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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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半島의 血 제1부 2.
2012년 09월 11일 23시 28분  조회:3427  추천:0  작성자: 김송죽
 

   

 2.

 

    기학(夔學)이가 나이 10살을 갖잡은 1891년 정월의 어느날이다. 생면의 젊은이 하나가 문득 나타나 마치 고요한 호수에다 커다란 돌덩이를 던지듯 여태껏 조용하던 동네에 일장의 파문을 일게 만들었다. 어찌보면 그건 춘절기분에다 이채를 돋군것 같기도 했다. 한것은 그 젊은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차림새가 처음보는거요 이곳주민들과는 아주 영 달랐기 때문이다. 그 젊은이는 우선 뒤통수에 의례 달려있어야 할 머리태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썩둑 잘라 없애버린게 분명했다.

   적이 놀래여 한식경이나 지릅뜨고 보다가

  《저 자식 꼬리빠진 수탉아녀?》

   침을 내뱉으며 노여워 하는 로인이 있는가 하면

  《미친 녀석이지, 왜놈의 새끼루 변해버린거야.》

   욕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내젖는 사람도 있었다.

   그가 입고있는 옷 역시 통너른 흰 동저고리아니였다. 앞섶에 주머니 두 개있고 가슴량쪽에도 그보다 작은 주머니 두개를 보기좋게 만들어 붙인 착의였는데 목달개아래로는 반짝거리는 동그란 구리단추 여러개가 일직선으로 쭉 내리 채워져 있었다. 아래에 입은 것 역시 검정천으로 지은건데 행전을 치지 않아도 눈이 들어가지 않을 지경으로 가랭이가 솔고 칼등같이 곧은 바지였다. 발에 신은 신 역시 초신이나 부들신이 아니고 헝겁신도 아니였다. 잘 닦아서 반들거리는 깝장가죽구두였다. 청수한 얼굴에 처음보는 멋스러운 옷차림새라 기학이도 성묵이도 기호도 삼용이도 다 눈이 둥그래졌다.

   《네보겐 어떻니?》

   《참 멋지구나!》

   《건데 저러구다녀 일없을가?》

   《일없게 다니지.》

    애들은 다가 호감인 편이였다.

    하지만 이 유표한 젊은이 하나를 놓고 동네에서는 배곯은 거지 남의 잔치에 배앓듯이 공연이 이렇쿵 저렇쿵 시비가 많았다. 거개가 비난적인 험구였다.

   《자식이 돼먹지 못하게 어디라구 멋부리구 다녀.》

   《건달녀석아니여?》

   《난봉꾼같애.》

   《의표루 난봉꾼인걸 어떻게 알아내나?》

   《사기꾼이 아닌지.》

   《그런거 같지도 않아.》

   《대체 뉘집 귀공잔데 저 모양으루 버젓이 나다녀, 왜놈아니구서야?》

  왜놈이란 일본사람을 가리키는건데 어쩐지 그는 일본사람같기도 조선사람같기도해서 분간하기 어려웠다. 외모가 그렇거니와 말씨를 봐도 종잡기 어려웠다. 그가 일본사람이라하자. 그래 조선말을 저같이 잘 구사하는 외국인도 있단말인가? 모두의 생각이 이러한데 누군가는 그렇다면 변종불온자가 아닌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였다. 그건 욕이다.

    이런 욕 저런 욕 다 해도《불온자》라는 욕만은 함부로 내던질게 아니였다. 임금과 조정에 불만품고 역심을 가진 사회의 위험분자를 불온자라 했다. 요즘 세월에는 어제까지 충신이라던 사람이 밤을 자고나면 대역부도죄(大逆不道罪)로 몰려 목이 날아나는 일이 비일비재라는건 코빠는 애들까지도 아는 일이였다.

   한데 나어린 기학(夔學)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한가지 리해되지 않는 문제가 맴돌이치고 있었다. 그건 그가 세살나던 해인 1884년도에 일어났다는《갑신정변》에 대한 평가문제였다. 언젠가 어느 어른이 하는 말을 피끗들으려니 그건 옳은 혁명이였다는 것이고 서당훈장은 그 반대로 그번의 정변은 잘못된게다 그로해서 나라는 더 혼란해졌다는 것이였다. 왜서냐고 물어봤더니 훈장이 너희들은 몰라도 되네라, 간참할 일이 아니네라 했다. 하여 더욱 오리무중에 빠져드는 지라 그는 내가 저 젊은이하고 한번 물어보리라 했다. 누가 뭐라하건 기학(夔學)은 그렇게 맘먹었다. 그의 안중에는 그가 글이 있는 신식청년으로 여겨졌던것이다.

  《얘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그 청년말이다, 개화파 같잖니?》

   기학(夔學)이는 말해놓고 계속했다.

  《두목은 다 외국으로 피난가서 지금도 안오고, 여당은 그냥 남아서 준동을 한다는 소릴 못들었냐. 나라개혁을 하느라고 들구일어났다가 그만 불온으로 몰리고만건데 그네들이 아무렴 임금의 자리를 찬탈할려구했을가?》

  《대역죄(大逆罪)라는 소리는 없잖아. 다시 들구일어날지두 몰라.》

   성묵이가 한마디 보태니

  《그럴지두 모르지. 작년에 함창서 일어난 것 처럼.》

   하고 삼용이가 얼른 한마디  맛장구를 쳤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호가 매몰스레 퉁을 놓는다.

  《야 임마, 그게 뭐니? 그건 민란이야, 민란! 그것하구 개화파가 꾀하는 걸 어찌 같으게 볼 수 있겠냐?》

  《정변이든 반란이든 들구일어나는거니 같잖아. 다르긴 뭐가 달라, 체.》

   삼용이는 지려하지 않았다. 이젠 나이를 10살먹었으니 다 크기라도 한 것 같아서 어른들이나 론할 일을 내놓고 애들이 떠들고 있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고만해라, 고만해.》

   성묵이가 짜증섞인 투로 두 애의 입을 틀어막고나서 음성을 죽였다.

  《내 보게두 그 청년이 어쩐지....안 그렇니?》

  《글쎄말이다....우리 찾아가 물어볼까.》

   기학(夔學)이가 주장을 내놓으니 삼용이는 되려 겁을 먹는다.

  《그일 찾아가?.... 관두자. 괜히 경칠라구.》

   성묵이가 그를 찔 갈려보고나서 쓸까슬렀다.

  《야, 이놈아. 넌 바지에 오줌이나 싸거라. 뭐가 검나서 그러니? 우리가 아직은 무각동자(無角童子)야. 아무렴 관청이 우릴 잡아가둘가.》

   이틑날 기학(夔學)이가 앞장서서 애들은 그 청년을 찾아갔다. 한데 그들은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젊은이는 저의 집안집이라는데서 하루밤을 자고서는 일찌감치 제 갈데로 가버린거다. 애들이 무리져 가서 외지서 온 청년손님이 집에 있느냐 물었더니 주인 김씨가 너희들은 왜서 그를 만나자는거냐 해놓고는 난 모른다고 괘괘 떼는것이였다. 그가 이 애들은 관청의 끄나블이 아니냐 하는 의심이 생겨 불쾌해하면서 경계함이 분명했다.

   오해를 하면 본의아니게 일이 잘못번질 수 있는지라 기학(夔學)은 직심스레 해석했다. 

  《의심말아요 우린 나쁜맘 먹고 온거 아니얘요. 그저 그한테 한가지 딱 물어볼 거 있어서 그래요.》

  《뭘 물어보자는거냐?》

  《저 <갑신정변>이라는게 있잖아요. 거게 대해서요. 우린 그걸 잘 몰라서 그래요. 어떤 사람은 이렇다 어떤 사람은 저렇다....대체 어느것이 옳은지 그래서 우리는....》

   입을 꾹 다문채 대답없는 주인 김씨는 살쩍은 얼굴에 일순간 가벼운 웃음을 피여올리더니 난색을 지었다. 총명이 과인해서 경원군수까지 알게 됐다는 이 어린 수재를 소홀히 대하지는 못하겠는 모양이다. 

   기학(夔學)은 김씨와 정중하게 그가 이제 오면 꼭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나서 애들을 데리고 돌아섰다.  

   무어니무어니해도 제 나라의 일은 알아야한다는 기학(夔學)이였다. 그는 세상이 돌아가는것도 모르면야 그게 무지한 소경과 다를게 뭐냐 하면서 커서 국민으로 될 자격도 없는 일이라 했다. 이러던 차 유생훈장 배창식로인이 갑작스레 세상떠 마을서당은 다른 한 유학자 김노규가 맡게 되었다. 그는 간도영유권의 역사적근거를 찾아내려고 발분(發奮)하고있는 젊은이였다. 기학이는 그가 유달리 애국심을 갖고있는 것 같이 보여져 그한테서 우선 제 나라의 역사부터 참답게 배우리라 마음먹었다. 김노규선생 역시 학생들에게 역사교육을 중시하면서 애국심을 심어주었다. 

 

   한데 세월은 온정치 않고 짓궂었다.

   3월달부터 조선의 북부, 특히는 평안도지방에 재해가 심해 식솔을 거느리고 만주로 건너가는 피난민이 줄을 지었다. 조선의 역사에다 10만 평안도난민 만주탈주기록을 남기는 해였던 것이다!

   5월이 다가는 어느날 저녁켠, 기학(夔學)이가 하학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웬 초면의 부녀가 이제는 처녀꼴이 잡히는 딸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다. 아마 만주로 피난가는 손님일테지. 건데 가까운 개울은 놔두고 왜 집에서.... 대야에 담겨있는 세수물을 보는 순간 기학(夔學)이는 감정이 토라지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끌렸던 눈길을 얼른 거두고 머리태를 철렁거리면서 열린 바당문으로 뛰여 들어갔다.

   집안에 희연이가 와 있고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공부 다 끝났나봐.》

   희연이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여올리면서 책보를 받아놓는다. 장차 신랑이 될 사람이 결혼은 뒷장으로 밀어놓고 내내 공부에만 정신파니 한때는 심기가 토라졌던 소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내색이란곤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장가가라 독촉하니 그걸 피하느라 자기는 전강에 참가해 장원급제를 하리라  줴친건데 이들은 아마 그 말을 진정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누구냐?》

   기학(夔學)이는 바깥쪽에 대고 힐끗 눈짓했다.

  《평안도서 오는 난민이래.》

   채희연이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겠지!》

   근세(近世)에 조선은 쇄국주의(鎖國主義)를 국책으로 하면서 소위 월경지금(越境之禁)이라는 법을 내와 압록강, 두만강을 넘는 자는 발견하는 대로 잡아서는 극형에 처하군했다. 그래서 누구든 허투루 국경을 넘을 궁리를 못한건데 재황이 련속부절이니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에는 모험을 하는 판이였다. 월경해서 저쪽 간도땅에 가 부대라도 일쿠어 한끼 배라도 불려보고 죽자는것이 그네들의 꼭같은 소원이였던 것이다.  

   난민가장인 어른과 그의 아들 둘이 할아버지를 따라 두만강으로 물길보러 가고 할머니는 산나물뜯으러 나간것이 아직 돌아오지를 않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든 고향을 버리고 솔가도주를 할까. 제 동폰데 있으면 있는것 만큼 없으면 없는것 만큼 나눠먹고봐야지 어쩌겠어요.》

    가끔 나오군 하던 이런 말이 이제는 할아버지의 입에서도 할머니의 입에서도 적게 나오고 있었다. 어제도 두집이 들려갔는데 오늘 또 한집이 왔다. 다섯식솔이라니 잠이야 배좁은대로 잔다만 쌀독이 비여가는건 어쩌는가. 제집사람 배불리기도 어려운 형편이라 자칫하면 따라서 피난길에 오를 형편이였던 것이다.

   《임금은 뭘하고 있나? 나라 백성이 류리걸식을 하고 이국으로 피난하는것도 모르는가? 국정을 어떻게 살피길래 이 모양 이 꼴이 되는거냐?....》

   어린 기학(夔學)의 입에서 은연중 이런 불만이 튀여나갔다.

   올해가 서기 1891년! 기학(夔學)이 나이 10살이니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있은지도어언 7년철이 된다. 해마다 민란이 일어나고 재민은 이국으로 도망하느라 줄을 짓고.... 기학(夔學)은 생각했다. 그때 만약 개화파가 승리해서 정권을 잡았더라면 나라가 어떻게 되었을가? 그네들이 바라던 것 처럼 근대적인 국가로 개혁이 되어서 국세가 좋게 돌아졌을런지도 모를일이였다.

   임금님을 포함해 나라를 운전하는 조정의 공경재상 어른들의 머리속에 하나로 통일된 독립사상이 없었다. 아직도 사대주의에 매여 청나라를 그냥 믿어야 하느니 구라파 신흥렬강을 믿어야 하느니 그러지 말고 가까운 일본과 손잡아야 하느니 주의주장들이 엇갈리여 파벌이 되고 그것이 정치세력이 되여 아직도 서로간에 피투성이 되도록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동방의 밝은나라요 례의지국이요 하며 자랑해오던 조선이라는 이 고국(古國)은 흡사 왕양대해에 뜬 배가 풍파를 만난데다 방향마저 잃어 당장 난판선(難破船)이 되고말 험한 꼴이였다.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나기 전이던 1882년의 임오군변(壬午軍變) 때 분기탱천한 군인들의 그 노도와도 같은 폭동에 의하여 타격을 크게 받은 민씨일파는 다시춰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한 무리의 악세력을 길러낸 장본인이요 징벌을 받지 않고 화를 면한 민비는 살아있었다. 백성들이 불여우라는 그녀는 자기를 몸서리치게 했던 그때의 <변>은 권력을 잡으려는 시아버지 대원군의 조작임에 틀림없다고 여기면서 대책을 찾느라 지금도 머리악을 쓰고 있었다. 령감태기가 청군에 잡혀 청진에 가 몇해간 갇혀있더니 죽지 않고 눈이 퍼래 살아왔거니와 정적이 되어서 다시금 맛설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그야말로 무서운 존재였다. 민비는 밤이 오면 더 무서워났다. 령감이 유령처럼 나타나 자기를 죽여버릴 것 같아서 등불을 켜 전각을 밝게 하고 춘전에다는 별궁까지 지었다느니, 그래놓고는 유사시 달아날 수 있도록 힘꼴쓰고 걸음빠른 장골 20여명을 골라 교구군을 만들어 대궐북안문에 대기시키고 있다느니,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대원군을 아예 없애치우려고 자객을 세 번이나 운현궁에 들여보냈다느니, 그랬으나 재수없이 번번이 실패하고말았다느니, 지어는 폭탄을 써서 삼대를 몰살시키려고까지 했다느니, 어찌했다느니 근거를 딱히 알수 없는 별의별 소문이 다 생겨 쉬쉬 나돌았다.

   불여우가 묘계를 꾸미느라 눈알을 판들거리고 로련한 표범은 여유작작제 코등을 핥고있는 격이니 과연 한바리에 실을만한 짝이였다. 이때의 리씨조선의 조정실태란 바로 이러했던 것이다.  

   이윽해서 물길보러 두만강에 나갔던 이들이 돌아왔다.

  《어제만 물이 불었더구나, 버들강대 안보이는걸 보니께.》

   할아버지의 말씀이였다.

  《어디를 잡으셨나요?》

  《양목으루 건널가 한다.》

  《물이 불었다면서요. 안돼요. 위험해요. 버들강대안뵈일 정도면 위로 썩 올라가 방천목에서 건너야 해요. 거긴 밑물이 돌아치지를 않으니까요.》

   기학(夔學)의 주장이였다. 그는 늘 목강을 다녀서 물길을 잘아는 것이다.

   두만강은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아서 헤염을 모르는 사람도 능히 건너군한다. 하지만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이 강은 상류로 부터 산골물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기에 물이 좀만 불으면 헤염재간이 능한 사람도 건너기가 힘들어진다. 강바닥에는 오랜세월에 물 때 낀 매끌매끌한 자갈이 한벌 깔려있었다. 그래서 자칫 미끌어 넘어만 지는 날이면 물살에 밀려 웬간해서는 발을 다시붙이지를 못한다. 그래 밀려서 아래로 아래로 허우적이다 푹 패인 소용돌이에 감겨만 들면 강을 건너기는 새려 아무리 용사라도 되돌아서지 못하고 끝장을 보고마는거다. 그래서 아까운 생명을 잃은자 수천이요 그 수천물귀신의 호곡성이 여울소리로 된 것이 두만강임을 그대여 아는가?

   그 한 식솔을 어설프게나마 저녁을 해서 대접하고나서 기학(夔學)이가 대신 책임지고 무사시 강을 건네주었다.

   이틑날이다. 하학해 와보니 식솔이 전날만 적잖은 다른 피난민 두세대나 기학(夔學)이네 집에 신세지자며 또 들렸다. 자그마한 금동리에 평안도난민들이 떼지어 들이닥쳐서 월경을 도와달라고 사정을 들이댄다. 물길을 몰라 익사자가 속출하니 목숨만이라도 붙어 건너가게 해달라 비두발괄을 한다. 어찌 목이 메이지 않으랴. 이네들의 가엽은 정상을 보고있는 어린 기학(夔學)의 가슴속에서는 안타까운 동정이 밀물같이 일면서 저도 모르게 두 눈에 눈물이 배여나온다.     

   《가지 말고 제 고향서 그냥 살면 안되나요? 왜 오손도손 모여 살지 못하고 고생스레 가야만하나요?》

    뻔히 아는 일이건만 그는 이같이 탄식했다.

   《할수 헐수 없구나, 살자니 구복이 원쑤로다.》

    한뉘를 농사지어도 쌀밥 한번 배불리 먹어못봤다는 피난민의 탄식이였다.

    속담에������산농사지어 고라니 좋은일 한다������했다. 일년내내 뻐빠지게 놓사지어 과연 누구의 좋은일하는가? 타작하고 나면 지주와 관청에서 땅세요 무슨 세요 싹 쓸어가서 겨우 죽벌이나 되는건데 올해는 농기 첫계절부터 감뭄이니 흉년은 정해진거라 이같이 생사를 불구하고 고향을 떠나는 난민떼가 생겨난 것이다.

   농민이 수탈을 당하기는 매일반이지만도 여기 금희동은 아직 그같이 아사지경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기학(夔學)이네와 마찬가지로 이고장 사람들은 그래도 산덕을 더 입는것 같았다.

   《저 사람들을 좀 배불리며 살게는 못할가?》

   《나라도 못하는 구제를 네가 할만하냐?》

   《나한테 나라일 맞겨보라지 안민보국이 되게 하겠어요.》

    죄꼬만 녀석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튀여나오는지라 서장련의 얼굴에는 저으기놀래는 빛이 어리였다.

   《넌 리가아니구 서가성이야! 더구나 량반두 아닌 천민의 자식이 주제넘게 웬 외람된 소리를 그렇게 해쌌는거냐. 입조심하거라.》

   《너무두 딱해서 그래요. 임금님은 뭘하구있대요, 제나라백성 제대루 먹여살리지를 못하니 등신이지.》

   《입다물거라, 역적이나 할 망탕소리 네가 하는구나.》

    할아버지는 손자를 되게 꾸짖었다.

    아직 난민 절반도 월경을 못했는데 어느날 금희동에 관차(官差)가 나타났다. 

   《누가 물길을 서주고있는가? 그런 일 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얼씨덩!》

    관차는 마을사람들을 서당앞에 모이라해놓고는 굳어진 낯으로 아느새 이 사람 저 사람 짚어 보다가 이렇게 목청을 뺐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아 잠잠했다.

   이런 판에 기학(夔學)이가 선듯이 나섰다.

  《내래요, 내. 내가 물길을 서줬어요.》

  《네가?!....》

   관차는 제 아들또래나 됨직한 소년의 자그마한 체구를 얼핏 쓸어보고는 머리를 돌렸다가 다시금 눈여겨보면서 캐묻는 것이였다.

  《너 몇살이냐?》

  《열살이얘요.》

  《열살이라. 이름이 뭔데?》

  《기학이얘요, 서기학.》

  《뭐라?!....서기학이란 애가 네냐!?....》

   관차(官差)는 적이 놀랬다. 이 마을에 신동이 났다고 들은바있은지라 네가 바로 그 애란말이냐 하고나서 집요한 투로 물었다.

  《그래 얘야, 누가 널 시켰냐?》

  《뭘말인가요?》

  《물길을 서주는거말이다.》

  《시키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넌 그래 월경자를 도와주면 죄가 된다는걸 몰랐느냐?》

  《안도와주면 어떡해요, 물길도 모르고 건너다가는 다 죽고말걸요.》

  《돈은 얼마씩 받고 그 일을 해주느냐?》

  《돈이라니요? 난 돈받고 그런적없어요.》

  《돈안받는다?... 네가 어른앞에서 거짓말은 아니하겠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나요. 그럴 필요가 뭔데요.》

  《네가 이러면 죄를 짓는거루 되네라, 알겠냐, 죄를 짓는단말이다. 네 행동이 바로 비법월경협조죄가 되네라.》

   관차는 아이하고 이쯤 말해놓고나서 그의 큰 할아버지 서장련을 나오라해서 한바탕 으름장을 놓았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은 어디다두고 손자를 방임하는거냐, 이러다가는 지정불고죄로 가차없이 끌구가 고생시킬거라했다.

   지정불고죄(知情不告罪)란 남의 범죄사실을 알고있으면서도 관가에 고하지 않는 죄를 말하는데 서장련은 그의 뒤통수를 흘겨보며 네가 목석아니거든 왜서들 만주로 도망가는가구 한번 물어보라했다.

   다행히 관차는 그 말을 밭아듣지 않고 가버렸다.

 

   그야말로 다재다난(多災多難)한 세월이였다!

   떼를 짓는 평안도난민의 행렬이 좀 멎을가 하더니 6월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갑산, 단천에 청나라도적떼가 달려들어 백주에 살인하고 략탈을 감행했고 8월에는 또 일본어선이 제주도에서 폭행을 감행했다. 그래서 인심이 황황해졌고 가뜩이나 살아가기 힘들어하던 백성들은 하늘도 무심하지 이제 우리는 더 어떻게 살란말이요 하고 땅을 치며 한탄했다. 그러나 무심한건 하늘이 아니라 적자(赤子)가 하늘같이 믿고있는 나라님인 임금이였다. 그렇다, 무심한게 아니라 너무나도 무능해서 속수무책이 돼버린 꼴이였다.

   금희동에 관차(官差)가 또 나타났다. 이번에도 저번때와 마찬가지로 비법월경자가 없느냐, 물길을 서주는이는 누구냐고하면서 조사를 나온것이다.

   금희동의 사람들이 이번에는 잠자코있으려 하지 않았다.

  《들어 오는 도적떼는 아니막구, 죄없는 백성은 왜 자꾸 들볶는거냐?》

  《나라 군대는 뭘하고있는거냐? 둿다가 뭣에 쓴대? 우리는 그래 쪽발이 왜놈한테도 되놈한테도 그저 당하기만해야하는가?》

  《이눔의 세상, 대체 어떻게 되는거냐?》

   중구난방(衆口難防)의 비난이 쏫아아졌다.

  《제길할, 나두 모르겠다. 임금하고 물어봐라.》

   관차는 역증만 버럭 내다가 그만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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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半島의 血 제1부 1. 2012-09-11 0 3714
56 한마디로 말해 백포종사 서일(白圃宗師 徐一)은 2012-08-26 0 3108
55 대하역사소설 半島의 血 부록 1. 일본내각총리대신 하라타카시 에게 보낸 편지 2012-08-09 1 4154
54 사론발췌 2012-07-09 0 4411
53 반도의 혈 제3부 26. 2012-07-09 0 4056
52 반도의 혈 제3부 25. 2012-07-09 0 3219
51 반도의 혈 제3부 24. 2012-07-09 0 3545
50 반도의 혈 제3부 23. 2012-07-09 0 3615
49 반도의 혈 제3부 22. 2012-07-09 0 3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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