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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명신 학봉김성일 9.두만강 굽이굽이
2015년 08월 16일 11시 08분  조회:1434  추천:0  작성자: 옛날옛적
  9. 두만강 굽이굽이
 
리씨조선이 건립되면서부터 압록강과 두만강은 명나라와 조선의 변계로 되였다. 다 같은 변경지대이지만  압록강을 변계로 하는 평안도일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형편이지만 명나라의 세력이 잘 미치지 않은 두만강 이북지역에는 후금(后金)의 세력이  웅크리고있어서 변경일대에는 하루도 안정할 때가 없었다. 후금의 토호들은 개인군대를 가지고있었는데 시도때도 없이 두만강을 건너와서 조선백성들의 식량을 빼앗아가거나 소나 말, 돼지를 몰아갔고 예쁘장한 녀인들을 끌고갔다. 
 산이 많고 옥토가 적은데다 혹심한 부역때문에 설만 지나면 식량이 떨어지는 변강사람들에게 후금의 략탈은 설상에 가상이였다. 백성들의 원망이 잦아지고 조정에 상소문이 눈꽃같이 날아드니 조정에서는 장정을 뽑아서 두만강변을 수비하게 되였다. 그러나 고향에 부모처자를 두고 끌려온 장정들은 먹고입는 기본문제조차 해결할수 없게 되자 도망치기가 일쑤였다. 이렇게 되자 외적들은 침략이 더 빈번해졌고 백성들의 원성도 나날이 커졌다. 조정에서는 두만강변경의 수비정황을 검사하고 병졸들의 인심을 수습하기 위해  드문드문 순무사를 파견하였다.
     선조 12년 9월, 조정에서는 김성일을 함경도순무어사로 임명하였다. 조정의 명을 받은 김성일은 수행인원 10여명을 거느리고 쌍두마차에 올라 북정길에 떠났다. 화려한 서울을 떠나 재령벌을 지나고 유서깊은 평양을 지나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는 김성일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수려한 3천리강산은 계절의 혜택을 받아 울긋불긋 단풍단장을 하여 그림같이 아름다웠건만 골짜기에 쪼그리고 앉은 마을들은 초라하기가 비렁뱅이의 모양과 다름없었다. 조이삭낱가리, 벼낱가리, 강냉이무데기는 황금산을 이뤄야 할 가을이건만 곡식낱가리란 낱가리는 어린아이의 무덤만한데 그것마저 쭉정이가 태반이였다. 팔월추석이 다가오는데 명절맞이를 하는 기분은 찾아볼수 없었고 마을은 그 어디나 초상을 치르고난 상가집마냥 어수선했다. 간혹 길을 가다가 등짐을 짊어지고 산을 내려오는 늙은이들을 볼수 있었는데 등에 진것은 식량이 아니라 나무단이나 산열매였다. 일년내내 고생하고서도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운 농민들의 몰골을 보노라니 코마루가 찡해났다. 학봉은 어서 빨리 두만강연안에 가보려고 닫는 말에 채찍질을 하게 되였다.
    바로 추석전날, 저녁무렵에 학봉네 일행은 함흥부에 이르렀다. 함흥부에서 추석술을 마시고난 학봉 김성일은 객사의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한곳을 보니 <<녀진지도(女真地图)>>가 걸려있었는데 지도의 아래켠에는 멋진 제사가 적혀있었다. 룡이 날고 봉황이 춤추는듯한 글씨에 눈길이 끌려 가까이 가보니 고려말년의 충신 포은(圃隐)정몽주(郑梦周1337--1392)가 친필로 쓴 제사였다. 나라의 번영을 위해 중국과 일본을 수차례 다녀오며 불후의 위훈을 세운 정몽주의 시를 읽어내려가는 김성일은 옛영웅들의 장한 뜻에 내심 깊이 감복했다. 그는 필을 날려 정몽주의 시에 운을 밟아 즉흥시 한수를 벽에다 써내려갔다.
 
    추석날 밤 포은과 화답하여
 
추석날 밤 장검날 쓰다듬으며
내 길이길이 탄식하누나.
나라에 충성 다할 이 마음 이 뜻
그 어느때에 실현할소냐.
필을 날리는 내 함흥의 벽에다
만단심회 그려내노니
앞날 어느 뉘가 이 마음 알아
나의 이 시를 거두어줄가.
 
(中宵拂剑长太息   耿耿此心空有期
挥笔大书匡州壁   太史何人収我诗)
 
붓을 던지고난 김성일은 <<후유-->> 하고 길게 탄식하다가 번거로운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여 밖으로 나와 거닐면서 휘영청 밝은 달을 쳐다봤다. 거울같은 달을 보노라니 고향생각이 절로 났고 또 저 달을 바라보며 고향생각에 눈물을 흘릴 변강의 병졸들의 초췌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명절을 지내면서 며칠간 쉬는게 옛법이지만 순무사의 중책을 짊어진 나는 여기서 오래 머물수 없구나. 래일은 떠나야지.)
    한시 바삐 두만강연안으로 갈 생각이 간절한 김성일은 수행인원들에게 래일은 출발하니 일찍 쉬라고 이르고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김성일네 일행은 말에 올라 함주쪽으로 떠나갔다. 함주를 지나 몇십리를 가다가 앞을 내다보니 황초령(黄草岭)이 보였다.
    황초령에 올라 절간에서 하루밤을 쉬고난 학봉일행은 진흥왕의 순수비(일명 척경비)앞에 가서 술을 부은 뒤 동북방향으로 말머리를 돌리였다. 부전령(赴战岭)의 지맥을 따라 풍산(丰山 ) 과 신흥(新兴)  두 군의 지경에 가까와지니 산세는 점점 험해졌다. 얼마 더 가지 않아서 높은 산이 앞을 막았다. 백설을 떠이고 구름우에 솟아있는 이 아아한 설산은 해발 2,164메터나 되는 옥련산(玉莲山 )이였다. 학봉일행은 산아래 자리잡은 옥련보(玉莲堡)라는 마을에 들려 하루밤을 보내였다.
    학봉일행은 옥련보를 떠나서 심심산곡을 에돌면서 변강에 가까운 촌락들을 돌아보았는데  눈에 덮혀 곧 내려앉을것만 같은 초가집들을 들려보면 열집에 아홉집은 빈집이였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집들을 찾아가보면  환갑이 지난 늙은 량주가 살고있지 않으면  병석에 누워 신음하는 사람들이 있을뿐이였다.
    <<이 마을의 백성들은 다 어디로 가고 어르신만 계십니까?>>
    학봉 김성일이 한 집에 들려 부엌에서 군불을 때고있는 허리굽은 백발의 할머니에게 물었다.
     <<손님은 그런것도 모르시우? 젊은 사람들은 다 장정으로 끌려갔고 장정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도망치고나면 그 집식구들이 대신으로 나가야 하는판이라 관청에 잡혀갈가봐 모두들 도망쳤다오. 우리같은 늙은이들이야 도망칠래야 칠수도 없으니  여기 남아서 죽기만을 기다리지 않수?>>
    늙은이의 말을 듣고보니 정말 기가 막힌 일이였다. 학봉 김성일은 길주를 지나는 동안에 보고 들은 정황을 상세히 저어서 조정에 올려보내였다.
    학봉일행이 경흥을 거쳐 두만강 연안에 이르렀을 때는 백설이 만천지한 엄동이였다. 강가에는 얼음이 얼었으나 강심에는 아직 푸른 물이 굽이쳐 흐르고있었다.
강가를 따라 북으로 올라가노라니 병영이 보였다. 김성일은 박차를 가하여  병영으로 달려갔다. 병영이란 다가가보니 감옥이나 별로 다름이 없었다. 하늘이 올려다보이는 천정에서는 눈가루가 날려내려왔고 네벽에는 성에가 하얗게 덮혀있었다. 짚을 깐 봉당에는  반주검이 된 환자들이 맥없이 신음하며 누워있었는데  염라전에 들어선듯 소름이 끼쳤다. 
김성일은 주방에 들어가 솥뚜껑을 열어보았다. 솥안에서는 쉬큼한 나물냄새가 물씬 났다. 강냉이 가루를 조금 섞어서 나물죽을 끓여놓았는데  간이 들지 않아서 흡사 돼지죽과 같았다. 
(병사들이 이런것을 먹고  무슨 일을 해낸단 말인가? 우선 그들에게 식량과 솜옷,신발을 해결해야겠다.) 
병영을 돌아보고난 학봉선생은  병졸들이 일하는 곳으로 찾아가보았다. 다 떨어져 너덜거리는  겹옷을 껴입고 발가락이 삐여져나온  짚신을 신은  병졸들은 채찍을 든 감독의 감시밑에 돌을 까고있었다.
     병졸들의 거동을 보니 고역에 끌려온 죄수나 다름없었다. 저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부모처자를 리별하고 먼먼 북변땅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가? 저 사람들이 내심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생각이 있겠는가? 학봉은 그들을 보기가 부끄러워났고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좀 쉬고서 일하시오.>>
    순무어사의 령이 내리자 병졸들은 감독의 눈치를 보면서 일손을 놓았다.
    학봉은 병졸들을 불러 가까이 둘러앉힌 뒤 그들의 생활고를 자세히 물어보고나서 안위의 말을 남기고 일터를 떠났다.
    관청에 돌아온 김성일은 배를 곯고 추위에 떨고있는 변방전사들에게 당장 의복,신발과 식량을 해결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조정에 올리는 장계를 썼다.
   학봉선생이 경원, 온성, 남양, 무산 등 두만강 연안의 고을을 돌아보니 그 어느 고을도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태반이였다. 고역에 견디지 못한 병졸들은 목숨을 내걸고 도망을 쳤고 그 가족들도 대역(代役)이 두려워서 남쪽지방으로 도망쳤으며 한집식구가 솔가도주를 하게 되면 그 이웃집들이 련루를 당하여 병역에 나가야 했기에 도망가는 사람들이 사태를 이루고있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대역법을 취소하겠으니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학봉선생은 길에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설복하여 자기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두어달이 지났을 때 조정에서 보낸 식량과 솜옷이 도착하였다. 학봉선생은 식량과 솜옷을 나눌 때 불법군관들이 제 리속만 채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려고 각 병영을  돌아다니면서 병사들에게 솜옷을 손수 내여주고 식량도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는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목숨을 이어가는 변강농민들에게도 약간의 식량을 해결해주었다.
    <<이번에 오신 순무어사는 정말 우리의 재생은인니요.>>
    <<그분이야말로 우리 백성의 어버이나 다름없소.>>
    사경에 처했다가 구제량을 받아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민들은 학봉선생의 은덕에 감지덕지하면서 칭찬을 금할줄 몰랐다. 변방의 고역도 이전보다 훨씬 경해지고 식량과 의복까지 해결되고나니 도망가는 병졸도 없어졌고 백성들도 안정한 나날을 보내게 되였으며 심산속이나 타관으로 도망갔던 사람들도 이 소식을 듣고 제 마을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흔고개를 넘은 부친님과 사랑하는 처자를 고향에 남겨두고 먼 북녘땅 두만강기슭의 맵짠 눈보라속에서 해를 바꾸는 학봉선생의 혈관속에는 오로지 애국애민의 뜨거운 피만 굽이치고있었다.
    변경을 돌아보고 백성들을 안무하면서 경원, 온성 등 지방을 지나던 김성일은 고려때의 명신이며 장군인 윤관(尹瓘)이 동북변계에 침입해들어온 녀진침략자들을 정벌하고 쌓은 아홉개성(城)과 함길도관찰사(咸吉道观察使)로 되여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확정한 정치가 김종서(金宗瑞1390--1453)가 설치한 6진(六镇)의 유적을 알알아 돌아보고 몇번이나 영탄을 금치 못하였다.
    (지난 시대의 영웅들은 천고에 길이 남을 위업을 이룩하였는데 그 후손들인 우리들은 어이하여 그들이 넘겨준 강토도 지켜내지 못하고 남들의 유린을 받게 되였는가? <민유방본(民唯邦本)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이 잘살게 하지 않고서야 나라가 어찌 부강할수 있겠는가.)
    김성일은 이른 봄이 되자 백성들의 식량과 곡식종자를 구하기 위해 조정에 장계를 써올리는 동시에 함경도내의 고을을 빗질하다싶이 돌아다니며 백성들의 어려운 정황을 료해하고 해결책을 마련하였다.
뻐꾸기 우는 봄철이 찾아왔다. 두만강연안의 농민들은 땅을 갈고 강냉이며 수수를 심었다. 여름철에 들어서자 강냉이는 개꼬리같은 홰기를 뽑았고 수수도 이삭이 나오기 시작했다.
( 이제 달포만 지나면 이 고장의 백성들도 손수 심은 곡식맛을 보며 기근을 면해보겠구나.)
 산비탈과 전야에서 설레이는 푸른 물결을 바라보는 학봉선생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리였다.
    7월초의 어느날, 김성일의 고향사람이 부고를 가져왔다. 70고령에 오르신 부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셨던것이였다. 나라일로  병석에 계시는 부친을 고향에 두고 먼먼 변방에 온 그는 부친의 건강을 자나깨나 걱정했었다.  이제 두어달만 지나면  순무어사의 직책을 완수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부친님을 손수 돌보리라 마음먹었었는데 부친께서 이렇게 총망히 황천길에 오르실줄은 천만 꿈밖이였다. 학봉선생은 쓰디쓴 눈물을 삼키며 조정에 사임서를 올리고는 말안장에 올라 닫는 말에 채찍질을 다그쳤다.
    학봉선생이 부고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은 바람결마냥 온 함경도에 퍼졌다. 백성들은 난생 처음 보는 훌륭한 순무어사를 보내는것이 안타까와 눈물을 흘리면서 바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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