자궁》, 《바람을 몰고 온 녀자》 등 다수를 출간했으며 소설《가출풍파》, 《하수구에 돌을 던져라》 등 작품들이 초중교과서에 실렸다. 드라마《녀자란 무엇입니까》, 《갈꽃》, 《떠나는 사람들》 등과 장편화극《둥지》, 《과부골목》, 《별의 시인 윤동주》 등 다수 발표. 제6회소수민족문학준마상,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동북3성금호상, 윤동주문학상, 민족문학문학상, 연변문학상, 장백산문학상, 제18회 해외한국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시부문 김영건: 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세상 모든것을 포옹하겠다   연변인민출판사 《문화시대》잡지 주필을 맡고있는 김영건입니다.   단군문학상, 우리민족의 시조 단군의 이름으로 명명된 제1회 단군문학상에 저의 시집《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가 당선되여 너무나 기쁘고 너무나 흥분되고 너무나 떨립니다. 제1회 단군문학상은 그사이 우리문학의 15년을 총화한다는데서 그 의미가 더욱 깊고 어깨도 무겁습니다. 앞으로 저는 단군정신을 본받아 우리민족의 혼을 살리고 보다 따뜻한 사랑으로 세상 모든것을 포옹하기에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자연의 합일과 우주적인 사유의 공간을 확장하여 저의 시를 보다 풍성하게 하고 보다 좋은 시를 창작하기에 최선을 다할것입니다. 오늘 우리민족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단군문학상을 창설한 여러분과 심사위원 여러분, 그리고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이 영광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프로필: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중국작가협회 회원, 국가1급 감독, 연변시가학회 회장, 《문화시대》주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문예부 주임, 감독. 소품원지《주말극장》 총연출, 제작인,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5회) 총연출, 제작인 등 력임. 중국 100대 방송인, 길림성10대 방송인, 전국소수민족준마상, 중국조선족출판문화대상《우수편집인상》, 길림성두루미상, 연변조선족자치주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제5회 정지용문학상, 해란강문학상, 도라지문학상 등 수상. 시집《사랑은 전개가 없다》, 《빈자리로 남은 이유》, 《아침산이 나에게로 와서 안부를 묻다》, 시화선집《중국조선족시화선집》(주필), 대형문화화책《숨시는 두만강》, 《연변조선족비물질문화유산화책》 등 펴냄. 산문부문 장정일: 생각하고 사색하고 음미했다   오랜 세월 저는 생각, 사색, 음미라는 단어를 사랑해왔습니다.   수필 평론과 집필은 동년의 감성을 불러오고 사색의 가파른 령길을 오르게 해 좋았고 이따금 정신의 신대륙을 만나게 해주어 유익했습니다. 깊어가는 겨울 문화성지 룡정에서 갖는 이 뜻깊은 자리가 부족한 저의 자성과 령혼의 자유로운 비상을 위한 분발의 계기임을 자각합니다. 통큰 사유로 문화건설력사에 큰 획을 그은 단군문학상리사회에 삼가 경의를 표하며 심사위원 여러분께도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로필: 길림성룡정시 태생. 1967년 연변대학 중문계 졸업. 연변일보 부총편, 중국소수민족신문연구원 부회장,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등 력임. 연변작가협회, 중국작가협회 회원. 칼럼집 《사색의 즐거움》, 문학평론집 《변방-또하나의 시작》, 미니소설수필 수상작품집 《겨절앞에 머리숙이게 하소서》(공저, 수필부분), 수필집 《세모의 설레임》 등 출간.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장백산》모두모아문학상, 《도라지》문학상, 해외문학사 해외문학대상, 연변주정부 진달래문예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등 수상. 보고문학부문 리혜선: 기쁨을 나누고 싶다 오늘 저는 우리 민족의 시조님의 이름으로 명명된 단군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여 너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큰 영예를 안겨주신 “단군문학상”리사회를 비롯한 여러 관계단위와 평심위원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단군문학상의 취지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부흥에 있습니다. 이 수상의 기회를 더 큰 채찍으로 생각하고 문학에 더 정진해야겠다, 그리고 대중한테 성큼 다가갈수 있는, 삶의 진실로 다가가는 문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률성평전》이 세상에 나올수 있도록 물심량면으로 지원해준 중국작가협회, 성정부,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그리고 연변작가협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큰 상의 기쁨을 항상 저를 관심하고 격려해준 사랑하는 문단 동인들과 친구들, 그리고 소중한 가족과 형제들과 나누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프로필: 1956년 길림성 연길시 출생, 1981년 12월 연변대학중문계 한어전업 졸업. 1989년 로신문학원 졸업, 연변일보, 길림신문 기자, 편집, 연변작가협회 창작실 주임, 중국작가협회 제6, 7기 전국위원회 위원 력임. 1급작가. 장편소설 《붉은 그림자》(《红影》중문) , 《붉은 나비》, 《생명》, 인물평전《정률성평전》, 장편보고문학 《방황과 희망의 보고서》, 《충청도아리랑》, 《두만강반충청도촌》, 장편아동소설《김학철이야기》, 《사과배아이》 등 다수 출간. 제5회 제7회 전국소수민족문학상, 연변조선족자치주 제5, 6회 진달래문학상, 제4회 연변작가협회문학상 등 다수 수상. 평론부문 장춘식: 문학이 살아야 민족도 삽니다   먼저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상을 받게 되여 대단히 영광스럽습니다.   우리의 문학환경이 좀 어렵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문학을 사랑하고 민족문화를 관심하는 분들은 여전히 꾸준히 노력하고있고 좀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번에 새로 설립한 “단군문학상” 역시 그런 노력의 한 결실이 될것입니다. 문학은 정신적량식입니다. 문학이 살아야 민족도 삽니다. 다시 한번 심사위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프로필: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출생. 중앙민족대학 조문과 졸업.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민족문학연구소 연구원, 박사. 중단편소설 30여 편, 문학평론 50여 편, 시 50여 수를 발표. 문학평론집 《시대와 우리 문학》, 소설집《음성양쇠》, 《파멸에로의 욕망》, 《해방전 조선족이민소설연구》, 《일제강점기 조선족 이민문학》 등 출간. 광선컵문학상 평론상, 《흑룡강신문》시문학상, 《장백산》소설상,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조선족문학비평상 등 다수 수상. 아동문학부문 김철호: 동시창작은 숭고한 예술활동   15년의 연변문학총결산에 저의 동시집이 뽑힌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느낌니다. 평심위원들과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동시집에 예쁜 그림을 그려준 아들 김휘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싶습니다. 동시인은 아이들의 유치한 마음을 고스란히 그리는 글쟁이가 아니라 자신의 예술적상상력을 아이들 마음에 맞게 표현하는 예술가입니다. 동시창작은 숭고한 예술활동입니다. 때문에 간고한 탐구가 따르게 됩니다. 더 좋은 동시를 창작하는것으로 이번 영광에 보답하겠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프로필: 1951년 룡정시 개산툰 출생. 연변대학 졸업. 연변인민방송국 문학편집. 연변일보 론설부, 문화부 주임 력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제1회 연변작가협회YUST문학상(아동문학부문. 2002년) 한국《아동문예상》본상(2002년), 연변조선족자치주제5회《진달래》문예상 작품상(2005년) 제1회 윤정석아동문학상본상(2007년), 제16회 정지용문학상(2012년) 등 수상. 동시집《연필 숨 쉬는 소리》(2002년 민족출판사), 시집 《우리는 다 한올 바람일지도 모른다》(2012년 연변인민출판사) 등 출간. 한문창작부문 남영전: 단군사상을 터득하는것이 목표   단군문학상은 우리 작가들이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을 모시는 상이기에 저는 큰 고무를 받았습니다.   단군은 천일합일의 상징이고 자아수련의 상징이며 건전한 사회를 창도하는 선지선작자입니다. 때문에 단군은 우리 민족과 영원합니다. 저는 항상 단군사상을 터득하는것을 창작의 방향과 목표로 하고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심혈을 다하여 단군이름에 부끄럼지 않는 작품을 창작하는데 주력하겠습니다. 프로필: 1948년 3월 3일 길림성 휘남현 출생. 길림성작가진수학원 졸업. 《장백산》잡지사, 《길림신문사》 사장 력임. 시집 《록색의 꿈》, 《상사집》, 《신단수》 등 16부, 수필집 《잊을수 없는 사람들》 등 3부, 번역집 《당송전기집》, 《봉신연의》, 《파금단편소설집》 등 3부 출간. 전국소수민족문학창작 “준마상”, 전국당대소수민족문학연구상, 중국작가협회민족문학상, 길림성장백산문예상, 길림성소수민족문학상, 당대 걸출한 민족시인시가상 등 다수 수상. 1995년 국무원특수수당금 향수자. 한문창작부문 전용선: 어머니가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가   오늘은 저에게 있어서 잊을수 없는 날이고 단군문학상은 매우 무게가 있는 상입니다. 동포들의 후더운 사랑과 긍정이 담긴 이상을 받아 더없이 영광스럽습니다.   오늘은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1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조선족복장을 입고 시상식무대에 오른것을 보시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단군문학상리사회와 여러 평심위원들과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프로필: 1966년 1월 11일 흑룡강성 가목사시 출생. 가목사제2중학 졸업, 북대황문공단 창작원, 《3강만보》 기자부주임 등 력임. 흑룡강성작가협회주석단성원, 중국작가협회 회원, 현재 북경 거주 드라마창작에 종사. 대표작 《현애》(드라마), 장편소설 《독신자》, 《소화18년》, 《설흔》, 《세월》 등 다수. 흑룡강성제2회 문예정품공정상, 북경건국55주년 우수작품상, 흑룡강성제1회소수민족문학상, 2012년 제18회 상해 텔레비죤절 최우수극본상 등 다수 수상. 신인상 구호준: 한계는 있어도 정상은 없다   우선 오늘 저에게 이렇듯 큰 영예를 주신 단군문학상리사회와 평심위원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문학이란 어떤 정상을 향해 가는 즐거운 려행이 아니였습니다. 저에게 문학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끝없는 도전이고 몸부림이였습니다. 오늘의 이 영예도 저의 문학에 대한 어떤 긍정이 아닌 선배님들의 저에 대한 기대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영예란 저에게 또 다른 한계가 되겠지요. 항상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한계에 도전하는것으로 문학선배님들에 대한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1972년 화룡현 출생. 연변대학조문학부, 로신문학원 8기 졸업, 한국부산영상작가원 수료. 화룡시문화관, 연변인민방송국 문학편집 등 력임. 연변작가협회 회원, 재한동포문인회 부회장. 연변일보 해란강문학 신인상, 한국월간아동문학상, 연변일보 CJ문학상, 연변작가협회 김학철문학상 등 다수 수상. 수필집 《당신의 그늘》, 중편소설집《사랑의 유통기간》 출간.   “단군된장술” 세상에 고고성 편집/기자: [ 안상근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12-27 14:21:05 ]  “단군된장술” 개봉식 장면  2015년 12월26일, 중국조선족 제1회“단군문학상”시상식과 겹경사로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가 야심차게 준비한 “단군된장술” 개봉식이 연길해란강민속식당에서 있었다. 조선민족 시조인 단군의 이름으로 명명한 “단군된장술”은 우리민족 옛조상의 전통음식공예로 빚어낸 술이라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단군된장술”을 개발,출시한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 리동춘사장은 현재 중국은 물론 조선과 한국을 비롯해 우리민족의 당당히 내놓을만한 명주가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하면서 향후“단군된장술”을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 민족의 으뜸가는 명주로 육성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에서는 조선의 라진에 술공장을 세우고 된장술의 해외진출에도 앞장서고있는데 명년 1월중 정식생산에 투입할 예정이다.      
300    공부하기 싫어... 땡 !!! - 재미나는 글공부 댓글:  조회:6209  추천:0  2015-12-10
    알고 쓰는 우리말의 유래와 뜻        외래어가 물밀 듯 들어오면서 우리 고유의 말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죠. 자신도 모르게 쓰고 있는 외래어와 우리말, 우리말이 생겨나게 된 배경은 어떤 게 있을까요? 그래서 어여쁜 우리말의 유래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요.     고뿔 지금은 감기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모두 "고뿔"이라고 했죠. 고뿔의 숨은 뜻은 마치 코에 뿔이 난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테지만 사실 고뿔은 코에 불이 난 것을 의미합니다. 코를 뜻하던 옛 말인 고에 블이 붙어 이전엔 ‘곳블’이었으나 원순모음화와 된소리가 되어 고뿔이 되었답니다.       고주망태       술을 많이 마시어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취한 상태를 말합니다. 물론 이는 고주와 망태의 합성어로 옛말로 고조였던 고주는 술을 거르거나 짜는 틀인데 오늘날에 와서는 ‘술주’자라고 부릅니다. 망태는 망태기의 준말로 가는 새끼나 노로 엮어 만든 그릇을 이르는 말입니다. ‘술주’자 위에 술을 짜기 위해 올려놓은 망태이기에 언제나 술에 절어 있는 것은 당연할 터. 술을 많이 마시어 취한 상태인 고주망태란 말은 이에서 연유된 말입니다.     미리내        미리내는 은하수를 지칭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미리는 옛말 미르에서 온 말로 용이란 뜻입니다. 내는 개울이나 시내를 뜻하고, 미리내는 용이 사는 시내라는 뜻이 되겠지요. 옛날 사람들은 용이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마치 강이나 시내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던 은하수는 하늘로 올라간 용이 살 만한 곳이라고 여긴 것이죠.       바보   자주 쓰이는 말인 바보는 멍청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밥+보에서 자음ㅂ이 탈락된 형태로 바보란 말의 원래 의미는 밥만 먹고 하릴없이 노는 사람을 가리키며, 그런 사람을 경멸하여 현재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나 멍청이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같은 이치로 밥통이라는 속된 표현을 쓰기도 하지요.     안성맞춤   경기도 안성은 놋그릇이 튼튼하고 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장에 내다 파는 기성품 장내기와 주문에 의해 만드는 맞춤이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장에서 사다 사용했으나 서울 양반들은 직접 안성에 와서 식기나 제기를 맞추어 사용하였는데 맞춤 제작을 맡기면 그릇이 꼭 맘에 들었다고 해요. 이처럼 요구하거나 생각한 대로 아주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이나 조건, 상황이 어떤 경우에나 계제에 잘 들어맞아 잘된 일이란 뜻을 말합니다.       안절부절 못하다       마음이 썩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못하다가 덧붙어 안절부절한 것을 강조하는 뜻으로 쓰는 것이죠. 엄밀하게 보면 안절부절 못하다는 초조하고 불안하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부정어의 강조 형태로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 말이 불안하고 초조함을 극도로 강조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출처] 알고쓰는 우리말, 우리말의 유래와 뜻|작성자 행복한포스  
299    땡! 땡!... 제2교시 - 재미있는 우리말 댓글:  조회:5026  추천:0  2015-12-09
      우리말 공부   헤살  남의 일이 잘 안 되도록 짓궂게 방해함.   헤살을 부리다   옆에서 덕구가 헤살을 치는 바람에 다 성사된 일을 망쳐 버렸다.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헤살이나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나미  어떠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애착이 생기는 마음.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정나미가 생기지 않았다.   꿈같다 (1) (무엇이) 만족스러워 기쁘고 행복하다.   내가 일등을 하다니 이 모든 것이 꿈같아.   나는 꿈같은 신혼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   벌써 졸업이라니 정말 꿈같다.  (3) (무엇이) 부질없고 무의미하다.   재석이는 꿈같은 이야기만 해 댔다.   백일하 [白日下]  [주로 ‘백일하에’의 꼴로 쓰여] 모든 사람들이 알도록 분명한 상태.   그 사건을 통해 그들의 치밀한 속셈을 백일하에 드러낸 셈이 되었다.   범인이 잡히자 그 사건의 내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틀린 말---> 맞는 말  갈래야 →   가려야(-려야)      덥밥 → 덮밥  덮혔다→ (눈으로)덮였다       갈런지 → 갈는지(-는지)     같애 → 같아                   두 살박이→ 두 살배기(-배기)     뒷쪽, 뒷풀이   → 뒤쪽, 뒤풀이  거에요  →  거예요          거칠은  →  거친(거칠다) 되/되요/되도/되서/됬다  → 돼/돼요/돼도/돼서/됐다                   
298    땡! ㅡ 제1교시 - <<바람>> 댓글:  조회:6590  추천:0  2015-12-09
    ◆마파람 남쪽 또는 앞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뱃사람의 말로 ‘마’는 남쪽이다. 그래서 마파람은 남풍이다. 보통 나아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은 방위와 상관없이 ‘맞바람’이라 할 수 있다. 마파람은 ‘맞바람’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마’가 남쪽을 뜻하는 말로 굳어짐에 따라 맞바람과는 구별해서 쓰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보통 거슬러 불어오는 바람을 ‘앞바람’이라고도 하는데, 마파람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된바람 북풍 을 뱃사람들이 이르는 말.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   된바람은 뱃사람의 말로 센 북풍을 가리킨다. 그래서 뱃사람들은 북동풍을 ‘된새바람’ 또는 줄여서 ‘된새’라고 부른다. 또한 북서풍을 ‘된하늬바람’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방에 따라서는 ‘된’이 동쪽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동남풍을 ‘된마(된마파람)’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런 예이다. 일반적으로 된바람은 ‘빠르고 세게 부는 바람’을 뜻한다. ​예:눈보라와 함께 된바람이 몰아치는 능선을 따라 대원들은 한걸음씩 정상을 향하여 나아갔다.   ◆강바람 비는 내리지 않고 몹시 세게 부는 바람.   강(江)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강바람(江-)’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강바람은 ‘비는 내리지 않고 몹시 세게 부는 바람’을 일컫는 말이다. ‘회오리바람’이나 ‘소소리바람’도 세게 불어오는 바람이지만 강바람은 일종의 계절풍이다. 즉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몹시 부는 태풍을 강바람이라 할 수 있다. 얘:이번 태풍의 중심부가 지나가는 곳에는 비를 동반하지 않는 강바람만 불어 닥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 ​◆꽃샘바람 봄철 꽃이 필 무렵에 부는 찬바람.   ‘꽃샘’에서 ‘샘’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아니다. ‘시샘’의 줄임말이다. 입춘도 지나고 봄이 시작되는 첫머리이지만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하여 매우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꽃샘바람은 말의 느낌과는 달리 실제로는 사람들의 몸을 으스스 떨게 하는 매서운 바람이다. 예:입춘도 지나 봄이라고는 하지만 드러난 살갗을 쓸고 가는 꽃샘바람의 냉기가 여간 매서운 것이 아니었다.   ◆높새바람 ‘북동풍’을 뱃사람들이 이르는 말.   ‘높’은 북쪽을 가리키는 말이고, ‘새’는 동쪽을 말한다. ‘높’과 ‘새’가 합쳐져서 ‘높새’가 된 것이므로 바람의 이름 자체가 ‘북동풍’이다. 같은 이치로 ‘높하늬’는 북쪽과 서쪽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북서풍’이 된다. 영서 지방에서는 초여름에 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고온 건조한 북동풍을 높새라 한다. 지리학 용어로 ‘푄’이라 하는 높새는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준다. 한편 뱃사람들이 방향을 가리키는 말로 ‘새’는 동쪽, ‘하늬’는 서쪽, ‘마’는 남쪽, ‘노’는 북쪽이다. 예:강원도 내륙에는 지금 가뭄이 심각합니다. 더구나 산맥을 넘어 불어오는 높새 때문에 농작물 이파리들이 이렇게 말라 가고 있습니다.     ◆보라바람 높은 고원에서 갑자기 산 밑으로 불어내리는 차갑고 센 바람.   ‘보라’는 눈보라, 비보라 따위처럼 일정한 규칙이 없이 무언가가 흩뿌려지는 모양을 말한다. 바람은 보통 일정한 방향에 따라 불기 마련인데, 보라바람은 산 위에서 마구발방으로 이리저리 휘몰아치며 미친 듯이 불어오는 바람이다. 예:보라바람에 실린 눈발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무서운 기세로 휘몰아치고 있었다. ​ ​◆살바람 봄철에 부는 찬바람. 좁은 틈으로 새어드는 찬바람.   그리 세게 부는 바람은 아니지만 매우 차갑게 느껴지는 바람이다. 겨울밤 문틈으로 살며시 스며드는 찬바람이나, 이른 봄날 살품으로 슬며시 파고드는 찬바람을 말한다. 모양으로 보면 된바람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이른바 ‘황소바람’도 살바람의 한 가지다. 예:문틈으로 불어오는 살바람에 으스스 몸을 떨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건만, 산장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은 간밤의 고통을 말끔히 잊게 해주는 것이었다. ​ ​​◆소소리바람 이른 봄에 살 속을 기어드는 듯이 맵고 찬 바람.   흔히 이른 봄철에 부는 꽃샘바람을 ‘소소리바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소리’는 본래 ‘회오리’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가을이나 겨울철에도 회오리처럼 휘몰아 불어오는 바람은 소소리바람이라고 한다. 예:담머리 굴참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높은 가지 끝에 한두 잎 달려 있고, 소소리바람이 치는 벌써 가을이구려. ​ ​​​◆피죽바람 모낼 무렵 오랫동안 부는 아침 동풍과 저녁 북서풍.   이 바람이 불면 비가 내리지 않아서 큰 흉년이 들어 ‘피죽’도 먹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여름에 부는 고온 건조한 높새바람을 지칭하는 듯하다. ‘피’는 곡식에 섞여 나는 잡풀의 한 가지다. 흉년이 들면 곡식이 자라지 않는 만큼 잡풀이 무성하게 논밭을 차지한다. 피는 언뜻 벼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가려내기가 쉽지 않으며 번식력이 강한 잡풀이다. 예:봄 가뭄은 계속되고 피죽바람만 불어오니 올해 농사도 다 틀린 모양이여. ​ ​​​◆하늬바람​ 농부나 뱃사람들이 ‘서풍’을 부르는 말.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이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는 하늬바람은 말의 느낌만큼이나 실제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다. 예:후텁지근한 장마도 지나서 이파리 무성한 숲길에서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언덕배기로 서늘한 하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어느덧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황소바람​ 좁은 곳으로 가늘게 불어오지만 매우 춥게 느껴지는 바람.   옛날 서민들에게 가장 추운 바람은 황소바람이었다. 지금은 집에 난방이 잘 되어 한겨울에도 집 안에서 속옷 차림으로 지낼 수 있지만, 옛날 서민들은 한겨울날 문풍지 떠는 소리와 함께 문틈으로 스며들어오는 바람에 오금이 저리도록 떨면서 밤을 보내야 했다. 특히 작은 창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바깥공기는 차라리 바깥에서 거세게 휘몰아치는 찬바람을 직접 맞는 것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이처럼 ‘좁은 곳으로 가늘게 불어오지만 매우 춥게 느껴지는 바람’을 황소바람이라 하는데, 역설적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예:이번 겨울에 지리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문틈으로 스며드는 황소바람에 밤새 덜덜 떨다가 한숨도 못 잤다.   [출처] 바람의종류-마파람/된바람/꽃샘바람/높새바람/보라바람/소소리바람/하늬바람/황소바람|작성자 좋은집알리미    
297    쉼시간 - 땡 땡 땡... 조선방언세계 댓글:  조회:7751  추천:0  2015-12-08
  14추천자 목록 조선방언   꼬부랑국수 - 라면  /  가무이야기 - 뮤지컬  /  얼음보숭이 - 아이스크림  /  인민학교 - 초등학교  가시아버지 - 장인  /  가급금 - 보너스  /  휴식일 - 공휴일  /  머리 비누 - 샴푸  /  찬국수 - 냉면   안내강사 - 가이드  /  소젖 - 우유  /  튀긴고기떡 - 어묵  /  나리옷 - 원피스  /  가락지빵 - 도넛츠   애기차 - 유모차  /  기름사탕 - 캐러멜  /  곽밥 - 도시락  /  날맥주 - 생맥주  /  가세 - 가위  가배 - 갈비  /  우티 - 옷  /  고뿌 - 컵  /  색쌈 - 계란말이  /  뜨더국 - 수제비  /  문지기 - 골키퍼 군관 - 장교  /   설기과자 - 카스테라  /  색동다리 - 무지개  /  찔게 - 반찬  /  기름밥 - 볶음밥   단묵 - 젤리  /  도는네거리 - 로터리  /  가루젖 - 분유  /  목달이구두 - 부츠  /  몸틀 - 마네킹    가슴띠(부끄럼가리개) - 브래지어  /  으뜸부끄럼가리개 - 팬티  /  다리매 - 각선미  /  달린옷 - 원피스   볼웃음 - 미소  /  남새 - 나물  /  잠자리비행기 - 헬리콥터  /  구석차기 - 코너킥  /  문화어 - 표준어   던지기 - 드로우인  /  벌칙차기 - 페널티킥  /  통과암호 - 패스워드  /  자료기지 - 데이터베이스  알림판 - 게시판  /  나들문 - 출입문  /  예술헤엄 - 수중발레  /  차마당 - 주차장  /  건병 - 꾀병 직승비행기 - 헬리콥터  /  손가락말 - 수화  /  등불게임 - 야간경기  /  얼굴가리개 - 마스크-  갑작바람 - 돌풍  /  분간 휴식 - 작전 타임  /  사슬돈 - 잔돈  /  쪽무늬그림 - 모자이크  벌차기 - 프리킥  /  넣는 사람 - 투수  /  잊음증 - 건망증  /  내민대 - 베란다, 발코니  떼레비 통로 - 텔레비전 채널  /  헝겊신 - 운동화  /  뒤셈 - 검산  /  유람뻐스(유람차) - 관광버스   동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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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6. 위생실 - 화장실 17. 모서리주기 - 왕따 18. 계단 승강기 - 에스컬레이터 19. 법 공장 - 식당 20. 인민 소모품 - 생활 필수품 21. 살까기 - 다이어트 22. 공동 욕탕 - 대중 목욕탕 23. 빨래집 - 세탁소 24. 화학 세탁 - 드라이 클리닝 25. 사슬돈 - 잔돈 26. 차마당 - 주차장 27. 직승 비행기 -  헬리콥터 28. 거리나무 - 가로수 29. 가두 녀성 - 가정 주부 30. 발편잔 - 편안한 잠 31. 잠나라 - 꿈나라 32. 궁냥 -  궁리 33. 근터구 - 까닭,이유 34. 진소리 - 잔소리 35. 냉동기 - 냉장고 36. 전기 밥가마 - 전기 밥솥 37. 능쪽 - 그늘 38. 더운물 미역 - 온천 39. 바닷물 미역 - 해수욕 40. 바래움, 바램 - 배웅 41. 나들문 - 출입문 42. 어제날 - 지난날 43. 번대버리 - 대머리 44. 막머리 - 빡빡 깎은 머리 45. 다리매 - 각선미 46. 오목샘 - 보조개 47. 갑작부자-벼락부자 48. 딱친구-단짝친구 49. 사내번지기-말괄량이 50. 두벌자식-손자   51. 가시집-처갓집 52. 후어머니-계모 53. 어로공-어부 54. 문지기-골키퍼 55. 머리박아넣기-헤딩슛 56. 등불 게임-야간 경기 57. 기둥선수-주장 58. 예술 헤엄-수중발레 59. 교예-서커스 60. 녀성 고음-소프라노 61. 군중 가요-대중 가요 62. . 예술 체조-리듬체조 63. 가무 이야기-뮤지컬 64. 민간 오락-민속 놀이 65. 문화어-표준말 66. 곽밥-도시락 67. 닭알-달걀 68. 색쌈-계란말이 69. 딸기 단졸임-딸기 잼 70. 단묵-젤리 71. 기름사탕-캐러멜 72. 바삭 과자-비스킷 73. 설기 과자-카스테라 74. 가락지빵-도넛 75.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 76. 단물 -주스 77. 소젖-우유 78. 가루소젖-분유 79. 꼬부랑국수-라면 80. 밥감주-식혜 81. 지지개-찌개 82. 뜨더국-수제비 83. 녹두지짐-빈대떡 84. 가마치-누룽지 85. 이밥-쌀밥 86. 얼럭밥-잡곡밥 87. 기름밥-볶음밥 88. 지짐판-프라이팬 89. 남새-채소 90. 푸른차-녹차 91. 달린옷-원피스 92. 나뉜옷-투피스 93.나리옷-드레스 94. 양복 적삼-블라우스 95. 양말바지-팬티스타킹 96. 끌신-슬리퍼 97. 해돌이-나이테 98. 얼레달-반달 99. 갑작바람-돌풍 100. 곱등어-돌고래 101. 꿀비-단비 102. 별찌-유성(별똥) 103. 살별-혜성 104. 색동다리-무지개 105. 해가림-일식 106. 달가림-월식 108. 로동개미-일개미 109. 로동벌-일벌 110. 일없다-괜찮다 111. 배워주다-가르치다 112. 끌끌하다-깨끗하다 113. 궁겁다-궁금하다 114. 날래-빨리 115. 가담가담-가끔 116. 료해하다-이해하다 117. 가찹다-가깝다 119. 인차-곧,금방   답변추천해요3추천자 목록 2. 오림책 - 스크랩북 (or 발취집) 3. 그림분필 - 파스텔 (never, 크레용) 5. 주머니종 - 삐삐 (never, 호출기) 7. 이야기그림 - 만화 (never, 만화 or 그림책) 9. 불알 - 전구 (never, 전등알 or 전구) 10. 반딧빛등 - 형광등 (never, 형광등) 13. 놀음감 - 장난감 (never, 장난감) 14. 방 거두매 - 방 청소 (never, 방청소) 15. 인민학교 - 초등학교 (in the past it was, never,w 소학교) 17. 모서리주기 - 왕따 (hardly, 몰아주기) 19. 법 공장 - 식당 (never, 식당) 20. 인민 소모품 - 생활 필수품 (never, 생활필수품) 21. 살까기 - 다이어트 (never, 몸까기) 22. 공동 욕탕 - 대중 목욕탕 (never, 대중탕 or 대중목욕탕) 23. 빨래집 - 세탁소 (or 세탁소) 25. 사슬돈 - 잔돈 (never, 잔돈 or 쇠돈) 26. 차마당 - 주차장 (never, 주차장) 27. 직승 비행기 -  헬리콥터 (never, 직승기) 28. 거리나무 - 가로수 (never, 가로수) 29. 가두 녀성 - 가정 주부 (hardly, 가정주부) 30. 발편잔 - 편안한 잠 (never, 발편잠) 31. 잠나라 - 꿈나라 (never, 꿈나라) 32. 궁냥 -  궁리 (also 궁리) 33. 근터구 - 까닭,이유 (never, 까닭 or 리유 or 근거) 34. 진소리 - 잔소리 (never, 잔소리) 35. 냉동기 - 냉장고 (never, 랭동기) 37. 능쪽 - 그늘 (never, 그늘) 38. 더운물 미역 - 온천 (never, 온천 or 온천욕) 39. 바닷물 미역 - 해수욕(never, 해수욕) 40. 바래움, 바램 - 배웅 (never, 배웅) 41. 나들문 - 출입문 (hardly, 출입문) 42. 어제날 - 지난날 (different, 지난날) 43. 번대버리 - 대머리 (never, 번대머리 or 번대) 44. 막머리 - 빡빡 깎은 머리 (never, 번대 or 빤대) 45. 다리매 - 각선미 (never, 다리선) 46. 오목샘 - 보조개 (never, 보조개) 47. 갑작부자-벼락부자 (never, 벼락부자) 49. 사내번지기-말괄량이 (also 말괄랭이) 50. 두벌자식-손자 (different, 손자) 51. 가시집-처갓집 (also 처가집) 52. 후어머니-계모 (also 계모, 이붓어머니) 55. 머리박아넣기-헤딩슛 (never, 머리받기) 56. 등불 게임-야간 경기 (never, 야간경기) 57. 기둥선수-주장 (different, 주장) 58. 예술 헤엄-수중발레 (never, 수중발레) 63. 가무 이야기-뮤지컬 (never, 경가극) 64. 민간 오락-민속 놀이 (never, 민속놀이) 68. 색쌈-계란말이 (never, 계란말이) 69. 딸기 단졸임-딸기 잼 (or 딸기?) 73. 설기 과자-카스테라 (never, 카스테라 or 단설기빵) 75.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 (hardly, 아이스크림 or 에스키모) 77. 소젖-우유 (different, 우유) 78. 가루소젖-분유 (never, 우유가루) 79. 꼬부랑국수-라면 (slang, 라면) 80. 밥감주-식혜 (never, 식혜) 86. 얼럭밥-잡곡밥 (never, 잡곡밥) 87. 기름밥-볶음밥 (never, 비빕밥) 90. 푸른차-녹차 (never, 록차) 91. 달린옷-원피스 (also, 원피스) 92. 나뉜옷-투피스 (never, no correspondent) 93.나리옷-드레스 (never, 드레스 or 녀성례복) 94. 양복 적삼-블라우스 (never, 양복저고리 or 양복웃옷) 96. 끌신-슬리퍼 (or 실내화) 97. 해돌이-나이테 98. 얼레달-반달 (never, 반달) 99. 갑작바람-돌풍 (hardly, 돌풍 or 돌개바람(whirlwind) ) 101. 꿀비-단비 (metaphor, 단비) 103. 살별-혜성 (not often, 혜성) 104. 색동다리-무지개 (never, 무지개) 105. 해가림-일식 (antique, 일식) 106. 달가림-월식 (antique, 월식) 110. 일없다-괜찮다 (also 괜찮다) 111. 배워주다-가르치다 (also 가르치다) 112. 끌끌하다-깨끗하다 (different, 끌끌하다 is stout) 113. 궁겁다-궁금하다 (never, 궁금하다) 114. 날래-빨리 (slang, 빨리, 얼른) 115. 가담가담-가끔 (never, 이따금, 가끔씩) 116. 료해하다-이해하다 (different, 료해하다 is to get the information) 117. 가찹다-가깝다 (slang, 가깝다) 119. 인차-곧,금방 (also, 곧)   답변추천해요2추천자 목록   답변추천해요6추천자 목록 북한 방언 가루(갈구,갈기) 간장(지렁) 갈비(갈배) 감기(순감,윤감) 감자(갱기) 강아지(강생이) 개으름뱅이(누진뱅이) 개피떡(씀바람떡) 거짓말(거집뿌리,도삽,부끼,얼레뿌리) 거품(버큼) 걸핏하면(자삣하문) 검부레기(거부제기) 겁쟁이(겁재이 겹제기) 겨드랑이(겨댕이,자개미,자대,재개미) 겨우(재우) 계약체결(합동체결) 고추(댕추) 고드름(고조리,고주럼,고즈래미) 고등어(고마이,고마에,고망어) 고양이(고애,고앵이) 곰보(얼구뱅이,얼그뱅이) 곱슬머리(고수락머리,양머리) 공것(공째,공게) 광대뼈(볼뼈) 괜찮습니다(일없수구마) 괭이(곽지) 교환하는것(바꿈질,바꾸각질) 구두쇠(구데손이) 구멍(궁개,궁기,구먹) 구하기 어렵다,귀하다(긴장하다) 국수(국시) 굳은살(썩살) 굴뚝(구새통) 귀먹어리(구먹댕이,먹보) 귀찮다(영사하다,영상스럽다) 그러므로(그러니깐드루) 그림자(그럼지) 기웃거리다(찌웃거리다) 기저귀 (기상기) 깍쟁이(깍재,따꼽쟁이) 꽈배기(타래턱) 꿩(산닭)  감자(갱이) 댕추-고추 나무-낭그 누에-누베 조-조이 조밭-조이밭 꿩(산닭)   아버지의 외할아버지 : 진할아버지 아버지의 외할머니 : 진할머니 할아버지 : 큰아배 할머니 : 할만, 할만님- 큰마니   아버지 : 아반 어머니 : 오마니,어마이,오마이 장인 : 가시애비 장모 : 가시애미   남편 : 나그네 아내 : 안까이(암개란 말에서 유래)   며느리 : 미느리 아주머니 : 넹바리 아저씨 : 아재비 아주머니 : 아주마이   오빠 : 오라바니,오라바이,오라브지 누이 : 누부,누비,누애,누의,느비 동생 : 애끼 막내 : 막뒤   사위 : 싸웨 올케 : 오리미,오레미,올찌세미 시누이 : 스느비 시동생 : 스애끼   늙은남자(아바이,노털) 늙은여자(아매) 남자 : 스나이 아낙네 : 안까이,에미네 어른 : 자라이 어린아이 : 어르나,간나 떡거머리 총각 : 덜머리총각 여자아이 : 간나   ◐  북한의 평안도 방언.   꼬치꼬치(오지오지) 꿩(산닭) 꽈배기(타래떡) 나 스스로(나절로) 나물(남새) 나비(나붕이) 남(냄) 남방셔츠(적삼, 퉁중이,잠배이) 남자(스나이) 남편(나그네) 내버려두다(내싸두다) 내장,속(벨,베리,배애리) 냉이(나상구,나숭개,나시) 너무,지니치게(진해) 넙적다리(신다리) 노란자위(노란자시,노랑젖) 노루(놀가지,놀기,놀갱이) 노을(나부리,나불,나오리,노부리,느블) 노하다(노바하다) 녹두나물(녹디질금) 뇌물(콧밑씻게) 누구세요(뉘기야,니기가) 누이(누부,누비,누애,누의,느비) 눈까풀(눈까줄,눈깝지) 눈보라(눈바라) 느슨하다(허슨하다) 늙은남자(아바이,노털) 늙은여자(아매) 다구치다(족치다,족대기다) 다듬다(검줄하다) 다시하다(되비하다) 단추(눈마구) 달무리(달머리) 닭(달기) 닭알(게랄,달기알) 담요(탄재,탄자) 대담하다(어버리크다) 대머리(번대머리,뻔들머리,) 대판싸움(대드리싸움) 더덕(더데기) 더부룩하다(듬뿌룩하다) 더위(더비,더우) 데굴데굴(두굴두굴) 도리어(데비) 도시락 그릇(밥곽) 도시락(곽밥) 독수리(닥수리,독소리,독술) 동그라미(동그랑이) 동생(애끼) 동침하다(동품하다) 돼지(뒈지,도티) 된장(떼장, ) 두루마기(두루메기,둘메기,제마기) 두부(드비) 들락날락하다(풍개치다) 들리다(듣기다) 들석거리다(들멍하다) 등골뼈(염주뼈) 등마루(등말기) 등허리(등떼기) 딩굴다(궁글다) 딱따구리(가막두거리,가막조가리,닥닥새,뚝뚝새) 딸꾹질 때문에(까타나) 땔나무(부수께나무,땔낭기) 떠벌이(말단지) 떡거머리 총각(덜머리총각) 뚜껑(다께,덕개,두벙) 뚜껑(뚜배) 마른오징어(낙지) 마른오징어(낙지) 마사다(마이다) 마음(맘세,맴,마암) 막내(막뒤) 만두(벤세)   ◐  북한의  함경도방언 -음식.   간장(지렁) 갈비(갈배) 감자(갱기) 개피떡(씀바람떡) 고드름(고조리,고주럼,고즈래미) 고등어(고마이,고마에,고망어)  국수(국시) 꽈배기(타래떡) 나물(남새) 냉이(나상구,나숭개,나시) 녹두나물(녹디질금) 닭알(게랄,달기알) 도시락(곽밥) 된장(떼장, )  두부(드비) 마른오징어(낙지)  마사다(마이다) 메주(메지)  멥쌀(닙쌀) 무(노배,무꾸) 물어징어(오중어) 반찬(질게,찬새,해미,햄,햄새) 배추(배차,배채) 봉숭아(봉새) 부추(염지) 상추(불구) 송편(조개떡) 수수(고량,밥수끼,밥쉬) 쌀밥(이팝) 옥수수(옥시기,강내) 칡(츨기) 콩나물(질금) ◐  북한의  함경도 방언-일반 언어.   가새비 : 장인 가세 : 가위 가자미식혜 : 소금에 절인 가자미로 만드는 발효 음식 가시나.: 여자 아이 갓주지 : 갓을 쓴 젊은 주지. 아이들에게 무서운 대상의 상징 개당이 없다 : 깔끔하지 못하다 갯돌 : 배를 육지로 올리거나 바다로 내릴 때 끌고 갈 방향 앞쪽에 받치는 나무토막 건치 : 멍석. 거적 구름깔개 : 참나무를 엷게 밀어서 결은 자리 귀성스럽다 : 귀인(貴人)성스럽다 그기 : 그것이 글거리 : 그루터기. 풀이나 나무 또는 곡식 따위를 베고 남은 밑동 글거리 : 줄거리. 줄기. 그루터기 까막조개 : 바지락 깡태밭 : 갯벌 껍지 : 껍질 꼬마. 꾸마. 구마 : -입니다. -습니다. -어요. 명, 형, 동사의 뒤에 붙어 존칭으로 대답하는 데 쓰는 토 나무리다 : 나무라다 날래 : 빨리 낭 : 낭떠러지 낭그 : 나무 내내로 : 늘. 항상 녹마 : 녹말 녹마국수 : 녹말국수 누데기 : 포대기 누베 : 누에 눈포래 : 눈보라 늠 : 놈 다쪼매 : 대님 피께데기,패기,패끼딸각질 - 딸꾹질 돌대구리 : 돌대가리. 두렝이 : 두루마기 두루. 두뤄 : 들. 들판 두주리 : 둥우리 둔대 : 큰배를 움직이게 할 때 일종의 지렛대로 쓰는 나무토막 둥글소 : 황소 뒤울안 : 뒤란 뒤잽이줄 : 배를 선창에 묶어두는 밧줄 들뿌리 : 팬티 따발 : 똬리 ◐  북한의 함경도 방언 - 동물.   강아지(강생이) 고양이(고애,고앵이) 꿩(산닭) 나비(나붕이) 노루(놀가지,놀기,놀갱이)  닭(달기) 독수리(닥수리,독소리,독술) 돼지(뒈지,도티) 딱따구리(가막두거리,가막조가리,닥닥새,뚝뚝새) 망아지(매지,메아지) 메기(메사구)  메추리(모치래기) 물오징어(오중어)   송사리(눈젱이,뾰돌치) 송아지(쇄지,새지) 암말(피매,피매말) 암소(암세) 암캐(앙캐) 암코양이(암쾌) 암퇘지(피게) 염소(넘소,맴소,염쇠,염세) 올챙이(올채)  제비(지비) 종달새(종지리,예조리) 진드기(진둥개) 표범(아롱범)  황소(둥글쇠) ...       답변추천해요1추천자 목록 컴퓨터는 슬기틀, 도넛은 가락지빵, 바쁘다는 힘들다, 계란말이는 닭알말이 등이 있어요.  
296    쉼시간 - 땡 땡 땡... 통일되여야 할 우리 말들 댓글:  조회:4852  추천:0  2015-12-07
방부제.....냄새 막이약        계모.....후 어머니 캠페인.....깜빠니아             가발.....덧 머리 단비.........꿀비                  레코드...소리판 볼펜.........원 주필               오리발...발가락 사이막 분유.........가루 젖                이혼모...해방 처녀 주부.........가부너 성             도넛.......가락지 빵 거짓말.....꽝 포                     아이스크림.....얼음 보숭이 변소.........위생실                  건달.......날 총각 생리통....달거리 아픔              서랍......빼랍 사망율......죽는율                    사팔눈.....삘눈 수제비.....뜨더국                     부동액....겨울 기름 고철......헌쇠                           장인.....가시 아버지 부래지어...젖싸게.가슴띠.   남한말 북한말 마네킹 마스카라 마스크 만장일치 만화 말다툼 맞벌이 세대 매우 다급하다 맷돌 메어꽂다 멜빵 멜빵바지 명란젓 멸균 명암 모눈종이 몸틀 눈썹먹 얼굴가리개 전원일치 이야기그림 입다툼 직장세대 급해맞다 망돌 메여꼰지다 멜바,질바 멜끈바지 알밥젓 균깡그리죽이기 검밝기 채눈종이   남한말 북한말 마네킹 마스카라 마스크 만장일치 만화 말다툼 맞벌이 세대 매우 다급하다 맷돌 메어꽂다 멜빵 멜빵바지 명란젓 멸균 명암 모눈종이 몸틀 눈썹먹 얼굴가리개 전원일치 이야기그림 입다툼 직장세대 급해맞다 망돌 메여꼰지다 멜바,질바 멜끈바지 알밥젓 균깡그리죽이기 검밝기 채눈종이   남한말 북한말 모자이크 목돈 묘책 무대 막 무상 교육 무선 호출기 무심결 무안을 당하다 문맹자 문장 무지개 오리발 물개 물에 만 밥 뭉게구름 뮤지컬 쪽무늬그림 주먹돈 묘득 주름막 면비교육 주머니종 무중 꼴(을) 먹다 글장님 글토막 색동다리 발가락사이막 바다개 무랍 더미구름 가무이야기     남한말 북한말 미숙아 미역국을 먹다 미풍 미혼모 민간인 민속 놀이 밑줄 달못찬아이 락제국을 먹다 가능바람 해방처녀 사회사람 민간오락 아래줄       남한말 북한말 바로 정면으로 박살나다 반격 반딧불이 반죽음 반찬 반환점 방부제 방음벽 방직공장 방화벽 배낭 배드민턴 배수 배웅하다 들창코 면바로 박산나다 반타격 불벌레 얼죽음 찔게 돌아오는점 냄새막이약 소리막이벽 직포공장 불막이벽 멜가방 바드민톤 곱절수 냄내다 발딱코     남한말 북한말 벌집 베란다 베어링 벼락부자  벼 타작 변태 보름달 보온성 보온재 보조개 보증 수표 보트 복어 볶음밥 볼펜  (눈을)부릅뜨다 벌둥지 내민층대 축받치개 갑작부자 벼바심 모습갈이 동근달 따슴성 열막이감 오목샘 지불행표 젓기배 보가지 기름밥 원주필 흡뜨다     남한말 북한말 부산을 피우다 분유 불도저 브래지어 블라우스 비석 비염 비중 빙설 빨리 빼아닮다 호출기 설레발을 치다 가루젖 평토기 젖싸개,가슴띠 양복적삼 비돌 코염 견줌무게 얼음눈 날래 먹고닮다 주머니종     남한말 북한말 사과 잼 사과 주스 사망률 사팔눈 사실혼 사탕수수 산란기 산란율 산책로 살균 살금살금 걷다 삼복철 삼투압 삿대질 상여금 상이 군인 상추 (밤을)새우다 색다르다 생리통 생맥주 생활 필수품 샹들리에 서랍 서명하다 서커스 선수촌 사과단졸임 사과단물 죽는률 삘눈 뜨게부부 단수수 알낳이철 알낳이률 거님길 균죽이기 발면발면걷다 복거리 스밈압력 손가락총질 가급금 영예군인 부루 패다 맛다르다 달거리아픔 날맥주 인민소모품 무리등 빼람 수표하다 교예 체육촌     남한말 북한말 선잠 세배 세탁소 센터링 셋방살이 소꿉친구 소라 소매치기 소장 소풍 소프라노 소형 택시 속눈썹 속셈 속임수 손도장 손짓 솜털 수력 수면제 수상 스키 수신호 수영복 수유실 수중 발레 수학여행 수화 숙면 숫잠 설인사 빨래집 중앙으로꺽어차기 동거살이 송아지동무 바다골뱅이 따기군 가는밸 들모임 녀성고음 발바리차 살눈섭 속구구 흐림수 수장 손세 보슴털 물힘 잠약 물스키 손신호 헤염옷 젖먹임칸 예술헤염 배움나들이 손가락말 속잠       남한말 북한말 숙소 순환도로 숨바꼭질 스카이 라운지 스카프 스커트 스크랩북 스킨 로션 스타킹 스타 플레이어 스튜어디스 스파이크 슬리퍼 승려 승무 시동생 시디 플레이어 시럽 시집간 딸 식혜 신기록 보유자 실격 실내화 싱크대 잔돈 쓸개 초대소 륜환도로 숨기내기 전망식당 목수건 양복치마 오림책 살물결 하루살이 양말 기둥선수 비행안내원 순간타격 끌신 중선생 중춤 적은이 레이자전축 단물약,진단물 집난이 밥감주 체육명수 자격잃기 방안신 가시대 부스럭돈 열주머니                 남한말 북한말 모자이크 목돈 묘책 무대 막 무상 교육 무선 호출기 무심결 무안을 당하다 문맹자 문장 무지개 오리발 물개 물에 만 밥 뭉게구름 뮤지컬 쪽무늬그림 주먹돈 묘득 주름막 면비교육 주머니종 무중 꼴(을) 먹다 글장님 글토막 색동다리 발가락사이막 바다개 무랍 더미구름 가무이야기     남한말 북한말 미숙아 미역국을 먹다 미풍 미혼모 민간인 민속 놀이 밑줄 달못찬아이 락제국을 먹다 가능바람 해방처녀 사회사람 민간오락 아래줄       남한말 북한말 바로 정면으로 박살나다 반격 반딧불이 반죽음 반찬 반환점 방부제 방음벽 방직공장 방화벽 배낭 배드민턴 배수 배웅하다 들창코 면바로 박산나다 반타격 불벌레 얼죽음 찔게 돌아오는점 냄새막이약 소리막이벽 직포공장 불막이벽 멜가방 바드민톤 곱절수 냄내다 발딱코     남한말 북한말 벌집 베란다 베어링 벼락부자  벼 타작 변태 보름달 보온성 보온재 보조개 보증 수표 보트 복어 볶음밥 볼펜  (눈을)부릅뜨다 벌둥지 내민층대 축받치개 갑작부자 벼바심 모습갈이 동근달 따슴성 열막이감 오목샘 지불행표 젓기배 보가지 기름밥 원주필 흡뜨다     남한말 북한말 부산을 피우다 분유 불도저 브래지어 블라우스 비석 비염 비중 빙설 빨리 빼아닮다 호출기 설레발을 치다 가루젖 평토기 젖싸개,가슴띠 양복적삼 비돌 코염 견줌무게 얼음눈 날래 먹고닮다 주머니종     남한말 북한말 사과 잼 사과 주스 사망률 사팔눈 사실혼 사탕수수 산란기 산란율 산책로 살균 살금살금 걷다 삼복철 삼투압 삿대질 상여금 상이 군인 상추 (밤을)새우다 색다르다 생리통 생맥주 생활 필수품 샹들리에 서랍 서명하다 서커스 선수촌 사과단졸임 사과단물 죽는률 삘눈 뜨게부부 단수수 알낳이철 알낳이률 거님길 균죽이기 발면발면걷다 복거리 스밈압력 손가락총질 가급금 영예군인 부루 패다 맛다르다 달거리아픔 날맥주 인민소모품 무리등 빼람 수표하다 교예 체육촌     남한말 북한말 선잠 세배 세탁소 센터링 셋방살이 소꿉친구 소라 소매치기 소장 소풍 소프라노 소형 택시 속눈썹 속셈 속임수 손도장 손짓 솜털 수력 수면제 수상 스키 수신호 수영복 수유실 수중 발레 수학여행 수화 숙면 숫잠 설인사 빨래집 중앙으로꺽어차기 동거살이 송아지동무 바다골뱅이 따기군 가는밸 들모임 녀성고음 발바리차 살눈섭 속구구 흐림수 수장 손세 보슴털 물힘 잠약 물스키 손신호 헤염옷 젖먹임칸 예술헤염 배움나들이 손가락말 속잠       남한말 북한말 숙소 순환도로 숨바꼭질 스카이 라운지 스카프 스커트 스크랩북 스킨 로션 스타킹 스타 플레이어 스튜어디스 스파이크 슬리퍼 승려 승무 시동생 시디 플레이어 시럽 시집간 딸 식혜 신기록 보유자 실격 실내화 싱크대 잔돈 쓸개 초대소 륜환도로 숨기내기 전망식당 목수건 양복치마 오림책 살물결 하루살이 양말 기둥선수 비행안내원 순간타격 끌신 중선생 중춤 적은이 레이자전축 단물약,진단물 집난이 밥감주 체육명수 자격잃기 방안신 가시대 부스럭돈 열주머니                
295    쉼시간 - 땡 땡 땡...무게 17톤짜리 탱크로 학교 등교 댓글:  조회:5419  추천:0  2015-12-07
   영국 일간지 ‘데일리 메일’  =   한 영국인 아버지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아들을 학교에 늦지 않게 바래다주기 위해 무게 17톤의 탱크를 제작했다. 밀리터리 마니아 닉 미드(Nick Mead) 씨는 200만 파운드 상당의 합법적으로 주행 가능한 탱크 130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두 아들은 매일 탱크로 등교가 가능하다. 이들의 ‘승용차’, 즉 탱크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폭설에도 끄떡없다. 닉은 “아들의 친구들이 탱크를 볼 때마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본인도 다른 부모의 그런 놀란 반응을 즐긴다”라고 말했다.        
294    각 나라별 = 감사합니다는?!... 댓글:  조회:6373  추천:0  2015-12-07
단동(丹東)역앞에서... ========================= 심양에서... ---------------------------------------------------------------- 河南省 通許縣 주스강 논밭 한가운데 세우던 중의 毛澤東 동상 철거 하기에 이르러... 2016 01 09. ----------------------------------------------- 감사합니다 영/떙큐-Thank you 독일/ 단케 Danke 불/감사합니다 Merci 불/메르시 Merci 이탈리아/ 그라트에 Grazie 서/그라시아스 Gracias 서/그라시아스 Gracias 라/베네・파키스 bene facis 희/에우카리스트ευχαριστω 희/에프 탄력 파업ευχαριστω 희/사스에후하리스트파라포리(정중) 러/ 스파스바 러/ 스파시보 러/ 시파시바 네델란드어/ 덩크-웰 DANKUEWL 中 쎄쎄~ 謝謝 広 응코이 唔該 広 토-체 多謝 타이/코브쿤 타이/코브쿤 타이/코브쿤마크(정중) 말레이어/ 테리마카세이 Terima kasih 인드네시아/테리마카시 Terima kasih 스와히리어/ 아산테 Asante 덴마크어/ 만게탁크 Mange Tak (많은 감사) 덴마크어/ 만게타크 Mange tak 스웨덴/쿠소문케 스웨덴어/ 탁 Tack 노르웨이어/ 만게탁크 Mangetakk 노르웨이어/ 트센탁크 tusen takk (천의 감사) 노르웨이어/ 탁 Takk 핀란드/트크시아파르욘/키 토스 핀란드어/ 키 토스 Kiitos 아라비아/쇼코란 아라비아/쇼크란 shokran 아라비아/슈크란 베트남어/ 슨크란 아라비아/슨크란쟈지란(정중) 아라비아/무타산킬 mu tashakkir(남성이 말한다) 아라비아/무타산키라 mu tashakkira(여성이 말한다) 페르시아어/ 모타산케람 터키어/ 테시엑큐르에데림 tesekkur ederim 터키어/ 테시큐르에데림 tesekkur ederim 터키어/ 테시크큐르에데림 tesekkur ederim 베트남어 /캠 온 Cam o'n 베트남어/ 잣트캄온 Ra't cam on(정중) 헤브라이/트다 헤브라이/트다라바(정중) 헤브라이/트다・러버 몬골/야르라라 BAYARLALAA 불가리아어/ 브라고다랴 불가리아어/ 무노고브라고랴(정중) 불가리아어 /즈드라베이이테 알바니아어/ 파레민데리트 에스토니아어/ 아이타 크로아티아어 /후바라 슬로바키아어/ 잭 M 슬로베니아어/ 후아라 세르비아어/ 드후바라 체코어/ 제크이 헝가리어(마쟈르어)/ 쿠스눔 폴란드어/ 젠크이 보스니아어 /후바라 마케도니아어/ 브라고다람 몬테네그로어 /후바라 라트비아어/ 파르디에스 리투아니아어/ 아츄 루마니아어/ 무룻메이스크 multumesc 루마니아어 /무르트메스크 multumesc 한/감사합니다 포르트갈/오브리가드 Obrigado 스와히리어/ 아산테 asante 하와이어/ 마하로 mahalo 하와이어/ 마하로・누이・로아 mahalo nui loa (정중하게)  
293    띠? ... 댓글:  조회:4407  추천:0  2015-12-06
  띠해(生肖年)는 12개 띠(十二生肖)에 12개 지지(十二地支)를 결합해 년대를 기재하는 방법이다. 띠와 지지의 짝관계는 늦어도 중국 동한시기 왕충(东汉王充)의 "론형(论衡)"이란 저작에서 최종 확정되였고 지지로 년대를 기재하는 통속적인 표현으로 되였다. 띠의 시작점은 결국 지지로 년대를 기재할 때의 시작점이며 두가지 계산법이 존재한다. 한가지 방법은 음력설을 시작으로 하는 계산법이다. 중국전통력법에서는 "정월삭(正月朔)"을 적용, 즉 음력 정월 초하루를 띠해의 시작점으로 했다. 이는 력대 정사와 공식력서, 그리고 현대의 신문과 종이달력에서 많이 찾아볼수있다. 다른 한가지 방법은 립춘을 시작으로 하는 계산법이다. 사실상 중국달력간지[干支, 천간(天干)과 지지(地支)]시간기재체계는 중국만의 독특한 양력력법체계이며 간지력(혹은 절기력, 중국의 양력)이라고 말한다. 간지력은 립춘을 시작으로 해서 대한으로 끝나는 24절기는 정확히 양력날자와 일치하게 된다. 태양의 1년 변화중에 가장 먼저 드는 절기가 립춘이다. 립춘은 봄에 해당한다. 봄은 1년 춘하추동 사계절중 첫번째 계절로 음력 1월, 2월, 3월에 해당한다. 봄에 해당되는 절기는 립춘, 우수, 경칩, 춘분이다. 이중 정월에 드는 절기가 립춘과 우수이다. 종합하면 1년은 봄에서 시작되고 봄은 정월에서 시작되고 24절기는 정월의 립춘절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리유로 립춘일시가 띠를 구별하는 기준점이 된다. 음력설이 지난 뒤에 립춘이 들어오면 새해가 되여도 띠는 아직 바뀌지 않게 된다. 반대로 음력설이 되기전에 립춘이 들어오는 경우에는 띠는 이미 바뀐 상태가 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결론: 띠의 시작점을 음력설로 기준하거나 립춘으로 기준하거나 대부분 사람들에 대해서는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출생일이 음력설과 립춘 두가지 기준사이에 놓인 사람들이라면 가문과 본인의 선택에 달렸다.
292    쉬여가는 페이지 - "독일축구의 고향 = 라이프찌히" 댓글:  조회:4526  추천:0  2015-12-06
. ------------------------------- ‘독일축구의 고향’ 라이프찌히 라이프찌히는 과거 동독에 속한 유서깊은 도시로 역사와 음악, 학문의 중심지. 독일축구협회가 1900년 이곳 라이프찌히에서 창립되었으니 이곳은 독일 축구의 고향이라 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1903년에 첫 선수권대회가 열렸는데 라이프찌히 팀이 우승을 했다. 라이프찌히 팀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속한 유일한 옛 동독 지역의 팀,  ===================================================== 라이프찌히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는 1990년 독일 통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  이곳에서는 1989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촛불집회가 열렸는데 이것이 독일 통일의 출발점이 되었다. 1년간의 촛불집회로 민주화 열기가 결집되어 결국에는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통일이 된 것이다. 라이프찌히에는 성 니콜라스 교회와 함께 성 토마스 교회가 유명하다. 성 토마스 교회는 바하와 인연이 깊다. 바하는 이 교회에서 27년간 칸토르(음악 감독)로서 성가대를 지휘하며 수많은 오라토리오와 칸타타를 작곡했다. 이 당시만 해도 바하는 유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하가 죽은 100년 후 멘델스존이 바하 음악의 위대함을 ‘발굴’해냄으로써 비로소 바하의 천재성이 인정되어, 오늘날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바하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2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9명만 생존하고 나머지는 일찍 죽었다. 바하의 두 번째 부인은 말년에 극빈의 생활을 했는데 위대한 음악가 가족들의 비참한 생활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역사상 제일 위대했던 음악가가 그토록 비참한 생활을 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바하의 무덤은 성 토마스 교회 안에 있다. 성직자가 아닌데도 교회 제단(altar room)에 묻혀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라이프찌히 시내에 있는 바하 박물관은 너무 소박(humble)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도 라이프찌히와 인연이 깊다. 그는 1519년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한달이 넘게 로마 가톨릭을 대표하는 신학자들과 신앙 논쟁을 펼침으로써 종교개혁의 선구자가 되었다. 루터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철학자 니체는 1844년 라이프찌히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슈바이처는 25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2년간 성 니콜라스 교회의 목사로 일했다. 29세 때에는 성 토마스 교회에 딸린 신학교의 기숙사 사감을 1년간 하다가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의학공부를 시작한다. 종교와 예술의 향기가 짙은 도시 라이프찌히.  
291    쉬여가는 페이지 - 세계일주... 댓글:  조회:4926  추천:0  2015-12-06
[ 2015년 12월 09일 08시 33분   조회:900 ]     북경 공기 그야말로 "살인적". 사진은 북경의 스모그 전과 후 대비한 사진. ======================================================= 아시아 1. 대한민국 : 교육열 세계1위 2. 조선 : 사상유래없는 => (49년독재) 3. 그루지야 : 그루지야내 남오세티야 분쟁발발 4. 네팔 : 세계에서 가장높은 산을 보유한 나라 에베레스트(8848m) 5. 라오스 : 이웃 베트남과 운명을 같이하는 나라 (프랑스식민지, 공산화가 베트남과 같이 이루어짐) 6. 레바논 : 서남아시아 회교권 국가중 유일하게 기독교 비율이 높은 지역(38%) 7. 말레이시아 : 자존심이 강한 나라(한때 제일높은 건물인 페트로나스 타워가 있었음) 8. 몰디브 : 아시아에서 인구가 제일 적고 땅이 제일 작은 나라(면적 : 300km2 / 인구 : 27만3천명) 9. 몽골 : 인구밀도가 가장 희박한 나라 ( km2 당 1명 반면에 대한민국은472명 ) 10. 미얀마 : 민족분쟁과 이념분쟁으로 인권이 억압받는 곳 11. 바레인 : 작은 나라지만 축구 잘하는 나라 12. 방글라데시 : 풍수해로 많이 죽는 나라 (1970년 태풍으로 100만명 사망) 13. 베트남 : 강대국을 이긴 나라 (1946~1954년 프랑스, 1960~1975년 미국, 1979년 중국과의 전쟁) 14. 부탄 : 평등주의가 가장 강한 나라  15. 브루나이 : 석유로 잘사는 나라 세금이 없는 나라 16. 사우디 아라비아 : 가장 많이 석유를 수출하는 나라 17. 스리랑카 : 타종교 탄압이 심한 불교국가 18. 시리아 : 과거에는 대단했던 나라(앗시리아) 지금은 허접한 나라 19. 싱가포르 : 중국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77.5%) 20. 아랍에미리트 : 한때 국민소득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던 석유부국(한때 1인당 소득이 4만불 이었음) 21. 아르메니아 : 중앙아시아 유일의 기독교국 22. 아제르바이잔 : 289명이 사망한 지하철 사고가 있었음 23. 아프가니스탄 : 국민소득이 제일 적은 나라 (1989년 200$) 24. 예멘 : 남예멘 북예멘이 통일 했지만 시끄러웠던 나라 25. 오만 : 중동국 중에서 관광할만한 나라 26. 요르단 : 유일하게 이라크와 친했던 나라(그나라 국왕 이름도 후세인)  27. 우즈베키스탄 : 강제이주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198,000명) 28. 이라크 : 잘못된 객기를 부리다 쪽박찬 나라( 이란- 이라크전, 걸프전 ) 29. 이란 : 중동국중 반미정서가 가장 심했던 나라 30. 이스라엘 : 오랜 기간 동안 없었다가 생긴 나라(2000년 동안), 가장 시끄러운 나라 31. 인도 : 힌두교국가 32. 인도네시아 : 가장 섬이 많은 나라 33. 일본 : 경제력이 많은 것에 비해 권한 및 인지도가 적은 나라(경제동물) 34. 중국 : 가장 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한 나라(16개국), 가장 많은 인구(13억) 35. 카자흐스탄 : 구 소련 독립국 중 가장 큰 나라(2725000km2) 36. 카타르 : 국토 면적에 비해 석유 가스가 많은 나라 37. 캄보디아 : 킬링필드 학살이 있었던 나라(700만 인구중 1/3이 희생) 38. 쿠웨이트 : 국민들에게 세금 걷는건 고사하고 교육비까지 주는 나라 39. 키르키스스탄 : 고대 북방에 세워진 배달국 조선과 관련이 높은 나라(출토 유물이 유사함) 40. 키프로스 : 차기 중동 분쟁의 씨앗 (키프로스 분쟁) 41. 타이 : 귀여운 코끼리가 많은 나라 42. 터키 : 아시아이면서 유럽이 되기 위해 안달인 나라 43. 투르크 메니스탄 : 자원이 많아서 서방 여러 국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나라 44. 타지키스탄 : 험한 산이 대부분인 국가 45. 파키스탄 : 핵개발을 하면서 대테러전 때 미국과 협력하여 별로 욕을 안먹은 국가 46. 필리핀 : 대통령선거 할 때 가장 오래하는 국가(1달 걸린적도 있음) 47. 동티모르 : 정식국가는 아니지만 이미 인도네시아와 떨어져 딴 살림을 차림 아프리카 48. 가나 : 초콜렛으로 유명한 나라(가나 쵸콜렛) 49. 가봉 : 아프리카에서 정확하게 적도에 위치한 나라 50. 감비아 : 아프리카 어디에 있는지 찾기 힘든 나라 51. 기니 : 알루미늄의 원료인 보크사이트를 많이 생산하는 나라 (세계산출량의19%) 52. 기니비사우 : 기니위에 작은 나라 53. 나미비아 : 가장 오랬동안 UN 신탁통치를 받은 나라(45년) 54. 나이지리아 : 아프리카 최대 석유 생산국 그러나 가난한 나라 55. 남아프리카 공화국 : 흑백갈등의 최전선 56. 니제르 : 인도 깃발과 비슷한 나라 57. 라이베리아 : 상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 58. 레소토 : 하나의 큰 나라안에 둘러싸인 나라(지도보면 알수있음) 59. 르완다 : 종족갈등으로 100만이상의 주민이 학살된 나라 60. 리비아 : 동아건설을 일거리를 준 나라(세계최대 대수로 공사) 61. 마다가스카르 : 아프리카의 큰 섬나라로 히틀러가 유대인국가 설립을 추진하려 했던 곳 62. 말라위 : 수도이름이 특이한 나라(릴롱궤) 63. 말리 : 사막이 대부분 이어서 썰렁한 나라 64. 모로코 : 인접국인 서사하라를 먹고도 욕을 덜먹은 나라 65. 모리셔스 : 관광가서 재미있게 놀수 있는 나라 66. 모리타니 : 아프리카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적은 나라(km2 당 2명) 67. 모잠비크 : 독일이 지배했던 나라 68. 베냉 : 유럽인이 아프리카 황금을 수탈했던 해안 국가 69. 보츠와나 : 부시맨 거주지 70. 부룬디 : 기근이 심했던 지역 71. 부르키나파소 : 사하라 사막의 경계 72. 상투메프린시폐 : 작은 섬나라 73. 세네갈 : 프랑스 프로축구 구단에 많이 진출해 있던 나라 74. 세일셸 :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 (지도에서 못찾겠음) 75. 소말리아 : 수많은 아프리카 내전중에 미국이 개입했던 나라 76. 수단 :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나라 77. 스와질란드 : 아프리카에서 제일 평화로운 나라 78. 시에라리온 : 반란이 잦은 나라 79. 알제리 : 아프리카중 프랑스와 가까웠던 나라 80. 앙골라 : 1976년 내전 81. 에리트레아 : 에티오피아와 떨어져서 딴 살림 차린 나라 82. 에티오피아 : 한국전쟁때 대한민국을 도와준 나라 83. 우간다 : 이나라 이름을 들으면 소가 걸어가는 것이 생각남 84. 이집트 :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 85. 잠비아 : 아프리카국중 인구 증가율이 낮은 나라(연0.7%) 86. 적도기니 : 적도에 있는 기니 87.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진짜 아프리카 중앙에 있는 나라 88. 지부티 :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음 89. 짐바브웨 : 깃발이 특이한 나라 90. 차드 : 아프리카 지도를 보면 가장눈에 먼저 들어오는 나라(왜그럴까?) 91. 카메룬 : 축구 잘하는 나라 92. 카보베르데 : 난생처 음 들어본 나라 93. 케냐 : 동물의 왕국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라 94. 코모로 : 모로코와 헷갈릴 뻔했던 나라 95. 코티드부아르 : 한때 상아를 반출을 많이 한 나라 96. 콩고 : 자이르라는 다른 이름이 있는 나라, 콩고분쟁(후투족 VS 투치족) 97. 콩고민주공화국 : 아프리카에서 국민소득이 제일 낮은 나라 (110$) 98. 탄자니아 : 세계적으로 깊은 호수인 탕가니카호(수심:1470m)가 있는 나라 99. 토고 : 처절하게 독립운동을 한 나라 100. 튀니지 : 박쥐국민(2차대전때 프랑스편 들었다가 독일편 들고 다시 미국편 들고) 유럽 101. 그리스 :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국가 102. 네델란드 : 유럽인중 유명한 장사꾼, 외국어 잘하는 나라(토플, 토익1등) 103. 노르웨이 : 노르만해적국가 104. 덴마크 : 안데르센이라는 동화작가를 탄생시킨 나라 105. 독일 : 유럽에서 가장 경제력이 있는 나라 106. 라트비아 :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와 더블어 인간띠로 소련이 대항했던 나라 107. 러시아 :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17075000km2) 108. 루마니아 : 드라큘라백작 109. 룩셈부르크 : 1인당 국민소득 세계1위(1996년 45360$) 110. 리투아니아 : 왕년에 잘나갔던 나라(15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 111. 리히텐슈타인 :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작지만 잘 사는 나라 112. 마케도니아 : 유고내전의 피해가 적었던 유고연방국 113. 모나코 : 세금이 없어서 부유층 사람들이 도피처가 되는 지중해 휴양지 114. 몰도바 : 루마니아계주민과 러시아계주민간의 불화로 조만간 분리될듯 115. 몰타 : 가장 낮은 섬 (1m) 116. 바티칸 : 가장 작지만 인지도가 높은 나라 117. 벨기에 : 스머프만화의 고향, 동화 플란다스개의 고장 118. 벨로루시 : 드 넓은 평원의 나라 119.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 유고내전의 진원지 120. 불가리아 : 웰빙국가, 장수국가 121. 산마리도 : 이탈리아내의 작은 소왕국 122. 스웨덴 : 자동차공업국(볼보, 사브) 123. 스위스 : 영구중립국 124. 슬로바키아 : 체코로 부터 평화롭게 독립한 나라 125. 슬로베니아 : 슬로베니아인이 역사적으로 처음 세운 나라 126. 아이슬란드 : 북극의 어업국가 127. 아일랜드 : 미국이민 비율이 높았던 나라 128. 안도라 : 프랑스, 스페인국경의 작은 산골 왕국 129. 알바니아 : 테레사 수녀의 고향 130. 에스토니아 : 2차대전때 독일과 협력함 131. 에스파냐 : 재미있게 놀줄아는 나라 132. 영국 : 유럽의 해양강국이었던 나라 133. 오스트리아(오지리) : 유명한 음악가의 나라(요한 슈트라우스, 모짜르트) 134. 우크라이나 : 곡창지대, 체르노빌 핵발전소 135.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라고 불리우며 유고연방의 실세 136. 이탈리아 : 로마 문명의 나라, 장화같은 나라 137. 체코 : 과거 공산국들중 공업이 잘 발달한 지역 138. 크로아티아 : 유고내전에서 활약한 나라 139. 포르투칼 : 최초의 식민지 개척 140. 폴란드 : 포도가 생각나게 하는나라 141. 프랑스 : 에펠탑, 해외 망명인사의 도피처 142. 핀란드 : 추위에 가장 강한 사람 143. 헝가리 : 소련의 위성국 중 대소항쟁을 강하게 했던 나라 아메리카 144. 미국 : 제일 쎈 나라이자 제일 욕 많이 먹는 나라 145. 캐나다 : 많은 공기, 시원한 계절 146. 가이아나 : 기묘한 바위산(로라이마산) 147. 과테말라 : ...(과태료 물지 말라... ㅋ) 148. 그레나다 : 미국의 침공을 받은 나라 149. 니카라과 : 미국 다음으로 야구를 잘 하는 나라 150. 도미니카 공화국 : 1965년 도미니카 내란 151. 도미니카 연방 : 프랑스로 부터 독립한 작은 나라 152. 멕시코 : 엄청 큰 밀집모자 쓰는 나라 153. 바베이도스 : 베네수엘라 위의 섬 나라 154. 바하마 : 버뮤다 삼각지역의 나라 155. 볼리바르베네수엘라 : 보통 베네수엘라라고 부르며 미국이 석유를 많이 수입 하는 곳 156. 벨리즈 : 맥시코 끝에 붙은 나라 157. 볼리비아 :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호수 티티카카호가 있는나라 158. 브라질 : 삼바, 축구, 제일 넓은 정글 159. 세인트 루시아, 160. 세인빈센트그레나딘, 161.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비슨 : 사람이름의 섬  162. 수리남 : 과거 미스월드 대회때 꼭 빠지지 않았던 나라 163. 아르헨티나 :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한 나라 164. 아이티 : 흑인 노예가 세운 국가 165. 엔티가바부다 : 섬 나라 166. 에콰도르 : 한국인이 중앙아메리카에서 많이 사는 곳 167. 엘살바도르 : 1979년 엘살바도르 내전(로메르신부의 활약) 168. 온두라스 : 마야문명 169. 우루과이 : 우루과이 라운드 170. 자메이카 : 육상 잘하는 나라 171. 칠레 : 제일긴 나라 172. 코스타리카 : 축구 때문에 싸운 나라 173. 콜롬비아 : 콜롬비아 화산으로 많이죽음 174. 쿠바 : 미국과 제일 가까운 사회주의 나라 175. 트리니다드토바고 : 서인도제도의 남쪽끝섬 176. 파나마 : 두개 대양을 연결하는 파나마 운하 177. 파라과이 : 세계에서 가장 수량이 많은 이구아수 폭포 178. 페루 : 잉카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 오세아니아 179. 나우루 : 산도 없는 작은 섬 하나 달랑 180. 뉴질랜드 : 반지의 제왕 촬영현장 181. 마셜 : 2차대전 미국장군이름 182. 미크로네시아 : 작은 섬으로만 무진장 넓게 퍼진 나라 183. 바누아투 : 교통수단이 카누인 나라 184. 사모아 : 하루가 늦게 끝나는 곳 185. 솔로몬 : 아름다운 산호초 186. 오스트레일리아 : 백인우월주의  187. 키리비시 : 원양어장 188. 통가 : 바로옆에 무진장 깊은 바다(-10800m) 189. 투발루 : 지구온난화로 가장 긴장하는 나라 190. 파푸아뉴기니 : 2차대전때 일본군과 오스트레일리아군이 격전하던 곳 191. 팔라우 : 2차대전때 레이터 해전이 일어난 곳 192. 피지 : 태평양섬들 중에 높은 산을 가진나라(빅토리아산)
  아랍어 : الجمهورية الإسلامية الموريتانية(al-Jumhūriyyah al-ʾIslāmiyyah al-Mūrītāniyyah) 프랑스어 : République Islamique de Mauritanie 공식명칭 모리타니 이슬람 공화국 면적 1,030,700km² 인구 3,596,702명 (2015년 통계) 수도 누악쇼트(نواكشوط) 공용어 아랍어 통화 모리타니 우기야 1인당 GDP 명목 1,157$, PPP 2,121$ (2012년 통계) 민족구성 아랍계 30%, 혼혈 40%, 흑인 30% 종교구성 대부분 이슬람 아프리카 국가 모리타니의 대통령이 축구경기를 강제로 중단시켰다.[사진=Guardian]   [아시아경제 온라인이슈팀];  아프리카 모리타니 대통령이 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중 경기가 지루하다며 승부차기로 경기를 끝내도록 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2015년 12월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무함마드 압델 아지즈 대통령은 지난 주말 축구 슈퍼컵 테이라크-제이나팀과 크사르팀간 결승전이 1대1로 비긴 상태에서 지루하게 계속되자 후반 17분경 경기를 중단시키고 승부차기를 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이 돌연 승부차기를 하기로 하자, 선수와 팬들 모두 어리둥절했고 압델 아지즈 대통령의 지시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분노 여론이 확산됐다.  이에 모리타니 축구협회는 대통령과는 무관하며 두 팀의 합의로 이뤄진 결정이기 때문에 축구 규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나섰다. 또한 모리타니 축구협회 회장은 2011년부터 계속되어온 독립을 축하하기 위한 경기이며 공식 경기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 [골닷컴] = 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후반 20분 만에 경기가 종료되고 승부차기가 진행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타파로그 제이나와 라크스르의 모리타니 슈퍼컵 경기. 많은 기대를 모은 만큼 압델 아지즈 대통령까지 직접 경기장을 찾았다. 전반이 끝난 뒤에야 도착한 아지즈 대통령은 경기가 지루했는지 자신의 일정이 바쁘다며 후반 20분 만에 경기 종료를 요청했다. 1:1 상황이던 경기는 대통령의 요청대로 곧바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바쁘다던 아지즈 대통령은 결국 우승을 차지한 타파로그 선수들에게 우승 트로피까지 수여하고 나서 경기장을 떠났다. 경기 후 모리타니 축구협회 회장은 "경기를 일찍 끝내는 건 규정 위반이 아니다. 어차피 단판 경기였고 다른 대회와 연관이 있지도 않았다. 축구는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한 유연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경기"라고 밝혔다.  
289    (자료) 중국 연변작가협회 歷史沿革 / 단군문학상 댓글:  조회:12692  추천:0  2015-12-05
      地址: 吉林省延吉市公園路653號  Tel: 0433-2733347         组织机构: 办公室、创作联络部、创作研究部、文学创作室、延边民族文学院。  小说创作委员会、诗歌创作委员会、散文创作委员会、儿童文学创作委员会、评论创作委员会、翻译创作委员会、汉文创作委员会、北京地区创作委员会、辽宁地区创作委员会、山东地区创作委员会、哈尔滨地区创作委员会、牡丹江地区创作委员会、长春地区创作委员会、吉林地区创作委员会、通化地区创作委员会、南方地区创作委员会 等 16个专门创作委员会。   历史沿革: 1956年8月15日,在吉林省延吉市创立。是中国作家协会的直属分会,全称为中国作家协会延边分 会。1996年8月15日,根据有关社团管理的规定,更名为延边作家协会。  1956年第一届主席:崔采 1959年第二届主席:李羲一  1961年第三届主席:曾延淑 1978年第四任主席:任晓远 1982年第四届主席:金哲 1985年第五届主席:李根全  1993年第六届主席:赵成日 1998年第七届主席:金学泉 2007年第八届主席:许龙锡   现任主席:崔国哲(主持工作) 本会创立59年来共召开了九次代表大会。现有会员675名,朝鲜族581名,非朝鲜族94名,理事94名,中国作家协会总会会员54名。   延边作家协会 主席、副主席           主席:崔国哲      专职副主席:于曜东(满族)    兼职副主席(按得票先后顺序为序): ...   办公室主任:卜美兰   文学创作室主任:孙文赫   创联部副主任:尹玉柱(主持工作)   创联部干事:郑升权   创研部主任:张春男   主办报刊:《延边文学》(朝鲜文)月刊社,1951年创刊,2010年吉新出【2010】85号文件精神,与作协脱钩,整合到延边人民出版社。 《天池小小说》(汉文)杂志社,1986年创刊。16开,64页。累计101期。2010年吉新出【2010】85号文件精神,与作协脱钩,整合到延边人民出版社。   《创作生活》(汉文,内部报刊),1986年2月创刊。 《文坛动态》(朝鲜文,内部刊物),1997年4月成立。   主办网站:2003年开办了《中国延边作家协会网站》(朝鲜文)。   2010年开办了延边作家协会机关党建网站(汉文)。 延边作家协会是中共延边州委、州政府领导下的延边各民族作家以及其它地区朝鲜族作家自愿组成的专业性人民团体,是党和政府联系广大朝鲜族作家和文学工作者的桥梁和纽带,是繁荣中国朝鲜族文学事业,加强社会主义精神文明建设的重要力量。延边作家协会系州委直属党群机关,正县级建制。 延边作家协会的历史沿革  延边作家协会的前身是中国作家协会延边分会,是经中宣部批准,由中国作家协会理事会议审议通过,于1956年8月15日在吉林省延吉市成立的。在全国地区(州)级行政区域中,延边作家协会是惟一享有省级作家协会资格的中国作家协会直属团体会员单位。延边作家协会已经走过了近60年的光辉历程,经历了八次代表大会。1996年8月15日,中国作协延边分会根据国家民政部的有关全国各省、市、自治区作协名称前面不再冠以“中国”的规定,按照中国作协的统一要求,正式更名为延边作家协会。 延边作家协会的最高权力机构是会员代表大会。根据延边作家协会的章程,延边作家协会会员代表大会每5年举行一次,选举产生同一届理事会。在延边作家协会会员代表大会闭会期间,由延边作家协会理事会负责执行本会代表大会的决议。在理事会闭会期间,由理事会选举产生的主席团负责执行延边作家协会代表大会和理事会的决议。作协的日常工作由专职主席和副主席、秘书长负责,作协设有相应的工作机构及专门委员会。 延边作家协会现有会员675人,占会员总数的85%以上是用母语创作的朝鲜族会员。延边作协会员中有中国作家协会会员54名、中国作家协会全国委员(理事)2名,荟萃了延边地区各民族以及其它省市和地区朝鲜族文学界的优秀人才。在党的民族政策光辉照耀下,经过几代人的努力,延边作协已建设成为多门类、多语种、多民族而且功能完善、门类齐全的作家协会。   延边作家协会的主要任务是:执行党对文学界的领导,组织广大的文学工作者学习马列主义、毛泽东思想、邓小平理论和“三个代表”重要思想,学习和贯彻落实党的各项文艺方针政策;组织各类文学评奖,对优秀的创作成果和创作人才,给予表彰和奖励;进行文学理论研究,开展健康的、民主的、说理的文学评论和实事求是的文学批评;发现和培养各民族文学创作、评论、编辑、翻译等多方面的新生力量,促进各民族文学的发展繁荣;增进同国内外作家的联系,推进中外文学交流,代表延边作家以及中国朝鲜族文学界参加国际文学活动;向州委和州政府反映作家的意见和要求,依据宪法和法律以及《延边作家协会章程》的规定和赋予的权利,维护会员的合法权益,为会员提供服务,为之创造宽松、自由、和谐的创作环境。 延边作家协会的职能,总体上概括起来就是:组织、联络、协调、服务。为此,延边作家协会提出了“团结、民主、鼓劲、繁荣”的奋斗目标。 延边作家协会在历史上曾经出现过像金昌杰、金学铁、李旭、金哲、李根全、金成辉、林元春, 鄭世峰等这样优秀的坚持用母语创作的朝鲜族作家,也出现过像何鸣雁、张笑天等用汉文创作的著名作家。 ===================================== (자료) 제1회 “단군문학상”평의회에 참석한 평심위원들 2015년 12월 10일 첫기 “단군문학상” 평의회가 연길에서 있었다. “단군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리사회가 공동 주최한 문학상이다. 소수민족 문학 내실을 풍부히 하고 조선족 문학의 발전을 추진하는 한편 조선족 문화를 계승발양하려는데 취지를 둔 “단군문학상”은 2015년에 가동되여 2년에 한차례씩 심사평의 한다. 심사위원들은 평의 취지를 토대로 전문적 학술정신과 개인적 재능을 평가 기준으로 삼고 신중하고도 세밀하며 구체적인 심사와 토론을 거친 뒤 실명투표를 통해 9편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그중 단군문학상 대상은 결원 처리되고 소설과 산문, 시가, 보고문학, 론평, 아동문학 부문 각기 1편, 한문창작상 2편, 문학신인상 1편이 수상작 명단에 올랐다. 중국조선족 첫기 “단군문학상” 시상식은 2015년 12월 26일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에서 열린다. 수상작: 奖项수상종목 作者 작가 作品 작품 大 奖 대상 空缺 결원 小说奖 소설상 허련순 许莲顺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谁见过蝴蝶的巢 散文奖 산문상 장정일 张正一 세모의 설레임 岁暮随想 诗歌奖 시가상 김영건 金荣健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晨山问候 报告文学奖 보고문학상 리혜선 李惠善 정률성평전 郑律成评传 评论奖 론평상 장춘식 张春植 일제시기조선족이민작가연구 日据时期朝鲜族移民作家研究 儿童文学奖 아동문학상 김철호 金哲镐 작은 하늘 小小天空 汉文创作奖 한문창작상 南永前 남영전 我们从哪里来?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전용선 全勇先 소화18년 昭和18年 新人奖 신인상 구호준 具豪俊 사랑의 류통기간 爱的流通期         第一届中国朝鲜族“檀君文学奖”评委会   组 长: 崔国哲 延边作家协会主席(主持) 副组长:禹尚烈 延边大学教授、文学评论家 评 委: 崔红一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崔三龙  原延边文学与艺术研究所所长 权赫律  吉林大学外国语学院副院长、文学评论家 李太福  黑龙江大学教授、文学评论家 金京勋  延边大学教授、文学评论家 金 革  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徐振清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小说家 韩锡润  原延边作家协会副主席、作家 吴相顺  中央民族大学教授、文学评论家   首届檀君文学奖评委会 2015年12月10日 ========================================= ---------- [길림신문] 2015-12-17  중국조선족문학의 최고수준을 대표하는 우수문학작품들을 엄선해 평의하는 “단군문학상(檀君文学奖)”수상자 결과가 12월 10일 평심회를 거쳐 밝혀졌다. “단군문학상”은 통일적이고 권위있고 력사에 남을 최고의 조선족문학상을 만들어 우리 작가들이 명작을 창작하도록 격려하며 조선족문학의 번영발전을 추동하고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전국과 세계에 널리 알리는것을 취지로 했다. 조선민족의 시조인“단군”(檀君)으로 명명한 이 문학상은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와 단군문학상리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중국작가협회“민족문학”잡지사, “단군문학상”기금회, 연변작가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고있다. 단군문학상리사회는 “단군문학상” 제1회 평심범위를 새 세기가 시작된 2000년부터 2014년말까지 15년간 조선어와 한어로 창작한 우리 민족 작가들의 각 장르별 작품집을 대상했다. “단군문학상”평심조직위원회 오장권부회장에따르면 “단군문학상”은 문학상의 권위를 보장하기 위해 특별히“단군문학상”리사회를 설립하고 “단군문학상조례”를 통과했으며 단군문학상 평심위원회 및 평심전문가데이터베스를 만들었다. 12월 10일 연길시에서 있은 “단군문학상”평심모임에서는 “단군문학상평심조례”의 기초우에서 “단군문학상” 평심방법을 작성하고 평심전문가데이터베스에서 선정된 11명의 평심권위들로 참다운 평심을 진행, 무기명투표가 아닌 실명제투표의 방식으로 사상 가장 엄밀하고 규범적이며 공정한 문학상평선결과를 산생시켰다. 료해에 따르면 제1회 “단군문학상”은 대다수 평심위원들이 대상으로 선정할만한 평심작품범위내 작품이 없다는데 의견을 모으면서 공백으로 남겨졌다. 대망의 제1회 “단군문학상”시상식은 오는2015년 12월 26일 룡정시 해란강극장에서 펼쳐진다. 부록: 제1회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평심위원 명단 조장-  최국철: 연변작가협회 주석, 소설가  부조장- 우상렬: 연변대학 교수, 평론가 위원- 최홍일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최삼룡: 원 연변문화예술연구소 소장 권혁률: 길림대학 외국어학원 부원장 리태복: 흑룡강대학 교수 김경훈: 연변대학 교수, 박사생도사, 교수, 평론가 김혁: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소설가 한석윤: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아동문학가 오상순: 중앙민족대학 박사생도사, 교수, 평론가 서진청(한족): 원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 [연변일보] 2015-12-17 제1회 “단군문학상”시상식 26일 개최 예정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 시상식이 오는 26일, 룡정시 해란강대극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에 앞서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중국조선족단군문학상리사회에서 주최한 평심회의가 지난 10일, 연길시 백산호텔에서 진행됐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주석이 조장을 맡고 연변대학 박사지도교수 우상렬이 부조장을 맡았으며 연변작가협회 최홍일 부주석을 비롯한 9명이 평심위원을 맡아 공평, 공정의 원칙하에 제1회 중국조선족 “단군문학상”을 선정했다. 평의 결과 소설상에 허련순의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 시가상에 김영건의 《아침산이 안부를 묻다》, 산문상에 장정일의 《세모의 설레임》, 보고문학상에 리혜선의 《정률성평전》, 평론상에 장춘식의 《일제시기조선족이민작가연구》, 아동문학상에 김철호의 《작은 하늘》, 한문상(汉文奖)에 남영전의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我们从哪里来?)》와 전용선의 《소화18년(昭和18年)》, 신인상에 구호준의 《사랑의 류통기간》이 선정됐다. 이상 쟝르별상은 5만원의 상금이, 신인상은 3만원의 상금이 차례질 예정이다. 대상은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이번 단군문학상은 평심회의기간 철저한 보안과 더불어 평심위원 실명추천을 실시하는 등 공평, 공정한 평의를 진행했다. 단군문학상은 앞으로 2년에 1회 개최될 예정이다.  리련화 기자 ---------- [흑룡강신문]2015.06.05 중국 조선족사회의 '단군문학상' 설립, 그 의미                                                          윤운걸 / 길림성 특파원                   문학은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파헤치는 예술이다. 그래서 문학은 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  민족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문학의 본연을 떠나면 그 민족,  그 국가는 정신적으로 쇠퇴 할 수밖에 없다.  즉 문학을 무시하면 최악의 경지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동서고금에 엄연히 밝혀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의 백화만발, 백가쟁명이 왜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사회에서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얘기는 여기에서 더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다만 '단군문학상'이라는 이 문학상의 설립, 그 의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필자가 연변과기대의 한 한국 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조선족 대학생들을 많이 접촉했다는데 그들이 우리 민족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더냐 하는 질문에 “조선족 대학생들이 중국에서 살아 그런지는 모르지만 조선민족의 역사에 깜깜부지”란다. 더욱이 “어릴 적부터 한족학교를 다닌 조선족 젊은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를 물어보니 ‘먹고 사는데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냐’”라고 대답하더란다. 이에 느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두절미하고 제목과 마찬가지로 왜 신봉철씨가 '단군문학상'을 설립하기위해 노심초사했는가를 깊은 의미에서 분석하고 싶다. 신봉철 길림성 조선족경제과학기술진흥총회 회장(길림공상학원 당서기)은 “명작(베스트셀러)을 창작하도록 격려해 조선족 문학의 번영 발전을 추동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학작품을 전국은 물론 세계에 널리 알리자는 것이 바로 문학상의 설립취지이다”고 설파했고, 최국철 연변작가협회 상무부주석은 “어느 때부터 불가항력적인 객관조건으로 문학이 쇠퇴일로에 들어서면서 존립위기를 맞았고 따라서 문학위상이 바야흐로 사양되고 민족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런 적기에 고고성을 울린 ‘단군문학상’은 그 출범부터 세인의 주목을 끌고 있다”고 역설했고,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는 “우리민족의 조상인 단군의 이름으로 명명한 이 문학상의 의미는 굉장히 깊다”고 목소리 톤을 높인 자체가 그 의미가 굉장히 깊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 민족의 문학을 재탄생시키자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신은 왜 저명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가? 바로 중국사회의 역사에 문학이란 이 메스를 과감히 댔기 때문이다. 또 모옌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됐는가? 그가 바로 중국이란 이 땅에서 성장하면서 역사제재를 문학으로 피력했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 중국작가가 쓴 작품 ‘허삼관 매혈기’가 한국에서 영화로 제작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조선족사회에서 김학철이라는 항일투사이자 작가로서의 작품은 분명 베스트셀러이다. 즉 김학철은 가장 처절한 항일시기에 직접 항일투사로, 또 엄청난 베스트셀러 작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족사회에서는 아직도 뜻 깊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민족의 뼈아픈 역사가 지금 후세들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답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와중에 근 30여 년간 조선족 문단에서 '단군문학상'이란 최고의 문학상이 설치됐다는 것은 그 의미가 굉장히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즉 조선민족이라는 이 유구한 역사문화를 비롯한 여러 문화를 문학이란 이 신성한 분야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그 자체가 돋보인다. ==========================================================  
네,안녕하세요? 훈민정음을 정확히 알아보는 시간ㅡ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찰흙과 같다.   찰흙은 무엇이든 원하는 데로 만들기 쉽다. 기본 형태도 그렇고, 세밀한 다듬기도 그렇다. 그래서 미술가들의 기본 소재가 찰흙이다. 훈민정음은 글을 짓는데 있어서 기본 형태를 잡기도 그렇고, 세밀히 다듬는 데도 더 이상 없다. 조각이나 글이나, 다듬질 하는 만큼 정교해진다.   알파벳도 소리기호이지만, 훈민정음만큼 정확하고 자유자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리를 감각적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효과만큼은 훈민정음이 우수하다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바탕은 중국어, 즉 한문이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이두 라고 하는 음기호도 쓰였다.   훈민정음의 목적 중의 하나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이두 라고 하는 표기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그런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사라진 4개 음소를 찾아내어 사용해야 한다.   한국어 단어의 80% 정도가 중국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어를 알면 어휘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1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10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보력의 차이가 있듯이 중국어-한자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보력 차이는 크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는 한자를 모르고 배우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한자와 훈민정음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무엇이든 연관된 짝이 있어야 안정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중국어 라는 거대하고 오랜 문명의 바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바탕을 모르고 무언가를 세운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빈약하게 된다. 중국어와 조선어를 둘 다 잘 하는 중국-조선족의 경우 자기들끼리 말 할 때 중국어와 조선어를 반씩 섞어 쓴다. 이것은 어떤 규칙이 아니라 편리와 효과를 따르는 것이다.   한자는 말과 글이 동시적인 만들어진 것이며, 전 세계의 모든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한자는 복잡하지만 중국 언어는 간결하다. 한자의 근간은 상형문자이며, 문학적 상징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한자와 훈민정음은 서로에게 필연적인 요건을 가진 관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알파벳과 훈민정음 중에 어느 것이 ‘소리기호’로써 더 우수할까? 영어에는 발음기호가 별도로 있어야 할 정도로 미비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70년대에 알파벳을 발음기호로 채택하였다. 왜 그럴까? 훈민정음을 채택하였을 경우, 한자를 써야 할 필연성이 매우 적어지게 된다는 것…. 해석하자면, '나라의 말이 중국과는 달라 (중국의) 문자와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이르고자 할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펼쳐보지 못할 사람이 많다. 내 이를 위하여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들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는데 편안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결과 유생들의 반대를 얻었지만 평민들도 쉽게 글자를 깨우치고 알게 되었습니다. 후에 평민들의 문학으로 등장한 사설시조도 이런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총 획득메 달   채택된 답변답변추천해요0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ㅡ 훈민정음 창제 1. 창제 동기 우리말과 한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고유의 글자가 필요하였습니다. 한자는 익히기 어려워서 일반 백성이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2. 창제 원리 사람의 몸 중에서 소리를 내는 기관(입, 혀, 입안, 목구멍)과 하늘, 땅, 사람의 모양을 본 떠 자음17자와 모음 11자, 총 28자를 만들었습니다. 3. 의미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라는 뜻입니다. 4. 우수성 한자에 비해 배우기 쉽고,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5. 창제 의의 양반이 아닌 백성도 글을 쓸 수있게 되었습니다. 훈민정음의 특징 *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누구나 쉽게 읽고 쓸 수 있음. * 표현할 수 있는 소리 영역이 세계 어느 문자보다 넓고 다양함. * 발음 기관을 본떠 만든 과학적인 글자임. 훈민정음 해례본 1446년(세종 28년)에 정인지 등의 집현전 학자들이 세종의 명에 따라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설명한 한문 해설서임,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음.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 1. 자음 * 기본 글자는 ㄱ, ㄴ, ㅁ, ㅅ, ㅇ의 다섯 자임. * ㄱ은 혀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가 입천장에 붙는 모양, ㅁ은 입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음. *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만든 글자 가 ㅋ(ㄱ),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이고, ㄹ, △, ㆁ을 더해 17자가 되었음. 2. 모음 * 기본 글자는 ·, ㅡ, ㅣ로 하늘과 땅, 사람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임. * 기본 글자에 획을 덧붙여 만든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를 합쳐 11자가 됨. 3. 사용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모두 28자였으며 현재는 ·, △, ㆁ, ㆆ이 없어지고 24자만 사용하고 있음.     총 획득메 달   답변추천해요0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는 훈민정음 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 서로 통하지 못해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익혀  널리 사용케 한다 라는 것입니다 총 획득메 달   답변추천해요0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찰흙과 같다 찰흙은 무엇이든 원하는 데로 만들기 쉽다. 기본 형태도 그렇고, 세밀한 다듬기도 그렇다. 그래서 미술가들의 기본 소재가 찰흙이다. 훈민정음은 글을 짓는데 있어서 기본 형태를 잡기도 그렇고, 세밀히 다듬는 데도 더 이상 없다. 조각이나 글이나, 다듬질 하는 만큼 정교해진다 알파벳도 소리기호이지만, 훈민정음만큼 정확하고 자유자제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리를 감각적으로 정확하게 표기하는 효과만큼은 훈민정음이 우수하다 할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 바탕은 중국어, 즉 한문이다. 훈민정음 이전에는 이두 라고 하는 음기호도 쓰였다. 훈민정음의 목적 중의 하나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기하는 데 있다. 조선어와 중국어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이두 라고 하는 표기를 통해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은 그런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사라진 4개 음소를 찾아내어 사용해야 한다. 한국어 단어의 80% 정도가 중국어에서 나왔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어를 알면 어휘력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1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10000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보력의 차이가 있듯이 중국어-한자를 바탕으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정보력 차이는 크다. 한글을 처음 배울 때는 한자를 모르고 배우는 것이 쉬울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한자와 훈민정음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무엇이든 연관된 짝이 있어야 안정되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중국어 라는 거대하고 오랜 문명의 바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바탕을 모르고 무언가를 세운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빈약하게 된다. 중국어와 조선어를 둘 다 잘 하는 중국-조선족의 경우 자기들끼리 말 할 때 중국어와 조선어를 반씩 섞어 쓴다. 이것은 어떤 규칙이 아니라 편리와 효과를 따르는 것이다. 한자는 말과 글이 동시적인 만들어진 것이며, 전 세계의 모든 언어에 영향을 미쳤다. 한자는 복잡하지만 중국 언어는 간결하다. 한자의 근간은 상형문자이며, 문학적 상징이 발달하였다. 따라서 한자와 훈민정음은 서로에게 필연적인 요건을 가진 관계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실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알파벳과 훈민정음 중에 어느 것이 ‘소리기호’로써 더 우수할까? 영어에는 발음기호가 별도로 있어야 할 정도로 미비하다. 그런데도 중국은 70년대에 알파벳을 발음기호로 채택하였다. 왜 그럴까? 훈민정음을 채택하였을 경우, 한자를 써야 할 필연성이 매우 적어지게 된다는 것…. 총 획득메달   답변추천해요0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이유   한국인이 한자로 말을 적으려면 소리를 한자로 바꾸어 적어야만 했는데, 이 때문에 의사소통이 결코 쉽지 않았다. 한자로 의사소통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이두(吏讀)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두는 조정의 관리와 평범한 백성이 한자를 이용하여 한국말을 기록하는 문자 체계였다. 한자로써 한국말을 순서대로 적고, 심지어 한국말의 조사와 어미까지도 적었다. 그러나 이두는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하는 것이므로 한국말의 소리를 특징적으로 나타낼 수 없을뿐더러 조사와 어미의 미묘한 차이를 반영할 수도 없었다. 이런 이유로 세종대왕이 한국말의 음운체계를 반영하는 문자를 창제하였고, 이로써 한국인은 말을 글로 온전히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혁신의 두 번째 측면은 한국인이 글자를 아주 쉽게 배우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는 각각의 개념을 나타내는 문자를 일일이 배워야 했기에 매우 어려웠다. 또한 글자의 획이 복잡하여 쓰기도 쉽지 않았다. 이런 한자를 배운다는 것이 한국인과 같은 외국인에게는 매우 어려워서 대부분의 한국인은 한자를 비실용적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문자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세종대왕이 창제한 문자는 단 28자이며 그 획도 단순했기 때문에 배우고 사용하기가 쉬웠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   세종의 훈민정음 제정이 언제부터 구상되었고 착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세종 25년 12월조에 "이달에 상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제정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기록했을 뿐, 그 경과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처음에는 세종 단독으로 구상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신하의 중지(衆智)를 모아 상당한 기간에 걸쳐 추진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이리하여 훈민정음이 제정되자 문자 창제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집현전과는 별도로 궁중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보급과 이에 부수되는 문헌의 간행 등을 추진하는 한편, 해례와 같은 원리면의 연구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다.   이후 훈민정음과 관련된 기사는 1444년 2월 《운회(韻會)》를 언해하고 같은 달에 최만리(崔萬理) 일파의 반대 상소에 부닥친다. 반대의 골자는 한자를 버리고 새 문자를 만듦이 사대모화(事大慕華)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선인이 만들어 놓은 운서를 뜯어 고치고 언문을 다는 것이 모두 무계(無稽)한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445년 4월 《용비어천가》가 완성되고, 이듬해 3월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언해를 명하였으며, 그 해 9월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이 이루어져 반포되고, 1447년 9월 《동국정운》의 완성 및 《용비어천가》의 반포, 1448년(세종 30) 11월 《동국정운》 반포, 1455년(단종 3) 봄에 《홍무정운》 역훈(譯訓) 완성 등, 사업은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운회》를 번역한 것은 곧 《동국정운》의 편찬을 뜻하므로 그 사업은 이 무렵부터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의 작성은 아마도 1444년 최만리 일파의 반대 상소가 있은 직후부터 착수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 동안에 중국 운학(韻學)의 이론을 연구하고, 한편으로는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 등의 찬정(撰定)을 통하여 그 실제적 효용성을 실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 본문에 나타나는 모든 자류(字類)를 추려 보면 처음 1443년에 제정하였던 28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운서 편찬과정에서, 또는 국어 표기를 통해서 거기에 필요한 자류가 더 요청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강구하였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훈민정음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으며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흠이 없는 것이 되었다고 믿기에 이르러 언문청에서 곧 간행에 착수, 46년(세종 28) 9월에 완성·반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훈민정음(Hunminjeongum, 訓民正音)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훈민정음의 배경과 경과  총 획득메달 전문 분야   답변추천해요0   1.2.3. 해례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이름 《훈민정음》 해례본 Hunminjeongeum Manuscript /  Hunminjeongeum 국가·소장 대한민국 서울 간송미술관 등재유형 기록유산 등재연도 1997년 제작시기 1443년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의 제목. 국보 제70호이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참고로 해례본 책이 등재된 것이지, 무형의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 자체가 등재된 것이 아니다. 1.2.3.1. 어떤 책인가? 1940년에 와서야 비로소 다시 발견된,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 있는 책. 말하자면 한글의 설계도가 실려있는 책이다. 한글의 제작 원리에 대해서 밝혀져 있는 책은 이것이 유일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쓰이고 있는 모든 문자 가운데 창제 원리가 기록된 문서[5]가 있는 문자는, 한글이 유일하다.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것도, 바로 이 때문. 언해본에는 제작원리 내용이 실려있지 않았기 때문에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글의 창제에 대한 여러 가지 구구한 억측이 존재했다. 심지어는 창문살을 보고 본따 만들었을 거라는 추측까지 있었다.[6] 한글이 이런 얼토당토 않은 폄하를 겪던 와중에, 해례본이 발견되었기에 엄청나게 독창적이고, 매우 높은 수준의 언어학, 음성학적 지식과 철학적인 이론이 한글에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확인된 것이다. 해례본의 발견으로 인해 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들이 확인되고 알려지긴 했는데, 사실 그 내용이 꽤 어려워서 아직도 대해 학자들 사이에 한글 원리에 대한 해석에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특히 모음자와 관련된 부분. 2014년 현재 알려져 있는 판본은 간송본과 상주본 단 둘뿐이다. 그나마도 소재가 알려져 있는 것은 간송본뿐이다. 다행히 간송본을 토대로 영인본이 제작되었기 때문에 열람이나 유실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2014년에 제3의 판본의 파편(...)이 궁중에서 쓰던 모자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래 항목 참고. 1.2.3.2. 해례본의 구성 임금의 글 어제 서문 본문(예의): 세종이 간략히 해설한, 글자의 운용 방법 신하의 글 해례(다섯 '해설'과 한 '예시'가 실렸기에 '해례'이다) 제자해: 글자 창제에 관한 해설 초성해: 초성 글자에 관한 해설 중성해: 중성 글자에 관한 해설 종성해: 종성 글자에 관한 해설 합자해: 초중종 글자를 합한 글자에 관한 해설 용자례: 글자를 활용한 예시 정인지 서문 - 정인지 서문의 위치를 따지면 '서문'이 아닌 '발문'[7]이 되겠으나, 세종이 서문을 쓰기 전에 정인지가 이미 썼던, 굳이 말하자면 원조 서문이 정인지 서문이며, 세종의 서문이 추가되면서 이것이 뒤로 밀려났을 뿐이기에 편집상의 위치와 무관하게 '서문'으로 불린다. '정인지 후서'라는 표현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후서는 보통 책이 쓰이고 나서 한참 훗날에 추가적으로 쓰인 글을 의미하는바, 정인지는 창제와 거의 동시에 이 글을 썼으므로 적합하지 않은 표현이다. 《훈민정음》의 후서에 해당하는 것은 이하에서 설명할 숙종의 글. 그리고 한문으로 쓰여 있다. 흔히 말하는 '나랏말싸미…'는 언해본의 서문이고, 《훈민정음》의 서문은 '國之語音、異乎中國…'로 시작한다. 당대의 문자 언어는 한문이었고, 새로 만든 문자를 설명하는 문자언어가 한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최초로 발견된 《훈민정음》은 맨 앞 부분 두 장이 고의적으로 찢긴 상태였다. 이 낙장 두 장은 실록본을 베낀 가짜 페이지로 메꿔져 있었다[8]. 찢긴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연산군의 한글 탄압 때 책을 감추기 위해서 표지를 뜯어 내고 다른 표지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연산군의 한글 탄압 때문에 표지를 뜯은 게 아니라는 정황적 근거가 있다. 최초 발견된 《훈민정음》의 종이 뒷면에는 가난하여 종이가 없어 기존의 책을 재활용했을 한 선비가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십구사략언해》가 있었는데[9], 이 내용 역시 초반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책을 필사할 때 처음부터 쓴다는 점을 감안하면, 표지를 뜯어낼 때 이 필사 내용 역시 같이 뜯겨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 《십구사략언해》는 내용상 약 18세기 후기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니, 결국 책 표지를 뜯어낸 것은 18세기 이후라는 얘기가 된다. 16세기의 연산군 한글 탄압과 연관지을 수 없다.                     1.3. 조선시대 훈민정음 취급에 관하여 1.3.1.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국문학계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이다. 한 예로 한글 창제 이후로는 양반들이 한문을 공부할 때, 우리말과는 체계가 애초에 다른 한문글의 구절마다 한글로 된 토를 달아서(현토) 훨씬 배우기 쉽게 하는 등 양반들에게도 무척 유용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양반은 한문을 모르는 부녀자[16] 및 평민들[17]과 글로 소통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에 기본 소양으로 한글을 모두 알고는 있었다. 물론 연암 박지원처럼 끝내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경우도 있었다. 실제 조선시대에 쓰인 한글은, 글 읽기보다 생계에 바빴던 평민층에 비해 오히려 양반 부녀자층이나 중인층에게 유용하게 쓰였으며, 특히 실질적인 행정 실무를 담당했던 중인층에게 유용했다는 점에서 통치 체제 강화에 적지 않게 일조하였음이 눈에 띈다. 세종이 오로지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지었다면, 정작 그의 치세에 한글로 번역되거나 반포된 책들이 《월인천강지곡》 같은 불교언해나, 아니면 이성계의 역성혁명[18]을 정당화하는 《용비어천가》 등의 책들 말고는 왜 그다지 주목할 만한 것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고려해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훈민정음》의 주된 창제 이유를 지배 체제 강화에서만 찾는 것은 성급한 오류이다. 애초에 양반들을 비롯한 지배층의 편의성이 주된 이유였다면 만들 때 반포 이유로도 그것을 내세우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고 반대에 부딪힐 이유도 훨씬 줄어든다. 더욱이 훈민정음의 창제는 이후 양반 지배층 이외의 계층들 사이에서도 문화를 꽃피우는 근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단지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 세종의 근본적인 의도가 관철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언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저서 《한글의 탄생》에서, 당대 조선에서 사용되던 기록은 모두 붓을 사용하여 한자로 쓰여진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바로 붓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붓으로 글씨를 쓸 때에 생기는 획의 삐침이나 획 사이의 여백, 그리고 글씨를 이어서 쓰는 연서 등은 필연적인 것이자, 동시에 글씨의 형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자는 연필 등의 다른 필기구로 쓰여지지만 이러한 삐침은 사라지지 않고 획 자체에 포함되어 유지되고 있다. 만일 사대부들의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서 글씨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는 필기구인 붓을 사용할 것을 전제로 자형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론 《훈민정음》 책 자체는 붓으로 쓰여졌지만) 훈민정음의 자모만큼은 그러한 삐침 등이 완전히 생략된, 다시 말해 나뭇가지와 같은 원시적 도구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간결함의 극치를 보인다.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붓을 쓰던 시대에, 훈민정음은 자형을 만드는 단계에서 이미 붓을 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졌다. 노마 히데키는 훈민정음의 극도로 단순한 모양은 붓과 먹, 종이 같은 필기 도구를 살 형편이 안되는 백성들까지도 문자를 쓰게 될 것을 배려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저자의 말을 덧붙이면... '훈민정음은 어리석은 백성이 모래 위에 나뭇가지로 낙서하듯 그리기에 어려움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참고로, 훈민정음에 연서와 삐침이 등장한 것은 창제 후 수 세기가 지나고 궁체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와 비슷하게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많은 문자들이 대개 복잡하면서 장식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실용성만을 고려하여 장식성을 완전히 배제한 초창기 훈민정음의 모양은 어떻게 보면 당대의 서체 미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전위적인 형태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거의 근대 모더니즘을 연상케 한다. 즉, 세종이 한글을 만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훈민정음》 서문에도 잘 나와 있듯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펼칠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서였다.[19] 다른 이유가 섞여 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목적을 덮을 수는 없다. 세종대왕이 공들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덕분에 당대의 많은 백성들은 물론이고 오늘날의 우리들까지도 한글을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따라서 세종대왕이 뭔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한글을 만들었다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1.3.2. 왕실 입장에서의 훈민정음 '언문'이나 '암클'은 구한말에 살았던 한글 학자들의 증언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비하어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조선시대 내내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은 한글 비하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 조선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하늘이 내린 위대한 성인(聖人)이신 세종대왕이 범인(凡人)을 초월한 성지(聖知)로서 지어낸 글자이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게 함정 거의 최상급의 극찬을 바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는 까닭이 있다. 이 극찬은 '하늘→성인=세종대왕→지혜→훈민정음'이라는 도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당연히 세종대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조선 왕실의 정통성과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세종대왕의 업적을 드높이려는 의도가 있다. 바로 지금 이순간에 모든 사람들이 널리 쓰고 있는 문자보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알기 쉽게 드러내는 업적은 없다. 심지어 현대에 조선왕조를 비판적으로 보는 견해에서도 세종대왕과 한글을 부정하는 사례는 거의 없으며, 조선왕조에 대해서 과도하게 비하, 부정하는 의견에 대해서는 "너 조선 깔려면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 쓰지 마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나올 정도. 민주화된 현대에도 이 같은 상황이니 왕조 시대의 프로파간다 효과는 짐작할만하다. 한글로 쓰인 문장은 속된 것이며 낮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문자 자체는 왕조의 위업으로 여겨져 조선시대 내내 극한 칭송의 대상이었다는 점은은 분명하다. 왕족들도 훈민정음을 서슴없이 사용했음은 아래 사진들을 보자. 여덟 살 정조가 원손이던 시절에 쓴 편지. 언문으로 되어 있다. "상풍(가을 바람)에 건강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외숙모를) 뵌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립습니다. 어제 (보내주신) 편지보고 든든하고 반가우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니 기쁩니다. -원손(元孫)" 악필이다. 여덟 살 어린애가 써봤자 얼마나 잘 쓰겠어 그래도 여덟 살 치고는 잘 쓴 편 아닌가? 게다가 붓과 먹인데 이외에 다른 왕이나 왕족도 한글로 편지를 보낸 것이 많다. 더 보려면 여기 클릭. 네이버에서 언해본과 같이 공개했다.   총 획득메달 전문 분야  
287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 댓글:  조회:4927  추천:0  2015-12-04
      그대의 돈을 책을 사는데 써라. 그 대신에 황금과 지성을 얻을 것이다. -임마누엘 그 사람의 인격은 그가 읽은 책으로 알 수 있다. -스마일즈       뉴욕타임즈 선정. 죽기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권   문학 1. D.H.로렌스/ 아들과 연인/ 1913 2. 루쉰/ 아큐정전/ 1921 3. 엘리엇/ 황무지/ 1922 4.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5. 토마스 만/ 마의 산/ 1924 6. 카프카/ 심판/ 1925(?) 7.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927 8.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1927 9. 헤밍웨이/ 무기여 잘있거라/ 1929 10. 레마르크/ 서부전선 이상없다/ 1929 11.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1932 12. 앙드레 말로/ 인간조건/ 1933 13.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14. 리처드 라이트/ 토박이/ 1940 15. 브레히트/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1941 16. 카뮈/ 이방인/ 1942 17. 조지 오웰/ 1984/ 1948 18. 사뮈엘 베게트/ 고도를 기다리며/ 1952 19.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1955 20. 유진 오닐/ 밤으로의 긴 여로/ 1956 21.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22.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1957 23. 치누아 아체베/ 무너져내린다/ 1958 24. 귄터 그라스/ 양철북/ 1959 25. 조지프 헬러/ 캐치 22/ 1961 26.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1962 27.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 동안의 고독/ 1967 28.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980 2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30.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1989 II.인문 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1900 2.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강의/ 1916 3.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1920 4. 라다크리슈난/ 인도철학사/ 1923~27 5. 지외르지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1923 6.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7. 펑유란/ 중국철학사/ 1930 8.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1931~64 9. 마오쩌둥/ 모순론/ 1937 10. 헤르베르트 마르쿠제/ 이성과 혁명/ 1941 11. 장 폴 사릍르/ 존재와 무/ 1943 12.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1945 13.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1947 14. 시몬 드 보봐르/ 제2의 성/ 1949 15.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951 1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1953 17. 미르치아 엘리아데/ 성과 속/ 1957 18. 에드워드 헬렛 카/ 역사란 무엇인가/ 1961 1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1962 20.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1962 21. 에드문트 후설/ 현상학의 이념/ 1964 22. 미셸 푸코/ 마과 사물/ 1966 23. 노엄 촘스키/ 언어와 정신/ 1968 24. 베르터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1969 25.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앙티오이디푸스/ 1972 26.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1976 27.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1978 28.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979 29. 피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1979 30. 위르겐 하버마스/ 소통행위이론/ 1981 III. 사회 1. 브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1902 2. 프레드릭 윈슬로 테일러/ 과학적 관리법/ 1911 3. 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1926~37 4.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1932 5. 존 메이너드 케인스/ 고용.이자.화폐 일반이론/ 1936 6. 윌리엄 베버리지/ 사회보험과 관련 사업/ 1942 7. 앙리 조르주 르페브르/ 현대세계의 일상성/ 1947 8. 앨프리드 킨지/ 남성의 성행위/ 1948 9. 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 1950 10. 조지프 슘페터/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1950 11. 존 갤브레이스/ 미국의 자본주의/ 1951 12. 대니얼 벨/ 이데올로기의 종언/ 1960 13. 에드워드 톰슨/ 영국노동계급의형성/ 1964 14.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1964 15. 마셜 맥루헌/ 미디어의 이해/ 1964 16. 케이트 밀레트/ 성의 정치학/ 1970 17. 존 롤스/ 정의론/ 1971 18. 이매뉴얼 위러스틴/ 세계체제론/ 1976 19. 앨빈 토플러/ 제3의 물결/ 1980 20. 폴 케네디/ 강대국의 흥망/ 1987 IV.과학 1. 알버트 아인슈타인/ 상대성원리/ 1918 2. 노버트 비너/ 사이버네틱스/ 1948 3. 조지프 니덤/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4.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1962 5. 제임스 워트슨/ 유전자의 분자생물학/ 1965 6. 제임스 러브록/ 가이아/ 1978 7. 에드워드 윌슨/ 사회생물학/ 1980 8. 칼 세이건/ 코스모스/ 1980 9. 이리야 프리고진/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10. 스티븐 호킹/ 시간의 역사/ 1988 V.예술,기타 1. 헬렌 켈러/ 헬렌 케러 자서전/ 1903 2.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1926 3.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 1927~29 4.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1937 5. 아놀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940~50 6. 안네 프랑크/ 안네의 일기/ 1947 7. 에른스트 한스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948 8. 말콤 엑스/ 말콤 엑스의 자서전/ 1966 9. 에른스트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1975 10. 넬슨 만델라/ 자유를 향한 긴 여정/ 1994                  
286    죽기전에 꼭 후회하는 10 댓글:  조회:5142  추천:0  2015-12-04
  1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 사랑은 마음이 아니라 표현입니다. 부모님께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마십시오.   2위. 맛있는 것을 제대로 편하게 먹어보지 못한 것 먹는 것만 큼 중요한게 없습니다. 천천히 꼭꼭 씹어 적당히 드십시오. 함께 나누어 드십시오. 함께 먹는 음식이 더 맛있습니다.   3위. 내가 살았다는 증거를 확실하게 남기지 못한 것 선행을 베푸십시오. 선행 만큼 남는 보람이고 삶의 발자취가 되는 것도 없습니다. 베푼 선행은 돌고 돌아 계속 이어집니다.   4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지 못한 것   5위.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한 것 진정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세요.  지금부터라도 가보고 싶은 곳에 가려는 준비, 하고 싶은 것을 해볼 준비를 해두십시오.  지나고 보면 하고 싶은 일을 못한게 가고 싶었던 곳에 못간게 돈이나 시간이 문제가 아니였다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6위. 담배를 끊지 못한 것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버렸다면 그게 그렇게 몸에 좋지 않고 내가족에게 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면 이제 그만 보내야 합니다.   7위. 아이를 낳아 키우지 못한 것 아이를 키워본다는 경험은 아주 소중합니다. 고난의 연속이고 매우 힘든 과정이지만 내가 지켜주어야 할 아이들이야 말로  나머지를 살아갈 목적이 되고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는 걸 부모라면 누구나 느끼는 마음일 겁니다.   8위. 일만 죽어라 한 것 회사와 사업보다도 스스로와 가족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스스로를 바로 세우고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되는거죠. 회사일로 안되는 사업으로 금연할 수 없다고 핑계대지 마십시오. 담배를 핀다고 해결되는 것도 기분이 궁극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몸을 망치는 해독만 있을 뿐이고 이런 상태에선 결코 회사일도 사업도 잘될 수가 없는 거죠.   9위. 너무 감정적으로 삶을 살아온 것   10위. 건강을 소중히 하지 않은 것 따뜻한 가슴, 차가운 머리로 살아야 합니다. 이제 안좋은 생각과 행동은 끊어내고 스스로를 건강하게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죠.  
285    죽기전에 꼭 해야 할 88 댓글:  조회:4841  추천:0  2015-12-04
                        죽기전에 꼭 해야 할 88가지...    1. 토요일 오후를 도서관에서 보내라  2. 매일 8잔의 물을 마셔라  3.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하라  4. 한 달에 한 번 새로운 요리를 시도해 보라  5. 매달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어라  6. 혼자 영화를 보러 가라  7. 시사 주간지를 구독하라  8. 당신의 고등학교를 다시 방문해 보라                                            unesco 자연유산(구체구와 황룡-중국) 9. 헌책방에서 한나절을 보내라  10. 옷장을 정리해 안 입는 옷들을 기증하라  11. 댄스 강좌에 등록하라  1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100가지 사건을 목록으로 작성하라  13.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전화하라  14.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라  15. 당신의 정신적인 측면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라                                             unesco 자연유산( 록키산맥  공원-캐나다) 16. 이웃을 위해 과자를 구워라  17. 개인 타임캡슐을 만들어라  18. 당신의 의견을 신문에 투고하라  19. 간단한 일지나 일기를 써라  20. 국회의원들과 당신의 의견을 나누어라  21. 목표를 정해 체중을 감량하라  22. 촛불 밝힌 저녁 식사로 배우자를 놀라게 하라  23. 당신의 가계(家系)를 추적해 보라  2                               unesco 자연유산(세랭게티&응고롱고 국립공원-탄자니아) 24. 집안의 서류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라 25. 매달 수입의 5%를 저축하고 그것을 투자하라  26. 일 주일 동안 TV를 꺼라  27. 지갑에 항상 백 달러(약 십만 원)를 넣어 다녀라  28. 롤러 블레이드 타는 법을 배워라  29. 비디오 을 빌려 배우자와 함께 보라  30.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라  31. 당신 생의 마지막 해에 관해 간략한 글을 써라  32. 수확의 기쁨을 즐겨라                                             unesco 자연유산(에베레스트 사가르마타 국립공원-네팔) 33. 매일 새로운 단어를 하나씩 습득하라  34.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 보라  35. 삶을 단순화시켜라  36. 신용카드 하나를 완전히 갚아라  37. 성공 강좌에 등록하라  38. 자신의 책을 써라  39. 연주회 티켓을 네 장 구입하라  40. 단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꽃을 보내라                                            unesco 자연유산(바이칼호수-러시아) 41. 열기구를 타라  42. 단축 마라톤에 도전하라  43.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라  44. 건강 검진을 받아라  45. 사랑하는 이와 바닷가 모래사장을 맨발로 걸어라  46. 날마다 하나씩 진심어린 칭찬을 하라  47. 삶의 질을 높여 줄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라  48. 좋은 목적을 위한 기금 모집에 자원하라                                        unesco 자연유산(플리트비체 호수-크로아티아) 49. 그대가 받은 온갖 축복들의 목록을 적어 보라  50. 황금률을 당신의 인생 철학으로 삼아라  51. 한 가지 멋진 마술을 배워라  52. 이메일을 활용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하라  53. 를 한 권 사라  54. 이번 해에는 나쁜 습관을 하나 고쳐라  55. 장기 기증 서약서를 써라  56.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 카드를 보내라                                 unesco 자연유산(카나이마 국립공원-베네수엘라) 57. 당신의 공포를 극복하라  58. 동료들을 위해 피자를 주문하라  59. 해묵은 원한을 풀어 버려라  60. 매달, 배우자에게 사랑해요 라고 쓴 카드를 보내라  61.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라  62. 생명보험에 가입하라  63. 관심 있던 분야의 강좌에 등록하라                                           unesco 자연유산(갈라파고스 제도-에콰도르) 64. 유언장을 써라  65.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라  66. 당신이 사는 지역의 역사적인 장소를 방문하라  67. 자녀들에게 사랑의 쪽지를 보내라  68. 당신의 고향을 방문하라  69.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  70. 사랑하는 이와 직소 퍼즐을 하라  71. 화내지 않고 온전히 하루를 보내라  72. 21세기 스크랩북을 만들어라                                                 unesco 자연유산(그래이트 베리어 리프-호주) 73. 다트판을 사서 시합을 하라  74. 동료들에게 점심을 한턱내라  75. 생일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 보아라  76.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라  77. 당신의 자녀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라  78. 혼자 여행을 떠나라  79. 박물관이나 수족관, 동물원을 방문하라  80. 외국어를 배워라                                              unesco 자연유산(옐로스톤 국립공원-미국) 81. 헌혈을 하라  82. 꿈 같은 휴가 계획을 세워라  83. 하루 동안 금식하라  84.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통 다 먹어라  85. 날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하라  86. 공공 도서관을 위해 책을 한 권 사라  87. 악기를 하나 배워라  88. 참신한 유머집을 한 권 사서 몇 가지 외워 두라                                               죽기전에 아직 해야할 일이 넘 많고 부족하네요...                                             내일 부터라도 한가지씩 해봐야쥐...  
284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한국 려행지 100 댓글:  조회:4863  추천:0  2015-12-04
한국 려행지 어디까지 가보셨나요?   곳곳에 아름다운 곳이 참 많은데요.   오늘은 죽기전에 가봐야 할 한국 려행지 100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와.. 이걸 보는데 못가본 곳이 정말 너무 많네요~   앞으로 틈틈히 짬내면서 국내 곳곳을 돌아다녀야겠습니다~!!^^   해외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아름답고 갈곳이 많으니   많이많이들 여행하자구요~~^-^  
283    꼭 가봐야 할 유럽의 숨은 도시들 댓글:  조회:5062  추천:0  2015-12-04
아일랜드 콜크 프랑스 리옹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웨덴 예테보리 포르투갈 포르투 스페인 그라나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 벨기에 겐트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이탈리아 제노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슬로베니아 류블라냐 스위스 바젤 영국 맨체스터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체코 부르노 폴란드 토룬 노르웨이 베르겐 그리스 로도스  
282    쉬여가는 페이지 - 흥미로운 축구이야기 ㄱ 댓글:  조회:4891  추천:0  2015-12-04
[ 2015년 12월 09일 08시 37분 ]     심수 산사태 구조현장 [ 2015년 12월 24일 08시 18분 ]     2015년 12월 23일 심수에서 산사태가 일어난지 나흘째되는 날. 구조현장에는 백여대의 굴착기와 여러 구조기계장치가 동원. 축구 하면 많은 사람들은 영국에서 시작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 종가에서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하지만 축구가 시작된 유래는 학계 전반적으로 갈리기는 하지만 영국이 아니라 고대 로마, 그리스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부터 축구와 유사한 스포츠가 있었다고 하니 신기하지 않으세요?        그리스, 로마, 중국에서 유래된 축구 영국 작가 윌리엄 앤드루스(William Andrews)는 1891년, "로마인들이 영국으로 가지고 온 축구가 우리의 가장 오랜 스포츠다"고 주장했습니다. 1-2세기경 로마군을 통해 브리타니아(현 영국)에 전파된 뒤, 오랜 시간을 거쳐 19세기경 현대 방식의 축구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BC 7-6세기경 고대 그리스에서 공을 차고 던지는 경기인 에피스키로스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고, 스파르타의 공 전투, 로마의 파이닌다(Phaininda)와 하르파스톤(Harpaston)이라는 격투 형식의 공놀이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현재의 축구 형태와 가장 비슷한 경기가 중국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로마, 그리스의 경기가 던지는 방식이 경기 중에 포함돼 있다면 중국에서는 기원전 3-2세기경 츄슈(蹴鞠 축국)라는 경기가 오직 발로만 차서 경기하는 형식으로 치러졌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각종 학설들이 나뉘어 있지만 고대 시대에 축구와 유사한 경기가 2-3세기경에 나온 문헌과 고대 작가들에 의해 확인돼 '공놀이'가 예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체계화된 축구, 발전을 꾀하다 이후 각 대륙별, 나라별로 퍼진 '공놀이'는 1800년대 들어 '축구'로 어느 정도 틀을 갖춰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작이 영국에서 이뤄졌기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영국이 축구 종가다'라고 알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역별로 저마다 제각각이었던 규칙은 1848년 '케임브리지 규칙'이 만들어져 표준화된 뒤, 1863년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창설과 규칙이 완전히 제정되면서 오늘날 현대 축구의 틀이 완성됐습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9일, 최초의 현대 규칙에 의한 시범 경기인 반즈 클럽과 리치몬드 간의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후에도 발전을 거듭한 축구는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경기를 가져 최초의 국가대표 A매치를 가졌고, 1888년에는 애스턴빌라 회장 윌리엄 맥그리고에 의해 '풋볼 리그(Football League)'를 창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80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축구가 비로소 완전한 형태를 갖춘 것입니다.   '통일화된 규칙'을 갖춘 축구가 전세계적으로 보급되면서 세계 축구 대항전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1904년 5월 21일, 유럽 7개국의 주도로 국제축구연맹이 창설됐고, 로베르 게링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이어 20여년의 진통 끝에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리면서 세계 축구의 큰 변혁기가 찾아왔습니다. 전세계를 흥분하게 만든 월드컵의 역사도 이제 80년이 지난 셈입니다. 7개국에서 시작한 국제축구연맹 가입국은 2010년 현재 207개국으로 늘어나 세계 최대 규모의 체육기구로 거듭났습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    민족의 울분을 달랜 한국 축구 그렇다면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축구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요?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오랜 옛날, 우리나라에도 축구와 비슷한 형태의 경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소의 방광이나 가축의 태에 바람을 넣거나 털을 넣어 찼던 축국(蹴鞠)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현대 축구는 1882년, 영국 군함 플라잉후이스호의 승무원과 군인들이 인천에 상륙하여 공을 차고 놀면서 보급되기 시작해 이 땅에도 축구가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14년 뒤인 1896년, 최초로 대한체육구락부라는 팀이 창설됐습니다. 이는 근대 축구팀의 시초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어 1905년에 구락부 팀과 황성기독교청년회 팀 간의 경기를 가지면서 이 땅에서 열린 최초의 근대 축구 경기로 남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규칙도 없었고, 골문 역시 현재의 골대가 아닌 돌이나 막대기로 정해서 자유롭게 경기를 치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현대 축구 규칙에 의해 가진 첫 경기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습니다.   이후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돼 체계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이를 전후해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려 경성, 평양, 함흥축구단 등 지역팀들이 다수 창단되는 등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당시 경성과 평양 간의 맞대결은 '경평 축구'라는 이름의 '라이벌 대결'로 상당한 관심을 끌기도 했습니다. 비록 식민지 하에서 온갖 핍박과 아픔을 겪었지만 축구를 통해 민족의 긍지를 지키려는 노력을 보이면서 빠르게 성장, 오늘날 주요 스포츠 가운데 하나로 발돋움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해방 후 9년 만인 1954년, 일본을 제치고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약 15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마침내 전 세계를 하나로 뭉치게 한 스포츠, 축구. 경기 방식은 통일됐지만 각 나라, 각 팀들의 스타일, 색깔은 저마다 다양해지면서 '개성화된 축구'가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축구가 10년 뒤, 그리고 수십년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인지 기대됩니다.
281    다시 보는 시인 윤동주 년보 댓글:  조회:4710  추천:0  2015-12-02
  시인 윤동주 년보   1917 : 12월 30일,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 어머니 김용의 맏아들로 출생 1925 : 4월, 명동소학교 입학 1928 : 명동소학교 4학년 무렵에 서울에서 간행되던 [어린이] [아이생활] 등의 아동잡지를 정기적으로 구독. 1929 : 송몽규 등의 급우와 함께「새 명동」이란 신문 형식의 등사판 문예지를 만들고 동요, 동시 등을 지음.1931 : 3월, 명동소학교를 졸업, 명동에서 20리 떨어진 대납자(大拉子)의 중국인학교에 1년간 다님. 1932 : 4월, 명동에서 30리 떨어진 소도시 용정의 은진중학교에 입학, 은진중학 시절에 교내 잡지, 스포츠, 웅변 등 다방면으로 활동. 이해, 일가족이 용정으로 이사. 1934 : (12월 24일) 1935 : 봄, 평양 숭실중학교로 옮김. 기숙사에 있으면서 독서와 시작에 몰두. (1월 18일), , (10월 20일), (10월), (동시, 12월). 1936 : 봄, 숭실중학의 신사 참배 거부 사건으로 학교가 폐교되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전입학. 북간도 연길(延吉)에서 발행하던 [가톨릭 소년]지에 ‘용주(龍舟)’라는 필명으로 동요,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 (동시, 1월 6일) (동시) (동시) (3월 20일) (3월 24일) (3월 25일) (3월) (5월) (6월 10일) (6월 26일) (7월 24일) (7월 27일) (여름) (동시, 9월 9일) (동시, 10월초) (10월 23일) (동시) (동시,10월) (동시, 12월) (동시) (동시) (동시, 12월초) (동시, 12월) (동시) (동시) (동시) (동시, 겨울) (동시, 12월) 1937 : (1월) (동시) (동시) (동시) (3월) (동시, 3월 10일) (동시) (동시) (봄) (4월 15일) (5월 29일) (7월 1일) (7월 26일) (8월 9일) (8월 18일) (8월 20일) (9월) (10월) (10월 24일) 1938 : 2월, 광명학원 중학부 5학년을 졸업.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르지 않고 4월에 서울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 고종인 송몽규도 함께 입학. (5월 10일) (6월 11일) (6월 19일) (9월 15일) (9월 20일) (9월) (9월 26일) (동시) (동시) (동시) (동시) (동시, 5월) (산문, 10월) 1939 : 산문 를 [조선일보] 학생란에, 동요 을 [소년]지에 각각 발표. (9월) (산문, 9월) (9월) (9월) 1940 : (12월 3일) (12월) 1941 : 연희전문학교 문과에서 발행한 [문우(文友)]지에 , 을 발표. 12월 27일, 연희전문 문과 졸업. 19편으로 된 자선시집 를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2월 7일) (3월 12일) (5월 31일) (5월) (5월 31일) (6월) (6월 2일) (9월) (9월 31일) (11월 5일) (11월 20일) (11월 29일) 1942 :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입교대학 영문과 입학. 여름 방학에 용정의 고향집에 마지막으로 다녀감. 가을에 경도 동지사대학 영문과 편입. 입교대학 시절의 시 5편이 마지막 작품이 됨. (1월 24일) (4월 14일) (5월 12일), (5월 13일) (6월 3일) . 1943 : 7월 14일,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기 직전, 경도제국대학에 재학 중인 고종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의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됨. 경도 가모가와[鴨川] 경찰서에 구금되어 있는 동안 당숙 윤영춘, 외종 김정우(金楨宇)가 각기 면회. 1944 : 4월, 경도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명으로 2년형의 언도를 받고, 구주 복강 형무소에 투옥됨. 송몽규도 2년형의 언도를 받고 함께 투옥됨. 1945 : 2월 16일, 위의 형무소에서 옥사. 같은 해 3월 10일, 송몽규도 옥사. 3월초에 고향 용정의 동산에 묻힘.     1948 : 1월, 유고 31편을 모아 시집 를 정음사에서 펴냄.   1968 : 11월 2일, 연세대학교 구내에 윤일주의 설계로 ‘윤동주 시비’가 세워짐.
280    우리 조선말 잡지들 댓글:  조회:5111  추천:0  2015-11-26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의학과 건강의 벗!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로년의 미더운 길동무!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이법치국"의 교재!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녀성들의 목소리!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산뜻한 모습!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모임 한번 줄이고 일년효도 챙기는건 어떨까요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변화와 발전을 꿈꾸는 잡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유일한 교육전문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유일한 조선어학술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문화한마당 ㅡ 종합문화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온가족 비타민, 다달이 느낄수 있는 "정신효도선물"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우리 조선족의 자랑!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이 시대 조선족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가정교육이자 민족사랑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가족들이 모여앉아 조선말 잡지를 구독하는 열풍을...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가족사랑!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온가족 비타민이 될수 있는 우리 조선말 잡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다달이 느낄수 있는 "정신효도선물"-조선말 잡지
279    우리 조선말 신문들 댓글:  조회:5182  추천:0  2015-11-26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모임 한번 줄이고 일년효도 챙기는건 어떨까요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가족이 모여앉아 조선말신문잡지를 구독하는 열풍 일으키자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가장 절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가정교육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정신효도선물"-조선말 신문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고향, 고국소식 전단지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가족사랑!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조선말 신문 잡지를 구독하는 열풍은 이 시대 조선족들에게 가장 절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가정교육이자 민족사랑 [ 2015년 11월 23일 09시 31분 ]   주목! 온가족 비타민이 될수 있는 우리 조선족 신문들  
278    백두산 알아보기 댓글:  조회:5846  추천:0  2015-11-26
[ 2015년 11월 26일 08시 43분 ]       조선 양강도(량강도) 삼지연군과 중국 길림성 연변 경계에 있는 산입니다 높이 2,750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써, 백색의 부석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ㅡㅡㅡ   답변추천해요0 백두산(白頭山) 높이 2,750m로 북위 41˚01´, 동경 128˚05´에 있으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색의 부석(浮石)이 얹혀 있으므로 마치 흰 머리와 같다 하여 백두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다. 또 단군(檀君)이 탄강(誕降)한 성지로 신성시해왔다. 중국 금대(金代)인 1172년에는 영응산(靈應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냈으며, 청대(淸代)에는 이곳을 왕조인 애신각라(愛新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배하였다.   북동에서 서남서 방향으로 뻗은 백두산맥[白頭山脈]의 주봉으로 최고봉은 장군봉(2,750m)이다. 장군봉은 일제강점기에는 병사봉이라 불리며 해발 2,744m로 측량되었으나, 북한에 의하여 2,750m로 다시 측량되었다. 2,500m 이상 봉우리는 16개로 향도봉(2,712m), 쌍무지개봉(2,626m), 청석봉(2,662m), 백운봉(2,691m), 차일봉(2,596m) 등이 있다. 남동쪽으로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이 뻗어 있다.   활화산으로 고생대부터 신생대까지 여러 시대의 지층들이 발달하였으며, 특히 중생대와 신생대의 구조운동에 의해 형성된 단열구조, 파열구조 단층이 발달하였다. 화산분출은 쥐라기(약 2억 년 전)에서 신생대 제4기까지 지속되었는데 특히 신생대 제3기부터 활발히 진행된 화산활동으로 현무암질 용암이 대량 유출되어 약 5,350㎢의 넓은 백두용암대지가 만들어졌다.   약 200만 년 전부터 화산활동이 약화되어 지금의 산세를 형성하였다. 화산활동 후기에는 대연지봉, 소연지봉, 대각봉, 무두봉, 베개봉, 청봉 등 부속화산들이 형성하였으며 이들은 적갈색 다공질현무암용암의 분출로 생겼다.   최근의 분출은 1597년·1668년·1702년에 있었다고 문헌에 전하고 현재는 백두산 주변 50km 내외에 진도 2∼3의 약한 지진이 발생하고 있다. 화산폭발시 용암이 잘게 부서져 쌓인 부석층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천지 부근의 부석층은 두께가 20m 가량 된다. 화산재, 화산탄, 화산모래 등의 층도 남아 있다.   토양은 여러 해 동안 동결층의 영향과 한냉한 기후에서 형성된 토양, 평탄한 현무암대지에서 형성된 토양과 수평대성을 띤 포드졸성 갈색산림토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전형적인 고산기후이며,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가장 심하다. 연평균 기온은 6∼8℃, 최고기온 18∼20℃, 1월 평균기온 -23℃(최저 -47℃), 1월의 평균 일교차는 7.5℃, 7월의 평균 일교차는 4.8℃이다. 연평균 상대습도는 74%이며 여름에 가장 높고 겨울에 낮다. 북서풍과 남서풍이 강하게 불고 최대 풍속은 40m/s, 연중 강풍일수는 270일이며, 천지 부근은 강한 돌개바람인 용권이 자주 일어난다.   남쪽의 더운 공기와 몽골지방에서 오는 찬 공기가 마주치면서 안개가 많이 끼는데 7~8월에 안개가 끼는 날수는 33일 가량 되며, 구름이 많고 천둥현상이 잦으며 주로 눈·비를 동반한다. 벼락회수는 연간 약 50회이고 그중 60∼70%는 6∼7월에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1,500mm이며, 겨울 날씨가 연중 230일 정도 계속된다.   백두산에는 검은담비, 수달, 표범, 호랑이, 사향노루, 사슴, 백두산사슴, 산양, 큰곰 등의 희귀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또한 204종의 조류가 서식하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삼지연메닭(348호)·신무성세가락딱따구리(353호) 등이 있으며, 특별보호대상 조류로 메닭, 세가락메추리, 북올빼미, 긴꼬리올빼미, 흰두루미, 재두루미, 원앙, 청둥오리, 붉은허리제비, 숲새 등이 있다. 북살모사와 긴꼬리도마뱀 등의 파충류와 무당개구리·합수도룡뇽 등의 양서류가 있으며, 천지에는 천지산천어가 살고 있다.   300과 2,7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데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종비나무, 잎갈나무, 좀잎갈나무, 백두산자작나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비교적 분포속도가 빠른 식물종이 다른 지역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화산 분출에 의해 피해를 받기 전의 식물종들이 정일봉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 자란다. 이 지역에서는 백두산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흰병꽃나무·구름꽃다지·백리향·만삼·왜당귀 등이 자란다. 빙하기 이후 고산조건에 적응한 담자리꽃나무, 시로미, 물싸리, 두메김의털, 장군풀, 산할미꽃, 두메아편꽃, 큰산싱아, 각씨투구꽃, 끈끈이주걱, 두루미꽃, 눈사버들, 구름국화, 바위구절초, 만병초 등 한대성 식물들이 자란다.   또 매저지나무·들쭉나무·백산차 등의 냉대성 관목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금방망이·삼잎방망이·자주꽃방망이·무수해·황기·부채붓꽃·손바닥란·동의나물·분홍노루발풀·왕바꽃·메바꽃·구름범의귀풀·물매화 등 냉대성 초본식물들이 있다.   산 정상에는 칼데라호인 천지(天池)가 있는데 면적 9.165㎢, 평균수심 213m, 최대수심 384m이다. 천지의 물은 높이 67m의 장백폭포(長白瀑布)가 되어 얼다오바이강[二道白河]으로 떨어져 쑹화강[松花江]으로 흐른다. 천지에 시원을 둔 폭포는 백두폭포·사기문폭포·형제폭포·백두밀영폭포 등이며 압록강 상류, 두만강 상류, 산다오바이강[三道白河]으로 흘러들어간다. 천지에는 백암온천과 새로 개발된 백두온천이 있으며, 주변에 장백온천과 제운온천이 있다.   허항령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삼지연(三池淵)은 대소 4개의 얕은 호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위 길이가 4.5km, 수심 3m인 천연호수로서 주변 경관이 뛰어난 휴양지이다. 문화재로는 1712년(숙종 38)에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세운 백두산정계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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