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효선이의 시어머니 모시기
Author:관리자 Date:2014-0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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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 박병대
효선이내외는 몇해전에 시부모를 시내에 모셔오려 하였으나 시골이 등따시고 배부르다며 거절하니 어쩔수 없었다. 작년가을에 시아버지가 뇌출혈로 유명을 달리하자 더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한 그들은 시어머니를 다짜고짜 모셔오려고 했다.
“어무이요, 시골은 교통이 불편하고 의료시절이 나빠서 어무이를 여기 홀로 계시게 할순 없어요. 어무이가 곁에 안계시면 우린 하루도 맘놓을수 없어요.”
며느리가 애원하듯 통사정하며 억지로 잡아끌듯하자 시어머니의 고집도 누그러들었다.
“내사 안죽까진 몇년을 끄떡안켔다만 니들이 하도 성화대니 어짤수 없구나.”
아들며느리를 따라 시내에 온 시어머니는 며칠도 못가서 이내 후회하였다. 우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아침식사란 콩물에 밀가루튀김이였고 점심과 저녁은 무슨 밥이 그리도 된지 밥알이 뱅글뱅글 입안에서 숨박곡질을 하였고 돼지고기볶음은 냄새를 맡기조차 거북하였다. 된장과 김치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20여년을 따로 살던 며느리가 차린 상에 “배놓아라 감놓아라”할수 없었다. 저가락을 들어도 집을만한 반찬이 없어 고양이밥만큼 입에 넣었으니 한나절도 못가서 창자가 불평부렸다. 그녀를 괴롭힌건 식사만이 아니였다. 아들며느리에 손자까지 출근길에 나서면 휑뎅그렁한 넓은 집안에서 곁에 말동무 하나 없이 TV만 보자니 눈이 아프고 엉덩이가 배겨 하루가 삼추같았다. 자식들한테 와 호강한다는건 빛좋은 개살구고 실은 연금당한거나 다름없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이 지나고 유리창문에 가득 낀 성에도 사라지고 살구꽃이 하얗게 피더니 뒤이어 가로수가지에도 새잎이 뾰족뾰족 돋아났다. 이맘때면 시골 뒤산기슭에 고사리가 돋아나고 들판에도 냉이며 미나리가 머리를 내밀것이였다. 그녀의 뇌리에는 등에 베낭을 메고 앞치마에 캔 나물을 담고 들판을 주름잡던 지난날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정원에서 채소를 가꾸며 온갖 시름과 고뇌를 말끔히 씻던 전원생활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옛날을 생각하니 마음은 언녕 시골집에 가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며느리가 퇴근하자 반가운 손님을 맞은듯 만면에 해빛을 담으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새아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여기서 호강할 팔자가 아닌가봐. 시내에선 갑갑해서 당최 몬견디겠구나. 제발 날 시골에 보내다고. 단 몇해라도 좋으이말이다. 으이.”
정성껏 모셨는데도 시어머니는 또 시골타령이다. 효선이는 속이 발끈했으나 간신히 참고 조용히 타일렀다.
“어무이, 아직은 힘들지만 차차 적응되면 괜찮을거예요.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어무이가 가시면 우린 한시도 못배겨요. 예?” 효선이의 눈에서는 잔이슬이 맺히였다.
기왕 함께 있을바엔 며느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자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창문밖을 달려나간 마음은 억제할수 없었다. 하루가 삼추같은 십여일이 지나갔다. 고독에 견딜래야 견딜수 없는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퇴근하자 조용히 불러놓고 말을 하기 난처해 한참 뜸을 들이다가 급기야 입을 열었다.
“새아가, 날 양로원에 보내주면 안되겠나? 이기선 갑갑해 몬견디겠다.”
시어머니의 입에서 왕청같은 말이 나오자 불에 덴듯 흠칫 놀란 효선이는 가까스로 진정하고나서 대답했다.
“어무이요. 양로원은 아무나 들어가는곳이 아니예요. 어무이는 아들며느리가 다 곁에 있는데 양로원에 가신다면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거예요.”
“내가 정 가고파서 갈라는데 누가 뭐라카겠나?”
“어무이, 저는 남의 말밥이 두려워 막는게 아니예요. 어무이가 말도 습관도 다른 한족로인들속에 가면 이틀도 안돼 쓰러질게 불보듯 뻔해요. 거긴 절대로 안돼요.”
“양로원에 조선사람은 하나도 없다더냐?”
“그건 저도 몰라요. 아마 있다해도 기껏해야 한둘이겠지요.”
“하나만 있어도 말동무는 될텐데 제발 좀 알아봐다고.”
“어무이, 너무 성급해마세요. 양로원에 가는 일은 번개불에 콩구워먹듯 다그칠 일이 아니예요. 지내다보면 차차 좋은 방도가 생길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효선이에게 어떤 방도가 보이는것은 아니였다. 시어머니의 입에서 양로원소리까지 나온걸 봐서 무작정 뒤로 미룰수 없는 처지였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에 가슴이 찢어질것만 같았다. 이튿날 학교에 출근한 효선이는 오후 자유활동시간에 한사무실에 있는 동창생 정숙이와 속심말을 나누었다. 효선이의 하소연을 듣고난 정숙이가 그녀의 어깨를 치면서 “니나 내나 참 된시집살일 하는구나. 우리 시어머닌 이가 나빠서 만날 묽은 음식만 찾으시지, 생선은 비린내가 난다면서 가까이 놓지 못하게 하시지,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보지도 않으시지, 날마다 속이 답답하다면서 시가지에 나가시겠다지. 참 내가 속상한건 아무도 몰라.” 하고 동감을 표시했다.
“아마 로인들은 그들끼리 모여야 마음이 통하는가봐. 우리 시어머니들을 한곳에 모셔보면 어떻겠니?” 정숙이의 말에서 일종의 계발을 받은 효선이의 제의였다.
“그렇게 했으면 오죽 좋겠나만 한곳에 모시려면 장소가 필요한데 지금 집구하기가 어디 여간 어려운줄 아니?”
“그건 걱정말아. 나는 시어른들을 모시려고 아빠트를 사놨는데 아버님이 세상떠서 한번 써보지도 못하고 그냥 비워뒀단다.”
“그래? 그럼 우리 시어머니들을 한곳에 모시는 경로당을 꾸리면 어때?”
“우리가 경로당을 꾸려? 아무런 경험도 자금도 시간마저 없는 우리가?”
“지금 근무년한이 30년 된 교원들은 정년퇴직시키는데 우리도 사업령이 30년이잖아. 아직 새파랗게 젊은 우리가 퇴직하고 집에서 가만히 놀수는 없잖니?”
“니 말이 옳다. 그럼 시험적으로 작은 경로당을 꾸려보자꾸나. 우리는 퇴직금을 받으니까 돈벌인 생각하지 말고 어른들께 효도하는 맘으로 시어머니들 외에 처지가 어려운 로인 몇분을 더 모셔와서 돌봐드리자꾸나.”
“니만 결단하면 나는 두손 들고 찬성이다.” 정숙이는 효선이와 손벽을 마주쳤다. 그들은 퇴근벨이 울린 뒤에도 한참동안 이마를 맞대고 구체적인 방안을 토의하였다.
며칠이 지난 토요일아침에 효선이와 정숙이는 시어머님과 다른 몇몇 어른들을 경로당으로 모셔왔다. 넓은 방 하나에 대여섯명은 이불을 펴고 누울만 하였다. 고독에서 해방된 로인들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애들마냥 기뻐하였다.
로인들이 짐을 정리하고나자 효선이는 로인들에게 경로당을 꾸리게 된 경유를 소개하고나서 림시일과표를 알려주었다. 그녀는 잠시 일손이 모자라 끼니를 지어드리지 못하니 수고스러운대로 어르신들께서 사놓은 재료로 입맛에 맞는 음식을 손수 지어 잡수시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한평생 부엌에서 산 우리가 밥을 못지어 먹겠나? 반찬을 손수 만드는것도 재밀세.”
로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찬성하였다. 로인들은 일과표에 따라 화투도 치고 한담도 하고 정원에 나가 산보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였다. 십여일뒤 정년퇴직하고 경로당에 출근한 효선이와 정숙이는 “효정경로당”이란 패쪽을 걸고 정식일과표를 짰다. 그들은 분공하여 로인들에게 보건체조를 시키고 새로운 노래를 배워주고 재미나는 옛말을 들려주기도 했으며 수수께끼풀이며 즐거운 유희를 하였다. 로인들의 얼굴에는 봄볕이 잠시도 사라질줄 몰랐다. 시어머니와 로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효선이는 자기가 참으로 보람찬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뿌듯하였다.
어느날 저녁 효선이는 단꿈을 꾸었다. 그는 30여명이나 되는 로인합창단을 거느리고 시에서 조직한 조선족문예콩클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는다. “효정경로당”은 이미 시의 조선족경로원으로 탈바꿈했고 조선족기업가들과 지성인들의 성원으로 경로원은 더 넓고 환한 보금자리를 바꾸었다. 효선이는 이 아름다운 꿈이 결코 꿈에 머무르지 않을것이라 생각하였다. 경로당을 꾸린 그녀는 로인들을 모시는데는 고정된 틀이 없으며 일단 효심으로 지극정성을 다한다면 좋은 방법은 얼마든지 생길것이며 세상은 한결 환해지리라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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