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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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제1부 12.
2012년 09월 16일 09시 30분  조회:3641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2. 

 

   그놈의 단발령같아나 무사하고 조용하던 금희동이 요즘은 편안할새없다. 의병이라며 마을에 나타났던 그 한 무리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학교를 빌려 하루밤을 자고는 이틑날 아침 저들을 믿고 고발한 늙은 유생네 쌀독까지 거의 굽을 내고 가버리자 뒤를 이어서 이번에는 끌끌한 젊은이 넷이 손에 가위를 들고 와서는 자기들은 군청에서 조직한 단발령집행대라면서 이 마을에는 아직 머리태를 자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조사하면서 마음에 내키던 안내키던 상투는 꼭 잘라버려야 한다고 선포했다. 앞마을 농포(農圃)에 사는 중년의 농부 하나가 뉘집에 볼일이 있어서 왔다가 그만 잡혀서 그들 손에 상투를 잘리웠다. 하긴 아무때건 잘리우련만 곁불에 내키지 않는 일을 당하고 보니 분한지라 그는 툴툴거렸다.

   최풍헌은 자신이 아직은 상투를 자르고싶지 않았거니와 정부의 령을 마구잡이로 강경히 집행하자고 드는 이네들에게 시달림을 받기 싫어서 아예 피해버렸고 나이많은 어른몇몇도 의연히 응하지 않았다.

   가위를 들고 온 젊은이들 역시 부모는 있을거요 그쯤한 례모는쯤은 지킬줄을 아는지라 년세많은 어른들의 상투에는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그대신 전날 머리태를 없애지 않은 이 마을의 젊은이 둘은 액운을 면치 못했다. 먼저 성이 배씨인 젊이가 웬 일인가 보러왔다가 잡혀 강박적으로 머리태를 잘리우고말았다.

  《아니 왜서들 이모양이냐? 녕위지하 무두귀, 불작인간 단발인!》

   여러해전에 세상을 뜬 서당훈장 배창식의 조카벌되는 그가 이렇게 무식자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뇌면서 자기는 상투를 없애지 않겠노라 뻣히였다.

   청년 넷중의 하나가 엿장수 엿가락팔듯 손에 든 가위를 절컥거리다말고 그를 욕했다.

   《야 이놈아, 너 그게 무슨 구제비소리냐. 차라리 목이 없는 귀신될지언정 뭐가 어쩌구 어쨌다?....이놈아, 네 목숨은 그리두 개값이냐?...젊은것이 어쩜 사상이 그리두 고루한거냐? 개화를 해야 한다, 개화를! 정부령에 붙쫒지 않으면 어떤건지 알어? 그건 나라 개혁에 역행하는 행위니 반동이야.》

   《너들은 너무한다, 너무해! 세상에 이런 억지가 어디있느냐? 나라임금도 단발을 했단말이냐 그래?》

   《하잖구. 그것도 몰라? 잔소리말구 오섭서리 들이대기나 해.》

   《난 그 말을 믿지 못하겠다.》

   《믿건 안믿건 그건 네 문제고, 어서 대갈이나 들이대. 너의 그 꼴불견의 물소꼬리는 오늘 꼭 없어져야 한다.》

   이러면서 네 청년은 그를 마구다지로 끌어다 골을 요동치지 못하게 꽉 잡고는 머리태를 썩뚝 잘라버렸다.         

   《어이구, 이놈들이!...》

   그 젊은이는 억다집으로 태머리를 잘리우고나니 분한지 울었다.

   이때였다. 이런 꼴불견의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만 질겁하여 허겁지겁 제 집으로 달려가는 녀인이 있었으니 그는 전날 머리태를 자르지 않은 다른 한 젊은 사내의 각시였다. 그녀는 집안에 들어서자 제 남편을 향해 이젠 고집부리지 말고 자진 잘라버리거라 닦달을 놓았다.

   《이런 제길헐. 웟쨌다구서 사람 못살게 구오. 내 상투 임자를 밥굶기나 헐벗기나. 어느녀석이 날 맘대루건다려, 쳇!》

    남편의 이런 배포유한 거동에 젊은 각시는 그만 열통이 터지는지라 차라리 밥굶고 헐벗을지언정 그놈의 없어도 될 상투같아나 남한테 욕보는 꼴은 죽어도 못보겠다며 어서 나가라고 잔등을 답새기며 들통을 놓았다.

   마침 이때 바당문이 벌컥 열리더니 네 청년이 뛰여들어 불문곡직하고 그 젊은이의 팔을 거머쥐였다....

   《좋은 일도 지나치면 글러지는거야.》

    기학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 소란을 목격하고는 제 또래의 친구들 앞에서 말했다.

   《거치장스런 머리태 하나 없애는데 이같이 희극을 노니 실로 불가사이로다! 나라일이야 더 말할게 있겠냐?》

    성묵이가 그를 깨우쳐주노라 입을 열었다.

   《애두, 원. 뭐가 불가사이냐. 생각해보거라 너나 나나 소원이 돼서 움직였다만 유생양반이야 어디 그렇니, 아무튼 출신이 다른데.》

    기학이는 오 그러냐 그쯤은 나도 아는건데 아무튼 이번의 사건은 조짐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회남자(淮南子)  설산훈편의 글 한 구절을 읊없다.

   《일엽락천하지추(一葉落天下知秋)로다.

    나뭇잎이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가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뜻으로 하찮은 조짐을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 수 있다는 말이였다. 

    성묵이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수도 있다. 민비가 시해되기 전에 조짐이 좋잖더니 끊내 그따위의 비극이 나잖구뭐냐.》

   과연 그런가보다.

   누군가 높은 소리로 웨쳤다.

   《의병이 온다!》       

   마을 앞 저기 남쪽켠의 돌다리를 건너서 과연 한떼의 사람들이 이 마을을 향해 오고있었다.

   《의병이라?.... 너들 보겐 저것이 의병같냐?》

   《저것두 가짜아닐가?》

    마을 사람들은 그쪽에다 눈길을 던진채 오래도록 거두지 않는다. 이제 저것들이 마을안에 들어오면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곤혹스러운 모습들이였다. 어떤 사람은 불안해하기도 했다.

   인원이 어제온 것 보다는 두배될 것 같은데 입은 복장들을 봐서는 별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은 거개가 어깨에 총을 멧고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두줄로 행렬을 지어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건 아마도 진짜 의병같구나!》

    기학은 중얼대곤 친구들을 따라 길가에 있는 삼용이네 집 서쪽 벽가에 다가붙었다. 그는 바로 코앞을 행진하여 지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았다. 다가 알쭌한 젊은이들이였다. 아직 단발을 하지 않은 채 머리우에 상투를 얹고 일매지게 흰 수건을 머리에 쳤다. 발에다는 미투리를 신었고 흰 바지가랭이가 너펄거리지 않게 모두 다리에 행전을 쳤다.   

   행렬이 거의지나갈 무렵 뒤에 가던 사람중 하나가 기학이랑 등을 대고 서있는 벽쪽을 보더니 문득 생각나는지 이쪽을 향해 오면서 끈을 어깨에 가로걸쳐 멘 장방형의 자그마한 가죽가방의 뚜껑을 열더니 그 속에서 몇겹으로 겹은 종이를 꺼내는 것이였다.

   《저건 아마 <격문>일거다!》

    눈썰미좋은 기학이는 제꺽 알아맞히였다.

    그 청년의병이 그들이 서있는 뒤벽에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채 색이 바래고 글씨형태가 드믄 보이기도 하는, 전에 붙여놓은 종이위에다 자기가 갖고 온 것을 붙이자고 보니 풀이 없는지라 얼굴빛이 금시 어두워지면서 어쩌면 좋을지 몰라 곤혹스러워하는 것이였다.

   《저 그걸 여게다 붙일려구 하는게 아닙니까?》

    기학은 청년이 꺼냈던 종이를 되넣으려는 것을 보자 자진해서 말을 걸었다.

    청년의병은 자기에게 말을 거는 그를 쳐다봤다.

    기학이는 그를 향해 입을 다시열었다.

   《그게 꼭 여에게 붙어야 할 거면 내가 도와주지. 풀을 써오면 되겠지?》

   《정말 그래주겠냐? 참 고맙구나!》

    청년의병은 기학이가 자진하는지라 좋아하면서 종이를 얼른 넘겨주곤 대렬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그건 과연 의병의 격문이이였다.

    기학은 곧장 풀을 쑤러 집으로 달려갔다.

    성묵이, 기호, 삼용이도 뒷따라 달려갔다. 

    마을 사람들이 한군데 집결하고있었다. 아마 의병이 마을에 들어오자마자 그렇게 하도록 령을 내린모양이다.

    격문은 붙여야 할 자리에 버젓이 나붙었다.

     제목이 큰글씨로《피를 머금고 조선 8도의 여러 인민들에게 이 격문을 보내노라》로 되여진 것인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아! 우리 8도 동포들아!

   이 나라를 어찌 저 원쑤들에게 내맡기여 암흑의 세상으로 되게 하겠는가? 최근 서양오랑캐에 의하여 중국대륙이 전란에 빠진 후에도 우리 나라는 당당한 자주국가로서 다행히 평화를 유지하여 왔다. 나라의 면적은 동방의 적은 지역에 지나지 않지마는 어두운 곳의 해빛처럼 한줄기의 광명을 보존하여 왔다....왜적의 음흉한 모략은 추측할수 없고 조상때로부터 전해내려온 례의를 본존하기 어렵게 되었다.....일제는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원쑤이니..... 각자가 무기를 들고 끓는 물과 타는 불에 뛰여드는 용감성을 발휘해서 싸워보자!

   환난을 피하는 것은 죽기보다 더 어려우며 멸망을 기다리는 것 보다 싸우는 것이 더 현명하다. 시국의 형편이 위급한 막바지에 다달았으니 용기백배하여 더 솟아나야 한다. 화와 복을 가릴 것 없이 나라를 위해 죽을 사(死)자 한글자를 지켜야 한다.....>>

   이것은 의병장 민룡호가 1896년 2월 7일(을미 12월 24일)에 발표한 것이다.  격문에서는《공경》으로부터 《사민》에 이르기 까지 합친 힘이《대동》의 힘이라 하면서 《대동》의 힘으로 의병투쟁의 대상인 일본침략자를 물리쳐야한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마을 서북켠 마을의 소학교앞마당에 마을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다. 이 금동리의 총책인 최풍헌이와 김노규선생이 나서서 그들을 동원시킨 것이다. 오늘 금희동에 나타난것은 전날왔던 그 꼴불견의 무리와는 어디든 달라보였다. 의병운동을 금지시키려고 서울에서 내려온 정부군인 진위대와 정면으로 맞다들어 싸우고싶지 않아 피해서 이곳까지 온 의병이란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을 모여놓고 지금 돌아가고있는 국세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지지는 하지 못할망정 왜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왜적을 물리치는 사람을 란적이라며 진압하려드는지 모르겠다고 정부를 규탄하면서 친일적이고 매국적인 그 행동을 분노하여 성토하고 있었다.

  《여러분, 단발령이 우리 스스로가 원해서 되어진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못하고 왜놈이 강박해서 되어진 것이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자들이 우리의 풍속을 란폭하게 유린하는 행동으로밖에 여길 수 없는겁니다...지금의 정부는 철두철미한 친일정부요 일본의 의사에 따라서 조종되고있으니 그것이 괴뢰와 다를바뭡니까.》

   의병장이 격정에 차서 하는 말이였다. 30살가량돼보이는 나이에 떡돌같이 단단하고 아담져보이는 그가 평안북도 강계에서 일어난 이 의병대의 의병장 김리언이였다.

  《나라의 정부가 친일파손에서 괴뢰짓을 하면야 그걸 어떻게 믿겠냐.》

   성묵이가 선참으로 하는 말이였다.

  《그런 정부를 누가 믿어주겠니. 난 못믿겠다.》

   기호가 동을 달았다.

  《정부를 믿는 뜻이 없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것이다. 변증법이란 바로 이런거야.》

   기학이는 이같이 하나의 도리를 추리해냈다.   

   뭇사람들이 의병장의 말이 옳다고 머리를 주억거렸다. 한데 의병들이 배곱프다 먹을 것을 달라 그리고 잠을 재워달라니 거의가 난색이였다. 먹여주지 않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우리 집은 배좁소 손님재울 방이 없소 자리가 없소 하는 따위의 핑계를 대면서 의병을 받으려고들 하지 않았다. 까놓고 말해 정부의 뒷조사가 무서운것도 있었다. 의병을 자기 집에 재웟다가는 후과가 좋지 않을 것 같거니와 먹일 량식조차 푼푼치 못해서 다들 그러는 것이였다. 아무리 그렇단들 이럴수야? 당장 사형장에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배는 불린다는데 이럴수야?...

  《이 일을 어쩐다?....》

   조바심이 생겨 머리를 굴린 기학이는 문득 하나의 묘계가 떠올라 한번 시험해 보리라 작심하고 나섰다.

  《존경하는 여러분! 제 좀 말해볼가요.》

   기학이가 언권을 비니 다들 돌아가려다 말고 여겨보았다.

   기학은 사람의 눈길을 자기 한몸에 모이는것을 보면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기 누가 서린이 어떤분인지 아시거든 어디 말씀해 보시지요. 없지요?... 제가 서린의 얘기를 하겠으니 다들 들으시오.》

   누군가 궁금쯩이 나는지 기학의 큰할아버지 서장련을 향해 서린이 누구냐, 한집안사람인가고 물는다. 대답이 궁해진 서장련은 집안사람이 아니면 촌수라도 걸리겠지 하고는 그런데 그건 궂이 캐서는 뭘하려우 귀구멍을 우비구 내 손자녀석이 하는 얘기나 귀담아 들어보라 했다.

   기학이는 제법 굴러먹은 어린이야기꾼같이 건가래를 떼고나서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제주도에 가보신적있습니까?... 옛날부터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뱀을 마을신으로 모시는 습성이 있었답니다. 봄가을로 남녀가 차귀당(遮歸堂)에 무리로 모여 술과 고기를 갖추어 신에게 제사를 드리오 또한 그 땅에는 뱀과 독사, 지네가 많은데 만일 흰색뱀을 보면 차귀신이라 하여 그걸 죽이지 못하게했답니다. 그러니 자연히 페가 생기게 된거죠.

   거기 제주도 제주읍의 동쪽으루 약 50리 되는 김녕해안에는 커다란 굴이 하나 있으니 그 길이가 10여리, 높이 7ㅡ8장에 넓이가 5장남짓한데 그 굴속에는 큰 구렁이가 살고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한번씩 굴앞에다 술과 밥을 그득 차려놓고서 제를 지냈답니다. 그도 그저 그렇게만 한 것이 아니구 반드시 열다섯 살 먹은 처녀 하나를 제물로 바쳤답니다. 만일 처녀를 바치지 않으면 풍재, 수재가 일어나서 그치지 않는다고 여겼다나요. 허니까 마을 사람은 물론 제주 목사도 이를 두려워 하여 해마다 그 식으로 극진히 제를 지냈답니다. 생각들 좀 해보시오, 그것이야 말로 큰 재난이 아니구 뭐겠습니까. 그러던 중 중종(中宗) 10년에 판관(判官)으로 서린(徐燐)이란 분이 부임하였는데 그는 리속(吏屬)들로부터  그런 얘기를 듣고서 크게 놀라 <그런 요물로 인하여 어찌 무고한 처녀를 제물로 바쳐 생명을 빼앗게 하느냐?> 대노를 하시고는 군교 수십 명에게 명령하여 염초(焰硝)와 신탄(薪炭)을 준비하게 하고 또 각 사람들에게 칼과 창을 주어 구렁이를 죽여버리기로 하였답니다. 그리고는 준비가 다 되자 전과 같이 제수를 차려놓고 제를 지냈지요. 그랬더니 과연 큰 구렁이가 굴속에서 나와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아가리를 짝 벌리질않겠습니까. 서린이 먼저 재빠르게 창으로 그놈의 머리를 찌르자 군교들도 대들어 창으로 찌르고 또 칼로 내리쳐 죽인 뒤 그 구렁이를 끌어내여 불에 태워 없애버렸답니다. 자....》

  《거 장한 일을 했네그려!》

   이야기를 듣고 탄사를 올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는 것을 보고 기학이는 뒤를 이어 주제의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을 못살게 구는 왜놈을 김녕굴의 그 구렁이로 칩시다. 그러면 왜놈을 몰아내자구 싸우는 분들은 누구같을가요? 우리 모두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서린이 그대의 집에 들려 밥 한끼 먹고갑시다, 미안하지만 하루밤 재워주시오 사정하면 그때는요?....》

  《얘야, 알아들었다. 말 그만하거라!》

   최풍헌의 격앙된 바스음으로 부르짖었다.

   기학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과연 일리가 있는지라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지 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최풍헌이 분배하는대로 의병들을 데리고 제 집으로들 갔다. 김노규는 지기활달한 어린 제자가 대견하여 손을 들어 어깨를 다독이였다.

  《오늘은 네가 한몫담당했구나! 과연 고맙네라!》

   김리언의 의병대는 금동리에서 3일가량 묵고 돌아갔으니 큰 페를 끼치지 않은 셈이다. 동족상잔의 싸움은 원치 않은 그들이였기에 정부군이 기어이 소멸하겠다고 쫓아오면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피해 가 있으면서 기회를 보다가 다시건너와 일본군과 싸울 타산을 하고있었던 것이다.

   한데 그 후의 어느날 그들이 아닌 다른 의병이 들어서 이 자그마한 마을에다 큰 페를 끼치고 말았다. 그것은 전날에 들려서 하루밤을 학교를 빌어 밤을 지내고 간적이 있는 그 풍안경을 낀 자가 데리고다니는 패거리였다. 갑오년 동학당란당시 조선땅에는 동학당과는 다른 갈래의 농민무장대가 각 지방에 조직되여 활동하고있었다. 이들은 동학당군이 활동하지 않던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지방에서 수많이 조직되였다. 풍안경을 낀 자의 패도 바로 그때 함경도 모처에서 조직된 농민무장대중의 하나였던것이다.

  

   <<최근 비도의 란이 점점 심하여지는데 이것은 이전에 없었던 란이다. 그들은 왕명을 거역하면서 자칭 의병이라고 하는데 참을수 없다.>>

   당시 승정원일에 기록된 글이다.

   

   란을 일으킨 농민들이 평시 민분을 자아낸 악질관리를 붙잡아 처단하고 백성탄압과 수탈에 써먹던 물건들을 죄다 태워버렸으니 관리측으로 놓고 보면 그것이 무서운 악행이여서 그렇게 기록해두었으리라만 란을 일이킨 자들의 무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결코 간과할수는 없는것이였다.

   시간이 곧바로 시금석(試金石)이였다. 세월이 가노라면 바탕이 건전치 못한 불순한 자가 리지를 잃음으로 하여 이쪽도 저쪽도 아니게 혐오의 대상이 되고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어느날 풍안경을 낀 두령이 이끄는 그 한패의 의병무리가 금동리에 다시나타났다. 처음왔을 때는 그래도 어느정도 례모를 차리는것 같아 마을 사람들은 그리 미워하지 않고 좋게대해주었다. 지어는 고소(告訴)를 하고 칭찬도 못받은 유생들마저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거니와 학교를 내놓아 잠을 자게했고 때도 어설프지 않게 해먹여 보냈던 것이다. 한데 이번에 다시나타나서는 거동이 전만 판달라졌다.

   때는 3월중순의 어느 날이였다. 금희동의 제일늙은 늙은 유생은 풍안경낀 자가 제 무리를 이끌고 마을에 다시나타나자 이미 한차례 보살펴준 일로 해서 안면이 있는지라 웃음지어 반기면서 고해바치였다. 그는 전일 강계의병들이 왔다가 사흘만에 가버렸다는 것과 그전에 다른 한패의 젊은이 넷은 이 마을에 오더니 자기들은 단발령집행대라면 가위를 들고 절컥거렸다는 것, 그러다가 의병대가 온다니 호랑이를 만난 노루새끼모양으로 그만 혼비백산해서 줄행랑을 놓고말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력점을 찍어서 말했던 것이다.

  《국모를 죽이고 국왕에게 욕을 보이며 단발을 하고 서양옷을 입으라고 하는 것은 다가 일본놈이 사촉한것이니 분개하지 않을수 없소이다. 그리구 제 사람끼린데 단발령을 집행한답시고 내려와서는 사람을 마구잡아 억지로 상투를 잘랐으니 그 란폭함이 과연 언어도단이요 친일이 아니구야 어찌 그런 악행을 하리오?》

  《그랬수?.... 친일이라, 친일이라!...》

   풍안경을 낀 자는 일순간 흥분하는 것 같더니 낯빛이 한결 심각해지면서 늙은 유생이 방금 내친 《친일》이란 단어를 입안에 넣고 이리굴리고 저리굴리면서 뭔가를 생각하더니 졸지에 손벽을 탁 치는것이였다.

  《그자들을 면목아오?》

  《다는 모르되 한녀석은 압니다. 뒷마을 사는 최태훈이라는 자올시다.》

   이 때는 해가 서산넘어로 얼굴을 감춰버려 어스름이 내려앉고있는 늦저녁켠이였다. 풍안경을 낀 자는 저녁을 먹고나서 수하졸도 몇을 부르더니 당장 북쪽마을 안농(安農)에 가서 최태훈이라는 젊은이를 찾아내여 그 마을 사람들이  깜깜 모르게 잡아오라 명령했다.

   시간이 얼마가지 않아 아니나다를가 안농에 갔던 자들이 최태훈이란  젊은이를 붙잡아서 오라를 지워갖고 금희동으로 돌아왔다.

  《네 이놈, 최태훈이 맞지?》

   풍안경을 낀 자가 머리에 씌웠던 자루를 벗기고나서 아갈잡이를 해놓은 수건을 뽑으며 물었다.

  《그렇다. 내가 최태훈이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냐?》

  《자식, 보면 몰라? 우린 의병이다!》

  《의병?...의병이라구?...그래 의병이라면서...죄없는 사람은 왜 잡아다놓고 이러는거냐?》     

  《허, 죄없는 사람이라? 네놈은 가위갖고 행패질을 하구서두 죄없다? 이놈아, 남 안깎겠다는 상투는 왜서 잘랐느냐? 누가 그걸 시켰냐? 임금이 시킨거야 아니겠지. 아니구말구. 제몸 하나두 건사못하는 임금인데 너한테 그런짓을 하라구 시켰을가. 그건 그렇구. 그 임금또한 얼마나 원통할가, 남의 손에 억지루 제 상투까지 잘렸으니.... 그게 다 누구의 작간이였나? 왜놈의 작간이였지! 헌데두 네놈은 가위들고 춤을 췄다니. 대답해 봐, 그게 그래 왜놈하구 짝짜꿍을 친게 아니고 뭐냐 이놈! 너는 철두철미 친일파렸다. 닭새끼 모양으루 목을 탈아 죽여두 시원찮을 앞잡이렸다. 그래갖구두 죄가 없다? 핫, 하하하....》

  《어이구!》

   억울했다. 잡혀 온 젊은이는 어처구니없어 한마디 탄식을 뽑았다.

  《어쩔테냐, 벌금을 당하겠느냐? 매를 맞겠냐?》

  《나보구 벌금을 하라?....흥!》

   잡혀온 젊은이는 벌금하라는 소리에 이자들의 정체를 대뜸알아맟혔는지 질타했다.

  《빼앗고싶으면 빼앗을게지 듣기좋게 벌금소리는 왜 하는거냐? 너희들이 의병이라구? 듣기는 좋다. 무도막지한 놈들. 너희들은 화적패다. 그렇지 않으냐?》

  《뭐라? 네놈이 감히 그렇게 입정을 놀려대? 어디 맛 좀 봐야 알가부다!》

   풍안경의 말이 떨어지자 여럿은 그한테 매를 댔다. 그리고는 수건을 입에 틀어막고 자루를 머리에 씌워 끌고 가버렸다. 그를 인질로 돈을 갈퀴질하자는 수작이였다. 이날밤 여러집이 털리웠다. 박진사네 둘째딸은 겁탈까지 당했다. 이로하여 마을 사람들은 원성을 질렀다.

  《저것들은 의병아니고 화적패다!》    

  《우린 속히웠다!》

   

   <<처음에는 온 나라가 격분하여 모두 의병을 환대했다. 그러던 중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들의 예기는 점점 떨어지고 규률이 문란해져서 군인을 만나면 싸우지도 못하고 도망치는것으로만 능사를 삼음으로 이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만 많아졌다. 물론 그중의 사생취의(捨生取義)를 신조로 한 투사들은 별문제이나 이름만 내걸고 따라 다니는 자가 많고 또 일하기 싫어하는 무뢰한들도 상당수 끼여있어서 그런 자들은 강탈강간을 자행하여 광도(狂徒)와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우국충정(憂國衷情)의 정신으로 무장한 병사들까지 옥석을 가리지 않은채 일어탁수(一魚濁水)가 되는 수가 빈번하였다.>>            

                                     <<매천야록>>에 기록된 글이다.

 

   이조시대의 도적떼의 기원을 보면 그것은 이성계(李成桂)의 이신벌군(以臣伐君)의 분개한 지사들이 도당을 모아 성군작당한 것으로서 그들은 일변 이성계를 따라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소위 량반무리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세우려는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불의에 대한 보복을 하였다. 한즉 그 정신에 있어서는 수호전의 호한(好漢)이나 두문동 72현과 같다고할것이다. 그들은 도적이라 하나 약한 백성의 것은 건드리지 않고 나라의 재물이나 관원이나 양반부호의 것을 략탈하여 가난하고 불쌍한 자를 구하는 것을 자신의 쾌사로 삼았다. 그들은 그 모양으로 나라의 정부를 상대하였기 때문에 법이 자연히 엄하고 단합이 잘되여 적은 무리의 힘으로라도 능히 수십, 수백년간이나 나라의 힘과 겨루면서 생존한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타난 어떤것은 그렇지도 않으니 백해무익의 도당으로칠수밖에. 의병투쟁의 흥기와 더불어 이 기회에 이름을 도용해 각처로 다니며 료략질을 해먹는 도배들을 백성들은 원쑤와 똑같이 증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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