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공부고장의 모친상
박 병 대
시골소학교에서 정년퇴직하고 마을이 사라져 시내에 이사온 장선생은 상가집의 일을 잘돌봐준다는 소문이 나서 현성안의 아는 집, 모르는 집의 초상집에 자주 불려다녔다.
저녁상을 방금 물리고 TV앞에 앉아 드라마를 보던 장선생은 현 민정국 공부고장의 모친이 방금 사망했으니 급히 도와달라는 기별을 받았다. 그는 비록 공부고장과 일면지교도 없었으나 상사일을 도와달라는데 그것이 자기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급히 사망자의 시신이 놓여있다는 양로원으로 달려왔다. 상주가 아직 부음을 알리지 못한 탓인지 시신이 놓인 침실안에는 본집식구외에 타인은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 안절부절이던 공부고장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본듯 장선생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정부기관에서 공작하다보니 조선족장례법엔 깜깜입네다.. 어머니가 생전에 조선족법대로 장례를 쳐달라고했으니 따르지 않고 어쩌겠시오? 모든걸 장선생께 일임하니 수고 좀 해주시구래. 내 그 은공은 요 머리 파뿌리될때까지 안잊겠시다."
장선생은 우선 렴습부터 해야겠으니 흰천 20자와 명정을 만드는데 쓸 붉은천 몇자를 사오라고 분부하였다.
먼저 고인에게 수의를 갈아입혀야 했다. 남의 초상은 강건너 불보듯하던 공부고장이라 고인의 속옷을 어떻게 벗기고 또 수의를 어떻게 입힐지 엄두도 못내고 장선생의 눈치만 살피였다.
"렴습은 내 혼자 할수 없는 일이니 신체가 식기전에 다같이 손써서 신체를 씻고 속옷을 갈아입힙시다.."
시체를 코앞에 둔 상주와 상제들은 두려움에 등골이 선뜻하고 몸에 소름이 끼쳐 손이 사시나무같이 떨렸으나 어디 기댈데가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장선생의 분부를 따를수밖에 없었다. 반시간이상 진땀을 쏟아서야 간신이 속옷을 벗기고나서 수의를 입히고 렴습도 끝내였다. 띠로 시체를 묶을 때 장선생이 시범하며 묶는 방법을 차근차근 배워줬지만 남의 말을 귀등으로 들은 상제들은 외로 틀 띠를 바로 틀기도 하고 또 동작이 너무 서툴어서 매고 돌아서면 금세 풀리는 띠가 다수라 장선생은 혀를 닳게하기 싫어서 혼자 하나하나 고쳐매였다. 양로원의 침실을 급히 비워야하기에 그들은 렴습을 대충 마치자 빈의관에 전화를 걸어 시신을 그곳으로 옮겨갔다. 상주는 어머니가 생전에 고급호텔에 한번도 출입하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한번쯤 호강시키겠다면서 시신을 호화령안실에 모셨는데 료금이 이 자그마한 현성의 최고급호텔도 감히 명함장을 못내밀 어마어마한 돈이였다.
령안실에서 집에 돌아온 상주는 장선생이 시키는대로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을 아파트창문밖에 걸어놓고 발상한 뒤 "빈소"를 차리는 동시에 전화로 친지들에게 부고를 전하였다. 공부고장은 평소 한족친구들과는 잘어울리나 동족들과는 물에 기름돌듯하던 위인이라 친인척 몇 외에 조선족조객은 별로 없었고 민정국의 간부들과 한족친구들이 위주였다. 어느새 아파트담장에는 "렴로태태 천고(廉老太太千古)"라고 쓴 화환이 십여개나 줄지어 서서 어깨를 으쓱이고있었다.
비록 시신은 집에 두지 않았지만 종이관곽을 사다놓고 "빈소"를 차렸으니 명정을 써서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장선생이 상주에게 물었다.
"명정을 써야겠는데 고인의 성씨와 본관을 좀알려주시오."
"명정이라는건 뭔대요?"
"우리풍속에 고인의 신분을 밝히는 표직이라고 할가, 예로부터 명정은 붉은 천에 붓으로 본관 등을 써서 관우에 덮고 매장하지요. 지금은 화장법을 실시하지만 우리민족은 고유의 장례문화를 지키느라 아직까지 명정을 쓰고있지요. 그런데 본관을 알아야 명정을 쓰지 않겠소.."
"본관이란 또 뭔가요?"
"어느 성씨의 조상이 처음 살던 고장 이름이지요."
"엄마 성은 렴간데 본관따윈 나도 잘모르겠는걸요.가만있자, 옛날 외할배때 환인산골에서 살았다던데 아마 환인렴씰거예요. 그따위 사소한 일은 선생이 알아서 처리하오."
(참으로 소가 웃다 꾸레미터질 일이로군. 일개 기관의 간부라는 자가 상례에 대한상식을 몰라도 몰리도 너무 모르니 이런 무지막지한자와 무엇을 의논한담? 나이 쉰고개를 바라보도록 본관이 뭔지 모르고 또 그걸 부끄러워할줄조차 모르니 낯가죽이 두껍다고 해야 할지 무지막지하다고 해야할지? 염라국의 경비가 허술하니 망자의 조상을 쥐나 개나 바꿔놓고 아웅해도 된다는건가? 까짓거 될대로 되라.) 하고 생각한 장선생은 큰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유인 공주렴씨지구(儒人公州廉氏之柩)>라고 써놓았다. 망자의 성이 렴씨이고 본관은 한국의 한 지방이름을 아무거나 써놨는데 렴씨성은 워낙 희성이라 조객중에 가타부타할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빈소도 꾸리고 상도 차렸으니 향을 태우고 령전에 술을 붓고 절을 올릴 차례였다. 장선생은 술잔을 들고 상주더러 잔을 채우게 한 뒤 술잔에 연기를 씌워 지방을 대체한 유상앞에 놓고나서 상주더러 큰절을 올리라고 귀띰하였다. 남의 제사따위는 먼발치서 곁눈질도 안하던 공부고장은 어쩔줄 몰라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급기야 엉거주춤 엎디여 엉덩이를 쳐들고 이마방아를 세번 찧었고 왕부부장의 처제라는 안상주는 자기네 풍속대로 한다면서 허리만 세번 굽석이였다.
장선생은 상복을 마련하지 않은 상주와 상제들에게 흰띠를 째서 띠를 만들어 허리에 두르게했는데 상주는 그게 몹시 거치장스러운지 자꾸 벗어버렸다. 가까운 친척이 오면 상주는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해야지만 어인 영문인지 곡성이란 보청기를 껴도 들릴가말가할 지경이였다. .
담배연기가 자욱한 대청에는 조객들을 위한 주안상이 차려졌고 그옆에는 소위 밤에 "령구"를 지킨다는 조객들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한 마작상도 마련되였다. 상주는 반드시 빈소를 떠나지 말고 조객들의 인사를 받아야한다고 장선생이 귀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렀건만 마작의 홀림에 녹아난 상주의 눈길은 자꾸 마작판으로 도망가군하였다.
(고인이 저런 아들을 낳고도 미역국을 끓여먹었겠지?) 장선생은 자식이 하나도 아니고 몇이나 되건만 자식들을 위해 몸의 기름을 따 짜고나서 늙고 병드니 배구공마냥 이리저리치여다니다가 결국응 양로원에서 림종했는데도 슬픔은 커녕 한시름 덜었다고 생각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화가 치밀어 견딜수 없었다.
장선생은 상주가 민족의 상례에는 삼척동자도 못미칠 백치인걸 보고 밥이 되든 죽이 되든 모르쇠를 놓을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타민족들앞에서 조선족의 위상에 먹칠하는 험한 꼴을 보일 순 없었고 또 우리민속의 풍속만은 목에 숨이 붙어있을 때까지 지키려는게 신조인지라 상주가 락태한 고양이상을 해도 "잔소리"를 계속했다.
"아무리 고달파도 오늘밤은 견디시오. 어머님께 효도할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요? "
상주는 장선생의 충고에 못이겨 푸주간으로 끌려가는 늙다리소같이 빈소곁에 잠시 왔다가 어느새 자리를 떠 동료조객들과 한담하는데 열을 올리는게 참으로 꼴불견이였다.
이튿날은 발인하는 날이다. 상가에서는 아침일찍 발인식을 지내고 빈 관곽을 차에 실은 뒤 고인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품을 보자기에 싸서 령구차에 실었다. 고인이 영영 집을 떠날때는 으례 상주들의 곡성이 진동하겠지만 이집에서는 록음기에서 울리는 애도곡외에 유달리 조용한 운구행렬이 서서히 길을 나섰다.
령안실에서 시체를 입관하고나니 어느새 8인이 메는 가마가 대기하고있었다. 상주는 어머니를 가마태워 하늘나라로 보냈으니 이만하면 아들이 어머니에게 효도한 셈이라며 어깨를 으쓱이였다.
시체를 화장하기전에 유체고별식도 진행하였다. 추모사를 읽는 사람은 민정국의 한 부고장이였다.. 고인에 대해서 티끌만큼도 아는것이 없는 그는 남의 추모사에 이름만 버꿔 목에 피대를 돋우고 열독하였다. 실속없는 미사려구로 고인을 칭송하고나서 슬픔도 모르는 불효상주와 상제들에게 슬픔을 자제하라고 말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였다. 고별식이 끝날무렵 상주는 참석자들에게 한족식대로 뷔페권 한장씩 내주면서 화장이 끝나면 지정식당에 가서 요기하라고 말했다.
골회를 강물에 뿌리고나서 집에 돌아오기전에 장선생은 상주더러 이틀후에 강가에 와서 삼우제를 치르고 저녁에는 이번 상사때 수고가 많은 조객들을 빠짐없이 모셔다 한끼 대접하는것이 조선족풍속이라고 알려주었다.
이틀뒤 강가에 와서 가족끼리 "삼우제"를 지낸 공부과장은 저녁에 시내의 이름있는 술집에서 초대연을 성대히 벌이였다. 연회석에는 유체고별식때 참석했던 민정국의 간부들이며 친인척 외에 몇몇 전날 보이지 않던 새 얼굴들이 나타났다. 낯이잘익은 토마토같이 상기된 공부고장은 웃음을 낯에 발라 연신 굽신거리며 그들에게 술을 권하였다. .이상하게도 이번 상사를 책임지고 이틀밤낮을 로심초사한 장선생의 모습은 연회장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었다.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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