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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한마디로 말해 백포종사 서일(白圃宗師 徐一)은 우리 민족이 낳은 걸출한 독립혁명가였거니와 종교지도자였고 사상가였다. 여기 그의 죽음을 극도로 애닯아한 글이 있다.
<<아, 슬프도다. 선생의 돌아가심이여!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소동이 일어났으며, 누구를 위하여 오늘의 죽음을 맞이하였는가. 선생의 죽음은 과연 이천만동포의 자유와 존영을 위한 것이며, 선생의 죽음은 또한 십삼 의사와 수백만양민이 무고히 피해 입음을 막기 위함이시니, 생을 마침도 나라를 위하심이요, 비장한 죽음도 동포를 위함이라, 곧 선생의 고결한 의기는 스스로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으로 인정치 아니하고 오직 동포의 생명으로 자신의 목숨으로 삼으심이며, 동포의 생사도 자신의 생사와 같이함이시니, 그의 삶도 동포와 더불어 사셨고 그의 죽음도 또한 동포를 위하여 돌아가셨도다. 선생이시여! 선생이 만일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살피는 자리에 계셨더라면, 나라의 희노애락을 같이하는 충성스런 신하의 자격이 선생이시며, 필부의 얻지 못함으로 세상을 채찍질함과 같이 천하위임(天下爲任)의 양필(良弼) 또한 선생이실지라, 만리초보(萬里初步)의 군국대사(軍國大事)를 바로 눈앞에 두시고 죽음으로써 살신성인하시며, 의를 취하심은 비록 선생의 양심에 부끄럼 없고 천손만대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실지나. 아직도 살아있어 거적에 누워 창을 베고 백전고투 중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만리장성이 무너짐이며 큰 집의 대들보가 부러짐과 같도다. 하물며 청산리전역에 승리의 노래를 부르시던 소리, 우리의 귀에 잊혀질 수 없는 경종(警鐘)이 되질 않았던가. 밀산(密山)의 송백(松柏)이 만고에 푸르름은 우리 선생의 절의(節義)를 딛고 선 것이요, 파저강수(婆猪江水)가 천추(千秋)에 오열함은 우리 선생의 풀지 못한 한을 울음으로 안고 흐르는 것이니, 아! 송백(松柏)아 끝없이 푸르고, 아! 강수(江水)야 한없이 울어라! 감지 못할 선생의 두 눈이 해와 달이 되어 보시느니라.>>
1921년 12월 6일자 <<독립신문>>이 <고(故) 서일선생을 조(弔)함>이라는 표제로 실은 추모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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