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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인물전기 학봉 김성일 3.<<요순걸주론>>
2015년 08월 13일 17시 35분  조회:1546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3.<<요순걸주론>>
 
  선조 4년, 그해 나이 34세에 이른 학봉 김성일은 시교(侍教)를 거쳐 봉교(奉教 예문관의 정7품 벼슬)로 승진했다. 비록 벼슬은 높지 않지만 봉교란 임금과 자주 접촉할수 있는 벼슬이기에 조정에 자기의 생각을  내놓기 비교적 편리한 직무였다. 학봉은 이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정치개혁의 큰뜻을 펼쳐보려고 마음먹고 밤마다 경서(经书)를 읽고 선왕실록(先王实录) 등 서적을 읽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날 학봉은 <<로산군[鲁山君 주:후의 단종(端宗)조선조 제6대왕 재위 1452--1455]실기>>를 읽고나서 안타까와 주먹을 불끈 쥐고 자기의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가 아무런 죄도 없이 3년만에 궁궐에서 쫓겨나서 강원도 녕월(宁越)이라는 심심산골에 류배되여 갖은 고생을 다하다가 비참하게 살해된 로산군(鲁山君)이며 선왕(先王)의 유촉(遗嘱)을 받고 페위된 어린 임금의 복위(复位 물러났던 임금이나 후비가 다시 그 자리에 오름)를 위해 결사적으로 싸우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륙신(死六臣)들인 리개(李塏, 1417년 ~ 1456), 성삼문(成三问1418--1456), 박팽년(朴彭年1417--1456), 하위지(河纬地 1387--1456), 류성원(柳誠源, ?~ 1456년, 유응부(俞应孚---1456)와 생륙신(生六臣)들인 원호(元昊?), 조려(赵旅), 성담수(成聃壽), 김시습(金时习1435--1493), 리맹전(李孟專, 1392년 ~ 1480년), 남효온( 南孝溫, 1454년~1492년)등 충신들의 거룩한 형상과 로산군의 시체를 건드리면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세조왕의 어명을 어기면서도 정의를 지켜 녕월관에 들어가서 로산군의 시체를 수습하여 지게에 지고 엄동설한에 심산속에 들어가 친히 시신을 안장한 충신 엄흥도(嚴興道, ?~?)의 장한 기개에 그는 탄복을 금하지 못하였으며 임금자리를 탐내여 친조카를 왕위에서 몰아내고 나라의 충신들을 무참히 학살한 수양대군[후날의 세조(世祖),조선 제7대왕 재위1455--1468]의 잔인무도한 행위에 치를 떨었다. 
(나라의 앞길을 바로 열려면 억울한 안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근 백년이란 시간을 끌어오던 이 억울한 안건을 우리 대에서는 반드시 해결하고야말겠다.)
 학봉 김성일은 벼루에 먹을 진하게 갈고나서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을 쓰기 시작했다.
예리한 안광과 강직한 품성을 지닌 김성일은 상소문에서 당시 왕들의 덕을 높이 찬양하고 정치적 페단을 날카롭게 지적한 동시에 세조왕과 로산군의 공과(功过)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는 로산군의 왕위를 복위시키고 녕월에 있는 로산군(단종)의 묘소를 수리하고 승격시켜 왕릉으로 만들것과 사륙신 및 생륙신들에게 관직을 회복시키고 단종복위투쟁하던 당시에 화를 입었던 종친들도 복위시키고 그 자손들도 서용(죄가 있어 벼슬을 박탈했던 사람을 다시 임용함).할것을 강렬히 요구하였다.
이튿날 아침 문무백관들이 조회에 모였다. 룡상에 높이 앉은 선조왕은 문무백관들을 돌아보고나서 물었다.
<<경들은 오늘 조회에서 여쭐 말이 없는가?>>
<<전하, 소신이 주상께 올리는 상소문을 썼나이다.>>
 김성일은 룡상앞으로 다가가 절을 올린 뒤 부복하고 아뢰였다.
 <<상소문을 올리거라.>> 
 선조왕의 명을 내리자 김성일은 품안에서 간직했던 상소문을 꺼내서 국왕에게  바치였다.
  선조왕이 상소문을 펼치였다. 상소문의 앞머리에는 <<로산군의 복위와 사륙신,생륙신의 복작을 요구하는 상소문>>이란 글줄이 씌여있었다.
상소문을 읽어내려가는 선조왕의 가슴은 세차게 뛰였고 상소문을 든 손은 가늘게 떨리였다. 서예와 화공에 남다른 흥미와 조예가 있고 독서를 무척 즐기는 나젊은 선조왕은 <<로산군실기>>를 읽고나서 왕실내부의 골육상쟁(骨肉相争)에 대해 한탄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는 내심적으로 로산군과 사륙신, 생륙신을 동정하고 세조의 잔인무도한 처사에 분개하였으나 왕실의 치욕을 차마 입밖에 낼수 없어 이날까지 침묵을 지키고있었던것였였다. 그런데 오늘 일개 봉교에 지나지 않는 미관말직의 신하가 올린 상소문을 읽어보니 자신이 진작 이 일을 처리하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되였던것이다.
 <<이 상소문을 백관들이 듣도록 랑독하라.>>
 선조왕의 명을 받고 선전관이 상소문을 소리내여 읽자 조회에 참석한 문무백관들은 너무도 놀라 숨도 바로 쉬지 못하였다. 사람들의 눈길은 선조왕과 학봉선생에게로 번갈아 쏠리였다.
 <<학봉이 올린 상소문을 보고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 기일것 없이 허심탄회하게 말할지어다.>> 
 학봉의 상소문을 듣고 내심으로 경탄을 금치 못하던 3사(三司 주: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 등 언론3사를 가리킴)의 대다수 관원들은 선조왕의 온화한 표정을 보고 너도나도 앞다투어 발언하였다.
 <<김공의 상소문은 천만지당하옵니다.>>
 <<로산군은 아무런 죄도 없이 서민으로 되여 원통하게 세상떴으니 반드시 그 왕위를 회복해야 하옵니다.>> 
 <<로산군복위때 화를 입은 충신들의 후예들은 하루속히 서용해야 되나이다.>>
근 백년이란 세월을 내려오면서 항간에서만 공론이 자자하던 가시돋힌 문제를 오늘 벼슬길에 오른지 2년밖에 안되는 나젊은 김성일이 목에 칼이 날아오를 위험을 무릅쓰고 제출하였으니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못하던 문무백관들은 자책에 낯을 붉히였다.
 <<이번 일은 오늘 경솔히 처리할 일이 아니니 후날 과인이 다시 결정을 짓기로 하기오.>>
선조왕은 조회를 마치고 침소로 돌아갔다. 그뒤 선조왕은 단종복위때 화를 입은 사람들의 후손들을 서용하고 왕족에서 밀려나 서민으로 되였던 로산군에게도 다시 군이란 봉작을 회복시켰다. 
김성일의 이 상소문은 임진왜란이 후에 류실되였는데 200년이 지난 어느날 그의 7세손 상호보(相虎甫)가 우연히 옛날의 책상자속에서 초고를 찾아내였는데  학봉전집의 속집을 간행할 때 수록하였다. 간단명료하면서도 설득력이 강한 이 소문(疏文)은 당시 많은 문인들이 앞다투어 외우기에 이르렀다. 
당시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镛1762--1801)선생과 교분이 아주 깊던 천주교학자 금대(锦带) 리가환(李家焕1742--1801)은 학봉선생의 상소문을 읽어보고나서 깊이 감동된 나머지 글을 써서 학봉선생을 높이 평가하였다.
 
<<천만사람이 말하고저 하는 일을 혼자서 말했으니 이는 공정한 말이요 천만사람이 말하고자 하면서도 감히 말하지 못한것을 한사람이 말했으니 이는 기탄없는 말이다. 천만사람이 말하고자 하면서도 못하는것을 혼자서 말했으니 이런 사람은 천만사람중에서 으뜸인 사람이다. 학봉의 상소가 바로 그러하다.>>
 
이해 9월, 학봉 김성일은 사간원(司谏院)의 정언(正言)으로 승진하였다. 그리하여 학봉은 선조왕이 베푸는 경연(经筵)에 참석할수 있게 되였다. 경연이란 임금이 학문을 닦기 위해 신하들중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을 궁전안에 불러들여 경적(经籍)과 사서(史书) 등을 강론하는 일이다. 어느날, 선조왕은 경연석상에서 신하들을 둘러보고나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뚱딴지같은 물음을 내놓았다.
<<경(卿)들은 과인(寡人)과 력대의 제왕들을 비교해 볼 때 어떤 임금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는고?>>
이제 겨우 애티를 벗어나 스무살에 잡힌 선조왕은 자신이 집정한 이후로 퇴계 리황, 률곡 리이, 백인걸 등 많은 인재를 등용했고 또 억울하게 죽은 사림(士林)들을 신원 (伸冤 )하고 유학(儒学)을 장려하는 등 방면에서 공이 있는데다가 일부 신하들이 잘보이려고 그를 떠받들자 마음이 구름같이 둥둥 떠서 자신을 마치 성현(圣贤)이나 되는듯이 생각하고있는판이였다.
 룡상에 앉아서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이 말을 하는 선조왕의 목소리는 매우 가벼웠으나 임금의 신하로서 그 임금앞에서 간단한 그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기란 실로 천근짐을 지고 일어나기보다 어려운 일이였다. 노한 임금의 말 한마디에 자칫하면 삼정승, 륙판서의 목숨도 귀신모르게 사라질판인데 어느 누가 감히 임금을 앞에 두고 감히 그 임금을 고야저야(高也低也)하며  평판(评判)을 할수 있단말인가? 경연석에 들어와 앉아있는 신하들은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것만 같아 임금과 눈길이 마주칠가봐 벌벌 떨면서 저도 모르게 목을 자라목같이 움추렸다. 
 무거운 침묵속에 시간은 소리없이 흘러갔다.
 <<어째서 대답들이 없는고?>>
 자신을 력대에 둘도없이 어진 임금으로 착각하고있는 오만한 선조왕은 기대에 어린 눈길로 신하들의 표정을 두루 쓸어보며 집요하게 신하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임금의 물음에 대답을 피한다는것은 신하로서 임금에 대한 불경불충(不敬不忠)이요 혀 한번 잘못 놀려 임금의 부아통을 터뜨려놓으면 성스러운 경연장소는 피비린 형장으로 변할판이라 신하들은 실로 진퇴유곡(进退维谷)에 빠졌다.
이때 사간원에서 정언으로 일하는  정이주(郑以周1530--1583)가 선참으로 침묵을 깨뜨리고 맘에 추호도 없는 말 한마디를 발라마추었다.
<<전하, 소신의 생각에 상감님은 가히 요순임금과 비교할수 있나이다.>>
금상(今上 주: 현재 왕위에 있는 왕을 가리킴)의 업적이 요순(尧舜 중국 고대의 가장 현명한 두 임금)과 비교할수 있다고? 정말 소가 웃다가 꾸레미 터질 노릇이군. 아무리 입에 발린 소리를 해도 분수가 있어야지...
좌중에 있는 신하들은 저마다 이런 생각을 굴렸으나 임금앞에서 차마 그런 내색은 할 수 없어서 침묵만 지키고있었다. 
그러나 신하들의 대답을 안타까이 기다리던 선조왕은 정이주의 발라맞춘 말 한마디에서 안위를 얻었던지 얼굴에서 보일락말락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다른 신하들의 생각은 어떠한고?>>
선조왕은 흐뭇한 마음으로 경연장에 모인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나라의 신하로 된 도리에서 입은 가로 째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임금의 일시적 비위만 맞추겠다고 입에 꿀발린 말만 한다면 나라의 정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 나라 백성들의 리익을 위해서도 그렇고 교만한 임금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도 속심에 있는 말은 숨김없이 털어놓아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든 학봉 김성일은 더는 좌석에 앉아있을수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임금이 앉아있는 룡상앞에 다가가서 부복하고 정중히 아뢰였다.
<<전하,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에 상감마마께서는 요순(尧舜)과 같이 어진 임금으로도 될수 있고 걸주(桀纣 중국 고대 하나라의 걸왕과 은나라의 주왕)와 같은 폭군(暴君)으로도 될수 있다고 보나이다.>>
(무엇이라구?  내가 걸주와 같이 될수 있다구?)
학봉의 말을 듣고난 선조왕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고로 요순은 성군(圣君)의 대명사요 걸주는 폭군의 전형이거늘 성일이가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감히  이런 불칙한 언사를 내놓는단말인가? 선조왕은 노염이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으나 임금의 체통을 지키느라 들뛰는 가슴을 가까스로 억제하고 웃는 낯을 지어보이며 학봉을 내려다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경은 요순과 걸주를 같은 부류의 임금으로 보는가?>>
선조왕의 속내를 손금보듯 환히 알고있는 학봉 김성일은 이 시각에 왕의 비위에 티끌만치도 어긋나게 말한다면 어떤 불벼락이 쏟아질지 모르는바 아니지만 타고난 천성(天性)은 자기의 생각을 감추지 못하게 하였다.
<<소신도 요순과 걸주가 같은 부류의 임금이라고 보지는 않나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무슨 일이나 잘 생각하여 처사하면 성인이 되고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처사하면 광인(狂人)이 되느니라>하였나이다. 소신이 보건대 상감마마께서는 타고난 재질이 고명하시여 요순과 같은 어진 임금이 되기 어렵지 않나이다. 그런데 상감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어진 임금이라고만 생각하시고 신하들의 건의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 병집이 있나이다. 걸주도 신하들의 간언(谏言)을 막다가 나라를 망치지 않았나이까?...>>
(어진 인재들을 널리 등용하고 정치개혁에서 눈부신 성취를  이룩한 나를 력사에 둘도없는 폭군인 걸주에 비유하면서 임금을 헐뜯다니.)
온 천하를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 지고무상(至高无上)의 권력을 가진 임금으로서 일개 미관말직(微官末职)에 있는 신하한테 치욕을 당했다는 생각이 든 선조왕은 노염이 상투끝까지 치밀어올랐지만 경연석상에서의 임금의 도량(度量)을 보이느라 치솟는 분노를 간신히 억눌렀다.다. 그는 태연자약한 자태를 나타내려고 무등 애를 썼으나 조그마한 얼굴은 멍이 든듯 퍼렇게 상기되였고 엉덩이는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것만 같아 연신 자세를 고치고있었다.
임금의 극히 비정상적인 기색을 살펴본 신하들은 당장에 궁전에서 8급지진이 일어날것만 같아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참으루 기침 한번 깇어도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모를 판이였다. 그러나 하루강아지범 무서운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듯 학봉 김성일은 아무런 기미도 못차린듯 태연한 자세로 부복하고있었다.
이때 30대의 젊은 신하가 침묵을 깨뜨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조왕이 쳐다보니 그는 지난해에 서장관(书状官)이 되여 명나라를 다녀와서 리조정랑(吏曹正郎:리조에서 정5품의 벼슬)으로 일하는 서애(西崖) 류성룡(柳成龙 1552-1607)이였다. 
류성룡은 일찍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김성일보다 3년 먼저 벼슬길에 오른 사람인데 경위(经纬)가 바르고 강직한 품성을 지녔기에 김성일과 뜻이 맞았고 조정에서도 위망이 있는 신하였다. 그는 선조왕의 노염을 풀어주어 김성일이 당면한 화를 모면시키려고 마음먹던것이다. 
류성룡은 선조왕이 앉은 룡상앞으로 한걸음 다가가서 선조왕에게 절을 올리고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애 류성룡
      <<전하, 상감님께서 굽어살피소서. 소신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방금 두 사람이 한 말이 다 옳다고 보나이다. 정이주가 상감님을 요순에 비긴 말은 상감님께서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되시도록 인도하는 말이옵고 김성일이 상감님을 걸주와 비교한 말은 상감님께서 걸주처럼 되지 마시라고 경계하는 뜻에서 올린 말로서 두사람 다 주상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심중의 말을 내놓은것이 옳사옵니다.>>
자신이 더없이 믿고 사랑하는 유망한 신하의 설득력있는 이 말을 듣고 자신의 옹졸함을 새삼스레 깨달은 선조왕의 얼굴에는 회심의 노을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월(满月)이 된 활의 시위같이 팽팽했던 경연장의 분위기는 다시 처음과 같이 풀려졌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신하들은 수건을 꺼내어 저마다 이마에 송골송골 돋아난 땀방울을 훔치였다.
<<오늘 경연은 이만하고 이젠 주안상을 차리도록 하오.>>
노염을 가까스로 푼 선조왕은 이렇게 말하고 경연장을 떠나 침소로 돌아갔다.
이윽고 주연(酒宴)이 베풀어졌다. 이 푸짐한 주안상은 실로 학봉 김성일의 전화위복을 축하하는 주연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김공은 정말 호랑이담을 지녔소. 임금의 흠집을 문무백관들앞에서 사정없이 지적했으니 그게 어이 쉬운 일이겠소.>>
<<이번에 류공이 간(谏)하지 않았더면 무슨 변이 생겼을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리오.도 >>
경연에 참석했다가 주연에 맞이한 신하들은 김성일의 담략과 류성룡의 지혜에 탄복해마지않았다. 사람들은 성일의 행운을 축하하면서 밤이 깊도록 권커니 작거니 하면서 즐기다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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