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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日本內閣總理大臣原敬 閣下
기미 칠월 일 조선인사 서일(徐一), 계화(桂和), 김붕(金鵬), 김일봉(金一鋒), 정신(鄭信), 김성(金星) 등은 일본내각총리대신 원경(原敬) 각하에게 삼가 글을 보냅니다. 무릇 시(時)는 다시오지 않고 세(勢)는 양립할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시무(時務)를 아는 자는 세(勢)에 연유하기를 귀히 여기고, 세위(勢位)를 잡는 자는 시(時)타기를 귀히 여기니, 이것이 소위 시무(時務)와 세위(勢位)가 아니면 영웅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금일 일본은 과연 동아선진국이니 저희들은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훗날 일본이 또다시 세계 부강국가가 되니 저희들은 또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사자(執事者)는 조선인으로써 조선을 위해 듣기를 꾀하지 않을 수 없으니 동양의 다행스러움이 심합니다. 시험삼아보건대 서세(西勢)가 동점(東漸)하는 것이 날로 심한데 하루라도 오히려 동양인의 위세가 멀리 서양땅에 한치라도 보탰다는 것을 듣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무릇 오족(五族)중에 세력의 우승(優勝) 경계를 점한 자는 오로지 백인(白人)이며, 6대주(六大洲)중에서 크게 시국의 경쟁마당이 된것은 오로지 동아(東亞)입니다. 영국이 인도에게, 프랑스가 안남에게, 독일이 소아세아에게, 아프리카가 서백리아에게 있는 것이 모두 그러한데, 오로지 일본이 욱일승천(旭日昇天)하는 기세로 원동(遠東)의 한 모퉁이에서 일어나 유신(維新) 50년에 울연(蔚然)히 동아(東亞)의 강자가 되었으니, 일전(一戰)하여 청조(淸朝)에서 대만(待滿)을 나누어 가지고, 두 번 싸워 아령에서 여순을 빼앗고, 세 번 싸워 덕조에서 청도를 점거하였습니다. 이에 일본의 세력이 해가 중천에 뜬 것 같아서 백인의 원동(遠東)의 책략이 드디여 크게 꺾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다만 땅을 넓힐 계획에만 힘쓴다면 이미 심근고체하여 황족(皇族: 아시아황인종) 사이에서 우이(牛耳)를 잡자고하는 것과 같으니, 장차 백인(白人)의 뜻을 능가함이 있다면 일본이 지금 동아세아에 베플고 있는 책략 또한 이미 늦었을 뿐이니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19세기 이래로 서인 침략주의의 자취를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진실로 20세기가 갈수록 새로워지는 좋은 계책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 성효(成效)는 항상 착착(着着) 서인(西人)의 뒤에 서게되니 어찌하겠습니까?
다행인것은 한늘은 가득찬 것을 누르고, 크게 강한것은 반드시 꺾으므로 구주의 전쟁이 생각 밖에서 일어나면 백인이 우세하고 강한 자가 저절로 서로 죽이는 까닭으로 황족의 화가 그 때문에 조금 늦어질 뿐입니다. 만약 수천년전에 백인국으로 하여금 마음과 힘을 합하여 오로지 원동(遠東)의 계책에 뜻을 두었다면 하나의 일본으로는 능히 그 칼끝을 묶어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세가 진실로 추(鄒)나라로 초(楚)나라 대적하기를 면하지 못하고 황족(黃族)의 살이 백인의 강식(强食)이 되지 않는 것은 거의 드믈 것입니다. 지금 즉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의 세력이 한 번 죽고 한 번 다치는데 만약 가운데 서서 그 변하는 것을 보는 자가 있어서 다치는 것을 따라서 찌른다면 저 백인이 어찌 저자거리의 새끼줄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때에 황족이 떨치지 못하는 것은 그 또한 백인의 다행일 뿐입니다. 개전(開戰)이래 구주(歐洲)와 백인(白人)의 나라가 상처를 입지 않음이 없었는데도 백년동안 도모하던 원동(遠東)의 책략이 일거에 땅을 휩쓸자 이에 서서 도모하는 자는 그 배꼽을 씹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자는 그 발을 그려서 시(時)를 구하고 세(勢)를 당길 책략에 급급(汲汲)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평화(平和)의 회의가 겨우 끝나자 연맹(聯盟)의 논의가 또 거론되니, 이 두가지가 백인을 위한 계책이라 한다면 가(可)하나 진실로 황족(黃族)의 이로움은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수 년 동안의 전쟁에서 백인의 성년(成年) 중 열에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 이와 같은 수년을 이어간다면 백족은 남아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평화회의가 부득불 속개(續開)되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 난(亂)을 겪는 여러 국가로 하여금 백성과 더불어 휴식함으로써 삶을 도모하고 교훈의 계책으로 삼지 않는다면 백족(白族)의 강일(强日)이 없으니, 연맹회가 부득불 계속해서 일어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백인 은 어찌 능히 동아(東亞)의 여러 나라를 두려워하게습니까?
오로지 하나의 일본이 있어서이니 백인이 베개조차 감히 높이베지 못하고, 황화(黃禍)의 설이 따라서 일어나면 밖으로는 평화(平和)의 주장을 펼쳐 동서(東西) 소약(小弱) 제족(諸族)들이 합치기를 유혹(誘惑)하지만, 안으로는 실로 황족(黃族)의 강자(强者)를 견제(牽制)하는 것입니다. 호주는 인종차별을 철페하고자 하지 않는 나라인데 이것이 아니면 어찌하겠습니까?
미국은 배일(排日) 운동을 때만 있으면 격렬하게 일으키는 자인데 또 이것이 아니면 어찌하겠습니까?
이것이 진실로 동양지사들이 한 번 아프고 두 번 눈물 흘리는 때인데, 방관자(傍觀者)는 이것을 황족의 위기(危機)라 하지 않는 자가 없고, 당국자(當局者)는 오로지 스스로 편안히 여기는 계책으로 삼는 즉 어찌 스스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계책에 빠진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진취주의(進取主義)를 견지하는 자는 걸핏하면 섬나라는 답답해서 살수가 없을 뿐이니 반드시 한반도를 병탄(倂呑)해서 대륙으로 나아가는 거점으로 한 연후에야 동양의 패권(覇權)을 잡을 수 있고, 서양인이 세상에 횡행(橫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오호라, 이는 바로 시(時)를 지나치고 세(勢)를 거스르는 주장입니다. 대저 시(時)와 세(勢)라는 것은 상(常)을 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고의 전제국가인 로시야(露西亞)가 변하여 공화정이 되니 시(時)에는 상위(常位)가 없으며, 세계최대 강국인 보로사(普魯士: 프로이센)이나 한 번 패하여 포로 죄수가 되니 세(勢)에는 상승(常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바로 민족평등의 시대이며, 특별히 지난날 한 사람이 횡행하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한 즉 소위 침략주의자(侵略主義者)는 이미 호로(葫蘆)가 되었을 뿐입니다. 다만 조선 한 가지 일로 논한다면 합병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한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것이 불리를 야기하는 것은 거의 굽힐 수 없으니 무엇때문입니까?
조선은 오래된 나라입니다. 그 역사가 독립되고 그 종교가 독립되였으며 언어 문자 윤리습속에 이르기까지 한가지라도 독립하지 않음이 없으니 진실로 대만(臺灣)이나 유구(琉球)에 비할바가 아닙니다. 만약 그 백성의 지혜가 조금이라도 열리고 인심(人心)이 자결(自決)한다면 수 십년내에 정부가 동화(同化)를 고심한 것이 헛된일로 돌아갈 뿐이니 그 것이 첫 번째 불리함입니다.
합병한 이래 한국에게 베푼 시책이 성수불루(盛水不漏)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생각이 압죽사순 달퇴암수인 까닭에 관리에 있는 자 감히 대도시 가운데를 혼자 걸을 수 없어서 항상 경찰의 역할에 급급해야 하며, 마음을 쓰고 재물을 쓰는 것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것이 두 번째 불리함입니다.
조선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온 나라의 재물을 통털어도 경상의 용도에 제공할 수 없어 모국(母國)의 재물을 쏟아 보충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것이 세 번째 불리함입니다.
조선은 강한 민족입니다. 임전무퇴(臨戰無退) 배물견적(背勿見敵)의 유훈(遺訓)과 여습(餘習)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젖어왔습니다. 그러므로 조춘(早春)에 독립(獨立)을 선언한 이래로 적수단심(赤手丹心) 갑부을기(甲仆乙起)로 사상(死傷)과 형옥(刑獄)의 참상(慘狀)을 당하였으나 분발하여 스스로를 돌보지 아니하고 광복한 후에야 그만두기를 기약하니 까마귀도 궁하면 오히려 쪼는데, 하물며 온 나라 사람이 일심(一心) 동성(同聲)함이겠습니까? 만약 일본으로 하여금 대규모로 진압정책을 시행하고 수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수억의 재물을 쓴다면 다행히 전승(全勝)하는 공(功)은 있겠으나, 진실로 그 마음을 열복(悅服)시키기에는 어려우니, 그것이 네 번째 불리함입니다.
또 황족의 다툼은 백인의 이득이니 조개가 도요새를 물면 받드시 어부의 독수(毒手)가 있을 것이며, 참새가 사마귀를 잡으면 우인(虞人ㅡ 경험이 많고 능숙한 사냥꾼)의 비탄(飛彈)이 없을 수 없으니, 그것이 다섯 번째 불리함입니다.
일한(日韓)의 다툼이 한 번 일어나면 중화(中華)의 반대당과 (俄國)의 과격파(過激派) 또한 장차 기회를 타서 동양평화를 유지하는 대책이 장차 무너질 것이니, 그것이 여섯 번째 불리함입니다.
또 일본의 강함은 구미(歐美) 사람이 싫어하는 바가 될것이며, 그것이 조선독립을 도와 독립(獨立)하게 하는 것이라 말하는 자가 어찌 우리 한국을 진실로 애련(愛憐)해서이겠습니까? 그 방도가 진실로 일찍이 일본의 세력을 점점 깎으려는 것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으니, 반드시 군사를 일으키는 일에 재물을 써서 없애는 것에 조금도 아까움을 돌아보지 않고 하나로서 팔(八)을 굴복하려고 하니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습니까? 그것이 일곱 번째 불리함입니다.
이러한 큰 불리(不利)가 있는데도 일본이 오로지 유리하다고 한다면 저희들은 리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동아를 위한 계책으로는 두가지 이익에 만전을 기하는 것만한 것이 없습니다. 조선을 분립(分立)함으로써 지난날 우방이 부식(扶植)한 맹약을 실천하고, 중화(中華)와 친선(親善)함으러써 동양평화유지 정책을 온전히 하는 것입니다. 정치(鼎峙)하여 서고, 순치(脣齒)로 의지하며 그 주권을 굳건히 하고, 그 실력을 배양하여 구미 사대강국과 능히 싸울 수 있은 다음에 나아가 안남(安南) 인도(印度) 등 백인에게 속박아래에 있는 동아 제족(諸族)들을 구한다면 서인(西人)들이 감히 고기를 묵듯이 할 수 없으며, 동양인들은 일본에 덕(德)을 돌리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무릇 이와같이 한다면 천하(天下)를 대적하는데 장차 무엇이 꺼리껴 하지 못하겠습니까? 백인이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일본이 홀로 동아의 영웅이 되는 것 또한 시세(時勢)의 조화가 아님이 없으며 실로 천년에 한번도 만날 수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때가 이르렀는데 행하지 않으면 지자(智者)가 경계할 바이며, 그 허물은 적은 것이 아닙니다. 어찌 당국(當局) 집사(執事)가 심모원려(深謀遠慮)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병렬(竝列)하여 오강(五强 )을 논하자면 일본이 자부심으로 기뻐하기에는 부족하며, 인종차별은 바로 일본의 막대한 치욕입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이 계책을 계획한 것은 진실로 선제후진(先齊後秦)이 아니며 일본이 이 계책을 쓰는 것 또한 위초비조(爲楚非趙)가 아닙니다. 원컨대 광부(狂夫)의 말이라 하여 버리지 말고 또한 사사로이 도모한 것이라 의심하지 않으신다면 진실로 우리 동양의 다행이요 황족(黃族)의 복입니다.
각하의 판단을 공경하며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원문은 漢文으로 되어있음)
하라타카시(1856~1921)ㅡ 모리오까시태생.
1879년 사법성법학교중퇴. 기자생활을 거쳐 외무성에 들어감.
1892년, 조선에 와서 정부와 <<방곡령사건>>의 배상액을 협상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1896년,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부임되였다가 이듬해에 사임하며 이후 오사까마이니찌신문(大阪每日新聞) 사장이 된다.
1900년, 이또오 히로부미 내각의 체신상을 거쳐 1902년에 중의원의원으로 되고 1918년, 데라우찌내각이 무너지자 내각총리대신이 됨.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종래의 헌병경찰제도를 페지하고 이른바 문화정책을 표방하였으나 1921년에 도꾜오역에서 암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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