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궁중의 호랑이>>
어느덧 선조 11(1570)년의 봄이 찾아왔다. 이국에 사절로 갔다오느라고 부친님과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 한해 한번밖에 없는 설명절도 함께 쇠지 못한 학봉 김성일은 조정에 말미를 맡고 안동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성일이가 집에 왔다지요?>>
<<사순이가 댁에 오셨다지요?>>
<<학봉선생이 고향집에 내려오셨다지요?>>
김성일이 내앞마을에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문은 고향마을은 물론이고 린근 마을이며 안동부근의 사람들속에 째빨리 퍼졌다. 부모님과 친척에게 인사도 올리기 바쁘게 소문을 듣고 댁을 찾아온 소시적 친구들과 손님들은 문턱이 닳을 지경이였다.
친구들과 손님들은 김성일에게 조정에서 벌어진 붕당싸움에 대해 묻는가 하면 학문에 대해서 묻기도 하였다.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지금 조야에 하급이 상급한테 뢰물 바치는 악풍이 생겨나서 관청에는 바른 기풍이 점점 사라지고 지방관원들도 뢰물 받기에 눈이 어두워서 법을 잘지키지 않으니 권세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참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것을 김성일은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비록 편벽한 산간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인재가 많이 나온 이 내앞마을에는 나라안의 소식이 빨리도 날아들어와 학봉선생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도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였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있는데도 조정에서는 감감 모르고있으니 이것이 어이 될 일인가? 서울에 돌아가면 조정의 가지가지 부정기풍을 기어코 바로잡고야말겠다 하고 학봉선생은 속다짐했다.
학봉선생이 낮에는 들에 나가 일군들의 농사일을 거들면서 농부들과 속심의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면 선비들과 학문을 담론하는데 어느새 봄철이 다 지나가고 여름철이 다가왔다.
어느날 조정에서 내린 조서를 가지고 선전관이 찾아왔다. 조정에서는 학봉선생에게 어서 서울에 올라와서 홍문관(弘文馆:3사의 하나로서 궁중의 경서, 사적, 문서를 관리하고 왕을 자문하는 관청)의 교리(홍문관의 정5품의 관리)를 맡으라는 교지를 내렸던것이였다.
조정의 명을 받은 학봉선생은 또다시 일흔고개를 내다보는 부친님과 사랑하는 처자식을 고향에 남겨놓고 급급히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학봉선생이 서울에 올라온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날 선조왕은 경연을 베풀었다. 경연석상에서 선조왕은 책임진 학자의 강의를 다 듣고나더니 신하들을 돌아보고나서 뜻밖의 물음을 내놓았다.
<<경들의 생각에 지금 조정에 어떤 폐단이 있는고?>>
선조왕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신하들은 저마다 임금의 눈치만 살피고있었는데 고향에 내려가서 보고 들은 일들에서 느낌이 많던 김성일은 남먼저 자기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지금 조정에 탐관오리들이 있어서 지방관원들의 뢰물을 받아먹고나서 법을 어기는 일이 많은것이 폐단인가 하옵니다.>>
<<조정의 신하들중에서 뢰물을 받아먹는자들이 있다고?>>
선조왕은 학봉의 말에 짐짓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소신이 이번에 고행에 내려갔더니 조정의 신하들이 뢰물을 받아먹는 풍기가 성행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소이다.>>
<<그래 누가 뢰물을 받아먹었다고 하던가?>>
선조왕이 격분한 기색을 보이며 따지고 묻자 김성일은 난처하게 되였다. 즉석에 이름을 대자니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붕당싸움에 말려들것 같고 이름을 대지 않으려니 주상을 속이고 조정을 헐뜯었다는 죄명을 덮어쓸것만 같았다. 아무리 명망이 높은 사람이라도 뢰물을 받아먹은 범죄는 용서할수 없는 일이 아닌가? 내가 그자들의 미움을 받더라도 조정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 김성일은 큰 마음을 먹고 선조왕의 앞에서 고향에 갔을 떄 들은 말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상감님, 진도(珍岛)군수 리수(李铢 )가 <3윤( 三尹)에게 량곡을 뢰물로 바친 일은 민간에서 큰 화제거리로 되고있나이다.>>
<<3윤>>이란 윤두수와 그의 아들 윤현( 尹睍)과 윤두수의 아우 윤근수(尹根寿1537--1616 )를 가리킨다. 학봉선생의 말이 떨어지자 선조왕과 경연에 참석한 신하들은 놀람에 찬 눈길을 일제히 윤두수에게로 옮겼다. 간이 콩알만하게 된 윤두수는 낯색이 백지장같이 되여서 선조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어느새 등골에서는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방금 성일이가 말한바와 같이 경이 뢰물을 받은적이 있는가?>>
<<소신이 죽을죄를 졌소이다.>>
<<나라의 중신으로서 조정의 명예를 더럽혔으니 될일인가?>>
선조왕이 윤두수를 훈계하고나자 김성일은 와서제조(瓦署提调:왕실에서 쓰는 기와, 벽돌을 관리하는 사람)가 왕실에 쓸 벽돌을 사사로이 팔아 제 배속을 불리운 사실도 적발했다. 그러자 와서제조도 그 자리에서 얼굴을 들지 못하고 윤두수와 같이 콩알같은 땀을 흘렸다.
이 일이 있고난 뒤 진도군수 리수는 옥에 갇히게 되였는데 이것을 이른바 <<리진도미옥사건(李珍岛米狱事件)이라 한다. 이번 <<미옥사건>>이 있은 뒤 정의를 주장하는 대간들이 일제히 일어나 <<3윤>>과 <<와서제조>>를 탄핵하는 바람에 그들은 모두가 강직당하고말았다.
오로지 나라와 백성들의 리익만 돌보고 자신의 안위는 념두에 두지 않는 학봉 김성일은 높은 벼슬아치든 임금의 친척이든 가리지 않고 일단 그자들이 죄를 저지른걸 발견하면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탄핵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그를 공경하면서도 은근히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그를 <<궁중의 호랑이>>라고 일컬었다.
<<궁중의 호랑이>>란 말은 중국 송조때 류안세(刘安世)라는 충신이 임금한테 바른말로 간하기를 잘하여 임금에게 준절히 직간하는 사람을 <<궁중의 호랑이>>라 불렀던것이다.
선조 12연 6월에 김성일은 사헌부(司宪府)의 장령(掌令)직무를 맡고 불법관리들을 처리하게 되였다. 빈 이름만 걸고 빈둥빈둥 놀면서 국록을 타먹으려면 쉬운 일이지만 탐관오리들이 조정 안팎에 개미떼처럼 욱실거리는데다가 사람들사이의 관계망이 거미줄같이 늘어진 정황하에서 법에 따라 처사하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님을 그는 절실히 느꼈다.
이때 선조왕의 친형인 하원군(河源君 ) 리정(李珽 )이 가장 큰 두통거리였다. 그는 임금의 친형이라는데서 세도를 부리고 국법을 범하기가 하루세끼 밥먹기와 다름없었다. 날마다 주색잡기에 빠진 하원군은 노비들이나 불한당들을 끌고다니면서 이르는 곳마다에서 행패를 부렸고 민가의 부녀자들을 제집에 끌고가서 겁탈하기도 하고 남의 집의 대물림보배를 빼앗는 등등으로 못된짓이란 못된짓은 다 골라가며 해댔다. 그리하여 항간에는 하원군에 대한 원성이 날따라 높아갔다. 그러나 법을 다스린다는 사헌부의 관리자들은 하원군의 세도에 눌려 이 일만은 못본척 못들은척하고있었다.
사헌부의 장령직을 새로 맡은 김성일은 하원군의 행패에 성이 상투끝까지 올랐다.
(내 어떻게든지 이자를 길들여놓고말테다.)
하원군을 길들여보겠다고 윽별렀지만 자신의 보잘것없는 벼슬로는 하원군을 문죄하기는 고사하고 그의 집 대문안에도 들어갈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때를 기다릴수도 없어 그는 안타까와 이를 깨물었다. 그는 사헌부의 하급관리들을 이끌고 거리를 순회하면서 하원군이 일을 저지를 때 직접 손목을 잡기로 하였다.
어느 하루, 김성일은 하원군의 노비 몇놈이 대낮에 거리에서 려염집의 규수의 손목을 끌어당기는것을 보았다.
<<저 불한당놈을 당장 잡아오너라!>>
분기가 대발한 학봉의 입에서 추상같은 호령이 떨어지자 포졸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 불한당놈들을 일일이 잡아 결박하였다.
<<이 당달봉사같은 놈들아, 우리가 누군줄 알기나 하고 무례한 짓을 하느냐? 우리는 당저대왕의 백씨 하원군댁 사람이다.>>
하원군의 노비두목은 집주인의 등세를 믿고 고래고래 고아댔으나 김성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놈이 어떤 놈인지 나는 가리지 않는다. 나는 주상의 위탁을 받고 불법분자들을 처단할뿐이다.>>
김성일의 명에 의해 포졸들은 그놈들을 사헌부로 끌고갔다.
<<저놈들이 다시는 법을 어기지 않겠다고 빌 때까지 주리를 틀고 된매를 안겨라!>>
사헌부 장령의 령에 따라 형리들이 된매를 안기자 반주검이 된 그자들은 더는 유세를 부리지 못하였다.
<<소인들이 죽을죄를 졌소이다. 한번만 용서해주옵소서.>>
하원군의 노비들이 기가 죽어 손이야 발이야 하고 빌어서야 김성일은 곤장질을 멈추게 하였다.
<<학봉이 이번에 곰열을 먹었는지 분에 넘치는 일을 저지르고 무사할가?>>
사헌부의 동료들은 뒤에서 수근거리며 손에 땀을 쥐였다. 그러나 김성일은 조금도 후회하는 기색이 없이 태연자약하였다.
하원군의 노비들은 다시는 위법행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지장을 찍고서야 비맞은 수탉상이 되여 사헌부를 나갔다.
김성일의 이번 처사는 세인들을 놀래웠고 선조왕까지 놀라게 하였다. 선조왕은 임금의 체모도 돌보지 않는 김성일을 아니꼽게 보기는 하였으나 그가 한 일이 또 세상사람들의 환심을 사게 한 일이라 모르는척 하고 지내는수밖에 없었다.
7월초의 어느날 저녁, 선조왕은 경연석상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갑자기 뚱단지같은 물음을 내놓았다.
<<과인이 듣건대 근래에 렴치가 날로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고?>>
경연에 참석한 신하들은 선조왕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물음을 내놓았는지 알수 없는데다가 또 합당한 답안을 찾지 못하여 임금의 노여움을 살가봐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이때에도 대바르고 성미가 급한 김성일이 선뜻 나섰다.
<<소신의 생각에는 근래에 대신들까지 뢰물 받는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고있으니 렴치를 잃었다고 하는것도 괴이할것이 없다고 보나이다.>>
<<대신들가운데도 뢰물을 받아먹는 사람이 있다 하니 그게 실말인가?>>
선조왕은 의혹에 찬 눈길을 3정승,6판서들에게로 돌렸다. 대신들치고 크고 작고간에 뢰물이라곤 하나도 받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는지라 대신들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답도 못하였다.
이때 백발이 성성한 로신하 한사람이 앞으로 나가더니 선조왕의 앞에 부복하였다. 신하들이 바라보니 그는 올해 예순네살에 잡힌 우의정 로수신(卢守慎)이였다. 천성이 어질고 문장과 서예에 능한 그는 명종때에 권신 윤원형, 리기가 일으킨 을사사화에 걸려 진도에 류배되여 19년동안이나 귀양살이를 하다가 선조가 즉위한 뒤 조정에 들어와 중책을 맡고있는 분이였다.
<<로정승께서 어인고로 이러시오?>>
선조왕은 자기앞에 꿇어앉은 사람이 마음속으로 공경하는 로정승인것을 알고 눈이 둥그래지더니 나직이 물었다.
<<상감님, 신은 큰 죄를 지었나이다. 신의 친척중에 한사람이 변강을 지키는 장수로 가면 신에게 년로하신 모친이 계신다고 담비로 만든 갓옷 한벌을 보내왔었나이다. 신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받아 로모님께 드렸소이다. 이제 사순(성일의 자)이가 한 말을 새겨보니 신은 죄를 지었소이다.>>
<<하하하하, 그게 무슨 뢰물을 받은것이라 하겠소. 어서 일어나시오.>>
선조왕은 말을 마치고나서 룡상에서 일어나더니 로수신을 부축하려 하였다.
<<오늘 경연에서 대간은 바른말을 했고 대신은 자신의 허물을 스스로 승인했으니 이는 둘이 다 장한 처사로다.>>
만면에 웃음빛이 어린 선조왕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조정에서는 신하들속에서 뢰물을 먹이는 악습이 성행하였는데 그 누구도 바로잡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던것이였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내려면 대신들속에서 성행하는 악습부터 쓸어버려야 되겠다고 생각한 김성일은 구체적으로 어느 누구를 지적하지 않았던것이다. 로수신은 김성일과 한고향삼람으로서 학문이 깊고 작풍이 단정했기에 김성일은 물론 조정의 다수 관원들이 존경해 우러르는 분이였다. 김성일은 로정승이 오늘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경연석상에서 사죄까지 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경연을 파하고 궁전에서 나올 때였다. 로수신은 김성일에게 눈짓을 하고 찾아오더니 그의 손을 억세게 잡고 사과 겸 칭찬조로 말을 건늬였다.
< <김공, 정말 훌륭하오. 옛날의 도의를 오늘날에 다시 볼수 있게 되였으니 이는 공이 아니면 누가 능히 하겠소.>>
<<정승님의 치하를 듣고나니 도리여 송구스럽소이다. 오늘 저는 로정승한테서 정말 많은것을 배웠나이다.>>
학봉은 로선배의 넓은 도량에 진정 깊이 감동되였다. 그는 도학정치의 기반을 닦는데 애로가 아무리 많더라도 기어코 싸워나가리라 굳게 다짐했다.
이때 김성일의 처사는 십분 적절했지만 당쟁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이 모든 일들을 당파싸움과 련계시켰다. 그리하여 조정 안팎에는 김성일이 동인에 가담했기때문에 서인의 <<3윤>>과 로수신 등을 공격했다는 등 뒤공론이 돌았다.
이때 률곡의 친우요 률곡의 수제자인 김장생(金长生)의 생부인 대사간 김계휘(金继辉:1562--1582)가 고향에 내려가 있다가 풍문을 듣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는 김성일이 당파심에서 출발하여 서인을 공격하려고 <<3윤>>을 탄핵한것으로 알고 김성일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명종때에 김계휘는 서인으로 몰려 추방당한 일까지 있었기에 사람들은 김성일을 동인으로 생각했고 김계휘가 서인인것은 두말할것 없고 그의 친우인 률곡선생까지 서인으로 치부하였다. 동인이요, 서인이요 하는 색안경때문에 조정의 일이 엉망진창이 되는것을 보고 격분한 률곡은 기해년에 조정에 상소문을 올렸다.
<<...작년에 김성일이 경연에서 탐관오리들이 뢰물을 받아먹는데 대해 언급하였을 떄 전하께서 졸급히 그 이름을 물으시니 김성일이 감히 숨기지 못하고 소문대로 직계하여 마침내 뢰물을 받은자들이 밝혀지게 되여 대간이 부득이 <3윤>을 탄핵하게 된것입니다. 처음에는 <3윤>을 배격하고자 해서 한것이 아니였는데 우연히 발설한것이 이렇게 발전한것입니다. 다만 <동서> 라는 이름이 생긴지 오래 되였고 또 뢰물을 받은 집이 바로 <3윤>으로 지목되고보니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모두 생각하기를 <뜻은 서인공격에 있는것이지 장물을 조사하여 탄핵하자는 주장이 아니다.>라고 한것입니다. 그때 대사간 김계휘가 휴가를 받아 고향에 있었으므로 그 곡절을 깊이 살피지 못하고 다만 풍설만 듣고 또 동인이 서인을 공격하는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으로 달려와서 단독으로 전하께 아뢰였던것입니다. 그런데 그언사가 매우 중심을 잃어서 사류(士类)의 격분을 일으키여 드디어 큰 소요를 이루게 한것입니다. 신은 평소에 김계휘가 사리를 잘 알고 의지할만한 인물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였으니 괴이한 일이옵니다...>>
당파싸움때문에 어진 사람의 정당한 말까지 알아보지 못하고 당파싸움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마저 어느 어느 당파에 들었다고 억측하고 무함하는 조정의 기풍에 큰 불만을 지닌 률곡 리이는 이 상소문을 올리고는 대사간을 맡으라는 조정의 추천을 사퇴하고 결연히 파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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