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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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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렬전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4144  추천:73  작성자: 김혁
 

. 잡문 .


인간의 렬전 (列傳)


김 혁

 


1

나의 서재에 꽂힌 책들중에 인물전기와 평전들이 적지않다.
“카프카 전”, “풍월의 수재- 서지마 전”, “나의 련인- 마그리트 뒤라스” “윤동주평전”, “로신평전” 등 명작가들로부터 “반 고흐전”, “프리다 칼로” 등 비운의 화가들, “스티븐 호킹스의 과학생애”, “사랑으로 가는 녀인- 마더 테레사 수녀’,등 과학계와 종교계 인사들, 그리고 영국기자 필리프 쇼트의 “모택동 전”, “완미한 사람- 체게바라” 등 혁명가들의 전기물도 있다.

내가 맨 처음 읽은 전기물은 어쩌구려 소학생의 나이와는 걸맞지않게 공자의 전기였다. “상가집개 공자(丧家犬 孔子)”라는 제목의 공자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룬 전기, 하지만 다행인것은 그 야유와 비속어(卑俗语)로 점철된 문투중에도 공자의 생애는 그런대로 일괄적으로나마 그려져 있었다. 당시는 공자를 봉건적 루습의 근원이라 공격하여 중국 전역에서”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 즉 공자와 림표를 비판하는 운동이 거세차게 일던때 였으니 올바로 된 위인의 전기 한권도 찾아보기 어려웠던 형국이였다.


요사이 경전 “론어”의 대중적 해독독법이 십분 류행되면서 다시 공자에 관한 전기를 찾아 읽었다. 화동사범대학 교수 진위평의 “공자평전”을 한국 미다스북스의 2005년판으로 구해 읽었다. 70년대에는 한낱 몰락한 노예주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유심론 사상가에 불과해져 “상가집 개”로 혹평받던  유교의 개조(开祖). 중국 문화의 구심점으로서 동양 2천5백년 력사와 문화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쳐온 공자를 제대로 읽으면서 감개를 머금지 않을수 없었다. 

어려서 피폐했던 당시의 독서풍토에서도 재미있게 읽은 인물전기로는 또 춘추전국시대 법가의 대표인물인 “상앙 (商鞅)의 이야기”가 있다.
번역서로 읽었는데 통일국가 진(秦)을 세우는데 공헌을 바친 한 사상가의 삶을 알고 읽은것 아니라 유생들의 코를 베고  말에 매달아 거렬형(车裂刑)에 처하는 끔찍하면서도 생광스러운 이야기에 끌려 읽은것이였다.

근년들어 진짜 전기다운 전기를 읽은것은 “체 게바라 평전”이다. 아르헨띠나의 한낱 의학도로부터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것보다 이 세계의 모순을 먼저 치료하는것이 더 본질적인 문제라 판단하고 혁명가로 거듭나 파란의 삶을 살다간 그의 생애에 감동한 나머지 편역본으로 된 평전을 읽은뒤 다시 포토로 엮은 그의 화전(画传)도 또한번 사들였다. 

 

검은 베레모에 덥수룩한 수염, 랭소적으로 입가에 물린 려송연, 비쩍 말랐지만 형형한 눈빛… 이젠 세계적으로 캐릭터화 된 그 형상에 깊이 매료되였고 불굴의 투쟁의지와 만난을 헤쳐나가는 추진력과 결단력, 그 열정적인 자세에 존경을 머금었었다.

요즘에는 직업적인 연고로 문학, 예술계 명인들의 전기를 주로 읽는다. 로신과 동시대인물인 조취인이 쓴 “로신평전”, 송우혜의 “윤동주평전” 등을 세세히 정독했다.

시대에,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이들의 깊은 사상과 력동적인 몸짓을 읽으면서 우리 조선족작가들에게는 왜 여태 인물전기 쟝르가 소외되고 있는지에 커다란 유감을 가졌었다.


2

뒤미처 우리문단에서도 인물전기서들의 “봇물”이 터진듯 하다.

우선 연변대 김호웅 교수와 김학철옹의 자제분인 김해양의 공저로 된 “김학철 평전”이 중후한 모습으로 나왔다.
평전은 김학철옹의 문체를 그대로 닮았다. 조선족문학의 거목이며 비운의 작가인 김학철옹의 삶이 때론 유머러스하게, 때론 비장하게 손에 잡힐듯 그려져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초창기지도자의 한분인 “조룡호 전기”도 나왔다. 
전기는 자치주 주장직을 력임했던 조룡호의 항미원조시기로부터 자치주창립, 문화대혁명, 개혁개방시기에 이르기까지의 파란많은 려정을 비교적 완정하게 기록하여 연변조선족자치주 발전력사를 료해하고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는 평판을 받고있다.

장편인물전기 “중한우호의 전기인물 한성호”도 출간되였다. 40만자에 달하는 작품은 중한수교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한 한 애국화교의 노력을 진실하고도 감동적으로 기록했다.

연변대학 전 총장 림만호 평전도 최근 발간됐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형제여라”라는 부제가 붙은  평전에서는 연변대학교 창시자의 한 사람으로 대학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한 교육자의 삶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자치주 부주장을 지냈던 최채에 대한 인물전기 “불멸의 영령”도 올해부터 대형문학지 “장백산”에서 인기리에 련재중이다.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인물전기들은 근년래 침체화, 단일화 경향을 보이던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해 주고 있다.

 

3

앞선 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들이 이루어낸 업적에 대해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재구성하고 기술하고 있는 인물전기는 독특한 매력을 가진 쟝르로 우리가 새로이 주목할 만한 령역이다.

인물의 전기를 읽는것은 그속의 사람들을 흉내 내거나 비판하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인물군(群)에 싸여있는  나의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지도 역할을 할수가 있을 때 더 보람이 된다. 즉 시대와 력사를 따라가야 한다는 초조함이나 렬등감의 상쇄가 아니라 당대의 전체 지형속에서 나의 위치를 가늠해 보고 어떤 메시지나 교훈을 얻는데 유용할것이다. 어쨌거나 타인은 우리의 거울이다. 나의 주변에 얼마나 훌륭한 인물들이 많은가를 알면 살맛이 나고 그것을 력사를 통해 알면 용기며 신뢰도 더 해진다. 많은 인물들에 자신을 비출수록 자신이 자랄수 있는 토양이 풍요로워지는것이다.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와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볼수 있다. 변화의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한다.

옛날부터 초상그리기를 진영(真影)이나 영정(影幀), 화상(画像)이라 불렀다. 얼굴 그림은 내면적 정신세계를 담아야 그 진가가 인정되였다. 마음까지 아우른다는 뜻에서 초상화그리기를 사심(写心)이라고도 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생을 그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전기는 빈틈없는 론리와 현실에 대한 탁월한 리해력을 바탕으로 한다. 작중인물의 생애와 사상의 얼개를 짜 맞추는 과정에 그 정신과 마음을 온전히 기술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인 것이다.

살펴보면 우리 문단에서 인물전기서들이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다.
주로 상업인이나 기업인에 대한 인물전기가 나오긴 했으나 대개 기업인 자신들의 요청에 따라 2류, 3류 작가들이 필봉을 허비하여 쓴것이였다.

문인들은 흔히 랑만주의 세계관을 가져 물질적 성과를 중시하는 상계, 기업계의 특성을 싫어한다. 때문에 기업인들을 위한 전기물을 쓰는것은 그닥 광채롭지못한 일로 간주되여 못마땅해하는 일각의 풍조가 한때 있었다. 작가들이 잠깐 인터뷰하고 나서 글 솜씨를 발휘하거나 기업인들이 건네 준 일방적인 자료로 꾸며쓴 쪽이 많아 많아 작품성의 “함량 미달”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였다. 또 지나치게 미화된 내용으로 일관하여 왜곡이 많은데서 기업인 창업자의 발자취를 조명하려는 애초의 본뜻과는 달리 독자들의 반감을 초래해 이 좋은 쟝르를 폄하(貶下)의 시선으로 보았던 경우도 있었다.

어떤 인물전기들은 자료가 빈약하기도 하거니와 일방적으로 치켜세우거나 부정으로 일관 짓는다. 또 쓰고자 하는 사람의 삶의 론리가 어긋나 있고, 협소한 안목과 어수룩한 필재가 혼재할때 진정한 인물전기의 품격과 괴리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감이나 질시가 있긴했지만 그렇다고 인물전기 집필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적어도 특정 분야에서 특출한 업적을 남긴 위인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역할 모델”로서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후세에 빛으로 남을 인물이 어디 한두사람뿐이겠는가. 흔치는 않을지라도 그런 위인은 각 분야에 있게 마련이다. 나라, 민족마다 예술가는 물론 학자, 종교인, 기업인, 군인, 정치 지도자 중에서 위인으로 내세울 만한 인물이 적지 않다.

사회가 거대하고 복잡해질수록 불확실성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고잇는 현대인들은 한 시대를 놀래웠던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것 같다. 그 시대를 온몸으로 껴안아 력사와 하나가 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네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은 우리 현대사의 간난(艰难)과 궤를 같이하고있는것이다. 인간의 가능성이 극대화된 그런 력동을, 그런 격정을, 그런 총체성을 이 사회가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우리는 위인들의 생애와 그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 등을 사회적 자산으로 삼아 재창출하는 일에 소홀해 왔다.

이처럼 작가들의 내공이 배여 있는, 쓰고저하는 인물의 공(功)과 과(過)를 엄밀히 평가하고 진실을 바라보는 랭정과 온유와 절제의 품격이 두드러진 인물전기수작(秀作)을 읽을수 있기를 우리의 독자들은 바라고 있다.
변혁기 흔들리고있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지혜를 발휘할 때다. 작가들의 필끝에 누가 선정되느냐에 따라 그 영향과 함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에 따라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새롭게 투영하여 만방에 자랑스럽게 과시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气)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 것이다.


"연변문학" 2008/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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