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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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반도의 혈 제1부 10.
2012년 09월 13일 14시 11분  조회:349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0.      

 

    마을 사람들이 최삼용이네 집 서쪽벽가로 웅게중게 모여들었다.

    삼용이네 집 그 벽은 저기 남쪽 개천의 돌다리를 건너서 곧추 마을로 들어오는 행길을 마주하고 있는데 그 벽에다 국문의 붓글씨로 씌여진 백지 여러장을 이어놓은 격문(檄文)이 나붙은 것이다.

   글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내리읽었고 무식자는 귀를 기우리고 들었다. 그들의 입에서 가끔 탄성이 아니면 의문을 발하는 소리가 튀여 나오군한다. 그 격문은 평안도 상원의 유생 김원교가 조직한 의병대가 장수산에 들어가 거점을 정해놓고 전국에다 발포한 것이니 일자를 따져보면 근 한달이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와 있는 미우라 고로오가 저의 일본의 외무대신 사이온지에게 통채로 한 장 보낸 그 격문이였다. 그런것을 누가 이제 무엇 때문에 새삼스레 베껴서 이 시골마을의 바람벽에다 붙였는지를 기학이또래 그 네 딱친구들을 내놓고는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담통두 크네. 들키면 경칠라구 이런 글을 감히 써 붙여?》

   《붙여놨길래 우리두 이렇게 보잖수. 》

   《고마운 일이네. 안그러믄 우리사 세상돌아가는거걸 알기나할가.》

   《관청서는 란민의 말을 들을거없다지만 보우 어디 그렇소. 죄 옳은 말인걸유. 안 그렇수?》

   대개 이러한 말들이 오가는 속에 사람들은 그것에 관심들이 점점 두터워지고있었다.

   그 격문은 내용이 깊고 길었데 아래와 같이 되어진것이였다.

 

   《지금 왜놈이 말하고있는 이른바 개화라고 하는 것을 개화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이른바 개화라는 것은 사물을 발달시키고 백성을 교화한다는 것이요 서로가 다 화목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본시 서로 죽일내기를 하는 것이 아니거늘 군대를 이끌고 왕궁을 침범하고 왕을 협박하여 보물을 빼앗고 법제를 제멋대로 고치며 대신과 장수들을 쫓아내고 무기를 략취하였으니 우리 나라는 임금이 있어도 없는것이나 다름없이 되고 나라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되었다.

   만국의 개화는 법이 본래부터 이렇겠는가! 이는 개화가 아니라 바로 역적의 매국이며 왜놈들이 나라를 망하게 하자는 것이다. .....500년동안 벼슬아치로서 대를 이어가면서 왕의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이 한몸을 희생하여 나라를 위하여 분통을 씻어보려는 자가 없고 도리여 왜놈에게 머리를 들여밀고 역적들에게 붙어 아첨하며 애걸복걸하면서 벼슬자리를 얻어 하여 제 한몸의 잔명만 연장할수 있다면 스스로 일생의 상책으로 생각하고 있다.....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가슴은 칼로 베여내는 것 같다. 그러므로 피눈물을 뿌리면서 의사들을 모아 여기에 머므르면서....간악한 원쑤놈들을 숙청하고 백성들을 구제해서 우리 나라를 께끗이 한다며는 우에서 말한바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불물속이라도 뛰여 들어가면서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고 싸움터에 주검을 남기고저 하니 우로는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다른 나라의 충신들에게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만일 자기 일신이 재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의 위급한 이때를 떠가는 구름보듯 하며 정의에 살아야 하는 대의를 헌 신짝처럼 여기면서 어중이 떠중이를 모아서 의사들을 치려고 하는데 이르러서는 왜놈에 대해서는 충신이라고 말할수 있으나 국가에 대해서는 무엇이겠는가! 비단 살아서 국가의 역신이 될뿐만 아니라 바로 죽어서는 조상들을 배반하는 후손이 될것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용납될수 없게 되는 것을 후회말라.》

 

   금희동마을은 집집이 앞뜨락에 벼낱가리들이 키돋움을 했다. 어떤 집에서는 벌써 탈곡을 시작했다. 올해는 농사가 이왕년보다 썩 잘돼서 모두들 배부르게 살아보리라며 기뻐했다.

   박기호네 집 앞마당. 방금 가려놓은 벼낱가리 주위를 돌면서 쫓거니 쫓기우거니 이제는 다 큰 애들이 길다란 제 머리태를 채찍처럼 휘둘러 대며 대방의 얼굴을 갈겨 댈 내기를 했다.

   《야, 이 발칙한 놈들! 무슨 지랄들이냐!》

    박기호의 아버지가 집안에서 나오다가 애들이 노는 모양을 보고 발연대로했다.

   《이젠 다 큰 녀석들이 아직두 철딱서니 없이 그따위 놀음질이냐, 불효막심한 자식들!》

   《기호아부지, 노여워마세요. 우린 제 머리태갖구 노는데요, 뭐.》

    기학(夔學)이가 대꾸질을 했다.

   《이눔아, 네 머리를 그래 뉘가 준건데. 너 애비가 줬어, 너 애비가. 아껴야지, 그걸 망탕굴어서야 쓰느겟느냐, 불효막심하게.》

   《효도가 머리태하구 무슨 상관이게요. 난 그런 말씀 정말 리해안돼요. 모두들 그러지만두 거치장스러워 차라리 없기만두 못한거같아요.》

   《뭐라? 네 입에서 엄청 그따위 외람된 말이 나오다니, 원. 불가사이다, 불가사이야!》

    박기호 아버지는 이러면서 거쿨진 몸을 세워 아들쪽으로 향했다.

   《기호야! 뭘하니 뛰라, 얼씨덩!》

    성묵이 소리를 쳐서 기호는 그만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다른 애들도 함께 달아나버렸다.

   《이놈의 머리태가 아무때나 일내겠다, 젠장!》

    기호는 몸을 피하기는 했어도 저녁에 돌아가면 매와 호된 꾸중은 면치못할것 같아 뒷근심이 태산같았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저녁늦게 들어간 아들을 때리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자기도 소시적 이맘때 머리태를 갖고 그같이 작난질을 해본것이요 사실 기학의 말과 같이 거치장스러워 차라리 없기만도 못하다고 생각한것이 한두번이 아니였던 것이다.   

   최삼용이네 집 바깥벽에 붙인 격문은 언젠가 성묵이가 경성에 갔다가 거리바닥에서 우연히 주은건데 그것을 기학(夔學)이가 가져다 보고 또 보다가 아무리 해도 자기 혼자만 알아둘게 아니라 생각돼 요즘 품놓고 백지 몇장에 옮겨 베낀 다음 깊은 밤에 남몰래 갔다붙여놓은 것이다. 

    그 격문을 읽고 충격받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충격이 곧 깨달음이였다.

   《우리 경원갈가?》

   다음날 박기호가 문득 제기했다. 거기 경원에는 그의 백부댁이 있는데 기호는 가본지 삼년넘는다면서 같이 동무하자고 친구들을 든장질했다.

   《갈려면 가자, 나 경원구경하고싶다.》

   《나도!》

   《나도!》

    기학(夔學)이따라 삼용이도 성묵이도 호응했다.           

    그래서 동갑넷은 경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들이 마을을 나오면서 볼라니 누군가 최삼용이네 서쪽벽 격문우에다 정부의 새 글을 붙여놓은 것이 있었다.

    고유문(告諭文)이였다. 삼용이도 누가 그런짓을 했는지 모른단다.

   《이건 아마 관차가 붙인거겠구나.》

    기학이따라 다른 애들도 다 그 고유문(告諭文)을 마주했다.

    성묵이가 소리내여 그것을 내리읽었 내려갔다.

 

   《<근일 군소(群小)의 무리들이 금상의 총명을 흐리게 하여 어짐을 멀리하고 간사함을 가까이 하고 있다. 이에 유신(維新)의 대업이 중도에 페지되어 5백년 종사가 하루아침에 위태롭게 되었으니 종친의 집안에 태여난 몸으로서 좌시할수 없는지라 이에 입궐하여 대군주를 보익하고 사악한 무리들을 몰아내여 유신의 대업을 성취하고 5백년종사를 부지하여 백성을 안도케 하려는것이니 백성들은 경동하지 말라. 만일 백성들과 병사들이 나의 길을 가로막을진대 반드시 중죄로 다스릴것인즉 후회함이 없도록 할지어다. 개국 504 8월 20일 국태공>이라. 허ㅡ이건!》

 

   《궁궐에 또 무슨 변이 난게로구나!》

   《났어. 민비가 쫓겨났어.》

   《손오공낯짝같이 변화도 무쌍하구나!》

    기호도 삼용이도 기학(夔學)이도 저으기 놀라는 안색이 되어갖고 그 고유문(告諭文)을 다시보았다....

    군소재지 경원도 이젠 차츰 변해가기시작했다. 건축물들은 고태를 벗지 못한채 거의 그대로나 시장이 전만 퍽 번성해진게 알리였다. 여기도 상점들에 외국제의 박래품들이 쓸어들었다. 머리에 운두낮은 팹이나 운두높은 중절모를 쓴 사람도 눈에 띄이였다. 흰피부에 머리가 노란 로씨야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선사람과 별다름이 없는 일본사람도 있었다.

    애들은 여기의 거리에서 흰 턱수염을 길게 자래워 짜장 그림에서나 보아온 풍선도골의 점쟁이 복술령감을 보았다.

    그는 무엇인가 그려진 흰 기대를 세워놓고 길가에 앉아 점을 치고 있었다. 고개돌려 다시보고 무밋거리다 그냥 가는 행인도 있고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같이 돈을 털어가면서 제 운수점을 치는 행인도 있었다.

   《내 점괘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볼가.》

   《자식, 쓸데없는 짓은 말거라.》

   《좀 보자. 저 복술령감 어디 알아맞히는가구.》

    기학(夔學)은 성묵이가 말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복술령감앞에 가 냉큼 마주앉았다.

   《너도 점괘를 보곱푸냐?》

   《예. 보굽파요. 건데 난 내 점 아니구 아부지 점 쳐볼래요. 될가요?》

    세상에 대신 다른사람의 점을 쳐주는 법도 있는가? 실은 그가 복술의 재능을 떠보느라 하는 수작이건만 점쟁이는 눈을 껌벅이며 쳐줄수 있다고 한다. 

   《너 몇살이냐?》

   《열다섯.》

   《이름이 뭐니?》

   《기학이얘요.》   

   《기학이라. 음ㅡ알았다.》

   《틀렸어요. 내이름 기자는  터기(基)가 아니구. 조심할 기(夔)자애요.》

   《조심할 기라.... 조심할 기라....》

    점쟁이는 거듭 깝자르기만 할 뿐 글자를 쓰지 못한다.

    기학은 석필을 받아 손바닥만큼한 검은 석판에다 <夔>를 써놓았다.

    점쟁이는 자기 앞에 나타난 영리하게 생긴 이 소년의 관상을 아느새 보더니 뭔가 깨도가 생기는지 고개를 몇번 까댁거리고나서 물어왔다.

   《이건 너의 아버지가 져준 이름이겠지?》

   《그렇잖구요. 삼대독자 이름을 아무렴 남보구 지어달라겠어요?》 

   《음ㅡ그렇겠지. 네 아버진 학식있는 분이로구나.》

   《그렇잖구요. 열두살에 벌써 진사가 된걸요.》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지라 최삼용이가 눈이 둥그래지며 입정을 놀리려다 성묵이가 옆꾸리를 쿡 찌르는바람에 정신을 펄떡 차린다.

   《어디서 뭘 하느냐?》

   《함흥서 판사로 계셔요.》

   《그러니까 사모쓰구 사는 량반이로구나. 자 이걸 네 손바각에 감추고 섞다가 요 통에 살짝 넣거라.》

   점쟁이는 한면만 +자표기를 해놓은 크기가 똑같은 바둑모양의 매끌매끌하고 납작한 돌 몇 개를 주었다.

   기학이는 시키는대로 했다.

   점쟁이는 먹이를 고르는 수탉모양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점괘를 중얼중얼 뇌였다.

  《송괘(訟卦)가 나오는구나! 구이(九二)라?..... 불극송, 귀, 이포기읍인 삼백호, 무생(不克松,歸,而逋其邑人三百戶,無?)이라. <소송에 실패하니 쥐굴로 들어가도다> 이건말이다, 소송해봣자 지는거니 도망가 숨는것이 상책이구나. 삼백호 동네에 가 있으면 화를 면할 수가 있네라. 알아들었냐? 너의 아버지가 여적 아라사를 따랐느냐 아니면 일본을 따랐느냐?》

  《건 왜 물어요? 점괘하구 관계되나요?》

  《관계되구말구. 두고보거라, 아라사를 따랐건 일본을 따랐건 사모쓰고 곁붙이로 돼서 살아간다면 편함이 없네라.》

  《건 왜서요?》

  《점괘에 그 둘이 자웅을 겨루느라고 나오는구나.》

   기학이는 점쟁이를 찔 갈겨보고나서 돈 10전을 던지듯 하고 자리떴다.

  《령감쟁이 어디서 허튼소리만 죄치구있네.》

   몇걸음걸어가서 기학이가 내뱉는 소리였다.

   돈 10전주고 거짓말시켰다면서 친구들은 떠들면서 놀려주었다.

  《신문사시오, 신문! 중전마마 서민으루 됐다는 소식이요!》

   신문파는 아이가 거리바닥에서 소리질러대면서 마주향해 오고 있었다.

  《가만!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중전마마 서민으루 됐다니 웃긴다.》

   박기호가 먼저 그 소리를 잡아듣고 달려갔다.

   다른애들도 달려갔다. 2일전의 신문이 오늘도 팔리고있는데 신문의 첫면에 대서특필한 ������페후조칙������이란 네 글자가 애들의 눈에 유표하게 안겨들었다. 삼용이가 돈 몇푼주고 그 신문을 제꺽샀다. 이 시각 아이들은 모두 신문에 난 그 보도에만 관심이 쏠렸다. 민비가 왕후에서 밀려나다니 이건 대체 무슨놈의 소린가? 어느때는 죽었다고 소문내서 국상까지 치르게하고서는 눈이 멀쩡해서 되살아왔다더니 이건 또 무슨놈의 꼭두각시놀음이냐?....조화도 많으니 이 보도를 믿어야 하느냐 믿지 말아야 하느냐?  애들은 점점 오리무중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가 그래도 기학(夔學)이가 먼저 정신이 맑아져 부르짖었다.

  《얘들아, 오늘 아침에 본 그 <고유문>하고 이걸 한데붙여놓고 생각해 보자. 왜 이런 <페후조칙>이 나왔겠냐?》

   량미간을 모으던 성묵이가 먼저 깨달았노라 머리를 까댁이고나서 단정을 했다.

  《이건 분명 또 어떤 음모가 생겼다는걸 말하는거다!》

   다른애들도 따라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능글맞은 점쟁이가 신문먼저보구서는 아라사니 일본이니 좌웅을 겨룬다느니 뭐니 했구나. 사기군같은 두상짝!》

   기학(夔學)은 혼자말처럼 중얼댔다.

   셋은 기호를 따라 그의 백부집에 이르렀다. 아들딸에 내외간해서 식솔이 넷뿐이라는데 촌가에 비해 가장집물이 갖춰졌지만도 어딘가에 궁기를 벗지 못한 서민의 살림이였다. 그러면서도 시골에서 온 애들을 그 집의 식솔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던 차라 기호의 큰어머니가 해주는 점심밥을 깡그리 먹어버렸다.

   아직 오후해덧이 얼마가량 남아있는데 산에 들어간지 여러날된다는 기호의 사촌형이 방금 사냥한 노루 한마리를 메고 집으로 돌아왔다. 올해 나이 25살인 그는 단단한 몸에 정력이 왕성한 젊은이였는데 이름이 순호였다.

   《기호야, 그간못봣더니 넌 키가 컷구나! 너의 친구들이겠지? 네가 왓다간게 아마 재작년그러께였지 그땐 내가 집에 없다보니 보지 못했구나. 그지간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께서는 다 무사하냐? 신외무물이라구 이 세월에 살아가자면 사람이 몸이 튼튼해야 하네라. 너는 무사하냐?》

   《나는 무사하지만 나라가 자꾸 괴질을 해서....》

   《얘가 웬 소리를하니? 나라가 괴질을 하다니?》

   《형님, 이것 보우.》

    기호는 삼용이더러 아까 산 신문을 내놓으라 해서 사촌형께 주었다.

   《이. 이건.... 대체 어찌된 일이냐?》

    순호는 신문에 난 페후조칙을 보더니만 이마살을 구겨박았다.

   《형님! 읽어보구두 모르겠소. 궁궐에서 또 변이 낫소..》

   《불손스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쌓냐. 말조심하거라.》

   《형님은 나라권리 누가 잡은거나 알고 그러오? 대원군이 잡았소 대원군이.》

   《뭐라! 대원군이 잡았다? 거 변화도 무쌍하구나!》

   《우리는 국태공이 전날 음력 팔월 스므날에 낸 <고유문>을 읽어봤습니다. 그 <고유문>에 국태공이 대군주를 보익하느라구 입궐을 했노라했더군요.》

   성묵이가 그한테 알려주었다.

  《오ㅡ그러냐! 난 산에서 진종일 짐승이나 쫓다보니 국세에 대해서는 아주 영 깜깜했구나.》   

   박순호가 스스로 뉘우치는 말이였다.

  《리씨왕조라는게 뭣이겠습니까. 하나의 집안이지요. 건데 언제 그 집안싸움이 멎어본적이나 있었던가요. 어느때는 외척 안동김씨가 드세서 나라안을 불안케 했구, 그것이 뒤집히니 다른 외척 민씨세력이 흥기해 나라를 쇠궁력진하게 만들었지요. 그랬으니 나라가 결국 이꼴이 된게 아닙니까. 지금은 제 힘갖고는 들어오는 외세도 막아내지를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로 그 외세때문에 궁궐에 변이 삘새 없고 나라는 소란하고 비운은 목첩에 닿아가고있는겁니다.》

   기학(夔學)이가 이같이 조리정연하게 알려주었다.

   박순호는 체대작은 일개 소년의 입에서 이같이 어른스러운 말이 나오는지라 저으기 놀라 다시금 눈여겨보면서 물었다.

  《넌 누구냐?》

  《형님, 걘 내친구 서기학이요. 총명이 과인하다구 소문난 애요.》

   박기호가 제친구자랑을 이렇게 하고서는 얘는 성묵이 얘는 삼용이 하고 하나하나 소개했다.  

  《오, 그렇냐, 넌 좋은 친구들을 사귀였구나!》

   박순호는 기분좋아 하면서 잡아 온 노루가죽을 벗기기 시작했다.

   노루고기를 삶은것이 한솥이나 되었다.

   기학(夔學)이는 여기서 노루고기를 배부르게 먹노라니 언젠가 물고기를 잡아 김호선생을 위로하던 지난 일이 새삼스레 상기됐다.

  《참 김호선생님은 지금 어디서 뭘하고있을가?》          

  《글쎄말이다. 본지가 오래서 나두 생각나는구나.》

   기학이가 꺼낸 말을 기호가 끝맺았다.

  《방금 너희들이 뇌는 이가 누구냐? 김호란 누구관데?》

   박순호는 궁금한지 물었다.     

  《우리 마을서 얼마간 선생질한 청년이요. 형님같은 나이쯤 될가.》

  《뭘하는 청년인데?》

  《뭘하는 청년인가구? 건 나두 모르겠소.》

   기호가 애매하게 대답을 얼버무리자 기학이가 알려주었다.

  《말루는 일본가 류학하고왔다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개화사상이 있어서 혁신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갑신정변 때 사람아니냐, 일본놈의 앞잡이로 돼버린?....》

  《말짱 그렇게 돼버린건 아니잖습니까. 그중에 일부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듣자니 박영효는 누구를 살해하려다가 발각이 돼서 다시 일본으루 도망갔다며. 나쁜녀석이지! 임금님이 은총을 베풀어 돌아오도록 허락했으면 착실히 정부일이나 볼게지 왜 사람잡이는 하자구들어? 개화, 개화....그것도 하겠거든 얌전스레 할게지 왜놈의 궁둥이에  달라붙자구할건 뭐야. 내 일러두네만 너희들은 정신차리구 남의 선전에 호락호락 넘가지를 말거라. 편드느라두말구. 철없이 놀다가는 지정불고죄를 짓고마네라.》

   무서운 편견이였다. 기호의 사촌형 박순호는 혁신파사람이라면 밀몰아서 친일파로 보고있었다.

   기학(夔學)이는 속으로 너는 실정을 전혀 모르는구나 하면서 김호를 두둔했다. 

  《내보겐 김호선생이 친일적경향이 좀 있기는해도 나쁜것 같지는 않아요. 그는 우리보다 아는게 많습니다.》

  《정녕 그하다면 몰라도... 사람은 걷과 속이 다를 수 있네라.》

   박순호의 충고역시 그른 것은 아니였다.

   기학(夔學)은 일깨워줘서 고맙다하고는 다시말이 없었다.

   이틑날 해가 올라오자 네 친구는 인심후하게 갖고가 먹으라며 주는 노루다리 한짝씩 가지고 기호네 큰집을 떠났다.

 

   그들이 거리의 어느 한 집 문앞을 지나고있을 때였다. 집안에서 나온 그 집의 아낙네가 들고나온 구정물을 길건너의 시궁창에 던지면서 이런 소리를 죄치는것이였다.

   《훠이! 멀리 가거라. 불여우같은 중전마마 악귀되여 붙을라, 훠이!》

    네 사내애는 걸음을 멈추고 일순간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저 녀자 방금 뭐랬니?》

   《악귀되어 붙을라?....》

   《불여우같은 중전마마라?....중전마마가 어떻게 됐게?....》

   《필유곡절이야, 들어가 물어보자.》

    맨 나중에 입을 뗀 성묵이가 우쭐 앞장서 가더니만 행길가 그 집의 바당문고리를 먼저잡았다.

    웬 낯모를 소년 넷이 우루루 쓸어들어드는지라 방금 구정물을 던지면서 구시렁대던 아낙네는 때시걱을 하다가 무루춤놀랜다.

   《저 좀... 방금 뭐라했슴둥? 중전마마 어쩌구 어쩌구....》

   중년의 아낙네는 놀랜 낯색이 더 굳어질뿐 말을 못했다.

   웃방에서 그녀의 남편이 사이문을 열고 정주간으로 나오면서 어성을 높여 물었다.

   《무슨일이요?》

   《예, 저, 놀라지를 마시오. 한가지 말 물으러 들어왔을 뿐입니다. 방금 저분이 구정물던지면서 중전마마 어쩌구 어쩌구 하길래 우리는....》

   성묵이가 어둑거둑 미처 응변을 못하길래 기학이가 나서며 들어온 연유를 말했다.

   그제야 아낙네는 숨을 휴 내쉬였고 사나이도 낯빛이 온화해졌다..

  《너희들은 그래 중전마마 없어진것두 모르냐?》

  《몰라요. 민비가 없어졌나요? 어떻게 돼서?》

  《소문은 인제났네만 벌써 여러날 되는 모양이다. 어떻게 없어졌는지야 나도 모르지. 가만있자, 건데 저....너들이 갖고있는 그게 노루다리아니냐, 그걸 나한테 팔잖겠냐?》

  《파는게 아니얘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웨치면서 밖으로 나와버렸다.

   민비가 없어졌다는 소리에 네아이는 저으기 흥분했다.

 

   얼마가지 않아서 그들은 또 걸음을 지체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술주정뱅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어디서 폭주를 했는지 낯에 울기오른 사람이 두눈이 괘괘 풀리여 갖고는 처뜨린 두팔을 휘휘 내저으면서 큰길을 이리쓸고 저리쓸고했다. 곁에서 한 사나이가 부축하느라 하는데 보아하니 그도 그만 못지 않게 대취한 꼴이였다..

   행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행동에 눈길을 던지였다.     

   볼만한 것은 입에서 말이 나가는지 구렁이나가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뽑아 던지는 악담패설(惡談悖說)였다.

  《민비가 죽었다나 숨었다나?...죽었으면 차라리 잘된거지 못된거 뭐야. 앎탁이 울면 집안이 망하는거야. 그년 나라를 말아먹자구 여적지 환장을 했지 뭐야, 환장을 했지....내 말이 그래 틀리나, 엉? 틀리는가 말이다. 어디 말해봐. 말해본란데두.....휘, 휘 그년의 치마바람에 놀아댄 놈이 얼마였더냐, 엉? 얼마였는가구.... 그년턱밑구 더러운것들 벼슬 잘 해 처먹었지, 기껏.... 민승호, 민겸호, 민태호....민.....민......민..... 개좇이나 빨 자식들!....》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라 옆사람이 입을 막으니 손을 쳐버리고는 계속 내뿜어 친다.

  《그년 무당까지 봉군하더니 불여우된게 아니여? 구미여우 된게 아니여?.... 빌어먹을 그 년은....어, 푸!.... 임오때 내 주먹에 맞아 죽었어야 했어, 내 주먹에....아니믄 너 그 가래짝 주먹에....어, 푸!.... 건데 또 없어졌다?..... 그년이 제 치마밑의 옥새는 얻따어쩌구서?.....그걸 누가 채가졌나?....오 오 국태공이라.....그렇지, 또 시애비 손에 넘어간거지. 오줌싸개같은 자식! 제 계집년 하나두 건사못하면서 룡상에는 그냥 앉아있어? 그러구두 대군주냐? 시러베아들 같은 놈!....에.....에....저런것들 땜에 나라가 망한다, 나라가 망해.억!....왝! 왝!》

   광기가 심했다. 속에 불만과 원한이 꽉 들어찬 사람이였다. 그런사람 아니구는 저럴수가 없다, 절대. 속이 보깨는 모양이다. 몇번 왝 왝 거리더니 입안으로부터 역겨운 것을 길게 내뿜는다.

   기학은 실신한 모양으로 술주정을 해대는 저 사나이는 임오군란때 청군의 손에 진압된 구군대임을 알았다. 취중발설을 그저 무모한 악담으로 만 들어 넘길것이 아니였다.  

  《저놈 제정신있나없나, 임금을 내놓고 저렇게 욕하다니? 모독하다니? 세상에 저렇게 미친자식 어데있나, 함부로 망언을 하다니? 저놈잡아라, 저놈을!》

   량반 하나가 나타나더니 장죽을 쥔 손을 올려 삿대질하면서 호령질이다.

   그러나 그따위 호령은 개방구만큼 여기고들 있었다. 만취한 술주정뱅이의 망언을 갖고 시야비야할건 뭔가 하면서 밭아 듣지도 않았다.

   더러는 량반의 그 거동을 언잖게 보고  비난까지 한다.

  《아니 저건 웟쨌다구 저리 발광질이노? 저것이 아마 눈멀어 술취한 사람도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술취한 사람을 잡아 관가에 바치자는건가. 그 심청갖고 오래살갔다.》

  《동학당 록두장군 어딜갔나. 저런 량반놈 목까지 쳐버리고 죽었어야 허는건데.》

  《쉿 입조심하라구, 저승길 오락가락한다.》

   량반은 자기 말을 들어주기는 새려 상놈들이 웃고 떠들면서 되려 비난하기까지 퍼붓는지라 화통이 터져서 장죽을 내두르며 고래질이다.

  《이놈들아, 내 말을 안듣구 왜들이래?》

   상투를 얹은 민머리의 중년사나이가 나타나더니 단엄한 어투로 그를 타이른다.

  《여보시오 량반어른, 체통머리있게 놀구려. 남 피맺힌 원한있어 속풀이 좀 하는데 뭐가 잘못됐다구 그러오.》

  《그래 상을 제멋대루 모욕하게 놔둬야 하나? 백성이면 군주를 받들구 도의를 지켜야 하는거야.》

   량반이 누그려들지 않아 조만간에 싸움이 붙을것만 같았다.

   누군가 웨쳤다.

  《그만들해요! 왜놈이 웃겠어!》

   과연 저쪽에서 머리에 캡을 쓴 사람 둘이 오고있었다.

   둘중 한사람은 김호였다. 애들은 그를 보는 순간 낯빛이 확 밝아졌다. 

  《선생님!》 

   이쪽에서 아니넷이  일제히 그를 소리쳐 불렀다.

   순간 뭇사람의 시선이 이쪽으로 확 쏠리였다.

   애들이 물어보니 김호가 자기는 지금 장사를 다닌다면서 몸이 왜소한 일본청년은 친구이자 동업자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나서 아이들을 향해 너희들은 일어공부를 그냥 하느냐 다른 사람의 지도없이 독해(讀解)를 할만하냐고 물어왔다. 기학기이가 먼저 자신이 있으나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싶이 조선에는 구독물(購讀物)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김호가 들가방을 열고 그 속에서 일어문서적 한권을 꺼내여 그한테 주는 것이였다.

  《잘 읽고 발전하는 일본을 연구해보거라.》

   그가 준건 일본풍경론이라는 소책자였다.           

   애들은 김호선생을 그렇게 경성거리에서 피끗 만나보고 헤여졌다.

   김호는 보아하니 지금 행적을 모른다는 민비는 십중팔구 죽었을 가능성이 많고, 여기에 일반백성으로는 알수없는 그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다고 점쳤다.

    

   애들이 금희동에 돌아오니 그새 누가 와서 소문을 펴놓았는지 기학의 큰할아버지 서장록도 민비를 입끝에 올려놓고 저울질했다. 한데 소문은 이와전와를 해서 각각이였다. 왕의 페후소칙이 내려 민비가 이전처럼 숨어버렸다는지, 자살했다는지, 왜랑인의 칼을 맞아 죽었다는지, 죽엇으면 시체라도 있겠는데 없다니까 승천입지를 했다는지....풍문이 더러는 이와전와돼서 아름다운 전설을 꾸며지기도 했다. 천궁에서 녀황이되어 만세에 복락을 누리게 됐다는지.... 하여간 민비를 놓고 오만가지의 설이 많은데 사실 국모인 그녀가 죽었다해도 온 나라 백성치고 진정 가슴아파할 사람은 얼마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나라의 금화(金貨)를 탕진한 요물(妖物)이라고 평판(評判)이 되어 백성의 눈에 난지 오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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