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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半島의 血 제1부 11.
2012년 09월 16일 09시 28분  조회:3720  추천:0  작성자: 김송죽
 

11.   

 

   조선땅에서는 변란이 일어나고 일본땅에서는 자기 국토를 사랑하고 지키기위한 국수주의(國粹主義)사조가 일어나 벌써 몇해째 파도치고 있었다. 13명의 젊은 선각자들로 조직된 정교사(政敎社)가 <<일본사람>>이라는 잡지를 출간하고는 그를 여론진지로 삼아 <<국민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토론을 벌려서 일본은 온 국민의 민족의식을 계발, 각성시키고있었다.

   여러해전인 1889년 2월 11일, 명치정부는 천황의 명의로 이또오 히로부미가 장악지도하고 이노우에 가오루가 원칙을 기초한 <<대일본제국헌법>>을 발표한바있는데 그 흠정(欽定)헌법에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 천황이 통치한다》고 명문으로 규정해놓았거니와 《법률에 따라서 신민은 병역에 복무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정교사는《군주전제의 국가라면 인민을 신민(臣民)이라 부르겠지만 우리 나라는 이미 립헌국가로 되었으니 응당 인민을 국민이라 불러야 하지 않는가.》고 과감히 이의(異議)를 제기했다. 그들은 이같이 정치사상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줄것을 요구하면서 정신문화면에서는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야한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은 어떠한가?     

   젊은 선지선각자들의 혈기는 보수세력의 타격을 받았고, 정부는 외세의 롱간에 들어 풍전등화마냥 위태한 처지에 놓여있다.

   기학(夔學)이가 경원에 갔다가 김호선생한테서 가진 <<일본풍경론>>은 바로 지난해 청일전쟁이 끝나 반년만인 10월에 출판된 소책자였는데 그것이 온 일본을 들끓게 만든것이다. 책의 저자는 30세나는 젊은 기자였다. 저자가 군함 <<축파호(筑波號)>>를 타고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몇 개를 고찰하면서 감수를 받아 돌아와서 일본의 풍토인정을 묘사하고 구가한 것이 이 책의 기본내용이였다. 기후와 해류, 식물, 동물, 수증기, 태풍, 화산, 하천, 산맥, 해안, 협곡, 온천....일본은 현세의 극락정토라며 요란스레 자랑했다.

   《체, 지진이 매일 삐지 않아 죽음과 울음과 한숨이 끊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극락정토란 웬 말이냐? 그렇다면 우리 조선은?》

    기학이는 책을 덮고 민요 한가락을 뽑았다.

     

                   에 금강산 일만이천 봉마다 기암이요

                    한라산 높고 높아 속세를 떠났구나

                    에헤라 좋구나 좋다 지화자 좋구나 좋다

                    명승에 이강산아 자랑이로구나

 

                    에 석굴암 아침경은 못보면 한이되고

                    해운대 저녁달은 볼수록 유정해라....

 

   허나 그는 다음절 후렴은 부르지 못한채 흐리우고말았다. 격정이 움츠러들면서 가슴속에 서글픔이 일기시작한 것이다. 그닥지 않은 일본경치, 그걸갖고 만들어낸 자그마한 책 한권이 온 국민의 자존심을 그토록 격발시키는데 우리는 왜 이모양이 돼가느냐, 왜?...스스로 물음을 던지고나서 결론지었다.

   《발전못한 민족이니 좋은 자연도 자랑하며 살 기분이 못되는구나!》

    눈물이 날 일이였다.

    가을이 다가고 겨울절기를 잡아든 함경도는 조선에서도 북방이라서 여느곳보다 추위가 일찌기 닥치였다. 그러나 서울이 멀어서 소식은 언제나 뒤늦었다. 어느날 민비가 피살되였으니 국상을 치룬다는 포고가 나붙었다. 그와 더불어 분명 일본 랑인이 민비를 시해(弑害)했다는 소문이 났고 이어서 로씨야와 미국과 여러 서양국가에서 항의를 제기하면서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일본정부는 압력에 못배겨 하는수 없이 미우라 고로오를 공사직에서 해임하고 무슨 조사단이라는 것이 내려와서 그 관련자들을 체포했고 심의하기 위해서 그들을 히로시마감옥에 감금했다는 보도가 신문에 났다.

   《그렇겠지. 그놈들을 내놓구 누가 그따위짓을 하겠니.》

    성묵이가 하는 말에

   《아무렴 남의 나라의 국모를 살해한단말인가? 째째하고 너절한 놈들이구나!》

    박기호가 격분했고

   《아수라야! 아수라야! 쯔쯔....》

    최삼용이는 혀를 찼다.

   《세상못하는 짓 없는게 왜놈이다!》

    기학이가 일본사람에 대한 증오심은 이때로부터 더해진 것이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일본정부는 왕궁에 밀려들어간 혐의가 있는 사람들을 조사해보았으나 모두 범죄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면서 그 책임을 대원군께 들씨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더니 또 얼마안가서는 그건 군무협찬 리주회와 일본 공사관에 있었던 박선이라는 사람이 한 짓이라며 걸려들어 처형되였다는 소문으로 바뀌였다. (사실은 그들이 현장목격자였을 뿐이다..)

   《원 무슨눔의 판국인지 모르겠구나.》

    서기학의 큰할아버지 서장련이 하는 말이였다.

   《란장판에 도깨비놀음이니 백성이야 모를리 맞지요. 진상은 세월이 가느라면  밝혀지게 될겝니다.》

   서장련은 손자의 이 말도 얼른 리해가 되지 않아 어둑거둑 보기만했다.

   희연이가 또 놀러왔다. 전보다 더 자주다니였다.

   

   <<기르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이요. 가르침에 엄하지 못한 것은 훈장의 게으름이라. 자식된 자 배움에 힘쓰지 않으면 옳은바 못되느니라.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무슨 일 하리오? 옥돌은 다듬지 않으면 보물이 될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례의를 모르나니라.>>

     

   기학은 부모나 큰할아버지, 할머니가 자기를 일찌기 장가보내려고 마음잡는 것 같으면  번번이 옛날 후진의 두연산이 자식을 가르친 말을 빌어 입을 막군했다. 한데 이제는 그따위 삼자경(三字經)은 소귀에 경읽기가 되는것 같았다. 내놓고 말은 안해도 서씨가문의 이 보배둥이가 이젠 나이 16살이 됐으니 전래의 습성대로면 가정을 이룰만하다고 여기고는 음력설기간에 잔치를 제꺽해 버릴 타산인것 같았다.

   《머리 안감아? 내 감겨주지, 이리와.》

    희연이는 더운물을 옹배기에 담아다놓고 독촉했다.

    기학이는 머리를 풀어 산발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에비!>>했다. 

   《귀신같아 간떨어지겠네.》

   《보기싫은거지? 나 이눔의 걸 훌 없애버리고싶다. 김호선생을 볼때마다 난 그의 차림새가 부럽더라. 우린 왜 제 몸을 그렇게 가꿀 자유마저 없나? 이건 통 리해가 안되는구나.》

   《어디서 그따위 해괴한 불평만 자꾸....》

    희연이는 비누물이 흰 거품을 일고있는 젖은 머리속에다 제 손가락을 넣어 긁적거리면서 그놈의 공부는 어느때 가서야 끝나느냐고 물었다.

   《아직 읽을 책 많아.》

   《<사서오경> 언녕 끝났잖았나.》

   《거야 끝났어두 태서신사, 세계지지....아직 배울게 많아.》  

   《그저 배운다, 배운다.... 평생 배워두 다 못배우는걸 갖구서. 그러다가는 아예 고만 글뒤지로 되고말겠다.》

   《배우잖구 뭘 하라니? 그렇지, 너의 부모님들 우리 어서 잔치해 애기를 기르라 그거지? 어디 말해봐, 그걸 바라시는거 맞지?》

   채희연이는 낯이 붉어질 뿐 말이 없다.

   기학이는 두집사이에 잔치말이 있었겠구나 속점을 쳤다. 희연이가 미워서가 아니였다. 자기는 아직 나이 어리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 지식이 많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그 하나의 생각과 욕망이 가슴속에서 그냥 붙같이 타고있었던 것이다. 친구 넷중에서 최삼용이 하나만이 재작년에 13살을 먹자 부모들의 권에 따라 서둘러 장가를 가고는 성묵이나 기호나 기학이는 모두 나이 어렸을 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장가는 늦게 가는것이 옳다는 주장이였던 것이다.

   <<소년이로 학난성(少年易老 學難成), 일촌광음 불가경(一寸光陰 不可輕)이라했어요. 무슨말인가우요? 소년은 늙기 쉬우나 학문은 이루기 어렵네라, 순간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일찍장가든 삼용이를 빼고 세친구가 똑같이 입끝에 달고있는 구호였다.

 

    한편 이때의 국세를 보면 일본은 동학란의 원인이 내정적폐(內政積弊)의 소치(所致)라 하여 조선정부에 내정개혁을 권고하는 한편 청나라의 협조를 구하려 했으나 청나라는 이에 응하지 않고 일본군의 철퇴만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청나라세력을 일소하기로 하고 친일파를 리용하여 만청으로부터 귀환(歸還)한 대원군을 받들어 사대당(事大黨)을 배제하는 한편 청나라에 향하여 선전포고를 하여 전쟁을 일으키고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갑오갱장(甲午更張)이라 대원군은 국운(國運)을 개조한다면서 청일풍운이 그같이 급박한 속에서도 일본의 권고대로 민파(閔派)의 세력을 구축하고나서 정치혁명의 안(案)을 상정하고는 그를 온 국민에게 알렸던것이다.

   

   모두 10가지 되는데 대요(大要)는 이러했다.

   

  1. 문벌(門閥)을 파하여 반상(班常)을 불구하고 인재를 선용(選用)할 것.

   2. 문존무비(文尊武卑)의 제도를 폐(廢)할 것.

   3. 죄인(罪人)의 련좌(連坐)하는 률(律)을 물시(勿施)할 것.

   4. 적(嫡)과 첩(妾)이 모두 자녀가 없어야 양자를 허(許)할 것.

   5. 남자 20세 녀자 16세 이후에 혼인할 것.

   6. 부녀의 재가는 귀천을 막론하고 각기 자유에 맡길 것.

   7. 공사노비(公私奴婢)제도를 혁파(革破)하고 인신매매를 금할 것.

   8. 조관의제(朝官衣制)는 페견(陛見)에는 사모(紗帽), 장복(章服), 반령(盤領), 착수(窄袖)로 하고 연거(燕居)에는 칠립(漆笠) 답호순대(?護純帶)로 하며 사서인(士庶人)은 칠립(漆笠), 주의(周衣), 사대(紗帶)로 하고 장병은 근제(近制)를 준(遵)할 것.

   9. 대소 관공사행(官公私行)에 평교자(平轎子)와 초헌(?軒)을 영폐(永廢)하고 부액(扶腋)의 제(制)를 영폐(永廢) 할 것.

   10. 역인창우(驛人倡優) 피공(皮工)은 다 면천(免賤)할 것.

 

   신문에 공문이 실리였다. 기학이는 그것을 보고는 <<부녀의 재가는 귀천을 막론하고 각기 자유에 맡길것.>>이라는 대목과 <<남자 20세, 녀자 16세이후에 혼인할 것.>>이라는 것이 맘에 딱 들어서 손벽을 탁 치고는 연필을 찾아 그 밑에다  쪽 줄을 쪽 그어놓았다. 희연이는 혼인나이에 이르었지만 기학이는 아직 몇살더먹어야 혼인 표준에 오르는 것이다.

  《이 신문이야 잘 건사해야지.》

   마침 이날 희연이가 왔길래 기학이는 희연이를 향해 두 가정에서 어른들이 이제와서도 전처럼 결혼하라고 조르면 이것을 방패막으로 내들리라 했다.

   《시끄러워!》

   희연이는 혼인에는 전혀 무관심하는 기학이를 말을 더 못하게 했다.   

   뾰로통해서 홰를 쓰는게 더 보기좋아다도 기학이는 손벽을 쳤다.

  《로쳐녀 시집새암 곱새벗기겠네. 앵돌아진 맘에 똥구럭터지겠네.》

   희연이는 놀림받자 손바닥으로 기학의 뒷잔등을 철썩 때려놓고는 얼른 피해 달아나며 깔깔댔다.

 

   새해들어서 1월초의 어느날이였다. 금희동마을 소학교에서 방금 첫시간을 보고났는데 군에서 관차가 젊은이 둘을 데리고 와서 김노규(金魯奎)선생더러 빠진 학생이 없는지 점검하라는 것이였다. 김노규(金魯奎)선생은 웬 영문인지를 몰라 그를 향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관차는 별말이 없이 자기가 어깨에 메고 온 가방에서 종이장을 꺼내더니 정부에서 하달한 고시라며 내리읽는 것이였다.

  "단발령"이였다.

  《“단발령”이라, 하다면 상투를 언지 말고 머리태를 없애라는건가? 알았어, 그러면야 좋지! 》

   언젠가 자기나이또래의 김호청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양새가 보기좋다했던 김노규(金魯奎)선생은 의례 와야 할 일이 왔다면서 학생들을 향해 우선 자기부터 행동할테니 너희들도 나처럼 곰상히 머리태를 잘라버리라 했다.

그러나  학생 하나는 머리를 가로젓더니《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훼상효지시(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灰傷孝之始)》하면서 그래도 부모의 허락을 받아야겠다면서 집으로 달려갔다. 그가 죄친 말인즉은 내 몸은 부모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감히 이를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孝)의 시작이라는 것이였다.

   늙은 유생이 손자의 고발을 듣고는 학교를 찾아와 노발대발했다.

  《녕위지하 무두귀, 불작인간 단발인! (寧爲地下 無頭鬼, 不作人間 斷髮人)》

   차라리 목없는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머리깎는 사람은 아니되리라며 항거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의 항거가 무모한 짓은 아니였다. 늙은 유생이 그럴만한 까닭이 있기도 했다. 

   그러잖아 민비가 생전에 백성들에게 민분을 얼마삿던지간에 조선 사람도 아닌 일본사람이 무장을 갖추어 갖고 궁궐에 뛰여들어 학살을 자의로 감행한 사실이 들어나 충의충군사상이 강한 유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반일감정과 민족적격분을 야기시켰는데 이번에 또 단발을 하라니 웬 말인가? 봉건유교사상이 골수에 박힌지라 유생들에게는 "단발령"이란 접수 할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이 민족적 풍습에 대한 란폭한 유린행위로까지 여겨졌던 것이다.

  《어명이라? 임금이 머리태를 자르라했다?》

   이러면서 늙은 유생은 정부의 공문을 반신반의했다.

   이런판에 기학이가 나를 보란듯이 나섯다.

  《나는 깎을래요! 자 어서 깎아줘요. 거치장스러운 이따위 머리태가 효도와 무슨 상관이게요. 그 다 쓸데없는 봉건이죠. 》

   그러자 다른애들역시 너도 나도 뒷따라나섰다. 

   관차를 따라서 온 젊은이 둘이 가위를 절컥거리면서 애들의 머리태를 뭉청 뭉청 잘라버렸다.

  《기학이 네가?...음!》

   늙은 유생은 기학이와 선생을 째려보더니 한마디 탄식을 뽑고나서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그만 돌아가버렸다. 우의 지시니 붙쫓는 사생(師生)을 자기가 무슨 수로 더 나무린단말인가? 어떤 선생이 있으면 어떤 학생이 있는 것이다. 애들이 학교에 붙자마자 선생께서 배운것이란 군위신강(君爲臣綱)이니, 부위자강(父爲子綱)이니, 부위부강(夫爲婦綱)이 아닌가. 그런줄로 알고있는 늙은 유생은 속에 불만이 있어도 “단발령”이 어명(御命)이라니 더 항거할 수 없었다.

 

  서장련이 손자의 머리태가 졸지에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건 더 말할 것 없다. 기학이는 그에게 "단발령"이 내려서 이렇게 되었노라 알려주고나서 자기의 속심을 토로했다.

   《머리가 효도와 무슨 상관인가요. 장차는 우리가 입고있는 이 복장도 개량해야 할 것 같아요. 보기싫고 불편한 것은 고쳐버려야죠. 낡은 것을 그냥 고집하다가는 발전을 못해요. 봐요, 나라가 발전못하니 아라사에 당하고 왜에게 당하는 꼴이 되고만게 아닌가요.》

   손자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는지라 서장록은 더 나무리지 못했다.

   한데 알고보니 이번의 "단발령"은 지나치도록 무리하게 강행된 것이였다. 왕과 사전에 근본 한마디 문의도 청시도 없었다. 민비시해사건을 조사하러 왔답시고 이제는 조선의 내정에 공개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그 까만 팔자수염의 매끄럽게 생긴 고무라 쥬따로가 묵은해가 막가는 12월 30일에 친일내각으로 하여금 강박적으로 "단발령"을 내리게 하고는 그를 집행하도록 사촉했던것이다. 그는 하루밤사이에 이 령을 집행해야 한다면서 유길준(兪吉濬)에게 가위를 주어 들게하여서는 함께 궁궐에 들어가 임금의 머리태를 사정없이 잘라버리였거니와 옷도 양복으로 갈아입게 했다. 일본의 강도적행실에 이미 한번 넋살을 먹은 고종 리희(李熙)는 무서워서 몸을 벌벌 떨어 댈 뿐 감히 반항못하고 하라는대로 제 몸을 내맡겼던 것이다.

   수백년간 머리속에 깊히 박혀서 사람의 언동을 지배하여 온 유교가 혼란한 진통에 뿌리가 문질러지는 순간이였다. 금희동 학교에서는 부모의 허락을 받겠다고 집에 간 어린 학동을 내놓고는 선생도 학생도 거의가 선선히 나서서 머리태를 잘라버렸거니와 이에 감염이 되여 마을의 젊은이들도 쭈물대지 않고 제 머리태를 썩둑 썩둑 잘라버렸다. 그러니 "단발령"이 여기 금희동에서는 효력을 내여 제구실을 한거나답지 않았다. 어른들 중 머리태를 자르지 않은건 오로지 마을의 그 80객이 되는 늙은유생과 그의 식속외 어른 몇뿐이였다. 그들은 지어 하늘이 무너진다해도 머리태만은 견결히 자르지 않으리라 맹세하기 까지 하면서 뻗히였다.

 

   이런때 저녁켠에 한떼의 정체불명한 사람들이 이 마을로 쓸어들었다. 인원이 무려 20명가량되였다. 머리에다 둥그런 전립을 쓰고 풍안경을 낀 억대스레 생긴 사나이가 말을 탔는데 그자가 분명 이 무리의 우두머리였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까지도 불안과 호기심을 갖고 마을에 홀연나타난 이 불청객들을 대했다.

   말이 배를 곯았는지 투레질을 해가며 울바자가에 돋아난 풀을 뜯었다.   

   풍안경을 건 자는 자갈물린 고삐를 채여 말을 진정시키면서 구경하느라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목청을 길게 뺐다.

   《여기 백성들은 듣거라. 우리는 의병이다. 쪽발이 왜놈이 미워서 궐기해 싸우는 몸이다. 그런줄을 알고 달리 의심치 말고 자기 사람으로 여기여 곱게 대해주기 바란다.》

   아이들은 자칭 의병이라는 이 목자사나운 한 무리의 어중이떠중이들의 행색이 너무나도 초라한지라 손으로 입을 싸쥐며 웃었다. 그중에 총가진자가 모두해서 다섯밝에 안되는데 그나마 어느때 제조한 것인지 모양다리없고 형편없이 낡아버린 화승대였다. 그외의 모두 칼로 자신을 무장했다.  

  《의병이면 군대아냐, 건데 어디 의병같기나하나?》

  《그러게말이다. 울아부지 그러시던데.....》

  《의병? 쳇, 뉘 알게뭐야?》

   아이들이 수군거리면서 심드렁하게 대했다.

   어른들마저 고운짓해야 곱게 보지 하면서 기피하는 것을 보자 풍안경낀 자가 가지들말라고 고성을 질러놓고는 선포한다.   

  《싸우는데는 걷모양이 어떤가에 달린게 아니라 요는 투지가 언떤가에 달린거다. 자 이만큼 말하구 한가지 알리고푼 것이 있다. 우리가 능히 알아서 처리해줄수 있는 문제는 관여를 하는거니 원한이나 억울함이나 고충이 있거든 그것을 서슴치 말고 고발하라, 우리가 처리해줄테니.》

   《고발하라, 처리해주겠다? 쳇, 제가 뭔데? 판관이라도되는건가?》

    저기 모여선 마을 어른들 속에 두팔을 가슴앞에 틀고 섰던 최풍헌이가 어이없어 한마디 잇새로 내뱉고나서 돌아선다.

   그런데 풍안경낀 자의 그 말이 마을의 늙은 유생과 그의 가족들에게만은 고맙게 들리였던 모양이다.

    늙은 유생의 아들이 마치도 구세주나 만난 것 처럼 나서면서 과연 고발했다.

   《의병장님! 우리 마을은 요즘 큰 변을 당했습니다.》

   《뭐라? 변이라니, 그건 무슨소린고?》

   《저 애들을 보십시오. 머리태를 다 잃었습니다.》

   《원 이런!....》

    풍안경을 낀 자는 과연 이제야 아이들의 뒷통수에 달려있어야 할 머리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몹시 놀래는 표정이다. 

  《모두 꼬리빠진 강아지루 돼버렸구나. 어쨋다구 이모양들이냐?... 너들은 대체 어느 고약한 녀석의 롱간에 들어서 죄 이런 망칙한 꼴루 돼버린거냐? 어서 이실직고들 해라!》

   이에 성묵이가 대꾸질했다.

  《거 말 좀 조심해요. 아무것두 모르면서. 롱간은 무슨 롱간. 이건 롱간에 들어 한짓이 아닙니다.》

  《그럼 네녀석이 꼬리는 엇쨌다구 빼던진거냐, 말해라.》

   말본새가 어지러웠다. 보아하니 풍안경을 낀 자는 시국이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양없고 기껏 완력이나 부릴줄을 아는 위인같았다. 성묵이가 해석해주지 않고 그냥 그모양으로 맛다들다가는 이제 곧 야 이놈아 너는 뉘집의 후레자식인데 버르장머리없이 놀아대느냐고 욕사발이나 먹고 경을 칠 것 같아서 이번에는 기학이가 앞으로 한발나서서 해명했다.

   《왜 그래요? 어르신님네들은 지금 나라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기나해요? 제가 알려드립지요. “단발령”이 내렸습나다, “단발령”이 내렸다구요. 그 누구든 머리태를 다 잘라야 한답니다. 없애버려야 한답니다. 그래서 우린 다 이렇게 꼬리가 없어지게 된겁니다. 헌데두 롱간에 들었다니요. 웬 말씀을 그렇게 하는가요. 어명이였으니 롱간일수야 없지요, 안그렇습니까?》 

    이쯤 되자 늙은 유생이 펄쩍 뛰면서 일러바쳤다.

   《어명이라니 그게 웬 말이냐? 그런게 아니우다. 저 애의 말을 믿지 마슈. 단발령은 어명이 아니외다.》

    그가 그러는게 야속했다. 아이들은 의병이라며 나타난 이 한 무리의 오합지졸을 속으로 비웃고있는데 늙은 유생은 전전긍긍하고 비겁스레 허리까지 굽실거리면서 고발했다.

    풍안경낀 자는 늙은 유생을 눈박아보더니 입을 다시연다.

   《로인장! 그래 나더러 그걸 어떻게 하라는거요? 령을 거둬들이게끔 해달라는거요, 뭐요? 그거야 임금이나 할 일이 돼서 우린 상관안해. 우리가 하는 일은 왜놈을 몰아내는거야. 그런줄을 알고 방이 너르거든 빌려주구려 하루밤 보내게.》

   일본랑인이 민비를 시해(弑害)한 것이 1895년(乙未)이라 해서 이를 보통 "을미사변"이라 한다. 작년 10월 사변이 생긴 후에 신내각(新內閣)이 성립되여 국정전반에 걸쳐 개혁을 단행하려 하였다. 종두법(種痘法)을 실행하고 단발령을 반포하였으며 음력을 페지하고 서기 1896년부터 년호를 건양(建陽)이라 정하고 태양력(太陽曆)을 사용케 하였다.

   한데 갑오갱장(甲午更張)을 국민들은 반신반의하고있을 정도였다면 을미사변(乙未事變) 즉 명성황후(明成皇后ㅡ후에 봉함)의 시해(弑害)와 이번의 “단발령” 강행은 부일세력과 일본무리에 대한 민중봉기(民衆蜂起), 의병항쟁(義兵抗爭)의 기폭제로되여가고 있었다.  

   하여 이해의 1월부터 반일운동이 적극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함경도에서만도 함흥, 정평, 금야, 고원, 리원, 삼수, 원산, 안면 등지에서 반일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조선에서는 정권을 우롱하는 파벌중에서도 대원군을 상대로 수십년동안 투쟁한 당파ㅡ민후일파가 가장 유력하였으니 다소 민원(民怨)도 있었을 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그러나 일개 국모(國母)가 외적에게 참살된 것은 천고의 대변이 아닐수 없었다. 일본의 이같은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남으로 하여 조선은 자주권이 혹심하게 유린되였음이 알려져 각지에서 백성들이 반일무장조직인 의병대를 조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주로 유생들에 의하여 수행되였다. 지난해 11월에 충청도 보은에서 유생 문석봉이 반일의병운동을 호소하고 투쟁을 벌리려고 하였으나 관리들에게 체포되고말았다. 하지만 탄압이 계속될수록 반일투쟁을 적극하려는 백성의 투지는 막을 수 없었다.

    각 지방에서 유생들이 의병대를 조직하기 위한 사업들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었다.  

    한데 오늘 금동리에 나나난 이 한무리는 신원을 알려주지를 않았다. 알려주면 불리하기에 그런다고 한다. 가히 리해할만한 일이였다. 그래서 더 캐묻지들않는다. 한데 국정에는 너무도 깜깜하니 그들을 의병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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