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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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半島의 血 제1부 5.
2012년 09월 12일 00시 34분  조회:3504  추천:0  작성자: 김송죽
 

 

 

   5.

 

   여름내 짙푸르던 나뭇잎들이 말라들면서 울긋불긋 변해가기 시작한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멋스러운 글구로 풍요로움을 묘사하는 계절이 왔건만도 이해의 가을은 그렇지 않았다. 전에는 이맘때면 그래도 탐스럽게 익은 누런 벼이삭이 논두렁넘어까지 고개를 숙이였건만 올해는 고개숙인 벼이삭이 논두렁을 넘기는 새려 오망스레 일찌기 내린 된서리를 맞아 채 여물지 못하고 반죽정이로 돼버린 가벼운 벼이삭이 가을바람에 시달려 당장 사그라질 지경이였다. 그거라도 건져보려고 논판 여기저기에다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웠다. 한데도 꾀가 약아진 참새들이 기어코 벼알을 까먹어보겠다고 떼를 지어 극성을 부렸다.

   몰염치한 그 자식들을 멀리 쫓아버리느라

  《휘여ㅡ휘여ㅡ》

   논밭지키는 사람들은 진종일 목이 쉬도록 진땀을 빼고...

   올해는 이같이 작황이 좋지 않아 집집이 한숨이였다.

  《또 흉년꼴이니 어떻게 하나?》

  《그레게 말이우. 차지세는 그대루 깔축없이 바치라구 할거고....》 

  《하늘이 주는 재(災)를 무슨 수루 막아낸단말이요.》

   앞이 막막하면 신세타령을 했지 손바닥만한 논밭뙈기는 차마 버리지 못해 매이여 살아가는것이 이제는 여기 이 금희동사람들이 걸머진 운명이기도 했다. 

 

           한푼 두푼 돈나물 꾸부렁 휘여 활나물

           매끈 매끈 기름나물 돌돌 말아 고비나물

           친친 감아 감돌레 집어뜯어

           술마셨나 취나물 어렵사리 고사리.

 

   벼가 아직 누런 색을 쓰기전 보릿고개에 때맞추어 산야 도처에 돋아나는 고사리! 먹지 않을수 없어 먹어오다보니 상식(常食)이 되어버린 고사리를 제철에 부지런히 꺽어 말리워 둔 집은 그나마 식량을 어느만큼이라도 비축(備蓄)한 셈이 되련만 그나마 때를 놓힌 집들에서는 도토리주으러 나선다.

 

            늙은이만 남아 빈 집을 지킨다

            사흘을 굶다 못해

            도토리 주으러 산으로 간다....

         

   력사상 고려 충렬왕(忠烈王) 24년에 몹시 가물어 류민(流民)이 생기고 아사가 속출했다. 이때 충렬왕은 수라상에 상수리밥을 올리게 하여 구난(救難)의 본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유사이래 도토리는 기근을 당해 굶어죽지 못해 먹는 구황식품(救荒食品)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처럼 기아와 밀접한 함수관계인 도토리는 조선의 력사에서는 기근의 대명사로도 되고있었던 것이다.

   서기학(徐夔學)이네는 도토리는 먹지 않고 그래도 일일 조반석죽(早飯夕粥)이였다. 그 멋으로나마 끼니를 이어갈수 있으니 참 다행인가싶었다. 식생활관습과 식사례절이 안받침되어 한 민족의 독특한 풍습을 갖추는 것이요 그것은 또한 자체의 민족정서를 풍기기도 하는것인데 이런 꼴로 때를 겨우겨우 에우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전체 조선민족의 상습으로 되여서는 좋은것이 아니였다.

   나어린 기학(夔學)이는 재황도 재황이러니와 탐관의 수탈을 이겨내지 못해 남부녀대로 사생결단하고 비법월경하겠다는 사람들, 만주로 로씨야로 줄줄이 떠나던 그네들의 그 참담한 정경을 눈앞에 다시금 떠올렸다. 그것은 인간의 량심을 갖고있다면 그 누구라도 도저히 지워버릴수 없는 눈물겨운 경상(鏡像)이였다.

  《우린 끝까지 벗텨낼테다! 고향을 지켜내 볼테야!》

   올농사가 흉작이라서 온 동네가 반기아상태로 변해가고있었건만, 행운이 오기를 바라는 기학의 마음은 이같이 천진하면서 굳셋다.

   기학(夔學)의 큰할아버지도 그렇고 큰할머니도 그렇고 두분 다가 참말로 부진런하고 근신하고 법없이라도 살 어리무던한 분들이였다. 큰할아버지 서장련은 동네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치 농사일에는 미릅이 튼 실농군이였다. 그리고 큰할머니는 집살림을 물이 못나게 하거니와 작식솜씨가 뛰여나서 동네 주부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아가며 사는 녀인이였다. 그녀는 쌀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밥을 맛갈스레 지을줄을 알뿐만아니라 영양분있는 잣죽, 석이죽, 행인죽같은것도 잘했다. 장만드는 솜씨도 그러했다. 담습장, 즙장, 수시장, 고추장같은것을 잘 담그었거니와 여러 가지 김장김치는 물론 철따라 나박김치, 깍두기, 장김치, 풋거리김치, 오이김치....제 고향 함경도 갓김치는 제 특색이 있게 담그었다. 어디 그뿐인가, 경기도나막김치며 개성보쌈김치며 평안도가지김치와 평양동김치까지 만드는 법을 솔선알아다가는 동네 녀인들에게 품놓고 차견히 배워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먹거리를 놓고서도 그것을 만들줄 몰라 먹지 못하면 굶어싸지, 누굴 원망할가.》

   그의 이 말은 틀리는것이 아니였다.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가정주부였건만 정작 남편이 병나니 속수무책이였다. 이 일만은 의원을 청해서 맡겨야했던 것이다.

   어느날 저녁켠 기학(夔學)이가 공부를 다하고 집으로 돌아오보니 약혼녀 희연이가 와있는데 할머니가 낯색이 흐려갖고 한숨을 쉬는것이였다. 그래서 무슨일에 그러시느냐고 물으니 할아버지께서 앓는다는것이였다. 과연 저녁상을 갖춰놨건만 그는 들념을 하지 않고 웃방에 올라가 자리펴고 누워있었다.

  《병났으면 어서 의원을 불러 뵈야지요. 가서 돈을 달라구해야지.》

   기학(夔學)은 말해놓고 생각해 보니 지금 집에는 치료금조차 없었다. 하여 그는 지체없이 함흥을 바라고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희연이가 자기도 가겠다며 따라나섯기에 기학이는 그를 데리고 떠났던 것이다. 기학이는 두 번 함흥에 가봤지만 희연이는 초행이였다.

   할머니는 앓는 사람을 지켜봐야했다. 그러니 부득불 기학이가 돈구하러 떠나게 된건데 둘이면 동무가 되리라며 희연이도 따라가기싶어했던 것이다. 한데 희연의 부모들이 정신나가지 않았냐 남들이 알면 코쥐고 웃을일이라며 펄쩍 뛰였다. 이에 기학(夔學)이는 웃겠거든 웃으라지요 남을 그렇게 무서워하구야 어떻게 사나요 하고 배포유한 소리를 했다. 희연의 부모님들은 할말이 없는지라 그럼 데리고갔다오너라 승낙하면서 로비까지 얼마간 주었다.

   둘은 금희동을 떠나 도보로 장평리, 송진산을 지나 웅기까지 가서 거기서 경성만(境城灣)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그것은 짐도 싣고 객도 나르는 배였는데 선체가 낡아보이는 범선이였다. 기학이는 재작년여름에 큰할아버지를 따라 함흥에 갔다 올 때도 이 배를 탄 기억이 났다.

  《쌍둥일가?》

  《그런거 같잖아. 쌍둥이면 모색이 어디라두 좀....》

  《그러믄 오누일게요. 모색다른 오누이는 있으니까.》

   배에 올라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그들 둘을 딴눈으로 눈빗질해 보면서 입정을 놀려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학이는 얼굴이 확끈해났다. 화로를 뒤집어쓴 것 같기도했다. 그는 제얼굴을 남한테 보이지 않으려고 눈길을 줄곧 먼바다에 던졌다.

   순풍이라서 배는 별고없이 바다우를 미끌듯이 잘도달리였다.

   아느새 지나서다. 생각밖에 희연이가 엉덩이까지 내려닿이는 치렁치렁한 머리태를 꼭대기에 틀어얹고는 기학이를 건드리면서 바다구경은 그만하고 자기를 좀 봐달라 했다.

   기학이는 눈길을 돌려보고 깜짝 놀랬다.

  《아니, 네가? 이게 뭐!...》

   희연이는 풍염한 얼굴을 피여올렸던 부끄러움을 말끔히 지워버리면서 변명쪼로 되물었다.

  《어때, 보기싫어? 아무때건 언즐건데 뭐. 쌍둥이니 남매니....난 그따위소린 질색이다. 듣기싫어, 정말 듣기싫어.》

   그런 소리 듣기싫기야 기학(夔學)이도 매한가진데 희연이가 이같이 무겁하게 남이 알면  코를 쥐고 웃을 외람된 짓을 할줄은 몰랐다. 그는 기가 찬다는 뜻에서 씩 웃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틀어 얹은 머리를 당장 풀어내리라는 말은 못했다. 희연의 말마따나 아무때건 얹을건데 하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고패쳤기 때문이다.

   희연이는 제 입을 기학(夔學)의 귀에다 바싹 대면서 독촉했다.

  《너도 머리올려버려 어서! 그리구 여길 떠나자! 자리맡아놨어, 저ㅡ어ㅡ기!》

   기학(夔學)이는 얼낌덜낌에 시키는대로했다.            

 

   경성만까지 간 배가 남쪽으로는 더 가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바다가에 있는 중평리(中坪里)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되였다. 여기는 경성군이였는데 군소재지 경성이 가까왔다. 가보고싶었다. 하지만 이틑날 아침에 일찌기 떠나는 배를 놓칠가봐 경성에 가볼 생각은 지워버렸다. 기실 그들이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다닐 걸음이 아니였던거다.

   중평리에 임시생겨난 려인숙인데 주인은 하루밤을 묵겠다니 두말없이 방 하나를 내주었다. 머리틀어 얹은 희연이를 보고 소부(小婦)라 부르더니 과연 이들 둘을 한쌍의 소년부부로 여기고있음이 분명했다.

  《어때, 기분 무등좋겠지?》

   희연이가 옹배기에 발씻을 물을 떠다 놓고 넌짓이 걸어보는 말이였다.

  《너의 부모님들 오늘밤 우리 한구들서 자는걸 알면 야단칠거다.》

  《체, 부모님 야단하는거 무서워하구야 어떻게 사니?》

   희연이는 떠날 때 부모들이 아직 혼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남들이 알면 어쩌냐며 데리고 오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 같으니 그가 하던 말을 본따서 이렇게 비꼬는 쪼로 내던졌다.

   기학(夔學)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자기가 담약했음을 승인했다. 

 

   이틑날 아침에 배에 오른 것이 마전해안(麻田海岸)을 돌아 흥남(興南)까지 닫고 보니 함흥만(咸興灣)에 저녁놀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흥남에서 하선(下船)하여서는 작은 련락선을 갈아타고 함흥으로 들어가게 돼있는데 바다배타고 바다구경을 처음하는 희연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희구하게만 느껴졌다. 드넓은 바닷물은 숨을 죽이고 고요한데 항만의 부두에는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 올리면서 《부ㅡ웅ㅡ》웅글진 고동을 트는 륜선도 있고 층집모양의 륜선도 있었다. 모두들 이런 외국배를 이양선(異樣船)라 불렀다.

   기학(夔學)은 혼자말같이 중얼거렸다.

  《작년에 왔을적만 이양선이 썩 많아졌구나!》

   갈아탄 련락선이 북에서 내려와 항만으로 흘러들고있는 경천강(鏡川江)물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고있었다. 눈앞에 활짝 펼쳐진 널다란 평야를 보면서 희연이는 이번에도 감탄사를 올렸다.

  《세상에, 이렇게 넓은 땅도 있나베!》   

  이때의 함흥은 도시모양을 갖추고있었다. 거리에 점포를 비롯해서 여러가지의 상점들이 꽤 있었다.

   기학(夔學)이는 희연의 손을 꼭 잡고 다니면서 우선 상점구경부터시켰다.

   광목, 생목, 옥양목, 아마포, 모스링, 후란데스, 라사천과 서양식의 각종 면직들이 구색맞춰서 울긋불긋 색깔도 가지가지인데 한켠 다른 상점의 매대에는 손거울, 머리빗, 가루분, 구름, 머릿기름, 당성냥, 돈지갑, 남포등, 지우산, 왜포수건, 옥도정기.... 없는 것이 없었다. 개중에는 처음 구경하는 것이라서 희연이는 그것들을 일일히 만져보면서 사기싶어했다.

  《이담 돈벌면 다시보도룩 하구 이젠 그만 가자!》

  기학이가 끌어서야 희연이는 정신차리는 것이였다.

 

  함흥의 생부생모는 느닷없이 나타난 아들과 희연의 머리모양새를 보는 순간 소스라칠 지경 놀랬다.

 《아니, 너들이 잔치는 언제했게 이모양들이냐?!》

  이 한쌍의 철딱서니없는 미래의 어린부부는 올린 머리태를 내려놓고 들어와야한다는걸 그만 까먹다보니 이같이 한심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있었던 것이다.   

  《잔치라니요. 안했는데요, 뭐.》

  《이건 우리가 꾸미느라구....》

   올때의 일을 말했더니 두분다 듣고나서 어처구니없하면서 죽겠노라고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했다.

  《죽은 사람 들으면 관차고 일어날 짓을 너희들이 하는구나. 세상웃긴다!》

   기학(夔學)의 생모는 너희들이 이렇게 떨딱서니 없이 놀다가는 집안을 망신시키겠다면서 어서 혼례를 치뤄줘야겠다고 했다.

  《쳇, 우리 언제 그걸 재촉하던가요. 실은 화급한 일이 있어서 이같이 선문도 없이 급자기 닥친걸요.》

   기학(夔學)이는 인제야 일체불구하고 찾아오게 된 연유를 말했다.

   생부는 듣고나서 두말없이 돈 20원을 내놓으면서 지금 소지하고있는 현금이라고는 다 털어봐야 이것뿐이니 이거라도 먼저갖고가 빨리 의원을 보이거라, 돈이 더 준비되는대로 갖고서 내가 뒷따라 가마해서 기학(夔學)이와 희연이는 밤자고 이틑날 인츰돌아섰다.

   함흥시내를 나온 그들이 흥남의 부두에 도착해 알아보니 마침 울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로씨야배 한척이 있었다. 그 배가 조산만(造山灣)을 들려간다니 두말않고 제꺽 올랐다. 웅기(雄基)가 조산만에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제집문앞까지 간거나 다름없는거라 놓쳐버리면 후회막급하도록 맹랑한 일일것이다!     

   그 배에는 로씨야인 외 일본인, 불란서인, 영국인, 독일인도 타고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반수이상은 조선사람이였다. 일종의 본능적인 동포애랄가, 기학(夔學)의 눈길은 자연히 그들쪽으로 쏠리였다. 한데 그네들 가운데 어쩌면 외국인같이 신사다운 사람은 하나도 안보인다. 학생, 장사꾼, 주정배, 왈짜와 무뢰배....오가잡탕이였다.

  《외놈들이 트럼프를 놀면 우린 엿방망이를 놀지.》

   조선선객 몇이 도박판을 벌리렸다.

   기학(夔學)이는 그들이 노는것을 구경하다말고 푸르른 바다에 정신을 팔았다.

 

   웅기부두에서 하선(下船)한 그들이 거리를 거닐면서 볼라니 어느 한 소슬대문앞에 사람들이 웅게중게 모여선 것이 눈에 잡히였다. 저기서는 또 무슨일이 벌어졌을가?.... 기학(夔學)이도 은연중 다른 행인과 마찬가지로 걸음을 그쪽으로 옮겨놓았다.

   키큰 사람들이 앞을 막아 그는 아무리 목을 빼고 발돋움을 해도 안을 들여다볼 재간이 없었다. 지끈지끈 매질소리에 아파죽겠다고 내지르는 애처로운 비명이 소슬대문을 나와 거리까지 퍼지고 있었다.

   《정말 너무하우. 그래두 때리지야 말아야지. 저러다가 사람이 불구나 되면 어쩔라구.》

    모여선 구경꾼중 나이 지숙한 사나이가 하는 말이였다. 

   《왜 저럽니까? 사람을 왜 함부로 때리는가말입니다.》

   그 사람은 털보였는데 기학(夔學)이가 자기와 물어보는지라 아래우로 훑어보더니 입을 다시열어 알려주는것이였다.

   《올해 차지세를 물지 못하겠다구 말을 꺼냈다가 저 봉변이란다.》

   《그러면야 지주는 정말 악귀야차같은 인간이네요. 올해 작황이 어떠하다는걸 알고나저럽니까. 연명하기도 어려운데 차지세를 받아내다니요, 원.》

    나어린 기학(夔學)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노날같이 일었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말을 더 하지 말고 진정하려했다. 그내놓고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저 지나쳐버릴 일 같지 않았다. 자기가 그런다면 그것은 비겁한 자의 불도덕(不道德)이며 회피(回避)요 불의(不義)인 것 같아서 그는 용기를 내서 나 좀 봅시다 길 좀 비키시오 하며 모여선 사람들의 사이를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민비의 매관매직(賣官賣職) 놀음에 지나간 1892년에 리조판서는 세 번, 례조판서는 아홉번, 형조판서는 일곱 번, 공조판서는 열네번이요 한성판윤(서울시장)에 이르러서는 스믈네번이나 갈리였는데 이 소슬대문의 집주인 황판서는 3만원짜리 어음쪽을 내고서도 돈액수가 자라지 않아 실함을 얻지 못하다보니 이 판에도 끼이지 못하고 빈깍대기 지위뿐인 차함을 얻어 그렇게 불리우게 된 사람이였다. 본명은 기훈인데 촌에는 조상이 물려준 땅마지기가 있고 몇해간 어물전(魚物廛)을 차려서 부자가 된 자였다.

   오늘 촌에서 그의 땅을 부치고있는 농부가 올해는 천재에 의해 작황이 영 말이 아니니 차지세(借地稅)를 면제해주십사고 청을 꺼냈다가 그만 그의 졸개들손에 이렇게 변을 당하는 판이였다.

  《엇다대구 허튼짓이냐!》

   황판서는 한마디 던져놓고 집안에 들어가 얼굴짝을 감춰버렸다.

   하인이 들어가서 웬 소년이 판사님을 뵈옵잡니다 하고 알려서 황가는 들여보내라 허락했다. 그리하여 기학(夔學)은 위엄을 빼고 앉아 거만을 피우는 그의 앞에 서게되였다.

   황가가 눈주어 아래우로 아느새 뜯어보았다. 소년이 체구는 작아도 영준하고 당차게 생겼거니와 어딘가 위압감까지 주는지라 허투로 대하지 못했다.

  《소년은 누구관데 날 보자구 하오?》

  《저는 지나가던 행인이온데 어른님께 한가지 들여주고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들렸습니다. 이제 저의 얘기를 들어보시면 뭘 좀 아시게 될겝니다.》

   하는 말이 신기한지라 황가는 그럼 어디 들어볼테니 해보라했다.

   기학(夔學)이는 주인이 내주는 방석에 올방자를 틀고 앉아 량상군자(梁上君子) 얘기를 내리엮기시작했다.

  《저 후한 말엽에 있은 일인데요. 그때 진식(陳寔)이라는 사람이 태구현 현령으로 있을 때였답니다. 그는 늘 겸손한 자세로 현민의 고충을 헤아리고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함으로 해서 현민들로부터 존경과 애대를 몹시받았답니다. 그런데 어느해는 흉년이 들어 현민의 생계가 몹시 어려워졌지요. 그러던 어느날 밤이였습니다. 진식 그분이 대청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웬 사내가 몰래 들어와 대들보위에 숨지를 않겠습니까. 도둑이 분명했지요.

   해도 진식은 모르는 척 하고 독서를 그냥 하다가 아들하고 손자를 대청으로 불렀지요. 그래놓고는 그들과 말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되느니라. 악인(惡人)이라해도 모두 본성이 악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습관이 어느덧 성품이 되어 악행도 하게되느니라. 이를테면 지금 대들보에 있는 군자도 그렇지������

   그러자 ������쿵������하는 소리가 났답니다. 진식의 말에 감동한 도둑이 대들보에서 뛰여내린것이지요. 그 도둑은 마루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답니다.

   진식은 그를 아느새 바라보다가 말했지요

 ������네 얼굴을 보니 악인은 아닌 것 같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이런 짓을 했겠냐, 진식은 그에게 비단 두필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이로부터 이 고을에 다시는 도둑이 나타나지를 않았답니다.》

   황가는 기학(夔學)의 말을 곰곰이 듣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니 소귀에다 경을 읽은건 아니였다. 황가는 입을 열고 묻는 것이였다.

  《그대 보게는 이 일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고?》

  《쇠도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잖습니까. 저는 판사님께서 바다같이 넓은 도량으로 무마(撫摩)해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어 돌려보낸다면 그것이 현명한 처사가 되는줄로 압니다.》

   황가는 그 제의에 도리가 있다고 여겨 작인에게 심한 매를 댄건 잘못이라 스스로 반성하면서 받으려던 소작료를 면제해서 작인을 돌려보냈다. 

   금희동에 돌아온 기학(夔學)은 함흥에서 얻어 온 돈을 한푼 허실없이 큰할아버지 서장련의 병치료에 쓰리라 했다. 간염초기였는데 병원(病源)은 영양실조였다. 할머니는 남편이 일을 무리하게 했다고 나무리기도 하고 작솜씨좋은 자신이 남편공대를 등한시했다고 스스로 원망하기도 했다.

   한편 김노규선생이 병이 나았기에 김호선생은 자리를 내고 어디론가 또 가버렸다. 기학(夔學)은 그와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갈라진게 매우 섭섭했다. 접촉시간이 길지 않지만 그지간 배우고 깨달은 것은 적지 않았던 것이다.

   김옥균이니 박영효니 서광범이니 서재필이니 하는 피끓는 혁신자들이 주도가 되어 일으켰던 갑신정변ㅡ그것은 일본사람의 모략에 빠져 젊은 정객들의 웅지(雄志)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화(化)하고 3일천하라는 빈정대는 화제만이 속절없이 남겼다는 것을 알게된바다. 그러면서 또한 무어니무어니 해도 그에게 심리상 자극과 충격을 크게 준건 지난해와 올해사이 동학도(東學徒)들이 동산재기(東山再起)를 하려고 준동(蠢動)하는 그것이였다. 동학도들은 충청도 공주(公州)와 전라도 상례역(參禮驛), 서울 광화문 등지에서 수천 혹은 수만명 집결하여 웨치였다..

  《억울하게 처형된 조교(祖敎)의 죄명을 벗겨달라!》

  《국금(國禁)이 된 동학을 포교하게 하라!》

  그들은 지어 시위까지 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시천주 조화정 영사불망 만사지)

 

   이것은 병든 창생(蒼生)을 구제하기 위해 동학(東學)을 창시했다가 교수대의 이슬로 순교(殉敎)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가 내놓은 13자주문(呪文)이였는데 기학이는 짜개바지를 겨우 면한 동년시절에 벌써 그 뜻이 뭔지도 모르면서 다른 애들이 외우니 그저 따라서 쫑알거렸고 어른들이 욕하면서 못외우게 하니 다시 입밖에 번지지를 않은건데 기억만은 돌에 새긴것처럼 아직도 지워지지를 않았다. 한학을 배우면서 그 주문의 뜻인즉은 인간의 존엄을 되살려서 사람섬기기를 하느님모시듯 해야한다는 것임을 알게되였다. 그런데 그 동학당이 란을 일으켰다니 웬 말인가?

   서기학이 13살을 먹던 1894년 2월 15일이다.  

   전라도의 조병갑은 7만량으로 고부군수 벼슬을 산 사람이다. 이자의 가혹한 수탈에 살아갈 길이 막힌 고부군 농민들은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번에 걸쳐 관청에 몰려가 애원하였다. 그러나 조병갑은 듣는체도 하지 않고 도리여 농민 대표들을 란민(亂民)이라 하여 쫓아냈으며 장두 전창혁을 가두어놓고 때려죽였다. 이에 원한이 사무친 그의 아들이며 동학당 접주인 전봉준(全琫準)은 공분(公憤)과 사원(私怨)이 뭉쳐 탐관숙청(貪官肅淸), 민중옹호(民衆擁護)를 표방으로 혁신운동을 일으키고자 송두호(宋斗浩)를 책사로 하고 고부향장 손화중(孫和中), 태인의 김개남(金介男), 최경선(崔景善), 정익서(鄭益瑞) 등과 밀모한 끝에 2월에 고부에서 무리를 모아 척왜척양(斥倭斥洋)하고 전국적으로 탐관오리를 숙청하는 혁신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러나 충청감사는 동학은 나라에서 금하는바이니 함부로 도당을 불러모으지 못한다. 빨리 흩어져 돌아가라. 그러지 않으면 모조리 잡아가두리라 위협했다. 

   동학당은 이에 항의하는 방을 써서 네거리에 내다가 붙이였다.

 

������대저 왜놈과 양국 오랑캐가 개나 돼지와 같다는 것은 우리 동방 삼천리 삼척동자도 다 알고있는 일이어늘 어찌하여 명철하신 합하(감사를 가르킴)께서 왜놈과 양국 오랑캐를 배척하는 사람들을 도리여 요사스러운 무리라고 배척하시나이까? 그렇다면 개돼지에게 항복하는 자는 정당한 사람이란말이오니까? 왜놈, 양국 오랑캐를 치겠다는 사람을 죄인으로 돌려 잡아가두겠다고 하니 그러면 화평을 주장해서 나라를 팔아먹는 자에게는 상을 내리시겠나이까? 아아 슬프다! 우리 명철하신 합하께서 어찌 이리도 헤아리지 못하신단말인가? 혹시 사리를 모르는 자들이 왜놈과 양국 오랑캐의 종이 되어 관가의 명령에 순종할가 두려워 이 글을 네거리에 붙이노라.“

 

   정부군이 진압에 착수했다. 고부에서 투쟁을 시작한 분노한 동학군(東學軍)은 전주감영에서와 정부에서 보낸 관군을 련속 격파하고 관청들을 모조리 파괴소각하고 악질관리와 민분이 있는 량반들을 처단하였으며 감옥을 마스고 죄없이 강금당한 백성들을 석방하였다. 한편 백성탄압과 억압에 써먹던 문건들을 태워버리였고 전라도의 전지역과 도소재지인 전주까지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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