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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601□노섹스데이□강경주, 시작시인선 38, 천년의시작, 2004 시가 복잡한 내용만을 노래할 필요는 없지만, 쉬운 내용을 노래한다고 해서 짜임새나 이미지, 또는 주제까지도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쉬운 시가 쓰기에는 더 어려운 수가 많다. 그것은 고민을 압축하고 할 말을 거기에 꼭 맞는 이미지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시들은 대체로 읽기 편하고 쉽다. 그러나 그것이 오랜 단련을 거쳐서 정제된 것이라는 느낌보다는 쉽게쉽게 쓰려는 태도에서 나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독자의 마음속에 울림을 남기는 구조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4337. 6. 7.]
602□그리움이라는 짐승이 사는 움막□조정인, 시작시인선 37, 천년의시작, 2004 상상력이 독특하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고, 그것이 감성의 어떤 측면을 일깨워 여태까지 시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까지 뿌리를 드리우는 묘한 재주가 있다. 이것이 외국시의 흉내가 아니라면 이런 시도는 틀림없이 새로운 시의 경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읽기가 쉽지 않아서 곳곳에서 이미지들이 불편한 분열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그런 귀찮음을 극복하고 들여다보면 시인만이 본 세계의 무늬가 세밀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이미지와 실재 사이에서 모험에 가까운 실험을 하고 있는 것과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보다 너무 많이 동원되는 말들은 이 시집의 큰 단점이다. 그리고 유미주의 경향이 너무 짙어 안으로 폐쇄된 구조를 갖는 것도 심각하게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 시들이 드리우고 있는 세계가 아주 독특하고 참신한 곳이기에 이러한 단점만 보충하면 아주 독특한 시의 세계를 이룰 시인이다. 한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7. 6. 7.]
603□왜가리는 왜 몸이 가벼운가□이나명, 시작시인선 36, 천년의시작, 2004 시인의 성실함과 꼼꼼함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그러나 역시 너무 성실한 점이 문제가 되는 시집이다. 그만 하면 됐는데도 자꾸 더 설명하려고 드는 것이 바로 그런 성실성에서 나온 것이다. 한 군데라도 흠집이 있으면 안 된다는 완벽주의 비슷한 고집이 그런 점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너무 자세하게 보여줘도 재미가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 홀딱 벗은 여인의 몸보다 살짝 가려진 몸이 훨씬 더 오래 눈길을 끈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것들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기록하는 것은 시인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인데도 너무 많이 간과되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인의 덕목이다.★★☆☆☆[4337. 6. 8.]
604□염소좌 아래 잠들다□전명숙, 시작시인선 39, 천년의시작, 2004 무릇 시인이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야 한다. 아무리 보편성에 그의 사고와 사상이 뿌리박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만큼은 남달라서 인식을 새로운 감각으로 체험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능력 있는 시인이고 재주 있는 시인이다. 그런데 그런 재주는 배워서 되는 수가 있고 배워도 안 되는 수가 있다. 그런데 배워도 안 되는 재주를 갖고 있는데 여기다가 배워도 되는 것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시집이 그렇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만의 독특한 시각이 확립돼있다. 그리고 일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꼼꼼히 읽은 생각을 말하고 있다. 아주 독특한 시각이다.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여태까지 별로 가본 적이 없는 새로운 세계다. 이런 세계를 발견하는 것은 시인의 능력이라고 할 밖에 없다. 다만, 애써 발견된 이미지에 어떻게 주제를 실어서 이미지가 헛돌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면서 할 말을 하게 하는가 하는 점이 조금 서툴다. 이미지들이 아무런 의미나 정서를 환기하지 못하고 이미지 혼자서 따로 도는 경우가 많다. 이 점만 보충된다면 아주 특별한 시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문장부호를 정확히 표시해줄 필요가 있다. 이 시들은 아주 특별한 방식의 인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때로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다시 읽어야 되는 곳이 많다. 문장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식의 표현을 글이 따라가지 못해서 독자에게 생기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문장부호를 잘 표기해주는 것이 좋다. 독자들이 쓸데없는 곳에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시인의 몫이다. 한자야말로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의 원인이다.★★★☆☆[4337. 6. 8.]
605□함부로 성호를 긋다□강경호, 시작시인선 40, 천년의시작, 2004 시가 단단하고, 군더더기가 별로 없다. 시를 많이 써본 시인이다. 그런데 너무 자신의 체험에만 의존해서 시를 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사 중심의 시가 되고, 그 가족사가 특별한 의미를 띠지 않는 것이라면 시 역시 특별한 의미를 띠지 못하게 된다. 시의 경향으로 보아 상상력의 색깔을 통해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그런 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물의 배후로 더욱 깊이 들어 가든가, 아니면 더욱 치열하게 사색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한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7. 6. 8.]
606□아름다운 소멸□김은숙, 시작시인선 35, 천년의시작, 2003 시의 언어에는 사실 묘사를 지향하는 언어가 있고 정서 묘사를 지향하는 언어가 있다. 사실 묘사를 지향하는 언어는 대상과 정확히 일치하고자 하지만, 정서 묘사를 지향하는 언어는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구별하여 써야만 효과를 내는 곳이 따로 있다. 이 두 가지가 뒤섞이면 시가 산만해 보이고, 지름길을 가지 않고 에둘러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시집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바로 이것이다. 무언가 한 겹이 덜 벗겨져서 흐릿한 느낌이 든다. 이런 문제는 주제의식의 치열성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래서 먼저 주제를 분명히 해야 하고 그 주제를 드러내는데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고르는 일이 필요하다. 주제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에 매달리고 이미지에 매달리다 보면 주제는 점점 흐려진다. 이미지는 스스로 주제를 만들어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거를 수 있도록 상상력의 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4337. 6. 8.]
607□숨쉬는 무덤□김언, 시작시인선 18, 천년의시작, 2003 참 피곤한 전투를 하는 시인이다. 대부분의 시들은 한 편에서 모든 기교가 다 드러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시집 전체가 어떤 대상을 토막토막 잘라서 보여준다. 그것이 일상의 어떤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또렷한 모습을 그리지 않는 것은 낱낱의 작품이 너무 고집스런 어떤 형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골탕 먹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골탕을 먹고서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이 세상이기도 해서 과연 이런 싸움이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달려드는 시인의 싸움이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건드려야 할 부분을 좀 더 정확히 설정하고 달려드는 것이 좀 더 좋은 효과를 내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내용의 치열성으로 보면 형식도 거추장스러울 텐데, 시의 형식을 정직하게 지키는 것도 의문이다.★★☆☆☆[4337. 6. 8.]
608□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김혜영, 시작시인선 41, 천년의시작, 2004 산의 전체 모양을 그리다보면 그 산 안에 들어있는 자잘한 것들, 예컨대, 나무의 종류와 풀, 그리고 거기에 깃들어 사는 개구리, 새 같은 것들을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시집이 그렇다. 생각이 현실을 앞서가느라고 현실의 어느 곳에서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맺어주어야 할지 그것이 애매모호해진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현실을 보는 어떤 시각을 전제로 해놓고서 거기에 맞는 이미지만을 골랐기 때문이다. 관념성을 면할 길이 없다. 시는 현실의 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출발점이 너무 멀어져 잘 안 보이더라도 출발점을 놓치지 않으면 이미지는 거기에 젖줄을 대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런데 그 출발점을 아예 놔 버리면 이미지는 자신의 움직임으로만 말을 하게 된다. 그런 말들은 그럴 듯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를 않는다. 여기서 다루는 주제도 화법도 노혜경의 것을 많이 닮아있지만, 노혜경보다 더 높이 솟는 바람에 느낌은 그만큼 까마득해졌다. 좀 더 낮게 내릴 일이다.★★☆☆☆[4337. 6. 8.]
609□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김충규, 시작시인선 1001, 천년의시작, 2002 복잡하게 말하는 방법을 즐기는 시인이다. 이 시가 가야 할 곳은 상징이다. 그런데 상징은 이미지가 선명해야 한다. 선명해야 한다는 것은 주제를 어떤 이미지 뒤로 자꾸 숨기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자꾸 숨기면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가 하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애써 만든 이미지들의 조합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는다. 어떤 전제된 관념을 바탕으로 해서 해석을 하는 방법을 시라는 갈래의 역사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줄거리를 다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미지들이 서로 얽혀있다. 그것이 의식의 실험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형식사의 관점에서 용인될 수 있겠지만, 이미지가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라면 불필요하게 번잡한 것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특별한 의미라기보다는 표현을 위해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곳곳에서 많이 발견되는 까닭이다. 의미의 맥락을 벗어나려는 이런 식의 현란한 이미지들은 자칫 공허해지기 쉬운데, 그 공허함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상징으로 승화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실험의식 근처의 몸짓만이 남을 뿐이다. 결국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는 뜻이다.★★☆☆☆[4337. 6. 8.]
610□즐거운 사진사□차승호, 시작시인선 20, 천년의시작, 2003 사물에 애정을 갖고 접근하려는 성실한 태도가 돋보이는 시집이다. 그런데 밋밋한 것이 흠이다. 상상력도 너무 밋밋하고 사물에 접근하는 방법도 너무 밋밋하다. 그렇다고 짜릿한 자극을 주려는 시들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농촌 문제라든가 추억의 문제는 이미 많이 다룬 내용들이어서 자신이 갖는 색깔을 자신의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밋밋한 상상력은 무난할지 몰라도 때로는 그것이 큰 한계로 작용할 때가 있다. 그 한계를 바꾸는 방법은 인식 대상을 잘 선정하는 것 한 가지가 있고, 상상력의 진폭을 넓히는 또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어느 경우에도 한자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4337.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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