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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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半島의 血 제1부 4.
2012년 09월 12일 00시 14분  조회:3212  추천:0  작성자: 김송죽
 

  4.

 

   어느덧 한해가 다 가버리니 서기학이 12살 나이를 먹는 1893년이 돌아왔다. 초하룻날 이른 아침에 차례(茶禮)를 지냈다. 할머니는 설뵘(歲粧)이라면서 언제 지어 간직한건지 농짝에서 정갈한 새옷 한벌을 꺼내여 입으라 주었고 자기도 갈아입었다. 기학(夔學)이는 새옷을 갈아입자 먼저 할아버지께 설세배를 올리였다.

   그러자 한마을에 있는 동갑친구 박기호, 최삼용이와 함께 고모집에 기숙하면서 여기 소학을 다니는 경성(鏡城)의 성묵이도 명절이라 세배하러 왔다. 그 들 셋은 신을 벗고 구들에 성큼 올라오더니 기학(夔學)이가 한것 처럼 기학(夔學)의 큰할아버지와 큰할머니께 넙적 절을 했다. 할머니는 절을 받고나서 새하얕게 켠 엿을 쟁반에 담아왔다. 그들은 엿가락 하나씩 주어 입에다 넣고는 세배다닐 집이 더 있다면서 밖으로 뛰여 나갔다. 그김에 기학(夔學)이도 얼른 묻어 나갔다.

   이때면 친척과 이웃동네 로인들한테 설세배를 올리는 것이 례모차릴줄을 아는 이 또래의 빼뫃지 않는 행사였다. 어른들은 동네에 한권밖에 없는 책이라 보풀이 인 토정비결(土亭秘訣)을 놓고 한해의 운을 점치기도 하고 모여서 윳을 치기도 했다. 그뿐아니였다. 금희동에서는 집집마다 조상전래의 풍속이니 잘 지켜야 한다면서 초하룻날 조반에는 떡국을, 열나흩날 저녁에는 오곡밥을 지어 집식솔이 먹었다. 그리고 보름에는 약밥을 해서 먹었는데 어른은 이날 귀밝이술도 먹었다..

   아무튼 달마다 절기마다 명절이 끼여있어서 색다른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금희동의 애들은 그것이 행운인가싶어했다.

   이해는 3월달이 되자 함흥서 살고있는 생부생모가 오래간만에 고향에 와서 삼월삼질을 함께 쇠게 되어 기학(夔學)이는 기분이 다른때보다 썩 더 좋았다. 지난해는 그저 진달래꽃을 뜯어다 꽃전(花煎)만 해먹었지만 이번 삼월삼질날에는 꽃전도 하고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잣을 넣고 꿀을 타 화면(花?)도 해먹었다. 이달에는 청명과 한식도 있는데 생부생모는 그때는 오지 못할 사정이라면서 성묘(省墓)를 했다.

   《오늘이 삼월삼질, 강남갔던 제비도 돌아오잖아요. 건데 얘는 왜 안보이네요.》

   생모께서 며느리 될 희연이를 찾는 것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먼데서 모처럼 왔다가 보지 못하고 돌아가면 섭섭한 일이였다.

   그런데 바로 이때였다. 생모의 말이 방금 입끝에서 떨어지기 바쁘게 바당문이 열리더니 희연이가 나타났다. 그의 출현은 마치도 그 어떠한 방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기도해서다. 모두가 반가와했다.

   희연이는 집안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생글생글 웃었다. 아, 어쩌믄!...아침이슬을 머금고 이제 막 꽃망울을 텃치려는 한떨기의 소담한 백합이랄가, 기학(夔學)의 눈에 그녀가 오늘따라 유난히 복스럽고 예뻐보여서 가슴놀이 뛰였다.

  《얘가 이젠 다 컷구나!》

   생모도 생부도 희연이를 오래간만에 다시보니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기대와 같이 나타난 희연의 출현은 그들 모두에게 명절기분을 더해주었다.

 

   한데 이런 행복이 금희동 어느 가정에나 골고루 나누어지는건 아니였다.

   음력 4월중순의 어느날, 금희동 아이들은 또 한 번 예상치 않던 구경거리를 보게 되였다. 지난해에 박진사가 정신이 들락날락하는 큰딸의 병을 떼주겠다며 무당을 불러 굿을 하더니 올해도 그 판을 벌렸다.

   이번에 맞아온건 녀무당이 아니고 사내무당이였다. 

  《둥둥둥....》

   잦은 북소리에

  《왈랑절랑, 왈랑절랑....》

   쇠쪼박들이 부딧치고 갈리여 깨지고 부서지는 것 같은 그놈의 굿거리가 어찌나 요란하고 소란스러운지 새마저 배겨내지 못하겠는 멀리 달아났다.

  《저 어른이 어쩌자구 또 저 지랄을 피우게 하누? 》

   온 동네가 부산해나는지라 이마살을 찌프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박진사의 큰딸이 이제는 아예 영 미쳐버려 산발을 하고 다니는 것이 물귀신같아서 어린애들은 보기만 해도 겁이 질려 달아났다. 그야말로 마을의 우환거리였다. 집사람이 알아서 병자건사를 잘해야겠건만...

   마침 정오때라서 구경을 즐기는 마을애들은 하학을 하자 무당의 짓거리를 멀리서부터 듣고는 집에 가서 점심먹을 념은 하지 않고 먼저 박진사네 집쪽으로 우루루 쓸어갔다.

   마당에다 멍석을 펴놓고 그 우에 병자를 눕혀놓았다. 흰 명주로 지은 무수장삼을 입은 자가 주위를 돌면서 표연하고 있었다. 허우대가 범강장달이같은 사내무당이였다. 그는 소리를 내게 하느라 주위를 빙 돌아가며 누런 철편을 잔뜩 달아놓은 크고 둥글납작한 귀신북을 손에 잡고 정신없이 흔들어대면서 한창 신이 올라 광기를 부리였다.

   박진사네 뜨락 한쪽에는 초8일날에 내다 건 점등(點燈) 두개가 아직도 길다란 장대기 끝에 데룽데룽 달린대로 있었다. 그 두개의 점등 중 하나가 아들의 것이고 하나는 지금 누워있는 저 병자의 것일거다.

   자식이 길(吉)하기를 바라고 저렇게 내걸었겠건만 병마는 무정했다.

   기학(夔學)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면서 그는 마치 어른모양으로 중얼댔다. 

  《기지 사경한 사람을 어떻게 완인으루 만들겠다고 아직도 저러나. 무당 한 번 청탁에 부비만도 불소하게 들텐데.》

   성묵이도 잇따라 한마디 했다. 

  《그러게 말이다. 의원이나 한 번 더 뵐게지 어쨋다구 저러나? 우습지. 어디 있는 가산을 재간껏 탕진해보라지. 무지한 사람!》

   아직은 서당문을 못들어서는 개구쟁이들이 무당흉내를 내느라 덩달아 떠들면서 분주살을 놓았다.

  《예ㅡ이 망할눔의 자식들같으니! 내 집 재(災)에 네놈들이 얼씨구냐?》

   박진사가 내다볼라니 애들이 좋아서 놀아대는 꼴이 열통을 텃치는지라 그만 참지 못하고 소래기를 지르면서 달려나왔다. 신도 안신고 맨발바람에.

   개구쟁이들은 혼비백산해서 와ㅡ 소리치면서 뿔뿔이 달아나버렸다.

   그결에 무당마저 하던 짓거리를 멈추었다.

   머리가 반백이 된 박진사의 피진 눈에 피곤기가 가득서려있었다. 요즘 더 폴싹한 것 같았다. 어린 기학(夔學)이였지만 보기가 애처롭고 안돼서 어른과 이러면 외람되는 짓이라는것을 알면서도 한마디 충고했다.

  《진사어른님, 기지 사경한 사람을 놓고서 왜 이러십니까. 조용히 안식을 기다림이 더 낳지 않을까요.》

  《네 말인즉 내가 딸년이 죽는 꼴을 보면서두 그냥 내쳐두라는거냐?》

  《무당굿해서 죽는 사람 살리는걸 봤나요?》

  《왜 못살려?》

  《세상에 있을수도 없는 일이죠.》

  《뭐라? 세상에 있을수도 없는 일이라? 있을수도 없는 일이면 중전마마께서 무당을 궁중에 모셨겠냐?》

   박진사는 충고를 받아주기는 커녕 외려 어린것이 갈개는거라 생각을 잘못하고 노여워했다.

   곁에서 보고있던 성묵이가 기학의 팔을 잡았다.

  《그만 가자! 박진사! 박진사! 에에....치인설몽인걸 그래.》

   과연 그런 것 같았다.

   기학(夔學)은 친구들과 함께 거기를 떠났다.

   진사라면 과거(科擧)를 봐서 소과의 초장에 급제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데 여기 이 금희동에서는 코빠는 애들마저도 그는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판무식쟁이라는 것을 안다. 한데도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어 진사로 됐는가? 사실인즉 간단했다. 그는 돈을 주고 진사(進士)의 명예를 산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으니 과연 소웃다가 꾸레미터질 일이였다!

   사람이 리성을 잃으면 못하는 짓이 없는가보다. 이때의 조선은 왕실의 부패가 극에 이르러서 매관매직을 내놓고 하는 판이였다. 그 장본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고종의 비(妃)였다. 그녀는 은당 임오년 군인들의 폭동에서 교훈을 찾아야겠건만 그러지를 않았다. 그때 분기탱천했던 군인들의 손에 잡히기만했던면 아마 맞아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운수좋아 도망을 쳐서 충주시골에 가 50여일간 숨어 지내다가 궁중에 돌아와 정권을 다시잡게 된 그녀는 전만 더 발광적이였던 것이다.

   민비 그녀는 충주로 도망갈 때 광한나루건너 어느 한 주막집앞에서 몇몇 성부지명부지 녀인의 괄시를 좀 받은적이 있었는데《이년들 어디 두고보자》며 절치부심하더니 환궁하자마자 그 마을을 도룩내라고 령을 내려 죄없는 주막마을을 피바다로 만들어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충주시골에서 숨어지낼 때 점을 쳐 자기를 위로해준 무당년을 서울에 불러 올려다가 대궐안에 두고 스승처럼 섬기면서 그녀의 말이라면 안들어주는 것이 없었다. 지어는 그의 말에 좇아 그를《진령군》이라 봉하고는 소원대로 창덕궁 북문밖 송자문골에다 북관묘를 세워주기까지 했다고 한가. 오늘에 이르러 일개 무당년의 위세가 충천할 지경이니 공경재상가운데서도 무당에게 아부하는 현상이 생긴것이 이상한게 아니였다.

   언젠가 임오군변을 빌어 잠시 권력을 잡게되였던 대원군은 민비가 죽었다고 선고하면 그녀가 설령 살아있다해도 다시는 왕비의 구실을 할수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허나 그것은 오산이였다. 그까짓 서푼어치도 안되는 《국상》발포가 보복과 정권욕에 미쳐버리다싶이 한 왕비에게 무슨 치명(致命)이 되랴? 평생 다 이루지 못할 끝없는 사치와 향락, 부귀와 영화과 무병장수를 부처와 귀신들에게 빌기 위하여 돈을 물쓰듯 하고있는 왕비! 매일밤 놀이끝이면 명주, 베, 모시, 무명같은 상품을 한아름씩 준다니 살판이 난 것은 무당, 판수, 광대, 중과 사당패들이였던 것이다.

   온갖의 명색을 다 붙여 백성들에게서 돈을 짜냈건만 그것으로는 당해낼수 없게 되자 그녀는 마침내 매관매직을 하는 판이였다.

   한데 그것이 여의한 것은 아니였다.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는 재정을 충당할 방법을 궁리하다 궁리하다 나중에는 실제로 근무하는 벼슬ㅡ실함과 함께 차함도 파는데 차함이란 곧 직함만 있고 사실은 아무런 실권도 없이 허울뿐인 벼슬이였다. 하지만 감투를 쓸수 있어서 《나으리》라는 소리를 듣고 《무슨 댁》이라는 택호까지 얻어 행세를 할수 있어서 조선일판에는 그것을 사는 자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차함도 많이 팔렸다. 그러니 너무 흔해져서 그것이 차츰 개똥같이 천하게 되였다. 이제는 그것을 사는 사람이 적어졌다. 그러자 또 생겨난 것이 《벼락감투》라는 것이다. 각 고을의 원님이 경내 백성들 중에서 부자를 골라내여 명단을 작성해 우에 올려보내면 감사나 관하 각 고을에서는 올라온 그 명단들을 모아서 서울에 올래보내여 곧 임명서를 받아온다. 그러면 마음에 내키던 안내키던 내라는 돈을 내고 그따위 허울뿐인 벼슬을 받아야 하니 실로 울며 겨자먹기였다.

   그건 그렇고, 돈주고 실권의 《원님》이 된 자들은 밀어 넣은 본전이라도 뽑아내자고 극심을 부린다. 그통에 죽어나는건 백성이였다. 하여 견디다못해 들고일어나니 《민란》이요 그것이 꼬리를 물고 련달아 생기니 결국은 나라의 우환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11년전에 임오군변을 겪고나서 왕은 륜음을 내려 정치를 잘못해서 백성들의 죄가 모두 자기 한 몸에 모여드는 것을 안다면서 이후로는 정사에 정력하겠노라 결심한바 있다. 왕자무희언(王者無戱言한)이라 한번 내쳤으면 빈말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왕권을 제 네편네한테 거의 빼앗기우다싶이했으니 이 나라는 꼴이 점점 더 한심하게 되어가는 판이였다. 이것은 리조가 말기로 줄달음치고있음을 의미함이요 비극적인 끝장을 보고야 말 징조였던 것이다.

 

   박진사네 댁에서 소란스럽던 굿이 마침내 멎었다.

   병자는 기절을 했는지 잠이 들었는지 잠잠했다.

   무당은 돌아가겠는데 돈은 싫다, 주겠거든 북포(北布)를 달라했다. 함경도에서 나는 베가 질이 좋다는 것 까지 알고 다니는 사내무당이였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라 조정이 부패해질대로 부패해졌거늘  발호(跋扈)하는 무당이 그래 이쯤한 세도를 못쓰랴, 무엇을 내라면 무엇을 내야했다. 박진사는 북포가 자기 집에는 없으니 웃마을 통장네를 찾아가서 사정사정 꾸어다 주었다. 

   호수적은 마을이라 뉘집에 숫가락이 몇인것까지 알정도였느니 이 일을 누가 모르랴. 또 하나의 이야기거리로 되어버렸다. 

   항간에 온갖의 소문과 류언비어가 나돌았다. 기학(夔學)이 또래의 아이들은 그런것들을 다 잡아듣고서는 열심스레 입방아를 찧어댔다. 

  《내가 들은 노래를 하나 부르라니?》

   박기호가 이러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혜당댁 나귀는 약과를 잘 잡숫구

   호판댁 큰 말은 약식을 안잡숫네

         

  《나도 그 노래는 할줄알아.》

   최삼용이가 하는 말이였다. 그래서 박기호가 그럼 네가 어디 글귀를 비슷하게 하나 지어보라니 최삼용이는 그만 자신이 없는지 입을 다시열지 못하고 잠잠했다.

  《내가 대신 지어주마.》

   기학(夔學)이가 나서면서 목청을 뽑았다.

 

          나라정사 문란해져

          뢰물은 공행하네.

          조선 팔도 삼백륙십주

          수령방백 봉물짐은

          서울바라고 락엽부절.

          권문세가 소슬대문

          큰입을 벌리는데

          꾸역꾸역 들어가는 봉물짐

          만백성의 고혈이라네.

   

  《멋지다, 멋져! 과연 멋지다!》

   성묵이가 엄지를 빼들면서 칭찬했다.

 

   무당이 굿하고 돌아간지 사흘만에 히스테리환자치고는 그래도 얌전한 축이였던 박진사네 큰딸이 깨여나지도 못한 채 끝내 황천객이 되고말았다.

   박진사댁이 딸이 죽자 너무도 애통해서 구곡간장이 끊어지듯이 주먹으로 땅을 치며 통곡하니 그것을 듣는 사람마저 가슴이 쓰려났다.  

  《애고, 애고, 원통해라!... 이런 변이 세상에 어디메 있노, 세상에 어디메 있어? 청군인지 개군인지 되놈은 웟쨌다구 데려다 사람잡이를 했노, 사람잡이를?... 그리라구 시킨 놈은 누기여, 시킨 놈은 누구?... 내 사위 안죽었으면 내 딸도 미치지 않을건데, 애고애고 내 딸아, 불쌍한 내 딸아!... 귀신은 뭘 묵고 사누, 뭘 묵고 살아?...애고, 애고. 원통해라!...복장터진다, 내 딸아!...》

   그것은 울음을 섞어 밖으로 내뿜는 시설이였는데 원한이 사무치고 있었다.

  《세상이 무심해 귀신이 울갓다... 배곱파 죽겠다 쌀달라, 밥먹겠다 쌀달라... 그게 무시게 죄락고, 무시게 죄?.... 제 나라 군댄데두, 제 나라 군댄데두... 워쨌다구 되놈은 끌어다 사람죽이나, 사람을 죽이는가구?... 애고고, 불쌍한 내 사위야!...죽어 원통해두 하소못하는 등신아, 불쌍한 내 사위야!... 네 각시 네가 고만 인제는 데리고 가는구나!... 에고고.... 죄짓고도 그놈의 목구멍에 밥넘어가나?... 그놈의 배때기에 밥들어가나?... 애고, 애고, 불쌍해라! 남편잃고 자식잃고.... 불쌍한 내딸아!... 불쌍한 미친년아!》  

   녀인의 호곡성에 원한이 절절한데 그놈의 목구멍 그놈의 배때기라는건 누구를 놓고 하는 소릴가?

   《목구멍?.... 배때기?....》

   《누구 목구멍이구 누구 배때기란말인가?》

   《글쎄말이다.》

    박기호와 최삼용이가 뇌는데 성묵이도 목소리를 합친다.

   《쉿ㅡ》

    기학(夔學)이가 손가락을 제 입에다  대며 떠들지 말랬다.

    호곡을 끊지 않고 계속하는 죽은이의 엄마입에서는 애통한 나머지 험악한 저주가 서슴없이 튀여나왔다.

   《피똥싸구 뒤여질 임금아, 네눔의 눈에 피고름날 날이 있을거다, 피고름날 날이!》

    애들은 모두 놀라면서 낯색이 굳어졌다.

   《저 로친도 미치지 않았나?》  

    최삼용이가 끔찍스러워 혀를 차자

   《가자!》

    기학(夔學)이는 제 친구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피했다.

    박진사댁에 상사가 났으니 마을이 안녕할리 없었다. 어느 집에나 길사가 생기든 상사가 생기든 그것을 제집일같이 여기고 참녜를 하는것이 조상전래의 관습으로 되어온 동네라서 어른 아이 할것없이 상가집에 모여 장례를 치르었다. 이날만은 서당도 문을 닫았다. 글을 가르쳐봤자 애들의 머리속에 그것이 들어갈리 만무였던 것이다.

    박진사 큰딸의 죽음은 그같이 파문이 크기도했다. 

    

   어이ㅡ어이ㅡ

 

   상여가 떠났다. 동네를 나가 서켠으로 향했다.

   장대끝에 길이 여섯자 가량 되는 붉은 비단에 백색으로 《孺人本貫朴氏之柩》라 대서(大書)를 한 명정이 맨 앞에 서고 그 뒤에 영구가 따랐다. 

   애들은 거개가 호기심에 들떠 머리태를 철렁거리면서 박진사네는 광중을 어디다 짓고 성복제를 어떻게 지내는가 보자면서 북망산까지 따라갔다.

   그속에 물론 기학(夔學)이도 끼여있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박진사의 마누라가 호곡을 하면서 임금을 마구 욕하고 저주하던 일이 자꾸 떠올랐다. 오죽하면 그모양이랴!

   그도 아직은 다른애들과 마찬가지로 임오년에 나라에서 한차례 군란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는해도 그 내막을 상세히는 모르고 있었다.

   그 내막은 이러했다.

   민비일파가 별기군(別技軍)이라는 새형의 군대를 창설하고 일본인 교관을 청해다 훈련을 맡기고 특별대우를 하면서도 전에 부려먹던 구식군대는 종래의 5영제를 격파하여 무위영이니 장어영이니 해서 두개영만 남겼거니와 별기군에 대해서는 특별대우를 하면서 구식군인들에게는 13개월이나 봉료도 지불하지 않고 천시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인들의 불만을 야기시켰거니와 그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기학(夔學)이또래 아이들이 태여난 그 이듬해인 1882년에 마침내 폭동을 일으키기에 이른거다. 원인이 그러하건만도 아직도 가지가지의 억울하고 참혹한 비극과 그 비극의 연유가 무엇이였는가 하는것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있었다. 왕과 정권을 다시잡은 민비가 임오군변의 주요책임을 회피하려는 심사에서 그것을 놓고 시비하는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주요원인이 바로 정부의 부패였다.

   세상에 부패로 망한 전형들을 라렬한다면 아마 첫 자리에 놓이는것이 바빌론성일거다. 바빌론은 기원전 6세기에 훼멸되였는데 그전까지 지구에서 제일 큰 도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바빌론은 아득히 높은 성곽으로 둘려싸여있었던 것이다. 성곽너비만도 25m고 둘레의 길이는 38km에 달했다. 성곽에 난 250개의 성문은 모두 동으로 주조한것이였다. 당시 인구는 약 700만. 성내에는 높은 층집이 줄느런히 들어앉았고 세계의 7대 기이한 경물의 하나로 불리우는, 구름이 허리를 감도는 공중화원까지 있었다.

   바빌론의 종교에서는 《성(性)》을 대단히 중시하였는데 사원의 벽마다에는 적라라하게 성을 묘사한 우상과 조각이 꽉 차 있었다. 정부가 성교를 하나의 신성한 놀음으로 장려까지 하다보니 나중에는 .일종의 추악한 병이 치료할수 없는 허물을 남기였다....의사들은 속수무책이다. 이 병에 걸리기만 하면 죽음에서 벗어날수 없다는것을 성전에 기록할 지경이였던 것이다. 아무리 번영하고 사치하고 방대하여도 정신적 지주가 없다보니 부패해지고 타락되였으며 내부가 곪을대로 곪아 구해낼수 없게되였다. 하기에 페르샤인들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세계에서 제일 큰 도시였던 바빌론을 력사상의 페허로 쉽게 만들어버려던것이다. 이것이 바빌론의 력사였다.

 

   하다면 조선의 력사는 이제 어떻게 될가?

   고종이 아직은 나이 어려 치정(治定)을 못한다하여  대신 나라권력을 틀어 쥐고 여러해나 독단하던 대원군이 드디여 자리에서 물러난 이듬해해인 1874년에 민비는 두 번째 왕자를 낳게 되니 일체의 희망을 그 애에게 걸었다. 민비는 무당을 궁중에 불러들여 밤낮 기도를 하고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면서 치성을 하다보니 수만금을 허비했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아들의 건강을 기원한답시고 금강산 1만 2천봉마다에 돈 1천량, 쌀 한섬, 포(布) 한필씩 공양한다고 소문이 날 지경에 이르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나라를 말아먹게 된 근원은 그녀의 사치와 랑비가 아니겠는가!       

   군인이 폭동을 일으켜 형세가 위급함을 본 왕은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운현궁에 들어박혀있는 아버지 대원군을 다시불러 모시였다. 폭동군은 모두가 민비세력에 밀려난 대원군을 마음속으로 믿고 나라정치를 잘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대원군은 정권을 다시잡자 장자 리재면을 즉각 훈련대장 겸 호조판서, 선혜청당상에 임명하는 동시에 자기의 심복들을 요직에 올려앉혀놓고는 폭동군인들에 대해서는 《속히 퇴산하여 안업하라.》는 명령을 내렸던것이다.

   《합하! 그럴수 없습니다, 중전을 잡아 죽이지 못했는데 퇴산하라니요? 그년이 다시 권력을 잡으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폭동군인들은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대원군은 며느리 민비가 죽어버린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설사 돌아와도 다시 맥을 쓰지 못할줄로 여기고 6월 18일에

   《민중전께서는 란군중에 승하하시였다.》

    라는 전교를 내리고는 며느리의 옷이나 소지품같은 것들을 거두어서《국상》을 치르고 사람들로 하여금 흰 망건을 쓰고 망곡을 하게하는 연극을 한바탕 놀아댄 것이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대원군은 청나라에 잡히우고말았다. 청나라에 가있는 김윤식과 어윤준이 조선에 변란이 발생했으니 빨리 군대를 파견해 진압해달라고 청나라에 요청을 했던것이다. 청나라는 황차 일본에 기선을 잡혀 기회를 노리던차라 그 요청을 얼싸좋다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청나라군함이 조선으로 오게된건데 대원군은 그런줄도 모르고 군함에 올라가 너희들은 왜서 남의 나라 내정에 간섭하려드는거냐 을러메면서 어서 물러가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도루 폭동주모자로 몰렸거니와 란폭하게 잡혀 그길로 인천에 끌려가서는 그만 령어의 몸이 되고말았던 것이다.

   7월 16일 밤부터 이틑날 새벽에 이르기까지 원세개가 지휘하는 청나라부대는 왕십리일대에서 폭동군인들을 참혹하게 탄압하였으며 오장경이 거느리는 부대는 리태원일대에서 대학살을 감행했다.

   대원군의 퇴산명령을 받고나서 형세를 관망하던 폭동군인들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불의에 달려드는 우세한 청나라군의 공격을 당해낼 재간이 없어서 괴멸되고말았다.

    청나라 장군 마건충이 당시의 정경을 일기에다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세궁력진하여 잡힐 것을 아는 자는 모두 칼로 자기 배를 찔러 창자가 드러나게 하였는데....이것으로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알수 있다.>>

   

     청나라는 대원군을 잡아가두는 한편 이같이 폭동군인들을 무력으로 탄압하여 일시 조선에서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우선 조선의 군제를 개편하여 무위영과 금위영을 페지하고 조선의 일체 군사사무를 청군의 통제밑에 두었는바 오장경으로 하여금 조선군을 통제케 하고 원세개로 하여금 조선왕궁을 틀어쥐게하였던 것이다.

    당시 구군대로서 폭동에 참가했던 박진사의 젊은 사위는 마건충이 일기에다 묘사한바와 같이 놈들 손에 사로잡히는 것을 수치로 여기고 창자가 나오게 칼로 배를 갈라 자결하고말았던것이다.          

 

    영구가 묘지에 도착했다.

    이제는 정상(停喪)을 할차례다. 집사자가 정결한 곳을 골라서 차일(遮日)과 병풍을 둘러 영구를 안치했다. 혼백(魂帛)을 영좌상에 모시였다. 영정을 영좌옆에 걸고는 영좌앞에 주, 과, 포를 진설하기 시작한다. 죽어도 곱다랗게 죽지는 않고 제 부모를 남다르게 애말리고 죽는다며 모색스레 딸을 원망만하고있던 박진사가 이제는 참지 못하겠는지 목노아 울었다.

  《어이구, 어이구, 내 딸아! 어이구....》

  《어이구, 어이구, 내 딸아! 어이구....》

   모두들 처연한 기색이였다.

  《임금님이 과연 청나라 군대를 끌어다 폭동군을 진압했다면 그건 제 적자앞에 죄를 지은거다.》

   기학((夔學)이는 오랜 생각 끝에 입밖으로 이런 말을 내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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