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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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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인생 황금률 댓글:  조회:6387  추천:0  2015-07-25
      네가 열었으면 네가 닫아라. 네가 켰으면 네가 꺼라. 네가 자물쇠를 열었으면 네가 잠가라. 네가 깼으면 그 사실을 인정하라. 네가 그걸 도로 붙일 수 없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라. 네가 빌렸으면 네가 돌려 주라. 네가 그 가치를 알면 조심히 다루라. 네가 어질러 놓았으면 네가 치우고 네가 옮겼으면 네가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네가 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용하고 싶으면 허락을 받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 그냥 놔 두라. 네 일이 아니면 나서지 말라. 깨지지 않았으면 도로 붙여 놓으려고 하지 말라. 누군가의 하루를 기분좋게 해주는 말이라면 하라. 하지만 누군가의 명성에 해가 되는 말이라면 하지 말라.                           이외수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 [출처] [양정훈의 ] - 인생의 황금률|작성자 양정훈 코치  
236    姓氏의 비밀 댓글:  조회:5317  추천:0  2015-07-17
★ 조선 성씨 탄생의 비밀 ★    조선초만해도 성씨있는 양반은 10%뿐이 안되었는데 조선중기 양반계급이 족보를 가지게 되면서 부터 평민들도 각 씨족 별로 구전 해오던 자료에 의하여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토착민들은 지역별 연결에 따라 동일 씨족으로 족보를 가지게 되었다.   집성촌을 이루지 못하고 생활한 유랑민이거나 원래 천민은 성씨없이 돌쇠,떡쇠, 개똥이, 삼돌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에는 양반들의 도움으로 성 하나 만은 가지게 되었고. 1909년 일제가 민적법 시행시 성씨가 없던 천민들에게 다시 원하는 성씨의 호적을 일제가 주었는데, 그 때 가장 인기 있던 성씨가 흔하면서도 유명한 "김, 이, 박 " 등 등이었다.  그래서 유명한 성이 더욱 흔해지게 된 것이다. 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노비)계층에게 이들에게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준 것은 조선의 양반 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나온 것이고, 노비를 양민화시켜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 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였다. 일례로 김좌진 장군댁 노비 100명도 안동 김씨 호적을 만들어 가졌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집 법도는 엄격한 유교의 윤리로 교육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반으로 행세하기는 행동거지가 참으로 어렵고 엄했다고 한다. 따라서 천민은 흉네 낼 수도, 낼 필요성도 느끼지 못는 사회였다. 현재 품성과 관계없이 성씨로 양반입네 떠드는 사람들은 양반집의 돌쇠이었거나, 그 마을 "개똥이"였을 확률이 높은 것은 아닌지? 양반은 항상 따르는 권속들에 대한 책임감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중압감을 느끼며 생활하였으며 자신의 행동이 가문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오늘같은 막된 행동이나 막 말을 할 수가 없었으며 지역사회에서 한번 쌍놈의 가문으로 찍혀지면 자녀들의 출가 문제로 직결되기 때문에 성씨가 그 사람의 품행을 구속했다고 한다. 법도와 예를 생명같이 여기고 살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점에서 양반사회는 순기능 역활도 했다고 판단된다. 성씨에 대한 이해를 돕기위하여 아래의 자료를 첨부해 본다. 2000년에 조사한 우리 나라의 성씨별 인구가 통계청 홈페이지에 떴는데, 1985년 발표 당시보다 성씨의 숫자가 12 개 늘었다. 그 때는 274개였는데, 이번은 286개가 되었다. 우리 나라 10대 성씨의 순위는 변화가 없었다. 김(金) 이(李) 박(朴) 최(崔) 정(鄭) 강(姜) 조(趙) 윤(尹) 장(張) 임(林)... “김(金)” 씨는 우리 나라 인구의 21.6%인 992만 여 명으로 여전히 제일 많았다. “이(李)” 씨는 그보다 훨씬 적은 14.8%로 679만 여 명으로 조사되었다. “박(朴)” 씨는 또 그보다 훨씬 적은 8.5%로 389만 여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잇는“최(崔),정(鄭)”씨는 4% 대이고, “강(姜), 조(趙), 윤(尹), 장(張)”씨는 2% 대, 그리고“임(林)”씨부터 21위“전(全)”씨까지 1%대를 유지하고 있는데... 성씨별 인구 수가 거의 일정한 차이를 유지하며 계속 나열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의 성씨는 1위부터 2, 3위의 분포가 비교적 고르게 나타나 특정 성씨로 지나치게 몰리는 경우가 없다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만 1, 2위가 이상할 정도로 특별히 많아진 것은 1900년대 초에 처음 호적법이 시행될 때 “양반이 되고 싶은”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런 기형적인 분포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에 “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 정책을 시행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이 때 대부분의 국민들은 각자 자기 집의 위치나 동네의 특징을 살린 성씨를 만들어서 가졌다고 한다. “田中, 中村, 松下...” 등 다양하게 창씨된 성씨의 숫자가 순식간에 8만 개나 되었는데.... 일본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특정 성씨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는 없다고 하며... 또한 성씨만 가지고는 가문의 역사 같은 것은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민족의 역사를 논할 때 성씨가 무언가 하는 것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당연히 성씨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착 같은 것이 거의 없다. 중국이나 한국과는 여기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로부터 불과 몇 년 뒤에 일본이 우리 나라, 즉 대한제국에 와서도 계급을 타파한다면서 “신분 표시가 없는 호적법”을 시행하였고, 여기에서도“전 국민의 성씨 가지기”운동을 전개하여 전 국민으로 하여금 성씨를 만들어 가지도록 하였는데, 결과는 일본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던 “돌쇠, 밤쇠, 삼월이, 오월이..” 들은 일본처럼 새로이 성씨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이들 대부분이 그 동네 지주나 양반들에게 부탁하여 그 “양반님”들의 성씨를 얻어 와서는 관청에 신고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 때에 김(金) 씨나 이(李) 씨가 갑자기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특정 성씨가 총 인구의 20%를 넘어 가는 경우는 없는데, “양반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이 너무 많았던” 우리 나라에서만 나타난,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여튼 우리나라는 결과적으로 “전 국민의 양반화”가 자연스러이 이루어졌고, 옛날 이야기에 그 많던 “방자, 향단이, 마당쇠, 구월이...”의 자손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슨 무슨 정승, 판서의 몇 대 손”이 되어 버렸고, 오로지 양반의 후손만이 존재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양반이 많은 나라가 되었고, 또한 제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어 버렸다. 불과 100 여 년 전만 해도 “성씨도 없는 쌍놈들”은 제사고 차례고 지낼 수가 없었는데, 요즈음은 집집마다 장손이면 모두 명절날 차례를 지낸다. 참고로 5000년 전부터 성씨를 사용해 온 중국의 경우를 보면 성씨별 인구 1, 2, 3위의 비율은 각각 7.4%, 7.2%, 6.8%로 되어 있어서, 특정 성씨로 몰리는 현상은 없다. 중국은 인구 0.1% 이상을 차지하는 성씨가 모두 129개로 나타났는데, 이 129개 성씨의 인구 합계는 중국 인구의 87%라고 한다. 이는 2006년 1월 10일 중국과학원에서 중국역사상 가장 정밀한 자료조사를 거쳐 발표했다는 “100대 성씨”에 근거한 것이다. 이번 발표에서 “인구기준 성씨순위”가 1987년의 발표자료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표본조사한 기초자료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1987년 조사는 겨우 57만 명 정도를 표본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고, 이번 조사는 그 때에 비하여 500배도 넘는 약 3억 명을 표본 조사하여 순위를 매긴 것이기 때문에 그 정밀도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 중국 10대 성씨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 진(陳), 양(楊), 황(黃), 조(趙), 주(周), 오(吳)”로 판명되었다. 이 순위는 자동적으로 전세계의 10대 성씨가 되기도 한다. 이 중 “李”는 중국 인구의 7.4%인 9천 600만 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우리 나라의 679만여 명을 합치면 “李”씨는 1억 명을 넘어 가는 세계 유일의 성씨가 된다. 약 900년 전인 서기 1100년대에 북송(北宋)에서 발표한 『백가성(百家姓)』이란 책자가 최초의 성씨 조사 기록이었고, 명(明)나라의 『천가성(千家姓)』, 청(淸)나라의 『백가성(百家姓)』 등이 뒤를 이었으나 이 책들은 모두 성씨별 인구수를 기준으로 서열을 매긴 것은 아니었다.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趙錢孫李周吳鄭王...”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인구수 순위가 아니었다. “조(趙)”는 북송을 건국한 황제의 성이었고, “전(錢)”은 당시 가장 힘이 강했던 오월국(吳越國)의 국왕 성씨였고, “정(鄭)”은 그 왕후의 성씨였으며, “이(李)”는 그 다음 강국인 “남당(南唐)”의 국왕 성씨였던 것인데... (중국의 1100년대는 송나라가 약간 힘이 강한 정도였고, 고만고만한 나라들로 나누어져서 도토리 키재기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따라서 900년 전 『백가성(百家姓)』에서의 성씨 순위는 인구 순이 아니라 예우(?)를 받아야 할 성씨의 순위였고, 최근 중국 일부 신문에서 보도한 “900년만에 조(趙)가 1위에서 8위로 밀렸다”는 내용은 옛날 기록의 특징을 잘못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여튼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나라 성씨의 순위를 기준으로 하여 중국 성씨 순위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金 : 21.59%, 한국 1위 (중국 64위) 한국 발음이 현재는 “김”이지만 옛날에는 “금”으로 읽었다는 주장도 있음. 현재 중국 배우 중에도 이 성씨를 가진 배우가 있는데 “금성무”라고 보도되고 있음 이 글자의 현대식 중국 표준발음은 “찐”임 李 : 14.78%, 한국 2위(중국 1위 7.4%) 한국, 중국 합하면 1억이 넘어 가는 전 세계 단 하나의 성씨임 중국, 북한에서는 “리”라고 하는데, 남한에서만 “이”라고 읽고 있음. 그런데, 남한 사람들도 영어로 쓸 때에는 대부분 “Lee(리)”라고 하는 버릇이 있음 박 : 8.47%, 한국 3위(중국 100위 내에서는 안 보임) 한자로 “朴”을 쓰기도 하지만, 원래 “바가지”란 뜻의 순우리말 토종 성씨임. “박혁거세”의 “박”은 “박만큼이나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은 말임 영어로 "Park" "Pak" 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으나 "Paak" 이라고 쓰는 것이 가장 무난함. 최(崔) : 4.72%, 한국 4위(중국 58위) 정(鄭) : 4.37%, 한국 5위(중국 21위) 강(姜) : 2.27%, 한국 6위(중국 50위) 조(趙) : 2.14%, 한국 7위(중국 8위) 윤(尹) : 2.06%, 한국 8위(중국 95위) 장(張) : 2.00%, 한국 9위(중국 3위) 임(林) : 1.66%, 한국 10위(중국 17위/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오(吳) : 1.54%, 한국 11위(중국 10위) 한(韓) : 1.53%, 한국 12위(중국 26위) 신(申) : 1.52%, 한국 13위(고려태조가 하사한 성씨, 일본으로 넘어가 정착한 일족이 있음) 서(徐) : 1.51%, 한국 14위(중국 11위) 권(權) : 1.42%, 한국 15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황(黃) : 1.40%, 한국 16위(중국 7위) 안(安) : 1.39%, 한국 17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송(宋) : 1.38%, 한국 18위(중국 23위) 유(柳) : 1.31%, 한국 19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 홍(洪) : 1.13%, 한국 20위(중국 99위) 전(全) : 1.07%, 한국 21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고려 왕씨 유래설이 있음) 고(高) : 0.95%, 한국 22위(중국 19위) 문(文) : 0.93%, 한국 23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손(孫) : 0.90%, 한국 24위(중국 12위) 양(梁) : 0.85%, 한국 25위(중국 20위) 배(裵) : 0.81%, 한국 26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 조(曺) : 0.79%, 한국 27위(중국 27위) 백(白) : 0.76%, 한국 28위(중국 79위) 허(許) : 0.65%, 한국 29위(중국 28위) 남(南) : 0.56%, 한국 30위(중국 100위 이내 없음/일본에 정착한 일족이 있음) 우리 나라 31위 이후의 성씨는 다음과 같음. 31-40 심(沈) 유(劉) 노(盧) 하(河) 전(田) 정(丁) 성(成) 곽(郭) 차(車) 유(兪) 41-50 구(具) 우(禹) 주(朱) 임(任) 나(羅) 신(辛) 민(閔) 진(陳) 지(池) 엄(嚴) 51-60 원(元) 채(蔡) 강(康) 천(千) 양(楊) 공(孔) 현(玄) 방(方) 변(卞) 함(咸) 61-70 노(魯) 염(廉) 여(呂) 추(秋) 변(邊) 도(都) 석(石) 신(愼) 소(蘇) 선(宣) 71-80 주(周) 설(薛) 방(房) 마(馬) 정(程) 길(吉) 위(魏) 연(延) 표(表) 명(明) 81-90 기(奇) 금(琴) 왕(王) 반(潘) 옥(玉) 육(陸) 진(秦) 인(印) 맹(孟) 제(諸) 91-100 탁(卓) 모(牟) 남궁(南宮) 여(余) 장(蔣) 어(魚) 유(庾) 국(鞠) 은(殷) 편(片) 101-110 용(龍) 강(疆) 구(丘) 예(芮) 봉(奉) 한(漢) 경(慶) 소(邵) 사(史) 석(昔) 111-120 부(夫) 황보(皇甫) 가(賈) 복(卜) 천(天) 목(睦) 태(太) 지(智) 형(邢) 피(皮) 121-130 계(桂) 전(錢) 감(甘) 음(陰) 두(杜) 진(晋) 동(董) 장(章) 온(溫) 송(松) 131-140 경(景) 제갈(諸葛) 사공(司空) 호(扈) 하(夏) 빈(賓) 선우(鮮于) 연(燕) 채(菜) 우(于) 141-150 범(范) 설(?) 양(樑) 갈(葛) 좌(左) 노(路) 반(班) 팽(彭) 승(承) 공(公) 151-160 간(簡) 상(尙) 기(箕) 국(國) 시(施) 서문(西門) 위(韋) 도(陶) 시(柴) 이(異) 161-170 호(胡) 채(采) 강(强) 진(眞) 빈(彬) 방(邦) 단(段) 서(西) 견(甄) 원(袁) 171-180 방(龐) 창(昌) 당(唐) 순(荀) 마(麻) 화(化) 구(邱) 모(毛) 이(伊) 양(襄) 181-190 종(鍾) 승(昇) 성(星) 독고(獨孤) 옹(邕) 빙(?) 장(莊) 추(鄒) 편(扁) 아(阿) 191-200 도(道) 평(平) 대(大) 풍(馮) 궁(弓) 강(剛) 연(連) 견(堅) 점(占) 흥(興) 201-210 섭(葉) 국(菊) 내(乃) 제(齊) 여(汝) 낭(浪) 봉(鳳) 해(海) 판(判) 초(楚) 211-220 필(弼) 궉(?) 근(斤) 사(舍) 매(梅) 동방(東方) 호(鎬) 두(頭) 미(米) 요(姚) 221-230 옹(雍) 야(夜) 묵(墨) 자(慈) 만(萬) 운(雲) 범(凡) 환(桓) 곡(曲) 탄(彈) 231-240 종(宗) 창(倉) 사(謝) 영(永) 포(包) 엽(葉) 수(水) 애(艾) 단(單) 부(傅) 241-250 순(淳) 순(舜) 돈(頓) 학(?) 비(丕) 영(榮) 개(介) 후(侯) 십(?) 뇌(雷) 251-260 난(欒) 춘(椿) 수(洙) 준(俊) 초(肖) 운(芸) 내(奈) 묘(苗) 담(譚) 장곡(長谷) 261-270 어금(魚金) 강전(岡田) 삼(森) 저(邸) 군(君) 초(初) 영(影) 교(橋) 순(順) 단(端) 271-280 후(后) 누(樓) 돈(敦) 소봉(小峰) 뇌(賴) 망절(網切) 원(苑) 즙(?) 증(增) 증(曾) 281 삼(杉) : 282 우(宇): 소(肖)예(乂) 빙(氷) 경(京) : (이상 총 286개 성씨) 이 중 최근에 새로 생긴 성씨 중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잘못 기재하여 그리 된 것도 있고, 국제 결혼으로 우리 나라 국적을 취득한 동남아 또는 중국 사람들의 성씨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 중국의 주요 성씨를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李 : 중국 7.4%, 중국 1위(한국 2위) 당나라 황제 이세민(李世民)이 개국공신들에게 “李”를 하사했고, 나중에 후위(後魏)의 선비족(鮮卑族)에서도 “李”씨로 바꾸어 사용한 사람들이 많음. 중국인들은 영어로 표기할 때 "Li"를 주로 사용하며, 미국 "Lee"와의 관계는 불명확함 王 : 중국 7.2%, 중국 2위(한국 83위) 중국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사이의 신(新)나라 때 황제 왕망(王莽)의 성씨임. 중국 사람이라 하면 “비단장사 왕서방”이라 할 정도로 중국에 왕 씨가 많았음 한국에서도 고려시대 왕족이 “왕건(王建)”의 왕씨였으나 고려 멸망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춤. 張 : 중국 6.8%, 중국 3위(한국 9위) 장삼이사(張三李四 : 중국인들은 대개 張씨네 셋째 아들 아니면 李씨네 넷째 아들이라는 뜻)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張씨가 많았음. 지금도 “장가계(張家界)”는 관광지로 유명함.“왕삼이사(王三李四)”란 말이 생기지 않은 것은 “왕이 셋이면..”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됨. 劉(유) : 중국 4위(한국 32위) 陳(진) : 중국 5위(한국 48위) 楊(양) : 중국 6위(한국 55위) 黃(황) : 중국 7위(한국 16위) 趙(조) : 중국 8위(한국 7위) 周(주) : 중국 9위(한국 71위) 吳(오) : 중국 10위(한국 11위) 徐(서) : 중국 11위(한국 14위) 孫(손) : 중국 12위(한국 24위) 朱(주) : 중국 13위(한국 43위) 馬(마) : 중국 14위(한국 74위) 胡(호) : 중국 15위(한국 161위) 郭(곽) : 중국 16위(한국 38위) 林(임) : 중국 17위(한국 10위) 何(하) : 중국 18위(한국에는 없음) 高(고) : 중국 19위(한국 22위) 梁(양) : 중국 20위(한국 25위) 鄭(정) : 중국 21위(한국 5위) 羅(나) : 중국 22위(한국 45위) 宋(송) : 중국 23위(한국 18위) 謝(사) : 중국 24위(한국 233위) 唐(당) : 중국 25위(한국 173위) 韓(한) : 중국 26위(한국 12위) 曹(조) : 중국 27위(한국 27위) / 한국에서는 “曺(조)”란 글자를 주로 사용함 許(허) : 중국 28위(한국 29위) 鄧(등) : 중국 29위(한국에는 없음) 蕭(소) : 중국 30위(한국에는 없음) 중국 31위부터 100위까지는 다음과 같음 31-40 馮(풍),曾(증),程(정),蔡(채),彭(팽),潘(반),袁(원),于(우),董(동),余(여), 41-50 蘇(소),?(협),?(여),魏(위),?(장),田(전),杜(두),丁(정),沈(심),姜(강) 51-60 范(범),江(강),傅(부),?(종),?(노),汪(왕),戴(대),崔(최),任(임),?(육) 61-70 廖(료),姚(요),方(방),金(금),邱(구),夏(하),?(담),?(위),?(가),?(추) 71-80 石(석),熊(웅),孟(맹),秦(진),?(염),薛(설),侯(후),雷(뢰),白(백),?(용) 81-90 段(단),?(학),孔(공),邵(소),史(사),毛(모),常(상),万(만),?(고),?(뢰) 91-100 武(무),康(강),?(하),?(엄),尹(윤),?(전),施(시),牛(우),洪(홍),?(공) 중국 측 발표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성씨는 5 6개 종족에 약 12000개의 성씨가 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13억 인구 전부를 조사 못해서 이런 추정치라는 것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신판 『중국성씨대사전(中國姓氏大辭典)』에는 무려 23000개의 성씨가 소개되어 있다. 우리는 중국, 한국, 일본의 성씨에 대한 역사나 인식들에 대하여 약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성씨관... 중국은 예로부터 성(姓)과 씨(氏)는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원래 성(姓)이라 함은 모계제 사회의 흔적으로 “어머니의 출신지”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씨(氏)는 “출생한 뒤에 아버지와 함께 살던 곳”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중국인들이 모두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고 있는 “황제(黃帝)”의 경우 성(姓)은 “희(姬)”이고 씨(氏)는 “헌원(軒轅)”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성격이 조금 바뀌어 황제(皇帝), 즉 천자(天子)가 내려 주는 것은 성(姓)이라 했고, 제후(諸侯) 또는 국왕(國王) 정도가 내려 주는 것은 씨(氏)라 했다. 언제나 성(姓)이 한 단계 위의 개념이었는데, 보통 성(姓)은 한 글자였고 씨(氏)는 두 글자가 많았다. 그리고 한(漢) 나라 때에 족보라는 것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천자가 각 제후나 공신들의 자제들에 대한 특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천자가 만든 족보에 이름이 있는지 없는지가 권력의 유무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성씨는 남자들만의 혈통을 표시하는 것이 되어 버렸고 생물학적으로 특정한 Y염색체의 유전 상황을 표시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어쨌든 중국의 성씨는 역사가 5000년이 되었고, 성씨는 문화의 전승과 남성 혈통의 흐름을 연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같은 성씨이면 무조건적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관습이 자연스러이 형성되었고, 이러한 혈연 관계는 인간생활에 활력을 넣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의 성씨관... 원래 우리 나라의 토착민들은 성씨가 없었다고 한다. 계속적인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일부 고위 관리들에게서 성씨를 가진 자들이 간간이 나타났고, 삼국시대 말기 신라에서는 국력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왕족을 중심으로 성씨를 스스로 만들어서 가졌다. 그래서 왕족들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죽고 없는 먼 조상님들(혁거세, 알지 등등)에게도 소급해서 성씨를 만들어 붙이고 했다. 조선시대 말까지도 우리나라는 양반보다 쌍놈들이 더 많았고, 성씨를 갖고 있는 사람들 숫자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한제국 시절 일본의 압력 덕분에 호적에 성씨란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올린 사람들도 많았지만,“만들어 올렸다”는 그 사실은 언제까지나 “가문의 비밀”로 숨겨 두어야 했다. 성씨의 유무와 관련한 성씨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우리 백성들은 양반제도가 비록 법적으로 폐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어렵게 얻은 “양반의 성씨”만큼은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1940년대에 일본이 “이제 조선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한 나라”임을 강조하면서 일본식으로 창씨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발표하고, 앞으로 성씨로 인한 조선인, 일본인 간의 차별대우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성씨 자체를 “가문의 역사”로 생각하는 많은 우리 백성들은 당연히 반대하였고, 성씨의 역사가 불과 50년밖에 안 되어 성씨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도 없었던 일본 정부에서는 조선인들의 반대를 보고 “거참, 이상하다. 그깟 성씨 가지고 왜들 저러지?”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성씨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일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성씨를 만들어 신고한 사람도 있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는 신청 첫날 아침에 맨 먼저 신고하였는데, 이광수가 만든 성씨는 “일본 천황 고향의 뒷산인 향구산(香久山)의 이름에서 따 왔다는” 향산(香山)이었다. 이광수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성씨란 건 별 것 아니야”라는 자기네들의 전통적 인식을 한국식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어쨌든, 지금의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자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나라가 되어 있다. 전 세계의 남자들이 한국인들에게 깜짝 놀라는 것이 두 가지라 하는데, 한 가지는 부인의 성씨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부인이 남편 통장을 관리”하는 것이라 한다. “자다가 벌떡 깨어 다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보는 한국은 거의 구제불능성 선천적 여성천국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성씨관... 일본은 우리 한반도의 영향을 받아 백제와 교류할 때부터 성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중국과의 교류도 크게 활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성씨의 위력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19세기말 미국이 군함을 밀고 들어오고, 일본 청년들이 세계일주도 하는 과정에서 외국인들이 “패밀리 네임”이란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을 보니 자기네들의 직업을 가지고 만든 성씨도 있고, 자기네 마을의 특징을 살려서 만든 성씨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도 성씨란 걸 만들어서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 일본의 학자들에게 물어 보니 동양 문화권에서는 성(姓)이라는 것도 있고 씨(氏)라는 것도 있는데.. 성(姓)이란 것은 황제가 직접 만들어서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라 하였다. 백성이 한두 명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만들어서 준단 말인가... 그냥 일본은 씨(氏)를 만들어서 쓰기로 하고 창씨(創氏)하는 업무는 각 사무라이들에게 그냥 맡기기로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순식간에 수만 개의 씨(氏)가 만들어졌는데... 지금도 일본은 어떤 장부이든지 “성명(姓名)”이란 칸은 없고 어디든지 모두 “씨명(氏名)”이란 칸만 있다. 19세기 말 갑자기 시행된 창씨(創氏)였기 때문에 각자의 씨(氏)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 같은 것은 당연히 없다. 청일 전쟁 승리 이후 조선에게도 성씨 없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호적법을 만들어 창씨(創氏)의 기회를 주었으나, 조선인들은 이상하게도 창씨(創氏)는 않고 기존 양반들의 성(姓)을 빌려 와서 관청에 신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글자 짜리인 성(姓)을 사용하는 사람은 중국 또는 조선인이고 두 글자 짜리 씨(氏)를 쓰는 사람은 일본인.... 어찌 되었든 간에 국적 구별이 쉬워서 좋기는 했다. 조선을 삼키고 난 뒤에 조선인들로부터 “같은 나라가 되었다고 해 놓고는 차별대우가 너무 심하다”는 등 불만사항이 많이 접수가 되었지만, 우선 이름에서부터 출신이 확연하게 표시가 나니 일본 정부로서도 별로 뾰족한 대책이 없어서 그냥 대충 세월만 보냈다. 그러다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일본군들이 매일매일 죽어 나가고... 조선인들이라도 군인으로 뽑아서 내보내야겠는데 차별대우 해소를 위한 근본대책을 세우라고 매일 투덜대는 저 조선인들을 그냥 일본군으로 들여 보냈다가는 전투도 제대로 못해 보고 질 것 같고... 일본정부는 착잡해졌다. 누군가 묘안을 냈다. 일본식으로 창씨(創氏)할 기회를 한 번 더 줄 터이니 이 참에 일본식으로 제대로 창씨를 해라... 어차피 얼굴 생긴 것도 똑같고.. 조선 출신을 차별대우하고 싶어도 조선 출신이란 표시가 없으니 못할 것 아니냐... 그러나 그대신 조선 청년들 군대에 좀 가 줘야 되겠다.... 이렇게 하여 1940년대에 창씨(創氏)할 기회를 주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어떻게 그 동안 써 오던 성(姓)을 버리고 그보다 격이 낮은 씨(氏)를 쓸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 일본인들로서는 얼른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법적으로 양반이란 것도 없어졌고 문벌이란 것도 이제 큰 의미가 없어졌는데 허울만 남은 성(姓)을 가지고 왜 그리 집착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그래도 차별대우 철폐란 것이 어차피 민간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문제이고 정책 차원에서 조선출신이라는 표시가 안 나게 해 주겠다는 것인데...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불만에 대해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그래도 강제 창씨를 계속 밀고 나갔다. (이 때 林, 柳, 南씨 일부는 일본에도 있는 성씨라 하여 새로 창씨를 하지 않았다고 함).... 그리고 조선인들을 일본군으로 받아 들여 전쟁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선사람들만 일본군복을 입은 채로 애매하게 죽은 셈이 되어 버렸고 몇 년 후 일본은 전쟁에서 졌다. 1945년에 전쟁도 끝이 나고 살림살이도 일본 내부로 축소되었으니 일거리도 줄어들고 오히려 편해졌다. 일본인들도 이제 성씨를 사용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간다. 100년 동안 의 짧은 역사가 일본인들에게 성씨에 대한 관념을 얼마나 변화시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아직까지는 성씨에 대한 뚜렷한 자부심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쨌든 일본인은 성씨의 종류는 8만여 가지로 무지하게 많지만 성씨별 인구 수에 대해서는 아직은 신경을 쓰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나라 양반의 자손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일본인은 "근본도 모르는 ''들"일 뿐이다.
235    특이한 姓氏 댓글:  조회:5264  추천:0  2015-07-17
진짜 특이한 성씨 몇개          133위 사공(司空) 인구수:4,307  가구수:1,360   본관은 효령(孝令) 단본이다.  《효령사공씨세보(孝令司空氏世譜)》에 따르면 시조는 당나라 사람인 사공도(司空圖)로  897년 황소의 난을 피하여 신라로 왔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때 판의사사로 효령군에 봉해진 사공중상(司空仲常)을 1세조로 하고 관향을 효령으로 삼았다. 1985년 인구통계 조사 상 3634명밖에 안되는 희소 성씨지만  재무부 장관, 고려대학교 교수 등을 지낸 사공일 박사 덕분에 어느정도 알려진 성씨이다.     216위 동방(東方) 인구수:220  가구수:70  본관수:2 청주(淸州),진주(晉州)     동방은 대한민국,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도 성으로 쓰인다. 한국의 성씨 중의 동방씨는 1930년 조사에서는 대부분 평안북도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국의 동방씨는 중국 제남, 현대의 산둥성에서 계출된 성씨로,  한국에는 진주동방씨와 청주동방씨가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전국인구조사에 따르면 청주동방씨는 39가구에 119명이고, 진주동방씨는 30가구에 98명에 불과하다.     274위 소봉(小峰)  인구수:18 가구수:4 小峰. 희귀 성씨로, 일본에 고미네(小峰)라는 성씨가 실존하나 연관성은 없다.  중국에 있는 샤오펑씨도 아래 언급하는 공주소봉씨와 같은 혈통이다. 소봉씨는 기원전 7년경에 활동했던 신라 출신 지충강(池忠江)의 40대손인 소봉현경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고려 건국의 공을 세워 공주부원군에 봉해졌고 이후 본관은 공주로 정해졌다.  하지만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면서 중앙정계에 모습을 감췄다는 언급 이후로 어떠한 행적도 추적할 수 없다. 본관은 공주이긴 하지만 통계청 조사에서 본관이 없는 것으로 나와 있다.     276위 망절(網切)  인구수:10 가구수:1 한국의 성씨 중 하나로 일본계 귀화 성씨. 본관은 도간(島間 しまま) 밖에 없다. 시조는 1971년 귀화한 망절일랑(網切一郞, 원래 이름의 읽기는 아미키리 이치로 あみきり イチロウ) 씨이다 망절일랑 씨가 귀화하게 된 데에는 복잡한 사연이 있다.  그는 1942년 경상남도 김해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일본인 경찰간부(경무과장)의 8대 독자였다.  광복이 되던 무렵 가택연금 중이던 부모가 강제송환 당할 때, 그는 마침 이웃에 놀러가 있었던 때라 부모와 떨어져 4살 때 혼자 한국에 남겨졌다.  일본식 이름인데다가 학창시절 한국어에 서툴러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그후 외할아버지 양모씨의 보살핌을 받았고 호적에는 외가의 성인 '양일랑'이란 이름으로 올랐다.             그 외 주변에서 보기 어려울듯한 희귀 성씨들     124위 음(陰) 5,936명 145위 좌(左) 3,130명 176위 화(化) 945명 186위 빙(冰) 726명 189위 편(扁) 633명 195위 궁(弓) 562명 203위 내(乃) 377명 206위 낭(浪) 341명 215위 매(梅) 222명 220위 요(姚) 198명 222위 야(夜) 180명 238위 애(艾) 123명 246위 개(介) 86명 249위 십(辻) 82명 258위 묘(苗) 61명 260위 장곡(長谷) 52명 261위 어금(魚金) 51명 262위 강전(岡田) 51명  
234    新體詩란? 댓글:  조회:4885  추천:0  2015-07-12
新體詩 개화기 시가(開化期詩歌)의 한 유형으로 한국 근대시에 이르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식. ‘신체시’는 ‘신시(新詩)’라는 명칭과 함께 통용되어왔으며, 다 같이 그 전대의 고시가(古詩歌)나 애국가 유형(愛國歌類型), 개화가사(開化歌辭) 및 창가(唱歌)에 대한 새로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신시가(新詩歌) 또는 신체시가(新體詩歌)라고도 불린다. 1908년 11월 ≪소년 少年≫ 창간호에 실린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를 기점으로, 1919년 ≪창조 創造≫ 창간호에 실린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 이전의 ≪학지광 學之光≫·≪청춘 靑春≫·≪태서문예신보 泰西文藝新報≫ 등의 잡지나 그밖에 발표된 이광수(李光洙)·현상윤(玄相允)·최승구(崔承九)·김여제(金輿濟)·김억(金億)·황석우(黃錫禹) 등의 초기 시들이 ‘신체시’ 또는 ‘신시’의 범주에 든다 하겠다. 신체시라는 용어는 일본의 ≪신체시초 新體詩抄≫(메이지 15)에서 메이지시가(明治詩歌)의 한 종류를 지칭하는 용어를 그대로 차용(借用)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조격수의(調格隨意), 즉 ‘어수(語數)와 구수(句數)와 제목은 수의(隨意)’라는 장르 개념을 의식한 ≪소년≫지의 ‘신체시가대모집(新體詩歌大募集)’ 광고와 ≪청춘≫지의 ‘현상문예모집’ 광고에서 ‘신체시가’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다. ‘신시’라는 용어는 최남선이 <구작삼편 舊作三篇>(소년, 1909.4.)의 창작 동기를 밝힌 후기(後記)에서 ‘신시의 형식을 시험하던 시초’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두 용어에 대한 논의가 일고 있는바, 일설은 일본의 신체시와 구별하기 위해서라도 ‘신시’로 하자는 것이고, 또 다른 이견(異見)은 신시라는 범칭(汎稱)보다는 장르 의식이 바탕이 되어 있는 ‘신체시’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하다는 것이다. 신체시의 기점은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잡는 것이 통설이다. 여기에 몇 가지 이설들이 제기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아직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이설들로는 우선 조지훈(趙芝薰)의 경우에, <구작삼편>이 실린 ≪소년≫의 ‘후기’에 <구작삼편>이 1907년의 작품이라는 내용을 근거로 하여 최초의 신체시로 <구작삼편>을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바이런(Byron,G.G.)의 <대양 The Ocean> 사이의 영향 관계를 탐색하여 그 유사성의 추출을 근거로 이 작품을 최초의 신체시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즉, 최남선 스스로가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자신의 창작시라고 자처한 적도 없으며, ‘신체시’나 ‘신시’라고 명명한 적도 없고, 다만 권두시로 제시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대양>의 번안시(飜案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신체시의 기점을 1909년 4월호에 실린 <구작삼편>과 <두고>에 두기도 한다. 신체시는 근대 정신의 소산으로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 서구 문화를 수용하려는 근대화운동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 이전의 전통시가와는 다른 이질적인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다. 이 때에 이질적인 요소라 함은 형태적인 면에서는 정형적인 율문성에서 일탈한 산문성을 뜻한다. 한 마디로 자유율화한 산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신체시 이전까지의 고시가·애국가 유형·창가 등이 가창을 전제로 한 율조라면, 신체시는 산문화한 자유시(自由詩)로 이행되는 과도기적인 시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애국가 유형과 개화가사가 3·4조, 4·4조의 음수율을 지키고 있고, 창가가 각 행간의 음수율을 7·5, 8·5, 6·5조로 일치시키고 있는 데 비해서, 초기의 신체시는 분련체(分聯體)로서 각 연 대응행에서만 음수율의 일치를 보인다. 신체시가 고시가의 율문적인 정형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의 자유율화한 시가 형태인 산문적인 속성으로 변하는 과정은 근대시사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닌다. 물론 이 경우의 신체시의 산문성은 ‘근대(近代)’라는 시대적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그렇다는 것이며, 실제로 그 산문성의 한계는 매우 모호하다. 엄밀한 의미로 볼 때 <해에게서 소년에게>나 <구작삼편> 등 일련의 신체시들이 지닌 산문성은 극히 불안정하며, 창가의 율문성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하는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하여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산문성의 이면에는 부분적으로 애국가 유형이나 창가의 율격(律格)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구작삼편>에서도 ‘그러나’와 ‘우리는’ 등의 삽입구를 제외하면 7·5조라는 창가의 음수율과 일치한다. 또한 이들 시의 분절법이나 후렴성도 거의 ‘창가적인 정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창가의 율문성과 자유시의 산문성의 과도기적인 혼합 양상은 신체시의 대표적인 형태적 특성으로, 조연현(趙演鉉)의 “엄격한 율문이나 정형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인 자유가 너무 강하며, 완전한 산문으로 보기에는 율문적인 정형성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채 있다.”는 지적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러한 반율문적이고 반산문적인 또는 이들 양자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신체시는 그 형태에서만 과도기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정한모(鄭漢模)는 최남선이 장르 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하여 “시의식에 선행하는 민족의식이나 사회의식으로 말미암아 모처럼 시도된 형태적인 ‘새로움’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고 역설하고 있다. 즉, 시 자체가 생명으로 삼아야 할 시정신(poesie)의 무자각 상태야말로 신체시가 근대시로 발전함에 있어서 그 형태면에서 보다 큰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남선의 신체시는 자아의 각성이나 탐구를 지향하기에 앞서 작자 자신이 처한 시대 상황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각 연 대응행에서 음수의 일치를 꾀하고 같은 연의 시행간에서는 음수의 변화를 보이는 신체시로는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구작삼편>이 있다. 이외에도 최남선의 <신대한소년 新大韓少年>·<두고>가 있으며, 이광수의 <말듣거라>와 현상윤의 <웅커리로서> 등이 있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각 연 1·7행의 반복구(反復句) “텨……ㄹ썩, 텨……ㄹ썩, 텩, 쏴……아”(튜르릉, 콱, 7행)를 제외한 나머지 행에서는 각 행간의 음수가 완전히 일치된 것은 아니지만 2·4·6행은 3·3·5의 11음수로 이루어져 있고, 3·5행에서 각 행연간의 규칙적인 율격에서 몇 군데 변조를 보일 뿐이다. 이러한 각 행과 연간의 음수율은 <구작삼편>·<신대한소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고>는 총 2연으로 외견상 그 정형률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시인 듯하지만, 면밀히 검토해보면 각 연 대응행의 음수율이 보다 철저히 지켜져 있다. 그러나 각 행과 연간의 동음(同音)이나 유음(類音)의 배치법을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그 시적 형상력도 뛰어나 최남선의 초기 시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남선의 초기 시가 근대시에 이르는 한 과정으로서 서구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면, 이광수의 초기 시는 그 한 측면의 변모를 시도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갔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최남선이 거의 외형적인 음수율에만 치우쳐 직설적인 토로에 머물렀다면, 이광수는 음수율의 변화뿐만 아니라 대상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데에 기법적으로 어느 정도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말듣거라>에서도 ‘님’의 이미지는 역사의식이 보다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현상윤의 <웅커리로서>도 신체시형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강렬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러한 감정이 전혀 겉으로 표출되지 않은 채, 내적인 갈등으로 심화되어 형상화된 점이 특색이다. 요컨대, 현상윤에 이르러 시적 기교가 최남선이나 이광수에 비하여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전개되어갔다고 할 수 있으며, 1915년을 전후하여 김억·최승구·김여제·돌샘(石泉) 등에 이르면 자유시의 유형에 훨씬 가까운 산문시형이 시도되고 있다. 또한 개아(個我)의 서정성에다 발상법을 두고 있어 근대시에 이르는 전환기에 중요한 시적 변모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33    할만할 때 우리 문학을 살리자... 댓글:  조회:5307  추천:0  2015-07-04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론 / 채 영 춘                   “단군문학상 !?” 필자는 처음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었다. (조선반도도 아닌 우리 중국에서, 그것도 조선민족의 시조를 문학상이름으로 모시고 거기다 어마어마한 상금을 건다?!)     십여년 전 울며겨자먹기로 동냥해온 해외후원금으로 “중국 조선족출판문화대상”시상식을 치르면서 아무때든 우리 돈으로 보란듯이 조선족문화대상을 세우고말리라는 소망을 품어왔지만 결국 이루지 못한 유감을 안고 퇴직했던 필자였으니 그 감동이 클수 밖에 없었던것 같다. 그런 리유때문에 필자의 관심은 문학상 설립자체보다도 이 장거를 일궈낸 장본인이 더 궁금할수 밖에 없었다.      현재 길림공상학원 당위서기로 임직하고있는 신봉철씨가 이번 장거의 주요공신임을 알게 되면서 반사적으로 떠오른 그의 말이 있었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빨리빨리 해야죠”     여러 문화행사를 후원하면서 버릇처럼 내뱉군하던 그의 “량 심선언”이다.  이 “량심선언”을 받들고 그가 지금까지 조 선족문화사업에 후원해준 돈만 적으만치 수백만원에 달하는데 그 거금대부분은 그의 인격매력에 감화된 한족기업인친구들이 내놓았다고 한다. “단군문학상”은 그가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해낸 또 하나의 쾌거가 아닐수 없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이는 지도강위에 있는 모든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대전제이다. 지도자들은 크고작게 권 력의 중심에 있으면서 자신의 그 어떤 의도나 뜻을 무난하게 현 실화시킬수 있게 되여있다. 직위가 높을수록 그 가능성은 높아질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지도자의 봉직시간은 제한되여있다. 일단 퇴직하면 모든게 달라진다. 때문에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자기의 “의도와 뜻”을 “빨리빨리” 실천하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리치일것이다. 문제는 어떤 ”의도와 뜻”인가 하는데서 루트가 달라진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민족문화의 중흥을 위해 매 하루를 단위로 계산하고 점검하면서 로심초사하는 이들, 우리주변에는 이런 분들이 많다. 민족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죄다 접고 당당하게 발벗고나서 뜻했던 일을 성사시키고마는 그 정치적용기에  후원자들이 구름처럼 모인다. “이제 내가 정년퇴직할 시간이  615일이 남았다”. 우리 민족을 위해 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것을 안타까워하며 달음박질해 일하는 신봉철씨와 같은 민족지도자들이 많을수록 우리 민족의 문화적 삶은 풍요로울 것이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군자의 틀은 다갖추면서 은밀하고 점잖게 랑탄호연 (狼吞虎咽)하며 부정축재에 혈안이  된 자들도 로출되면서 눈살을 찌프리게 한다. 나름대로 이들 또한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웠울 것이다.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아까운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 무위도식하는 민족간부들도 더러 있다. 이런 분들은 사실 상당한 능력과 수준, 그리고 다년간 쌓아온 인맥관계까지 갖고있어 맘만 먹으면 우리민족문화의 난제들을 풀어나가는데 결정적 변수로 될 요인이지만 여러가지 원인으로 몸을 사리거나  아예 뒷짐을 지면서 소중한 인적자원의 고사(枯死)를 초래 하는 안타까움을 남기고있다.  이번에 설립된 “단군문학상”이 민간차원에서 발상되고 또한 조선족산재지역 민족지도간부의 통 큰 용기로 추진됐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올 년초에 인구 9100명중 까자흐족이 3700명, 인구당수입이 1900원에 불과한 감숙성 아크싸이 까자흐자치현에서 40만원 거금을 걸어 국가급 까자흐문학상을 설립하고 일부러 북경에 가서 거창한 시상식을 한것이나,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당당하게 까자흐말로 연설한 땅딸막한 까자흐족현장”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조선족문화의 중흥을 위한 것이라면 주춤하거나 겁날게 없이 팔을 걷고 나서는것이 전국 유일 조선족자치주 민족간부들의 자세가 돼야하지 않을가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이는 “연변조선 족자치주를 더 빨리, 더 좋게 건설하라”는 등소평동지의 간곡 한 부탁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조선족 지도 간부들이 모두 “재직에 있을 때, 할만할 때” 우리 민족의 대업을 위해 통큰 일들을 하나 둘 “저질러”나간다면 중국 조선족의 앞날은 찬란할수 밖에 없다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맑스가 1835년 트리르중학교졸업시험작문에서 쓴 다음의 글은 18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우리모두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만일 우리가 누구보다도 가장 많이 일할수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면 우리는 그 중하에 짓눌려 쓰러지지는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전체를 위한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보잘것없는 한정된 리기적인 기쁨을 맛보지 않을것인바 우리의 행복은 수백만 사람의 것으로 될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위업은  고요하고도 영생불멸의 삶으로  남을것이다.”     2015년  6월  8일  
232    언제면 언어의 규법화가 될런지... 댓글:  조회:7171  추천:0  2015-07-01
        중국조선말(中國朝鮮—)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재중동포 사이에서 사용되는 한국어를 가리킵니다. 지린 성, 헤이룽장 성, 랴오닝 성의 이른바 ‘동북 3성’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조하세요.    개요    - 언어 규범  중국조선말에 관한 망라적인 언어 규범은 동북3성조선어문사업협의소조(중국어 간체: 东北三省朝鲜语文工作协作小组)가 1977년에 작성한 ‘조선말규범집’이 처음이다. 이 규범집에는 표준발음법,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에 관한 규범이 수록되었다. ‘조선말규범집’은 어휘에 관한 규범을 덧붙이고, 일부를 가필 수정한 개정판이 1984년에 만들어졌다.[1]    중국조선말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북한’)의 언어에 규범의 토대를 두어 왔다. 그러한 경위가 있어 중국조선말의 언어 규범은 모두 북한의 규범(조선말규범집 등)과 거의 동일하다. 따라서 만약에 이 규범을 가지고 중국조선말의 ‘표준어’를 규정할 수 있다면 그 ‘표준어’는 북한의 문화어에 한없이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중수교 이후에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진출한 기업이나 한국어 교육 기관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남한식 한국어의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 지역 차이  현실적으로 조선족 사이에서 사용되는 조선어는 균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다양하다. 조선족은 조선 시대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에 걸쳐 조선반도북부를 중심으로 조선반도각지에서 만주지역으로 이주했다. 일반적으로 함경도 출신자들은 두만강 건너편인 길림성으로 가고, 평안도 출신자들은 압록강 건너편인 료녕성으로 가는 경우 많았기 때문에 길림성에서는 함경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고 료녕성에서는 평안도의 방언적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다. 한국어의 방언과 각 지역의 관계는 대략 아래와 같다.    동북(함경도) 방언 :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흑룡강성 목단강 시 등. 연변의 두만강 연안 동부 지역은 육진 방언이다.  서북(평안도) 방언 : 료녕성 중부,동부;길림성 남부.  동남(경상도) 방언 :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제외한 길림성 기타 지방, 흑룡강성 서북부와 서남부,료녕성 일부.  중부 방언과 서남(전라도) 방언은 큰 사용 지역이 없고 동북 각성에 산재하고 있다. 중부 방언 지역으로서 길림성 유하현 강가점향 경기둔(吉林省 柳河県 姜家店郷 京畿屯)을 들며, 서남 방언 지역으로서 길림성 교하현 천북향 영진촌(吉林省 蛟河県 天北郷 永進村)을 들 수 있다.[2]제주방언등 다른 방언의지역은 형성되지 않았으나 중국이주1세중에서 가끔 포함되여 있다.    특징  음운, 문법, 어휘 각 분야에 있어서 바탕에 깔린 한국어방언에 따라 지역마다 방언적특징을 가진다.    음운  서남 방언 지역에서는 단모음 [ø](ㅚ)와 [y](ㅟ)를 가지며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ɛ](ㅐ)와 [e](ㅔ)가 구별되지 않는다. 중국조선말은 일반적으로 한반도북부 방언의 영향력이 강하여 일부의 /ㅈ/, /ㅊ/, /ㅉ/이 /ㄷ/, /ㅌ/, /ㄸ/으로 나타나거나 모음 /i/, 반모음 /j/에 앞선 /ㄴ/이 어두에 올 수 있는 등 북부 방언의 특징들을 잘 간직한다.    또 동북 방언, 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변별적인 고저 악센트(이른바 ‘성조’)를 가지며 소리의 높낮이로 단어의 뜻을 구별한다.    문법  표준어의 ‘-ㅂ니까/-습니까’가 길림성 화룡시, 훈춘시(둘다 동북 방언 지역)에서 ‘-ㅁ둥/-슴둥’으로 나타나고 흑룡강성 태래현(동남 방언 지역)에서는 ‘-ㅁ니꺼/-심니꺼’로 나타나는 등 지역적특징이 있다.    또 통사론 차원에서 중국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있다.    전화를 치다 (전화를 걸다) < 중국어 간체: 打电话      어휘  어휘는 중국어의 영향이 아주 크며 적지 않은 어휘가 현대 중국어로부터 차용된다.    중국어 어휘를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차용 어휘.    판공실 < 중국어 간체: 办公室 (사무실)  그외의 차음현상: 중국어 발음을 따른 차용어. 성조의 탈락 등 조선어의 음운 체계에 맞춰 중국어 원음이 약간 변형된다.    땐노 < 중국어 간체: 电脑, 병음: diànnăo (컴퓨터)      추천해요1 HouseSoul 답변 고마워요 한국어의 방언인 중국조선말에 대한 모든 것    -중국에 살고 있는 재중동포들이 사용하는 말입니다.  -한국어 방언의 일종으로, 만주 연변지역과 흑룡강성 남부에서 가장 가까운 방언은 동북 방언이다. 이유는 이 지역 연변 조선족동포 대부분이 함경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기 때문. 다른 길림성이나 랴오닝성에서는 서북 방언계의 언어를 쓴다. 그리고 원래 조선에서 이주할 때 마을이나 친족 단위로 만주의 시골로 한꺼번에 이주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마을중엔 동네 전체가 서남 방언, 경기 방언, 동남 방언 등 특정지역 사투리를 쓰는 마을이 꽤 많다.    역사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연변에 조선족 자치구가 설치 되었고, 주은래가 총리로 재직 당시 "중국의 조선어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문화어를 표준어로 한다"는 조치로 북한의 문화어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렇지만 문화대혁명 당시에 중국 전역에서 수많은 문헌자료들과 문화유산들이 사라졌는데 연변지역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라서 많은 조선어 서적과 사진, 문화자료들이 대거 소실되거나 사라졌다. 당시 조선어로 된 책들 중 마오주의에 관련이 없거나, 한복 사진이 나오거나, 한글로 적은 편지가 나오기만 해도 조선 특무(간첩), 남조선 특무, 지방민족주의자로 몰려서 처벌받거나 조리돌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출처: 연변 문화대혁명, 10년의 약속.) 문화대혁명이 끝난 이후에는 이전에 사라졌던 책들이 다시 발간되는 등 조선어 서적의 발행량이 크게 늘기도 했다. 한 편으로 북한의 경제가 막장화되어가고, 남한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문법  어휘에선 북한의 문화어에 영향을 받아서 두음법칙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문법적인 면에선 중국어의 영향을 받기도 하다. 예를 들면, '전화를 걸다'를 중국어 打电话에서 유래된 '전화를 치다'하는 형태로 쓴다 하지만 90년대부터 남한과의 교류가 잦아지면서 남한 표준어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특히 연변쪽 조선어 티비와 라디어 방송의 아나운서의 발음과 표현이 상당히 한국화 되었다.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게 90년대 이후 한국문화를 접할수있게 되면서 어휘면에서 영향이 많이 받고, 한국에 많이 취업을 하게되면서 자연스레 많은 조선족동포들이 표준어를 접하게 되었고, 조선문책의 발행량도 수익성문제로 적어지는 바람에 한국서적에 많이 의존 할수밖에 없었다.   
231    愛... 댓글:  조회:5431  추천:0  2015-06-28
오픈지식 [ 2015년 07월 06일 11시 05분 ]     [ 2015년 07월 01일 07시 56분 ]  
230    퍼포먼스 = 행위예술 댓글:  조회:5097  추천:0  2015-06-26
              광고도 예술, 시. 흔히 퍼포먼스를 행위예술 [行爲藝術, performance]이라 합니다.      ->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행위.    실행 ·연기 ·연주 등의 어학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회화 ·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합니다. 신체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신체예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과정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해프닝 ·이벤트 등으로 불렸으나 점차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욕망을 연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로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그 전조를 미래주의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해프닝의 선구적 사례로서 1954년 J.케이지가 가졌던 《4분 33초》란 전위음악연주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연주회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의 소음을 채집하는 것으로 끝난 행사로서 그가 1962년에 나타나는 ‘플럭서스(Fuluxus)’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습니다. 해프닝은 연극의 형태로서 극장보다는 야외나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시연되며, 미리 기획된 연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는데, 1959년에 시도된 A.카프로의 해프닝이 이러한 예술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Y.클라인은 1960년 《인체측정술》이란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고 197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행위예술을 시도하여 이제 행위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최초의 해프닝이 시도되었고, 1970년에 김구림(金丘林)이 한강변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이벤트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정찬승 ·정강자 ·이건용 등의 미술가와 무세중(巫世衆) 등의 행위예술가에 의해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발표되었으며 초기에 해프닝 ·이벤트 등의 용어로 시도되던 퍼포먼스는 90년대 들어 탈장르현상과 맞물려 주로 젊은 작가들에 의해 빈번하게 시연(試演)되는 추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29    표절과 모방 댓글:  조회:5181  추천:0  2015-06-26
  표절     다른 사람의 글을 취하여 자기가 쓴 것처럼 행세하는 행위.   이러한 사기행위는 문서위조죄 내지 저작권침해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저작권법 위반이 된다. 그러나 단지 똑같은 사상(思想)이 다른 어구로 표현되었을 경우에는 계약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아주 똑같은 표현일지라도 그것이 독자적으로 얻어졌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에는 침해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     이것은 백과사전에서 나오는 표절에 대한 정의.     모방     심리학에서 다른 사람이나 동물의 행위를 보고 자극을 받아 비슷한 행위로 재현하거나 실행하는 일.   본질적으로 모방에는 모방자의 주의와 반응을 인도하는 모델이 있다. 기술적(記述的)인 용어로서 모방은 넓은 범위의 사회적 적응을 말한다. 수동적으로 학습된 사회적 행위를 재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습관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행위는 물론, 다른 사람이 하품할 때 따라서 하품을 하는 따위의 일상적 경험까지도 모방에 포함된다.    표절의 기준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표절이란 다른 사람의 저작으로부터 전거를 충분히 밝히지 않고 내용을 인용하거나 차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반면에 저작권 침해는 다른 사람의 저술로부터 상당한 부분을 저자의 동의 또는 이용허락 없이 임의로 자신의 저술에서 사용한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지식의 확산을 위해 공정하게 사용될 수 있는 정도를 넘는 경우라면 설사 전거를 밝혔더라도 저자의 동의가 없었다면 저작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표절도 출전을 밝히기만 하는 것으로 전부 방지되는 일은 아니다. 자기 이름으로 내는 보고서나 논문에서 핵심 내용이나 분량의 대부분이 남의 글에서 따온 것이라면 출전을 밝히더라도 저작권 침해 또는 표절이 될 수 있다. 남의 글이나 생각을 베끼거나 짜깁기해서 마치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공표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절이란 흔히 지식재산에 대한 도둑질 또는 절도로 불리지만, 사법적인 의미에서 형사 문제로 다루는 관행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표절이 형사상 범죄로 간주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표절에 해당하는 행위가 때때로 저작권 침해, 불공정 경쟁, 도덕적 권리의 침해 등과 같은 명목 아래 법정에서 다루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미술 등 창작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실질적 유사성이 저작물의 종류 또는 그에 포함된 아이디어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표절 또는 무단 복제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례별로 인용 정도와 범위, 표현 방법 그리고 전문 분야에 따라 그 기준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 곧 문학작품 등 특정 저작물의 저작물성 및 창작성, 나아가 저작권 침해 여부 등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저작물을 통해 개별적으로 살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228    다시 읽는 우리 문학 3 댓글:  조회:4834  추천:0  2015-06-22
  《다시 읽는 우리 문학》(3)《시인 주선우를 다시 읽다》세미나 연변도서관서 개최                   6월 5일 오전, 해란강닷컴 주최,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협조, 연길고려원, 연길시한규닷컴휴한회사 협찬으로 진행되는 《다시 읽는 우리문학》제3회에서는 기구한 운명의 천재시인 주선우를 재조명하였다.       시인 주선우는 1924년 조선 평양 사암리에서 출생, 학도병으로 일본군에끌려갔다가 탈출하여 1944년 11월 길림 통화지구의 조선의용군1지대에참군, 의용군 선전대 편집조 조장 등직을 맡고 《긴급임무》, 《특수임무》, 《돌격임무》를 수차 완성하여 동북해방전쟁이 결속될무렵 사단정치부로부터 대공 1차를 수여받았다.   해란강닷콤 고문 채영춘       1957년 4월에 출판된 그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들》이 그의 인생을바꾸어놓았다. 하루아침에 정치권리와 창작권리를 박탈당하고 그를 따랐던 동료작가와 문학도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주선우는 《우파분자》의 모자를 쓴채 조선으로 망명을 떠났고 조선에서도 여의치 못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중병에 걸려 1986년 다시 연길에 돌아왔다. 하지만 안식처가 없이 길림, 할빈 등지로 떠돌다가 1987년초 할빈에서 기구한 운명을 마쳤다.   평론가 최삼룡       세미나에서 연변작가협회 최국철 주석을 비롯하여 학계 많은 지성인들이 자리를 빛내주셨다. 부주석 석화 (잊지 말아야 할 시인—주선우)  연변대학 교수 우상렬 (인성문학의 대표시인-주선우), 평론가 최삼룡 (주선우 시인의 시적가치를 론하다) 등이 주선우시인의 생평, 작품, 문학성과 등을 다각적으로 조명하였다. 평론가 장정일은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조명했다는 부분이 감동이고 문학을 배우는 초심을 얻고 가는것처럼 기쁘다고 말했다. 이외, 시인 림금산, 한규닷컴 총경리 김향, 칼럼작가 주청룡등이 소감을, 연변주당위선전부 전임 부부장 채영춘이 축사와 소감, 총화발언을 하였다.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우상렬 교수   이번 행사의 의미는 시인 주선우를 문학적 각도로 조명한건 중국조선족 문학사에서 첫 공식적인 세미나이고 주선우의 작품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것 또한 중국 해란강닷컴에서 최초로 기획한 세미나였다.           중국조선족소년보사 림금산 주임     주선우의 시를 읊고있는 중앙인민방송국 아나운서      주선우의 시를 읊고있는 중앙인민방송국 아나운서      칼럼작가 주청룡     한규닷컴 총경리 김향   원 연변일보 부주필 장정일     시인 석화     해란강닷콤 총편 주성화     연변작가협회 정승권     소설가 리승국   길림신문 기자 김태국    
227    최삼룡 평론가 저서 출간 댓글:  조회:6082  추천:0  2015-06-22
최삼룡 저서 “해방전조선족문학연구” 정식 출간                   평론가 최삼룡선생이 집필한 “해방전조선족문학연구” 출간식이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과 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의 주최로 지난 4월 22일 오전 연변예술문화중심 회의실에서 있었다. 이날 회의에는 북경, 길림, 흑룡강 등지에서 온 민족문화 연구 전문가들과 연변 조선족 문단의 지성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연변문화예술연구중심 리임원주임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출간식에서는 최삼룡선생이 현장에 찾아온 지인과 팬들에게 일일이 싸인한 책을 증정, 현장에서 직접 연변도서관에 도서를 헌정했다.       “해방전조선족문학연구”에는 최삼룡선생이 12년간 해방전 만주 조선인문학을 발굴, 정리하는 과정에 짬짬이 쓴 글들 이를테면 론문, 해설문, 그리고 해방전 조선인문학에 대한 지정학적인 고찰로 쓴 글들이 수록돼있으며 “론문모음(8편)”, “세월에 묻힌 겨레의 기억(12편)”, “문학기행(7편)”, “해제모음(7편)” 등 네부분으로 나뉘였다.       최삼룡선생은 인사말에서 책출간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에 이어 책 출간에 아낌없는 도움을 주고 독려해준 지인들에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장정일 평론가는 “문화적 기억을 불러온 장거”라는 서평에서 “최삼룡 선생의 자료수집과 연구의 방대한 작업은 우리의 얼을 우리 민족력사 전일체의 사상으로 안내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있다. 독자들은 누구나 우리가 사는 고장, 옛 간도와 만주는 결코 력사도 교양도 언어도 정체성도 없는 미개한 땅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한세기동안 이민의 삶을 개척하고 자유와 행복을 갈망하면서 문명창조의 피땀을 흘렸던 사랑스럽고 자랑찬 대지였음을 느끼게 될것이다.”고 설명했다.     연변대학 리광일 교수는 “최삼룡 선생의 연구범위는 해방후 조선족 문학에서 해방전 문학으로 확장, 조선족 문학연구에 있어서 귀감이 되고 후학들에게 가치있는 문학자료와 연구성과를 제공해주어 문학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수 있다”고 연설, 북경 사회과학원 장춘식 선생은 “조선족 문단의 ‘로익장’, 조선족 문학연구 특히 해방전 우리 문학 연구가 아직도 부진한 상황에서 최삼룡 선생의 연구는 더욱 값있는 작업이다. 우리 후배연구자들에게는 귀감이 되고 그 업적들이 후속연구에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주고있다”고 해제에 기록했다.     연변작가협회 최국철 주임은 축사에서 “우리 민족의 공동의 문화유산을 발굴하신 로고에 작가협회를 대신해 감사, 우리 문단에 좋은 기초적인 연구자료로 제공되고 있다”며 최삼룡선생의 높은 문학적인 사명감을 높이 평가했다.     한편 1939년 룡정시에서 출생한 최삼룡선생은 1963년 연변대학 어문학부 조선언어문학 학부를 졸업, 10년간 교편을 잡다가 연변교육출판사 부주필, “문학과 예술” 잡지사 주필, 원 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 소장 등 직을 력임했다. “중국조선족문학사”3권, “각성과 곤혹”, “김파론”, “항일가요”, “해방전 아동문학” 등 20여권의 저서를 출판, 100여만자의 문예평론 및 론문을 발표했으며 길림성정부 “장백산”문예상,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도라지”문학상, 한국문화부 우수학술도서상, 전국 소수민족문예연구 우수론문상, 국가 민족사무위원회 우수학술 성과상을 비롯해 20여차 수상한 경력이 있다.       해란강닷콤 박홍화/글, 사진      
226    假眞 오랜만에 장편 출간 댓글:  조회:5374  추천:0  2015-06-22
가진 소설가 장편소설 '홍위병(红卫兵)' 출판               [서울=동북아신문]중국 조선족의 저명한 소설가 가진(본명 장지민)의 장편소설 '홍위병(红卫兵)이 지난 2월 초에 신세림출판사에서 출판 발행됐다.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예전에 홍위병이었던 관계로 역사적 사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나, 등장인물들의 인격이나 인품 등에 대해서는 픽션적 요소가 적잖이 가미되었다. 특히, 여 주인공의 삶이 당시 홍위병의 꿈과 이상을 잘 대변해 준다.(이시환 문학평론가)   소설에서 작가는, "자본주의 대세 앞에 물거품이 돼버린 홍위병의 염원! 만민 평등세상을 꿈꾸며 ‘주자파(走資派 : 자본주의 노선을 추종하는 사람)’를 타도했건만 세월이 흘러서 그들보다 더 자본주의 물이 배어있는 아들을 확인하는 순간, 권총으로써 태양혈을 명중시켜 하나뿐인 아들을 죽이고 그 자리에서 자신마저도 죽고 마는 영홍! 즉, 마지막 남은 홍위병"의 모습을 잘 그리고 있다. 그녀의 최후가 독자들의 눈시울 적시게 하고 있다.        ▲ 가진(본명) 소설가 이시환 문학평론가는 "가진(假眞)의 장편 『홍위병』은, 당시 연변 지역 홍위병 핵심인물이었던 작가가 역사적 사실로서 있었던 당시의 사건들을 그대로 끌어들였고, 당시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였던 무산계급을 위한 만민 평등세상을 구현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미완으로 끝나버린 현 시점에서 변질되고, 오해되었던 자신들의 꿈이었던 홍위병의 이상(理想)을 한 여 주인공을 통해서 형상화시켜 놓았다고 보아진다."며, 이 작품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었고, 변질되기도 했으며, 또 오해되었던 ‘홍위병’에 대한 진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리라 믿는다."라고 논평했다.    정인갑 전 청화대학교 객좌교수는 "저자(著者)와 같은 문혁(文革) 세대의 사람, 역시 중견 홍위병이었던 나는, 가진(假眞)의 장편소설 『홍위병』을 감명 깊게 읽었다. 문혁과 홍위병 운동은 인류역사상 전대미문, 후대 불가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한 깊은 연구는 다음 세대에 가서야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독자들은, 문혁이 중국조선족 흥망성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기를 바란다."라고 평을 달았다.   한편, 장지민(필명 가진) 소설가는 1948년 1월 6일 생, 중국 길림성 훈춘시 사람으로, 전 연변인민출판사 부사장, 전 연변작가협회 상임부주석 겸 비서장, 전 연변문학사 사장 겸 총편집 등을 역임하였고, 현 중국 작가협회 회원, 현 중국 소수민족작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25    휘파람 작곡가 댓글:  조회:5400  추천:0  2015-06-21
휘파람 작곡가, “멜로디는 휘파람을 타고”                     작곡가라고 하면 본디 피아노앞에 마주앉아 세련된 기교로 선률을 타며 창작에 심취해있는 뒤모습이 연상되는게 다반사다. 하지만 오늘 만난 작곡가는 그 흔한 상상을 보란듯이 깨부수며 색다른 모습으로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흥미로운 취재가 예상되는 오늘의 주인공, 작곡가 최동혁이다.         자신을 “휘파람 작곡가”라 소개하는 최동혁선생, “혹시 히트곡 제목이 ‘휘파람’ 이신가요?”기자의 질문에 너털웃음과 함께 연신 손사래를 친다.   “저의 유일한 악기가 바로 휘파람이올시다. 휘파람 불면서 창작한다고 모두들 휘파람 작곡가라 불러주더군요.”     작곡가에게 악기가 없다?! 모든 음악의 탄생 근원지는 당연히 각양각색 악기이다. 하지만 최동혁선생에게 악기는 단지 사치품에 불과, 부질없는 존재란다. 학창시절에는 트럼본을 전공하고 입대해서는 손풍금까지 마스터했지만 정작 그의 창작생애에는 그 어떤 악기도 무용지물이 돼버린다. 휘파람 하나만으로 시간 불문, 장소 불문, 어디서든 자유자재로 창작 열의를 불태울수 있기때문에 휘파람만큼 편리하고 친근한 악기가 없단다. 휘파람타고 창작된 노래만 무려 200여곡, 그중 수십수의 노래가 성, 주, 시급 상을 받을 정도로 그는 가요계의 뚝심있는 작곡가이다.     휘파람에 얽힌 창작 비하인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가장 큰 인기를 끈 작품으로 그는 황춘옥 선생이 가사를 쓴 노래“눈꽃”을 꼽았다. 최동혁선생의 처녀작이자 대표곡이기도 하단다.     황춘옥 선생으로부터 “눈꽃”의 가사를 넘겨받은 최동혁, 가사를 읽고 또 읽고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가사에 서린 작사가의 감정 파악에 나선다.       하얀 눈꽃송이에 담겨진 하늘의 축복과 하얀 눈밭을 노니는듯한 성스러운 감정이 잠든 그의 뇌를 깨운다. 항상 그랬듯이 두뇌가 풀가동되면 휘파람이 자동반사마냥 두 입술사이를 뚫고 미묘한 음부를 뱉어낸다. 만물이 곤히 잠든 고요한 야밤에 한줄기 휘파람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눈발처럼 그렇게 소리없이 노래 “눈꽃”이 탄생된다.       그렇게 탄생된 노래 “눈꽃”은 매주일가, 요청무대를 통해 방송을 타면서 널리 알려졌고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당대 히트곡으로 불려졌지만 정작 콩클에서는 3등상밖에 못받았다며 못내 아쉬운 속내를 비추었다.     작곡가의 눈에는 세상 모든 만물에 멜로디가 보이는상 싶다. 아름다운 연변의 산과 들, 세계 명소 장백산을 끼고도는 우월한 지리적 위치,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품고있는 연변의 산과 들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음악이라는 우아한 정취를 가미해 뭇사람들에게 펼쳐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 최동혁, 연변의 구석구석, 방방곡곡의 아름다움을 직접 눈으로 스캔하며 오선보에 차곡차곡 멜로디를 그려간다. 역시 그만의 트레이드마크인 휘파람이 창작 전반과정을 지배했다.     그렇게 탄생된 “연변의 노래” 멜로디에 최근갑선생의 노래말이 절묘하게 어울리며 화룡점정의 거작을 이뤄냈다. “연변의 노래”는 연변인민들의 소박하고 티없는 성품을 구가하고 연변인민들의 애국심을 절절하게 담아냈으며 번영발전하는 연변, 부유하고 안락한 연변의 변모를 쾌활한 절주와 아름다운 가사에 절묘한 화합으로 합체시키면서 당대 연변 가요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젊은 시절에는 가볍게 즐길수 있는 빠른 절주의 쾌락적인 노래가 많이 만들어졌다면 요즘 들어서는 창작느낌이 점점 더 영글어져간단다. 사회실천에 도가 튼 노장들의 삶의 이야기가 곡에 녹아들었다는게 최동혁 선생의 주장이다.       노년에도 식을줄 모르는 창작열정     이쯤되니 최동혁선생의 휘파람 실력이 내심 궁금해진다. 라이브로 휘파람표연을 요청했다.휘파람 작곡가가 휘파람을 거부한다. 머리가 갸우뚱해진다. 이유가 궁금해진다. 아하~ 요즘들어 틀니를 새로 해넣는 바람에 틀니사이로 바람이 새버리면서 휘파람이 전처럼 매끄럽지가 않단다. 어설픈 휘파람으로 실망을 안겨줄수 없다며 한사코 거부한다. 비록 잠간 휘파람을 잃었을지언정 이미 뇌리에 차곡차곡 쟁여둔 휘파람소리가 있어 작곡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거듭 강조하는 모습에서 창작에 대한 불타는 열의가 돋보인다.       집안 한쪽벽에 줄느런히 진렬된 각종 콩클 트로피와 증서들, 휘파람 작곡가의 창작생애가 고스란히 슴배인 훈장들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 “새연변닐리리”는 공화국 창건 60주년에 3등상을 받아안고 5000원의 상금까지 받은바 있다. 또한 “축배의 노래”는 제1회 중국조선족 축배가 응모서 3등상, “고향제비”는 제1차 정묵컵 가요가사 콩클서 2등상, “명절의 선물”은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40돐 예술제에서 2등상, “진달래마을”은 2006년도 진달래컵 가요공모활동서 영광스럽게 1등상을 받아안았다. 헤아릴수 없는 많은 상장과 트로피들, 그리고 차곡차곡 곱게 육필로 정리된 악보까지, 프로정신이 돋보이고 풍성한 성과가 일목료연하게 눈에 차오른다.     평생을 작곡가로 살면서 집안일은 뒤전이였던 최동혁, 집안살림과 아이들 교육은 오롯이 나약한 안해의 몫이였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한마디, 원망한마디 없는 안해가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는 최동혁 선생, 더 늦기전에 안해만을 위한, 안해에게 바치는 노래 한수 짓는게 작은 소망이란다.     거꾸로 가는 연변 작곡계, 대책은?   연변에서 작곡가로 산다는건 과연 어떤 느낌일가. 타국, 타지방의 작곡가들에 비해 연변에서 작곡가로 산다는건 그닥 폼나는 일만은 아니란다.     국내 발달한 도시나 한국의 경우를 볼 때 가수 혹은 예술단체측에서 작곡가, 작사가를 찾아다니며 곡을 만들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부탁하고 청탁하는게 다반사다. 작사, 작곡가는 히트곡 한곡만 발표해도 감히 상상할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개런티를 챙길수 있다.따라서 창작일군들의 적극성도 자연스레 상승되고 책임감도 높아질수밖에 없단다.     이에 반해 연변의 가요계는 갑과 을의 위치가 완전 뒤바뀐 희한한 풍경이 연출된다. 작사,작곡가가 창작한 곡을 들고 직접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반주테잎을 만들고  록음하는건 당연지사, 발바닥에 물집 생기도록 뛰여다니며 가수를 섭외하고 가수에게 수고비까지 챙겨주랴 노래 한곡을 발표하기까지 1000~2000원의 사비를 털어야 하는게 현재 가요계의 요상한 현실이란다. 그나마 콩클같은데서 입상해 상금이라도 받으면 본전벌이요, 입상에 실패할 경우에는 말 그대로 본전벌이도 안되는 믿지는 장사로 남는다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허다한 작사, 작곡가들은 좋은 작품을 창작하고도 발표할 엄두조차 못내는게 일쑤이고 수많은 명곡들이 한번 불려지지도 못한채 집구석에서 한더미의 페지로 전락돼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한 현실이 하루빨리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를 희망한다는 최동혁선생, 열심히 일한만큼만의 보상만이라도 보장된다면 아마 연변 가요계가 더욱더 알찬 성과와 발전을 거듭할거라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최동혁선생의 바램, 아니 모든 창작일군들의 바램처럼 연변 가요계의 새로운 변화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글/사진 박홍화 기자      
224    우리 말 어디서 왔지??? 댓글:  조회:4927  추천:0  2015-06-20
[ 2015년 06월 30일 08시 08분 ]   ---(위대한 어머니) 우리말은 어디서 왔는가  이란 인도 태국에서 찾아낸 한국어의 흔적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0 여년 전 UN에 근무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언어자료를 비롯해 민속, 음악, 역사 및 고고학 자료, 설화 등을 수집해왔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확인해보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존재케 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개의 학자들은 한반도의 주도 세력이 북방 출신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그 북방 어딘가에 지금도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며 말도 비슷하게 구사할 것이었다.  나는 특히 언어학적 측면에서 우리 말과 비슷한 언어를 추적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우리는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 그러니까 한국인인 나를 존재케 한 이 민족의 원류가 북방에서 남하한 알타이어족이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당연히 알타이어족의 주류를 이루는 몽골, 터키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언어학적으로 우리 민족과 한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것이다.  우리말과 너무나도 다른 알타이어  그래서 필자는 먼저 그들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해보기 위해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유사성, 특히 두 언어의 기본 어휘(원시 어휘)를 비교 조사해보았다. 이 조사는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까마득한 옛날 옛적의 사람들도 사용했음직한 원시 어휘를 주로 비교 대상으로 선택했다.  언어학자들은 지구상에 사는 어느 부족이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기본적인 낱말(하늘, 해, 달, 나, 너, 꽃 등)이 있으며 이 낱말은 270개 가량 된다고 한다. 인류학에서는 이 기본 낱말들을 일컬어 ‘스와디시 차트(Swardish Chart)’ 라고 부르는데, 이 스와디시 차트에 속하는 낱말들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좀처럼 변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1000년 동안 겨우 14% 정도 변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알타이어계인 터키나 몽골 사람들과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다면 분명 많은 수의 기본 낱말이 같거나 비슷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알타이어와 우리의 원시어휘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은 알타이어계인 터키어의 원시 어휘(괄호 안)와 우리말의 어휘를 비교한 것이다.  해(기네쉬), 햇빛(귀네쉬으쉬으), 달(아이), 별(열더스), 하늘(그억유수), 바람(뤼스갸르), 구름(부르트), 날(균), 밤(기제), 아침(사바), 비(야므르), 땅(예르), 흙(톱브라크), 돌(타쉬), 눈(雪 카르), 물(수; 중국어 水와 같음), 바다(데니스), 꽃(치채키), 나무(아치), 나(벤), 너(센), 새(구쉬), 곰(아이어)…  다음은 어법(語法). 터키어는 토씨(助詞)가 있는 교착어라는 점에서는 우리말과 유사했지만(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은 교착어다), 다른 어법은 우리말과 상당히 달라서 도저히 같은 계통의 언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터키어는 우리말과는 달리 명사의 토씨가 격변화를 하고, 동사도 격에 따라 어미가 달라진다.  다음은 동사의 경우다. 가다(gitmek)의 단수형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참고로 500개가 넘는 터키의 기본 낱말 중에서 어렵게 찾아낸, 우리말과 비슷한 것들을 두 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후 필자는 위에 예로 든 ‘이른’이나 ‘새벽’이란 낱말도 오직 터키어와만 유사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알타이어가 아닌 아리안어(Arian)에서 찾아낸 말도 우리 낱말과 비슷함을 발견했다. 우리말의 ‘이른’은 아리안계 영어인 ‘얼리(early)’와 발음과 뜻이 비슷하며, 우리말 ‘새벽’은 아리안계 아랍어인 ‘사바하’와 유사하다.  실제로 터키족은 옛날 옛적 이웃나라에 가서 용병(傭兵) 노릇을 많이 했기에 오늘날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60% 이상이 아리안어족의 나라에서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말과 유사한 터키어 낱말이 과연 터키족 고유의 말인지는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 말과 몽골어의 경우  이렇게 터키에서 우리 조상들의 언어적 흔적을 찾지 못한 필자는 몇 년 후 알타이어의 종주국 격인 몽골을 찾아가서 조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필자에게 참담한 실망만 안겨주었다.  몽골 말은 우선 터키어처럼 발음부터가 생소했다. 목구멍에서 토해내듯 하는 독특한 발음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배우는 것은 세계 어느나라 말을 배우는 것보다 몇 곱절 더 힘들 것이다. 필자는 수십 번 반복해서 연습했지만 어떤 발음은 끝내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또 기본 낱말을 비교하여 보아도 후세, 특히 고려말 100년 가까이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차용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보통 어휘 이외에는 도무지 유사한 기본 어휘가 없었다. 만약 몽골족이 우리 민족과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다면 발음이 달라도 그렇게 다르고 또 어휘와 어법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상식 선에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엉덩이에서 보이는 ‘몽골반점’을 들어 우리 민족과 몽골 등 북방계 민족의 인종적 공통성을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는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부아시아 종족에서도 일반적으로 몽골반점이 있다. 여하간 몽골어 중 어렵게 찾아낸, 우리 말과 비슷한 어휘(기본어휘) 몇 개를 골라 여기에 소개해 본다 (그러나 이 어휘의 유사성도 완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말과 비슷한 몽골 어법은 겨우 4∼5개다. 이를테면 토씨가 있고, 모음조화 현상이 있으며, 관계대명사가 없다는 것 등인데, 이런 특징은 동양계 언어로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어서 몽골 말을 우리 말과 같은 계통의 언어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 학계에서는 토씨가 있는 교착어적 어법이 마치 우랄-알타이어의 특징이고 우리말도 교착어기 때문에 알타이어족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언어 중 50% 이상이 토씨가 있는 교착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알타이어족이 아니라는 미얀마어, 네팔어, 티베트어, 남부 인도어, 스리랑카어, 파키스탄어, 아프가니스탄어 모두 토씨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그들의 일부 토씨는 알타이어보다 훨씬 우리의 것과 유사하다.  중요한 어법(語法)만 따져보아도 그렇다. 일본어, 길약어, 라후어 등은 20개 이상이 우리말과 같고 심지어 인도의 드라비다어마저도 10개 정도가 같다. 이런 마당에 유사한 것이 겨우 4∼5개밖에 발견되지 않는 알타이어족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라니!  그 동안 우리나라의 몇몇 학자들이 “한국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한다”고 주장한 핀우그루학회(핀란드 헬싱키)의 알타이어학자 람스태트(Ramstat)의 초기 가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비판 없이 정설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알타이어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필자는 훗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까지 찾아가 조사했지만 우리 조상들이 남겼을 언어적 흔적은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과연 우리 민족의 언어적인 유사성은 어디를 찾아가야 만날 수 있을까?  ‘불’이란 낱말을 추적하라  나는 지금까지의 가설을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조사해보기로 했다. 먼저 기본어휘 가운데서도 가장 원시어휘라 할 수 있는 ‘불’이란 낱말을 가지고 추적을 해보았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만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인간은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될 수 있었을 만큼, 불은 인류역사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고대인들은 불로 인해 비로소 추위를 면하고, 음식을 구워 먹고,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던 말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당연히 ‘불‘이라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불’을 오늘날의 우리처럼 ‘불’이라고 발음했을까 하는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오늘날의 불과 비슷하게 불, 벌, 부리, 비리라고 불렀을 개연성이 발견되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전인 원삼국(原三國) 시대의 지명이 대개 불(火)을 의미하는 ‘비리’(학계 일부에서는 평야를 지칭한다고 주장함)로 불렸고, 그 이후 삼국시대에도 ‘부리’나 ‘벌’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후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옛 지명이나 인명, 관명 등 가운데 상당수가 ‘불’이란 낱말과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들어보자.  ●부리(夫里): 우리나라 옛 마을이나 지방의 이름  ●해부루: 고구려의 주몽 전설에 나오는 부여국의 왕 이름  ●불리지: 기원전 5,6세기경 북중국에 있었다는 ‘불리지국’의 건국자  ●발해(渤海): ‘발(渤)’도 ‘불’로 읽어야 한다.  ●평양(平壤): 옛날에는 ‘펴라’로 발음했다.  불을 나타내는 말 '풀', '푸르', '푸르', '푸라'등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된다.  ●낙랑(樂浪): 역시 ‘퍼라’로 발음했다.  ●패수(貝水): 이 또한 ‘펴라’로 읽었다. 대동강의 옛 이름  ●부여(扶餘): 우리 민족이 세웠다는 나라이름. 지금의 만주 땅에 있었다.  ●패리: 여진족의 벼슬 이름  ●비리: 지금의 시베리아 동남쪽에 있었던 나라. 길리약족 거주지로 추정  이외에 불을 뜻하는 또다른 말로 ‘아’도 있었다. 아궁이(불구멍), 아오지(불붙는 흙, 오지는 흙을 의미함)에서 보듯이 우리의 일부 조상들은 불을 ‘아’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런 작업을 마치고 지구상에서 ‘불’이란 낱말을 죄 찾아보았다.  불가사의하게도 우리말 ‘불’은 알타이어인 몽골어와는 전혀 유사하지 않은 반면 인도-아리안어와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친근 관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 ‘불’ 또는 ‘아’라는 말은 알타이계 언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인도-아리인계 언어에서 깊은 인연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불’이란 낱말은 유럽에서 소아시아를 거쳐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서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관절 어디에 사는 누구였을까?  ‘나’와 ‘너’라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나’와 ‘너’라는 인칭대명사도 아주 오래 전부터 자기와 타인을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하였을 것이다. 즉 우리 조상들이 처음 말이라는 것을 사용했을 때 생겨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본 낱말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낱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도 사용하는 ‘나’와 ‘너’라는 낱말은 과연 이 세상 어느 민족의것과 유사할까? 우리가 사용하는 말 ‘나’와 ‘너’는 첫째 드라비다어 및 라후어와 귀신이 곡할 정도로 일치하고 다음 미얀마어와도 아주 유사하다.  참고로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미얀마어를 시노-티베트어로 분류하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인도-아리안어로 분류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하다. 왜냐하면 미얀마 어법은 시노-티베트어와 기본적으로 유사하지 않고, 오히려 고대 인도의 팔리어를 기층으로 하고 거기다가 일부 힌디어를 차용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어의 ‘니’와 우리말 ‘너(니)’도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말 ‘나’ 및 ‘너(니)’와 모두 일치하는 것은 라후어, 드라비다어, 미얀마어, 아카어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드라비다어와 라후어에는 시노-티베트어, 인도-아리안 계통의 언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사의 활용마저 우리말과 똑같은데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드라비다어 ‘누’는 우리말의 주제격 보조사 ‘는’과 일치하고, 라후어의 주제격 보조사 ‘래’는 지금도 북한지방에서 사용하고 있다. 또 라후어의 목적격 조사 ‘타’는 우리의 여격조사 ‘한(테)’, 그리고 아이누어의 목적격 조사 ‘타’와 일치한다.  알타이어에도 조사가 있지만 우리말과 유사한 것은 오직 향진격 조사 ‘-로’와 여격 조사 ‘-에’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구상의 많은 언어들은 조사가 없기 때문에 대명사, 목적어 또는 보어 앞 뒤에 붙는 동사가 이 역할을 하든지 따로 전치사를 써서 말이 통하는 문장 형식을 취한다. 특히 터키어나 태국어의 소유격은 수식하는 명사의 순서를 뒤바꿔 놓아 의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한편 라후어의 인칭 복수형 나흐(우리들), 너흐(너희들)는 우리말 복수형과도 맥이 통한다. 라후족은 고구려 유민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니 언어의 일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칭대명사에 관한 더욱 놀라운 발견은 지정학적으로 인도와 우리나라 사이의 징검다리 위치에 있는 미얀마의 말에 있다.  우리나라 말과 미얀마어, 라후어, 드라비다어와의 유사점은 인칭대명사 뿐만이 아니다. 서울대 언어학과 이현복 교수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말의 음성학적인 특징인 음운의 삼중 대립현상(音韻 三中對立 現象)이 미얀마어, 라후어, 아카어, 태국어 등에서 발견된다고 하였는데, 이 점도 그들의 말이 우리말과 한 갈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될 것이다  예) 달(月) 탈(假面) 딸(女息)  일본의 몇몇 언어학자들은 우리말과 인도 드라비다어의 유사점을 들어 두 민족 사이에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이 주장은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면도 없지 않다.  드라비다족은 시베리아 중남부에서 남하해서 인도대륙에 흩어져 살던 종족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아리안어족이 인도대륙으로 침입하기 이전의 일이었다. 오히려 최초의 우리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 집단이 인도 대륙을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질러 통과할 때 이미 그곳으로 내려와 정착해서 살고 있던 드라비다족과 오랫동안 가깝게 접촉할 수 있었으며, 이때 부르기 쉬운 단음절의 ‘너’와 ‘나’라는 낱말을 그들로부터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 있다. 왜냐하면 우리말의 기본 어휘 중 상당수가 드라비다어보다는 오히려 소아시아 지방의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가설은 우리 조상들이 드라비다족이 살고 있던 인도대륙에 도달하기 전에 만났으리라 생각되는 아리안어계의 다리어(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에서 우리의 것과 닮은 문장 형태가 발견된다는 점에서도 뒷받침될 수 있다.  필자가 조사한 다리어, 드라비다어, 미얀마어, 라후어 등의 문장 순서는 우리 것과 아주 유사한 것이 확실한데, 과연 우리 주변 다른 민족들의 말도 그럴까? 그러나 시노-티베트어족에 속하는 중국어나 태국어는 우리와 문장구조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주어-술어-목적어(또는 보어)의 문장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어와 유사한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나’와 ‘너’라는 낱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을까? 흑해나 카스피해 부근에서 출발하여 인도 대륙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와 ‘너’를 어떻게 불렀겠느냐는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만 가능성이 있는 추측은 ‘나’를 영어에서는 ‘아이’, 아랍어에서는 ‘아나’라 부르고, ‘너’를 고대영어에서는 ‘디’, 아랍어에서는 ‘안따’라고 호칭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발음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지금도 남도 사투리로는 ‘너’를 호칭할 때 ‘지’라고 부른다. 고대영어의 ‘너’라는 말 ‘디’와 우리말 ‘지’는 발음과 음절이 아주 흡사하다.  (2)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일본족의 말 중 이인칭 ‘너’에 해당되는 ‘안따’와 ‘너’를 가리키는 아랍어 ‘안따’는 서로 언어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즉 한반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드라비다어족으로부터 차용한 말(차용어)을 고정시켜버린 반면 일본열도로 들어간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나뉘어갈 때까지도 함께 사용하던 ‘너’와 ‘안따’중 ‘안따’가 일반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와 ‘너’ 이외에 서남쪽에서 온 또 다른 원시어휘는 없을까?  우리말 수사(數詞)의 고향을 찾아서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서 젖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우는 말 ‘하나’ ‘둘’ ‘셋’을 추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 우리 조상들은 사냥한 동물이나 물고기를 헤아릴 필요가 있었고, 또 들이나 산에서 채취한 열매를 부족원들에게 공평히 나누어주기 위해서도 수사(數詞)인 하나, 둘, 셋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 둘, 셋은 옛날 그 옛날에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시어휘 중 하나임이 틀림없다.  여기서 우리 말 ‘둘’과 ‘셋’은 아리안어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고, ‘하나’도 그리스어 ‘에나’, 다리어 ‘액’, 산스크리트어 ‘엑카’ 등과 어원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의 전(前)단계라고 할 수 있는 ‘애’는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첫, 처음, 어린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예; 애기, 애당초, 논애벌매기, 애벌빨래 등)  우연의 일치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을 우리는 지금 눈앞에서 보았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면, 어느 때인가 우리 조상들은 흑해 또는 카스피해 근처에서 살던 코카시안족으로부터 출발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처음 코카서스 지방에서 살았을 때, 우리 조상들은 그리스어와 같이 ‘에나’‘디오’하고 하나, 둘을 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차츰 동쪽으로 옮겨 지금의 다리어 지역인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중앙 아시아지역을 거치면서 그곳에 먼저 와 살던 또 다른 아리안 계통의 사람들에게서 둘과 셋을 차용했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가 없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셈법(數詞)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 천년 전 우리 조상의 시초를 짐작케 하는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둘(2)이란 숫자에 있다. 이 둘이란 숫자를 가지고 우리의 조상들이 지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길을 먼 곳에서부터 순서대로 나열해 보자.  ―→ 이탈리아어 두에 ―→ 영어투  ―→ 그리스어 디오  ―→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다리어 두 → 파키스탄의 우루두어 두  한국어 둘,두 ← 인도네시아어두아 ←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드바 ←  거기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둘(2)에서 파생되어 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낱말의 뜻도 한국어와 아리안어가 똑같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 선조들과는 혈연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는 민족들의 둘(2)에 관한 호칭을 적어본다. 중국과 몽골 민족들은 우리와 이웃해 살고 있지만, 그들의 셈법은 우리와 너무나 다르다.  핀란드어깍씨 ← 터키·우즈베크어이키 ← 몽고어하여르 … 우랄-알타이어  태국어송 ← 중국어알 … 시노-티베트어  그러나 셈법에 있어 우리말의 넷부터는 그 근원이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이 먼 소아시아 지방에서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수만km를 이동했을 당시, 기층민에게 넷 이상의 숫자 개념이 생활화되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아리안 어족끼리도 하나부터 셋까지는 대개 유사한데 넷부터는 상당히 다른 점으로 보아도 이와 같은 추측이 가능하다. 또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선 오늘날 파푸아-뉴기니, 수마트라, 태국 북부에 사는 어떤 부족들은 셋 이상의 숫자를 셈할 줄 모른다니 지금으로부터 수 천년 전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다음 넷부터 열까지의 숫자를 언어별로 조사한 것은 다음과 같다.  위 표에서 보듯이, ‘넷’부터 ‘열’까지는 우리말과 비슷한 언어가 발견되지 않는다. 넷은 핀란드어의 ‘넬리아’나 타미르어(인도 남부 드라비다어의 일종)의 ‘나러’와 비슷하고, 여섯은 그리스어 ‘엑시’에, 열을 가리키는 고구려어 ‘더’가 다리어 ‘다’나 일본어 ‘도’에 근원이 있지 않을까 생각도 되지만 확실치 않다. 다만 이 가운데서 고구려어 ‘더’는 산스크리트어, 그리스어, 다리어, 영어, 일본어 등과 근원이 같다고 본다.  수사의 어원에 대하여  다음은 가설 단계지만, ‘하나’에서 ‘넷’까지의 어원(語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처음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 세상의 온갖 것들이 생성되고 그로 인해 시작된다는 의미거나 혹은 초기적인 단계나 상태를 나타낸다.  ‘둘’은 하나에 또 ‘하나’를 더한다는 뜻이다. 즉 영어의 더블(double)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셋’은 ‘하나’에 또 하나의 ‘하나’를 더하면 ‘새로워’진다거나 또는 ‘새로운’ 것이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넷’은 ‘셋’에서 나왔다는 생각, 즉 ‘셋’으로부터 ‘내렸다’는 발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부터는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독자적으로 만들어졌을 개연성이 크므로 처음 ‘하나’에서 ‘넷’까지의 어원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야 한다.  오늘날에도 어린아이들은 종종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수를 헤아린다. 아마도 지능이 덜 발달되었을 우리 조상들도 손가락을 가지고 셈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다섯’부터는 수를 헤아리는 낱말이 손가락의 동작과 형태 등에 관련돼 있다는 가정 하에서 출발하여야 된다.  ‘다섯’은 ‘하나’를 헤아릴 때부터 오므리기 시작한 손가락이 다섯을 셀 때는 마지막 새끼손가락까지 다 오므려져서 이젠 더 이상 오므릴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서 온 낱말일 것이다. 즉 손가락 다섯 개를 ‘다 썼다’는 뜻에서 ‘다섯’이 되지 않았을까?  ‘여섯’은 ‘다섯’을 셀 때까지 다 오므린 손가락을 다시 펴는 데(여는 데)서 나온 말인데 즉 손가락이 ‘열’려서 곧바로 ‘서’ 있는 모양이 되었다는 뜻에서 생겨난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즉 ‘열려서 서 있다’가 ‘여섯’이 된 것이다.  다음 ‘일곱’은 먼저 ‘여섯’을 셀 때 손가락 한 개를 열고 곧바로 세웠는데 그 다음 ‘일곱’을 셀 때는 또 다른 손가락 한 개를 더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즉 손가락이 먼저 ‘여섯’을 셀 때 세워졌던 손가락과 더불어 곱으로(두 개로) 일으켜 세워진 모양을 보고 만들어진 낱말이다. 즉 ‘일’어서서 ‘곱’으로 세워졌다.  ‘여덟’부터는 그 당시에 연이어 일어선 세 개나 네 개의 손가락 모양을 나타내기에 적당한 말이 없었으므로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수를 구별하려고 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할 당시에는 ‘열’이라는 숫자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장 큰 숫자로 세상 모든 것을 다 가리키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사용하여 수를 세어보아도 ‘열’ 이상은 더 펼 수 있는 손가락이 남아 있지 않아 ‘열’은 우리의 먼 조상들이 셈할 수 있는 마지막 숫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부터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셈을 세어가다가 ‘여덟’쯤 셀 때는 이제 마지막 숫자인 ‘열’이 거의 다 되어간다. 즉 ‘여물어간다(여덟)’는 생각에 근원을 하고 있는 낱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 ‘아홉’은? 역시 지혜로운 발상에서 나온 단어다. 즉 인도-아리안 언어에서 ‘아’는 부정을 나타내는 의미로 ‘아니다’ ‘부족하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아홉’은 마지막 숫자인 ‘열이 아니다’나 혹은 ‘열’이 되기에는 ‘아’직도 ‘흡’족한 상태가 아니다(아홉)에서 나온 낱말일 것이다.  그런데 ‘열’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열’은 다섯 손가락이 다 ‘열’린 모양을 보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낱말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 ‘열’이란 낱말은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정착한 후 상당한 세월이 지난 다음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고 그 이전, 즉 한반도에 정착하기 시작할 당시에는 아마도 ‘열’이란 낱말 대신 이 세상 모든 것, 전부를 뜻하는 의미로 ‘다’와 비슷한 낱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우리 조상들이 지나온 중앙아시아의 다리어지역인 이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지금도 ‘열’을 ‘다’라고 부르며 우리 조상의 일부가 건너가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되는 일본에서도 현재 ‘열’을 ‘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어서 전부를 의미하는 뜻의 ‘다’, 즉 ‘다 함께’ ‘모두 다’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면 그 옛날 10이 가장 큰 숫자였던 우리 조상들이 초기에 ‘열’을 ‘다’라고 불렀음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三國史記 地理志)에 나오는 옛 지명들을 해석해보면, 고구려 시대까지만 해도 열(10)을 ‘다’와 비슷한 ‘더’나 ‘덕(德)’으로 불렀음이 확실해 보인다.  “십곡현(신라)은 덕돈홀(고구려)이라고 불렀다(十谷縣一云德頓忽).”  한편 우리 조상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정착하고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것, 전부를 의미한 말로 ‘온’ 이란 낱말을 사용하게 된다. 오늘날도 이와 관련해서 ‘온누리’ ‘온갖 것’ 등의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 ‘온’은 100을 나타내던 우리의 옛 말인데, 아마도 10을 나타내는 알타이어(터키어)의 ‘온’에서 차용했거나 혹은 1을 나타내는 영어의 ‘원’또는 타미르어의 ‘온루’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있다. 만약 ‘온’이란 낱말을 터키어, 영어 혹은 드라비다어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차용경로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즉 한반도 및 만주대륙에서 살고 있던 지배계층에서는 한반도로 들어올 당시 벌써 100 이상의 숫자개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겨우 손가락으로 열(10)정도밖에 셈할 줄 몰랐을 것이며 그후 100까지 셈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소아시아지방에서 가지고 온 낱말 ‘온’을 ‘백’이란 숫자를 나타내는데 사용하게 되었다. 또 1000을 가리키는 옛말 ‘즈믄’은 인도-아리안 계통의 다리어에서 같은 숫자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즈르’에서 온 말일 것이다.  이상의 설명이 다소 무리한 가설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으며 현재까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하나’ ‘둘’ ‘셋’의 기본적인 낱말들은 알타이어계통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옛날 인도-아리안계통의 종족들이 사용했던 것과 독자적으로 만든 말이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한다.  그런데 우랄-알타이어 학자들은 노심초사 끝에 판이한 우랄-알타이어 셈법과 우리 고유의 셈법을 접목시켜 더욱 무리한 가설을 내놓았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조금도 닮은 점이 없는데도 우리말 ‘다섯’의 근원(祖語)이 알타이어 ‘퇴르트’(tort, dorben, dugin)에 대응한다고 이해도 되지 않는 주장을 한다.(로이 앤드루 밀러의 일본어 기원 참조)  알타이어 학자들은(람스테트, 포페 등 핀우그르학회)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라 하여 서구식 음운대응(音韻對應) 방법을 사용했지만, 알타이어와 우리말에서는 극소수의 예를 제외하고 유사점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들이 찾았다는 유사 어휘들마저 상당수가 부정확한 것이었고, 그나마 거의 전부가 고려말 몽골의 지배를 받을 때 차용했으리라고 짐작되는 어휘들이었다.  거기다가 그들의 비교언어학적 탐색은 기본부터 신빙성이 의심되었다. 동양의 언어는 인도-아리안어의 경우처럼 라틴어나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모어(母語)가 없어 음운대응 방식의 정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 공통어인 ‘어머니’와 ‘아버지’  인도양상의 조그만 섬나라 스리랑카에도 우리말과 정확히 일치하는 말들이 아직도 사용되고 있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즉 스리랑카 인구의 약 65%를 차지하고 있는 싱할리족은 아쇼카대왕 때 인도의 중북부에서 배를 타고 스리랑카 섬까지 내려와 살고 있는 아리안어계 민족인데 이들의 말과 우리 말 중에 서로 일치하는 것들이 있었다.  가끔 우리 나라의 잡지나 신문에 게재되는 세계 여행기를 보면 ‘어느 나라엘 가보았더니 그곳 사람들이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더라. 그러니 우리 나라와 그들 사이에 민족적으로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은가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린아이 때 쉽게 할 수 있는 발음이 ‘어’ ‘아’ ‘마’ 등이어서 부모를 ‘엄마’ ‘어머’ ‘마마’ ‘파파’ ‘타타’ 등으로 부르는 것은 세계 어느 민족을 가릴 것 없이 공통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이 사용하는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말을 예로 들어보기로 하자.(표 참조)  여기서 스리랑카의 ‘아뻐지’(캔디지방)와 우리 민족의 ‘아버지’는 3음절로 구성된 어휘이므로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고 언어적인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그 옛날 어느 시점에 두 민족이 접촉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쌀은 어디서 왔을까?  또 우리나라의 쌀(한국)과 스리랑카의 할(혹은 사할: 스리랑카, 인도), 그리고 그 쌀로 만드는 밥(한국)과 밧(스리랑카, 인도)을 비교하면 두 언어의 정확한 일치성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혹시나 우리의 먼 조상들이 소아시아로부터 한반도로 이동하는 과정에 인도대륙에서 잠시 머물러 있는 동안 마침 주변에 살고 있던 인도 사람들(특히 드라비다 족)의 조상에게서 벼농사 짓는 것과 쌀을 볼 수 있었고, 그 쌀로 지은 밥을 먹게 되었으며, 이렇게 해서 그들이 쓰는 쌀과 밥에 대한 낱말들을 한반도에까지 가지고 온 것은 아닐까?  아직도 우리 민족학계 일부에서는 쌀 농사를 중국을 통해서 받아들였다고 주장을 하나 그들의 쌀과 밥에 대한 낱말들은 우리가 쓰는 말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음을 본다.  다음 보리를 보자.  또 밀은 이렇다.  언어학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3대 농작물인 쌀, 보리, 밀이 어디에서 왔는가 그 뿌리를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쌀은 인도에서 왔고 밀과 보리는 소아시아 지방으로부터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남쪽과 인도대륙을 거쳐온 것이다.  최초로 한반도에 곡식 종자를 가져와 논과 밭을 만들고 정착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조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한쪽 귀퉁이에 있어 소아시아나 중앙아시아처럼 인류 이동이 빈번했던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누군가가 먼 서역에서 일부러 찾아와서 우리 조상들에게 곡식 종자를 갖다주고 되돌아갔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시, 아사, 아침, 아사달  지금으로부터 4000∼5000년 전, 그리스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지구가 넓고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자기네들의 바로 동쪽에 있는 터키 지방을 해가 돋는 땅이라 하여 ‘아시아’라고 불렀다. 즉 ‘아시’는 당시 ‘해가 돋는 아침’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 후 터키 지방이 동쪽 끝이 아니고 터키 너머에 더욱 넓은 땅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의 터키 지방을 작다는 ‘소(小)’자를 붙여 ‘소아시아’라고 불러 자기네 잘못을 고쳤다.  우리 조상들이라고 생각되는 일단의 부족들은 흑해와 카스피해가 있는 그 소아시아에서 한반도까지 오면서 그 말을 그대로 가지고 왔다고 생각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해가 돋은 후의 2∼3시간을 ‘아침’이라고 부르며 이웃 일본에서는 ‘아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이 지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아침을 우리말 ‘새벽’과 비슷하게 발음하고 있다. 즉 아랍어의 ‘사바흐’, 스리랑카 싱할리어의 ‘수바’, 터키어의 ‘사바’, 다리어의 ‘사하르’ 등이다. 그러나 힌디어만큼은 우리나라의 ‘새벽’을 ‘수바하’ 또는 ‘사베라’라고 부른다. 물론 이것은 새벽과 아침의 시간상 구분에서 오는 다소간의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우리말 ‘새벽’과 ‘아침’이 모두 서쪽으로부터 온 인도-아리안 계통의 언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에 편찬한 ‘계림유사’에 의하면 우리 선조들은 새벽을 힌디어의 ‘수바하’와 유사한 ‘시바’로 불렀던 것이다.  다음은 우리 조상이 지나왔으리라고 생각되는 지역의 아침(또는 새벽)을 일컫는 말을 먼 곳으로부터 순서대로 적어본 것이다.  아시(그리스) → 사바(터키) → 사바흐(아랍) → 사하르(이란·아프가니스탄)→ 수바하(또는 사베르·인도) → 아룬(태국) → 아침, 새벽(한국) → 아시(일본)  *터키어 ‘수바’(새벽)는 아랍어 ‘사바흐’(아침) 혹은 힌디어 ‘수바하’의 차용일 개연성이 크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 할아버지가 세운 나라의 도읍터도 ‘아침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아사달’로, 인도-아리안어에서 온 말임이 확실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아사달을 궁홀산(弓忽山)이라고도 했다는데, 혹시 궁홀은 다리어에서 산을 가리키는 ‘쿠흐’와 관련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인은 태양족(太陽族)의 후예  오늘날 우리가 ‘해’라고 부르는 낱말은 원시어휘 가운데서도 아주 일찍부터 사용했다고 생각되는 어휘다. 우리 민족의 ‘해’라는 어휘는 역사적으로 어떤 변천 과정을 겪었을까?  고구려 고분벽화를 본 세계인들은 황홀해 하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조상들의 생동하는 모습을 보며 곧잘 감동에 젖는다. 말을 타고 사냥을 하는 무사들, 고취대를 선두로 보무당당하게 행진하는 병사들, 고래등같이 크고 화려한 가옥에서 생활하는 고구려인들을 보면 마치 2000년이라는 시간이 단절되지 않고 아직도 살아서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 많은 고구려 고분벽화 가운데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한 장 있다. 그 벽화는 바로 오괴 4호분 천장에 그려진 것으로 신선(神仙)이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작업 광경. 지금까지 민족학계에서는 ‘수레바퀴를 만들고 있는 신선’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상식적으로 천한 수레바퀴나 만들고 있는 신선이 어디 있을까. 하늘에서 살고 있는 지고지순한 신선들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것일까.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바로 이 한 장의 벽화 속에 고구려인의 뿌리를 밝힐 수 있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수레바퀴는 바로 태양(太陽)의 상징. 신선은 천한 수레바퀴가 아니라 위대한 태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사람들은 하루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면 그날의 태양이 사멸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태양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면 그들에게는 무척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고분벽화에서 보는 것처럼 자기네들의 신선이 밤새도록 새로운 태양을 만들어서 다음날 보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그럼 고구려 시대에 수레바퀴는 과연 태양을 상징했던가. 후대인 고려시대까지도 태양의 날인 단오(端午)절에 백성들이 수레바퀴 닮은 수치떡을 해 먹은 것을 보면 일단 그렇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확실한 것은 고대 인도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도 고구려 사람들처럼 수레바퀴로 태양을 상징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들의 태양 사원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닮은 커다란 수레바퀴가 장식되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대 인도나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태양을 ‘라’라고 불렀는데 옛적 삼국시대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도 태양을 ‘라’라고 불렀다. 신라의 향가인 처용가(處容歌)에 아직도 그때의 말이 흔적처럼 남아 있다.  ‘신라성대 소성대(新羅聖代 紹盛代) 태평성대 라후덕(太平聖代 羅侯德) 처용아비야.’  그러면 당시 고구려 사람들도 정녕 태양 숭배 신앙을 가지고 있었는가. 지금까지 역사의 베일속에 감춰져 있던 불가사의를 한꺼풀 벗겨보자. 확실히 고구려 사람들은 태양족이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북부여에서 도망하는 과정에 추격자가 급하게 따라붙는 판국인데 하필이면 큰 강을 만난다. 이때 주몽은 강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나는 태양의 아들이며 하백(河伯, 물의 신)의 외손이다.”(魏書 高句麗傳)  과연 태양족답게 자신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당시 태양을 숭배한 우리 민족은 고구려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신라 사람들도 고구려인 못지않은 태양 숭배자였다.  “매달 초하루에는 서로 하례하는 예를 갖추고… 왕이 연회를 베풀어 모든 관리를 불러모아 해와 달의 신주에 절을 한다.”(北史 新羅傳)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에서 태양을 가리키는 ‘하’에서 온 말이고(우리나라 중세 기록인 계림유사, 조선관역어 모두 ‘하’), 태양의 파생어 새(빛; 청산별곡, 북새;저녁놀 등)는 아랍어 힌디어 솔 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수리’라는 말은 어디서 왔나  마지막으로 태양(太陽)이라는 낱말은 근세에 중국에서 차용한 것이니 논외로 한다. 결론적으로 옛 우리 조상들이 태양을 일컫던 말 수리, 라, 해 등은 모두 북방과는 관련이 없고 태양숭배 신앙과 함께 소아시아, 중동 및 인도 방향에서 한국인의 남서통로를 거쳐 온 말이다.  또 태양숭배 신앙은 오늘날까지도 흔적으로 남아 있어서 할머니들은 물을 떠놓고 해님을 향해 절을 하며 소원을 성취해달라고 빌었고, 일반인들도 가끔은 태양의 신통력에 호소하기도 했다.  “수리 수리 마하 수리(해님 해님 위대한 해님 … 소원 좀 들어주세요).”  삼국시대 사람들이 해를 ‘라’라고 불렀던 반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해를 ‘수리’라고 불렀다. 고려의 대표적인 가요 ‘동동’을 보자.  ‘5월5일 수리날(端午日)에 먹을 약은 천년을 장수하실 약으로 바치나이다…’  곧 5월 단오(端午)는 해의 축제 날이고 ‘수리 날’이다. 이것말고도 신라향가에서 수로부인, 가락국의 수로왕 등의 뜻은 모두 해 부인, 해 왕이란 뜻이다. 특히 수로왕의 경우는 김해에 남아 있는 김수로왕 능의 태양문양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럼 고려 시대에 ‘해’를 가리켰던 말 ‘수리’는 이 지구상 어느 곳의 언어와 유사할까?  고려 시대의 ‘수리’는 소아시아에서 이란, 아프가니스탄, 인도를 거쳐 온 말인 반면, 터키와 몽골 등 알타이어는 해(日)와 같이 중요한 낱말도 우리말과 같은 것이 없다.  조사의 세계  이제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을 우리 말의 대표적 어법이라고 할 수 있는 조사(助詞)의 기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조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말과의 친족관계를 설정하는 데는 확실성이 부족하므로 필자는 아예 음성학적으로 우리의 조사(助詞)와 유사한 것들을 찾아나섰다. 만약 찾아낸다면, 우리 고대사의 불가사의 하나가 비로소 역사적인 사실로 실체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말의 어법 중 가장 유별난 점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조사(助詞) 10개를 가지고 어느 민족의 언어가 우리와 비슷한가를 탐색해보기로 하자.  세계의 언어 중에 주격 조사가 있는 언어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주격조사의 존재는 우리 말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주격 조사는 우리 말을 제외하면 일본어와 라후어, 길약어에서만 발견되었다. 또 호격 조사도 주격 조사처럼 대단히 드물다. 오직 한국어, 드라비다어, 라후어, 길약어에서만 유사한 호격 조사가 발견되었다.  이상과 같이 우리 말의 주요한 어법과 유사한 언어를 찾아보면 우리말과 거의 일치하는 언어는 라후어다. 라후어를 제외하면, 유사성이 대개 인도-아리안어계와 드라비다어, 길약어에서 발견된다.  알타이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말의 조사와 유사한 것은 오직 향진격 조사(-로;몽골어)와 여격조사(-에;터키어) 뿐이다. 또 알타이어는 우리 말에 있는 주격조사, 호격 조사가 없어 비교대상으로 삼은 라후어, 다리어, 드라비다어, 길약어, 라후어, 일본어보다 우리 말과 훨씬 소원한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조사를 이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비교해보자. 그러면 드라비다어, 라후어 등이 우리말과 얼마나 유사한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나누 닝가룸 서울 완돔(인도 드라비다어 타미르방언)  (나는 너랑 서울에 왔다)  나래 서울로 까이요(라후어)  (나는 서울로 가요)  드라비다어에는 우리말과 유사한 어휘가 1000개 이상 발견되고, 또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우리 조상들의 대표적인 묘제인 고인돌(支石墓)이 무수하게 널려 있다.  또 라후족의 어법은 우리와 70% 이상이 같다. 라후족의 역사를 조사해보면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 고구려가 나당 연합군에 망했을 때 당나라로 붙잡혀 간 우리 민족일 수밖에 없으니 역사는 또 한번의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라후어에 대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너흐래 나게 라웨요  (너희는 나에게 와요)  ‘흐’라는 복수형, …게는 여격, …요 하는 문장의 종지부마저도 똑같다. 실은 ‘같다’라는 말도 라후족은 ‘같수이’하는데 오늘날도 함경도에서 사용되고 있는 순 우리말이다. 중국으로 붙잡혀간 지 1300년이 되었는데도 라후족은 아직도 우리 고유의 김치를 담가먹고, 씨름을 하고, 색동옷을 입고, 강원도 정선아리랑 가락을 부르는 것을 보면 문득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다만 옛일을 오늘에 되살려 그 까닭을 밝혀줄 사람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말 어법(語法)의 고향을 찾아서  필자 생각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우기 쉬운 말은 ‘일본어’ ‘라후어’ ‘길약어’ ‘미얀마어’ ‘드라비다어’ ‘싱할리어’ 등일 것이다. 물론 배우기 쉽다는 것은 그들의 말과 우리말 사이의 어법 및 발음 등에 유사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라후어, 미얀마어, 드라비다어, 싱할리어의 문장형태는 일본어처럼 우리말과 거의 같으며 각 낱말의 격변화도 우리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먼저 인칭대명사를 예로 들어보자.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구려의 후예라고 알려진 라후어의 인칭대명사 격변화는 우리말과 똑같고, 일본어 및 싱할리어의 변화 모양도 우리말과 일치한다.  그러나 시노-티베트어계인 중국어나 태국어, 그리고 알타이어계인 터키어 등은 격(格)이 달라지는데 따른 조사가 붙지 않거나 인칭대명사의 명칭이 바뀌어버린다(터키어; 1인칭 주격 - 벤, 1인칭 소유격과 여격 - 비 ). 우리와 번지수가 다른 것이다.  알타이어에는 주격조사(主格助詞)가 없는 대신 우리말에는 있다. 우리말에는 소유와 술어적 대명사 접미사가 없는데 비해 알타이어에는 있다. 성, 복수, 지시대명사, 형용사, 동사의 명령형, 사역형 등도 서로 다르다. 우리말과 알타이어는 뿌리가 같다고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이질적인 언어다.  알타이어 학자들은 우리말이 알타이어에서 아주 오래 전에 분화돼 나와 그렇다는 옹색한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논리는 지구상 어느 언어와 비교할 때도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 논리라서 설득력이 없다. 알타이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말과 유사한 언어가 많은데도 왜 후세의 차용이 명백한 몇 개의 어휘를 가지고 우리말을 구태여 알타이어에 소속시키려 하는 것일까.  이와 같은 견해는 비단 필자만의 주장은 아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알타이어족 설을 주장하는 학자가 몇몇 있는 것도 현실이지만, 우리나라 언어학 발전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서울대 김방한 교수, 충남대 강길운 교수 같은 석학들은 평생을 알타이어 연구를 한 끝에 우리말이 알타이어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북한 학자들도 남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우리말의 알타이어 소속설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무시하는 실정이다. 뒤늦기는 했지만 우리말의 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한 핀란드의 언어학자 람스테트와 포페의 가설을 혹시나 정설로 믿어버린 나머지 너무 무리해버린 것이 아닌가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이제까지 필자는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밝히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사우디아라비아에 이르는 수만 km의 현장을 답사하여 우리와 유사한 기본 낱말을 찾아내고, 분석을 하고, 고증을 했다. 그러나 결론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미진한 구석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우리말의 기본 어휘들이 어떻게 한반도에까지 이동해왔는가. 즉 우리말의 생성과정을 밝혀 보기로 하겠다.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민족학 관련 학자들이 우리말의 형성 문제를 연구하였으나 아직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언어와 연관된 민족의 기원 문제마저도 확실한 것이 없다.  이렇게 된 원인은 한국어, 일본어를 포함한 일부 아시아계 언어는 서구식 음운대응(音韻對應) 방법으로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첫째 인종과 역사적 배경이 다양하고, 둘째 인도-아리안어에서 보는 것처럼 라틴어나 산스크리트어와같이 공통조어(共通祖語)를 확인할 수 있는 모어(母語)가 없어 음운대응의 확실성을 기할 수 없는데도 그 원인이 있다. 서구식의 음운대응 방법으로 밝힐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필자는 대안으로 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우리 말의 이동관계를 추적하여 보았다. 우리말의 모든 어휘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규명된다는 주장이 아니고, 앞으로의 연구를 위해 발상전환의 보기를 든 것에 불과하다. 이 글은 우리 민족의 기원과 관련이 있으므로 여기서 선택한 어휘는 가급적 스와디시 차트 범주에 드는 원시어휘를 택했고, 필자가 제안한 한국인의 남서 통로에서 지리적으로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가까운 장소의 순서로 우리말의 이동경로를 추적한 것이다.  아랍어와 다리어의 접미음 ㄹ이나 ㅎ이 인도나 미얀마 등지에서 1차 변화 과정을 겪고, 한반도에 이르면 2차 변화를 겪었다. 이것이 현대어에 이르면 ㄹ이나 ㅎ이 아주 탈락해서 준말이 되거나 격음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몇몇 예를 들어 우리말의 기원을 찾는 새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쳤지만, 만약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심도 있게 조사를 한다면 상당한 양의 우리말 어원이 밝혀지리라 기대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말의 기본이 중동과 인도 등지의 남서 통로를 거쳐 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어떤 말들은 소아시아 지방에, 또 다른 말은 한반도에서 좀더 가까운 인도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점으로 미루어보면 우리 조상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이동해 온 것이 아니고, 마치 물결처럼 시차적으로 이동해 왔다고 생각된다. 한반도의 선주민인 부여, 고구려, 백제어는 인도어와, 그리고 그 이후 이동해 왔다고 추측되는 신라의 말은 소아시아어와 유사점이 더 많은 것이 그와 같은 추측을 가능케 한다.  끝으로 이 글은 우리 말의 소속이 알타이어이고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의 골격을 만든 조상들이 북방에서 이동해 온 민족이었는가 다시 한번 검증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이제는 우리의 학문적 영역을 북방 일변도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전 세계로 넓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쓴 것이다.  한국에서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수만km 현장을 답사하면서 각국의 원시언어를 수집해 우리말과 비교한 김병호박사의 결론은 “우리말은 알타이어가 아니라 오히려 인도-아리안계 언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김병관·문화탐험가·농학박사  /// 뭐.... 똥 오줌에 관련된 단어들에 대한 조사는 빠졌나봅니다.  "쉬" 라는 배변에 관련된 음절이, "엄마, 아빠" 라는 단어와 함께 언어의 원류추적에  주요 단서로 언급되는데, 엄마, 아빠, 쉬(만약, 우리말에서 이것이 단순히 의성어가  아니라면) 만을 고려한다면 한국말은 오히려 그 뿌리를 영어권의 원류와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지요.  또한 언어를 가르는 중요한 방법으로는 문장 속의 주어와 목적어 위치를 고려하는데  세계의 모든 언어는 딱 2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답니다.  즉, 우리말과 영어 등 대부분의 언어처럼 "주어"가 문장 처음에 오는 언어.  또 다른 하나는 "주어"가 우리말에서는 "목적어"의 자리에 위치하는 언어.  그리고 단어 온통을 들어서 어원을 찾아내지는 않습니다. 음절, 음소의 단위까지  세분화해서 연구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한국말이 우랄알타이어계라는 설은 이제 신빙성을 잃었지요.  지금도 서울대 언어학과나 또 외국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열심히 연구 중입니다. 
223    단오(端午節) 댓글:  조회:4942  추천:0  2015-06-20
단오 수릿날, 천중절端午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문의   유형 개념용어 별칭 수릿날, 천중절 분야 생활/민속·인류 요약 음력 5월 5일로, 명절의 하나.   [내용] 일명 수릿날[戌衣日·水瀨日]·중오절(重午節)·천중절(天中節)·단양(端陽)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를 뜻하고, ‘오(午)’자는 오(五),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初五日]’라는 뜻이 된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는 더운 여름을 맞기 전의 초하(初夏)의 계절이며,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다. 단오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번성하고 남으로 갈수록 약해지며, 남쪽에서는 대신 추석행사가 강해진다. 또한, 단오는 중종 13년(1518) 설날·추석과 함께 ‘삼대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었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懷王) 때부터이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하였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 나라에 전해져서 단오가 되었다고 한다. ≪열양세시기 洌陽歲時記≫에는 이날 밥을 수뢰(水瀨 :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으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날 산에서 자라는 수리치[狗舌草]라는 나물을 뜯어 떡을 한다. 또, 쑥으로도 떡을 해서 먹는데 떡의 둥그런 모양이 마치 수레바퀴와 같아서 수리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수리란 우리말의 수레[車]인데 높다[高], 위[上], 또는 신(神)이라는 뜻도 있어서 ‘높은 날’, ‘신을 모시는 날’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단오의 풍속 및 행사로는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단오 비녀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石戰)·활쏘기 등과 같은 민속놀이도 행해졌다. 또한, 궁중에서는 이날 제호탕(醍醐湯)·옥추단(玉樞丹)·애호(艾虎 : 쑥호랑이)·단오부채 등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집단적인 민간행사로는 단오제·단오굿을 하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이날 음식을 장만하여 창포가 무성한 못가나 물가에 가서 물맞이 놀이를 하며, 창포이슬을 받아 화장수로도 사용하고, 창포를 삶아 창포탕(菖蒲湯)을 만들어 그 물로 머리를 감기도 한다. 그러면 머리카락이 소담하고 윤기가 있으며,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이롭다 하여 창포 삶은 물을 먹기도 하였다. 또한,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삼아 머리에 꽂기도 하였으며, 양쪽에 붉게 연지를 바르거나 비녀에 壽(수)·福(복)자를 써서 복을 빌기도 하였다. 붉은 색은 양기를 상징해서 악귀를 쫓는 기능이 있다고 믿어 연지 칠을 하는 것이다. 단오 때가 되면 거리에서 창포를 파는데, 이는 창포탕과 비녀를 만드는 데 소용이 되기 때문이다. 일년 중에서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인 단옷날 중에서도 오시(午時)가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이므로, 단옷날 오시를 기해서 농가에서는 익모초와 쑥을 뜯는다. 여름철 식욕이 없을 때 익모초 즙은 식욕을 왕성하게 하고 몸을 보호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쑥은 뜯어서 떡을 하기도 하고 또 창포탕에 함께 넣어 삶기도 하는데, 벽사에 효과가 있다고 전한다. 농가에서는 약쑥을 뜯어 말렸다가 홰를 만들어 들에서 일을 할 때 불을 붙여놓고 담뱃불을 당기는 데 사용하였다. 이 때의 약쑥홰는 약쑥 대여섯 개를 한 묶음으로 짚으로 친친 감아 연이어 길이를 2m쯤 되게 만든다. 긴 것은 불을 붙이면 하루 종일 타게 된다. 또, 농가에서는 오시를 기해서 뜯은 약쑥을 한 다발로 묶어서 대문 옆에 세워두는 일이 있는데, 이는 재액을 물리치고 벽사에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풍으로는 가수(嫁樹)가 있다. 가수는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많은 열매가 열리도록 비는 ‘나무 시집보내기’ 풍습으로 정월 대보름에도 한다. 특히, 단오 무렵이면 대추가 막 열기 시작하는 계절이기에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대추풍년을 기원하니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 등이 있다. 외출이 뜻대로 못하였던 부녀자들이 이날만은 밖에서 그네 뛰는 것이 허용되었다. ≪동국세시기≫에는 “항간에서는 남녀들이 그네뛰기를 많이 한다.” 하여 그네가 여성들만의 놀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동국세시기≫에 김해풍속에 “청년들이 좌우로 편을 갈라 석전(石戰)을 하였다.”고도 하며, 금산 직지사(直指寺)에 모여서 하는 씨름이나 남산(南山)·북악산(北嶽山)의 각력(角力 : 씨름)에 대한 기록도 보인다. 그밖에도 경상북도지방에서는 널뛰기·윷놀이·농악·화초놀이 등의 놀이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단옷날이 되면 내의원(內醫院)에서 옥추단과 제호탕을 만들어 바쳤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에 보인다. 제호탕은 사인(砂仁)·오매육(烏梅肉)·초과(草果)·백단향(白檀香) 등 한약재를 가루 내어 꿀에 섞어 달인 약으로 일종의 청량제이다. 더위가 심하여 건강을 해치기 쉬울 때 사용하였다. 내의원에서 진상한 옥추단은 일종의 구급약으로, 여름철 구토와 설사가 났을 때 물에 타서 마신다. 임금은 이 옥추단을 중신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약에다 구멍을 뚫어 오색실로 꿰어 허리띠에 차고 다니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급할 때 먹을 수도 있으려니와 악귀를 막고 재액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은 애호를 신하들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는데, 애호는 쑥이나 짚으로 호랑이모양을 만들어서 비단조각으로 꽃을 묶어 갈대이삭처럼 나풀거리게 하고, 쑥잎을 붙여 머리에 꽂도록 한 것이다. 이 또한 벽사에서 기인한 것이다. ≪열양세시기≫에 “단옷날에 애화(艾花 : 쑥호랑이)가 하사되었다.”라는 기록도 있다.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 안의 문설주에 붙였다. 이 부적은 불길한 재액을 막아주는데,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붙였다. 복록을 얻고 귀신과 병을 소멸하라는 주문을 쓰거나 처용 상이나 도부(桃符 :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를 붉은 색의 주사(朱砂)로 그려 넣었다. 또한, 단오 무렵에 공영(工營)에서는 대나무 생산지인 전주·남원 등지에 부채도안 등 제작방법을 일러준 다음 부채를 만들어 진상하도록 하였다. 이 부채를 임금은 단옷날 중신들과 시종들에게 하사하였는데, 이를 ‘단오부채[端午扇]’라 하였다. 집단적인 민속행사로는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오제(端午祭)가 있다. ≪동국세시기≫에 “안변풍속에 상음신사(霜陰神祠)에 선위대왕(宣威大王)과 부인이 있다고 전하는데, 매년 단오에 선위대왕 부부를 모셔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과, 경상북도 군위에서는 “서악(西岳)의 김유신(金庾信)사당에서 신을 맞이하여 고을에서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어 ‘강릉 단오굿’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삼척의 ‘오금잠제’ 기록도 보이는데, 이는 전설에 고려 태조의 것이라는 오금잠(烏金簪 : 검은 빛의 쇠로 만든 비녀)을 함에 모시고 지내는 제이다. 원래 제사지내는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행사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는 단오굿으로는 대관령국사성황을 강릉시내 여성황당에다 모시는 ‘강릉단오굿’과,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신령한 인물에게 올리는 경상남도 창녕의 ‘문호장굿’이 있다. 일시 소멸되었다가 복원된 경북 경산시 자인면의 ‘한장군(韓將軍)놀이’도 유명하다. 이 놀이에서는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춘다. 이처럼 단오의 여러 행사는 벽사 및 더위를 막는 신앙적인 관습이 많고 대추나무 시집보내기와 같은 기풍행위가 주가 되며, 더운 여름에 신체를 단련하는 씨름과 그네뛰기 등의 민속놀이가 있다. 또한, ‘강릉 단오굿’과 같은 집단적 단오제로 공동체의식을 이루는 축제를 벌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경도잡지(京都雜志)』 『조선상식』(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세시풍속』(임동권, 서문당, 1976) 『한국세시풍속기』(강무학, 동호서관, 1981) 『한국의 세시풍속』(장주근, 형설출판사, 1984)  
222    시만들기 프로그램과 현대시 곤혹 / 삼박자 독서법 댓글:  조회:6468  추천:0  2015-06-20
“시만들기프로그램”과 현대시 곤혹 2013년 12월 13일 10시 15분  조회:1346  추천:2  작성자: 김인덕 문학적인 천부가 전혀 없이 한글자 한구절을 신중히 다듬을 필요도 없이 사람마다 “시인”이 될수 있다. 만약 당신이 자판기에 몇개의 관건적인 단어를 입력하면 1분 안에 자동적으로 한수의 시가 생성된다. 이것은 천방야담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류행하고있는 “시만들기프로그램”(“写诗软件”)이 제공하는 “편리”에 의해서이다. 바이두(百度)에 “시만들기프로그램”(“写诗软件”)을 검색하면 몇십개에 달하는 “시만들기프로그램”이 화면에 뜬다. 사용자가 “시만들기프로그램”에 내키는대로 생각한 명사나 형용사 및 단락수(段数), 행수(行数) 등 지시어를 입력하면 프로그램은 자동적으로 1분내에 한수의 “현대파풍격”의 시를 생성한다.  필자가 이 프로그램에 한어로 몇개 낱말들을 입력하니 “10월”이라는 그럴듯한 현대시가 탄생되였다. “중신(众神)이 사망한 사막을 바라보니/ 멀고도 먼 곳의 바람은 먼 곳보다 더 멀어라/ 나의 북소리엔 흐느낌과 눈물은 전혀 없구나/ 먼 곳은 다만 사막에서 한쪼각으로 응결되고/ 거울 같은 보름달은 높이 떠서 천년세월 비추네/ 나의 북소리엔 흐느낌과 눈물 전혀 없구나/ 홀몸으로 말을 채찍질하며 사막을 지나가네.” 현대시의 일부 류파는 현대시란 바로 현실세계의 상식을 초과하는 정신적, 언어적 운동으로 초월세계, 련속세계를 추구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 이질적인 강압조합(폭력조합), 파편문체를 사용하여 낯설게 하는것이 그 처방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필자가 “시만들기프로그램”의 힘을 빌어 만들어낸 시 “10월”도 성공작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사냥군”이라는 익명을 가진 “시만들기프로그램”의 개발자는 최초에는 호기심에 의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파풍격의 시가 전통시에 비해 모방하기 쉽다는것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현대시의 창작사유가 기계적사유에 더 가까우며 현대파풍격의 시의 내재론리가 더욱 도약하는것이 특징이다. 현대파풍격의 시는 바로 어문(语文) 상식중의 명사, 형용사, 부사의 결합을 엉망으로 만들고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제멋대로 헝클어놓는것이다”라는 사람을 놀래우는 메가톤급의 언론을 던졌다. 한 유명한 “시만들기사이트”의 홈페이지에는 “무슨 말인지 모를 현대시를 많이 읽고서야 우리는 보고도 모르는것이 현대시의 본질이고 제멋대로 결합시키는것이 현대시의 보배임을 알게 되였다. 대사(大师)가 없는 년대에 시인들은 썩 물러가라, 지금은 우리도 시를 쓸수 있다”라는 선언문을 버젓이 내걸었다. “시만들기프로그램”의 출현은 시단에 진동을 가져왔다. 문학계에서는 “허튼 소리로 매우 황당하다. 이는 문학창작의 패스트푸드화이며 경박한 문화의 표현이다”라고 질타했다. 중국의 저명한 시인이며 북경사범대학 문학원 담오창교수는 “현재 시문학은 전면적으로 쇠퇴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각종 문학쟝르중 문자와 의경에 대한 요구에서 제일 높은것이 시이다. 시는 인류의 정감을 표달하는 제일 훌륭한 담체이다. 시인은 높은 문학수양을 가져야 할뿐만아니라 내심의 체험과 감수 및 진실한 감정으로 창작해야 한다. 이것은 기계가 할수 없는것이다. ‘시만들기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작품은 예술에 상처를 줄것이며 시를 훼멸시킬것이다”는 문장을 발표하였다. “시만들기프로그램”의 성행은 시인들에게 시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엄숙한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있다.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따위를 함축적이고 운률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 바로 시이다. 우리의 시인들은 시는 만드는것이 아니라 쓰는것임을 명기해야 할것이다. 연변일보 김인덕 21세기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다산의 삼박자 독서 전략”  (권영식 )   상상력과 창조력이 화두인 요즘, 독서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독서로 쌓은 지식과 아이디어가 풍부할수록 상상의 폭도 넓어지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도 높아진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사랑하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독서는 꼭 필요한 요소다. 삶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자기계발 차원에서 독서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이 단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독서법만을 찾고 있다.   출간되는 독서 관련 책을 보아도 책 읽는 방법이나 요령만을 가르쳐줄 뿐 정작 '왜 독서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독서를 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데는 소홀하다.   나는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조선 후기 독서론에 주목했다. 18세기 조선의 지식인이 경험했던 정보화 사회 양상은 21세기 지식 패턴의 변화와 본질적으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18세기는 소위 실학의 시대였다. 지식인의 인식범위가 확대되고 실사구시 학풍이 새롭게 등장했다. 더불어 중국 청나라로부터 다양한 서적이 수입되어 지식층에서 읽히기 시작했다. 오늘날 각종 매체에 의해 정보가 전달되는 것과는 달리 당시에는 서적에 의해서만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독서는 새로운 지식과 문물을 접하고 수용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보편적인 방법이었따. 이에 18세기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독서법을 계승하는 한편, 지식의 획득과 정보의 취사선택을 위해 새로운 독서법을 개발하여 독서능력을 향상시켜야만 했다.   때문에 18세기 조선 시대 최고의 지식인이며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산 정약용의 독서법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산은 우리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다. 다산은 평생에 걸쳐 책을 읽고 쓰는 일을 반복했다. 관직에 있을 때나 유배 생활 중일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쉬지 않고 책을 썼따. 오래도록 한자리에 앉아 저술과 독서를 하느라 복사뼈가 세 번이나 내려앉고 이가 다 빠졌지만, 그는 손에서 잠시도 책과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다산은 문학,철학,정치, 경제, 역사, 지리, 의학,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서 책을 펴냈고, 그 양은 500권이 넘는다. 하지만 단순히 범위가 넓고 양이 많아서 위대한 학자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다산은 두보를 능가하는 뛰어난 시인이었고, 2000년 유학사에 길이 남을 탁월한 경지를 이뤄낸 유학자며, 역사를 훤히 내다보는 역사학자이다. 화성 축성 및 배다리, 기증기를 설계한 토목공학자며 기계공학자였다. 또한 속담과 방언을 연구한 국어학자이자 질병으로 신음하는 백성을 위해 '마과회통', '촌병흑치' 등의 의서를 저술한 의학자였다. 유배생활을 하는 18년 동안 500여 권의 책을 펴낸 다산은 마치 다양하고 가치 있는 광물을 풍부하게 품고 있는 거대한 광산이자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는 깊고 푸른 바다와 같은 존재였다.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지식인 다산은 21세기 인재형인 멀티태스커였다. 다산의 저서는 새로운 내용을 담았기 보다는 다른 책들에서 그 정보를 취하여 새롭게 엮은 것이 많다. 수많은 정보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많은 정보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저작물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그의 뛰어난 독서능력이었다.   최근의 화두인 창조란 무엇인가? 정보가 넘쳐나는 21세기에서 창조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는 자료를 엮거나 연결시켜 비틀고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즉 변화된 현 사회에서는 엮을 재료가 충부한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게다가 현 시대 사람들은 점점 다양화, 개별화되는 환경에서 자신의 전문분야뿐 아니라 사회의 각 부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통합적인 전문지식을 갖출 것을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전무후무한 통합적 지식인'이라 불리는 다산 정약용의 삼박자 독서법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다산 정역용의 삼박자 독서법이란 무엇일까. 바로 “정독(精讀),질서(疾書),초서(鈔書)다.   정독(精讀)은 글을 아주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는 것을 말한다. 한 장을 읽더라도 글에 집중하고 깊이 생각하면서 내용을 정밀하게 따지면서 읽는 것이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철저하게 근본을 밝혀내는 독서법이다. 깊이 있는 독서를 하지 않고 이 책 저 책 손만 대면 마음이 산란해지며, 얄팍하게 얻은 지식들은 글을 꾸미는 데에만 활용될 뿐이지 학문의 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되니 않는다고 다산은 말한다. 다산은 정독의 방법으로 소리 내어 읽는 음독보다는 눈으로 읽는 묵독을 권했다. 묵독은 음독에 비해 개인성이 강조되는 독서해위이며, 비판적 성찰을 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다산이 강조한 정독법으로 책을 읽으면 독자 스스로가 재해석하는 독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독서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정독을 함으로써 글에 집중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독서할 때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질서(疾書)는 메모하며 읽는 것을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을 때면 필적을 갖추어두고 깨달은 것이 있으면 잊지 않기 위해서 빨리 적어야 한다. 18세기에 이뤄진 정보와 지식의 증가는 조선의 기존 성리학적 전통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성찰과 궁구는 새로운 독서법을 개발하도록 유도했으며, 질서는 조선 후기에 새롭게 개발되어 성호 이익에 의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성호로부터 질서의 영향을 받은 다산은 '대학','시경' 등의 경전을 주견을 갖고 해석하고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여 자신만의 학문 체계를 수립했다. 질서는 독서함에 있어 중요한 질문과 기록을 강조하고, 학문의 바탕을 세우고 주견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독서법이다.   초서(鈔書)는 책을 읽다가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곁에 쌓아둔 종이를 꺼내 옮겨 적는 것, 즉 베껴쓰기를 말한다. 다산은 초서를 함으로써 엄청난 양의 책을 쓸 수 있었다. 초서는 이미 다른 저술을 염두에 둔 독서법이기 때문에 자기 학문 혹은 사물에 대한 뚜렷한 관점이나 주관을 갖고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 목적이 분명해야 텍스트에 대한 경중을 구별할 수 있고 취사선택도 쉬워진다. 나는 평생교육과 지식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21세기에 가장 좋은 공부법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베껴쓰기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모으고, 그것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거기에 자신만의 경험을 잘 버무리면 하나의 작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초서는 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읽게 하고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다독과 다작을 하는 데 아주 좋은 독서법이다.   21세기는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적인 지식창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환영받는 시대다. 글로벌 인재란 지식을 많이 축적하기 위해 독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지식을 찾아서 연구하고 책을 통해 얻은 지식과 기존의 지식을 연결시켜 새로운 지적인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창의력을 지닌 학습인을 뜻한다. 따라서 지적인 창작물을 만들 수 있는 창의력을 지닌 힉습인을 뜻하나. 따라서 다산의 삼박자 독서법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면 글로벌 인재의 조건을 갖추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위해 사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다산의 삽박자 독서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독서방법뿐 아니라 독서하는 태도와 학문을 대하는 열정과 품위 있는 삶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 있다.    
221    년령명칭 및 결혼기념별 명칭, 나이 명칭... 댓글:  조회:5207  추천:0  2015-06-16
 명칭   명칭(名稱) 연령(年齡) 의 미 (意 味) 출전(出典)  지학(志學) 15세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논어 (論語) 약관(弱冠) 20세 남자 나이 스무살을 뜻함 예기 (禮記) 이립(而立) 30세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 논어 (論語) 불혹(不惑) 40세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 논어 (論語) 상수(桑壽) 48세 상(桑)자를 십(十)이 네 개와 팔(八)이 하나인 글자로 파자(破字)하여 48세로 봄   지명(知命) 50세 천명을 아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라고도 함 논어 (論語) 이순(耳順) 60세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思慮)와 판단(判斷)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나이 논어 (論語) 화갑(華甲) 61세 화(華)자는 십(十)이 여섯 개이고 일(一)이 하나라고 해석하여 61세를 가리키며, 일갑자인 60년이 돌아 왔다고 해서 환갑(還甲) 또는 회갑(回甲)이라고도 함   진갑(進甲) 62세 환갑보다 한 해 더 나아간 해라는 뜻   종심(從心) 70세 뜻대로 행하여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 또한 두보의 곡강시(曲江詩)에서 유래하여 고희(古稀)라고도 함 논어 (論語) 희수(喜壽) 77세 희(喜)의 초서체가 칠(七)이 세변 겹쳤다고 해석하여 77세를 의미   산수(傘壽) 80세 산(傘)자를 팔(八)과 십(十)의 파자(破字)로 해석하여 80세라는 의미   미수(米壽) 88세 미(米)자를 팔(八)과 십(十)과 팔(八)의 파자(破字)로 보아 88세라는 의미   졸수(卒壽) 90세 졸(卒)자의 약자를 구(九)와 십(十)으로 파자(破字)하여 90세로 봄   망백(望百) 91세 91세가 되면 백살까지 살 것을 바라본다하여 망백   백수(白壽) 99세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자를 빼면 흴 백(白)자가 된다하여 99세로 봄   상수(上壽) 100세 사람의 수명을 상중하로 나누어 볼 때 최상의 수명이라는 뜻. 좌전(左傳)에는 120살을 상수(上壽)로 봄 장자 (莊子)                                                                 *결혼 기념 주별  명칭*     한글 명칭(한자 명칭)[영어 명칭] 기념 주년 지혼식(紙婚式)[paper wedding] 결혼 1주년 기념일 고혼식(藁婚式) 결혼 2주년 기념일 과혼식(菓婚式)[candy wedding] 결혼 3주년 기념일 혁혼식(革婚式) 결혼 4주년 기념일 목혼식(木婚式) 결혼 5주년 기념일 화혼식(花婚式)[floral wedding] 결혼 7주년 기념일 석혼식(錫婚式) 결혼 10주년 기념일 마혼식(麻婚式) 결혼 12주년 기념일 동혼식(銅婚式)[crystal wedding] 결혼 15주년 기념일 도혼식(陶婚式) 결혼 20주년 기념일 은혼식(銀婚式)[silver wedding] 결혼 25주년 기념일 진주혼식(眞珠婚式)[pearl wedding] 결혼 30주년 기념일 산호혼식(珊瑚婚式) 결혼 35주년 기념일 벽옥혼식(碧玉婚式) 결혼 40주년 기념일 홍옥혼식(紅玉婚式)[sapphire wedding] 결혼 45주년 기념일 금혼식(金婚式)[golden wedding] 결혼 50주년 기념일 금강혼식(金剛婚式)[diamond wedding] 결혼 60,75주년 기념일     ** 사람의 나이 **                      2세  주세(周歲), 해제(孩提之童 2~3세)    10세  유(幼)♠, 충년(冲年, 열 살 안팎)                 15세  지학(志學)♦  16세  이팔(二八), 파과(破瓜之年 - 女)  20세  약관(弱冠)♠, 정년(丁年 - 男), 방년(芳年 - 女)  21세  삼칠(三七) -‘田禹治傳’  30세  이립(而立)♦,  장(壯)♠  32세  이모(二毛)  40세  불혹(不惑)♦,  강(强)♠   48세  상년(桑年)  50세  지천명(知天命)♦, 애년(艾年), 반백(半白)  51세  망륙(望六)  60세  이순(耳順)♦, 하수(下壽), 기(耆)♠  61세  환갑(還甲), 회갑(回甲), 화갑(華甲), 망칠(望七)  62세  진갑(進甲)  66세  미수(美壽),  지공(地空)                          70세  고희(古稀)♣, 종심(從心)♦, 노(老)♠  71세  망팔(望八)  77세  희수(喜壽)  80세  산수(傘壽), 중수(中壽)  81세  망구(望九)  88세  미수(米壽)  90세  졸수(卒壽), 구순(九旬)  91세  망백(望百)  99세  백수(白壽)  100세  기이(期頤), 상수(上壽)  108세  다수(茶壽)                            120세  천수(天壽)                      140세  만수(萬壽)                  150세  무량(無量)    (註) ♦는 論語  ♠는 禮記  ♣는 曲江詩(杜甫)         
220    최남선시인 시집부터... 쭈 욱... 댓글:  조회:10086  추천:0  2015-06-16
1 시집 최남선 경부철도가(京釜鐵道歌) 신문관 1908. 3  2 시집 장지연 대동시선(大東詩選) - 1917  3 시집 김억 오뇌의 무도(懊惱의 舞蹈) 광익서관 1921. 3.20  4 시집 김억 기탄자리 이문관 [평양] 1923. 4. 3  5 시집 김억 해파리의 노래 조선도서㈜ 1923. 6.30  6 시집 김억 번뇌의 무도(煩惱의 舞蹈) [改版] 조선도서㈜ 1923. 8.10  7 시집 이세기 폐허의 염군(廢墟의 焰群) 조선학생회 1923.11.28  8 시집 김억 신월(新月) 문우당 1924. 4.20  9 시집 이학인 무궁화(無窮花) 희망사 1924. 6.10  10 시집 조명희 봄 잔디밧 우에 춘추각 1924. 6.15  11 시집 박종화 흑방비곡(黑房秘曲) 조선도서㈜ 1924. 6.25  12 시집 변영로 조선의 마음 평문관(平文館) 1924. 8  13 시집 엄필진 조선동요집 창문사 1924. 8  14 시집 김억 잃어진 진주(眞珠) 평문관 1924. 8.10  15 시집  8번과 중복  16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청조사 1924.10. 8  17 시집 김기진 애련모사(愛戀慕思) 박문서관 1924.11.30  18 시집 김억 정원(丁園:동산직이) 회동서관 1924.12. 7  19 시집 주요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단사 1924.12.15  20 시집 이학인 무궁화(無窮花) [再版] 희망사 1925. 1.10  21 시집 김동환 국경(國境)의 밤 한성도서㈜ 1925. 3.20  22 시집 김명순 생명(生命)의 과실(果實) 한성도서㈜ 1925. 4. 5  23 시집 최상희 빠이론 시집 문우당 1925. 7.10  24 시집 김억 봄의 노래 매문사 1925. 9.28  25 시집 김동환 승천하는 청춘(昇天하는 靑春) 신문학사 1925.12.25  26 시집 김소월 진달래꽃 매문사 1925.12.26  27 시집 김소운 출범(出帆) 우문관 1926  28 시집 유도순 혈흔(血痕)의 묵화(默華) 청조사 1926. 3. 2  29 시집 강성주 하이네 시선집 평화서점 1926. 4. 8  30 시집 김시홍 하이네 시집 영창서점 1926. 4.30  31 시집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회동서관 1926. 5.20  32 시집 조태연 조선시인선집-28文士傑作 조선통신중학관 1926.10.13  33 시조집 최남선 백팔번뇌(百八煩惱) 동광사 1926.12  34 시집 최남선 백팔번뇌(百八煩惱) 동광사 1926.12. 1  35 시집 문병찬 세계일주동요집 영창서관 1927  36 시집 김억 고통의 속박 [기탄자리 改題] 동양대학당 1927. 3. 8  37 시집 권구현 흑방(黑房)의 선물 영창서관 1927. 3.30  38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再版] 청조사 1927. 4.10  39 시집 정창원 동요집 삼지사 [경남] 1928  40 시집 최남선 시조유취 한성도서(주) 1928  41 시집 노자영 내 혼이 불탈 때 [再版] 청조사 1928. 2.16  42 시집 김시홍 빠이론 명시집 영창서관 1928. 2.22  43 시조집 최남선 시조유취(時調類聚) 한성도서 1928. 4  44 시집 조선동요연구회 조선동요선집 제1집 집박문서 1929. 1.31  45 시집 노자영 처녀의 화환(處女의 花環) 창문당서점 1929. 3.25  46 시집 김억 안서시집(岸曙詩集) 한성도서㈜ 1929. 4. 1  47 시집 황석우 청년시인백인집 조선시단사 1929. 4. 3  4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泰文館 [동경] 1929. 7.30  49 시집 김동환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0 시집 이광수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1 시집 주요한 시가집 [김동환·이광수·주요한 공저] 삼천리사 1929.10.30  52 시집 황석우 자연송(自然頌) 조선시단사(朝鮮詩壇社) 1929.11  53 시집 황석우 자연송(自然頌) 조선시단사 1929.11.19  54 시집 김영희 고향의 떠나서 [再版] 성문관서점 1930. 5.27  55 시집 김동명 나의 거문고 신생사 1930. 6.10  56 시집 주요한 봉사꽃(鳳仙花) 세계서워 1930.10.20  57 시집 유도순 혈흔(血痕)의 묵화(默華) 영창서관 1931. 2. 5  58 시집 유엽 님께서 나를 부르시니 자가본 1931. 2. 5  59 시집 권환 카프시인집 집단사 1931.11.27  60 시집 카프문학부 카프시인집 집단사 1931.11.27  61 시집 양주동 조선의 맥박 문예공론사 1932. 2.26  62 시집 김기주 조선신동요선집-제1집 도광서점 [평양] 1932. 3.10  63 시집 이진언 행정의 우수(行程의 憂愁) 한성도서㈜ 1932. 4.12  64 시집 이은상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 한성도서㈜ 1932. 4.18  65 시집 윤석중 윤석중동요선(尹石重童謠選) 신구서림 1932. 7.20  66 시집 정영수 광야의 애상 자가본 1932. 9.10  67 시집 김성실 찬송의 약동(躍動) 한성도서㈜ 1932.11.20  6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선 岩波書店 [동경] 1933. 1.15  69 시집 김소운 언문조선구전민요집 [일어] 第一書房 [동경] 1933. 1.20  70 시집 허수만 북풍기행시집 신진문예사 1933. 2.28  71 시집 윤석중 잃어버린 댕기 계수나무會 1933. 4.23  72 시집 박기하 색진주(色眞珠) 활문사 1933. 4.25  73 시집 김태오 설강동요집(雪崗童謠集) 한성도서㈜ 1933. 5.18  74 시집 김명수 홍색의 구적(紅色の口笛) 문화㈜ [원산] 1933. 6.25  75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일어] 岩波書店 [동경] 1933. 8. 5  76 시집 모윤숙 빛나는 지역 조선창문사 1933.10.15  77 시집 장정심 주의 승리 [시조집] 한성도서㈜ 1933.10.23  78 시집 이하윤 실향의 화원(失香의 花園) 시문학사 1933.12. 5  79 시집 이영춘 청춘의 하소연 동양당서점 [신의주] 1934  80 시집 박귀송 애송시집(哀誦詩集) 자가본 1934. 2.13  81 시집 장정심 금선(琴線) [시조집] 한성도서㈜ 1934. 7.24  82 시집 한용운 님의 침묵(沈默) [再版] 한성도서㈜ 1934. 7.30  83 시집 전한촌 무궤열차(無軌列車) 동경토민사 1934. 8. 1  84 시집 김억 망우초(忘憂草) 한성도서㈜ 1934. 9.10  85 시집 황순원 방가(放歌) 동경학생예술좌문예부 1934.11.25  86 시집 장수철 전망도(展望圖) [평양] 발행 1935  87 시집 주요한 아름다운 새벽 조선문학사 1935  88 시집 김희규 님의 심금(心琴) 한성도서㈜ 1935. 2. 1  89 시집 백용수 초립(草笠) 자가본 1935. 5.10  90 시집 박일권 나그네 조선문학사 1935. 7. 5  91 시집 정지용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시문학사 1935.10.27  92 시집 김영랑 영랑시집(永郞詩集) 시문학사 1935.11. 5  93 시집 오신애 망양정(望洋亭) [시조집] 김광용사 [城津] 1935.12. 8  94 시집 백석 사슴 [경성] 자가본 1936. 1.21  95 시집 오일도 을해명시선집(乙亥名詩選集) 시원사 1936. 3.15  96 시집 김동환 조선명작선집-시가편 삼천리사 1936. 3.27  97 시집 百瀨千尋 언문조선동요선집 [일어] ホトナム社 [동경] 1936. 4.10  98 시집 황순원 골동품(骨董品) 자가본 1936. 5.29  99 시집 변영태 Song's Form Korea 자가본 1936. 6.10  100 시집 이극로 한얼 노래 대종교총본사 [만주] 1936. 6.10  101 시집 장재성 말하는 침묵(沈默) 자가본 [동경] 1936. 7. 7  102 시집 김기림 기상도(氣象圖) 자가본 1936. 7. 8  103 시집 김인걸 세월(歲月) 故鄕社 [동경] 1936. 7. 9  104 시집 신명균 조선문학전집-시조전집 중앙인서관 1936. 8. 5  105 시집 百瀨千尋 동요조선 조선동요보급회 1936.11.20  106 시집 이서해 이국녀(異國女) 한성도서㈜ 1937. 2.14  107 시집 윤곤강 대지(大地) 풍림사 1937. 4.20  108 시집 박영희 회월시초(懷月詩抄) 조선문화사 1937. 5.15  109 시집 이용악 분수령(分水嶺) 三文社 [동경] 1937. 5.30  110 시집 임시월 새로운 감정(感情) 시집간행회 [동경] 1937. 7. 8  111 시집 오장환 성벽(城壁) 풍림사 1937. 8.10  112 시집 임학수 석류(石榴) 자가본 [개성] 1937. 8.10  113 시집 이상필 잔몽(殘夢) 삼문사 1937. 9. 5  114 시집 정희준 흐린날의 고민(苦憫) 교육정보사 1937.11.25  115 시집 이찬 대망(待望) 풍림사 1937.11.30  116 시집 허이복 무명초(無名草) 치성서원 [鏡城] 1937.12.25  117 시집 장만영 양(羊) 자가본 1937.12.30  118 시집 조벽암 향수(鄕愁) 이문당서점 1938  119 시집 노천명 산호림(珊瑚林) 한성도서 1938. 1. 1  120 시집 이해문 바다의 묘망(渺茫) 시인춘추사 1938. 1.10  121 시집 조동진 세림시집(世林詩集) 시원사 1938. 1.25  122 시집 김동명 파초(芭蕉) 玄仁圭 발행 [함흥] 1938. 1.30  123 시집 임화 현해탄(玄海灘) 동광당서점 1938. 2.29  124 시집 조중흡 향수(鄕愁) 이문당서점 1938. 3. 1  125 시집 조선일보출판부 현대조선문학전집-시가집 조선일보출판부 1938. 4. 1  126 시집 노자영 백공작(白孔雀) 미모사서점 1938. 5. 2  127 시집 박세영 산제비 중앙인서관 1938. 5.20  128 시집 최경섭 풍경(風景) 자가본 1938. 5.23  129 시집 윤곤강 만가(輓歌) 동광당서점 1938. 6.10  130 시집 최재서 해외서정시집 인문사 1938. 6.15  131 시집 김광섭 동경(憧憬) 대동인쇄소 1938. 7.15  132 시집 이찬 분향(焚香) 한성도서㈜ 1938. 7.20  133 시집 임학수 팔도풍물시집 인문당 1938. 9.30  134 시집 김대봉 무심(無心) 맥사 1938.10.17  135 시집 이용악 낡은 집 三文社 [동경] 1938.11.10  136 시집 방응모 조선아동문학독본 조선일보사 1938.12. 1  137 시집 최병량 능금 자가본 [동경] 1938.12.16  138 시집 장정심 금선(琴線) [시조집] 경천애인사 1939  139 시집 윤석중 윤석중동요선(尹石重童謠選) 박문서관 1939. 1.25  140 시집 임학수 후조(候鳥) 한성도서㈜ 1939. 1.25  141 시집 임화 현대조선시인선집 학예사 1939. 1.25  142 시집 이하윤 물레방아 청색지사 1939. 1.30  143 시집 이응수 김립시집(金笠詩集) 학예사 1939. 2.20  144 시집 이하윤 현대서정시선 박문서관 1939. 2.28  145 시집 김태오 초원(草原) 청색지사 1939. 3.30  146 시집 임화 조선민요선 학예사 1939. 3.31  147 시집 한죽송 방아 찧는 처녀 한성도서㈜ 1939. 4.20  148 시집 김동환 해당화(海棠花) 삼천리사 1939. 5  149 시집 김상용 망향(望鄕) 문장사 1939. 5. 1  150 시집 박용철 박용철 전집 Ⅰ 시문학사 1939. 5. 5  151 시집 임학수 현대영시선(現代英詩選) 학예사 1939. 5.20  152 시집 허이복 박꽃 중앙인서원 1939. 5.25  153 시집 함윤수 앵무새 자가본 [동경] 1939. 6. 9  154 시집 오장환 헌사(獻詞) 남만서방 1939. 7.20  155 시집 윤곤강 동물시집(動物詩集) 한성도서㈜ 1939. 7.20  156 시집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남만서방 1939. 8. 1  157 시집 이병기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 문장사 1939. 8.15  158 시집 김기림 태양의 풍속(風俗) 학예사 1939. 9. 6  159 시집 임학수 전선시집(戰線詩集) 인문사 1939. 9.15  160 시집 정호승 모밀꽃 조선문학사 1939. 9.30  161 시집 신귀현 역대조선여류시가선 학예사 1939.10. 8  162 시집 김소운 구전민요선 박문서관 1939.10.15  163 시집 이광수 춘원걸작선집 제2권-隨筆과 詩歌 영창서관 1939.10.15  164 시집 신석정 촛불 인문사 1939.11.28  165 시집 장만영 축제(祝祭) 인문사 1939.11.30  166 시집 김억 소월시초(素月詩抄) [편집] 박문서관 1939.12.30  167 시집 유치환 청마시초(靑馬詩抄) 청색지사 1939.12.30  168 시집 김진세 신찬시인집(新撰詩人集) [공저] 시학사 1940  169 시집 박귀송 세기(世紀)의 예언(豫言) 자가본 1940. 2. 1  170 시집 심이랑 분이(紛伊) 한성도서㈜ 1940. 2. 1  171 시집 박남수 초롱불 자가본 [동경] 1940. 2. 5  172 시집 이광수 춘원시가집(春園詩歌集) 박문서관 1940. 2. 5  173 시집 시학사 신찬시인집(新撰詩人集)-32人集 시학사 1940. 2.18  174 시집 박팔양 여수시초(麗水詩抄) 박문서관 1940. 3.30  175 시집 김기수 동녀상(童女像) [일어] 詩洋社 [동경] 1940. 4. 5  176 시집 안확 시조시학(時調詩學) 조광사 1940. 4.25  177 시집 김소운 우유빛 구름(乳色の雲) 하출서방 1940. 5.25  178 시집 김소운 구전동요선 박문서관 1940. 5.30  179 시집 이찬 망양(茫洋) 박문서관 1940. 6.15  180 시집 김동일 흐름 奬學社 [동경] 1940. 7.10  181 시집 윤석중 어깨동무 자가본 1940. 7.20  182 시집 윤곤강 빙화(氷華) 한성도서㈜ 1940. 8. 1  183 시집 김남인 청색마(靑色馬) [김남인·김해강 공저] 명성출판사 1940. 8.30  184 시집 김해강 청색마(靑色馬) [김남인·김해강 공저] 명성출판사 1940. 8.30  185 시집 이기열 낙서(落書) 崔泳柱 발행 1940. 8.30  186 시집 김달진 청시(靑枾) 청색지사 1940. 9. 2  187 시집 함윤수 은화식물지(隱花植物誌) 장학사 1940.12.26  188 시집 박노춘 여정(旅程) 창문사 1940.12.28  189 시집 강소천 호박꽃 초롱 박문서관 1941  190 시집 김소월 소월시초(素月詩抄) 박문서관 1941  191 시집 허용봉 산백합(山百合) - 1941  192 시집 강홍운 노방초(路傍草) 초원사 1941. 2  193 시집 서정주 화사집(花蛇集) 남만서고 1941. 2  194 시집 임춘길 화병(花甁) 이상오 발행 1941. 5  195 시집 김용호 향연(饗宴) 동경 발행 1941. 6  196 시집 이가종 노석(老析) 남창서관 1941. 6  197 시집 김억 안서시집(安曙詩集) 박문서관 1941. 7  198 시집 김소운 조선민요집 新潮文庫刊行會 [동경] 1941. 7. 5  199 시집 이응수 김립시집(金笠詩集) [再版] 한성도서㈜ 1941. 7. 8  200 시집 정지용 백록담(白鹿潭) 문장사 1941. 9  201 시집 김용제 아세아시집 [일어] 대동출판사 1942  202 시집 윤덕조 월음산(月陰山) 河兆書房 [동경] 1942  203 시집 한식 고려촌(高麗村) [일어] 汎東洋社 [동경] 1942  204 시집 김동환 해당화(海棠花) [再版] 대동아사 1942. 5  205 시집 김조규 재만조선시인집 예문사 [간도] 1942.10  206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前期 興風館 [동경] 1943  207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中期 興風館 [동경] 1943  208 시집 김억 동심초(同心草) 조선출판사 1943  209 시집 김용제 어동정(御東征) [일어] 문성당 1943  210 시집 김종한 설백집(雪白集) [일어] 박문서관 1943  211 시집 김종한 수유한지가(垂乳恨之歌) 인문사 1943  212 시집 김종한 たらちねのうた(부모의 노래) [일어] 인문사 1943  213 시집 도구량 조선시가집 국민시가발행소 1943  214 시집 松村紘一 手に手を(손에 손을) [일어] 박문서관 1943  215 시집 김경수 꽃과 바다 형설문화사 1943. 3  216 시집 김용제 산무정 대신문화사 1943. 3  217 시집 김춘수 제일시집 문예사 1943. 3  218 시집 박경종 꽃밭 중앙문화사 1943. 3  219 시집 송욱 유혹 사상계사 1943. 3  220 시집 이강수 남창집(南窓集) 자가본 1943. 3  221 시집 이효상 인생(人生) 대건출판사 1943. 3  222 시집 조영암 우남찬가 수문각 1943. 3  223 시집 권환 자화상(自畵像) 조선출판사 1943. 8  224 시집 김억 꽃다발-조선여류漢詩선집 박문서관 1944  225 시집 김억 백락천시선(白樂天詩選) 한성도서㈜ 1944  226 시집 김억 야광주(夜光珠) 조선출판사 1944  227 시집 김억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2권 [양주동·김억] 한성도서㈜ 1944  228 시집 김용제 보도시첩(報道詩帖) [일어] 동도서적㈜ 1944  229 시집 茂山戶姸 호연가집(戶姸歌集) 進明고등여학교 1944  230 시집 박일연 박일연시초(朴一淵詩抄) 화판 등사본 1944  231 시집 박종화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1권 [이병기·박종화] 한성도서㈜ 1944  232 시집 양주동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2권 [양주동·김억] 한성도서㈜ 1944  233 시집 이병기 지나명시선(支那名詩選) 제1권 [이병기·박종화] 한성도서㈜ 1944  234 시집 조선문인보국회 결전시집(決戰詩集) 동도서적㈜ 1944  235 시집 佐藤信重 적심부(赤心賦) 조선문인보국회 1944  236 시집 최상수 현대동요·민요집 대동인서관 1944  237 시집 차원흥 전원(田園) 한성도서㈜ 1944. 3  238 시집 권환 윤리(倫理) 성문당서점 1944.12  239 시집 강소천 꿈을 찍는 사진관 남향문화사 1945  240 시집 김기한 제사(祭祀) 安東기독청년회 1945  241 시집 김성애 불별 - 1945  242 시집 김성애 사랑의 진주(眞珠) - 1945  243 시집 김성애 소년동요집 이문당 1945  244 시집 김성애 아동낙원(兒童樂園) 이문당 1945  245 시집 김성애 장미속에 숨은 별 이문당 1945  246 시집 김성애 초엽(草葉) - 1945  247 시집 김성애 한 송이 백합(百合) 창문사 1945  248 시집 김억 금모래 - 1945  249 시집 김영일 다람쥐 고려서적회사 1945  250 시집 박팔양 만주시인집 - 1945  251 시집 유운경 봄과 사랑 영창서관 1945  252 시집 이태환 조선미(朝鮮美) [서울] 발행 1945  253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중앙문화협회 1945  254 시집 진금도 독립기념 애국시 경성서광사 1945  255 시집 최용학 홍산시집(弘山詩集) 신조선사 [부산] 1945  256 시집 則武三雄 풍영집(風詠集) [일어] 인문사 1945  257 시집 노천명 창변(窓邊) 매일신보사 1945. 2  258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중앙문화협회 1945.12  259 시집 김광균 와사등(瓦斯燈) [再版] 정음사 1946  260 시집 김동석 길 정음사 1946  261 시집 김목랑 흰나비 김목랑시집간행회 1946  262 시집 심인섭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3 시집 오덕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4 시집 오장환 에세-닌 시집 동향사 1946  265 시집 윤석중 초생달 박문출판사 1946  266 시집 이동주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7 시집 정철 네 동무 [이동주·정철·심인섭·오덕 공저] 목포예술문화동맹 1946  268 시집 정태진 아름다운 강산 신흥국어연구회 1946  269 시집 정태진 조선동요전집-현대편 신성문화사 1946  270 시집 조선청년문학가협 날개-해방1주년기념詞華集 조선청년문학가협회 경남본부 [부산] 1946  271 시집 최동순 고압선(高壓線) 강원문화협회 1946  272 시집 한인현 문들레 제일출판사 1946  273 시집 이금필 백합화(百合花) 연문사 [부산] 1946. 1  274 시집 박세영 산제비 [再版] 별나라사 1946. 2  275 시집 박아지 심화(心火) 우리문학사 1946. 3  276 시집 조선문학가동맹시 삼일기념시집 건설출판사 1946. 3  277 시집 김기림 바다와 나비 신문화연구소 1946. 4  278 시집 박세영 횃불-해방기념시집 우리문학사 1946. 4  279 시집 박종화 청자부(靑磁賦) 고려문화사 1946. 5  280 시집 정지용 정지용시집(鄭芝溶詩集) [再版] 건설출판사 1946. 5  281 시집 박두진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2 시집 박목월 동시집 조선아동회 [대구] 1946. 6  283 시집 박목월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4 시집 신석초 석초시집(石艸詩集) 을유문화사 1946. 6  285 시집 정지용 지용시선(芝溶詩選) 을유문화사 1946. 6  286 시집 조지훈 청록집(靑鹿集) [박목월·박두진·조지훈 공저] 을유문화사 1946. 6  287 시집 오장환 병든 서울 정음사 1946. 7  288 시집 권환 동결(凍結) 건설출판사 1946. 8  289 시집 김경탁 얼 빙염암 1946.10  290 시집 김용득 요람(搖藍) 자가본 1946.10  291 시집 박목월 초록별 조선아동문화협회 1946.10  292 시집 이설주 들국화 대구민고사 1946.10  293 시집 이육사 육사시집(陸史詩集) 서울출판사 1946.10  294 시집 정지용 백록담(白鹿潭) [再版] 백양당 1946.10  295 시집 김광현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6 시집 김상훈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7 시집 박산운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8 시집 유진오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299 시집 이병철 전위시인집(前衛詩人集) [이병철·유진오·박산운·김상훈·김광현 공저] 노동사 1946.12  300 시집 김수성 불사른 일기 [烏山] 발행 1947  301 시집 김억 이조규수한시선집(李朝閨秀漢詩選集) 동인문화사 1947  302 시집 문화전선사 전초시인(前哨詩人)-22人集 문화전선사 1947  303 시집 박태보 석금(石琴) 1 석금동인사 1947  304 시집 박팔양 박팔양시집(朴八陽詩集) 문화전선사 1947  305 시집 안양문학동인회 청포도(靑葡萄) 安養문학동인회 1947  306 시집 윤계현 청과집(靑顆集) 동화사 1947  307 시집 윤영춘 현대중국시선 청년사 1947  308 시집 임인수 어디 만큼 왔나 동지사 아동원 1947  309 시집 중앙문화협회 해방기념시집 [再版] 중앙문화협회 1947  310 시집 청파아 조국(祖國) 화성당서점 [수원] 1947  311 시집 표일호 검정다리 - 1947  312 시집 한덕희 북소리 시회 동백(冬栢) 1947  313 시집 황윤섭 규포시집(葵圃詩集) 조선아동회 [대구] 1947  314 시집 방기환 녹야(綠野) 자가본 1947. 1  315 시집 양상경 출범(出帆) 자가본 1947. 1  316 시집 오장환 성벽(城壁) [再版] 아문각 1947. 1  317 시집 피천득 서정시집(抒情詩集) 상호출판사 1947. 1  318 시집 김수돈 소연가(召燕歌) 문예신문사 1947. 2  319 시집 김억 먼동이 틀 제 백민문화사 1947. 2  320 시집 모윤숙 옥비녀 동백사 1947. 2  321 시집 임화 찬가(讚歌) 백양당 1947. 2  322 시집 서창근 소년시집(少年詩集) 서울대예과문예부 1947. 3  323 시집 조선문학가동맹시 연간조선시집-1946년판 조선문학가동맹 1947. 3  324 시집 김상옥 초적(草笛) [시조집] 수향서간 1947. 4  325 시집 설정식 종(鐘) 백양당 1947. 4  326 시집 이용악 오랑캐꽃 아문각 1947. 4  327 시집 임화 회상시집(回想詩集) 건설출판사 1947. 4  328 시집 김광균 기항지(寄港地) 정음사 1947. 5  329 시집 김상훈 대열(隊列) 백우서림 1947. 5  330 시집 서창근 어머님의 모습 삼천리서관 1947. 5  331 시집 이원수 종달새 새동무사 1947. 5  332 시집 조운 조운시조집(曺運時調集) 조선사 1947. 5  333 시집 김수환 성황당 고개 문학연구소 1947. 6  334 시집 김윤국 그 집 앞 진흥정판사 1947. 6  335 시집 오장환 나 사는 곳 헌문사 1947. 6  336 시집 유치환 생명의 서(書) 행문사 1947. 6  337 시집 신석정 슬픈 목가(牧歌) 낭주문화사 1947. 7  338 시집 김동명 삼팔선(三八線) 문륭사 1947. 9  339 시집 김원룡 내 고향 새동무사 1947. 9  340 시집 여상현 칠면조(七面鳥) 정음사 1947. 9  341 시집 이병기 가람시조집(嘉藍時調集) [再版] 백양당 1947. 9  342 시집 박승걸 박승걸시집(朴勝杰詩集) 상호출판사 1947.11  343 시집 김용호 사랑의 서정시 박영사 1947.12  344 시집 이희승 박꽃 백양당 1947.12  345 시집 김용경 구전婦謠 베틀 노래집 경기공립상업학교 1948  346 시집 박문서 소백산(小白山) 백우사 1948  347 시집 윤주영 상형문자(象形文字) 철야당서점 [대구] 1948  348 시집 윤태웅 하이네 연애(戀愛) 시정음사 1948  349 시집 이하윤 불란서 시선 수선사 1948  350 시집 임학수 초생달 [타고르 作] 문호사 1948  351 시집 정음사 조선민요집 정음사 1948  352 시집 고영진 사랑 물레 평문사 1948. 1  353 시집 김동명 하늘 문륭사 1948. 1  354 시집 김소월 소월민요집(素月民謠集) 산호장 1948. 1  355 시집 설정식 포도(葡萄) 정음사 1948. 1  356 시집 유진오 창(窓) 정음사 1948. 1  357 시집 유진오 창(窓) 정음사 1948. 1  358 시집 윤곤강 피리 정음사 1948. 1  359 시집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1  360 시집 이원희 옛터에 다시 오니 평화도서㈜ 1948. 1  361 시집 정인보 담원시집(園詩集) 을유문화사 1948. 2  362 시집 김기림 새 노래 아문각 1948. 4  363 시집 서정주 귀촉도(歸蜀途) 선문사 1948. 4  364 시집 임학수 팔도풍물시집 [再版] 백민문화사 1948. 4  365 시집 김용호 해마다 피는 꽃 시문학사 1948. 6  366 시집 장영창 어느 지역 태양당 1948. 6  367 시집 윤곤강 살어리 시문학사 1948. 7  368 시집 윤영춘 무화과(無花果) 숭문사 1948. 7  369 시집 임학수 필부(匹夫)의 노래 고려문화사 1948. 7  370 시집 조벽암 지열(地熱) 아문각 1948. 7  371 시집 신동집 대낮 교문사 1948. 8  372 시집 정진업 풍장(風葬) 시문학사 1948. 8  373 시집 최석두 새벽길 조선사 1948. 8  374 시집 김기림 기상도(氣象圖) [再版] 산호장 1948. 9  375 시집 김상민 옥문이 열리던 날 신학사 1948. 9  376 시집 김춘수 구름과 장미 행문사 1948. 9  377 시집 유치환 울릉도(鬱陵島) 행문사 1948. 9  378 시집 이설주 방랑기(放浪記) 계몽사서점 1948. 9  379 시집 김도성 고란초 문영사 1948.10  380 시집 김상훈 가족(家族) 백우사 1948.10  381 시집 박종옥 상원시조집(桑園時調集) 고려문화사 1948.10  382 시집 장만영 유년송(幼年頌) 산호장 1948.10  383 시집 설정식 제신(祭神)의 분노(憤怒) 신학사 1948.11  384 시집 윤석중 굴렁쇠 수선사 1948.11  385 시집 이준 이준시집(李俊詩集) 지문각 1948.11  386 시집 권태응 감자꽃 글벗집 1948.12  387 시집 김억 민요시집(民謠詩集) 한성도서㈜ 1948.12  388 시집 이정기 발자욱 대한족청금천군단 1948.12  389 시집 이효상 산(山) 조선출판사 1948.12  390 시집 김영일 소년기마대 - 1949  391 시집 김종욱 강한 사람들 민교사 1949  392 시집 모윤숙 렌의 애가 청구문화사 1949  393 시집 박민 산역의 밤(山驛의 밤) 문예신문사 [부산] 1949  394 시집 박연주 매원(梅苑) [박연주·이돈근 공저] 順天梅中문예부 1949  395 시집 박영종 현대동요선 한길사 1949  396 시집 성경록 조선의 민요 [성경록·장사훈] 국제음악문화사 1949  397 시집 안확 시조시학(時調詩學) [再版] 교문사 1949  398 시집 윤복구 게시판(揭示板) 중앙문화협회 1949  399 시집 이돈근 매원(梅苑) [박연주·이돈근 공저] 順天梅中문예부 1949  400 시집 장사훈 조선의 민요 [성경록·장사훈] 국제음악문화사 1949  401 시집 정운삼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1집 동대학생문화실 1949  402 시집 조문재 백양(白羊) 문화신문사 [김천] 1949  403 시집 천일편집부 제일시집 [天一 5호 부록] 한국상업은행 1949  404 시집 최기우 동방의 빛 동진문화사 1949  405 시집 최동환 여명(黎明) [김천] 발행 1949  406 시집 최자현 형상(形象)-7인시집 시문학사 1949  407 시집 김상옥 고원의 곡(故園의 曲) 성문사 1949. 1  408 시집 김철수 추풍령(秋風嶺) 산호장 1949. 1  409 시집 이용악 현대시인전집 1 동지사 1949. 1  410 시집 김병호 황야(荒野)의 규환(叫喚) 평화당 1949. 3  411 시집 김상원 백로(白鷺) 구고산방 1949. 3  412 시집 노천명 현대시인전집 2 동지사 1949. 3  413 시집 이상 이상선집(李箱選集) 백양당 1949. 3  414 시집 정훈 머들령 계림사 1949. 3  415 시집 고영진 제삼시집(第三詩集) 평문사 1949. 4  416 시집 김경린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17 시집 김수영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18 시집 김평옥 몽로(夢路) 국립서울대학신문사 1949. 4  419 시집 박인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0 시집 양병식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1 시집 임학수 조선문학전집 10-시집 한성도서㈜ 1949. 4  422 시집 임호권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5인 공저] 도시문화사 1949. 4  423 시집 박두진 해 청만사 1949. 5  424 시집 유치환 청령일기(日記) "백자사, 행문사" 1949. 5  425 시집 김상옥 이단의 시(異端의 詩) 성문사 1949. 6  426 시집 이범혁 표정(表情) 국학연구소 1949. 6  427 시집 심훈 그날이 오면 한성도서㈜ 1949. 7  428 시집 조병화 버리고 싶은 유산(遺産) 산호장 1949. 7  429 시집 윤복진 꽃초롱 별초롱 아동예술원 1949. 8  430 시집 김남종 남종시조집(南鍾時調集) 자가본 1949.10  431 시집 김영랑 영랑시선(永郞詩選) 중앙문화협회 1949.10  432 시집 이설주 잠자리 육생사 1949.10  433 시집 박거영 바다의 합창(合唱) 시문학사 1949.11  434 시집 김광섭 마음 중앙문화협회 1949.12  435 시집 고영진 유어(柳魚) - 1950  436 시집 김송월 은방울 - 1950  437 시집 김호 수액(樹液) 육성사 1950  438 시집 박승훈 외별 시집 - 1950  439 시집 서태관 황우(黃牛) - 1950  440 시집 김소월 진달래꽃 숭문사 1950. 2. 5  441 시집 서정률 빛 잃은 태양(太陽) 행문사 1950. 2.10  442 시집 서정주 현대조선명시선 온문사 1950. 2.15  443 시집 김영일 다람쥐 고려서적㈜ 1950. 2.20  444 시집 김상용 망향(望鄕) 이대출판부 1950. 3. 1  445 시집 김광균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6 시집 신석정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7 시집 유치환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8 시집 장만영 현대시집 Ⅱ[유치환·장만영·김광균·신석정] 정음사 1950. 3.10  449 시집 서정주 작고시인선 정음사 1950. 3.13  450 시집 김기림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1 시집 김영랑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2 시집 노천명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3 시집 정지용 현대시집 Ⅰ[노천명·김기림·김영랑·정지용] 정음사 1950. 3.19  454 시집 김춘수 늪 문예사 1950. 3.20  455 시집 박두진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6 시집 박목월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7 시집 서정주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8 시집 조지훈 현대시집 Ⅲ[박두진·박목월·조지훈·서정주] 정음사 1950. 3.20  459 시집 김태홍 땀과 장미와 시 흥민사 1950. 4.10  460 시집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慰安) 산호장 1950. 4.13  461 시집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改版] 영창서관 1950. 4.20  462 시집 전상렬 피리소리 철야당서점 1950. 4.30  463 시집 윤석중 아침까지 산아방 1950. 5. 5  464 시집 박목월 현대명작동요선 산아방 1950. 6.10  465 시집 김규동 애국시 33人集 문성사 1951  466 시집 서덕출 봄 편지 대한문화사 1951  467 시집 박병규 조국의 노래 [박병규·박종선 공저] 청구출판사 [대구] 1951. 1. 1  468 시집 박종선 조국의 노래 [박병규·박종선 공저] 청구출판사 [대구] 1951. 1. 1  469 시집 이윤수 전선시첩(戰線詩帖) 2 문총경북지대 1951. 1.20  470 시집 이동주 혼야(婚夜) 호남공론사 1951. 3.15  471 시집 조영암 시산을 넘고 혈해를 건너(屍山을 넘고 血海를 건너) 정음사 1951. 3.30  472 시집 모윤숙 풍랑(風浪) 문성당 1951. 4.30  473 시집 구상 구상시집(具常詩集) 청구출판사 1951. 5.10  474 시집 이영순 연희고지(延禧高地) 정음문화사 1951. 6. 1  475 시집 이효상 바다 대건출판사 1951. 6. 1  476 시집 김상기 창파(滄波)-久遠의 香氣 경남경찰국 1951. 6. 7  477 시집 오종규 닭울음 학생시우회 1951. 7. 1  478 시집 김춘수 기(旗) 문예사 1951. 7.25  479 시집 박거영 악의 노래(惡의 노래) 국제신보사출판국 1951. 8.25  480 시집 김세익 자류(榴) 대한문화사 1951. 9  481 시집 이상화 상화(尙火)와 고월(古月) 청구출판사 1951. 9. 5  482 시집 이장희 상화(尙火)와 고월(古月) 청구출판사 1951. 9. 5  483 시집 유치환 보병과 더불어 문예사 1951. 9.11  484 시집 박양 별과 나무 밑에서 남광문화사 1951.10. 5  485 시집 이용상 아름다운 생명 시문학사 1951.10.15  486 시집 서창수 호롱 청구문화사 [대구] 1951.10.27  487 시집 구경서 폭음(爆音) 삼익출판사 1951.12  488 시집 고원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489 시집 공군문고 창궁(蒼穹) 공군본부정훈감실 1952  490 시집 김동흠 금조(金鳥)Ⅰ[김동흠·신정한 공저] 삼일신문사 1952  491 시집 김상길 다도해(多島海) - 1952  492 시집 김상옥 석류꽃 현대사 1952  493 시집 김해성 해몽 중앙출판사 1952  494 시집 김호 수액(樹液) 박문출판사 1952  495 시집 문총구국대 전선시첩(戰線詩帖) 국방부정훈국 1952  496 시집 박종화 월탄문학선(月灘文學選) 수도문화사 1952  497 시집 설창수 개폐교 영남문학회 1952  498 시집 설창수 삼인집 [설창수·이영순 외] 영남문학회 1952  499 시집 신정한 금조(金鳥)Ⅰ[김동흠·신정한 공저] 삼일신문사 1952  500 시집 이경순 생명부 영남문학회 1952  501 시집 이노인 구원 한국산경연구소 1952  502 시집 이덕성 조락의 모닥불 [정문원·이덕성 공저] 문총사 [부산] 1952  503 시집 이민영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504 시집 이영순 삼인집 [설창수·이영순 외] 영남문학회 1952  505 시집 이한직 한국시집-上 대양출판사 1952  506 시집 장호 시간표 없는 정거장 [이민영·장호·고원 공저] 협동문화사 1952  507 시집 정남수 연비(燕飛)동인시집 燕飛동인 1952  508 시집 정문원 조락의 모닥불 [정문원·이덕성 공저] 문총사 [부산] 1952  509 시집 조영암 운남찬가(雲南讚歌) 동서문화사 1952  510 시집 하재린 흰버선 자가본 1952  511 시집 해군해병군목 포도원(葡萄園) 해군해병군목 1952  512 시집 효안동인 종(鐘) 曉岸동인회 1952  513 시집 김송월 님의 노래 괴산문화사 1952. 3  514 시집 김용호 푸른 별 남광문화사 1952. 3  515 시집 김종문 벽(壁) 문헌사 1952. 3  516 시집 박일송 주마간산(走馬看山) 노농신보사 1952. 4  517 시집 이설주 미륵(彌勒) 춘추사 1952. 5  518 시집 김도성 갈대 문원사 1952. 7  519 시집 이종두 영(嶺) 세문사 1952. 7  520 시집 김관식 낙화집(落花集) 창조사 1952. 8  521 시집 조병화 패각의 침실(貝殼의 寢室) 정음사 1952. 8  522 시집 김상화 계산기가 놓여 있는 진찰실 국제신보사 1952. 9  523 시집 장호강 총검부(銃劍賦) 삼성출판사 1952. 9  524 시집 문도채 쌈지 태문당서점 1952.10  525 시집 이영순 지령(地靈) 문총사 1952.10  526 시집 김용팔 폐허(廢墟) 광지사 1952.11  527 시집 박양균 두고 온 지표(指標) 춘추사 1952.11  528 시집 조지훈 풀잎 단장(斷章) 창조사 1952.11  529 시집 김용호 남해찬가(南海讚歌) 남광문화사 1952.12  530 시집 김소운 조선시집 창원사 1953  531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2집 동대학생문화실 1953  532 시집 박용묵 신애보(信愛譜) 은총문화협회 1953  533 시집 이규남 숙명의 성좌(星座) 金龍도서㈜ 1953  534 시집 이성환 황혼가(黃昏歌) - 1953  535 시집 이중한 푸른 하늘과 더불어 청춘사 1953  536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1-불란서 정양사 1953  537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2-독일 정양사 1953  538 시집 장태현 담수어(淡水魚) 민계사 1953  539 시집 해군본부정훈감실 한국해양시집 해군본부정훈감실 1953  540 시집 호남동인 시와 산문 항도출판사 [목포] 1953  541 시집 김남조 목숨 수문관 1953. 1  542 시집 김상옥 의상(衣裳) 현대사 1953. 2  543 시집 김수돈 우수의 황제(憂愁의 皇帝) 대한문화사 1953. 2  544 시집 박기원 한화집(寒火集) [박기원·최재형 공저] 현대사 1953. 2  545 시집 최재형 한화집(寒火集) [박기원·최재형 공저] 현대사 1953. 2  546 시집 한무학 새로운 초의 속도(秒의 速度) 세계평론사 1953. 2  547 시집 김형기 용사의 무덤 동서문화사 1953. 3  548 시집 노영란 화려한 좌표 자유장 1953. 3  549 시집 노천명 별을 쳐다보며 희망출판사 1953. 3  550 시집 박일송 목련화(木蓮花) 한국문화사 1953. 3  551 시집 함석헌 수평선 너머 삼협문화사 1953. 3  552 시집 김영삼 푸른 섬 동문사서점 1953. 4  553 시집 김춘수 인인(隣人) 문예사 1953. 4  554 시집 유근주 투혼에 산다 건국신보사 1953. 4  555 시집 이설주 유수곡(流水曲) 춘추사 1953. 4  556 시집 김오남 김오남시조집(金午男時調集) 성동공업고등학고 1953. 5  557 시집 황양수 문(門) 남광문화사 1953. 5  558 시집 김형기 이등병 동서문화사 1953. 6  559 시집 서정주 흑산호(黑珊瑚) 우생출판사 1953. 6  560 시집 이원섭 향미사(響尾蛇) 문예사 1953. 6  561 시집 정진업 김해평야(金海平野) 남지문화사 1953. 6  562 시집 한하운 한하운시초(韓何雲詩抄) [再版] 정음사 1953. 6  563 시집 김종문 불안한 토요일 보문각 1953. 7  564 시집 박두진 오도(午禱) 영웅출판사 1953. 7  565 시집 이상로 귀로(歸路) 백조사 1953. 7  566 시집 이한직 청룡(靑龍) 해병사정훈감실 1953. 8  567 시집 서정봉 소정시초(素汀詩抄) 현대사 1953. 9  568 시집 노일영 호롱불 동해당 1953.12  569 시집 가람동인회 새벽 사화집 가람동인회 1954  570 시집 경기여중고 매훈(梅薰) 경기여중고 1954  571 시집 고석규 달과 암초 [김재섭·고석규 공저] 가람동인회 1954  572 시집 김선양 정조(靜潮) 문아사 1954  573 시집 김재섭 달과 암초 [김재섭·고석규 공저] 가람동인회 1954  574 시집 김해성 풍토(風土) 풍토동인회 1954  575 시집 김홍섭 무명(無明) 통문관 1954  576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3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4  577 시집 박경종 꽃밭 중앙문화사 1954  578 시집 박화목 초롱불 인간사 1954  579 시집 서울사범학교 옹달샘 서울사범학교 1954  580 시집 송욱 유자(誘恣) 사상계사 1954  581 시집 신작품동인회 신작품(新作品) 자유문학사 1954  582 시집 양정고 계원(桂苑) 양정고 1954  583 시집 양주동 시경초(詩經抄) [再版] 을유문화사 1954  584 시집 유익조 사랑의 추억(追憶) 서울문예사 1954  585 시집 이보정 개선을 지르고(凱旋을 지르고) 자가본 1954  586 시집 이은상 노산문선(鷺山文選) - 1954  587 시집 장만영 세계서정시선 6-중국 정양사 1954  588 시집 조영암 운남찬가(雲南讚歌) [再版] 동서문화사 1954  589 시집 최승렬 무지개 문아사 1954  590 시집 최영선 여신(女神) 순천중 학도호국단 1954  591 시집 학원 한국소년시집-제1집 [學園 부록] 대양출판사 1954  592 시집 김송월 풀벼개 계몽사 1954. 1  593 시집 김태홍 창(窓) 자유문화사 1954. 1  594 시집 문성당 연간시집-1953년 문성당 1954. 1  595 시집 이영도 청저집(靑苧集) 문예사 1954. 1  596 시집 장원석 인간에의 초대 명성출판사 1954. 1  597 시집 문성당 현대시인선집-上 문성당 1954. 2  598 시집 문성당 현대시인선집-下 문성당 1954. 3  599 시집 조병화 인간고도(人間孤島) 산호장 1954. 3  600 시집 이광수 춘원시가집(春園詩歌集) 경진사 1954. 5  601 시집 최귀동 젤뜨루다의 사랑 갑진문화사 1954. 5  602 시집 고석규 초극(超劇) [고석규·김재섭 공저] 삼협문화사 1954. 6  603 시집 김재섭 초극(超劇) [고석규·김재섭 공저] 삼협문화사 1954. 6  604 시집 이은상 조국강산 [시조집] 민족문화사 1954. 7  605 시집 김동명 진주만(眞珠灣) 이대출판부 1954. 8  606 시집 정훈 파적(破笛) 학우당 1954. 8  607 시집 박철석 목련(木蓮) 영남문학회 1954. 9  608 시집 이종학 꽃밭 희문사 1954. 9  609 시집 김광섭 체중(體重) 문성당 1954.10  610 시집 김형기 무너진 지층(地層) 한국출판사 1954.10  611 시집 신동집 서정의 유형(抒情의 流刑) 영웅출판사 1954.10  612 시집 유치환 청마시집(靑馬詩集) 문성당 1954.10  613 시집 이설주 순이의 가족 문성당 1954.10  614 시집 이성환 별과 나 동서문화사 1954.10  615 시집 김대현 청사(靑史) 창문사 1954.11  616 시집 석재춘 기억의 단면 세문사 1954.11  617 시집 유근주 항전(抗戰) 국민보사 1954.11  618 시집 이상덕 강변촌(江邊村) 자가본 1954.11  619 시집 강욱 태양을 위한 환상(幻想) 공동문화사 1954.12  620 시집 고원 이율의 항변(二律의 抗辯) 시작사 1954.12  621 시집 노문천 미이라 박문출판사 1954.12  622 시집 윤영춘 하늘은 안다 문연사 1954.12  623 시집 이덕성 호흡(呼吸) 시작사 1954.12  624 시집 이봉순 반딧불 이대출판부 1954.12  625 시집 이창환 애상(愛想) 입성사 1954.12  626 시집 최학규 길 항도출판사 1954.12  627 시집 김경수 꽃과 바다 [再版] 형설문화사 1955  628 시집 김관식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29 시집 김숭문 전시한국문학선-시편 국방부정훈국 1955  630 시집 김영배 호수(湖水) [김영배·전대주 공저] 자가본 1955  631 시집 김용제 이태백시선(李太白詩選) 문호사 1955  632 시집 김원우 해설(解說) [김원우·김재성 공저] 경남고등학교 1955  633 시집 김원태 현대의 온도(溫度) 도시문화사 1955  634 시집 김원태 호반의 노래 프린트 1955  635 시집 김일로 꽃씨 민중서관 1955  636 시집 김재성 해설(解說) [김원우·김재성 공저] 경남고등학교 1955  637 시집 김종원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38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4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5  639 시집 박인환 촌락(村落) 1 문학동인회 1955  640 시집 박종화 한국문학전집 민중서관 1955  641 시집 박청허 동토(童土) 조선일보사 1955  642 시집 범조사 현대서정시선 범조사 1955  643 시집 송명호 사인부락(四人部落) 예술시보사 1955  644 시집 양주동 T.S. 엘리어트 시선집 보문각 1955  645 시집 유강환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46 시집 유치환 생명의 서(書) [再版] 영웅출판사 1955  647 시집 이광수 사랑 문선사 1955  648 시집 이만선 파문수(破門囚) 기독교문화사 1955  649 시집 이명온 애연(哀燕) 서울신문사 1955  650 시집 이상로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51 시집 이성환 황혼선(黃昏線) 민중서관 1955  652 시집 이응창 물오리 문호사 1955  653 시집 이주일 혈화의 전선(血火의 戰線) 희망사 1955  654 시집 이형기 해 넘어가기 전의 기도 [이형기·김관식·이상로 공저] 현대문학사 1955  655 시집 임성규 백악시초(白岳詩抄) 서울고등학교 1955  656 시집 전대주 호수(湖水) [김영배·전대주 공저] 자가본 1955  657 시집 전영택 의의 태양(義의 太陽) 대한기독교서회 1955  658 시집 정규남 생명의 章 [김종원·정규남·유강환 공저] 민성문화사 1955  659 시집 주세중 농민의 노래 민중서관 1955  660 시집 최귀동 인생(人生) 숭문사 1955  661 시집 학우사 한국시인전집-제1권 학우사 1955  662 시집 이인석 사랑 청춘사 1955. 1  663 시집 석용원 종려(棕櫚) 시작사 1955. 2  664 시집 이주일 진중음(陳中音) 희망사 1955. 2  665 시집 홍성문 문(門) 계몽사 1955. 2  666 시집 한하운 보리피리 [再版] 인간사 1955. 3  667 시집 김남조 나아드의 향유(香油) 남광문화사 1955. 4  668 시집 정훈 벽오동(碧梧桐) 학우사 1955. 5  669 시집 이호우 이호우시조집(爾豪愚時調集) 영웅출판사 1955. 6  670 시집 최광렬 개인잡지(個人雜誌) 현대출판사 1955. 8  671 시집 박종국 사어첩(私語帖) 동해당 1955. 9  672 시집 이하윤 현대문학전집 4 한성도서㈜ 1955. 9  673 시집 김규동 나비와 광장(廣場) 산호장 1955.10  674 시집 박인환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 산호장 1955.10  675 시집 박치원 하나의 행렬(行列) 시작사 1955.10  676 시집 장호강 항전의 조국 한영옥 1955.10  677 시집 김종문 시사시대(詩史時代) 보문각 1955.11  678 시집 백상현 석불 앞에서 문춘사 1955.11  679 시집 이효상 사랑 양양출판사 1955.11  680 시집 임인수 땅에 쓴 글씨 새사람사 1955.11  681 시집 조병화 사랑이 가기 전에 정음사 1955.11  682 시집 김경수 창조의 노래 새사람사 1955.12  683 시집 김영삼 저항의 유성(抵抗의 流星) 인간사 1955.12  684 시집 노문천 고몽(孤夢) 범조사 1955.12  685 시집 박거영 인간이 그립다 인간사 1955.12  686 시집 박목월 산도화(山桃花) 영웅출판사 1955.12  687 시집 송명문 화성인(火星人) 장왕사 1955.12  688 시집 이동주 강강술래 호남출판사 1955.12  689 시집 최민순 님 경향잡지사 1955.12  690 시집 최성연 은어(銀魚) 서울신문사 1955.12  691 시집 고대문학회 이상전집(李箱全集) 2 태성사 1956  692 시집 구곡천 흑인부락(黑人部落) 충북문화사 1956  693 시집 김명균 한잔 술 인생의 노래 한국유토피아협회 1956  694 시집 김시창 손 희문사 1956  695 시집 김신철 장미꽃 향문사 1956  696 시집 김용호 국민애송시선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  697 시집 김창호 산천의 향기(山川의 香氣) 과학출판사 1956  698 시집 김해성 신풍토(新風土) - 1956  699 시집 동국학생회 동국학생시집(東國學生詩集)-제5집 동국대 학도호국단 1956  700 시집 박목월 사람을 사랑함은 서러운 것을 인간사 1956  701 시집 박석창 시든 영산홍(映山紅) [임학송·박석창 공저] 향문사 1956  702 시집 박양균 빙하(氷河) 영웅출판사 1956  703 시집 석용원 한국시집 현문사 1956  704 시집 수천구락부 보내는 가슴 수천구락부 1956  705 시집 안청중학교 안청학원 30주년 기념시집 안청중학교 1956  706 시집 오종규 관주(貫珠) 觀海동인회 1956  707 시집 유대건 초점(焦點) 신성다방 1956  708 시집 임학송 시든 영산홍(映山紅) [임학송·박석창 공저] 향문사 1956  709 시집 장만영 남구시집(南歐詩集) 정양사 1956  710 시집 최희섭 애연(哀燕) 중앙일보사 1956  711 시집 충무중등교육회 심해선(深海線) 충무중등교육회 1956  712 시집 하인 어두운 지역 항도출판사 1956  713 시집 홍원 홍원시집(洪原詩集) 자유문화사 1956  714 시집 황영덕 신해(信海) 파수군사 1956  715 시집 이규남 개벽전야(開闢前夜) 한국입체이학사 1956. 1  716 시집 정소파 마을 여자문화사 1956. 1  717 시집 김오남 심영(心影) 동인문화사 1956. 3  718 시집 허연 불망비(不忘碑) 향문사 1956. 3  719 시집 김선조 정조(靜潮) 이론사 1956. 4  720 시집 김용호 날개 대우사 1956. 4  721 시집 박병순 낙수첩(落穗帖) 향도출판사 1956. 4  722 시집 이숭자 호심의 곡(湖心의 曲) 현대출판사 1956. 4  723 시집 이육사 육사시집(陸史詩集) [再版] 범조사 1956. 4  724 시집 이종택 새싹의 노래 연합출판사 1956. 4  725 시집 고원 태양의 연가(戀歌) 이문당 1956. 5  726 시집 김상옥 목석의 노래(木石의 노래) 청우출판사 1956. 5  727 시집 김영랑 영랑시선(永郞詩選) 정음사 1956. 5  728 시집 박철석 까마귀 갑진문화사 1956. 6  729 시집 서정주 서정주시선(徐廷柱詩選) 정음사 1956. 6  730 시집 장만영 밤의 서정(抒情) 정양사 1956. 6  731 시집 한하운 한하운시전집(韓何雲詩全集) 인간사 1956. 6  732 시집 김두원 인생유감(人生遺憾) 대한일보사 1956. 7  733 시집 석용원 잔(盞) 신교출판사 1956. 7  734 시집 이설주 수난의 장(受難의 章) 문성당 1956. 7  735 시집 이설주 애무의 장(愛撫의 章) 문성당 1956. 7  736 시집 김경수 최후의 만찬(晩餐) 새로이출판사 1956. 8  737 시집 유대건 통통배 새로이출판사 1956. 8  738 시집 황양수 오후의 기도 인간사 1956. 8  739 시집 김소영 새로운 언어 삼우출판사 1956. 9  740 시집 김소월 정본소월시집(定本素月詩集) 정음사 1956.10  741 시집 박두진 박두진시선(朴斗鎭詩選) 성문사 1956.10  742 시집 윤석중 노래동산 학문사 1956.10  743 시집 김지향 병실(病室) 녹양사 1956.11  744 시집 신석정 빙하(氷河) 정음사 1956.11  745 시집 구상 초토의 시(焦土의 詩) 청구출판사 1956.12  746 시집 김관식 김관식시선(金冠植詩選) 자유세계사 1956.12  747 시집 김악 영토(領土) 동해당 1956.12  748 시집 김용호 헝가리 비가(悲歌) [김용호·이영순 공저]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12  749 시집 문덕수 황홀(恍惚) 세계문화사 1956.12  750 시집 신동문 풍선과 제삼포복(風船과 第三匍匐) 충북문화사 1956.12  751 시집 이생진 녹벽(綠壁) 해미중학시작반 1956.12  752 시집 이영순 헝가리 비가(悲歌) [김용호·이영순 공저] 한국자유문학자협회 1956.12  753 시집 전상렬 백의제(白衣祭) 자유문화사 1956.12  754 시집 전영경 선사시대(先史時代) 수문사 1956.12  755 시집 조병화 여숙(旅宿) 정음사 1956.12  756 시집 조지훈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 정음사 1956.12  757 시집 한무학 지진에 떠는 기상대 평문사 1956.12  758 시집 김신철 은하수 향문사 1957  759 시집 최절로 이랑 금성사 1957  760 시집 김두회 율림의 정화(栗林의 情火) 김성호 1957. 1  761 시집 김윤철 불사조의 나래 신교출판사 1957. 2  762 시집 공중인 무지개 삼천리사 1957. 3  763 시집 구석봉 피의 역사 경향문화사 1957. 3  764 시집 김광수 사파詩集 문화사·동강사 1957. 4  765 시집 김봉룡 다시 살아 있는 생명 산호장 1957. 4  766 시집 김창식 촛불과 나와 자가본 1957. 4  767 시집 이관희 석천시집(石川詩集) 자가본 1957. 4  768 시집 김광림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69 시집 김종삼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70 시집 전봉건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 [김종삼·김광림·전봉건 공저] 자유문화사 1957. 5  771 시집 구경서 회귀선(回歸線) 중앙문화사 1957. 6  772 시집 김평옥 별은 밤마다 정음사 1957. 6  773 시집 박정온 최후의 서정(抒情) 정음사 1957. 6  774 시집 손재준 여정(旅程) 국민문화사 1957. 6  775 시집 장우경 장미의 꿈 자가본 1957. 6  776 시집 김광균 황혼가(黃昏歌) 편호장 1957. 7  777 시집 이설주 거화(炬火) 문성당 1957. 7  778 시집 이설주 방랑인(放浪人) 문성당 1957. 7  779 시집 박봉우 휴전선(休戰線) 정음사 1957. 9  780 시집 김영랑 오늘 장문사 1957.10  781 시집 김윤식 오늘 장문사 1957.10  782 시집 김종대 조류(潮流) 김동민 1957.10  783 시집 이설주 낙수인생(落穗人生) 인간사 1957.10  784 시집 인수환 고향(故鄕) 채문사 1957.10  785 시집 김동명 목격자 인간사 1957.11  786 시집 김시철 임금(林檎) 삼천리사 1957.11  787 시집 박치원 위치(位置) 자유문학자협회 1957.11  788 시집 유정 사랑과 미움의 시 홍자출판사 1957.11  789 시집 장만영 저녁 종소리 정양사 1957.11  790 시집 조병화 서울 성문각 1957.11  791 시집 고재승 솟적새 우는 밤 광주문화사 1957.12  792 시집 김광섭 해바라기 자유문학자협회 1957.12  793 시집 김규동 평화에의 증언 삼중당 1957.12  794 시집 김소월 소월시선 여원사 1957.12  795 시집 김현승 김현승 시초 문학사상사 1957.12  796 시집 서광렬 종소리 한국출판사 1957.12  797 시집 안장현 어안도 인간사 1957.12  798 시집 유치환 제9시집 한국출판사 1957.12  799 시집 이경훈 추억 인간사 1957.12  800 시집 이기반 두 날개 보광출판사 1957.12  801 시집 이상로 불온서정 신교출판사 1957.12  802 시집 이생진 동창화 서산여중고 1957.12  803 시집 장호 파충류의 합창 시작사 1957.12  804 시집 정소파 산창일기 천일출판사 1957.12  805 시집 추은희 시심의 계절 동아출판사 1957.12  806 시집 김규동 현대의 신화 덕련문화사 1958  807 시집 이병기 현대시조선총 새글사 1958  808 시집 전봉건 소월시화첩 성대학사 1958  809 시집 김경옥 회색의 거리를 걸어간다 시작사 1958. 1  810 시집 김수환 물새와 해녀 중앙문화사 1958. 1  811 시집 김영협 시와 나무에 얽힌 사랑의 기적 삼중당 1958. 1  812 시집 윤혜승 애가 동서문화사 1958. 1  813 시집 이규남 숙명의 세좌 금룡도서㈜ 1958. 1  814 시집 이용운 황무지 자가본 1958. 1  815 시집 홍성문 꽃과 철조망 동서문화사 1958. 2  816 시집 김경수 감람원과 축제와 통곡 한길문화사 1958. 3  817 시집 신태식 미래를 위한 기도 성미당출판사 1958. 3  818 시집 조병화 석아화 [기행시집] 정음사 1958. 3  819 시집 김대현 옥피리 정음사 1958. 4  820 시집 신동집 제이의 서시 한국출판사 1958. 5  821 시집 이은상 노산시조선집(鷺山時調選集) 남향문화사 1958. 5  822 시집 조애영 슬픈 동경 서울신문사 1958. 5  823 시집 노천명 사랑의 노래 한림사 1958. 6  824 시집 박희선 새앙쥐와 우표 세종문화사 1958. 6  825 시집 김우옥 태양과 지옥의 시 향도출판사 1958. 7  826 시집 김동수 노방초(路傍草) 인간사 1958. 8  827 시집 정영태 검은 태양의 계보 자유장 1958. 8  828 시집 김남조 나무와 바람 정양사 1958. 9  829 시집 이상국 오후의 밀도 상각인쇄사 1958. 9  830 시집 정영협 불모지대 향도출판사 1958. 9  831 시집 박현서 인간 홍문도서출판사 1958.10  832 시집 석강원 밤이 주는 가슴 형설문화사 1958.10  833 시집 여영택 담향 동서문화사 1958.10  834 시집 유근주 타나 남은 꿈 이론사 1958.10  835 시집 정한모 카오스의 사족 범호사 1958.10  836 시집 정훈 피맺힌 연륜 박영사 1958.10  837 시집 조유로 부동항 청우출판사 1958.10  838 시집 공중인 조국-시와 사진 예술세계문학사 1958.11  839 시집 김소월 초혼 박영사 1958.11  840 시집 박거영 고독한 반항자 인간사 1958.11  841 시집 박송죽 보라빛 의상 자가본 1958.11  842 시집 함윤수 사향묘 중앙문화사 1958.11  843 시집 김규동 갈잎피리 청우출판사 1958.12  844 시집 김상옥 꽃 속에 묻힌 집 [동시집] 청우출판사 1958.12  845 시집 김종문 인간조형 보문각 1958.12  846 시집 김지향 막간풍경 녹양사 1958.12  847 시집 김태홍 조류의 합창 인간사 1958.12  848 시집 박남수 갈매기 소묘 춘조사 1958.12  849 시집 박화목 시인과 산양 장학출판사 1958.12  850 시집 박훈산 날이 갈수록 철야당 1958.12  851 시집 유치환 유치환 시선 정음사 1958.12  852 시집 유치환 유치환 시초 신구문화사 1958.12  853 시집 이영순 제삼의 혼돈 인문사 1958.12  854 시집 이종현 어머니 가톨릭청년사 1958.12  855 시집 하한주 골고타 가톨릭청년사 1958.12  856 시집 전봉건 신풍토 백자사 1959  857 시집 김붕한 탑 부여중학교 1959. 1  858 시집 김소월 못잊어 성문사 1959. 1  859 시집 박재륜 궤짝 속의 왕자 해동문화사 1959. 1  860 시집 최승렬 원정 범조사 1959. 1  861 시집 김소월 님의 노래 경문사 1959. 2  862 시집 모윤숙 정경 일문서관 1959. 3  863 시집 유치환 동방의 느티 신구문화사 1959. 3  864 시집 이민영 잃어버린 체온 문호사 1959. 4  865 시집 최병구 원죄근처 범문각 1959. 4  866 시집 박영숙 이브의 사념 백영사 1959. 5  867 시집 박지수 삶의 노래 상구문화사 1959. 5  868 시집 이승만 우남시집 공보실 1959. 5  869 시집 김악 키르쿡크의 석유 동원사 1959. 6  870 시집 김춘수 꽃의 소묘 백자사 1959. 6  871 시집 황양수 시월의 목장 계몽사 1959. 6  872 시집 신석초 바라춤 통문관 1959. 7  873 시집 정규남 허공에 미리칼 하나 향도출판사 1959. 7  874 시집 피천득 금아시문집 경문사 1959. 7  875 시집 김남조 수정과 장미 정양사 1959. 9  876 시집 노영란 흑보석 금문사 1959. 9  877 시집 정연길 시인과 시민의 대화 시간 만년장 1959. 9  878 시집 김광림 상심하는 접목 백자사 1959.10  879 시집 김상렬 하오 한 시 보문사 1959.10  880 시집 김영랑 영랑시집(永郞詩集) 박영사 1959.10  881 시집 박시인 휴지 성문각 1959.10  882 시집 변영로 수주시문집(樹州詩文集) 경문사 1959.10  883 시집 이만선 무변지대 새길문화사 1959.10  884 시집 정무호 해바라기 씨를 심으며 해동문화사 1959.10  885 시집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 춘조사 1959.11  886 시집 김윤성 바다가 보이는 산길 춘조사 1959.11  887 시집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춘조사 1959.11  888 시집 박봉우 겨울에도 꽃피는 나무 백자사 1959.11  889 시집 석용원 야간열차 정신사 1959.11  890 시집 심하벽 여유 삼영사 1959.11  891 시집 안도섭 지도 속의 눈 향문사 1959.11  892 시집 이형섭 하초 홍지사 1959.11  893 시집 장주진 지맥의 서정 인간사 1959.11  894 시집 전봉건 사랑을 위한 되풀이 춘조사 1959.11  895 시집 조병화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성문각 1959.11  896 시집 김소월 기억 문양사 1959.12  897 시집 김윤환 로타리 부근 중앙출판사 1959.12  898 시집 박목월 "난, 기타" 신구문화사 1959.12  899 시집 박향식 유역(流域) 삼덕문화사 1959.12  900 시집 배효식 편주의 항해 문림사 1959.12  901 시집 백시걸 구름에게 구슬에게 정신사 1959.12  902 시집 양명문 푸른 전설 동신문화사 1959.12  903 시집 이성환 구름은 울지도 못한다 태서문화사 1959.12  904 시집 장서언 장서언 시집 신구문화사 1959.12  905 시집 전영경 나의 취미는 고독이다 현문사 1959.12  906 시집 정한모 여백을 위한 서정 신구문화사 1959.12  907 시집 조영직 꽃피는 양지 향문사 1959.12  908 시집 조지훈 역사 앞에서 신구문화사 1959.12  909 시집 박화목 그대 내 마음의 창가에 서서 보문출판사 1960  910 시집 이희승 박꽃 [再版] 일조각 1960  911 시집 이규남 혈맥 한국입체이학회 1960. 1  912 시집 이윤수 인간온실 동아출판사 1960. 1  913 시집 문명관 동심 양서문화사 1960. 2  914 시집 이은상 노산시문선(鷺山詩文選) 경문사 1960. 2  915 시집 유대건 두루미선생 새로이출판사 1960. 3  916 시집 이근배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문일사 1960. 3  917 시집 이명길 생명 영남문학회 1960. 3  918 시집 양주동 무애시문선 경문사 1960. 4  919 시집 김남조 정념의 기(旗) 정양사 1960. 5  920 시집 박병화 병엽소곡집 삼양출판사 1960. 5  921 시집 고원 눈으로 약속한 시간에 정신사 1960. 6  922 시집 고은 피안감성 청우출판사 1960. 6  923 시집 김경수 구름과 무기 창림사 1960. 6  924 시집 김용호 항쟁의 광장 신흥출판사 1960. 6  925 시집 박경선 목장 문장사 1960. 6  926 시집 이향인 석정 성문사 1960. 6  927 시집 전인구 풀밭에서 세창출판사 1960. 6  928 시집 정훈 꽃시집 민중서관 1960. 6  929 시집 하한주 마돈나 갑진문화사 1960. 6  930 시집 김재동 밤에 피는 꽃 성학사 1960. 7  931 시집 유병배 마음의 판도 문호사 1960. 7  932 시집 장도혁 창조자의 증언 영문사 1960. 7  933 시집 정찬조 조춘 청우출판사 1960. 7  934 시집 배병창 소나기와 종 성학사 1960. 8  935 시집 김윤식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형설출판사 1960. 9  936 시집 마종기 조용한 개선 부민문화사 1960. 9  937 시집 최문종 백두산 문우당 1960. 9  938 시집 이설주 볼모의 영토 박영사 1960.10  939 시집 이종택 바다의 어머니 인간사 1960.10  940 시집 임수생 형죄 정토문화사 1960.10  941 시집 민재식 속죄양 사상계사 1960.11  942 시집 박홍근 날아간 빨간 풍선 신교출판사 1960.11  943 시집 박희진 실내악 사상계사 1960.11  944 시집 이효상 안경 구미서관 1960.11  945 시집 김근숙 밤과 사랑의 의미 정신사 1960.12  946 시집 김오남 여정 문원사 1960.12  947 시집 박거영 절정 인간사 1960.12  948 시집 박치원 사월이후 신조문화사 1960.12  949 시집 서창남 네잎 크로바 문원사 1960.12  950 시집 안장현 내 가슴이 흐르는 샘은 정신사 1960.12  951 시집 유치환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동서문화사 1960.12  952 시집 윤석중 엄마손 학급문고간행회 1960.12  953 시집 윤석중 윤석중 시집 학급문고간행회 1960.12  954 시집 김창석 하루 정음사 1961  955 시집 박화목 주의 곁에서 대한기독교회보 1961  956 시집 박희선 화염 속에 숨진 미소 교학사 1961  957 시집 신현득 아기눈 형설출판사 1961  958 시집 김영춘 하도 그리워 인간사 1961. 1  959 시집 이재철 석상의 노래 문리당 1961. 1  960 시집 이준범 황우 신흥출판사 1961. 1  961 시집 최옥자 포도밭에서 수도여사대출판사 1961. 1  962 시집 김창직 인상 인간사 1961. 2  963 시집 송욱 하여지향 일조각 1961. 2  964 시집 이명길 내일의 길가에서 영남문학회 1961. 2  965 시집 김준식 둥근 달이 떴을 때는 갑신문화사 1961. 3  966 시집 박봉우 사월의 화요일 성문각 1961. 4  967 시집 유광렬 생화 성화사 1961. 4  968 시집 주세중 불행한 일기 인간사 1961. 4  969 시집 주세중 흙냄새 인간사 1961. 4  970 시집 이상로 세월 속에서 일조각 1961. 5  971 시집 이희승 심장의 파편 일조각 1961. 5  972 시집 한상억 평행선의 대결 범조사 1961. 5  973 시집 황동규 어떤 개인 날 중앙문화사 1961. 5  974 시집 최연홍 해변의 표상 부민문화사 1961. 6  975 시집 박종우 습지 청구출판사 1961. 7  976 시집 최광호 분노의 영토 강산문화사 1961. 7  977 시집 이인석 종이집과 하늘 태성사 1961. 8  978 시집 홍성문 얼굴 신조사 1961. 8  979 시집 심하벽 회향의 연주곡 자가본 1961. 9  980 시집 조봉제 가을과 바다의 묘비명 친학사 1961. 9  981 시집 하한주 영혼의 노래 경햡잡지사 1961. 9  982 시집 한승헌 인간귀향 자가본 1961. 9  983 시집 서벌 하늘색 일요일 새글사 1961.10  984 시집 전규태 석류 태서문화사 1961.10  985 시집 조병화 밤의 이야기 정음사 1961.10  986 시집 노천명 산호림 [再版] 천명사 1961.11  987 시집 송숙자 인어의 꿈 보문각 1961.11  988 시집 어효선 봄 오는 소리 교학사 1961.11  989 시집 정열 원뢰 정치문화사 1961.11  990 시집 조유로 하이얀 칠판 청우출판사 1961.11  991 시집 김지향 사육제 신영사 1961.12  992 시집 김창석 간주곡 신흥출판사 1961.12  993 시집 박종화 월탄시선(月灘詩選) 현대문학사 1961.12  994 시집 서정주 신라초 정음사 1961.12  995 시집 서정희 배암 형설문화사 1961.12  996 시집 서창남 비정의 거리 신흥출판사 1961.12  997 시집 이동섭 강물에 띄우는 시 삼도사 1961.12  998 시집 이명길 푸른 역사의 황지 새글사 1961.12  999 시집 장국진 여심 무하출판사 1961.12  1000 시집 조순 전후에 비는 내리는데 신흥출판사 1961.12  1001 시집 최원규 금채적 충남대학신보 1961.12  1002 시집 김동환 파인시집-돌아온 날개 종로서관 1962. 3  1003 시집 김동환 청룡은 간다 해병대사령부 1962.12  1004 시집 김동명 내마음 신아사 1964.11  1005 시집 김종삼 본적지 성문각 1968.11  1006 시집 김종삼 십이음계 삼애사 1969  1007 시집 이육사 광야(曠野) 형설출판사 1971  1008 시집 김종삼 북치는 소년 민음사 1974  1009 시집 김종삼 시인학교 신현실사 1977  1010 시집 오일도 지하실의 달 문화공론사 1977  1011 시집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민음사 1982  1012 시집 김종삼 큰소리로 살아있다 외쳐라 청하 1984  1013 시집 김종삼 평화롭게 고려원 1984   ... ... ... --------------------------------------------- [출처] [문단소식] 한국 근대시집 년도별 모음|작성자 개울가재  
219    사투리 시번역 댓글:  조회:4882  추천:0  2015-06-14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즈려 밟고 : 가볍게 눌러 밟고  * 즈려 : '재겨 디디어 사뿐히'라는 평안도 방언  약산(藥山) : 평안북도 영변 서쪽에 있는 산. 관서팔경(關西八景)의 하나인 약산동대(藥山東臺)가 있고, 옛부터 진달래가 유명하다  (전라도 버전)  나 꼴 뵈기 싫다고  간다고 허먼  암말도 하지 않을 것인게 곱게 가드라고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 오지게 이쁘다고 하드만)  아름 따다가 가는 길에 뿌려버리제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살포시만 잉깔리고 가더라고  나 꼴 뵈기 싫다고  간다고 허먼  디져도 눈물 한 방울 뿌리지 않을 것이여  (잘 가드라고 임자!)  ---  시의 3연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 와 같았다. 고쳐 쓰기를 통해 얻은 시적 효과를 가장 적절하게 평한 것은 ? ( -(보기)  가시는 길 발거름마다  뿌려노흔 그 꽃을  고히나 즈러밟고 가시옵소서.  어휘를 바꾸니 시적 대상이 바뀌었군.  피동 표현을 첨가하니 화자가 바뀌었어.  시행의 길이를 줄여서 고독의 의미를 강조했군.  심상을 다양화하여 자연과의 친화를 보여 주었군.  시어를 바꾸고 글자 수를 조절해 운율상의 배려를 했군     
218    시 번역 구글 번역기로... 댓글:  조회:6222  추천:0  2015-06-14
  구글이 자사의 번역기를 이용해 시를 번역하는 실험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드미트리 젠젤, 제이콥 우츠코레이트, 프란츠 오크 등 3명으로 구성된 구글의 번역개발 관련 팀은 최근 컴퓨터언어학회의에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시의 형식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한 논문을 제출했다. 이 팀은 시적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를 번역하기 위해 구글 번역기에 이용되는 알고리즘(문제 해결의 절차와 방법)에 변수들을 추가하는 방법을 연구했다는 것. 고전적인 시를 포함해 많은 시가 운율과 압운의 규칙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어 사실상 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이 팀의 드미트리 젠젤은 구글 번역기가 번역과정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는 식의 통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서 이는 가장 강력한 수를 찾기 위해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는 체스 프로그램과 같다고 설명했다. 인간 번역작가는 댓구 운율을 유지하면서 번역작업을 하기로 했다면 원본의 주제에 맞는 운율을 갖춘 한짝의 단어를 찾으면 되지만 번역작가가 그 같은 작업을 계속 할 수는 없다면서 우리(구글 번역기)는 한개가 아닌 100개의 운율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젠젤은 설명했다. 구글은 현재 시 번역기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계획은 없지만 관련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디지탈에도 친숙하다. 고대 극작가인 
217    신화 7... 댓글:  조회:4923  추천:0  2015-06-10
~ ^^   단군신화 단군이야기는 완전 조금 밖에 없다. 단군신화가 아니라 환웅신화라 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모든 신화와 마찬가지로 단군신화도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환웅이 지상계로 하강할 때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린 것은 농경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환웅과 웅녀의 결혼은 이주족과 신주족의 결합을 의미한다. 단군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고유명사 라고 한다. 이런 상징들은 다 알고있었던 거라 그리 놀랍지 않았다.   주몽신화 햇빛을 받아 잉태한 유화는 왼족 겨드랑이로 알을 낳는다. 이건 무슨 상징인걸까? 주몽이 위대한 왕이니까 탄생도 특이하게 쓴건가? 웃기다. 겨드랑이에서 왕이 나오다니ㅋㅋ 여튼, 알에서 태어난 줌오은 어렸을 때 부터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자 금와왕의 아들들이 질투하여 그를 괴롭힌다. 주몽은 자신이 천제의 손 인데 다른 사람의 말을 먹이고 있다는 것이 치욕스럽다 생각하여 남쪽 땅에서 국가를 세우려 한다. 비류왕과의 대결에서 이긴 주몽은 비류땅도 차지한다. 추구월에 하늘로 올라간 주몽은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단군신화와 비슷한 느낌이 난다. 둘다 건국신화라 그런 것 같다. 두 작품의 차이점은 난생인 주몽은 태양숭배사상을 태생인 단군은 곰 토템 신앙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신라 시조 혁거세왕 단군신화, 주몽신화와 마찬가지로 혁거세왕 신화도 왕이 천신의 자손임을 드러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신화들을 그냥 이야기로만 읽었는데 이렇게 해석까지 하니까 더 흥미로운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의 비유가 놀라웠다. 자줏빛 알..계룡..   구토설화 거북이와 토끼가 서로 속고 속이는게 인간 세태에 대한 풍자라는데 정말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풍자한 것을 읽으니 재미있고 더욱 와닿는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에라스무스의 을 봤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구토설화는 인도의 용원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게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진 설화인데 아마 이 때 인도랑 무엇을 하고 있지 않을까? 나의 추측이다.   도미설화 이 설화는 관탈민녀설화라고 한다. 중세시대의 초야권이 생각났다.   지귀설화 선덕여왕을 너무 좋아해서 불귀신이 되다니.. 지귀는 집착이 엄청 강한 것 같다. 불쌍한 지귀.. 선덕여왕을 안 봤으면 죽을 일도 없었을텐데, 다음생에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연오랑세오녀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에 건너가서 왕과 귀비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우월의식을 반영한 것이고 해와 달의 정기를 빼앗겼다는 것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예전부터 쭈욱 라이벌 관계였군. 언제가 시작이었는지 궁금하다.  
216    단군신화 댓글:  조회:5269  추천:0  2015-06-10
단군신화 檀君神話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시대 고대/초기국가 유형 인물 직업 시조 분야 역사/고대사 요약 우리 민족의 시조이고 고조선의 창업왕인 단군에 관한 신화.   [내용] 내용은 7개의 이야기토막으로 엮어져 있다. ① 환인(桓因)과 그 아들 환웅(桓雄), 그리고 환웅의 아들인 단군에 이르기까지의 삼대에 걸친 가계. ② 환웅이 아버지 환인의 도움과 허락을 얻어서 하늘에서 태백산(太白山 : 지금의 백두산)으로 내려오는 것. ③ 신단수(神壇樹) 아래 신시(神市)를 베풀고는 스스로 환웅천왕이라 칭하면서 인간세상을 다스리게 된 일. ④ 곰이 호랑이와 함께 사람되기를 원하였다가 곰만 사람 여자로 화신한 것. ⑤ 그리고 이 여인, 곧 웅녀(熊女)가 사람의 몸으로 현신한 환웅과 혼인한 것. ⑥ 그 부부가 낳은 아기를 이름지어 단군왕검이라 하고 평양에 도읍을 정한 뒤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 것. ⑦ 그가 1908세의 수(壽)를 누린 끝에 아사달산에 숨어 산신이 된 것 등이다. 이것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지하고 있지만,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와는 다소간의 변화가 있다. 실제로 ①에서 ③까지는 별로 다를 바 없으나, ④와 ⑤ 사이에서 크게 달라진다. 즉, ≪삼국유사≫의 웅녀가 사라지고 그 대신 환웅의 손녀가 등장한다. 환웅이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갖추게 한 후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게 한다. 이어 그 사이에 아기가 태어나니 이름하여 단군이라 했고, 그가 조선의 지경에 의지해서 왕이 되었다고 ≪제왕운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④∼⑤에서는 크게 변화가 일어났다가 ⑥∼⑦에서는 다시 이들 문헌 사이에 크게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변화가 많은 ④∼⑤부분을 두고 이들 문헌의 기록을 대비시켜보면, 적어도 주어진 겉문맥상으로는 매우 심각한 것임을 알게 된다. 단군의 어머니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인물인데도 한쪽은 곰이 화신한 여인이고, 다른 한쪽은 신이 화신한 여인이다. 단적으로 ‘동물(곰)/신’의 대립이 두 기록 사이에 있게 된다. 이 ‘동물/신’의 대립은 다시 ‘지상/하늘’이라는 양분적 대립을 함축할 수 있다. 또한 다 같이 단군의 어머니이면서도 ≪삼국유사≫에서는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부계(남계)의 가통(家統)에 혼인해 들어온 여성임에 비해, ≪제왕운기≫에서는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부계 그 자체의 혈통에 딸린 여인이다. 전자가 가통 바깥이라면 후자는 가통 안이다. 말하자면, 양자 사이에는 ‘바깥 존재/안의 존재’라는 대립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어머니가 지닌 ‘안/밖’의 대립을 존중한다면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단군의 출자(出自)에 대해서도 당연히 서로 다른 대립성을 보이게 된다. 곧 ≪삼국유사≫에서 단군은 환인/환웅의 뒤를 이은 부계의 3대인 데 비해, ≪제왕운기≫에서 단군은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가계로서는 4대째에 속하는 여인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왕운기≫는 단군을 환인/환웅으로 이어지는 가통의 5대째 외손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들 문헌 사이에서 ‘3대 부계/5대 모계’라는 대립을 지적할 수 있게 된다. ≪삼국유사≫에서는 부계(남계)를 따른 3대에 걸친 일종의 신통기(神統紀), 곧 신족보(神族譜)가 기술되고 있음에 비해, ≪제왕운기≫에서는 모계(여계)를 따른 5대에 걸친 신족보가 기술되어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이들 문헌 사이에는 이야기토막 ④와 ⑤를 두고 ‘동물(곰)/신’, ‘안/밖’, ‘부계 3대/모계 5대’라는 대립적인 양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제왕운기≫는 ≪삼국유사≫보다 불과 십여 년 늦게 간행된 책이다. 그 짧은 시기 사이에 이만큼 큰 변화를 지닌 신화가 전승되어 있었다는 것은 고려 때 와서 이미 단군신화의 서사구조상의 안정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 ‘곰(동물)/신’, ‘안/밖‘, ’부계/모계‘라는 대립은 보통 차이가 아니며, 의미작용이 거꾸로 뒤집힐 만큼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세 겹의 대립 가운데서 ’곰/신’ 사이의 대립은 비교적 쉽게 조정될 수 있다. ≪삼국유사≫의 “곰이 약을 먹고 사람 몸을 얻어 여자가 되다.”와 ≪제왕운기≫의 “신의 손녀가 약을 먹고 사람몸을 얻어 여자가 되다.”라고 하는 이 두 표현 사이에는 기층적인 공질성이 있는 듯이 보인다. 공질성은 곰도 신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착안함으로써 얻어내게 된다. 이로써 양 기록의 문제된 부분에 담겨 있는 공통의 기층을 요약하면, “사람 아니던 존재가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을 얻어 여자가 된다.”와 같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공질의 기층을 가진 게 사실이라면 ‘곰/신’ 사이의 대립을 조정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인간 아닌 다른 존재가 약을 먹고 변신해서 혼인함으로써 단군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두 기록 사이에 차이가 없다. 뿐만 아니라, 시베리아 및 극동의 북부지방에 깔려 있던 이른바 곰신앙을 고려한다면 ‘곰/신’의 대립의 조정은 더욱더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두 기록 사이의 대립의 조정은 여기서 그치고 만다. ‘안/밖’, 그리고 ‘부계/모계’의 조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왕조의 전설에 부계와 모계가 엇갈리고 있다는 사실이 참고가 될만하나, 어떤 직접적인 해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편 단군신화가 전승된 기록으로 평가되는 ≪세종실록≫ 지리지의 단군에 관한 기록 중에서, 문제된 ④와 ⑤의 이야기토막은 ≪제왕운기≫를 답습하고 있다. 이러한 변이에도 불구하고 단군신화는, 첫째, ‘하늘에서 하강한 천신이 비로소 나라를 열고 왕의 자리에 나아간다.’라는 서사진행에 있어서, 둘째, 신맞이굿의 절차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셋째, 신화·전설의 복합체라는 점에서 나머지의 이른바 ‘건국신화’ 또는 ‘왕권신화’라고 일컬어지는 신화들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공통성을 기반으로 해서 시베리아의 무속적 서사시 및 일본의 일부 왕권신화와 비교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단군신화를 가장 오래된 신화로 잡게 된다면 단군신화가 지닌 세 유형상의 특질을 우리 나라 건국신화들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단군신화의 기본적인 이야기의 축은 ‘하늘에서의 내림’과 ‘왕국의 건설’에 있음을 지적해도 좋을 것이다. 이 두개의 기본축에 ‘씨족의 건설’을 대입한다면 신라 6촌장의 씨족신화, 기타 여러 후대의 씨족신화의 기본적인 유형이 잡히게 된다. ≪삼국유사≫ 혁거세왕조의 기록으로 보아 씨족신화의 바탕 위에 왕권신화가 형성되었다고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왕권신화와 씨족신화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나라/집(가문)’의 대립이 말해주는 차이밖에 없다. ‘하늘에서의 내림’과 ‘왕국의 건설’을 기본축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는 단군신화도 그 밖의 건국신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단군신화는 하늘에서 내린 제1세대가 직접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제2세대가 건설하게 된다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두 세대 위에 하늘의 세대가 군림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신인 첫 세대는 보내는 사람(파송자) 구실을 하면서 하강하는 자를 도와준다. 첫 세대와 둘째 세대 사이에는 ‘천상의 신/지상의 신’, ‘파송자/파송되어 하강한 존재’라는 대립성이 있게 된다. 이 가운데 둘째 대립은 ‘과업을 위임한 자/과업을 맡은 자’라고 함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강한 신인 제2세대와 제3세대 사이에는 ‘천왕/왕검’, ‘산 위 신단수 아래의 신시/평양 도읍의 왕국’이라는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천왕/왕검’ 사이에는 ‘하늘/땅’, ‘신성/세속’ 등의 대립이 끼어 있음직한 것이다. 그것은 ‘산 위의 신단수/평양이라는 도읍’ 이외에 ‘신시/왕국’이라는 대립에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환웅은 종교성 짙은 무속적인 통치자였고, 단군은 세속과 관련된 무속적 왕이었다고 구별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전자쪽에 무당 내지 샤먼으로서의 성격이 보다 더 강하게 투영되어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삼국유사≫의 “바람의 신[風神], 비의 신[雨神], 구름신[雲神]등을 거느리고는 곡식과 목숨과 질병과 형벌제도와 선악의 구별 등을 다스리면서 인간세상의 삼백예순 일들을 갈무리하였다.”고 하는 기록대로라면 환웅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이른바 ‘문화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며 제도를 비로소 창조해 ‘자연/문화’의 대립을 인간들에게 주면서 그 대립을 조절한 최초의 존재가 환웅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가 다스리는 곳의 중심은 신시라고 불렀다. 종교적 성역이었던 셈이다. 환웅은 천신으로서 다스리되, 산 속 신단수 주변의 성역을 중심으로 한 특정 공동체의 신령이자 제사장이자 통치자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직접신인 복합관념을 찾아내기는 힘든 일이 아니다. 이러한 환웅에 의해 고조선의 기틀은 이미 잡혀진 것이다. 하늘에서 하강한 제1세대가 직접 지상의 통치자가 된다는 점에서 환웅은 오히려 혁거세나 수로왕에 견주어져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를 이야기할 때 이와 같은 기초를 놓은 자로서의 환웅의 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환웅과 단군 사이에는 ‘부/자’, ‘예비자/완성자’, ‘천신/지상원리에 감염된 신격’이라는 세 겹의 대립이 있음을 알게 된다. ‘환인·환웅·단군’으로 이어지는 3세대는 ‘과업을 위탁한 자·과업을 예비적으로 수행한 자·과업을 마무리지은 자’라는 연속성을 보인다. 나머지 건국신화에서는 단군신화와 같은 하늘의 세대가 보이지 않고, 단군신화에서의 제2·3세대의 기능이 하늘에서 직접 천강한 제1세대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단군신화는 그 서사구조나 등장인물의 성격에 있어 나머지 건국신화들의 규범형식을 다 갖추고 있거니와, 그것은 고조선이 최초의 왕국으로 인식되어 있는 사실과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단군신화는 우리 나라 서사문학 일반의 3대기의 원형이 되고, 아울러 후대의 각종 마을굿의 원형으로서 마을굿을 통해 되풀이 반복, 실연되면서 이 땅 민속신앙의 지배적 이념구실을 다해온 것이다. →고조선   참고문헌 『단군신화의 신연구』(김재원, 탐구당, 1976) 『단군』-그 이해와 자료-(윤이흠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단군과 고조선』(이형구 엮음, 살림터, 1999) 「단군신화와 토테미즘」(김정학, 『역사학보』 7, 1954) 「단군신화의 한 연구」(황패강, 『백산학보』 3, 1967) 「무속상으로 본 단군신화」(김태곤, 『사학연구』 20, 1968)    
215    檀君王儉 댓글:  조회:6105  추천:0  2015-06-09
단군     한국의 역사 韓國史 선사 시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고조선 시대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94년) 위만조선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진국 (기원전 4세기 ~ 기원전 2세기) 원삼국 시대 부여 (기원전 2세기 ~ 494년) 옥저 · 동예 삼한 (마한 · 진한 · 변한) 삼국 시대 고구려 (기원전 37년 ~ 668년) 백제 (기원전 18년 ~ 660년) 신라 (기원전 57년 ~ 935년) 가야 (42년 ~ 562년) 남북국 시대 신라 (기원전 57년 ~ 935년) 발해 (698년 ~ 926년) 후삼국 시대 신라 (기원전 57년 ~ 935년) 후백제 (892년 ~ 936년) 태봉 (후고구려) (901년 ~ 918년) 통일 왕조기 고려 (918년 ~ 1392년) 조선 (1392년 ~ 1897년) 대한제국 (1897년 ~ 1910년) 식민지 시대 일제 강점기 (1910년 ~ 1945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1919년 ~ 1948년) 분단 시대 군정기 (1945년 ~ 1948년) 대한민국 (1948년 ~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48년 ~ 현재) v • d • e • h 단군(檀君 또는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신화적인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1][2] 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로,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시조로 추앙 받았으며 대종교 등의 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3] 환검(桓儉)이라고도 한다. 단군은 직책으로 보이며 왕검, 왕험(王儉)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의 역사서중에 하나인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나오는 한민족의 으뜸가는 조상의 이름이다.[1][2]   목차    1 생애 1.1 문헌 기록 2 단군에 대한 인식 2.1 세간의 인식 3 종교 속의 단군 4 위서 속의 단군 4.1 명칭 4.2 규원사화 4.3 단기고사 4.4 환단고기 4.5 부도지 5 관련 문화재 6 관련 단체 7 같이 보기 8 각주 9 참고 문헌 10 외부 링크   생애 단군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경에[4] 아사달(阿斯達) 또는 평양에 도읍을 두고 조선을 건국하여 1000여 년 동안 다스렸다고 전해지며 단군의 뒤를 이어 기자가 조선을 다스렸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의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1000여 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하는 기록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미 단군은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누대에 걸친 국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5]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 《응제시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삼랑성(三朗城)을 쌓고 태자 부루를 파견해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맹에 참석시켰다고 한다. 문헌 기록 단군에 대한 기록 실린 역사서는《삼국유사》, 《제왕운기》이다. 고려때 기록이며 그 이전기록에 단군은 보이지 않는다. 고려 이전 기록인《삼국사기》에서는 단군이란 글자는 없지만 '선인 왕검'이란 글자가 보인다. 《제왕운기》에는 단군의 출생과 생애에 대해 약간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제왕운기》는 《본기(本記)》를 인용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손녀와 신단수(神檀樹)의 신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하고 1028년 또는 1038년 또는 1048년[6]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제왕운기》의 단군은 ‘박달나무 단(檀)’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왕검(王儉)이란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동천왕 21년(247년)조이다.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의 기록에 세주로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이 살던 곳(원문,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으로 등장한다. 인명(人名)으로 왕검이 등장하는 것은 이 기록이 최초이며 일반적으로 이를 단군왕검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인명이 아닌 경우 위만이 도읍하였던 고조선의 수도에 왕검 또는 왕험(王險)이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선인 왕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선인 왕검이 왕이 되어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7] 그 외에 《규원사화》, 《단기고사》, 《환단고기》 등 근대에 이르러 등장한 단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있으나, 이들 기록은 아직 학계에서 위서로 판단하여 인정되지 않고 있다. 일부 재야사학자들만이 이러한 기록이 위서가 아닌 진실이라 주장하고 있다.[8][9][10] 단군에 대한 인식   단군상 단군은 고려 말, 대몽항쟁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하여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국조(國祖)로 추앙되었다. 세종 때에는 평양에 단군과 동명왕을 모신 사당을 지어 국가적으로 제사를 올렸으며 환인, 환웅, 단군의 신주를 모신 삼성당(三聖堂) 또는 삼성사가 황해도 문화현 구월산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구한말에는 외세의 각축에 대항하는 한민족의 구심점으로 대폭 강조되어 단군교(檀君敎)와 같은 종교로까지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부각된 단군은 일제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로 큰 역할을 하였다. 또한 대종교 및 독립운동 세력에 의해 단군 시대의 역사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부풀린 《대동사강》, 《규원사화》 등의 위서들이 편찬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일제 혹은 친일파들이 단군을 종교적·학문적으로 이용하여 민심을 무마하려 하거나 일선동조론 등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악용하기도 하였다.[11] 광복 이후 남한의 단군에 대한 연구는 고조선 사회에서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중점을 두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 사회의 제주이자 군장으로, 단군은 대제사장적인 성격을 많이 담고 있으며 왕검은 국가를 통치하는 대군주의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해석한다.[12] 즉 제정일치의 지도자이다.[13] 방언의 분포와 비교언어학적으로 살펴볼 때에도 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를 함께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14] 최남선은 무당이 ‘단골’로 불리는 것을 주목하여 단군을 제사장의 의미로 해석하였으며, 단(檀)을 제터(壇)의 다른 표현이라 하여 단군을 ‘壇君(단군)’으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최남선의 지적에 대해 무녀를 당골네라고 부르는 것은 무녀가 서낭당이 있는 고을에 산다고 하여 ‘당골네’로 부르는 것일 뿐, 단군과는 관련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15] 북한에서는 광복 이후 단군 및 단군신화를 고조선에서 정치권력이 성립하는 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진 건국신화로 보는 것이 기존의 입장이었다.[16] 그러나 1994년에 단군릉을 발굴할 무렵부터 입장을 바꾸어 단군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고 단군이 실존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단군은 한민족이 세운 국가인 고조선의 최초의 왕으로서 출생·건국·무덤이 모두 평양에 있다고 주장한다.[17] 평양직할시 근처에는 북한이 발굴하여 재건한 단군릉이 있으나,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 남한 학계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갑작스러운 입장 변화에 대하여 남한의 역사학계는 주체사상이 북한의 역사관으로 강조되게 된 정치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18] 세간의 인식 1980년대 이후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가 유행하면서 세간에는 단군의 역대 왕계보가 퍼지기도 하였다. 한편 2007년에 청동기 시대의 연대를 기존보다 더 오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고고학 발굴 결과에 발맞추어 국사교과서의 고조선 관련 부분의 서술에서 고조선의 편년을 조금 더 확정적으로 서술하는 형태로 지침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이를 “단군·고조선을 신화에서 역사로 수정”한다는 자극적인 보도를 하여 세간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역사학계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러한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하였다.[19] 종교 속의 단군 단군은 조선시대부터 환인, 환웅과 함께 국조로 민간에서 숭상되었으며 국가적으로도 사당을 지어 제사하였다. 특히 황해도 지역에서 단군 관련 신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한말 외세의 침탈이 격화되면서 단군에 대한 숭상은 점차 강화되어 환인, 환웅,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대종교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단군을 신앙하는 여러 소수 종교가 나타나기도 하며, 무에서는 단군을 옥황천존, 삼신제석 등의 천신과 함께 모신다. 위서 속의 단군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판단하고 있는 《규원사화》, 《단기고사》, 《환단고기》 등의 기록에는 고조선을 지배하였던 역대 단군 47대의 역년과 상세한 치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사서는 47대의 단군 인명은 거의 모두 일치하지만 역년과 상세한 치세 내용은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세상에 공개된 연도가 가장 늦은 《환단고기》에는 《규원사화》와 《단기고사》에 각각 등장하는 치세 내용이 함께 기록되어 있어 두 책을 베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부도지》에도 단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이들 기록에서는 단군을 임검(壬儉)이라 부르기도 한다. 명칭 공통된 47대 단군의 왕호는 다음과 같다. 대수 한자 이름 대수 한자 이름 1 檀君 王儉 단군 왕검 25 率那 솔나 2 夫婁 부루 26 鄒盧 추로 3 嘉勒 가륵 27 豆密 두밀 4 烏斯 오사/오사구 28 奚牟 해모 5 丘乙 구을 29 摩休 마휴 6 達文 달문 30 奈休 나휴 7 翰栗 한율 31 登兀 등올 8 于西翰 우서한/오사함 32 鄒密 추밀 9 阿述 아술 33 甘勿 감물 10 魯乙 노을 34 奧婁門 오루문 11 道奚 도해 35 沙伐 사벌 12 阿漢 아한 36 買勒 매륵 13 屹達 흘달 37 麻勿 마물 14 古弗 고불 38 多勿 다물 15 伐音 벌음/후흘달 39 豆忽 두홀 16 尉那 위나 40 達音 달음 17 余乙 여을 41 音次 음차 18 冬奄 동엄 42 乙于支 을우지 19 緱牟蘇 구모소/종년 43 勿理 물리 20 固忽 고홀 44 丘忽 구홀/구물 21 蘇台 소태 45 余婁 여루 22 索弗婁 색불루 46 普乙 보을 23 阿勿 아물 47 古列加 고열가 24 延那 연나       규원사화  이 부분의 본문은 규원사화#단군기입니다. 기원전 2333년부터 기원전 1128년까지 1205년간 지속되었으며 이후는 기자조선으로 이어진다. 단기고사[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단기고사#내용입니다. 기원전 2512년부터 기원전 416년까지 2096년간 지속되었다. 환단고기  이 부분의 본문은 환단고기#고조선입니다. 기원전 2333년부터 기원전 238년까지 2096년간 지속되었다. 부도지 고조선의 임금은 임검씨(壬儉氏), 부루씨(夫婁氏), 읍루씨(浥婁氏)의 3대만 기록되어 있다. 관련 문화재 단군릉 -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 제174호) 곡성 단군전 - 전라남도 곡성군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28호) 부여천진전단군화상 - 충청남도 부여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69호) 관련 단체[편집] 단군정신선양회 -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사단법인 같이 보기 단군조선 국조 고조선의 건국 신화 환인 환웅 개천절 단군릉 다마야마 신사(ja:玉山神社) - 일본 가고시마 현 히오키 시에 있는 단군을 모셨던 신사 나에시로가와 각주 ↑ 이동:가 나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단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동:가 나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단군, 《브리태니커 백과》 이동↑ 대종교 공식 홈페이지 이동↑ 권근 등 (1402). 《동국사략》. 나라 사람들이 임금으로 세웠다.(당요 25년 무진년) (國人立爲君(唐堯二十五年戊辰) 이동↑ 《동국통감》 〈외기(外紀)〉, 1485년 이동↑ 《본기》의 인용은 1028년으로 되어 있으며, 《제왕운기》의 본문에는 1038년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 나타난 연도를 통해 계산을 해 보면 1048년이 실제 재위 연도이다. 이동↑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五千年間朝鮮(오천년간조선)의 얼, 始祖檀君(시조단군)” (한국어). 동아일보. 1935년 1월 20일. 2012년 7월 17일에 확인함. 이름 목록에서 |이름1=이(가) 있지만 |성1=이(가) 없음 (도움말) 이동↑ 한창건 (2013.04.20). 《한국고대사발굴, 마한월지국사》. 홍익출판기획. ISBN 9788994841021. 이동↑ 우실하 (2007.04.09).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소나무. ISBN 978897139332 |isbn=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이동↑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집부 (1996.12.20). 《한국상고사의 제문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ISBN 2007752004452 |isbn= 값 확인 필요 (도움말). 이동↑ 삿사 미츠아키, 〈한말·일제시대 단군신앙운동의 전개 : 대종교·단군교의 활동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2003 이동↑ 이병도, 《한국사대관》, 1983년, 20쪽. 이동↑ 이병도, 〈고조선 연구〉, 1975년. 이동↑ 정호완, 〈단군왕검의 형태론적 풀이〉, 《한글》 제219호, 한글학회, 1993년 3월, 5쪽 ~ 32쪽. 이동↑ 단군학회 엮음, 《단군과 고조선 연구》, 지식산업사, 2005년, 409쪽. 이동↑ 리지린, 《고조선연구》, 사회과학출판사, 1963년 이동↑ 장우진, 〈대동강유역은 인류의 발상지이며 조선사람의 발원지〉, 《조선고고연구》 1호, 1999년 이동↑ 이기동, 〈북한에서의 단군연구와 그 숭앙운동〉, 《한국사 시민강좌》27집, 2000년 이동↑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고조선 역사 편입과 청동기 기원 경향신문 기사 참고 문헌 일연, 《삼국유사》 이승휴,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북애자, 《규원사화》, 고동영 번역, 한뿌리, 2005년 이유립, 《환단고기》, 광오이해사, 1979년 박금, 《부도지》, 김은수 번역, 주해, 한문화, 2002년 《단기고사》, 한뿌리, 1986년 외부 링크 김정배(金貞培),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단군(檀君)에 대하여〉,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 background-attachment: initial, initial; background-size: initial, initial; background-origin: initial, initial; background-clip: initial, initial; background-position: 100% 50%, 100% 50%; background-repeat: no-repeat, repeat;">「단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숨기기] v • d • e • h 고조선의 역대 국왕 단군조선 (기원전 2333년? ~ 기원전 1122년?) 단군왕검(호칭) 기자조선 (기원전 1122년? ~ 기원전 194년) 기자 · 부왕 · 준왕 위만조선 (기원전 194년 ~ 기원전 108년) 위만왕 · 우거왕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후삼국   고려   조선   대한제국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 정부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분류:  단군 단군조선 국조 고조선의 군주 한국 신화 한국의 신 무속의 신 대종교 단군 檀君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보기| 신고   출생 ? 국적 고조선 요약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이며 고조선(古朝鮮:단군조선)의 첫 임금. 단군왕검이라고도 한다. 천제 환인의 손자이고, 환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웅녀이다. 우리나라 국조신화인 〈단군신화〉의 주인공이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와 우리나라의 〈고기〉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의 〈제왕운기〉, 조선 초기 권람의 〈응제시주 〉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천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라 정한 후, 곰이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혼인해 단군을 낳았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의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원본사이즈보기 단군 단군상, 충청남도 온양시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손자이고, 환웅(桓雄)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웅녀(熊女)이다. 우리나라 국조신화(國祖神話)인 〈단군신화〉의 주인공이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중국의 〈위서 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 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그밖에 고려 후기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 帝王韻紀〉, 조선 초기 권람(權擥)의 〈응제시주 應製詩註〉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다. 내용이 풍부하여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기록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기〉의 것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랜 옛날에 환인의 서자(庶子: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을 가리킴)인 환웅이 항상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버지 환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보내 인간세계를 다스리도록 했다. 이에 환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壇樹) 아래로 내려와서 여기를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속에 살면서 항상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번은 환웅이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1자루와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했다. 곰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여 3·7일(21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이것을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결혼해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다. 왕검이 당고(唐高:중국 3황 5제 중의 堯를 말함. 당시 고려의 제3대 왕인 정조의 이름이 요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뜻이 같은 高자를 대신 쓴 것임) 즉위 50년 뒤인 경인년(庚寅年:당고의 즉위년은 무진년으로 50년뒤면 정사년이므로 경인년이란 표현은 아마 틀린 듯함)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弓忽山:弓자 대신 方자를 쓰기도 함)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했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의 호왕(虎王:주의 무왕을 말함. 고려 2대 혜종의 이름이 武이기 때문에 이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왕에 봉하고, 자신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그밖의 다른 기록들도 세부적인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214    檀君 댓글:  조회:4954  추천:0  2015-06-09
단군 단군왕검, 단웅천왕Dangun , 檀君 폰트확대| 폰트축소| 공유하기|   인쇄 미리   시대 고대/초기국가/고조선 유형 인물 별칭 단군왕검, 단웅천왕 관련 사건 고조선 건국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업 국왕 성별 남 분야 역사/고대사 요약 한민족의 시조로서 고조선(古朝鮮: 檀君朝鮮)의 첫 국왕.   [개설] 단군(壇君)은 단군왕검(壇君王儉)·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도 한다.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서기전 2333년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하였다.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위서(魏書)』와 우리 나라의『고기(古記)』를 인용한『삼국유사』기이편(紀異篇)을 들 수 있다. 반면에 정사인『삼국사기』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대비된다. 한편, 고려시대의 기록으로 이승휴(李承休)의『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으며, 이와 비슷한 내용이 조선 초기의 기록인 권람(權擥)의『응제시주(應製詩註)』와『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타나고 있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반적으로 단군의 탄생과 고조선 건국에 관한 문제를 논급할 때 일차적으로 인용하는 기록은『삼국유사』이다. 먼저『삼국유사』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환인의 서자(庶子: 장남이 아닌 차남 이하의 아들) 환웅이 자주 세상에 내려가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太伯山)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그곳을 신시(神市)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명(命)·병(病)·형(刑)·선(善)·악(惡)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있어 같은 굴 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범이 이것을 받아서 먹고 근신하였는데 3·7일(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이것을 못 참아서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해주는 이가 없으므로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해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壇君王儉)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 중국의 성군인 三皇五帝 가운데 堯임금을 말함. 당시 고려의 3대 왕인 定宗의 이름이 堯인 까닭에 이를 피하여 비슷한 의미인 高자로 대신 쓴 것임) 즉위 후 50년인 경인(庚寅: 당고의 즉위년은 戊辰이므로 50년은 丁巳요 경인이 아니니 틀린 듯함)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다. 이어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의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弓 대신 方자로도 씀)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고도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周)나라 호왕(虎王: 주나라의 武王을 말함. 고려 2대왕 惠宗의 이름 武를 피한 것임)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하였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한편,『제왕운기』에서는『본기(本紀)』(본기는 ‘단군본기’인 듯함)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여 주고 있다. 단군본기인용 “상제(上帝)인 환인에게 서자인 웅(雄)이 있었다. ……(아버지가) 일러 말하기를 내려가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널리 사람에게 도움을 주라 하여 웅이 천부인 3개를 받아 귀신〔鬼〕3,000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오니 이가 바로 단웅천왕이다.……손녀로 하여금 약을 마셔 사람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 조선 지역에 근거하여 왕이 되었다. 그런 까닭에 시라(尸羅: 신라)·고례(高禮: 고구려)·남북옥저(南北沃沮)·동북부여(東北扶餘)·예(濊)·맥(貊)이 모두 단군의 후계이다. 1,038년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죽지 않은 까닭이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단군에 관한 내용을 전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두 기록은 기본적인 내용에서는 비슷하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먼저 단군을 표현함에 있어『삼국유사』에서는 ‘제단 단(壇)’자로 단군을 기록하고 있고『제왕운기』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자를 사용하여 그 의미를 각기 다르게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후자로써 단군을 나타낸다. 한편,『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조에서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을 함께 기록하고 있으나,『제왕운기』에서는 전조선(前朝鮮)이라는 항목에서 단군에 의한 조선을 기술하고, 후조선(後朝鮮) 항목에서 기자에 의한 조선을 언급하여 후속하는 위만조선과 함께 삼조선(三朝鮮)으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있다. [단군신화에 관한 견해] 단군신화 관련 내용은 단군 연구에 있어 기본적인 자료로서 활용되었으나, 중심적인 내용은『삼국유사』의 것을 근간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 견해가 제시되었다. 첫째,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한 종족 신화이던 것인데, 대몽항쟁(對蒙抗爭) 등 민족의 단합이 요구되는 시대에 민족의 시조로 받들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단군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는『삼국유사』의 편찬 시기가 위에서 언급한 시대와 거의 같다는 점도 유의할 만하다. 이는 앞서『제왕운기』에서 구월산(九月山)을 아사달산으로 보고 거기에 사당이 존재한다는 내용과도 연결된다. 한편,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평양에 사당을 지어 단군과 고구려 시조 동명왕을 함께 모신 이후로 단군은 명실상부한 국조(國祖)가 되었다. 또, 구월산에 삼성사(三聖祠: 환인·환웅·단군을 배향)가 있고 강동(江東)에는 단군의 무덤이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하였다. 둘째, 단군과 관련하여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이라는 견해가 전개되었다. 즉, 중앙아시아로부터 한반도·일본 등을 포함하는 지역에 ‘사상’ 중심의 신앙과 사회조직을 가지는 민족이 분포하는데, 종족적 관계는 차치하더라도 문화적으로 일련의 관계가 있다는 견해이다. 여기서 백산(白山)은 그 중심이고 이 문화가 우리 역사에서 구체적 실체로 나타난 것이 단군과 부루(夫婁)라는 것이다. 셋째, 단군신화에 대한 고고학적 견해도 제기되었다. 즉,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무씨사당(武氏祠堂) 돌방〔石室〕내의 화상석(畵像石) 그림이 문헌에 보이는 단군 신화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의 내용은 북방계의 샤머니즘과 관련되며, 이들 특성은 종족 이동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최근 이 견해의 근간이었던 무씨사당 화상석의 내용이 단군신화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넷째, 단군신화에 관한 문헌 위주의 해석이 아닌 역사적 입장에서 결론을 내린 견해도 있다. 즉, 이 신화가 삼신사상의 표현이고, 구체적으로는 태양신화와 토테미즘이라는 두 계통의 신화가 혼재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신화를 달리하는 두 종족이 정치·사회적으로 통합되면서 이들 두 종족의 시조신화가 혼재된 것이며, 이것이 고조선의 일부족적 시조설화였던 것인데 삼국통일과 고려시대에 민족의식이 고조되면서 한민족의 시조신화로 변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다섯째, 단군신화는 천신족(天神族)인 환웅이 지신족(地神族)인 고마족의 여성과 혼인하여 단군이 출생하였다는 것을 설화화한 것이라고 보고, ‘단군’이라는 호칭은 무군(巫君), 즉 제주적(祭主的) 의의가 많고 ‘왕검’이라는 호칭은 정치적 군장(君長)의 의의가 강하므로, 종교적 기능과 정치적 기능이 명칭상에서 구분된다고 파악하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여섯째, 단군신화를 단순한 신화나 토테미즘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태도를 벗어나 우리민족 태고의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원시 부족들의 원시 신앙에 관한 내용을『삼국유사』의 기록과 비교하여, 농경관계 기사를 곡물 재배 민족의 제의(祭儀)로 파악하고 환웅과 웅녀를 쌍분체제(雙分體制, dual organization)로 간주하며, 곰과 범이 한 굴에서 살았다는 내용을 일광금기(日光禁忌)와 탈피(脫皮) 동기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한다. 일곱째, 단군신화의 신화 자체에 나타난 사회상을 강조하고, 또 이를 신봉한 집단이 어떠한 사회집단이었는가를 강조하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는 고조선의 계보가 한족(漢族)의 기자전설이 개입되어 혼란이 있음을 지적하고, 위만조선을 단군조선에서 교체되는 것으로 이해하여 고조선에 단군조선과 종래의 기자조선을 포함시킨다. 이상의 여러 견해들을 감안할 때 단군신화에 대한 이해는 문헌과 고고학적 방법을 연결시켜 분석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단군신화가 포용하고 있는 역사의 시대가 과연 고고학적으로 어떠한 문화를 내포한 시대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한편, 단군을 중심으로 볼 때 웅녀의 존재는 곰의 자손이라는 사상이 중심이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신화 내용을 동북아시아 지역과 연결시켜 고려할 때 고아시아족(古亞細亞族, Paleo Asiatic)의 존재에 주목하게 된다. 이들의 시조신화에는 곰 숭배사상이 나타나며 그들은 자신들이 곰의 자손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고아시아족이 곰 숭배와 함께 갖고 있는 샤머니즘에서의 종교적 요소와 단군신화를 비교해 보면, 최고의 샤먼을 지칭하는 텡그리(tengri)와 단군신화의 ‘단군’, 그 기능과 관련된 세계목(世界木) 관념과 단군신화의 신단수 등은 단군신화의 내용을 고아시아족과 연결시켜 파악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더욱이, 우리의 신석기문화가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되며, 시베리아 신석기문화의 담당자가 고아시아족이라는 사실에서, 단군신화의 시대적 성격이 신석기문화와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가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로 변화한 것이 종족과 문화 변화의 결과라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청동기문화를 담당한 종족이 알타이 계통의 예맥족이며, 그 출현 시기는 이른바 기자조선으로의 변화 시기와 부합한다는 것에서 그 전환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와 함께 단군의 개국 연대가 중국의 요임금과 연결되어 있으나 이 점은 더 연구를 필요로 한다. 최근 이 시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요령(遼寧)지역의 풍하문화(豊下文化: 夏家店下層文化)가 청동기문화로서 단군의 개국연대와 연결된다는 견해가 있으나 이 문화와 우리와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약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단군신화를 시대적 변화를 계기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즉, 첫째 단계에서는 씨족 사회에서의 단순한 씨족 토템이 생겼고, 둘째 단계에서는 ‘군사 민주주의 단계’로 이행하는 시기에 ‘군사수장’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이며, 셋째 단계에서는 계급국가 형성 후 고조선 국왕으로서의 단군이 등장한 것으로 보는 것인데, 이에는 보다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또, 단군 관계 문헌에 대하여,『삼국유사』를 불가(佛家) 계통의 사서로,『제왕운기』등은 유가(儒家) 계통의 사서로,『규원사화(揆園史話)』·『환단고기(桓檀古記)』등을 도가(道家) 계통의 사서로 보아 단군조선의 역사가 47대 마지막 왕에 이르기까지 실사(實史)였음을 강조하는 견해가 제시되기도 하였다. [단군의 민족사적 의의] 역대 단군 인식의 변화를 시기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해 보기도 한다. 제1단계는 고조선 당시의 단군 인식으로 고조선 시조신으로서의 단군이며, 제2단계는 고조선 멸망 이후부터 고려 중엽(13세기)까지로 단군을 한반도 서북지역에서 지역신으로 인식되던 시기라고 한다. 제3단계는 고려 중엽에서 한말(20세기 초)까지이며, 이 시기는 단군이 한국의 국조, 즉 나라를 처음 있게 한 시조로 숭배되던 시기이며, 제4단계는 한말부터 현재까지로 단군이 민족의 시조로 인식되는 시기라고 본다. 원래 신화는 역사적인 사실 바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을 중시해야 하며, 어떤 맥락에서든 신화의 의미는 풀려야 한다. 그러나 단군의 개국신화를 그대로 왕조사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어쨌든, 단군신화는 우리 민족이 수난을 당하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족이 단합하는 구심체 구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것이다.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종교로 발전한 것이 대종교(大倧敎)다. 개천절은 이 종교에서 행하던 의식이었으나 광복 후에는 정부에서 정식으로 개국에 관한 국경일로 정하게 되었다. 한동안 우리 나라에서 사용한 단기(檀紀)는 고려 말 우왕의 사부였던 백문보(白文寶)가 처음 사용했으며, 단기 원년을 서기전 2333년으로 보는 근거는, 조선시대의 사서인『동국통감』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요임금 즉위 25년 무진으로 본 것에 있다. 단기의 사용은 1962년 1월 1일부터 중지되고 서기로만 쓰게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제왕운기(帝王韻紀)』 『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해석』(김정배,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10) 『남북 학자들이 함께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단군학회 편, 지식산업사, 2005) 『단군과 고조선사』(노태돈, 사계절, 2000) 『단군과 고조선』(이형구 엮음, 살림터, 1999) 『북한학계의 단군신화 연구』(서영대 편, 1995) 『단군』(윤이흠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단군실사에 관한 문헌고증』(이상시, 가나출판사, 1987) 『고조선』(유 엠 부찐, 국사편찬위원회 역, 1986) 『고조선연구』(리지린, 학우서방, 1963) 『단군신화의 신연구』(김재원, 정음사, 1947) 「단군 인식의 변천」(서영대,『고조선사 연구 100년:고조선사연구회·동북아역사재단 편』, 학연문화사, 2009) 「한민족의 기원과 형성」(김정배,『한국고대사입문』1, 신서원, 2006) 「단군인식의 변천」(박광용,『한국사학사-우송조동걸선생정년기념논총-』, 1997) 「고조선의 국가형성」(이기백,『한국사시민강좌』2, 일조각, 1988) 「고조선의 재인식」(김정배,『한국사론』14, 1985:『한국고대의 국가기원과 형성』, 고려대학교출판부, 1987) 「아사달의 위치문제와 그 명칭의 의의」(이병도,『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단군신화의 문제점」(이기백,『한국고대사론』, 탐구당, 1975) 「고조선의 주민구성과 문화적 복합」(김정배,『백산학보』12, 1972:『한국민족문화의 기원』,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 「단군신화의 한 연구」(황패강,『백산학보』3, 1967) 「단군신화와 민족적 이념」(이홍직,『국사상의 제문제』1, 국사편찬위원회, 1959) 「단군신화와 토테미즘」(김정학,『역사학보』7, 1954) 「檀君考」(今西龍,『朝鮮古史の硏究』, 近澤書店, 1937) 「不咸文化論」(崔南善,『朝鮮及朝鮮民族』1, 朝鮮思想通信社, 1927)    
213    사투리(문경지방) 댓글:  조회:6647  추천:0  2015-06-08
  지역 사투리 모음 ~ 문경지방 사투리에요~       가마꿈 조심스럽게  가뭍에 가운데에  가시개 가위  가심 가슴  감푸다  귀찮다  개쭈머이 주머니  갱빈 강변  갱시기 갱죽  거따 거기다가   걸배이 거지  겨을그로 겨울로  고단새 그동안  고담째 그다음에  고마 그만  괌 고함  곡게이 삐딱한 사람  구리무 크림   나대다  움직이다  낫기 낫게,충분히  난낭구 런닝셔츠  농갈라 나눠  누기라 누구야  니리가구로 내려가게  니매로 너처럼  니빼이 너밖에  닐다 내려다  도고 줘  돌띠 돌덩이  돌미 돌맹이  돌삐 돌맹이  둔누 들어누어  듣기다 들리다  디기 되게  디다 고되다  디리나 들여놔   디리다 드리다  디비다  뒤지다  디통시 뒤통수  딘장 된장  딜고놀다 데리고놀다  딜다보다 들여다보다  딜라나 들여다 놔  따굽다 따갑다  때기 딱지  땡기다 당기다  땡삐 땡벌  똥골베이 동그라미  똥쭈바리 똥보  뜨시다 따뜻하다  뜰지름 들기름  띠니리다 뛰어내리다  띠댕기다 뛰어다니다  띠먹다 떼어먹다  마다리푸대 자루  마디다 낭비가 없다   마탕가지 마찬가지  마빡 이마  마실 마을  마이 많이  마캉 모두  말리들다 말려들다  매란없다 볼품없다  매룹다 마렵다  맹 마냥  맹글다 만들다  맹물 순수  머라카나 뭐라고하나  머러카다 혼내다  머시마 사내아이  머캐여 혼내다  모간지 목  모개 모과  모도 모두  몽디 몽둥이  무댑뽀 아무 생각없이  무디기 무더기  무르팍 무릅  무수아 무서워  무시 무우  무안하다 부끄럽다  문디 문둥이  문때다 문지르다  문지 먼지  미띠기 메뚜기  미루치 멸치  미칭게이 미친사람  믹이다 먹이다  민경 거울   민듯하다  평평하다  바가치 바가지  바까뿌리 바꿔버려  바라코있다 기다리고 있다  바래이 봐라  바리바리 많이  바티리다 부딛치다  반뚜깨 소꿉  발쿠다  바르게 하다  밥띠기 밥풀  밥뿌재 보자기  방거치 농땡이  방구 바위  배꾸영 배꼽  배따지 배  배차 배추  백지 괜히  버리 보리  버무르다 골고루섞다  버물라 물다  버버리 벙어리  버지기 큰 그릇  벌충 채워넣다  보구수아 보고싶어  복상 복숭아  봇또랑 실개천   봉께돌로 보니까  봉다리 봉지  봉당 뜰  봤다민 봤다면서  부예나다 화나다  불버 부러워  비로 별명  비리다 돌아가시다  비름빡 벽  비스무리하다 비슷하다  빌끼 별게  빙 병  빙시 병신  빠대다  밟다  빡시다 힘이세다  빼꼬밨다 닮았다  빼다지 서랍  빼비 서랍  뻘쭈마이 어정쩡하게  뿌리뿌리 뿌려버려  뿌사 부수어  삐꿈 잠시  삐끼다 벗기다  삐삔내로 자주  삐얄밭 비탈진 밭  산말래이 산꼭대기  삼통 계속해서  삽짜끌 대문밖  설버 서러워  샘 선생님  생키다 삼키다  소곰 소금  소두방 솥뚜껑  소띠끼다 소를 방목하다  소지 청소  속새 씀바귀  솔다 좁다  수구리다 숙이다  수지비 수제비  순배순배 반복적으로  숭 흉  숭막 바보  숭카라  숨겨라  시가리 서캐  시구룹다 시다  시껍했다 혼났다  시꾸룹다 시끄럽다  시다 상하다   시똥  쇠똥  시미기 소먹이  시방 지금  시아르다 세다  심 힘  심시마꿈 제각각  심쭐 힘줄  십상 제법  싱거버리하다 우스개소리 잘하다  싱굽다 싱겁다  싸그리 몽땅  쌔기 빨리  쌔빌렀다 흔하다  쌧다 흔하다  쎄꼿 쇠붙이  쎄빠지다 힘들다  쓴나꿈 조금  씰데 쓸데  씨굽다 쓰다  아가리 입  아가빠리 아가리, 입  아레 그저께  아무따나 아무렇게나  아바이 아버지  아수아 아쉽다  아이라 아니야  아인가베 아닌가 봐  아재 삼촌  아측 아침  악다밧다 야무지다  안죽도 아직도  알굿다  구슬리다  알람미 쌀이름  알키주다 알려주다  암마또마 아무말도 하지 마  암만 아무리  암매 아마  압싸리 차리리  앙국도 아직도  앙꾸도 아무것도  야들 이아이들   얏씸하다 야심하다  어따대고 어디다대고  어마이 엄마  어지 어제  억시기 억세게  얼라 어린아이  엄석 음식  엄채미  제법  엉간하다 어지간하다  엉그락 엄살  여벌 신경안씀  여분디기 옆  엿질곰 엿기름  오돌로 어디로  오분에 이번에  오새 요즈음  오지기 정확하게  옥바리시계 탁상시계  옥수꾸 옥수수  올개 올해  옹골찌다  고소하다  요고빼이 요것밖에  요랑대로 생각대로  우리구영 멍  우수아라  우서워라  우예 어찌  우예든동 어떻게 하든지  우째 어떻게     운지라 언제냐  울매나 얼마나  웅키지다 움켜잡다  이갓집 외갓집  이우제 이웃에  이키나 이렇게나  인손 왼손  잇날 옛날  일라 일어나  입사구 잎  잉기다  옮기다  자부룹다 졸리다  자빠지다 넘어지다  장가 잠궈  장깡 장독대  잣달다 소심하다  저모레 글피  저범 젓가락  저아레 그끄저께  저역 저녁  전신만신에 온몸에  전줏다 겨누다  절딴났다 망했다  점도록  저물도록  점빵 상점  정구지 부추  정낭 화장실  정내미 정  정때기 등  정슴 점심  정지 부엌  젙에 곁에  주디 주둥이  주점부리 간식  줄루리 줄지어  지굼하다  나이들다  지끼다 지껄이다  지다탄 길다란  지르고  붓고  지맛 제맛  지수씨 제수씨  지우 겨우  지지바 계집아이  지꼬때이 짓고땡  지푸다  깊다  직이다 죽이다  진드거이 진득하게  질곰 콩나물  질까 길가   질다 길다  질된다 버릇된다  질라이 전문가  질래 계속  짐 김  짜구 다리비틀림  짜굽다 짜다  짜꾸 자욱  짜부되다 찌그러지다  짬매다 처매다   째보 언청이  째지다 찢어지다  쪼가르다 가르다  쪼가리 조각  쪼다리 어려운 상황  쪼맛하다  작다  쪼매 조금  쪼빗하다 좁다  쪼춤바리  달리기  쫒치다 쪼달리다  쭈굴시룹다 부끄럽다  찌꺼래기 찌꺼기  찌실배기 실하지 못한 물건  찌울다 기울다  찍콩 정통  찐 끈  찡기다  끼이다  창시 창자  채리다 차리다  천날맨날 매일   천지삐까리 흔하다  치아삐리 치워버려  캉긴데 한건데  클랐다 큰일났다  텅게이 물고기이름  토끼다 도망가다  통시깐 화장실  티박주다 창피주다  파이다 안좋다  포티 표시  핀하다  편하다   핑디 팽이  하고낭께 하고나니까  하매 벌써  하장께 하자니까  한거석 하나가득  한데 바깥에  한우쿰 한웅큼  할매 할머니  할배 할아버지  할팅께 할테니  항골래비 방아깨비  허리빵 혁대  헙뻐  절대로  호띠기 풀피리  호래이 호랑이  혹깐가다 가끔씩   혼차 혼자  흥거이 흥건하게  흥아 형  희띠기 멍청한 사람  희안하다 신기하다  히딴데 쓸데없는 데에  힝핀 형편 
212    할매 할배 얘기... 댓글:  조회:4537  추천:0  2015-06-08
  할매 할배 이야기 모음 "노 부부의 시합"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매일마다 싸우면 언 제나 할머니의 승리로 끝났다.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죽기전에 할머니에게 한번 이겨 보는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생각끝에 할아버지는 할머니한테 내기를 했다. 내용 인 즉슨 "오줌 멀리싸기"였다. 결국 이들은 오줌 멀리싸기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결과는 또 할아버지가 지고 만것이다. 당연히 오줌 멀리싸기라면 남자가 이기는 것인데 시합전 할머니의 단 한마디 때문에 할머니가 승리하였다. 그 단 한마디는 바로 "영감! 손데기 없시유"         " 마술사의 염력"     오래 전에 세계적인 마술사 유리 겔러가 한국에 다녀간 적이 있다. 유리 겔러가 TV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여러분께서 자기 몸 가운데 아픈데가 있으면 왼 손으로 아픈 데를 만지고 오른 손으로 TV화면을 만지세요. 내가 염력으로 여러분의 아픈데를 고쳐드리겠습니다." TV를 시청하던 어느 노인이 왼 손으로 자기 그 것을 만지면서 오른 손으로 TV화면을 만지고 있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할 멈이 노인에게 물었다. "아니 영감, 저 사람이 아픈데를 만지라고 했지, 누가 다 죽은 데를 만지라고 했수?"       "남편 생각"  어느 마을에 며느리도 과부이고 시어머니도 과부인 쌍과부가 살았다. 달이 유난히도 밝은 날 밤이었다. 구름에 달이 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며느리 과부는 죽은 남편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며느리 과부는 특히 남편의 그거 생각이 간절했다. 며느리 과부는 하느님께 빌었다. "하느님, 제발 남자 그거나 한 개 떨어뜨려 주 십시오." 며느리 과부 등 뒤에서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 과부가 며느리 과부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리면서 말했다. "야, 이년아! 그거 두 개 떨어지면 큰일나냐?"     " 김장고추"    어느 시골 할아버지가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고추를 자루에 가뜩 담고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로 시집온 딸네 집에 김장 때 쓰라고 고추를 가지고 온 것이다. 기차에서 내린 할아버지는 딸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 다. 할아버지가 버스에 오르자 어느 아가씨가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자 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할아버지가 아가씨에게 말했다. "아가씨, 일어날 것 까지는 없고 다리만 좀 벌려줘! 내가 고추를 밀어 넣을 테니까"        " 할머니의 병"     어느날 병원에 한 할머니가찾아 오셨다. " 무슨 일이시죠??" 묻는 말에 할머니는 한숨을 푹푹 쉬는 것 아닌가. " 글쎄 나는 정말 이상한 병이 있다니까...... 글쎄 나는 하루에도 수 천번씩 방귀를 끼는데 이놈의 방귀는 소리도 안나고 냄새도 하나도 안나는 구먼... 이걸 치료 할 수는 없을까? " 의사는 조용히 창밖을 쳐다보다가 이윽고 조심 스럽게 처방전을 써주며 말했다. " 우선 이 약을 일주일 간 드시고 다시 오시죠" 일주일 후, 갑자기 의사의 방을 박차고 들어온 할머니. 엄청난 분노의 표정으로 소리 질렀다. "의사 양반, 도대체 무슨 약을 지어 줬길래 이 약을 먹고 나서 부터는 내 방귀 냄새가 엄청나게 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변괘요.... 잉" 의사, 빙긋이 웃으며 말하길 " 할머님, 이제 할머님의 코는 말끔히 치료 된 것 같으니, 이젠 할머니의 귀를 치료하죠"    기적입니다, 할머니          "영자의 시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했다." 영자는 의사의 지시로 매일 시어머니의 소변을 받아 검사를 받았다. 하루는 영자가 소변을 받아 의사에게 가져가는 도중 엎지르고 말았다. 깜짝 놀란 영자는 자신의 소변을 대신 받아 검사를 받았다. 다음날 의사가 병실로 찾아와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할머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이 나은 줄 알고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의사의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깜짝 놀라 기절하고 말았다. "임신 3개월입니다!"       "간호사의 친절"    어떤 노인이 연로하고 쇠약해져서 시설과 간호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노인병원에 입원하였다. 담당 간호사는 입속에 혀처럼 노인을 잘 보살폈다. 하루는 노인이 안락의자에서 몸을 왼쪽으로 있는 대로 다 기울인 채로 불편하게 앉아 있었다. 그래서 간호사는 왼쪽 옆구리쪽에 베개를 하나 받쳐 주었다. 그 다음 날 회진할 때 보니 노인이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른쪽 옆구리에 베개를 받쳐 주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은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의자에 앉아 있길래, 몸을 가누기가 무척 힘들구나 생각하고 아예 의자 등받침과 노인의 몸통을 끈으로 묶어 주었다. 가족들이 면회를 와서 노인에게 물었다. "아버님. 병원은 마음에 듭니까?" 노인은 대답했다. "응. 좋아. 참 친절해. 의사도 좋고 간호사도 좋고 .. 그런데 우리 방 간호사는 방구를 못 뀌게 해."           " 비밀번호"    제가 직접 은행에서 목격한 실화입니다. 제가 다니는 은행은 시골 동네에 있는 작은 지점이라 다들 식구처럼 알고 지내는 그런 은행입니다. 일을 보고 은행을 나오려는데 뒤에서 웬 할머니 한 분이랑 은행직원이랑 실랑이를 하고 있더랍니다. “할매∼ 비밀번호가 머라요?” 그러자 할머니 입을 손으로 가리시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비둘기” 하시더랍니다. 황당한 은행 직원 다시 한번 “할매∼비밀번호가 뭐냐니까요?” 그러자 역시 입을 가리신 할머니 한 번 더 “비둘기”. “할매요. 비밀 번호 말 안하면 돈 못 찾는다 아입니까. 비밀번호요.네?” 그래도 변함없이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 비 둘 기” 하시자, 인내가 끝이 보인 직원은 “할매요!! 바쁜데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라십니까. 퍼뜩 비밀번호 대이소!!” 그러자 할머니는 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셨다. “젊은 놈이 왜 이리 눈치가 없어? 남들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 9999라니까”   "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었다. 할머니 너무 힘이 드신지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영감∼ 나 좀 업어줘!” 할버지도 무지 힘들었지만 남자체면에 할 수 없 이 업었다. 그런데 할머니 얄밉게 묻는다. “무거워?” 그러자 할아버지 담담한 목소리로 “그럼 무겁지! 얼굴 철판이지, 머리 돌이지, 간은 부었지. 많이 무겁지!” 그러다 할머니를 내려놓고 둘이 같이 걷다가 너무 지친 할아버지 “할멈, 나두 좀 업어줘!” 기가 막힌 할머니, 그래도 할 수 없이 할아버지를 업는다. 이 때 할아버지 약올리는 목소리로 “그래도 생각보다 가볍지?” 할머니 찬찬히 자상한 목소리로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며, “그럼 가볍지.머리 비었지, 허파에 바람들어 갔지, 양심 없지, 싸가지 없지.  너∼무 가볍지!”         "백수의 4계급"   1계급: 화백(華白) 백수이긴 하지만 골프,여행은 물론이고 애인과 의 밀회도 즐기는 "화려한백수"     2계급 : 반백(半白)       골프,여행이나 애인과의 밀회 중에서 한쪽만 하는 백수   3계급 : 불백(불白)  집에서 칩거 하고있다가 누가 불러주면 나가서 밥 같이 먹거나,     어쩌다 자기가 친구를 불러내어 자리 마련하는 "불쌍한 백수" 4계급 : 가백(家白) 주로 집에만 칩거하면서 손자, 손녀나 봐주고. 마누라 외출시 집잘보라고 당부하면 "잘 다녀오세요" 라고하는 가정에 충실(?)한 백수   그런데 최근에 위의 4계급 외에 새로이 등장한 새 계급(5계급)이 있으니, 이를 "마포불백"이라고 한다는데... 마포불백이란 "마누라도 포기한 불쌍한 백 수"     "하체 단련"   어느 날 지미가 집에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가 바지를 전혀 걸치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앉아계셨다.  지미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할아버지, 지금 바지를 입지 않으신 거 아세요 ?"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지미야, 알고 말고." 그러자 지미가 물었다.  "그럼, 어째서 바지도 입지 않고 밖에 계 신 거예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지미를 보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미야, 어제 내가 셔츠를 입지 않고 밖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목이 뻣뻣해지더구나. 그래서 네 할머니가 이렇게 하 라고 시킨 거란다."                   
211    계영배(戒盈杯) = 절주배(節酒杯) 댓글:  조회:13179  추천:0  2015-06-07
        계영배(戒盈杯)는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뜻으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린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선조들의 교훈이 담겨 있는 잔이다.   목차    1 유래 1.1 중국 1.2 한국     유래 중국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의 춘추오패(春秋五覇)중 하나인 제환공(齊桓公)이 군주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늘 곁에 놓아 마음을 가지런이 했던 그릇(欹器)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리었다. 『순자(荀子)』에서 후에 공자(孔子)가 제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그릇에 구멍이 뚫려 있음에도 술이 새지 않다가 어느 정도 이상 채웠을 때 술이 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을 지키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하며, 용맹을 떨치고도 검약하며, 부유하면서도 겸손함을 지켜야한다며 이 그릇의 의미를 가르쳤다고 한다. 현존하는 그릇은 19세기 청(淸)의 광서제(光緖帝)에 만든 것이 전해진다. 한국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河百源, 1781~1845)이 술이 가득채우면 새어나가는 잔을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비슷한 시기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강원도 홍천 지방의 전설로 내려오고있다. 우명옥은 당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후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하며 이 잔은 후에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에게 전해지며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     1700년대 강원도 두메 산골에 우삼돌이란 도공이 있었습니다. 질그릇을 구워 파는 삼돌은 도자기로 유명한 분원에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분원으로 가서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은 피땀어린 노력 끝에 그의 도예기술은 뛰어난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가 만든 백자 반상기는 왕실에 진상이 되었고 왕은 상금을 내리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촌스런 삼돌이라는 이름 대신 명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우명옥은 뛰어난 도공으로서 유명해지고 돈도 엄청 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시기한 동료들이 어느 날 뱃놀이를 하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기녀 한 명에게 명옥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단단히 당부했습니다.  술과 여자를 모르고 일만하며 살아 온 명옥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여자와의 향락에 빠져 해가 지는 줄도 몰랐습니다. 다음날 명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돈주머니를 차고 기녀 집으로 달려가 술을 마셨습니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그는 술과 여자에 취했습니다. 동료들은 자신들의 계략이 들어맞았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놀이 나갔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뒤집혀 동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명옥만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명옥은 지난 날의 교만과 방탕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다음날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백일기도를 드린 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런지 얼마 후에 명옥은 조그마한 술잔 하나를 스승인 지외장에게 바쳤습니다. 지외장 : 이게 무슨 잔인가? 우명옥 :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입니다. 지외장 : 그게 무슨 뜻인가? 우명옥 :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입니다. 지외장 : 다른 술잔하고 어떻게 다른가? 우명옥 :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 수가 있는데 7부가 넘치게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맙니다. 지외장 : 호오, 그런 신기한 잔을 만들다니.... 우명옥 : 옛부터 문헌에만 전해 오던 술잔을 제가 만들어 봤습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리는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제천의식 때 사용하던 비전의 술잔이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과욕을 경계했다는 신비한 술잔을 본 뒤 이를 본받아 늘 곁에 두고 과욕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그 술잔 만드는 법이 오랫동안 전해지지 않다가 한국에서는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계영배의 구조.  하백원(1781∼1844)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이며 실학자입니다. 그는 계영배를 비롯하여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가 만든 계영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다만 하백원과 우명옥이 동시대인지라 제작 과정에서 서로 인연을 맺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 후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를 당대 최고의 거상인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최인호가 쓴 라는 소설에 이와 관련된 장면이 여러 번 나옵니다.   임상옥은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미 이 잔의 신통력을 알고 있는 임상옥이었기에 그는 술잔의 70퍼센트 정도만 술을 채웠다. 임상옥이 가득 채우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조상영이 입을 열어 말했다. "어찌하여 술잔을 가득 채우지 않소이까?" "나리." 임상옥이 대답했다. "나리께서 직접 보시지 않으셨습니가. 술잔을 가득 채우면 술이 없어지는 것을"  조상영이 다시 물었다. "이 정도만 채우면 술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러할 것이나니다." "좋소. 한번 지켜볼 수 밖에." 조상영은 7부 정도만 채운 잔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는 조상영뿐만 아니었다.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악사와 모든 기생들도 감히 이 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2002년에 MBC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드라마가 방영된 뒤부터 계영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소주나 폭탄주를 7부 정도만 따라 마시는 술자리도 많아졌더군요.    불경 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은 욕심의 불길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마른 풀을 등에 진 사람이 들불을 보고 도망치듯이 깨달음의 길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이 욕심의 불에서 멀리 달아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이 가득 들어찬 자기 자신의 마음을 믿어서는 아니되고 자신의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대로 방치해 두어서도 아니된다.  마음을 억눌러서 욕심이 시키는대로 내닫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불경의 가르침이 아니라도 누구나 각자의 마음속에 계영배를 간직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의 7부만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것의 7부만 행동하고, 갖고 싶은 것의 7부만 갖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싸움도 분노도 대립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욕심과 자만심의 독이 점점 퍼져가고 있는 요즘, '절제와 겸손을 가르치는 신비의 술잔 계영배'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계영배 (戒盈盃) 잔에 7부가 넘는 술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신비의 술잔 계영배, 계영배라는 단어 한번쯤은 들어보셨지요?  계영배는 위의 잔하고 몸체로 구성되어 있읍니다. 자~~ 먼저 잔에 술을 부어줍니다. 7부정도까지만 부으면 술이 그대로 있읍니다.   하지만 7부를 넘어 가득 술을 따르게 되면 잔 밑에 구멍을 통해 술이 전부 빠져버립니다.   그원리를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위의 그림이 계영배 잔의 단면도입니다. (붉은선을 따라 밑에 뚫린 구멍으로 술이 흘러나온다고 보시면 되요)   자세히 설명드리자면 잔 가운데 기둥같은 파이프 안에 작은 파이프가 또 들어있어요~ (위의 단면도 참고) 겉에 파이프 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거 보이시죠 (위의 왼쪽사진) 술을 부으면 그구멍으로 술이 들어갑니다. 안에 작은파이프 높이까지 부으면 (고높이가 7부정도) 술이 빠져나오지 않고 , 그 이상 부으면 술이 겉에 파이프에 차올라 작은파이로 다시 내려가 잔밑의 구멍으로 흘러 나오는 원리 입니다. 그렇게 잔받침으로 흘러나온 술은 다시 잔에 따라마시면 되는거죠 ^^ 이원리를 ' 사이펀의 원리' 라고 합니다 우리 선조들은 정말 대단하신거 같지 않으세요? 이런 원리를 실제 술잔에 적용하여 만드시고요 ~   . 계영배 (戒盈盃)우리에게 주는 교훈 "자기의 노력에 70%로 만족을 느끼면 정도요 100% 만족 할려면 욕심이다 욕심은 자신을 망치는 근원이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70%정도에서 분수를 알고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계영배의 교훈이 어쩜 이렇게 나에게만 적용되는것 같아 항시 머리속에 새기며 살아 갑니다 . 오늘도 조금 부족한 삶으로 살아가려합니다 . 과음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뜻이다. 연말연시가 다가올수록 이 고사성어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절절히 파고든다. 이곳저곳에서 각종 송년회로 한해를 마무리하는 사람들. 이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송년회로 몸이 상해도, 다음번에는 꼭 적당히 마시겠다고 다짐을 해도,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그 다짐은 쉽사리 잊혀진다. 과음(過飮), 과식(過食), 과로(過勞)…, 결국 무엇이든 지나치면 몸을 해치는 독이 된다. 하지만 과연 어느 선까지가 적당한 것일까. 뭐든 '적당히'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가는 데로 무턱대고 따라가다 보면 금세 넘쳐버리고,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단단히 다잡으면 너무 인색해지기 쉬우니까. 송년회에서 술을 피할 필요는 없지만 과음은 피해야 할 적(敵)이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술을 절제 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의지가 약하다고 지레 포기하진 말자. 여기 ‘적당히’의 선을 몸소 알려주는 술잔이 있다.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 계영배. 사진은 국립과천과학관의 전시물.   경계할 계(戒)! 가득 찰 영(盈)! 계영배는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술잔과 비슷하지만, 어떤 술이든 이 잔에 7부 선 이상 채우면 밑바닥 구멍으로 술이 모두 새어나간다. 물론 7부가 되기 직전까지만 따르면 술을 온전히 마실 수 있다   서양의 계양배, 피타고라스의 컵.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제천의식을 위해 만들었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됐다. 이 잔은 상징적으로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였던 하백원(1781~1845)과 도공 우명옥이 비슷한 시기에 계영배를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잔은 훗날 조선후기의 거상(居常) 임상옥(1779~1855)에게 전해진다. 그는 천재적인 상업수완으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기록돼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탐욕스럽게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계영배를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늘 경계했다고 한다.   참고로, 서양에도 계영배와 같은 잔이 존재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피타고라스(?B.C.580~?B.C.500)가 만들었다고 해 피타고라스의 컵으로 불리는 이 컵은 Greedy(탐욕스러운, 욕심 많은) 컵, Fairness(공정) 컵, Tantalus(탄탈로스)의 컵이라고도 불린다. 이때 탄탈로스는 물이나 액체가 부풀어 오르다가 일정 한계에 이르면 모두 쏟아져 버리는 화학실험기구인 ‘탄탈로스의 접시’에서 유래됐다.   술이 새어나가는 원리, 사이펀의 원리   계영배의 단면. 가운데, 잔 높이의 7부쯤 되는 관이 달려있다. 사진은 국립과천과학관의 전시물.   계영배의 원리는 액체의 압력과 대기압, 중력의 상관관계를 이용한 것이다. 계영배 안쪽을 보면 일반 잔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잔 높이의 7부쯤 되는 관이 중심부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술이 7부 능선을 넘었을 때 바닥의 구멍으로 흘러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술이 잔에서 일정 높이만큼 올라와 있다는 것은 그 높이일 때 관 안의 대기압과 (위로 솟아 오르려는) 액체의 압력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술의 높이가 관의 높이, 즉 7부 지점을 넘어서게 되면 술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정점을 넘어 긴 관으로 술이 이동한 후에는 액체의 압력이 중력의 방향과 같아지면서 계속 아래로 흐르게 된다. 거기에 더해, 일단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관 내부는 술이 빠져나간 것만큼 진공이 생기고, 바깥과의 기압차가 생기면서 잔 내부의 술이 모두 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때문에 7부를 살짝 넘긴 후 술 따르는 것을 바로 멈추더라도 술은 바닥의 구멍으로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이펀(siphon)의 원리다. 사이펀은 U자 모양으로 굽은 관으로, 한 쪽은 길고 다른 한 쪽은 짧은 모양이다. 이 관을 이용하면 액체가 들어있는 병이나 통을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높은 곳에 있는 액체를 낮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액체는 원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사이펀에서는 높은 곳의 물이 더 높은 곳을 지나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높은 곳의 물 액면에 작용하는 대기압으로 인해 액체가 밀어올려지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낮은 곳의 물 액면에도 대기압이 작용하고 있으나, 두 액면의 높이 차 만큼 압력이 약하므로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된다.   사이펀의 원리. 사이펀은 U자 모양으로 굽은 양쪽 길이가 다른 관으로, 사이펀을 이용하면 대기의 압력과 중력을 이용해 높은 곳의 물을 낮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종이컵과 빨대로 재현한 간이 계영배   위 실험에서 종이컵과 빨대로 간이 계영배를 만들어 보았다. 구부러진 빨대가 사이펀의 역할을 하는데, 짧은 쪽은 종이컵 바닥에서 약 1cm 가량 떨어져 있고 긴 쪽은 바닥 중앙에 구멍을 뚫고 바깥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다. 음료를 빨대의 맨 윗부분 직전까지 부었을 때는 음료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때는 짧은 빨대의 안쪽과 바깥쪽의 음료 높이가 같다. 이후 빨대가 살짝 잠길 정도로 음료를 붓자, 잠시 후 종이컵 아랫부분의 투명한 컵으로 음료가 모두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는 음료가 빨대 안쪽의 최고점을 지나 긴 빨대 쪽으로 넘어가면서 빨대 안이 음료로 가득 차, 중력의 영향을 받아 구멍을 통해 계속 새어나오게 된다. 이때 음료가 빠진 만큼 빨대 내부는 진공이 생기면서 바깥쪽과 기압차가 생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음료를 더 붓지 않아도 짧은 빨대 안으로 컵 내부의 음료가 계속 들어오는 것이다.   계영배 실험의 원리.  액체가 관의 정점에 닿기 전에는 관 안의 대기압과 액체의 압력이 같다. 그러다 관의 액체가 관의 정점을 지나면 액체의 압력이 중력과 방향이 같아지면서 액체가 이동하기 시작한다.   음료가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 종이컵 안을 살펴보면, 종이컵 바닥에서 약 1cm가량 높이로 음료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높이는 구부린 빨대의 짧은 쪽이 컵 바닥에서 떨어져 있는 높이와 동일하다.   변기 · 세면대 파이프… 곳곳에 응용되는 사이펀의 원리   우리생활 곳곳에는 사이펀의 원리를 응용한 제품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수세식 변기다. 우리가 변기를 사용 후 밸브를 내리면 물은 항상 같은 위치까지 올라온다. 18세기 영국의 수학자 커밍이 배수 파이프를 위쪽으로 구부려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하고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역시 사이펀의 원리로, 변기 안에 진공 곡관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변기 밸브를 누르면 변기 물탱크 속 물이 밀려 내려와 곡관을 넘게 되고, 변기 속 물이 빨려 내려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곡관 높이까지만 물이 차게 되는 것이다.   변기 속 사이펀 관.  밑에서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하면서 물을 저장하는 목적으로 사이펀 관을 적용했다.   물이나 기름을 옮기는 펌프도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펌프를 눌러 손잡이 부분까지 액체를 빨아올리면 액체가 든 통을 기울이지 않아도 다른 통으로 액체를 옮길 수 있다. 세면대와 싱크대 아래 부분에 있는 U자 혹은 P자 배수관에도 사이펀의 원리가 숨어있다. 이 구부러진 부분에는 물이 항상 일정량 담겨 있어 하수구 냄새가 역류하거나 벌레가 올라오는 것을 막아준다.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는 커피기구도 있다. 하단의 플라스크(Flask) 볼에 물을 넣고 끓여서 증기의 압력에 의해서 진공관을 따라 분쇄된 원두가 들어있는 상단의 볼로 올라가게 된다. 그런 후 불을 끄면 하단의 플라스크(Flask) 속에는 공기가 냉각되면서 진공상태에 의해 윗 플라스크의 커피를 빨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진공상태로 빨려들어 가는 가운데 필터에 의해 커피만 걸러져 추출된다.   '사이펀 커피 추출기'로 불리는 이 장치는 원형 플라스크 윗부분에 원두를 갈아놓은 용기가 달려 있다. 이때 원두를 갈아놓은 윗부분 용기에는 사이펀 튜브가 장치돼 있다. 하단의 플라스크에 물을 담고 가열을 하면 물이 수증기로 변하며 부피가 커지고, 더불어 압력도 증가하게 된다. 압력 차로 인해 가열된 물이 사이펀 튜브를 따라 중력을 무시하고 위로 올라가게 되고, 원두 용기의 필터를 통과하며 커피와 접촉하게 된다. 가열을 멈추면 하단 플라스크 속 공기가 냉각되면서 진공상태가 돼 원두 용기의 커피를 빨아들이게 된다.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한 사이펀 커피 장치.   ‘계영배’ 실험 따라하기       0. 실험재료 ▶ 구부러지는 빨대, 고무줄, 플라스틱컵, 종이컵 ▶ 폼보드, 송곳, 나무송곳, 칼, 본드, 음료수   계영배 만들기 ... 사이펀의 원리   빨대와 플라스틱 컵으로 계영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계영배는 피타고라스 컵(Pythagorean cup) 이라고도 부르며 탐욕의 컵(Greedy Cup) 이라고도 불립니다.    계영배는 사이펀의 원리를 이용하여 컵에 물이 일정량 이하일때는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지만, 어느 한도 이상이 되면 컵에 담긴 물이 모두 빠져나와버리는 컵 입니다.    보통 구부러진 빨대를 이용하는 일이 많지만, 실제 계영배 모양은 가운데에 기둥이 올라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가운데 기둥이 올라오는 형태로 만들었고, 기둥을 형성하는 빨대는 관찰이 쉽도록 투명한 것을 이용하였습니다.    재료의 사진입니다.   플라스틱 컵3개 (사진에서는 1개 이지만 계영배 실험을 하려면 3개가 필요합니다.),  크기가 같은 동전 2개, 굵기가 다른 빨대 각각 1개, 가위, 라이터, 글루건,  CD(사진에는 없습니다만, 작은 구멍이 뚫린 CD가 필요합니다.) 입니다.     먼저 가위를 이용하여 컵 아래쪽에 구멍을 뚫어줍니다. 굵기가 가느다란 빨대가 관통할 수 있을 정도이면 됩니다.     굵기가 굵은 빨대의 한쪽 부분을 동전으로 감쌉니다. 동전 끝으로 플라스틱 부분이 1~2mm 정도 튀어나도록 해 줍니다.      플라스틱 부분을 라이터를 이용하여 열을 가해줍니다. 그러면 플라스틱 부분이 녹아서 접합되게 되는데, 동전은 열 전달이 잘 되어서 뜨거워지지 않을까 걱정을 할 수도 있지만, 열을 가하는 시간이 짧고, 동전의 열용량이 커서 손에는 열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라이터 불을 끈 다음 플라스틱이 굳을 때 까지 기다려줍니다. 보통 10초 이내입니다.   굵은 빨대를 약간 비스듬하게 잘라준 다음, 가느다란 빨대에 씌워줍니다. 굵은 빨대를 자르는 길이는 큰 빨대를 컵 안에 세웠을 때 3/4 정도 높이가 되도록 하면 적당합니다.    수면이 이 굵은 빨대보다 높아지면 물이 모두 빠져나오게 됩니다. 굵은 빨대와 가느다란 빨대는 글루건을 이용해서 살짝 고정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컵에 뚫린 구멍에 빨대를 장착합니다.      글루건을 이용해서 물이 새지 않도록 고정해 줍니다.     빈 컵에 CD를 올려둔 다음, 방금 제작한 계영배를 올려둡니다. 나머지 컵에는 계영배를 동작시킬 수 있을 정도의 물을 준비합니다.      수면의 높이가 굵은 빨대보다 낮을 때(가운데 가느다란 빨대보다 낮을 때)에는 물이 전혀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을 조금 더 부었더니 내부에 있는 물이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계영배에 담겨진 물이 전부 다 빠져나와 버렸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만드는 과정과 테스트하는 과정입니다.       오늘날 계영배의 원리는 좌변기나 자바라펌프 등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계영배의 원리도 입니다.     그림 :---   계영배의 단면은 그림 A와 같습니다. 마치 구부러진 빨대가 컵 가운데에 있는 형상입니다.  그림 B와 같이 물을 채웠을 때, 기둥보다 높게 채우지 않았다면 물은 전혀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물을 조금 더 채워서 기둥보다 수면이 높아지면 물이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림 C)   물이 빠져나와서 수면이 기둥의 높이보다 낮아져도 기둥의 가운데 부분에는 물이 차 있기 때문에 사이펀의 원리로 물이 계속 빠져나옵니다. 결국 컵 안의 물은 모두 빠져나옵니다. (그림 D)   계영배의 물이 빠져나오는 것은 대기압이 작용하기 때문이며, 진공에서는 중력이 있어도 계영배의 동작은 불가능하고, 기둥보다 높은 부분의 물만 빠져나오게 됩니다.  (사실 진공에서는 상온에서 물이 끓어버리기 때문에    진공에서는 실험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0    12초 댓글:  조회:5226  추천:0  2015-06-07
. 칼럼 . ​ 12초 ​   김혁   ​ ​   1   1초, 그 찰나의 시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걸가? 국제 도량형 총회는 세슘 원자가 91억 9천 2백 63만 1천 7백 7십번 진동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1초라고 정의했다. 1초, 이 칼럼의 제목을 읽을만한 동안인 그 시간내에 지구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있다. 전 세계적으로8명의 새 생명이 탄생하고5명이 목숨을 잃는다. 1대의 승용차가 만들어지고 4대의 TV가 만들어진다. 166병의 콜라와 1200여 개의 달걀이 소비된다. 80가마가의 쌀이 재배된다. 51톤의 세멘트가 소모된다. 22명의 려행자들이 국경을 넘는다. 인터넷에서는4백만 건의 이메일이 전송된다. 39만 4천여 개의 댓글들이 달린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인 빌게이츠는 1초에 인민페로 800원 벌어들인다. 이렇게 추산해보면 빌게이츠는 하루에 하루에 인민페로 600만원을 버는셈이다. 벌이 살아 남기 위한 날개짓을 200번 한다. 사람들이 134억 8천만 개의 식물, 곤충, 동물을 죽인다. 총구를 떠난 총알이 900m를 날아간다. 헬리콥터의 날개는 125회 회전을 한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486억Kw의 에너지를 받는다. 세계 각지에서420톤의 비가 쏟아진다. 빛이 30만km 즉 지구를 7바퀴 반을 이동한다. 빛의 속도로 우주는 30만키로메터씩 팽창을 한다. 그리고 우주에서 79개의 별이 사라진다.   그러면 12초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것일가? ​ ​ 남경대학살 기념관에서의 필자   2   지난 가을, 연길에서 2시간 40분간 비행기를 타고 상해로 날아갔다. 포동국제비행장에서 29개의 역을 지나 상해기차역에 닿았다. 다시 2시간30분동안 고속렬차를 타고 고도(古都) 남경에 닿았다. 남경역에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5개의 지하철역을 지나 30여분만에 이른 곳은 남경대학살 기념관이였다.    굳이 사비를 팔아 남경땅을 밟은것은 새롭게 집필하는 장편소설 “춘자의 남경”을 위한 현지감각을 찾기위해서였다.  나의 이 신작장편은 위안부와 남경대학살 을 소재로 하고있다. 남경대학살은1937년 12월 13일부터 다음해 1월까지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이 30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중국 국민정부의 수도였던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은 중국인들의 항일 의지를 꺾기 위해 6주 동안 적수공권의 민간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중국지역 일본군 총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휘하의 일본군인들은 민간인들을 생매장 하기, 휘발유를 뿌려 불지르기, 칼로 참수하기,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쏴 총알의 관통력 테스트하기…등 잔학한 방법으로 대학살을 자행,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어머니, 3개월 된 아기까지 무차별 학살했고 녀성들을 조직적으로 강간한뒤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름다운 고도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무간나락에 떨어졌다. 석학 림어당(林語堂이 갈파했듯이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후 이런 잔학상은 처음”이였다. 남경시 서쪽 외곽에 자리를 잡은 남경대학살기념관에는 평일에도 관람자가 장사진을 이루었다. 단체로 온 학생들에서 머리발 허연 로인들 그리고 이국적 외모의 외국유람객들이 눈에 띄였다. 간간이 한국인들의 익숙한 말씨도 들려 왔다.  기념관은 표를 받지 않고 무료 개방하고 있었다. 밀려드는 인파에 끼여 한참 줄을 선 뒤에야 입장할수 있었다. 넓다란 기념관 정원에 들어서자 무엇보다 눈길을 끈것은 “300000”이라는 수자였다. 전시관 곳곳에는 “300000”이라는 수자가 새겨 있었다. 바로 일본군에 죽임을 당한 희생자의 수자이다.  1985년 8월 15일 개관한 남경학살기념관은 일본군이 학살을 저지른 비극의 현장에 세워졌다. 기념관은 도편전시관과 유골전시관, 파괴된 도시와 살해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부조물, 생존자들의 족적을 탁본해 만든 동판조각로, 희생자의 명단을 판각한 벽인 “통곡의 벽”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희생자의 유골이 집단으로 발굴된 곳에 만들어지진 “만인갱”(万人坑)이라는 전시공간에는 유골은 무려 7단계로 층층이 쌓여 있어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어렵지 않게 엿볼수 있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내는 음향시설을 갖춘 전시 공간도 있었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12초 간격으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있었다. 시계의 초침처럼 정확한 그 소리는 남경대학살 당시 12초마다 한 명씩 살해됐다는것을 환기시켜주는 소리였다. ​​​ 유화 "남경 대학살"   3   남경대학살은 종전후인 1946년 명백하게 확인된 대참안이다. 대학살을 주도했던 전범들은 남경군사법정과 도꾜에서 열린 극동군사법정을 통해 처형됐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도록 일본에서는 일부 량심세력만이 이를 인정할뿐 “이는 중국인의 환상이다” ,”학살은 없었다”는 뻔뻔한 부인이 계속되고있다. 그 극우세력의 대오속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들도 들어있다. 일본의 극우분자들은 이 모든것이 “허구 또는 과장”이라 망언하며 발뺌하려 애쓰지만, 남경은 당시의 사진과 세계각지 언론의 기사, 생존자들과 유가족의 방대한 증언 등을 모아 놓은 이 기념관을 통해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과거의 시간”을 지우려는 일본의 시도를 까밝아놓고있다.  “과거사 지우기”에 급금해 하는 일본 아베 내각의 심각한 력사인식의 오류와 반평화적인 도발 의지는 세상의 지탄을 받고있다. 이대로 나간다면 일본은 국제사회와의 공생에서 스스로 멀어진 “력사적 후진국”이라는 락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것이다. 누군가 시간이란 “과거에서 출발해 현재를 지나 미래를 향해 끝없이 날아가는 되돌아올수 없는 화살”이라고 했다. 극구광음(隙駒光陰), 문틈새로 달리는 말을 보듯이 얼핏 스쳐지나는 시간이라지만 력사는 인류의 무지, 쟁투, 잔학, 수난을 분초속에서도 슬로모션(피사체의 움직임이 실제 속도보다 느리게 보이도록 하는 촬영기법)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의 필림에 새긴 그 영상물의 테마에는 평화라는 커다란 글자를 새겨 놓았다. 두시간 남짓한 관람이였지만 나지막히 귀에 잡히던 그 촌초 (寸秒)의 소리는 커다란 울림으로 내내 머리에 남아있다.   -“청우재(聽齋雨)”에서   “도라지” 2015년 2월호
209    세상 다르게 보기 - 자연과 하나되는 자유 댓글:  조회:5044  추천:0  2015-05-31
“자연과 하나되는 자유” 장자(莊子) ‘세상을 다르게 보기’   철학은 우리에게 돈 버는 기술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거래를 훌륭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철학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유용한 학문이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점에 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좁은 관심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본다.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거절당하면 삶의 실패자가 된 것처럼 실망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삶의 의욕을 잃을 정도로 좌절한다. 그러나 집착에서 벗어나 좀더 멀리 넓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라본다면 지금까지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긴 것들 중 많은 부분이 사실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철학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세상을 자신의 욕심과 관심에 맞추어 너무 좁게 바라보고 있지 않는지 묻는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문제는 없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보다 정확하고 바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그리고 이에 따라 제대로 된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는 것이다.    철학의 유용함을 이렇듯 ‘다르게 보기’에서 찾는다면 장자만큼 우리에게 유용한 사상가는 없다. 장자는 세속적인 야망과 출세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진정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이 제대로 된 것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자신만의 우물에서 기어 나와 보다 높고 멀리 올라가, 제대로 된 삶을 살려면 진정 행복한 삶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게 한다. 이런 점에서 장자의 철학은 우리의 삶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타락해 가는 것을 막는 일종의 ‘정신적 백신’이라고 할 만하다.            “어찌 메추라기가 대붕(大鵬)의 뜻을 알리오.”   장자(莊子:B.C.369?~286?)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고대 중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믿을 만한 자료라고 하는 사마천(司馬遷)의 ꡔ사기(史記)ꡕ에서조차 ‘장자의 이름은 주(周)이다.’ 수준의 간단한 기록만이 나올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장자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그 자신과 후계자들이 쓴 ꡔ장자ꡕ라는 책을 통해 재구성해 볼 수밖에 없다.  장자는 중국 산둥성(山東省)과 허난성(河南省) 중간에 위치했던 작은 국가인 송나라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몽현(蒙縣)이라는 동네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이 곳은 산 좋고 물 좋은 둘러싸인 시골 마을이었던 듯 싶다. 삭막한 도시의 아파트 숲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는 푸근한 자연과 벗하며 생활하는 시골 아이들이 더 풍부한 감성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양자강 이남의 광활한 자연 속에서 자라고 생활했던 장자는 사람들 사이의 짜증나는 일상에 매이지 않고 모든 일을 넓고 크게 생각할 수 있는 감수성과 포용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성격은 "장자" 첫머리에 나오는 유명한 대붕(大鵬)이야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북쪽 깊은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았다. 이 물고기는 매우 커서 길이가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이 물고기가 변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되었다. 그 새는 등이 몇 천리나 되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크다...이 새가 한번 기운을 모아 남쪽 깊은 바다로 날아가면, 파도가 일어 삼천리 밖까지 퍼지며...여섯 달 동안 구만리를 날고 나서야 비로소 내려와 쉰다 ...이런 대붕을 보고 메추라기가 밑에서 비웃는다. ‘저 새는 저렇게 날아서 어디로 간단 말인가? 나는 한껏 뛰어올라 봐야 곧 내려앉고 말아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갈 뿐인데, 도대체 대붕은 (무엇 하러 쓸데없이) 저렇듯 높이 날아올라 멀리 가려고 하는 것일까?...“   거대한 스케일의 ‘중국식 허풍’이 느껴지는 이 우화(寓話)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메추라기가 일상에 소소한 문제들을 고민하느라 넓고 크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리들이라면 붕은 곧 장자라고 할 수 있다. 높고 넓은 정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의 눈에는 세상의 번잡한 일들이 모두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법이다. 반대로, 일상인들의 눈에 이런 ‘도사(道師)’같은 이들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물정 모르고 어리숙하여 속 터지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일뿐이다.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서 제대로 된 삶이란 자연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은 주어진 모습 그대로 그냥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이를 장자는 ‘도(道)’라고 한다.) 우리 삶은 자연 전체로 보았을 때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사탕을 놓고 벌이는 아이들끼리의 신경전은 어른의 눈으로 볼 때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들인 것처럼, 돈과 명성을   얻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대자연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모두 쓸데없는 고민과 고통만 낳는 무모한 노력들일 수 있다. 따라서, 장자는 무엇을 억지로 이루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자연에 따라 순리대로 살아가는 살아가라고 주장한다. 그의 삶은 이러한 철학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장자의 공식적인 경력은 칠원(漆園)에서 말단 관리를 지낸 것밖에 없다. 그러나 "사기(史記)"에 따르면, 그는 매우 공부를 많이 하고 박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중국 대륙이 수 십 개로 쪼개져서 제후(諸侯)들은 저마다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각 나라들은 좋은 인재를 끌어 모으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런 ‘스카웃 경쟁’ 속에서 장자같이 유능한 인물이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러나 장자는 세속에는 뜻이 없는 사람, 초(楚)나라 왕이 ‘최고 연봉’에다가 재상(宰相) 자리를 제안했을 때에도 “나는 제사 때 제물이 되기 위해 잘 대접받으며 비단 옷을 입은 소가 되기보다는 비쩍 말랐더라도 자유로이 들판을 노니는 소가 되겠다”라는 한 마디로 거절해 버린다.    그는 요새 식으로 말한다면, 비판적 지식인이라 할 만하다. 그는 주변에서 주는 모욕을 능숙한 언변으로 잠재우는 비웃기의 천재였다. 한번은, 짚신 짜기 등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장자에게 양식이 떨어져서 어떤 귀족에서 빌리러 간 적이 있었다. 평소 냉소적인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 귀족에게는 장자를 골탕먹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셈이다. 그래서 귀족은 당장 오늘 먹은 양식이 급한 장자에게 “당연히 빌려드리지만, 며칠 후 지방에서 세금이 들어오니 그 때 삼 백 냥을 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은근히 약을 올렸다. 그러자 장자는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맞받아 친다.   “...내가 오다가 보니, 차바퀴에 패인 길가 웅덩이 속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나를 부르고 있었소...‘나는 동해의 수족(水族)인데, 목이 말라 그러니 물 조금 갖다 주시지 않겠소?’라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좋소, 내가 지금 오월(吳越) 임금을 설득하여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라고 했더니, 글쎄 이 미꾸라지가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물 한 모금이 없어 말라죽을 지경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바다를 통째로 가져온다고 해도 나는 이미 건어물 시장에서 몸매를 자랑하고 있을 꺼요.’라고 짜증을 부리더군..."   이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놀리려 했던 귀족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게다가 그가 남긴 수많은 비웃음 뒤에는 날카로운 현실 분석과 비판이 숨어 있었다. 장자가 비록 현명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백수처럼 지내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마냥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한번은 그의 친구 혜시(惠施)가 진(秦)나라에서 마차를 100대나 얻어왔다. 친구가 우쭐해서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그와 비교해서 할 일 없이 지내는 장자를 비난하자, 그는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소문에 듣자니 진나라 왕이 등창이 났다며? 곪은 곳을 째서 치료해 주면 마차 1대, 치질을 혀로 빨아주면 5대, 많이 빨면 빨수록 마차를 더 많이 준다고 하더군. 자네는 얼마나 열심히 빨았기에 마차를 100대나 얻을 수 있었겠는가? 잘했군, 어서 가보게...”   이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혜시를 비웃으며 흩어져 버렸다. 장자는 이 말을 통해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사회적 출세를 이루기 위해서는 온갖 추잡하고 비열한 행동들을 해야 했음을 넌지시 암시했던 것이다.    또, 이런 적도 있다. 친구 혜시가 양(梁) 나라 재상을 지낼 때 일이다. 세상을 떠돌며 여행하던 장자가 출세한 친구가 보고 싶어 양 나라를 방문하자, 혜시에게 아부하고 싶었던 부하 관리가 장자가 자신의 뛰어난 학식으로 친구의 자리를 뺐으러 양나라로 넘어온 것이라고 거짓으로 고자질을 하였다. 놀란 혜시는 사람을 풀어 급히 장자를 잡아들였다. 기가 막힌 장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 원추라는 새를 아는가? 이 새는 남해에서 북해로 날아가는 그 긴 여행길 중에도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약수가 아니면 마시지 않지. 그런데 원추가 유유히 날아갈 때, 마침 땅 위에 올빼미 한 마리가 있었네. 올빼미는 썩은 쥐를 입에 물고 있었는데 창공을 날아가는 원추가 자기 고기를 나꿔채는 줄 알고 고개를 젖히고 사납게 ‘꺼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네. 자네도 지금 나에게 ‘꺼억 꺼억’ 하고 있는 겐가? ”   이 이야기 속에서 장자는 인위적인 통치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다. 다스리는 이들은 사람들과 사회를 도덕적이고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 통제와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혼란했던 당시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은 썩은 쥐를 차지하려는 올빼미들처럼 통치를 통해 백성을 착취하고 자신들의 배만 불렸을 뿐이다.  모든 것은 제각기 타고난 본성이 있다. 자연이 준 천성대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면 모든 것은 평화롭게 도리에 맞게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도덕과 정의라는 잣대에 따라 모든 것들을 인위적으로 맞추려 한다. 그 결과 원래의 본성은 흐려지고 억압과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학의 다리가 길고 오리 다리가 짧다고 해서 굳이 이 둘의 길이를 똑 같이 맞출 필요는 없다. 갯벌 속에서 먹이를 찾는 학은 진흙에 빠지지 않는 긴 다리가 필요하고 얕은 물위를 헤엄치면서 먹이를 구하는 오리에게는 짧은 다리가 어울린다. 이와 같이 대자연, 즉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에는 더 나은 것도 더 못한 것도 없다. 세상의  모든 이에게는 각자에게 알 맞는 천성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이를 무시하고 어떤 것을 옳고 좋은 것으로 여기고 어떤 것은 그르고 나쁜 것으로 여겨서 다른 이들에게 자기들의 본성에 맞지 않는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인위적인 노력을 버리고 자연에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넘어서서 ‘모든 것을 가치 있다고 여기면서 차별하지 않는 정신의 자유’에 도달할 것이다. 이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것을 화해시킨다’는 뜻의 유명한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이다.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다.”   모든 일을 자연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 장자에게는 죽음조차도 두려워 할 것이 못 되었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다. 죽음이란 일시적으로 있었을 뿐인 ‘내’가 사라져서 다시 영원히 진행되고 있는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일 뿐이다. 때문에, 장자는 자신의 부인이 죽었을 때에조차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항아리를 두드리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기막혀 하는 절친한 친구 혜시에게 장자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담담하게 말한다. “...집사람이 막 죽었을 때는 사실 나도 슬펐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더군. 집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는 형체도 없었다가 어떻게 하여 모습을 갖추어 이 세상에 나왔던 것이라네. 그러다 때가 되어 시체가 되었고, 그나마도 이제 세월이 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겠지. 결국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이게 자연의 이치인데 그것을 슬퍼하고 저주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이렇듯 우리의 생명도 돌고 도는 것일세...이런 생각이 미치니 내가 방금 통곡을 하고 운 것이 우스워 지더군. 그래서 웃음 나온 김에 노래 한 곡 뽑고 있었던 것이네...”   이렇게 세상을 초월하여 그 자신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버린 경지를 장자는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 한다. 물론 이런 경지는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자는 우리에게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이라는 수행 방법을 제시한다. 심재란 ‘마음을 비우는 것’을 말하며, 좌망이란 ‘모든 존재를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수행을 통해 이제 높은 경지에 다다른 사람, 즉 ‘지인(至人)’에게는 세상의 어떤 슬픔과 기쁨도 담담하게 지나가는 그림자일 뿐이다. 이런 이들에게는 ‘자기 자신도 명성도 공적도 다 필요 없다.’ 절대적인 충만과 행복 속에서 그저 세상을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고 있을 뿐(소요유: 逍遙遊)’이다. “장자라는 독(毒)?”  장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층보다는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에게서 더 환영과 사랑을 받았다. 장자의 사상은 원하는 대로 세상일이 풀리지 않아 불만에 차 있는 좌절한 이들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는 철학이다. 자신이 얻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든 것들, 자신을 실패자라고 비웃으며 조롱하는 모든 비난들이 자연, 도(道)의 관점에서 보면 한갓 부질없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이들은 얼마나 큰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장자의 사상은 ‘가난한 이들의 아편’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부조리하고 어두운 현실의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하고 벗어나게 하기는커녕, 잊어버리고 도피하고 만듦으로써 사회 발전을 더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 때문에 말이다.   물론, 장자 철학에 이러한 현실 도피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점점 전문화되어 감에 따라 길고 넓은 안목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일밖에는 바라볼 수 없게 된 현대인들에게 있어 장자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인식과 진정한 참여’를 일깨우는 철학자이다. 장자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우물에서 벗어나 잡다한 일상사에서 멀리 떨어져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는 대붕(大鵬)처럼  전체적으로 삶을 바라보라고 충고한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면 오히려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빠른 사회 발전에 쫓겨 조급해진 나머지 가까운 장래만을 바라보고 사는 ‘정신적 근시’가 되어버린 현대인들에게 장자는 통크고 넓게 생각하여 진정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208    재밋있는 월남어(베트남어) 댓글:  조회:5510  추천:0  2015-05-30
[한겨레]--- '안녕하세요 여러분'이라는 베트남어는 어떻게 비속어로 둔갑해 버렸을까… 올리고 내리고 굴리고 꺾고 깔고 평평하게, 6가지 성조는 음악의 날개 ▣  '꼬 꼬 꼬이 꼰 꼬 꼬 꼬 꼬 안 꼬.' 베트남어 문장을 한글 발음으로 표기해봤다. 무슨 뜻일까? '목을 움츠리고 열심히 풀을 뜯어먹고 있는 학을 아가씨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꼬'라는 발음만 일곱 번 등장하는 이 문장이 어떻게 그런 뜻을 가질 수 있나? 베트남어는 성조가 6개나 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발음인데 성조를 올리고, 내리고, 굴리고, 꺾고, 깔고, 평평하게 하는 것에 따라 뜻이 모두 달라진다. 60%가 한자어… 문자는 포르투갈인이 들여와 베트남어의 6성조는 음악에 버금간다. 음계 없는 음악은 상상할 수 없듯이, 성조 없는 베트남어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다. '지에우 나이 또이 쎄~'(오늘 오후 나는 ~할 것이다)라는 어구는 '쾌지나칭칭나네'의 음계와 거의 유사하다. 만약 '쾌지나칭칭나네'라는 음계를 제대로 타지 않는다면, 어구의 뜻은 6의 4제곱배로 달라진다. 베트남어 단어의 60%는 한자어다. 한자를 읽는 독음법이 우리와 비슷한 경우가 많은데, 문제는 그 단어들이 6성조의 날개를 달고 있기에 반가운 소통의 기대만큼 '불통'의 배반감도 크다는 것이다. 베트남어처럼 성조가 있는 언어들은 독학이 불가능하다. 성조를 글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지 않고, 눈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현지에서 귀와 입으로 익힐 도리밖에 없다. 성조가 어그러지면 오해는 기본이요 상대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게 태반이다. 모국과 고향에서 익힌 발음 체계는 외국어의 발음 체계 앞에서도 참으로 완강하다. 자·모음 구성이 완전히 다른 외국어인데도 자꾸 자신만의 발음 체계로 동화시키려 한다. 내가 베트남어 어학원을 다니던 시절, 일본 친구의 발음 때문에 수업이 잠시 중단된 적이 있었다. 웃음보가 터진 선생님께서 수업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한 것이다. '씬짜오 깍반'(안녕하세요 여러분)을 일본 친구가 '씬짜오 깍꾸반'으로 목소리를 깔고 발음했기 때문이다. '깍'을 발음할 때 위로 올렸어야 하는데, 목소리를 깔면서 뜻이 '에로 버전'이 돼버렸다. '깍꾸'는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래서 문장의 뜻은 '네 거시기가 안녕한지'를 묻는 말이 됐다. 이렇게 높낮이 파고에 민감한 베트남어를 처음으로 문자화한 사람은 누구일까? 유감스럽게도 베트남인이 아니라 푸른 눈의 외국인이다. 16세기 중엽 선교를 목적으로 베트남에 들어온 포르투갈 신부 패사로는 베트남어를 소리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그의 표기가 오늘날 베트남 문자의 기원이 됐다. 그 이후 알파벳화한 베트남 문자는 한자, '쯔놈'(이두식 문자)과 함께 사용됐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알파벳 발음은 프랑스식을 따르게 됐다. 현재의 문자가 '국어'의 지위에 오르고 보편화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 항불 독립투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다. 문자의 시작은 비록 외국인에 의한 것이었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지금의 문자를 자신들의 언어를 연주할 수 있는 훌륭한 음표라 여긴다. 말장난의 해학으로 꿈틀대는 저잣거리 성조를 음악의 날개로 달고 있는 언어답게, 베트남어는 시문학이나 노래에서 더욱더 그 날갯짓을 더한다. 그리고 저잣거리에서는 말장난의 해학으로 꿈틀댄다. '이우 티 이우, 옴 티 옴'이란 말은 '사랑하면 허약해지고, 껴안으면 쇠약해진다'라는 뜻인데, 번역으로는 성조의 맛을 살릴 수 없어 이방인은 본래의 제맛을 느끼기 어렵다. 본래의 맛을 느끼려면 모국어에 대한 자긍심만큼 타국어에 대한 탐구심도 깊어야 한다. 여섯 갈래의 물결과도 같은 베트남어의 강물에 한 번쯤 손과 발을 담가보시라.
207    아름다운 우리 말 잘 알고 쓰기 댓글:  조회:4680  추천:0  2015-05-30
오픈지식 머시기 거시기(우리말)       "머시기 거시기"란 말이 현재 일정  지역의 방언 정도로 격하되어 쓰여지는 경향이 있음에 매우 유감 스럽게 여기는 바 임을 밝혀두면서. 현재 우리말 대사전에 실려있는 "머시기 와 "거시기"에 대하여 살펴 본 후   "머시기" "거시기"의 진정한 본래의 어의와 연유를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현재 우리말 대사전의 "머시"와 "거시기"      1).머시기;  "말하는 도중에 언뜻 어떤 말이 미쳐 생각나지 않거나 선뜻 말하기 곤란 할 때 쓰는말."로 정의                     되어있음.         2  ).거시기; "말하는 중에 하려는 말이 얼른 머리에 떠 오르지 않거나 입에서 나오지 아니할 때  그 대                     신에 쓰는 말. 또 그소리" 로 설명 되어있음.    *. 이렇게 우리말 대사전에는 말하는 중에 얼버무리는 내용 정도로 왜곡되게 서술되어 있으니 심히 유감  스럽                    게 여기는 바이다.              2.머시기, 거시기의 쓰이는 때와 그연유.       " 머시기 거시기"는 말 허두에 먼저 하는 말이니, 그 이유는 이러하니   말이란 입을 열어 한마디 하기가 무       척   조심스럽고 어려우니, 말에도 말의 혼이 있어 말 한마디 한마디 마다 남을 죽일 수 도 있고 살릴 수       도 있는  무한한 능력과 힘을 지니고 있으니, 이 말 한마디가 그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화가         되 어 되돌아 오기도 하며, 복된 상을 가지기도 할 뿐 아나라 방정 맞으며, 급기야는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는 무서운 것이  모두 이 말 한마디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혼이 있는 무서운 말이기에, 삼국시대 이전 부터 우리의 조상들은 말 허두에 먼저 이 말을 하고나       서  본 말을 했던 것이다 .                 3.머시기 거시기의 본래의 참 어의.     1).머시기 ; 말 허두에 쓰는 말로써 맑은 개천이나  시냇물에서, 오염되고 더러워 진 몸을 정갈하고 정결히 깨        끗이   싯고 머리를 매만져 육신을 단정히 하는 것을 이르니,즉 목욕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2).거시기 ; 말 허두에 쓰는 말로써 일광(日光) 속에 단정히 앉아서, 정신과 마음을 일광과 같이 맑고 밝게 삿        됨 없이 빛나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즉 재계(齋戒)의 뜻이다.      3).머시기 거시기의 합성어.       육신을 정결히 하고 영혼의 삿된 기운과 잡념을 버리고   맑고 밝고 빛나게 가지는것이니, 목욕재       계 하는 의미인 것이다.   이는 말하는 것이, 허물이 없고 모든 것이 뜻대로 바라는 바 대로 되         어  지기를  기원하는 뜻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항상 말을 할 때에는 목욕재계한 거와 같이 "머시기 거시기"하고 말 허두에 한 후 조        심하여 본 말을 하여야 한다. 특히 초상집 같은 데서는 조심하여 가능한 한 입을 다물어야 하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 가지로 "머시기 거시기" 말 대신에 목욕재계하고 난 후 쓸데없는 말은 일       체 삼가 하는 것이니, 우리 국어 학자분들 께서도 깊이 있게 살피시어 우리말 대사전에 올바르게        서술해 주시길 바라 마지 않습니다.                                           
206    세계 명언 (클릭...) 댓글:  조회:6991  추천:0  2015-05-21
  강태공姜太公 고문진보古文眞寶 공자 고시원古詩源 근사록近思錄 논어論語 대학大學 맹자 명심보감明心寶鑑 문장궤범文章軌範 사기史記 서경書經 순자筍子 시경詩經 십팔사략十八史略 역경易經 예기禮記 오자吳子 잡편雜篇 장자 좌전左傳 중용中庸 증자 충경忠經 한서漢書 회남자淮南子 효경孝經 후한서後漢書 도올 김용옥 채근담 게오르크 짐멜 Georg Simmel 괴테 나폴레옹 Napoleon 노만 V. 필 노신魯迅 노자 니체 단테 데카르트 도올 김용옥 디즈레일리 Disraeli Benjamin 라 로슈푸코 라 브뤼에르 라즈니쉬 러스킨 Ruskin John 레싱 Lessing Gotthold 로랜스 굴드 로버트 H. 슐러 루소 Jean Jacques Rousseau 루터 Luther Martin 르나르 Renard Jules 릴케Rilke Rainer Maria 마르크스 Marx Karl Heinrich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메난드로스 Menandros 모옴 Maugham Somerset 모파상 몽테뉴 Montaigne Michel de 몽테스키외C. Montesquieu 발타자르 그라시안 버나드 쇼 베이컨 Francis Bacon 비스마르크 Bismarck 사르트르 Sartre  사무엘 존슨 세네카 Sineca Lucius Annaeus 세르반테스 Cervantes 셰익스피어 Shakespeare 쇼펜하우어 Arthur Schopenhauer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앤드류 매튜스 Andrew Matthews 에머슨 Emerson 위고 Hugo Victor Marie 윌리엄 블레이 William Blake 윌슨 T.W. Wilson 이드리스 샤흐 제퍼슨 Jefferson Thomas 존 스튜어트 밀 Mill James M 주희 지그 지글라 체스터필드 Chesterfield 체호프 Chehov 카뮈 Albert Camus 칸트 Kant Immauel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키케로 Marcus Tullius Cicero 탈무드 톨스토이 파스칼 Blaise Pascal 프란체스코 알베로니 프랭클린 Franklin Benjamin 허준許浚, 동의보감東醫寶鑑 헤밍웨이 Hemingway Ernest 헤세 Hesse Hermann 히틀러 Adolf Hitler A. 모로아 B. 러셀 J. 하비스 R. 브라우닝 고전 명언 관자  묵자  법구경  아인슈타인  알랭  오스카 와일드  간디  임어당  카프카  타고르   마르셀 푸르스트   플라톤   윈스턴 처칠    칼 힐티     명언가 명언   [출처] 세계명언 모음|작성자 옥토끼  
205    시쓰기에 수사법 리용하기 댓글:  조회:5580  추천:1  2015-05-17
답변 고마워요 수사법이란 문학에서 미적,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문장이나 언어를 꾸미는 방법으로, 기교의 한 종류입니다.  그 수사법을 크게는 비유, 강조, 변화로 구분할 수 있는데,  비유법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비슷한 사물과 비교하여 표현하는 방법이고,  강조법은 문장을 강조해 짙은 인상을 심어주는 방법,  변화법은 문장에 변화를 주어 지루함과 단조로움을 피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비유법에는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활유법, 의성법, 의태법, 풍유법, 대유법, 중의법, 상징법, 우화법 등이 있습니다.  (1) 직유법 : 원관념을 보조관념에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수사법. 이를 명유(明喩)라고 하는데 '마치', '흡사', '∼같이', '∼처럼', '∼양,' '∼듯' 등의 연결어 사용.  (2) 은유법 :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지 않고 간접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암유(暗喩)라고도 한다. "A like B"의 형태가 직유라면 "A is B"의 형태가 은유이다.  (3) 의인법 : 사람이 아닌 무생물이나 동식물에 인격적 요소를 부여하여 사람의 의지, 감정, 생각 등을 지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는 대상을 인격화하여 존엄성 있게 나타내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의인법을 활유법에 포함시키기도 하며, 추상적인 대상을 인격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역사의 눈', '문화의 꽃' 등과 같다.  (4) 활유법 : 무생물에다 생물적 특성을 부여하여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타내는 방법이다. 단순히 생물적 특성을 부여하면 활유이고 인격적 속성을 부여하면 의인법이다.  (5) 의성법 : 어떤 대상이나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내어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사성법' 또는 '성유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청각적 이미지를 살리는 방법이다.  (6) 의태법 : 어떤 대상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하여 사물의 형태나 동작을 시늉하여 나타내는 기교로써 '시자법'이라고도 한다. 이는 시각적인 효과를 위한 방법이다.  (7) 풍유법 :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지 않고 그 내용을 다른 이야기나 속담, 격언, 문장으로써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다. 나타내려는 내용을 속에 숨기고 그것을 뒤에서 암시하는 방법으로써, 이를 '우의법(寓意法)' 또는 '우유법(寓喩法)'이라고 한다. 풍유로 표현하기 위하여 도입된 비유는 문장전체에 사용되기 때문에 그 본뜻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8) 대유법 : 직접 그 사물의 명칭을 쓰지 않고 그 일부로써 혹은 그 사물의 특징으로써 전체를 나타내는 방법으로써 이에는 '제유법'과 '환유법'이 있다. 제유법은 같은 종류의 사물 중에서 어느 한 부분으로써 전체를 알 수 있게 표현하는 방법이고, 환유법은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의 특징으로써 전체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금수강산  ★은 '들'은 국토의 일부분으로서 조국을 상징하였으므로 제유법이고 ☆은 금수강산이라는 특징으로 우리 나라를 상징하였으므로 환유법이다.  (9) 중의법 : 하나의 말을 가지고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이다. 두 가지 의미란 단어가 지니고 있는 파생적인 의미나 유사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개념과 뜻을 재치 있게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을 말한다.  (10) 상징법 : 원관념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암시에만 그치고 보조관념만이 글에 나타난다. 이는 은유법과 비슷하지만 원관념이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원관념을 짐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은유법이다.  '박두진'의 〔해〕에서 나오는 '해', '어둠' 등은 상징법이다.  강조법은 과장법, 반복법, 열거법, 점층법, 점강법, 비교법, 대조법, 억양법, 예증법, 미화법, 연쇄법, 영탄법, 현재법으로 다시 나눕니다.  (1) 과장법 : 사물의 수량, 상태, 성질 또는 글의 내용을 실제보다 더 늘이거나 줄여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 등의 표현이 과장에 해당하는데, 때로는 "눈물의 홍수"에서처럼 은유와 함께 나타내는데 효과적이다. 실제보다 더 크고 강하게 나타내는 것을 〔향대과장〕이라고 하고, 더 작게 나타내는 것을 〔향소과장〕이라고 한다.  (2) 반복법 : 같은 단어나 구절, 문장을 반복시켜서 뜻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이는 문장의 율조로써 흥을 돋구어 강조할 대에 사용되는 기교이다.  (3) 열거법 : 서로 비슷하거나 같은 계열의 구절이나 그 내용을 늘어놓음으로써 서술하는 내용을 강조하려는 수사법이다. 부분적으로는 각각 다른 자격과 표현가치를 가진 어휘로써 전체 내용을 강조하는 수사법이다. 대체로는 셋 이상을 늘어놓아야 열거법으로 본다. 같은 어구가 놓인 것은 열거법이 아니라 반복법이다.  (4) 점층법 : 어떠한 글이 포함하고 있는 내용의 비중이나 정도를 한 단계씩 높여서 뜻을 점점 강하게, 높게, 깊게 층을 이루어 독자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절정으로 이끌어 올리는 표현방법이다. 이 방법은 독자를 설득시켜 감동시키는데 효과적이다.  ★ 잠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님을 보지.  ★ 유교의 목적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 있다.  (5) 점강법 : 점층법과는 반대로 한 구절 한 구절의 내용이 작아지고 좁아지고 약해져서 고조된 감정으로부터 점점 가라앉게 하는 표현방법이다.  ★ 명예를 잃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이요.  용기를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은 것이요.  돈을 잃는 것은 아무것도 안 잃은 것이다.  점층이나 점강법은 자연히 열거법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점층이나 점강을 아울러 점층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6) 비교법 : 성질이 비슷한 두 가지의 사물이나 내용을 서로 비교하여 그 차이로써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방법이다.  ★ 너의 넋은 수녀보다도 아름답구나.  ★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직유와 비교의 차이  ★ 영희는 순희처럼 예쁘다.  ☆ 영희는 꽃처럼 예쁘다.  ☆은 직유법이 성립된다. 그러나 ★는 직유가 아니라 서로 대등한 자격으로의 비교이다. 비유는 ☆의 관계처럼 전혀 다른 사물의 공통적 속성을 연결시켜 나타내는 방법이다.  (7) 대조법 : 서로 반대되는 내용을 맞세워 강조하거나 선명한 인상을 주려는 방법이다. 대조되는 내용의 단어나 구절을 대립시켜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의미, 단어, 색상, 감각의 대조 등이 있다.  (8) 억양법 : 칭찬하기 위하여 먼저 내려깎는다든지, 내려깎기 위하여 먼저 칭찬한다든지 하는 표현방법.  ★ 얼굴은 곱지만, 속이 얕다.  ★ 사람은 착하지만 변변치 못해.  (9) 예증법 :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러한 사물 중의 몇 가지를 예로 드는 수법이다.  (10) 미화법 :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대상이나 내용을 의식적으로 미화시켜서 나타내는 방법이다. 현대 문학에서는 이러한 미화법이 미화로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의식화 작업 과정을 거쳐서 예술적 가치를 나타내고 있다.  ★ 집 없는 천사 ★ 양상군자  ★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 간 지어내니  반 간은 청풍이요, 반 간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11) 연쇄법 : 앞 구절의 말을 다시 다음 구절에 연결시켜 연쇄적으로 이어가는 방법이다. 강조를 위한 반복법과 다른 점은, 가락을 통해 글에 변화를 줌으로써 흥미를 일으키게 하는 데 있다.  ★ 맛있는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12) 영탄법 : 슬픔, 기쁨, 감동 등 벅찬 감정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수법이다.  (13) 현재법 : 과거에 있던 일이나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일을 과거나 미래시제를 사용하지 않고 현재시제를 사용하는 기교.  끝으로 변화법은 도치법, 대구법, 설의법, 인용법, 반어법, 역설법, 생략법, 문답법, 명령법, 경구법, 돈호법을 아우릅니다.  (1) 도치법 : 문장상의 순서를 바꾸어서 내용을 강조하는 기교로서 '환서법'이라고도 한다. 문장의 순서는 〔주어 + 목적어(보어) + 서술어〕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데, 이 순서가 바뀐 형태가 도치법이다.  (2) 대구법 : 비슷한 가락을 병립시켜 대립의 흥미를 일으키는 기교이다. 이는 단순하자수의 대립만이 아니라, 앞뒤의 내용이 비슷한 성격으로 나타나야 한다. 고대 가사나 한시에서 많이 볼 수 있다.  ★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3) 설의법 : 처음에는 일반적인 서술문으로 표현해 나가다가 결론이나 단정 부분에서 의문형식으로써 강조하는 방법이다. 반어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좀 더 효과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표현형식이다. 내용상으로는 의문이 아니며, 정말로 몰라서 의문을 나타내는 것은 설의법이 아니다.  (4) 인용법 : 자기의 이론을 증명하거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하여 속담이나 격언,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여 논지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기교이다.  (5) 반어법 : 겉으로 표현할 내용과 속에 숨어 있는 내용을 서로 반대로 나타내어 독자에게 관심을 갖게 하는 기교이다. 겉으로는 칭찬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꾸짖고, 겉으로는 꾸짖는 척하지만 사실은 칭찬하는 방법으로 '아이러니(Irony)'라고도 한다.  ★ 규칙도 모르는 사람이 심판을 하였으니 오죽이나 공정했겠소.  (6) 역설법(Paradox, 모순형용) : 표면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하나, 실은 그 속에 절실한 뜻이 담기도록 하는 수사법.  ★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 찬란한 슬픔의 봄을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7) 생략법 : 글의 간결성, 압축성, 긴밀성을 위하여 어구를 생략함으로서 여운을 남기는 기교, 생략된 부분은 독자의 판단이나 추측에 맡긴다.  (8) 문답법 : 글 속의 어느 일분의 문장을 문답형식을 빌려서 전개시켜 나가는 방법. 그러나 단순한 대화를 문답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그것을 변화 있게 강조하기 위하여 자문자답형식으로써 표현하는 방법이다.  ★ 그렇다면 그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병립의 관계이다.  (9) 명령법 : 평범한 서술로 해도 된 것을 더욱 뜻을 강조하기 위하여 변화를 주기 위하여 독자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  (10) 경구법 : 격언이나 속담에서처럼 엉뚱하거나 재치 있거나 익살스러운 기발한 표현 속에 진리를 내포시킴으로써, 교훈적 효과를 내는 변화법.  ★ 시간은 금이다.  ★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  ★ 유비면 무환이다.  (11) 돈호법 : 어떤 사물을 의인화시키거나 대상의 이름을 불러서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법이다. 편지글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연설문에서 '여러분!'하고 부르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204    시의 표현법 - 修辭法 댓글:  조회:6912  추천:0  2015-05-17
시의 표현법 - 수사법(修辭法)     글의 뜻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문장 표현의 기교다.   1. 비유법(譬喩法) : 다른 사물이나 현상을 끌어다가 그 성격.형태.의미 등을 쉽고 분명하고 재미있게 나타내는 표현 기법.   (1)직유법(直喩法) : 'A는 B와 같다.'식으로, A사물을 나타내기 위해 B사물의 비슷한 성질을 직접 끌어다 견주는 것.                              (A = 원관념, B = 보조 관념) 형식 : 마치 ···과 같다, 꼭 ···같다, ···과 비슷하다, ···처럼, ···인 양, ···같이, ···듯. *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원관념=꽃, 보조관념=누님) * 꽃처럼 귀여운 우리 아가야(원관념=우리 아가, 보조관념=꽃) * 어머니의 손은 고목껍질같다(원관념=어머니의 손, 보조관념=고목껍질)   (2)은유법(隱喩法) : 'A는 바로 B다.' 식으로 표현 속에 비유를 숨기는 기법. 직유법이 서로 비슷한 뜻이라면, 은유법은 같은 뜻, 또는 같은 값의 뜻. 형식 : ···은/는 ···다 * 내 마음은 호수요(원=내 마음, 보조=호수) * 봄은 천지의 소녀(원=봄, 보조=소녀), 소녀는 인생의 봄(원=소녀, 보조=봄) *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다(원=오월, 보조=계절의 여왕) * 침묵은 금이다(원=침묵, 보조=금)   (3)풍유법(諷諭法) : 은연중에 다른 사물을 가리키면서 다만 비기는 낱말만 내세워서, 숨은 뜻을 읽는 이가 알아내도록 독립된 문장이나 이야기 형태를 취하는 기법. 형식 : 우화, 교훈담, 속담, 격언 등 * 금강산도 식후경 * 도마에 오른 고기 * 빈 수레가 요란하다 * 등잔 밑이 어둡다   (4)대유법(代喩法) : 사물의 한 모퉁이나 어느 한 특징을 보임으로써 전체를 대신하는 기법. 사물의 일부를 보임으로써 전체를 나타내거나, 소속물로 주체를 나타내는 기법.   (가)제유법(提喩法) : 일부로써 전체를 대표하게 하는 경우 *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빵 - 먹을 것의 일부) * 약주를 잘 드신다 (약주 - 술의 일부)   (나)환유법(換喩法) : 한 사물에 관계있는 사물을 빌어 나타내거나, 기호로써 나타내는 것을 대신하거나, 소유물로써 주인을 알게 하는 등의 기법. * 샤일록만 사는 마을이다 (샤일록 = 구두쇠) * 내가 바지저고리로 보이냐(바지저고리 = 얼간이)   (5)활유법(活喩法) : 무생물을 생물로, 비정물(非情物)을 유정물(有情物)로 나타내는 기법. * 으르렁거리는 파도 * 목마른 대지 * 잠자는 바다 * 꼬리를 감추며 멀어져 가는 기차 (6)의인법(擬人法) : 사물의 움직임이나 모양, 추상적 관념 등을 사람의 동작처럼 나타내는 기법. 활유법의 한 갈래. 반드시 활유법과 구분할 필요는 없다. *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 * 웃음짓는 샘물 * 위엄있는 바위   (7)의성법(擬聲法) : 표현하려는 사물의 소리를 음성(의성어)으로 나타내고, 또 그것을 연상하도록 표현하는 기법. 의성어에 의한 표현법.(청각적 심상) * 화살이 휙휙 스쳐간다 * 으르렁콸콸 물 흐르는 소리 * 물이 설설 끓는다   (8)의태법(擬態法) : 사물이나 행동의 모양, 상태 등을 흉내내어(의태어), 그 느낌이나 특징을 드러내는 표현 기법. (시각적 심상) * 깡총깡총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 힐끔힐끔 눈치를 본다 * 야금야금 혼자 먹는다 의성법과 의태법의 구분은 '소리','모습'에 적용시킴.   (9)중의법(重義法) : 하나의 말이 둘 이상의 뜻을 나타내게 하는 기법.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워라 /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하리 (벽계수=사람 이름과 시냇물, 명월=밝은 달과 황진이의 기명) 2. 강조법(强調法) : 말이나 글의 표현을 보다 생생하고 진실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글이나 말에 힘을 주어 세차게 나타내는 수사법.   (1)과장법(誇張法) : 사물을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작게 표현하는 강조법. * 산더미와 같은 파도 * 독수리보다 빨리, 사자보다 사납게 * 간이 콩알 만하다 * 마음 좁기가 바늘 구멍 만하다   (2)영탄법(詠嘆法) :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밖으로 드러나도록 하는 강조적 표현 기법. * 어이할꺼나,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 *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 버선이여 ! * 오, 거룩한 마음 ! (3)반복법(反復法) : 같거나 비슷한 낱말, 구(句), 절(節), 문(文) 등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기법. *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멀고 먼 나라 * 쉬어 가자, 벗이여, 쉬어 가자 *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 봄이 왔네, 봄이 왔네 ······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4)점층법(漸層法) : 점점 힘있는 말이나, 중요성이 큰 말을 거듭 써서 글의 힘을 강하게, 높게, 크게, 깊게 고조시키는 기법 * 한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열 사람을 당하리라. 열은 백을 당하고, 백은 천을 당하며, 천은 만을 당하며, 만으로써 천하를 얻으리라.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5)점강법(漸降法) : 뜻이 점점 약해지거나 범위, 규모, 크기 등이 점점 작아지는 표현 기법. * 천하를 태평히 하려거든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려면 그 집의 질서를 잡으며, 그 집의 질서를 잡으려면 그 몸을 닦을지니라.   (6)대조법(對照法) : 상반 또는 상대되는 어구나 사물 또는 현상을 맞세워 그 형식이나 내용의 다름을 두드러지게 드러내 보이는 기법.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   (7)현재법(現在法) : 과거의 일이나 미래의 예정된 일을 현재 눈앞의 일처럼 나타내어 실감나게 하는 기법. * 나폴레옹은 개선문을 들어선다.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파리 시민들.   (8)미화법(美化法) : 아름다운 사물을 써서 뒤의 사물을 아름답게 만드는 기법. * 거리의 천사(거지) * 양상군자(도둑) * 밤손님(도둑)   (9)열거법(列擧法) : 내용이나 형식상 서로 다른 것들을 어떤 분류대로 늘어놓아 뜻을 깊고 힘차게 하는 기법. * 사과, 배, 감, 이런 것들을 과일이라 한다. *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마구 웃어댔다.   (10)비교법(比較法) : 두 가지 이상의 사물의 크기, 성질, 내용, 모습 등의 정도를 견주어서 어느 한 사물을 선명히 표현하는 기법. 대조법과의 차이점 : 일정한 기준에 의한 정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 즉 두 사물의 성질상 공통 부분에 관한 수사법. * 집채보다 큰 호랑이 * 강낭콩보다 더 푸른 물결   (11)억양법(抑揚法) : 처음에 치켜 올렸다가 다음에 낮추거나, 먼저 낮추었다가 나중에 치켜올리는 기법. * 너는 퍽 영리하다. 그러나, 성질이 사나운 게 흠이거든. * 백제는 뛰어난 예술을 지녔던 나라지만, 무력을 기를 줄 몰랐다.   (12)생략법(省略法) : 비교적 불필요한 부분을 생략하여 간결하고, 굳세고, 함축성과 여운을 띠게 하는 기법. * 가도 오도 못한다(가지도 오지도 못한다) * 왔노라, 보았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   (13)연쇄법(連鎖法) : 앞 구절의 끝 말을 다시 뒷 구절의 머리에 놓아 그 뜻과 리듬을 연상 깊게 하는 기법. * 기차는 빠르다,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다 ······ 3. 변화법(變化法) : 문장이 단조롭거나 지루한 경우, 말에 변화를 주어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사법.   (1)설의법(設疑法) : 뻔한 결론을 일단 과제로 둔 채, 의문 형식으로 표현한 기법 * 그야말로 용감한 청년이 아닌가. * 무슨 이익이 있으랴.   (2)인용법(引用法) : 이름이 있는 사람의 말, 속담, 격언, 경전의 구절 등을 끌어와 써서 문장에 무게를 주고 내용을 풍부하게 하거나 변화를 주는 기법. *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공자는 말했다. - 명인(明引) * 셋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더니, 당신이야말로 내게 좋은 교훈을 주었소. - 암인(暗引)   (3)도치법(倒置法) : 문법에 맞는 정상적인 말의 순서를 뒤집어서 감정의 상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표현 기법 * 가자, 빨리. * 오, 생겨났으면,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는 이   (4)대구법(對句法) : 가락이 비슷한 말을 나란히 나타내는 기법. 대조법은 사물의 상반되는 성질 또는 뜻을 맞세우지만, 대구법은 성질이나 뜻에는 상관 않고 가락의 비슷한 점을 나타낸다. *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 꽃은 안개와 같고, 사람은 구름과 같다.   (5)반어법(反語法) : 참뜻과는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써 관심을 끄는 기법.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요 얄미운 것 ( 귀엽다 )   (6)문답법(問答法) : 글 쓰는 이가 직접 주장을 펴지 않고, 두 사람 이상의 인물을 내세워 묻고 답하게 함으로써 글의 단조로움을 이겨내는 기법. 수능언어에 잘나오는어휘 수능 언어에 잘나오는 어휘   [ 가 ]   간접적 : 중간에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연결하는 관계의. ↔ 직접적 감각적 : 감각 기관으로 포착된 외부의 자극에 의한. 감동적 : 무엇에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이는. 감상적 : 어떤 일이나 현상을 슬프게 느끼는. 감성적 :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반응하는. 감정적 : 사물의 현상에 느끼어 움직이는 마음의 작용 중에서 쾌․불쾌․기쁨․노여움 따위의. 개성적 : 낱낱의 물건이나 또는 한 사람의 인간에게 특유한 특징이나 성질․성격․성향의. 개연적 : 일정한 조건 아래서 어떤 현상이 발생할 만한. 개인적 : 단체나 집단에 대하여 그것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사람의. 객관적 : 개인적 주관을 떠나 냉철한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격정적 : 강하고 또 급격하여 누르기 어려운 정서의. 경세적 : 세상 사람을 깨우치는. 고답적 : 실사회와 동떨어진 것을 고상하게 여기는. 고백적 : 비밀이나 생각하는 바를 사실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고전적 : ① 조화․전통․형식을 중히 여기는. : ② 예술 작품에서 고전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공리적 : 어떤 행위가 자기에게 이로울 것인가 아닌가를 먼저 생각하는. 공상적 : 현실적이 아닌, 또는 실현될 가망이 없는. 공시론 : 같은 시간, 곧 동시성 위에 존재하는 현상을 파악하는 이론 ↔ 통시론 과장적 : 사실보다 지나치게 나타내는. 과학적 : 구체적인 사상과 그것을 통일하는 보편적인 법칙에 관하여 객관적인 진리를 인식하고, 또 그것을 응용하는. 관념 : 대상에 대한 인상이나 의식 내용. 관념적 : ① 현실을 무시한 추상적인 : ② 철학적 관능적 : 육체적(성적) 쾌감을 자극하는. 관조적 : 고요한 마음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음미하는. 괴기적 : 이상하고 (불가사의하고) 야릇한. 교술적 :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하여 감흥을 자아내는 교훈적 : 앞으로의 행동이나 생활에 있어서의 지도적인 구실이 될 만한. 구비적 : 말로 전해져 퍼져 내려오는 민요나 판소리 따위. 구상적 : 구체적 ↔ 추상적 구체적 : ① 직접 경험․지각할 수 있는. : ② 일반적․추상적․보편적에 대립적인(개념). 국수적 : 제 나라 것만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극적 : ① 연극적 (대화․행동) : ② 깜짝 놀랄만한.   [ 나 ]   낭만적 : 비현실적인. 내성적 :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성격인. 냉소적 : 쌀쌀한 태도로 업신여겨 비웃음. 논리 : ① 말이나 글의 조리. : ② 생각하여 분별하는 이치. 논거 : 의견이나 주장의 타당성을 뒷받침 해주는 증거. 논증 : 상대의 신념이라 태도, 의견 등을 필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진술 방식.   [ 다 ]   달관 :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 세속을 벗어난 경지. 당위적 : 마땅히 행해야 하는. 대응 : 짝을 이뤄 서로 응함. = 상응 = 호응 대조적 : 서로 반대적으로 대비되는. 대중적 : 널리 일반 민중을 중심으로 한. 도식적 : 이미 이루어진 틀이나 공식에 맞추어 보려는. 독백적 : 혼자서 중얼거림.   [ 마 ]   명제 : 어떤 사실의 진위나 의견, 주장, 판단 등을 문장으로 나타낸 것. 모순 : 앞뒤가 서로 맞지 않음. 목가적 : 서양의 시골 냄새가 나는. cf. 향토적 : 한국적 시골 냄새가 나는 전원적 : 시골 생활의 자그마한 것들에 애정을 쏟는 묘사적 : 보고 들은 것이나 마음에 느낀 것을 그림이나 소설 따위에서 예술적․객관적으로 재현. 문화 : 인류가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학습에 의해서 이루어 놓은 정신적, 물질적인 일체의 성과. 미동적 : 약간 움직이는.   [ 바 ]   반어적 : 일부러 어떤 말을 실제와는 반대로 표현하는. 아이러니. 배타적 : 남을 배척하는. 변증법 :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 원리로 하여 사물의 발전 법칙을 설명하려는 논리. 보수적 : 재래의 풍속․습관․전통 등을 중시하여 그대로 지키려는. ↔ 진보적 본질 : 근본 바탕, 중심 내용 봉건적 : 봉건제도 특유의 전제적․계급적․인습적인. 부연 : 덧붙여 설명함. 분석적 :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분해하여 그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적 성분․요소를 파악하는. 비약적 : 단계나 순서를 차례대로 밟지 않고 껑충 뛴. 비유적 : 그와 비슷한 다른 성질을 가진 현상이나 사물을 빌어 뜻을 명확히 나타내는 일. 비장미 : 슬픔 속에 훌륭한 뜻을 지님. 비판 : 인물․행위․판단․학설․작품 따위를 평가․검토하여 그릇된 점을 밝혀 내는 일. 비평 : 대상의 가치나 영향을 따져 말함. 비현실적 : 현실과는 동떨어진.   [ 사 ]   사실적 : 현실로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일의. 사실적 : 사물의 실제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사색적 :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더듬는. 산문적 : 글자의 수나 운율 같은 거의 제한이 없이 자유룝게 기술하는. 상대적 : 사물이 다른 것과의 관계나 대립․비교 등의 상태에 놓여 있는 ↔ 절대적 상보적 :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상상적 :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관하여 마음속에 그려보는. 상술 : 자세하게 설명함. 상징 : ① 추상적인 사물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것. : ② 보조관념 : 원관념 = 1 : 多 : ③ 원관념은 숨어 있다. 서경적 : 경치를 펴는. 서정적 : 잔잔하고 아름다운. 서사적 :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적는. 서술적 : (어떤 내용을) 차례를 좇아 말하거나 적는. 선험적 : 논리상 경험에 앞서서 인식의 주관적 형식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주장하는. 설명적 :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밝혀서 말하는. 수사적 :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하여 문장․사상․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언어 수단들의 선택과 그의 이용 수법. 수의적 : 자기 마음대로 하는. 순종적 : 거슬리지 않고 순순히 복종하는. 순행적 : 차례대로 진행되는. ↔ 역행적 숭고미 : 존귀하고 높은 가치를 지닌 대상이 갖는 미. 시사적 : 현재의 정치․경제․사회와 관련된. 신분적 : 개인이 속하는 일정한 사회적인 지위의./ 신비적 : 사람의 힘이나 지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묘한. 신앙 : 초자연적인 절대자․창조자에 대한 신자 자신의 태도. 심리적 : 마음의. 심미적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유미, 탐미 심상 : 기억과 연상을 통해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이나 모습. 이미지.   [ 아 ]   암시적 : 어떤 것이라고 꼭 집어서 밝히지 않고 넌지시 깨우쳐 주는. 애상적 :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여성적 : 여성답거나 또는 여성에 특유한. 역동적 : 움직이는. 동적. 역사적 : 역사에 기초하는. 역설 : 두 가지 사실이 얼핏보기에는 서로 충돌하는 것 같으나 이치에 맞음. 역학적 : 부분을 이루는 요소가 서로 의존적 관계를 가지며 또 서로 제약하는. 염세적 : 세상이 싫어짐. ↔ 낙적 예속적 : 남의 지배 아래 매인. 예술적 :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활동을 빛깔․모양․소리 등에 의하여 미적으로 창조, 표현하는. 예지 :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뛰어난 지혜. 예찬적 : 존경하고 찬탄하는. 외경심 : 숭고한 가치를 지닌 대상(절대자, 생명 등)에 대해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 운명론적 : 모든 자연 현상이나 사람의 일은 선천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결코 사람의 힘으로는 변경 못시킨다는. 운치 : 고상하고 우아한 멋. 유기적 : 여러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여, 그 각 부분 사이에 긴밀한 통일을 이루어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원형상징 :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에게 거의 동일한 느낌을 주는 내용. 유심론적 : 정신적인 것만이 참된 실재이며, 물질적인 것은 그 현상․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유의적 : 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것. 유추적 : 어떤 사물에서 다른 사물의 성질이나 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의식 : ① 깨어 있음 ② 생각 ③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생각 의지적 : 목적을 자각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이상적 :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이성적 : 본능이나 감상적인 충동에 의하지 않고, 이성에 의한. 이지적 : 사물을 분별․이해하는 슬기를 지닌. 인간성 : 인간다운 면. 인간의 본성. 인습 : 버려야 할 옛 풍습이나 습관. 인식 : 깨달아 앎. 일반적 : 전체에 두루 해당되는. 추상적․보편적 임의적 : 강제나 제한이 없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하는.   [ 자 ]   자조적 : 스스로 자기를 비웃는. 자주적 :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기 뜻과 책임 아래 처리하는. 적층적 : 개인의 창작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아진. 전개 : 내용을 발전시켜 펼치는 것. 전기적 : 이상하고 진기한. 전기적 : 일생의 사적을 중심으로 적은. 전위적 : 예술 운동에서 가장 선구적인. 전제 : 추리에서 결론의 기초가 되는 판단. 전지적 : 모든 것을 다 아는. 전통적 : 지난 세대에 이미 이루어져 그 후로 계통을 이루어 전하여 지는. 전형적 : 동류의 사물들 가운데서 그 사물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그 본보기로 삼을 만한. 절대적 : 아무런 조건도 붙지 않고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상대될 만한 것이 없는 ↔ 상대적 정서적 : 어떤 사물에 부딪혀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에 의한. 정시적 : 드러내 보이는. 종교적 : 신이나 또는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를 인정하여, 그것을 믿고, 숭배하는, 신앙하는. 주관적 : 개인적인 관점이나 견해를 가진. 주술적 : 무당 등이 신의 힘이나 신비력으로 길흉을 점치고, 재앙을 물리치거나 복을 비는. 주정적 : 정서를 위주로 하는. 주지 : 주된 내용. 주지적 : ① 감정․행동보다도 지성․사유 등의 지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 ② 지성을 위주로 하는. 지사적 : 국가․겨례․사회의 앞날을 걱정하여 제 몸을 희생해서 일하려는 크고 높은 뜻을 가진. 지성 : 지각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인상을 형성하는 정신적인 작용. 직관 : 지식이나 경험을 배제하고 그 자체대로 파악함. 직서적 : 상상이나 감상 등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직설적 : 있는 그대로 말하는. 직시적 : 사물의 진실한 모습을 바로 봄. 직접적 : 중간에 제삼자나 어떤 사물을 개재시키지 않고 바로 접촉하는. 진술 : 자세히 말함. 또는 그 말.     [ 차 ]   추론 : 주장의 타당성을 논리적 방법으로 밝히는 과정. 추상적 : ① 낱낱의 별개의 사물․사항․구체적 개념에서 그것들에 공통된 속성을 뽑아 내서 이를 일반적인 개념으로 파악하는. : ② 주장․논의 등이 실적의 구체적․개별적인 사정을 무시하고 있어 막연한. 일반적. 개념적. 참회적 : 잘못에 대하여 뉘우쳐 마음을 고치는. 철학적 : ①사물의 근본 원리를 추구하는. ② 철학에 기초한.   [ 타 ]   탐미적 :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미의 세계에 빠지거나 도취하는. 통사적 구조 : 문장의 구조. 통설적 : 세간에 널리 알려지거나 일반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통속적 : 일반에게 널리 통하는 대중적이며 보편적인. 통시적 : 역사(시간)적으로 파악하는. 퇴폐적 : 풍속․도덕․문화 따위가 문란하여 건전하지 못한. 특수성 : 각각의 것이 지니고 있는 성질. ↔ 보편성   [ 파 ]   풍류적 : 속된 일을 떠나서 운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풍속 : 오랜 이전부터 전해 오며 지켜지고 있는 생활상의 여러 가지 습속. 풍자적 :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등을 꾸짖는. 필연적 :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 우연적   [ 하 ]   함축적 : 말이나 글 가운데 많은 뜻이 집약되어 있는. 해설적 : 어떤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해학적 : 우습고 익살스러운. 핵심적 : 사물의 가장 요긴한. 향토적 : 일정한 지방에 특유한 자연과 풍속 또는 생활 등을 전제로 한. 허구적 :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자의 상상력에 의하여 창조해 내는. 현실적 : 존재하거나 또는 실현되어 있는. 현학적 : 학식의 두드러짐을 자랑하여 뽐내는. 형식적 : 내용을 따르지 않고 겉발림으로 하는. 형이상학적 : 초감각적인 세계를 진실의 실제라고 생각하고, 이것을 순수한 사고에 의하여 인식하려는. 형이하학적 : 감성적 현상을 대상으로 한. 환상적 : 현실적 기초도 가능성도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 회의적 : 어떤 일에 의심을 품는. 희화적 : 익살맞게 그린.     [출처] [국어]시의표현방법(수사법)+수능 언어에 잘나오는 어휘|작성자 박상경  
203    진짜 수사법 알기 댓글:  조회:4827  추천:0  2015-05-17
비유법 -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 직유법 ~처럼, ~같이, ~듯이, ~인 양 등의 조사를 붙여서 글을 꾸미는 방법, 대표속성이 유사해야 문장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예)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 새순 같은 (아이의) 손, 닭장 같은 아파트 은유법 조사 없이 (A는 B이다) 또는 (A는 B의 C이다)라고 단언하듯 표현하는 방법, 표면적 유사성이 아닌 내면적 동일성이 중요하다. 예) 내 마음은 호수, 책은 마음의 양식,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동반자 의인법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기법 예) 노래하는 꾀꼬리, 내 귀를 간지럽히는 목소리, 미소 짓는 해님 활유법 무생물을 생물처럼 표현하는 기법 예)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가을빛과 함께 길거리에서 서서 의성법 자연계의 소리, 인간 또는 동물의 소리를 그대로 본떠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법 예) 배가 꼬르륵 거린다, 벌 떼가 윙윙, 시냇물이 졸졸 의태법 사물의 모양과 짓을 그대로 시늉하여 표현하는 법 예) 가슴이 두근두근,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알록달록 색종이 대유법 제유법 사물의 일부나 전체 중 하나의 종류로 전체를 대신해서 표현하는 방법 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빵 없는 자유, 흰 쌀밥에 고깃국 환유법 사물의 속성으로 자체나 전체를 대신하는 방법 예)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너는 집안의 기둥이다. 수사법 중 비유법을 종류별로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비슷한 개념끼리 묶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직유법과 은유법 직유법을 사용할 때 주의점은 대표 속성의 유사성을 가지고 결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 속성이 서로 맞지 않으면 어색하고 거북한 문장이 됩니다. 반면에 은유법은 내면적 유사성에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기장 같은 나의 하루'는 직유법을 사용한 표현입니다. 일기장의 대표 속성이 나의 하루의 속성과 연관이 적어 이게 무슨 소린지 알쏭달쏭합니다. 차라리 은유법의 형식대로 '나의 하루는 일기장'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습니다. 직유는 드러난 속성에 주목하게 하고, 은유는 속 뜻에 주목하게 합니다. 대신 은유는 많은 사유를 필요로 합니다. 독자를 생각하게 하여 놓고 그 속 뜻의 깊이가 없거나 엉뚱한 것이라면 독자가 실망하게 됩니다. 2. 의인법과 활유법 둘은 비슷한 비유법입니다. 의인법과 활유법의 구분은 사람만 할 수 있는 행동인지 아닌지로 나눕니다. 활유법 안에 의인법이 속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창작할 때 대상(무생물)이 사람으로 느껴져서 표현하면 사람으로 비유하고 의인법을 활용한 글이고, 무생물이 생명으로 느껴져서 살아있는 것처럼 표현하면 활유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험생이 아니면 두 비유법을 구분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지 아닐까요? 3. 의성법과 의태법 쉽게 의성법은 소리를 모방한 낱말인 의성어를 사용해 꾸민 문장이고, 의태법은 모양, 형태, 감촉, 색깔 등을 상징하는 낱말인 의태어를 사용해 꾸민 문장입니다. 의성어는 소리를 모방하였지만, 의태어는 모방이 아닌 모습이나 상태, 양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낱말들입니다. 하지만 거의 동일한 효과를 주기 때문에 구분만 있을 뿐 사용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어떤 형태나 소리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비유법입니다. 4. 제유법과 환유법 제유법과 환유법은 대유법의 하위 개념입니다. 하지만 환유법과 대유법의 개념을 혼용해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일단 상하위 개념으로 나눠 놨습니다. 헷갈리니까요. 제유(한자 뜻: 끌 제, 깨우칠 유)법은 부분을 전체에 대신해서 상징적으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위 표에 예를 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들'은 국토(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들'을 전체인 '국토'를 대신해서 사용함으로써 세련된 문장이 됩니다. '빵 없는 자유'에서 '빵'은 식량의 한 부분이지만 '빵'으로 식량 전체를 대신했습니다. 환유(한자 뜻: 바꿀 환, 깨우칠 유)법은 속성 대신에 그 속성을 가진 사물로 대신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표에 나온 예문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에서 '개똥'의 속성은 '흔한 것'입니다. 흔하다고 직접적으로 쓰지 않고 '개똥'의 속성을 빌려 문장을 재미있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는 리유는 서로서로 공부하기 위해서 입니다. 감사합니다.^^  
202    시에서 수사법 알기 댓글:  조회:6674  추천:0  2015-05-17
답변 고마워요 직유법이란 어떤 사물을 비유하려는 비유법의 한 가지로 직접 드러내려는 표현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앞마당에 활짝 핀 장미꽃은 우리 엄마의 얼굴이다.” 여기에서 장미꽃은 바로 엄마의 얼굴이 직유법입니다. 은유법이란 이 것도 직유법처럼 비유하려는 것이지만 본 뜻은 숨기고 형태만 강조하는 비유법의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의 마음은 어느새 하늘을 나는 풍선이 되었다” 여기에서 나의 마음이 풍선이 되었다는 것이 은유법입니다. 의인법도 역시 비유법의 하나인데 어떤 사물을 마치 사람의 형상이나 마음을 띤 것처럼 비유하려는 것입니다. 의인법은 흔이 이솝이야기 속에 나오는 동물들이 마치 사람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서 “여우가 까마귀에게 말하기를 까마귀야 노래를 불러 보아라.” 여기에서 여우와 까마귀는 마치 사람의 역할를 한 것이 바로 의인법입니다.   추천해요31 jsamen 1.직유법 뜻:~처럼,~같이,~듯이,~인양 예)꽃과 같이 물을 마시는 나무들.      바다 처럼 넓은 하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처럼 나도 하늘에 떠다니고 싶어 등  2. 의인법 뜻:사물을 사람처럼 표현한다. 예)샤프가 신나게 춤을 춘다.     지우개가 때를민다.      색연필이 그림을 그린다. 등   3.은유법  뜻:~은(는)~이다.  예)닭은 알을낳고 그알은 계란 이다.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될것 이다.     엄마,아빠 는 너무나 소중한 가족 이다.등  
201    치매를 돕는 명언 한트럭 기억하기 댓글:  조회:7715  추천:0  2015-05-16
  윌터 앨스턴 ㅡ최선을 다하고,, 그 나머지는 잊어라  레지 잭슨 ㅡ나의 경우 경기는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토미 라소다 ㅡ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  노모 히데오-소시민은 도전자를 비웃는다  장명부-떨어지는 낙엽은 가을바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레오 두로처-내일 경기를 위해서 투수를 아낄 필요는 없다,,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니까,,  사첼 페이지-뒤를 돌아보지 마라...누가 따라올지 모르니까  이치로-나와의 약속은 단 한 번도 어긴적이 없다  베이브 루스-모든 베이스라인이 오르막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할 때엔 모든 야구선수들은 그만두어야만 한다  짐 애보트-100%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결코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장애는 우리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하나의 단순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박철순-인생은 많은시련과 실패를 거듭할수록 성공한다.  이승엽-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이다.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  감사용 -결과를 떠나 스스로에게 박수를 칠 수 있으면 진정한 승자라고 생각한다.  이동수-1200만원짜리 선수든 5억 짜리 선수든 경기장 안에선 같은 야구선수에 불과할 뿐이다.   요기베라-야구는 끝날때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톰글래빈-나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스피드건에도 찍히지 않는다.   박찬호-꿈은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수 있다.   니시오카 쯔요시-축구,농구와 달리 야구는 보이지 않는곳에서 열심히 하는 스포츠다.   조디마지오-야구를 하는 것이 즐겁지 않은 일이 되었다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더 이상 야구가 아니다.   워렌스판-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흐트려 놓는 것이다.   테드윌리엄스-" 남자라면 그 날의 목표, 나아가서 그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하루의 목표, 인생의 목표, 그리고 내 자신의 목표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저기 테드 윌리엄스가 지나간다. 이제까지 살았던 사람중에 가장 위대한 타자다. "   크리스티메튜슨-승리하면 배울 수 있다, 그러나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샌디쿠팩스-투수는 아웃카운트를 늘림으로써 승리투수가 되는 것이지 삼진을 많이 잡는다고 승리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조토레-우리는 인간이다. 그 (페드로 마르티스)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졌다. 마냥 슬픔에 잠긴다는 것은 위험하다. 용기를 빼앗아 갈 뿐 아니라 회복하려는 의욕마저 잃게 하기 때문이다.    (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 스위스 철학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으리라.(성경)  마음보다 더 잔인한 무기는 없다.(장자)  마음에 고민이 있는 자의 하루는 낱낱이 어려운 일뿐인 것이다.(구약성서)  마음을 비우면 건강해지고 정력이 넘친다.(노만 필 박사[미국의 목사]의 저서 [적극적인 사고방식] 에서)  마음의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크다.(사일러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성경)  마음이 어둡고 산란할 때엔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이 긴장하고 딱딱할 때엔 놓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어두운 마음을 고칠지라도 흔들리는 마음이 다시 병들기 쉽다.(채근담)  마음이 어진 사람은 조그마한 집에 살아도 행복하다.(홍자성)  마음이 없으면 보고도 안 보이고 들어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중국고전)  마음이 재촉하고 이성이 허용하는데도 모험을 두려워하는 자는 겁쟁이요, 자기 의도에서 멀리 벗어나 모험하는    자는 노예이다.(하인리히 하이네 - Heinrich Heine)  만 가지 이치, 하나의 근원은 단번에 깨쳐지는 것이 아니므로 참마음, 진실된 본체는 애써 연구하는데 있다.(이황)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별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된 슬픈 이 야기이다.(콜르리지)  만물의 근원은 물.(탈레스 - Thales)  만물의 근원은 불.(헤라클레이토스 - Herakleiros)  만물의 근원은 원자.(데모크리토스 - Demokritos)  만약 급히 서두르려면 돌아 가는 길로 가라.(영국속담)  만약 자기의 의견을 들어주는 합법수단이 거절되었을 때에는 국민은 폭력으로 호소할 권리가 있다.    (앙드레 모루아 - 프랑스 작가 : 1885-1967)  만약 제군이 노예의 목에다 쇠사슬을 감는다면, 그 쇠사슬의 한 끝은 제군의 목에 얽혀 붙을 것이다.(에머슨)  만약 제군이 돈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나가서 얼마간의 돈을 빌려 보라.(프랭클린)  만약 좋은 펜과 좋은 잉크와 좋은 종이가 있다면 문제없이 걸작을 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이다.    (앙드레 폴 기욤 지드 - 프랑스 소설가 : 1869-1951)  만약 평화가 명예로써 유지되지 못한다면, 그런 평화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러셀)  만일 자유 사회가 가난한 다수를 도울수 없다면 부유한 소수도 구원할 수 없다.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 John Fitzgerald Kennedy)  많은 불행은 난처한 일과 말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일 때문에 생겼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 러시아 작가)  많은 벗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을 가질 수 없다.(아리스토텔레스)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자만이 충고의 덕을 본다.(푸블릴리우스 시루스)  많은 사물중에서 가운데가 제일이다. 내 위치도 가운데가 되게 하라.(포킬리데스)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의 친구도 없다.(W 글라임)  많이 가진 사람은 더 많은 것을 손에 넣는다. 조금밖에 갖지 못한 사람은 그것마저 빼앗긴다.    (하인리히 하이네 - 독일시인:1797~1856)  말도 행동이고 행동도 말의 일종이다.(에머슨)  말로하는 사랑은 쉽게 외면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은 저항할 수가 없다.(무니햄)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잡초로 가득 찬 정원과 같다.(하우얼)  말 수가 적고 친절한 것은 여성의 가장 좋은 장식이다.(톨스토이)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솔론)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모로코 속담)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특권이다.(올리버 웬들 홈스 - Oliver Wendell Holmes, Jr.)  말하자마자 행동하는 사람, 그것이 가치있는 사람이다.(엔니웃스)  말 한 마디가 세계를 지배한다.(쿠크)  맹세는 말에 지나지 않고 말은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버틀러)  머리 위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 내 마음에는 도덕률.(칸트 - I. Kant)  먹는 것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요, 입는 것은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벤저민 프랭클린 - 미국 정치가 : 1706-1790)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만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독일 철학자)  명성은 젊은이에게 광채를 주고, 노인에게는 위엄을 가져다 준다.(랠프 월도 에머슨 - 미국 시인:1803~1882)  명성을 얻은 예술가는 그 때문에 괴로워한다. 따라서 그들의 처녀작이 때로는 최고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 독일 작곡가:1770~1827)  모두들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일체가 이유가 없어도 자기 고집 때문에 자 살하는 것은 나뿐이다.(도스토예프스키)  모든 개량과 진보의 근본은 근로이다.(카네기)  모든 개성에는 제각기 아름다움이 있다.(영국 사상가 에머슨)  모든 국가의 기초는 그 나라 젊은이들의 교육이다.(디오게네스)  모든 기술 중에서 제일이며 가장 존경을 받는 것은 농업이다.(장 자크 루소 - 프랑스 사상가 : 1712-1778)  모든 날 중 가장 완전히 잃어버린 날은 웃지 않는 날이다.(샹포르)  모든 사람에 대해서 친구인 사람은 누구에 대해서도 친구가 아닌 것이다.(이 언)  모든 사람은 자기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권리가 있으며, 또 그 진리를 위해 자신을 불태울 권리를 가지고 있다.(새뮤얼 존슨 - Samuel Johnson)  모든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찬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이다.(사무엘 존슨)  모든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불행위에 세워진다.(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 러시아 작가 : 1818-1883) 모든 양서를 읽는다는 것은 지난 몇세기 동안에 걸친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데카르트 - 프랑스 철학자,수학자:1596 ~ 1650)  모든 위대한 사업에도 최초에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던 것들입니다.(카알라일)  모든 위대한 진리는 처음에는 모독의 말로 출발한다.(조지 버나드 쇼 - 영국 작가 : 1856-1950)  모든 일은 계획으로 시작하고, 노력으로 성취되며, 오만으로 망친다.(관자)  모든 일은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쉬워진다.(풀러)  모든 일을 용서받는 청년기는 아무것도 스스로 용서치 않으며, 스스로 모든 일을 용서하는 노년기는 아무것도     용서 받지 못한다.(조지 버나드 쇼 - George Bernard Shaw)  모든 자기학대의 감정은 체념이 부족한 까닭이다. 자기학대의 감정은 자기를 다칠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남을 다치게 한다.(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 - 영국 철학자)  모든 죄악의 기본은 조바심과 게으름이다.(카프카)  모든 지식중에서 결혼에 관한 지식이 가장 늦어지고 있다.(발자크)  모든 행복한 가족들은 서로 서로 닮은 데가 많다. 그러나 모든 불행한 가족은 그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불행하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 러시아 작가:1828 ~ 1910)  모든 혁명은 우선은 한 사람의 인간이 생각해 낸 하나의 사상에 지니지 않 았던 것이다.(에머슨)  모략, 중상만큼 빠른 것이 없고, 쉽게 발설되는 것도 없고, 빨리 받아들여지는 것도 없고, 널리 퍼지는 것도 없다.    (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 - 로마 정치가 : BC 106-43)  모방에 의해서 위대하게 된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었다.(사무엘 죤슨)  모범은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교훈이다.(웨스트)  모범은 훈화보다 유효하다.(영국속담)  모욕은 잊어버리고, 친절은 결코 잊지 말아라.(공자)  모자란다는 여백, 그 여백이 오히려 기쁨의 샘이 된다.(파스칼)  목적 없는 생활은 맛이 없고, 목적 있는 생활은 번거롭다.(헷세)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보들레르)  목표를 보는 자는 장애물을 겁내지 않는다.(한나 모어)  못난이의 얼굴을 보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볼 것.(라블레)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가벼운 시를 즐길 수 없다.(베이커)  무관심 때문에 사람은 실제로 죽기전에 죽어버린다.(위젤)  무례함이란 약한 인간이 강한 인간을 모방할 때 나타난다.(엘리 호퍼)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는 나와 뜻을 같이할 사람이 한둘은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바깥 대기를 호흡하는데     들창문은 하나만으로 족하다.(로맹 롤랑 - 프랑스 작가:1866~1944)  무실(務實)·역행(力行)하고 충의(忠義)·용감(勇敢)하라.(도산 안창호 - 安昌浩)  무슨 일이고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고 실행할 수 있다.(보르나르그)  무슨 일이든지 한 가지 일에 능통하라.(경행록)  무엇보다도 먼저 더 소중한 점은 인생에 대한 척도가 경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지식의 향상과 아울러 항상    경건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앨프리드 테니슨 - 영국 시인)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없다면 세상 어디를 가나 두각을 나타낼 수가 없다.( )  무지의 진정한 특징은, 허영과 자만과 교만이다.(새뮤얼 버틀러 - 영국 작가:1835~1902)  무지함을 두려워 말라. 거짓 지식을 두려워하라.(파스칼)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한 미래에의 관념이, 미래 그 자체보다도 중요한 것으로서, 소유보다도 희망에, 현실보다도    꿈에 한층 더 많은 매력이 발견된다.(앙리 루이 베르그송 - Henri Louis Bergson) 문명은 그 자신이 배설하는 오물로 더럽혀 있다.(W R 잉)  문명인은 마차를 발명한 덕택으로 다리가 못쓰게 되었다.(에머슨)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면 절반은 해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케터링)  문학과 저널리즘의 차이는 저널리즘이 읽어서 재미없는 것이며, 문학이 읽히지 않는 점이다.    (오스카 핑걸 오플레어티윌스 와일드 - 영국 작가 : 1854~1900)  문학의 목적은 인생의 목적과 마찬가지로 不定(부정)이다.(폴 발레리 - 프랑스 시인 : 1871-1945)  문학이나 예술면에서 실패한 사람이 평론가이다.(벤자민 디즈레일리 - 영국 정치가:1804~1881)  문화는 그 자체의 분석을 시작하기 이전에 만개한다.(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 Alfred North Whitehead)  문화를 역행시킬 수는 없다. 이 세계에 청년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집센 데가 있지만 주어진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것이다.(헬렌 애덤스 켈러 - 미국 사회사업가:1880~1968)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먹을 것이다.    (한마리의 생선을 주면 한끼의 식량이 되지만, 고기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의 식량이 된다.)    (유태경전인 - 탈무드) - [ 상세 설명 ]  미(美)는 내부의 생명으로부터 나오는 빛이다.(켈러)  미(美)는 자연의 동전, 모아 두어서는 안되며 유통되어야 한다. 그것의 좋은 점은 서로 나누어 갖는 기쁨이다.    (존 밀턴 - 영국 시인 : 1608-1674)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긴다.(성경)  미소, 악수, 혹은 호의로운 눈총 등 무엇인가를 남에게 동냥할 필요가 없는 인간은 없다.(댈버그)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모험에 만족해야 한다.(지드)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는 아니다. 그것은 지칠줄 모르는 노력, 계속적인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다.(존 피츠제럴드 케네디 - 미국 대통령:1917~1963)  민주주의는 정지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이다.(루즈벨트)  민주주의의 모든 질병은 더 많은 민주주의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알프레드 스미스)  민중만큼 정해지지 않은 것은 없고, 여론만큼 애매한 것은 없고, 선거인 전체 의견만큼 허위적인 없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Marcus Tullius Cicero)  바다의 물이 마르면 나중에는 밑이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도 마음은 알지 못한다.(명심보감)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풀러)  바커스가 불을 부채질할 때에는 비너스는 화롯가에 앉아 있다.(이 언)  바커스는 포세이돈보다 더 많이 쓸데없이 인간을 익사시켰다.(개리벌지)  바탕이 성실한 사람은 항상 편안하고 이익을 보지만 방탕하고 사나운 자는 언제나 위태롭고 해를 입는다.    (荀子 - 중국사상가 : BC298-238)  바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블레이크)  바쁜 사람은 눈물을 흘릴 시간이 없다.(바이런)  바쁠 때 자기 성품을 어지럽히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한가할 때에 심신을 맑게 닦아야 하고, 죽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모름지기 살아 있을 때에 만물의 진상을 간파해야 한다.(홍자성)  반드시 진리가 구체화할 필요는 없다. 진리가 우리의 정신속에 깃들이고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리하여    종소리처럼 힘세고 자비롭게 공기속에 울리기만 하면 충분하다.(요한 볼프강 폰 궤테)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될 때 받는 것은 청렴을 손상시키고 주어도 되고 주지 않아도 될 때 주는 것은 은혜를    손상시키며 죽어도 되고 죽지 않아도 될 때 죽는 것은 용기를 손상시키는 것이다.(맹자 - 중국의선비:BC373 ?~289 ?)  방황과 변화를 사랑한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바그너)  배가 고파서는 누구나가 애국자가 될 수 없다.(W C 브란)  배우라,비교하라,사실을 수입하라.(파플로프)  배우려는 욕구가 많은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많은 논의와 많은 저술, 많은 의견이 있을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의견은 형성중에 있는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존 밀턴 - 영국 시인:1608~1674)  배운 사람은 항상 자기 속에 재산이 있다.(필래드라스)  백년을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플랭클린)  백발이란 나이를 먹었다는 표시이지 지혜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  버들가지는 약하나 다른 재목을 묶는다.(하버트)  법은 도덕의 최소한.(옐리네크 - Jellinek)  벼슬 자리 없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벼슬에 올라 설 수 있을 만한 자기의 학식이나 능력에 대해 걱정하라.    또 남이 나를 몰라주는 것을 걱정 말고, 남들에게 알려질 만한 일을 하려고 애써라.(논어 이인편)  변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나쁜 계획이다.(푸볼릴리우스 시루스)  별을 따려고 손을 뻗는 사람은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제레미 벤담 - 영국 정치가 : 1748-1832)  보다 많은 것을 갖기보다는 적게 바라는 것을 선택하라.(토머스 켄피스)  보통 인간은 기회만 있으면 나쁜 짓을 하려고 든다.(아리스토텔레스)  본능적인 충동이 있었던 곳에는 자아가 있을 것이다.(지크문트 프로이트 -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봄이 무엇인지는 겨울이 되어 비로소 알 수 있다. 가장 뛰어난 5월의 노래는 爐邊(노변)에서 만들어 진다.    자유에 대한 사랑은 감옥의 꽃이다. 감옥에 있음으로써 비로소 자유의 가치를 안다.    (하인리히 하이네 - 독일 시인 : 1797-1856)  부귀를 누리는 사람들 주변에는 남들도 모여들고, 빈궁한 사람 곁에는 친척들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문선)  부는 해수 같아서 많이 마실 수록 목이 마르다.(쇼펜하워)  부당한 이득을 얻지말라, 그것은 손해와 같은 것이다.(헤시오도스)  부드러운 흙으로 만들어진 남자를 기쁘게 하는 편이 딱딱한 뼈로 만들어진 여자를 기쁘게 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유태 격언)  부를 멸시하는 사람은 매우 많다. 그러나 부를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 - Francois Ⅵ, duc de La Rochefoucauld)  부모를 왕위에 나아가게 한다해도 그 은혜는 다 갚지 못한다.(석가모니 - 인도 불교 창시자:BC565~485)  부유함이 문명을 낳지는 못하나, 문명은 부유함을 낳는다.(비처)  부자가 되는 가장 가까운 길은 부를 경영하는데 있다.(루시우스 아나에우스 세네카 - Lucius Annaeus Seneca)  부지런한 바보만큼 이웃을 괴롭히는 자는 없다.(H. 가이야)  부패한 사회에는 많은 법률이 있다.(사무엘 죤슨)  분노는 바보들의 가슴 속에서만 살아간다.(아인슈타인)  분별없고 능력도 없고, 또 사려도 없는 자에게는 등산만큼 위험한 것은 없 다.(C E 마슈즈)  불가능은 소심한 자의 환상이요, 비겁한 사람의 도피처이다.(나폴레옹)  불멸의 희망이 없이는 아무도 조국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치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 로마 정치가 : BC 106-43)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려준다.(아리스토텔레스)  불행이란 거의 언제나 인생에 대한 그릇된 해석의 표적이다.(몬테르랑)  비교는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필레몬)  비난은 사람이 유명하게 되었을때 대중에게 바치는 세금이다.(조너선 스위프트 - 영국 시인 : 1667-1745)  비록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스피노자)  비폭력이란 강력하고 정당한 무기로서 상처없이 잘라내며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어 준다.    비폭력은 치료의 검이다.(마틴 루터 킹 - 미국 흑인지도자:1929 ~ 1968)  빈부강약을 막론하고 일하지 않는자를 배척하라.(루소)  빈곤은 부정을 가르친다.(세네카)  빈곤은 재앙이 아니라 불편이다.(플로리오)  빈궁이란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에 있는 것이다.(에머슨)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가 많다.(용비어천가)  사건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그것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오토 폰 비스마르크)  사계절은 각각 계절이 오면 언제나 우리에게는 가장 좋다.(솔로)  사고는 수염과 같은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볼테르 - 프랑스 사상가 :1694~1778)  사나이 뜻을 세워 집을 나가면 공을 이루지 않고서는 살아서 돌아 오지 않으리.(매헌 윤봉길)  사나이의 애정은 자신이 육체적 만족을 취한 순간부터 급격히 떨어진다. 다른 여자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소유한 여인보다 많은 매력을 가진 듯이 생각되며 그는 변화를 추구한다. 그것과는 반대로 여인의 애정은 이    순간부터 증대한다.(쇼펜하워)  사람은 고생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디즈레일리)  사람은 결코 죽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직 삶을 생각하라. 이것이 참된 신앙이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 영국 정치가:1804~1881)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다.(필립스)  사람은 돈지갑이 가난해도, 정신적으로는 긍지를 가질 수 있다.(메이슨)  사람은 명예와 지위의 즐거움은 알면서도, 이름 없고 평범하게 지내는 참다운 즐거움은 알지 못한다.(채근담)  사람은 반드시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만 비로소 자기를 이겨낼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이겨낼 수 있어야     만 비로소 자신을 완성할 수 있다.(王陽明 - 중국 유학자:1472~1528)  사람은 사랑하도록 물건은 사용되도록 만들어졌다.(호위)  사람은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고 죽은미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다.(스펜서 - H. Spencer)  사람은 성실할수록 자신감을 얻게 된다. 성실할수록 태도가 안정되어 간다. 성실할수록 정신을 자각하게 된다.    성실할 때에만 자기가 엄연히 이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을 갖게 된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 Aurelius Augustinus)  사람은 아니오를 자꾸 반복하도록 강제하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이탈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빌헴름 니체 - Friendrichdh Nietzsche)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로 자라는 것이다.(보봐르)  사람은 입이 하나이고 귀가 둘이다.(유태인의 탈무드) - 심동은 (durimlover@hanmail.net) 님 문의. - [ 상세설명 ] 사람은 자기의 탓이 아닌 외부에서 일어난 죄악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분개하면서도 자기의 책임하에 있는    자기 자신이 저지른 죄악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분개하지도 않고 싸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블레즈 파스칼 - 프랑스수학자,사상가:1623~1662)  사람은 자기 일보다 남의 일을 더 잘 알고 더 잘 판단한다.(테린티우스)  사람은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법률상 자유 및 평등이다.(인권선언)  사람을 낚아 올리는 악마는 여러가지 맛있는 미끼를 보인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독일의 문호:1749~1832)  사람을 알려면 그의 지갑, 쾌락, 그리고 불평을 보라.(탈무드)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니체)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다. 한권의 책이다. 얼굴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오노레 드 발자크 - 프랑스 소설가:1799~1850)  사람의 잘못은 좀처럼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셰익스피어)  사람의 척도는 그가 불행을 얼마나 잘 이겨내는지에 달려있다.(프르다크)  사람의 천성과 직업이 맞을때 행복하다.(베이컨)  사람이 마음으로 부터 사랑하는 것은 단 한번 밖에 없다. 그것이 첫 사랑이다.     (라 브뤼예르 - 프랑스 모럴리스트:1645 ~ 1696)  사람이 잘 지껄일 수 있는 재간을 지니지 못했으면 침묵을 지킬줄 아는 지각이라도 있어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라 브뤼예르 - 프랑스 모럴리스트:1645~1696)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운명에 달려 있고,부유하고 가난한 것은 천 명에 달려 있으므로, 그 오는 것은 막아서는    안되고, 가는 것은 좇아 가서 안 된다는데, 그대는 무엇을 근심하랴.(백결선생)  사랑없이 사는 것은 정말로 사는 것이 아니다.(몰리에르)  사랑은 그 왕국을 무기없이 지배한다.(허버트)  사랑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 든다. 우리들은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것을 볼 뿐이다.(도브슨)  사랑은 늦게 올수록 격렬하다.(호리티우스)  사랑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이다.(니누바)  사랑은 사람을 치료한다. 사랑을 받은 사람,사랑을 주는 사람 할 것이 없이.(메닝거)  사랑은 사시사철의 열매이다.(테레사 수녀)  사랑은 상처입는 것을 계산하지 않는 것이다.(카미컬)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고 제일 오래 가는 것이다.(헨리)  사랑은 세상의 가장 신비한 에너지이다.(간디)  사랑은 시간을 가게 하고 시간은 사랑을 가게 한다.(프랑스 속담)  사랑은 아낌없이 뺏는 것이다.(아리시마 다케오)  사랑은 오직 한 종류밖에 없는데 모조품은 수천 가지이다.(리티머)  사랑은 인생의 소금이다.(셰필드)  사랑은 죽음보다도, 죽음의 공포보다도 강하다. 단지 사랑에 의해서만 인생은 주어지고 계속 진보한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 러시아 작가 : 1818-1883)  사랑은 증오보다 고귀하고, 이해는 분노보다 높으며, 평화는 전쟁보다 고귀하다.(헤르만 헤세 - 독일 시인:1877~1962)  사랑은 진실을 고백했을 때 깨어지는 수가 있고, 우정은 허위로 깨어진다.(보나르)  사랑은 타오르는 불길인 동시에 앞을 비추는 광명이라야 한다. 타오르는 사 랑은 흔하다. 그러나 불길이    꺼지면 무엇에 의지할 것인가. 사랑은 정신생 활 면에 던지는 빛이 있어야 한다.(바이어런)  사랑은 행복을 죽이고, 행복은 사랑을 죽인다.(스페인 명언)  사랑은 홍역과 같은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걸리면 걸릴수록 중증을 나타낸 다.(윌리암 제롤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인생은 아루런 쓸모가 없는 것이고 위험이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이너 마리아 릴케 - 독일 시인:1875~1926)  사랑을 세상에서 취하여 간다면 이곳은 무덤이다.(브로잉)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의 귀는 아무리 낮은 소리라도 다 알아듣는다.(세익 스피어)  사랑을 하다가 사랑을 잃은 편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테니슨)  사랑의 절대적 가치는 인생을 가치있게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의 생소하고 어려운 처지를 바람직하게 만든다.    사랑은 인생을 죽음에서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생의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다.    (조지 스미스 패튼, 아놀드 조지프 토인비 - Arnold Joseph Toynbee)  사랑이란 늙는다는 것을 모른다.(스땅달)  사랑이란 마치 열병같아서 자기 의사와는 관계없이 생겼다간 꺼진다.(스땅달)  사랑이란 어리석은 자의 지혜이며 賢人의 우행(愚行)이다.(사무엘 죤슨)  사랑이란 젊은 마음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즐거움이다. 다른 어떤 신앙이 연 애와 양립될 수 있을 것인가.(로망 로랑)  사랑하고 나서 잃는 것은 전혀 사랑하지 않았던 것보다 더 낫다.(테니슨)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은 태양을 양쪽에서 쪼이는 것과 같다.(비스코트)  사랑하고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헐벗)  사랑하는 가슴은 언제나 젊다.(틸리취)  사랑하는 이는 가난을 모른다.(불버)  사랑할 때는 마음의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자기가 확보한 이점도, 더한 욕망의 새로운 출발점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마르셀 프루스트 - 프랑스 작가 : 1871-1922)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생텍쥐베리)  사색을 할 동안 인간은 신과 같이 된다. 행동과 욕망에서는 환경의 노예일 뿐이다.(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    - 영국철학자:1872~1970)  사소한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적으로는 무질서한 것 같으면서도 모두가 공중에 향기를    내는 풀밭의 꽃들처럼 평온을 준다.(조르주 베르나노스 - Georges Bernanos)  사십세가 지나면 인간은 자신의 습관과 결혼해 버린다.(메러디즈)  사십세가 지난 인간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링컨)  사악은 언제나 미덕보다 더 쉽게.왜냐하면 사악은 모든 일에 지름길을 택하기 때문이다.(존스)  사업을 좌우하여라. 사업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된다.(플랭클린)  사자라 할지라도 파리들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해야 한다.(독일격언)  사치는 가난이나 마찬가지로 악덕이다.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카를 하인리히 마르크스 - Karl Heinrich Marx)  사회는 그 구성원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그 구성원들이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허버트 스펜서 - 영국의 철학자)  사회는 배와 같다. 누구나 키를 잡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헨리크 입센 - Henrik Hohan lbsen)  산 기계를 만들지 말고, 인간을 만들어라.(페스탈로찌)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른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이기려고 애를 쓰는 법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 프랑스 군인황제)  산다는 것은 서서히 태어나는 것이다.(생텍쥐베리)  '산에는 왜 오르는가 ?'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G 마로리)  산을 보려면 들로가서 우러러 보아야하고,들을 보려면 산에 올라 내려다 봐야 한다.(아키아벨리)  산을 옮기는 사람은 작은 돌멩이부터 옮긴다.(중국 속담)  산이 높다고 해서 귀한 것이 아니다. 나무가 있기 때문에 귀하다. 사람이 살 쪘다고 해서 귀한 것이 아니다.     지(知)가 있으므로 귀한 것이다.(러스킨)  산이 높을수록 풀은 낮다.(풀러)  산적(山賊)을 멸(滅)하기는 쉬워도 심중(心中)의 적을 멸하기는 어렵다.(왕양명 - 王陽明)  살아가는 기술이란 하나의 공격 목표를 골라 그리로 힘을 집중시키는 일이 다.(앙드레 모로아)  살아있는 동안 위대했던 사람은 죽은 뒤에는 두배나 위대해 진다.(토마스 칼라일 - 영국 비평가.역사가:1795~1881)  살아있는 실패작은 죽은 걸작보다 낫다.(버나드 쇼)  살아있는 인간이 죽은 사람보다 더 자선을 필요로 한다.(G 아놀드)  살아 있다는 습관이 붙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을 싫어한다. 죽음은 모든 고민을 제거시켜 주는데도.(T.브라운)  삶은 순간들의 연속이다. 한순간,한순간을 사는 것이 성공하는 것이다.(켄트)  삶은 죽음에서 생긴다. 보리가 싹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된다.(간디)  삶의 어두운 길을 인도하는 유일한 지팡이는 양심이다.(하이네)  상상력을 안 가진 정신은 망원경을 안 가진 천문대 같다.(헨리 포드 피처)  상식은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다.(볼테르)  새는 알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헤세)  새로운 구제책을 쓰지 않는 자는 새로운 재앙이 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시간은 가장 위대한 혁신자이기    때문이다.(프란시스 베이컨 - 영국 철학자)  새로운 진리가 낡은 오류보다도 위험하다는 법은 없다.(괴테)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소금이라면 희망과 꿈은 인생의 사탕이다. 꿈이 없다면 인생은 쓰다.(바론 리튼)  생각하는 기계를 고안해 낸 탓으로 인간은 기계에 복종해야 할 최후의 한 걸음을 내디디었다.(망포드)  생명의 자랑은 늘 신선하고 기운찬 점에 있다. 사람은 일생을 통하여 완성했다는 순간은 없는 것이다.      (알랭 - 프랑스 철학자:1868~1951)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은 항상 입을 놀린다.(호머)  생명이 있는 한, 사람은 무엇인가 바랄 수 있다.(세네카)  생활은 전부 다음 둘로서 성립되고 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 할 수 있 지만 하고 싶지 않다.(괴테)  생활의 기술이란 우리의 환경에 대한 계속적인 적응을 의미한다.(오카쿠라 카쿠조)  생활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와일드)  서리가 오기 시작하면 반드시 굳은 얼음이 얼고야 마는 것은 필연의 이치인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한 가지 두 가지     일이 외국에 침식되니, 계속 이와 같이 나간다면 몇 날 몇 달이 못가서 전국의 권한 이 모두 외국에 모두 양도되어     태아(太阿;보검의 이름)의 칼자루를 거꾸로 쥐게 되는 후회를 남기게 될지 어찌 알겠습니까 ?(월남 이 상재) 서투른 의사소통은 훌륭한 예절을 망쳐버린다.(메난드로스)  서툰 의사는 한번에 한 사람을 해치지만, 서툰교사는 130명을 해친다.(보이어)  선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소로)  선은 오직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일이다.(보봐르)  선을 행하는 데는 나중이라는 말이 필요없다.(괴테)  선을 행함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악을 억제하려면 보다 더 노력이 필 요하다.(톨스토이)  선이란 어떤 것인가를 모르는 경우라도, 사람들은 이것을 자신의 내부에 保 持하고 있다.(공자)  선한 사람이 되라, 그러면 세상은 선한 세상이 될 것이다.(흰두교 속담)  선한 의도의 자각은 불행할 때 가장 큰 위로가 된다.(마르쿠스 톨리우스 키케로 - 로마 정치가:BC106~43)  선행을 하고도 나쁜 말을 듣는 사람은 행복하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로마 황제:121~180)  성경은 신앙의 책이요, 교회의 책이요, 도덕의 책이요, 종교의 책이요, 신으로부터 특별히 보내진 묵시의    책이지만 인간 자신의 개인적 책임, 인간 자신의 존엄성, 동포와의 평등을 가르치는 책이기도 하다.     (대니얼 웹스터 - 미국 정치가: 1782~1852)  성공으로 통하는 길은 자신의 남편을 믿고 있는 여자들로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쇼)  성공은 결과이지 목적은 아니다.(플로베르)  성공은 사람의 나쁜 성격을 이끌어 내고 실패는 좋은 성격을 길러준다.(힐티 - 스위스 철학자:1833~1909)  성공의 비결은 목적을 향해 시종일관하는 것이다.(디즈레일리)  성공의 재능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것, 그리고 명성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일을 무엇이나 잘 해내는      일에 불과하다.(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미국 시인:1807~1882)  성공적인 결혼이란 매일같이 개축해야 하는 건물과 같은 것이다.(모로아)  성공하는 사람들이란 자기가 바라는 환경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가 만들면 된다.    (조지 버너드 쇼 - George Bernard Shaw)  성실이야말로 도덕의 핵심이다.(토머스 헉슬리)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위대한 것들을 생산할 수가 없다.(제임스 럿셀 로우웰)  성인이 정치를 하는 근거가 되는 道(도)에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익이요, 둘째는 위세요, 셋째는 명분이다.    이익이란 민심을 얻는 근거가 되고, 위세란 법령을 시행할 근거가 되며, 명분이란 상하가 따라야 할 근거가 된다.(韓非子)  세계는 한권의 책이며, 여행하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이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 로마 철학자:354~430)  세계의 역사는 세계의 심판이다.(실러아)  세계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이 꿈을 꿀 수 있도록 땀을 흘리고 신음해야 한다.(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미국의 시인)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내책으로 알아도 좋고 나의 책을 알아도 좋다.(미셸 에컴 드 몽테뉴 - 프랑스사상가:1533~159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물론 세상 그 자체이다.(스티븐슨)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하면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의 주인이 되는가를 아는 일이다.(미셸 에켐 드 몽테뉴 - Michel Eyquem de Montaigne)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하는 것이다.(알랭 - 프랑스 철학자)  세상이 당신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게 주어라.(헨리포드)  소년기의 이상주의 속에서야말로 인간에게 진리가 인식되는 것이며, 소년기의 이상주의야말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富다.(알베르트 슈바이처 - 독일 철학자,의사:1875~1965)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클라크 - Clark)  소비된 시간은 존재하고 이용된 시간은 생명이다.(영)  소심하고 용기가 없는 인간에 있어서는 일체의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가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인 것이다.(스코트)  소위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생활의 기쁨이란 동물적인 기쁨에 지나지 않는 다.(체포크)  소유물의 부족은 개선할 수 있으나 영혼의 가난은 해결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몽테뉴)  소인은 특별한 것에 관심이 있고, 위인은 평범한 것에 관심이 있다.(허버트)  소인의 학문은 귀로 들어오고, 입으로 나간다.(순자)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성경 잠언)  쇠가 달아 있는 동안에 쳐라.(앗다에우스)  수많은 여인의 정을 모은다 해도 내가슴에 타는 우정의 불에는 미치지 못한다. 언제나 이 가슴에 꺼지는 일이 없이 내 가슴은 따뜻한 때에 물결친다.(바이런 - 영국 시인:1788~1824)  수치는 한때 어리석었다는 경험에 있지 않고, 그 어리석음을 곧 버리지 못함에 있다.(호라티우스 - 로마의 시인 : BC 65 ~ BC 8 - Quintus Hoatius Flaccus)  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인생을 지배한다.(에센 바하)  순진함과 모든 완전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들이 끊이없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세계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으로 변했을까.(존 러스킨 - 영국 비평가 : 1819~1900)  술과 여자와 노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일생동안 어리석은 자로 남는다.(마르틴 루터 - 독일 종교개혁가:1483~ 1546)  술은 강하다. 왕은 더 강하다. 여자는 한층 더 강하다. 그러나 진리는 이보다도 한층 더 강하다.(마르틴 루터 - 독일 종교개혁가:1483~1546)  술은 인격을 비춰주는 거울이다.(아르케시우스)  술이 빚은 우정은 술처럼 하룻밤밖에 가지 못한다.(F.V.로가우)  술이 생각해 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떠들어댈 뿐이다.(쉴러)  쉬워 보이는 일도 해보면 어렵다. 못할 것 같은 일도 시작해 놓으면 이루어진다. 쉽다고 얕볼 것이 아니고,    어렵다고 팔짱을 끼고 있을 것이 아니다. 쉬운 일도 신중히 하고 곤란한 일도 겁내지 말고 해보아야 한다.(채근담)  스스로 돌아봐서 잘못이 없다면 천만인이 가로막아도 나는 가리라.(맹자)  스승은 영원히 영향을 준다. 스승은 자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을 결코 말할 수 없다.    (핸리 브룩스 애덤스 - 미국역사가:1838~1918)  슬프도다 ! 부모는 나를 낳았기 때문에 평생 고생만 했다.(시경)  슬픈 곡조로 나에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롱 펠로)  슬픔에서 해방된 인생을 살고 싶으면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마치 이미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라.    (에픽테토스 - 그리스 철학자 : 55? -135?)  슬픔은 현자의 교사임에 틀림없이 없다. 왜냐하면 슬픔은 지식이므로.(바 이어런)  슬픔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성서)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블레즈 파스칼 - 프랑스 수학자,사상가:1623~1662)  습관은 제 2 의 천성으로 제 1 의 천성을 파괴한다.(파스칼)  습관의 쇠사슬은 거의 느끼지 못하만큼 가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끊을 수 없을 정도로 이미 굳고 단단해져    있다.(린든 베인스 존슨 - 미국 정치가 )  습관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게 만든다.(도스토예프스키)  승리는 목적이 아니다.목적에 이르는 하나의 단계이며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목표를 잃으면 승리도     공허하게 된다.(자와할루 네루 인도 초대 수상)  시간은 말로써 나타낼 수 없을 만큼 멋진 만물의 소재이다.(아놀드 버넷)  시간은 언제까지든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짐멜)  시간은 우정을 강하게 만들고 사랑은 약하게 만든다.(라 브르예르)  시간을 선택하는 것은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다.(베이컨)  시간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하루를 사흘로 통용한다.(영국 속담)  시간을 잘 맞춘 침묵은 말보다 도 좋은 웅변이다.(터퍼)  시간이 덜어주거나 부드럽게 해주지 않는 슬픔이란 하나도 없다.(키케로)  시간이 말하는 것을 잘 들어라. 시간은 가장 현명한 법률고문이다.(페리클레스 - Pericles)  시기와 질투는 언제나 남을 쏘려다가 자신을 쏜다.(맹자)  시란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며, 인격의 표현이 아니라 인격으로부터의 탈출이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 영국 시인 : 1888-1965)  시란 강력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그것은 고요한 가운데 회상되는 감정에서부터 솟아난다.    (윌리엄 워즈워스 - 영국 시인:1770~ 1850)  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바이런)  시민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멋지게 돈을 긁어 모으는 재능이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 러시아 작가:1821 ~ 1881)  시인이란, 그 마음 속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고뇌를 감추고 있으면서,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서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 입술을 가지고 있는 불행한 사람이다.(쇠렌 오뷔 키에르케고르 - 덴마크 철학자:1813~1855)  시종일관하는 자는 운명을 믿고, 변덕 부리는 자는 요행을 믿는다.(디즈레일리)  식욕없는 식사는 건강에 해롭듯이, 의욕이 동반되지 않은 공부는 기억을 해친다.(레오나르도 다빈치)  신기한 말을 하는 것이 귀함이 아니라 실행함이 귀하다.(이태백)  신념은 연애와 같은 것이어서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쇼펜하우어)  신념을 갖지 않는 한 남에게 신념을 줄 수는 없다.(아놀드)  신뢰는 거울의 유리와 같다. 한 번 금이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 않는다.(앙리 프레데리크 아미엘       - 스위스 철학자:1821~1881)  신사를 만드는 것은 옷이 아니다.(영국 속담)  신앙은 미신과는 다르다. 신앙을 굳게 지니고도 미신에까지 미친다면 그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행동이다.(파스칼) 신앙이 존재하는 곳에 신은 존재한다.(세르반테스)  신은 괴로워한다. 신은 싸운다.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또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왜냐하면 그는    '생명'이며, 어둠 속에 떨어져 확대되어 어둠을 삼키는 한방울 빛이기 때문이다.(로맹 롤랑 - 프랑스 작가 : 1866-1944)  신은 너로 하여금 신을 사랑하도록 만든 것이지, 신을 이해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다.(볼테르)  신은 도처에 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들을 만들었다.(유태 격언)  신은 인간의 지혜를 깊게한다. 신은 무엇에 의해서 인간의 지혜를 심화시키는가. 슬픔에 의해서다. 인간이 도망치고      숨으려고 노력하는 슬픔에 의해서이다.(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리 - Nikolay Vasilyevich Gogol)  신의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엔 신의가 없다. 착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않고, 말에 능한 사람은    착하지 않다.(노자 - 중국의 사상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 분명히 인간은 육체로 보면 짐승들과 같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의 영혼이 신의 것과 같지 않다면 인간은 비천한 피조물이다.(프란시스 베이컨 - 영국 철학자:1561~1626)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포이에르 바하)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 교만한 까닭이다. 성공한 사람이 그 성공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역시 교만한 까닭이다.(석가모니)  쓰고 단것은 외부에서 생기고 어려운 것은 내부에서 자기자신의 노력으로부터 생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Albert Einstein)  쓴 맛을 보기 전에 단맛을 보아서는 안된다.(고울딤 헴)      쓸쓸한 마음으로 과거를 되돌아 보지 말라. 그것은 두번 다시 오지 않으니까 빈틈없이 현재를 이용하라. 그것을 할    사람은 곧 그대다. 그림자와 같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고 늠름하게.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 - 미국시인:1807~1882)   
  1.인생은 언제나 스스로 부딪혀 경험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더 큰 영관을 안겨준다.(스스로 알을 깨면 한마리의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주면 계란후라이가 된다.)-J.허슬러 2.실패는 잊어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허버트 개서 3.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헨리 포드 3.하늘은 시련과 행운을 반드시 같이 준다. 시련에 오래도록 아파하고 있다면 행운의 포장을 아직 뜯지 못했을 뿐이다.-박찬호 4.일찍 책장을 덮지 말라. 삶의 다음 페이지에서 또 다른 멋진 나를 발견 할테니....-시스니셀던 5.누구나 마음속에 생각의 보석을 지니고 있다. 다만 캐내지 않아 잠들어 있을 뿐이다.-이어령 6.웅ㅅ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참을 수 있는 것으로, 나아가 희망적인것으로 바꾸어준다.-밥호프 7.마음속에 행복한 기대를 안고 보낸 시간이 성공을 이룬 시간보다 더 즐거운 법이다.-올리버 골드 스미스 8.내일에는 두가지 자루가 있다. 불안의 자루와 믿음의 자루. 우리는 둘중 하나를 잡아야한다.-헨리 워드 비처 9.운명을 틀을 선택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하지만 그안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는 우레에게 달려있다.-함마르셀드 10.확신을 가지고 할수 있는것은 대단히 적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없다. 11.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다.-사르트르 12.공포를 없애는 길은 단 하나다. 수수께끼같은 공포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페터 회 13.용기를 내라.고통은 아주 잠시동안만 정점에 머무른다.-아리스토텔레스 14.우리는 얻는 것으로 생활을 이루고 주는 것으로 인생을 이룬다.-캘빈 쿨리지 15.지식만으로는 사람으로 성장 할 수 없다. 사람은 마음이 성장해야 한다.-조셉 파커 16.세상의 어려운 일은 언제나 쉬운데서 일어나고, 큰일은 언제나 작은데서 시작된다.-노자 17.몸은 우리가 어무르는 곳이고, 영혼은 우리가 무엇이냐 하는 것ㄱ이다.-세실 박스터 18.위대함을 흉내내지 말라. 가장 자기다운 모스으로 기꺼이 받아 들여라.-사무엘 콜리 19.분별력은 겸손함을 갖출 때 두배의 빛을 발한다.-윌리엄 펜. 20.해가 뜨지 않는 날은 결코 없다.-셀이아 박스터 21.오늘 계란 하나를 가지는 것보다 내일 암탉 한마리를 가지는 게 낫다.-플러 22.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음으로써 충실한 사람이 된다.-아우구스티누스 23.행복해지고 싶다면 모든 사람의 행복을 빌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래프 톨스토이 24.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래프 톨스토이 25.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었다면 당신의 사랑은 이미 보답을 받은것이나 다름없다.-래프 톨스토이 26.나무는 제손으로 가지를 꺽지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제 미움으로 가까운 이들을 베어버린다.-래프 톨스토이 27.살아있는 한 부지런히 배우라. 세월이 지혜를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지 말라.-솔론 28.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라. 내일 무엇이 핑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이 좋은것이다.-래프 톨스토이 29.싱느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욕구를 심어두었다.-래프 톨스토이 30.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한다.-법정스님 31.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것을 갖지 않는 다는 뜻이다.-법정스님 32.진실한 용기는 두려움과 대담함 사이에서 나온다.-미겔 데 세르반 테스 33.고통은 인간의 위대한 교사다. 고통의 숨결 속에서 영혼이 발육된다.-바흐 34.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은 외부세계와의 충격을 방지하는 완충재역할을 한다.-질란디아 35.삶은 환경에 도전하는 성장이다.-루터 버뱅크 36.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토마스 칼라일 37.하나의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윌리엄 블레이크 38.인내없는 열정은 광기에 불과하다.-토마스 홉스 39.균형잡힌 시선을 지닌자는 가장 매혹적인 걸음걸이로 자신의 생을 거닌다.-레이첼 카슨 40.인생은 언제나 스스로 부팆혀 경험하고 도전하는 사람에게 더 큰 영광을 안겨준다.-J.허슬러 41.인간은 자신이 얼만큼 마음 먹느냐에 따라 행복해진다.-아브라함링컨 42.인생은 진정한 부메랑과 같다.당신이 준 만큼 되돌아온다.-데일카네기 43.오늘을 즐겨라!-까르테 디엠 44.가치있는 것 대부분은 부딪혀야 얻을 수 있다.-헨리 나우웬 45.내친구는 완벽하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서 우리는 너무나 잘맞는다.-포프 46.큰 꿈을 가져라. 너의 행동을 낮게 하고, 너의 희망을 높게 하라.-조지 허버트 47.모든것을 잊어버리는 도취속에 있는것이 연인이요, 모든것을 아는 환희속에 있는 것은 친구이다.-보나아르 48.겁준다고 겁먹지 말되 겁없이 살지 마라. 칭찬한다고 자존하지 말되 자존없이 살지 마라.-아웅산수치 49.네 인셍을 네가 주도하라. 네 인생의 열매는 네가 맺은 것이라야 그맛이 황홀하다.-스프링 벅 50.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에머슨 51.의지, 노력, 기다림은 성공의 주춧돌이다.-L.파스퇴르 52.친구 하나를 얻는데는 오래 걸리지만 잃는데는 잠시이다.-릴리 53.생명이 지속되는 한 희망이 있다.-세르반테스 54.오늘하루는 두개의 내일과 같은 가치가 있다.-F.퀄스 55.남을 조금씩만 신뢰하면 평생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개스켈 56.자기자신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면, 무엇이건 못 해 낼게 없다고 합니다. 당신을 믿으세요-작자미상 57.역사는 살아 있는 기억을 미래로 싣고 가는 배이다.-S.스펜더 58.참다운 열정이란 꽃과 같아서 그것이 피어난 땅이 메마른 곳일수록 한층 더 아름답다.-발자크 59.마음은 팔수도 살수도 없는 것읻지만 줄수있는 보물이다.-플로베르 60.인생의 승자는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것이며, 그렇게 된다는 입장에서 끊임없이 생각한다.-작자미상 61.착한 말은 착한 마음에서 착한 마음은 자비로운 마음에서 생겨나 능히 하늘을 움직인다.-정법안장 62.실수를 범했을때 뒤돌아 보지말라.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미래는 아직 네손에 달려있다.-휴화이트 63.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화엄경 64.행복이란 하늘이 파랗다는 걸 발견하는 것 만큼이나 쉬운일이다.-요슈타인가이더 65.기회가 문을 두드리지 않거든 물을 새로 만들어라-밀턴벌 66.넘어질 때마다 무언가를 주워라.-오스왈드에이버리 67.자신을 사랑하는것이야말로 평생 지속되는 로맨스다.-오스카 와일드 68.리더가 된다는 것은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이다.-허버트 험프리 69.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작자미상 70.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스파이더맨1中 스파이더맨의 대사 71.지나온길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가야할길을 바로 갈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 줍니다.-작자미상 72.노력의 대가는 이유없이 사라지지 않는다.-작자미상 73.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작자미상 74.성공하는 사람은 실패하는 사람이 하지 않을 일을 기꺼이 하는 사람이다.-우나무노 75.용서없는 사랑은 없고 사랑 없는 용서는 없다.-브라이언트맥길 76.헤매는 하루하루가 인생이다. 시간은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괴테 77.인간이 위대한 것은 좌절하고 무너져도 다시 꿈을 꿀수 있기 때문이다.-작자미상 78.말은 영혼의 거울이다. 인간은 자신이 말하는 그대로다.-프블릴리우스 시루스 79.실패는 잊어라. 그러나 그것이 준 교훈은 절대 잊으면 안 된다.-허버트 개서 80.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없다고 생각하면 할수 없다.-헨리포드 81.웃음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겨울을 몰아내는 태양과 같다.-빅토르위고 82.우리는 함께 갈때 훨씬 빨리 갈 수 있다.-마틴 루터 킹 83.마음이 유쾌하면 종일 걸을수 있고, 마음이 괴로우면 십리길도 지친다.-셰익스피어 84.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폴 발레리 85.로마는 하루밤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작자미상 86.생각을 바꾸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빠뀌면 인생이 달라진다.-작자미상 87.뿌린만큼 거둔다.-작자미상 88.구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다.-작자미상 89.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작자미상 90.웃음 소리나는 집은 행복이 와서 들여다 보고, 고함소리 나는 집은 불행이 와서 들여다 본다.-작자미상 91.듯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작자미상 92.실패는 성공을 위한 리허설-작자미상 93.소년이여, 야망을 품어라!!-작자미상 94.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자.-작자미상 95.능력은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작자미상 96.노력은 굼을 실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작자미상 97.너는 왜 평범하게 노력하는가. 시시하게 살길 원치 않으면서!-작자미상 98.현재 이 순간을 즐겨라.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니.-작자미상 99.빛은 항상 어둠의 끝에 있다. 당신의 빛도 지금 당신이 서있는 어둠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100.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작자미상     ▶ 나갔던 며느리 효도한다 시집살이 싫다고 나갔던 며느리가 돌아와 시부모께 효도를 한다. 즉 좋지 않게 여겼던 사람이 뜻밖에 잘한다.  ▶ 나귀는 샌님만 섬긴다 하찮은 동물도 지조를 지킨다.  ▶ 나귀에 짐지고 타나, 싣고 타나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결과는 같다.  ▶ 나그네 모양 보아 표주박에 밥을 담고, 주인의 모양 보아 손으로 밥 먹는다 사람을 대접할 때, 그 차림새 및 생김새를 보아 응대한다  ▶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 저는 잘못하면서도 남만 잘하라는 사람을 비웃는 말  ▶ 나는 새도 깃을 쳐야 날아간다 무슨 일을 하든지 준비가 있어야 한다.  순서를 밟아 나가야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닫는 짐승도 못 가게 한다 권세가 등등하여 모든일을 마음대로 함. ▶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날아 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권세가 등등하다.  ▶ 나도 덩더쿵, 너도 덩더쿵 타협하지 않고 서로 버티고 있다.  ▶ 나루 건너 배 타기 1.일의 순서가 뒤바뀌었다.  2.가까운 데 있는 것을 버리고 먼 데 것을 취한다.  ▶ 나룻이 석 자라도 먹어야 샌님 제아무리 점잖은 샌님이라도 먹지 않을 수 없다. 곧 먹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  ▶ 나 많은 말이 콩 마다할까 무엇을 매우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마다할 때 하는 말  ▶ 나 먹자니 싫고, 개 주자니 아깝다 내게 필요치 않은 것도 막상 남에게 주자니 아깝다.  ▶ 나무 거울 모양은 괜찮으나 쓸모없는 것. ▶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 사람의 덕을 본다 큰 나무 밑에 있는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하나, 큰 사람 밑에 있으면 배우는 것이 많고 그 덕을 보게 된다. ▶ 나물밭에 똥 한 번 눈 개는 저개 저개 한다. 한 번 잘못을 저지르면 항상 의심과 지탄을 받게 된다.  언제나 따라 다니고 같이 끼어 다닌다는 뜻.  ▶ 나쁜 풀은 빨리 자란다 별로 긴요하지 아니한 것이 먼저 나선다는 말. ▶ 나쁜 일은 천 리 밖에 난다 나쁜 일에 대한 소문은 먼 데까지 빨리 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나무에 오르라 해놓고 흔드는 격 처음에는 남을 달콤한 말로 꾀어서 생각해주는 체하다가 결국은 위험하거나 불행한 처지에 몰아넣는 것과 같다는 뜻.  ▶ 나무 잘 오르는 놈 떨어지고, 헤엄 잘 치는 놈 빠져 죽는다 자기가 가진 재주 때문에 실패하게 된다.  ▶ 나쁜 말은 지붕마루로부터 울려 나간다 나쁜 일에 대한 소문은 아무리 감추려 하여도 빨리 퍼져 나감을 이르는 말.  ▶ 나 부를 노래를 사돈집에서 부른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을 상대편에서 먼저 할 때 쓰이는 말  ▶ 나쁜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좋게 된다 사람이 늙으면 나쁜 마음이 얼마쯤은 사라지게 된다.  ▶ 나쁜 소문은 빨리 퍼진다 나쁜 일일수록 숨기려해도 세상에 널리 퍼진다.  ▶ 나이 이길 장사 없다 튼튼하던 사람도 나이 들면 쇠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 나이 젊은 딸이 먼저 시집간다 1.나이 적은 사람이 시집가기 쉽다.  2.젊은 사람이 사회에 잘 쓰인다.  ▶ 나중 꿀 한 식기 먹기보다 당장 엿 한 가락이 더 달다 먼 앞날의 큰 희망보다는 눈 앞의 작은 이익이 더 요긴하다  ▶ 나중 꿀 한 식기 먹으려고 당장에 엿 한 가락 안 먹을까 훗날을 믿고 막연히 기다릴 수는 없다는 말.  ▶ 나중에야 삼수 갑산을 갈지라도 자신에게 닥쳐올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무엇을 단행할 때 이르는 말 ▶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 후배가 선배보다 낫다  ▶ 나한에도 모래 먹는 나한이 있다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 중에도 공양을 받지 못하고, 모래만 먹는 나한이 있다. 곧 지위가 높고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도 고생하는 이가 있다.  ▶ 낙락장송도 근본은 종자 아무리 큰 것도 캐어보면 처음에는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 한 가지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드러낸 말.  ▶ 낙태한 고양이 상 잔뜩 찌푸린 얼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난리 난 해 과거했다 1.애써 한 일이 보람이 없다.  2.자랑은 하지만 흔적이 없어 인정하지 못한다고 핀잔주는 말  ▶ 난봉 자식이 마음 잡아야 사흘 본성이 그른 자는 아무리 마음을 바로잡는대야 오래가지 못한다  ▶ 난쟁이 교자꾼 참여하듯 자기 처지나 힘은 돌아보지 않고 제가 못 해낼 엉뚱한 일에 참여한다.  ▶ 날개 부러진 매 기운을 쓰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음을 이르는 말  ▶ 날랜 장수 목 베는 칼은 있어도 윤기(倫紀 ) 베는 칼은 없다 다른 관계는 다 끊어도 인륜 관계는 끊을 수 없다.  ▶ 날면 기는 것이 능하지 못하다 여러가지를 골고루 다 잘하기는 힘들다.  ▶ 날 샌 올빼미 신세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처지  ▶ 날 잡은 놈이 자루 잡은 놈을 당하랴 월등하게 유리한 조건에 있는 사람과는 경쟁이 안된다.  ▶ 남 눈 똥에 주저앉고, 애매한 두꺼비 떡돌에 치인다 자기 잘못 없이 남의 잘못으로 화를 당한다.  ▶ 남 떡 먹는데 팥고물 떨어지는 걱정한다. 자기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걱정한다.  ▶ 남산골 샌님이 신청안 고지기 시킬 재주는 없어도 뗄 재주 있다 취직시킬 수는 없어도 못하게 할 수는 있다.  즉,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해칠 수는 있다.  *신청안 - 옛날 나라에 바치던 진상품을 관장하던 '선혜청'의 와전  *고지기 - 창고 관리를 맡은 하급관리  ▶ 남산골 샌님이 역적 바라듯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늘 불만을 갖고 엉뚱한 일을 바란다.  ▶ 남의 다리 긁는다 자기를 위해서 한다는 일이 남을 위해서 한 결과가 되었다는 뜻  남의 일을 제 일로 알고 수고한다.  ▶ 남의 집 금송아지가 우리 집 송아지만 못하다 좋은 남의 물건보다 나쁜 내 물건이 실속있다.  ▶ 남의 친기도 우기겠다. 남의 아버지 기일이 틀렸다고 우긴다는 말.  확실히 아는 사람을 보고 자기가 잘 모르고도 도리어 고집을 세운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 ▶ 남생이 등에 활쏘기 1.매우 어려운 일을 하려 함  2.남에게 해를 입히려 하나 오히려 역부족임  ▶ 남을 물에 넣으려면 제가 먼저 물에 들어간다 남을 해치려고 하면 제가 먼저 그만큼의 어려움을 당하고 나서야 할 수 있다.  ▶ 남의 고기 한 점 먹고, 내 고기 열 점 준다 적은 이득을 보려다가 더 큰 손해를 본다.  ▶ 남의 고기 한 점이 내 고기 열점보다 나아 보인다 자기 것은 두고 욕심 사납게 남의 것을 공연히 탐낸다.  남의 것은 항상 제것보다 좋아 보인다.  ▶ 남의 눈 속의 티만 보지 말고, 자기 눈 속의 대들보를 보라 남의 작은 결점만 찾지 말고, 자신의 큰 허물을 돌아보라는 뜻  ▶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는 피가 난다 남에게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화를 받게 된다.  ▶ 남의 눈에서 피 내려면 내 눈에서 고름이 나야 한다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 반드시 저는 그보다 더한 벌을 받게 된다.  ▶ 남의 떡에 설 쇤다 남의 힘을 입어서 그 덕택으로 형편 좋게 일을 이룬다는 말  ▶ 남의 말 다 들으면 목에 칼 벗을 날 없다 남의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한다.  ▶ 남의 말이라면 쌍지팡이 짚고 나선다 남의 일이나 잘못을 말하기 좋아한다.  ▶ 남의 발에 감발한다 일껏 한 일이 결국 남 좋은 일 했다.  ▶ 남의 밥 보고 장 떠먹는다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남의 것을 바란다.  ▶ 남의 밥에 든 콩이 굵어 보인다. 남의 것은 항상 제 것보다 좋게 보인다.  ▶ 남의 말하기는 식은 죽 먹기 남의 일이나 잘못을 말하기는 매우 쉽다.  ▶ 남의 버선 신긴다 일껏 한 일이 결국 남 좋은 일이 되어 버렸다  ▶ 남의 사정 보다가 갈보 난다 남의 사정을 보고 동정하다가 제 몸을 망친다. 곧 남의 사정도 분별하여 보아 주어야 한다는 말  ▶ 남의 속에 든 글도 배운다 남의 속에 든 것도 배우는데, 직접 보고 배우는 것이야 못할 것 없지 않느냐는 말  ▶ 남의 싸움에 칼 빼기 자기에게 관계없는 일에 흥분하고 나선다  ▶ 남의 염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 남의 큰 걱정이나 위험도 자기와 관계없는 일이면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염병 - 장티푸스)  ▶ 남의 옷 얻어 입으면 걸레감만 남고, 남의 서방 얻어 가면 송장치레만 한다. 남의 것을 얻어쓰면 오래 쓰지 못한다.  ▶ 남의 일은 오뉴월에도 손이 시리다 이득이 없는 남의 잃은 하기 싫어한다는 말  ▶ 남의 일을 보아 주려거든 삼 년내 보아 줘라 남을 도와 주려거든 끝까지 철저하게 도와줘라.  ▶ 남의 일이라면 쌍지팡이 짚고 나선다 걸핏하면 남의 일에 참견을 잘 한다.
199    비속어의 例 댓글:  조회:6635  추천:0  2015-05-03
비속어의 례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비속어는 곧 '상스러운 말'입니다.  硬音(경음;된소리)이나 激音(격음;거센소리)이 많이 들어갑니다.  1. 흔히 '씨팔'이라고 하는 욕의 예를 들면 '씨발' '씨부럴' '쓰벌' 등등 발음과  표기의 변화가 아주 많은데 어원은 '씹 + 할'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본래는 '개와 씹을 할 놈'의 말이었다가 앞뒤 생략해서 중간만 씁니다.  2. '육시럴'이란 말 또한 비슷합니다.  본래는 '戮屍(육시)를 할 놈'의 말이었다가 줄어든 거지요.  육시라면 부관참시나 마찬가지로 아주 욕된 죽음을 뜻합니다.  시체가 된 것을 또 죽인다는 뜻입니다.  3. '뽀록'이란 말이 있습니다.  '뽀로꾸'라고 하면 영어 fluke에서 온 말로 '엉터리'라는 뜻이며 그 뜻대로 씁니다.  그런데 '뽀록나다'라고 하면 들통났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暴露(폭로)가 변한 말로 봅니다.  4. '조까'라는 말은 '좆까'라고도 씁니다.  좆을 까라는 말인데, 지금은 포경수술이 보편적이지만 본래 우리나라는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 해서 신체의 일부라도 훼손하는 것은 효가 아닌  것으로 쳤습니다. 따라서 좆을 까라는 말은 불효를 하라는 말도 됩니다.  5. '니미럴'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너무나 흔한 욕으로 '니 에미와 할' 이 말의 준말입니다.  '너의 어머니와 **를 할 놈'의 뜻입니다.  곧 영어의 fuck you 또는 son of a bitch에 해당하고,  중국어의 王八蛋(왕빠단) 정도에 해당합니다.  이상 간단한 몇 예를 들었는데요, 은어나 비속어는 그 어원이 불분명한 것이 아주 많음을 참고해야 합니다.      추천해요0 xfile0363 1. 염병 : 전염병의 준말로 장티푸스, 열병이라고들 하지요. 응용작은 염병에 땀 못낼 놈. 2. 씨발 : 씹할이 좀 변한 말인데요. 풀네임은 제 어미랑 씹할 놈. 즉 제 어미와 성관계를 가질 녀석. 이런 뜻으로 주로 오랑캐들에게 썼다네요. - _-;; 어느 족인지는 모릅니다. 3. 좆 : 남자의 성기를 뜻하지요. :) 응용작은 좆같은놈, 좆같은 새끼 등이 있습니다. 4. 개새끼 : 뭐 달리 있나요. 개의 새끼, 즉 강아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죠. 5. 병신 : 몸이 좀 온전치 못한 사람을 뜻하지요. - _-;; 6. 애자 : 병신과 비슷합니다. 장애자의 준말. 7. 또라이 : 무식하다, 등신, 바보 이런 뜻입니다. 8. 촌년 : 촌스러운 여자를 뜻하지요. 촌놈은 촌스러운 남자. 9. 좆같다 : 남자 성기같다. - _-; 10. 눈깔 : 눈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죠. 11. 주디 : 입의 사투리랄까나;; 전 주디 주디 그랬습니다. 어릴적에... 12. 똘추 : 음.. 제가 듣기론 스모선수들이 너무 뚱뚱해서 스스로 엉덩일 못닦는다 하더이다. 그 스모 선수들이 볼일을 보고나서 똥꼬를 닦아주는 사람.. 이라죠. 13. 쪼다 : 바보랑 비슷합니다. 14. 십장생 : - _-웃찾사에서 나온뒤로 욕이 된듯... 원래 뜻은 오래 사는 열가지 생물입니다. 15. 개꼬치 : 개의 성기밖에 더있남유; 16. 씨부랄 : 나눠 보자면.. 여자의 성기와 남자의 성기네요. 17. 좆빠라 : 남자의 성기를 빨라... 는 뜻이겠죠. 18. 개년 : 개같은 여자. 욕하는 거죠 뭐. 19. 걸레 : 걸레가 더럽잖아요. 그러니까 뭐, 추잡하고 그런 사람. 그냥 욕하는 거죠. 20. 창년 : 왜 기생같은 사람들 있죠? 사창가나 유흥가에서 몸파는 여자들. 21. 쌍놈 : 한마디로 상놈, 상것, 즉 천한 신분의 사람을 말하죠. 22. 개또라이 : 개와 또라이가 합쳐진겁니다. 23. 개방구 : 개가 뀌는 방귀라... 뭐 그정도? 24. 지랄 : 시끄럽게 나불나불, 지랄이 원래는 간질입니다. 지랄병은 간질병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고요. 뭐 발작하듯이 그러는 사람보고 하는 말입니다. 25. 삽질 : 혼자서 삽푼다고, 즉 헛짓한다는 거죠. - _-; 26. 제기랄 : 풀네임은 제 애기랑 할 놈. 즉 자식과 성관계를 나누다.. 라는 뜻이죠. 27. 쌍판 : 면상. 얼굴을 뜻하지요. 28. 늬미럴 : 자기 어미와 성관계를 가질 녀석. = _= 29. 초딩 : 원래는 욕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정신상태가 어리고 철이 없는 초등학생을 뜻하죠; 30. 중삐리 : 중학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 31. 고삐리 : 고등학생을 속되게 이르는 말. 32. 앰창 : 니 어머니는 창년이다.. 이뜻이죠. 33. 육시랄놈 : 풀네임은 육시를 할 놈. 육시는 죽은 사람의 관을 파내어 다시 머리를 베는 끔찍한 형벌이죠. 뭐.. 육시를 할 정도로 나쁜 사람 이정도가 되겠습니다. 34. 우라질 : 원래는 오라질이라 하죠. 미운 짓을 한 사람에 대한 질책이나 욕으로 쓰이죠. 원래는 오라가 결박할 때 쓰는 줄이고 질은 묶다. 그래서 오랏줄로 묶다는 뜻입니다. 35. 오사리 잡놈 : 온갖 지저분한 짓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이나 불량한 시정 잡배들을 가리키는말. 36. 짭새 : 경찰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죠. 37. 짭새둥지 : 경찰서입니다; 38. 마빡 : 이마를 좀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39. 개차반 : 원뜻은 개가 먹을 음식. 즉 똥을 말합니다. 하지만 행세가 고약하고 성격이 나쁜 행동을뜻하지요. 40. 가시내 : 여자의 순우리말 '가시'와 태생을 뜻하는 '나이"가 합쳐서 가시내, 가시나라 칭하게 되었지요. 41. 곤죽 : 원래는 썩어빠진 죽이란 뜻입니다; 즉 몹시 상하고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42. 깡패 : 영어의 갱(gang)과 한자의 패(패거리를 뜻하죠)가 합쳐진 말입니다. 43. 꺼벙이 : 꿩의 어린 새끼를 꺼병이라 하죠. 이 꺼병이는 생긴게 못생겼는데, 이에 빗대어 어딘가 모자란 듯하거나 못생긴 사람을 꺼벙이라 하게 되었지요. 44. 멍청이 : 멍청이는 멍텅구리라고도 하죠. 멍텅구리란 바다에 사는 물고기의 이름인데 이 물고기는 못생기고 동작이 느려 여기에 비유하여 판단력이 느리고 시비를 잘 모르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죠. 45. 바보 : 밥보에서 자연스럽게 밑받침의 ㅂ이 탈락된 단어입니다.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을 뜻하지요. 46. 사이비 : 영어인줄 아시는 분들이 몇명 계시는데, 한자입니다. 가짜를 뜻하지요. 진짜같지만 가짜. 47. 삿대질 : 배의 삿대를 젖는 행동으로 싸울 때의 손가락질이 삿대질과 비슷한데서 유래되었습니다. 48. 아니꼽다 : 장을 뜻하는 '안'과 굽은 것을 뜻하는 '곱다'가 합쳐져서 '장이 뒤틀린다'는 뜻이지요. 즉 장이 뒤틀려 토할 것 같이 불쾌하고 매스껍다는 뜻입니다. 49. 밸 : 또다른 장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 _- 배알이라고도 하며 창자를 뜻합니다. 50. 얼간이 : 음식을 소금에 약간 절이는 것을 '얼간'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대충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을 뜻한다.
198    미국 <<욕>> 종류 댓글:  조회:5946  추천:0  2015-05-03
Bullshit!  이런 엉터리.  Goddamnit!  빌어먹을! You, idiot! 넌 바보야. fucking retard!  바보 같은 놈   you, jerk!   멍청한 놈. Stupid!    어리석은 놈! Fuck you! 18 놈. Son of bitch  or SOB   개놈아 mother fucker  너금마 10 이다. Fucking American gigolo.  야이, 오입쟁이 새끼야.  You bastard  양아치 새키야 좀더 강도 높은 욕들,- Fucking nigger!  이 깜둥이 새끼 Fuck you, gook!  더러운 동양놈의 새끼 Suck my Dick!  좆이나 빨아라. Nasty bitch!   더러운 화냥년 Fucking asshole!  똥꼬나 박아라! Fucking ho!  똥갈보! 실전으로 들어 가서 여자에게 욕 할때 Hey, Nasty bitch, mother fucker! You, so bitch!  your mouth is so bad because of boiling my stomach.  Goddamnit. get out of here, Fucking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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