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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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半島의 血 제1부 6.
2012년 09월 13일 13시 37분  조회:3699  추천:1  작성자: 김송죽
 

 

    6.

 

    도오꾜오(東京)ㅡ일본의 지도우에 새 이름으로 태여난지 이제 몇해나 되는가? 기원 1603년에 도꾸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幕府)를 연 후로 에도(江戶)라 불리워지면서 번창해지기 시작하더니 메이지유신(1867ㅡ1873사이에 진행된 자산계급혁명)이후에야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지면서 나라의 수도로 정착된 도시! 

   면모가 변해가면서 날따라 인구가 점점 밀집하고 있는 이 대도시의 한 자그마한 수림속에 주위를 돌아가며 낮다란 철책을 두른 구태의연한 건물이 하나있었는데 이 집의 조용한 방 다다미우에서 한 사나이가 고달픈 잠을 느러지게 자고 깨여난다.

   누런색갈의 피부, 몽고주름이 잡힌 눈, 흑갈색의 홍채(虹彩), 유아때는 직상흑모(直狀黑毛)의 머리털을 가진 전형적인 죠슈한출신의 일본애여서 몹시 귀여움을 받았으련만 지금은 반백이 된 머리에 흰 코수염과 염소모양의 턱수염을 자래워선지 한결 위엄스레 보여 경원하게 되는 이 53세의 중등키의 건실한 사나이는 일본국의 총리대신 이또오 히로부미다.

   그의 두 눈은 부석부석했다. 요즘 며칠간 시름놓고 푹 쉰다는게 이모양이다. 며칠전에 메이지천황이 발분망식(發憤忘食)하는 그를 발견하고

  《아니, 총리대신께서 왜 이리두 무리하십니까? 신외무물이라는걸 모르십니까. 나라 정무를 그냥 보시려거든 옥체를 돌보셔야지요. 며칠 푹 쉬셔야합니다.》

   하고 강권이나답잖은 은총을 베푼것이다.

   이또오는 나라 정사에 몸을 잠근이래 천황이 처음으로 직접 윤허를 한 자유일이라 휴식을 잘 하리라했다. 한데 결국은 명승지 몇 곳을 돌고나니 외려 더 지쳐버리고말았다. 그래도 후회나 유감은 추호도 없었다.

   이번 휴양일을 그는 영국류학시의 동창생이자 지금도 여전히 지기지우(知己之友)로 각별히 친하게 지내고있는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보냈다. 그들은 요꼬하마와 더불어 장차 굴지의 무역항구로 개발할 나고야, 고베 두 항구도시를 다시돌아보고 나서 ������헤이앙꾜오(平安京)������의 이름으로 천여년동안 일본의 왕도(王都)로 학예(學藝)의 기분이 다분한 교오또에 들려 거기서 사날가량 묵고는 나라시(奈良市)에 가 그곳에 있는 도오다이사를 구경했다. 도오다이사는 749년에 지은 화엄종(華嚴宗)의 대본사인데 거기에 있는 본존대불(本尊大佛)을 다시한번 보고나니 느낌이 새로와졌다.

   어언간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류학가기 착 전해던 1862년ㅡ그때 이또오 히로부미는 나이 21살이고 그보다 5년 이상인 이노우에 가오루는 26살이였다. 한창 혈기방장한 때였다. 그들은 둘다 범인(凡人)으로 살아가기보다 한번 세상에 태여난바하구는 세상구경도 할 겸 많이 배워 나라에 동량으로 되어 생을 마침이 지당하지 않을가 하는 웅지(雄志)를 품고 외국류학을 떠나기로 맘먹고 조국애를 키우느라 먼저 한바탕 국내각지로 고찰을 떠났던것이다.

   일본국의 상징이요 년중 눈이 쌓여 경관을 이루는 일본 제1의 후지산은 그들 다가 소학때 벌써 각기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견학을 했었기에 다시가보지 않고 아마산과 유명한 구사쯔온천이 있는 시로네산을 가보았다. 그리고나서 이어 규우슈로 건너가 그곳에 있는 기리시마산과 아소산을 돌아봤다. 화산군(火山群)으로 이루어진 기리시마산은 산중에 몸을 잠그기 좋은 온천 몇 개가 있다는 것이 기억에 남고 아소산은 대단히 인상적이였다. 한것은 그것이 2중식의 활화산인데다 세계적인 대칼데라(大caldera)이기 때문이다. 폭발이나 함몰이나 침식으로 말미암아 화산체의 중앙부가 화산구보다 훨씬 크게 푹 패여진 것을 칼데라라한다. 동서의 길리가 18㎞고 남북이 24㎞였다. 자연의 힘은 인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怪力)임을 진정 깨닫게 되는 곳이였다.

   이번에 이또오 히로부미는 나라에 가서는 기념으로 그곳의 전통적인 특산품인 필묵(筆墨)과 나라쓰께(奈良漬)라 불리우는 부식물을 사오기까지 했다. 그곳에 있는 도오다이사의 본존대불을 보고나서 느낌이 새로워진게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본존대불은 비로자나불로 키가 16m나 되며 아직까지는 세계최대의 주불상(鑄佛像)이라는 그것이였다.

  《사람 세상에 났다가 죽어도 그놈의 불상처럼 되면 원이 없겠다.》

   눈앞에 불상을 다시금 떠올린 이또오 히로부미의 입에서 은연중 이런 말이 튀여나갔다. 그랬다가 다시 그는

  《내가 이거 무슨눔의 얼빠진 궁리를 하고있어?》

   자책하고나서 위생실로 향했다. 소바를 보자니 10년전 갑신년 때 김옥균 등 조선의 젊은 개혁파를 추겨 정변을 일으키게 했다가 실패한 일이 또다시금 머릿속에 떠올라 신경을 긁어서 그는 명토없이 한마디 비웃었다.

  《내가 그때 오줌싸개짓을 했지!》

   당시 조선주재 일본공사관은 무기를 비밀히 저장하여 두고 조선정부를 반대하는 정변을 책동하여 조선 보국 민태호(輔國 閔台鎬)등 8명을 살해하는 동시에 조선 왕을 페위시키려고 하였다. 이렇듯 외교관의 특권을 리용하여 자기의 공사관으로 하여금 그가 주재하고 있는 국가의 정부를 전복하는 군사음모 기관으로 되게 한 사실은 실로 외교사상에서 처음보는 일인 것이다. 만청은 조선의 요청에 의하여 오장경을 조선에 파견하여 내란을 평정케 했다. 그때 일본공사 다께조에 신이찌로는 일부러 자기 공사관에다 불을 질러 놓고 달아나고는 그것을 도리여 조선사람이 한 짓이라고 뒤짚어씨웠다. 그러면서 이를 구실로 조선측에 무리한 요구를 많이 강요하였던 것이다. 조선에서 손해배상을 지불해달라, 일본이 조선 서울에 군대를 증원하게 해달라 등등.

   조선정부는 압력에 못이겨 부득히 접수했던 것이다.

   이듬해인 1885년에 궁내대신으로 있었던 이또오 히로부미는 농무대신 사이고 노리미찌와 함께 조선문제에 관한 회담을 하고자 천진(天津)에 갔다. 만청정부에서는 리홍장을 전권대신으로 하고 오대징을 부사로 하여 마주앉게했는데 그번에 맺은 《천진조약》은 아래같은 3항내용으로 돼있다.

   

  (1) 중, 일 량국은 조선에 주둔한 자기 군대를 전부 철거할 것.

  (2) 조선이 군대를 훈련 할 때 중, 일 량국은 서로 다 교련관을 파견하지 않을 것.

  (3) 앞으로 량국이 만일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때는 반드시 서로 사전에 통지할 것.

  

   한데 ������중일천진조약������체결후에 만청과 일본은 모순이 완화되지 않았을 뿐만아니라 도리여 갈수록 험악해져서 일촉직발의 형세에 까지 이르었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원세개를 다시금 머리에 떠올렸다. 올해 35살인 원세개는 젊은 나이에 통상대신이 되어 벌써 여러해째 만청정부를 대표하여 조선에 와 주재하고있으면서 그사이 대단히 교만해져 속국으로 여겨온 조선을 아예 만청의 군,현(郡縣)으로 만들어버릴 계획까지 하고는 조선의 내정을 횡포하게 간섭하고있었다. 하여 조선사람의 격분을 자아낸것이다.

   세상일이 어쩌면 애들의 놀음과도 같았다. 잔약하면 힘센 애의 없수임을 당하기마련이요 꾀가 약지 못하고 어리석으면 외려 더 몰리우게 되는 것이다. 간에 붙었다 염통에 붙었다. 조선이 바로 그러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에 풍전등화(風前燈火)모양이 돼버린 조선이 지금은 멀리 태평양건너에 있는 미국과 친하고 로씨야와는 멀리하고 만청정부와는 원쑤처럼 대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증오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관저(官邸)에 이르자 그보다 한발 앞서 도착한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났다. 그도 려행을 하고나니 피곤기는 의연하다면서 구미가 당기지 않아 아침식사를 대수때렸노라하고는 흥분된 어조로 물어왔다.

   《듣자니 조선서 란이 생겼다는데 아시오?》

   《란이야 장참인걸요. 작년만두 네 번이나... 거기다 청국비적까지 겯들어 작경을 놀구....희구한 소식이야 아니지.》

   《아니요! 요번 소요는 성질이 달라. 동학당이 <척양척왜>라는 구호를 웨치며서 나선건데 그놈의 기세가 대단히 흉맹하다는구만.》

   《그렇다구!? 어디서 그런 소식은요?》

    이때 마침 조선에 가있는 오도리 게이쯔께공사가 보낸 비서관이 나타나 총리대신을 알현(謁見)하고나서 소지했던 문건 한통과 물건을 내놓았다. 그것은 오도리 게이쯔끼공사가 조선에서 지난 2월 15일에 동학당이 상층계급의 탐관오리와 악질량반을 숙청하고������척양척왜������를 한다면서 전에 없던 무서운 란을 일으켰기에 서울의 일본인 재류민들은 지금 비상상태에 들어갔노라고 총리대신께 알리는������보고서������와 그 실증물이였다. 그가 실증물로  갖고 온것은 동학당의 글이였다. 

  《뭐라? 령사관의 담벽에다 이런 글을 붙였단말이지!》

   보고서를 쥐고 있는 손이 떨리린다. 낯색은 자못 심각해진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도끼눈을 해갖고 동학당이 서울에 있는 일본령사관 담벽에 붙혔다는 글을 다시한번 찍듯이 박아본다. 그것은 한자너비에 길이가 일곱자 푼한 흰 목포에다 한글로 쓴 붓글씨였는데 원문이 이러했다.

 

            짜개발이가 남의 나라에는 왜들 들어왔느냐.

            당장 물러가지 않으면 모조리 박살을 낼테니 그리들 알라.

                                                             동학당

 

  《돌아가 오도리공사를 오라구 해, 당장!》

   이또오 히로부미는 쫓아버리듯이 명령했다.

  《예, 지시대로 곧 하겠습니다, 각하!》

   비서관은 황공재배하며 물러갔다.

   파리 한 마리 없고 먼지 한꼬치 일지 않는 방안은 다시금 조용해졌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10년전 유신파 주모자 몇이 조선에 있을수 없어서 숨어 오던 모양을 새삼스레 눈앞에 그려봤다. 조선정부를 일본처럼 개혁해보겠다며 나서서 란을 일으켰던 그들은 결국은 실패하여 목적을 이루지 못한채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고 일본령사관의 나무궤짝속에 숨어 화물처럼 가장하여 천세환상선(千歲丸商船)에 실려 일본으로 망명을 했던것이다.

   《이젠 건너올것두 없겠지만....》

    그때 서울서 살던 일본인 거류민들이 당했던 봉변이 눈앞에 현실같이 다시금 상기되여 그는 가슴이 서늘해났다.

    그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조선사람들은 일본사람은 원쑤처럼 보아 만나면 싸워서 죽고 상한 것이 많았다. 게다가 만청군이 밤을 리용하여 일본공사관을 습격, 39명을 죽이고 부녀를 겁탈하고 가옥을 불살라버리고...

   《이번에 또 그모양이 되지 않을가?》

    아느새 면상에 잠겼던 이또오 히로부미는 차츰 정신이 맑아졌다.

   《차라리 잘될지두 모르지. 털끝하나 건드려 봐, 이번에는....》

   비서관이 돌아간지 4일만에 오도리 게이쯔께가 환경(還京)했다.

   이또오 히로부미는 그를 자택(自宅)에서 접견하고 보고를 받았다.

   오도리 게이쯔께공사는 먼저 조선에서 동학란이 생기게 된 원인과 그 란의 정황을 개괄하고나서 서울에 거주하는 일본인 재류민의 형편에 대해서도 외교관답게 상세하게 구술했다.

   《지금 한성 진고개일대에 살고 있는 우리 일본인 겨류민은 169호에 인구가 모두 715명이 됩니다. 그들 중 어떤이는 잡화상, 포목상, 피복상, 가구상, 주류상, 우유상, 두부상을 하고 어떤이는 운송, 인쇄, 세탁, 중개업같은 것을 하고있으며 미장이, 목수, 석수, 땜쟁이.... 아니하는 일이 없습니다. 흥행장, 유희장도 있고....》

   《건 나도 알아. 학교, 우편국에다 자기의 소방조, 의원, 재판소까지두 갖고있는데. 요는 형세가 지금 어느 정도로 번져가고있는가 하는 그거야.》

    이또오 히로부미의 오른쪽 관골아래에 돋아난 팥알만한 김이 알릴 듯 말 듯 움직였다.

    오도리 게이쯔께 공사는 몸을 조심스레 바로 가꾸고나서 총리대신이 중둥끊었던 말을 이어서 끝냈다.

   《그렇지요. 그래서 저는 지금 관망하고있는 중입니다, 각하! 들리는 소문에는 동학당도들이 서울까지 쳐들어와서 왜놈이든 양국 오랑캐든 모조리 쳐 없새버리겠다구 벼른답니다. 그래서 한성 장안이 벌컥 뒤집혀졌지요. 저는 고시문을 내려 만일을 경계하고있습니다. 서둘러서 장총 1백여자루를 변통해들여왔구 령사관의 순경들을 시켜 그것으로 거류민중에서 청장년을 골라 교외로 데리고 나가 발포훈련을 하도록했습니다.》      

   《단속은?》

   《했지요, 각하! 거류민은 각자 경계를 더 엄히 하라구 했습니다. 자기 지역밖으로 함부로 나가지를 말아달라했습니다. 그리구 조선인에 대할시는 특히 말과 행동을 삼가하며 싸움이나 언행은 물론 조금이라도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은 없도록 하라구 지시했습니다.》

   《잘했어. 그래야지. 쏘자고 침을 내 들고 덤벼치는 성난 벌인데 건드려서야 되겠소. 인내성있게 참도록 단속잘하오. 우리는 형세를 봐가며 움직일것이요.》

   《각하! 조선정부가 자기 난민을 진압할수 없어 외국으로부터 원병을 요구할 처진데 우리가 안심하고 그의 보호에 의뢰할수 있겠습니까. 만청의 보호는 받을수 없는것이고. 그러니 우리는 자신의 병력으로써 자기를 보호해야지 다른 수는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그건 자네가 할 소리 아니야. 내가 방금 말한 소리를 못들었는가, 형세를 봐가며 음직이리라는걸?.》

    이또오 히로부미가 힐끗 치떠보고 나서 말하는데 가라앉는 음성에는  서리찬 차가운 힐난이 넘실댔다.

    오도리 게이쯔께는 무안당했을 때 처럼 낯이 확 붉어났다. 주제넘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그만 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는 자신이 불민했음을 속으로 되게 꾸짖었다.

   《바보가 따로있나, 에잇 못난자식!》

    오도리 게이쯔께 공사가 물러간지 얼마안되여서 이노우에 가오루가 왔다. 헌칠한 키에 미남인 그는 성격이 온당하고 사려깊은 사람으로서 어떤 일이든 맡기면 얼버무려서 넘긴적이라고는 없다. 이 점이 이또오 히로부미의 마음에 꼭 들었다. 그래서 그는 그와 더 가까워지는지도 모른다. 존왕양이와 메이지유신에 선봉이였던 이또오 히로부미는 추밀원 의장으로 임명되자 그 이듬해였던 1889년도에 ������대일본제국헌법“의 제정을 지도하였는데 그때 이노우에 가오루가 헌법원칙을 기초함으로써 메이지헌법체제의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다. 이 하나만으로도 그는 그가 자기와 함께 만대에 공신으로 전해질만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두사람 다가 메이지유신의 공신으로서 일본에서는 온 공민들로부터 애대와 경모를 받으면서 하늘같이 떠받들리고있었다. 하여 자호와 긍지를 느끼는건데 이또오가 지어는 후대들이 언제건 자기들에게 나라시 도오다이사에 있는 본존대불같이 높은 주조물 동상을 해서 세워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청년시절 류학의 길에 올라 대양을 건너며 품었던 웅지(雄志)를 현실로 만든 그가 아닌가. 아무리 피곤해도 생활이 충실하기에 그것에 만족하여 즐거이 여생을 보내는 그였다.

  《어떻소, 오도리공사의 상황보고를 받고서 짚히는게 있겠지?》

  《한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이 이제는 자기의 군대로는 폭동자들을 진압하지 못할것이고 그래서 외국에 원병을 청해야한다는 그겁니다.》

  《예견이 나하고 꼭 맞는군! 한데 군의 생각에는 조선이 원병을 청할 시 어느 나라에 손을 내밀 것 같은가?》

   이노우에 가오루가 묻는 말이였다.

  《만청일거야.》

  《조선이 만청을 워쑤처럼 여기는데?》

  《하지만 형세부득하니 그렇게 할수밖에 없지요. 생각해보시오. 동학란이 일어난지 이제 며칠안되는데 전국을 석권할 기세라니 멀리있는 미국에 원병을 청할까? 실상 청한다합시다. 태평양건너 저쪽에서 어느때 가야 도와주겠습니까. 기다리는 사이에 볼장은 다 보고 말텐데. 그러니 부득불 가까운 만청에다 또 구원의 손을 내미는 수밖에. 원쑤가 됐더라도 옛정을 봐서라도 도와만주면 또다시 형님동생간이 돼서 일본을 대처할수 있거든요. 안그렇습니까. 두고보시오.》

  《맞아! 꿈보다 해몽이 빠르구만!》

   이노우에 가오루는 예지명견(叡智明見) 이라면서 동감했다.

  《군대를 몰고 와보라지. 그때는 대결이 되고말걸.》

   이또오 히로부미가 뇌였는데 그의 음험한 랭소에는 말못할 야심이 너울쳤다.

   두 친구는 조선을 만청과 철저히 갈라놓고 조심스레 친일파를 많이 길러내여 적당한 시기에 그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어야 하다고 주장을 같이 맞췄다. 일본은 왕정복고가 성공한 이래 ������정한론������이 대두하였다가 내치우선파(內治優先)에 밀리여 좌절되였다. 그 중심인물이였던 사이오고 다가모리는 실패를 달가와 하지 않고 관직을 버리면서까지 반란을 준비해 일으켯다가  그번에도 패하게 되자 자결로 끝장을 보고말았던거다. 한데 지금은 그 유령으로써 ������단행론������자들이 나타나 한국을 빨리 합병해야 한다고 떠드는 통에 정계는 열병을 앓고 있었다.

   《가쯔라, 야마다께, 데라우찌!》

    이또오 히로부미는 단행론의 주창자 세 군벌의 이름을 뇌이고나서 머리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급히 먹는 떡에 목이 멘다는걸 잊었나보지. 그쯤한 상식두 모르구 덤벼들치니 원! 》

   이또오 히로부미가 하려던 말을 친구가 했다.

   이또오 히로부미의 저택에는 식솔이 사용하는 침실 4개를 내놓고 지금 이들이 있는 방이 하나 더있는데 널찍한 방은 서재이자 관저외의 이또오 히로부미의 공작실이기도했다. 책장과 마주하는 흰 벽에다는 히노마루를, 다른 한쪽 벽에다는 메이지천황의 화상을 밤색에나멜를 올린 액틀속에 넣어 정중히 걸어놓았다. 그 두벽이 붙어 직각을 이루는 구석에다 립식의 목제옷걸이를 세워놓았는데 거기에 이 일본제국에서는 천황 다음 지체가 높은 집주인의 고귀한 신분을 말해주는 모자와 정장(正裝)이 걸려있었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책장곁에 놓여있는 연상(硯床)의 붓꽂이에서 전날 이또오 히로부미가 나라에서 사온 붓을 뽑아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아직 한번도 먹물을 먹인 것 같지 않구만. 이 붓으로 쓰고싶은 첫 글이 뭔데?》

  《 <韓日合邦>

   이노우에 가오루는 대답이 시원해 좋다해놓고는 낯색이 심각해졌다.

   《한데.... 지도같이 담약한 토끼면 몰라도... 조선백성이 과연 곰상해질 날이 있을가. 그네들은 력대로 일본을 원쑤로 여겨 미워하고있는는데?》

   《어디 실컷 미워하라지. 증오하라지. 아무리 어쩌구 어째두 미래여불의 손바닥은 못벗어나는 손오공의 신세로 된걸. 우리가 이제다시 발을 들여놓으면 도요도미 처럼은 되지 않을겁니다. 절대루.》

   이또오 히로부미는 이렇게 장담하였다가 입가에 피웠던 경멸을 지워버리면서 속으로 뇌였다. 봄이 오라지 않지만 아직은 겨울절기가 채 가지 않아 싸늘하구나. 추위를 견뎌내는것이 인간의 본능일진대 조급해말고 인내(忍耐)를 키워야 하는거야.        

    동학당이 폭동을 일으키니 조선정부는 홍계훈(洪啓勳)을 초토사로(招討使)로 임명하고 만청의 군함 평원호(平遠號)와 운수선 창룡호(倉龍號)를 빌어 군대를 싣고 인천서 장산포를 거쳐 전주에서 동학당을 진격하였다. 처음에는 정부군이 전투에서 우세하였으므로 동학당은 백산(白山)으로 퇴각하여 유격전으로 들어갔다. 정부군은 그 뒤를 따라 진격하다가 폭동군의 복병들에게 습격을 받아 거의 전군이 전멸되였다. 동학당은 전라도로부터 충청도로 다시 진격하여 각처에서 관군을 격파하고 그 지역들을 점령했다. 하여 서울은 위급하게 되었다. 이로인하여 조선정부는 만청에 응원병을 청하였다. 리홍장은 이에 응하여 직례제독 섭지초(直隷提督 葉志超), 태원진총병 녑사성(太原鎭總兵 ?士成)으로 하여금 료유지방의 방어군을 거느리고 조선에 건너가 아산군에 주둔하게 하였다.

    만청정부는 이번에 출병하면서 천진조약을 지키느라 일본주재공사 왕봉조(汪鳳藻)에게 일본외무성에 통지하라고 하였다. 5월이다.

   《그렇겠지! 우린 리유가 있게됐구나!》   

    만청군대가 출동했다는 외무성의 보고를 듣고 이또오 히로부미는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만면에 희색을 지었다.

    마침 이날 이노우에 가오루가 와있어서 둘은 함께 대책을 연구했다.

    이노우에 가오루가 입을 열었다.

   《아산에 상륙한 청국병이 얼마라했지?》

   《이천 오백명.》

   《그럼 우리도 그만큼이야 파병해야지.》

   《왜 그만큼만. 절호의 기회인데.》

    이또오 히로부미는 무력시위로 만청을 눌러놔야한다면서 눈알을 몇번 굴리더니 2,500이란 수자의 웃머리에다 1자를 하나 더 그어 지체없이 12,500명에 달하는 혼성려단을 만들어 인천에 상륙케했다. 이 막대한 수의 군대가 서울까지 진군해 들어가자 만청정부는 당황하여 일본은 왜서 이같이 많은 병력을 파병하느냐, 왜 조선의 내지까지 진군하느냐며 항의했다.

   《조약은 량국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경우에는 먼저 상대방에 통고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하였을 뿐이지 출병인원수와 진주(進駐)지역에 대하여는 제한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측의 대답이였다.  

   ������전주강화조약������에 의해서 동학당란이 잠시 평정되였다.

   만청정부는 중, 일 량국은 철병하자고 제의했다.

   일본은 그러지 않겠다, 우리는 조선의 내정개혁을 방조하여 장구한 치안을 유지할 용의가 있다면서 조선의 내정개혁방안을 제출하였다. 오도리 게이쯔께는 이또오 히로부미의 지시대로 조선정부를 찾아가 질문했다.  

   《<일한강화조약>에 의하면 조선은 독립국인데 중국이 일본에 보낸 조회에는 아직도 조선이 중국의 보호국이라고 하였으니 조선정부는 이를 승인하는가, 안하는가? 또 일본이 조선을 협조하여 내정을 개혁할 방안에 대한 의사는 어떠하며 이를 실시할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조선정부는 이 질문에 대하여 회답하기 어려워했다.

 

   《조선정부는 일본측에서 제출한 개혁안을 접수하지 말라.》

    조선주재 만청의 총판(總辦) 원세개(袁世凱)의 명령이였다.

 

    그는 조선정부에다 이같이 명령하는 한편 일본에 향하여 철병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그따위 요구같은건 개방구만큼 여겼다.

    수상자리에 방금 오른 이또오 히로부미는 정부회의를 소집해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이 만청에게만 후원병을 청하고 일본에게는 청하지 않은 것은 민씨의 소위라 생각한다. 나는 집정 민영준이 밉다. 그는 만청과 친근하며 따라서 조선은 우리를 배척할 것이다. 우리는 무력으로 조선의 내정을 감독하며 집정 민영준을 파면시키고 친일파를 등용하여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철병을 거절한것이다.》

    한편 만청의 리홍장은 외국이 나서서 조정해줄것을 바라고 자체의 힘으로 전쟁을 준비하여 방어하고 조선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도리 게이쯔께는 조선정부더러 완전히 자주독립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라했다. 그것은 협박이였다. 조선정부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리홍장은 루차 일본과 협상할 것을 제기하였으나 일본은 도리여 배상금 300만원을 요구하였다. 이에 중국인민은 크게 분격하여 죄꼬마한 일본나라로서 감히 대국인 우리 중국에 반항이냐, 징벌해야한다고 했다.  옹동화(翁同?), 장건(張?) 등이 견결히 일본과의 전쟁을 주장하였으나 리홍장은 여전히 타협할 것을 고집하였다.

   중일교섭은 난관에 빠지고말았으며 중국이 그럭저럭 안일하게 지내는 사이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전쟁준비를 했다.

   일본은 조선정부에 압력을 가했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군용전화선을 가설하겠다고 언명하는 동시에 조선정부로 하여금 급속히 일본군대의 병영을 건축해 주고 아산(牙山)에 있는 중국군대를 철거할것과 중국과 조선간에 체결한 일체의 조약을 페기할 것을 강요하면서 이를 20일내에 답복하라고 까지 했다. 조선정부는 자체의 힘으로는 이에 저항해낼수 없었고 또 중국의 실제적인 원조도 받을수 없으니 하는수 없이 일본에 굴복하고 모든 것을 그에게 일임하였으며 오랫동안 내려오면서 중국과 체결하였던 모든 조약을 페기하여버렸다. 동시에 일본군은 아산에 있는 중국군대를 축출하여버렸다. 그통에 원세개도 조선을 떠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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