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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신호등 쓰러진 길 위에서□김수열, 실천문학의 시집 131, 실천문학사, 2001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웃에 애정 어린 관심을 두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의미의 지휘에 조용히 복종하면서 시를 통일된 상으로 이끌어 가는 양상이 볼 만하다. 그러나 전망의 결핍과 불필요한 반복, 무의미한 탄식이 곳곳에서 시를 흠집 내고 있다. 게다가 중간에 이유 없이 섞인 한자는 이러한 흠을 더욱 크게 만든다.★★☆☆☆[4337. 6. 15.]
642□나는 상처를 사랑했네□나종영, 실천문학의 시집 130, 실천문학사, 2001 갈팡질팡이다. 대들보가 무너져버린 집의 몰골을 드러낸 셈인데, 이야기하는 것들이 너무 다양해서 통일이 안 될 정도이니, 시집 한 권으로서는 치명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나가면서 그것을 채울 길 없는 시선이 주변의 자잘한 일상과 자연물에 머물고 있다. 그래도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것을 채워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럴 때는 그 중요한 것이 솟아오를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다. 아예 절필에 이르더라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 한자는 정말 대책 없는 허영심이다.★★☆☆☆[4337. 6. 15.]
643□당몰샘□박두규, 실천문학의 시집 134, 실천문학사, 2001 민중문학의 모색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시집이다. 이 시집만이 아니라 실천문학사의 시집들이 대체로 그런 고민에 빠져있다. 눈앞의 적과 싸워야 하는데, 아무도 지원해주지 않는 이 어이없는 상황이 시의 고민을 만든다. 이 시집의 대부분도 그런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모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보다는 관찰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만 그 관찰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지를 않고 밖으로 향하기 때문에 답을 찾기는 어렵다. 아마도 민중문학의 문제는 이것일 것이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변한다는 사실. 어떻게 변해야 할지 막막한 감정이 이 시집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밖을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의 내부를 보아야 한다. 답은 안에 있다. 한자는 어이없다.★★☆☆☆[4337. 6. 15.]
644□오래 휘어진 기억□김만수, 실천문학의 시집 133, 실천문학사, 2001 서로 화합하기 힘든 세계가 잘 형상화될수록 일은 더 글러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죽음은 불교의 윤회설로 돌아가고, 불교는 현실을 등지는 좋은 도구가 되며, 그 도구 뒤에 남은 현실은 다시 죽음을 앓고 있다. 이 시집은 이런 모순을 곳곳에서 그리고 있다. 애초부터 그것이 조율되어 시인의 인식이 그런 모순을 담아내는 큰 틀을 갖고 있어 형상으로 승화되면 상관없지만, 이 시집의 시인은 그런 인식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집착을 버린 곳에서 인식이 깊어지기 마련인데, 아직 집착을 버린 것도 아니고 인식이 아주 깊이 들어간 것도 아니어서 다소 어정쩡하다. 지금의 민중문학이 놓여있는 상황에서는 인식으로 아주 깊이 들어가서 현실로 돌아 나오는 방법이 유일할 듯하다. 한자라는 봉건세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4337. 6. 15.]
645□무화과는 없다□김해자, 실천문학의 시집 135, 실천문학사, 2001 민중문학의 출발점은 시인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하는 것을 정확히 아는 일이다. 자신이 서있는 자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또는 서 있어도 그것을 정확히 논리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허한 것이고, 바로 그 공허 때문에 사람들이 공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웃의 아픔을 노래한 시들이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짚고 그 위치에서 이웃의 아픔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받아들임의 자세가 사람을 감동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이 시인은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시에 실현하고 있다. 시인이 이런 원리를 아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으로 바로 그 난제를 해결하고 있다. 따라서 침체에 빠진 민중시의 한 활로를 이 시집은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민중시의 한 구원일 수 있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과 그것이 자본의 지배 하에서 어떤 질곡으로 자신과 이웃을 조여오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굳이 페미니즘을 논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체제하의 최대 피해자인 여성노동자의 감성은 민중시가 도달해야 할 마지막 자리인지도 모르겠다. 이 시집은 그 마지막 지점을 은은히 비추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한자만 빼면. 어찌 되었거나 낙타도 코뚜레를 하던가?★★★☆☆[4337. 6. 15.]
646□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양문규, 실천문학의 시집 138, 실천문학사, 2002 한 풍경을 깔끔하게 보여주는 솜씨는 아주 뛰어나다. 군살을 붙이지 않고 한 풍경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은 여간한 수련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에서 풍경 묘사는 반드시 그것이 전하고자 하는 어떤 세계를 전제로 한다. 세계의 한 끝을 끄집어내는 그런 묘사이어야 한다. 아무리 풍경이 깔끔하게 묘사되어도 그 풍경이 일구고자 하는 세계가 희박하거나 이미 있는 구태의연한 세계이면 그냥 풍경으로 그칠 뿐이다. 풍경의 현장을 절간으로 돌린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절간으로 가면 절간에 그 전에 갔던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그대로 반복하면 안 된다. 그런 반복은 안 본 것과 같다. 이 시집의 전반부는 거의 절을 배경으로 하는데, 거기서 하는 얘기가 앞사람들의 얘기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뒷부분의 시들은 그나마 배경으로 하는 곳이 속세여서 절간이 거느리던 신선미도 떨어진다. 한자는 정말 봐주기 힘든 배경이다. 그러고 저러고 이런 시집이 어찌하여 실천문학사에서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싸움이 끝났다는 건가?★★☆☆☆[4337. 6. 15.]
647□황토 마당의 집□김태수, 실천문학의 시집 138, 실천문학사, 2003 호흡이 긴 시들인데도 긴장이 늘어지지 않게 잘 이끌어 간 능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이야기가 시에 들어오면 시는 늘어질 수밖에 없다. 늘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특별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인데 그렇게 되면 대부분 줄거리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결국 시속으로 이야기를 끌어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시집 역시 그런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야기의 단위를 작게 나눔으로써 한없이 늘어지는 것을 겨우 막아냈다. 제1부의 시들이 추억 속의 사건들을 불러내어서 추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했다.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제3부 장시 ‘그 골짜기의 진달래’는 거창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것인데, 역시 사건의 무게에 눌려서 시가 밋밋해진 것이 흠이다.★★☆☆☆[4337. 6. 15.]
648□늙은 산□장용철, 실천문학의 시집 110, 실천문학사, 1996 사물에 대한 해석을 해석에 그치지 않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도 좋고, 포착된 이미지를 끝까지 완결하려는 집중력도 대단하다. 다만 제1부의 시들 중에는 필요 이상으로 독특한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 시의 신선미를 좋게 한다는 불필요한 믿음이 서려있고, 뒤로 가면서 추억에 너무 매몰되어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 점이 눈에 띈다. 이런 특징은 주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시를 이끌며 그것이 때로는 부분에 관심을 묶어두어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큰 시각에서 인지하도록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잘한 발견들을 무시하고 큰 인식의 결과만으로 시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자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배려이다.★★☆☆☆[4337. 6. 15.]
649□지독한 불륜□공광규, 실천문학의 시집 109, 실천문학사, 1996 무엇보다도 할 말이 분명하다는 것이 장점이고, 시가 그 말을 중심으로 모든 이미지와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틀마저도 깨면서 주제가 툭툭 불거지나 그것 역시 생각을 드러내는 한 모습으로 볼 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할 말이라는 것이 자조, 자탄, 절망 같은 것이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어떤 조짐을 읽는 눈이 시인의 진짜 눈이다. 자본의 번화한 모습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자본의 생리가 불러올 수밖에 없는 인간 해방의 한 구멍을 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다음 시대를 여는 정직한 절망일 것이다. 한자는 제일 먼저 청산해야 할 봉건의 유산이다.★★☆☆☆[4337. 6. 16.]
650□무엇이 너를 키우니□이은봉, 실천문학의 시집 108, 실천문학사, 1996 할 말이 없을 때는 침묵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집이다. 우선 이야기를 꾸며가는 능력이 좋아서 시가 무리 없이 잘 전개되고 있고, 그것은 시를 많이 써본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방향을 잃으면 때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마는 시들이 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절필을 하거나 잠시 쉬는 것이 정답일 경우가 많다. 이 시집의 시들도 대부분 무의미한 시들이다. 일상사의 자잘한 풍경 속에서 어떤 희망을 읽어내자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절망을 정직하게 말하자는 것도 아니고, 내부로 침잠하여 수양하자는 것도 아니니, 그럼 뭔가? 정답을 모를 때는 컨닝보다는 백지로 내는 것이 자신에게 더 당당하다. 한자는 오점이다.★★☆☆☆[4337.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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